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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학령인구 감소가 교육재정 축소의 핑계 돼선 안 돼
[교육연합신문=사설] 정부가 추진 중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부금) 산식 개편 및 재정 축소 움직임은 즉시 제고되어야 한다. 학생 수가 줄어든다고 해서 교육 예산부터 깎겠다는 식의 단편적 접근은 대한민국 미래 교육의 뿌리를 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다. 교육 현장은 단순히 ‘학생 수’라는 숫자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학생 수가 줄더라도 인건비, 학교 시설 유지·보수비, 냉난방비 등 고정 운영비는 그대로 유지된다. 나아가 디지털 AI 교육 전환, 돌봄 및 방과 후 학교 확대, 특수·다문화 교육 등 맞춤형 교육 수요는 오히려 급증하고 있다. 인구 감소 시대일수록 한 사람의 인재를 제대로 키워내기 위한 1인당 교육 투자 비용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재정을 감축할 경우 소규모 학교 통폐합이 가속화되어 지역 교육 격차와 지방 소멸을 부추기는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다. 재정 당국과 개편 찬성론자들의 지적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학령인구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내국세의 일정 비율(20.79%)을 무조건 교육청에 배분하는 현재의 연동 방식은 국가 전체 재정 운용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이다. 시·도교육청에 과도한 기금 적립금이 쌓이는 현상을 방지하고, 대학·평생교육이나 복지 등 재정 수요가 더 시급한 분야로 예산을 유연하게 재배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세수 변동에 따른 일시적 여유 재정을 이유로 교부금 제도 자체를 대폭 축소하려는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격이다. 교육 예산의 특성상 단기적인 경기 변동이나 일시적인 학령인구 그래프에 따라 갈팡질팡해서는 장기적인 교육 정책을 펼칠 수 없다. 재정 효율화가 필요하다면 초과 재원을 ‘미래교육기금’ 등으로 적립하여 기후변화 대응, 노후 학교 개선, 미래형 교육 인프라 구축 등에 안정적으로 쓰이도록 내실을 다지는 방향이어야지, 본래 목적인 초·중등 교육재정의 판을 흔드는 방식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교육재정은 소비성 지출이 아니라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미래 투자다.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지금이야말로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고 질 높은 맞춤형 교육을 실현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정부와 국회는 단순히 예산을 깎는 개편이 아닌,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의 질적 제고와 지방교육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지혜로운 재정 구조 개혁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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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연이은 교권보호 대책, 이제는 ‘실효성’ 있는 법제화로 답하라
[교육연합신문=사설] 최근 정치권과 교육당국을 중심으로 ‘교육활동보호국’이나 ‘교권보호호국’ 신설 등 교권 회복을 위한 대책들이 잇따라 제안되고 있다. 아동학대 무고와 악성 민원으로 황폐해진 교단을 살리겠다는 적극적인 움직임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 학교에 필요한 것은 선언적인 기구 신설이나 담당과 수준의 미봉책이 아니다. 무너진 교권을 진정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장 교사들이 체감할 수 있는 강제력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정부와 국회가 법과 제도의 틀을 만드는 데 강력히 나서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그동안 교육부가 발표한 대책들이 현장에서 외면받았던 이유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지침이나 선언에 그쳤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의 설문조사에서 교육부 방안에 실효성이 있다고 답한 교사가 단 12%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교사들이 원하는 것은 초인적인 영웅이 아니라, 아무런 두려움 없이 소신껏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울타리다. 확실한 법적 보호막 없이는 그 어떤 화려한 정책도 결국 말 잔치에 불과하다. 물론 일각에서는 교권 보호를 법제화하고 학교 내 법적 대응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오히려 학교 현장의 사법화를 부추기고, 학생·학부모와의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교육의 영역을 지나치게 법의 잣대로 재단하면 교실 내의 신뢰 관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은 현재 교실이 처한 참혹한 현실을 간과한 안이한 인식이다. 이미 교실은 무분별한 정서학대 고소와 상습적인 악성 민원으로 인해 교육 자체가 불가능한 ‘치외법권’ 지대로 변질되었다. 불이 났는데 신뢰와 대화만을 외치며 창문만 걸어 잠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컨대 교총이 요구하는 대로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제도의 한계를 보완할 학교전담경찰관(SPO)을 확대 배치하는 등 강력한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갈등 유발이 아니라, 오히려 무분별한 고소·고발로부터 교육공동체 전체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최소한의 방어권조차 없는 상태에서는 교육적 신뢰도, 소통도 존재할 수 없다. 정부와 교육당국은 더 이상 소극적인 자세로 현장의 비극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미봉책으로 일관하는 구태에서 벗어나 범정부적, 범국회적 협력을 통해 교권 보호를 위한 명확한 법적 테두리를 완성해야 한다. 교사의 교권이 법적으로 단단하게 보장받을 때 비로소 교실이 바로 서고, 학생들의 학습권 또한 온전히 지켜질 수 있다. 당국은 현장 교사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무겁게 받아들여 실효성 있는 법제화에 전력을 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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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딥페이크·가짜뉴스 판치는 세상, ‘미디어 리터러시’ 국가가 책임져야
[교육연합신문=사설] 인공지능(AI)과 소셜미디어가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편리함의 그늘은 깊고 어둡다. 가짜뉴스와 허위정보가 넘쳐난다. 딥페이크 기술을 악용한 범죄는 이미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이제 디지털 위험은 개인의 조심성만으로 막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시민의 정보 판단 역량을 기르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시급하다. 마침 국회에 국가 차원의 교육 추진체계를 마련하는 법안이 제출됐다. 매우 시의적절한 조치다. 미디어를 올바르게 읽고 가려내는 능력은 이제 생존의 문제다. 국가가 책임지고 이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그동안의 교육은 파편적이었다. 부처마다 사업이 쪼개져 실효성이 떨어졌다. 학교 정규 교육과정에도 제대로 녹아들지 못했다. 이번 법안을 계기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컨트롤 타워를 세워야 한다. 예산과 인력을 집중해 교육의 질을 확실히 끌어올려야 할 것이다.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이 핵심이다. 학교 안 아이들만 챙겨서는 안 된다. 학교 밖 청소년과 노인, 장애인 등 정보 취약 계층이 더 위험하다. 이들은 디지털 격차를 넘어 사회적 고립으로 내몰리기 쉽다. 생애주기 전반을 아우르는 촘촘한 교육망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생성형 AI 시대의 미디어 교육은 단순한 기능 습득이 아니다. 무엇이 사실이고 조작인지 가려내는 비판적 사고의 훈련이다. 이것이 무너지면 민주주의의 토대인 신뢰가 붕괴한다. 정부와 국회는 법안 처리를 서둘러야 한다. 미디어를 판단하는 강력한 방패를 국민에게 쥐여주는 일은 국가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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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미래 교육의 경고, 진영 논리를 넘어야 아이들이 산다
