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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AI 시대, 『사람 공부』가 던지는 관계(關係)의 메시지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지식은 넘쳐나는데, 왜 사람 사이의 마음은 더 닫히는 것일까?” 이 질문은 디지털 대전환의 물결 속에서 우리 교육 현장이 마주한 가장 아픈 질문이다. 아이들의 문해력 저하보다 무서운 것은 ‘관계의 문해력’ 결핍이라 할 수 있다. 상대의 의도를 읽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며, 갈등 앞에서 쉽게 무너지는 요즘의 아이들, 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코딩 한 줄, 영어 단어 하나보다 ‘사람을 이해하는 힘’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최고의 인문학자 진웨준(金越俊)의 저서 『사람 공부』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교육자들에게 번뜩이는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동서고금 영웅들의 흥망성쇠를 통해 ‘처세(處世)’라는 단어를 기회주의적 기술이 아닌, ‘타인과 공존하기 위한 최고의 지혜’로 격상시키기 때문이다. 진웨준은 이 책에서 조조의 일화를 통해 교육적 울림이 큰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조조가 젊은 시절, 자신을 도왔던 현령 진궁과 함께 도망치던 중 의심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내가 세상을 버릴지언정 세상이 나를 버리게 하지는 않겠다”고 말한 장면은 유명하다. 진웨준은 이를 단순한 악행으로 치부하지 않고, ‘사람을 읽는 안목’과 ‘포용의 기술’이라는 관점에서 재해석을 하고 있다. 진웨준의 『사람 공부』를 교실에 적용하기 위해 우리는 세 가지 획기적인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첫째, ‘정답’이 아닌 ‘마음’을 채점해야 한다. 교실 내 갈등 상황에서 교사는 판사가 되기 쉽다. 하지만 『사람 공부』는 ‘현상 너머의 동기’를 보라고 조언한다. 잘못을 저지른 학생에게 벌을 주기 전, 그 아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 이면에 숨겨진 ‘두려움’이나 ‘인정 욕구’를 읽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진웨준이 말하는 영웅들의 통찰력이라 할 것이다. 둘째, ‘침묵’의 처세를 가르쳐야 한다. 책에서는 말 한마디로 천하를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는 사례가 즐비하다. 요즘 아이들은 SNS를 통해 너무 빨리, 너무 많이 말하는 성향이 강하다. 따라서 교육 현장에서 ‘멈춤과 경청’의 가치를 가르쳐야 한다. “내 주장을 관철하는 법”보다 “상대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힘”이 결국 가장 강력한 설득의 도구가 된다는 것을 아이들이 체험하게 해야 한다. 셋째, ‘패배’를 대하는 태도가 사람의 격을 결정한다. 역사 속 영웅들은 위기의 순간에 본모습이 드러난다. 진웨준은 실패했을 때 타인을 탓하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는 ‘반구저기(反求諸己)’의 자세를 강조한다. 시험 성적이 떨어졌을 때, 경기에서 졌을 때 아이들이 타인이나 환경을 원망하기보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회복탄력성’을 기르도록 돕는 것이 살아있는 사람 공부라 할 것이다. 이제 교사는 지식 전달자를 넘어 ‘관계 코디네이터’가 되어야 한다. 진웨준의 『사람 공부』가 제안하는 처세의 지혜를 교육 과정에 녹여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진웨준은 책의 말미에서 결국 “모든 공부의 끝은 사람이다”라고 단언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최종적인 기술은 미적분 공식이나 영문법만이 아니다. 바로 곁에 있는 친구의 눈물을 닦아줄 줄 알고, 억울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타인의 성공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사람 됨의 기술’이라 믿는다. 서두에서 언급한 조조가 천하를 호령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완벽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치명적인 결함을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자신과 반대되는 성향의 인재들을 끝없이 찾아내고 그들의 능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사람 공부의 달인이었기 때문이다. “상대의 약점을 잡는 것이 처세가 아니라, 상대의 강점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진정한 사람 공부다.”(본문 중) 『사람 공부』는 우리에게 말한다. 처세는 남을 이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나와 남이 함께 승리(Win-Win)하기 위한 따뜻한 전략이라고 말이다. 이 책을 읽은 교사가 교실에 섰을 때, 비로소 아이들은 책 속의 글자가 아닌 ‘살아있는 인간’의 품격을 배우게 될 것이다. 오늘, 당신의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사람’을 읽어보지 않겠는가? 그 공부가 시작되는 순간, 교실은 비로소 삶의 현장이자 가장 위대한 인문학의 장이 될 것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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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왜 다시, 문해력인가?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오늘날 우리 교육의 가장 심각한 위기는 무엇인가? 학력 저하일까? 사교육 과열일까? 아니면 교권 붕괴일까? 그러나 이 모든 문제의 뿌리에는 더 근본적인 위기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학생들의 ‘문해력’ 저하다. 필자의 칼럼 「청소년들의 뒤처지는 문해력, 그 해결책은 무엇인가?」는 몇 년 전 발표되었지만, 오히려 지금 더 절실하게 읽혀야 할 교육적 경고가 되었다. 오늘날 교사들이 모여 교육 관련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화제가 단연코 학생들의 “문해력” 결핍의 심각성에 입을 모은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문해력이라는 말조차 학생들이 못 알아들을까 봐, 어떤 교사는 이렇게 다시 설명한다. “글을 읽고 뜻을 이해하는 힘 말이야.” 그러자 한 학생이 묻는다. “쌤, 그거 요약본 있나요?” 문해력은 단순히 글을 읽는 능력이 아니다. 글의 의미를 이해하고, 타인의 생각을 해석하며, 자신의 언어로 다시 표현하는 힘이다. 결국 인간의 사고력과 공감력, 민주 시민성의 기초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아이들은 문장을 읽지만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긴 글을 견디지 못하며, 질문보다 검색에 익숙한 세대로 변해가고 있다. 교실 현장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상 신호가 나타났다. 시험 문제를 읽고도 무엇을 묻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 자신의 생각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지 못하는 학생들,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어본 경험이 거의 없는 학생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국어 과목의 문제가 아니다. 수학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사회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도 결국 문해력의 결핍과 연결된다. 더 심각한 것은 디지털 환경이다. 짧은 영상과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깊이 읽기와 사유의 시간을 잃어가고 있다. 알고리즘은 생각을 확장시키기보다 취향만 반복 강화하고, AI는 스스로 사고하기 전에 먼저 답을 제공한다. 이제 아이들은 “왜 그렇게 생각하니?”라는 질문보다 “정답이 뭐예요?”를 먼저 묻는다. 이것은 단순한 학습 습관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 사고 체계의 위기다. 필자는 당시 칼럼에서 읽기·말하기·쓰기 교육의 회복을 강조했다. 시 동아리, 스피치 활동, 글쓰기 교육, 일기 쓰기 같은 실천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언어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통찰은 지금도 매우 유효하다. 아니, AI 시대일수록 더욱 절박하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이 정보를 대신 제공하는 시대에 인간에게 남는 최후의 경쟁력은 ‘생각하는 힘’이며, 문해력은 바로 그 생각의 근육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교육은 다시 질문해야 한다. 왜 우리는 아이들에게 읽는 시간을 빼앗았는가? 왜 학교는 시험 문제 풀이에만 몰두하며 사유의 교육을 잃어버렸는가? 왜 독서는 취미가 되었고, 글쓰기는 수행평가 기술로 전락했는가? 문해력 회복은 거창한 정책 이전에 교육 철학의 전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첫째,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든 교과에서 읽기와 토론, 서술형 글쓰기를 강화해야 한다. 국어 시간에만 문해력을 맡겨서는 안 된다. 둘째, 학교는 ‘조용히 읽는 시간’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독서는 과제가 아니라 삶의 습관이 되어야 한다. 셋째, 교사들에게도 읽고 쓰는 전문성을 회복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학생의 문해력은 결국 교사의 언어 수준을 넘기 어렵다. 넷째, 가정과 지역사회 역시 책 읽는 문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부모가 스마트폰만 보는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독서를 강요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쟁 중심 교육의 방향 수정이다. 지금처럼 문제를 빨리 푸는 능력만 강조해서는 문해력은 결코 자라지 않는다. 천천히 읽고, 깊이 생각하고, 서로의 생각을 경청하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 속도가 아니라 이해의 깊이를 평가해야 한다. 교육은 결국 인간을 만드는 일이다. 문해력이 무너진 사회는 결국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혐오와 선동에 흔들리며, 민주주의마저 약해진다. 그래서 문해력 교육은 단순한 학업 향상이 아니라 사회를 지키는 공공의 과제다. 지금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입시제도가 아니다. 아이들에게 다시 책을 돌려주고, 언어를 돌려주고, 생각하는 시간을 돌려주는 일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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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아름다운 세상이란 어떤 세상일까. 아름다운 사람이 많이 사는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전쟁, 인공지능, 숫자, 비교가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상이다. 세상은 그대로이기에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마음이 중요하다.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결국 타인을 대하는 방식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타인을 편안하게 만드는 힘’에 가깝다. 진짜 아름다움을 만들고 싶다면 먼저 ‘어떻게 보일까’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한 사회의 품격은 그 사회가 어떤 아름다움을 존경하느냐에 달려 있다. 돈과 성공만을 숭배하는 사회에서 사람의 마음은 거칠어진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하루하루의 선택이 겹쳐서 한 사람의 표정을 만든다. 배려와 품위가 있는 사회에서는 서로를 인간답게 대하려 애쓴다. 자기 자신만으로 가득 찬 사람은 타인을 위한 공간이 없다. 흥미로운 것은 아름다움이 전염된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의 친절은 또 다른 친절을 낳는다. 그 친절은 햇살처럼 세상을 아름답고 따스하게 만든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나. 학교 현장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말 가운데 하나가 ‘관계가 어렵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국 교육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공감’을 가르치는 것이다. 공감은 단순히 착해지는 교육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 일처럼 느끼는 능력이다. 공감은 민주주의와 공동체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이다. 학교는 점수를 경쟁하는 공간이기 전에 인간을 배우는 공간이어야 한다. 아이들은 교과서보다 어른들의 태도를 더 많이 배운다. 교사와 부모가 타인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배려를 말할 수도 없다. 교육은 말이 아니라 분위기와 태도로 이루어진다. 아름다운 세상은 인간이 서로를 소모품처럼 대하지 않는 세상이다. 아이가 실수해도 모욕당하지 않는 학교, 나이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쓸모없다고 취급받지 않는 사회. 아픈 사람이 가난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 실패한 사람이 다시 일어설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공동체. 그런 곳이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세상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지 않은 사회’이다. 사람들은 점점 타인의 불행에 익숙해지고 있다. 공동체가 무너지는 것은 가난 때문만이 아니라 서로의 아픔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시작할 때다. 아름다운 세상은 서로를 경쟁자로만 보거나 숫자와 성과만으로 평가하지 않고 한 인간의 삶 자체를 존중하는 사회이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고, 울고 있는 사람 곁에 잠시라도 함께 서주는 누군가가 있는 세상. 인간다운 따뜻함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사회. 그런 세상이야말로 기술보다 오래가고 돈보다 강하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믿는다. 교육은 아름다운 사람이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고 믿는다. 사람다운 사람, 공감하는 사람, 함께하는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교육을 만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이다. 창밖은 다양한 꽃들이 서로 어우러져 세상을 환하게 만드는 모습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진로융합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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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은자(殷字)의 재발견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한자는 2,000여 년간 동양 문명의 핵심이자 일상의 도구였으나, 우리는 매일 쓰는 글자의 진짜 주인과 얼굴을 잊은 채 살아왔다. 오늘날 흔히 ‘한자(漢字)’라 불리는 이 문자는 사실 한나라 시대에 붙여진 이름일 뿐, 그 기원은 3,500년 전 상(은)나라의 갑골문과 금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적·고고학적 진실은 이 문자의 창제 주체가 바로 우리의 직접적인 선조인 ‘동이족(東夷族)’이었음을 명백히 가리킨다. 하지만 이 위대한 유산의 해석은 오랜 시간 왜곡되었다. 그 오해의 중심에는 서기 100년경 동한(東漢)의 학자 허신(許愼)이 집대성한 『설문해자(說文解字)』가 있다. 허신은 문자학의 권위자였으나,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갑골문과 금문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소전(小篆) 위주의 해석을 내놓았다. 이는 동이족의 풍습과 철학이 담긴 문자를 화하족(한족)의 시각에서 한정 지어 해석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수많은 ‘은자(隱字)’가 본래의 뜻과는 다른 모습으로 굳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특히 한자의 근본 원소 곳곳에는 동이족만의 고유한 생활 양식과 풍습이 짙게 배어 있다. 대표적으로 ‘오랑캐’로 격하된 ‘이(夷)’자는 갑골문에서 ‘큰 활(大+弓)’을 능숙하게 다루는 문명인의 기개를 형상화한 것이다. 또한,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술을 올리고 춤을 추며 신과 소통하던 제천 행사의 모습, 죽은 이의 영혼을 기리며 옥(玉)을 소중히 여겼던 장례 문화, 그리고 흰 옷을 즐겨 입으며 예의를 갖추어 무릎을 굽히던 생활 방식 등은 갑골문 속에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다. 