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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의 고용정책 칼럼] 사람을 위한 기업이 미래를 만든다
[교육연합신문=이수연 칼럼] 기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일까?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것,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는 것 모두 중요한 가치이다. 그러나 오늘날 기업에게는 한 가지 역할이 더 요구되고 있다. 바로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며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우리 사회는 청년 일자리, 기업의 인력난, 취약계층의 고용, 지역 간 교육과 일자리 격차 등 다양한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정부나 기업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공공과 민간, 지역사회가 함께 협력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사회적기업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사회적기업은 단순히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이 아니라, 기업 활동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함께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반 기업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사회적기업의 가치는 '사회적기업'이라는 인증 자체에 있지 않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기회를 만들었는지, 얼마나 많은 기업과 지역사회를 연결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지속 가능한 변화를 만들어 냈는지가 더 중요하다. 우리가 만나는 참여자들은 모두 다른 출발선에 서 있다. 첫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도 있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중장년도 있으며, 경력단절여성, 북한이탈주민, 장애인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기업 역시 인재 확보와 조직문화 개선, 교육훈련 등 저마다 다른 고민을 안고 있다. 사회적기업이 해야 할 일은 이들을 각각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기업과 사람, 정책과 현장을 연결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교육이 새로운 시작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취업이 삶의 전환점이 되며, 기업에게는 필요한 인재를 만나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연결이 쌓일수록 지역사회는 더욱 건강한 성장 기반을 갖추게 된다. (주)채움에이치알디 역시 이러한 사회적기업의 철학을 바탕으로 사람과 기업,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국민취업지원제도와 청년도전지원사업, 기업탐방형 일경험, 채용박람회, 기업교육, 평생교육 등 사업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그 목적은 하나이다. 사람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며, 지역사회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연결을 만드는 것이다. 특히, 현장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사회적 가치는 거창한 사업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 사람의 취업을 돕고, 한 기업의 인재 채용을 지원하며, 한 번의 교육을 통해 누군가가 자신감을 회복하는 작은 변화들이 모여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 앞으로 지역사회가 더욱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공공과 민간, 교육기관과 기업이 더욱 긴밀하게 협력하는 생태계가 필요하다. 사회적기업은 그 중심에서 서로의 전문성을 연결하고, 정책이 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것이 지속 가능한 지역발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성장은 사회의 성장과 함께할 때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사람의 변화를 믿고 지역사회와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사회적기업이 존재하는 이유이며 (주)채움에이치알디가 앞으로도 꾸준히 실천해 나갈 가치이다. 다음 회차에서는 지역과 기업, 공공이 함께 만드는 협력 네트워크와 상생의 고용 생태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 이수연 ◇ 인천대학교 경영대학원(MBA) ◇ (주)채움HRD 대표이사 ◇ 고용·교육정책 및 HRD 분야 전문가 ◇ 인천지방고용노동위원회 사용자위원 ◇ 인천출입국·외국인청 사회통합협의위원 ◇ 인천해양경찰서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 인천발달장애인훈련센터 전문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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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가수 지드래곤에게서 배우는 ‘남다름’의 힘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최근 베트남의 한 천재 소녀가 우리 교육에 던진 시사점은 매우 깊게 다가선다. 호앙 흐엉 지앙 학생은 2026년 베트남 고교 졸업시험 A01 계열에서 30점 만점에 29.75점을 받아 전국 공동 수석에 올랐고, SAT에서도 만점을 받았다. 세계의 전통적인 명문대학들을 비롯해 서울대의 입학 허가를 받았으나 최종 KAIST라는 선택지를 택했다. 9월 학기에 입학하여 놀랍게 디자인된 KAIST 캠퍼스 적응에 익숙해지고 과학 연구에 의지를 불태우는 가운데 그가 주목한 인물 한 사람이 뜻밖에도 초빙교수인 가수 지드래곤이었음을 각종 언론은 보도한 바 있다. 지앙 학생은 지드래곤에게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하는 도전 정신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이 한마디는 우리에게 묻는다. “과학 영재가 가수에게서 배울 것이 있는가?”, “무엇을 배우고자 하는가?”