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8-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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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서울교육청 ‘3·3·3 학교뜰 프로젝트’를 보며, 학교숲 현장에서 드는 기대와 우려
    [교육연합신문=김태연 기고]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학교 운동장을 숲과 휴식공간, 체육시설이 공존하는 생태공간으로 바꾸는 '3·3·3 학교뜰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학생 1인당 녹지 3㎡, 교실 창밖으로 나무 3그루가 보이는 환경, 학교당 30㎡ 규모의 나무 그늘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반가운 소식이다. 기후위기가 일상이 된 시대에 아이들이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 나무와 그늘, 흙과 생명의 공간을 늘리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학교숲과 환경교육 현장을 오랫동안 다녀온 사람으로서 반가움과 함께 한 가지 걱정도 든다. ‘이번에는 정말 다를까?’ 학교에 숲을 만드는 사업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5여 년 동안 학교숲, 명상숲, 에코스쿨 등 다양한 이름으로 정부와 지자체가 학교에 나무를 심고 녹지공간을 만들었다. 적지 않은 예산도 투입됐다. 하지만 조성 이후 학교의 나무들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는 충분히 돌아보지 못했다. 나무가 제자리를 잡도록 받쳐놓은 지지대를 걷어내기도 전에 줄기에 버섯과 곰팡이가 생겨 결국 잘려나간 나무를 보았다. 곤충이 생긴다 가지가 떨어진다는 민원 등으로 굵은 줄기만 남겨진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벚나무도 적지 않다. ‘학교는 깨끗해야 한다’는 생각에 낙엽 한 장, 나뭇가지 하나 남기지 않고 쓸어내 딱딱한 흙바닥만 남은 학교 정원도 여럿 보았다. 굵은 가지를 한꺼번에 잘라내는 과도한 전지로 몇 년에 걸쳐 서서히 쇠약해지고, 결국 나무껍질이 벗겨진 채 고사하고 몇년재 방치된 수십 년 된 나무들도 보았다. 학교 정원과 어렵게 조성한 학교숲의 나무들이 경관적으로나 생태적으로, 또 아이들이 느끼는 정서적 공간으로서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만났다. 학교숲에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학교에서 나무를 바라보는 행정적 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의 나무는 생태적 가치를 지닌 공간이나 교육의 대상이기 이전에 관리해야 할 ‘시설’로 분류된다. 수목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시설 담당자가 나무 관리까지 맡는 경우가 많고, 결국 예산 범위 안에서 외부 조경업체에 전지를 맡기는 것으로 관리가 끝나기 쉽다. 교사들 역시 나무 관리가 또 하나의 업무가 될까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있다. 과도한 전지로 피해를 입은 나무는 바로 죽지 않는다. 몇 년에 걸쳐 서서히 쇠약해진다. 시설인 죽은 나무는 처리되는 과정도 오래 걸려 고사한 나무를 학생들이 몇 년 동안 보며 지낸다. 그 사이 교장과 담당자, 관리업체가 바뀌면 당시의 관리가 어떤 판단으로 이루어졌는지 책임은 누구인지 조차 확인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학교숲은 만드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나무와 숲,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을 가르친다. 많은 학교가 이러한 교육을 원하고 의뢰한다. 나무가 탄소를 흡수한다고 이야기하고, 생물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고 설명한다. 작은 풀 한 포기와 곤충 한 마리도 생태계를 이루는 소중한 구성원이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정작 그 수업이 이루어지는 학교의 큰 나무는 과도하게 잘려 있고, 그로 인해 쇠약해지거나 고사한 나무 밑에서 수업을 하는 상황이 온다. 아이들 앞에서 참으로 난감한 순간이다. 이것이 문제인 것을 말해야 하나, 누구의 잘못으로 말해야 하나. 생태전환교육은 생태 지식을 배우는 것 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나무를 사랑하라고 가르치면서 어른들은 관리하기 편하도록 나무를 자르고, 아이들에게 생물다양성을 이야기하면서 학교의 작은 풀과 낙엽은 지저분하다며 모두 치워버린다면 교육과 생활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오히려 아이들이 낙엽을 치우고, 떨어진 나뭇가지를 관찰하고, 무더운 날 나무 그늘 아래에서 시원함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노는 일상의 경험이 훌륭한 생태교육이다. 교직원 역시 떨어지는 나뭇가지와 낙엽을 무조건 위험하거나 치워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순환과 공존의 결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계절 변화하는 나무를 살피고 관리하며 그 변화를 아이들과 공유하는 일이 학교의 일상이 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생태전환교육에 가까울 것이다. 이번 '3·3·3 학교뜰 프로젝트'에서 특히 반가운 것은 학교숲 조성 이후 보식 등 유지관리 비용을 지원하고, 학생과 교직원이 설계 단계부터 참여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이제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으면 한다. 학교숲 조성사업의 성과를 사업이 끝나는 해에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몇 제곱미터의 녹지를 만들었는지, 몇 그루를 심었는지, 예산을 얼마나 집행했는지만으로 학교숲의 성공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5년 뒤, 10년 뒤에도 그 나무들이 건강하게 살아 있는지를 봐야 한다. 그리고 학교와 아이들이 그 공간에서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그러려면 나무를 심는 예산만큼 관리 체계가 중요하다. 과도한 전지를 막을 수 있는 관리 기준이 필요하고, 시설 담당자와 교직원이 학교 나무를 이해할 수 있는 기본적인 교육도 필요하다. 나무에 대한 모든 판단을 외부 조경업체에 맡기는 방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무엇보다 학교숲을 관리해야 할 ‘시설물’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교육공간이자 살아 있는 생태계로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서울시교육청의 '3·3·3 학교뜰 프로젝트'가 또 하나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올해 몇 개의 학교숲을 만들었느냐보다 ‘10년 뒤 그 숲이 얼마나 잘 살아 있는지를 자랑할 수 있는 사업’이 되었으면 한다. 학교숲은 심는 것이 아니라 키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 김태연 ◇ 생태환경교육활동연구소 대표 ◇ 강남서초환경운동연합 교육분과위원장 ◇ 가로수시민연대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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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10
  • [기고] 8·15 광복, 이 땅에 무궁화 꽃은 다시 피어날까
    [교육연합신문=김대선 기고] 8월의 뜨거운 태양은 우리 민족에게 광복의 환희와 함께 서늘한 서러움을 동시에 안겨준다. 광복 81주년을 맞이했지만, 정작 나라를 상징하는 꽃인 무궁화는 법적 지위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우리 곁에서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부르며 반만년 역사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은 무궁화를 자수해 품으며 민족의 혼을 지켰다. 도산 안창호가 외쳤던 "무궁화 동산"은 단순히 꽃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꺾이지 않는 겨레의 기상을 의미했다. 일제가 그토록 무궁화를 부정하려 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광복된 땅 위에서 무궁화의 처지는 참담하다. 국기는 '대한민국 국기법'에 의해 보호받지만, 무궁화는 법률 그 어디에도 명문 규정이 없다. 정부 문양이나 각종 배지에 도안으로 쓰이는 관습적 상징일 뿐이다. 법적 근거가 없다 보니 도심과 학교 교정에서조차 무궁화는 외래종에 밀려 잡목 취급을 받기 일쑤다. 진정한 광복은 영토와 주권의 회복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빼앗겼던 문화적 정체성과 민족의 혼을 완벽히 복원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완성해야 할 광복이다. 호국영령이 피로 지킨 이 땅에서, 우리가 그토록 사랑한다는 나라꽃조차 법적 국화로 지정하지 못한 채 방관하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이제 8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무심했던 지난날의 미안함을 털어내야 한다. 정부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무궁화를 대한민국 법정 국화로 공식 지정하는 법률을 즉각 제정해야 한다. 법과 제도라는 토양 위에서 무궁화가 시들지 않는 진정한 나라꽃으로 다시 피어날 때, 비로소 우리의 광복은 그 완성된 빛을 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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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08
  • [기고] 자각과 성찰! 주체적 인간으로 서는 길입니다
    [교육연합신문=김성희 기고] 옛 성현들의 많은 훌륭한 글귀, 시대를 아울러 전해오는 현인들의 많은 좋은 교훈들, 세상에 넘쳐나는 많은 좋은 지식들, 세상의 많은 좋은 책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지식과 지혜가 담긴 글을 실컷 공급받을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 많고 좋은 지식들이 나에게 어떤 유익함을 줄 수 있을까요? 잠시 자신의 유식함에 취하는 것 이상의 무슨 즐거움이 있을까요? 학(學)은 반드시 습(習)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논어의 첫 구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에서 ‘학’과 ‘습’은 단지 공부하고 복습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學’은 새로운 지식과 관점의 흡수, 즉 타인의 지혜, 사물의 이치,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가치와 개념을 새로이 접하고 깨닫는 인식의 확장입니다. 또한, 습(習)은 어린 새가 날개짓을 길들이듯(習), 배운 바를 일상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하여 적용하고 몸에 체화하는 실천적 익힘입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학’이 AI나 미디어를 통해 지식을 접하는 단계라면, ‘습’은 그것을 비판적으로 검증하고 나만의 삶의 언어로 승화시켜 실천하는 ‘자기화 과정’입니다. 다른 의미로 불교에서는 습을 ‘향을 감쌌던 종이’에 비유합니다. 종이에 배어 있는 오래된 향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불교에서 '습'은 마음과 행위가 반복되면서 영혼과 무의식(아뢰야식)에 깊게 물드는 훈습(熏習) 또는 그 남은 단단한 버릇인 습기(習氣/업식)를 의미합니다. 아침잠을 줄여서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소 일어나는 시간보다 일찍 일어나기 쉽지 않죠. 부단히 노력해서 어느 정도 습관이 되었더라도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다시 이른 시간에 일어나기 어려워집니다. 이와 같이 불교에서 ‘습’이란 없애야 할 몸에 밴 성향을 말하는 것입니다. 옷에 향이 은은히 배어들듯, 우리가 반복하는 생각과 행동이 내면의 성품과 운명을 규정짓는 유전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불교에서의 습은 나쁜 습기(선입견, 번뇌)를 비워내고, 선한 마음을 지속적으로 들이는 성찰적 수행을 가리킵니다. 공자와 제자 자공의 대화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깊이 마음과 행동에 익혀야 할 ‘習’은 무엇이고, 비우고 없애야 할 ‘습’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子貢曰: “君子亦有惡乎?” 曰: “有惡. 惡稱人之惡者, 惡居下流而訕上者, 惡勇而無禮者, 惡果敢而窒者.” 子貢이 말하였다. “군자도 미워하는 것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미워하는 것이 있다. 남의 단점을 말하는 자를 미워하며,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을 비방하는 자를 미워하며, 용맹만 있고 예의가 없는 자를 미워하며, 과감하기만 하고 융통성이 없는 자를 미워한다.” 曰: “賜也, 亦有惡乎?” “惡徼以為知者, 惡不孫以為勇者, 惡訐以為直者.”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賜야, 너도 미워하는 것이 있느냐?” “남의 일을 엿보아 아는 척하는 자를 미워하고, 불손한 것을 용맹으로 여기는 자를 미워하고, 남의 비밀을 폭로하면서 정직하다고 여기는 자를 미워합니다.” 《논어》 양화(陽貨)편에 나오는 공자와 제자 자공의 대화입니다. 미워하는 것에 대한 스승과 제자의 문답으로 결국 말과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미워한다는 것은 사적인 감정을 말하는 미움이 아니라 공동체의 도덕과 질서, 정의를 무너뜨리는 것에 대한 공분(公憤)입니다. 나는 이런 부류의 사람은 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과도 같은 말입니다.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라는 혼란기, 왕의 권력을 누르고 대부가 실질적 힘을 행사하는 하극상의 시대 상황에서 이루어진 대화지만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말과 어떠한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 어떠한 것을 몸에 익히고(習) 어떠한 말과 태도(습)를 버려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말’이란 무엇일까요? 말다(그만 두다), (둘둘)말다, (둥그렇게)말다, 末(끝 말)에서 ‘말’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데 우리가 쓰는 말은 마음의 짝입니다. 마음을 반영한 것이 말이지 않습니까? 또 둥근 것을 하늘의 상징으로, 세상을 회전하는 순환의 과정으로 본다면 처음 시작한 말은 반드시 시작한 곳으로 돌아옵니다. 때문에 말의 끝이 좋으려면 처음이 좋아야 합니다. 말은 하면 할수록 말하는 사람의 실체가 드러나는 법입니다. 책임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들에게 ‘바르고 고운 말을 써야 한다.’라고 가르치는 것보다 ‘말’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서 깨우친다면 아이들 스스로 말의 의미를 바로 알고 바른 말을 쓰게 되지 않을까요? 바른말뿐만 아니라 상황에 맞는 말, 경우에 맞는 말, 겸손한 말, 결국 자신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쓰게 되지 않을까요? 노자는 말로 지시하고 명령하는 '언지교(言之敎)'는 반발을 부르지만, 말없이 몸소 삶으로 보여주는 '불언지교(不言之敎)'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스스로 깨어나게 한다고 했습니다. 판단의 ‘여백’의 제공, 정답을 즉시 알려주거나 행동을 지시하지 않고, “너는 이 상황에서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져 스스로 이성적 추론을 하게 돕습니다. 이번에는 사람다운 태도에 대해 말합니다. 惡勇而無禮者, 惡不孫以為勇者, 인간관계에서 지켜야 할 선이 있습니다. 그것은 ‘己所不欲’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상대방도 원하지 않습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가까운 사이일수록 거리두기가 필요합니다. 가까울수록 ‘다 너를 위한 말이야’라며 과도한 개입, 조언, 간섭을 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가치관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경험하고 살아온 만큼 상대방도 그만의 살아온 방식이 있습니다. 편하다고 해서 친한 사이라고 해서 상대방의 고유한 영역을 마음대로 침범해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공자가 제시한 인간의 길, 修己安人입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내면을 바르게 가꾸고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합니다. 지식이 지혜가 되고 배움이 삶이 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 안의 그릇된 성향을 끊임없이 다스리고, 타인을 배려하는 언행을 부단히 몸에 익혀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나 자신을 올바르게 가꾸고 주변의 모든 이를 편안하게 만드는 수기안인(修己安人)의 덕을 완성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수행은 해와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해는 살이를 하면서, 모든 동물, 식물이 살아가게 합니다. 자신이 사는 길이 남들을 살리면서 살아가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즉 ‘살림살이’입니다. 한겨레의 철학입니다. 이 철학을 오늘부터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요? ▣ 김성희 ◇ SLA 어학원 원장 ◇ 무등 환경단체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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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05
