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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긍정적인 캐리커처 그리기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지난 토요일에 좋아하는 친구와 대전 중앙시장에서 만나 뼈해장국을 놓고 소주를 마셨다. 식사 후에 친구는 내게 선물을 하고 싶다며 캐리커처 그리는 장소로 안내했다. 7,000원 짜리 캐리커처였다. 1분에 완성해 주는 캐리커처라고 선전문구가 벽에 붙어 있었다. 매직펜 단색으로 인물의 간단한 특징만 잡아서 그려주는 곳이었다. 매직으로 그린 여러 사람의 캐리커처가 벽에 붙어 있었다. 모두가 귀엽고 밝은 모습이었다. 보고 있어도 흐뭇한 얼굴 모습이었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내 얼굴을 계속 힐끔거리면서 보았다. 앉아서 상대의 얼굴을 보는 것이 참으로 어색하다는 것을 느꼈다. 여성 화가의 얼굴을 마주보아야 한다는 것이 너무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정말 오랜 시간동안 여성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해서 본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짧은 시간에도 화가의 얼굴을 정면에서 쳐다보지 못했다. 너무도 어색했다. 그러고 보니 직장에서도 여직원의 얼굴을 정면으로 눈 맞춤을 하면서 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교사도 어린 제자가 훌륭하게 과제를 했을 때 머리를 쓰다듬거나 등을 토닥거리지 못한다. 세상이 많이 각박해진 느낌이다. 초경과 몽정을 하고 나면 호르몬이 몸의 성장을 위해 뇌로 가는 신경세포 확장을 줄인다고 한다. 청소년기 아이는 잔소리와 생각하기를 싫어하게 되고 자기 방에서 나오기를 싫어하게 된다. 호르몬의 특징이 나타내는 과정이다. 청소년은 몸을 키우느라 뇌의 성장은 잠시 미루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 있는 사춘기 시절에 왜 그런 언행을 하느냐고 자녀에게 목소리를 높이면 결국 갈등만 생긴다. 청소년을 대하는 핵심은 기다림이라고 했다. 격동적인 신체 변화를 겪는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 부모도 자식을 대하는 기본은 기다림이고 사랑이다. 눈을 맞추고 등을 토닥여주고 언제나 너를 믿는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보다 좋은 자녀교육은 없을 것이다. 건네받은 캐리커처에는 잔주름이 없고 웃는 모습을 한 내 모습이 있었다. 친구는 캐리커처를 보고 자신과 닮지 않았다고 했다. 모자를 쓰고 활짝 웃고 있는 친구의 캐리커처는 20대 같았다. 사람들이 캐리커처를 좋아하는 이유는 특징적인 장점을 잘 표현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먹고 나와서 보니 사람들이 가게 앞에서 줄을 아까보다 더 길게 서 있었다. 날카롭게 잘못한 사실을 지적하고 잘못에 대하여 꾸중하고 그러한 일을 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청소년은 불안정한 성장 과정에서 흔들리는 존재다. 부모와 교사들이 기다려주고 단점보다는 밝은 장점을 찾아주고 칭찬해 준다면 관계는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다. 캐리커처를 서재에 놓으니 나를 보고 그림 속의 내가 웃고 있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도 사람도 모두 아름다운 세상으로 보일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지닌 긍정적인 특징을 캐리커처 화가처럼 잘 잡아내서 칭찬해 주자. 분명히 그 사람도 좋아할 것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천안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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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아동교육에 안전의식을 다시금 고취(高趣)하자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상큼한 봄날의 햇살이 온 누리를 비추고 날로 푸르러가는 자연은 온갖 아름다운 색상의 꽃들로 만개하여 향기를 내뿜는 계절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자연학습이든 야외수업이든 재잘거리는 아이들과 힘찬 기운을 내뿜는 청소년들이 단체로 자연 속애서 활동하는 광경이 자주 눈에 띤다. 특히 고만고만한 키에 비슷한 복장으로 서로 손을 잡고 같은 모양의 앙증맞은 조합을 이루는 새싹들의 모습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에 가슴을 부풀게 한다. 어느 시인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지만 주변의 실상은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하는 모습이 훈훈한 계절이다. 하지만 노파심에 우려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바로 어린 생명들의 안전을 보장해야 할 어른들의 의식의 결여와 순간적인 방심에 따른 무책임이다. 한 무리나 집단의 아동들을 이끄는 야외 활동에는 반드시 책임 있는 어른이나 교사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일상에서 습관화된 행동이나 교육 현장에서 방만한 행동을 보이는 어른들은 이른바 ‘제 버릇 개 못주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아이를 맡긴 학부모나 교육을 하는 다른 동료들에게 피해와 결례를 범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바로 아이들과 따로따로 행동하는 어른들의 무책임과 무분별함 때문이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인근 공원에 걷기 운동이나 산책에 나선다. 그런데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모습에 주위를 둘러보면 어디선가 한 무리의 아이들이 줄을 지어 이동을 한다. 자연 속에 던져진 아이들의 모습은 의례 들떠 있고 특유의 생동감, 역동성이 넘쳐 난다. 그렇기에 몸동작과 발걸음에 나타나는 행동은 이성(理性)적이라기보다는 감정(憾情)에 따르는 경향이 강하다. 곧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과 같은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아이들의 특성이고 특히 자연과 함께 할 때 천진난만한 영혼들의 야성(野性)의 발현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들 주위에는 반드시 누군가 안전을 책임지고 보호해야 할 어른이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보육 담당자든 교사든 안전에 대한 책임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안전제일(safety first)’은 공사장에만 있는 구호가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인솔하는 아이들 앞에서 책임을 방기하고 사적인 스마트폰 사용에 몰입해 있다. 뒤를 따르거나 일정한 장소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은 연령대별로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제각각 흥에 겨워 대열에서 이탈하기 쉽다. 그런데도 책임질 교사는 자신들의 오장칠부의 하나가 되어 버린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거나 귀에 댄 채 무엇인가 또는 누군가에게 온 정신이 팔려있다. 결국 몰입의 순간이 지나쳐 책임마저 방기하는 사고가 유발된다. 그런 결과를 이미 우리는 무수히 반성하고 새롭게 결의하곤 했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일찍이 넬슨 만델라가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그 사회의 영혼을 더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고 한 말은 우리를 두고 한 말 같다. 전국의 초중등학교는 일과 시간 중에 얼마간은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규정에 의해 자제하거나 제한하고 있다. 그것이 아이들의 협의에 따른 자체적인 규정이든 아니면 학부모의 동의를 구한 교사나 학교의 규정이든 분명히 교육 목적상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내린 소중한 결단이다. 따라서 아이들과의 수업 중에 교사 역시 개인적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지극히 상식이자 아이들과의 수업 예절이다. 하지만 교실을 야외로 옮긴 순간에 이를 망각한 채 자신의 중독성 습관에 따라 자기도 모르게 아이들 앞에서 교사답지 못한 행동을 범하는 것은 강력한 경각심과 규제가 필요하다. 왜냐면 무책임한 교사로 인해 수많은 아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과 방심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방심하면 큰 코 다친다”는 옛말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 주변에 도사린 안전사고에의 불감증은 이렇게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체험학습이나 야외수업 등으로 교사가 학생들을 인솔 할 시에 개인적으로 스마트폰의 사용을 법적으로 강력하게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용의 목적이 불가피한 것이 있을 수 있어 지나치다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예고 없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여기엔 상시 대비하고 준비하는 마음과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유비무환(有備無患) 자세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투철한 책임과 사명의식이 함께 해야 비로소 가능하다. 오늘도 곳곳에서 우리의 미래인 새싹들에게 닥쳐 올 비극적인 사고로부터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은 어른들의 강력한 성찰과 책임의식, 영혼에서 오는 것임을 잊지 말자.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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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교사와 의사의 명예가 빛날 때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음절 하나 차이다. 의사와 교사. ‘님’과 ‘남’도 그야말로 점 하나 차이다. 의사와 교사는 님과 남과의 차이만큼이나 대우가 다르다. 국민과 환자가 우선이라며 2,000명을 고수하던 정부가 의대정원을 50%에서 100%로 대학 자율적으로 하라는 양보안을 냈다. 의사협회는 거부했다. 대형병원 전공의가 병원을 이탈한 지 두 달이 되어 간다. 2020년에도 집단휴업을 했지만 지금처럼 길지는 않았다. 당시와 다르게 서로가 상대의 타협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사태 수습을 위한 대화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상대에게 무릎 꿇고 두 손 들고 항복을 하라는 결연한 대결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작년 7월 서이초 사건 이후 교사들은 토요일마다 폭염에도 검은 정장을 입고 ‘질서정연’한 집회로 항의를 했다. 교사들은 신속한 법률개정을 요구했지만 대답이 없었다. 교사들은 움직이지 않는 정부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작년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을 선언했다. 단 하루의 연가였다. 정부는 그날 연가를 내는 교사에게 중징계하겠다는 엄포를 계속 방송에 내보냈다. 당시 거리로 나섰던 교사와 지금 병원을 떠나 있는 전공의는 비슷한 연배다. 젊은 세대로서 국가고시를 통하여 자격을 얻은 전문직종 종사자이다. 전공의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해결될 때까지 무기한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결의를 다지고 있다. 교사정원을 다 채운 학교가 거의 없다. 학교에 기간제 교사와 다양한 공무직이 증가하고 있다. 학교는 수업도 힘들지만 복지, 건강, 급식 등 다양한 요구로 그야말로 점입가경의 어려움을 감내하고 있다. 교대와 사범대 학생들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며 교생실습을 거부하고 휴학을 집단으로 한다면 지금의 교육부는 어떻게 대응을 할까. 교사가 교사 정원이나 교육 정책이 불합리하다고 어린 학생을 두고 무기한으로 교실을 이탈하고 이후 대화를 모두 거부하고 휴직을 한다면 여론과 정부는 어떻게 했을까. 1989년에 교사 1,500명을 해직시키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들이 해임된 이유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 하나였다. 역설적으로 코로나19로 학교의 존재가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를 국민이 깨닫게 되었다. 부모들은 학교가 단지 수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의대 정원파동으로 전공의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의료가 국민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가를 국민들이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하나뿐인 생명을 다루고 있는 의사와 부모에게 소중한 자녀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교사는 국가의 중요한 인적 자산이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교육계 출신 12명이 국회에 입성한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때보다 1명 많다. 9명이 대학교수 출신이고, 초등교사 출신 2명과 학교 비정규직 출신이 1명이다. 4명이 지역구 당선자이고 비례대표가 8명이다. 교사가 죽거나 주말마다 집회를 하지 않더라도 백년대계를 위한 교육 입법을 해주기 바란다. 교사와 의사의 명예는 자기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때가 아니라 자신이 아닌 국민에 봉사할 때 더욱 빛난다. ▣ 김홍제 ◇ 충청남도천안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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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풍천소축의 철학–작은 축적의 위대함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는 삶에서 어떻게 위대함을 달성할 수 있을까? 