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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칼럼/기고 기사

  • [기고] 짧아지는 직업의 라이프 사이클
    [교육연합신문=정은상 기고] 직업의 라이프 사이클(Life Cycle)이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발달과 4차 산업혁명의 등장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난해부터 열풍이 불고 있는 메타버스까지 가세하면서 기존의 직업을 흔들어놓고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꿈을 현실로 바꾸면서 인류는 진보해 왔습니다. 최근 빅테크 기업들의 행보는 이런 현상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여기서 말하는 빅테크(Big Tech)는 구글,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과 같은 대형 정보기술 기업을 가리킵니다. 네이버와 카카오도 어느새 부쩍 도약하고 있습니다. 금융을 비롯한 모든 산업에서 이들 빅테크들의 약진이 돋보이면서 직업 라이프 사이클 단축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기업이나 개인은 직업 세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81세의 원로 만화가 이정문은 그의 나이 24세인 1965년에 학생 과학잡지의 의뢰를 받아 35년 뒤인 서기 2000년의 미래 상상도를 그렸습니다. 그 그림 속에는 전기자동차를 비롯한 태양열을 이용한 집, 원격치료, 손에 들고 다니는 TV, 재택 학습, 달나라 여행 등 현재까지 모두 실현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또한 2050년 미래를 만화로 그렸는데 여기에는 우주 발전소, 웨어러블 컴퓨터, 움직이는 건물, 날아다니는 자동차, 해저 주택, 순간 이동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상상력입니다. 이 모든 상상이 현실이 되었고 앞으로도 인류의 꿈은 하나씩 이루어질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변화 속에 우리가 가진 직업의 부침이 쉴 새 없이 계속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각자가 가진 직업에 안주해서는 곤란합니다. 올해 화두는 메타버스, NFT, 로봇 그리고 헬스케어라고 합니다. 어느새 인공지능이라는 용어는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인공지능이 사라진 게 아니라 이제 인공지능은 우리의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폰을 위시해서 곳곳에 이미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스마트폰에 탑재된 인공지능조차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빅테크를 비롯한 기업들의 발 빠른 행보로 인해 사라지는 직업에 여전히 연연하며 살아간다면 우리 직업의 미래는 불안하고 불투명합니다. 필자가 10년 동안 창직 코칭을 해 오면서 평생직업을 찾아야 할 것을 누차 강조해 왔지만 여기서 말하는 평생직업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라이프 사이클이 긴 직업을 찾는 일이 그다지 쉽지 않은 만큼 언제든지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역량도 갖춰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변화하는 직업의 라이프 사이클에 잘 적응하는 세대가 바로 MZ세대입니다. 게임과 아바타 세상에 친숙한 그들과의 소통은 미래 새롭게 생겨날 직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시장에서의 구매력까지 갖춘 그들은 점점 더 새로운 직업의 선봉에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그들을 외면하고 나머지 세대만을 겨냥한 비즈니스는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변화는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코로나19는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고 있으며 언제 사라질는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마냥 기다리기만 하기에는 과학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고 수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새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변화의 시대에 적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아무도 변화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결국 도태되고 맙니다. ▣ 정은상 ◇ 창직학교 맥아더스쿨 ◇ 직업재구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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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기고
    2022-01-17
  • [자살예방 칼럼] 원불교 사은윤리(四恩倫理)는 상생원리(相生原理)-⑦
    [교육연합신문=김대선 기고] 그리스도교는 ‘생명의 종교’라 전제하고 세상의 모든 생명을 소중하며 인간의 현세 생명도 중요하지만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구도과정이라고 보았다. 예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말씀하심은 당신 스스로 자신이 생명을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그리스도가 모든 인간 생명의 빛이요, 생명의 빵이요, 생명 자체이시다. 요한복음에서 참 생명이란 영원한 생명을 전제하며 영원한 생명 때문에 현세 생명은 소중하다. 부활을 통해서 얻게 되는 영원한 생명은 지금 여기서 현세 생명을 누렸던 존재로서 생명이다라고 하였듯이 불교의 연기론, 불생불멸의 생사관도 상통하므로 생명은 상생의 원리라고 본다. 생명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인 1)자신을 생명의 종교, 생명을 위한 종교로 인식한다. 2)생명은 신성한 것이다. 3)살인을 단죄한다. 4)낙태를 단죄한다. 5)안락사를 단죄한다. 6)사형제도를 반대한다고 밝혔듯이 원불교 교도들에게 30계문 중 첫 번째로 연고 없이 살생을 말라하였다. 불교에서 살도음을 가장 중시함도 같은 맥락이다. 원불교 교조 소태산 대종사의 깨달음에 대한 올바른 해석은 대종사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기록한 교전의 이해로부터 비롯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일원상에 대한 진리와 우주만유가 은恩의 망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음에 대한 선언이 그의 깨달음의 내용이라 하겠다. ‘우주 만유의 본원本源이고 모든 불보살 성현의 심인心印이고 일체 중생의 본성本性인 일원상’이란 거대한 진리의 품안에서 희로애락과 더불어 나고 죽는 현상세계의 장대한 파노라마가 지속되고 있다. 현상세계는 불생불멸의 궁극적 진리가 형형색색으로 나타났다 소멸하며, 그 가운데서 옳고 그르고 이롭고 해로운 사건들로 전개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의 전개는 인과보응이란 엄격한 법칙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법칙의 작용체가 영靈, 기氣, 질質인 것이다. 원불교 2대 종법사이셨던 정산종사께서는 ‘영은 만물의 본체로서 영원불멸한 성품이며, 기는 우주 만유의 생기로서 그 개체를 생동케하는 힘이며, 질은 만유의 바탕으로서 그 형체를 이름이니라’라고 했다. 내가 살아있음은 곧 영과 기 그리고 질인 육신이 있기 때문이다. 소태산 대종사의 사은四恩에 대한 우리의 이해의 바탕은 여기서 비롯되고 있다. 우주만유는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이라는 네 가지 분류 가운데 들어가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우주만유에서 파장되어 나온 영향력은 나의 삶의 틀과 한 데 어우러져(상응하여) 매 순간 새로운 사건으로 새로운 ‘내’가 시시각각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매 순간의 진행과정은 우주만유와 ‘내’가 상응하여 만들어내는 한 작품 한 작품의 창조적인 행위의 연속인 것이다. 이 창조행위의 책임자는 물론 나 자신의 영,기,질인 것이다. 우주 만유로부터 오는 파장을 나의 영,기,질의 파장이 어떻게 맞을 것이며,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는 전적으로 내 책임 아래 있으므로 진급, 강급의 원리가 나오게 되며, 처처불상, 사사불공, 영육쌍전의 교리가 나오게 된다. 우주만유는 나와 떨어져서는 의미가 없고 나 또한 우주만유와의 관계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상보적인 관계인 것이다. 상보적인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사건이 야기되는 재창조 작업이 진행되므로 유기적인 상응관계가 되는 것이다. 원불교 생명철학의 입장에서 보는 생명의 문제는 이런 관점으로 설명되는 것이다. 한 생명은 독자적인 별개로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만유와 항상 교감하며, 그 영향력을 주고받는 상응관계 속에 있는 생명으로서 복합적인 교감작용 없이는 결코 존속할 수 없는 생명인 것이다. 불교의 연기적緣起旳인 세계상에서 ‘나’ 라는 존재는 무아, 무상의 존재로 설명되고 있다. 곧 생명의 유무가 어떤 실체로 잡혀지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연기적인 세계구조 속에서 생명 자체는 없는 것이다. 단지 관계만이 있을 뿐인 것과 같다. 그러나 원불교의 유기적인 상응구조 속에서 생명은 불교의 연기관계로 파악되는 생명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우주만유와의 동적인 교감 과정 가운데 있는 생명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은의 공물公物’ 이라는 당연한 귀결이 된다. 원불교는 우주의 궁극적 실재이자 모든 만물의 근원을 “일원一圓”으로 표현하며 인간이 살고 있는 대상세계 모두는 天地ㆍ父母ㆍ同胞ㆍ法律의 四恩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인간존재는 이 四恩의 “恩旳公物”로서 인간은 이 일원의 진리를 총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고 실현 시킬 수 있으며 또한 일원의 진리를 실현시켜주는 장으로서 인간의 마음을 들고 있다. 