  • [기고] 보여지는 대로 보는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사람을 반드시 이깁니다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인간은 누구나 세상을 바라보는 고유한 ‘안경’을 끼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자신이 낀 안경의 색깔에 갇혀, 세상을 오직 ‘보고 싶은 대로만’ 보는 사람은, 선입견을 내려놓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즉 ‘보여지는 대로’ 직시하는 사람을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전자가 편견과 도그마의 노예라면, 후자는 진실과 사유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소통(疏通)이 시대의 담론입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소통을 강조하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전개됩니다. 그럼에도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소통의 중요성만 강조될 뿐 소통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방법론이 생략돼서입니다. 어쩌면 소통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클수록 우리 사회에 불통이 지배한다는 논리가 역설적으로 성립합니다. 소통 문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서양의 대표적인 학자로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J 하버마스를 들 수 있다. 그가 창안한 커뮤니케이션이론(communication theory)은 지난 50년 가까이 서양의 사회과학계를 꾸준히 지배해 왔을 정도로 현대사회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설명력이 높은 이론입니다. 하버마스는 몇 차례 한국을 다녀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국 사회 문제들에 대한 진단 및 처방을 부탁받는 자리에서 “명륜당과 해인사에 모든 답이 있는데 굳이 내 철학을 통해 한국 사회를 연구하려느냐?”는 말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이 발언은 한국 학자들을 위한 단순한 말 잔치가 아니라 체류하는 동안 유가와 불가를 접했을 때 받았던 충격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버마스가 그 당시 장자를 접했더라면 장자 사상이 소통 해법의 진수라고 말했으리라 상상해 봅니다. 그렇다면 장자가 제시하는 소통의 해법은 무엇인가? ‘소요유’, 대붕(大鵬)의 비상에서 보듯이 대붕처럼 한 단계 더 높거나, 더 먼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은 물론이고, 사람들 사이의 의견이나 생각도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는 걸 발견할 것입니다. 이때 타협은 물론이고, 소통의 가능성까지 열립니다. 그래서 장자는 한 단계 더 높거나, 더 먼 곳에서 바라보는 것을 큰 지혜(大知)와 큰 말(大言)로, 또 한 단계 더 낮거나 더 가까운 곳에서 바라보는 것을 작은 지혜(小知)와 작은 말(小言)로 규정한 바 있습니다. 莊子는 성심(成心)을 자신의 스승으로 삼으면 어느 누군들 스승이 없겠는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현자(賢者)만이 어찌 스승이 있겠는가? 어리석은 사람(愚者)에게도 스승이 있다는 경고를 남깁니다. 성심이란 ‘이룬 마음’인데 이는 각자가 살아가면서 만들어내는 마음입니다. 사람마다 모두 이룬 마음이 있어 이것이 불통(不通)의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장자는 이룬 마음 그 자체를 불통의 원인으로 삼지는 않습니다. 현명한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누구나 다 이룬 마음을 지닌다는 현실을 수용해서입니다. 장자가 문제시하는 건 이룬 마음을 각자의 스승(師)으로 삼는 태도입니다. 이룬 마음을 스승으로 삼으면 각자의 의견을 절대시하면서 타협은 고사하고, 소통의 가능성마저 없애기 때문입니다. 사실 부모와 자식 간의 불통도 따지고 보면 각자 만들어낸 이룬 마음을 스승으로 삼은 결과입니다. 그래서 부모라도 자식의 이런 이룬 마음을 무시하면 서로 간에 당장 갈등이 빚어지고 맙니다. 여기서 자식 된 도리, 즉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식의 복종을 강요하면 이는 유가적 해법일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장자의 소통 해법은 유가처럼 윤리적이거나 규범적이지 않습니다. 또 자식과의 관계에서 생겨난 갈등을 막연히 빈 마음(無心)으로써 벗어나고자 하면 이것은 불가적 해법일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장자의 소통 해법은 불가에 비해 보다 과학적이고, 철학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 자식뿐 아니라 성심을 스승으로 삼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넘칩니다. 대통령도 예외는 아닙니다. ‘내가 해서 아는데’란 어법을 자주 사용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대통령 참모들은 침묵이 최선의 처신임을 바로 깨닫습니다. 이 점에선 박근혜 대통령도 비켜 나가지 못합니다. 박 대통령 말을 곰곰 씹으면 분명 일리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일리로 인해 자기 생각만을 스승으로 삼으면 호소력이 반감됩니다. ‘머리와 머리 간(brain-to-brain)’ 소통은 가능해도 ‘가슴과 가슴 간(heart-to-heart)’ 소통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소통(疏通)이란 단어는 통함(通)과 뚫림(疏)의 합성어입니다. 이는 누군가와 통하려면 뚫림이 전제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서로의 성심으로 막혀 있는 걸 어떻게 해야 뚫을 수 있을까요? 莊子는 성심을 자신의 스승으로 삼지 않으면 된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허심(虛心)입니다. 허심은 무심(無心)처럼 빈 마음으로 번역되지만, 뉘앙스에선 큰 차이가 있다. 허심이 마음을 비우는 작업이라면 무심은 마음 자체를 없애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자는 이런 허심의 모습을 ‘산목(山木)’ 편에서 보여줍니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 빈 배가 와서 부딪치면 좁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도 화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배 안에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당장 비키라고 소리칩니다. 한 번 소리쳐 듣지 못하면 다시 소리치고, 그래도 듣지 못하면 거기에는 욕설이 따릅니다. 아까는 화내지 않다가 지금 화내는 것은 아까는 빈 배였는데 지금은 사람이 타고 있어서입니다. 자기를 텅 비움으로써 세상을 유유자적하게 보내면 어느 누가 그를 해치겠습니까? 장자(莊子)가 《제물론(齊物論)》에서 말한 ‘성심(成心)’이란, 자신이 살아온 경험과 지식, 편견으로 굳어진 ‘정해진 마음(고정관념)’을 뜻합니다.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이나 이념의 말은 무조건 옳다고 믿고, 상대 진영의 말은 아무리 객관적인 진실이라도 무조건 거짓이자 악으로 규정하는 정치적 극단주의가 대표적입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성심’이라는 틀로만 재단하는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법정 스님이 말씀하신 무소유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비현실적 빈곤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며, “소유욕에 눈이 멀어 집착의 노예가 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스님이 펼치고 싶었던 세계는 만물을 소유와 지배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존재 그 자체로 존중하며 함께 어우러지는 ‘자연스러운 조화와 비움의 공동체’였습니다. 인간을 짐승이나 기계와 구별 짓고 가장 고귀한 단계로 올리는 동력은 ‘아무도 보지 않는 홀로 있는 공간에서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는 내면의 양심(신독·愼獨)’입니다. 외부의 처벌이나 남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내 안의 도덕적 자존감을 지키려는 의지가 인간을 고귀하게 만듭니다. 성숙이란 타인이 만든 개념(남의 시선, 사회적 성공 기준)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가치란 무엇인가?”, “나에게 성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나만의 고유한 삶의 개념을 스스로 정립하고 거기에 삶을 매칭시켜 나가는 과정입니다. 즉, 성숙은 ‘종속적 주체’에서 ‘자율적 주체’로 변모하는 인격의 완성 단계입니다. 사회의 수준은 시민의 수준과 지도자의 수준을 넘을 수 없다고 합니다. 시민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대답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질문을 권장하는 사회’로 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특히 오지 선다형 시험을 폐지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를 묻는 서·논술형 평가와 토론 수업을 의무화해야 합니다. 가짜 뉴스나 진영 언론이 던져주는 자극적 메시지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이 프레임의 전제는 무엇인가?”를 의심해 보는 시민 인문학 교육을 확산해야 합니다. 쇼펜하우어는 “그날이 그날이라고 지겨워하지 마라”고 말합니다. 이 일침은 반복되는 일상을 지루해하는 인간의 무지에 대한 경고입니다. 오늘이라는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시간이며, 매 순간의 일상은 겉보기엔 비슷해 보여도 우주 전체에서 단 한 번도 똑 같이 반복된 적이 없는 ‘새로운 순간의 연속’입니다. 지루함은 세상이 지루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관찰하는 내 마음의 감각이 마비(成心)되었기 때문임을 깨달으라는 가르침입니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힘’은 덕(德)을 키우는 방법입니다. 덕(德)은 단순히 착한 마음이 아니라, 자기를 자기답게 발현시키는 내면의 동력입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멈추고 내 영혼의 성장을 위해 공부해야 합니다. 맹자가 말했듯, 내 안에 이미 존재하는 측은지심(사랑), 수오지심(정의), 사양지심(겸손), 시비지심(지혜)이라는 선한 싹에 매일 질문과 성찰의 물을 주어 울창한 나무로 키워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인간이라는 그릇의 크기를 키우려면 내 안의 고집과 편견(성심)을 비워내는 ‘심재(心齋)’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즉, ‘비움(虛)’과 ‘경청(聽)’입니다. 내 잔이 이미 내 주장으로 가득 차 있으면 그 어떤 고귀한 지혜도 들어올 수 없습니다. 나의 틀림 가능성을 인정하고 타인의 아픔과 다름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깊은 경청’을 실천할 때 비로소 사람의 함량과 품격이 거대해집니다. 세계를 ‘보여지는 대로’ 보고 반응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세계를 ‘봐야 하는 대로’ 보는 사람은 과거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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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04
  • [기자수첩] 생명을 살리는 안전장비, 선택의 기준은 '가격'이 아닌 '성능'이다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화재는 언제 어디서든 예고 없이 발생한다. 화재 현장에서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일으키는 원인은 화염보다 유독가스와 산소 부족이다. 결국 생명을 지키는 마지막 시간은 대피용 안전장비의 성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학교와 공공기관, 복지시설, 공동주택 등을 중심으로 화재 대피용 안전장비 보급이 확대되고 있다. 이는 매우 바람직한 변화이지만, 이제는 얼마나 많이 보급했는가보다 어떤 성능의 장비를 선택했는가가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안전장비는 일반 소비재와 다르다. 재난 상황에서 단 한 번의 사용이 생명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에 가격이나 외형보다 실제 성능과 검증 결과가 우선되어야 한다. 산소 공급 기능, 유독가스 차단 성능, 사용 가능 시간, 내구성, 공인시험기관의 시험 결과와 국가 인증 여부 등은 반드시 꼼꼼히 확인해야 할 핵심 요소다. 특히 화재 대피용 안전장비는 실제 위기 상황에서 충분한 호흡 시간을 확보하고 유독가스로부터 사용자를 보호할 수 있는 성능이 입증되어야 한다. 기술력이 검증된 제품은 단순한 보호장비를 넘어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안전 인프라가 될 수 있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안전장비는 예산 절감만을 위한 구매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초기 구매 비용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재난 상황에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지이며, 성능이 우수한 제품을 선택하는 것은 비용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투자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공공기관 역시 가격 중심의 구매 관행에서 벗어나 성능 중심의 평가체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객관적인 성능 검증 자료와 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제품을 선정하고, 도입 이후에도 정기적인 점검과 사용 교육을 실시해 언제든 활용 가능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안전 수준은 검증된 기술과 우수한 품질을 갖춘 안전장비를 얼마나 올바르게 선택하고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기술 혁신을 통해 성능을 높인 우수한 안전장비가 공공 안전 현장에 적극 보급될 때 국민의 생명은 더욱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다. 생명을 지키는 안전장비는 결코 가격으로만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최고의 품질과 검증된 성능, 그리고 실제 재난 현장에서 입증될 수 있는 기술력이 안전장비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길이며, 안전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가장 확실한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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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31
  • [기고] 신뢰는 최고의 품질에서 시작된다.