… 매우 의아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답은 간단하다. 창의성에는 전공의 국경이 없기 때문이다. 지드래곤은 2024년 KAIST 기계공학과 초빙교수로 임명됐다. KAIST는 그의 대중문화 경험과 창작 역량을 과학기술과 문화산업의 융합에 활용하고자 했다. 이후 KAIST와 함께 AI·미디어 기술을 활용한 작업을 진행했고, 2025년에는 미디어아트와 우주 연구를 결합한 음원 송출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과학의 언어로 예술을 상상하고, 예술의 방식으로 과학을 바라본 사례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청소년 교육이 주목해야 할 것은 ‘지드래곤’이라는 유명인의 이름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한 사람이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하듯이 남들이 하니까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무엇을 다르게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태도다. 이는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이라는 말로 치환하여 이 시대 우리 교육의 중요한 화두로 다시 소환할 필요가 있다. 무리 지은 펭귄들이 얼음 끝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물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위험이 있을 수도 있다. 모두가 머뭇거리는 순간 한 마리가 먼저 뛰어든다. 그 한 번의 도약이 무리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교육에서 퍼스트 펭귄은 어떤 학생인가? 정답을 가장 빨리 맞히는 학생이 아니라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학생이다. 실패하지 않는 학생이 아니라 실패를 새로운 배움으로 바꾸는 학생이다. 남보다 앞서가는 학생이 아니라 남들이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을 찾아가는 학생이라 할 것이다. KAIST가 2026학년도 학사과정에서 ‘창의도전전형’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이런 시대적 흐름과 맞닿아 있다. KAIST는 해당 전형을 통해 과학영재를 선발하고 있으며, 대학 입시 자체에서도 기존의 성취만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잠재력을 바라보는 흐름을 선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흔히 오해하기 쉬운 것은 퍼스트 펭귄 교육이 무모함을 가르치는 것으로 왜곡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용기와 무모함은 다르다. 지드래곤에게서 청소년이 배워야 할 것은 그가 입는 옷도, 부르는 노래도, 얻은 명성도 아니다. 지드래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는 법이다. 누군가는 음악으로 자기 길을 만들고, 누군가는 과학으로, 누군가는 문학으로, 누군가는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분야가 아니라 태도다. “남들이 이렇게 하니까 나도 이렇게 한다”가 아니라, “나는 이것을 어떻게 다르게 해볼 수 있을까?”라고 묻는 태도다. 베트남의 한 천재 소녀가 지드래곤에게서 발견한 것은 결국 유명인의 화려함이 아니었다.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는 인간의 자세였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남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 방법인가, 아니면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방법인가? 교육은 아이에게 완성된 지도를 건네주는 일이 아니다. 아직 길이 그려지지 않은 백지 한 장을 건네고, 그 위에 자기만의 길을 그릴 용기를 갖게 하는 일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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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의 고용정책 칼럼] 함께 일할 때 더 큰 가능성이 열린다
[교육연합신문=이수연 칼럼] 기업의 경쟁력은 뛰어난 기술이나 자본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경험과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때 조직은 더욱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조직문화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중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 고용의 중요성을 꾸준히 이야기해 왔다. 그러나 장애인 고용은 단순히 의무를 이행하는 차원을 넘어,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라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사람을 장애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역량과 가능성으로 바라볼 때 기업과 사회는 함께 성장할 수 있다. 현장에서 기업들을 만나 보면 장애인 고용에 대한 의지는 있지만 실제 채용과 근무환경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채용 이후의 직무 배치, 조직 구성원의 이해, 소통 방식 등은 제도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포용적인 조직문화는 교육과 이해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공공기관과 협력하여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교육, 슈퍼바이저 역량강화 교육, 대기업 장애인 고용 담당자 역량강화 교육 등 다양한 교육을 운영하며 장애인 고용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해 왔다. 단순히 법과 제도를 설명하는 교육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례를 공유하고, 조직이 함께 고민하며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실무 중심의 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ESG 경영이 기업의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으면서 장애인 고용 역시 사회적 책임을 넘어 지속 가능한 경영의 핵심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조직은 더 넓은 시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구성원들이 협력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장애인 고용은 특정 계층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과정인 것이다. 