허신은 이러한 동이족의 문화적 맥락을 알지 못한 채, 이미 변형된 글자 모양만을 보고 억지로 뜻을 짜 맞추는 실수를 저질렀다.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는 여러 개의 작은 ‘근본 원소’들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정교한 퍼즐이다. 본서는 허신의 권위에 가려진 채 잃어버린 동이족의 지혜를 되찾기 위해 다음의 5가지 엄격한 원칙으로 한자의 비밀을 검증한다. ㅁ원형성: 반드시 갑골문과 금문의 초기 자형에 부합해야 한다. ㅁ역사성: 반드시 동이족의 역사적 사실이나 선진(先秦) 시대의 문헌 기록에 부합해야 한다. ㅁ일관성: 모든 한자 부호의 해석은 일관되어 다른 글자에서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ㅁ합리성: 자형에서 파생된 뜻이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해야 한다. ㅁ계승성: 자형과 뜻의 변화 과정이 시대별로 일관되게 이어져야 한다. 본서의 목적은 명확하다. 2,000년 전 허신의 실수와 화하족 중심의 역사관이 만들어낸 광범위한 오류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다. 왜곡된 해석을 바로잡고 동북아시아 문명의 시원인 동이족의 발자취를 추적함으로써, 비로소 한자라는 거대한 나무의 뿌리인 진짜 ‘은자(殷字)’의 의미를 마주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문자 해석을 넘어, 우리 역사의 잃어버린 원류를 되찾는 엄숙한 여정이다. ■ 한자의 막힌 혈관, ‘홀태’와 ‘모래톱’으로 뚫다 한자(漢字)는 동양 정신의 뿌리이자 고대인의 삶을 담은 그릇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랫동안 한자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중국의 해설서, 특히 허신의 『설문해자』가 정해놓은 틀에 갇혀 그 역동적인 본래 의미를 잃어버렸다. 이제 우리말의 고유한 감각인 ‘훑다’와 ‘모래톱’이라는 열쇠를 통해, 한자의 잃어버린 원형을 복원해보고자 한다. ■ 勿(물/몰), 깃발이 아닌 ‘훑어내는’ 동작의 형상 허신은 말 물(勿)자를 깃발이 세워진 모습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갑골문과 금문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칼(刀) 사이로 낱알(丶)이 흩어지는 형상, 즉 빗처럼 생긴 도구로 곡식을 ‘훑어내는’ 동작이 선명하게 읽힌다. 본래 ‘털어내다’라는 뜻의 털 몰(勿)이었던 셈이다. 이 흔적은 만물 물(物)자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소의 등 긁개로 털을 훑어내는 모습에서 유래한 이 글자는, 본래 ‘털어내다’라는 동작이 한자의 핵심 자형 원리였음을 증명한다. ■ 賜(사)와 易(이), 모래톱이 내어준 자연의 선물 줄 사(賜)와 쉬울 이(易)의 관계는 우리 민족의 지형적 감각인 ‘모래톱’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賜’는 조개(貝)를 훑어내는(勿) 모습이다. 물가 모래톱에서 조개를 훑어 건져 올리는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우리말 ‘모래톱’이다. 지형이 톱니처럼 생기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왜 ‘톱’이라 부르는가. 이는 ‘훑는 도구’인 홀태(톱)의 이미지가 지형에 투영된 결과다. 자연이 거저 내어주는 조개를 줍는 일이니 ‘줄 사(賜)’가 되었고, 물줄기가 지형을 쉽게 바꾸는 모습에서 ‘바꿀 역/쉬울 이(易)’라는 뜻이 파생된 것이다. 이는 우리가 갑골문의 원형 정신을 가장 온전히 계승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 利(리), 벼를 베는 것이 아니라 알곡을 ‘터는’ 유용함 우리는 흔히 이로울 리(利)를 ‘벼(禾)를 칼(刀)로 베는 모습’이라 배운다. 그러나 원형은 벼와 ‘털 몰(勿)’의 결합에 가깝다. 볏단에서 알곡을 훑어내는 ‘홀태질’의 효율성을 표현한 글자인 것이다. 수확의 극대화에서 ‘이롭다’는 뜻이, 홀태 날의 예리함에서 ‘날카롭다’는 뜻이 나왔다. 더 나아가 알곡이 체에 걸러지듯 배출된다는 비유에서 대소변을 뜻하는 의미까지 확장되었다. ‘베는’ 행위보다 ‘터는’ 행위가 농경의 핵심적 이익임을 고대인들은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 우리말로 복원하는 한자의 생명력 중국조차 자의적 해석에 갇혀 잃어버린 한자의 본뜻이, 역설적이게도 우리말의 ‘훑다’와 ‘모래톱’이라는 감각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한자를 중국의 전유물로만 여기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고유의 언어 감각으로 한자를 재해석할 때, 비로소 한자의 막힌 혈관이 뚫리고 고대인의 삶과 지혜가 우리 곁으로 온전히 돌아올 것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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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용의 100세 칼럼] 매달 반복되는 원발성 월경통, 프로스타글란딘과 중추신경 감작의 연결고리 풀기
[교육연합신문=최윤용 기고] 1. 자궁이 보내는 경고음, 원발성 월경통의 원인과 유병률 - 원발성 월경통(Primary dysmenorrhea)은 골반 내 뚜렷한 기질적 이상 없이 월경 주기에 맞춰 발생하는 하복부의 경련성 통증을 의미합니다. 전 세계 70개국 자료를 종합한 최신 연구에 따르면, 원발성 월경통은 여성 인구에서 매우 높은 유병률을 보이며 일상생활과 학업·업무 수행 능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대표적 여성 건강 문제로 지목됩니다. 병태생리학적으로 이 통증의 핵심은 자궁 내막에서 과도하게 분비되는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이라는 염증 매개 물질이 자궁 근육을 강하게 수축시키고 혈류량을 감소시켜 허혈성 통증을 유발하는 데 있습니다. 월경통으로 인해 반복되는 통증 신호는 척수를 거쳐 뇌로 전달되며, 점차 통증에 대한 민감도를 비정상적으로 높이는 '중추 감작(central sensitization)' 상태를 초래하여 신경학적 만성 통증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2. 진통제만으로 월경통 관리가 어려운 이유와 숨은 위험성 - 현재 원발성 월경통의 1차 치료로는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s)와 경구 피임약이 주로 처방됩니다. 이들 약물은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을 차단하여 급성 통증 완화에 효과적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많은 환자가 진통제에 충분히 반응하지 않거나, 장기 복용 시 위장관 장애, 신장 기능 저하 등의 부작용을 겪어 복용을 중단하곤 합니다. 식물 유래 한약 치료(plant-derived therapies)에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도 이러한 기존 약물의 한계와 부작용 우려 때문입니다. 특히 현재 첩약 건강보험 적용 시범사업 대상 질환에 월경통이 포함되면서, 표준화된 한약 치료에 대한 치료 접근성도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의해야 할 점은 월경통이 동반하는 심리적 부담입니다. 매달 반복되는 심한 통증은 신경면역학적 불균형을 유발하여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이어질 위험을 크게 높입니다. 따라서 단순한 진통을 넘어 신체 전반의 신경학적 안정과 염증 제어를 돕는 다각적인 접근이 절실합니다. 3. 뇌 신경망 연구를 통한 월경통의 뇌과학적 재해석 - 최근 뇌과학 연구는 월경통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등의 신경영상 기법을 활용한 연구에 따르면, 장기간 원발성 월경통을 앓은 여성들은 통증을 지각하고 조절하는 뇌의 특정 네트워크(대뇌피질-변연계 등) 구조와 활성도에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즉, 자궁에서 시작된 말초의 염증 신호가 뇌의 통증 조절 회로를 교란시켜, 작은 자극에도 과도한 통증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월경통 치료가 자궁 수축 억제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중추신경계의 과흥분을 안정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시사합니다. 4. 원발성 월경통에 대한 효과적 대안: 한약과 침 치료의 현대 과학적 근거 - 이러한 맥락에서 한의학 치료는 월경통 관리에 있어 효율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그 효과와 기전이 최신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입증되고 있습니다. 먼저 침 치료는 뇌의 통증 조절 네트워크를 정상화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보입니다. fMRI를 이용한 연구에서 침술은 월경통 환자의 비정상적인 뇌 기능적 연결성을 조절하여 중추성 진통 효과를 낸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다양한 침 관련 치료를 비교 분석한 네트워크 메타분석 연구에서도 침 치료는 통증 강도를 유의미하게 낮추고 진통제 사용량을 줄이는 데 안전하고 효과적임이 입증되었습니다. 특히 대만에서 19년간 진행된 대규모 코호트 추적 연구에서는 원발성 월경통 환자에게 꾸준히 침 치료를 시행한 결과, 신경면역 조절 기전을 통해 향후 우울증으로 이행될 위험이 유의하게 감소했다는 보고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는 침 치료가 단순 진통을 넘어 중추신경계 보호 효과를 지님을 의미합니다. 한약 역시 다양한 약리 성분이 여러 병리적 표적에 동시에 작용하여 자궁 내 염증 환경과 혈류 개선에 기여합니다. 월경통에 다용되는 대표적 처방인 온경탕은 최신의 인공지능 기반 약리분석 연구를 통해 염증 발현의 핵심 경로인 PI3K/AKT/NF-κB 신호 전달을 억제하여 하복부의 혈류에 장애를 야기하는 원인 염증을 차단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근래의 무작위 대조군 임상시험에서는 월경질환 치료에 오랜 기간 활용돼 온 계지복령환이 위약군에 비해 월경통 강도를 현저히 감소시키고 삶의 질을 높인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이러한 효과는 특정 처방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가장 최근인 2026년 발표된 국내 다기관 전향적 관찰연구에서도 환자 맞춤형 한약 치료가 진통제 복용량을 줄이고 통증 지속 시간을 단축하는 데 유의한 효과를 보인 것으로 보고됐습니다. 5. 약물 의존을 줄이는 일상 속 월경통 자가 관리법 - 임상적인 한의 치료와 함께, 일상생활에서의 적극적인 관리 요법을 병행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으로 만성 월경통을 관리해나갈 수 있습니다. •규칙적인 운동 요법 : 운동은 가장 효과적인 천연 진통제입니다. 29개의 무작위 대조 연구를 종합한 네트워크 메타분석에 따르면, 규칙적인 요가, 스트레칭, 중등도의 유산소 운동은 골반 내 혈류 순환을 개선하고 통증 유발 물질을 배출시켜 월경통 강도를 뚜렷하게 감소시킵니다. 평소 꾸준한 운동으로 기저 체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체온 유지와 하복부 보온 : 한의학에서 말하는 '한응혈어(寒凝血瘀, 차가운 기운이 혈액을 뭉치게 함)'는 실제 생리학적 혈관 수축과 일치합니다. 하복부를 따뜻하게 유지하여 골반 근육의 긴장을 풀고 미세혈류 순환을 돕는 것이 좋습니다. 생리통을 '여성이라면 당연히 참고 견뎌야 하는 숙명'으로 받아들이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렇다고 진통제에만 의존한 채 위장 장애와 우울감을 감내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궁의 국소적 염증을 다스리고 중추신경계의 예민함을 잠재우는 과학적인 한의 치료와 올바른 운동 습관을 통해, 매달 찾아오는 통증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활기찬 일상을 누리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참고문헌 (References) 1.de Arruda GT, Barbosa-Silva J, Driusso P, Pathmanathan C, Armijo-Olivo S, Avila MA. Worldwide prevalence of dysmenorrhea: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across 70 countries. Pain. 2026 Jan 1;167(1):41-55. doi: 10.1097/j.pain.0000000000003768 2.Iacovides S, Avidon I, Baker FC. What we know about primary dysmenorrhea today: a critical review. Hum Reprod Update. 2015 Nov-Dec;21(6):762-78. doi: 10.1093/humupd/dmv039. 3.Cho SI, Jung HJ, Park M, Kim DI. Effectiveness and safety of herbal medicine on treatment of dysmenorrhea: An analysis of a multicenter, prospective observational study. Integr Med Res. 2026 Mar;15(1):101209. doi: 10.1016/j.imr.2025.101209 4.Wu L, Xu Lou I, Hu Z, Wang G, Deshpande SV, Cáceres-Matos R. Efficacy of Plant-Derived Therapies for Primary Dysmenorrhea: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of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Phytother Res. 2026 Apr 15. doi: 10.1002/ptr.70324 5.Tsai IC, Hsu CW, Chang CH, Lei WT, Tseng PT, Chang KV. Comparative Effectiveness of Different Exercises for Reducing Pain Intensity in Primary Dysmenorrhea: A Systematic Review and Network Meta-analysis of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Sports Med Open. 2024 May 30;10(1):63. doi: 10.1186/s40798-024-00718-4. 6.Chen B, Guo Q, Zhang Q, Di Z, Zhang Q. Revealing the Central Mechanism of Acupuncture for Primary Dysmenorrhea Based on Neuroimaging: A Narrative Review. Pain Res Manag. 2023;2023:8307249. 7.Chen B, Guo Q, Zhang Q, Di Z, Zhang Q. Revealing the Central Mechanism of Acupuncture for Primary Dysmenorrhea Based on Neuroimaging: A Narrative Review. Pain Res Manag. 2023 Feb 18;2023:8307249. doi: 10.1155/2023/8307249. 8.Liao CC, Lin CL, Tsai FJ, Chien CH, Li JM. Acupuncture's long-term impact on depression prevention in primary dysmenorrhea: A 19-year follow-up of a Taiwan cohort with neuroimmune insights. J Affect Disord. 2024 Jan 1;344:48-60. doi: 10.1016/j.jad.2023.10.013. 9.Li XL, Jin Y, Gao R, Zhou QX, Huang F, Liu L. Wenjing decoction: Mechanism in the treatment of dysmenorrhea with blood stasis syndrome through network pharmacology and experimental verification. J Ethnopharmacol. 2025 Jan 30;337(Pt 1):118818. doi: 10.1016/j.jep.2024.118818. 10.Luo Y, Mao P, Chen P, Li C, Fu X, Zhuang M. Effect of Guizhi Fuling Wan in primary dysmenorrhea: A randomized controlled trial. J Ethnopharmacol. 2023 May 10;307:116247. doi: 10.1016/j.jep.2023.116247. ▣ 최윤용 ◇큰나무한의원 대표원장 ◇ (주)으뜸생약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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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제철 음식과 탄소 중립 그리고 환경교육의 재인식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작년 겨울, “할아버지, 이 딸기 맛이 좀 이상해~.” 제철이 지난 시기에 어린 손녀가 먹던 딸기를 내려놓으며 하던 말이다.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철 지난 과일의 맛은 6살 아이의 기억과 입에도 낯설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딸기 한 알을 우리 식탁에 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비됐는지 우리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지구가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최근 우리는 날로 무더운 여름을 나면서 인내의 한계를 넘을 만큼 폭염과 싸우고 있다. 이제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나 과학 교과서 속 개념이 아니다. 