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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쇼호스트 유희경 특별 인터뷰] 따듯한 말 한마디로 사람을 품는 친절한 쇼호스트
    [주간인물위클리피플=구재회 기자, 장덕진 기자]따듯한 말 한마디로 사람을 품는 친절한 쇼호스트 유희경 쇼호스트홈쇼핑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획기적인 상품을 선보이며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창출하여 알뜰한 살림을 꾸려 나가야 하는 소비자에게 효율적인 소비문화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품의 경우에는 직접 맛볼 수 없고, 물건의 경우에는 직접 만져보거나 눈으로 보지 못하고 구매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소비자는 상품의 브랜드나 제품 구성요소로 구매를 결정하기도 하지만, 상품의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소비자들 앞에 나선 ‘쇼호스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오늘 <위클리피플>은 업체와 소비자 사이에서 ‘소통의 다리’ 역할을 하며 생동감 넘치는 스토리텔링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서는 ‘친절한 쇼호스트’를 만났다. 취재_구재회 기자, 장덕진 기자 /글_장덕진 기자 화려함 이면의 감추어진 노력 쇼호스트가 밝은 미소를 띠고 재치 있는 입담으로 방송에 출연하는 것을 본 사람이라면, 쇼호스트의 삶이 화려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방송이 시작하기 전, 쇼호스트는 남들이 모르는 땀과 눈물을 흘린다. 하나의 상품을 판매하기 위하여 상품에 어울리는 말과 이미지를 끊임없이 연구하는 것은 물론, 소비자에게 진심으로 다가서기 위해 자신의 경험담을 상품 설명에 녹여내는 것은 화려함 이면의 감추어진 숨은 노력의 과정이다. 판매업체에게는 이윤을, 소비자에게는 보다 성실하고 친절한 설명으로 만족을 주어야 하는 쇼호스트의 역할은 올바른 소비문화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유희경 쇼호스트는, 화려함 이면의 감추어진 생생한 방송 현장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홍삼 제품을 소개했던 적이 있었어요. 다른 홍삼 제품들과 비교했을 때 인지도가 낮고, 특별히 내세울 만한 점도 없었죠. 업체 관계자와 PD, MD, 쇼호스트인 저까지 머리를 맞대고 밤을 새워가며 아이디어 회의를 거듭했었습니다. 저는 긴 회의 끝에 몇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었어요. 홍삼 제품을 만든 업체가 소비자들의 건강을 진심으로 생각한다는 ‘진정성’을 느꼈고, 소비자의 입장에서 그들이 원하는 홍삼 제품이 무엇일지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오랜 고민 끝에 ‘착한 홍삼’이라는 타이틀을 아이디어로 제시했고, 고객에게 정보를 나열하는 방식의 설명이 아닌, 홍삼에 얽힌 자신의 에피소드를 스토리텔링으로 촘촘히 풀어냈다. 그리하여 ‘착한 홍삼’은 소비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고 높은 판매율을 올리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쇼호스트로서 제게는 정말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저를 비롯하여 PD, MD, 업체 관계자가 힘을 하나로 모았기에 맺을 수 있었던 결실이었습니다. 항상 저의 행복에 관해서만 생각하고 살았는데, 어려운 일이더라도 한마음 한뜻으로 손을 잡으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판매업체는 좋은 제품을 판매하여 이윤을 올려서 기쁘고, 소비자는 합리적인 가격에 질 좋은 제품을 구매하여 만족감을 얻기에 기쁘고, 저는 그들의 기쁨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습니다.” 고객과 감정을 교류하는 쇼호스트 유 쇼호스트만의 강점은 자신의 이야기를 상품설명에 녹여내는 ‘스토리텔링’이다. 거짓으로 꾸며 낸 이야기가 아닌, 조금은 서툴고 장황하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고객에게 진심으로 다가서는 것이 그녀가 고객의 마음의 문을 여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청산유수(靑山流水)와도 같은 그녀의 매혹적인 스토리텔링 원천은 어디로부터 기인한 것일까. 그녀는 <SBS출발모닝와이드>에서 리포터로 활동하며 방송에 입문했다. 주로 산을 기행 하는 프로그램의 리포터로 활동했는데, 현장 리포터로 활동하는 것에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낀 그녀는 라디오 방송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라디오 진행자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유독 1:1로 이야기하는 것에는 자신이 없었던 그녀는 ‘경기방송’ 최종 면접에서 여러 번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성실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국장의 응원에 힘입어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여 경기방송 ‘FM 99.9 라디오’ <사통팔달정보네트워크>의 진행자로 당당히 데뷔했다. 그녀는 라디오 진행자로서 활동하며 얻은 소중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청취자의 사연을 받아 소개해주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다양한 사연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사연이 하나 있었어요. ‘죽고 싶어요’라는 말로 시작하는 짧은 사연이었는데, 처음에는 장난이겠거니 그냥 넘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불현 듯, 그 말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가까이서 들려왔습니다. 저는 라디오를 통해 그분의 사연을 읽어드렸고, 어느 날 사연 신청자로부터 한 통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는 한 기업의 사장이었는데, IMF로 인한 회사의 경제적 위기 때문에 힘들었던 당시 상황을 이야기했습니다. 라디오를 통해 사연이 나가고 자신의 심정을 알게 된 사원들이 월급도 받지 않겠다고 하며 회사를 위해 헌신했고, 회사는 서울에서 부산으로 옮겨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는 희소식을 제게 전해주었습니다.” 유희경 쇼호스트는 라디오 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면서 인생의 중요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좋은 말을 아끼지 않고 타인에게 전할 때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관심과 말 한마디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이 다시 일어서고, 회사가 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방송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밀실에서 나와 무대로 유희경 쇼호스트는 경기 방송에서 7년 동안 일하면서, 저녁 여섯시 간판 프로그램을 진행할 정도로 라디오 진행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청취자와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것에 매력을 느꼈기에, 오랜 시간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약할 수 있었다는 그녀.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또 다시 진로의 갈래 길에 놓이게 된다. 라디오 부스라는 ‘밀실’에서 나와 시청자들과 얼굴을 바라보며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무대’를 꿈꾸게 된 것이다. 라디오 진행자로서의 오랜 경험과 실력을 인정받은 그녀가 선뜻 쇼호스트로 전향한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고, 쇼호스트가 되기 위해 관련 학원을 모두 다니며 직업에 대한 이해와 전문능력을 함양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녀는 쇼호스트에 여러 차례 지원하여 떨어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지만, 누구보다 절실했기에 37살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NS홈쇼핑>의 쇼호스트로 정식 데뷔하였다. 방송인으로서 다양한 경험을 했던 그녀는 회사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고, 입사한 지 일 년 만에 목표달성에 기여한 사원에게 수여하는 금메달을 받으며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다. “제가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쇼호스트에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흥미와 적성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만들어진 대본 없이, 제가 공부하고 습득한 지식과 경험으로 누군가에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생명력이 긴 방송인을 꿈꿔왔기에 쇼호스트가 되기로 결심한 그녀. 자신의 말과 이미지로 타인의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기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녀는 일을 하면서 조금씩 쇼호스트로서 한 단계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리포터로 활동했던 경험과 라디오 진행자로서 수많은 청취자의 웃음과 눈물의 공감했던 경험은, 시청자와 진심으로 소통하는데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입사지원을 하면서 여러 차례 최종면접에서 떨어진 실패의 경험은 그녀를 한 단계 성장시켜주는 발판이 되었다. “고객들과 소통하면서 느낀 것은 그들이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 제품을 구매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저 혼자만 행복하기 위해 노력했던 지난날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행복을 나누어주고,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방송인이 되고 싶습니다.”말 한마디로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에게 위로와 행복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유 쇼호스트. <NS홈쇼핑>에서 <신세계TV쇼핑>으로 이직한 그녀는 이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단독으로 방송을 진행하는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단순히 자신만의 명예와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려움에 처해 있는 기업을 자신의 능력으로 돕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재능기부와 봉사를 하고 싶다는 그녀.그녀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자신의 따듯한 감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남편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고객에게 상품을 판매해야 하는 상업적 목표가 뚜렷한 직업이기에, 말에 감정이 스며들게 하는 것이 어렵다는 유희경 쇼호스트. 그녀는 가수인 남편의 음악적 영향으로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고 남편의 자상함과 부드러운 마음으로부터 치유받을 수 있었기에, 시청자들과 행복한 소통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한다. 그녀는 언제나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방송에 임하면서, 남편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의 도움에 보답하기 위해 정진하고 있었다. <위클리피플>은 따듯한 말 한마디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녀가 앞으로 오랜 시간 희망찬 방송을 이어나가리라 믿는다. Profile.現 신세계TV쇼핑 쇼호스트前 sbs 출발모닝와이드 리포터前 FM 99.9경기방송 아나운서 前 다양한 행사 진행(경기도 주최 행사 담당) - 9중소기업인 대상 시상식 사회 / 자랑스런 경기인 대상 시상식 사회 / 경기교육 대상 시상식 사회 / 주부의 날 행사 사회 / 경기 푸르미 창단식 및 시상식 사회/ 슬로우 푸드 시상식 등 경기도청 관련 행사 MC, 전담진행前 기업은행, GS칼텍스, 농협 등 사내방송 CS교육프로그램 진행前 NS홈쇼핑 쇼핑호스트※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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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8-11
  • [안동연 두원네임컨설팅연구소 소장 인터뷰] 과학적인 이름 치료로 사람들의 참 에너지를 끌어내다
    과학적인 이름 치료로 사람들의 참 에너지를 끌어내다안동연 두원네임컨설팅연구소 소장 | 한국이름치료학회 부회장 | 법학박사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 중 일부이다.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인간에게 아주 중요하고 철학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두원네임컨설팅연구소>의 안동연 소장은 여기서 더 나아가 어떤 이름을 불러줄 때 그 꽃이 얼마나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이름 치료를 통하여 각각의 사람들에게 맞는 과학적인 이름을 찾아주는 것이 그의 직업적 사명감이라고 한다. 그가 전하는 이름의 힘, 이름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자. 취재_위클리피플 이선진 기자, 장현수 기자/ 글_장현수 기자● 원리 탐구를 좋아하는 안 소장에게 찾아온 이름의 세계 어렸을 때부터 기계 등을 분해하고 맞추길 즐겨 했다는 안동연 소장. 그 실력이 아주 뛰어났으며, 늘 사물의 작동 원리에 대해 궁금증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이름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자신에게 다가온 물음들을 탐구하기 위해서였다.“사람의 인생이 마음먹는 대로 되지 않더라고요. 이 세상을 움직이는 에너지의 실체가 무엇일지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 궁금증을 탐구하다 보니 명상을 하면서 이름을 불러보았고 각기 다른 이름을 불렀을 때 제 몸에 미치는 영향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을 보고 이름에 관한 연구를 하게 되었고, 저부터 개명해서 달라지는 에너지를 확인한 후 과학적으로 검증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이후 그는 다양한 실험을 통하여 이름이 가진 놀라운 힘을 검증하게 되었고 왜 이토록 중요한 걸 아무도 연구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아함이 들었을 정도로 그가 알게 된 이름의 힘은 놀라웠다. ● 이름 치료의 의미를 알리는 <한국이름치료학회> 안 소장은 자신의 이름 치료가 사주나 작명과는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이름 치료는 단순한 가설이 아닌 과학적 증명을 통해 입증된 것입니다.” 연구를 하면서 궁금한 점이 생겼을 때 그는 관련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을 찾았다. 역 분야에 관련해서 궁금증이 생기면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에게, 한국학에 관련해서 궁금증이 생기면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등에게 직접 자문을 구한 것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그와 함께 <한국이름치료학회>를 이끌어가는 인물들도 다양한 분야의 명성 높은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안동연 소장은 권위 있는 <한글학회>와 세미나도 진행했으며, 앞으로 한의원과 손을 잡고 프로젝트를 이어가는 등의 다양한 활동 계획이 서있는 상태라고 한다. 또한, 그는 멀지 않은 계획으로 <한국이름치료학회> 주관의 이름콘서트를 열겠다는 의지도 보여주었다. “이름콘서트 첫 회 때는 50여 명을 모아놓고 진행할 생각입니다. 찾아주신 분들께서 가지고 계신 이름에 대한 고민이나 궁금증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려드리기도 하고, 관객분들의 이름 에너지를 직접 측정하여 본인의 이름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도록 돕는 장을 만들 것입니다.”안 소장은 시간을 내어 산후조리원에서 특강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는 엄마가 부를 때 편안한 아기 이름이 아기와 엄마 모두에게 좋으며, 이름이 자녀의 어린 시절 건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다. 또한, 안 소장은 여성들에게 이름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고민을 지속적으로 해나가고 있다. “제왕절개를 통하여 출산일을 정해야 사주가 좋아진다는 사주가의 말에 속는 피해 여성들이 많습니다. 자녀와 관련되어 있으니 모성애가 있는 여성들이 무조건적으로 끌리는 경우가 생기지요. 실력없는 역술인들에게 피해 입는 사람이 없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학술적인 이름 치료를 더욱 알려야 합니다.” ​ ● 이름 에너지의 신비 인터뷰를 진행하며 안 소장을 통해서 이름 치료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먼저 우리나라의 이름 치료를 외국이 따라올 수 없는 이유로 그는 한글의 우수성을 꼽았다. 예를 들어 한글로 ‘두’라는 글자가 있을 때 이 글자는 ‘두’라고 발음되지만, 영어로 ‘DO’라는 글자는 발음기호가 없으면 ‘두’인지 ‘도’인지 발음이 명확하지 않다. 이렇게 발음이 명확하지 않은 문자를 말할 때는 에너지의 변질이 일어난다고 한다. 또한, 한자 이름보다 한글 이름이 평균적으로 약 3배 더 강한 에너지를 지닌다고. 이름은 불리는 사람보다 부르는 사람에게 20배가량 더 큰 영향을 주며, 녹음으로 듣는 것보다 육성으로 들을 때가 좋다고 전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부르는 것이 에너지 전달 효과가 가장 높다고 한다. 자신이 불렀을 때 뼈와 혈관을 통해서 소리가 고체, 액체를 통과하는 강도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타인이 부를 때는 기체의 강도로 전달되기 때문에 자신이 스스로 이름을 불렀을 때보다는 에너지 전달이 강하게 되지 않는다. 자신에게 잘 맞는 소리의 이름으로 개명을 하면 건강 증진이나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안 소장. 이름 치료 과정을 통해 궁합까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이름 치료를 통하여 조금씩 좋은 에너지를 받다 보면 점점 더 올바른 결정들을 하게 되고, 그 결정들은 행운처럼 인생을 긍정적으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좋은 이름을 갖게 되면 혈액순환이 좋아지면서 원활치 않았던 순환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고, 에너지 공급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신체 기능이 회복됩니다. 비만 체형이나 야윈 체형을 가진 사람들이 이름에너지로 인해 살이 빠지거나 살이 붙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로, 이름의 신비로운 힘을 입증해 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이름 치료 전문가의 인생 조언 이름 치료 분야 발전에 몰두하는 안 소장은 돈을 벌기 위해서 보다 이 분야의 가치와 소중함, 많은 사람에게 좋은 이름을 줄 수 있다는 자부심 때문에 뜨거운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는 돈을 필요보다 많이 벌게 되면 화가 뒤따르기 쉽다는 것을 조언해주었다.“한 달에 만약 100원이 필요하다면, 105원, 110원 정도를 버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필요한 만큼보다 훨씬 큰 돈을 벌면 사고나 화를 당하기 쉽지요. 횡재를 바라지 말고 자신의 분수와 그릇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태어난 분수에 맞게,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상식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준 안 소장. 그는 이름 치료를 통해 사람들이 좋은 에너지를 얻어 자기 자리에 맞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돕는 에너지 헬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다. 이어서 그는 사람들에게 현직에 있을 때 60세 이후 준비를 하라는 조언도 전해주었다. 인생의 1라운드를 직장의 힘으로 이어간다면, 퇴직 이후 2라운드는 오로지 자신만의 힘으로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직에 있을 때 많은 일과 경험을 체득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진심으로 전했다.● 이름 치료 분야 발전을 위한 비전 그가 연구한 이름 치료 분야에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닌, 인생의 결정적 흔들림이며 주파수이다. 그 흔들림을 좋게 해주기 위해 그는 쉼 없이 자신의 분야를 알리기 위해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름 치료를 알리기 위해 지난 7월에는 『이름의 힘』(타래, 2015)이라는 책도 발간하였고 ‘다시 쓰는 이름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강의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저서 출간의 경우, 『과학과 의학으로 밝혀 본 이름의 힘』에 이어 시리즈로 ‘시간의 힘’, ‘땅의 힘’, ‘얼굴의 힘’이라는 제목의 책들도 쓸 계획이라고 한다. <두원네임컨설팅연구소>를 찾아준 사람들에게 나쁜 이름은 절대 주지 않는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안 소장. 최고의 정성과 기술적인 부분을 통하여 인생에 도움이 되는 좋은 이름을 선사하는 그의 비전은 <두원 Name Clinic Center>라는 이름치료 의료기관을 세워 센터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의사가 직접 건강에 적합한 이름을 알려주도록 하는 것이다. 좋은 이름을 통하여 사회에 긍정적인 에너지 파동을 선사할 그의 네임컨설팅이 앞으로 더욱 퍼져가기를 바라본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군가 노력하고 애쓰는데 힘이 부족해서 안 되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제가 하고 싶습니다. 이 세상 이치를 보면 혼자 하는 일이 없어요.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가 잘 하면 내 주변도 잘 하는 쪽으로 움직이게 되지요. 나비효과처럼요. 상생의 가치로 서로 연결고리가 되어 좋은 긍정의 에너지가 퍼져나간다면 사회가 맑아지고 잘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흐름을 잔잔하게 퍼뜨려가고 싶습니다.” profile안동연 이름치료연구가 | 법학박사 | 두원네임컨설팅 연구소장 안동연 소장은 동국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30여 년간 명상의 효과를 연구하던 그는 이름에너지가 심신에 다양한 영향을 줄 수 있음을 확인하고, 그것을 객관화, 과학화하기 위하여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수년간 의학적인 방법으로 이름에너지를 분석, 검증하였다.이 연구결과를 중국벤처기업협회 초청에 의해 북경에서 발표하는 등 이름치료의 해답을 제시한 그는 현재 한국능률협회, 한의사협회, 경찰병원, 컨텐츠진흥원, 대전시청, 현대모비스 등 각급 기관과 기업체에서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이메일 doonename@naver.com홈페이지 name-energy.com카페 cafe.daum.net/pms32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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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08
  • [한국단미사료협회 박해상 회장 특별 인터뷰] 한국 농업 발전 현장엔 항상 그가 있었다!
