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교육연합신문=정한성 강진고 교장]

 

가끔씩 계단을 올라가서 야외학습장에 있는 조형물을 보곤 합니다. 1980년 3월 1일에, 그러니까 지금부터 40년 전에 세워진 기념비입니다.


이 기념비는 강진고의 개교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입니다. 이 비의 글은 강진의 근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셨던 차부진 씨가 작성한 것입니다. 이 기념비에 새겨진 내용을 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그리고 학교장으로서 어떤 책임감이 밀려들기도 합니다. 강진군민들이 얼마나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강진고를 세웠는지를 알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기념비에 의하면, 예로부터 강진은 文郡(문군)이라 하여 향학열이 높고, 문물이 발전한 교육소도시였다고 합니다. 당시의 인구는 12만 명으로, 초등학교 35교 ,남녀중학교 10교, 남녀고등학교 4교였다고 합니다. (현재는 초등학교 14교, 중학교 9교, 고등학교 4교입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설은 거개가 실업계이고, 인문계로서는 북부지역에 1교(성전고)가 있었으나, 남부지역은 인문고가 없어 해마다 타 지방의 학교로 진학하는 학생들이 급증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에 인문고를 설립하고자 하는 강진군민들의 열망이 고조되어, 강진군번영회를 모체로 하여 1973년에 강진인문고등학교설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차부진 위원장님과 임원들은 일본의 대판(오사카)에 거주하는 강진인회 회장 이동규 씨와 협의를 하여 강진인문고등학교 건립을 위한 추진체를 조직하였습니다. 이 양 추진체는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여 1974년에 오사카추진위원회의 성금과 강진군민의 성금을 합하여 현재 강진고의 자리의 임야를 매입하였습니다. 이곳은 강진군 소유의 임야로 11,800여 평의 규모입니다.


1975년에는 학교 설립을 위해 관계 기관과의 교섭을 진행하였습니다. 1977년에는 강진군번영회의 임원개편에 따라 김유홍 씨가 추진위원장으로 선임되었습니다. 위원장님과 임원들의 활동으로 1979년 4월 14일자로 문교부로부터 강진고등학교 설립계획허가를 받게 됩니다. 김유홍 위원장님은 지방부담사업 중 정지사업 및 부속건물 건설사업비 5,800여만 원을 희사합니다. 기타 사업비는 강진군민들과 오사카의 강진인들의 성금으로 마련하였습니다.

 

시공자는 대동건설회사로 1979년 9월 5일에 착공, 1980년 2월 15일에 준공하였습니다. 1980년 1월 24일에 문교부의 설립허가를 받고, 3월 10일 강진고등학교가 개교를 합니다. 7년이란 기나긴 세월에 거쳐 강진군민들과 일본에 사시던 출향민들의 각고의 노력이 강진고의 개교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 기념비를 보고 있으면 강진군민들의 애향심이 거대한 강물이 되어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 기념비의 끝 부분을 보면 그러한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이 글을 각석하여 남기고자 함은 이 거대한 사업을 기념함에 뜻이 있거니와 예로부터 우리 고장에 흐르는 애향의 전통을 되새겨 후인에게 귀감을 삼고자 함에 더 큰 뜻을 둔다."
 
'예로부터 우리 고장에 흐르는 애향의 전통'이란 글귀를 보면 확실히 강진군민들의 고향사랑 정신은 무척 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예로 강진의 인재들을 강진의 품에서 키우겠다는 강진군민들의 염원이 모아져 설립된 강진군민장학재단을 들어보겠습니다.


이 장학재단는 2005년 4월에 지역교육 발전과 우수한 지역인재 발굴 및 육성을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2005년부터 올해 10월 23일까지 169억 1천 700만 원이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올해에는 작년에 비해 49일이나 앞서 기탁금 3억 원이 달성되었다고 합니다.

 

지난 3월부터 본격화된 코로나19로 인해 지역 경제가 침체된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강진군민들의 애향심과 인재 양성에 대한 뜻이 얼마나 간절하고 애틋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강진고를 비롯 관내의 초․중․고 학생들이 장학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여러 교육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에게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으니, 군민들의 이러한 숭고한 뜻을 생각하면, 교육자로서 마음가짐을 다시 한 번 다잡아 보게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강진 군민들에게는 애향심의 DNA가 거의 본능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9년 11월에는 강진고 30회 졸업생인 송현석 씨가 강진군민장학재단에 200만 원을 기탁하였습니다. 강진고를 다닐 때 장학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았다는 송 씨는 대학 졸업 후 한국전력공사에 취직을 하여 강진으로 발령을 받고서, 장학기금으로 200만 원을 선뜻 내 놓은 것입니다.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성장하여 또 다른 강진의 아이들을 도우면 그것이야말로 장학사업의 진정한 가치고 기적 아니겠는가.”


송현석 씨가 했던 이 말을 통해 강진인의 뿌리 깊은 애향심과 강진의 품에서 얼마든지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장학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았던 강진의 인재들이 장학금을 기탁하는 사례가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요셉여고를 졸업한 권수빈 씨가 300만 원, 강진여중 출신의 조은이 씨가 200만 원, 강진고 29회의 이지윤 씨가 200만 원, 성요셉여고를 졸업한 윤슬기 씨가 200만 원. 최근에는 강진고등학교 출신으로 서울대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한 후 이화여대 약학과에 편입, 현재는 약사로 재직 중인 김다애 씨가 300만 원을 기탁한 바 있습니다. 이외에도 강진고 출신의 한 동문은  이름을 밝히지 않으면서, 강진고의 후배에게 매달 20만 원씩을, 총 720만 원을 졸업할 때까지 지급하기로 하여 훈훈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강진의 품에서 공부했던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취업한 후 강진의 품에서 공부하는 후배들을 위해 장학금을 기탁하는 이 아름다운 전통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이들은 내 고향에 있는 학교를 다니면서, 내 고향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학교는 강진의 풍부한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한 교육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홍준 교수가 '남도답사 일번지'가 아니라 '전국답사 일번지'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 강진은 지성, 감성, 예술의 혼이 곳곳에 스며있는 축복받은 고장입니다. 내 고향에 대한 자긍심은 자연스럽게 애향심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내 고향의 학교에 다님으로써 그들은 평생을 같이할 든든한 뿌리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 고향을 떠나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공업계와 특수 목적고와 같은 강진에 없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는 있겠지만, 강진에는 인문계 고교가 2개교, 농업계 1개교, 상업계 1개교가 있어 자신의 적성에 맞게 선택하여 자신의 꿈을 얼마든지 키워갈 수 있습니다. 이들 학교들은 특화된 프로그램을 통해 알차게 학력을 키워가고 있고, 올바른 인성을 갖춘 학생들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고장 학교에 진학하면, 대학진학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내신성적 관리에 큰 도움이 됩니다. 실제 타지로 진학한 학생들이 내신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전학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또한, 내 고향에서 부모님과 친지들의 보살핌, 오랜 시간 같이 한 친구들과 함께 있다는  심리적인 안정감 속에서 학업에 열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강진의 인재들이 강진의 품에서 학업에 정진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도 더욱 노력할 것이니,  지역사회에서도 '내 고장 학교 보내기' 운동에 적극 참여해주시길 당부합니다.
 
강진고 개교 40주년을 맞아, 개교 기념비를 보면서, 애향심이 거대한 강물이 되어 도도하게 흐르는 그 기념비를 보면서, 학교장으로서 다시 한 번 옷깃을 추슬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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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전남 강진고, 개교 40주년을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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