그 답은 “바람이 멈추니 작은 쌓임이다”라는 소축괘에 담긴 철학에 있다. 이 철학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작은 노력과 경험의 축적이 어떻게 위대함을 창출하는지 그 핵심을 알려준다. 「대상전」에 소축괘를 보면 ‘바람이 하늘 위를 간다. 그러니 작게 쌓을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바람이 불어 구석진 곳으로 낙엽이 쌓여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크게 비가 내리거나 해서 민중에게 혜택을 베풀거나 할 수가 없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내면의 덕을 아름답게 축적시켜야 한다. 멈춤은 작게 쌓인다. 그러니 더욱 자신의 덕성을 다듬는데 온 힘을 길러야 한다. 풍천소축괘는 바람이 불어 땅에 떨어진 낙엽들이 모여 한 곳에 쌓이는 모습이다. 종잣돈이 쌓이면 더욱 분발하여 끌고 가야 한다. 중간에 주저앉아버리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 탄탄해질 때까지 부지런히 반복해서 일해야 한다.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의 「풀잎」(Leaves of Grass)은 작은 축적의 본질을 반영하는 시다. 그의 시는 일상적인 경험들을 통해 삶의 본질을 탐구하며 작은 순간들이 어떻게 큰 전체를 형성하는지를 보여준다. 한 아이가 두 손에 잔뜩 풀을 들고서 "풀은 무엇인가요?"하고 내게 묻는다. 내 어찌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겠는가. 나도 그 아이처럼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필연코 희망의 푸른 천으로 짜여진 내 천성의 깃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그것은 주님의 손수건이다. 하느님이 일부러 떨어트린 기념품일 터이고, 소유자의 이름이 어느 구석에 적혀 있어, 우리가 보고 "누구의 것"이라고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나는 추측하노니- 풀은 그 자체가 어린 아이, 식물에서 나온 어린 아이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것은 모양이 한결같은 상형문자일테고 그것은 넓은 지역에서나 좁은 지역애서도 싹 트고 흑인과 백인, 캐나다인, 버지니아인, 국회의원, 검둥이, 나는 그들에게 그것을 주고 또한 받는다. 또한, 그것은 무덤에 돋아있는 깎지 않은 아름다운 머리털이라고 생각한다. (생략) 풀잎 하나하나가 삶의 중요한 부분을 상징하며 작은 축적의 과정을 강조한다. 작은 순간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위대한 것으로 만든다는 것을 시로 나타낸 것이다. 그는 위대함을 추구하려면 인내와 끈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은 이익을 축적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작은 축적의 과정을 통해 개인은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세상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풀잎’과 ‘작은 축적’의 관계는 위대함이 하나의 거창한 몸짓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인격을 형성하는 소소한 일상적 경험의 축적을 통해 이루어짐을 시사한다. 삶의 웅장함은 단순한 기쁨, 평범한 경험, 역경을 극복하는 회복력의 융합에서 나타난다. 행복한 존재의 비결은 앞으로 나아가는 모든 발걸음이 아무리 작더라도 인생의 위대한 걸작을 만든다는 깨달음에 있다. 노자의 『도덕경』에 보면 ‘유약승강강(柔弱勝剛强)’이란 말이 나온다. 유약한 것,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는 뜻이다. 노자의 이 말은 자연의 본래적인 모습을 묘사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노자 자신이 기획한, 부드럽고 여성적인 문명이, 공자나 법가식의 남성적인 문명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부드럽고, 약한 것들은, 굳세고 강한 것들의 파괴적인 속성과 맞서 왔고, 문명의 저항에 맞서 자연의 가치들을 옹호해 왔다. 특히 고은의 「열매 몇 개」는 ‘유약승강강’의 진리를 실천하는 시로, 작고 약하지만 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짧으니 시 전문을 보자. 「지난 여름내 땡볕 불볕 놀아 밤에는 어둠 놀아 여기 새빨간 찔레 열매 몇 개 이룩함이여. 옳거니! 새벽까지 시린 귀뚜라미 울음 소리 들으며 여물었나니」 시인은 가녀리고 약한 것들을 아끼고 중요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여름 한 철 찔레가 겪어야 했을 고통과 시련(땡볕, 불볕, 어둠)을 떠올린다. 고통과 함께 논다는 긍정성을 보여준다. 2연에서 시인은 열매를 맺는데 숨은 공로자를 찾아낸다. 바로 귀뚜라미다. 귀뚜라미가 열심히 울어주어서 자그마한 찔레 열매 몇 개가 맺어질 수 있었다는 유쾌한 상상이다. 이는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도 비슷한 발상을 보여준다.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가 울고 천둥이 울었다는 그 싯구. 시인은 ‘찔레 열매 몇 개’라고 하는 이 작고 소박한 생명체의 탄생에서 생명력을 발견하고 놀라워한다. 어떤 것에 감탄할 줄 안다는 것은 그것의 가치를 안다는 것이다. 작고 가녀린 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작고 가녀린 것의 생명력 앞에서 감탄할 줄 안다. 감탄할 줄 아는 능력, 그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많은 것들 중 하나다. 작은 축적의 철학을 받아들이자. 그것이 위대함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집요하게 낙엽을 쌓듯이 경험과 덕과 승리를 모으자. 평범한 것이 비범한 것으로 탈바꿈하면서 꾸준한 발전이 가져오는 변혁의 힘을 목격할 것이다. 위대함은 결국 가능성의 지평을 넘어 꿈을 꾸는 인내와 용기의 실에서 엮이는 것이기 때문에 흔들림 없는 정신으로 도전하며 안락함의 한계를 넘어 나가야 한다. 이처럼 바람이 하늘 위를 가니 작게 쌓일 뿐이다. 이런 때는 내면의 덕을 아름답게 온축시키는 데 전념하는 것이 좋다고 『주역』은 말한다. 인간의 경험과 세계 이해를 형성하는데 있어 작은 순간과 경험의 축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양적 축적은 질적 변화를 가져온다. 풍천소축괘의 효사를 보자. 지(地)의 자리다. 바람이 부니 무엇이든 변동이 심하다. 선택할 수 없을 때는 스스로 열리는 마음이 정한 길을 따라가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운명이다. 인(人)의 자리다. 수레바퀴에서 축이 빠진다. 조금씩 아껴가면서 모은 종잣돈을 굴리려고 살피고 있는데 돈 쓸 일이 많아지고, 여기저기서 뜻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하여 종잣돈을 쓰게 된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럴 때는 자기 내면의 성실함을 믿고 열심히 자기 일에 매진해야 한다. 인의 자리이기 때문에 도전하는 용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면 수레바퀴의 축이 빠졌어도 수레를 끌 수 있다. 작게 쌓였으나 크게 된다. ‘네 시작은 미미했으나, 너의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말씀처럼. 천(天)의 자리다. 달이 초승달에서 보름달이 되었다. 인생 말년에 베풀고 봉사하는 삶을 살자. 그리하면 남들에게 존경을 받을 것이다. 인생 말년이 평화롭고 안정된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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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교육계의 민심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민심이 대폭발했다고 하고 민심이 매섭다고도 했다. 서로가 민심의 무서움을 보았다고 했다. 치열했던 선거이기에 어느 한 쪽은 선거후유증이 남을 것이다. 선거결과에 따른 후폭풍은 대단했다. 선거를 이끌었던 여당지도부가 사의를 표명했다. 국정 기조에서도 인적쇄신을 한다고 한다. 국정쇄신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선거를 통하여 민심을 확인한 결과이다. 교육에서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민심은 무엇인가. 국가교육위원회는 4월 12일에 ‘대국민 교육현안 인식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한국 교육이 직면한 문제점으로 ‘과도한 학벌주의’와 ‘대입경쟁 과열로 인한 사교육시장 확대 및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을 꼽았다. 국민 10명 중 4명 이상이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과 학벌주의를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보았다는 내용이다. 교육 만족도는 5점 만점에 2.82점이었다. 변화가 가장 시급한 교육 분야는 고교교육(46.3%)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교육에 대한 민심에 정부가 얼마나 발 빠르게 변화의 움직임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늘봄학교는 정부가 의대정원 증원과 함께 강력하게 추진하는 정책이다. 맞벌이 가정 등 돌봄이 필요한 아동에게 학교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돌봄을 제공한다는 취지로 3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늘봄학교는 학교 현장에 얼마나 자리 잡았을까. 돌봄교실 확충과 늘봄전담사 인력 충원이 문제다. 돌봄교실을 겸용교실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가 수업준비를 할 교실이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서술형 문항 폐지 및 교원 인권침해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권고한 교원능력개발평가는 어떠한가. 교원능력개발평가는 전국 초·중·고, 특수학교 교원을 대상으로 교원의 능력과 전문성을 신장한다는 취지로 2010년에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다. 교사노조는 교원능력개발평가의 폐지를 교육당국에 촉구하고 있다. 깜깜이 평가, 보복성 평가, 교사 외모 평가를 비롯한 성희롱 등 부작용이 많다고 했다. 교원능력개발평가의 교육적 효율성은 증명되지 않고 있다. 다만 교원능력개발평가는 교권침해 수단으로 전락한 것은 분명하다. 교육개혁은 왜 구호에 그치고 있는가. 진정성 있는 교육개혁은 왜 성공이 어려운가. 교육에서 많은 개정과 쇄신을 한다고 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교육 현장과 함께 가지 못한 원인이 클 것이다. 교육 현장의 민심에 진정성 있게 다가가지 못한 원인도 있다. 정부가 정책을 수행하면서 현장의 의견수렴을 형식적으로 하면서 밀어붙이거나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한 교육 개혁은 힘들 것이다. 민심은 물과 같고 배는 물이 있어야 항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선출에 의한 승진시스템과 보직으로의 전환, 교사 행정 업무를 대신할 충분한 인력 확보, 교사에게 평가의 자유, 교육과정 편성의 책임과 자유, 표현의 자유를 주어야 한다. 학교와 교사를 통제하기보다는 학교와 교원에게 자율성과 책임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교육정책이 가야 한다. 그것이 교육 현장의 민심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천안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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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파괴와 변화-'파리대왕'에 담긴 인간 본성의 철학적 고찰(산풍고괘)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대상전」에 산풍고괘를 보면 ‘바람이 산 밑에서 불다가, 산을 만나면 산을 휘돌아가면서 산의 모든 질서를 깨뜨린다.’고 되어 있다. 즉 바람ㅁ이 산을 휘돌아나가면 초목과 과실이 어지러이 흩어진다. 쇠락의 조짐이다. 이를 인간 세상으로 보면 아랫사람이 굴종하면 윗사람은 정체하니, 부패하는 세상을 말한다. 그러나 부패 자체에는 원시와 형통이 포함되어 있어서 거듭 변화한 다음에 질서로 돌아간다. 그래서 큰 내를 건너면 이롭다(移涉大川). 변화가 일어난다는 의미다. 이러한 변화는 일이라는 것이다. 일은 타락, 무질서, 파괴로부터 일어난다. 즉 썩어 문드러져야 비로소 진정한 일이 생겨난다. 혁명도 그러하다. 변화는 썩음, 파괴를 그 계기로 삼는다. ‘일’은 시(時)와 의(義)에 의해 나타난다. 시(時)는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운명적, 종교적이다. 반대로 의(義)는 형이하학적인 것으로 우리 삶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 시는 우연이, 의는 필연이 지배하는 것이다. 우연과 필연의 교착점에서 ‘일’이 만들어진다. 산풍고의 ‘고(蠱)’라는 글자도 그릇(皿) 속에 벌레(虫)가 세 마리(蟲) 들어 있다. 그릇은 생존할 수 있는 도구를 상징한다. 그것에 생존을 위협하는 벌레(독충)가 세 마리나 있다. 갑골문에 이 글자가 ‘저주’를 의미하는 이유다. 고괘는 부패와 파괴의 모습이다. 군자는 대중에게 리더십을 발휘하여 구체적인 사업을 대대적으로 감행하여야 한다. 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g, 1983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파리대왕(Lord of the Flies), 1954』에는 산풍고괘가 말한 무질서, 혼란, 파괴, 타락 등의 환경에 놓인 무인도에서 15소년이 겪는 갈등과 해결 방안을 이야기로 풀이한다. 즉 이 소설은 영국 소년들이 핵폭탄이 터져 영국 전역이 초토화 되어버린 상황에서 비행기가 추락하여 15명의 아이들만 무인도에 남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동인물인 랄프와 반동인물인 잭의 갈등이 주요 화소(話素)를 이룬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는 존재 양식적 삶을 지향하고 크로머는 소유 양식적 삶을 지향하듯이, 랄프는 존재 양식적 삶을, 잭은 소유 양식적 삶을 지향한다. 