가뭄, 폭우, 태풍, 식량 위기까지, 우리의 삶은 이미 기후변화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이런 시대, 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지식을 뛰어넘는 ‘지속 가능한 삶의 선택’을 가르쳐야 한다. 그 시작은 아주 작고도 가까운 곳, 바로 우리의 식탁에서 출발할 수 있다. 제철 음식은 그 자체가 탄소 중립의 실천이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의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수입 농산물이나 비제철 작물의 경우, 수송 과정에서 평균 11배 이상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고 한다. 특히 겨울철에 하우스에서 재배되는 작물은 인공조명, 난방, 수분조절 등에서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이는 곧 탄소 배출량의 증가로 이어진다. 예컨대, 2020년 녹색연합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겨울에 먹는 딸기 1kg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탄소 배출량은 약 3.4kg의 CO₂로 밝혀졌다. 반면에, 제철인 봄에 재배된 딸기는 0.8kg의 CO₂로 훨씬 적다. 같은 딸기이지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4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고 지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육 현장에서부터 ‘제철 급식’을 운영함으로써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철저한 탄소 중립 교육에 나서야 한다. 서울 성북구의 한 초등학교는 2022년부터 ‘제철 급식 주간’을 운영하고 있다. 영양교사와 학부모, 학생이 함께 참여해서 한 주일씩 제철 재료로만 구성된 메뉴를 만들고, 식사 후에는 환경에 대한 소감을 나눈다. 한 학생은 “처음엔 낯선 반찬도 있었지만, 알고 보니 자연이 지금 주는 맛이라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고 소감을 적었다. 또 다른 학생은 “내가 먹는 음식이 지구를 아프게 할 수도 있다니, 앞으로 장을 볼 때도 생각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교육은 단순히 환경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삶의 태도와 가치관의 변화를 이끄는 울림 있는 실용적인 교육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제철 음식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탄소 중립의 실천이다. 계절에 맞는 재료를 소비함으로써 난방, 냉방, 장거리 운송에 드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둘째, 농업의 활성화이다. 식재료는 대개 지역 농산물이다. 이는 지역 경제를 살리고, 음식의 이동 거리를 줄이는 ‘로컬푸드’ 실천이기도 하다. 셋째, 식문화의 회복이다. 제철 음식은 자연이 주는 최적의 영양 상태를 가진다. 건강한 성장기 아이들에게 특히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넷째, 소비자로서의 책임 교육이다. 아이들이 직접 음식 선택의 윤리성과 환경적 영향을 배움으로써, 더 넓은 차원의 ‘지속 가능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 전남 순천의 한 중학교에서는 ‘제로 푸드 마일(Zero Food Mile)’ 프로젝트를 실시했고 그 결과는 한 학생이 쓴 글이 많은 교사들의 마음을 울렸다. “우리가 먹는 밥 한 그릇이 지구에 무게가 될 수도, 지구를 쉬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제철이라는 건 단지 맛있는 시기가 아니라, 자연이 숨 쉬는 시기였다.” 결론적으로 ‘제철 음식 먹기’는 단지 건강을 위한 선택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작은 실천이자 위대한 교육이라 할 수 있다. 탄소 중립은 거창한 기술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 계절을 느끼고, 자연의 순리를 배우고, 식탁에서 지구를 생각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환경교육이며, 지속 가능한 삶의 기초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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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용의 100세칼럼] 봄바람과 함께 찾아온 불청객, 알레르기 비염의 과학적 관리
- [교육연합신문=최윤용 칼럼] ○ 새학기 숨길을 막는 알레르기 비염의 원인 차가운 겨울 바람이 물러가고 따뜻한 봄기운이 피어나는 3월입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콧물과 재채기, 코막힘으로 인해 두려운 시기이기도 합니다. 해외 연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약 15%가 이 알레르기 비염(allergic rhinitis)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 질환은 코 점막이 꽃가루, 먼지 등 특정 항원에 과민 반응을 일으켜 점막 장벽이 손상되고 제2형 도움 T세포(T-helper type 2) 매개 염증이 발생하는 면역 질환입니다. ○ 계절 탓으로 돌린 코막힘, 수면과 학습을 위협하는 전신 질환 많은 분들이 알레르기 비염을 "봄철에만 잠깐 견디면 되는 병" 혹은 "증상이 심할 때 개인적으로 항히스타민제를 구입하여 복용하면 되는 가벼운 질환"으로 오해합니다. 하지만 이를 방치할 경우 천식, 습진, 만성 부비동염(축농증) 등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만성적인 두통과 수면 장애를 유발하게 됩니다. 특히 새 학기를 맞은 학생들에게 코막힘으로 인한 수면의 질 저하는 집중력과 학습 능력을 심각하게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요인이 됩니다. 알레르기 비염은 평생 안고 가야 하는 불치병이거나 반드시 수술을 해야만 낫는 질환이라는 오해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알레르기 비염은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가 병행될 경우 예후가 비교적 좋은 질환으로 평가되며, 적절한 관리를 통해 증상의 완전한 소실 및 원인 노출 종료 후 치료를 마칠 수도 있습니다. 호전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주된 이유는 알레르기 비염이 불치병이기 때문이 아니라, 치료가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거나 원인 항원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레르기 비염은 단순한 코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 전반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전신 질환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습니다. ○ 최신 연구에서 제안하는 한의 치료의 면역 조절 효과 한의 치료는 증상의 일시적인 억제를 넘어, 무너진 코 점막의 환경을 개선하고 면역 체계의 균형을 되찾는 방향으로 알레르기 비염 증상 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작용 기전과 효과는 국제 점차 학술지에 게재된 연구들을 통해 점점 더 자세하게 규명되고 있습니다. 첫째, 비강 내 침 치료의 즉각적인 점막 안정화 효과입니다. 2023년 출판된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에 따르면, 코 주변의 특정 부위에 시술하는 침 치료가 만성 알레르기 비염 환자의 증상 개선에 탁월한 효과를 보였습니다. 또한, 베이지안 통계기법을 활용하여 여러 임상시험 결과를 합성한 메타분석 연구를 통해서도 다양한 침 치료 기법이 비염 증상을 유의미하면서도 안전하게 완화할 수 있다는 결과가 확인되었습니다. 둘째, 다양한 호흡기 질환에 오랜 기간 활용되어 온 한약의 면역 조절 및 항염증 효과입니다. 예컨대, 2022년 메타분석 연구에서는 맑은 콧물과 재채기를 동반하는 비염에 현재도 널리 활용되는 한약 ‘소청룡탕’이 뛰어난 유효성과 안전성을 보였습니다. 더불어, 호흡기 면역력이 저하된 환자에게 쓰이는 '옥병풍산'의 경우, 2025년의 이중맹검 임상시험을 통해 관련 질환에 자주 시달리는 비염 환자에게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2026년 발표된 최신 임상-실험 중개연구 (translational research)에서는 이 옥병풍산 기반 코 점적액(nasal drops)이 점막의 염증 매개 경로를 억제하고, 면역 세포(Th17/Treg)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작용에 대해 분자생물학적 수준에서 그 기전을 규명해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호흡기 건강 관리법 봄철 비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생활 속 적극적인 환경 관리가 1차 치료법으로 동반되어야 합니다. 꽃가루가 날리는 시기에는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사용하여 외부 항원의 실내 유입을 차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내 주요 항원인 집먼지진드기의 번식을 막기 위해 제습기 등을 활용하여 실내 습도를 30~50%로 유지해야 합니다. 아울러 반려동물이 있다면 침실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침실과 주요 활동 공간에 고효율 공기청정 필터를 가동하여 공기 중의 항원을 제거하는 것이 권장됩니다. 외출 후에는 등장성 또는 고장성 생리식염수를 이용하여 비강 내부를 세척하면 점막에 붙은 항원을 물리적으로 제거하여 증상 중증도를 유의미하게 낮출 수 있습니다. 각별히 주의해야 할 점은 무분별한 약물 오남용입니다. 개인이 임의로 판단하여 의료진의 처방 없이 국소 비강 충혈제거제(코막힘 스프레이) 등을 장기간 남용할 경우, 오히려 코 점막이 비대해지고 기능이 망가지는 약물유발성 비염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알레르기 비염은 단순한 코의 불편함을 넘어 삶의 질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복합 면역 질환입니다. 따라서 막연히 임의로 약물을 활용하기보다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철저한 생활 환경 관리와 함께 전문가의 정확한 진단에 따른 맞춤 치료를 병행하여 건강한 호흡을 유지하시길 바랍니다. ■ 참고문헌 (References) 1. Bernstein JA, Bernstein JS, Makol R, Ward S. Allergic Rhinitis: A Review. JAMA. 2024 Mar 12;331(10):866-877. doi: 10.1001/jama.2024.0530 2. Yin Z, Geng G, Xu G, Zhao L, Liang F. Acupuncture methods for allergic rhinitis: a systematic review and bayesian meta-analysis of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Chin Med. 2020 Oct 12;15:109. doi: 10.1186/s13020-020-00389-9 3. Liu LL, Gong Z, Tang L, Yan ZF. A novel and alternative therapy for persistent allergic rhinitis via intranasal acupuncture: a randomized controlled trial. Eur Arch Otorhinolaryngol. 2023 Jun;280(6):2773-2783. doi: 10.1007/s00405-022-07793-x 4. Yan Y, Zhang J, Liu H, Lin Z, Luo Q, Li Y, Ruan Y, Zhou S. Efficacy and safety of the Chinese herbal medicine Xiao-qing-long-tang for allergic rhiniti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of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J Ethnopharmacol. 2022 Oct 28;297:115169. doi: 10.1016/j.jep.2022.115169 5. Lin ZX, Ho TM, Xian YF, Chan KL, Xu QQ, Lo CW, Wu JCY, Hon KL, Leung SB, Chia CP, Sum CH, Chow TY, Cheong PK, Ching JYL, Zhang H, Leung KC, Lin WL. Exploring the efficacy and safety of Yu-Ping-Feng powder with variation against allergic rhinitis: a randomized, double-blind, placebo-controlled trial. Chin Med. 2025 May 26;20(1):70. doi: 10.1186/s13020-025-01120-2 6. Hu Y, Fu L, Ren Q, Wang F, Luo H, Li J, Wang X, Tian L. Yu-Ping-Feng nasal drops relieve allergic rhinitis via TRPV1/Ca2+/NFAT pathway. J Ethnopharmacol. 2026 Jan 30;355(Pt A):120618. doi: 10.1016/j.jep.2025.120618 ▣ 최윤용 ◇ 큰나무한의원 대표원장 ◇ (주)으뜸생약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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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용의 100세칼럼] 봄바람과 함께 찾아온 불청객, 알레르기 비염의 과학적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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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학교를 이끄는 새로운 교육 리더십의 필요와 중요함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현시대 우리의 학교 교육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교육 리더십’은 무엇인가? 이는 한 마디로 더 이상 교장을 정점으로 한 지시와 통제의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유리처럼 투명하게 학생·학부모·교사의 깨지지 않는 신뢰의 구조를 세우는 일이다. 이는 국가 경영의 입장에서는 무신불립(無信不立)과 같은 맥락이다. 정보는 넘치지만 방향은 흐릿한 시대, 성적은 높아졌지만 배움의 의미는 옅어진 우리 학교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에서는 다시 지금 학교를 이끄는 새로운 교육 리더십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보다 구체적으로 진술하고자 한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교육이 효율과 표준화를 중심으로 발전했다면, 오늘날의 교육은 연결과 공감, 그리고 자율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세계적 교육 혁신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High Tech High는 교장을 ‘관리자’가 아니라 ‘학습 설계자’로 규정한다. 그들은 학생에게 프로젝트를 맡기고, 교사에게는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자율권을 부여한다. 리더는 간섭하지 않는다. 대신 “이 배움이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가?”라고 질문한다. 그 질문이 일부의 학교를 바꿔 왔고 이제는 모든 학교로 보편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시대적인 요구가 되었다. 교육 선진국 핀란드의 교육 개혁을 이끈 Pasi Sahlberg는 “신뢰는 정책이 아니라 문화다.” 라고 말했다. 핀란드의 학교에는 전국 단위 일제고사가 거의 없다. 대신 교사 전문성에 대한 깊은 존중과 신뢰가 있고 그에 합당한 대우가 있다. 리더는 교사를 통제하지 않는다. 교사의 성장을 지원할 뿐이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학생은 시험을 위해 공부하지 않고, 삶을 위해 배운다. 이것이 신뢰 기반 리더십의 힘이자 결과다. 우리 사회에서도 변화의 씨앗은 싹트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 자치회가 교육과정 운영에 직접 참여하고, 교사 협의체가 학교 의사결정의 중심에 선다. 한 중학교에서는 ‘시험 없는 한 학기’를 도입해 지역사회 문제 해결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학생들은 지역 하천의 수질을 조사하고, 상인들과 인터뷰하며, 정책 제안서를 작성했다. 교장은 단 한 번도 “성적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지 않았다. 대신 “이 경험이 너를 어떻게 성장시켰는가?”를 물었다. 그 질문 하나가 학생의 눈빛을 바꾸었다. 새로운 교육 리더십은 세 가지 전환을 요구한다. 첫째, 통제에서 신뢰로, 둘째, 평가에서 성장으로, 셋째, 독점에서 공유로의 전환이다. 이를 위해서 리더는 더 많이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이 듣는 사람이어야 한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목소리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설계자여야 한다. 실패를 처벌하지 않고 학습의 자산으로 전환하는 문화 창조자여야 한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최첨단 디지털 과학·기술의 시대에 리더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인공지능(AI)이 교육 깊숙이 파고들고, 지식을 전달하는 시대에 학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답은 명확하다. 질문하는 힘, 협력하는 능력, 공감하는 태도, 이 3가지를 기르는 것이다. 이는 상명하달식 명령으로 길러지지 않는다. 존중과 참여의 경험 속에서만 자란다. 새로운 교육 리더십은 거창한 슬로건이 아니다. 그것은 학생의 의견을 경청하는 태도이며, 교사의 교육방식을 지지하는 결단이며, 실패한 수업이라도 비난 대신 성찰로 이끄는 용기다. 유리처럼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유리처럼 단단하게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 그것이 이 시대 교육이 요구하는 새로운 교육 리더의 모습이어야 한다. 교육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다. 그리고 리더십은 그 이야기를 가능하게 하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지금 우리의 학교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규정이 아니라 더 깊은 신뢰다. 이제는 모든 학교 교육이 통제의 시대를 넘어 공감의 시대로, 경쟁의 문화를 넘어 성장의 문화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 아이들의 내일을 지키는 가장 혁신적인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대통령조차 “AI 3대 강국”, ”국가 과학자 양성“을 선언하며 ”하루가 늦으면 한 세대가 늦춰진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교육 선언으로 그치지 않고 국가 지도자와 모든 교육 리더들의 실천과 행동만이 필요할 뿐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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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학교를 이끄는 새로운 교육 리더십의 필요와 중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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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탐방] 부산관광고등학교, 관광·MICE 인재 양성의 새 지평 열다