포용적인 일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장애의 유무와 관계없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교육은 이러한 변화를 시작하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며, 조직이 함께 성장하는 기반이 된다. 앞으로의 고용정책은 채용 숫자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드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다양한 역량이 발휘되는 조직이 결국 더 큰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좋은 일터는 모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곳이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의 가능성을 믿는 조직은 더 큰 혁신을 만들어 낸다. 사람 중심의 교육과 포용적 조직문화를 통해 모두가 함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현장에서 실천하고 있는 HRD의 또 다른 가치이다. 다음 회차에서는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사회적기업의 역할과 지역 협력 네트워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 이수연 ◇ 인천대학교 경영대학원(MBA) ◇ (주)채움HRD 대표이사 ◇ 고용·교육정책 및 HRD 분야 전문가 ◇ 인천지방고용노동위원회 사용자위원 ◇ 인천출입국·외국인청 사회통합협의위원 ◇ 인천해양경찰서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 인천발달장애인훈련센터 전문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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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슴베 사랑
[교육연합신문=구본희詩選] 슴베 사랑 나무 자루 속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어둠 칼날의 뿌리가 산다. 번득이는 날 아래 깊숙이 몸을 감춘 채 칼과 자루 사이 다리를 놓는다. 자루가 부서지면 칼날은 제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슴베는 허공에 홀로 남는다. 서로 다름을 품어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 비로소 한 몸으로 산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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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변종 폭력 ‘야차룰’에 대한 교육적 대응책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오늘날 학교 현장은 갈수록 가관이다. 본래의 기능을 잃고 끔찍한 변종 폭력의 실험장으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최근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번지고 있는 ‘야차룰’은 우리 교육 공동체가 직면한 매우 충격적인 단면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은어는, 아이들끼리의 단순한 다툼을 넘어 사전에 면밀하게 기획되고 잔인하게 이루어지는 구조적 야만성을 띠고 있다. 교실의 질서가 무너진 자리에 고개를 든 이 기괴한 폭력의 실태를 냉정히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획기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먼저 ‘야차룰’의 어원부터 살펴보자. ‘야차(夜叉)’는 본래 산스크리트어 ‘야크샤(Yakṣa)’에서 유래한 말로, 불교 신화나 민속에서 사람을 해치거나 두려움을 주는 흉폭하고 사나운 귀신(또는 괴물)을 뜻한다. 이로부터 파생되어, 인터넷 격투 콘텐츠나 대중문화 속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잔인하게 싸우는 격투 방식’을 일컫는 은어로 쓰이게 되었다. 여기에 ‘규칙(Rule)’이 결합하여 ‘제한 없이 맨몸으로 붙는 싸움 규칙’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런 신조어가 생겨난 배경은 유튜브 및 격투 콘텐츠의 모방으로 인터넷 방송이나 종합격투기 콘텐츠 등에서 보호장구 없이 거칠게 싸우는 모습이 밈(Meme)처럼 청소년들 사이에 유행하면서 이를 모방하려는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학교 폭력 처벌 회피의 목적으로 생겨난 변종 수법으로 아이들이 고안해 낸 얄팍한 꼼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가장 교활한 것은 철저하게 ‘합의된 결투’라는 명목으로 위장된 점이다. 당사자 간에 민형사상의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거나, 교실 구석, 화장실, 학교 인근 공터 등 교사의 눈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맨주먹으로 상대를 제압하도록 강요한다. 더 큰 문제는 이 싸움이 단순히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아이들이 이를 휴대전화로 촬영해 SNS나 단체 대화방에 유포하고, 심지어 이를 흥행 콘텐츠처럼 소비한다는 데 있다. 이러한 변종 폭력이 일상화된 배경은 무엇인가? 먼저 사법적 눈속임과 솜방망이 처벌이다. 가해 학생들은 “우리끼리 합의하여 싸운 것”이라며 학교 폭력의 범주를 교묘히 빠져나가려 한다. 실제로 관련 통계에 따르면 신종 학교 폭력 심의 건수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 학생의 10명 중 8명가량은 서면사과나 접촉 금지 등 가벼운 ‘조치’에 그치고 있다. 학생부에 기록조차 남지 않거나 졸업과 동시에 삭제되는 솜방망이 처벌은 아이들에게 “폭력은 잠시 스쳐 가는 유희일 뿐”이라는 비교육적 확신을 심어주고 있다. 또한 공동체 의식의 실종과 방관의 문화다. 