그러므로 원불교에서는 인간 존재의 근원은 일원一圓이며 존재의 구조는 四恩의 公物로 설명한다. 그런데 이 우주만물 허공 법계는 영靈, 기氣, 질質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 구성 비율에 따라 동식물 이나 인간으로 구성 되므로 인간은 결국 자연과 하나가 되는 원리다. 원불교는 닮거나 하나가 되려는 자연합일 형식에서 나아가 각 개인이 고유한 개성을 지닌 절대적 가치를 함유한 존재로서 “우주의 진리를 잡아 인간의 육근 동작에 둘러 씌워 활용하는 사람이 곧 천인이요 성인이요 부처”(불지품 12) 라고 보고 있다. 말하자면 “사람은 만물의 주인이요 만물은 사람의 사용할 바이며.... 사람의 정신이 능히 만물을 지배하고 인의의 대도가 세상에 서게 되는...”(서품 5) 것이다. 이것은 인간존재가 곧 진리와 하나가 되는 동격으로 까지 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지닌 가능성의 무한함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원불교에서 보는 인간존재는 비본래적인 실존이거나 실존의 분별에 있지 않고 <은적 공물>로서 무한한 가치를 지닌 진리 존재로 보고 있다. 원불교 생명사상을 통해 본 인간의 존재는 이와 같은 관점에 소태산 대종사는 위의 귀결에서 보듯이 은의 관계로 이어주었다. 즉, 우주만유의 영향력 자체를 사은으로 정리 한 것이다. 나 자신도 이 네 가지 안에 드는 ‘나’이므로 은恩 그 자체여야 한다. 항상 스스로가 은혜를 느끼고 대상들에게도 은혜를 베풀어 주어야 하는 ‘나’인 것이다. 하루를 돌아볼 때 몸과 입과 생각으로 업을 무수하게 지은 우리들에게 소태산 대종사는 ‘은의 존재’ 라고 위상지어 준 것이며 우리의 삶은 은혜로 충만할 수 있도록 자리이타적自利利他的생활이어야 하고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의 감사생활속에서 은의 윤리를 실행에 옮기지 않을 수없는 것이다. 우주만유와 내가 항상 교감하며 영향력을 주고 받는다면 그 상응관계는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할까. 나를 비롯한 우주만유의 온 생령들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바람직한 상응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그것은 단순히 함께 작용하는 상응이 아니라 서로 살려주는 상응관계여야 한다. 그래야만 나를 비롯한 온 우주만유의 생령들이 강급이 아닌 진급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로 살려주는 상응작용의 원리를 상생원리相生原理라 한다. 상생의 원리는 피동적이 아닌 적극적인 개념으로, 또 타율적이 아닌 자율적인 의지의 특성을 지닌 의미로 설명되고 있다. 대종사의 은의 윤리는 이러한 상생의 원리로서 처처불상, 사사불공, 무시선, 무처선의 감사생활을 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은의 윤리가 그대로 진가를 발휘하도록 하기 위해선 상생의 원리를 자각한 바탕에서 처처불상, 사사불공, 무시선, 무처선의 실행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원불교 사대강령인 정각정행正覺正行, 지은보은知恩報恩, 불법활용佛法活用, 무아봉공無我奉公의 가르침도 이런 바탕위에서 알고 행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남아선호 사상, 장기매매, 복제인간, 유전자 등의 남용에서 오게 되는 심각한 윤리문제는 소태산 대종사의 은의 윤리가 우주 만유의 실존 모습으로서의 생명관-영, 기, 질의 유기적인 상응관계-의 바탕이 되는 상생의 원리를 자각하여 처처불상, 사사불공, 무시선, 무처선의 감사생활로 이어지게 될 때 은恩사상을 확실하게 이해 할 수 있으며 이를 일상생활에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윤리의 실천방안은 상생원리相生原理와 사대강령四大綱領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할 것이다. 종교는 시대의 변화와 상황에 따른 도덕 윤리를 제시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윤리적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것이 큰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원불교 사은윤리는 보편적 진리인 ‘일원의 진리’에 바탕한 ‘과학적인 합리성’을 포함한다. 따라서 원불교 사은윤리의 현대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자 한다. 첫째, 사은은 우주의 생명과 개체의 존재가 ‘서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상호근원적인 관계’임 을 밝히고 있으므로 우주 만유에 대한 생명존중 사상의 근본이 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인류가 안고 있는 생명에 대한 윤리의식의 부재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하나의 근원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에도 이유가 있다. 이에 대해 소태산은 우리가 서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사람도 없고 금수도 없고 초목도 없는 곳에서 나 혼자라도 살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볼 것이니, 그런다면 누구나 살지 못 할 것은 다 인증할 것이다. 불교에서는 인드라망으로 자연과 인간이 연기적 원리에 따른 하나의 그물망을 이룬 동체同體 라고 설명한다. 현대 생명과학 기술도 서로가 연결된 유기체임을 뒷 받침 해주고 있다. 모든 유기체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보이지 않는 복잡한 그물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생명의 속성은 상호작용을 유지할 때 인류의 생명이 존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생명의 존엄성에 기초한 상생적 존재가 생명의 본질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나와 사은의 관계는 순환의 생명관계로 의지적 관계이자 상생의 관계로 서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적 유기체’이다. 우주는 한 기운과 한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정산종사鼎山宗師의 법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인종과 생령이 근본은 다 같은 한 기운으로 연계된 동포이며, 인류뿐 아니라 금수까지라도 본래 한 기운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사은의 생명윤리는 모든 생명이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명 그 자체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각기 분리되어 있는 것 같으나 서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커다란 한 몸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은윤리를 인식하고 보은의 실천을 함으로써 인류는 참된 본성을 회복하고 더불어 살아 갈 지침을 갖게 된다. 둘째, 사은윤리는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차별 없는 평등윤리를 근본으로 하고 있다. 사은윤리의 생명에 대한 존중은 인간뿐 아니라 동·식물에까지 확대 하였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평등윤리를 포함한다. 천지은天地恩을 통해 하늘만 숭배하던 사상을 땅까지 숭배하게 하고, 부모은父母恩을 통해 아버지만 위하지 않고 어머니도 같이 위하게 하고, 동포은同胞恩을 통해 선비만 높이던 사상을 농공상도 같이 존중하며, 법률은法律恩을 통해 입법자立法者뿐만 아니라 치법자治法者도 같이 존중하게 하였다. 이는 고하高下의 계급과 물아物我의 차별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며 만물이 서로 없어서는 살수 없는 동등하게 존중 받아야 하는 생명체라는 자각에서 나온다. 셋째, 사은윤리는 인류의 화합을 통한 공생공영共生共榮의 길을 제시한다. 사은의 공생사상은 인간과 우주만물의 윤리와 인연관계를 밝혀준다. 근현대 세계는 갈등과 전쟁의 역사였다. 민족과 민족이 나뉘어 싸우고 국가와 국가끼리 나뉘어 싸우며, 인종차별, 성 차별, 지역차별, 노소차별, 학벌차별, 종교차별, 빈부차별로 나뉘어 대립하여 왔다. 그러나 인류는 처참한 전쟁과 대립과 갈등의 경험을 통해 점점 공생共生과 공영共榮의 길을 찾고 있다. 양극화는 사회의 빈곤화로 이어지며, 극심한 빈부 격차는 가난한 자만이 아닌 나라 경제전체를 어렵게 만들어 모두가 몰락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공생과 공영의 길이 아니고서는 세계인이 행복과 평화로 살아갈 길이 없다. 사은윤리는 서로가 연결되어 있는 관계성과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깨닫게 함으로써 공생공영의 인류사회를 열어가는 동력이 될 것이다. 모든 생명은 사은의 공생의 원리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성장한다. 따라서 사은의 공생공영 사상은 인류의 생명과 평화에 직결이 되어 있는 만큼 사은윤리에 따른 바른 이해와 보은의 실행이 있어야 한다. 이는 자연과 인간과 서로에 대한 존중과 부처님을 대하듯이 불공하는 지극한 정성으로 실현 가능하다. 종교간 생명인식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생명존중과 인간존중의 정신이 현실에 구현될 수 있도록 하는 종교인들의 연대활동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슬람국가와 비 이슬람국가와의 충돌 등 크고 작은 이해충돌인 한국사회의 갈등에 있어서도 원불교는 생명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넘어 실천운동을 해야 할 것이다. 원불교는 궁극적으로 불생불멸의 생사관, 인과보응의 생사관이다. 생함도 멸함도 없는 변화인, 영혼은 영원히 멸하지 않는 무한한 존재이며 육체를 이끌어가는 주체적인 존재이다. 또한 인과의 변화는 본래 낳는 것도 없고 멸함도 없는 그것이 우리의 본성이며 우리의 성품자리이다. 그것이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윤회하면서 선인선과 악인악과로 나타난다. 나아가 사은윤리가 상생원리이듯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은 우리가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은의 관계로 상생이자 공생이다. 이렇듯 생명은 영원토록 존중되어야 한다는 불멸의 진리이다. 우리나라가 세계10대 경제대국인 선진국에 진입하였으나 아직도 OECD 자살률 1위로 자살공화국이다. 물론 코로나19‘로 우울과 고통으로 힘들겠지만 대한민국 당면 과제인 ‘자살률 낮추고, 출생률 높이는데’ 교단적 참여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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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10