[교육연합신문=사설] 대한민국 교육이 진영 논리에 갇혀 신음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 싸움 속에 아이들의 미래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교육은 정쟁의 도구가 아니다. 이제는 이념의 낡은 틀을 깨고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야 할 때다. 최근 교육감 선거에서 국제바칼로레아(IB) 도입이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주목할 점은 정당과 진영을 초월하여 많은 후보들이 이를 공약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인구 소멸 위기를 겪던 지역이 IB 학교 덕분에 인구 유입 지역으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교육정책의 실질적인 효과가 진영의 벽을 무너뜨린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각에서는 IB를 혁신학교와 대척점에 세우며 편을 가르려 한다. 이는 대단히 소모적이고 어리석은 논쟁이다. IB는 혁신교육과 방향성을 공유하면서도 체계적인 평가와 교원 연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서로 배척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혁신학교가 IB의 시스템을 도구로 활용한다면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본질은 교실의 변화다. 잠자는 교실을 깨워야 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을 정교하게 다듬고 수업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 교육의 진짜 역할이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했다. 단순한 정답 빨리 찾기 식의 주입식 교육은 미래가 없다. 암기 위주의 시험 패러다임에서 하루빨리 탈피해야 한다. 이제는 AI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 역량을 길러주어야 한다. 다행히 대학가에 IB 교원 양성 프로그램이 생기고 서울대에 IB 교육연구센터가 설립되는 등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제는 축적된 실증 데이터를 바탕으로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형 바칼로레아(KB)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다. 더 이상 교육을 낡은 이념의 프레임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 논쟁의 초점을 진영 싸움에서 교육의 본질로 옮겨야 한다. 시대의 요구에 발맞추어 아이들의 역량을 키우는 데 국가적 역량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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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AI 시대의 교육감, ‘기계의 기술’이 아닌 ‘인간의 미래’를 지휘하라
[교육연합신문=사설] 지방선거가 끝났다. 각 지역의 교육 책임자들이 선출되었다. 선거철마다 정치적 공방만 가득했다. 유권자들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누가 정말 교육을 위해 필요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은 투표 후에도 답을 찾기 어렵다. 눈앞의 선거 공약만으로는 후보의 철학과 미래를 모두 검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교육은 지금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인공지능(AI)은 이미 교실 깊숙이 파고들었다. 새로 당선된 교육감들은 거대한 시대적 책무를 마주해야 한다. AI 시대의 교육감은 단순한 행정가가 아니다. 미래 교육을 지휘하는 지휘자가 되어야 한다. 당선된 교육감들이 당장 실행해야 할 세 가지 핵심 임무를 촉구한다. 첫째, 정답을 찾는 교육을 폐기하고 질문하는 능력을 키워라 기존의 교육은 정답만 강요했다. 빠른 암기와 정확한 연산에만 몰두했다. 이런 지식 습득은 이제 의미가 없다. 정보의 취합과 가공은 AI가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잘한다. 교육감은 교실에서 오지선다형 시험을 과감히 줄여야 한다. 대신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를 가르쳐야 한다. AI에게 올바른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능력이 핵심이다.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고 정의하는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야 한다. 그것이 AI 시대에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다. 교과서를 외우는 교실은 끝내야 한다. 사회적 이슈를 두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교실을 당장 만들어라. 둘째, AI 맞춤형 학습을 도입하되 ‘인간적 연결’을 강화하라 AI 기술은 교육 양극화를 해소할 강력한 도구다. 학생 개개인의 학습 데이터를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초개인화 맞춤형 학습 시스템’을 전면 도입하라. 진도를 못 따라가는 낙오자도 없어야 한다. 너무 앞서가서 지루한 학생도 없어야 한다. 교실의 평등은 기술로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간성이 숨 쉬는 교육이 더 절실하다. 지식 전달은 AI에게 맡기면 된다. 교사는 비로소 학생과 눈을 맞출 시간을 얻는다. 교사의 역할을 단순 지식 전달자에서 '인생의 멘토'로 재정의하라. 협동심, 공감 능력, 갈등 해결 능력은 기계가 가르칠 수 없다. 오직 인간과 인간의 부딪힘 속에서만 배울 수 있는 가치다. 교육감은 교사가 학생의 정서적 교감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라. 셋째, 기술 윤리와 주체성을 심어주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의무화하라 AI 기술의 어두운 단면은 이미 파괴적이다. 딥페이크 범죄와 정보 왜곡이 청소년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기술을 다루는 법만 가르쳐서는 안 된다. 그 안에 담긴 윤리를 빼놓으면 교육이 아니다. 도덕성이 없는 인재는 도구의 노예로 전락할 뿐이다. 교육감은 임기 시작과 동시에 AI 및 미디어 윤리 교육을 필수 교육과정으로 지정하라.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학생들이 디지털 세상에서 올바른 도덕적 잣대를 가져야 한다. 기술을 주체적으로 소비하는 성숙한 디지털 시민을 길러내라. 이것이 미래 교육감의 가장 시급한 의무다. 교육은 과거의 관행으로 미래를 재단하는 일이 아니다. 오지 않은 미래를 앞당겨 준비하는 거룩한 작업이다. 선거는 끝났다. 당선된 교육감들은 이제 지휘봉을 잡았다. 당선의 기쁨에 취해 있을 시간이 없다. 진정으로 교육을 위하는 사람은 미래를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다. 우리 아이들이 마주할 10년 뒤, 20년 뒤의 벌판을 바라보라.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마땅하다. 새로 취임하는 교육감들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즉시 버려라. AI라는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해야 한다. 거친 파도를 능숙하게 타는 서퍼로 키워내야 한다. 당선인들은 지금 당장 진정한 미래 교육의 돛을 올리라. 본연의 임무에 모든 것을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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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체험학습 교사 면책 추진을 환영한다