무인도의 소년들은 투표를 통해 가장 성숙해 보이고 잘 생긴 랄프를 대장으로 선출하고, 랄프는 성가대원을 이끌던 잭을 이인자로 포섭한다. 랄프는 나름 리더십을 발휘하여 지나가는 배들에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불을 피우자고 제안한다. 소년들은 피기의 안경을 햇빛에 반사해 불을 피운다. 그러나 불은 잘못하여 정글까지 퍼지게 된다. 소년들은 심기일전하여 오두막과 봉화를 짓는다. 잭은 열심히 무인도를 탈출하려 애쓴다. 한편 잭은 돼지 잡는데 온 신경을 쓴다. 하지만 해변에 피운 불을 감독하는 임무를 소홀히 한다. 지나가던 배가 구조 신호를 못보고 지나치게 만든다. 그 일로 랄프와 잭의 사이가 벌어져 갈등이 시작된다. 한편 소년들은 산 위에서 짐승을 보았다는 악몽을 꾼다고 호소했다. 랄프와 잭은 산을 수색한다. 랄프 일행이 짐승의 그림자를 보고 기겁한다. 서둘러 무리에서 돌아온 후 잭이 랄프는 겁쟁이라며 놀린다. 이어 새로운 대장을 뽑자고 제안한다. 이후 무리는 분열한다. 잭은 돼지 사냥을 통해 얻은 고기를 미끼로 랄프 편에 선 소년들을 빼내오기 시작한다. 잭의 무리들은 야만인들처럼 얼굴에 돼지피를 칠하고 창을 들고 불 주변을 도는 광기어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소년들은 이에 동조한다. 한편 사이먼은 무리에서 벗어나 홀로 정글 깊숙이 탐험한다. 그러다가 산언덕에서 조종사의 썩은 시체와 낙하산이 바위에 매달려 있는 기괴한 형상을 목격하게 된다. 공포로 넋이 나간 상태에서 환상을 보게 된 사이먼. 그 앞에 파리대왕이 나타나 인간은 절대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며 비웃는다. 잭은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한다. 랄프 일행을 습격한다. 피기의 안경을 훔친다. 이 일을 계기로 서로 싸우게 된다. 결국 피기가 절벽으로 떨어진다. 홀로 남겨진 랄프는 잭의 일행에게 쫓기게 된다. 잭은 랄프를 잡기 위해 섬 전체에 불을 지른다. 섬을 덮친 대화재를 목격한 해군이 섬에 상륙한다. 무인도의 소년들과 조우하게 된다. 모두가 오열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작가는 제 1, 2차 세계대전에서, 전 인류의 역사를 통해 목격한 인간의 숨겨진 사악한 내면을 소년들이 조금씩 야만인같이 변질되어 가는 과정으로 묘사했다.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파리대왕’은 막연한 공포, 내재된 익명성을 상징한다. 인간의 생존 욕구가 인간을 가장 쉽게 타락시키는 심리적 기제임을 고발하는 것일 수 있다. 실제 역사에서도 전쟁이나 학살을 벌인 지도자들이 가장 강력하게 내세우는 논리도 다름 아닌 생존이다. 생존 본능이 양심을 누르는 순간부터 악은 그 본능을 외부로 표출하기 시작한다. 즉 범죄를 용인하는 사회가 펼쳐진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주역』에서는 ‘진민육덕(振民育德)’이라 했다. 진민(振民)은 사회적 사업, 그러니까 구제사업이다. 육덕(育德)은 개인적 내면의 진실을 쌓는 사업이다. 진민은 외적인 것, 육덕은 내적인 것을 함께 해 나가는 것만이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썩어야 혁명이 일어난다. 일이 생긴다. 혁명이 일어나야 일시에 새롭게 바뀐다. 총이나 칼로 일어난 혁명은 부질없다. 인간의 의식이 변화되는 혁명이라야 한다. 그래야 그 혁명이 오래간다. 그렇기 때문에 ‘진민육덕’이다. 외부적으로 대대적인 구제사업을 추진하고, 내부적으로 개인들의 의식이 변화되도록 힘써야 한다. 산풍고의 ‘고(蠱)’라는 글자는 ‘고혹’이라는 단어와 같이 ‘너무 아름답고 매력적이어서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든다’는 의미다. 마치 요즘의 마약처럼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게 만드는 독충이다. 그릇에 독충이 세 마리나 들어가 있다. 그릇에 밥을 담아 먹는데, 그 독충도 함께 먹는다. 병에 걸리거나 몽환적인 분위기에 빠지게 된다. 마약을 먹었을 때 느껴지는 증상과 유사하다. 이런 유혹에 빠지면 파괴, 저주, 혼란, 무질서가 득세하여 썩어 문드러져야 끝이 난다.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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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의 클래식 스토리] 클래식 음악엔 초현실주의가 있을까?
- [교육연합신문=전미경 칼럼] 얼마 전 초현실주의 전시를 하나 보고 왔는데 여러 미술 작품들이 방마다 전시되어 있고, 그에 어울리는 음악들이 정말 다양하게 나오는데 참으로 좋았다. 그런데 그 전시에서 흘러나오던 음악들은 유명한 현대 작곡가들의 음악이었는데, 그 음악들도 초현실주의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질문한다면, 그건 아니고 현대 음악을 적절하게 각 미술 작품마다 잘 쓴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궁금해지는 것, 클래식 음악엔 초현실주의 음악이 없을까? 초현실주의라는 것은 인간의 무의식이나 꿈의 세계를 흘러가는 대로 표현해내는 걸 지향하는 20세기의 문학, 예술 사조이다. 이미 미술이나 영화, 문학 등 에서는 많은 작품들이 있고, 앞으로도 많이 나올 것 같다. 그런데 클래식 음악은 상당히 수학적이고 이성적인 학문이다. 그래서 과거 소크라테스 시대에는 음악가가 과학자이며 수학자이고 천문학자였던 것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봐도 수학을 잘하는 학생은 음악도 잘한다. 물론 음악이라는 것이 그것만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성적이고 수학적인 면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초현실주의 음악을 만들려면 조성을 파괴하고, 악기의 존재 자체를 위협받아야 하며, 정통적인 연주법을 부정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것이다. 물론 20세기 이후에 우리가 현대 음악이라고 부르는 음악들엔 다양한 시도가 있기는 하다. 기존의 형식을 탈피한 조성, 무대에서 악기를 부수기도 하며 심지어 존 케이지라는 작곡가의 피아노 곡 <4분 33초>라는 작품은 연주자가 피아노 앞에 앉아 '4분 33초'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 시간 동안 들리는 모든 소리(관객들의 기침소리나 숨소리, 시계 초침 소리 등)가 음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렇듯 여러 시도가 있긴 하지만 이 또한 또 다른 형식을 갖고 있기에 완전한 형식의 탈피라고는 보기 어렵다. 초현실주의가 지향하는 무의식의 세계나 꿈의 흐름을 그 모든 형식을 파괴하고 표현하기란 사실상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음악적 내용이 무의식의 세계를 그린다거나 꿈의 세계를 노래하는 건 찾아보면 많이 있다. 초현실주의를 얘기할 때 아프리카 미술을 빼놓을 수 없다고 하는데,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미술계에선 수학적이고 이성적인 원근법이 파괴된 아프리카 미술이 관심을 받았다고 한다. 그 당시 아프리카의 노예들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음악, 즉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들의 소울을 따라 자유롭게 노래하는 음악이 서양인들의 음악과 접목되면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흑인 재즈의 시작이 되었다. 재즈뿐만 아니라 팝, 그리고 클래식 음악까지 자유로움이나 꿈을 노래한 음악은 참으로 많은 걸 보면 인간은 구속보단 자유로워야 하는 존재임에 틀림 없는 것 같다. 결국 현실을 부정하고 무한한 꿈을 좇는 초현실주의의 세계도 그런 인간의 의지가 표현된 예술사의 하나일 것이다. 초현실주의 음악을 생각하다 보니 결국 인간의 자유로움 추구, 인간의 꿈으로 귀결된다. 인간은 자유가 없으면 슬퍼지는 동물인가 보다. 하긴 인간뿐만 아니라 생명체에겐 다 자유가 필요하다. 그런 우리에게 코로나19라는 구속 아닌 구속의 시간들로 자유가 제한당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우리와 함께할지 모르겠지만 인간이 자유롭고자 하는 의지는 우리의 꿈을 따라 우리의 무의식의 자유로운 흐름을 따라 여러 예술의 형태로 멈추지 않고 표현될 것 같다. 클래식 음악의 영역에서도 비록 초현실주의 음악이라 명칭할 순 없지만 좀 더 형식을 탈피하고 좀 더 자유로우며 좀 더 인간의 욕망과 무의식의 저 깊은 곳까지 자유롭게 표현하는 음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다. ▣ 첼리스트 전미경 ◇ 가천대 관현악과 졸업(첼로전공) ◇ 서울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수석 역임 ◇ 금천 교향악단 부수석 역임 ◇ 의왕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 강동 챔버 오케스트라 단원 ◇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첼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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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의 클래식 스토리] 클래식 음악엔 초현실주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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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나의 삶에 희망을
-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서른 중반이 넘어가면서, 이전에 가져보지 못했던 꿈이 생겼다. 60대에 슈퍼카를 타는 디지털 노마드, 다소 두루뭉실해보이는 꿈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차는 관심 밖의 대상이다. 차는 이동수단으로서의 가치가 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20대에서 30대로 넘어오는 동안, 한 번도 슈퍼카를 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차에 관심이 없다는 게 첫 번째 이유이고, 감가상각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엄청나게 가격이 하락하는 슈퍼카를 타고 다닐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수천억의 재산이 있어도 슈퍼카를 타고 싶진 않다, 하는 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져갔다. 슈퍼카 그 자체에 관심이 생긴다기보다는, 60대에 슈퍼카를 타는 삶이 내게 주는 의미 때문이었다. 젊을 때 크게 성공해서 한평생 재미있게 인생을 사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인생이 항상 그런 식으로 상승곡선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 삶에는 반드시 반등구간이 존재하며, 그 구간을 얼마나 지혜롭게 넘기느냐에 따라 노후의 삶이 큰 폭으로 달라진다. 존경하는 어느 지인은 젊은 시절 크게 사업을 하며 수백억의 자산을 구축했지만, 정치활동을 하는 동안 상당한 부를 잃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지금은 정치권에 입문해서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지만, "나에게 주어진 재물이 아니라면 반드시 내 손을 떠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 3,40대였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누구나 삶의 기준이 있다. 초고속 승진, 좀 더 넓은 아파트, 외제차, 급등하는 주식의 가치 등. 어느 것 하나 나쁠 것 없다. 느린 승진보다는 초고속 승진이 좋고, 좁은 집 보다는 넓은 집이 좋다. 국산 경차보다는 외제차가 좋고, 급락하는 주식보다 급등하는 주식이 더 할 나위 없이 좋다. 문제는 그 해답의 끝이 무엇인지를 아는가 하는 데 있다. 살면서 한번쯤 접해본 철학적,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옳은 것과 바른 것을 구별할 만한 지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추고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삶은 결코 이론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인생에 정확한 목적이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들은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 강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거대한 성과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반면, 그에 못지 않은 허탈감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 철학적 이론이 결코 이렇다 할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한 채 이론으로만 중무장한 사람들에게는 가장 큰 취약점이다. 인생에는 반등이 존재하듯, 초로의 삶에 접어들 때까지 성공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성공에 대한 욕심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질 때마다, 똑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했음에도 훨씬 더 앞서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나의 성공은 60대에 비로소 완성된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각인시키곤 했다. 매일 꾸준히 글을 쓰고, 공동저서와 소설을 집필하고, 현명한 투자가 무엇인지에 대해 공부하며, 어제보다 오늘 더 발전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마음 깊이 느끼고 있다. 그리고 느릿느릿하게 움직이지만, 결코 안일한 태도로 삶을 대하고자 하는 비겁함에서 이 모든 태도가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금 느린 것은 느린 게 아니다. 지금 실패하는 것은 실패가 아니다. 초로에 접어들었을 때, 어느덧 노신사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낄 때, 그 때에도 성장하고 있다면 가장 앞선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 젊으며, 꿈을 꿀 수 있는 나이다. ▣ 전준우 ◇ 작가, 강연가, 책쓰기컨설턴트 ◇ 前국제대안고등학교 영어교사 ◇ [한국자살방지운동본부] ◇ [한국청소년심리상담센터] 채널운영자 ◇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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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나의 삶에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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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만화로 풀어보는 위타위기[爲他爲己]