  • [교육칼럼] 학교 교육복지 실천은 이렇게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오늘날 우리 교육을 언급할 때면 바늘에 실 가듯이 따르는 말이 있다. 바로 교육의 불평등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신자유주의의 물결과 그 이념의 신봉에 따라 능력주의라는 신화에 몰입돼왔다. 그래서 초등학교 입학부터 학력 격차가 발견되며 중학교 시기가 되면 거의 격차가 고정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결국 성인이 돼서는 소득 격차로 이어진다. 좀 더 구체적으론 부모의 학력,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아이들의 어휘력과 성적, 독서 능력은 차이를 보이며 이것은 곧 아이의 학력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교육의 불평등은 처음부터 빈부격차에 따라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고착된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에 시작한 교육불평등(Educational Inequality)에 대한 조기 개입 정책인 ‘헤드 스타트(Head Start)’ 사업의 결과는 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현재 우리의 무상교육처럼 보육 과정의 기초를 이루는 영유아 프로그램이었다. 최근 50주년 기념 전국 연구 결과에 의하면 0세~5세 빈곤계층 아동과 가족에 대한 헤드 스타트 프로그램 참여는 유의미한 변화를 이뤘다. 하지만 초등학교 입학 후 3년이 지나면서 그 차이가 사라지고 계층 간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즉, 빈곤계층 학생 대다수는 재학 기간이 길어질수록 학력 경쟁에서 뒤지고 결국 학교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좌절, 무기력해지는 결과를 보여줬다. 따라서 이에 대한 분석으로 학교에서는 무엇이 부족한가에 대한 연구를 유발했고 이는 곧 교육복지정책의 출발점이 됐다. 비로소 교육에서의 존엄과 공평의 가치가 주요 관심사가 된 것이다. 여기서 존엄이란 무엇인가?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의거하면 이는 아이를 아동으로서 충분한 존재로 남과 비교하지 않고 그 자체로 인정하는 사상이다. 따라서 교육에서 아이에게 중요한 일을 생각하고 결정하고 표현하고 책임질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식의 확장이다. 그럼 공평은 무엇인가? 이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조건에 의해 기회가 차별돼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다. 즉, 능력과 적성에 따라 교육받을 권리를 말하며 성별, 외모, 민족이나 국적, 거주지, 부모의 소득과 경제 수준, 부모의 사회문화적 지위, 장애, 질병 등과 관계없이 발달의 기회를 누려야 한다는 개념이다. 우리 교육의 불평등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이는 무언가를 실행해서 균등하게 해소해야 하는 풀어야 할 숙제다. 어떻게 말인가? 첫째, 교육 기회 및 조건을 전(全) 학생에게 균등하게 제공해야 한다. 둘째, 정책적 노력 및 지원이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전폭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는 곧 다양한 교육취약계층 -장애학생, 다문화 탈북학생, 학업중단학생, 농산어촌 및 구도심 지역 학생 등-의 욕구를 해소하는 적극적인 정책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복지 정책 추진의 기반이 되는 법과 제도, 사업, 인적⋅물적 자원, 예산 등을 재고해야 한다. 셋째,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이만 바라보며,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을 살피고 길게 멀리 바라보는 정책이어야 한다. 교육복지 실천의 핵심 원리는 아이들을 전인적 관점으로 관찰하고 이해하려는 노력과 관계중심에서 아이의 필요와 강점을 고려하고 생태학적 관점에서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조화로운 실행이 함께해야 한다. 넷째, 교사와 학교장의 교육복지 리더십과 철학이 굳건하게 뒷받침돼야 한다. 곧, 안전과 안녕을 추구하고 배움과 성장이라는 철학으로 민주주의의 공동체에 어울리는 평등(공평)한 기회, 존엄성을 존중하는 교육과정으로의 연계가 실현돼야 한다. 이제 학교는 가정, 마을과 함께 공동으로 이뤄가는 교육복지의 핵심 거점이어야 하며 보다 철저한 교육 기회의 평등, 평등한 과정을 보장해 보장적 평등, 학력 격차 해소를 위한 결과의 평등을 지향하고, 보편적 권리로서의 교육복지, 공교육 책임교육을 실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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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10
  • [기고] 직업관이 달라졌습니다
    [교육연합신문=정은상 기고] 직업관(職業觀, occupational view)이 달라졌습니다. 직업관이란 직업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일정한 관념을 말합니다. 직업이란 단어를 네이버 사전이나 위키백과에서 찾아보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이라고 나와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종사(從事)는 어떤 사람을 좇아 섬기는 것입니다. 결국 직업이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사람을 좇아 섬기면서 일정 기간 동안 자신의 적성과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전적 의미의 직업은 그 유래가 미국의 헨리 포드(Henry Ford)가 창립했던 포드자동차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지금의 기업들처럼 일정 기간 직원을 채용해서 일을 하게 하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1903년에 설립된 포드자동차가 바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직업의 시작이었던 거죠. 그로부터 120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직업의 개념이 바뀌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대기업 오너를 종처럼 섬기며 일을 해 온 사람이 많았다면 이제는 1인기업도 많이 생기고 생계유지와 상관없이 얼마든지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기업에 한번 입사하면 오너와 그 회사를 위해 뼈를 묻겠다는 각오를 공공연히 표방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기업도 기업 내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미래를 책임져 주기가 어렵습니다. 소위 비록 직장에 다니지만 각자도생의 길을 가야 합니다. 얼마 전 언론에 보도된 바로는 국내 5대 은행에서 희망퇴직을 하는 사람이 올 한해 4,000명이 넘을 거라고 합니다. 그중에서는 심지어 40대 희망퇴직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직장에 다니다가 언제든지 퇴직하는 것이 보편화된 것입니다. 이렇게 기업에 몸담고 일을 하기가 어려워지니까 아예 처음부터 개인 사업자로 일을 시작하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기업에서도 오너에 대한 충성심을 찾아보기 어렵고 오로지 자신의 역량과 연봉을 저울질하며 기업을 옮겨 다니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단순한 일은 사람을 대체하기 시작했고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직장이 늘면서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산업화 시대에는 오너 또는 직장 선배를 잘 만나서 충성하면 승진의 혜택도 누릴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기대는 접어야 합니다. 오로지 실력으로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아야 직장 내에서 성공할 수도 있고 직장을 자유롭게 옮겨 다닐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나중에 임원까지 할 수 있다는 통념은 이제 송두리째 깨진 셈입니다. 이렇게 달라진 직업관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남의 일로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안타깝게도 많습니다. 세상만 바뀐 게 아니라 이렇게 직업관도 달라졌습니다. 안정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해서 여전히 공무원직에 목숨을 거는 사람도 많지만 나중에 막상 공무원을 퇴직하면 다시 직업에 대한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미래는 1인기업 전성시대가 될 겁니다. 1인기업끼리 콜라보를 하거나 중견이나 대기업과 연계하는 1인기업도 많아질 전망입니다. 어려서부터 직업에 대한 방향을 잘못 수립하면 성인이 되어 후회하게 됩니다.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뿐 아니라 백세시대 평생직업을 위해서도 자신의 직업은 자신이 찾아내야 합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실만 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 합니다. 달라진 직업관에 눈을 떠야 합니다. ▣ 정은상 ◇ 창직학교 맥아더스쿨 ◇ 직업재구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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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31
  • [기고] 날로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아는 만큼 보인다.