경쟁 지상주의 교육 속에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은 퇴화하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에 익숙해진 청소년 문화가 ‘구경꾼’과 ‘방관자’를 양산하며 폭력을 부추기고 있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야만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가담 형태별 처벌의 세분화 및 무관용 원칙 적용이다. ‘합의된 싸움’이라는 명목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꼼수를 원천 차단해야 한다. 직접적인 폭력 행사는 물론이고, 싸움을 주선하거나 관전하며 촬영하고 유포한 모든 방관자에게도 엄중한 책임을 묻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둘째, 디지털 2차 가해 방지 및 플랫폼 정화 시스템이다. 폭력 영상이 유포되는 즉시 학교와 경찰이 실시간으로 차단하고,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법적 책임을 강화하여 아이들이 디지털 공간에서 폭력을 소비하지 못하도록 원천 봉쇄해야 한다. 셋째, 관계 회복 중심의 인성 교육과 신고 시스템의 개혁이다. 은밀하게 이뤄지는 변종 폭력의 특성을 고려해 학생들이 익명으로 두려움 없이 고발할 수 있는 신속 감시 체계를 구축하고, 교실 내에서 타인과 공존하는 법을 가르치는 근본적인 인성·시민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야차룰’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학교 안에서 활개 치는 한,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는 암울하다. 아이들의 주먹질을 방관하고 가벼운 처벌로 눈감아주는 것은 학교가 폭력의 공범을 양산하는 것과 같다. 이제 차가운 방관과 솜방망이 처벌의 그늘을 거두고, 한편으로는 강력한 법과 원칙, 다른 한편으로는 따뜻한 공감의 교육으로 교실을 정화할 때 비로소 학교는 다시 배움과 성장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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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부캉이 열풍과 진정한 위로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몸길이 약 3미터 암컷 흑상어 한 마리가 9월 18일 부산 동구 북항 친수공원 인공 수로로 들어왔다. 그 이후 이 상어는 시민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9월 19일부터 10월 9일 오후 6시까지 이 상어를 보기 위해 친수공원을 찾은 누적 방문객은 120만 명을 넘어섰다. 열풍이다. 이 상어는 북항에 나타났다는 의미에서 '부캉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부산시는 부캉이를 명예 홍보대사로 공식 위촉한다고 밝혔다. 사람들은 왜 상어 한 마리를 향해서 이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뉴스 내용을 보다 보면 부캉이와 늑구 같은 야생동물의 모습에 사람들이 더 열광하는 것을 느낀다. 사람들은 이름을 붙이고 이야기를 만들며 환호한다. 배우자나 노부모는 돌보지 않아도 반려동물에게는 극진하게 대하는 요즘 세태를 듣고 있었지만 야생동물에 대한 대중의 유별난 관심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텔레비전과 휴대전화 화면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비극이 지나간다. 전쟁으로 집을 잃은 사람, 폭력 앞에서 무너지는 약자,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 진실을 밝히기 위해 오랜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기후 위기로 사라지는 생태계와 멸종의 벼랑에 선 야생동물도 있다. 현실 생활의 비루하고 비참한 현실이 우리 앞에 있지만 부캉이에게 보내는 관심만큼은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말 없는 야생동물은 우리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들은 나의 입장을 요구하지도 않고,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지도 않는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위로한다. 반면 인간은 다르다. 인간의 고통에는 원인과 책임이 있으며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그곳에 마음을 기울이는 순간 우리는 판단해야 하고 때로는 감정의 불편함을 느끼며 무엇인가 행동해야 한다. 부캉이 뉴스와 다른 생각을 하게 하는 뉴스가 있다. 무연고 사망자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 무연고 사망자는 7,190명이라고 한다. 무연고 사망자의 53.4%는 기초생활수급자였다. 46.6%는 정부의 복지 수혜 대상이 될 정도의 가난에 놓이지는 않았는데도 무연고로 처리되었다. 작년에 전국에서 법적인 연고자(배우자, 직계 존·비속, 형제·자매 등)가 있지만 무연고로 삶을 마친 이는 74.9%였다. 무연고 사망자가 한 해 만 명이 넘어가는 시대가 머지않았다. 우리는 무연고 사망자가 누구인지 왜 무연고가 되는지도 모르고 관심이 없다. 현대인의 관심은 ‘깊이 생각해야 얻는 감동’에서 ‘즉시 소비할 수 있는 감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우리는 위로를 너무 쉽게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진정한 위로는 귀여운 것을 바라보며 잠시 웃는 데 있지 않다. 진정한 위로는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고 자연을 바라보며 결국 다시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되는 데 있는 것은 아닐까. 부캉이에 대한 열광은 너무 복잡하고 지친 세상에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존재에게서 위로받고 싶어 하는 마음의 표현일 수 있다. 우리가 정말 회복해야 할 것은 불편하고 아픈 인간의 현실을 끝까지 바라보는 힘이다. 그런 힘에 교육이 한 줌이라도 도움을 주어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진로융합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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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순수한 미니멀리즘의 상징 - 제비꽃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제비꽃은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생명체로, 본질적인 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움과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단순함의 힘이다. 