    [교육연합신문=김문찬 기고] 오늘날 소비자는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철학과 가치까지 함께 선택한다. 특히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식품산업은 무엇보다 안전성과 신뢰, 그리고 책임 있는 경영이 요구되는 분야다. 건강한 먹거리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연을 존중하고, 품질을 지키며, 소비자와의 약속을 끝까지 실천하려는 기업의 진정성이 있을 때 비로소 건강한 식문화가 완성된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DACO 안데스 청염을 이끌고 있는 김문찬 대표는 '신뢰를 품질보다 앞세울 수는 없지만, 품질을 통해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경영철학으로 기업을 성장시키고 있다. 김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국민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안전한 식재료'이다. 학교급식과 병원, 복지시설, 공공기관 등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급식 현장에서는 식재료 하나도 생명과 건강을 책임진다는 사명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기업의 경쟁력은 화려한 광고나 일시적인 판매 실적이 아니라 소비자가 오랫동안 믿고 선택할 수 있는 품질에서 나온다"며 "식품기업일수록 국민 건강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철학은 DACO 안데스 청염의 생산과 품질관리 과정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안데스 산맥의 청정 고산 염호에서 자연 증발 방식으로 생산되는 천연 호수염은 자연이 오랜 세월 만들어낸 귀한 자원이다. 여기에 철저한 품질관리와 안정적인 공급체계를 더해 소비자가 믿고 사용할 수 있는 프리미엄 식재료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학교급식은 친환경 농산물과 우수 축산물, 수산물뿐 아니라 소금과 조미료 등 기본 식재료까지도 원산지와 생산환경, 품질관리 수준을 꼼꼼히 살피는 시대가 되었다. 김 대표는 이러한 변화가 대한민국 식문화가 한 단계 성숙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평가한다. 특히, 성장기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학교급식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건강한 생활습관을 형성하는 교육의 일부이다. 아이들이 매일 먹는 한 끼 식사는 미래세대의 건강을 좌우하는 중요한 투자이며, 급식에 사용되는 식재료는 그만큼 엄격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김 대표는 "좋은 식재료는 좋은 음식을 만들고, 좋은 음식은 건강한 사람을 만든다"며 "미래세대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는 것이 식품기업의 가장 큰 사회적 책임"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또한 기업의 역할을 단순한 제품 판매에만 머물지 않는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실천하며 환경을 생각하는 생산방식과 사회적 가치 창출,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이야말로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신념이다. 기업이 이익을 창출하는 것은 물론, 국민의 건강 증진과 안전한 먹거리 문화 확산에 기여할 때 진정한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DACO 안데스 청염은 학교급식을 비롯해 병원, 복지시설, 공공기관, 외식산업 등 다양한 급식시장으로 공급을 확대하며 건강한 식문화 조성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품질혁신과 공급 안정성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천연 호수염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비전도 제시하고 있다. 김 대표는 "소금은 모든 음식의 시작이자 기본이다. 기본이 바로 서야 음식의 품질도 높아질 수 있다"며 "앞으로도 소비자가 안심하고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품질과 책임 있는 경영으로 대한민국 식문화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김문찬 대표가 꿈꾸는 기업은 단순히 매출 규모가 큰 기업이 아니다. 소비자가 가장 먼저 신뢰하고, 학교와 병원, 공공기관이 안심하고 선택하며,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이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 품질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소비자와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책임감이 쌓일 때 비로소 기업은 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미래는 작은 식재료 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기업에서 시작된다. 자연이 만든 건강한 가치를 국민의 식탁으로 이어가는 김문찬 대표의 경영철학은 오늘도 건강한 먹거리 문화와 안전한 급식환경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업의 성공을 넘어, 미래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식문화와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길이 될 것이다. ▣ 김문찬 ◇ DACO(다코) 안데스 청염 설립 경영 대표 ◇ 금령장학회 사무국장 겸 등기이사 ◇ 부산광역시 테니스협회 부회장 ◇ 국민통합위원회 부산지역 자문위원 ◇ 부산 금정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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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30
  • [기고] 부산의 미래 100년, 관광의 중심은 왜 부산진구여야 하는가
    [교육연합신문=이상헌 기고]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세계적인 해양도시다. 대한민국 최초의 국제무역항으로 근대화를 이끌었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임시수도의 역할을 수행하며 대한민국의 역사를 지켜냈다. 오늘날에는 아름다운 해안과 국제행사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부산은 지금 새로운 전환점 앞에 서 있다. 인구 감소와 지역경제 침체, 청년층의 수도권 유출, 관광객의 특정 지역 편중 등은 부산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이제 부산은 단순한 해양관광도시를 넘어 도시 전체가 함께 성장하는 관광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관광산업은 부산의 미래를 견인할 핵심 산업이지만, 현재 관광객의 동선은 해운대·광안리·송정·기장 등 동부산권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관광 소비와 경제적 효과 또한 일부 지역에 편중된다는 의미다. 부산이 글로벌 관광도시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해양관광'과 '도심관광'이라는 두 축을 함께 성장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부산진구가 있다. 부산진구는 단순히 행정구역상의 중심이 아니다. 교통과 상권, 문화와 사람이 모이는 부산의 심장이다. 부산 시민에게 부산의 중심을 묻는다면 대부분은 서면을 떠올린다. 서면은 오랜 시간 부산 최대의 상업·금융·유통 중심지로 성장해 왔으며 지금도 부산의 대표적인 생활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부산 도시철도 1호선과 2호선이 교차하는 서면은 부산 최고의 교통 요충지다. 부산 어디에서든 접근이 용이하며 KTX 부산역, 김해국제공항,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도 30분 안팎이면 도착할 수 있다. 관광의 첫 번째 조건이 접근성이라면 부산진구는 이미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 무엇보다 세계 관광의 흐름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제 관광은 단순히 명소를 둘러보는 시대를 넘어 지역의 일상을 경험하는 체류형 관광(Stay Tourism)으로 진화하고 있다. 관광객은 유명 관광지를 사진으로 남기는 것보다 지역의 음식과 문화, 골목과 사람을 경험하는 여행을 선택하고 있다. ■ 부산을 가장 부산답게 느낄 수 있는 곳 역시 부산진구다. 아침에는 부산시민공원에서 시민들과 함께 산책하고, 점심에는 서면 골목상권에서 부산의 맛을 즐기며, 오후에는 전포카페거리에서 젊은 감성을 경험한다. 저녁에는 송상현광장에서 역사와 문화를 접하고, 밤에는 서면의 공연과 쇼핑, 야간경제를 즐기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 이처럼 부산진구는 하루를 온전히 머물며 즐길 수 있는 체류형 관광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 부산진구의 가장 큰 경쟁력은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압도적인 접근성이다. 부산 어디로 이동하더라도 가장 효율적인 거점이 될 수 있는 교통망은 부산진구만이 가진 강점이다. 둘째는 풍부한 소비 인프라다. 서면은 부산 최대 상권으로 백화점, 쇼핑몰, 숙박시설, 음식점, 공연장, 의료와 문화시설이 밀집해 있다. 관광객이 오래 머물수록 소비는 증가하고 이는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진다. 셋째는 역사와 문화 콘텐츠다. 부산진성, 부산포의 역사, 송상현 장군의 호국정신, 근현대 부산의 성장사를 연결하면 부산진구는 상업도시를 넘어 역사문화관광도시로 발전할 충분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넷째는 부산시민공원이라는 세계적 자산이다. 뉴욕의 센트럴파크가 도시의 상징이 되었듯 부산시민공원 역시 부산을 대표하는 도심관광의 중심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국제음악축제, 야간 미디어아트, 세계음식축제, 문화예술 페스티벌 등을 사계절 운영한다면 부산진구는 연중 관광객이 찾는 도시가 될 수 있다. 다섯째는 MICE 산업과의 연계 가능성이다. 부산은 국제회의 도시로 성장하고 있지만 회의 참석자들이 도심에서 충분히 체류하고 소비하는 구조는 아직 미흡하다. 국제회의와 전시 참가자들이 부산진구에서 숙박하고 쇼핑하며 지역 문화를 경험하도록 연결한다면 관광과 경제 효과는 지금보다 훨씬 커질 것이다. ■ 부산진구 관광 육성은 특정 지역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오히려 동부산과 원도심, 서부산을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부산 전체의 균형발전을 이끌 수 있다. 관광객이 부산진구를 거점으로 부산 전역을 여행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관광 소비는 자연스럽게 부산 전역으로 확산될 것이다. ■ 세계적인 도시들은 이미 이러한 전략을 실현하고 있다. 뉴욕은 센트럴파크와 타임스스퀘어를 중심으로 도시관광을 활성화했고, 도쿄는 신주쿠와 시부야, 런던은 소호와 코벤트가든, 파리는 마레지구를 중심으로 도시의 일상과 관광을 성공적으로 연결했다. ■ 부산도 이제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왜 부산시민공원에서 세계적인 음악축제가 열리지 못하는가. ▲왜 서면은 대한민국 최고의 야간관광 명소가 되지 못하는가. ▲왜 전포카페거리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라이프스타일 거리로 성장하지 못하는가. ▲왜 부산진구는 부산 관광의 중심이 되지 못하는가. 문제는 가능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가능성을 하나의 비전으로 연결하는 전략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제 부산은 선택해야 한다. 해양관광도시라는 현재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해양과 도심이 조화를 이루는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도약할 것인가. 부산의 중심은 이미 부산진구다. 이제는 그 중심성을 관광정책으로 완성해야 할 때다. 부산진구를 관광의 중심으로 육성하는 일은 특정 지역을 위한 개발사업이 아니라 부산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미래 전략이며, 부산의 다음 100년을 준비하는 투자이다. 관광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시작되고, 도시는 사람이 머무는 곳에서 성장한다. 부산진구는 사람과 문화, 역사와 미래가 만나는 도시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이다. 부산의 중심을 관광의 중심으로 만드는 일. 그 시작은 지금이며, 그 이름은 부산진구다. "부산의 중심, 관광의 중심 – 부산진구" Stay in Busanjin, Feel Bu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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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25
  • [기고] 고전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비추는 등불이다