    [교육연합신문=선형이 기고] 필자가 지구대에서 근무하다 보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피해를 받고 찾아오는 국민들을 자주 본다. 최근에는 코로나19가 장기화 되가면서 가계와 기업의 사정이 점점 어려워 지고 있고 이에 따라 가계와 소상공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재난지원금과 정부지원대출을 시행하는데 이런 절박함을 이용한 보이스피싱 및 스미싱 사기들이 급증하고 있다. 현재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 경찰은 정보수집에 취약한 노인층을 상대로 보이스피싱,스미싱 유형과 피해사례를 적극 홍보하고 시에서 관리하는 전광판, 플랜카드 게시대에 보이스피싱 예방문구를 제작하여 현출하고 있다. 또한 금융기관을 방문하여 고객들 중 고액 인출·이체를 하는 등 보이스피싱 피해의심이 되면 112에 신고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이스피싱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피해 건수가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기관 들만으로는 이런 보이스피싱을 예방하는데 한계가 있다. 어떻게 접근하고 피해를 당하는지 국민 스스로가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어느 순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이에 현재 가장 많이 피해를 보고 있는 코로나19 보이스피싱 사례와 예방법, 대처법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정부긴급재난지원’, ‘서민금융진흥원’ 등 정부 지원을 가장하거나 ‘우리금융지원’ ‘신한금융지원’ 등 제도권 은행의 상호를 사칭하여 기존 대출이 우선 상환되어야 한다거나 신용등급 상향이 필요하다는 명목 등으로 계좌이체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정부 지원 대출은 등록된 금융회사 영업점과 정부산하기관 지역 센터에서 신청을 해야하고 어떠한 정부기관도 전화 또는 문자를 통하여 금융상품 대출광고를 하거나 돈을 이체하라고 요구하지 않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러한 경우 전화상으로 말고 은행에 가서 대출을 권유하는 직원이 정식 직원인지 꼭 확인해야 한다. 둘째, 코로나19로 비대면이 늘어 남에 따라 휴대폰 상으로 출처가 명확하지 않는 문자로 대출이 가능하다고 속이면서 인터넷사이트에 접속하거나 원격제어 앱을 설치하라고 요구하는데 섣불리 인터넷 사이트 접속 및 앱을 설치하지 말아야 하고 만약 접속하거나 설치하였다면 신속히 이동통신사 고객센터에 전화하여 결제시스템을 차단하고 서비스센터를 방문하여 휴대폰을 초기화하여야 한다. 보이스피싱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날로 진화해가는 보이스피싱,스미싱에 대해 미리 알고 대처하여야 하고 조금이라도 의심이 들면 112(경찰)나 1332(금융감독원), 118(불법스팸신고센터)에 도움을 요청하여 절대 피해를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 전남광양경찰서 중마지구대 경사 선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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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15
  • [기고] 아이들이 요리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교육연합신문=송지윤 기고] 아이들이 요리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세상의 여러 가지 다채로운 색과 다양한 모양의 재료를 만지고 관찰하는 아이들은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관심을 갖는다. 식재료 모양이 특이하거나 처음 보거나 처음 만지는 촉감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그 순간들의 기억을 식재료와 연결시킨다. 그 순간은 좋았던 기억일 수도 있고 즐거웠던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으며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불쾌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채소나 육고기 종류를 보거나 만질 때 표정에서 나타나는 것을 느낌으로 표현할 때는 긍정적이며 해산물류를 접할 때는 호불호가 상당히 강한 편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채소, 고기, 해산물 등을 접할 때 첫 체험이 아주 중요하며 그와 동시에 함께 요리하는 과정에서 요리법이 정확하고 간결해야 하며 무엇보다 맛이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영유아기에 경험하는 식재료는 거부감이 없으므로 경험의 첫 단추가 정말 중요한 것이다. 가령, 식재료에 대한 싫었던 기억이 있다 하더라도 새로운 조리법이나 다양한 요리법 그리고 아름다운 플레이팅과 친구들과 즐겁게 진행하는 요리 수업은 아이들이 안 좋았던 이미지에 대한 기억을 변화시킬 수 있다. 예전에 새우가 들어간 된장찌개를 먹지 않던 7세 남자아이가 있었다. 왜 먹기 싫은지 물어봐도 아이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새우에 대한 요리 수업을 하면서 새우를 만져 보기도 하고 새우에 대한 책과 영상도 보고 여러 가지 새우를 탐구도 하면서 새우를 식재료로 사용한 요리를 아이가 직접 만들어보았다. 그러면서 새우가 들어간 된장찌개를 먹지 않은 이유가 예전에 손질이 잘 되지 않은 새우가 들어간 음식을 먹었던 기억이 상기되면서 그 이후부터 먹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가 직접 만든 요리는 정확한 계량과 조리법 요리로 연결되어 완성도 높은 요리가 되어 자신감이 생기고 즐거움 경험을 했으므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식재료에 대한 좋은 경험과 기억이다. 식재료가 중요한 이유는 아이들이 살아가는 삶 자체가 음식과 평생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 어떤 음식을 먹고 접하면서 보냈는가 하는 것은 미각의 기억으로 남아있으며 좋은 습관과 건강한 식재료는 건강한 몸과 건강한 마음 그리고 음식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루에 끼니를 먹는 시간, 한 번도 빠지면 안 되는 최초의 연습, 나를 위한 몸을 소중히 감사히 생각하는 시간으로 마음도 단단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만들고 내가 체험하고 내가 먹어 본 경험들이 쌓여 인생의 삶이 가치 있고 감사함으로 느껴지길 기대한다. 아이는 요리가 곧 놀이이며, 즐거움이며 몸과 마음이 되며 그 마음을 가지고 자란다. 식습관은 생활이다. 그것이 온전히 건강으로 전달되기를 바란다. ▣ 키즈레시피 대표 송지윤 ◇ MBC '꾸러기 식사' 편식 다수 출연 ◇ 바른아동요리지도자 ◇ 바른식문화개발원 푸드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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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24
  • [119칼럼] 생활 속 작은 실천으로 안전한 겨울나기
    [교육연합신문=정용선 기고] 지난 11월 7일은 24절기 중 열아홉번째 절기로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이었다. 겨울은 춥고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어 전기장판 등 난방용품의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화재 발생위험이 높아지는 계절이다. 최근 5년간 전라남도 겨울철(12월~익년 2월) 화재 발생 건수는 평균 724건이다. 겨울철은 연중 평균에 비해 일일 화재 건수(연중 7.2건/겨울철 8건)가 많이 발생하여 화재예방활동이 절실히 필요한 계절이다. 매년 소방서는 화재 위험이 증가하는 겨울철을 앞두고 11월을 ‘불조심 강조의 달’로 지정하여 화재예방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재로 인한 사고는 줄지 않고 있다. 이는 화재에 대한 위험성과 예방에 대한 중요성은 모두가 알고 있으나 ‘나 하나쯤이야’ 라는 부주의와 무관심이 원인이라 볼 수 있다. 화재로부터 안전한 겨울나기를 위해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일상생활 속에서 몇 가지 행동요령을 숙지하고 적극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전기 난방용품 사용 시 반드시 인증제품(전기 자재는 KS인증, 전자제품은 KC인증)을 사용하여야 한다. 그리고 사용하기 전 제품의 훼손이나 전원코드의 이상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 사용 후에는 반드시 플러그를 뽑는 습관을 들여야 과열 등으로 인한 화재를 방지할 수 있다. 둘째, 전기장판의 경우 사용 전 열선이 꼬이거나 끊어진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고 장판 위에 라텍스와 같이 불이 잘 붙는 재질의 물건을 두지 말아야 한다. 접어서 보관하면 열선 피복 손상으로 발열 및 화재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둥글게 말아서 보관해야 하며 외출 시에는 반드시 전원을 차단하고 플러그를 뽑아야 한다. 셋째, 전기히터는 항상 주변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가연성 물질을 멀리 둬야 한다. 높은 온도로 오랜 시간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마지막으로, 전기열선은 과열 차단 장치나 온도조절 센서가 있는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 옷이나 스티로폼 등의 보온재로 감지 않고 내용연수가 지난 열선은 정기적으로 교체해서 사용하여야 한다. 화재로부터 시민의 귀중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건 본인 스스로라는 것을 명심하고 각종 화기 취급 시 안전수칙을 준수하며 생활 주변에 화재위험요인은 없는지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한다. 이번 겨울에는 주변의 작은 부주의도 살피고 안전수칙을 실천하여 소중한 인명과 재산피해가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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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10
  • [기고] 클래식 공연 볼 때 박수는 언제 쳐야 할까?
