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탐방] 부산 남성여고 교장은 명함에 이 문구 새겼다…"학생부 열심히 적는 학교"
김형길 교장, “이제 우리 같은 평범한 지방 일반고에도 의대 진학의 ‘희망’이 생겼다.”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이제 우리 같은 평범한 지방 일반고에도 의대 진학의 ‘희망’이 생겼다.”
전국 39개 의과대학이 모집 요강을 공개하며 증원 절차가 마무리되자, 김형길 부산 남성여자고등학교 교장이 한 말이다. 의대 정원의 확대로 ‘지역인재전형’ 모집 정원이 늘어나며 지역 고교 졸업생이 의대에 갈 확률도 높아졌다는 의미다. 올해 입시에서 비수도권 의대 26곳은 지난해 보다 두 배가량 늘어난 1913명을 지역 인재 전형으로 뽑는다. 지역인재전형은 의대가 있는 권역 내 고교 출신 졸업자만 원서를 낼 수 있다.
김형길 교장이 긍정적인 분석을 자신하는 데에는 근거가 있다. 최근 남성여고의 의대 진학 실적 덕분이다. 이 학교는 지난 3년간 9건(중복 합계)의 의대 합격 성과를 냈는데, 이 중 7건이 모두 지역인재전형 문을 통과한 경우이다. 2024학년도 부산대· 울산대· 경상국립대· 동아대 등 6건, 2022학년도 경상국립대 1건 등이다. 같은 기간 의예과와 입학 성적이 비슷한 SKY(서울·연세·고려대) 이공계열 합격생은 한 명도 없었던 걸 고려하면 ‘의대 지역인재전형 특화’ 학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도심 속 소규모 일반고 ‘학생부’ 바꿔 살아남았다"
남성여고가 의대 진학에 특장점이 있는 학교는 아니다. 학교는 부산 서부 원도심인 중구의 산복도로에 자리 잡고 있다. 인근엔 그 흔한 아파트 단지나 학원가가 형성돼 있지도 않다. 학생 수가 적어 같은 재단의 중학교는 폐교했다.
남성여고 역시 지난 2월 기준 졸업생이 122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규모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020~2021학년도만 해도 의예과 합격생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원하는 입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김 교장은 그 답으로 본인의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에는 별 모양의 교표 위에 "학생부 열심히 적는 학교"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비슷한 성적 학생들끼리의 경쟁에서 차별점을 부각할 수 있는 유일한 요소가 학생부다. 그렇지만 일반고에선 같은 학교, 같은 과목 교사끼리도 학생부에 적는 내용과 분량이 다른 일이 흔해 퀄리티 보장이 안 된다는 얘기다. 적어도 학생이 활동한 내용은 제대로 적어 줘야 된다. 그래서 2022년 부임 첫해 교사들의 ‘학생부 수정 발표회’ 모임을 만들었다. 서로가 쓴 학생부를 보며 비교하고 어떤 점을 수정해야 할지, 잘 작성한 학생부는 무엇인지 논의하는 자리를 과목별, 학년별로 운영하도록 했다.
교육과정에도 변화를 줬다. 학기 말 1주일간 융합 교과 수업만 몰아서 실시하는 ‘수업량 유연화 활동’ 등이 그 예다. “학생부에 한 줄이라도 더 쓸 수 있는 특징적인 수업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게 김 교장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의예과나 한의예과를 지망하는 학생을 위해 생물 과목 심화 수업을 개설해 수업 중 맥박을 재어 본다든가, 한의사들이 직접 진맥하는 부위가 어디인지 알아보는 과제를 수행하는 거다. 학생 수가 적고 같은 수업이 한 주간 연이어 진행되다 보니 학생은 밀도 있게 전공 적합성을 키우고, 교사는 학생을 자세히 관찰하게 된다.
"상담은 진로지도 기본…학생 알아야 지원서 쓸 수 있어"
김형길 교장이 직접 학생 상담에 나서기도 했다. 김 교장은 평범한 생물교사 출신이자, 10여 년 전 포털사이트에서 일반인끼리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지식인(IN)’ 코너가 유행하던 시절, 입시상담 글에 수천 건의 답글을 달던 ‘명예 지식인’이기도 했다. 부산시 교육청에서도 진학지원단 교사로 활동했다.
“저는 매년 전교생을 대상으로 상담한다. 상담은 진학 지도의 기본이다. 예를 들어 우리 학교에서 기회 균형 전형으로 좋은 학교에 합격한 학생이 있다. 학교에서 상담을 통해 이 학생이 대학에서 요구하는 ‘저소득층’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지원이 가능한 것이다. 요즘은 학생 개인 정보 때문에 스스로가 말하지 않으면 담임교사도 가정 환경을 알지 못한다."
김형길 교장의 목표는 올해보다 조금 더 많은 학생이 의예과에 진학하는 것이다. 의대 진학 실적이 좋은 학교의 지표는 아니다. 하지만 실제 상담을 해보면 의학 계열에 진출하고 싶다는 학생이 전교생의 3분의 1가량 된다. 현실이 그렇다면 학생들을 도와주는 것도 학교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수능 최저 등급만 맞추면 평범한 학교 전교권 학생들도 충분히 의대에 도전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