- [교육연합신문=이정현 기자] 부산 관광·MICE 산업을 이끌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새로운 교육 모델이 공식 출범했다. 부산관광고등학교(교장 정정부)는 지난 3월 11일 오전 10시 부산 벡스코(BEXCO) 컨벤션홀 2층 써밋홀에서 ‘2026학년도 부산관광고등학교 협약형 특성화고 개교식’을 개최하고 관광·MICE 산업 인재 양성의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다. 이번 개교식에는 민용기 재단이사장과 정정부 교장을 비롯해 부산광역시교육청, 부산광역시 서구청, 부산관광공사, 벡스코, 부산광역시관광협회, 부울경관광벤처협의회, (사)부산컨벤션산업협회 등 관광·MICE 산업 관련 주요 기관 관계자와 교육계 인사, 학생, 학부모 등 600여 명이 참석해 부산 관광교육의 새로운 시작을 함께 축하했다. ■ 학생 난타 공연으로 힘찬 개교식 이날 개교식은 부산관광고 재학생들의 난타 공연으로 활기차게 시작됐다. 학생들은 역동적인 북소리와 박진감 넘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행사장의 분위기를 단숨에 끌어올렸고, 미래 관광산업을 이끌 학생들의 열정과 에너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며 참석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이후 개교 선언과 학교 비전 발표, 축사 등이 이어지며 부산 관광교육의 새로운 방향과 역할을 공유하는 뜻깊은 시간이 마련됐다. ■ 관광산업과 교육을 잇는 ‘협약형 특성화고’ 모델 부산관광고등학교는 관광·MICE 산업 현장에서 요구되는 전문 인재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해 교육기관과 산업계, 공공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협약형 특성화고 모델을 도입했다. 협약형 특성화고는 지역 산업과 교육이 긴밀히 연결된 미래형 직업교육 모델로,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산업 현장에서 직접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부산관광고는 관광서비스, 컨벤션 운영, 관광마케팅, 글로벌 관광비즈니스 등 관광·MICE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실무 중심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현장 맞춤형 관광 전문 인재를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산업체와 연계한 현장실습과 인턴십, 취업 연계 프로그램 등을 확대해 학생들의 진로 설계와 취업 경쟁력을 높일 방침이다. ■ “부산 관광도시 경쟁력, 인재 양성에서 시작” 민용기 재단 이사장은 축사를 통해 관광산업에서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민 이사장은 “관광산업은 도시의 브랜드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산업”이라며, “부산관광고등학교가 관광산업과 교육을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며 글로벌 관광도시 부산을 이끌 인재를 키워내길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부산광역시교육청 관계자는 “부산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MICE 도시로 성장하고 있으며 이에 걸맞은 전문 인재 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며, “부산관광고등학교가 지역 산업과 연계한 미래형 직업교육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라고 말했다. ■ 정정부 교장 “산업과 교육이 함께 만드는 미래형 관광교육” 정정부 부산관광고등학교 교장은 환영사를 통해 부산 관광·MICE 산업과 연계한 미래형 직업교육의 방향을 강조했다. 정 교장은 “부산은 외국인 관광객 360만 명을 돌파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도시로 성장했고, 이제 아시아를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 관광·MICE 허브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라며, “이러한 도시 경쟁력 속에서 부산관광고등학교가 협약형 특성화고로 선정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또한, “부산관광고는 협약형 특성화고 운영을 통해 관광·MICE 산업 전문가와 미식관광을 이끌 스타 셰프를 양성하고, 부산 관광산업의 미래를 이끌 인재 양성 거점학교로 도약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정 교장은 이를 위한 교육 전략으로 3단계 교육 플랜을 제시했다. 먼저 산업체 중심의 B-MICE+ 인증 자격제도를 통해 외국어 능력과 직업기초능력, 현장 실무 역량을 체계적으로 강화하고, 이어 3학년 2학기에는 협약 산업체에서 현장실습을 실시해 취업으로 이어지는 교육 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협약 대학과 연계한 일학습병행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경력과 학력을 동시에 갖춘 지역 인재로 성장하고 부산에 정주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정 교장은 “협약형 특성화고 개교는 학교와 지역사회, 산업계가 함께 협력해 미래 인재를 키우는 새로운 교육 모델의 출발점”이라며, “부산관광고가 부산을 넘어 전국 협약형 특성화고의 대표적인 성장 모델이 될 수 있도록 교직원 모두가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강조했다. ■ 관광·MICE 기관 협력 네트워크 구축 이번 협약형 특성화고 개교를 통해 부산관광고등학교는 지역 관광산업과 교육을 연결하는 협력 네트워크를 본격적으로 구축하게 됐다. 특히 부산관광공사, 벡스코, 부산광역시관광협회, 부울경관광벤처협의회, 부산컨벤션산업협회 등 관광·MICE 산업 주요 기관들과 협력해 현장 중심 교육과 취업 연계 프로그램을 확대할 계획이다. 교육계에서는 이번 개교가 부산 관광산업과 직업교육이 함께 성장하는 새로운 산학협력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 협력기관 감사패 전달…“함께 만든 교육의 출발” 행사의 마지막 순서로 협약형 특성화고 운영과 관광·MICE 교육 발전에 기여한 기관과 관계자들에게 감사패 전달식이 진행됐다. 부산관광고등학교는 협약형 특성화고 추진 과정에서 적극적인 협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은 부산광역시교육청, 부산광역시 서구청, 부산관광공사, 벡스코, 부산광역시관광협회, 부울경관광벤처협의회, (사)부산컨벤션산업협회 등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정정부 교장은 “오늘의 개교는 학교 혼자만의 성과가 아니라 지역사회와 산업계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라며, “앞으로도 협력기관들과 긴밀한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부산 관광산업을 이끌 미래 인재 양성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 “글로벌 관광도시 부산을 이끌 관광교육 허브” 부산관광고등학교는 앞으로 관광서비스와 컨벤션 산업, 관광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인재를 양성하며 부산 관광산업의 미래를 이끌 관광교육 허브로 자리매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교육계는 이번 협약형 특성화고 개교가 부산이 글로벌 관광·MICE 도시로 도약하는 데 필요한 전문 인재 양성의 핵심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산업과 교육이 함께 만드는 새로운 직업교육 모델이 부산 관광산업의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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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탐방] 부산관광고등학교, 관광·MICE 인재 양성의 새 지평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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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칼럼] 인공지능의 빛과 단종의 그림자: 기술 권력 시대, 왜 우리는 다시 슬픔의 공동체를 찾는가
- [교육연합신문=김춘식 칼럼] □ 프롤로그: 0과 1의 세계에서 터져 나온 집단적 통곡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하 단종)가 개봉 31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투자배급사 쇼박스가 관객의 뜨거운 성원에 보답하고자 마련한 ‘통곡 상영회’는 예매 시작과 동시에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효율과 논리가 지배하는 인공지능(AI) 시대에 현대인들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울기 위해 극장으로 모여드는 현상은 단순한 흥행 기록 그 이상의 의미를 시사한다. 스크린 속 어린 왕의 비극에 수많은 이들이 오열하는 모습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감상적 동조를 넘어선다. 그 이면에는 빛의 속도로 질주하는 기술 문명 속에서 방향 감각을 잃고 소외된 현대인의 깊은 실존적 공허함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기계가 결코 복제할 수 없는 인간성의 최후 보루를 확인하기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 기술의 초가속과 인간의 정서적 지연 인공지능은 어제의 불가능을 오늘의 일상으로 치환하며 진화한다. 그러나 인간의 생물학적 뇌와 정서 체계는 이토록 빠른 기술 속도에 적응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기술 문명은 삶의 중심을 잡아주던 기준점인 닻을 흔들어 놓았고, 그 결과 많은 이들이 공중에 부유하는 듯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정체성의 위기는 고도화된 기술 사회에서 낙오될지 모른다는 실용적 공포와, 모든 것이 데이터로 환원되는 세상에서 인간 고유의 감정적 교감이 거세당하고 있다는 근원적 두려움을 동시에 낳는다. 기술이 가속화될수록 우리 내면에는 기묘한 정서적 지연 현상이 발생하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점점 더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온다. 단종의 비극에 대한 열광은 바로 이 길을 잃은 세대가 찾아낸 역설적인 안식처인 셈이다. □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과 통곡 상영회의 평행이론 현대인들이 통곡 상영회로 집결하는 모습은 수천 년간 특정 민족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Wailing Wall)’을 연상시킨다. 거대한 성벽 앞에 모여 자신의 고통을 하늘에 고하고 집단적으로 슬픔을 공유하며 정체성을 지켜냈듯, 오늘날의 관객들은 극장이라는 현대적 성벽 앞에 모여 디지털 시대에 상실해 가는 인간의 원형을 붙잡으려 한다. 인공지능은 결코 눈물을 흘릴 수 없기에, 인간의 눈물이 지닌 실존적 가치는 이 지점에서 더욱 빛난다. AI는 수억 개의 데이터를 학습하여 가장 그럴듯한 답변을 출력할 수는 있지만, 가슴이 먹먹해지고 목이 메는 신체적 고통을 수반한 실제적 경험은 불가능하다. 인간의 슬픔은 나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우리가 기계가 아님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하고도 유일한 신호다. 통곡 상영회는 인공지능이 줄 수 없는 따뜻한 위로와 연대를 확인하는 현대판 통곡의 벽이라 할 수 있다. □ 아날로그적 결핍과 살롱 문화의 귀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으나, 역설적으로 심각한 정서적 굶주림을 겪고 있다. 온라인 소통이 강화될수록 대면 소통은 줄어들고, 이모티콘과 ‘좋아요’는 타인의 온기를 갈구하는 인간의 근원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이러한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과거 계몽주의 시대 유럽의 교양 사회를 이끌었던 ‘살롱 문화(Salon culture)’에 주목해야 한다. 살롱은 당대의 지식인들이 모여 철학과 예술, 정치와 사회를 논하며 고립된 자아를 확장하던 소통의 장이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체하는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보를 전달하는 기계적 회의가 아니다. 오히려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고 지적으로 자극하며 인간적 유대를 쌓는 ‘취향과 감성의 공동체’가 절실하다. 디지털의 범람 속에서 아날로그적 온기를 간직한 작은 살롱들은 우리를 기계적 종속으로부터 해방해 줄 정서적 피난처가 될 것이다. □ 역사적 고비로서의 AI 혁명과 기술 권력에 대한 공포 역사적으로 기술의 급격한 전환기는 언제나 인간 소외와 정체성 붕괴라는 혹독한 대가를 요구해 왔다. 산업혁명의 가속화가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듯, 현재의 4차 산업혁명 역시 인류에게 거대한 실존적 위협을 가하고 있다. 현대인이 느끼는 막연한 불안은 AI가 일자리를 뺏을 것이라는 걱정을 넘어, 기술을 장악한 소수 권력에 의해 인간의 판단과 감정이 통제당할지도 모른다는 본능적인 두려움에서 기인한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정보를 소비하고 데이터가 분석한 감정에 의존하는 삶 속에서 인간의 주체성은 점차 희미해진다. 우리는 지금 역사의 심판대 위에서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기술이 우리를 이끄는 대로 내버려 둘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기술의 방향을 결정할 것인가. □ 에필로그: 인간 중심의 5차 산업혁명과 공동체 리빙랩의 시대 결국 해답은 기술의 거부가 아니라 인간성을 중심에 둔 기술의 통제와 관리에 있다. 기술이 인간 위에 군림하는 주인이 아닌,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도구로 남을 수 있도록 윤리적·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것이 바로 인공지능 시대의 정서적 공허함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인간 중심의 5차 산업혁명’의 핵심 가치다. 이러한 가치를 현실화할 구체적인 대안으로 생활 현장 기반의 ‘리빙랩(Living Lab)’ 공동체에 주목해야 한다. 리빙랩은 시민들이 삶의 현장에서 기술을 도구 삼아 지역 사회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 나가는 ‘살아있는 실험실’이다. 이는 전문가의 일방적인 주도를 넘어 사용자 중심의 사회 혁신을 실현하며, 기술이 만남을 대체하는 고립의 섬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따뜻한 다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통곡 상영회에서 터져 나온 뜨거운 눈물은 기술 문명의 노예가 되지 않고 존엄한 인간으로 남겠다는 가장 강력한 저항이자 선언이다. 슬픔은 기계가 결코 침범할 수 없는 인류 최후의 영토다. 우리가 여전히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고 함께 울 수 있는 한, 인류의 이정표는 차가운 알고리즘이 아닌 따뜻한 공감의 선율을 따라 움직일 것이다. 