- [교육연합신문=글.그림 임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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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만화로 풀어보는 위타위기[爲他爲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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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의 클래식 스토리] 코로나19와 우리 인생의 무대
- [교육연합신문=전미경 칼럼] 얼마 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오랜만에 오케스트라 연주를 했다. 작년 2월 신년음악회를 앞두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연주가 무기한 연기된 이후 첫 연주였으니 이게 도대체 얼마만인지... 물론 그 사이 인터넷 중계를 통한 연주는 몇 번 했지만 공식적인 행사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연주하는 연주자도, 그 자리에 나와 음악회를 즐기던 시민들도 다 감격스러웠음은 말이 필요 없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세상에 없던 새로운 존재가 아니다. 지구상엔 수많은 바이러스가 존재하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도 그렇게 이미 존재하던 바이러스라고 한다. 그런데 이 바이러스가 무엇 때문인지 2019년에 갑자가 변이를 일으키며 우리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주고 결국 팬데믹이라는 전 지구적인 사태까지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변이를 일으키고 있다. 무서운 건 이 변이가 또 우리를 언제 팬데믹에 빠뜨릴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 일은 없길 바라지만 말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우리가 겪었던 이런 상황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지금 지구는 인간이 만들어놓은 환경 파괴로 기후변화를 겪고 있으며, 그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들이 끊임없이 생기고 있다. 앞으로 더 무서운 재앙들이 닥친다면 나 같은 연주자는 연주할 수 있는 상황이 없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작년 코로나19 이후 거의 2년 동안 연주 없는 세상에서 살았다. 연주가 삶이고, 거기에서 힘과 에너지를 얻는 연주자에게 연주 없는 삶이란 암흑과 같았다. 암흑 속에서 2년 가까이 헤매고 나니 내 영혼이 엄청 황폐해진 것 같다. 팬데믹 시대는 비단 연주자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였다. 이중적이게도 팬데믹의 덕을 본 직업군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으니 이런 전 지구적인 상황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으리라. 이제는 뉴노멀의 시대라고 한다. 뉴노멀은 표준을 뜻하는 신조어로서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떠오르는 기준을 말한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새로운 신조어들이 많이 생겼는데 그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겠다. 연주자에게도 뉴노멀은 해당된다. 위드코로나라며 많은 부분에서 방역이 완화되고 있긴 하지만 코로나19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백신 접종률이 높아졌지만 코로나 확진자는 계속해서 늘고 있고 위중증자도 늘고 있다. 언제 또다시 모든 것이 정지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얼마 전 오랜만에 다시 시작된 연주 또한 언제 다시 중지 될지 알수 없다. 얼마 전 연주는 야외 연주였는데 뉴노멀 시대의 훌륭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아직은 보완해야 될 숙제들이 많이 있다. 야외 연주는 청중들이 느끼는 것과는 다른 연주자들만의 고충이 여러 가지 있다. 날씨, 바람, 무대 장치, 음향 등등. 연주 날 바람이 많이 불면 악보가 날아가고 그 악보를 날아가지 않게 고정시키기 위해 연주자는 예민해진다. 해외에는 야외 상설 무대가 예전부터 활성화되어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무대도 없다. 무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장소에서 연주하려면 바닥부터 연주자에겐 고난 시작이다. 음악 자체 외에도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은 것이다. 그러니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우리에겐 많이 있다. 인생이라는 큰 무대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역할이 있고,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역할이 없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우리의 역할도 그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이 변화가 빨라도 너무 빨리 다가왔다. 누구나 혼란스럽고 정신이 없겠지만, 아날로그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에게 초특급 디지털 시대는 더더욱 혼란스럽다. 온라인으로 연주를 중계하고 줌으로 학생들을 레슨하고 야외에서 연주회를 하며 뉴노멀 시대의 인생 무대를 만들어 가고 있지만 아직은 모든 것이 불안정하다. 인생은 미완성이라고 했던가. 이 생의 삶은 누구에게나 처음이라 다 불안하고 두려운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 삶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불안에만 빠져 있을 순 없다. 무대가 새롭게 변했다면 우리의 역할도 그에 맞게 새롭게 변화시키면 된다. 변화를 위해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배우며 생각해야 할 것이다. 누구나 갖고 있는 삶의 무대. 그 위에서 자신의 역할을 멋지게 펼치기 위해 지치지 마시길. 아날로그 연주자가 파이팅을 외쳐 본다. ▣ 첼리스트 전미경 ◇ 가천대 관현악과 졸업(첼로전공) ◇ 서울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수석 역임 ◇ 금천 교향악단 부수석 역임 ◇ 의왕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 강동 챔버 오케스트라 단원 ◇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첼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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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의 클래식 스토리] 코로나19와 우리 인생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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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선별적 인간관계
-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언젠가 CEO클럽 모임에서 만난 분이 계신다. 공과계열에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수준이 높은 사립대학교 교수님으로, 젊고 유쾌한 분이었다. 모임에 참석한 분들과 한참 대화를 나누던 중, 그 교수님이 나에게 하신 말씀이 있다. "경청을 정말 잘하시네요." 최근에 행사를 준비하는 모임에서 알게 된 또다른 분이 계신다.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평범한 분이었다. 그 분은 술자리에서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원래 말이 그렇게 없어요?" 어떤 말을 하는가보다 중요한 것이 어떻게 말하느냐 하는 것이고,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이 어떤 질문을 하는가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말은 누구나 잘 한다. 어릴 때부터 배우기 때문이다. 질문은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배울 수 없다. 질문을 잘 하는 사람이 드문 이유다. 상대방을 만날 때,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를 유심히 지켜보라. 상대방이 가진 마음의 깊이와 품격은 말보다 질문에 담겨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론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중요하다.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툰 사람들은 곧잘 우울증에 걸리거나, 위험한 상황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외에 말을 많이 해서 이득을 보는 경우는 홈쇼핑과 세일즈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상대방의 질문에 집중하면, 훨씬 더 깊이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인간관계를 기준으로 한 인연에도 깊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3개월 인연. 3년 인연. 30년 인연. 최근 들어 만나고 있는 분들이 계신다. 그분들은 모두 나보다 20세 이상 많은 분들이고, 사회적으로 큰 명성을 쌓은 분들이다. 나는 그 분들처럼 성공하지도, 인생의 많은 풍파를 만나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 분들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 분들이 세상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이 내 인생에도 스며들어서 가치있는 일에 몰두하고자 하는 마음의 그릇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분들과의 인연은 대개 5년이 넘어간다. 함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사업상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내 주위에 있다. 나이대는 모두 다르지만, 그들은 내 친구들이다. 나이가 많은 친구, 나이가 어린 친구, 비슷한 또래의 친구도 있다. 하지만 진짜 친구들은 주로 책에 있다. 진짜 친구들 중에는 오래 전에 죽은 친구도 있고, 아직 살아서 전 세계에 훌륭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친구도 있다. 지그 지글러, 피터 드러커, 카네기, 나폴레온 힐, 투퀴디데스, 나폴레옹, 브라이언 트레이시, 찰스 디킨스, 로버트 치알디니, 호메로스, 예수 그리스도,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내 진짜 친구들이다. 그들은 내게 용기를 주고, 자신감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나의 실수와 연약함을 너그럽게 포용해준다. 그 속에서 상당히 큰 힘과 믿음을 얻는다. 그들과의 인연은 10년, 20년이 아닌 100년, 200년, 심지어 수천년의 역사적 괴리를 품고 있다. 내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들인 셈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누가 만든 말인지는 모르지만, 참 훌륭한 표현이라는 생각을 했다. 짧은 인생에 예술적 가치를 더할 수 있는 사람들을 주변에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비난하고 힐난하며 수군수군하는 사람들, 돈관계가 깨끗하지 않은 사람들, 술담배를 권하는 사람들, 말이 많아 탈도 많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많다. 그들과 가까이하며 인생을 허비하고 싶은가, 아니면 훌륭한 진리와 가치를 추구하며 의미있는 일에 시간을 쏟는 사람들과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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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선별적 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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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소망은 인내로부터 나온다