    [교육연합신문=박인희 기고] 인공지능(AI)이 글을 쓰고, 자동차가 스스로 달리며, 손안의 스마트폰 하나로 세상의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과학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우리 사회는 인간관계의 단절, 세대 간 갈등, 생명의 경시, 공동체 의식의 약화라는 새로운 과제를 안고 있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무엇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가?' 그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바로 오랜 세월을 견디며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온 고전과 인문학이다. 고전은 흔히 오래된 책으로만 인식되곤 한다. 그러나 고전은 시대에 뒤처진 과거의 유산이 아니다.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통해 검증된 지혜의 보고이며,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가장 깊은 철학이다. 시대는 변해도 인간의 본성과 삶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고전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살아 있는 교과서다. 『논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를 가르치고, 『맹자』는 의로움을 말하며, 『명심보감』은 삶의 덕목을 일깨운다. 『천자문』은 단순한 한자 학습서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워 주는 인생의 입문서다. 한 줄의 고사성어에는 수백 년의 역사와 인간의 경험이 응축되어 있다. 이를 오늘의 현실에 비추어 이해하고 실천할 때 비로소 고전은 살아 있는 지혜가 된다. 필자는 오랜 세월 훈장으로서 한학과 전통문화를 연구하고 강의하며 한 가지 신념을 지켜 왔다. 고전은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누구나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생활 속 인문학이라는 믿음이다. 그래서 강의에서도 한자를 암기하는 데 머물지 않고, 역사 속 인물과 일화, 문화유산, 풍수지리, 전통문화와 생활철학을 함께 풀어내며 수강생들이 자연스럽게 공감하고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평생학습관과 문화원, 도서관, 복지관, 주민자치센터 등에서 진행하는 「훈장님과 함께하는 인문학, 고전의 향기」 역시 이러한 철학에서 출발했다. '궁즉통(窮則通)'을 통해 역경을 극복하는 자세를 배우고, 허난설헌과 홍랑의 삶을 통해 인간의 품격과 절개를 돌아보며, 부산의 풍수지리와 세계 문화유산을 통해 우리 문화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한다. 또한 천자문과 명심보감이 전하는 교훈을 현대인의 언어로 재해석하여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지혜를 함께 나눈다. 오늘날 평생학습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교육을 넘어, 삶을 성찰하고 인격을 성장시키는 과정이어야 한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오래 사는 것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인문학은 그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이며, 고전은 그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다. 특히, 지역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인문학 강좌는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소중한 공간이 된다. 함께 배우고 토론하며 웃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공동체는 더욱 건강해지고, 세대 간의 이해와 존중도 깊어진다. 인문학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변화된 사람이 지역사회를 바꾸며, 결국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교육의 본질은 지식을 많이 아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길러내는 데 있다. 우리 선조들이 수백 년 동안 고전을 통해 인성과 품성을 닦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정직과 배려, 효와 예, 책임과 신뢰 같은 가치는 결코 낡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가치가 부족한 오늘날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양심을 대신할 수는 없다. 기술은 편리함을 줄 수 있지만 인간다운 삶의 의미를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결국 미래사회를 이끌어 갈 힘은 기술과 인문학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완성된다. 우리는 AI를 배우는 동시에 사람을 이해하는 법도 함께 배워야 한다. 앞으로도 저는 우리 고전과 전통문화의 가치를 보다 쉽고 흥미롭게 전하며, 누구나 인문학을 통해 삶의 품격을 높일 수 있도록 현장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고전은 박물관 속 유물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살아 있는 지혜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사람의 길은 사람에게서 배우고, 그 길은 결국 고전 속에서 다시 만난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과거를 공부하는 일이 아니다. 더 나은 오늘을 만들고, 더 품격 있는 내일을 준비하는 일이다. 그 향기가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며, 미래 세대에게 이어지는 소중한 문화유산이 되기를 소망한다. ▣ 박인희 ◇ 부산 금정서당 훈장 ◇ (사)한중문자교육협회 연수원장 ◇ 동의대학교 외래교수·부산경호고등학교 한문교사 역임 ◇ 부울경 한문지도사협의회 수석부회장 ◇ (재)한국인성교육지도사협회 지도교수 ◇ 저서: 『엉터리 선비의 횡설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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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25
  • [기고] 영어만 되면, 당신의 꿈을 좇아라
    [교육연합신문=이상헌 기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시대"라고 말한다.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국경의 의미는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계와 연결되는 문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 문을 여는 가장 강력한 열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영어다. 우리는 오랫동안 영어를 입시 과목으로만 인식해 왔다. 시험 점수를 얻기 위해 암기하고, 대학 입학을 위한 도구로 활용해 왔다. 그러나 영어의 본질은 점수가 아니다. 영어는 세계와 소통하는 언어이며, 자신의 가능성과 미래를 확장하는 글로벌 경쟁력이다. 오늘날 세계 최고의 대학 강의는 영어로 제공되고 있으며, 글로벌 기업과 국제기구의 업무 역시 영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해외 취업과 창업은 물론 국제 연구와 학술 교류, 문화예술 활동에 이르기까지 영어는 세계와 연결되는 공통 언어가 되었다. 이제 영어는 특정 직업군만의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세계 무대에서 펼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기본 역량이다.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단순히 외국인과 대화할 수 있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더 넓은 세상을 이해하고,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하며, 더 다양한 기회를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같은 실력과 같은 재능을 가진 두 사람이 있다면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기회의 문 앞에 설 수 있다. 결국 꿈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재능만이 아니라 세상과 연결되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학생들은 종종 묻는다. "영어를 왜 공부해야 하나요?" 그럴 때마다 필자는 이렇게 답한다. "영어는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꿈이 언어 때문에 멈추지 않도록 배우는 것이다." 꿈에는 국경이 없다. 그러나 언어는 때로 국경이 된다. 영어는 그 국경을 넘어 세계와 연결되는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도구다.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더 넓은 무대에서 자신의 역량을 펼치고,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영어 자체에 있지 않다. 영어를 통해 만나게 될 사람들, 경험하게 될 새로운 문화, 도전하게 될 다양한 기회, 그리고 마침내 이루게 될 자신의 꿈에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시험 성적이 아니다.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와 국제적 소통 능력, 그리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용기다. 영어는 그 모든 가능성을 연결해 주는 가장 현실적인 도구이며, 미래 인재가 갖추어야 할 핵심 역량이다. 만약 지금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가고 싶은 나라가 있다면,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라. 영어를 준비하라. 영어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당신의 미래를 세계와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 줄 것이다. 영어가 꿈을 대신 이루어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영어는 꿈이 세상과 만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준다. 세계는 준비된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준다. 그 준비의 시작이 영어라면, 오늘의 영어 공부는 내일의 꿈을 현실로 만드는 가장 가치 있는 투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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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22
  • [기고] 이 세상의 주인은 대답하는 자가 아니라 질문하는 자의 것입니다.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우리는 오랫동안 남이 만들어 놓은 정답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외워서 대답하는 ‘응답자’의 삶을 강요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남의 질문에 대답만 하는 삶은 결코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없으며, 그러한 사회는 남의 생각을 따라가는 전술 국가에 머물 뿐입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판을 짜는 ‘질문자’만이 이 세상의 진정한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주 만물과 인간이 만든 모든 시스템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취약성(음)과 장점(양)을 동시에 가집니다. 이를 노자는 “화혜복지소의, 복혜화지소복(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즉 “화 속에 복이 입각해 있고, 복 속에 화가 엎드려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단단하고 강한 것은 성장의 꼭대기에 이름에 쉽게 부러지는 취약성을 안고 있으며, 부드럽고 약한 것은 취약해 보이지만 무한한 변화와 생명력을 품고 있습니다. 장점과 취약성은 상호 의존 관계에 있어서, 어느 단계에 이르면 취약성은 장점이 날아오를 높이와 깊이를 제한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한계와 취약성을 직시할 때 비로소 거만함을 내려놓고 겸손함(虛)을 바탕으로 타인과 공존하는 지혜가 시작됨을 깨달아야 합니다. 생각을 낳는 사전 단계는 ‘지각(Perception)’과 ‘여백(Space)’입니다. 생각(사유)은 공중에서 그냥 떨어지지 않습니다. 깊은 사유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음의 사전 단계가 필요합니다. 관찰과 감각의 세밀화입니다. 현상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사물의 본질을 파고드는 격물(格物)의 관찰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둘째, 기존 도그마에 대한 회의(疑)입니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일상과 권위적 지식에 대해 ‘과연 그러한가?’라는 이성적 의심을 품는 단계입니다. 셋째, 내면의 여백(虛靜) 확보입니다. 고요하고 비워진 마음 상태가 마련되어야 비로소 편견 없이 대상의 참모습을 비추고 사유의 싹을 틔울 수 있습니다. 취약성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것은 사유의 종속성입니다. 세상의 모든 물건과 제도는 생각이 만듭니다. 우리 삶을 채우는 물건과 제도 가운데 우리가 먼저 만든 생각과 물건과 제도를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의 삶을 스스로 생각해서 산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한 생각의 결과를 따라 하며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사유의 종속성이 종속적 주체를 만든다.”고 보았습니다. 지식과 권력, 규범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인간을 특정한 틀 안에 가두는 ‘담론(Discourse)’을 형성한다고 했습니다. 타인이 만든 지식체계와 가치관을 비판 없이 내면화한 개인은, 스스로 주체적으로 생각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권력이 만들어 놓은 규범을 스스로에게 강제하는 ‘종속적 주체(Subjected Subject)’로 전락하고 맙니다. 남의 생각으로 사는 삶은 자기 삶의 주인이 아닌, 권력의 부품에 불과하다는 통렬한 경고입니다. 장자(莊子)는 제물론(齊物論)에서 인간이 자기 경험과 지식으로 굳혀버린 편견의 마음을 ‘성심(成心, 정해진 마음)’이라 불렀습니다. 성심(成心에 빠지면 자기 기준만 옳다고 믿고, 타인은 ‘틀렸다.’고 단정합니다. 오늘날 정치적·이념적 극단주의, 혐오와 편 가르기는 모두 이 성심이 만들어낸 사회적 병리 현상입니다. 혐오와 편 가르기를 벗어나는 방법의 하나로는 ‘심재(心齋)’와 ‘좌망(坐忘)’, 마음을 비우는 심재(마음의 금식)와, 내가 쌓아온 고정관념과 명분, 편견을 순간적으로 잊어버리는 좌망(앉아서 나를 잊음)을 실천해야 합니다. 내 기준을 내려놓고 우주 만물의 다양한 결을 그대로 수용하는 인지적 유연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즉 보편적 질서의 깨달음과 실천입니다. 스마트폰은 단순히 전화기와 녹음기를 연결한 것이 아닙니다. Steve Jobs가 창안한 스마트폰은 ‘휴대 전화(통신)’, ‘MP3/녹음기(음향)’, ‘인터넷 통신기(정보)’ ‘다치 디스플레이(직관적 UI)’라는 이종(異種)의 기술들이 창의적 은유(Metaphor)와 융합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문명으로 재창조된 사건입니다. 