결국 슬픔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며, 그 공감의 능력이 바로 우리가 인공지능 시대를 인간답게 살아내야 할 진정한 이유다. ▣ 김춘식 ◇ 동신대학교 교수 ◇ 2024 칼만 해외석학 ◇ 교육연합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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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칼럼] 인공지능의 빛과 단종의 그림자: 기술 권력 시대, 왜 우리는 다시 슬픔의 공동체를 찾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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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죽은 자의 발자국, 살아 있는 자의 기억-은자 ‘복(復)’의 이야기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역사라는 것은 언제나 낯설고도 친근하다. 눈앞에 있는 돌 하나, 땅속에서 나온 기와 조각 하나에도 수천 년의 기억이 서려 있다. 그런데 그 기억을 읽어내는 방식은 시대와 권력, 그리고 우리의 시선에 따라 달라진다. 갑골문 이야기도 그렇다. 중국에서는 흔히 갑골문을 ‘중화문명의 뿌리’라 부른다. 맞는 말이지만, 그 내부로 들어가면 상황은 조금 다르다. 정작 갑골문이 어떤 뜻을 지니고 있는지, 글자 하나하나가 어떤 사연을 품고 있는지 아는 이는 드물다. “갑골문 글자 하나만 해독해도 10만 위안을 번다더라”는 식의 괴담이 대중 속에 퍼져 있을 정도다. 귀중한 문화유산이지만, 막상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신비하고도 난해한 문자일 뿐이다. 하지만 갑골문을 단순히 난해한 고문자로만 본다면 그 속의 생생한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놓치게 된다. 오늘 다루려는 ‘복(復)’자가 바로 그렇다. 우리는 보통 ‘복’이라 하면 ‘되돌아온다, 회복한다’는 뜻을 떠올린다. 하지만 갑골문 속 ‘복’은 조금 다르다. 글자의 형상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돌아옴’ 이상의, 생과 사를 오가는 깊은 상징을 만나게 된다. □ 발자국, 집을 나서다 먼저 글자의 아랫부분을 보자. 거기에는 ‘止(지)’라는 모양이 새겨져 있다. 우리는 이 글자를 오늘날 ‘그칠 지’라고 읽지만, 본래의 뜻은 달랐다. ‘발자국’ 혹은 ‘발이 움직이는 모습’을 나타내는 상형이었던 것이다. 즉, ‘앞으로 걸어간다’는 의미가 기본에 깔려 있었다. 그런데 ‘복’자의 갑골문에서는 이 발자국이 거꾸로 뒤집혀 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집에서 ‘밖으로 나가는’ 모양새다. 발길이 안쪽을 향하지 않고 바깥으로 향한다는 점이 중요한 대목이다. 이 발자국 위에는 직사각형 구조물이 놓여 있다. 마치 성곽이나 움집처럼 보이는 그림이다. 그 중앙에는 삼각형, 혹은 역삼각형의 표시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출입구를 뜻하는 기호로 자주 쓰였다. 그렇다면 이 모양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단순히 해석하면 ‘집에서 발길이 밖으로 향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갑골문은 늘 단순한 그림 이상이다. 당대의 삶과 죽음을 담아내는 기호였으니, 여기서 집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죽은 자의 거처, 곧 신옥(神屋)이나 무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발자국이 밖으로 향하는 장면은? 바로 ‘죽은 자의 영혼이 집을 나서 세상으로 나온다’는 뜻이다.([그림 20] ‘復’ 참조) 즉, 복(復)은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발길이 세상으로 되돌아오는 장면’을 담고 있는 셈이다. □ ‘아(亞)’와 ‘복(復)’의 친연성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것은 ‘아(亞)’자와의 연관성이다. ‘亞’ 하면 우리는 흔히 ‘버금, 차순위’의 뜻을 떠올린다. 하지만 원래 이 글자는 조상의 영혼이 거처하는 종묘를 둘러싼 길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귀신의 집’이라는 뜻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그림 20] ‘亞’ 참조) 시간이 흐르면서 ‘亞’는 단순히 위계나 순서를 표시하는 용도로 의미가 축소되었지만, 갑골문 단계에서는 ‘죽은 자와 산 자를 이어주는 장소’를 뜻했다. ‘복(復)’자가 ‘죽은 자의 발자국’이라면, ‘亞’는 그 발자국이 오가는 길과 공간이었다. 두 글자는 같은 세계관 속에서 서로 호응하며 만들어진 셈이다. □ 고고학이 말해주는 것들 갑골문 해석은 종종 고고학의 발견과 맞닿는다. 하북성에서 발견된 조조의 무덤을 보자. 무덤 구조가 ‘복’자의 형상과 닮아 있다. 직사각형의 집 모양, 출입구, 바깥으로 향한 통로. 조조 무덤이 실제로 그 시대의 것인지 여부를 떠나, 이 형식이 상나라 이래 이어져 온 전통임을 보여준다. 더 흥미로운 건 한반도의 사례다. 2007년 경북 문경의 고모산성에서 5세기 지하 목조건물이 발굴되었다. 고고학자들은 그 내부 구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직사각형의 집 모양과 출입구, 그 배치가 갑골문 속 ‘복(復)’자의 형상과 거의 동일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상나라의 건축 전통, 나아가 동이족 문화권의 신앙과 생활양식이 한반도 신라에까지 전승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결국 ‘복’자는 단순히 문자 차원의 해석이 아니라, 건축, 장례, 종교적 의례 전반과 연결되는 문화적 상징이었던 것이다. □ 돌아옴은 곧 ‘영혼의 귀환’ 우리는 흔히 ‘복’이라는 글자를 일상적으로 쓴다. 회복, 반복, 복귀. 모두 되돌아옴을 뜻한다. 하지만 그 뿌리를 더듬어 올라가면, 그 되돌아옴은 단순히 사람의 이동이 아니라 ‘영혼의 귀환’을 가리켰다. 죽은 자가 저승에서 다시 세상으로 나오는 발자국, 그것이 곧 ‘복’이었다. 동이족의 세계관에서는 죽음은 단절이 아니었다. 삶과 죽음은 서로 문을 열고 드나드는 관계였다. 영혼은 저승으로 떠났다가도 제사와 의례를 통해 언제든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서 무덤은 단순한 ‘끝’이 아니라, 양쪽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였고, 갑골문 속 ‘복’은 그 문턱에서 찍힌 발자국이었다. □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여기서 우리는 질문 하나를 던질 수 있다. 왜 동이족은 죽음을 ‘복’이라 불렀을까. 왜 발자국이 집을 나서는 장면을 글자로 새겼을까. 그것은 아마도, 죽은 자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시 돌아올 존재’임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우리는 과학의 시대를 산다. 영혼의 귀환 같은 이야기는 미신으로 치부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믿음이 담고 있던 삶의 태도, 곧 죽음을 두려움이 아니라 ‘되돌아옴’으로 바라보던 시선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그것은 단절 대신 순환을, 끝 대신 이어짐을 강조하는 세계관이다. 문경 고모산성 지하 건축물의 발자취를 바라보며, 혹은 갑골문 속 ‘복’자를 마주하며 우리는 깨닫는다. 우리 조상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삶과 죽음을 하나의 길 위에서 바라보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발자국은 멈추지 않고 이어져 왔다는 것을.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의 존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갑골문 속 작은 발자국 하나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귀환이며, 우리는 모두 언젠가 다시 ‘복’할 존재라는 것. □ 맺으며 중국에서조차 대다수는 알지 못하는 갑골문. 그러나 그 안에는 동아시아 문명의 뿌리, 나아가 한반도까지 이어진 깊은 문화의 흔적이 숨어 있다. ‘복(復)’자는 그중에서도 특별하다. 단순히 돌아옴을 뜻하는 글자가 아니라, 죽은 자의 영혼이 세상으로 돌아오는 상징,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잇는 통로였다. 이제 우리는 ‘복’자를 다시 읽어야 한다. 그것은 단지 반복되는 일상의 귀환이 아니라, 선조들의 영혼이 오늘도 우리 곁에 되돌아오는 발자국이다. 고대의 무덤과 건축물, 그리고 문자 속에 살아 있는 그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돌아갈 것인지에 대한 답도 조금은 가까워질 것이다. 죽은 자의 발자국은 살아 있는 자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울리고 있다. 그것이 바로 갑골문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오래된, 그러나 가장 따뜻한 위로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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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죽은 자의 발자국, 살아 있는 자의 기억-은자 ‘복(復)’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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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뽀샵하는 사회
-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뽀샵하는 사회 언제부턴가 아름다움도 만들어졌다. 사실보다도 더 진짜 같은 가짜 현실 속에서ㅡ 마법 거울은 묻는다. "누가 가장 아름다운가?" 모두 백설공주 되어 나만의 만족을 좇는다. 왜곡된 옷을 입은 진실도 조용히 비틀리고, 모두 획일화된다. 진짜 나를 잃어간다. 꾸밈이 기본 예의인 이 사회 속에서ㅡ 사진 속 얼굴도, 화장 뒤 표정도, 오늘 우리는 가면을 쓴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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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Changgyeonggung: The history of Restoration
- [교육연합신문=이윤서 학생기자] Changgyeonggung Palace is one of the main 5 palace of Joseon. It was built in 1483 by Joseon’s 9th king, Seongjong(성종). It’s original name was Suganggung, but when Seongjong expanded it for three grandmas, he changed this palace’s name into Changgyeonggung. A lot of kings of Joseon were born in this palace which makes it special and important. However,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Japanese people harmed it and displayed animals and plants in there and opened it to public. They had degraded the name into Changgyeongwon. After the colonial era ended, in 1983, people restored Changgyeonggung palace and found its own form again. It now is one of the beautiful palace in Korea and became a must-visit spot for tourists. Why don’t you pick Changgyeonggung for spring flower sightseeing? Walk across Okcheongyo(Bridge) and appreciate the wonderful look of Changgyeonggung palace and what it had over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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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이제는 ‘뽑는 교육’에서 ‘키우는 교육’을 지향해야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우리는 오랫동안 인재를 국가의 동량(棟梁)으로 간주해 우수한 인재만을 뽑으려고 몰입해 왔다. 그래서 역량을 키워 잠재력이 높은 인재를 많이 확보하는 학교가 소위 ‘명문고’, ‘명문대’로 이 사회에서 우위를 독점했다. 이는 처음부터 능력이 출중한 인재를 학교에서 교육의 기능을 발휘해 더욱 출중한 인재로 키웠다고 판단하기엔 한계가 있다. 잠재력을 가진 학생들이 모여 또래 집단의 경쟁을 통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우수한 결과를 내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를 두고 우리는 인재를 길러 왔다고 스스럼 없이 말해 왔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의 교육은 인재를 ‘키운’ 것이 아니라, 미리 자라난 아이를 골라내는 일에 더 익숙했다. 시험은 능력을 발견하기보다 순위를 만들었고, 학교는 성장을 돕기보다 선발을 준비하는 공간이 되었다. 이제는 분명히 말해야 한다. 인재 양성의 방향은 뽑는 것 즉, 선발이 아니라 키우는 것, 성장이라고 말이다. 선발 중심 교육은 효율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짧은 시간 안에 상위 몇 퍼센트를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가능성은 무시된 채 사라진다. 성장할 수 있었던 아이, 늦게 피는 아이, 다른 방식으로 빛날 아이들은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포기하게 만든다. 선발은 결과를 가르지만, 성장은 가능성을 키운다. 교육이 선택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세계의 교육 선진 사례는 이미 이 방향 전환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핀란드는 조기 선발과 학교 서열화를 철저히 배제하고, 모든 학생이 자신의 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 결과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높은 성과를 유지하면서도 학력 격차는 작다. 이는 특별한 아이들만을 골라낸 결과가 아니라, 대다수 아이들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도록 기다리고 지원한 결과다. 국내에서도 작은 변화의 가능성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경쟁 대신 과정 중심 평가를 도입한 학교, 성취 수준보다 학습의 변화와 노력을 기록하는 교사들, 뒤처진 학생을 분리하지 않고 함께 성장시키는 학급 운영 사례들은 이를 말해 준다. 아이들은 서열이 낮아서가 아니라, 기다려 주지 않았기 때문에 성장하지 못했던 것임을 말이다. 성장 중심 교육은 느리고 번거롭다. 단기간에 성과를 수치로 증명하기 어렵고, 교사의 전문성과 책임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교육은 본래 느린 일이다. 씨앗을 뿌린 다음 날 열매를 요구하지 않듯, 아이의 가능성 역시 시간과 신뢰 속에서 자란다. 선발은 관리가 쉽지만, 성장은 돌봄과 책임을 요구한다. 그래서 성장 중심 교육은 곧 기성 세대의 각오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제 선언해야 한다. 교육의 목적은 더 빨리 앞서가는 아이를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가 어제보다 한 걸음 더 성장하도록 돕는 것임을. 시험은 줄 세우기보다 학습을 돕는 도구가 되어야 하고, 평가는 탈락의 근거가 아니라 성장의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 학교는 선발의 전초기지가 아니라, 가능성이 안전하게 자라는 공간이어야 한다. 인재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진다. 그리고 그 출발선은 결코 같지 않다. 교육의 역할은 출발선의 차이를 이유로 탈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끝까지 성장할 수 있도록 책임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공정의 본래 의미이며, 미래 사회가 교육에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 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뽑는 교육’에 머물 수 없다. 이제 교육은 선언해야 한다. 인재 양성의 길은 선발이 아니라 성장이라고 말이다, 그 선언이 말에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학교는 다시 희망이 될 것이다. 이는 곧 학교와 국가의 존재 이유인 사회적 신뢰의 주춧돌이 될 것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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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이제는 ‘뽑는 교육’에서 ‘키우는 교육’을 지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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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자본주의 시대의 금융교육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돈의 심리학』과 『돈의 방정식』이라는 책을 설날 연휴에 읽었다. 자본주의 시대에 살면서 돈에 대한 개념이 너무도 없다는 자각에서 구입한 책이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대중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 주는 증표라고 생각한다. 지구 위 모든 나라를 아우르는 테마는 경제, 즉 돈이다. 정치, 교육, 사회, 환경에 모두가 돈이 들어가 있고 전쟁도 돈이 들어가 있다. 