제비꽃은 조용히 피어난다. 바람결에 흔들려도 뿌리는 깊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 자체로 충분하다. 떠들썩한 세상을 향해 소리치지 않는다. 대신, 흐르는 물에 스스로를 비춘다. 제비꽃은 경쟁하지 않는다. 더 크게 피어나려 애쓰지 않고, 더 많은 햇빛을 욕심내지 않는다. 그저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꽃을 피울 뿐. 세상은 더 높이, 더 빠르게를 외치지만, 제비꽃은 말한다. “조용히 머물러도 충분하다.” 제비꽃은 강하다. 비바람에도 쉽게 시들지 않는다. 벌이 없어도 스스로 꽃을 피우고, 개미와 공생하며 생명을 잇는다. 남에게 기대지 않고, 외부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는 힘. 뿌리를 깊이 내릴 때, 진짜 빛난다. 단순함 속에서 완전해진다. 불필요한 욕심 없이도 풍요롭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쥐고 사는가. 제비꽃은 가르쳐준다. “본질만으로도 충분하다.” 제비꽃은 함께 살아간다. 개미와 씨앗을 나누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존재한다. 삶도 그렇다. 경쟁이 아니라 함께 피어나는 것. 그것이 제비꽃의 지혜다. 소박하지만 단단한 삶, 조용하지만 깊이 있는 삶. 떠들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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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의 클래식 스토리] 내면에 충실한 음악, 그리고...
- [교육연합신문=전미경 칼럼] 2025년 4월 현재, 세상은 참으로 혼란스럽고 거짓과 교만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긍정적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기엔 어려움이 많은 것이 지금의 현실인 것 같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불황이며, 지구 온난화로 야기된 기후 변화가 많은 나라의 사람들을 위기 상황에 부딪히게 만들고 있으며, 인간의 탐욕으로 지구가 병들고 있음을 이젠 누구나 알고 있다. 모든 것들을 제자리로 돌리기엔 너무 멀리 와있고 늦은 것이 아닌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모든 것이 편리해지고 발전하기도 했지만, 또 그로 인한 많은 부작용과 문제점 또한 인간들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컴퓨터가 발달하고 AI가 많은 부분에 답을 주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에 완벽한 정답은 없으며 여전히 인간 스스로 해답을 찾아야만 하는 문제들이 훨씬 많다. 문화 예술 분야는 더더욱 그렇다고 볼 수 있다. AI가 몇 초만에 그림도 뚝딱 그려내고 새로운 곡도 완성해 만들어 주지만, 그 안에 우리가 감동받을 수 있는 영혼은 아직 없다. 기술적으론 첨단이지만, 혼이 없는 예술을 예술이라 말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앞으로 인간이 고민해야 할 또 다른 질문 중에 하나다. 예술에 대한 고민은 과거에도, 또 지금도 없어질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상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이 그런 고민을 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예술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는 아마도 모든 시대, 모든 예술가들의 공통적인 고민거리였을 것이다. 세상이 지금처럼 첨단 과학화 되고 화려해지면서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들도 예전보다 더 많이 화려하게 연주하고, 현란한 기교를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때로는 화려함 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것이 더 멋있어 보이고 심금을 울리게 만들기도 한다. 음악 연주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릴 때는 뭔가 화려하고 거창한 것이 더 멋져 보이다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본이 중요하다는 걸 점차 깨달아 알아가서 더 그런 걸까? 클래식 음악 연주자 중에서도 가식적인 것을 싫어하고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선호한 것으로 유명한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라는 피아니스트를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그의 연주 스타일은 기술적 완벽함을 추구하면서도 음악의 본질적인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쇼팽 음악에서 인위적인 과장 없이 곡의 낭만적인 정신을 전달하려고 애쓴 연주자이다. 그는 무대에서의 태도와 연주에서도 꾸밈없이 진솔함을 보여 주었고, 청중과의 소통을 중요시했다고 한다. 마치 응접실에서 손님을 맞이하듯 편안하고 온화한 태도로 연주했다고 하는데, 이런 모습은 현대 피아니스트들이 무대에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관객과 친밀감을 형성하는데 영감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는 기술적 완벽함을 넘어 감정을 전달하는 연주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이는 현재 음악가들이 단순히 악보를 따라 연주하는 것을 넘어, 곡의 내면적 의미를 강조하고 관객과 소통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루빈스타인은 ‘전문가’라는 말을 싫어했다고 하는데, 보통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연주가 어느 부분을 빠르게 연주하는지, 또 어느 부분을 틀리게 연주했는지 그런 기술적인 부분에만 치중하는 모습을 보여서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 것보다는 청중과 교감하는 음악을 하는 것이 진정한 음악가라는 그의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89세라는 굉장히 늦은 나이까지 연주 활동을 하고 은퇴했는데, 은퇴한 이유도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서가 아니고 단지 시력이 안 좋아져서 악보 보기가 불편해졌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매번 연주 때마다 굵직하고 깊은 음색을 보여줬는데 그의 많은 레퍼토리 중에서도 쇼팽의 녹턴을 개인적으로 추천한다. 