• 최종편집 2024-04-19(금)
 

[교육연합신문=김대중 기고]

  “ㅁㅎ? 말 몇명만 댓 다 달아주 몇명 탐라

   유령 몇명 잡아요
   내 와꾸가 어떼? ㅆㅅㅌ지
   지나가면서 다 좋아요“

 

필자 페이스북 10대 친구가 올린 글이다.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해석을 요청하자, “뭐해? 프사(프로필 사진)를 몇 명에게만 바꾸겠다고 말했다. 댓글 다 달아줘. 몇 명 타임라인에 게시물 올려준다. 연락하지 않는 친구 몇 명 삭제해요. 내 얼굴 어때? 매우 좋지. 지나가면서 좋아요 다 눌러”라고 풀어 주었다.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졌다)’, ‘댕댕이(멍멍이)’와 같이 요즘 10대들이 쓰는 말을 ‘급식체’라고 한다. ’급식을 먹는 세대가 쓰는 언어‘라는 뜻이다. 10대들은 SNS, 인터넷 방송, 게임을 즐기며, 그 속에서 만든 그들만의 언어를 습관적으로 쓴다. 이러한 급식체가 10대들의 언어 문화로 확산되자, 2018년 전남 광양 백운고 황왕용 사서교사와 1학년 학생들이 함께 <급식체 사전>을 엮고 출판하였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언어 습관을 되돌아보고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10대들의 언어 문화는 급식체 보다 더 축약되고, 여러 언어들이 복합된 신조어가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마치 상상 속에 있는 외계인의 언어처럼 기호화 되어가고 있다.
 
오늘날, 인간은 0과 1의 두 기호언어로 모든 지식과 정보를 컴퓨터에 저장하고, 분석하고, 창조해내고 있다. 이러한 컴퓨터 언어의 아이디어는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제시하여 지식정보사회를 거쳐 인공지능시대인 4차 산업혁명시대로 진화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저서인 <논리철학논고>에서 “언어는 세계에 대한 그림이다.

 

나의 언어의 한계들은 나의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우리들은 침묵해야 한다.”라고 정리했다. 그에게 철학이란, 우리에게 세상을 이해하게 해주고 세상에 대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언어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탐구하는 하나의 활동일 뿐이었다. <논리철학논고>의 집필이 끝나자 비트겐슈타인은 더 이상의 철학이 없다고 생각하고, 가장 가치있는 일을 한다며 케임브리지를 떠난다.

 

비트겐슈타인은 가장 가치 있는 일은 교육이며, 대학 교수도 할 수 있었지만 대학 교육은 이미 늦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가난한 시골지역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게 된다. 정약용 선생이 18년의 강진 유배 시기에 제자들의 언어교육을 위해 <다산 천자문>을 집필했듯이, 비트겐슈타인은 <초등학생을 위한 사전>을 펴내고 자신이 확신한 언어교육을 원했고 학생들의 상급학교(문법학교) 진학에 열정을 다했다.

 

그러나, 경제 형편 때문에 자녀들의 노동력을 원했던 학부모들은 불만을 갖게 되었고, 그의 체벌이 문제가 되어 6년간의 교사생활은 끝이 났다. 그러나 세계의 모든 것은 언어로 해결할 수 있다는 20세기 최고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언어 교육을 위해 살았던 초등교사의 삶은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을 준다. 우리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과 그의 삶에 공감한다면, 지금 10대들의 언어 문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교육해야 하는지 분명해진다.

 

창의교육, 인성교육 등 모든 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의 사고력을 높여 정신적으로 성장시키는 데에 있다.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이 정리했듯이 사고는 언어로 한다. 언어 능력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 그래서 동서고금 모든 교육의 시작과 끝은 언어이다. 우리도 무엇보다 우선시 할 가장  중요한 교육은 국어이다. 전라남도교육청에서 교육장을 역임한 김승호 교육성장연구소장은 퇴임 이후에도 쉬지 않고 국어사전 보급운동을 하고 있다. 모든 학생들의 국어 어휘력 배양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는 확신을 실천하고 있다. 우리 교육의 등대같은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10대 학생들은 서로 급식체 같은 신조어로 재미있게 소통하고 있다. 이러한 신조어 사용이 더 확산되어 교사와 학생의 언어가 달라지면 소통에 문제가 생기고 교육의 질도 떨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의 신조어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고, 할 수도 없다.

 

필자는 언어의 중요성을 학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신조어 사용의 실태를 파악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다. 학생들이 즐겁게 사용하는 신조어를 활용하여 오히려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언어교육의 계기가 되면 어떨까?

 

비트겐슈타인의 초기 언어철학에서는 형이상학, 종교학, 윤리학 같은 것은 중요하지만 명료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이므로 침묵해야 한다고 정리했다. 그러나 그는 초등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다시 철학을 탐구하여, 언어는 그 시대성과 역사성, 그리고 삶의 맥락 속에서 의미를 갖는 상대적인 것이라고 수정하였다. 지금 10대들의 언어 문화는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될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언(言)을 모르면, 사람을 알 수 없다.”

 

동서고금의 최고의 고전인 <성경> 요한복음 1장 1절과, <논어> 제일 마지막 구절이다. 필자가 가르치고 있는 중학생들에게 이 말의 의미를 설명한 후에 신조어 등 그들의 언어로 다시 써보도록 해야겠다. 우리 학생들이 제2, 제3의 비트겐슈타인으로 성장하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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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교육의 답은 언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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