새로운 가치는 무(無)에서 나오지 않고,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격격타(格格打)의 요소들을 연결할 때 탄생합니다. 은유는 보이지 않는 추상적 진리를 눈에 보이는 구체적 사물로 다리를 놓아주는 사유의 창조적 도구입니다. 연결과 은유는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영토의 확장이며 건너가기입니다. 그래서 삶은 연결과 은유의 확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은유와 연결의 생활화가 일상화 되어야 합니다. 인문학과 과학, 예술의 교차 읽기, 즉 전혀 다른 분야의 책을 번갈아 읽으며 접점을 찾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라면)’ 질문 던지기, 즉 만약 유교의 ‘정명(正名)’을 AI 윤리에 연결하면 어떻게 될까?처럼 서로 다른 개념을 짝지어 보는 사유 연습을 일상화해야 합니다. 자신이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자기가 원하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를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이 되는 길입니다. 자기를 자기로 만드는 힘, 자기를 자기로 살게 하는 힘, 자기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기가 되는 힘이 ‘德’입니다. 자기를 자기로 살게 하는 힘은 ‘덕(德)’과 질문의 힘입니다. 유교에서 덕(德)이란 단순히 선한 마음씨가 아니라, ‘자기 고유의 본성(덕성)을 그대로 구현하여 자기를 자기답게 만드는 내면의 동력’입니다. 이 덕은 오직 주체적인 질문을 통해서만 발현됩니다. 성격이 급하고 용맹한 제자 자로가 “좋은 말을 들으면 즉시 실천해야 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공자는 “부모와 형제가 있는데 어찌 즉시 행하겠느냐?”며 말렸습니다. 만약 자로가 질문하지 않고 남의 대답만 따라 했다면 자신의 치우친 본성을 바로잡지 못했을 것입니다. 스스로 질문을 던짐으로써 자신의 치우침을 깨닫고, 고유한 인격적 덕(德)을 완벽하게 다듬어 갈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즐거움을 스스로 찾아내 즐겨야 한다는 자쾌(自快), 근원을 살피는 찰기시(察其始), 틀에 박힌 신념에 빠지지 않고 과감히 결별할 줄 아는 오상아(吾喪我) 등 장자 사상의 핵심 기둥에 관해서도 삶의 실력과 연관해 해석해야 합니다. “내 안에서 솟아나는 것, 그것을 살아보고 싶었다.” 『데미안』의 이 문장은 장자의 ‘자쾌(自快)’와 닿아 있습니다. ‘자쾌’는 결코 도피나 무위(無爲)의 삶이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기 삶의 질과 방향을 붙잡으려는 실천적 태도입니다. “남이 입혀준 비단옷을 입고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살아내는 것,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 거기서부터 철학이 시작된다.”고 여겨집니다. 장자와 함께 묻습니다. “지금,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살고 있는가?” 장자가 말한 ‘자쾌(自快)’란 외부의 평가, 권력, 부,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자기 삶의 주체가 되어 누리는 절대적인 내면의 기쁨과 자유’를 뜻합니다. 타인의 인정 욕구 탈피(위기지학),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爲人)을 멈추고, 오롯이 내 영혼의 성장을 위한 공부와 삶(爲己)을 즐기는 것입니다. 동양철학의 지침은 내성외왕(內聖外王)과 충서(忠恕)입니다. “안으로는 성인의 인격을 닦고(修己), 밖으로는 인류와 만물을 편안하게 하라(安人).” 내가 당해서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않는 역지사지의 자비와 공감 능력으로 공동체와 상생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서양철학의 지침은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와 주체적 사유입니다. 소크라테스와 칸트가 강조했듯, 타인이 만들어 놓은 교리와 선동에 무비판적으로 끌려가지 말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이성의 용기(Sapere Aude)”를 가지라는 가르침입니다. 남의 대답을 외우는 노예의 삶을 끝내고, 내면의 양심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주인의 삶을 살 때, 비로소 자기 자신과 세상을 구원하는 참된 덕(德)이 시작될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주입식 교육은 학생들의 생각하는 힘을 약하게 만들어 창의력을 오히려 죽입니다.”.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는 어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지 않으면 미래에는 도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이들을 기계처럼 공부하게 하지 말고, 기계가 할 수 없는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역량을 개발하게 도와야 합니다”고 외치지만 변화는 ‘글쎄요.’입니다. 지금 전남광주특별시에서는 우리가 쓰고 있는 우리말, 우리글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성인과 학생들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깨달음에서 “우리말로 배우는 한자”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天(하늘 천), 地(땅 지)하고 몇 번 외우고 쓰던 암기식 교육에서, 天(하늘 천)은 ‘하늘’을 왜 ‘천’이라 할까? 地(땅 지)는 ‘땅’을 왜 ‘지’라고 할까? 人(사람 인)은 ‘사람’을 왜 ‘인’이라고 할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하늘’, ‘천’, ‘사람’, ‘인’이라는 우리말을 깨우치는, 대답만을 강조하는 교실에서 질문하는 교실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저만일까요? 첫째, 한자를 공부하면 한글의 뜻을 알 수 있고, 둘째, 문해력 신장의 기초․기본이 되며, 셋째, 논리적 사고력의 기반을 이루고, 넷째, 추상적 사고력의 디딤돌이 되며, 다섯째, 대답형 교실에서 질문하는 교실로의 대전환의 출발이 되며, 여섯째, 대체 불가 대한민국 교육의 신기원 구축과 아울러 한글과 한자를 결합하는 교육이 이루어질 때, 우주 이치를 담은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이 형성되어, 세계를 영도할 수 있는 인재 전당의 첫 삽이 전남광주특별시에서 시작되었음에 가슴 뿌듯합니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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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21
  • [社說] 서이초 3주기, 언제까지 두려운 교실을 방치할 것인가
    [교육연합신문=사설]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이 발생한 지 어느덧 3년이 흘렀다. 거리를 가득 메웠던 교사들의 외침과 정치권의 서슬 퍼런 약속이 무색하게도, 교육 현장은 여전히 악성 민원과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라는 깊은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등 정치권은 3주기를 맞아 “안심하고 가르칠 학교를 만들겠다”고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뿐인 위로가 아니다. 정부와 국회는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법과 제도로 완벽히 보호하고, 악성 민원인을 엄벌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즉각 수립해야 한다. 이토록 강경한 법적 울타리가 필요한 이유는 교권 추락이 단순히 교사 개인의 직업적 만족도를 넘어, 공교육 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서이초 사건 이후 여러 법안이 마련되었다고는 하나, 현장의 교사들은 여전히 악성 민원인의 표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두려움 속에서 교단에 서고 있다. 교사가 위축된 교실에서 정상적인 생활지도와 훈육은 불가능하다. 결국 교권의 상실은 다수 학생의 학습권 침해와 교실 붕괴라는 부메랑이 되어 교육 생태계 전체를 파괴하고 있다. 교사를 지키는 것이 곧 아이들의 안전한 배움터를 지키는 일이다. 일각에서는 교권 보호 조치를 과도하게 강화할 경우, 학생인권조례의 취지가 위축되거나 정당한 학생의 인권 및 학부모의 감시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혹여나 발생할지 모르는 일부 교사의 부당한 대우로부터 학생을 보호할 최소한의 장치는 남겨두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교권과 학생인권을 이분법적 대립 구도로만 바라보는 협소한 시각에서 비롯된 오류다. 교권을 확립하자는 것은 학생의 인권을 억누르자는 것이 아니라, 무분별하고 악의적인 허위 신고와 감정적 보복성 민원으로부터 교사의 생존권을 지키자는 최소한의 방어벽 마련이다. 현재의 시스템은 정상적인 교육 지도마저 아동학대로 둔갑시키는 구조적 허점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정당한 학부모의 권리를 넘어선 갑질을 방치하는 꼴에 불과하다. 따라서 정치권과 교육 당국은 더 이상 눈치 보기식의 미온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 교사가 확신과 자부심을 가지고 단호하게 가르칠 수 없을 때, 교육의 미래는 없다. 무분별한 신고에 대해 교사에게 무조건적인 직위해제 처분을 내리는 악습을 완전히 뿌리 뽑고, 악성 민원에 대해서는 기관 차원의 강력한 법적 대응 체계를 의무화해야 한다. 서이초 3주기인 오늘, 우리는 다시 한번 엄중히 요구한다. 말로만 외치는 안심 학교 대신, 교사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가차 없고 강력한 제도적 철책을 지금 당장 구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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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20
  • [기고] ‘삶’은 힘이 드는 것입니다
    [교육연합신문=김성희 기고]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능력이 많아도, 젊은 사람에게도, 성공한 사람에게도, 자기관리에 철저한 사람에게도 인생의 한 부분이 그렇게 정해진 것처럼 힘든 시기가 찾아옵니다. 서양 철학에서는 삶은 힘을 쓰고, 힘이 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서양은 자녀들을 키우면서 ‘삶은 힘을 쓰고, 힘이 드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하면 내 자녀에게는 힘이 들지 않은 삶의 길을 말합니다. 지난달 방한했던 엔비디아의 회장 젠슨 황에게 아이들 교육에 관한 질문을 하자, 그의 답변은 아주 짧고 명쾌했습니다. ‘핵심은 환경입니다. 자녀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열어주고 스스로 분투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줘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실패할 기회를 만들어 줘야 그들이 나중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실패를 배우는 시기가 빠르면 빠를수록 아이들은 더 강력한 회복탄력성, 끈기 그리고 인격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스스로 한계에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탐구하면서 실패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세요. 가장 중요한 건 교육의 분야가 아닙니다. 어떤 환경을 제공하느냐 입니다. 완벽함을 추구해야 하지만 어려움운 반드시 겪어야 합니다. 그래야 위대해질 수 있는 거죠.’ AI가 생활 전반에서 사람의 일을 대신하고 있고 전 세계의 근황을 시시각각 알 수 있는 오늘날을 살고 있는 사람이나, 이웃 나라가 전쟁이 났는지 어떤지 모르고 그저 하루하루를 하늘에 맡기고 살던 옛날 사람이나 누구에게나 고달픈 시간은 반드시 있고, 찾아옵니다. 공자에게도 죽음 앞까지 갔던 고난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陳蔡之厄, 55세 경부터 시작한 주유천하, 그리고 이 시기가 공자 63세 때라고 전합니다. 당시 공자는 초(楚)나라 소왕의 초대를 받아 이동 중이었습니다. 주변의 작은 나라였던 진(陳)나라와 채(蔡)나라의 대부(고위 관리)들은 공자가 강대국인 초나라에 등용되어 자신들을 압박할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군사를 동원해서 공자 일행이 가는 길을 막고 야산에서 포위해 버렸습니다. 사마천 사기 공자세가의 기록에 따르면 7일 동안 불을 피워 밥을 짓지 못했다고 하니, 제자들은 굶주림에 지쳐 일어설 기운조차 없었고, 병이 들어 누워있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곧 굶어 죽기 직전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공자는 이런 상황에서 혼자 거문고를 타고, 강의를 하고, 책을 읽었습니다. 자로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묻습니다. “군자도 이처럼 궁할 때가 있습니까?” 공자는 대답합니다. “그렇다. 군자도 진실로 궁할 때가 있다. 하지만 소인은 궁하면 무슨 짓이든 다한다.” 在陳絶糧, 從者病, 莫能興. 子路慍見曰 : 君子亦有窮乎 子曰 : 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 (論語 위령공(衛靈公) 편) 비참한 이 상황을 이렇게 당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를 공자의 이 말씀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吾少也賤 故多能鄙事(오소야천 고다능비사). 그리고 널리 알려진 기록이지만 창고지기(委吏), 가축 돌보는 일(乘田) 과 같은 직업도 가졌는데 그 일을 할 때는 그 일에 집중했다고 합니다. 실패의 위기에 놓이고 어려운 상황이 될수록 동료들과 자신 안의 놀라운 힘이 발휘되는 경험을 한 젠슨 황 회장은 어려운 시기에는 ‘큰 기회가 왔구나’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숨겨진 능력을 꺼내주는 고난을 기다린다고도 말합니다. 진채지액의 역경 앞에서도 흔들림 없는 공자의 중심 가치 또한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진심을 다하고(忠), 타인에게는 사랑을 베푸는 것(恕), 즉, 이타적인 인(仁것)의 실천이었습니다. 