[교육연합신문=사설] 체험학습 교사 면책 추진을 환영한다 정부가 현장체험학습 중 발생한 안전사고에 대해 교사의 면책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고의나 중과실이 없다면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하는 방안이다. 이는 위축된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올바른 방향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떠나는 소풍과 체험학습은 청소년기에만 쌓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이는 우리가 평생 인생에서 소중히 간직해야 하는 추억이 된다. 그러나 그동안 교사들은 과도한 책임 부담에 시달려왔다. 불가항력적인 사고마저 교사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많은 학교가 사고 우려로 체험학습 자체를 기피하게 되었다. 결국 아이들의 소중한 추억과 배움의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교사에게 무한 책임을 지우는 것은 가혹하다. 불안감 속에서는 적극적인 교육 활동이 불가능하다. 안전 수칙을 준수했다면 국가가 교사를 보호하는 것이 마땅하다. 교사의 법적 부담이 줄어야 비로소 다양하고 창의적인 체험학습이 활성화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선물하기 위해서라도 교사의 안전망 확보는 필수적이다. 법적 공백과 형평성 논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다른 공무원 직역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교육 현장의 특수성을 반드시 감안해야 한다. 학생들을 직접 통솔하는 교사에게는 더 두터운 보호막이 필요하다. 이제 정부와 국회가 신속하게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중과실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여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 소송 지원과 행정 경감 대책도 차질 없이 이행되어야 한다. 교사가 안심하고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때 우리 아이들도 더 넓은 세상에서 평생 갈 소중한 추억을 얻게 된다. 이번 대책이 무너진 교육 공동체를 복원하는 신호탄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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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AI 기반 서·논술형 평가, 미래 교육의 공정한 발걸음
- [교육연합신문=사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AI 서·논술형 평가시스템 도입을 본격 논의했다. 잘하는 일이다. 교육평가의 공정성을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경기도교육청이 제안한 ‘하이러닝(Hilearning)’ 모델은 문제 출제부터 채점, 피드백까지 한 번에 처리한다. 자동화된 과정은 사람의 편견을 줄인다. 평가의 일관성을 보장한다. 국어, 사회, 과학에서 이미 시범 운영 중이다. 다른 교과로 확대되는 것이 옳다. 서울, 대구, 충남 등도 자체 시스템을 개발한다. 교육청 간 협력은 필수다. 협의회가 속도를 높이기로 한 결정은 현명하다. 기술만의 발전이 아니다. 미래형 공정평가로 가는 전환점이다. AI 평가가 대입에만 쓰일 필요는 없다. 학교 현장 전체로 퍼져야 한다. 형평성 높은 평가 문화가 자리 잡을 것이다. 학생은 공정한 기회를 얻는다. 교사는 채점 부담을 덜 수 있다. 학부모는 결과를 신뢰한다. 물론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연구 성과를 토대로 법과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 데이터 보안과 알고리즘 투명성도 챙겨야 한다. 그러나 멈출 이유는 없다. 사립학교 교원 징계제도, 학교폭력 대응, 특수학급 지원 등 다른 안건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 총회의 핵심은 단연 AI 평가였다. 미래 교육을 위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사회의 거울이다. 공정한 평가 없이는 미래도 없다. AI 서·논술형 평가는 그 출발점이다. 교육계가 한발 더 나아간 지금, 우리는 그 결정을 힘껏 지지해야 한다. 잘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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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AI 기반 서·논술형 평가, 미래 교육의 공정한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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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의대 쏠림과 두뇌 유출, 한국의 미래는 없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한국은 지금 인재의 황무지가 되고 있다. 자연계 최상위권은 의대로 몰리고, 남은 AI 인재마저 해외로 떠난다. 두뇌 수지는 적자로 돌아섰고, ‘유능할수록 한국을 떠난다’는 말이 현실이 됐다. 서울대 공대 신입생 5명 중 1명이 의대로 이탈한다. 공학의 심장에서조차 인재가 빠져나간다. 이들은 안정된 직업과 높은 수익을 좇는다. 국가가 키운 인재가 첨단 산업 대신 의료로만 몰린다. 그 결과, AI·반도체·양자 분야는 속이 비어간다. 남아 있는 소수의 AI 인재마저 실리콘밸리로 떠난다. 구글, 애플, 엔비디아는 성과 기반 보상과 개방적 문화를 내세운다. 한국의 연공서열과 단기성과 중심 체계는 매력이 없다. KAIST 연구실의 제자들이 줄줄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두뇌 유출은 곧 국력 손실이다. 공교육비, 세수 손실까지 계산하면 인재 1명당 수억 원의 손해다. 첨단 산업 경쟁에서 뒤처지는 대가는 그보다 크다. 세계는 AI 인재 전쟁에 나섰다. 중국은 ‘천인 계획’으로 석학을 불러들이고, 일본은 고급 인력에 영주권까지 내준다. 미국은 빅테크를 앞세워 수억 달러 보상으로 인재를 사들인다. 반면 한국은 인재를 지켜내지도 못한다. AI 인재는 빠져나가고, 의대 정원은 늘어난다. 산업 현장은 인력난에 허덕인다. 기업의 80%가 AI 인력이 부족하다. 2027년엔 1만 명이 넘는 AI 인력이 공백으로 남을 전망이다. 이대로는 AI 강국은커녕 기술 종속국으로 전락한다. 의대 공화국과 두뇌 수지 적자는 국가적 재앙이다. 정부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 성과 중심의 보상, 연구 인프라 확충, 국제 협력 확대가 필요하다. 동시에 의대 쏠림을 완화할 전략이 시급하다. 지금의 흐름을 방치하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의대와 해외만 바라보는 인재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경쟁력을 포기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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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의대 쏠림과 두뇌 유출, 한국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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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배움의 진짜 얼굴
- [교육연합신문=시론] 우리는 인간을 기르고 있는가, 시험 기계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오늘날 교육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성취도’, ‘평가’, ‘입시’, ‘스펙’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시험에서 몇 문제를 맞혔는지가 배움의 척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진정한 배움은 단순히 정보를 받아들이고 외우는 것을 넘어선다. 배움은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인간다움(Humanness)은 단순한 도덕적 덕목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 그 자체에 대한 물음이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스스로 묻는 힘이다. 이 힘은 자율성과 주체성, 그리고 공감 능력에서 비롯된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말했다. “진정한 자아는 결코 외부의 규칙에 맞추어질 수 없다.” 교육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 진정한 배움이란 외부 기준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자아를 발굴해가는 여정이다. 사례 ① 몬테소리 교육: 스스로 피어나는 배움 이탈리아의 교육자 마리아 몬테소리는 아이를 ‘하나의 완전한 인간’으로 보았다. 교사는 지식을 주입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가 스스로 탐색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전통 수업에서는 교사가 시간표와 커리큘럼을 정하지만, 몬테소리 교실에서는 아이가 교구를 직접 선택하고 흥미를 따라 탐구한다. 아이 안에 있는 자기 주도성과 내적 동기를 깨우는 것이다. 몬테소리는 말했다. “아이 안에는 스스로 성장하고자 하는 힘이 있다.” 교사는 억누르지 않고, 조율하고 안내하는 조력자 역할만 한다. 교육은 외부의 강제가 아니라, 내면의 열망이 피어나는 장이어야 한다. 사례 ② 핀란드 교육: 경쟁 없는 배움의 공동체 핀란드는 교육 만족도와 학업 성취도를 동시에 높이는 나라로 유명하다. 놀랍게도 전국 단위 시험이 거의 없다. 학생들은 등수에 신경 쓰지 않고, 학습의 즐거움을 우선한다. 핵심은 ‘협력과 토론’이다. 교사는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지 않고,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토론하는 환경을 만든다. 예를 들어 환경 문제를 주제로 조별 토론이 이루어진다. 학생들은 자료를 조사하고 의견을 나눈 뒤, 함께 해결책을 도출한다. 단순 암기가 아니라, 비판적 사고력과 사회적 공감 능력을 키우는 수업이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가진 연결성과 공동체 감각을 길러주는 배움이다. 배움은 ‘내가 누구인가’를 묻는 과정 톨스토이는 말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소유할 때 비로소 자유롭다.” 