    [교육연합신문=전미경 기고] 오늘은 클래식 공연 볼 때의 매너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 한다. 우리나라는 이제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클래식 강국이다.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에서 열리는 각종 콩쿠르에서 한국의 연주자들이 우승을 거머쥐고 있고, 덕분에 그들의 연주로 코리아라는 이름을 더 알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공연을 볼 때 매너는 어떨까? 한국의 클래식 연주자들이 세계의 무대에서 본고장의 연주자들도 감탄할 만큼의 실력을 가진 나라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더 에티켓을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친구의 공연을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한 악장이 끝날 때마다 내 앞줄에 앉아 계시던 아주머니가 추임새를 넣는 것이었다. 한 악장이 끝나면 "와~ 어떻게 저렇게 잘 연주할 수가 있지?" 또, 한 악장이 끝나면 "어휴~ 저 조그만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를...." 또, 한 악장이 끝나면 "아~ 다리 아프겠다~", "......." 정말 그 아주머니의 추임새는 악장이 끝날 때마다 어김없이 나오는 게 아닌가? 그나마 박수를 칠 타이밍엔 박수소리에 묻혀 안 들렸지만, 그 외엔 정말 조용한 연주회장에 그분의 추임새와 감탄사가 계속해서 내 신경을 건드렸다. 그 장소에 있던 관객 중에 나만 괴로운 건 아니었을 거다. 또 보통 다른 연주회에서도 한 악장이 끝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저기서 기침 소리가 나온다거나, 곡이 다 끝난 게 아닌데 박수를 치는 분들도 종종 있다. 그런 소리들은 연주에 집중해야 할 연주자에게 엄청난 방해를 주는 행동들이다. 자 이쯤에서, 그럼 박수는 언제 치는 게 맞을까? 보통 교향곡은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협주곡이나 소나타는 3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외적인 곡들도 있긴 하지만 보통은 그렇다. 그러니 공연이 시작하기 전에 팸플릿을 먼저 확인하여 각 곡들의 모든 악장이 끝난 뒤에 박수를 치는 것이 맞다. 여기서 또 주의할 것이 있는데 가끔 어떤 곡은 아타카(attacca)로 연결되어 있어서 곡을 모르는 상황에서 곡이 멈춘다는 것만 생각하고 악장을 계산하면 난감한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아타카’란 악장과 악장 사이에 멈춤 없이 바로 연결하여 연주하라는 지시어인데 이렇게 곡이 진행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면 나 혼자만 박수를 치게 되는 창피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교향곡은 보통 네 개의 악장이 모두 끝난 뒤에, 협주곡이나 소나타는 세 개의 악장이 모두 끝난 뒤에 박수를 치도록 해야 한다. 그래도 언제 박수를 쳐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다른 사람들이 모두 칠 때 같이 치도록 하자. 클래식 곡들을 평소에 다양하게 들어서 곡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두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일단 간단하게 악장에 대한 것들만이라도 알아두어서 연주회장에서 망설임 없이 곡이 끝난 뒤에 힘차게 박수를 칠 수 있다면 클래식 음악 감상자의 여유 있는 모습에 훨씬 가까이 다가가 있게 될 것이다.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가장 부러웠던 것이 매일매일 일상이 되어 있는 클래식 공연들이었다. 저렴한 가격으로 볼 수 있는 다양하고 소박한 연주들이 동네마다 늘 열린다. 클래식 공연이 거창한 것이 아닌 생활의 일부인 모습. 이제 우리도 생활 속의 그런 모습을 가진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정지되었던 일상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클래식 연주회장에 모일 수 있는 일상 역시 늘어나고 있으니 이제 그런 공간을 직접 찾아가서 다양한 연주들을 생생하게 체험하고 악장과 악장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느껴봤으면 좋겠다. ▣ 첼리스트 전미경 ◇ 가천대 관현악과 졸업 (첼로전공) ◇ 서울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수석 역임 ◇ 금천 교향악단 부수석 역임 ◇ 의왕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 강동 챔버 오케스트라 단원 ◇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첼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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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07
  • [기고] 효(孝)! 천지자연의 길이요 사람의 길이다.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유산은 경천애인(敬天愛人)과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사상을 바탕으로 모두가 잘살게 하는 정신이며, 그 선(善)과 의지(義志)의 중심축은 효(孝)입니다. 효(孝) 사상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발현해 온 원동력이며, 숭고한 정신적 자산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사회는 세대 간의 갈등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세대 간 서로를 이해하며 화합의 길로 간격을 좁혀 가야 하도록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지켜내고, 세대·지역·계층 간 갈등을 불식시키며, 종교적·이념적 위화감을 화해와 화평의 길로 융합시킬 수 있는 힘은 오직 효(孝) 정신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죽을 때 하나 가져가고 싶은 게 무엇이냐? 라고 묻는다면 서슴지 않고 한국의 가족제도를 가져가고 싶다.”(아놀드 토인비, 영국의 사회학자), “한국의 가족제도가 세계에 실현될 때 세계는 행복해질 것이다.”(케이지(영국 가족학 교수)는 두 교수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오랫동안 황하문명권을 다스려온 통치 철학은 바로 ‘효’를 중심으로 성립되었던 것입니다. 가르침과 배움의 뜻인 교학(敎學)이라는 글자를 살펴보더라도 효(孝)자가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효(孝)를 알지 못하거나 놓치게 되면 모든 일을 그르치게 된다는 천지자연의 이치를 함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효는 종교와 종파를 포괄하는 통교(通敎)적인 가치며, 시대와 공간을 아우르는 통시(通時)적인 문화입니다. 또한 효(孝)는 이념과 사상을 뛰어넘는 통념(通念)적인 정신입니다. 효(孝)가 살아야 나라가 살고, 모두가 살 수 있습니다. 효(孝)는 사랑을 실천하는 보편적인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 “太公曰(태공왈) 孝於親(효어친)이면 子亦孝之(자역효지)하나니 身旣不孝(신기불효)면 子何孝焉(자하효언)이리오)〈태공이 말하였다. 내가 부모에게 효도하면 내 자식이 또한 나에게 효도하나니 내가 이미 어버이에게 효도하지 않는다면 내 자식이 어찌 나에게 효도하겠는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른들이 먼저 가정, 사회, 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인성을 갖춘 품격 있는 행동으로 청소년들에게 귀감이 되어 올바른 인격체를 형성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효(孝)는 인륜의 도리와 천지자연의 이치를 담아놓은 인간의 길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서로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다짐하고 실천하는 운동이 각계각층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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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28
  • [기고] 집회소음 기준 준수, 집회시위의 자유와 시민 평온권 보장의 시작