누구도 실패하고 싶지 않지만 실패 없는 성공은 없습니다. 지식을 얻고 똑똑해지기는 쉬워도 인격을 기르는 것은 어렵습니다.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것은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단련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 스스로에게 실패의 기회와 극복의 기회를 줘야 합니다. 이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역경을 만났을 때 그 역경에서 벗어나는 방법과 과정입니다. 소인같이 무슨 짓이든 다 하면서(小人窮斯濫矣) 위기를 벗어나는 것은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며 성공하는 사람은 만들 수 있지만 이타적 가치로 공동체를 살리는 위대한 사람은 만들 수 없습니다. 땅에서 돋아나는 새싹을 나타내는 한자가 ‘士‘입니다. 선비라는 말은 선생, 선배과 같은 말로 공동체를 어둠과 같은 땅속에서 밝은 세상으로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를 말합니다. 한 톨의 씨앗이 싹이 되어 나올 때 씨앗의 지녔던 꿈과 희망을 싹이 대신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새싹입니다. 아이들보다 인생을 먼저 살고 있는 우리들은 아이들을 어려움 속에서도 무슨 짓이든지 다하는 소인이 아닌 홍익(弘益)의 가치관을 가진 위대한 사람으로 키워낼 수 있는 진짜 선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장자와 함께 묻습니다. “지금,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의 소명은 무엇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장자는 자쾌에 대해, “내 안에서 솟아나는 삶의 진동에 따라 나를 기꺼이 살겠다는 장자의 결단”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설명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당신 자신에게 설명해 본 적 있습니까? 당신이 당신에게 설득될 때, 거기서부터 진짜 삶이 시작됩니다.” ▣ 김성희 ◇ SLA 어학원 원장 ◇ 무등 환경단체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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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13
  • [기고] 이기대 해안도로, 더 이상 질주 본능의 무대가 돼선 안 된다
    [교육연합신문=고선화 기고] 최근 부산 남구 이기대 해안도로에서 발생한 차량 충돌 사고는 우리 지역사회에 큰 충격과 우려를 안겨주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차량 여러 대가 크게 파손됐고, 자칫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아찔한 사고였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우리는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다. ■ 과연 이기대 해안도로는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이기대는 부산 남구 용호동이 품고 있는 천혜의 자연유산이다. 푸른 바다와 기암절벽, 오륙도를 품은 수려한 해안 절경은 부산을 대표하는 관광자원이자 시민들의 소중한 휴식 공간이다.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은 이기대 해안산책로를 걸으며 부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지역 주민들은 일상 속에서 바다와 자연을 벗 삼아 삶의 여유를 누린다. 특히, 해 질 무렵 붉게 물드는 수평선과 광안대교의 야경, 오륙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부산을 대표하는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이처럼 이기대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자연과 사람, 문화가 어우러진 부산의 소중한 자산이며 미래 세대에게도 물려주어야 할 도시의 자랑이다. 그러나 최근 일부 운전자들 사이에서 이기대 해안도로가 이른바 ‘와인딩’ 명소로 알려지면서 과속과 난폭운전, 심야 굉음으로 인한 주민 불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름다운 해안도로가 안전한 관광도로가 아닌 위험한 질주의 공간으로 인식되는 현실은 매우 안타깝다. ■ 도로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누구도 타인의 안전을 위협할 권리는 없다. 순간의 스릴과 과시욕을 위해 공공도로를 질주의 무대로 삼는 행위는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특히, 이기대 해안도로 주변에는 산책객과 관광객,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수시로 오가고 있다. 단 한 번의 실수도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주민들은 오랫동안 야간 시간대 반복되는 차량 굉음과 과속 운전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해 왔다. 이는 단순한 소음 문제가 아니다. 주민의 안전권과 생활권을 침해하는 문제이며, 나아가 지역 관광 이미지와 경쟁력까지 훼손하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세계적인 해양관광도시를 지향하는 부산에서 대표 관광명소가 위험한 운전 문화의 상징으로 거론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는 관계기관의 보다 적극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경찰은 과속 및 난폭운전에 대한 집중 단속을 강화하고, 이동식 단속장비와 CCTV 확충, 순찰 강화 등을 통해 재발 방지에 나서야 한다. 부산시와 남구도 도로안전시설 개선과 과속방지 대책, 보행자 안전 강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운전자 스스로가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안전운전에 동참해야 한다. ■ 안전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며, 시민의 생명보다 우선하는 가치는 없다. 한 번의 사고는 우연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위험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우연이 아니다. 남구의회는 주민들의 불안과 우려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겠다.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력해 보다 안전한 교통환경 조성에 최선을 다하겠다. 이기대 해안도로가 위험한 질주의 상징이 아닌, 부산을 대표하는 안전한 명품 관광도로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제도적 지원과 정책 마련에도 적극 나설 것이다. ■ 이기대 해안도로는 누군가의 레이싱장이 아니다. 시민들이 걷고, 가족들이 추억을 만들고, 관광객들이 부산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는 길이다. 이제 이 길은 질주 본능의 무대가 아니라 안전과 품격, 그리고 자연이 함께 숨 쉬는 부산의 대표 명품 해안도로로 지켜져야 한다. 천혜의 절경을 품은 이기대가 시민 모두에게 사랑받는 안전한 공간으로 남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때다. ▣ 고선화 ◇ 부경대학교 글로벌 정책대학원 정치언론학과 재학 ◇ 제10대 남구의회 전반기 의장 ◇ 용호3동 향토장학회 회장 ◇ 前제9대 남구의회 후반기 부의장 ◇ 前제9대 남구의회 의원 ◇ 前제8대 남구의회 의원 ◇ 前부산남구녹색어머니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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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12
  • [기고] 세계유산위원회 부산 개최…세계도시 부산의 새로운 도약
    [교육연합신문=백경원 기고] 오는 7월 13일부터 29일까지 부산 해운대 벡스코(BEXCO)에서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가 개최된다. 세계 196개국의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 문화유산 분야 종사자 등 3,000여 명이 참여하는 이번 회의는 세계유산의 등재와 보존, 보호를 결정하는 최고 권위의 국제회의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이번 행사가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개최된다는 사실은 부산의 국제적 위상과 경쟁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성과라 할 수 있다.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를 넘어 세계와 소통하는 해양수도이자 국제도시로 성장해 왔으며, 이번 회의를 통해 그 위상을 다시 한번 세계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유네스코는 교육·과학·문화 분야의 국제협력을 통해 인류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국제기구이다. 문화유산 보호는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 인류가 공유해야 할 소중한 자산을 미래세대에게 온전히 전승하기 위한 공동의 약속이다. 특히, 문화다양성은 인류 공동의 유산이며,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에 대한 존중은 지속 가능한 평화의 출발점이다. 이러한 가치가 바로 세계유산위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산은 이미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 영화도시로 지정되어 국제 문화도시로서의 입지를 구축해 왔다. 이번 세계유산위원회 개최는 부산이 문화와 관광, 국제회의 산업이 융합된 글로벌 도시로 한 단계 더 도약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부산이 추진하고 있는 ‘피란수도 부산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는 매우 중요한 과제다. 부산은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 임시수도의 역할을 수행하며 국가를 지켜낸 역사적 공간과 기록을 간직하고 있다. 현재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며, 향후 등재가 성사된다면 대한민국 최초의 근·현대 세계유산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된다. 이번 회의에는 세계유산 등재 심의위원과 국제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하는 만큼 부산 피란수도 유산의 가치와 역사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회의 기간 동안 열리는 각종 전시, 공연, 문화행사는 부산의 문화예술 역량을 세계에 소개하는 무대가 된다. 부산이 보유한 유형유산과 무형유산, 아름다운 자연유산과 관광자원을 널리 알림으로써 국제관광도시로서의 경쟁력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성공적인 행사 개최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세계유산 보호와 활용을 위한 정책 연구와 국제협력 체계를 지속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부산은 이번 회의를 계기로 세계유산 정책과 연구를 선도하는 도시로 성장해야 하며,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한 교육·관광·콘텐츠 산업 발전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아울러 국가유산청과 유네스코 관계기관,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국제포럼과 학술대회를 지속적으로 유치하여 세계유산 보호와 활용의 중심도시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이번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는 단순한 국제행사가 아니다. 이는 부산이 세계와 함께 미래를 설계하는 문화도시로 도약하는 출발점이며, 대한민국이 세계 문화유산 보호와 국제협력의 책임 있는 국가로서 역할을 다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세계유산의 가치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를 연결하고 미래를 밝히는 인류 공동의 자산이다. 이번 세계유산위원회 부산 개최가 세계 속의 부산, 문화로 성장하는 부산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 ▣ 백경원 ◇ 前한국교총 객원 연구원 ◇ 前동아대학교 조형대학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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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11
  • [기자수첩] 학생은 냉방병, 교실은 온도 불균형…"예산은 쓰고 효과는 없다"