    [위클리피플=오미경 기자, 신재윤 기자] 한국 농업의 발전 현장엔 항상 그가 있었다! 평생 한 길 걸으며 ‘농촌 희망’ 만들어 온 아름다운 여정의 주인공 박해상 한국단미사료협회 회장 농업환경의 변화로 인해 많은 어려움에 직면한 국내 농업의 현실을 두고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地大本)’이라는 말이 이제는 무색하다고 하지만, 인류가 존재하는 한 농업은 영원한 인류의 생명줄임에는 변함이 없다. 게다가 문화, 전통, 지역사회를 존재케 하는 농업의 다양한 역할을 생각한다면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불행 중 다행으로 세계의 흐름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다양한 각도에서 농업의 중요성이 재조명되고 있는 가운데, 현장과 행정을 누비며 ‘농업의 가치’를 삶 그 자체로 말해 온 이가 있어 주간인물이 만났다. 한국단미사료협회 박해상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취재_오미경, 신재윤 기자/ 글_오미경 기자 한국단미사료협회, “궁극적인 농업 발전에 기여 하겠다” 한국단미사료협회는 1978년 창립된 이래, 한 가지 원료로 이뤄진 단미사료와 이를 이용해 만든 배합사료의 제조기술 향상 및 사료산업의 발전을 도모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농경사회를 지원해 온 주요 단체이다. 지난 7월, 보궐선거를 통해 제 16 대 회장에 선출된 박해상 회장은 그만큼 어깨가 무겁다고 했지만, 포부를 전하는 모습은 자신감이 넘쳤다. “앞으로 육류 소비가 늘어날 것을 대비해 양질의 사료를 공급하는 것이 협회의 첫 번째 임무입니다. 그리고 양질의 사료를 해외로 수출하여 우리 축산의 위상을 높이고 국내 사료업계도 활성화 시키고자 해요. 이미 수출협의회를 구성했고, 그 밖에 사료 분석소와 함께 연구소를 확대시켜 축산 농가와 회원사에 도움이 될 방향을 적극 고민하고 있습니다.” 명료한 그의 포부에서 한국단미사료협회가 궁극적인 농업 발전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농업 전문가로 살아 온 그의 삶이 특별한 이유 박해상 회장이 농업인의 길에 접어든 건 운명에 가까웠다. 경북 청도가 고향인 그는 학교에 다녀오면 책보를 내려놓기가 무섭게 산으로 들로 가축을 몰고 다니기 바빴던 유·소년기를 보내면서 자연스레 농업을 가까이 했고, ‘식량자급’이 국가 캐치프레이즈 였을 당시 높았던 농업대의 위상과 비전을 따라 국립 경북대학교 농학과에 진학한 농촌 토박이다. 대학을 졸업하면서는 기술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몸을 담았고, 이후 농림부 차관까지 지내며 다양한 위치에서 농업 전문가로서의 길을 걸어 왔다. 농림부에 있을 당시 식량자급 과제 및 친환경농업 육성의 초석을 다지는데 크게 기여했던 박해상 회장은 특히 차관보를 지내면서 현장과 행정을 접목해 농업의 실정을 탁월하게 돌봐온 것으로 유명하다. “이론을 먼저 세워 계획을 짠 뒤, 현장에 반영하는 행정이 통상적이었지만 사실 농촌 현장은 이론과 다른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먼저 현장을 알고, 그것을 행정에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는 수행자도 대동하지 않고, 사전에 예고도 없이 농촌 현장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누구도 보인 적 없는 행보에 때론 그가 차관임을 믿지 않는 이들도 있었고, 현장의 거친 반응에 고달플 때도 있었지만 박 회장은 이를 통해 농민들끼리의 정보 공유 장을 만들기도 하고, 생생한 농촌의 목소리를 담아 정책으로 도출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당시 그가 기록한 현장의 경험들이 책으로 엮어지자 농림부 공무원들의 주문 요청이 물밀 듯 밀려든 일이 있었을 정도로 일에 대한 박해상 회장의 원칙과 역량은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었다. 또한 그는 고위관료를 지낸 사람 중 보기 드물게 분야의 인재 육성에도 기여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농업전문학교 학장과 농협대학교 총장직 등을 역임한 것이 그것인데 특히 농협대학교 에서는 농협중앙회와 얽혀있는 인사이동 문제를 개선해 대학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드는 등 50여 년 농협대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남긴 바 있다. “우리만의 특색으로 농업 경쟁력 만들고, 농촌에 활력 불어 넣어야” 다양한 위치에서 역량을 보여준 박해상 회장은 여전히 바쁘다. 한국단미사료협회 회장직 외에 고향을 향한 마음을 담아 경북 농어업 FTA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그는 단순히 FTA 대응을 위한 활동 차원이 아닌, 사실상 전반적인 농업경쟁력 향상에 대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위원장으로서 “길게 보면 개방과 세계화는 피할 수 없고, 빠른 속도로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고 있는 만큼 무엇보다 기후든, 토지든 우리만의 특색을 찾아 고민하고,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그는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어 농업을 활성화 시켜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급격한 산업적 성장으로 우리나라의 농업 생산 비중이 급감하고, 고령화 시대로 빠르게 진입하면서 농촌 사회의 활기가 떨어져 농업이 위축된 만큼 회복을 위한 활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농촌은 국가의 기틀입니다. 세계 석학들도 농업을 미래 경제의 핵심으로 보고 있죠. 다행히도 귀촌 및 귀농 인구가 늘고 있는 등 우리 농업도 희망은 있어요. 농촌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혁신경제를 이끌 대표적인 네 가지 IT, BT(바이오테크, 생명공학), NT(나노테크), NT(뉴로테크, 신경계 테크닉)의 많은 부분이 농업에 기반을 두는 만큼 이것의 활성화와 전문가 육성, 농가소득 향상을 위한 농업 6차 산업화의 흐름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등이 필요합니다.” 또한 그는 농업 환경의 변화에 따라 우리 농업의 방향을 고민하는데 있어 “대량생산화, 지형적인 여건을 살린 특화, 농업직불제와 같은 세 부류의 형태 중 어느 한 쪽 면만 보기보다 우리의 정확한 실정에 맞는 절충안을 고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흔들리지 말고 피어나라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그는 천생 농업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농사란 것이 계절을 버티고 인고의 열매를 맺는 정직함 그 자체이듯, 평생을 한 길만 걸어온 그 역시 공직에 있으면서 3년 간 하루도 쉰 날 없이 일하기도 했을 만큼 바쁜 나날 속에 중책을 맡아왔음에도, 농업 분야에 중심을 튼 신념만은 흔들림 없이 꼿꼿했다. 아니나 다를까. 농림부 시절, 일에 있어 그의 별명은 불도저였단다. “자기분야에 있어 ‘일로 만든 백 그라운드’가 최고의 무기라 생각합니다. 겉치레는 결국 바닥을 보이기 마련이죠. 젊은이들에게도 흐름에 영합하기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자기 길을 가라고 해주고 싶어요.” 그가 강조하는 또 하나의 신념은 인연이다. 인간관계에서 더불어 사는 것을 중요시하는 그는 조직 관리를 함에 있어서도 화합, 협동, 인화단결을 핵심으로 본다. 직원들과 격식 없는 소통을 하는 모습 역시 그가 말하는 화합의 기본이다. 요즘 박 회장은 새로운 경험으로 고양검찰청 시민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단독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시민사회의 다양한 사안을 해결하는 보람도 느끼고 있다. 여전히 에너지 넘치는 그의 남은 꿈은 무엇일까. “그간의 경험을 받침 삼아 능력이 소진 될 때까지는 농업 분야에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평생 한 우물을 파는 이의 모습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다. 우리네 농민의 삶이 그러하듯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오직 농업 분야 한 길만을 바라보며 무던히 걸어온 박해상 회장의 삶 또한 그래서 아름다웠다. 농촌에 뿌리 내린 박 회장의 한결 같은 열정을 마주한 오늘, <주간인물>은 분명 그 속에서 빛나는 우리 농업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profile. < 학 력 >●경북대학교 농과대학 졸업 (1976) : 농학사●고려대학교 식량개발대학원 졸업 (1989) : 경제학석사●경북대학교 농업생명대학원 졸업 (2005) : 농학박사 < 경 력 >●제12회 기술고등고시(농림직)합격 (1976)●농림수산부 농산국(비료수급, 미산계장 등) (1977 ~ 1987)●농림부 종자공급소 평택, 밀양 지소장, 농림부 농산, 환경농업과장 (1988 ~ 1998)●농림부 식물검역소장, 식량생산국장 (1999 ~ 2001)●한국 농수산대학 총장(교장, 학장) (2002. 2 ~ 2004. 2)●농림부 차관보 (2004. 3 ~ 2006. 7)●농림부 차관 (2006. 8 ~ 2008. 2)●농촌사랑지도자 연수원장 (2008. 6 ~ 2011. 1)●농협대학 총장(2009. 2 ~2013. 1, 연수원장 겸직 2년)●의정부 지방검찰청 고양지청 검찰시민위원회 위원장 (2012. 10 ~)●경상북도 농어업 자유무역협정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 (2013. 3 ~) < 상 훈 >●근정포상 (1982) ●황조근정훈장 (2008)●홍조근정훈장(1998) ●자랑스러운 경대인상(2010. 3)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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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9-15
  • [21세기치과 최희수 대표원장 특별 인터뷰]치과 진료의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하는 그를 만나다!
    [위클리피플= 오미경 기자, 신재윤 기자] 환자와 의사의 마음을 사로잡은 치과건강보험진료의 ‘고수’ 치과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다 최희수 21세기치과의원 대표원장 / 대한치과보험학회 학술이사 “병원이 불황이라고 환자들에게 무작정 과잉진료를 권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저렴하게 진료비를 책정해 미끼식 광고를 하는 것은 치료의 질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환자들에게도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어요. 보험진료는 경제적으로 경영의 고민을 가지고 있는 치과들과, 값비싼 치료항목들로 인해 치과에 가기 망설여지는 환자들의 입장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당신은 알고 있는가. 전국에 있는 치과의 수가 무려 1만 5천여 곳이 된다는 사실을. 하지만 이 많은 치과들이 1년 내내 호황을 누릴 수는 없는 노릇일터. 매년 경영적인 문제와 잇따른 경기침체로 인하여 문을 닫는 치과들도 비일비재하다. 여기, 이러한 현실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의료인이 있다. 치과원장이 직접 공부하고, 환자들에게 소개하는 보험진료를 통해 병원과 환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비법으로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21세기치과>의 최희수 원장. 그가 말하는 ‘치과건강보험진료’의 모든 것과 그만의 의료철학을 들어보자. _취재 오미경, 신재윤 기자 / 글 신재윤 기자 부천에 위치한 21세기치과는 2007년 개원하여 햇수로 7년차가 된 지역 내의 대표 치과이다. 지난해부터 대표원장을 맡게 된 최희수 원장은 주중엔 진료와 협회업무로, 주말엔 강의와 세미나 등 학술활동으로 인하여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진료를 모두 마치고 마스크를 벗지도 못한 채 부랴부랴 기자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에서 그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열혈’ 치과 의료인으로의 출발점이 된 39개월간의 군 생활 여러 매체의 인터뷰 제의에도 한사코 자신을 노출하지 않았던 최희수 원장에게 가장 먼저 들었던 것은 지금의 그가 있기까지에 대한 배경적 이야기였다. 최 원장은 수의대 교수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수의대 진학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수의사 보다는 사람을 치료해주는 의사가 더 좋지 않겠느냐는 아버지의 권유로 그는 대학 입시를 얼마 남기지 않았을 때 진로를 바꾸게 되었다고 운을 띄웠다. “그렇게 치과대학에 들어가 교정과 의사가 되고자 했으나 하다 보니 구강외과를 전공하게 되었고, 주전공은 턱관절 수술이었어요.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치과의사엔 관심이 전혀 없었다가 치의학을 공부하면서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죠. 작은 진료기구들이 많은 치과의 특성상 여러 도구들을 만지는 것을 좋아한 것도 한몫 했던 것 같아요.” 최 원장은 남들과는 다른 군 생활을 꿈꿨다. “당시 군의관의 복무 기간은 39개월 정도였어요. 그 긴 시간을 산 속의 작은 군 병원에 있기 보단 수술 여건이 좋은 병원으로 가고 싶었고, 능력을 발휘하며 실질적 배움이 있을만한 곳을 희망했죠. 그래서 생각한 것이 해외파병이었어요. 마침 미국에서 일어난 9.11 테러로 우리나라도 의무부대를 파병하게 되었고, 치과군의관으로 자원하여 결국 아프가니스탄 인접 국가인 중앙아시아의 키르키즈스탄에서 6개월간의 파병생활을 보내게 되었어요. 귀국 후엔 분당의 수도병원에서 군 생활을 마무리 했는데, 군 시절 겪었던 수많은 진료경험은 지금의 제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보험진료의 ‘고수’가 되다 현재 ‘치과건강보험진료’로 치과계 안팎에서 가장 ‘핫한’ 인물로 꼽히는 최희수 원장. 처음부터 그가 병원경영과 보험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환자들에게 진료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여느 ‘평범한’ 치과의사였다. 그러다 2007년 초, 새로 개원하게 된 <21세기치과>의 공동 원장으로 부임하며 의사로서 2막이 열렸다고 생각했지만, 그 내막은 밝지만은 않았다. 비교적 큰 규모의 병원에 비해 가장 중요한 ‘환자’들이 오지 않았던 것. “그전 병원에서 있을 때와 다른, 개원의 현실에 봉착하게 되었죠. 이전에는 환자들이 제 진료를 받기 위해서 몇 달의 대기도 아랑곳 않고 기다릴 정도였으니까요. 그 때 깨달았죠. ‘아, 그동안 난 환자가 있는 곳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진료만 한 거였구나’하고요.” 그 후 최 원장의 눈에 들어온 것은 ‘치과건강보험진료’다. 본디 보험청구나 행정적인 부분은 직원들의 몫으로 치과원장들은 대개 최소한의 선에서만 관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 원장은 환자들의 입장과 병원의 이익을 모두 고려할 수 있는 방향을 ‘보험진료’로 보고 가장 기본이 되는 각각의 보험항목들에 관한 원가분석부터 시작했다. 그 결과 그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들이 나왔다. “청구 금액이 플러스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항목이 마이너스가 될 때도 있었고, 경우에 따라선 그 반대가 나오기도 했죠.” 최 원장은 본격적으로 보험을 더 공부하기 위해 관련 세미나들을 알아보았지만 직원이나 위생사들을 위한 ‘보험청구’ 관련 교육은 많았던 반면, 그가 원했던 실질적인 보험행정을 배울 수 있었던 교육은 없었다. 결국 최 원장은 독학을 했고, 현재는 수많은 치과의사들이 그에게 자문을 구하는 치과보험의 ‘고수’가 되었다. 지난 5월에 출간된 최희수 원장의 저서 <치과보험 경영지침서>가 탄생된 배경 역시 의미가 깊다. 이 책은 시중에 나오는 의학상식들이 담긴 다른 서적들과는 달리 개원가의 치과원장들이 필수로 알아놓으면 좋을 정보들을 담고 있으며 최 원장이 수년간 연구하고 수집한 치과보험 자료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보험청구가 솔직히 쉬운 것은 아니에요. 원장의 입장에서 봐도 진료하느라 바쁜 와중에 환자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주기 위한 공부도 많이 필요하죠. 또한, 비보험 진료의 높은 단가보다 상대적으로 경제적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니지요. 하지만, 그것들이 모두 하나하나 쌓인다면, 치과를 운영하는 입장의 원장님들은 향후 놀라운 결과를 보게 되실 거예요.” 하지만 보험진료가 반드시 병원 측에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최 원장은 비싼 치료비에 대한 인식으로 환자들이 가기 어려운 병원들 중 한 곳이 치과임을 꼬집으며 “이 같은 보험진료가 활성화된다면, 환자들도 더욱 저렴한 비용으로 질 높은 치과진료를 받을 수 있을뿐더러 치과에 대한 만족감도 커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아픈 환자를 안 아프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 치과 의사로서 환자들을 향한 그의 의료철학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제가 진료해 준 환자가 다른 의사한테 진료를 받았을 때보다 조금 더 결과가 좋았으면 좋겠어요. 그 결과가 임상적인 면이 될 수도, 심리적인 부분일 수도 있지만, 제가 아직 젊어서인지 환자의 심리적인 부분까지 완벽하게 보듬어 줄 순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아파서 온 환자들을 안 아프게 해주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임상적인 결과만큼은 제게 온 환자들에 대해 보장을 해 주겠다는 신념이 있습니다.” 최 원장은 의료적인 면에서 확실히 환자들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다는 자신의 소신을 이 같이 밝혔다. 평범한 의사였던 최희수 원장이 차츰 경영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만의 경영관은 <21세기치과> 전체가 발전하도록 물들여졌다. 때문에 최 원장은 더 큰 미래를 보고 있다. 요즘은 더 좋은 진료 환경을 위하여 치과의 확장과 관련해 도면까지 직접 그려볼 정도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개원 초기에 제가 경영에 참여를 못했던 것이 아쉬움이 남아요. 물론, 7년 전보다 장비적인 면은 좋아졌지만 시설적인 면에서 더 욕심이 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강의를 통해 내 안의 ‘나’를 느끼다 현재 치과의사들 내에서 베스트셀러로 꼽히고 있는 <치과보험 경영지침서>를 내기 위해 수년간 분석과 연구를 해온 최희수 원장. 의료계에선 이러한 입소문으로 현재 전국적으로 그의 강의를 듣고 싶어 하는 치과 원장들이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다. 강의를 열 때마다 예상했던 참석인원을 항상 초과한다는 최 원장의 이야기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매주 이렇게 강의를 하며 지내는 바쁜 일정이 그에게 버겁지는 않을까. 질문을 던지자 최 원장은 괜찮다는 듯 웃으며 답변을 이어갔다. “교육자인 아버님의 유전자를 물려받아서인지 때로는 진료보다 강의에 더 재미를 느낄 때도 있어요(웃음). 제가 잘하는 것을 알려주고, 제게 배운 사람들과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들에서 재미를 느끼고 있어요. 현재 꾸준히 하고 있는 보험 강의도 누군가의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언제까지라도 행복하게 할 것 같아요.” 최근 많은 치과들의 특징을 보면 치과 진료 항목들 중 한두 항목만을 전문화 하여 다루는 치과들이 많다. 반면, <21세기치과>는 각 분야에서 우수한 의료인들이 양악수술, 임플란트, 교정, 심미치료 등 다양한 고민을 가지고 치과를 방문하는 환자들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최 원장 역시 <21세기치과>의 경쟁력이자 나아가야할 방향으로 치과의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진료는 대부분 소화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최 원장의 진료실에는 오늘도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다. “진료가 일찍 끝나는 날이 있어도 제가 소속된 협회 일들과 각종 학술 모임으로 평일에도 일찍 귀가할 틈이 없어요.” 남들보다 치열하게,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자신만의 ‘열혈’ 인생을 살고 있는 최희수 원장. 앞으로도 그의 경영관이 빛을 발할 <21세기치과>, 그리고 환자, 병원, 동료의료인 등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오늘도 강의와 병원을 오가는 최희수 원장을 <주간인물>은 열렬히 응원해본다. profile. 21세기치과(부천) 대표원장, 구강외과 담당대한치과이식임플란트학회 보험실행이사(현) 대한치과보험학회 학술이사(현)대한치과의사협회 임플란트 보험급여화 대책 TF팀 위원(현)대한치과협회 보험위원회 위원(현)대한치과협회 청년특위위원장(현)부천시 치과의사협회 총무이사(현) 대한악안면성형재건외과 인정의 및 지도의한국치과임플란트 연구회 Director한국치과건강보험연구원 수석연구원ICOI Fellow, AO Active member 원광대학교 치과대학 졸업(1991~97)연세대학교 치과대학병원(강남세브란스병원) 구강악안면외과 수련 및 동대학원(~2001)미공군 제 376 부대(Ganci Air Base) 구강외과 군의관(~2002)국군수도병원 구강외과 과장(~2004)서울보훈병원(현, 중앙보훈병원) 구강외과 과장(~2006)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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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9-15