돈이 중세 시대의 종교처럼 군림하고 있다. 이를 직시하고 올바른 경제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학생을 사랑한다면 학생이 돈 중심사회에서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경제에 대한 안목을 키워주는 교육이 옳은 방향이다.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행복도 그만큼 커지리라고 믿는다고 한다. 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족의 사랑, 친구 간의 우정, 건강, 경험, 존경 등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꽃이 하나도 없는 외계에서 온 사람은 이 지구상에 있는 많은 꽃을 보면 감탄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소중한 것이 너무도 흔하고 많으면 우리가 그 감사함을 모른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지금보다 월급이 딱 2배만 더 있으면 더 행복할 것이라고 한단다. 200만 원을 버는 사람은 400만 원이면 행복할 듯하고, 400만 원을 버는 사람은 800만 원만 벌면 행복하다고 하고, 800만 원을 버는 사람은 1억 600만 원을 벌면 행복하다고 생각한단다. 과연 그럴까. 저자는 그런 행복은 일시적이라고 했다. 성공을 하고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직장을 얻고 멋진 결혼을 하는 것은 사실 일시적인 행복을 위한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일시적인 것에 있지 않다. 지속적인 행복은 자신에 대한 신뢰와 타인에 대한 공감과 존경, 사랑의 관계 속에 있다. 행복과 돈의 관계를 거시적이고 진솔하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 학생 중심 교육이라면 학생에게 필요한 것을 가르치는 것이 의무이고 양심적 태도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가르치지 않고 도구로서의 교육을 한다면 교육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이다. 영교육과정은 아이즈너(Eisner)가 『교육적 상상력(Educational Imagination)』에서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과정을 가리켜 영(null) 교육과정이라 부르면서 시작되었다. 현재는 ‘배울 만한 가치가 있지만 공식적 문서에 포함되지 않거나 포함되어 있어도 실제 수업이나 운영에서 다루어지지 않아 학생이 학습할 기회가 없는 교육 내용이나 경험’의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교육과정 속에 모든 내용을 담을 수는 없다. 어떤 것은 선택되고 또 다른 내용은 배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 교육과정의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대가 변하면서 학생들이 배워야 할 내용 중에서 정작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 빠지지 않았는지를 반성하고 점검해야 한다. 대부분의 학생은 사회에 나가서 노동이나 경제활동을 해서 수입이 있어야 먹고 살 수 있다. 당연히 회사의 근무에 대한 교육, 일의 정당성, 권리의 주체성, 진정한 행복과 경제 등을 교육에 넣어야 한다. 현대의 노동은 노예의 노동이 아니다. 현대 시민은 창조적이고 효율적이고 협력적이고 나라와 국가를 위한 태도와 방식을 고민하는 시민 근로자여야 한다. 글을 읽거나 쓰지 못하는 ‘문맹’은 불편할 뿐이지만, ‘금융문맹’은 생존을 위협한다는 말이 있다. 국가 경쟁력과 개인 행복을 위해서는 진정성 있는 청소년기 금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진로융합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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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자본주의 시대의 금융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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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무지개, 한자 속에 새겨진 색과 신화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무지개는 누구에게나 신비롭다. 비가 갠 뒤 하늘에 걸리는 곡선, 일곱 가지 색이 겹쳐진 장면을 우리는 자연의 선물로 받아들인다. 어린 시절 과학책에서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 순으로 줄 세워 배웠지만,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 이 현상은 단순한 스펙트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특히 동아시아, 그중에서도 고대 동이족 사회에서는 무지개의 색을 자연 관찰과 신화, 인간과 연결해 해석했고, 그 흔적이 한자 속에 남아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먼저 서양에서 무지개 색을 기억하는 방법을 떠올려보자. 영어권에서는 R.O.Y.G.B.I.V.라는 이니셜, 즉 Red(빨강), Orange(주황), Yellow(노랑), Green(초록), Blue(파랑), Indigo(남색), Violet(보라)를 외운다. 15세기 영국, 요크 공작 리처드의 장미 전쟁 패배와 연결해, 교육과 기억을 돕는 장치로 정착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세기도 코구세이(世も世も今や昔)'’란 이름으로 비슷한 체계를 가졌지만, 중국이나 고대 동이족 사회에는 이렇게 알파벳식 축약 표현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무지개의 색은 자연과 인간, 신화적 존재를 결합해 문자와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 홍색(빨강) - 용과 불타는 색의 상징 무지개의 첫 색, 빨강은 동이족에게 단순한 색상이 아니었다. 갑골문 속 기록을 보면 무지개는 ‘북쪽에서 내려와 강에서 물을 마시는 신비한 생물’로 묘사되었고, 종종 머리가 두 개인 용으로 그려졌다. 이 용은 암용과 수용으로 나뉘는데, 수용은 화려한 색, 특히 빨강을 띠었다. 초기 갑골문에서는 뱀과 공(큰 것)을 합쳐 거대한 용으로 표현했고, 이후 소전과 해서에 이르러 용이라는 상징이 정교하게 확립되었다.([그림 19] 참조) 한국과 일본에서는 이 빨강을 ‘불타는 붉은색’으로, 중국에서는 비단에 염색한 ‘홍자’로 표현했다. 관련 글자로는 적(赤), 홍(紅), 주(朱), 단(丹), 비(緋) 등이 있다. 단순히 눈으로 보는 색을 넘어, 인간과 신화적 상상, 그리고 제의적 의미까지 포괄한 색이었다. □ 주황색 - 등자와 황자 주황색은 자연과 인간의 생활을 연결한 색이다. 한국에서는 ‘불굴 주자’와 ‘황자’를 합쳐 주황색을 표현했다. 등자는 인도에서 유래해 한국에서 재배가 어려웠지만, 색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채택됐다. 황색은 갑골문에서 태반과 출산 장면을 묘사하면서 발전했다. 갓 태어난 아이의 피부색, 건강과 번식의 상징, 그리고 귀중함을 나타내는 황금과 황제, 옥토와 연결된다. 이렇게 주황과 황색은 단순한 색을 넘어 생명과 번영을 상징하는 색이 되었다.([그림 19] 참조) □ 초록색 - 풀과 우물, 생명의 색 초록은 무지개의 자연적 색상을 대표한다. 갑골문에서는 우물가의 싱싱한 풀 그림에서 비롯됐다. 당시 동이족은 녹색과 청색을 엄격히 구분하지 않았으며, 자연 속 푸른 풀과 물빛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소전과 해서에 이르러서는 명주실과 우물물 그림으로 발전해, 청록빛을 표현하는 문자가 만들어졌다. 즉 초록색은 자연의 생명력과 물의 신비를 동시에 담은 색이었다.([그림 19] 참조) □ 파란색 - 쪽람과 청자 파란색은 쪽람, 즉 쪽 염색과 연결된다. 소전 단계에서는 풀과 감 그림으로 발전해, 쪽을 물에 적셔 햇볕에 말린 청색 천을 상징했다. 우리가 잘 아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속담은 청자가 먼저 있었고, 쪽람은 소전 시대 이후 등장했다는 연구가 많다. 동이족의 색 개념에서 파랑은 염색 기술과 자연의 색이 결합해 문자가 된 사례다.([그림 19] 참조) □ 자주색 - 명주실과 색의 혼합 마지막으로 자주색은 명주실에 빨강과 파랑을 혼합해 얻은 색이다. 갑골문과 금문에서는 사람, 발, 명주실 그림이 합쳐져 자주빛을 나타내는 글자로 정착했다. 현대적 감각에서 자주색의 범위가 넓어 명확한 정의는 어렵지만, 혼합과 조합을 통한 색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그림 19] 참조) □ 무지개 색과 문화적 의미 이처럼 무지개는 단순히 하늘의 현상에 머무르지 않았다. 고대 동이족은 비 온 뒤 나타난 하늘을 통해 자연, 인간, 신화적 존재를 연결했다. 각 색은 생명, 풍요, 불, 물, 염색 기술 등 구체적 경험과 결합해 의미화되었다. 문자의 발전도 흥미롭다. 갑골문에서는 그림처럼 구체적 도상을 사용했고, 금문과 소전을 거치며 도상과 의미가 점차 추상화됐다. 해서에 이르러 현대 한자로 정착하면서도 초기 의미와 상징은 여전히 남아 있다. 또한 지역별로 색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다. 한국과 일본은 동이족 전통의 색상과 상징을 비교적 그대로 유지했지만, 중국에서는 문화적, 지역적 차이에 따라 일부 색상을 선택하거나 방식이 달라졌다. □ 결론 : 무지개, 자연과 인간의 기록 무지개의 색은 단순한 스펙트럼이 아니었다. 고대 동이족에게는 인간, 자연, 신화가 결합된 문화적 상징이었다. 그 의미는 문자 속에 새겨졌고, 시대를 거치며 한자로 정착했다. 오늘날 우리가 무지개를 볼 때 느끼는 경이로움 속에는, 수천 년 전 사람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느끼고 기록한 경험이 겹겹이 쌓여 있다. R.O.Y.G.B.I.V.라는 영어 축약법은 현대인의 기억 장치일 뿐, 동이족은 용, 풀, 물, 명주실, 신화적 존재를 통해 색을 이해했고, 문자로 남겼다. 한 글자, 한 색 속에는 자연 관찰, 인간 생활, 신화, 사회적 의미가 결합되어 있다. 무지개를 바라볼 때, 우리는 그 긴 시간과 문화의 흐름을 함께 보는 셈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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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무지개, 한자 속에 새겨진 색과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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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갯골의 함성
-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갯골의 함성 -제107주년 삼일절 기념 헌시- 소래나루 갈매기 떼 낮게 선회하고 소금기 마른 갯골 붉은 퉁퉁마디 사이 그을린 얼굴 새끼줄 여민 무명 바지 품속 깊이 숨겨 온 그날의 태극기 하나둘 들불로 번질 때 “대한 독립 만세” 포구는 시린 함성으로 흰 파도처럼 일렁였다 색바랜 필름 속 낮은 바람으로 맴도는 그날의 파열음 내 심장에 아직 타오른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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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갯골의 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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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3.1절 그날의 함성을 기억하며"
- [교육연합신문=이윤서 학생기자] “우리 조선은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하노라”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 엄숙한 낭독이 울려 퍼졌다. 독립선언서를 읽기로 한 민족대표들은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자진 체포되었다.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서였지만 기다리던 학생 중 하나가 앞으로 나와 독립선언서를 대신 낭독했다. 그렇게 3·1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독립운동의 불길은 다른 지역으로도 퍼져 나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4월 1일에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는 유관순 열사 및 다른 주도자들에 의해 거사가 이루어졌다. 그 전날 거사를 위한 봉화를 올렸고 함께 만세를 부르기로 약속한 사람들은 봉화를 따라 올렸다. 수천 명이 참여해 규모가 엄쳤났던 이 만세운동에서는 희생자들이 많이 나왔다. 집계에 따르면 현장에서는 19명이 사망했고 30명 정도가 중상을 입었다. 유관순 열사의 부모도 이때 순국했다고 한다. 유관순 열사도 곧 검거되어 18살의 나이로 순국했다. 유관순 열사와 함께 만세운동을 계획했던 사람들도 감옥 안에서 차례차례 순국했다. 우리 대한민국은 지금 그냥 세워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까지 저버린 용기와 대담함이 이뤄낸 값진 것이다. 2026년 삼일절을 맞이하여 희망에 차 독립과 만세를 외친 숭고한 영혼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에 대한 애착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대한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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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3.1절 그날의 함성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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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새로운 학기, 내 인생의 '참주인'으로 당당히 서는 법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새로운 학기를 앞둔 전국의 초중고는 설렘과 긴장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새 학기의 시간표를 받아 든(들) 학생들의 마음속에는 아마도 '이번 학기는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되는데'라는 조급함이 함께 자리 잡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적과 진학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몸을 싣기 전, 여러분이 반드시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나는 지금 내 인생의 '참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남이 짜놓은 각본 위의 연기자로 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글에서는 우리 청소년들이 자기 인생의 참주인으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동서양의 지혜의 보고(寶庫)인 고전(古典)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당나라의 고승 임제 선사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는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그곳이 모두 진리(진실)가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흔히 내가 원하는 대학에 가거나, 어른이 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을 때만 내 인생의 주인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임제 선사가 말하는 '주인'은 환경의 노예가 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 첫째, 타인과의 비교의 감옥에서 벗어나기다. 예컨대, 친구가 나보다 수학 성적이 높다고 해서 열등감을 느끼는 것은 내 기분을 '친구의 성적'에 맡겨버린 상태라 할 수 있다. 이때 자신은 주인이 아니라 환경에 휘둘리는 '객(客)'일 뿐이다. 둘째, 현재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공부를 하는 이유가 "내가 나의 성장을 위해 이 시간을 선택했다"라고 마음먹는 순간, 지루한 학습 공간은 나를 위한 단련의 장으로 변할 것이다. 서양 철학사에서 인간의 주체성을 가장 강렬하게 외친 망치를 든 철학자라 불리는 니체는 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 정신의 변화 단계를 세 단계로 설명한다. 첫째는 낙타이다. 이는 타인이 지운 짐을 묵묵히 지고 "해야 한다"는 명령에 복종하는 단계다. 둘째는 사자이다. 이는 기존의 가치에 "아니오"라고 외치며 자유를 쟁취하려는 투쟁의 단계다. 셋째 단계는 바로 '어린아이'이다. 이는 "어린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시작이자 하나의 놀이다“에 근거하고 있다. 즉, 어린아이는 자기 일에 몰입해 주변을 잊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는 진정한 자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참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낙타처럼 억지로 짐을 지는 것도, 사자처럼 매사에 반항만 하는 것도 아니다. 어린아이가 놀이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듯, 자신의 삶을 하나의 '놀이'이자 '창조'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바로 자기 삶의 주인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참주인'의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여기에 그 세 가지 지침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나만의 언어'를 소유하라. 