    [교육연합신문=김병선 기자] 교실은 학생들이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그만큼 교실 환경은 학습권과 건강권을 좌우하는 중요한 교육 여건이다. 하지만 학교 현장을 둘러보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교실 공기청정기다. 학생 건강을 위해 보급된 공기청정기지만, 정작 수업 시간에는 전원이 꺼져 있는 교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기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이 수업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인천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공기청정기를 켜면 학생들의 집중력이 떨어져 대부분 수업 시간에는 사용하지 않는다"며 "쓰지도 않는 장비의 렌탈비가 매년 집행되는 현실을 보면 교육예산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공기청정기가 사실상 '전시용 시설'로 남아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학생들의 학습권을 고려하면 계속 가동하기 어렵고, 사용하지 않는 장비에 예산을 투입하는 것도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여름철이면 교실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반복된다. 천장형 에어컨이 설치돼 있지만 공기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교실 안에서도 자리마다 체감온도가 크게 달라진다. 에어컨 아래에 앉은 학생들은 찬바람을 직접 맞아 냉방병을 호소한다. 반면 교실 뒤편이나 창가, 구석 자리에 앉은 학생들은 냉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더위를 견뎌야 한다. 같은 교실 안에서 '춥다'와 '덥다'가 동시에 발생하는 이른바 '냉방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선풍기를 함께 사용하는 학교도 있지만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회전 소음은 수업 집중도를 떨어뜨리고, 무선 마이크 사용 시에는 하울링까지 발생해 오히려 수업 환경을 저해한다. 최근에는 과도한 냉방을 둘러싼 학부모 민원도 잇따르고 있다. 한 학부모는 일부 학교에서 에어컨을 장시간 최저온도로 가동해 학생들이 여름철에도 담요와 겉옷을 준비할 정도라며, 학생 건강을 고려한 권장 실내온도 기준 마련과 학교별 냉방 운영 개선을 교육청에 요청했다. 전문가들은 실내외 온도 차가 지나치게 커질 경우 냉방병과 호흡기 질환, 두통, 면역력 저하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반대로 냉기가 닿지 않는 공간에서는 온열질환 위험도 높아질 수 있다. 결국 냉방은 단순한 시설 관리가 아니라 학생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제 공기청정기 설치 여부를 넘어 교실 전체의 공기질과 냉방 환경을 함께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기정화와 공기순환, 냉난방 효율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육예산 역시 설치 실적보다 운영 성과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활용도와 교육 효과를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현장에 맞는 시설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다. 기후위기와 폭염이 일상이 된 지금, 교실 환경의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장비를 얼마나 설치했느냐가 아니라 학생 모두가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배울 수 있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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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10
  • [기고] 스스로 사유할 줄 모르는 개인과 국가는 선동에 휘둘리는 노예가 됩니다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오늘날 대한민국은 물질의 풍요 속에서 정신의 빈곤을 겪는 거대한 전환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선진국이 만들어 놓은 생각의 결과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습득해 실행하던 ‘추격자(Fast Follower)’로서의 전술국가 시대는 이제 끝났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스스로 지도를 그리고 새로운 판을 짜는 ‘개척자(First Mover)’이자 전략 국가로 도약해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 미래를 길러내야 할 우리 교육의 현실은 과거의 낡은 문법에 여전히 발이 묶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교실에서 일방적으로 정답만 외우게 하는 암기식 교육의 현상입니다. 공자는 일찍이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를 위인지학(爲人之學)이라 불렀습니다. 현재의 서열화된 상대평가와 오지선다형 입시 체제 아래서 아이들은 지식을 내면화하여 삶을 바꾸는 공부가 아니라, 오직 평가를 위해 지식을 기계적으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우주는 가공되지 않은 ‘자연(自然)’과 인간의 의지가 개입된 ‘문명(文明)’으로 나뉩니다. 문명이 고도화될수록 인간은 거대한 시스템과 기술의 노예가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문명사회에서 인간의 대처 방안으로는 자율적 주체성의 확립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문명사회에서 인간이 중심을 잡는 유일한 길은 ‘자율적 주체성’의 회복이라고 여겨집니다. 유교에서는 이를 ‘신독(愼獨)’과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 부릅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시스템의 부품)이 아니라, 내면의 주체적인 양심과 이성을 깨워 문명의 이기(利器)를 다스리는 ‘주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느 나라는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고, 또 어느 나라는 새로운 물건을 만들지 못하고, 만들어진 물건들을 가져다 쓰는가? 또 어떤 사람들은 고유함과 자신만의 특별함을 추구하려고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옆에 있는 다른 사람과 어떻게 다른가 하고 비교하는 삶을 사는가? 어떤 사람들은 생각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 생각의 결과들을 가져다 쓰고 있는가? 하는 문제로 귀결됩니다. 선진 국가들이 생각을 한다는데, 우리처럼 떠나간 첫사랑이 떠오르고, 어제 친구들과 다투었던 이야기들이 생각의 신호들로 떠오르는 것들은, 생각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잡념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잡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요? 인간이 만든 것에 관심이 있으면 문과를 가고, 인간이 안 만든 것에 관심이 있으면 이과를 갔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만든 교육 제도였습니다. 특별한 설명도 없이 나는 ‘문과’를 가서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어쨌든 인간은 우리가 안 만든 자연 위에서 무엇인가를 만드는 존재로 살고 있습니다. 인간이 문화적 존재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원초적인 의미입니다. 누군가는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고, 누군가는 만들어진 변화를 수용합니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문화적 존재인데, 즉,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존재인데, 이 정의가 내려지는 순간 인간은 두 격으로 나뉘어집니다. 누군가는 무엇인가를 하거나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인간이고, 누군가 하고 만들어서 야기해 놓은 변화를 받아들이거나 수용합니다.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할 때, 인간은 자유롭고 주체적이 됩니다. 야기해 놓은 변화를 수용하는 단계를 우리는 종속적이다라고 합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만들어 놓은 ‘생각의 결과(지식)’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습득하여 실행하는 ‘전술국가’로서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남의 지도를 보고 달리는 전술 국가는 결코 일등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새로운 지도를 그리는 ‘전략 국가’가 되려면 ‘질문(Concept)을 디자인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남이 낸 문제의 답을 맞히는 훈련을 멈추고, “지금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문제는 무엇인가?”를 스스로 찾아내어 판을 짜는 개념 설계자(Concept Creator)들이 사회 전면에 나설 수 있도록 인식의 대전환이 일어나야 합니다. 정답 찾기에서 ‘문제 정의(Problem Framing)’로 나아가야 합니다. 교사가 알려주는 것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학습 방법에서 논리와 추론의 힘을 발휘하는 학습 방법으로 대전환을 이루어야 합니다. 생각을 하려면 반드시 ‘틈(여백)’과 ‘다양성’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빽빽한 시간표와 획일화된 평가 기준 속에서는 어떤 사유도 자라지 못합니다. AI 디지털 교과서(AIDT) 등 에듀 테크를 적극 도입하되, 이를 통해 확보된 여유 시간에는 학생들이 철학적 토론과 창의적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유연한 교육과정을 보장해야 합니다. 학생 개개인의 고유성을 인정하는 ‘만물정관(萬物靜觀)’의 가치에 따라, 서열화된 상대평가와 일제고사를 과감히 탈피해야 합니다. 교사를 ‘지식 전달자’로 키우던 과거의 임용·연수 체계를 송두리째 바꿔야 합니다. 교사가 먼저 질문하는 자, 즉 ‘학문적 탐구자’가 되어야 합니다. 연수 역시 정답이 정해진 직무 연수에서 벗어나, 교사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고 동료들과 자유롭게 ‘교육 철학’을 논쟁하는 사유 중심의 연수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인간을 가장 눈멀게 하는 것은 ‘확신’입니다. 종교적 확신, 정치적 확신, 도덕적 확신이 대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가치관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정치적·종교적·도덕적 도그마는 타인을 배척하고 사유를 멈추게 하는 가장 무서운 감옥입니다. 이 세 가지 확신(정치·종교·도덕)을 깨부수는 판단적 장치인 ‘의(疑, 회의)’와 ‘충서(忠恕)’의 정신이 도입되어야 합니다. 내가 가진 신념이 틀릴 수도 있다는 ‘인지적 겸손’이 첫 번째 장치입니다. 두 번째는 내 마음을 미루어 타인을 대하는 ‘충서(忠恕)’의 정신입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그가 왜 그런 확신을 갖게 되었는지 역사와 맥락을 들여다보는 ‘역지사지’의 다원적 열린 마음만이 확신의 감옥을 부술 수 있습니다. 공자는 확실치 않은 것에 대해 의심을 품고 판단을 유보하는 다문궐의(多聞闕疑)의 ‘의(疑)’와 ‘충서(忠恕)’를 중시했습니다. 현재의 교실은 교사의 질문에 학생이 대답하는 ‘일방통행’ 식 구조가 대부분입니다. 이를 뒤집기 위해서는 교육의 문법 자체를 바꾸어야 합니다. ‘학문’이란 글자 그대로 ‘배우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수업의 평가 기준을 “누가 좋은 대답을 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허를 찌르는 깊은 질문을 던졌는가”로 바꾸어야 합니다. 과거 조선의 서원이나 유학의 토론 전통처럼, 스승과 제자가 평등한 위치에서 도(道)를 묻고 답하는 주체적 토론(問답) 문화를 교실의 표준으로 정착시켜야 합니다. ‘질문 중심의 서원(書院) 모델’ 복원이 절실합니다. 특히 고도의 인공지능(AI)이 지식의 결과물을 초 단위로 생산해 내는 새로운 시대에는 논리적 사고와 추론 능력이 개인과 국가의 생존을 결정합니다.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나만의 지식을 완성하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훈련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AI의 답변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확실치 않은 것에 의심을 품고 판단을 유보하는 공정하고 비판적인 회의(多聞闕疑)의 과정을 수업에 제도화해야 합니다. 데이터의 전제와 숨겨진 오류를 논리적으로 검증하며 ‘질문(Concept)을 디자인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AI 시대의 구체적인 교육 지침입니다. 한편, 교육이 본질을 잃고 표류하는 배경에는 무너진 제도와 사회적 무질서도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교육감 선거제입니다. 백년대계를 세워야 할 교육의 수장 자리가 직선제라는 틀 속에서 정치 선거판으로 변질되면서, 이합집산과 이익단체의 주장이 경쟁하듯 난무하고 있습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교육 전문가 집단과 학부모가 후보의 전문성을 1차 검증하는 ‘제한적 주민직선제’나 시·도지사와의 정책 조율을 위한 ‘러닝메이트제’ 등 제도적 보완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시급합니다. 교육 공직 선거에서부터 명분과 언어적 책임을 엄격히 묻는 정명(正名) 정신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어른들의 진흙탕 같은 편 가르기와 언어 폭력을 그대로 습득한 아이들 사이에서 혐오와 시기, 증오 현상이 무서울 정도로 심해졌다는 점입니다. 맹자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정의(義)의 시작이라 했습니다. 남을 비방하여 이익을 취하는 행동이 당당한 전략이 아니라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짓임을 깨닫게 하는 염치(廉恥)의 교육이 가정과 학교에서 복원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내가 당해서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는 서(恕)의 정신과 서로 다름을 인정하되 조화를 이루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대화법을 가르쳐 사회적 분열의 고리를 끊어내야 합니다. 스스로 사유할 줄 모르는 개인과 국가는 결국 타인의 생각과 선동에 휘둘리는 노예가 됩니다. 암기식 교육과 편 가르기 혐오를 치료하는 것은 결국 하나의 뿌리에서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정답만 외우게 하는 ‘노예의 교육’을 끝내고, 내면의 양심을 깨워 스스로 삶의 지도를 그리게 하는 ‘주인의 교육’을 시작해야 합니다. 사유하는 개인,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를 만드는 정명(正名)의 길에 대한민국 전략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말의 질서, 논리와 추론 능력이 급합니다. “有眞人而後 有眞知”라는 말이 가슴을 파고 듭니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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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06
  • [기고] 북극항로 선점, 해양수도 부산의 성공은 누가 만드는가?