그의 음악과 함께 나의 음악도, 또 음악을 듣는 모든 사람들의 내면의 충만함도 기대해 본다. ▣ 첼리스트 전미경 ◇ 가천대 관현악과 졸업(첼로전공) ◇ 서울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수석 역임 ◇ 금천 교향악단 부수석 역임 ◇ 의왕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 강동 챔버 오케스트라 단원 ◇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첼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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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부평초 - ‘마주 잡을 손 하나’의 힘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부평초는 물 위를 떠다니며 자라는 개구리밥으로, 그 꽃말은 '떠돌이'와 '나그네'이다. 그 이름처럼, 떠돌이의 삶을 상징한다. 부평초는 구조적으로 단순화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떠다니는 동안도 중요한 뿌리를 놓지 않는다. 부평초는 물 위에서 떠 있기 위해 엽상체라 불리는 특수한 기관을 발달시킨다. 이 기관은 공기 방을 통해 물에 뜨게 한다. 그럼에도, 떠돌이 생활 속에서도 뿌리는 중요하다. 부평초는 세력을 늘려가며, 그 유대감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존재들과 연결된다. 마치 사람들도 떠돌이처럼 생존하며, 유대감과 인정으로 서로를 지탱한다. 부평초는 겨울이 오면 물속으로 가라앉아 겨울을 준비한다. 이를 통해 생명력을 유지하는데, 그 생존전략의 핵심은 ‘단순화’와 ‘기본적인 뿌리의 중요성’에 있다. 이것은 부평초의 생명력과 비슷한 방식으로, 인간 삶에서도 중요한 교훈을 전달한다. 부평초는 떠돌이 삶을 살지만, ‘마주 잡을 손 하나’만 있으면 뿌리는 뽑히지 않는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를 지지하고 도울 수 있는 유대감을 통해, 우리는 인생을 이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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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부평초 - ‘마주 잡을 손 하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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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국가별 행복지수 56위 한국, 함께하는 친교의 시간을 늘려 주자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3월 19일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웰빙 연구센터와 갤럽,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는 ‘2025년 세계행복보고서’에서 국가별 행복 순위를 발표했다. 1위는 행복 점수 7.736점을 받은 핀란드였다. 8년 연속 가장 행복한 국가로 올라와 있다. 한국은 58위(6.038점)로 작년(52위)보다 6계단 떨어졌다. 높은 순위에 북유럽 국가들이 많다. 북유럽은 사회복지국가 체제로 경쟁적 자본주의보다 사회복지에 힘쓴 국가들이다. 연구진은 특히 배려와 나눔이 사람들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연구진은 조사 결과 타인의 친절에 대한 믿음이 행복과 훨씬 더 긴밀히 연결돼 있음을 발견했다. 또한 타인과 자주 식사하는 사람이 더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1인 가구가 증가하고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누구와 친한지 알고 싶으면 그 학생이 학교 급식 시간에 누구와 함께 밥을 먹는지 보면 된다. 왕따 학생은 보면 혼자 밥을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관계의 단절을 보여주는 증표이다. 식사를 어떻게 영양에 맞게 먹느냐도 중요하다. 하지만 누구와 어떤 분위기에서 어떤 대화를 하면서 먹느냐도 중요하다. 밥은 생존을 위한 사료의 의미만이 아니다. 식사에는 공감과 관계의 의미가 중첩한다. 행복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진 것보다는 내면의 만족과 감사함에서 온다. 에피쿠로스 철학에서는 행복은 외부가 아닌 소박한 내면의 충족에서 온다고 했다. 행복은 경쟁에서 오지 않는다. 김누리 교수의 ‘경쟁교육은 야만이다’의 책에서는 그것이 얼마나 인간성을 말살하는 심각한 인식인지를 비판하고 있다. 행복은 경쟁이 아닌 만족과 감사, 공감과 배려의 관계에서 온다. 함께 사는 공동체의 의미를 절실하게 느낀 것은 코로나19 시대로 학교가 정상적인 등교를 못할 때였다. 당시에 지식은 원격수업으로 가능하지만 인성과 공동체 교육은 등교를 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의 존재이유가 바로 그 경험의 공유라는 것을 사회는 크게 깨달았었다. 벌써 그것을 모두 잊어버린 듯하다. 행복은 함께하는 것에서 온다. 함께하려면 배려하고 공감해야 한다. 배려와 공감은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 과정에서 온다. 학생의 행복을 위해 학교는 공유의 경험을 늘려야 한다. 서로 어울리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학교는 배려와 공감을 위해 학생들이 서로 함께하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토의, 토론, 동아리, 캠프, 상담, 친교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생각해 보면 도시락 반찬을 나누어 먹고 학급 단위로 합창 연습을 하고 학원에 가기보다는 친구들과 운동과 놀이를 하고 친구 집에 놀러 가서 라면을 먹었던 그 시절에는 행복했다. 힘든 시기였지만 서로 함께여서일 것이다. 학교가 단지 지식을 위한 기관이라면 원격으로도 충분하다. 학교는 학생의 행복을 위해서 서로 배우고 존중하고 도와주고 기쁨을 느끼는 경험의 장을 최대한 많이 제공해 주어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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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국가별 행복지수 56위 한국, 함께하는 친교의 시간을 늘려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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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땅빈대(비단풀) - 땅바닥이 천국이다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최진규(약초학자) 님이 남미에서 어렵게 구해온 비단풀을, 결국 자신의 사무실 마당에서 발견하고는 탄식했다고 한다. 