-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지난 몇 년 간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쌀이 없어서 밥을 먹지 못할 때도 있었다. 실패가 두려워 많은 책을 읽었다. 대부분 자기 계발서, 교육서적, 인문학 서적이었다. 적게는 하루에 1권, 많게는 하루에 5, 6권 이상을 꾸준히 3, 4년간 읽었다. 시간이 흐른 뒤 달라진 게 몇 가지 있었다. 작가가 되었다는 것과, 깊이가 있는 독서를 즐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뒤, 최근에는 다양한 부류의 문학작품들을 접하고 있다. 찰스 디킨스는 위대한 작가다. 그의 작품을 조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금방 알 수 있다. 흔히 이야기하는 위대하다는 단어는 좋다, 괜찮다, 흥미롭다와 전혀 다른 부류의 단어다. 그가 쓴 글은 매우 지적이고, 세밀하며, 감동적이다. 훌륭한 글을 쓰는 위대한 작가였으며, 빅토리아 시대가 낳은 천재 중의 천재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찰스 디킨스가 25살에 집필한 자전적 장편소설이다.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의 주인공인 올리버 트위스트는 구빈원(고아원)에서 태어나 불우한 유년시절을 거쳤으나, 따뜻한 심성과 순수한 영혼을 가진 소년이다. 찰스 디킨스의 어린 시절 경험이 녹아 있는 올리버 트위스트는 어떤 역경이나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그리고 따뜻한 영혼을 가진 아름다운 소년상을 창조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 모든 스토리의 중심에는 빅토리아 시대의 시대적 배경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극 중에 등장하는 극악무도한 인물들의 행태와 언변은 당시 사회분위기를 재조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21세기에 접어든 지금이야 사회적 제도가 잘 정리되어 있어서 굶어 죽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고, 경제적 빈곤이라고 해봤자 남들보다 조금 못 사는 정도의 수준이겠지만, 찰스 디킨스가 <올리버 트위스트>를 집필하던 1830년대는 산업사회로 변화하면서 급격한 도시화의 부작용으로 인해 상당한 빈민층이 양성되던 시기였다. 그리고 도덕적 엄숙주의(엄격주의 혹은 리고리즘)에 의해 성실과 품위, 검소함의 미덕을 자랑하는 반면, 인간 내면에 숨겨진 본질적인 추악함과 어우러져 도덕적 엄숙주의 그 자체가 결코 인간의 성숙함으로 미화될 수 없음을 작품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는 나에게 올리버 트위스트가 주는 소망은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그 무엇이었다. "삶과 죽음은 만인에게 똑같이 부과된 엄숙한 환희이며 가혹한 형벌임을 과연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일까." -대망 1권 119p, 야마오카 소하치, 동서문화사- 인간은 똑같은 육체와 정신을 갖고 태어나지만, 누구에게는 환희이며 누구에게는 가혹한 형벌과도 같다. 한적한 마을, 소설 속 인물의 가난한 탄생으로부터 첫 문장이 시작되는 소설이지만 결국은 시대를 반영하는 작품이자 찰스 디킨스 본인의 유년시절의 경험으로 말미암았듯이, 모든 사람에게 인생이라는 것이 즐거움이나 행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위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실에 손을 얹고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었던 어린 영혼의 순수함을 통해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한 줄기 빛을 비춰주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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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소망은 인내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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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만화로 풀어보는 당구풍월[堂狗風月]
- [교육연합신문=글.그림 임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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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만화로 풀어보는 당구풍월[堂狗風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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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예방 칼럼] 가톨릭 생명존중, 사랑에 대한 가르침-⑤
- [교육연합신문=김대선 기고] 지난 3월 25일, ‘삶이오’ 생명존중의 날을 선포하였다. 한국생명운동연대와 공동주관으로 종교인 상생문화 확산을 위한 생명살리기 교육사업을 불교,기독교,천주교,유교,천도교,민족종교,원불교 7대종단과 생명문화학회 등이 참여해 10차례에 걸쳐 릴레이식으로 10월까지 비대면, 유튜브로 진행됐다. 각 종단의 생명관과 생명윤리와 사상을 통하여 자살예방을 위한 인식 개선에 기여해 왔다. 특히 16여년간 OECD 1위 자살국의 오명을 벗어나고 죽음으로 희생되는 자살률을 낮추는 노력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톨릭 생명존중, 사랑에 대한 가르침인 교리를 인용코자 한다. 가톨릭교회는 현시대의 생명경시풍조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다. 성경은 세상 창조부터 끝까지 생명의 주인은 인간이 아닌 하느님이심을 강조하며, 어떤 경우에도 그것이 본인 자신일지라도 인간생명을 직접 파괴할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인간이 인간 자신의 생명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느냐 라는 것은 쉽지 않은 윤리적 가치의 문제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생명의 복음」은 “생명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임무이며 의무”라고 규정한다. 또한 “인간 생명은 모든 단계, 모든 상황 속에서 신성하고 침해할 수 없는 것이므로 편견과 차별은 용납될 수 없다. 그것은 분리할 수 없는 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에 관심을 보여야 한다. 이 모든 일에는 인내심 있고 두려움 없는 교육활동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며 생명의식을 강조한다. 교회는 인간의 고통과 병고, 곤경과 허물에 직면하여 하느님께서 예수를 통해 이 세상에 오셨음을 천명한다. 하느님 당신의 자기이해에 관한 물음에 예수께서는 “내가 온 것은 그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0,10)”라 답하셨다.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 각자는 예수님을 뒤따름(Imitatio Christi)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기 위해, 특히 고통과 죽음의 세계서 충만한 생명의 시작을 증거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충만한 삶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기여한다. 가톨릭 신앙에서 하느님은 생명의 주인이시기에 인간이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즉,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죽일 권리가 없고 자기 자신의 생명을 파괴할 수도 없다. 인간의 생명을 희생의 제물로 드리는 것을 금지하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생명을 보호하도록 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연적인 생명을 뛰어 넘는 참 생명을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는 것인데 이 변화는 단순한 행동의 변화가 아닌 신분의 변화이자 존재론적 변화이다. 즉 죽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모든 계명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하는데 이것은 적어도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인간의 생명이 하느님께 방향 정위가 되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의 생명과 결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이 타락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 사람이 되고 의로움을 인정받을 때에 그 생명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곧 생명을 경외하는 것이 된다. 이 경외는 인간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된 것이다. 이렇듯 가톨릭교회는 자살을 명백한 죄로 보지만 동시에 자살자에 대해선 인간이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다”(히브 4,13)라는 말씀처럼 오직 하느님만이 죽은 사람을 심판할 수 있고, 그분만이 한 인간을 그 절망적인 행위로 몰아넣은 이유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교리서’에서도 “교회는 자기 생명을 끊어 버린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만이 아시는 길을 통해서 그들에게 구원에 필요한 회개의 기회를 주실 수 있고”,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의 영원한 구원에 대해 절망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으로 인해 모두 구원이라는 영원한 행복에 초대받았다. 하지만 “상처 입은 인간에게는 하느님의 구원이 필요하다.” 인간이 처한 상황 곧 “물질적 궁핍, 부당한 억압, 육체적 정신적 질병, 끝으로 죽음 등과 같은 다양한 인간의 비참”은 인간이 나약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구원의 필요성을 드러낸다. 인간의 비참은 그리스도의 ‘연민’을 일으켰고, 그리스도는 이 비참을 함께 했다. 그리스도는 최후의 심판을 이야기하며,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고 말씀하시며 가장 작은 이들을 당신과 동일시했다. 그러므로 ‘가톨릭교회교리서’가 표명한 대로 “인간의 비참에 짓눌리는 사람들은 교회의 우선적 사랑을 받는 대상이 된다.” 자살의 위협을 받는 이들 또한 바로 ‘인간의 비참에 짓눌리는 사람’이다. 가톨릭은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생명나눔센터, 각교구마다 생명위원회 등을 운영, ‘생명의 복음’을 앞장서 실천하고 있어 매우 고무적이다. 종교의 본령인 생명은 영역이 따로 없다. 자살은 사회적 책임이므로 모두가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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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예방 칼럼] 가톨릭 생명존중, 사랑에 대한 가르침-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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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용기를 주는 사람이란 무엇인가
-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얼마 전 창업지원센터를 방문했다. 저서 출간에 관련한 컨설팅을 하고 있고, 제조업 분야에서 창업을 구상 중인 사업이 하나 있어서 상담을 받고 싶었다. 짧게 생각했던 상담은 1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개중에는 아는 것도 있고 모르는 것도 있었다. 그렇게 상담을 마치고 나오면서 든 생각은 한 가지였다. 그들은 용기를 주는 사람들은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창업은 정보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주워들은 정보만 갖고 창업을 시도하면 오래가지 않아서 실패의 쓴맛을 본다. 창업은 정보도 중요하지만 1%의 가능성을 100%로 끌어올려야 하는 자신감, 확신, 용기, 추진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창업을 해본 사람들은 안다. 반면에 창업지원센터에서 근무하는 상담자들은 모두 직장인이다. 직장인의 뇌구조를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업가의 뇌를 가진 예비창업자들, 혹은 초중장기 창업자들의 뇌구조와는 확연히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갖고 있다. 창업을 통해 성과를 내 본 사람들은 아니기 때문에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물론 개인적인 업무에 관련된 경험을 토대로 어느 조직의 내부 문화를 판단하기엔 어폐가 있고, 오류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만난 사람들(직장인의 뇌구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대다수 비슷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최근에 본 티비 프로그램에서는 게임중독에 빠진 중학생 아들과 자해를 일삼는 초등학생 아들을 키우는 부모님의 이야기가 나왔다. 첫째 아들은 게임을 하지 말라고 야단치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욕을 하고, 둘째 아들은 야단치는 부모님 앞에서 땅에 머리를 찧는다. 교육계에서 오랫동안 종사해온 나는, 결코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았다. 따뜻한 사랑이 오가야 하는 가족이, 희망과 소망을 나누어야 하는 식사시간이, 아이들에겐 고통의 시간이 되었으리라. 때때로 가족은 용기를 주는 사람들이 아니라, 슬픔과 실망을 안겨주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나는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산다. 특히 아내와 아들에게서 많은 용기를 얻는다. 같은 마인드로 해외봉사활동을 다녀온 아내와 통하는 게 많고, 신앙으로 엮어진 마음의 힘으로 용기를 북돋워주는 게 익숙하다. 청소년 육성에 관련한 일을 오랫동안 해오면서 대화를 자주 하고, 스킨십과 마음의 표현을 하는 게 편하다. 아내, 그리고 아들과 함께 울고 웃는 시간이 내겐 더할 나위 없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다. 가끔은 이런 행복이 내게 주어진 당연한 선물인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당연하지 않은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생에 당연한 것은 없다. 햇빛, 공기, 깨끗한 물, 건강한 영혼은 은혜의 세계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선택이며, 또한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스물다섯 살에 나는 아프리카에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보낸 1년이란 시간은 내 인생의 상당 부분을 바꿔놓았다. 14년이 지난 지금도 아프리카를 생각하면 마음이 뜨겁다. 사그라들지 않는 향수병에 걸린 것이다. 내 인생에 있어 운명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때로는 운명과도 같은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대학 입시준비일 수도 있고, 취업일수도 있다. 창업, 결혼, 이민 등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 모든 것들이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모습이 달라지게 된다, 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내가 용기를 주는 사람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들의 조언에 나의 확신을 더해서 길을 정했다. 그리고 대부분 실패하지 않았다. 운명을 개척해야 하는 순간이 올 때마다, 내게 용기와 확신을 심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 길은 좁고 험난하다. 어려움과 눈물이 가득한 곳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잘못된 길이 아니다. 틀리지 않는 길이다, 라고 나는 이야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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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용기를 주는 사람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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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만화로 풀어보는 효자애일[孝子愛日]