남들이 좋다는 학과, 남들이 입는 옷, 남들이 쓰는 유행어에만 매몰되지 않길 바란다. 주권(主權)은 내 생각을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 언어의 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둘째, '작은 승리'를 매일 목표로 하길 바란다. '오늘 단어 10개 외우기', '쉬는 시간 5분 명상하기'처럼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완수할 수 있는 작은 성취들이 모여 스스로의 삶은 통제 가능하다는 강력한 주인 의식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셋째, 실패할 권리를 당당히 행사하라. 결과가 나쁘더라도 "이건 내가 선택한 과정에서 얻은 데이터야"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는 이미 주인이라 할 수 있다. 청소년 제위여, 학교에서 스스로를 '입시 기계'나 '평균 이하의 존재'로 정의하지 않기를 바란다. 여러분은 철학자 칸트가 말한 '자율적 인간'이며, 장자가 말한 '소요유(逍遙遊,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노니는 경지)'의 잠재력을 가진 귀중한 존재이다. 새 학기, 새로운 마음과 자세로 교문을 들어설 때 마음속으로 이 한 문장을 새겨보길 바란다. "이 시간의 주인은 나다. 나는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오늘을 선택했다"고 말이다. 여러분이 당당한 '참주인'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길 진심으로 응원하는 바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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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새로운 학기, 내 인생의 '참주인'으로 당당히 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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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글자 속에 새겨진 계절의 기억(春夏秋冬)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춘하추동”이라 부른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나타내는 이 네 글자는 마치 처음부터 추상적인 시간의 구분을 뜻하는 듯하다. 그러나 갑골문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훨씬 생생하다. 계절을 나타내는 글자들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고대인이 몸으로 느끼고 눈으로 관찰한 자연과 생명의 순간들이 그림처럼 새겨진 흔적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춘풍(春風), 하계(夏季), 만추(晩秋), 동면(冬眠) 같은 단어를 쓰며 계절을 언어로 호명한다. 하지만 이 네 글자가 어떻게 지금의 형태로 정착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인류가 자연과 맺어온 관계의 깊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 봄 - 새싹이 움트는 순간, 春 봄은 언제나 시작의 계절이다. 갑골문 속 春은 해(日)와 땅에서 막 솟아나는 새싹을 그린 모습이었다. 마치 한 점 씨앗이 움트며 땅 위로 고개를 내미는 장면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하다.([그림 18] ‘春’ 참조) 시간이 흘러 금문에서는 풀(艹의 전신)과 뿌리내림(屯의 초기형)이 결합되고, 거기에 해(日)가 더해졌다. 결국 해서체에 이르러서는 艹(풀) + 屯(싹 틔움) + 日의 구조로 정리되어 오늘의 春자가 되었다. 즉, 봄이라는 계절은 추상적인 “시간 단위”가 아니라 햇살을 받아 씨앗이 깨어나는 생명의 관찰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입춘(立春), 춘설(春雪) 같은 말 속에도 늘 생명과 새로움의 이미지가 배어 있다. □ 여름 - 더위에 지친 몸, 夏 여름은 뜨겁다. 갑골문 속 夏는 해 아래서 팔다리가 축 늘어진 사람의 형상을 담았다. 태양의 열기에 머리에서는 열기가 솟고, 사지(四肢)는 힘없이 처져 있다. 글자 하나에 “더위에 지친 몸”이라는 생생한 체험이 담겨 있는 셈이다. 금문으로 가면 이 사람 형상 위에 해(日)가 얹혀진다. “뜨거운 햇볕 아래”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소전 단계에서는 머리 부분이 頁(혈)의 전신으로 정리되고, 해서체에 이르러서는 팔이 생략되고 다리만 夂 모양으로 남아 지금의 夏자가 완성되었다.([그림 18] ‘夏’ 참조) 우리가 하복(夏服)을 입고, 하계(夏季)를 보내며, 여름방학을 즐긴다고 말할 때, 그 속에는 사실 고대인이 더위에 늘어진 몸을 문자로 남겨둔 기억이 숨어 있는 것이다. □ 가을 - 귀뚜라미와 곡식의 계절, 秋 가을, 한자로 秋를 쓰면 흔히 벼(禾)와 불(火)의 결합이라고 배운다. 볕에 벼가 익는 계절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갑골문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초기의 秋자는 귀뚜라미를 옆으로 눕혀 그린 상형이었다. 다리와 더듬이가 표현된 이 작은 곤충은 울음소리가 “추추”로 들려 가을을 알리는 존재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소리로 계절의 변화를 느꼈고, 글자에도 담았다.([그림 18] 秋 참조) 이후 금문 단계에서 귀뚜라미 옆에 벼(禾)와 불(火)이 더해졌다. “볕에 곡식이 익는다”는 농경적 의미가 추가된 것이다. 소전과 해서에 이르러서는 곤충 도상이 생략되고 禾와 火만 남아 오늘날의 ‘秋’ 자가 되었다. 그래서 추호(秋毫, 털끝처럼 미세함), 만추(晩秋), 추상(秋霜) 같은 말 속에는 단순히 곡식만이 아니라, 곤충 소리에 귀 기울이던 고대인의 감각이 함께 녹아 있다. □ 겨울 - 차가움과 탯줄, 冬 겨울은 차갑고 고요하다. 그런데 갑골문 속 冬은 의외로 갓난아이의 탯줄을 닮은 형상에서 출발했다. 둥글게 휘어진 선이 마치 배꼽과 탯줄을 연결한 듯하다. 왜 겨울에 탯줄일까? 갓 태어난 아기가 처음으로 느끼는 감각은 바로 “춥다”는 것이었다. 고대인은 이 신체적 체험을 겨울이라는 계절에 빗댄 것이다. 금문에서는 그 안에 해(日)가 들어가 ‘계절의 한 시점’을 강조했고, 소전에서는 해 대신 얼음을 뜻하는 부호(冫의 전신)가 자리 잡았다. 해서에서는 위쪽의 움직임 표지 夂와 좌측의 冫이 결합해 오늘날의 冬이 되었다.([그림 18] 冬 참조) 그래서 동계(冬季), 동면(冬眠), 월동(越冬) 같은 단어에는 단순히 추위 이상의 삶과 탄생의 기억이 겹겹이 깔려 있다. □ 문자에 새겨진 시간의 철학 춘하추동, 이 네 글자는 갑골문에서 출발해 금문, 소전, 해서로 이어지며 점점 간결해졌다. 처음에는 그림 같은 도상(icon)이었지만, 후대로 갈수록 부수와 구조가 정제되며 체계적인 문자로 자리 잡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이 단순히 필기 효율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연의 관찰(햇살, 초목, 곤충, 추위)과 인간의 체험(더위에 지친 몸, 아기의 탯줄)이 문자로 응축되었고, 그 의미가 세대를 거쳐 농경적·사회적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춘추전국(春秋戰國)’이라든가 ‘하계 올림픽(夏季)’, ‘추수감사절(秋收感謝節)’, ‘동지(冬至)’처럼 당연하게 쓰지만, 그 뿌리에는 고대인의 감각적 경험과 생명에 대한 통찰이 배어 있다. □ 오늘의 독자에게 이제 “춘하추동”이라는 말을 다시 떠올려보자. 그것은 단순히 사계절을 나열한 말이 아니다. 씨앗이 움트는 새싹, 더위에 지친 몸, 귀뚜라미 소리, 아기의 탯줄 같은 구체적 체험이 문자로 응고된 언어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글자 하나하나는 사실 자연과 인간이 나눈 오래된 대화의 기록이다. 그래서 한자를 읽는다는 것은 단지 뜻을 아는 일이 아니라, 그 속에 새겨진 수천 년 전 사람들의 감각과 세계관을 엿보는 일이기도 하다. 춘하추동은 시간의 이름이자, 인간과 자연이 맺어온 관계의 압축 파일이다. 그것을 풀어내는 순간, 우리는 언어를 넘어 삶과 문화의 깊은 층위에 닿게 된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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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글자 속에 새겨진 계절의 기억(春夏秋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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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Celebrating Seollal at the Korean Folk Village
- [교육연합신문=이채원 학생기자] Seollal in Korea is a time of remembrance and family. It is celebrated by visiting your family, paying respects to your ancestors, and going back to the original Korean traditions. One place that is an amazing location to go to during this holiday is the Korean Folk Village(한국민속촌). Located in Yongin, not too far from Seoul, the Korean Folk Village has everything, from authentic restorations of real houses from the Joseon Dynasty village from each province to traditional performances to ghost houses. Spread across the map are many different houses from different provinces and social class areas. All 270 of them have been relocated and restored to provide visitors with an authentic experience. These houses contain numerous small details that reveal aspects of the homeowners’ daily lives, such as the tools, decorations, and even the house's structure itself. Some notable locations include the Landowner’s House in the Southern Region, the Provincial Governor’s Office, the Nobleman’s Mansion in the Central Region, and the Kumryonsa Buddhist Temple—all located in the Folk Village. With many houses to walk through and sights to see, the Korean Folk Village presents a perfect opportunity to learn about Korean traditional culture in an interactive way. Other than the Folk Village, there are also interactive elements within the location. The Korean Folk Village includes the “four seasons festival”, with festivals 365 days a year. For example, “Welcome to Joseon” runs from March to June, “A Flash of Water in the Dry Sky” from July to August, “The Ghost World” from September to November, and “A Christmas with the King” from November to March. There are also yearly performances with traditional arts, from musical instruments to farmers' music and dance to parades. The location also has a Market Village and a Market Place with food and souvenirs. The Amusement Village is a fun place to go for families to rest after walking around the Folk Village, where Viking ships, horror house experiences, and even slow sled fields (only available in the winter) await. As a place rich with heritage and authentic traditional experiences, the Korean Folk Village stands as one of the best places to go during Seollal for anyone of all ages. Whether it’s strolling around through the houses or engaging in traditional Korean festivities, the museum reanimates the past, allowing visitors to step into Korea’s history and experience its customs in a lively and immersive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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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Celebrating Seollal at the Korean Folk Vill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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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독서국가’의 선언, 그러나 사서교사는 어디에 있는가?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최근 국회 교육위원회가 ‘독서국가’를 선포했다는 소식은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 매우 반가운 사실이다. 문해력 저하, 사고력 빈곤, 학습격차 심화라는 위기의식 속에서 독서를 국가 교육의 핵심 전략으로 재정립하겠다는 선언은 분명 시대에 부응한 요청이다. 그러나 선언은 시작일 뿐이다. 정책은 사람을 통해 구현된다. 그 중심에 있어야 할 사서교사의 전국 배치율이 16%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현실은 ‘독서국가’가 아직 구호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서교사는 단순히 책을 정리하고 또 관리하는 인력이 아니다. 교과 수업과 연계한 정보활용교육, 독서교육,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교원이다. 핀란드나 독일 등 독서 선진국에서는 학교 도서관과 사서교사가 교육과정의 한 축을 담당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도서관은 있어도 사람은 없다”는 말이 교육 현장의 자조처럼 회자되고 있다. 문제의 출발점은 우리의 사서교사 양성과정에 있다. 현재 사서교사는 교원자격증을 취득해야 하지만, 양성과정은 극히 제한적이고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 일부 대학에서만 사서교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으며, 매년 배출 인원도 매우 적다. 그 결과 임용시험 자체가 거의 열리지 않거나, 열리더라도 극소수만 선발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예비 사서교사들은 수년간 임용을 준비하다 결국 진로를 포기하거나, 기간제·비정규직 형태로 현장을 떠돌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양성과정의 질적 수준이다. 많은 과정이 여전히 ‘도서관학’ 중심에 머물러 있어, 실제 학교 현장에서 요구되는 교육역량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한 중학교에서 사서교사가 교과교사와 협력해 프로젝트 수업을 설계하려 했지만, 협력수업 경험이나 교육과정 이해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례는 낯설지 않다. 이는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양성과정에서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충분히 길러주지 못한 구조의 문제다. 현장 사례는 사서교사의 효과를 분명히 증명한다. 사서교사가 상주하는 한 초등학교에서는 매일 아침 ‘10분 독서’가 형식이 아닌 생활이 되었다. 교과 연계 독서수업을 통해 아이들은 책을 ‘과제’가 아니라 ‘생각의 도구’로 인식하게 되었고, 그 결과 글쓰기와 토론 능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반면 사서교사가 없는 학교에서는 도서관이 자물쇠로 잠긴 채 창고처럼 방치되거나, 단순 대출 공간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소속 교사 또한 학생 앞에ㅓ 책 한 권을 선도해 읽는 학교 문화를 이끌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독서 격차는 곧 교육 격차로 이어진다. 이제 개선이 필요하다. 첫째, 사서교사 양성과정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국립대와 교육대학을 중심으로 사서교사 전공 트랙을 신설하고, 안정적인 임용 규모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둘째, 양성과정의 질적 전환이 필요하다. 교육과정 이해, 수업 설계, 교과 협력, 디지털·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핵심 역량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셋째, 현직 교사를 대상으로 한 전환·연수 과정도 적극 도입해 학교도서관 전문인력을 단계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책을 읽지 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이 말은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을 패러디한 것이다. 한때 일본은 책읽는 민족으로 널리 알려졌었다. 그 결과는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 27명을 배출한 선진국으로 변모했다. “내 인생의 8할은 어려서 마을 도서관에서 이루어졌다”는 빌 게이츠의 말은 이미 널리 회자된 바가 있다. 역사상 물줄기를 크게 바꾼 세계적 위인들이 한때 책 읽기에 몰입한 ‘독서광’이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서사로 전해지고 있다. ‘독서국가’는 책의 양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책을 통해 질문하고, 연결하고, 사유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사서교사는 독서국가의 장식물이 아니라 엔진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선언이 아니라, 그 엔진을 키우겠다는 국가의 실질적인 결단이다. 사서교사 양성이나 임용 없는 독서국가는 모래 위에 지은 집 즉, 사상누각(沙上樓閣)과 결코 다르지 않음을 다시금 확고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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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독서국가’의 선언, 그러나 사서교사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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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리더스] 한효섭 부산한얼고 교장 퇴임…“수고는 무슨 수고인가”
