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4-12(월)
 

[교육연합신문=이기호 기자] 미국 샌프라시스코에 본부를 뒀던 대한여자애국단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지지하며 현재 가치로 약 5천만 원을 후원하기로 하고, 각 지부의 의견을 묻는 공문내용이 발굴됐다.

 

전남대학교 김재기교수(정치외교학과) 연구팀은 3.1운동 102주년을 앞두고 이같은 내용의 공문이 실린 1930년 2월 20일자 신한민보을 2월 26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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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게재된 공문에서 대한여자애국단은 “금번 내지학생운동(광주학생독립운동)은 (3.만세운동을 계승한) 제2차 독립운동이다.”고 규정하며, 고통받고 있는 광주학생들을 비롯한 조선의 학생들을 대한여자애국단이 후원해야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또 대한여자애국단 본부는 “우리의 어린 자녀와 동생들은 죽음을 초개같이 보고 오직 민족의 광명을 위해 급전직하의 형세로 적을 대항하는데 어찌 우리는 방관의 태도를 가지고 평안히 앉아 있으리오.”라며 단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지를 호소했다.

 

이와함께 여자애국단은 “특별회의를 열어 토의한 결과 일치 가결로 본 여자애국단의 저금 중에 1백50불을 지출하기로 한 바, 이에 귀 지방 단원들의 가부를 묻고자 공문하오니 귀 단장은 귀 단원들의 가부를 신속히 거두어 보내주심을 요청합니다.”라는 내용으로 미국 전역의 지부단장들에게 공문을 보냈다.

 

이같은 내용으로 봐서 대한여자애국단은 재정 중에 일정 금액을 독립운동 지원을 위해 저축하고 있었으며, 조직운영에 있어서도 민주적 절차에 의해 구성원들의 동의를 받고 운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특별후원금은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로 보내지기도 했고, 경제력이 없는 북미한인유학생회의가 영문으로 독립운동을 홍보하는 후원 비용으로도 지원됐다. 대한여자애국단원들은 대한인국민회가 1930년 1월부터 5월까지 개최했던 광주학생독립운동 지지대회에도 참여해 특별후원금을 냈다.

 

대한여자애국단은 1919년 3.1만세운동의 영향을 받아 1919년 8월 5일 미국 캘리포니아 다뉴바((Dinuba)에서 ‘가정의 일용품을 절약해 독립운동 후원금을 마련하고 국내 동포의 구제 사업에 노력하며, 일화(日貨)를 배척하고 부인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것’을 목적으로 결성됐다.


대한여자애국단은 1919년부터 1945년까지 4만6000달러를 대한인국민회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전달했다. 한국정부는 그 공을 인정해 단원 18명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했다.

 

김재기 교수는 “대한여자애국단원들은 바느질과 자수, 세탁 등을 하며 어렵게 돈을 모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후원했다.”며 “이제라도 대한여자애국단과 100여명의 회원을 광주학생독립운동 참여 단체와 참여자로 새롭게 분류해 기록하고 광주학생독립운동 컨텐츠에 전시해 그 숭고한 정신을 널리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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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결성된 대한여자애국단, 광주학생독립운동 후원 사실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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