- [교육연합신문=글.그림 임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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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만화로 풀어보는 효자애일[孝子愛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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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위대한 인간, 위대한 영혼
-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수년 전 학원에서 근무할 때부터 알고 지내던 여학생이 있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그 여학생은 어느덧 중3이 되었고, 고교 입시를 앞두고 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밝은 얼굴로 지내던 그 아이가 기특하면서도 가여워서 종종 연락을 주고 받곤 했다. 오늘은 이런 메시지가 왔다. “선생님, 저 대학 안가고 생명과학고 갈려고 해요. 아직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도 없고, 이렇다 할 꿈도 없거든요.” 나는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이야기하며, 대학은 언제든지 갈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교수가 되고 싶어서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단다.”하고 덧붙였다. 최근 들어 [선생님]이라는 제목으로 장편소설을 쓰고 있다. 오랫동안 선생노릇을 해왔기에 보고 들은 것도 있고, 50년 뒤에도 학생들에게 깊은 영감을 줄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었기에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소설을 쓰면서 완벽한, 훌륭한 인간상을 가진 인물들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다. 도서, 영화, 주변인물 분석 등등 다양한 요소를 통해 사람들을 관찰하고, 특성을 공부하고, 사람을 얻고 잃는 부분에서의 차이점을 관찰한다. 그런 과정들을 통해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망막한 열정과 사랑은 우리에게 희생과 올바른 선택의 가치를 알게 한다는 점이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과 같은 결정적인 순간에 있어서, 인간은 누구나 나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순수한 열정은 인간으로 하여금 올바른 선택을 하게 하고, 그 선택으로 인해 내가 받는 고통과 인내의 시간으로 인해 삶의 상당수가 하릴없이 무너져 내린다고 해도, 기꺼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승화할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을 만든다. 부모, 훌륭한 교사, 훌륭한 사업가, 이들이 진정 위대한 인간상인 이유다. 어른이 되었다고 느껴질 무렵부터, 나는 내가 어떤 면에서 부박한 영혼을 가진 인물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동시에, 훌륭한 가치관을 가진 탁월한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시대적 배경, 언어, 문화, 모든 것이 다르지만, 훌륭한 품격을 가진 인물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존경을 얻고, 배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삶 속에서 우리는 그런 인물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아브라함 링컨, 조지 워싱턴, 케네디, 버락 오바마와 같은 세계의 대통령들 뿐만 아니라 간디, 테레사 수녀와 같은 종교지도자, 김구 선생, 도산 안창호, 윤봉길 의사와 같은 역사적 인물들을 통해서 위대한 인간상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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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위대한 인간, 위대한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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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만화로 풀어보는 효자애일[孝子愛日]
- [교육연합신문=글.그림 임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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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만화로 풀어보는 효자애일[孝子愛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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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아몬드, 어른을 위한 소설 최근에 [아몬드] 라는 제목의 소설을 읽었다. 전 세계 12개국에 출간된 초대형 베스트셀러다. 소설 속 등장인물은 감정표현불능증이라는 장애를 갖고 있는 소년이다. 우연히 어렵게 자란 친구, 곤이를 만났고, 곤이와의 관계 속에서 사랑, 우정, 행복과 같은 단어를 찾아간다. 나와는 전혀 반대의 성향을 갖고 있고,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살아온 아이와 친구가 되는 이야기가 책으로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감정표현불능증이라는 단어도 생소했거니와 스토리 전개가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랬기에 제법 유명한 롱텀Long-Term베스트셀러 작품이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 속 주인공의 친구, 곤이는 평생을 어렵게 산 아이였다. 놀이공원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뒤 소년원에서 13년을 산 곤이는 거친 아이였다. 소설 속 주인공은 신체적 결함으로 인해 감정을 표현하는 게 서툴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장면, 상황, 그 앞에서 두려움이 없다. 그래서 표현하는 것도 서툴다. 주변 사람들의 오해를 받기도 한다. 감정표현불능증, 존재하기나 하는 증세일까? 놀랍게도 세상은 감정표현불능증에 취해 있는 사람을 능력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한다. 어른이 되고 나니 감정표현불능증에 취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소중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마음을 조율하는 사람도 있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숨기는 것이 좋은 것인양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때로는 안타까운 죽음을 선택하는가? 나는 감정이 풍부한 편이다. 뮤지컬 배우로 활동한 경험이 있기에, 표정연기도 곧잘 따라한다. 아내도 나처럼 감정이 풍부한데다 사교성까지 좋다. 아내랑 둘이 있으면 서로 웃기기 바빠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나는 아내보다 훨씬 더 감정이 풍부하다. 슬픈 소설을 읽으면 눈물을 흘리고, 아들의 손을 잡고 길을 걷는 아버지의 손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허해진다. 정작 그들은 나를 모르고, 나도 그들을 처음 보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감정에 메마른 사람들을 보면 잘 이해가 안된다. 감동적인 장면에서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는 모습이 나로서는 퍽 어색하다. 결혼식을 준비할 때 일이다. 아내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고 괜히 눈물이 났다. 참 예쁘다, 하는 마음이 첫번째였다. 더 좋은 웨딩드레스와 예식장을 준비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미안함이 두번째였다. 그럼에도 불평 한마디 없이 "나 예뻐? 나 예뻐?" 하고 연신 물어보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 세번째였다. 어느덧 결혼 9년차에 접어든다. 26살의 아내는 34살이 되었고 30살의 나는 38살이 되었지만, 우리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대학생커플, 혹은 연인같다는 소리를 9년째 듣고 산다. 어려보이는 외모를 가진 사람은 세상에 널렸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고, 사랑을 표현하고,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면서 온갖 부정적인 요소들을 최대한 제거하며 살았다. 자주 웃고, 자주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부부생활을 영위해왔다. 동갑내기 부부들에 비해 젊게 살았다고 자부했고, 그 결과가 외모로도 드러났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우리에게도 아들이 있다. 몇달만 있으면 3살이 되는 아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아들이 자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인생의 끝은 어디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아들이 어른이 되어 나처럼 아버지가 될 때까지만 건강히 살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런 아들이 22개월에 접어들었다. 싫을 때는 고개를 강하게 저으면서 싫다고 표현하고, 좋은 건 좋다고 표현도 한다. 옹알이에 불과하지만, 종종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따끔하게 혼을 내기도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실수에 대해서 꾸짖고 야단을 쳤을 때 잘못된 오해를 하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우리 모두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고, 연약한 인간이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부모가 되고, 인도자가 되며, 따뜻한 마음을 흘려주는 소망의 메세지가 된다. 그 인도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얼마나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흘려주느냐에 달려있다고 믿는다. 작고 예쁜 아가씨였던 아내는 엄마가 되었다. 아들을 볼 때마다 예쁘다고 이야기한다. 이 아기가 아니었다면 내 삶의 의미가 사라졌을 것이라고도 이야기한다. 평생 젊고 예쁠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아내는 엄마가 되어 있고, 엄마로서의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우리는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것들 중에 가장 크고 놀라운 것이 가족의 행복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 행복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소망을 차분하게, 따뜻함을 담아 전달할 때 비로소 극대화될 수 있다. 우리가 전하는 행복과 소망이 아들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그 행복이 아들의 마음에, 또 아들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에 즐거움으로 남게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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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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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예방 칼럼] 불교의 생명관과 자살인식 개선-④