배움은 지식 축적이 아니라, 자기 사유의 능력을 기르는 과정이다. 생각을 소유한다는 것은 외부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맥락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힘을 가진다는 의미다. 그래서 교육은 ‘정답’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품는 인간을 기르는 일이 되어야 한다. 실천 방안: 배움의 중심을 학생에게 1. 학습자 중심 수업 설계 교사는 지식 전달자가 아닌 촉진자(facilitator) 역할 학생이 스스로 주제를 설정하고 탐구할 수 있는 열린 과제 제공 다중 지능 이론 기반 개인 맞춤형 학습 경로 구성 2. 평가의 혁신 기존 상대평가와 표준화 시험은 개인 고유성을 평가하지 못한다. 포트폴리오, 서술형 수행평가 중심으로 전환 실험, 창작, 프로젝트 활동 등 다양한 표현 방식 허용 성장 중심 피드백으로 학습 동기 고취 3.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 확대 실생활 문제를 중심으로 학습자가 지식 생산자로 변모 예: 지역 환경 문제 다큐 제작, 사회적 이슈 캠페인 기획 창의력, 협업 능력, 문제 해결력 등 핵심 역량 강화 교과 경계를 넘는 융합적 사고 훈련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교육 진정한 교육은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일’이다. 학생은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고, 타인과 관계하며, 삶을 성찰하고,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한다. 지식은 목적이 아니라 도구다. 그 도구를 어떻게 느끼고, 연결하고, 사용할지를 고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답게 배운다. 교육은 지금 다시 묻고 있다. “우리는 인간을 기르고 있는가, 아니면 시험 기계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작은 결론 배움의 목표는 외적 성취가 아니라, 내적 성장이다. 평가 방식은 숫자와 등수가 아닌, 성장과 발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교사는 지식 전달자가 아닌, 학생의 호기심과 열망을 깨우는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AI와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다움은 인간이 길러야 한다. 지식은 빠르게 확산되지만,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의미를 만들어가는 능력은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교육의 진정한 승리는, 학생이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하며, 세상을 해석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오늘도 질문해야 한다. 시험 문제를 맞히는 인간을 만드는가, 아니면 생각하고 느끼고 연결할 줄 아는 인간을 기르고 있는가. 그 질문이 바로, 미래 교육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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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배움의 진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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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인재가 떠나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한국의 두뇌 수지 적자가 심각하다. OECD 38개국 중 35위라는 성적표는 단순한 순위가 아니다. 젊고 유능한 인공지능 인재들이 한국을 떠난다. 들어오는 인재는 줄어든다. 이 현실은 국가 경쟁력 추락으로 이어진다. 미래를 떠받칠 뿌리가 무너지고 있다. 대한상의 보고서가 이를 보여준다. 2024년 한국의 인구 1만 명당 AI 인재 순유출은 0.36명이다. 2022년에는 0.04명, 2023년에는 0.3명이었다. 불과 2년 만에 수치는 급증했다. 같은 기간 미국과 독일, 캐나다는 인재 유입국이 되었다. 세계의 두뇌가 모이는 곳은 번영한다. 인재가 떠나는 곳은 쇠락한다. 원인은 단순히 연봉이 아니다. 인재가 한국을 떠나는 이유는 제도와 문화에 있다. 평가는 단기 실적에 치우쳤다. 보상은 연공서열에 묶여 있다. 연구 인프라는 열악하다. 국제 협력의 기회도 부족하다. 이 구조에서 창의는 자랄 수 없다. 김정호 KAIST 교수의 제자들조차 구글과 엔비디아로 간다. 이것이 현실이다. 고급 인력 한 명이 떠날 때마다 국가는 손실을 본다. 그 규모는 약 5억 원이다. 이 계산은 단순한 추정이 아니다. 이미 대학과 연구소의 역량이 줄고 있다. 기업은 인력난과 인건비 부담에 시달린다. 산업의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국가의 미래는 공허한 구호로 전락한다. 정부는 AI 세계 3대 강국을 외친다. 100조 원 펀드도 약속했다. 그러나 돈만으로 인재는 붙잡히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 전환이다. 인재 유출 억제는 소극적이다. 세계의 인재가 몰려오게 해야 한다. 성과와 보상이 연동돼야 한다. 근로 제도는 유연해야 한다. 연구 생태계는 세계와 연결돼야 한다. 창의적 도전을 존중하는 문화도 필요하다. 인재는 국력이다. 인재가 떠나는 국가는 미래를 잃는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한국은 두뇌 유출 국가라는 오명을 벗어야 한다. 구호가 아니라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젊은 두뇌가 떠날 때 남는 것은 쇠락의 그림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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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인재가 떠나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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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수능, 존폐 논쟁 넘어 공정의 길로
- [교육연합신문=사설] 수능은 여전히 한국 교육의 심장이다. 그러나 그 심장은 오래된 방식으로 뛰고 있다. 학생들의 꿈과 가능성을 재단하는 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폐지론자는 수능을 사교육의 온상이라 비판한다. 유지론자는 수능이 공정의 최후 보루라 주장한다. 양측의 논리는 모두 타당하다. 그러나 문제는 존폐가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 학생에게 더 나은 기회를 줄 것인가다. 수능은 공정성을 보장한다. 모든 학생이 같은 날, 같은 문제로 시험을 치른다. 이 구조는 지역·학교 간 격차를 줄이는 최소한의 장치다. 그러나 동시에 수능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사교육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부모의 경제력이 시험의 그림자를 짙게 만든다. 따라서 수능은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무너뜨려서도 안 된다. 개선과 재설계가 필요하다. 첫째, 수능을 공교육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학교 수업만 충실히 따라가도 충분히 응시할 수 있어야 한다. AI 튜터와 같은 맞춤형 학습 지원을 공교육이 제공해야 한다. 학생의 지역, 환경, 학습 조건에 맞춘 균형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둘째, 수능의 기능을 분리해야 한다. 학력평가와 적성평가는 달라야 한다. 지식의 축적을 측정하는 시험과 진로·탐구 역량을 평가하는 시험을 나눠야 한다. 학생은 자신의 길에 맞는 시험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은 그 결과를 정교하게 반영해야 한다. 셋째, 공정한 기회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수능 한 장의 성적표가 인생을 좌우하는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배움의 과정, 도전의 기록, 지속적인 성장을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 한 번의 시험이 아니라, 꾸준한 학습이 빛을 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서울·경기 학생들의 토론은 귀한 결론을 남겼다. 공정한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는 합의다. 존폐의 논쟁을 넘어, 교육의 본질로 접근한 것이다. 정치권과 교육 당국은 이 목소리에 응답해야 한다. 학생들은 이미 답을 내고 있다. 이제 어른들이 결단할 차례다. 수능은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공정은 지켜져야 한다. 