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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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주어진 운명의 길이 다르다. 사업을 해서 큰돈을 버는 사람도 있고, 평생 직장인으로 근근이 생활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호위 호식하며 살다가 사업의 실패로 평범 이하의 삶을 사는 경우도 있고, 느지막한 나이에 어렵사리 시작한 사업이 순풍을 만나 대형 프랜차이즈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 생명의 방향도 제각각이다.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100세를 넘어 장수하는 경우도 분들도 계신다. 사람마다 삶의 모양이 모두 다르다. 어느 것 하나 일치되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운명은 정해진 것일까, 아니면 창조되는 것일까. 
 
나는 운명의 힘을 믿는다. 사람마다 가진 운명, 다르게 창조되는 운명의 길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주위분들에게 듣자 하니, 나는 젊은 시절에 많은 실패를 겪고 어려움을 만나다가 나이가 들면서 점차 성공의 궤도로 올라간다고 한다. 100% 믿지는 않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으니 나쁘지 않은 노후를 맞이할 거라는 기대로 하루하루 살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잘못된 선택에 의해 좋은 운명이 나를 비껴가면 나 역시 나쁜 운명의 길로 빠지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운명이라는 것은, 그러니까 생로병사를 제외한 선택 가능한 운명이라는 것은 자유의지와 전혀 반대되는 입장에 위치한다. 만약 내가 왕이 되어야 하는 운명인데,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운명인데, 최상위 부자 혹은 지역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자로 살 운명을 타고 난 사람인데, 실수로 혹은 자의로 교통사고나 그에 버금가는 생명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사고를 유발함으로써 오늘부로 세상을 떠나버리는 일이 생긴다면, 운명이라는 것도 한낱 이론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미신, 혹은 사주팔자와 같은 운명에 나의 모든 것을 거는 것은 그만큼 위험한 일이다. 무당, 미신, 나아가 종교인 등 유일신인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신과 종교인들이 인간의 생로병사와 후래사(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 미래)를 주관한다는 증거는 인간이 집필한 세상 어느 책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어떤 집단이나 개인이든, 불의의 정체가 개입되면 불화를 조성하고 일을 망치게 하노니, 나 자신은 물론 나아가 대치되는 모든 것들, 그 외에 정의와도 대립되도다. 부정한 자는 신들과 적이 되며 정의로운 자는 친구가 되리라. -<국가론> 소크라테스와 트라시마코스의 대화 중 
 
나는 토속신앙을 믿지 않는다. 사주팔자도 절반밖에 믿지 않는다. 인간의 후래사를 주관할 만한 신들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볼 만한 기회를 박탈해버리기 때문이다. 막연한 믿음을 가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질문이다. 어떤 문제와 어려움 앞에서 단 한 번이라도 ‘왜’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면,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크고 작은 문제들, 비극으로 몰고 갈 수도 있을법한  문제들은 지극히 단순한 문제로 바뀌어지게 될 것이다. 
 
인간은 숙명적으로 ‘어떻게’와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만 가치 있는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대다수의 문제는 질문의 부재에 있다. 추구하는 것이 경제적 성공이든, 사회적 명예든, 끊임없이 ‘어떻게’와 ‘왜’를 던져야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스스로 ‘어떻게’와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습관을 길러보자. 인생이 몰라보게 다른 모습으로 달라지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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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준우 

◇ 작가, 강연가, 책쓰기컨설턴트

◇ 前국제대안고등학교 영어교사

◇ [한국자살방지운동본부]

◇ [한국청소년심리상담센터] 채널운영자

◇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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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질문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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