    [교육연합신문=한효섭 기고] 길이 있는 곳에 문명이 꽃핀다. 실크로드를 시작으로 새로운 길이 열릴 때마다 새로운 문명이 생기고 인류는 발전했다. AI 시대, 지구촌에 남은 마지막 블루오션이자 기회의 길은 바로 ‘북극항로’라고 한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오는 2030년이 되면 북극항로가 완전히 열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개항 150주년을 맞이하는 부산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업 등 인프라와 항만 역량을 갖추고 있어 북극항로 선점할수 있는 기회의 땅이 된다. 이러한 시점에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이전하고 해수부 장관을 역임한 전재수 장관이 부산광역시시장에 당선되어 북극항로 선점을 위해 해양수도 부산을 공약하고, 아울러 강철호 부산 동구청장 당선인 역시 북항을 중심으로 한 해양수도 해양도시 발전을 주장하며 부산으로서는 북극항로와 함께 세계적인 해양수도 부산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6월 29일 오후 2시 부산일보 대강당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부산일보, 한국해양정책연합, 부산동구청이 공동 주최하고 북항미래포럼이 후원한 전재수 부산시장 당선인을 초청하여 '해양수도 부산이 가야 할 길' 토론회를 개최했다. 행사는 국기에 대한 경례에 이어 20여 명의 내빈들을 소개하고 전재수 부산시장 당선인의 30분 정도 기조연설과 기념 촬영을 하였다. 이후 북항미래포럼 대표인 조한제 좌장의 진행으로 토론자 김종태 한국해기사협회 회장, 송화철 해양대 교수, 이호진 부산일보 국장과 전문가의 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씁쓸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전재수 부산시장 당선인의 기조연설이 진행될 때만 해도 대강당이 가득 차 있었는데, 당선인이 자리를 뜨자마자 거짓말처럼 텅 비어버린 것이다. 남은 사람은 행사 집행부 몇 명과 극소수의 시민뿐이었다. 부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행사를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준비한 관계자들과 정성을 다해 발표를 준비한 토론자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100년 만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이며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는 북극항로 시대, 해양수도 부산의 영광을 꿈꾸며 헌신하는 전재수 시장 당선인과 강철호 동구청장 당선인, 그리고 행사를 주최, 후원하는 단체와 토론자에게 죄스러운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부산일보에서 오래전부터 5단 통으로 대대적인 광고를 통해 행사를 안내했기 때문에, 필자 역시 부산일보 광고를 보고 모든 일과를 제쳐두고 참석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렇기에 텅 빈 대강당이 보여주는 부산 시민의 무관심은 더욱 뼈아프게 다가왔고, 가슴이 답답하고 부산 시민으로서 부끄럽고 미안했다. 물론 애국가 제창도 생략하고, 자료도 없고, 집행부의 준비가 부족했지만, 시장 당선인의 연설이 끝나자 악수 치고 사진 찍고 명함을 교환하며 눈도장 찍기에 바빴고, 시장 당선인이 나가자 전체 참석자의 95%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행태는 실망스러움을 넘어 참담했다. 남겨진 텅 빈 강당에서 토론자의 내용을 듣고 질의응답에 동참한 사람은 집행부를 제외하면 협성건업 정철원 회장과 극히 적은 소수의 시민이 전부였다. 이것이 과연 우리 부산의 기관장, 단체장, 그리고 참여 시민들과 부산사랑의 현주소란 말인가. 또한 북극항로 선점과 해양수도 부산을 향한 부산 시민의 관심과 시민정신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단 말인가, 너무나 부끄러웠다. 앞으로 어느 누가, 어떤 단체, 어느 학자들이 해양도시 부산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앞장서서 일하겠는가 하는 생각에 가슴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며 걱정이 태산이다. 북극항로의 선점과 해양수도 부산의 성공은 부산 시민의 몫이다. 그리고 부산 시민의 삶과 생존, 그리고 미래 세대의 운명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중차대한 문제이다. 북극항로는 부산이 맞이할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이다. 이는 월드컵이나 BTS 공연보다 부산의 존립과 발전, 그리고 부산 시민의 삶과 행복을 위해 10배, 100배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직시하고 깊이 반성하며 성찰해야 한다. 북극항로 시대, 해양수도 부산의 성공은 오직 부산 시민의 관심과 참여 속에서 단합된 힘으로 만들어야 한다. 세계적인 해양수도 건설에 우리가 먼저 솔선수범하여 북극항로 시대를 선도하는 세계 속의 주인공이 되자. 그리하여 찬란한 새로운 부산의 문명과 북극항로를 선도하는 위대한 해양수도 부산을 후손에게 물려주자.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부산 시민의 책무이자 시대정신이다. 부산 시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동참해 주시기를 간절히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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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01
  • [기고] 정치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것이다
    [교육연합신문=최진석 기고] 정치의 본질은 무엇일까. 정치는 권력을 얻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공공의 책임이어야 한다. 주민의 삶을 더 안전하게 만들고, 더 따뜻하게 만들며,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다.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면서 필자는 이러한 신념을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새길 수 있었다. 비록 주민들의 선택을 받지 못해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선거 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주민들의 목소리는 정치가 왜 필요한지를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의 한숨, 일자리를 걱정하는 청년들의 고민, 치솟는 물가와 생활비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들의 현실, 그리고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들의 간절함은 정치가 결코 주민들의 삶과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필자는 선거 기간 내내 ‘젊은 진심’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화려한 구호나 보여주기식 약속보다 주민들의 목소리를 진심으로 듣고, 어려운 이웃들의 어두운 길을 밝히는 가로등 같은 정치인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치는 선거에서 이겼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며, 졌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정치는 선거 이후에도 계속된다. 주민들의 곁에서 함께 웃고 함께 고민하며,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정치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청년세대는 기성세대와 미래세대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청년의 시선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도전정신으로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필자 역시 앞으로도 지역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부산진구의 발전과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주민 곁을 지키고,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더 나은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정치는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중받고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정치의 시작이자 끝이다. 주민들의 기대와 격려를 소중히 간직하며,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지역과 시민을 위한 길을 걸어가고자 한다. 선거는 끝났지만 주민을 향한 진심과 책임은 끝나지 않았다. 정치는 권력이 아니라 사람을 향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의 중심에는 언제나 주민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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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기고
    2026-06-11
  • [기고] 영화의전당에서 시작된 공연예술의 새로운 가능성
    [교육연합신문=편집국] 2026 코카카아트페스티벌 인 부산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전국 470여 개 예술단체와 기관, 3000여 명의 공연예술 관계자들이 부산 영화의전당에 모여 공연예술의 현재와 미래를 논의하고 교류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공연예술 아트마켓을 넘어 대한민국 공연예술 생태계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방향을 보여준 의미 있는 자리였다. 공연장과 전시부스, 쇼케이스와 네트워킹 프로그램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예술단체와 문예회관, 문화기관 간 협력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 부산 개최를 통해 영화의전당이 공연예술 유통과 교류의 거점으로서 충분한 경쟁력과 잠재력을 갖추고 있음을 확인했다. 영화의전당은 야외극장과 하늘연극장, 중극장, 광장, 루프시어터 등 다양한 공간을 보유한 국내 최고의 복합문화예술시설 가운데 하나다. 또한 해운대와 센텀시티, 수영강을 연결하는 부산 문화관광의 중심축에 위치해 있어 공연예술과 관광, 시민 참여가 자연스럽게 융합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앞으로 영화의전당 앞 도로 지하화 사업과 광장 확장 사업이 완료되면 공간 활용의 가능성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영화의전당과 APEC나루공원, 수영강 휴먼브릿지 일대가 하나의 거대한 문화축제 공간으로 연결된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규모와 형태의 축제가 가능해질 것이다. 부울경 지역 예술단체들이 참여하는 프린지페스티벌이 수변 공간 곳곳에서 펼쳐지고 시민과 관광객들이 공연을 따라 이동하며 도시 전체를 체험하는 축제 모델도 충분히 구상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거래 중심의 아트마켓을 넘어 시민과 예술인이 함께 만들어가는 참여형 문화축제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여기에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 공연장, KNN 소극장, 부산디자인진흥원, 시청자미디어센터, 영상센터 이벤트홀 등 주변 문화시설과의 연계가 더해진다면 코카카아트페스티벌은 도시 전체가 무대가 되는 국제 공연예술축제로 성장할 수 있다. 세계적인 공연예술도시인 에든버러와 아비뇽 역시 공연장 하나가 아닌 도시 전체를 축제 공간으로 활용하며 성장해 왔다. 부산 또한 영화의전당을 중심으로 공연예술 유통과 창작, 교류와 관광이 결합된 새로운 문화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이번 2026 코카카아트페스티벌 인 부산은 그 가능성을 확인한 소중한 출발점이었다. 이 성과가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공연예술 발전과 지역문화 활성화를 이끄는 지속 가능한 플랫폼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부산을 찾아준 전국의 문화예술인과 문예회관 관계자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앞으로도 영화의전당이 대한민국 공연예술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문화플랫폼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바란다. ▣ 서승우 ◇ (재)영화의전당 공연본부장 ◇ 동천고등학교 총동문회 부회장 ◇ 부산시 영화영상정책위원회 위원 ◇ 부산남구립예술단 운영위원 ◇ 부산연극연극상 선정위원 ◇ 부산창작오페라단 이사 ◇ 前부산문화재단 이사 ◇ 前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운영위원 ◇ 前부산국제연극제조직위원회 부집행위원장 ◇ 前부산연극협회 부회장 ◇ 2025년 국무총리표창장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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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11
  • [기자수첩] 부산남구청장 선거…1216표 차가 남긴 과제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부산 남구청장 선거는 개표가 끝나는 순간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던 초접전 승부였다. 최종 결과는 더불어민주당 박재범 당선인의 승리였다. 승패를 가른 숫자는 불과 1216표. 득표율 차이로는 0.87%포인트에 불과했다. 이 숫자는 단순한 선거 결과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선거는 어느 한쪽의 압도적인 승리가 아니었다. 남구 주민들은 각자의 생활권과 지역 여건에 따라 서로 다른 선택을 했고, 그 다양한 민심이 모여 최종 결과를 만들어냈다. 권역별 표심을 살펴보면 남구의 민심은 분명하게 갈렸다. 대연권에서는 박재범 당선인이 우세를 보였고, 우암동과 감만1동 역시 박 당선인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반면 용호1동과 문현권에서는 김광명 후보에 대한 지지가 강하게 나타났다. 특히, 용호1동에서 김광명 후보가 기록한 2619표 차의 우세는 이번 선거에서 가장 인상적인 결과 가운데 하나였다. 이에 비해 박재범 당선인은 용호2·3·4동과 대연권, 우암동 등에서 고른 우위를 확보하며 최종 승리를 이끌어냈다. 결국 이번 선거는 특정 지역의 몰표가 아닌 생활권별 민심의 총합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러나 선거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주민들의 메시지다. 박재범 당선인은 7만 186표를 얻어 승리했지만 김광명 후보 역시 6만 8970표를 획득했다. 이는 절반에 가까운 주민들이 김 후보의 정책과 비전에 공감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선거를 단순히 승자와 패자의 구도로 바라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남구 주민들이 행정 혁신과 지역 발전, 복지 확대, 도시 경쟁력 강화 등 다양한 과제를 해결해 달라는 주문을 정치권에 전달한 선거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선거는 끝났지만 남구가 풀어야 할 과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오륙도선 트램 사업, 재개발·재건축, 지역경제 활성화, 고령화 대응 복지정책, 청년 정주여건 개선, 문화관광도시 육성 등 어느 하나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박재범 당선인에게는 남구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주민들의 목소리까지도 행정에 반영하는 포용의 자세가 필요하다. 선거 과정에서 제기된 다양한 의견과 정책 제안을 적극 수렴하는 것이야말로 민선 9기 성공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김광명 후보에게도 따뜻한 격려와 박수를 보내고 싶다. 끝까지 지역 곳곳을 누비며 주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했고, 남구의 미래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제시했다. 비록 선거에서는 아쉬운 결과를 맞았지만 지역 발전을 위한 진정성과 열정은 많은 주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박재범 당선인에게는 축하를, 김광명 후보에게는 위로와 격려를 전한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승패 그 자체보다 결과를 존중하고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있다. 선거 과정에서 경쟁했던 두 사람 역시 남구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경쟁의 시간을 뒤로하고 화합의 시간으로 나아가야 한다. 승자는 주민의 선택에 더 큰 책임으로 답해야 하고, 패자는 주민의 뜻을 존중하며 지역 발전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또한 주민들 역시 선거 이후의 갈등과 대립을 넘어 지역 발전이라는 공동 목표를 향해 힘을 모아야 한다. 1,216표. 누군가에게는 기쁨의 숫자이고 누군가에게는 아쉬움의 숫자일 수 있다. 그러나 남구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 숫자는 갈등의 기준이 아니라 통합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남구 주민들은 이미 선택을 마쳤다. 이제 남은 과제는 선거 과정에서 갈라졌던 마음을 하나로 모아 더 큰 남구, 더 살기 좋은 남구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이번 선거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정치적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구의 새로운 도약과 발전을 위한 출발점으로 기억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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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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