시험은 사라져야 할 것이 아니라, 새로 태어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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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수능, 존폐 논쟁 넘어 공정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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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진상조사 보고서, 약속은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인천 특수교사 사망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지난 7월 24일 의결한 보고서 요약본 공개 시한은 7월 30일이었다. 그러나 인천시교육청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결국 위원 7명은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행정 절차 지연이 아니다. 한 교사의 죽음을 둘러싼 진상 규명 과정이며, 유족과 시민의 알 권리와 직결된다. 특히 유족에게조차 공개 지연 사유를 설명하지 않은 것은 교육기관의 기본 책무를 저버린 행위다. 교육감은 진상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특수교육 여건 개선을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의 첫걸음인 보고서 공개부터 미뤘다. 공개 지연의 명분으로 제시한 ‘법률 검토’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외부 검토를 맡긴 시점이 이미 시한을 넘긴 뒤였기 때문이다. 준비와 의지가 있었다면 충분히 기한 내에 처리할 수 있었을 일이다. 진상조사 보고서는 단순한 문서가 아니다. 교육계의 신뢰를 회복하고 특수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출발점이다. 보고서 공개를 미루는 순간, 의혹은 증폭되고 상처는 깊어진다. 인천시교육청은 더 이상 시간 끌기를 멈춰야 한다. 유족과 시민 앞에서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 약속은 말이 아니라, 기한을 지키는 행동으로 증명되는 법이다. 투명한 공개만이 교육청이 책임을 다했다는 최소한의 증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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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진상조사 보고서, 약속은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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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현장체험학습의 위기, 교사에 책임 전가해서는 안 된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현장체험학습이 사라지고 있다. 교사들은 불안에 떠는 중이고, 학생들은 추억을 잃고 있다. 학부모들은 안타까워한다. 교실 밖 배움의 기회를 누구도 반기지 못하는 현실이 되었다. 서울 광진구의 한 초등학교는 유적지 탐방 프로그램을 주말에 진행한다. 외부 단체가 운영하고 학부모가 동행한다. 교사는 빠졌다. 교사의 안전사고 책임을 피하려는 결정이다. 교장은 “부담을 덜기 위한 방안”이라 했다. 이해는 간다. 하지만 이 모습은 교육의 후퇴다. 문제는 교사의 법적 책임이다. 2022년 강원도에서 발생한 학생 사망 사고 이후, 교사들은 공포에 떨고 있다. 과실치사로 기소되고 유죄 판결까지 받았다. 그 충격은 컸다. 법 개정으로 면책 조항이 추가됐다지만, 현장은 여전히 불안하다. ‘안전조치 의무’의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무엇을, 어디까지 해야 면책되는가? 누구도 답하지 않는다. 결과는 자명하다. 체험학습은 줄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통계에 따르면 현장체험학습은 지난해 대비 36% 감소했다. 교육의 일부가 사라진 것이다. 교사들은 교실에 머무르고, 아이들은 체험 없는 배움을 받고 있다. 탈춤 공연, 타악기 연주처럼 ‘찾아오는 체험’이 대안이 되고 있다. 이것이 과연 현장체험인가? 교사도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방식이 체험학습의 철회여서는 안 된다. 법은 현실을 담아야 한다. 면책 요건은 명확해야 하고, 지원 인력은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교육부는 뒷북으로 “응급조치 시 면책” 조항을 검토 중이라 한다. 이미 늦었다. 교사들은 결정을 내렸고, 학부모와 학생은 결과를 겪고 있다. 현장체험학습은 단순한 나들이가 아니다. 살아 있는 배움이다. 공동체 경험이자 감정의 성장이다. 이를 포기하는 교육은 온전하지 않다. 안전과 교육은 맞설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두 가치를 함께 지켜야 한다. 교사의 책임을 명확히 줄이는 법 개정이 시급하다. 체험학습의 부활은 법과 제도의 뒷받침에서 시작된다. 책임은 교사에게만 있지 않다. 교육을 가능케 할 사회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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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현장체험학습의 위기, 교사에 책임 전가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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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4세 고시, 배움이 아닌 불안의 시작
- [교육연합신문=사설] 서울특별시교육청이 유아 대상 영어학원 63곳을 적발했다. 이들 학원은 4세 유아에게까지 사전 시험을 요구했다. 반일제 이상으로 수업을 운영한 곳도 있었다. 하루 4시간 넘는 학습은 유아의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선행학습은 놀이보다 공부를 우선시하게 만든다. 이는 유아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왜곡한다. 레벨 테스트는 학습의 출발점을 경쟁으로 바꾼다. 부모는 조기 교육에 대한 불안을 느낀다. 학원은 이를 이용해 공포 마케팅을 벌인다. 경쟁은 점점 더 이른 나이로 확산된다. 결국 학습은 놀이를 대체하고, 아이는 놀 권리를 잃는다. 교습비 과다 청구, 과대 광고, 무단 시설 변경도 다수 적발됐다. 이는 유아 교육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교육은 상품이 아니다. 더구나 유아기는 인간 발달의 기초가 형성되는 시기다. 이 시기에 학습 중심 교육은 부작용을 남긴다. 집중력, 감정 조절, 사회성 등은 놀이를 통해 자란다. 그러나 학원은 시험을 통해 줄 세우려 한다. 4세 고시는 교육이 아닌 선발이다. 선발은 낙오자를 만든다. 유아기는 낙오와 경쟁을 배우는 시기가 아니다. 그 시기는 함께 자라고 함께 웃는 시기다. 평등한 출발선이 필요한 시기다. 학원은 이를 왜곡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행정처분을 내렸다. 이는 의미 있는 조치다. 그러나 일회성으로는 부족하다. 선행학습을 구조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유아기에는 놀이가 배움이다. 시험은 불안이다. 4세 고시는 교육이 아니라 불안의 제도화다. 국가와 사회는 이를 막을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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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4세 고시, 배움이 아닌 불안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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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교실 밖의 배움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교실 밖의 배움은 선택이 아니다. 필수다. 현장 체험, 동아리 활동, 야외 학습은 배움의 또 다른 얼굴이다. 지식은 교과서에만 있지 않다. 삶 속에 있다. 그러나 최근 교실 밖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 안전, 예산, 평가 중심의 정책이 그 이유다. 위험을 이유로 배움을 막을 순 없다. 통제는 배움을 가두고, 상상력을 말린다. 교실은 시작점일 뿐이다. 배움은 교실을 넘어야 살아난다. 아이들은 움직이며 배운다. 직접 보고, 듣고, 만지는 과정 속에서 깨우친다. 교실 안의 수업만으론 부족하다. 정답을 암기하는 것만으로는 사고가 자라지 않는다. 교실 밖 배움은 질문을 품게 하고, 사고의 폭을 넓힌다. 지식은 체험과 연결될 때 깊이를 갖는다. 경쟁 위주의 교육은 협력과 공감 능력을 빼앗는다. 교실 밖 배움은 공동체를 익히는 시간이다. 자연 속에서, 사회 현장에서 아이들은 진짜 삶을 배운다. 이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교사에게는 자율이 필요하다. 학생에게는 선택의 폭이 필요하다. 교육 정책은 통제보다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 안전은 강화하되, 배움의 길은 넓혀야 한다. 교실 밖 배움을 축소하면, 미래도 작아진다. 학교는 세상의 축소판이 아니라 세상과 연결되는 문이다. 그 문을 닫아선 안 된다. 열어야 한다. 넓혀야 한다. 아이들의 성장은 교실 밖에서 더욱 크게 자란다. 