    [교육연합신문=조현기 기고] 최근 사회적 분쟁 및 갈등으로 인한 잦은 집회·시위 중 과도한 방송차량의 소음 등으로 인하여 고통을 호소하는 시민의 민원이 급증하고 있다. 집회시위는 헌법 제21조 1항에 ‘모든 국민은 집회의 자유를 가질 수 있다’ 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적법한 집회·시위의 보장을 말한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4조에 따르면 ‘시위 주최자가 기준을 초과하는 소음을 발생시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 유지명령과 사용중지를 명하거나 확성기를 일시보관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라고 규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작년 집시법 시행령 일부 개정(확성기등의 소음기준 강화, 공포9.1 / 시행 12.2)으로 심야·주거지역 소음기준 강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최고소음도가 도입되어 시행되고 있다. 등가소음도는 ≪주거지역, 학교, 종합병원은 주간(07:00~해지기 전)은 65dB이하, 야간(해진 후 ~ 24:00)은 60dB이하, 심야(00:00~07:00)는 55dB이하≫ ≪공공도서관은 주간 65dB이하, 야간·심야는 60dB이하≫, ≪그 밖의 지역은 주간 75dB, 야간·심야는 65dB 이하≫로 소음기준이 강화 되었으며, 최고소음도(순간 최고소음도 1시간 이내 3회 이상 기준 초과)는 ≪주거지역, 학교, 종합병원은 주간 85dB이하, 야간 80dB이하, 심야는 75dB이하≫ ≪공공도서관은 주간 85dB이하, 야간·심야 80dB이하≫ ≪그 밖의 지역은 주간·야간 구별 없이 95dB이하를 유지하여야 한다. 경찰에서는 집회시위의 자유와 시민 평온권 보장을 위하여 소음관리팀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장에서 피해지역을 기준으로 민원이 야기되거나 자체적으로 측정하여 소음기준을 준수 할 수 있도록 지도·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몇몇 집회·시위 주최자는 집회의 본질상 소음 발생은 당연하다며 이러한 규정이 자신들의 집회 자유를 제한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생각이다. 집회 주최 측은 확성기 등을 통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널리 알리고자 하지만 기준 수치 이상의 과도한 확성기 사용은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고, 결국에는 시민들에게 공감을 받지 못하는 집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폭력 집회·시위는 많이 사라졌지만, 본인의 권익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기준치 이상의 과도한 소음을 유발하는 집회문화 역시 사라져야 할 것이다. 과도한 확성기 사용을 자제하고 소음기준 수치 준수를 통하여 집회시위의 자유와 시민 평온권이 보장 되는 건전한 집회시위 문화가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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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28
  • [기고] 클래식 음악과 집중력 향상
    [교육연합신문=전미경 기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넘쳐나는 시대다. 다 나름대로의 멋과 개성이 있고, 각자 취향대로 즐기면 되는 것인데, 나는 클래식 음악을 하는 첼리스트이니 클래식 음악이 우리의 집중력을 향상시키며 우리의 뇌에 이롭기까지 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악기를 연주하는 클래식 연주자들이 치매에 잘 안 걸린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실제로 나 역시 지금까지 악기를 하면서 치매에 걸린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사람의 오장육부가 축적되어 있다는 손을 많이 쓰는 직업이라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음악을 들으며 공부를 한다거나 운동을 하고 여러 가지 작업들을 하기도 한다. 방해가 된다면 듣지 않으면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들으며 뭔가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음악이 내가 하는 일의 성적을 향상시켜 주기 때문일 것이다.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고 기른 식물이 그렇지 않은 식물보다 더 잘 자란다는 연구 결과도 있는걸 보면 음악은 사람뿐만 아니라 식물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어릴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들려주고 자란 아이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볼수있다. 음악의 선율과 리듬은 뇌를 자극하는데 도움이 될수 있으며, 연구에 따르면 특정 음악이 창의력을 향상시킬수도 있다고 한다. 산모가 태교로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듣는 것도 태아의 발달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알려져 있다. 수학과도 관련이 많은 음악은 템포와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아이들이 음악의 템포와 패턴을 배울수록 두뇌가 수학을 더 잘 이해할수 있게 발달한다고 한다. 음악의 선율과 리듬은 뇌를 자극하는데 도움이 될수 있으며, 연구에 따르면 특정 음악이 창의력을 향상시킬수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악기를 배우면 기억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고, 악기를 배우거나 연주하려면 인내심을 갖고 더나은 실력을 위해 훈련을 해야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집중력 높은 연습을 하다보면 인내심을 향상시키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그러므로 어릴때부터 악기 연주를 배우고 익히면 집중력에 많은 도움이 된다. 특히 2년 이상 악기를 배운 아이는 무언가를 기억할 때 시각정보 등 다양한 감각 정보를 받아들여 통합하는 기관이 남들보다 더 활성화 된다고 한다. 여러 감각을 활용해서 집중하고 기억을 저장한다는 의미다. 또 악기로 연주 활동을 하면 창의력은 좋아지고 스트레스 조절 능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런 장점들은 성인들에게도 해당되어 우리가 악기를 연주하고 음악을 듣는 행위를 계속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준다. 음악이 좋아서 듣고. 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악기를 배우지만 덤으로 나의 뇌에도 좋은 영향을 미쳐 나의 집중력과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되며 장기적으로 치매 예방까지 된다고 하니 음악을 더더욱 가까이 하는게 좋지 않겠는가. ▣ 첼리스트 전미경 ◈ 가천대 관현악과 졸업 (첼로전공) ◈ 서울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수석 역임 ◈ 금천 교향악단 부수석 역임 ◈ 의왕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 강동 챔버 오케스트라 단원 ◈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첼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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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26
  • [기고] 스토킹! 이제 강력하게 처벌 됩니다
    [교육연합신문=신병철 기고] 민생치안 담당(생활안전, 여청, 교통) 자치경찰 도입으로 지역 특성에 맞는 주민밀착형 도민 체감 치안서비스를 제공하고자 2021년 7월 1일 자치경찰제가 전면 시작되고, 점차 국민의 안전 욕구가 커지며, 위험에 대한 사전 예방 활동이 강조되고 있으며, 특히 세 모녀 살인사건, 안산 스토킹 살인 미수 등으로 스토킹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과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스토킹으로 인한 강력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스토킹처벌법이 올해(10.21)부터 시행이 될 예정이다. 스토킹이란 맹수류의 육식동물이 먹잇감을 따라다니는 것을 뜻하는 동사 ‘Stalk’에서 유래된 학술용어를 일상적 표현으로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사전적 의미로는 특정한 사람을 그의 의사에 반하여 오랜 기간 동안 쫓아다니며 정신적·신체적 피해를 입히고 두려움과 불안감을 조성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간, 「경범죄처벌법」 “지속적 괴롭힘(범칙금 8만원)” 조항으로 처벌되어 오던 스토킹범죄는 올해 4. 21.「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됨에 따라 ‘스토킹’이 법률 상 공식용어로 등장, 처벌과 제재 대상으로 명문화 되어 스토킹범죄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흉기, 위험한 물건 등 휴대·이용 시에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 스토킹범죄는 과거 연인이었거나 부부였던 경우 등 아는 관계에서 다수 발생하며, 상대방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동거인, 친족, 직장동료)을 위협하는 사례도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특히, 연인 등 교제 요구, 호의·악감정 등 목적의 제한을 두고 있지 않아 스토킹 행위·범죄는 여러 사회적 관계 및 일상생활(직업, 고용, 채권·채무, 층간소음 분쟁 등)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생 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또한, 최근 사회환경의 변화로 휴대전화·SNS 등 정보통신 매체를 이용하여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온라인 스토킹이 증가하는 추세로 스토킹범죄 피해자들은 대다수가 극심한 두려움과 불안, 우울증, 대인기피 증상과 같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 정신적 후유증을 경험하고 이러한 두려움과 불안은 직장 이직, 휴학, 다른 지역으로 이사, SNS 계정 삭제, 휴대전화 번호 변경 등 사회·경제적 자유를 제약하는 피해로 연결하게 된다. 이제 스토킹에 대해 명백히 거부 의사를 밝히고, 지속적인 괴롭힘과 불안감 유발은 강력히 처벌 받을 수 있음을 인지하여야 한다. 우리 경찰은 법 시행 전후 스토킹처벌법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으며 대응 강화방안을 마련·추진하여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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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24