  • [김한겸한의원 김한겸 원장 특별 인터뷰] 한방재활의학으로 잃어버린 건강을 되찾아드립니다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이민영 기자] 당신을 위한 진료공간, 김한겸한의원한방재활의학으로 잃어버린 건강을 되찾아드립니다 김한겸 김한겸한의원 원장|(사)대한한의사협회 홍보이사|한의학 박사·전문의 은은한 약초의 향과 황토색을 사용한 인테리어는 한방 치료가 이루어지는 한의원에 고전적인 이미지를 부여하는 장치들이다. 하지만 여기, 그러한 틀을 깨고 일반 병원을 연상시키는 화이트 톤의 내부에 예술품들을 장식해 놓음으로써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한의원이 있다. 또한, “당신을 위한 진료공간을 마련하였습니다. 쉬운 것부터 어려운 것까지 함께하는 당신의 주치의가 되어드리겠습니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믿음을 주는 그 곳. 김한겸한의원을 찾아간 주간인물은 김한겸 원장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_취재 이선진, 이민영 기자/글 이민영 기자 질병을 한방으로 잡는 남자 이제는 동네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이 한의원이지만, 전문의 자격증을 가진 한의사는 2,000명이 되지 않을 정도로 그 수가 적다. 특히 한방재활의학과 전문의는 300여명 정도로 희소성을 갖는데, 그 몇 안 되는 한방재활의학과 전문의 중 한명이 바로 우리가 만난 김한겸 원장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탄탄한 실력을 갖춘 그가 자만하지 않고 더욱 책임감을 느끼도록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문을 연 ‘김한겸한의원’. 영리를 목적으로 한 과잉 진료와 처방 없이 환자 한명 한명을 위한 맞춤 진료를 행함으로써 그들의 주치의가 되겠다는 그의 진심이 통한 것인지, 김한겸한의원은 개원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벌써 입소문을 타고 진료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김 원장의 전공 분야가 척추인 만큼 그를 찾아오는 이들 다수가 디스크와 척추협착증을 앓는 환자들이며, 그들은 척추의 밸런스를 맞추고 틀어진 것을 바로잡는 추나요법과 약침을 통해 치료를 받는다. 그 중, 김 원장이 7년 동안 해온 추나요법은 그 효과가 좋기로 정평이 나 있으며, 그의 실력은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권유받은 척추 질환 환자들이 그를 통해 수술 없이 건강을 회복한 사례에서도 입증된 바가 있다. 그럼에도 김 원장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한방재활의학을 통한 척추 치료 연구에 몰두했고, 아이들에게 바른 자세에 대한 교육을 하며 척추 질환의 예방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척추 치료만을 하는 것은 아니며, 김한겸한의원에서는 재활의학과 전문 과목인 관절과 비만 치료 등 크고 작은 질병들도 함께 진료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 질병이든 1차 진료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김 원장은 환자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는데, 인터넷이 발달하며 정보를 접하기가 쉬워진 만큼 잘못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아, 이러한 이유로 판단이 잘 서지 않을 땐 고민하지 말고 가까운 병원을 찾아 전문가의 말을 듣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더불어, 자신 또한 수련의 시절 디스크로 고생을 한 경험이 있기에 환자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그는, ‘건강’은 ‘시험성적’과 같기에 족집게 과외라고 할 수 있는 병원의 치료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환자의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만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의학 홍보, 더 이뤄져야 현재 개인의 한의원을 운영함과 동시에 대한한의사협회 홍보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김 원장은 사람들이 한의학에 대해 갖는 오해와 편견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는 듯 했다.“보통 한의학이라고 하면 음양오행에 따른,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신비한 전통 의학 정도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현재 저를 비롯한 한의학 전문의들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현대의 한의학은 충분히 근거 중심적이며 과학적인 학문입니다. 최근에는 외국 과학 잡지인 ‘Nature’지에서도 한의학의 과학적인 효과를 인정한 바가 있죠. 더욱이 기존의 한의학은 질병의 근원을 장부(臟腑)의 문제에서 찾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면 한방재활의학은 장부에서 신체의 구조적인 부분으로까지 연구 범위를 넓힘으로써 더욱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해지도록 했습니다. 칼과 같이 위험한 도구나 기구를 사용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재생능력을 이용하여 치료하니 그만큼 안전하기도 하고요.” 한방 치료의 우수성을 설명하던 김 원장은 사람들의 한의학에 대한 인식 부족과 그에 따라 난무하는 잘못된 정보들과 같은 문제는 한의학의 홍보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단순히 걱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는데, 그는 7년째 블로그(blog.naver.com/hangom82)를 운영하며 한의학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알리고 있으며 방송활동과 칼럼 기고 등의 외부 활동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부(富)를 삶의 목표로 삼지 말라’는 부모님의 가르침대로 앞으로도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며 그들의 평생 주치의가 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이 얻은 것을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사회 발전에도 기여하고 싶다고 말하던 김한겸 원장. 이제는 그 역시 누군가의 남편, 아버지가 되어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인터뷰 말미, 불과 며칠 전 아들이 태어났음을 밝힌 김 원장은 병원 개원부터 이사, 그 외로도 집안에 많은 일들이 있었음에도 무사히 건강한 아기를 낳고 힘이 되어주며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느끼게 해준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또한 자신이 그랬듯, 자신의 아들도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우며 자랄 수 있도록 하고 싶다며 아버지로서의 바람도 전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처럼 연륜이 느껴지는 나이는 아니어도 한 병원의 원장과 가장으로서 믿음을 준 그가 ‘젊음’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한의학 분야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길 기대해본다. 척추를 한방으로 잡는 남자 '김한겸 원장' 블로그 profile(현)네이버 지식in 상담한의사(현)내일신문, 민족의학신문 칼럼 필진 (현)대한한의사협회 홍보이사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보수교육 강사 (2014)YTN 라디오 건강수첩 진행자 (2013)「공중보건한의사 임상지침서」 집필 (2012)자생한방병원 교통사고 센터장 (2011)자생한방병원 척추 4센터 진료원장 (2010-2011)자생한방병원 튼튼척추교실 디렉터, 강사 (2010-2011)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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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9-05
  • 풍부한 임상 노하우로 ‘자반증’ 치료에 앞선 한의사 동경한의원 유승선 원장을 만나다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신재윤 기자] 풍부한 임상 노하우로 ‘자반증’ 치료에 앞선 한의사유승선 동경한의원 원장 몸에 붉은색 반점이 생겨나는 '자반증(紫斑症)'. 자반증은 발병하더라도 몇 주 후 자연 소멸되는 경우가 있지만 만성화 될 경우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혈열(血熱)’에 따른 우리 몸의 불균형에서 자반증의 원인을 찾아 근본적인 치료에 나선 한의사 ‘유승선 원장’을 만나 ‘건강’과 ‘행복’에 이르는 길을 따라가 보았다. _취재 이선진, 신재윤 기자 / 글 이선진 기자 자반증 환자에게 ‘완치’와 새로운 ‘꿈’을 선사해준 유승선 원장 대전에 위치하고 있는 ‘동경한의원’은 주로 피부질환, 그 중에서도 자반증, 혈관염이라고 하는 피부질환을 진료하고 있고, 내원환자 중 60%는 자반증 환자, 그 중에서도 95%는 대전 외곽지역에서 찾아오는 이들로 구성된다. 10만 명 중 20여 명 정도만이 발병하는 자반증. 우리가 알고 있는 흔한 질환은 아닌 이 ‘자반증’은 성인보다는 대부분 어린아이에게 많이 발병된다고 한다. 자반의 종류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발병률이 높은 것이 ‘알레르기성 자반증’인데, 대표적인 증상은 다음과 같다. ‘①피부에 나타나는 자반증, ②관절의 통증 및 관절염 증상, ③복통을 비롯한 위장관 증상, ④신장 증상’의 네 가지 증상이라고.그 외 자반증과 관련한 치료 및 증상, 생활수칙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궁금하다면 동경한의원 사이트(www.idkclinic.com)를 둘러볼 것을 권한다. 유승선 원장이 그간의 풍부한 치료사례인 데이터베이스들을 모아 근거 있는 외국 논문과 자료들을 토대로 게재한 글이기 때문이다. 유 원장은 국내 최초로 자반증 서적 ‘주치의의 자반증 노트’를 출간해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책을 내기까지는 2년이라는 준비 기간이 걸렸는데, 그 이유가 외국의 논문들을 검색한 후 검증된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안타까운 건 인터넷 상에 퍼진 잘못된 정보들을 접해 더 안 좋아진 상태로 내원하는 경우에요. 자반증 관련 책이라 하면 주로 논문이 많기에, 일반인들을 위한 치료 노하우를 알리고자 자반증 서적을 내게 되었어요.” 또한, 대학병원급 수준의 차팅, 데이터베이스를 근거로 연구한 논문들을 올해 두 편 정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환자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치료사례를 요목조목 설명하던 유승선 원장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 아이는 횡성이 집이라 타 병원에서 한 달간 치료 후 불가 판정을 받았고, 이후 대학병원에서도 두 달간 입원 후 특별한 호전을 못보고 저희 한의원에 내원한 아이였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치료사례도 사례지만 그는 업(業)을 통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질병을 극복하고 치유하는 유 원장의 모습을 보면서 ‘한의사’를 꿈꾸는 아이들이 많아졌다고. “한의사가 되고 싶다는 아이들이 많아질수록 막중한 마음이 들었고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히 내딛으며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환아의 어머니가 하신 “우리아이만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저도 원장님을 보고 있어요”라는 말에 더 큰 책임감을 새로이 느끼게 되었다는 유 원장. 분야의 전문성은 물론 따뜻한 인품이 돋보였던 그는 자신이 아팠던 경험을 털어놓으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지금 여기,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합니다 유 원장은 초등학생 때 앓았던 비염을 시작으로, 아토피, 천식까지 복합적인 질병을 안고 일상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의 힘든 학창시절을 보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공부하겠다는 일념 하에 공대에 입학했지만 자신의 질병을 계기로 ‘내 몸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에 한의대에 다시 들어가게 되었다는 그. “한의대생 시절 제 꿈은 무사히 졸업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아프고 말 한 마디 못할 정도가 되니 사는 게 안 사는 것보다 힘들다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하지만 그는 자신을 꼭 치료해야겠다는 신념이 확고했고, 그 가운데 좋은 인연을 만나 한의학적 치료로써 건강을 되찾을 수 있게 됐다. “저는 한의학에 개인적으로 신뢰와 믿음, 사랑을 갖고 있습니다.” 경험에서 우러난 따뜻한 조언을 구하자 그는 “사실 질병이라는 건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하는데 꼭 치료가 된다는 희망을 놓지 말고 절대(*7번) 포기하지 말라, 자신도 아플 땐 자취방에서 혼자 바깥을 보며 꼭 햇살을 즐겨야지 라며 소박한 꿈을 꿨던 그였는데 지금은 작은 일에도 스트레스를 받는 자신을 보면서 또 한 번 깨달음을 느낀다”며 “‘지금 여기가 천국’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작은 것, 있는 것에 감사와 소중함을 누리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들려주었다. 방송이나 라디오 등 여러 매체에 소개된 유승선 원장에게는 눈에 띄는 이력이 있었는데 ‘요리하는 한의사’가 바로 그것이다. 요리를 하게 된 것도 예전의 아픈 경험이 있어서 시작하게 되었다는 유 원장은 “식습관이 정말 중요하다”며 “요리를 하다 보니 건강 정보 상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의 폭이 더 넓어졌다”면서 환히 웃었다. 얼마 전 요리프로그램 방송 제의를 받고 ‘내가 과연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들자 심장이 뛰고 흥분됐다는 유승선 원장. 그는 변화와 도전을 즐길 줄 아는 멋진 남자다. 남은 하루하루를 불태우며 살고 싶다던 그는, 한의학의 저력을 알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같이 힘을 모아 뜻을 펼치는 것이 더 많은 환자들에게 더 좋은 삶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며 소망을 내비쳤다. 같이 밭을 간다는 뜻의 ‘동경(同耕)’. 작은 공간 ‘동경한의원’에서 함께 멀리 가는 ‘원대한 비전’을 확인하고 올 수 있었던 뜻 깊은 인터뷰였다. profileㆍ동국대학교 한의학과 졸업ㆍ동경한의원 대표원장ㆍ대한한방내과학회 정회원ㆍ대한한방 알레르기 및 면역학회 정회원ㆍ대한한방피부과학회 정회원ㆍ대한한의진단학회 정회원ㆍ대한한의학방제학회 정회원ㆍ한의자연요법학회 정회원ㆍ대한한방부인과 정회원ㆍ대한한방가정의학회 정회원ㆍ대한약침학회 정회원ㆍ대전지방경찰청, 대전보건전문대학, 충남발전연구소, 수자원공사 초청 강연ㆍSBS, KBS, MBN, BTN, TJB, CMB 등 방송 다수 출연ㆍKBS1라디오 ‘주사위’ [요리하는 한의사의 건강요리법] 코너 진행ㆍ저서 ‘주치의의 자반증 노트’출간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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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9-05
  • [이엠뷰티 김은미 원장 특별 인터뷰] 뷰티를 위해 태어난 사람, 김은미 원장을 만나다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이민영 기자] ‘장인정신’이 깃든 토털뷰티 케어뷰티를 위해 태어난 사람, 김은미 원장을 만나다 김은미 EM BEAUTY 대표원장 재투성이 아가씨 신데렐라가 높은 경쟁률을 뚫고 왕자님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요술지팡이 하나로 그녀를 공주님으로 만들어준 요정덕분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신데렐라의 법칙은 드라마에서도 종종 쓰이는 장치로, 평범했던 여주인공이 180도 바뀐 모습으로 숨겨져 있던 아름다움을 뽐낼 때 많은 여성들은 대리만족을 느낀다. 하지만 언제까지 신데렐라와 드라마 여주인공을 보며 대리만족만 하고 있을 것인가. 여기, ‘꾸미지 않거나, 꾸미지 못하는 것일 뿐. 세상에 못난 사람은 없다’라는 뷰티 철학으로 당신을 그 주인공으로 만들어줄 토털뷰티 센터가 있다. 한번 들어갔다 나오는 것만으로도 미운 오리에서 백조가 되는 EM BEAUTY(이하 이엠뷰티)의 자자한 소문을 듣고 그 곳을 찾아간 주간인물은 김은미 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_취재 이선진, 이민영 기자/글 이민영 기자 머리부터 발끝, 마음까지 예뻐지는 곳 보통 뷰티숍이라고 하면 ‘네일 전문’, ‘반영구 화장 전문’처럼 특화된 한 분야를 내세우는 경우가 대부분인 가운데 한 공간에서 헤어라인, 반영구 화장, 태닝과 네일을 모두 다루는 이엠뷰티는 말 그대로 ‘토털뷰티’ 케어가 가능한 곳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엠뷰티의 전문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오해는 절대 금물. ‘대충할 바에는 아예 시작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김은미 원장이 있는 한 그런 걱정은 기우(杞憂)에 불과하다. 실제로, 이엠뷰티는 각 분야에 전문가들을 배치하여 고객감동 100%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헤어와 메이크업, 피부 관리를 전공한 김 원장도 꾸준히 세미나에 참여하며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다. 이에 여러 전문 분야들을 다루고 관리하려다보니 비용 면에서나 에너지 면에서 힘든 점도 있지만, 그럼에도 현대의 바쁜 여성들이 한 공간에서 다양한 미용 케어를 받음으로써 비교적 적은 시간을 들여 아름다움을 찾는 것을 볼 때 느끼는 보람이 더 크다고 김 원장은 말한다. 더불어, 외형을 아름답게 가꿈으로써 자연스레 자신감도 생기고 긍정적인 변화를 겪는 고객들도 많이 있다는 그녀는 이엠뷰티가 이처럼 단순히 외형적인 부분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터치할 수 있는, 내·외적인 면을 모두 아우르는 ‘힐링’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술이 아닌 정신을 계승하는 장인(匠人) 김 원장은 국내 최초 헤어라인 반영구 화장과 3dnc 자연눈썹의 원천기술 보유자이자, 한국 속눈썹협회의 콘테스트 심사위원, 시험감독, 기술 강사와 국제 강사직을 맡으며 교육인증기관을 운영하고 있는 토털뷰티 분야의 권위자이다. 따라서 이러한 그녀의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고객들이 늘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지만 현재 이엠뷰티는 건대역점과 신사역점, 단 두 곳에서만 개점을 한 상태이다. 이에 지점을 더 늘려야 하지 않겠냐고 묻자 김 원장은 고민하는 듯 보였는데, 이처럼 그녀가 이엠뷰티를 프랜차이즈화 하는 것을 걱정하는 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 이미 그녀는 이엠뷰티라는 브랜드를 만들기 전에 수많은 수강생들을 배출하며 10개가 넘는 가맹점의 꽤 큰 뷰티숍 프랜차이즈를 운영한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경험으로 볼 때, 김 원장은 자신이 추구하는 것과는 다른 영리적인 목적이 불가피하게 앞서지 않으면 프랜차이즈를 유지하기 어렵고 이런 식으로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것은 자신의 뜻과 부합하는 일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따라서 책임감과 장인정신을 중요히 여기는 김 원장은 이를 지켜보고 있기가 어려웠고,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과감하게 프랜차이즈 본점과 당시 25,000여명의 회원이 있었던 인터넷 카페를 폐쇄했다. 영리적인 목적이 앞서는 프랜차이즈 보단 김 원장의 장인정신을 이어갈 수 있는 새로운 브랜드로 제2의 행보를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이다. 다행히 진심을 다해 고객들을 대하고 그들의 아름다움을 찾아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김 원장에게는 이미 두터운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었고, 그들은 수소문을 통해 어떻게든 그녀를 찾아왔다. 이에 김 원장은 그러한 고객들의 성원과 수년 동안의 경력에 힘입어 지금의 이엠뷰티로 새로운 출발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그렇게 해서 건국대학교 근처에 이엠뷰티를 연 그녀는 증가하는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최근 신사역점을 오픈했고, 격일로 두 곳을 번갈아 오가며 고객들과 만나고 있다. 