교실 밖 배움의 기회를 지켜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결단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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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교실 밖의 배움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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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고교학점제, 미봉책 아닌 근본 재설계가 필요하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고교학점제가 본격 도입되었다. 정부는 학생의 선택권과 책임교육을 내세운다. 그러나 현장은 고통을 호소한다. 제도는 취지와 현실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교육부는 제도를 유지하되 보완하겠다고 한다. 자문위원회를 꾸리고 개선안을 예고했다. 그러나 이 또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임시방편으로는 실패한 구조를 바꿀 수 없다. 고교학점제의 핵심은 선택이다. 하지만 입시 중심의 구조는 이를 무색하게 만든다. 학생은 결국 유리한 과목만 고른다. 진정한 선택은 없다. 불안은 커지고 탈락 공포는 현실이 된다. 교육의 목표는 성적이 아니다. 성장은 다름을 인정하고 가능성을 키우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고교학점제는 학생을 줄 세우는 또 다른 장치일 뿐이다. 교사의 현실도 외면할 수 없다. 수업은 늘고 행정은 쌓인다. 최소성취수준 보장은 교사에게 모든 책임을 넘긴다. 교원 확충 없이 책임만 지우는 방식은 부당하다.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도 크다. 정보 부족은 공포를 낳는다. 시스템은 복잡하고 안내는 부족하다. 선택과 평가, 대입까지 혼란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전교조는 폐지를 주장한다. 이는 단순한 반대가 아니다. 구조적 실패에 대한 경고다. 선택이 허상이라면, 제도는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제도 보완만으로는 부족하다. 고교학점제는 근본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 대입과 평가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제도도 무용지물이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제도다. 그러나 지금처럼 밀어붙이면 실패한다. 방향은 옳다. 그러나 현실은 준비되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점검이다. 실험이 아니라 검증이다. 보완이 아니라 전면 재설계다. 교육은 시범이 아니다. 실패의 대가를 아이들이 치르게 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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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고교학점제, 미봉책 아닌 근본 재설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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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학부모 숙제’된 수행평가, 근본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수행평가는 본래의 취지를 잃었다. 학생의 창의력과 사고력을 평가하려던 제도였다. 지금은 부모의 능력을 재는 지표가 되었다. 교육부는 수행평가를 수업시간 내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늦었지만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땜질식 처방으로는 부족하다. 핵심은 수행평가의 본질을 되묻는 일이다. 한 학기에 수행평가를 50번 보는 경우도 있다. 과제는 끝도 없이 늘어난다. 학생은 밤을 새워 과제를 수행한다. 부모는 자료를 찾고, 발표 자료를 만든다. 수행평가는 가정의 배경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수행평가는 학생의 능력을 평가하지 않는다. 저글링, 노래 편곡 같은 과제가 등장한다. 논문 수준의 과제를 요구하기도 한다. 고등학생에게 무리한 요구다. 학원이나 과외가 개입하는 구조가 생겨났다. 지금은 그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교육부 개편안은 형식적이다. 수업시간 내 평가만으로는 부족하다. 암기식 과제는 여전하다. 수준 낮은 평가 기준도 그대로다. 외부 도움을 차단하는 방안도 없다. 지필고사를 보완하려던 제도가 오히려 더 큰 부담을 만들었다. 교사는 평가에 매몰된다. 학생은 창의보다 노동에 지친다. 이제는 평가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양을 줄여야 한다. 질을 높여야 한다. 과목 전문가가 평가를 설계해야 한다. 평가 기준을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 수행평가는 학습의 과정이어야 한다. 결과가 아니라, 성장의 흔적을 보아야 한다. 교육은 학생이 중심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과잉 수행평가는 교육을 해친다. 교육부는 지금이라도 본질을 돌아보아야 한다. 평가는 학생을 괴롭히는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 평가는 배움을 여는 열쇠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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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학부모 숙제’된 수행평가, 근본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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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수행평가, 이제는 ‘교육’이어야 한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수행평가가 더는 교육이 아닌 고통이 되어버렸다. 학기당 50회에 달하는 과도한 평가 횟수는 학생을 숨 막히게 한다. 수면 부족은 기본이고, 학부모의 개입 없이는 수행평가를 해내기조차 어렵다. 수행평가는 언제부터 ‘부모의 숙제’가 되었는가. 교육부가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모든 수행평가는 반드시 수업 시간 내에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수행평가의 본래 취지는 암기식 교육을 넘어서는 데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암기식 수행평가와 과잉 과제로 얼룩졌다. ‘진짜 공부’가 사라지고, ‘형식적 평가’만 남았다. 문제는 이번 대책이 뾰족하지 않다는 점이다. 단지 시간을 교실 안으로 옮긴다고 본질이 바뀌는가. 암기 위주, 보여주기식 평가가 계속된다면 고통은 여전하다. 수업 안에서의 수행평가가 교육적인 경험이 되려면, 평가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이제는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이 과제가 정말로 학생의 사고력을 키우는가. 이 평가가 교사의 수업과 연계되어 있는가. 학생 스스로 해낼 수 있는가. 부모가, 학원이, 과외가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수행평가는 모두 폐기해야 한다. 교육은 아이들 몫이다. 그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앗아가는 평가라면 교육이 아니다. ‘깨어 있는 수업’과 ‘살아 있는 평가’가 만날 때, 비로소 교육은 제 길을 걷게 된다. 교육부의 이번 조치는 시작일 뿐이다. 암기식 수행평가를 뿌리부터 바꾸는 일. 교사에게는 창의적인 평가 권한을, 학생에게는 스스로 설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수업 속에서 배우고, 평가 속에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수행평가는 더는 짐이 되어선 안 된다. 교육은 학생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이제는 평가가 아니라 배움이 중심이 되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교육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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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수행평가, 이제는 ‘교육’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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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방법론에 대하여