  • [기고] 경남은 한국 안전교육의 리더
    [교육연합신문=서동욱 기고] 리더(leader)는 보스(boss)와 다르게 직접 진두지휘를 하며 어려움을 헤치고 이끌어나가는 이를 일컫는다. 필자는 감히 경남이 한국의 안전교육을 이끌어가는 지역들 중 리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경남의 안전교육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18개 시도 중 경남의 안전교육과 그 시스템은 가히 최고라고 자부한다. 지금부터 그 자부심의 근거를 서술해보고자 한다. 우선 경남은 안전 관련 대회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안전대회의 대표격인 불조심어린이마당 21회의 대회 중에 경남은 무려 4회의 우승 경력을 지니고 있다. 19회 통영에서 우승을 했으며 20회는 필자가 김해 소속으로 우승을 하였고 21회인 올해 대회는 역시 필자가 소속한 학교가 우승을 거두였다. 무려 대회 3연패를 경남에서 이루어낸 것이다. 지금까지 21년 동안 대회 2연패를 한 시도는 단 하나도 없었거니와 3연패는 경남이 최초이다. 그리고 한 학교에서 대회 2연패를 한 경우도 역시 없었다. 불조심어린이마당 경남도대회 예선을 통과하는 것은 한국 양궁 올림픽대표 선발전과 맞먹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만큼 경남의 안전역량은 뛰어나다. 그리고 그것을 지도하는 교장선생님 이하 교원들의 열정과 학생들의 역량도 뛰어나다. 그중 김해가 경남의 안전교육 대표주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안전교육의 성과에는 경남교육청과 각 교육지원청 및 소방서 예방안전과와 교사의 열정적인 협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또한 최근 수상 발표가 난 119 소방동요대회에서 경남은 3년 연속 전국 대상을 수상하였다. 이번 전국 소방동요대회에서도 경남의 대표인 진주소방서에서 유치부 전국 대상, 김해 동부소방서에서 초등부 전국 2위로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이러한 과정과 성과들을 살펴보면 경남의 안전교육 시스템은 매우 뛰어나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과 올해 경남에서 수상한 안전 관련 장관상만 해도 5개이다. 이러한 지역은 아마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경남에는 안전에 관한 최초가 많다. 경남교육청에서 건립한 경남학생안전체험교육원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청 산하 안전교육기관으로는 전국 최초이다. 타 지역의 안전체험관은 교육적인 부분이 아닌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안전체험관이라면 경남의 안전체험교육원은 학생의 눈높이를 맞춘 교육중심의 안전체험관이다. 경남에서는 이 체험관을 중심으로 하여 학생에 대한 안전교육 및 교사에 대한 눈높이 안전연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30킬로미터 속도 표시 가방안전덮개 또한 경남교육청에서 전국 최초로 개발한 안전용품이다. 이러한 경남교육청의 안전에 대한 노력과 더불어 경남에는 안전에 관심이 많은 교사들이 많다. 필자 또한 한국의 유초중고 교원 최초로 미국 화재폭발조사관(CFEI)을 취득하였고 이러한 역량을 학생들에게 투입하였으며 주변 동료 선생님들에게 안전에 대한 여러 가지 사항들을 전파하고 있다. 또한 경남초등안전연구회의 많은 선생님들께서도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아이들의 안전교육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주고 계신다. 더불어 각급 학교의 교장선생님들께서 안전에 기울이는 관심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 119 청소년단의 창단을 반대하는 교장선생님은 단 한분도 없으셨다. 오히려 우리 학교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러한 안전교육의 기회를 반기는 분들이셨기에 체계적인 안전교육과 체험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처럼 이러한 관심과 노력 및 응원들이 쌓이고 쌓여 이러한 괄목할만한 성과가 만들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교육기관과 재난대응기관과의 협업. 교사와 예방안전과의 환상적인 협업 속에서 혜택은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받는다. 올해 대회를 치른 본교 학생들은 경남 1위와 2위를 휩쓸었으며 그 역량은 가히 전국 최고 수준이다. 아이들은 소화기의 사용방법은 기본이거니와 완강기와 간이완강기를 구분할 줄 알며 체계적인 훈련으로 안전을 직접 실천할 수 있는 아이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체계적인 안전교육을 받은 경남의 어린이들은 자라서 한국의 안전을 지키는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며 우리 사회의 안전을 지켜줄 것이다. 씨앗을 뿌리는 것과 김매는 것은 매우 고달프다. 하지만 그 과실은 달콤하다. 지금 우리 경남은 씨앗을 뿌리고 김을 매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타 시도로 전해져서 모두 경남의 뒤를 이어 안전한 한국을 만드는 것에 일조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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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22
  • [칼럼] 생명을 살리는 공동체의 사명
    [교육연합신문=조성돈 기고] 자살은 한국인들의 사망원인 5위에 있다. 단연 많은 사망자를 내는 것은 암이다. 그 이후 심장질환, 폐렴, 뇌혈관 질환 다음으로 한국인들은 자살로 인해서 죽는다. 그 다음이 당뇨병과 알츠하이머병, 그리고 간질환과 고혈압 등으로 나타난다. 이미 꽤 알려졌지만 10대, 20대, 30대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다. 그리고 40대와 50대에서는 자살이 사망원인 2위에 있다. 그런데 더 놀라운 통계가 있다. 20대 사망자 중에 54.4%가 자살 사망자이다. 30대에서는 39.4%, 40대에서는 20.8%, 그리고 50대에서는 9.9%가 자살 사망자이다. 즉 20대에서는 장례가 일어나면 절반 이상이 자살로 인한 사망이다. 그런데 우리가 자살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자살에 대해 오해 하는 것 중에 하나는 10대와 20대의 자살이 많을 것이라는 점이다. 실은 10대와 20대에서 자살이 많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살률로 치면 80대 이상의 노인에서 가장 높게 나오고, 자살한 사람의 숫자로는 40대와 50대가 높게 나온다. 자살률이라고 하는 것은 인구 10만 명 당 자살로 인해 사망한 사람의 숫자를 말한다. 평균은 25.7명인데, 80대 이상의 노인 자살률은 62.6명으로 2.5배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40대와 50대의 자살 사망자는 각각 2,579명, 2677명으로 거의 전체 자살 사망자의 40%에 이른다. 그래도 지난 10년 동안 자살이 상당히 많이 줄어들었는데, 그 이유는 노인자살률이 많이 줄어든 탓이다. 2010년 노인자살률은 127명이었다. 그런데도 자살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것은 40, 50대, 특히 이 세대의 남성들의 자살이 많기 때문이다. 기독교를 포함하여 종교계에서 자살예방을 하는 방법은 대부분 지옥이라는 공포심 조장이었다. 자살이라는 죄를 지으면 천국에 갈 수 없고 지옥에 갈 것이라고 했다. 물론 최근 20년 정도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적지 아니하게 이 부분은 교회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것이 실제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이런 말을 듣고 자살을 안 할 정도면,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자살의 심각한 상황에 들어가면 사람들은 이런 말 자체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한 마디로 자살예방을 하려 드는 것 때문에 전문적인 도움이 들어가지 못하고, 합리적인 예방활동이 거부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말로 인해서 남은 유가족은 더 심한 고통 가운데 지내야 한다. 유가족은 너무나도 상실로 인해 큰 아픔과 슬픔에 처해 있다. 이때 하나님의 은혜와 교회 공동체의 위로가 너무나도 절실하다. 현실은 이때 교회에 다툼이 일어난다. 자살한 사람이 구원을 받았는지, 그래서 교회가 장례를 해야 할지를 가지고 논쟁이 이루어진다. 그때 유가족들이 느끼는 고통과 분노는 극에 달한다. 결국 교회를 떠나고 하나님을 떠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구원은 인간이 결정할 일이 아니다. 한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정하실 것인데, 은혜로운 하나님은 선하게 결정하실 것이라고 믿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한계이다. 