-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부산 한얼고등학교 한효섭 교장의 퇴임은 단순한 임기 만료가 아니다. 전국의 교장들에게 던지는 하나의 질문이자, 교육 리더십에 대한 깊은 성찰의 메시지다. 올해 80세로 최고령 학교장에 속하는 한 교장은 4년의 임기를 마치며 연임 요청을 받았지만, 정년이 남아 있는 후배에게 학교 경영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며 스스로 물러났다. 더 머무를 수 있었지만, 그는 떠날 때를 선택했다. 그의 선택은 “언제까지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언제 내려놓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답이었다. 재임 기간 동안 그는 휴일을 가리지 않고 학교를 지켰다. 교육 환경 개선, 재정 안정화, 조직의 화합을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성과를 내세우기보다 기반을 다지는 데 힘을 쏟았고, 학교를 ‘내 업적의 무대’가 아니라 ‘공동체의 터전’으로 여겼다. 퇴임 자리에서 그는 말했다. “학교는 한 사람의 힘으로 운영되는 곳이 아니다. 나는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월급 받고 일했는데 무슨 수고인가.” 이 말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다. 공직의 본질에 대한 선언이다. 직무는 희생이 아니라 책임이며, 자리는 특권이 아니라 맡겨진 역할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오늘날 교육 현장은 급변하는 정책 환경과 학령인구 감소, 학교 공동체 갈등 등 복합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런 시대일수록 리더의 태도는 더욱 중요하다. 성과를 과시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준비시키는 리더십. 권한을 행사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책임을 완수하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한효섭 교장의 퇴임은 전국의 교장들에게 묻는다. 자리는 얼마나 오래 지키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지키다 떠나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학교는 나의 성취를 위한 공간인가, 아니면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인가. 그는 화려한 수식 대신 담백한 한 문장으로 교육자의 품격을 남겼다. “수고는 무슨 수고인가.” 그 울림은 특정 학교를 넘어 전국 교장들에게 향하고 있다. 그리고 교육 리더십의 본질을 다시 묻고 있다. 떠나는 순간까지 품격을 잃지 않은 그의 선택은 오래도록 교육 현장에 남을 하나의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한효섭 교장 ◇ 학교법인 한얼교육재단 설립자(이사장) ◇ 한얼고등학교 교장 ◇ 한국평생교육총연합회 회장 ◇ 한국노인교육연합회 회장 ◇ 대한민국헌정회 이사 ◇ 부산동성고등학교 졸업 ◇ 부산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중등교육행정 석사 ◇ 컬럼비아퍼시픽대학교대학원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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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리더스] 한효섭 부산한얼고 교장 퇴임…“수고는 무슨 수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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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성공을 가르친 교육, 침묵을 배운 사회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2019년 미국 금융가이자 사교계 인사였던 제프리 엡스타인(Jeffrey Epstein)이 미성년자 성착취과 인신매매 혐의로 체포된 뒤 구치소에서 사망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사건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엡스타인은 정계·재계·학계·문화계 가릴 것 없이 돈과 권력, 명성을 가진 자는 누구나 자신의 섬으로 초대했다. 그 섬은 나중에 미성년 피해 여성들이 최소 1,000여 명 정도로 추정되는 장소였다. 초대받은 사람 중에 성착취를 했다고 인정한 사람은 없다. 이들의 성범죄를 유추할 수 있는 근거는 엡스타인 파일 속에 담긴 수많은 이메일과 사진뿐이다. 엡스타인 사건의 핵심은 범죄의 잔혹성만이 아니다. 왜 그렇게 오랫동안 단죄되지 않았는가에 있다. 많은 사회 유명 인사들이 그와 교류했지만 문제 제기는 거의 없었다. 권력자들의 네트워크는 서로를 보호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엡스타인은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에 입사하기 전에는 사립학교 교사였다. ‘엡스타인 사건’ 연루 주요 인사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빌 게이츠 MS 창업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놈 촘스키 교수, 영국 앤드루 전 왕자, 뵈르게 브렌데 세계경제포럼 총재 등이다. 그 명성이 충격적이다. 제프리 엡스타인 사건은 한 범죄자의 타락으로만 읽기엔 너무 많은 것을 드러냈다. 그것은 권력, 돈, 명성이라는 이름의 ‘성공’이 어떻게 도덕적 감각을 마비시키는지 보여준 사건이다. 한국 교육은 오랫동안 ‘어디에 들어갔는가’를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했다. 명문대, 대기업, 고소득 직업. 어릴 때부터 성취와 경쟁의 언어로 살아왔다. 성공의 기준이 단선적이다. 그럴수록 성공을 둘러싼 윤리적 질문은 주변으로 밀려났다. 엡스타인 사건에서 보듯이 사회적 지위는 때로 면죄부처럼 작동했고 주변의 엘리트들은 침묵을 선택했다. 능력과 네트워크가 도덕적 판단보다 앞설 때 사회 정의는 쉽게 무너졌다. 한국 사회도 예외가 아닐 수 있다. 라캉의 말을 보면 인간은 단순히 욕구를 충족하는 존재가 아니라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다. 권력과 부, 명성과 네트워크는 곧 상징계에서의 승인이다. 엡스타인은 그 상징적 권력을 매개로 욕망의 중심에 서 있었고 많은 이들은 그 주변에서 침묵을 선택했다. 우리는 무엇을 성공이라 가르쳐왔는가. 명문대, 자산, 인맥을 향한 경쟁 속에서 ‘타자의 욕망’을 내면화하도록 교육한 것은 아닌가. 우리는 공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자로서 윤리적 주체 대신 상징적 지위를 좇는 주체로 학생을 길러낸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라캉에게 욕망은 제거할 대상이 아니라 자각하고 책임져야 할 구조다. 교육은 바로 그 책임을 가르치는 장이어야 한다. 엡스타인 사건은 욕망을 통제하지 못한 개인의 타락이 아니라 욕망을 성찰하지 못한 사회의 실패다. 교육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무엇을 가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주체로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질문하게 하는 것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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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성공을 가르친 교육, 침묵을 배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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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와우디족(Wow-di 族)
-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와우디족(Wow-di 族) 손끝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세대들. 웃음도, 분노도 쇼츠처럼 스쳐간다. 느림은 지루하고 침묵은 불편해, 스크롤 속에서 하루를 소비한다. 감정은 이모티콘으로, 대화는 댓글 몇 줄이면 족하다. 밥을 고르고 영화를 클릭하며 우리는 '와우'에 중독된 삶을 산다. 손안의 세상ㅡ 화면은 눈부시지만, 마음은 에덴강 너머 어스름 속에 잠긴다. ※와우디족(Wow-di 族): Wow와 Digital 이 합성된 신조어.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디지털 소비에 심취한 세대를 성찰.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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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와우디족(Wow-di 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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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문자에 새겨진 나침반(東西南北)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는 ‘동서남북’을 너무나 당연하게 쓴다. 동쪽은 해가 뜨는 곳, 서쪽은 해가 지는 곳, 남쪽은 따뜻한 곳, 북쪽은 차가운 곳. 그러나 이 네 글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곰곰이 물어본 적이 있는가. 방향이라는 추상 개념이 문자로 기록된 것은 단순한 발명이 아니라, 고대인의 삶과 도구, 그리고 눈앞의 자연을 관찰한 결과였다. 이에 갑골문 해석은 흥미로운 시각을 던져준다. 전통적 해석은 ‘동(東)’을 나무와 태양으로, ‘서(西)’를 새의 보금자리로 풀이하지만, 이 강연은 생활사적 흔적에 주목한다. 즉, 방향 문자는 일상 도구와 행위에서 비롯되었고, 후대에 의미가 정제되어 오늘날의 동서남북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 동(東) - 자루를 메고 떠난 사냥꾼 갑골문 속 ‘東’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나무(木)와 해(日)를 합친 모양이 아니다. 오히려 굵은 막대와 잔가지를 엮고 짐승 가죽으로 씌운 자루의 그림과 닮았다.([그림 17] ‘東’ 참조) 고대인에게 자루는 삶의 필수품이었다. 사냥으로 얻은 고기, 채집한 열매를 담아 집으로 가져오는 도구였다. 흥미로운 점은, 그 자루가 해 뜨는 쪽과 연결되었다는 사실이다. 사냥과 채집은 이른 아침, 동쪽에서 떠올리는 태양과 함께 시작되었다. 자연스레 ‘자루’라는 그림은 곧 해 뜨는 방향, 동쪽을 뜻하게 되었다. 그 후 문자 변천의 과정을 거치면서, 갑골문의 자루 그림은 금문과 소전에서 도식화되었고, 해서에 이르러 오늘날 우리가 쓰는 ‘東’자가 되었다. 이처럼 문자 속 자루 하나가 인류의 동쪽 인식의 뿌리가 되었으니, 동방을 ‘해 뜨는 쪽’으로 이해한 관습이 단순한 천문학적 관찰을 넘어 생활 도구와도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 서(西) - 물항아리에 깃든 석양 ‘西’자는 흔히 둥근 새집 속 새가 날아드는 모습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갑걸문은 다른 길을 제시한다. 홍산문화의 채색 토기, 즉 물 항아리 그림과 ‘西’자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는 것이다.([그림 17] ‘西’ 참조) 고대 농경사회에서 하루의 마지막은 물과 함께 정리되었다. 사냥에서 돌아와, 밭일을 마치고, 저녁을 준비하는 시각. 그때 물항아리가 중요한 도구로 등장했다. 해가 지는 서쪽은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풍경과 맞닿아 있었다. 그래서 ‘서쪽(西)’은 단순한 방위가 아니라, 하루가 저무는 시간과 행위를 상징했다. 이후 ‘서양, 서구’ 같은 의미로 확장되었지만, 그 기원에는 물항아리를 들고 석양을 바라보던 고대인의 일상이 스며 있다. □ 남(南) - 악기와 따뜻한 바람 ‘남쪽’은 의외로 음악과 관련이 깊다. 은허에서 출토된 고대 악기 모양의 도상이 곧 ‘南’의 초기 형태라는 해석이다.([그림 17] ‘南’ 참조) 더욱 흥미로운 것은 발음이다. 고대 중국어에서 ‘南’[남]과 ‘暖(따뜻하다)’[난]의 발음이 비슷했다. 이 때문에 악기의 이름이 따뜻한 방향, 곧 남쪽을 가리키는 말로 차용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남쪽을 따뜻한 지역으로 인식한다. 계절풍의 영향으로 북반구에서 남쪽은 햇볕이 강하고 기후가 온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갑골문 속 남자는 단순히 기후적 특징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소리를 내던 악기의 이미지와 언어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문자에 담긴 남쪽은 따뜻한 바람처럼, 음악처럼 사람의 감각을 자극하는 방향이었다. □ 북(北) - 그림자의 방향 네 방향 중 가장 상징적인 것은 ‘北’이다. 갑골문 속 ‘北’은 등진 두 사람처럼 보인다. 왜 사람 둘이 서로 등을 지고 있을까?([그림 17] ‘北’ 참조) 설명은 이렇다. 고대인은 늘 남쪽을 바라보고 제사를 지냈다. 그렇게 남쪽을 마주할 때, 사람의 그림자는 북쪽으로 길게 드리워졌다. 곧, 그림자가 지는 방향이 북쪽이었다. 그러나 그림자는 문자의 형태로 옮기기 어려웠다. 그래서 사람 둘이 서로 등을 지고 선 형상으로 단순화한 것이 오늘날의 ‘北’자가 되었다. 북쪽은 차갑고 음울한 방향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갑골문 속 북은 단순한 추상이 아니라, 태양과 사람, 그림자의 구체적 경험에서 비롯된 상징이었다. □ 문자 변천과 해석의 여지 동서남북 네 글자는 갑골문에서 출발해, 금문과 소전, 해서로 이어지면서 오늘날의 모습으로 굳어졌다. 처음에는 그림에 가까운 표상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점 단순화·도식화되었다. 강연자는 이 과정에서 주류 문자학의 해석, 특히 ‘동=나무와 태양’ 같은 전통 설명에 비판적 시각을 보였다. 대신 고고학 유물, 생활 도구, 풍습을 바탕으로 새 해석을 제안했다. 물론 이는 추정과 상상력을 포함한다. 따라서 문자학·고고학의 더 많은 증거와 교차 검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우리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준다. 문자는 삶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동서남북은 단순한 나침반의 방위가 아니다. 그것은 고대인이 들었던 자루, 썼던 항아리, 울려 퍼지던 악기, 그리고 태양 아래 드리운 그림자의 기억이다. 우리는 그 기억을 문자라는 껍질 속에 간직한 채 오늘도 “동쪽 해가 떴다” “서쪽 하늘이 붉다” 말하고 있다. 이제 동서남북을 떠올릴 때, 단지 지리적 방향만이 아니라 그 속에 새겨진 고대인의 삶과 상징을 함께 느껴보면 어떨까. 문자가 곧 문화의 기록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쓰는 한 글자 한 글자가 새로운 풍경처럼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한자는 풍경이요, 스냅샷이요, 압축 파일인 것이다. □ 한눈에 보는 동서남북 문자 기원 ㅁ동(東) : 자루 그림 → 해 뜨는 쪽(사냥·채집의 시작) ㅁ서(西) : 물항아리 그림 → 하루 끝, 해 지는 쪽 ㅁ남(南) : 악기 모양 → 따뜻한 발음과 연결 → 남쪽 ㅁ북(北) : 사람+그림자 → 그림자가 향하는 쪽 → 북쪽 방향은 언제나 길을 찾게 해준다. 그러나 문자가 말하는 방향은 단순한 나침반의 좌표가 아니다. 그것은 고대인의 눈과 손, 그리고 삶의 궤적이 새겨진 문화적 나침반이다. 오늘 우리가 동서남북을 부르는 순간, 사실은 수천 년 전의 사냥꾼, 농부, 음악가, 제사장의 세계와 조용히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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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문자에 새겨진 나침반(東西南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