- [교육연합신문=시론] 이제 교실에서 학생은 더 이상 단순한 지식의 수용자가 아니다. 뉴스, 광고, 유튜브, SNS가 일상이 된 시대에, 학생은 정보를 해석하고, 때로는 거부할 줄 아는 해석자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대 변화에 맞춰, 미디어 리터러시는 선택이 아닌 필수 교육이 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디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미디어는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하며, 때때로 왜곡한다. 따라서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정보 분석 능력이 아니라 ‘해독의 감각’이다. 교육은 이 감각을 기르는 데 집중해야 한다. 첫째, 미디어는 기호의 집합이다. 텍스트는 이미지, 음성, 자막 등으로 구성된다. 학생은 이 기호들을 읽고, 질문해야 한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무엇을 감추고 있는가’라고. 둘째, 비판적 시각을 키워야 한다. 광고, 뉴스, 유튜브 영상 모두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모든 메시지는 특정 관점을 반영한다. 교육은 그 관점을 인식하게 도와야 한다. 셋째, 제작 활동이 필요하다. 학생은 직접 미디어를 만들어야 한다. 영상, 팟캐스트, 카드뉴스 등을 실습한다. 제작은 분석보다 깊은 통찰을 이끈다. 넷째, 미디어는 감정의 기술이다. 공감과 분노, 두려움과 희망을 조작한다. 학생은 자신의 감정 반응을 돌아봐야 한다. 감정은 메시지를 소비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다섯째, 미디어는 권력과 연결된다. 어떤 목소리는 크게 울리고, 어떤 목소리는 지워진다. 교육은 이 불균형을 질문하게 해야 한다. ‘누가 말하고 있고, 누가 침묵하는가’라고. 여섯째, 플랫폼을 이해해야 한다. 콘텐츠만이 아니라 구조를 분석해야 한다. 알고리즘, 추천 시스템, 댓글 문화도 교육의 대상이다. 디지털 생태계를 통째로 읽는 힘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미디어 리터러시는 생존의 언어다. 그 언어를 모르면 조종당한다. 교육은 기술이 아니라 감각을 길러야 한다. 비판, 창의, 공감의 감각이 필요하다. 이제 교사는 질문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정답을 말하기보다, 의심하게 해야 한다. 그곳에서 새로운 시민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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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방법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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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교실을 지켜야 나라가 산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교실이 무너지고 있다. 교권은 흔들리고, 책상은 요동친다. 수업은 멈추고, 교사는 가르칠 힘을 잃는다. 생활지도는 공포의 대상이 됐다. 시험 한 번에 민원이 폭발하고, 녹음 버튼이 교실을 지배한다. 학생은 배움을 잃고, 자율은 사라지며, 놀이는 자취를 감췄다. 탱탱볼만 굴러다니는 교실, 학부모의 협박과 문자 폭탄은 교사의 밤을 지운다. 결국 교사는 병가로 도망치고, 현장은 텅 비어간다. 정부는 임시방편만 내놓는다. 법은 교실 밖에 서 있고, 교사는 소송에 홀로 맞선다. 국가는 외면하고, 공교육은 반쪽이 됐다. 사교육은 웃으며 불평등을 키운다. 방황하는 아이들은 미래를 잃는다. 교권 보호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지금이 결단의 순간이다. 교사에게 방패를 쥐어줘야 한다. 생활지도 권한을 보장하고, 교육활동 면책을 제도화해야 한다. 악성 민원과 녹취를 강력히 처벌하고, 학교 법무지원단을 상설화해 교사를 보호해야 한다. 국가가 소송을 대신 책임져야 한다. 체험학습을 되살리고, 아이들이 몸으로 배우게 해야 한다. 안전 매뉴얼을 명확히 하고, 책임 범위를 규정해야 한다. 평가는 학습의 도구로 정상화해야 한다. 단원평가는 학생의 성장을 돕는 피드백이어야지, 낙인의 도구가 아니다. 교장은 리더로, 교육청은 방패로, 국회는 법을 개정하는 책임자로 나서야 한다. 대통령은 공교육 정상화의 책임을 져야 한다. 교실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교권이 바로 서야 미래가 열린다. 공교육 정상화를 더는 미룰 수 없다. 지금,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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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교실을 지켜야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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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학력평가 정답 유출, 교육 신뢰 무너뜨린 중대한 사고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고1 학력평가 정답이 시험 전에 유출됐다. 경찰이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교육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한 범죄다. 문제는 6월 4일 치러진 학력평가 영어영역이다. 정답과 해설이 시험 시작 40분 전 SNS에 퍼졌다. 해당 채팅방엔 무려 3200여 명이 있었다. 시험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 출제는 부산시교육청이 맡았다. 부산시교육청은 유출된 파일이 자신들이 제출한 문제와 동일하다고 인정했다. 학평 문제는 지난 4월 말 이미 전국 교육청에 전달됐다. 즉, 유출 시점은 두 달 가까이 앞당겨질 수 있는 구조였다. 시험지 인쇄와 보관은 각 교육청이 담당한다. 서울시교육청은 정확한 유출 경로를 조사 중이다. 그러나 이미 불신은 퍼졌다. ‘누가’, ‘어떻게’, ‘왜’ 유출했는지가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 책임자 색출은 물론, 시스템 전반의 점검이 시급하다. 인쇄 과정, 문서 유통, 보안 체계 전부를 들여다봐야 한다. 교육청 간 책임 떠넘기기식 대응은 안 된다. 학력평가는 전국 고교생의 학업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다. 이 평가의 신뢰가 무너지면 공정한 경쟁도 불가능하다. 노력보다 정보가 앞서는 사회를 방치해선 안 된다. 교육은 신뢰 위에 서야 한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유출이 아니다. 우리 교육의 민낯이 드러난 참사다. 철저한 수사와 제도 개선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정’이란 두 글자는 더 이상 교육계에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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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학력평가 정답 유출, 교육 신뢰 무너뜨린 중대한 사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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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교권 보호, 이재명 정부의 교육 개혁 출발점 돼야
- [교육연합신문=사설]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됐다. 교원 단체들은 새 정부에 교권 보호와 교육 개혁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교육 현장은 오랫동안 누적된 문제로 흔들려왔다. 교사의 권위는 약해졌고, 교육의 본질은 흐려졌다. 이제 변화가 필요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교육 불평등 해소와 교사 정치 기본권 보장을 요구했다. 교육을 시장 논리에서 해방시키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는 단지 교사 개인의 권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모든 학생이 차별 없이 배움의 권리를 누리기 위한 전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같은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교권 붕괴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교사가 수업과 생활지도, 상담에 집중할 수 없는 현실은 교육의 위기를 의미한다. 정파와 이념을 초월해,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은 앞선 정부의 교육 정책들이 졸속으로 추진됐다고 비판했다. 고교학점제, 늘봄학교, AI 디지털 교과서 등은 준비 없이 시행됐다. 지속 가능하고 미래 지향적인 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교육은 단기 성과가 아니라, 긴 호흡의 미래를 위한 일이다. 교사들의 정치 기본권 보장도 중요한 과제다. 이는 교사 개인의 정치 활동 보장을 넘어, 교육 현장의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를 위한 문제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만큼, 실현 의지를 보여야 한다. 정근식 서울시 교육감도 정부와의 협력을 약속했다. 교육청과 정부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협력 속에서 비전이 생기고, 변화가 시작된다. 이제는 말이 아닌 행동이 필요하다. 교사들이 존중받는 사회, 아이들이 공평하게 배우는 학교. 