비단풀은 땅빈대라고도 불리며, 쇠비름과 비슷하지만 훨씬 작고, 이름처럼 땅바닥에 바짝 붙어 자란다. 이 풀의 생즙을 상처에 바르면 신기하게도 곪지 않고 잘 낫는다. 내가 과일을 깎다가 손을 깊게 베었을 때, 비단풀을 짓찧어 붙였더니, 따가운 느낌이 잠시 들더니 피가 멈췄다. 비단풀은 사마귀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중남미 사람들은 사마귀가 생기면 비단풀을 붙여,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마귀가 떨어진다고 한다. 최진규 님에 따르면 비단풀은 항암작용이 뛰어난 식물 중 하나로, 특히 뇌종양, 골수암, 위암 등에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암세포만을 골라 죽이거나 억제하고, 암으로 인한 증상을 없애며, 새살이 돋게 하고 기력을 늘려준다고 한다.(출처: 위키백과) 비단풀의 꽃말은 '집착', '가슴앓이', '희생적인 사랑'이다. 뿌리를 뽑아도 사라지지 않는 집착의 식물이지만, 암환자에게는 생명초가 된다. 한방에서도 ‘지금초’(지금처럼 땅에 펼쳐진 비단 같은 풀)라는 이름으로 약용된다. 땅빈대는 이름 그대로 땅바닥에 붙어 살아간다. 사람의 발에 밟히기 쉬운 고난의 땅에서 살지만, 그 어떤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비단풀과 개미의 아름다운 공생은 신도 미소 짓게 만든다. 땅빈대를 보면 구상 시인의 「꽃자리」라는 시가 떠오른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세상의 모든 식물은 햇빛을 향해 자꾸만 뻗으려 한다. 하지만 땅빈대는 처음부터 땅에 엎드려 살아가기 때문에, 밟혀도 부러지지 않는다. 땅빈대는 햇살을 경쟁하지 않고 독점하며 살고, 꽃가루는 나비나 벌이 아닌 개미가 나른다. 꽃도 작고, 수술 하나, 암술 하나로 아주 간단하다. 가성비 최고의 잡초라 할 수 있다. 세상의 가치나 상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땅빈대처럼, 우리도 각자의 삶을 살면 좋지 않을까. 에밀리 디킨슨의 「난 아무도 아니야! 넌 누구니?」를 보자. 난 아무도 아니야! 넌 누구니? 너도 - 역시 - 아무도 아니니? 그럼 우린 한 쌍이 되네! 말하지 마! 그들이 떠벌릴 거야 - 너도 알잖아! 정말 피곤해 누군가가 된다는 건! 유명한 사람이 된다는 건 개구리 같아 자기 이름 알리려고 기나긴 유월 내내 귀 기울여 듣는 늪에 울어대는! 디킨슨의 시는 자연의 고요한 아름다움과 회복력을 노래한다. 그녀의 「나는 아무도 아니다! 당신은 누구요?」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땅빈대처럼 겸손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기쁨과 단순한 생활 속에서 진정한 성장과 회복력이 나온다는 점을 말한다. 땅빈대의 생존 전략은 인간들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첫째,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다. 키 큰 식물들이 햇빛을 받기 위해 경쟁하는 것과 달리, 땅빈대는 불필요한 경쟁 없이 자신의 길을 간다. 사회의 규범에 따라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필요한 것에 맞춰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준다. 둘째, 단순함 속의 탄력성이다. 땅빈대는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단순한 삶 속에서 우리는 강하고 유연해질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셋째, 겸손한 만족이다. 땅빈대의 꽃은 작고, 화려하지 않지만 효율성에 중점을 둔다. 작은 행동이 더 큰 목적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겸허함 속에서 만족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경쟁과 성장만을 중요시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땅빈대처럼 회복력 있게, 자신만의 길을 찾고, 조용하지만 심오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자연은 우리에게 개성을 존중하고, 단순함을 신뢰하며, 내면의 회복력을 꽃피우라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천국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내가 앉은 자리가 꽃자리다. 땅바닥이 천국이다. 땅빈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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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땅빈대(비단풀) - 땅바닥이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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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게 하는 ‘주인 교육’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누구나 학창시절에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를 읽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역경과 고비의 순간마다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하늘의 북극성과 같은 이정표 역할을 한다. 경쟁 체제의 교육에서 그저 앞만 보고 걸어와 인지적 비교⋅판단능력이 염려가 될 때, 이 소설은 위로와 격려가 되며 삶의 힘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한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바다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자연의 일부라 믿기 때문이다. 밤낮으로 꼬박 사흘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고, 상어 떼와도 거침없이 맞붙는다. 노인의 초인적 행동은 어부의 존엄을 갖춘 데서 나온다. 노인은 말한다. “난 될 수 있으면 돈을 빌리지 않고 싶구나. 처음엔 돈을 빌리지, 그러나 나중엔 구걸하게 되는 법이거든.” 도전과 고난의 바다는 같은 바다다. 그 바다 위에서 도전과 고난을 자신의 힘으로 치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뜻밖에도 바다는 어머니처럼 품어주기도 한다. 수많은 물줄기가 산과 계곡에서 흘러 내려와 개울과 내를 이루고 강을 지나 드디어 바다에 이른다. 