- [교육연합신문=김대선 기고] 지난 3월 25일, ‘삶이오’ 생명존중의 날을 선포한 후 생명운동포럼 첫 번째 순서로 지난 5월 7일 ‘불교의 자살 인식개선 사업 방안’에 대한 세미나를 실시한 바 있다. 이번 사업은 한국생명운동연대와 공동 주관으로 종교인 상생문화 확산을 위한 생명살리기 교육사업으로 불교, 기독교, 천주교, 유교, 천도교, 민족종교, 원불교 등 7대 종단, 생명문화학회 등이 참여하여 10차례에 걸쳐 릴레이 식으로 10월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이러한 사업을 통하여 각 종단의 생명관과 생명을 기리는 교리와 사상을 사회에 전파하고, 자살예방을 위한 죽음 인식 개선 활동을 통해 지난 15여 년 간 OECD 1위 자살국의 오명을 벗어나고 내몰린 죽음으로 희생되는 자살을 줄이는 동력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현대인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세계관(世界觀)은 크게 영혼불멸(靈魂不滅)을 믿는 종교적 생명관과 영혼은 물질의 소산이라는 과학적 생명관이다. 이 두 생명관은 끓임 없이 많은 사회문제를 일으키면서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인간 중심의 생명관에 기인한다. 과학은 인간의 복리를 목적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과학은 일부 탐욕스러운 자본과 결합하여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켰으며, 생태계를 파괴하여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게 하고 있다. 게다가 근래에는 가축을 복제하는 기술까지 개발했고, 로봇 등 인간의 복제를 가능케 함으로써 인간 생명의 존엄과 가치를 손상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인간의 생명만 소중하다는 생각은 그것이 과학이건 종교이건 결국 인간 생명의 존엄의 근거를 상실하는 것이다. 이에 불교계는 진정한 생명의 존엄과 가치의 근거한 사상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윤리적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자살예방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불교의 생명관은 매우 심오하여 해량(解量)하기 어렵다. 불교의 화엄경에 의하면 넓게는 우주 전체가 한 생명체이고, 그 한 생명체가 전 우주라 하며 전 우주가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온 우주의 생명체에는 형상이 있는 생명체, 형상이 없는 생명체도 있으며 생(生)과 식(識)이 없는 생명체도 있다. 물질 자체도 생명이며 정신 자체도 생명체이며 동시에 물질과 정신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것도 생명체이다. 이와 같이 우주 안에 있는 생명체는 매우 다양하고 심오하여 인간의 육안으로는 모두 다 관찰할 수 없으며 청정하고 수승(殊勝)한 부처님의 지혜에 의해서만 관찰될 수 있다고 했다. 불교는 생명을 연기설로도 설명한다. 불교에서는 생명이 머무는 세계를 유정세간, 기세간, 지정각세간으로 나눈다. 기세간은 유정(有情)상태의 생명체(중생; 衆生)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삼계(三界)로 이루어진다. 욕계는 일체 유정이 탐욕, 음욕 등의 근본적인 욕망으로 인하여 성립되는 세계이다. 색계는 욕계를 초래하는 그러한 근본 욕심은 없어졌지만 아직은 더 이상 욕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 수승한 물질이 남아있는 세계이다. 무색계는 수승한 물질의 존재도 없는 정신 상태의 세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붓다는 우리가 생명을 이야기하면서 물질인 육신과 영혼을 나누어 생명을 규정하려는 생각 자체를 비판하고 있다. 붓다에 의하면 육신이나 영혼은 ‘12연기설’인 『유전문(流轉門)』”과 『환멸문(還滅門)』이 있다 하였다. 『유전문』에서는 생사가 나타나지만 『환멸문』에서는 생사가 사라진다. 영혼이 있는가 없는가라는 질문은 무명에 휩싸인 중생들이 생명의 실상을 보지 못하고 생사를 느끼면서 만들어 낸 허구인 것이다. 『잡아함 (39)경』에서 ‘한 알의 볍씨가 인연을 만나면 그 볍씨는 사라져도 거기에서 뿌리, 줄기, 가지, 잎, 볍씨가 나오듯이 식온(識蘊)이 새로운 인연을 만나면 새로운 오온(五蘊)으로 상속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속에 상주불변(常住不變)하는 영혼은 없으며 이러한 생명의 상속(相續)은 업보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생명은 이러한 업보의 현상인 것이다. 우리가 육신이나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본질은 업보인 셈이다. 불교의 연기설은 이러한 ‘무아업보설’을 의미한다. 무아의 논리적 근거가 되는 연기란 업보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불교에서는 생명의 본질을 육체나 영혼과 같은 존재로 보지 않고 업으로 본다. 이러한 업설의 생명관에서 보면 생명의 존엄은 업(業)의 결과 즉 보(報)로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는 자살은 죄이다. 자살의 업은 윤회한다’하였듯이 누구나 12단계를 거치는 인연을 따라 연기하며 영원불멸하므로 절대적으로 생명은 불멸의 고귀성을 가진다 하겠다. 불교계가 생명존중에 목적을 두고 ‘법회, 의식(儀式)을 통한 생명살림 켐페인, 생명지킴이 활동, 자살예방 학술대회, 유족 자조 모임 운영, 자살 유가족 템플스테이, 자살 인식개선 프로그램 운영, 성직자 자살 인식개선 교육, 자살 예방교육 강사양성 교육, 자살예방사업 예산 증액 촉구대회’ 등을 통하여 자살예방운동을 지속하고 있음은 매우 고무적이다. 불교의 250계율에서 가장 먼저 살생을 하지 말라 하셨듯이 불교의 생명관은 항상 우리들을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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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예방 칼럼] 불교의 생명관과 자살인식 개선-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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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기
-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최근 중요한 행사를 가졌다. 각종 기업의 회장들이 모이고, 굵직굵직한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반면에 행사 진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매끄럽지 않고 불편하기만 했다. 행사 내내 틀에 박힌 듯한 사람들의 일처리 방식, 형식적이면서 진실되지 못한 서로간의 인사, 격식에 치중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계속 입이 삐쭉 나와있었고, 혹시나 일이 틀어지는 게 없는지 연신 눈을 이리저리 돌리면서도 불평스러운 마음을 지우지 못했다. 왜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가, 하는 불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었다. 행사에 참석한 분들은 나름대로 배운 분들이었고, 삶 속에서 다양한 경험치를 가진 분들이었다. 내가 어떻게 행동하든지 그들은 나의 말과 행동을 볼 것이고, 그것은 곧 나에 대한 평가가 될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사람들은 상대방을 평가할 때 상당히 정확한 잣대를 갖고 저울질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잘하는 게 있다. 남들이 가지지 못한 탁월한 능력도 있다. 그리고 그런 능력치들을 통해 다양한 기회들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나도 부족한 게 있다. 잘하는 것보다 부족함이 더 많은 사람이다. 그 부족함을 관리하지 않으면, 결국 어떤 자리에서든지 사람을 잃게 되기 마련이다. 내가 잘하는 일을 잘해낸 경우도 있다. 그러나 내가 잘해낼 수 있는 자리에서도 잘하지 못하고 실패하고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아서 발생되는 결과들이었다. 혼자 잘난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말이다. 지금보다 젊은 20대 시절, 뭐든지 하면 될 것 같다고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제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세상을 향해 포효하고 싶던 24살 무렵이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그런 시기였다. 그 시기에 우연한 계기로, 나는 내가 언제든지 틀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뒤로 내 삶은 상당히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했다. 뮤지컬 배우로, 사업가로, 회사원으로, 작가로, 강사로, 컨설턴트로, 소설가로. 그 모든 과정 속에는 마음껏 실패할 기회, 마음껏 나의 부족함을 발견할 기회가 있었다. 물론 당시엔 기회로 보여지지 않았고, 쓰라린 상처가 되었을 따름이다. 학창시절엔 많은 실패를 경험해보는 것만큼 훌륭한 기회가 없다. 늦잠을 자는 것도 기회고, 원하던 대학에서 낙방하는 것도 좋은 기회다. 실패라는 거름이 얼마나 훌륭한 능력치가 되는지 살면서 터늑하게 되자, 실패는 놀라우리만치 아름다운 거름으로, 추억으로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 문득, 내일은 오늘보다 더 실패해보자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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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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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만화로 풀어보는 둔필승총[鈍筆勝聰]
- [교육연합신문=글.그림 임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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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만화로 풀어보는 둔필승총[鈍筆勝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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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그리운 나의 10대 시절
-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나는 교육이 가진 가치에 대해 남다른 철학을 갖고 있다. 교육기관에서 오랫동안 근무해온 터라 적잖은 영향을 받은 것도 있지만, 단 한 번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울적한 10대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왕따, 학교폭력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고 얽힐 만한 일도 없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낮은 자존감을 이길 수 있는 힘, 하루에도 수백 번씩 마음을 괴롭히는 부정적인 생각을 처리할 만한 마음의 힘이 없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글을 쓰고 사업을 하고 있는 지금, 나는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마음의 훈련을 통해, 나는 다양한 방면에서의 교육자로서 삶을 살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이가 들면서 제법 어른 소리를 듣다 보니, 안타깝게 흘려보낸 10대 시절이 떠올랐다.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낮은 자존감 때문에 용기가 없어서 놓친 여학생들, 왜 공부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혼자 가슴앓이만 하다가 끝내버린 10대 시절이 생각났다. 왠지 모를 서글픔이 밀려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성인이 되어 제법 선생 노릇을 하게 되면서부터 마음의 힘을 키우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습관화하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는데, 덕분에 나와 같은 암울한 10대 시절을 보내고 있을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을 책으로 쓰고 싶었다. 책을 출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되었고, 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어느 순간, 어린 시절 봐온 부모님의 인생과 그때 부모님의 나이가 되어버린 나의 인생이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분들이고, 또 존중하는 분들이다. 그분들의 인생이 없었다면 나와 누나의 인생도 없었을 것이고, 그분들의 노고와 수고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음에 감사하다. 부모가 되어보기 전에는 부모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새삼스레 느끼고 있다. 반면에 어른이 되고 나니, 부모님의 삶이 애처로워 보일 때도 있었다. 낮은 자존감과 피해의식으로 흘려버린 10대. 그건 분명히 나의 문제였지만, 부모님의 연약한 부분이기도 했다. 엄마와 아버지는 자존감이 낮은 분들이었다. 반면에 자존심과 고집은 상당히 강한 분들이었다. 부모님의 입에서, 마음에서, 긍정의 단어가 나온 기억이 내겐 별로 없다. 매사에 부정적인 분들이었고, 작은 일에도 한숨을 내쉬며 걱정을 하셨다. 어릴 때에는 그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부정적인 게 당연한 것인 줄로만 알았고, 그렇게 행동해야 정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누구나 가장 가까운 사람의 영향을 받으며 살지 않는가.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결코 부정적인 태도가 당연한 게 아니었음을 알고 난 뒤, 그토록 잊고 싶은 시간이었던 10대가 어쩌면 가장 찬란하게 빛날 수도 있었을 나의 10대일 수도 있었겠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 왜 나의 10대 시절에는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주는 멘토가 없었는지 생각하게 된 뒤, 그제서야 비로소 헛되이 흘려버린 나의 10대가 너무나 안타깝고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두 번 다시는 뒤돌아보고 싶지 않은 10대를 마친다는 생각에 무척 뿌듯해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올해, 나는 2번째 19살을 살고 있다. 두 번 다시는 부정적인 과거, 부정적인 사람들, 부정적인 기억들에 나를 묻어두지 않겠다는 각오와 결심을 다지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나의 40대가 얼마나 찬란할지, 또 얼마나 아름다울지 생각하면서, 후회와 실망, 또 근심 걱정 속에서 흘려버린 나의 10대를 곰곰이 추억해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나의 10대 시절을 불러본다. 나의 10대야, 참 미안하다. 그리고 잘 이겨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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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그리운 나의 10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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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세계 최고의 배구선수