이전의 프랜차이즈 운영 당시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가능한 한 고객들을 직접 관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실력으로나 서비스로나 완벽한 그녀를 한번 찾아왔던 고객들이 단골 고객이 되는 동시에 자신의 가족이나 지인들에게도 소개해주니 이엠뷰티는 화려하고 떠들썩한 마케팅 없이도 항상 고객들의 발길에 끊임이 없다. 따라서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이엠뷰티의 프랜차이즈화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았는데, 이에 김 원장은 조심스레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대부분 프랜차이즈라고 하는 것은 매뉴얼화된 기술을 제공함으로써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이루어지는 것이죠. 하지만 저는 이엠뷰티의 분점을 맡을 사람에게는 이처럼 단순한 기술이 아닌, 제가 가지고 있는 고객에 대한 책임감과 자신이 맡은 일에 있어서의 장인정신을 알려주고 싶고 전승하고 싶어요. 일을 그저 직업으로 삼는 것보다는 자기 일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 원칙을 준수하는 장인정신이 있어야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결국엔 자기에게도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거든요. 따라서 저는 이엠뷰티를 프랜차이즈로 확장하게 된다면 저의 이러한 신념을 공감하고 이해함으로써 그 정신을 이어갈 수 있고 숙련된 기술을 갖춘, 제가 직접 양성한 인재에게 분점을 맡기는 방식으로 할 계획입니다. 어느 지점으로 가든 수준차이 없이 최고의 시술을 받음으로써 모든 고객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이요.” 실제로, 김 원장은 그녀가 그토록 강조하는, 자신의 일에 대한 ‘장인정신’과 그녀의 노하우가 담긴 기술을 교육하며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이에 뷰티 산업 종사자이자 교육자로서 그녀는 “단순히 뷰티 산업이 호황이라고 해서 단기간 행해지는 수박 겉핥기 식 교육을 수료한 후 이 분야에 뛰어드는 것은 매우 우려가 되는 현상입니다. 경험만큼 훌륭한 스승은 없거든요. 그만큼 많이 경험해봐야 자신만의 노하우가 생기는 것이고 자산이 되는 것이죠. 특히 뷰티라는 것은 사람을 다루는 일이라 더욱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며 당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외국에도 제대로 된 한국의 뷰티 케어 기술을 전파할 것 한류열풍에 따라 한국의 뷰티 산업에도 관심이 높아진 탓에 현재 김 원장은 중국으로부터도 수많은 러브콜을 받으며 더욱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녀를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은 규모가 큰 도시에서만 교육을 하는 쪽으로 제안을 해보기도 했지만 지역적 규모에 상관없이 한국의 제대로 된 뷰티 기술을 알려야 한다는 그녀의 뜻은 꺾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가지 않으면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게 될 텐데, 행여나 다른 이가 제대로 된 기술을 교육해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국가의 이미지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따라서 힘이 들긴 해도 직접 가서 자신의 손길이 닿아야 마음이 놓인다는 그녀를 보니 지인들의 걱정이 이해가 되면서도 그녀에게 믿음이 가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처럼, 이제는 국내를 벗어나 중국에서도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는 김 원장은 기회가 된다면 중국에도 이엠뷰티 지사를 내거나 뷰티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싶다며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더 이후에는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로도 진출을 하여 한국의 뛰어난 뷰티 문화와 기술을 알리고 싶다고. 또한, 가능하다면 이들에게도 자신의 기술력과 장인정신이 모두 전파될 수 있었으면 한다고 그녀는 말했다. 인터뷰 도중, 다른 곳에서 받은 잘못된 시술로 인해 부작용을 안고 자신을 찾아오는 고객들을 볼 때마다 ‘자기 얼굴이 아니라고 어떻게 이렇게 해 놓을 수가 있지’라는 생각에 너무 화가 난다고 말하는 김 원장은 “결국 피해를 입는 쪽은 고객이잖아요”라며 속상한 마음을 내비쳤다. 이에 기자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는데, 본인이 손해를 본 것 이상으로 제3자인 고객이 피해를 본 것에 자신의 일인 냥 울분을 토하는 모습에서 그녀가 강조하는 ‘진정성’이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진심’임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니 어찌 고객들이 그녀를 찾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불어, 이와 같이 고객에게 진심을 전하고 원칙을 지킴으로써 고객만족을 넘어선 ‘고객감동 100%’를 추구함과 동시에 최고의 실력을 가졌음에도 겸손한 자세로 더욱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김은미 원장. 주간인물은 그녀의 날갯짓이 뷰티 산업 전체에 커다란 나비효과로 작용하길 기대해본다. profile 미국뉴욕 ABC Beauty Academy. INC 2014현, 이엠뷰티 토털뷰티센터&아카데미 리뉴얼 신설(Eyelash / Nail / Make-up / Tanning / Academy / Franchise)독일 아미아(무통) 공식지정 뷰티&교육센터 선정전, 세종뷰티클리닉 [본점] 대표원장(국내 최초 헤어라인 반영구화장 3dnc 자연눈썹 원천기술보유)Blooming Sweet Nail Academy President Diploma한국 속눈썹협회 컨테스트 심사위원한국 속눈썹협회 시험감독, 기술강사, 국제강사한국 속눈썹협회 교육인증기관 운영속눈썹 아티스트 1급 자격증 취득미국뉴욕 Semi Tatto Make-up Course DiplomaKimMin Beauty Academy 강사역임로레알 프로페셔널 파리 컬러키 DiplomaInternational Cidesco of DiplomaSemi Make-up Academy Semi-permanent make-up DiplomaJapan-Pro Make-up 수료국제 반영구협회 반영구화장 메이크업 자격증 취득 한국 피부미용연구학회 피부관리사자격증 취득국제 미용사자격증 취득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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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9-04
  • [고려대학교 병원 김병수 종양혈액내과 교수 특별 인터뷰] 도전과 함께 난치성 혈액질환 치료의 길 개척하다
    [위클리피플= 이민영 기자]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도전정신으로 난치성 혈액질환 치료의 길을 개척하다 김병수 고려대학교 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고려대학교 의료원 교육수련실장|의학박사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발전한 의료기술로 현대에는 과거에 밝히지 못했던 병명을 밝히고 불치병으로 여겨졌던 병들을 치료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현재의 의료기술만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난치병들이 있으며 환경이 변하면서 새로운 병들도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그 중, 산소 및 영양소 운반기능, 면역기능과 체온조절기능을 담당하는 혈액은 우리 몸의 생명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만큼 문제가 생기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이에 이번호 주간인물은 끊임없는 연구로 혁신적인 신기술을 개발하며 난치성 혈액질환을 앓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혈액질환의 최고 권위자,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의 김병수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_취재/글 이민영 기자 과거의 ‘약점’을 현재의 ‘강점’으로 수학과 과학보다는 역사와 사회를 좋아했던 문과 성향의 김 교수는 딱히 의대 진학에 꿈이 있진 않았다. 그런 그를 의료인의 길로 이끈 것은 전쟁 포로로 이북에서 이남으로 내려오신 부친의 뜻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부친이 이북에 계실 당시 김 교수의 조부는 불안한 국내 정세의 흐름을 고려하여 부친에게 ‘기술자나 의사가 되어라. 그 둘은 체제나 시대의 변화에 영향 없이 생계를 이어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하셨고, 그 말에 따라 이남으로 내려와 기술자가 된 부친은 자신의 아들인 김 교수가 의사가 되길 바라셨다. 그리고 이러한 집안의 기대와 더불어 어렸을 적 몸이 약했기에 환자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어려운 이를 돕고자 하는 종교적인 신앙심으로 김 교수는 의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의료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한 김 교수가 백혈병과 림프종, 다발성골수증과 재생불량성 빈혈 등 난치성 혈액질환의 최고 권위자로 활동을 이어오며 줄기세포와 관련된 국책 연구과제까지 수행한 그간의 연구 성과와 업적들을 볼 때, 그의 천생은 혈액학 연구를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의대를 졸업 후 내과 전공의가 된 김 교수는 당시 인공신장실을 개원하는 것이 목표였고, 교수가 돼야겠다는 생각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뛰어난 재주와 능력은 저절로 드러나기 마련이듯, 김 교수의 재능을 눈여겨 본 여러 교수들은 그에게 교직을 맡음과 동시에 고대 병원에 존재하지 않던 혈액내과를 개척해주기를 권유했다. 처음엔 자신의 전공 분야도 아니고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라 김 교수도 고민을 했지만, 당시 혈액학 분야의 선두에 있던 국내 타 병원에서의 연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획기적인 제안까지 더해지니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한 혈액학 공부와 연구. 하지만 그것만으로 지금의 자리에까지 올랐다고 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어 보였는데, 역시 그 뒤에는 그의 끊임없는 노력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구심점이 되었던 학창시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번에도 김 교수는 자신이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며 예상치 못한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의사라면 당연히 학창시절에 1,2등은 했겠지’라고 생각하실 텐데, 초등학교 때에도 그렇고 중, 고등학교 시절에도 그렇고 저는 성적이 잘 나와 봐야 10등 안에 들었어요. 공부를 해도 성적이 잘 나오질 않았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더 열심히, 더 성실히 공부에 매진하려고 노력했고, 그게 습관으로 몸에 배었던 거죠. 그런데 역시 그러한 노력들이 빛을 발하는 때가 오더라고요. 중3이나 고3때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은 종합시험에서는 그 동안 꾸준히 준비하며 쌓인 학습 지식들로 높은 점수를 받으며 최상위권에 들었고, 그 덕분에 의대에까지 진학을 할 수 있었어요. 결국,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았던 과거의 ‘약점’을 그에 맞는 해결책을 찾아 준비함으로써 현재의 ‘강점’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죠.” 삶의 원동력, 호기심과 열정 앞서 말했듯, 김 교수의 연구 성과와 업적들은 그의 끈기와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들인데, 어느 일이나 그 시작도 중요한 법. 김 교수가 이룬 결과물들의 시초는 그의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물론 주변의 권유가 있긴 했지만 처음 혈액학 공부를 시작할 때에도 새로운 학문에 대한 자신의 호기심이 작용한 바가 컸고, 줄기세포에 관한 국책 연구의 참여 역시 학교 측의 제안은 있었지만 결정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은 ‘다른 이들이 가보지 않은 길’이라는 것에 대한 그의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일단 시작하면 무엇이든 성실하고 꾸준하게 하는 그의 ‘몸에 밴 습관’ 덕분에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일지라도 자연스레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조혈모세포 및 면역세포 생산 신기술을 연구하여 특허등록을 하고 세계적인 학술상을 수상함으로써 안암병원이 ‘믿을 수 있는 조혈모세포이식 시술기관’으로 선정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혈액종양 부문의 의학적 발전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하며 세계 3대 인명사전에 모두 등재되는 ‘트뤼플 크라운’ 달성의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다시 그의 호기심과 도전정신을 발휘하여 의료 행정과 교육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조혈모세포이식에 관한 연구를 하며 행정 지식의 필요성을 느낀 그는 의학박사 과정을 이수했음에도 고려대 보건대학원 보건정책 및 병원관리학과에 입학하여 의료정책과 행정에 대한 전문소양을 연구하며 보건학 석사를 취득하였고, 국내 최초로 병원원가 관리체계 관련 특허를 등록했다. 뿐만 아니라 대학교수로서는 드물게 ‘병원경영진단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교육 쪽에도 흥미를 가지고 있던 그는 고려대 의과대학 의학교육학 교실 주임교수 및 교육부학장, 고려대 대학원 의무계열 부원장을 역임하였을 뿐 아니라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전문위원, 기본의학교육평가집행위원장, 교육부 의치의학제도개선위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우리나라 의학교육 및 평가 체계를 구성하고 개선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과 업적을 인정받아 김 교수는 고려대 의과대학에서 ‘우수교원상’을 2회 연달아 수상하였고, 최근에는 ‘석탑강의상’을 받은 바 있다. 교육부학장직을 끝낸 후에는 새로운 도전으로 보건의료연구의 중추를 담당하는 보건산업진흥원 R&D 진흥본부 중개연구단장의 직분을 수행하면서 우리나라 중개연구의 개념을 설정하고 발전시키고자 최선을 다해 그 성과 또한 인정받은 그는 현재 고려대학교 의료원 졸업 후 의사교육을 총괄하는 교육수련실장으로 또 다른 도전을 행하고 있다. 의사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해야 하지만 그런 김 교수도 순탄한 길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었다. 2000년도에 일어난 의약 분업 파동은 많은 개원의들이 병원 문을 닫게 하고, 인턴과 레지던트들까지 병원을 떠나게 했다. 이 때문에 간호사의 도움만을 받아 환자들을 진료해야 하는 어려운 시기였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가진 의사로서의 재능은 하느님이 주신 것인 만큼 현재 처한 상황에서 맡은 바 소명을 다해야한다는 신념으로 김 교수는 병원에 남아 자신을 믿고 찾아오는 환자들을 맞이했고, ‘비 온 뒤에 땅이 굳듯’ 오히려 그때의 경험이 자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개척하는 과정에는 늘 어려움이 따르듯, 줄기세포를 연구하던 때에도 생각처럼 결과가 나오질 않아 막막하고 답답한 마음이 컸지만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연구원들과 합심하여 마음을 다잡으며 낙관적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해 버팀으로써 또 한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의료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고난을 헤쳐 온 그이기 때문일까? 김 교수는 이야기 도중 현재의 의대 진학 시스템에 대한 걱정도 털어 놨다. “지금과 같이 사회적인 덕목이나 인성적인 측면에 대한 고려 없이 단순히 높은 수능 점수만을 기준으로 하여 의대 진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과연 진실한 의료인을 양성하고 의학을 발전시키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인지 매우 우려스럽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실제로 자신이 교육하는 학생들에게만 이라도 의사는 끊임없이 연구하는 연구자여야 함을 누누이 전하며, 그들의 목표가 의대 진학이라는 일차원적 차원에서 그치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켜준다고 했다. 솔직하면서도 소탈한 그와의 인터뷰를 마칠 즈음, 환자들에게 어떤 의료인으로 남기를 원하는지 묻자 이번에도 그의 대답은 보란 듯이 기자의 예상을 깨고 말았다.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않는 의사로 남고 싶다”며 덤덤하게 말하는 그에게 그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의사를 만나는 건 건강에 문제가 있어서죠. 그러니 언제라도 의사를 생각하면 아팠던 기억도 함께 떠오르게 될 텐데, 저는 환자분이 저를 기억함으로써 그때의 고통을 회상하게끔 해드리고 싶지 않아요. 이렇다보니 의사는 잠시 머물렀다 가는 ‘나그네’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도 하고요. 조용히 나타나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다 어느 순간 이별을 고하면 잠시의 아쉬움이 있을 뿐 며칠 후면 그를 잊고 다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나그네와 같은 존재 말입니다. 환자분들에게도 의사라는 존재가 아플 때 찾아왔다가 병이 나으면 떠나가고 잊히는 그런 나그네가 되었으면 좋겠어요.(웃음)” ‘나그네 정신’과 더불어 의사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환자가 당연히 받아야 할 치료의 권리를 이행해주는 사람일 뿐이기에 더더욱 기억되어야할 필요는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김병수 교수. 이처럼 정상의 자리에 있음에도 거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며 늘 새로운 도전을 꾀하는 그가 더욱 높이 비상하길 주간인물이 응원한다. profile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현)고려대학교 의료원 교육수련실장 (현)혈액학회 학술이사 (현)줄기세포학회 이사 (현)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전문위원 (현)의료기관평가인증원 현장평가팀장 (현)병원경영진단사회 부회장 (현)보건산업진흥원 R&D 진흥본부 중개연구단장 (2012. 5 ∼ 2014. 8) 고려대학교 줄기세포연구소 소장 (2008. 9 ∼ 2013. 8)고려대학교 안암병원 IRB 위원장 (2009. 12 ∼ 2013. 3)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육부학장 (2007. 10 ∼ 2011. 12)고려대학교 대학원 의무계열 부원장 (2007. 10 ∼ 2010. 9)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교육학교실 주임교수 (2007. 3 ∼ 2010. 2)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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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8-29
  • [(주)대림화학 신홍현 대표이사 특별 인터뷰] The Best in the Worst! 국내 3D프린팅 소재 산업의 리더를 만나다