그것이 진짜 교육 개혁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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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교권 보호, 이재명 정부의 교육 개혁 출발점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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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또 한 명의 교사가 생을 마감했다. 이번엔 제주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스승의 날이 채 지나기도 전에 들려온 비보다. 20년 넘게 한 학교에서 헌신해온 교사가 교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가 남긴 유서엔 '지속적인 민원'과 '교육적 갈등'이 담겨 있었다. 담임으로서 생활지도를 했을 뿐이다. 학생의 결석을 바로잡으려 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항의와 압박뿐이었다. 민원은 학교를 넘어 도교육청까지 이어졌다. 교사의 휴대전화로도 항의 전화가 쏟아졌다. "왜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가", "왜 폭언을 했는가". 단정적인 비난은 교사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우리는 묻는다. 교사가 생활지도를 하면 안 되는가. 지도는 곧 가해인가. 학교는 교육의 공간인가, 민원의 전시장이 된 것인가.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서이초 사건과 다를 바 없다. 교사의 죽음이 반복되고 있다. 그 원인을 '개인 문제'로 치부해선 안 된다. 교육 당국은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 실태를 조사하라. 고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마라. 유족의 입장에서 진상을 규명하라. 책임이 있다면 분명히 물어야 한다. 반복되는 죽음을 막으려면, 더는 똑같은 패턴을 반복해선 안 된다. 학교는 교사의 일터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중심엔 교사가 있다. 교사가 무너지면 교육도 없다. 지금, 교사들은 두려워하고 있다. 지도도 못 하고, 말도 못 한다. 민원 하나에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 이것이 교육인가. 교사가 교육할 수 있도록 지켜줘야 한다. 그게 우리가 아이들을 지키는 길이다. 지금 당장, 구조를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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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또 한 명의 교사가 생을 마감했다. 이번엔 제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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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교권 붕괴, 더는 방치할 수 없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교단이 무너지고 있다. 저연차 교사 10명 중 9명이 현 상황을 ‘심각’하다고 말한다. 이탈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는 교권 침해다. 학생과 학부모의 무분별한 개입이 교사를 괴롭힌다. 교실은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 수업 중 울리는 휴대전화, 제지를 거부하는 학생. 언쟁, 폭언, 심지어 폭행까지 이어진다. 몰래카메라의 두려움 속에 수업은 위축된다. 이런 현실에 교사는 지친다. 열정은 사라지고, 사명감은 무너진다. 2023년, 10년차 미만 교사 576명이 떠났다. 최근 5년 내 최악의 수치다. 교사는 버티지 못한다. 남은 이들도 흔들린다. 원인은 단순하지 않다. 교권 침해 외에도 사회적 인식 저하와 낮은 보수가 맞물린다. 이 구조 속에서 젊은 교사는 생존을 고민한다. 삶을 걸고 설 수 없는 교단은 지속 불가능하다. 교권 회복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교사가 무너지면 교육이 무너진다. 교육이 무너지면 사회의 미래가 없다. 교권 보호는 교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존속과 직결된 문제다. 차기 대통령은 이 목소리를 외면해선 안 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교권 회복이다.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으로 응답해야 한다. 교실을 다시 배움의 공간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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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교권 붕괴, 더는 방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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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교사가 떠나는 나라, 교육은 무너진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교권이 무너지면 교육도 무너진다. 교사들이 교단을 떠나고 있다. 정년을 채우지 못한 중년 교사들이 명예퇴직을 택한다. 신입교사들마저도 사직서를 낸다. 교단은 텅 비어간다. 이유는 분명하다. 교권 침해 때문이다. 교권은 붕괴 직전이다. 학생과 학부모의 민원은 교사를 옭아맨다. 수업은 뒷전이다. 각종 행정업무가 교사에게 전가된다. 고소와 진정은 일상이 되었다. 교사는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직업인’일 뿐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제도는 개선되고 있다고 말한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권보호법이 개정됐다.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명시됐다. 교사의 면책 범위도 넓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법은 바뀌었지만 현장은 그대로다. 여전히 교사는 민원 앞에 무력하다. 학생부 기재 하나에도 눈치를 본다. 교사의 지도는 ‘체벌’로 비화된다. 보호는커녕 책임만 남는다. 개선된 법은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결국 다시 주장한다. 교사가 바로 서야 교육이 산다. 교육은 교사에게서 시작된다. 교권 없는 교육은 허상이다. 말뿐인 대책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건 실효성 있는 보호다. 교사가 교사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실이 무너진다면, 그다음은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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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교사가 떠나는 나라, 교육은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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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성적은 세계 최상위, 삶은 최하위인 한국의 중학생들
- [교육연합신문=사설] 한국 중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수학과 과학, 읽기 능력 모두 OECD 상위권에 속한다. 그러나 그 이면은 암울하다. 교우관계는 OECD 37개국 중 36위, 자주성은 33위, 여가생활은 36위. 삶을 살아가는 능력에서는 최하위권이다. 이 결과는 우리 교육의 비극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는 지식의 높이에만 집착했다. 인간다운 성숙, 타인과의 관계, 자기 삶을 가꾸는 힘은 뒷전이었다. 경쟁은 치열했고, 협력은 배제됐다. 교사와의 관계는 1위지만 친구와는 단절됐다. 머리는 자랐지만 가슴은 외로웠다. 청소년기는 인성과 자아를 키우는 결정적 시기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은 점수와 성적에 몰두할 뿐, 학생의 내면은 외면한다. 감정 표현은 서툴고, 회복탄력성은 낮다. 학습은 있었지만 삶은 없었다. 행복은 뒷전이 되었고, 성취의 기쁨은 고립으로 바뀌었다. 이제 방향을 바꿔야 한다. 해답은 ‘인문교양 교육’이다. 사고하고, 이해하고, 나누고, 살아가는 힘을 키우는 교육이다. 점수를 넘어서 사유하는 인간, 협력하고 소통하는 시민으로 성장하게 해야 한다.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 삶의 온기를 느끼게 해야 한다. 학습은 삶과 연결되어야 한다. 학습 그 자체가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지식의 갑옷을 벗고 삶의 숲을 자유롭게 걷게 해야 한다. 인문교양은 그 숲으로 이끄는 길이다. 지금, 그 길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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