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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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일상이 무너져버린 전쟁 피해자의 일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무자비한 폭행과 살인은 전쟁만큼이나 감당할 수 없는 비극처럼 느껴질 수 있다. 심지어 솟구치는 피를 보는 것만으로도 졸도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전쟁과 싸움이 일상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이며 베스트셀러 저자인 재러드 다이아몬드 UCLA대학교 교수의 저서 <어제까지의 세계(원제 The world until yesterday)>는 원시사회 혹은 문명의 흐름을 벗어난 부족의 생활과 문명세계의 영향력 아래에서 평생을 보낸 사람들의 서로 다른 삶의 형태를 비교하여 설명한다. 그중에는 전쟁 후유증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군인과, 어린 시절부터 적을 죽이는 것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이나 후유증에 시달리지 않는 다니족 부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저자인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뉴기니 사람들은 적을 죽였다고 마음의 갈등에 시달리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잊어야 할 모순된 가르침이 애초부터 없다.(어제까지의 세계 215P, 재러드 다이아몬드, 김영사)"라고 이야기한다. 똑같은 육체를 가진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환절기 건조한 날씨 때문에 코피가 나는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날카로운 창을 적의 가슴에 꽂아 넣고 피가 솟구치는 장면을 보면서 승리에 도취되어 환호성을 지르는 10대 소년도 있다는 사실, 놀랍지 않은가? 
 
아이스퀼로스의 비극 중 하나인 <아가멤논>은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남편을 죽인 여인,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그리스 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아내였다.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쥐고 금의환향한 아가멤논이 잠든 사이 정부인 아이기스토스와 함께 아가멤논을 죽인다. 도끼로 죽였다는 설도 있고, 칼로 찔러서 죽였다는 설도 있다. 어떤 것이든지 간에,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의 아내가 아니었다. 탄탈로스 2세의 아내였던 클리타임네스트라는 탄탈로스 2세의 조카였던 아가멤논의 반역으로 남편을 잃고 아가멤논의 아내가 되어 이피게네이아를 낳는다. 아가멤논은 출전하면서 첫째 딸이던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쳐서 전쟁에서 승리하고, 이후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피는 피를 부른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남편인 아가멤논을 죽인 것에 대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전 남편과 자식을 죽인 현재의 남편, 자신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제물로 바친 남편, 그 남편을 죽인 것에 대해 정당하다고 이야기한다. 
 
일이 이러하니 여기 있는 아르고스의 원로들이여, 기뻐할 테면 기뻐하시오. 나는 이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오. 그리고 시신에 제주를 붓는 것이 격식에 맞는다면, 이러한 내 행동은 정당하다 할 것이오. 정당하고 말고요. 이 사람은 집 안에 그토록 많은 저주스러운 악으로 잔을 채워놓고는 이제 귀국하여 스스로 그 잔을 비우고 있으니 말이오. -<아가멤논> 1394-1396, 아이스퀼로스 
 
자식의 죽음을 목도하며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이 하르파고스 외에 누가 있을까. 그럼에도 <어제까지의 세계>에서는 교통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가 운전자로부터 적절한 보상을 받고 그를 용서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관계의 회복은 전통적인 뉴기니 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서구적 기준에 따라 유죄, 태만, 징벌을 결정하는 것이 주된 쟁점은 아니다...(중략) 목표는 보상금을 받아내는 것이 아니었다. B가 A에게 Y만큼의 피해를 입혔으니 A가 B로부터 X마리의 돼지를 받음으로써 셈을 맞추자고 주장하는 게 아니었다. 적들과 평화적 관계를 회복하고, 고티 마을에서 다시 평화롭게 사는 것이 목표였다. -<어제까지의 세계> 132-133P, 재러드 다이아몬드 
 
물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다만 보이지 않는 용서 역시 자아의지로 말미암는다. 그렇기에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선택이 옳은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선택이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아가멤논의 죽음 이후, 클리타임네스트라 역시 자식인 엘렉트라와 오레스테스로부터 죽임을 당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파리스의 결혼이었다는 점에서 클리타임네스트라 역시 피해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리스의 명장 아가멤논은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인생을 망쳐놓은 죄로 죽임을 당했고, 헬레네의 쌍둥이 언니이자 스파르타의 왕 탄다레오스의 딸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을 죽였다는 이유로 자식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완전한 사람은 없다. 세상 어디에서도 옳고 그름의 속박 속에서 완전한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아가멤논도 완전하지 않았고 클리타임네스트라도 완전하지 않았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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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준우
◇ 작가, 강연가, 책쓰기컨설턴트
◇ 前국제대안고등학교 영어교사
◇ [한국자살방지운동본부]
◇ [한국청소년심리상담센터] 채널운영자
◇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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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선택의 격(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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