    [위클리피플= 이선진 기자, 오미경 기자] The Best in the Worst! 역경을 지배하는 기업, 그들이 초대하는 3D 프린팅의 세계로 신홍현 (주)대림화학 대표이사/ 3D프린터연구조합 초대 이사장 계란이 스스로 알을 깨면 한 마리 병아리가 되지만 남이 깨어주면 그저 먹기 좋은 계란 후라이에 그칠 뿐이듯, 우리는 스스로 혁신하지 않으면 혁명 당하게 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특히나 변화를 좇아 빠르게 진화해야 하는 기업의 생태계라면 알을 깨고 나오려는 스스로의 노력, 즉 혁신은 더욱 중요해진다. 사람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길 바라는 것과 같이 기업 또한 일업백년을 꿈꾸는데 있어 그것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든 기업이든 무병장수 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물론 장수기업의 산실로 불리는 일본이나 독일도 있다지만 그들도 영원을 장담할 수는 없는 가운데, 중소기업의 평균 수명이 10여 년 안팎에 그치는 국내로선 전통과 혁신의 공존 속에 ‘지속’으로 나아가는 기업의 존재가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다. 그 의미의 주인공을 찾아 나선 길, 중소기업으로서 무려 38년의 시간 동안 정밀화학 산업 분야의 리딩 기업으로 달려온데 이어 새로운 도약을 그리고 있는 (주)대림화학 신홍현 대표이사를 마주했다. 취재_이선진, 오미경 기자 / 글_오미경 기자 38년 외길의 (주)대림화학, 어떻게 성장을 거듭 했나 (주)대림화학은 1976년 창립 된 이래, 일찌감치 정밀화학 산업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합성을 통해 만들어지는 소재 분야 한 길 만을 집중해 온 뚝심의 주인공이다. 특화된 핵심 기술력을 더욱 강화하고 성장시키는 전략으로 어느덧 글로벌 우량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회사의 지난날을 되짚어내는 신홍현 대표의 설명에는 막힘이 없다. “대림화학은 특정 대기업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국내에 몇 안 되는 독립적인 소재전문 기업입니다. 덕분에 전 세계 메이저급 회사들과도 다양한 기술협력 기회를 가질 수 있고, 그간 기술력을 바탕으로 의약·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정밀화학 소재 분야에 주력해 왔지요. 특히 우리나라가 전자강국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던 즈음인 2002년, 제가 우리 회사에 몸을 담으면서 ‘사업의 방향을 전자소재 분야로 전환해야겠다.’고 생각 했어요. 그 때부터 약 13년 간 특수전자소재 분야의 전문성을 키워왔습니다.” ‘타인이 할 수 없는 일, 하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일을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해내는 기업’이란 비전을 가진 (주)대림화학은 특수소재 분야 가운데서도 남다른 것을 찾고자 했다. 그 중 하나가 레이저 프린터의 핵심 소재를 전량 국산화해 생산·공급하는 것이며, 고유 물질로 전 세계 특허를 낸 고굴절 소재 또한 그렇다. 이차전지 첨가제, 석유화학용 특수촉매 등 친환경을 지향한 화학소재 블루오션 제품군의 발굴도 눈에 띈다. 이렇듯 본업의 DNA를 골자로 시대의 흐름을 읽으며 성장을 거듭해온 (주)대림화학은 최근 차세대 산업 성장 동력으로 손꼽히는 3D 프린팅 소재 시장에 뛰어들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3D 프린팅 소재 산업의 국내 리딩 기업으로 도전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동시에 위험을 내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대림화학이 이렇다 할 성과가 나온 것도 아닌 국내 3D 프린팅 산업에 뛰어든 직접적인 계기는 신홍현 대표가 한 후배로부터 하소연을 들으면서 부터다. 3D 프린터를 개발해 상업화 하는 데 있어 비싸거나 혹은 퀄리티가 떨어지는 등의 원료 관련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 이에 3D 프린팅에서 소재의 퀄리티가 매우 중요함을 느끼고, 3D 프린팅 소재 시장이 중소기업의 높은 진입가능성과 다양한 수요를 지닌 분야임을 확인한 뒤 본격적인 시장 진출을 시작했다. 3D 프린팅 소재 가운데서도 플라스틱과 액상 소재 분야에 연관이 깊은 (주)대림화학은 가정용으로는 플라스틱합성수지(ABS)와 필라멘트(PLA) 소재를 인체에 무해한 친환경 가소재로 개발해 상업화에 성공하였으며, 산업용으로는 고강도·고내열 소재를 선보이면서 탄성소재를 만들어 웨어러블(wearable·착용형)기기로 상업화하는 등 그간의 화학소재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3D 프린팅 소재의 다양한 활용성과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한편, DIY시대의 흐름을 따라 3D 프린팅이 특수영역에서 생활영역으로 넘어오는 과정 속에서 미국, 독일, 중국 등이 저마다 활로를 찾아 비전을 만들고 있는 가운데, (주)대림화학은 ‘한국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만들자’는 데서 3D 프린팅 소재 분야 진출의 비전을 그리고 있다. 한국인의 장점인 창의적인 사고와 융합의 능력을 ICT(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역량과 접목시켜 3D 프린팅에 가미하면 결국 3D 프린팅과 사물인터넷, 빅데이터가 하나로 연결된 통합 컨버전스의 사회 즉, 정부가 말하는 Industrial 3.0이 구현될 것이고, 이것의 핵심이 되는 스마트 3D 프린팅 소재를 만드는 것이 바로 대림의 비전이다. (주)대림화학은 실제 지난 6월 열린 ‘3D 프린팅 컨퍼런스&엑스포’에 참여해 다양한 스마트 3D 프린팅 소재로 그 저력을 보여준 바 있으며, 사비나 미술관에서 주최하는 국내 최초의 ‘3D프린팅 아트 전시회’를 후원하여 대중의 인식 확대에도 앞장섰다. 내년 더 큰 전시회 후원 계획을 가지고 있는 (주)대림화학은 이 외 마이스터고에 3D 프린터를 무상 기증하거나 3D 프린팅 경진대회를 주최하는 등 창립 이념인 사회교육환원 활동에 있어서도 꾸준함으로 업계 안팎에서 많은 귀감이 되고 있다. The Best in the Worst! 흔들림 없는 인내와 리더십의 신홍현 대표 국내 3D 프린팅 산업 관련 단체들 대부분이 업체를 대변하는 산업적 역할을 이행하는 상황에서 (주)대림화학은 소재 및 제품 기술 역량 강화에 대한 연구 중심의 단체로 3D프린팅연구조합이 창립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초대 이사장직에 선출된 신홍현 대표는 “3D프린팅연구조합이 분야의 기술적 발전을 위한 민간 차원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추구 한다”며 그 방법으로 기술적인 풀 서포팅을 위한 홈페이지 구축 및 컨퍼런스와 심포지엄 등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리는 공론의 장을 만들고 있고, 교육 센터 구축도 계획 중에 있다고 전했다. 그래서인지 3D 프린팅 분야에서 폭 넓고 진취적인 (주)대림화학의 행보가 이어지고 있는 데에는 신홍현 대표의 전문가적 역할이 단연 컸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은 CEO로서 가야 할 길을 정확히 찾아내 알려주고,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내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라 말하며 대림의 원동력을 설명했다. “사업이라는 건 늘 위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2008년에는 오랜 시간과 많은 경제적 투자가 들어갔던 프로젝트가 무산되면서 큰 고비도 맞이했었고, 작년에는 갑자기 공장에 화재가 나 손실을 입기도 했었죠. 그러나 그 속에서도 지금에 이른 건 포기하지 않는 인내 덕분이에요. ‘The Best in the Worst, 역경을 지배하는 회사’가 저희의 비전이죠. 대림화학은 잘 되고 쉬운 일보다 어렵고, 남들이 잘 하지 않는 분야에 우리가 세계화로 가는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사실 신홍현 대표의 삶에서도 묻어나는 이야기다. 화학공학 전공으로 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대기업 연구원을 거쳐, 벤처기업을 차리기도 했던 끝에 (주)대림화학을 만나게 된 신 대표는 일에 대한 역량과 함께 그만의 끈기와 인내를 인정받아 경영인이란 위치에 오를 수 있었고, 지금도 꾸준히 매년 경영인 교육과정을 통해 자신을 점검하고 다그치며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주)대림화학의 새로운 시도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3D 프린팅이 전하는 기쁨의 세상을 위하여! 호기심 어린 아이의 모습처럼 3D 프린팅을 이야기하는 신홍현 대표의 얼굴과 목소리에는 내내 기분 좋은 상기됨이 묻어났다. 그에겐 분명 3D 프린팅이 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 듯 했다. “강연할 때 마무리로 전하는 말이 ‘3D Printing is delight and refamilialization’이에요. 저는 다양한 잠재력을 지닌 3D 프린팅이 주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가족 간에 대화가 거의 없었는데 미술 하는 아들, 인턴 중인 딸과 함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기면서 자연스레 네 식구가 함께 대화하는 일이 늘고 가족 간의 친밀 관계가 재설정 되는 것을 느꼈거든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3D 프린팅이 단순히 산업 및 비즈니스 차원만이 아니라 철학이나 인문학적 측면에서도 좋은 변화를 가져오는 매개체가 되는 분야임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신홍현 대표는 국내 3D 프린팅 산업의 미래에 대해서 날카롭지만 애정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산업적으로 앞서 나가고 있는 국가들에 비해 우리는 아직 태동기 수준이지만 정부의 정책이 가시화 되고 있고, 창의적이며 새로운 분야에 있어서 누구보다 빠른 성장력을 가진 우리나라인 만큼 컨텐츠와 ICT 등이 더해져 생산적인 경쟁 속에 한 3년 정도 흐른다면 어느 정도 국내 산업도 안정궤도에 오를 것을 예상합니다. 3D 프린팅의 대중화가 필요한 부분에 있어서도 모든 사람들이 3D 프린터를 가지기보다 지역 내 학교에 하나씩, 다양한 형태의 프린터를 구축하는 방법을 통해 활용에 대한 개념을 갖도록 갖게 해주는 게 더 중요해요. 산업용의 경우는 고가의 장비를 이용할 수 있는 출력센터 또한 곧 많이 생길 거라 봅니다. 그렇게 되면 3D 프린팅은 산업 고도화의 핵심 도구가 될 거예요.” 지금의 우리로선 절박한 관점에서 앞으로 어떻게 차고 나갈 것인지에 대한 자세를 고민하는 것이 최우선이라 말하는 신홍현 대표. 그는 이제 어떤 길을 계획하고 있을까. “대림화학은 모범이 되는 회사로 가고자 해요. 한 중소기업이 이런 과정과 방향을 갖고 이 정도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고, 직원들에게도 회사가 능동적인 즐거움의 공간이 되도록 만들어주고 싶어요. 3D프린팅연구조합은 궁극적으로 민간차원에서의 조율자 역할에 충실할 것이고요. 개인적으로는 3D 프린팅을 주제로 한 일종의 뮤지엄을 지역별로 하나씩 만들어 그 곳에서 전문가들의 활동을 장려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나아가 한국이 3D 프린팅 특정 분야의 종주국이 되는 데 일정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웃음)” 최근 한국영화의 흥행스코어를 갈아치우고 있는 영화 ‘명량’의 관전 포인트라면 초인적인 인내심과 각고의 준비 끝에 난국 속 통쾌한 역전을 이끌어낸 리더의 의미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역경을 지배하는 기업을 향해 인내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38년의 시간을 달려온 (주)대림화학, 그리고 신홍현 대표. 그들의 내일이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거기에 있다. <주간인물>은 3D프린팅을 향해 싹트기 시작한 국내의 관심과 열정 속에 (주)대림화학의 일업백년이 이뤄지길, 그리하여 한국이 세계 3D프린팅 산업의 중심에 서게 되길 바라며, 오늘의 만남이 부디 그 시초가 되길 기도한다. profile. ■학력 사항2014.03 ~ 현재 서울대 경영대학원 AMP 재학 중 2013.09.02 ~ 2014.01.27 KOREA CEO Summit(KSC) CICON 3기 수료2013.03.06 ~ 2013.06.26 중앙일보 최고경영자 과정 J Forum 제8기2009.03.02 ~ 2009.07.03 KAIST 경영대학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1990.02.24. 서울대학교 대학원(공학석사) 졸업1988.02.24.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1984.02.14. 서울 서라벌고등학교 졸업■경력 사항 2013.12.17 ~ 현재 3D프린팅연구조합 이사장 취임2007.01.03 ~ 현재 주식회사대림화학 대표이사 취임2006.04.22 ~ 현재 주식회사대동케미칼 대표이사 취임2002.01.04 ~ 2007.01.02 주식회사대림화학(이사) 입사1997.02.01 ~ 2002.09.30 캠스팩 교역 대표1990.02.15 ~ 1996.01.31 주식회사 고합(병역특례5년) 근무■수상 내역2014. 05. 29 2014 창조브랜드(CBA) 대상2010.10.19 국립경상대학교개척명예장 수상 2009.09.05 지식경제부장관표창(자원순환선도기업대상)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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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8-28
  • [국방대학교 합동참모대학 이윤규 교수 특별 인터뷰] 오직 ‘지휘관만이 책임진다’는 신념! 현장중심․ 골육지정의 창의적인 리더십을 갖춘 이윤규 교수를 만나다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신재윤 기자] 오직 ‘지휘관만이 책임진다’는 신념으로 현장중심․ 골육지정의 창의적인 리더십을 발휘한 진정한 지휘관의 ‘참모습’을 이야기하다 이윤규 국방대학교 합동참모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 예비역 대령 “군 지휘관은 국민들로부터 절대절명의 두 가지 명령을 받습니다. 첫 번째는 대내외적인 위협을 차단하고, 전시는 최소피해로서 전승하라고 명시된 임무명령이며, 두 번째는 이러한 임무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각 집안에서 보내진 귀한 자식들을 국가발전에 원동력이 된 선배전우들처럼 심신을 단련시켜 신성한 국방임무명령을 잘 수행해 온전하게 집으로 보내져야 한다는 간절한 명령입니다.” 육사 34기로 임관해 몸과 마음을 모두 국가에 바치며, ‘위국헌신’의 군인정신으로 군생활을 마친 후 지난 2010년부터 현역에서 은퇴해 현재는 국방대학교 합참대 교수로서 후학양성에 열중하고 있는 이윤규 교수. 자신이 <주간인물>에 나오기엔 부족하다고 한사코 인터뷰를 마다하는 겸손함을 보였던 이 교수.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그에게 <주간인물>은 최근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군내 사건과 관련한 그의 소견과 함께, 참군인상을 수상한 이 교수가 말하는 지휘관의 진정한 의미와 역할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_취재 이선진, 신재윤 기자 / 글 신재윤 기자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한 국방대학교는 1955년 설립되어 내년이면 어느덧 60주년이 되는 국내의 유일무이한 국가안보 종합대학이다. 이 교수는 육해공군과 국방부 중견간부들에게 군사 최고 교육기관으로서 요구되는 전략‧작전적 기획과 합동 및 연합작전 전문수행능력을 교육하고 있다. 여름이 끝나가는 막바지 장마가 기승을 부리던 8월 중순의 어느 날, <주간인물>은 현역시절 숱한 화제를 낳으며 다양한 업적을 세운 이윤규 교수를 만나기 위해 국방대학교를 찾았다. 취재를 간 기자를 밝은 얼굴로 반긴 이 교수는 인터뷰 장소로 이동하며 복도에 있었던 졸업생 현황에서 최윤희 현 합참의장을 가리키며, 학교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을 나타냈다. 유사시 생명을 요구할 수 있는 군지휘관은 지시와 규정보다는 인본주의에 의한 창의적이고 융통성 있는 현장 리더십이 발휘되어야 한다 이윤규 교수가 지난 군생활 동안 이룬 성과는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다. 우선 군인으로 중대장 3회, 대대장 4회, 연대장급 4회 등 창군최초로 최다 지휘관직을 수행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사단, 군단, 군, 합참 등 전 제대에서 작전참모 직책을 수행한 전략 및 작전에 능한 전투형 군인기질을 겸비하였으며, ‘들리지 않던 총성 종이폭탄’ 등 저서와 각종 언론매체에 기고 및 출연으로 심리전 분야 최고 전문가로서 유명하다. 하지만, 이 교수가 그를 거쳐 간 수많은 장병들과 간부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계급으로 형성된 지휘관과 부하의 관계가 아닌 부대원 개개인의 사람의 특성을 이해하여 현장에서 그들의 입장에서 조치하며 맺어진 골육지정의 현장 중심의 창의적인 리더십에서 비롯된다. 그 중 대구 여단장 시절에, 복무 중이던 병사 7명에게 ‘민관군 지원 합동진중결혼식’을 열어 준 일화는 MBC 화제집중, YTN 뉴스 등 각종 매체의 휴먼 드라마로도 소개가 되며 세간에 화제가 되었다. 2005년 7월, 동거녀의 출산비와 분유 값을 벌기 위해 탈영한 한 병사의 사연과 조모를 모신 동거녀가 출산하였으나 부양하지 못하는 자책감에 자살을 기도했다는 보고를 받는 순간 이 교수는 입장을 바꿔 그 병사들의 입장이 된다면 누구나 탈영, 자살 등의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교수는 이와 유사한 병사들을 직접 찾아 그들의 가정을 안정시키게 만든 후 군생활을 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창군 이래 최초로 병사 7명을 대상으로 한 ‘민관군 지원 합동진중결혼식’과 안정적인 가정 및 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여기에 소요된 예산과 물품은 이런 안타까우면서 아름다운 휴먼드라마를 접한 대구시민들의 자발적 지원에 의해 이루어 졌다. 이 외에도 그는 지역 내의 독거노인들과 병사들을 자매결연시켜 자칫 방황에 빠질 수 있는 병사들의 인성을 신경 쓰며 주목을 받았고, 어려운 환경으로 인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24명의 상근병사들을 위해 야학교를 설립해 교육을 시킨 끝에 그들 모두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대학 장학생으로 선발되도록 한 쾌거를 이루었다. 그리고 군 지휘관이 가장 많은 지휘관심을 두고 있는 우울증 환자 등 군내 부적응 병사들을 대구 신당종합복지관 등 군 외부 진료기관에 5주 동안 위탁진료 및 조치로 적응케 한 사례도 있다. 아울러 1급 장애인 부친을 부양하다가 군입대한 병사의 애처로운 사연을 듣고 지휘관 독단으로 장기휴가를 조치하는 등 부하이기 이전에 자식 된 한 사람의 입장에서 판단한 지휘관의 융통성이 있는 리더십 사례 등이다. 또한 대구에서는 2005년 군 최초 1100여명의 여성 예비군을 창설해 민관군 통합방위태세 확립과 군의 신뢰도를 제고시키는 역할을 했고, 평일에 예비군 훈련을 받지 못하여 고발당하는 자영업 및 전문직 종사자들의 상황을 고려해 ‘휴일 예비군 훈련제도’를 처음으로 시범적으로 운용하여 전군으로 확대시키는 등 군 발전과 대군신뢰도 증진으로 2006년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특별히 칭송받은 바 있다. 이처럼 이 교수의 다양한 업적과 특별한 리더십, 신념은 결코 책이나, 규정 및 지시이행과 보고만으로 이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제 리더십의 원천은 병사들 혹은 간부들 속에 들어가 개개인의 귀한 생명들이 처한 심리, 문화, 환경 등과 같은 문제들을 현장에서 체험하고, 또한 현장에서 그들의 입장으로 조치방안을 찾는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최근 발생한 군 관련 사건들, 군 출신으로서 부끄러움과 죄책감 느껴 얼마 전, 대한민국 군(軍)이 발칵 뒤집혀지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지난 6월, GOP에서 발생한 ‘임병장의 총기난사사건’.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온 국민에게 참혹한 잔상을 안겨준 ‘윤일병’ 사건까지. 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국민들은 더욱 오싹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군 생활동안 수없이 많은 병사들을 이끌어온 예비역 대령으로서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발생했다고 탄식했다. “최근 연달아 터진 군 관련 사건으로 인해 이 사회와 모든 국민들은 모두 혼란스러울 겁니다. 두 사건 모두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죠. 때문에 군무에 몸담고 있었던 군장교 출신으로서 부끄러움과 깊은 죄책감을 느낍니다. 아울러 이 인터뷰를 빌어 선배전우님들과 국민들에게 깊이 사죄하는 마음입니다. 특히 선배전우들의 고귀한 희생과 불굴의 의지, 노력의 결실 등이 훼손되고 있어 유감스럽습니다.” 덧붙여 “다시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한민국 군대의 전통과 자존을 위해 더욱 분발해야 한다”며 하루빨리 신뢰받는 군의 모습을 되찾아야 하는 면을 가리키며 자신의 소견을 밝혔다. 지휘관은 국민의 ‘국가안보 임무명령’과 ‘귀한자식 심신단련 후 귀가시키는 간절한 명령’을 절대절명의 명령으로 수명하고 완수할 수 있는 다이나믹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이 교수는 지난해 12월, ‘2013 제19대 국회 국정감사 최우수상임위‧최우수, 우수 국회의원 및 올해를 빛낸 창조경영 인물대상 시상식’에서 ‘국가안보교육 부문 대상’의 영광을 안았다. 이렇게 자신만의 철저한 군 리더십을 바탕으로 현역 당시, 중대장과 대대장, 연대장 등 여러 지휘관의 자리에 위치하며 수많은 부적응 병사들을 군무에 적응시키고 강한 군인으로 무사히 군생활을 마칠 수 있도록 이끈 이 교수에게 진정한 지휘관의 ‘참모습’을 물었다. “지휘관은 국민으로부터 받는 국가안보의 명령, 그들의 자식들을 올바르게 국방임무명령을 수행토록 한 후 온전히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이 두 가지의 명령을 받는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였다. “지휘관은 절대절명의 국민의 2대 명령을 완수하는데 규정, 지시, 보고, 관습이 걸림돌이 된다면 자기가 책임을 감수하면서 자기대로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부하의 생명과 안전과 직접관련이 있는 문제는 상급지휘관의 지시, 규정, 보고, 관행보다 우선하여 과감하게 융통성 있게 조치해야 합니다. 