-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최근 중학교 1학년 학생을 한 명 알게 되었다.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청소년 상담사업의 일환으로 알게 된 학생이었다. 키가 작고 볼이 통통한 학생의 얼굴을 보며, 어린이집에서 신나게 놀고 있을 아들의 얼굴이 생각났다. 마침 배구 동아리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처음보는데도 마음이 활짝 열렸다. 그 학생에게 물었다. “꿈이 있어?” “네. 배구선수요.” 꿈이 있느냐, 하는 질문에 즉각 대답하는 중학생은 찾아보기 힘들다. 있어도 대개 막연한 꿈을 갖고 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요.” “연예인이요.” “판사요.” 어린 시절, 누구나 갖고 있을 그런 꿈을 이야기한다. 현실불가능한 꿈은 아니지만, 진짜 꿈이라고 보기엔 어렵다. 꿈은 지속가능해야 한다. 본인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에 따라 꿈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지만, 호떡 뒤집듯이 바뀌는 꿈은 꿈이 아니라 이상에 불과하다. 그 학생은 아버지와 자신을 내버려두고 고향인 베트남으로 도망가버린 어머니를 그리워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힘든 일이 없고, 학교생활은 재미있다고 이야기했다. 참 다행이다, 싶었지만 슬픔을 솔직하게 표현하기엔 어린 나이다. 이 친구의 말이 진실이라면 참 좋겠다, 하고 생각하며 이야기했다. “나는 네가 한국 최고의 배구선수가 될 수 있는 길을 알고 있어.” 학생의 눈이 반짝거렸다. 방법을 일러주었다. “먼저 한국 최고의 배구선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해. 믿을 수 있겠어?” “네.” “그래. 그럼 50%는 이루어졌어.” 나는 종이에 동그라미를 그린 뒤 절반을 까맣게 칠했다. “자, 남은 50%를 이제 채워나가면 돼. 우리가 하는 일은 이 50%를 채우는 거야.” 나는 그 학생에게 몇 가지를 일러주었다. 배구를 하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친구들에게 ‘네가 무슨 한국을 대표하는 배구선수가 되니? 꿈깨!’하는 식의 말을 들었을 때, 왕따를 당하거나 그와 비슷한 어려움을 당할 때, 그럴 때마다 “아니야! 나는 한국을 대표하는 한국 최고의 배구선수야!”하고 다짐하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한국 최고의 배구선수, 네가 가장 존경하는 선수를 알아내서, 그 사람이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어떤 식으로 훈련하는지를 배워서 그대로 삶에 적용시키는 거야. 그럼 나머지 50%는 매일 조금씩 채워질거야.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100%가 채워지지.” 팥빙수와 청포도에이드를 먹으며 우리는 짧은, 그러나 확신에 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리베로가 되어, 전 세계에 한국 배구의 우수함을 널리 알리게 될 날이 곧 오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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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세계 최고의 배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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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예방 칼럼] 생명존중·자살예방 예산, 매년 3배 증액해야-③
- [교육연합신문=김대선 기고] 국내 자살통계 잠정치가 증가한 가운데 종교계 및 시민사회단체가 향후 4년간 우리나라 자살예방 예산을 매년 3.6배 이상 늘리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국회에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종교계, 안실련 등 시민단체로 구성된 생명운동연대는 지난 7월6일 국회 정문 앞에서 “생명존중, 자살예방 예산확대”를 위한 기자회견을 가진 후 국회자살예방포럼 윤호중, 윤재옥 공동대표를 예방하고 자살예방 예산확대 건의서를 전달했다. 우리나라는 하루 평균 38명의 자살자가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2017년 일본은 10만 명당 자살자가 14.9명이고 우리나라는 23명으로 높으나 자살예방 예산은 우리나라는 417억원이고 일본은 6조7천억원으로 일본의 1/16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21년 3월 국내 자살통계 잠정치가 처음으로 증가한 것으로 알려져 코로나19로 인한 자살 증가가 사실상 시작되어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다. 생명운동연대와 한국종교인연대는 "2019년 우리나라 자살자수는 1만3799명으로 하루에 무려 37.8명이 사망해 OECD 회원국의 2.1배로 가장 높으며 청소년 자살률도 무려 1.8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라고 말하였으며 "향후 2040 청년,여성의 자살률이 증가됨은 매우 우려할 시대적 상황이다"라고 하였다. 이날 양두석 안실련자살예방센터장(가천대교수)은 "2025년까지 매년 3.6배 이상의 자살예방 예산을 복지부와 교육부, 고용노동부, 국방부, 농림축산식품부, 경찰청, 소방청 등 범부처에 배정해 온 부처가 적극적으로 귀중한 생명을 살리는 자살예방활동사업을 전개하여야 자살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2022년 예산에서 복지부, 교육부 등이 요구한 500억원 이외에, 유자녀 지원, 생명존중희망재단 확대, 종교계와 시민단체지원 등 1000억원을 추가로 계상하고, 부처 특성에 맞는 자살예방 활동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여 매우 고무적이라고 믿는다. 최근 싱가포르는 방역체계를 원칙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독감처럼 일상으로 받아들여 코로나와 공존인 "위드 코로나"를 천명하였다. 우리나라도 다음달 백신접종률 70%를 예상하고 있다. 생명존중 정책이나 예산증액도 중요하지만 백신접종은 물론 일상생활의 방역지침인 거리두기, 손씻기, 마스크 착용은 공존의 필수덕목이다. 싱가포르에 이어 많은 나라가 "위드 코로나"를 천명하리라고 확신한다. 또한 생명문화확산인 자살인식개선은 교육이다. 교육은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2022년부터 현재 예산의 3배를 증액하여 자녀. 이웃의 가족들이 행복한 살기 좋은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 "코로나시대 자살예방사업 예산 증액 필수“ - 2022년도 자살예방 예산 확보를 위한 종교계 및 시민단체 성명서 - 벌써 15년째 OECD 자살률 1위라는 굴레가 이 땅을 신음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죄스럽게도 2019년에 13,799명의 우주보다 귀한 생명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 넣고 우리 곁을 떠나가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매달 20량 객차로 가득 채울 1,150명의 귀하고 소중한 목숨을 다시는 볼 수 도 없고, 만날 수도 없는 곳으로 떠나보내고 있습니다. 처참하다면서도! 황당하다면서도! 자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차갑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자살자가, 그 가족이 뭔가 모자란, 패배자라서 그리도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는 듯 냉랭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코로나 시대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비정함과 2021년 3월부터 급속히 증가하는 자살 잠정치를 바라보며 더욱 깊은 우려를 금할 길 없습니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는 자살 사건의 원인이 순전히 자살자에게 있지 않음을 인정하는 지혜가 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책임이 우리 사회에 있다며 모두가 함께 나서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조금씩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계를 비롯한 우리 사회를 꽁꽁 묶고 있는 자살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거친 신념은 자살예방을 위해 성큼성큼 나아가도 부족할 우리의 발목을 단단히 붙들고 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살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일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종교계와 시민단체들부터 자살에 대한 인식 개선에 앞장서야 합니다. 잘 조직된 종교계와 시민단체들은 자살예방 사업의 막강한 예비군으로 활약할 수 있습니다. 특히 종교계와 시민단체 등의 사회 지도자들은 사회적 책임론에 입각한 자살인식을 개선 작업에 필요한 결정적인 여론 형성에 앞장서야 합니다. 이러한 자원들이 동원될 수 있다면 자살인식 개선작업은 물론 유가족 지원, 자살 시도자 관리, 유해정보 모니터링 강화, 민관협력 예방체계 구축, 자살예방활동가 육성 등의 사업 활성화로 답보상태에 있는 높은 자살률을 낮추는 묘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자살예방 예산은 그동안 시급했던 우울증을 중심으로 한 의료적 인프라 구성에 투자되었습니다. 종교계나 시민단체 등의 활동을 뒷받침할 예산은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이제 자살예방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자살인식 개선 작업 예산은 제대로 확보돼야 합니다. 자살인식개선 사업에 시동을 걸 예산이 없으면 우리 사회 구성원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종교인, 시민 간에는 콘센서스가 이루어지기 어렵고 자살 사건의 출발점인 자살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수 없습니다. 특히 매년 10만명의 자살유가족이 발생하고 있고, 이들의 치료비 지원에만 140억원이 필요합니다. 또한 자살 유가족은 극단적 선택을 할 위험성이 일반인보다 8.3배 높음에도 불구하고 관리대상에서 빠져 있습니다. 또한 교육부가 실시한 학생 정서행동 특성검사에서 자살위험군 학생이 2016년 8,691명에서 지난해 1만6940명으로 두배정도 증가했습니다. 이들 청소년을 위한 상담시스템 구축이 매우 시급하고, 여기에만 최소 20억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경우 재시도 위험성이 25배에 달합니다. 전국 52개 응급의료센터에서 자살 시도자 사후관리 사업을 하고 있지만 시설과 전문인력이 따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후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면 사망률을 절반 이하로 낮출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산부족으로 인해 안타까운 죽음을 그대로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사회구성원 간의 콘센서스가 이루지지 않으면 과감한 예산 증액에 대한 동의를 국회에서 받아낼 수 없음은 자명합니다. 종교계와 시민단체가 필요한 대대적인 자살인식 개선작업에 필요한 초기 예산은 이 작업의 전폭적인 확대를 위한 마중물이므로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따라서 이 예산 확보와 자살인식 개선 작업은 동시에 2-Track으로 병행돼야 할 절실한 과업인 것입니다. 일본의 160분의 1에 불과한 자살예방 예산은 부끄러운 우리의 민낯입니다. 자살로 내몰리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의무입니다. 국회에 간곡히 호소합니다. 2022년 자살예방 예산이 정부 예산안대로 확보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여기에 추가예산 형태로 2배 이상을 만들어 주셔야 합니다. 여러 의원들이 덧붙인 예산도 전액 확보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매년 3.6배 이상 4년을 더 투자해야 일본 수준에 근접해 집니다. 생명존중하는 사회를 향한 예산의 변화에 국회가 적극 나서줄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합니다. 2021. 7. 6 한국생명운동연대(종교인연대등 30여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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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예방 칼럼] 생명존중·자살예방 예산, 매년 3배 증액해야-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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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만화로 풀어보는부자자효[父慈子孝]
- [교육연합신문=글.그림 임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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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만화로 풀어보는부자자효[父慈子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