단지 우리는 이 땅에서 고통받고 있는 그 유가족을 위로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라이프호프에서는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유가족 위로예배를 함께 드리고 있다. 예배 후에 어느 분이 찾아오셔서 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수 십년 다닌 교회에서도 장례를 안 치러주었는데, 이렇게 함께 위로예배를 드리게 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 듯한데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자살이 많은 이유는 죽음의 문화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죽겠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돈이 우리에게 절대적 가치로 자리를 잡으면서 생명이라는 절대가치는 상대적 가치로 전락했다. 즉 돈이 기준이 되어서 우리가 살아야 할지, 죽어야 할지를 결정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경제적으로 실패하거나 삶의 어려움이 닥치면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죽음을 연결한다. 바로 이러한 가치관, 더 넓게는 문화를 바꾸는 것이 궁극적인 자살예방이다. 즉 죽음의 문화에서 생명의 문화로 전환하는 일이다. 종교는 이 부분에서 할 일이 있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 주는 일은 종교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사람들이 모두 돈을 중시할 때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감사한 삶을 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죽음의 문화가 지배하는 한국 땅에서 생명문화를 만들어내고 함께 나누는데 교회와, 더 나아가서 종교계가 함께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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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15
  • [칼럼] 나눔의 철학을 통한 생명사랑운동
    [교육연합신문=조성철 기고] 한국어사전에 명시된 나눔의 정의는 ‘나누는 것’이고 영어사전에는 'give(주다, 전하다, 제공하다, 기부하다, 수여하다)', ’charity(자선, 기부, 모금, 사랑)‘, 'philanthropy(박애, 자선, 인류애)’로 정의하고 있다. 과거의 나눔은 “자선, 박애, 기부”등 재화를 소유한 사람으로부터 소유하지 못한 사람에게 전달되는 위계적 측면이었다면 최근에는 재화의 위계적 공유에서 벗어나 사람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자원의 공유를 통해 사람들간의 관계성을 중시하는 형태로 발전하여 그 의미가 sharing(공유, 나누기, 나눔, 함께)으로 변화하고 있다. 나눔의 정석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조선후기 10대에 걸쳐 약300년 동안 만석꾼을 유지한 경주 최부잣집을 들 수 있다. 12대로 대대손손 부를 쌓았으나 나눔의 철학에 기반을 둔 가훈을 지켜가며 선행을 베풀고 일제시대에는 독립자금으로, 광복 후에는 대학교 설립에 모든 재산을 바치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나눔은 우리가 가진 것을 서로 나누고 함께 하면서 더불어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활동으로 기부보다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다. 최근 종교계, 시민운동, 경제계, 노동계 등 우리 사회 전반에서 생명나눔, 사랑나눔, 나눔경영 등 나눔이 강조되고 있다. 나눔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으며 나눔의 실천은 참으로 소중하지만 나눔이 지나치게 강조되거나 혜택에 의존하여 생존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반사랑적이며 비인간적으로 전락하게 된다. 국가의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인간의 존엄이 보장되는, 나눔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이상적이나 지구 어디에도 그와 같은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복지선진국에서도 기부와 나눔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인간 상호간의 정을 나누는 아름다운 나눔이 되기 위해서는 나누어 주는 사람이나 나누어 받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대등한 지위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수평적 나눔이 필요하다. 이처럼 나눔의 철학은 모두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면서 서로 도와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나눔의 활성화를 위한 효과적인 방안을 제시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온라인, 앱 등 누구나 쉽게 나눔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든다. 둘째, 시민나눔 활동가 양성을 통해 시민주도형 나눔모델을 마련한다. 셋째, 나눔활동의 참여 활성화를 위해 세제감면, 주식 기부자 면세한도 확대, 정부 포상의 확대와 같은 인센티브를 도입하여 제도적 환경기반을 구축한다. 넷째, 나눔활동에 대한 투명성을 확보하여 나눔에 대한 신뢰성을 높인다. 다섯째, 나눔수요, 나눔방법 등에 대한 정보를 쉽게 구하고 연계하며 상담할 수 있는 나눔포털 인프라를 구축한다. 여섯째, 지역 내 기업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강조와 함께 기업의 브랜드 효과를 높이고 착한 기업 이미지를 제공하는 공익연계 나눔 마케팅, 지역밀착형 나눔 활동과 같은 기업 마케팅 나눔을 확대한다. 마지막으로, 기부와 자원봉사, 나눔을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독립되고 통일된 법률의 제정이 시급하다. 현재 여러 관련법으로 분산되어 상호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법령의 정비와 함께 가칭 ‘나눔기본법’의 제정을 통해 나눔문화 확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 조성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나눔 중에서 특히 생명나눔이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최근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많은 문제 중 그 대책의 시급성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부분이 바로 생명존중, 자살예방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1일자 보건복지부 보도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2020년 기준 인구 10만명 당 25.7명으로 OECD회원국 중 첫 번째로 높은 자살율을 보이고 있다. 우리 사회에 부각되고 있는 자살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 그 심각성을 정부를 비롯한 사회각계가 인식하고 예방하기 위한 노력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정부와 민간의 생명사랑운동에 대한 협력적 활동이 증가하면서 그 활동에 힘입어 그동안 매년 증가하던 자살자수가 2019년에 비해 2020년 4.4% 감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감소수치는 매우 소폭이지만 의미 있는 결과라 생각하고 향후 정부를 비롯한 자살예방, 생명존중 활동을 하는 개인, 시민사회단체, 기업 등 다각도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 번 입증하는 결과라 하겠다. 앞으로도 사회구성원 모두가 생명나눔운동을 지속적으로 실천해 간다면 이는 자살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조성하는 궁극적인 힘이 될 것이다.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나눌수록 행복이 커진다는 ‘마더 테레사 효과’에서 알 수 있듯이 나눔은 동참하는 사람은 물론 이를 지켜보는 사람에게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현대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방안이 될 것이다. 개인이나 기업 모두 사회약자에 대한 다양하고 지속적인 나눔활동을 수행한다면 더불어 사는 사회문화를 확립하고 상생이 원칙이 되는 건강하고 밝은 사회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약자도 사회구성원의 일원임을 자각하고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치유할 수 있는 포용력을 바탕으로 하여 궁극적으로 사람사랑, 생명사랑이라는 사회가치에 기여하는 바람직한 나눔문화가 하루 빨리 정착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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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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