군인은 결과를 중시하는 가치관이 필요합니다. 전투현장에는 합리, 정의, 도덕이 통하지 않아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합니다. 따라서 제도, 규정, 합리만 따지는 행정적 지휘스타일은 결코 징병제 장병들에게는 효과적인 지휘통솔의 스타일이 될 수 없습니다. 현재 복무중인 젊은이들을 NA세대라고 일컬어지는데, 이러한 NA세대 특성 중 하나는 그들의 언행이 好, 不好의 가치기준에 의해 많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휘관은 국민들에게 받는 두 가지 명령과 지휘관으로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NA세대를 이해하는 好스타일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현장중심이며, 지휘관은 병사들의 입장에서 이해와 공감을 하며 그들이 요구하는 好 여건을 만들어 줌으로써 책임감 있고 융통성 있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자가 리더십의 본질과 지휘관의 역할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요청하자 이 교수는 자신의 사례를 들며 덧붙였다. “솔직히 국방의 의무에 끌려왔다는 피동적인 장병들은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정서나 피동적인 언행이 내재되어 있어요. 여기에 인격모독, 가혹행위 등이 가해질 때는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데 탈출구가 없다면 폭발하게 되죠. 그래서 스트레스의 원인제거, 해소책을 위해 그 상황에 맞는 창의적인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그 대표적으로, 제가 항상 애용했던 ‘기분 좋~다’라는 구호가 있어요. 점호시간이나 집합시간, 훈련 등 모두가 함께 모이는 자리가 있을 때 ‘기분 좋~다’를 반복적으로 외친 후 박수치며 웃는 것을 일상화했죠. 효과는 놀라웠어요. 소위 상급자로부터 하급자로 이어지는 ‘내림질책’이 사라졌고, 부대원들이 단합할 수 있게 되거나 각종 스트레스나 가혹행위의 근원을 근절시킨 요인이 되었죠. 36년이 지난 지금도 제 3땅굴을 발견한 자부심과 함께 ‘훈장 5소대’ 전우회는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욕먹는 돼지통’, ‘스트레스 해소봉’, ‘휴일 점호 생략’, ‘오직 그 병사 칭찬만 하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가혹행위들을 없애고 병사들의 감정순화와 조기 적응을 돕는 효과적인 방안을 계속 연구했습니다.” 이 교수는 마지막으로 “국민의 2대 절대절명의 명령완수를 위한 가장 확실한 리더십은 강한훈련을 통하여 군기와 사기, 단결력을 유지하고 성취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서는 ‘할 때 하고 놀 때 놀자’, ‘훈련은 짧고 강하게, 내무생활은 프리하게’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부하들이 가장 싫어하는(不好)하는 리더십 스타일의 경우, 무능하면서 훈련보다 내무생활에 간섭이 많은 스타일입니다. 최근 군 인선에서도 오직 공부만 잘하고 규정에 순응하는, 독단적이고 책임감 없는 ‘조약돌 같은 군인’ 보다 핵심 상황에서의 판단력과 적극성 있고, 책임감과 융통성을 가지면서 상급지휘관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짱돌형 기질’의 전투형 군인이 각광받고 선발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모든 스펙 초월한 ‘사람은행 (PEOPLE BANK)’ 만드는 것이 꿈 40년의 군생활을 오직 ‘위국헌신’의 자세로 국민들에게 받은 절대절명의 2대 명령을 완수하기 위해 현장중심, 골육지정의 다이나믹한 리더십을 발휘해 온 이윤규 교수. 현역에서 비록 한 걸음 물러났지만, 오히려 그에게는 자신의 후배들을 위해 많은 부분들을 전수해 주고 있는 지금이 더 중요한 시기라고 이야기했다. “현장에서 제가 갈고 닦은 것들을 군의 중추역할을 하고 있는 후배장교들에게 전수하고, 제 전공 분야인 작전과 심리전을 더욱 심층적으로 연구해 전쟁억제, 전시 최소피해 전승과 부하장병의 인명중시사상을 심어주는 것에 계속해서 기여하고 싶습니다.” 그에게는 한 가지의 큰 목표가 있다. 바로 세계 최초로 ‘사람은행’을 만드는 것. “인생을 살아보니 남는 것은 ‘사람’ 그 자체였어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릴 수 있고, 그들이 각각의 인생관, 가치관들을 공유하며 개인이 또 다른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행’을 구상하게 되었죠. 물론 직업, 성별, 나이 등은 상관없이 최소한의 구분만 짓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자신이 전혀 몰랐던 직업이나 계층, 가치관, 지역적 차원에서 많은 사람들과의 연을 맺게 되어 다양한 정보들을 나누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친분을 맺을 수 있는 시스템. 왠지 괜찮을 것 같지 않습니까(웃음).”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그에게선 군인으로서의 당당한 태도와 함께 교육자로서의 진정한 모습까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제 어느덧 내년이면 정년이 된다는 이윤규 교수. 이 교수는 교육자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아쉽다고 토로했지만 기자에겐 언젠가 오게 될, 교육자로서 그의 마지막 순간이 끝이 아닌 진정한 시작점이 될 것만 같이 느껴졌다. 이 시대의 바람직한 리더의 면모를 보여주며 오늘도 국토방위를 위해 전진하는 이윤규 교수를 <주간인물>이 응원해본다. ◈profile 학력 및 경력육사 34기/합동참모대학/국방대 안보과정 수료동국대 행정학석사/경남대 정치학 박사영남대/가톨릭대/계명대/경남산업대 AMP 11사단/경주/고령/순천 대대장(4회)합참/경호실/군사령부/군단/사단 작전참모50사 부연대장/37사 참모장/영천연대장/대구 여단장 수상대통령 표창, 보국훈장 삼일장. 미육군공로 훈장재향군인회 공로훈장, 참군인상, 행안부 장관 등 6회2013년 창조경영대상(국방안보 교육분야) 저서 및 논문 들리지 않던 총성 종이폭탄, 전쟁심리학, 북한 대남도발사북한의 대남심리전 연구, NA세대를 인간중심의 리더십 등 언론보도‘97.4. 월간조선 인물란 등 13개 언론매체’화랑장학 운용‘‘00.3. 동아일보 ’훈장감 군인‘등 8개 매체‘05.7. MBC 화제집중, YTN 뉴스 등 : 진중결혼식/여성예비군‘13. 피플투데이 커버스토리, 국회방송 ’현대사 산책‘ 채널A 6.25조명‘14. 조선일보 ’북의 화전양면전략‘, 춘천 MBC 삐라 다큐 등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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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8-25
  • [한정숙 스파리움 대표이사 특별 인터뷰] 몸과 마음,영혼에 스며드는 진정한 쉼, 스파를 말하다
    몸과 마음, 영혼에 스며드는 아름다움을 만들다 국내 1호의 국제 스파 전문 감독이 전하는 ‘스파(Spa)’의 진짜 매력 한정숙 ㈜스파리움 대표이사 / 큐스파앤클리닉 대표 바야흐로 8월이다. 복잡한 삶에 지쳐있던 많은 이들이 도심을 벗어난 여유를 만끽하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산과 바다, 혹은 자신만의 즐길 거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휴양의 공간이 될 수 있으나, 꽉 막힌 도로와 북적대는 사람들 속에 보낸 며칠은 오히려 피로만 더해 진정한 ‘쉼’을 원하는 이들에게 아쉬움만 남긴다. 그렇다면 여기를 주목해봄이 어떨지. ‘웰빙’과 ‘행복’이 강조되는 현대 사회에서 전 세계인들이 손꼽는 휴양코스 1순위 ‘스파’의 매력을 국내에 알리고자 묵묵히 외길을 걸으며 국내 최초로 ‘메디스파’의 포문을 연 여성 CEO와의 만남을 말이다. 세계적 명성의 국제 미용 & 스파 자격 인증 기관인 영국 CIBTAC에서 국제 자격증과 미국 ISPA(국제스파협회)에서 CSS(스파 CEO 자격증)를 취득해 스파 전문 감독으로, 우리나라 스파 산업의 선두주자로 우뚝 선 <큐스파앤클리닉>의 한정숙 대표. 그녀가 말하는 진정한 ‘쉼’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_취재 오미경, 신재윤 기자 / 글 신재윤 기자 은은한 조명과 마음이 녹아내리는 음악, 삶에서 받는 근심과 걱정들이 사라지는 분위기. 여느 근사한 호텔이나 멋진 휴양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취재를 위해 청담동에 위치한 <큐스파앤클리닉>에 들어서며 느껴지는 생각들이었다. 기자를 맞이하는 한정숙 대표의 환한 미소와 요목조목 털어놓는 스파의 모든 것에는 국내 1세대 전문가로서의 신념과 자부심이 물씬 느껴졌다. 스파(Spa)를 아시나요? 스파의 이미지를 떠올려 본다면 사람들은 대개 마사지를 받고 욕조에 몸을 담그며 뭉쳐진 근육들이나 몸의 피로를 풀어주어 개운한 상태로 만드는 것 정도의 개념을 생각한다. 한정숙 대표는 스파를 바라보는 이러한 인식에 진한 아쉬움을 나타내며 진정한 ‘스파’의 개념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우리가 보통 쓰는 용어 중 ‘에스테틱’이라는 말이 있어요. 의미상 ‘에스테틱’이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것이라면, ‘스파’는 심, 신, 영, 즉 마인드와 바디, 소울이 삼위일체로 만족되어야 하는 개념이에요. 이 세 가지는 스파를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구체적인 스파의 개념에 대한 해답을 조금 더 요청하는 기자에게 그녀는 현대인들의 일상을 예로 들며 설명했다. “우리가 보통, 몸이 노곤하거나 정신적으로 휴식이 필요할 때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거나, 때로는 여행을 가 돌아다니며 정신을 맑게 하곤 합니다. 혹은 스파의 개념을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은 ‘경락’이나 ‘스포츠 마사지’와 같이 몸에 자극을 주며 뭉친 근육을 푸는 마사지를 받곤 스파를 이용했다고 착각하죠. 하지만 앞서 말한 헬스장에서의 운동이나 혹은 빠듯한 일정의 여행, 경락이나 스포츠 마사지처럼 강한 마사지는 과하게 몸을 움직이므로 육체적인 피로와 정신적인 강압을 받아 오히려 또 다른 스트레스가 찾아오곤 해요. 이에 비해 스파는 가만히 수동적으로 있어도 환경적요소(음악, 조명, 터치, 향기, 공기)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평화롭고 가장 이상적으로 가꿀 수 있다는 것에서 차이가 있어요. 우리나라를 보면 에스테틱 분야의 성장으로 인해 피부나 몸과 같이 외형적인 면을 단순히 가꿀 수 있는 길은 발달했지만, 심과 영적인 부분의 관리가 이뤄지는 개념은 상대적으로 떨어져 있는데, 이 모든 것이 충족되는 것이 바로 스파입니다. 마음과 정신적인 것들에 대한 관리까지 포함하는 개념인 만큼 최소화된 볼륨의 스파용 전문 음악, 아로마 등 후각적 요소, 은은한 조명과 인테리어 등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들부터 스파 프로그램의 성격, 테라피스트의 역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해치치 않는 환경으로 마련되어 있지요.” 국내 최초로 진정한 의미의 ‘메디스파’ 창안 미국의 국제스파협회(ISPA)에서 국제공인 스파수퍼바이저 시험을 통과해 국내 1호 스파 전문 감독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 그녀가 <큐스파앤클리닉>을 운영하게 된 계기는 우리나라에서 잘못된 인식으로 굳어져가는 스파의 개념을 올바르게 바로잡고 싶은 그녀의 굳은 의지도 한몫했다. “태국과 발리처럼 관광지 코스로도 스파가 유명한 곳들에서는 영국 국제 스파 자격 전문 인증기관(CIBTAC)의 전문적인 기준에 따른 체계화된 교육을 받은 스파 테라피스트들이 즐비해요. 그리고 해마다 국제적인 스파 시장은 커지고 있죠. 하지만, 마사지를 받거나 욕조에 몸을 담그는 것만을 단순히 스파라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은 정확한 개념의 스파가 정착되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어요.” <큐스파앤클리닉>의 큰 장점은 첫 번째로, 한 대표의 지도 아래 정확한 스파 테라피의 개념을 배운 직원들이 있다는 점과 두 번째로는 ‘메디컬스파’가 특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피부미용과 교수로 재직했던 한 대표는 자신이 외국에서 공부해 온 정확한 스파의 개념을 교육하기 위해 <코리아스파아카데미>를 설립하게 되었다. <큐스파앤클리닉>의 직원은 모두 이 아카데미에서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취득한 전문 스파 테라피스트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한 대표는 스파와 메디컬요소를 접목한 ‘메디컬스파’를 연구해 고객들이 외적 아름다움과 내적 아름다움을 모두 충족할 수 있도록 했다. 가장 큰 특징은 메디컬 분야와 콜라보레이션을 이루는 메디컬에스테틱 분야의 기존 스타일과 달리, 스파의 비중을 70%로 두어 그 중요성을 강화시킨 반면, 사람이 하기 힘든 부분에 한해서만 30& 정도의 메디컬 비중을 두어 이를 조화시킨 점이다. “처음에는 ‘메디컬스파’의 개념에 대해 고객들도 혼란을 많이 겪었고, 보는 시선도 다양했죠. 하지만 심, 신, 영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함께 가꿀 수 있는 스파의 매력을 그만큼 더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현재 천안과 서울, 국내에 두 곳인 <큐스파앤클리닉>은 고품격 안티 에이징 센터와 첨단 의료시스템 클리닉, 글로벌 스탠다드 스파서비스 등으로 중국과 베트남까지 사업을 확장 중에 있다. 한 대표가 이야기한 스파 테라피 중 ‘힐링 테라피’는 그 중 대표적으로 음악, 조명, 향기 등을 조절해 개인의 스트레스를 깨끗하게 치유하는 방법이다. 단계에 따라 근육에 압을 주며 전문가의 굉장한 디테일을 요하기도 한다. 그녀는 <큐스파앤클리닉>의 가장 인기 있는 스파 테라피 프로그램으로 ‘스트레스 어웨이’를 언급했다. ‘스트레스 어웨이’는 디 스트레스(De-stress)로 명명된 블렌딩 오일을 이용하여, 체내에 축적된 독소를 배출시킴으로써 심신안정과 활력을 제공하는 요법이다. 헤드마사지를 함께 적용해 전신의 통증을 해소해주어 남녀노소에게 사랑받고 있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장점 살려국내외 시장을 겨냥하는 체계적인 리조트 스파 꿈꾸다 일찌감치 이 분야의 전문적인 스파 테라피스트들을 양성하며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갖춘 그녀는 국내의 스파 산업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것으로 교육의 중요성을 내세웠다. “스파를 단순히 마사지 차원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도 이를 뒷받침한다. “제가 스파라는 것에 매력을 느껴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했지만 스파 산업이 활성화된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수많은 일반 마사지 샵이나 심지어 일부 음성화된 공간의 경우들이 스파의 가면을 쓴 채 섞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스파를 ‘마사지’라는 이미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생각을 해요. 이것은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이 길을 묵묵히 걸으며 사람들에게 스파의 장점을 정확히 알려줄 객관적인 안내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스파 관련 아카데미를 차렸고, 지금도 수많은 스파 테라피스트들을 교육하고 배출하는 이유입니다”라고 말하며 피부관리사라는 공식적인 국가고시가 존재하는 것처럼, 국내에서 스파시장을 키우기 위해선 스파 전문가를 제도적으로 만드는 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견해를 밝혔다. 한 대표는 덧붙여 “정확한 스파의 체계적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따려면, 기존의 피부관리사보다 2배에 달하는 시간을 이수해야 할 만큼 더 심층적인 전문성을 요한다”고 말했다. 그녀가 이처럼 스파 테라피스트라는 외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사람을 위하는 일’을 꿈꾸는 직업적인 가치관에 있다. 내면과 외면을 함께 아름답고 건강하게 가꾸어주는 스파를 알게 된 후, 사람들 개개인의 특성까지 고려한 세밀한 부분까지도 신경 쓰고 싶다는 마음을 더욱 가다듬게 되었고, 이러한 목표가 있었기에 그녀의 외길 인생엔 ‘흔들림’과 ‘후회’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스파 산업의 한 획을 긋고 있는 한정숙 대표. 그런 그녀에게 또 다른 목표를 묻자 국내에서 제대로 된 리조트 스파를 직영화하여 운영하는 것이라고 거침없이 답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손맛은 외국의 스파 매니아들까지 감탄하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요. 이를 토대로 메디컬스파를 프랜차이즈화 하여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을 더욱 활성화하는 거죠. 이것은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스파 분야에 몸 담았던,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을 정도로 그녀는 바빴다. 국내에서 스파 하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한정숙 대표가 꼽히다 보니 쉴 새 없는 외부 강의 및 컨설팅 요청으로 주중에는 강의와 아카데미 운영, 주말에는 <큐스파앤클리닉>의 운영을 함께 병행하며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것 같다고 한 대표는 호소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이는 한정숙 대표가 자신의 직업에 대해 가지는 ‘책임감’과 ‘열정’이 목적 없이 앞만 보고 달려만 가는 우리네 2030세대에 제동을 거는 메시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스파의 정확한 개념과 진정한 매력이 널리 퍼져 지친 현대인들의 몸과 마음이 함께 치유되는 그 날이 올 때까지, 쉼 없는 열정의 ‘스파 전도사’ 한정숙 대표를 <주간인물>이 언제까지나 응원한다. profile <현재활동>● 한국미용자격증학교(BQ School) 대표원장 ● 주식회사 스파리움 대표이사● 큐스파앤클리닉 원장● 호서대학교 뷰티학과 특임교수● CIDESCO Esthetician 시데스코 에스테티션 강사● Arizona State(USA) 미용사(Cosmetology) 강사● CSS(Certified Spa Supervisor) 국제공인 스파수퍼바이저(ISPA)● CIBTAC코리아 대표 ● 국제미용직업교류협회(IBEA) 회장 ● 동아시아스파연맹 한국대표 <방송활동> ● 리얼TV속세상 “인도 아율베다 샴피사지 마사지” 촬영● 이승연과 100인의 여자 -뷰티멘토● 일자리방송- 스파매니저 편, 피부미용직업 편, 해외미용취업진출 편● 머니투게더 - 미용분야의 경쟁력● VJ특공대- 이색테라피● 부부클리닉- 마사지를 통한 사랑극복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 기획·연재
    • 위클리피플
    2014-08-21
  • [키즈스피치예시바 이주아 원장 특별 인터뷰] 진정성 있는 소통에 기반을 둔 어린이 스피치 교육기관 '키즈스피치 예시바'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동료와 한 팀을 이루어 주어진 주제에 대하여 끊임없이 토론을 벌임으로써 더욱 합리적이고, 창의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유대인의 교육방식을 뜻하는 ‘예시바’. 몇 년 새, 스피치 교육을 다루는 기업 및 기관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가운데, ‘키즈스피치 예시바’는 특히 어린이 스피치 교육 과정을 통해 눈높이를 맞춘 소통에 기반을 둔 교육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주 주간인물은 ‘키즈스피치 예시바’ 그 중심에 있는 이주아 원장을 만나 그의 교육신념과 예시바의 비전에 대해 들어보았다. 다음은 이 원장과의 일문일답. Q1. 아이들의 말하기 해결을 위한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는 어린이 스피치 전문 교육기관 ‘키즈스피치 예시바’의 간략한 소개와 함께 설명 바랍니다. 키즈스피치예시바는 말하기에 어려움을 겪는 유아, 초등, 중등 친구들에게 올바른 인성을 심어주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 있고, 논리적으로 본인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는 스피치 전문 교육기관입니다. Q2.‘키즈스피치 예시바’가 타 스피치 교육기관과 다른, 우수한 점이나 특징은 무엇인지 설명 바랍니다. 키즈스피치예시바 교육은 맞춤형 수업이라는 장점이 있습니다.예시바를 개원하기 전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전국 거의 대부분의 웅변 혹은 스피치 학원에서아이들을 상담할 때 몇 가지 질문을 통해 상담자가 아이를 진단하는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물론, 상담자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나시기에 가능한 방법일 수 있겠지만, 아이들에게는 보다 정확하고 부모에게는 보다 객관적인 진단과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업계최초로 SCA (Speech&Communication Ability) TEST를 도입했습니다. SCA TEST는 스피치의 기술적 요소인 호흡, 발성, 논리력부터 자신감의 근본이 되는 자존감 진단과 미술심리, 또래 커뮤니케이션에 이르기까지 총8개 영역을 테스트함으로써 정확한 문제 원인을 찾고, 그에 맞는 맞춤형 솔루션과 커리큘럼을 제공합니다. 두 번째로 합리적인 커리큘럼을 제공합니다.기본기, 논리ㆍ논술, 리더십, 프레젠테이션 등 영역별로 과목을 구성해 SCA TEST 결과에 따라 아이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 듣는 형태의 합리적인 커리큘럼이 제공됩니다. 세 번째로 한 달 수업 안에 소그룹 커뮤니케이션과 대그룹 커뮤니케이션을 한 번에 습득할 수 있는 수업 방식이 제공됩니다. 보통 스피치 학원은 6명이하의 소그룹 수업을 형태로 진행됩니다. 하지만 소그룹에서 집중 스피치 코칭을 받더라도 대그룹 친구들 앞에 섰을 때 발표 불안과 무대 공포증의 어려움을 다시 호소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저희 예시바에서는 소그룹과 대그룹 수업을 동시에 진행합니다. 소그룹 수업에는 스피치의 기술과 콘텐츠 적인 요소, 소그룹 커뮤니케이션 방법 등을 집중적으로 체득합니다.이후 대그룹 수업에서는 소그룹에서 배운 내용들을 연단에서 활용해 보는 시간을 갖습니다.많은 친구들 앞에서의 말하는 기회를 통해 대그룹 스피치 두려움 극복과, 본인의 실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연단 스피치를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키즈스피치예시바 교육은 재미있습니다.웅진에서 어린이 교재 연구ㆍ개발을 했던 노하우를 토대로 아이들이 재미있게 스피치를 배울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구성하였습니다. 노래를 통해 발성을 익히기도 하고, 뜀뛰기를 통해 호흡을 익히며, 명화를 활용해 논리적인 말하기를 배우는 등 아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스피치를 접할 수 있기에 그만큼 수업시간 참여ㆍ집중력이 높습니다. Q3. 이 외에도 ‘키즈스피치 예시바’의 논리/논술 과정과, 토의/토론 과정 등 체계적으로 논리적인 말하기를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던데요. 교육 과정마다 조금씩 교육 방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키즈스피치 예시바’가 추구하는 스피치 교육의 본질은 어디에 있을까요? 키즈스피치예시바 스피치 교육의 본질은 ‘올바른 인성 확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혼자 우뚝 서는 스피치가 아닌 올바른 인성을 바탕으로 본인의 의견을 자신 있고,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는 것이 키즈스피치예시바가 추구하는 모습입이다.그러한 이유로 인성이 확립되어 가는 유아부터 동화를 활용한 인성스피치 수업에서 아이들이 배려, 나눔, 소통의 즐거움을 알고, 실천할 수 있게 교육합니다. Q4. 다양한 이유로 스피치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만나오시는 동안의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보람도 있으셨을 거구요. 원장님의 교육적 신념과 함께, 기억에 남는 수강생이 있었다면 사례를 들어 말씀 바랍니다. 스피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마음을 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즉, 스피치 교육 이전에 마음으로 소통을 해야 진정한 스피치 교육이 가능하다는 신념 때문입니다.잘 아시겠지만, 스피치는 심리적 요인이 다수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나쁜 말 하는 아이, 거짓말 하는 아이, 말 안하는 아이, 자기 말만 하는 아이 모두 마음에 그 문제의 뿌리가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행동입니다. 그래서 상담 하는 동안 그 뿌리를 찾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합니다. “스피치 교육 이전에 선행 돼야 할 것은 진정한 마음의 소통이다”라는 깨달음을 준 친구가 있었습니다. 5학년 윤 모 양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 친구는 SCA TEST를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 없었습니다. TEST 하는 시간 내내 제가 그 친구에게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네’ 라는 딱 한 마디였습니다. 함께 오신 어머님과 상담을 하며 그 아이가 겪어온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제 가슴은 먹먹해 졌습니다.‘정말 많은 잠재력을 가진 친구인데 너무 안타깝다’ 라는 생각에 며칠 밤잠을 설쳐가며 그 친구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어머님께 말씀드려 수업시간 이외의 시간에 친구와 상담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시간 동안 그 친구에게 ‘나는 네 편이며 네가 훌륭한 사람이 되길 원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 내가 최선을 다해 돕겠다’는 내용의 이야기로 교감을 시도했지만... 역시 돌아오는 대답은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아이에게 잠시 생각 할 시간을 줬다가 자리에 돌아왔을 때 그 친구는 제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고 저는 왈칵 눈물을 흘렸습니다.종이 한켠에 “선생님 저도 말 잘하는 아이가 되고 싶어요. 도와주세요...”라는 글이 씌어져 있었습니다. 그 이 일을 계기로 “아무리 좋은 스피치 교육도 마음으로 다가가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효과를 볼 수 없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지금까지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고 있으며, 강사 채용과 원내 교육 시에도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강조합니다. Q5. 웅진 사내 아나운서 및 교육 강사, KBS, SBS, 케이블 등 방송출연 다수, CJ홈쇼핑, GS홈쇼핑 전문 게스트 활동, 대기업 프레젠터 활동 등 원장님의 이력 역시 눈길을 끄는 것이 사실입니다. 더불어 스피치 교육 전문가로 활약하고 계신 원장님의 활동상을 보면 여성이지만, 매우 진취적인 모습이 인상적인데요. 이러한 지금에 영향을 미친, 과정상의 스토리가 있다면 말씀 바랍니다. 다양한 경력이 있지만 스피치 교육에 뛰어든 가장 큰 계기는 교육전문기업 웅진씽크빅에서의 7~8년 경력 때문입니다. 씽크빅에서 7~8년 동안 교재개발, 교사양성, 교재교육 뿐 아니라 다양한 케이스의 아이들을 만나고 연구하면서 ‘아이들에게 국어ㆍ수학 같은 지식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가장 원초적인 수단인 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라는 큰 꿈을 갖고, 씽크빅에서 퇴사하여 방송 출연, 대기업 프리젠터, 스피치 강의 등 스피치와 관련된 다양한 노하우를 축적하였습니다. 이후 아이들을 위한 효과적인 스피치 교육 체계 확립, 교재개발, 시스템 구축을 위해 역량을 집중하였으며, 그 결과 지금의 키즈스피치예시바를 설립하게 된 것입니다. Q6.‘키즈스피치 예시바’의 장단기 적인 교육상의 계획이나 꿈꾸시는 목표가 있다면 말씀 바랍니다. 키즈스피치예시바의 이데아는 자신의 생각을 가신감 있게 논리적으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소통하는 아이가 많아지는 세상입니다.현재 키즈스피치예시바에서는 세움 커뮤니케이션센터의 연구원들과 키즈스피치예시바 강사들이 개발한 교재를 통해 체계적으로 교육이 진행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교재를 연구ㆍ보강해 나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효과적인 스피치 교육 프로그램이 되도록 투자를 아끼지 않을 계획입니다. 아울러, 앞으로 더 많은 아이들이 키즈스피치예시바의 진정성 있는 교육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전국으로 지점을 확대 할 계획입니다. Q7.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남기고픈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우리 아이가 왜 시옷 발음이 안 될까요?”, “우리아이가 왜 논리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저렇게 두서없이 말 할까요?”, “웅얼웅얼 발음해서 의사표현이 정확하게 안 돼요”라고 고민을 털어놓는 어머님, 아버님과 상담하다보면 그 원인이 대부분 부모님에게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의 발음, 자신감, 표현력, 사고력 등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족이 함께 그것을 문제로 인식하고 개선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그러한 가정의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월등하게 빠른 교육 효과를 보는 것을 셀 수 없이 보았습니다. 아이는 우리의 미래입니다. 아이들이 본인의 생각을 자신감 있고 논리적으로 표현 할 수 있도록 부모님들께서 많은 관심 가져 주시길 당부 바랍니다.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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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8-21
  • [전주 이덕수내과 이덕수 원장 특별 인터뷰] ‘나눔’과 ‘섬김’의 인술(仁術)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이민영 기자] 바로 지금, 여기가 ‘천국’입니다‘나눔’과 ‘섬김’의 인술(仁術) 이덕수 이덕수내과 원장|의학박사|(전)대한의사협회 정책자문단위원 이웃집과의 사이에는 나지막한 담장이 아닌 콘크리트 벽이 세워지고 이렇게 각자에게 주어진 치수화된 공간 안에서 사라져가는 소통으로 인해 자신을 내세울 것은 오로지 보이는 것이 전부가 되어버린 탓일까. 어느새 개인주의와 물질주의가 팽배해져버린 현 사회에서 병원의 규모를 늘려 물질적 부를 추구하기 보다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아늑한 공간에서 자신을 찾아주는 환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실한 인술을 펼치고 더 나아가 지역사회 활동에 기부와 참여를 통해 오히려 자신의 손에 쥔 것을 내어주는 의사가 있다면 당신은 믿겠는가? 하지만 위인전에서나 볼 법한 이러한 이야기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이가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 주인공인 ‘전북 전주 아중지구의 슈바이처’ 이덕수 원장의 풍문은 주간인물에게까지 전해졌고,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는 조용히 활동을 이어갔으면 한다는 이 원장을 어렵게 설득하여 두 달여의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그를 만날 수 있었다. _취재 이선진, 이민영 기자 / 글 이민영 기자 환자는 ‘작은 예수’ 시골의 가난한 농부였던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 경제적으로는 어려워도 사랑만큼은 넉넉하게 받으며 자라고 있던 이 원장은 그의 뛰어난 학습능력을 발견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초등학생 시절 이미 홀로 전주로 유학을 왔는데, 집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이 원장은 어린나이에도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생활비와 학비를 마련했고, 자취를 하며 열 번도 넘는 이사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한 힘든 시기를 겪음으로써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배운 것 같다’고 말하는 이 원장의 얼굴에는 고난의 흔적은 다 씻겨 나가고 평온한 미소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후로는 천식이 심하여 고통 받는 아버지를 보며 내과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이 원장은 예수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하며 의학서적인 지식을 넘어서 환자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통해서 ‘나눔’과 ‘섬김’의 자세로 환자를 대하자는 의료인으로서의 신념이 생겼고, 깊은 신앙심가운데 그 뜻을 더욱 확고히 하며 드디어 지금의 그가 있는 데에 화룡점정을 이루었다. 실제로 오후 7시가 넘어 진료시간이 끝나고 인터뷰가 이뤄지던 도중에 내원을 하신 한 할머님에게도 아무 내색 없이 안부를 물으며 침착하게 약을 처방해드리고 좀 더 세심히 진료해드리지 못한 죄송한 마음에 시원한 음료수를 손에 쥐어드리는 이 원장의 모습을 보니 환자 한명 한명을 ‘작은 예수’로 모시며 짧은 진료 시간이라도 그 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는 이 원장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마음이 전달된 것인지 그의 병원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 병원의 규모를 확장할 계획이 있을지 물어보았는데, 전혀 그럴 뜻이 없다고 밝혀온 그는 자신의 체력과 정신력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온전하게 병원을 운영하며 남은 힘으로는 병원 밖에서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싶다고 했다. “아무래도 병원의 크기를 키우다 보면 그만큼 병원에서 보내야 할 시간도 많아지겠죠. 때에 따라서는 야간과 일요일 진료도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 저의 도움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여건이라든지 다른 이유로 병원을 찾지 못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위해 저만의 이익이 발생하는 병원을 벗어나 일주일의 며칠이라도 진료 외의 외부 활동을 통해 그분들을 돕고 싶습니다. 따라서 병원의 안과 밖에서의 저의 생활을 조율할 수 있을 만큼의 적정 규모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죠. 또한, 병원의 규모가 커져 여러 명의 의사들이 있게 되면 의견을 조율해야 할 문제들이 생기면서 자신의 소신을 지키기가 어려운 경우도 발생할 수 있는데 저는 ‘나눔’과 ‘섬김’의 제 신념을 저를 찾는 환자분들에게 꼭 지켜드리고 싶고요.” 사회의 건강까지 챙기는 의사 미션스쿨인 신흥고등학교에서 공부하며 자연스레 신앙의 씨앗이 심어진 이 원장은 예수병원에서 말 그대로 ‘예수’의 가르침으로 환자를 돌보는 선배들의 모습에 감명 받아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그렇게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전주제자교회와의 인연을 29년째 이어오며 현재에는 시무장로로까지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의 의료 신념이 된 ‘나눔’과 ‘섬김’은 그를 찾는 환자들뿐만이 아니라 그가 속한 지역 주민들에게까지 적용되고 있는데, 개원 초기에는 의사로서 환자들을 진료하고 돌보는 것에 집중했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속한 아중지구의 주민들이 있기에 자신의 병원 또한 유지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 이 원장은 그 뒤로는 주민들과의 소통과 이해 부분에도 관심을 가지고 그들로부터 받은 것을 다시 나눠주고 돌려주기 위해 여러 건강 강좌와 봉사를 통해 지역 활동에 참여하며 명절 관련 행사나 음악회 공연 같은, 크고 작은 지역 행사에 필요한 기금을 지원해주고 있다. 더불어 청소년들을 위한 단체에도 기부금 및 격려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그의 ‘사회가 건강해야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도 건강하게 자랍니다’라는 말을 통해서는 이러한 지역 활동 참여에 현재 불거지고 있는 자살, 따돌림과 학교 폭력 등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하는 뜻이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열 손가락으로는 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그의 지역 활동들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봉사활동 내역이었는데, 앞서 병원 밖에서도 자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했던 그의 말대로 이 원장은 수년간 꾸준히 무료 진료를 진행해 오고 있었고, 이러한 무료 진료는 사람들의 생사와 연결된 병원을 전투 장소에 빗대어 ‘최전방’이라고 묘사하는 그가 사람들이 그 ‘최전방’에 오는 일이 없게끔 사전에 병을 예방하고 의료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계층에게도 그 기회를 주어 지역 사회를 돕고자 시행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때, 기자의 눈에 들어온 무료 진료 시행 장소 중 하나, 전주 교도소.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과는 거리가 있는 이 색다른 장소에서 행해지는 진료 활동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그야말로 ‘작은 예수’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교도소에 있는 분들도 직접 만나보면 결국은 저희와 같은 사람들이거든요. 죄를 짓게 된 과정에서 분명 안타까운 사연들도 많고 저마다의 애환이 있는 분들이며, 언젠가는 다시 세상에 나와야 하니 그 아픔을 나눠드리고 싶고 충분히 그분들을 도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장 궁극적인 것은, 그곳이 병원이든 교도소든 저의 진료를 통해 사람들이 치유될 수 있는 바로 그곳이 ‘천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내리는 비에 꽃잎은 젖어도 그 향기는 젖지 않듯, 이러한 그의 선행과 지역발전에 대한 노고는 꽃향기처럼 퍼져나가 이미 그는 전주시 모범시민상, 전라북도도지사상, 전주시 새마을협의회 감사패, 대한민국사회 공헌대상, 대한민국 미래를 여는 혁신 의료기관, 한국을 빛낸 사람들(내과 부문), 한국을 이끄는 혁신리더와 아중지구 슈바이처 등 다수의 수상을 하였고 한국인물 33선, 현대 한국인물사 등재, 한국의 아름다운 얼굴, 한국의 슈바이처들, 사랑과 인술의 명의, 전주시 파워 메디컬 등으로 여러 잡지와 신문에 기사화되기도 하였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앞으로의 포부를 묻자, 우선은 현재 너무 세분화 되어버린 현대의학을 통찰력을 가지고 통합적으로 연구하고 환자를 살피는 눈을 가짐으로써 의사로서의 소명을 다하고 지금과 같이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과 공감을 위해서도 지속적으로 노력하며 전주의 시민단체와 함께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고 싶다고 이 원장은 말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평생건강연구소’를 설립하여 국민들의 질병을 예방해 주는 것 뿐만 아니라 훗날 통일이 되어 북한의 환우들까지 돕고 싶다던 그는 이 자리를 빌려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가족들에게도 고마움과 동시에 미안한 마음을 전했는데, 환자들의 진료에 집중하다 보니 초등학생이었던 두 아들이 어느덧 고등학생이 된 것을 보았을 때 미안한 마음이 컸고, 초등학교 6학년인 늦둥이 막내딸이 어린 나이임에도 아빠를 이해해주는 것이 너무나 기특하다고. 그리고 특히, 대학시절 졸업여행으로 갔던 소록도에서 한센씨병 환우들의 손을 서슴없이 잡아주는 모습을 보고 평생을 함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 아내에게는 그 이해심과 내조에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며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하루 종일 이어진 진료와 장시간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로 인해 목소리가 잠긴 상태였음에도 멋진 목소리를 가졌음을 느낄 수 있었던 이 원장은 역시나 그 근사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즐기고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환자를 진료하며 아무래도 자신의 목소리가 희생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럼에도 환자가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면 노래쯤은 못해도 상관이 없다며 웃어보이던 이덕수 원장. ‘만리향’의 아호를 가진 그가 사랑의 향기를 만 리까지 전한다는 아호의 뜻처럼 ‘전북 전주 아중지구’의 슈바이처가 아닌 ‘대한민국’의 슈바이처가 되는 그날까지 주간인물이 응원할 것이다. ◈profile 이덕수내과 원장 / 내과 전문의 / 의학 박사 내시경 전문의 / 초음파 인증의 / 노인병 인증의 대한소화기학회 평생회원 / 대한대장학문학회 평생회원 대한장연구회 회원 / 대한검진학회 회원(전)전주예수병원 전공의협의회장 전주신흥고 총동창회 부회장 및 20주년 회장, 30주년 위원장 (전)대한의사협회 정책자문단위원 전북의사회상임이사 / 전북개원내과의사회이사 유네스코 전주음식창의도시 자문위원 / 새만금 리틀모델 선발대회 심사위원전주 제자교회 시무장로 신세계 라이온스 회원 / 인후3동 주민자치위원 / 아천모 회원 한국불우청소년 선도위원, (전)온고을 산악회 고문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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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8-12
  • [유노외과의원 민호균 원장 특별 인터뷰] 갑상선·유방 질환 치료의 선진화 이끄는 '진짜 전문의'
    [위클리피플= 오미경 기자, 신재윤 기자] 갑상선·유방 질환 치료의 선진화를 이끌다 ‘골리앗’시스템으로 내실 있는 의원을 꿈꾸는 ‘다윗’ 민호균 유노외과의원 유방‧갑상선클리닉 원장 / 대한갑상선내분비외과학회 정보위원 우리나라에서 최근 10년간 가장 많이 발생한 암은 다름 아닌 갑상선암이다. 이렇게 많은 발생률을 기록한 데는 식생활습관의 변화와 같은 여러 가지 직접적인 발병원인의 영향도 있겠지만, 또 하나 손꼽을 수 있는 것이 초음파 검사 등 첨단 의료 장비로 인한 질병의 조기 진단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화려한 운동선수 뒤에 그를 조련시킨 뛰어난 감독이 있듯, 제 아무리 좋은 의료장비라 하더라도 이를 사용하는 의사의 역량이 부족하다면 모두 무용지물일 터. 특히 암과 같은 중대한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여기, 이 같은 이야기를 증명하는 이가 있다. 의사는 무릇 ‘무늬만 전문의’가 아닌 많은 지식을 가지고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진짜 전문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서울 목동에 위치한 <유노외과>의 민호균 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_취재 오미경, 신재윤 기자 / 글 신재윤 기자 경험과 노하우에 더해진 최첨단 초음파 장비로정확한 진단의 원스톱 진료 체계 선보여 <유노외과>는 개원가에서는 보기 드물게 유방 및 갑상선 관련 질환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다. 남다른 행보에 기자가 의문을 던지자 민호균 원장은 외과 레지던트를 할 당시를 떠올리며 말문을 열었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병원(Johns Hopkins Hospital)의 전설적인 외과의사 윌리암 할스테드(William Stewart Halsted, M.D.)가 ‘외과수술 중 갑상선 수술이 가장 어렵고 정교한 수술’이라고 말하기도 했을 만큼 갑상선수술은 특히 어려운 수술에 속하고, 연구와 수술에 있어 담당의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많은 수술이에요. 그런 점이 끌렸던 것 같아요.” 대학병원 전문의, 유방‧갑상선 분과 전임의, 종합병원 외과 과장직을 거치며 다양한 경험 속에 노하우를 쌓아 차근차근 이 분야의 전문의가 될 소양을 길러온 민호균 원장이지만 그에겐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대부분 환자들이 진료나 수술을 받기 위해 대형병원을 고집하며 전전긍긍 하지만, 긴 대기 시간 속에 정작 자신에게 필요한 중요 정보를 얻지 못하는 경우들이 빈번하게 생기는 것. 민 원장은 “대형 병원에서 분명히 담당할 부분도 있지만 초기 검진 및 조직검사 결과에 관한 설명과 같이, 의사 한명이 세심하게 챙겨야 하는 부분만큼은 중간급의 단계에서 환자들이 언제든 쉽게 찾을 수 있는 병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환자들이 믿음을 가지고 갈만한 전문병원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그렇게 약 2년 전, 대학병원 교수 급의 전문적인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 기관으로서 <유노외과>가 만들어졌다. 병원의 이름을 <유노외과>로 짓게 된 이유는 다양하다. “‘유노(JUNO)’라는 말이 그리스 신화에서 결혼한 여성을 지키는 가정의 신인 헤라(Hera)를 칭해요. 저희 병원이 만나는 환자 층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죠. 또 ‘유노’의 ‘유(乳)’가 유방, ‘노(櫓)’가 방패나 갑상선을 의미하는 것에서 지은 이름이기도 하고, ‘유방’을 ‘잘 알다(know)’라는 뜻도 있어요.”<유노외과>가 가지는 장점은 타 병원과 비교해 볼 때 더욱 빛난다. 개인병원 급에서는 구입하기 힘든 1억이 넘는 고가의 초음파 진단기구들을 비롯한 첨단 의료장비가 장착되어 있어 정확한 확진이 가능하다. 정기적인 일반검진만으로 정확한 판단이 어려운 유방이나 갑상선 질환은 조기 진단이 중요한데, 이를 통해 작은 문제라도 단번에 잡을 수 있다. 또한 서울아산병원, 삼성병원과의 유기적인 협진 시스템으로 큰 수술이 필요할 시 ons-stop으로 효율적 진료가 가능하다. 때문에 <유노외과>는 입소문을 듣고 지방은 물론, 해외에서 찾는 환자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정기적인 검진을 통한 조기검진이 가장 중요해 갑상선 질환을 검사하는 방법에는 면에서 침검사(FNAB)와 총검사(Core biopsy)가 있는데, <유노외과>는 이 부분에서도 일반 병원과 다르다. “일반적인 병원에서는 침으로 갑상선을 찌르는 침검사를 많이 하는데 간단하기는 하지만 침검사는 정확도가 좀 떨어지는 단점이 있죠. 그래서 큰 대학병원에서는 총검사를 해요. 총으로 한두 번 쏘아 검사를 하는 방법인데, 통증은 거의 없는 반면에 한 번에 정확히 암조직을 떼어내야 하는 만큼 의사의 숙련된 노하우가 필요하죠. 저희 병원에서는 일반 병원들에선 볼 수 없는 총검사를 통해 확진을 진행해 대학병원으로 수술을 받기 전까지 진단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고, 경우에 따라선 직접 수술까지 하게 되니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아요.” 심화적인 조직검사를 통해 갑상선 결절이 양성으로 판정될 경우, 결절 안에 고주파를 흐르게 한 뒤 그로 인해 발생한 열로 결절 세포를 태워 치료하는 ‘고주파 절제술’ 또한 <유노외과>의 전문시술 영역이다. 이는 30분 정도의 짧은 소요시간과 흉터가 남지 않는 것이 특징인데 지난 3월에는 민 원장의 ‘고주파 절제술’을 참관하러 중국에서 의료진들이 방문하기도 했다. 민호균 원장은 갑상선 질환 뿐 아니라 유방 질환에서도 남다른 경험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 유방 관련 질환에는 대표적으로 유방암과 함께, 여성들이 겪는 질환인 부유방이 있다. 민 원장은 최근 들어 2030 여성들의 유방암 발병률이 높아지고 있음을 가리키며 조기 검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제가 생긴 뒤의 회복은 조기 발견을 통해 치료할 때보다 더 큰 노력과 비용이 들어가기 마련이니 조기발견은 특히 중요합니다. 가까운 병원에서 검진을 자주 받는 것이 필요해요.” 그는 결혼을 앞둔 여성이라면 조기 발견을 못할 시 불임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으니 반드시 진단을 받길 권했다. 또한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유선조직이 증가하여 생기는 질환인 여유증(여성형유방증)을 앓는 남성들이 많아졌는데, 이 역시 <유노외과>에서는 최소한의 흉터와 통증 안에서 환자들에게 만족스런 치료를 제공한다. 엉뚱한 곳에 초점을 맞추는 논란은 환자 고통만 가중시켜 최근 갑상선 분야에 대해 과잉수술 문제라는 때 아닌 논란이 일고 있는 점에 대해 묻자 민 원장은 자신의 소견을 진지하게 밝히기도 했다. “논의가 이뤄지는 것 자체는 좋다고 보지만, 근본적으로 논의의 초점이 잘못 된 것 같아요. 갑상선 암의 크기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예후를 고려해 전절제수술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입장과 갑상선암의 합병증을 고려하여 제한적으로 수술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의료계의 입장이 대립하는 것은 예전부터 있어왔던 논란입니다. 그러나 최근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한 예로, 내시경 수술만으로 충분한 경우에도 로봇수술과 같은 고비용의 치료법을 권하는 사례들이 늘면서 환자의 부담이 커지는 부분이에요. 여기엔 갑상선 수술의 난이도에 비해 낮게 책정된 의료수가 체계의 문제도 있고, 로봇수술과 같은 고가의 비보험 수술비용을 감당해야하는 의료보험 업계의 문제가 맞물려있는데, 사망률이 높지 않은 질병에 고비용을 지출할 수 없다는 경제 논리로만 문제를 접근하면서 처음부터 갑상선암은 불필요한 수술이라는 마녀사냥 식 주장에 미디어가 동조하는 과정에서 국민 건강이라는 공동의 이익에 대한 합리적인 고민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거죠. 엉뚱한 곳에 초점이 맞춰진 논란은 결국 중간에 끼어있는 환자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생각해요.” 21세기는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모든 정보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민 원장은 인터넷의 이러한 특성을 두고 “건강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여과되지 않은 채로 인터넷에 떠도는 의학 정보들을 무조건 맹신하는 것이 상당히 위험하다”며 “의사를 찾는데 있어 소위 ‘무늬만 전문의’가 아닌 변화하는 정보를 잘 따라갈 수 있는 ‘진짜 전문의’를 찾는 것이 위험을 줄이는 해법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작지만 전문성이 강한 병원을 만드는 것이 꿈 유방과 갑상선 분야의 박학다식한 전문의로 활동 중인 민호균 원장은 자신의 지금이 있기까지 잊을 수 없는 인물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내시경을 이용한 유방암과 갑상선암의 수술법을 개발한 권위자, 강북 삼성병원 외과학교실의 배원길 교수를 망설임 없이 꼽으며 스승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기도 했다. 한편, 도전적인 성향이 강해 10년째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있는 ‘열혈 의료인’ 민호균 원장은 집에서는 소문난 ‘딸바보’이기도 하다. 생후 15개월이 지난 딸의 이야기가 나오자 연신 웃음꽃을 피우는 그는 “아기가 생기며 병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여성 환자들의 마음을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유방과 갑상선 분야에서 소리 없이 강하게 성장하고 있는 <유노외과>의 앞날을 묻는 질문에도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 “작지만 강한 병원을 만들고 싶어요. 물론 규모가 커지면 좋죠. 하지만 단순히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닌, 내실이 꽉 찬 전문성 있는 병원이 되기를 원해요. 그러려면 그만큼의 능력을 갖추기 위한 준비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민 원장은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믿음’이라는 의견을 내비쳤다. “지금과 같은 전문 외과의가 되기까지 저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냉정한 ‘자기평가’를 바탕으로 한 ‘자기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일회적인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일희일비 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대신 자신의 평가를 맡겨도 좋을 사람을 정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에 대한 평가를 구해야 합니다. 저 역시 그런 분들의 평가 가치들이 제 자신에 대한 믿음이 되었어요”라며 주위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 큰 행운이었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내내 자신의 분야와 인생에 대해 차분하고 힘을 잃지 않는 어투로 조리 있게 말하는 민호균 원장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것은 민 원장이 이끄는 <유노외과>가 햇수로 그리 길지 않은 2년차 외과의원임에도 오히려 그 어떤 대형병원 못지않은 시스템으로 모든 환자들이 찾을 수 있는 병원으로 성장 중에 있는 이유를 짐작케 했다. <주간인물>은 갑상선·유방 질환으로 힘들어하는 모두가 행복해질 그날을 꿈꾸는 민호균 원장의 바람을 언제까지나 응원한다. profile. <전문분야 경력>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 부교수삼성의료원 강북삼성병원 외과 전문의서울아산병원 유방갑상선내분비외과 전임의서울아산병원 외과 임상교수양지병원 유방갑상선센터 과장MD병원 가슴성형센터 연수이지함 성형외과 유방성형원장現 유노외과 원장 <학회/자격면허/활동>외과학회 평생회원한국유방암학회 평생회원대한갑상선내분비외과학회 정회원대한갑상선내분비외과학회 정보위원한국갑상선학회 정회원대한내시경복강경외과학회 정회원대한외과초음파연구회 정회원대한유방클리닉협회 정회원2009년 Kyoto Breast Cancer Consensus Conference 발표대한의사협회위촉 네이버 의료상담의사NAVER 지식인 위촉 상담의HIDOC 위촉 상담의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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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8-12
  • [엠엘씨월드카고 채명기 대표이사 회장 특별 인터뷰]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경영으로 ‘삶의 행복’을 일궈낸 물류계의 혁신 리더, 채명기 대표를 만나다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신재윤 기자]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경영으로‘삶의 행복’을 일궈낸 물류계의 혁신 리더, 채명기 대표를 만나다 채명기 엠엘씨월드카고 대표이사 회장 | 경영학박사 | 숭실대학교 경영학부 겸임교수 오늘도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각자의 직장으로 같은 시간에 출근을 하고 자신이 소속된 회사의 직원으로서 일을 한다. 여기서 우리는 의문을 하나 던질 수 있다. 하루 8시간 이상씩 열심히 일하는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은 회사생활에서 진정 ‘행복’을 느끼면서 일을 하고 있을까. 여기, 한 회사의 CEO가 있다. 그는 직원들의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들이 회사에서 즐겁게 일하는 것을 원한다. 이렇듯 일반 회사들과는 다른, CEO의 뚜렷한 경영소신을 가진 한 물류기업이 있다고 하여 <주간인물>이 찾아갔다. 이른바 ‘감성경영’의 선두주자, 엠엘씨월드카고의 채명기 대표를 만나보자. _취재 이선진, 신재윤 기자 / 글 신재윤 기자 ‘가고 싶은 직장’‘일이 잘되는 공간’만들기 기자가 인터뷰를 위해 서울 금천구의 본사를 방문했을 때, 먼저 눈에 띈 것은 사무실의 독특한 구조와 곳곳에 배치된 미술 작품들이었다. “저는 직원들로부터 일에 대한 ‘강박관념’을 없애주고 싶었어요. 보통 주말이면 집에서 쉬잖아요.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직장에 가는 날이 다가온다는 부담감에 ‘강박’이 생기게 되죠. 저는 그러한 관념이 존재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예술을 하는 작가가 작업실에서 일을 하는 것이 즐겁고 편안함을 느끼듯 직원들에게 직장은 ‘가고 싶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이렇게 말하는 그는 한 폭의 그림 속에는 책 한 권에 비견될 스토리와 교훈이 담겨있음을 거듭 강조하며 예술작가들의 특징으로 ‘몰입’과 ‘창조성’을 이야기했는데, 이는 곧 그의 기업철학과도 연관된다. “고객의 니즈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며, 직원들의 삶의 질에 ‘몰입’을 하고 반복되는 일상의 업무에 늘 ‘창의성’을 불어넣도록 해야 합니다. 결국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을 끊임없이 찾아내고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22년째 물류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해온 엠엘씨의 경쟁력이 아닌가 생각해요.” ‘웰컴투 프라이데이’‘감성경영’의 포문을 열다 채 대표는 ‘감성경영’ CEO다. 이를 반영한 독특한 제도로 ‘스머프’라 불리는 ‘품앗이’제도가 있다. ‘스타일은 살리고 머리는 비우는 프라이데이’의 줄임말인 ‘스머프’는 매주 금요일 오후를 자신의 문화생활을 위한 시간으로 보내자는 것. “스머프제도는 4.5일 근무제도로, 조기퇴근 후 홀로 헛된 시간을 보내지 않게 하기 위해 회사에서 직원들을 위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그 속에는 쿠킹클래스와 액세서리 만들기, 볼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과거 관습처럼 다른 부서의 일을 도우며 서로 힘든 과정을 함께 하는 취지에서 시작된 ‘품앗이’는 부서 간 끈끈한 유대를 맺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부서간의 고충을 이해하고 부서이기주의가 사라졌다는 것이 직원들의 설명이다. 이러한 엠엘씨월드카고는 2013년, 문화관광부가 매년 선출하고 있는 ‘즐거운 직장, 행복한 기업’ 인증 캠페인에서 당당히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채 대표가 ‘감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대학에서 마케팅 강의를 했는데 감성마케팅에 대해 이론으로는 설명을 했지만, 마음으로 와 닿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홍익대 미대 예술기획 대학원에 들어가 다시 공부하면서 진정한 감성에 대해 알게 되었죠.” 한편, 자신의 꼭 필요한 결정을 제외하고는 직원들의 의사를 많이 반영한다는 채 대표는 복지문화 활성화를 위한 ‘복리후생 위원회’를 일례로 들어 설명했다. 이 위원회를 통해 직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복리 시스템을 일구게 되었다고. 물류계에 차별화를 일군 혁신 기업 ‘엠엘씨월드카고’ 엠엘씨월드카고는 1992년에 설립되어 23년이 넘는 경험이 축적된 중견 복합 물류 기업이다. 통상 ‘물류’라고 하면, 자세히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물류의 전체적인 과정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전반적 물류과정을 우리의 신체에 비유하자면, 몸 안에 퍼져있는 핏줄은 도로와 같고, 그 속에서 융합기능을 하며, 어느 때는 저장기능을 담당하고, 때로는 회수기능을 하기도 하죠. 결국 물류과정들은 우리 몸속에 흐르는 피의 자연스런 흐름과 같이,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라 할 수 있어요.” 남다른 창의성을 발휘하며 늘 더 나은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는 채 대표는 고객들이 물건을 받는 과정에서 불편을 겪는 점들을 최대한 수렴하려 했다. 그런 불편들을 수렴해 고안한 것이 ‘ITTS(In-Transit Tracking System)’다. “과거에는 물건을 주문하면, 언제 도착하는지 확인하는 방법이 문서 수신을 통한 것밖에 없었어요. 고객 입장에선 시간의 효율성이 떨어진 부분이죠. 때문에 현재 화물의 위치와 운송 소요 시간을 알려주는 시스템을 만들어 고객들의 ‘동시성’을 만족시켜주었죠. 또한 회계과정을 거칠 때, 과거에 수많은 청구서들을 일일이 수작업하는 모습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자동 정산 시스템을 만들어 고객사에 지원했고 이로써 전산화 시스템을 구현하였습니다.” 현재 엠엘씨월드카고의 존재는 동종분야에서도 유일무이하다. “업계에서 우리 회사가 해온 것은 ‘업(業)’의 개념을 바꾸는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현대 사회에서의 물류는 점점 네트워크의 싸움이 되는데 화물을 실제로 운반하지 않지만, 운반에 필요한 네트워크를 만들어내고 그 과정 속의 정보들이 원활하게 흐르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죠. 결국 ‘화물을 운송한다’에서 ‘운송에 관련된 정보를 가공한다’로 물류의 본질을 바꾸어가고 있는 거죠.” 엠엘씨월드카고는 정부로부터 물류산업에 대한 우수기업으로 인정받아 2001년과 2005년에는 국무총리표창, 2003년에는 대통령표창을 받는 등 여러 차례 표창을 받은 바 있다. 채 대표는 <주간인물> 독자들에게 남기고픈 말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직.간접적으로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데, 독서를 하면 간접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가슴 속 생태계를 한 나무로만 만들지 말고 철학, 미술, 음악 등 폭넓게 책을 읽으며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보세요.” 대한민국 물류산업을 대표하며 주목받고 있는 엠엘씨월드카고. 그리고 그 중심에 선 채명기 대표. 그는 인터뷰의 마무리로 ‘사람’과 ‘행복’이라는 것에 다시 초점을 맞췄다. “결국 비즈니스 자체는 사람이 만드는 거잖아요.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행복’이 뭐 별거 있나요. 생활 속에서 느껴지는 순간순간의 좋은 느낌이 아닐까요(웃음).” ◈profile 학력사항2002년 8월 인하대학교 국제통상물류대학원 국제통상학과 석사과정 졸업2010년 2월 숭실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 마케팅전공 박사과정 졸업2013년 7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예술기획전공 수료 최고경영자과정 수료2000년 9월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 경영자 과정 2008년 9월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국가정책과정 경력사항2007년~현재 SGS 동북아 물류연구소 부소장 (중국 심양항공대학교 소재)2010년~현재 숭실대학교 경영학과 마케팅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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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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