우리 인생의 과정이 이와 같다. 결국 바다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드넓은 공간을 내주어 우리에게 무수한 보상을 베풀어 준다. 하지만 바다가 포효하고 거센 파도를 휘몰아칠 때는 감당하기 어렵다. 이를 헤쳐 나가는 힘과 용기가 필요하다. 청새치와 상어와 싸워 나가는 바로 그 힘과 용기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때 누구나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이는 지금 우리가 돌이켜 보아야 할,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진정한 바다의 주인이 되려면 우리는 먼저 우리 운명을 개척할 자신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최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일자리를 잃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등 집에서 쉬고 있는 청년 백수가 지난달 12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청년층 인구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은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일도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청년 비경제활동인구 역시 1년 전보다 1만5천명 증가한 420만 9천명을 기록했다. 이 중 별다른 활동 없이 '그냥 쉬는' 청년은 50만4천명으로, 2003년 통계 집계 이후 최대치다. 경제 성장의 둔화와 내수 부진, 제조업·건설업 불황, 기업들의 경력직·중고 신입 선호 현상 등이 복합적으로 겹치면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 백수'가 늘어난 것이다. 국가는 우선적으로 청년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그들에게 잠재력과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감나무 아래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면서 입만 벌리고 하릴 없이 있을 수는 없다. 자신의 운명을 직접 찾아 나서는 주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아이디어 하나만 있어도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 예컨대 사업 계획서를 가지고 귀농(귀어)을 하면 농산어촌 지자체 대부분은 상당한 비용을 지원하고 자립할 기회를 제공한다.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제 학벌 타파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모두가 가려는 길만이 정도(正道)는 아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택하는 것도 지혜요, 용기다.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개척할 수 있으려면 사고의 폭을 넓혀야 한다. 그러려면 책을 읽고 다양한 지혜를 쌓아야 한다. 이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목록1호여야 한다. 학창시절, 배움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책에 많이 노출되어야 한다. 사람이 책을 만들지만 책은 사람을 만든다. 어려서 책을 읽는 습관은 평생 든든한 자산으로 기능한다. ‘세 살 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 않는가. 어려서부터 책 읽는 좋은 버릇은 평생의 친구이자 스승이 될 수 있다. 흔히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말한다. 그 길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멀리서 어렵게 그 비결을 찾지 말자. 이는 학교에서 배움에 열중하는 가운데 책과의 친화력이 주는 선물임을 잊지 말자. 교육의 역할은 자명하다. 학교에서는 학생들 스스로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도록 교육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의 지향점이 되어야 함을 잊지 말자.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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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게 하는 ‘주인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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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경제와 정치에 대한 실질적 학교 교육 강화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현재는 민주국가와 자본주의가 세계를 이끌어 가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환경에서 숨을 쉬며 살고 있다. 그런데 한국 교육계는 마치 허공에서 살기라도 하는 듯이 경제와 정치를 되도록 학생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국어, 영어, 수학만이 최고의 공부라고 생각하게 하고 있다. 입신양명은 조선시대 많은 사람들의 꿈이었다. 근대국가로 오면서 학력은 국가와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했다. 봉건사회와 산업사회를 지나서 이제는 세계시민으로서의 민주시민과 경제가 세계를 지배하는 경제 세계화와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과거와 살아가는 환경이 획기적으로 달라진 것이다. 유교적 출세주의나 산업화 성장주의가 아닌 선진국의 경제와 민주적 공동체를 지닌 환경으로 전환되었다는 뜻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자본주의가 대세를 이루고 시대이다. 세계는 보수주의와 민족주의로 돌아서고 있다. 자국의 이익과 자국의 국민의 이익을 강조하고 있다. 살기가 어려워진 결과이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경제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정치에 대한 올바른 국민의 인식이다. 교육 현장에서 경제와 정치에 대한 교육은 수박 겉핥기로 보인다. 대학교육까지 받은 많은 사람들이 경제학과를 나오지 못하면 기본적인 경제 개념조차 희박하다. 경제는 삶의 중요한 기반을 이루고 생활에서는 정치가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기회비용과 경상수지, 디지털 화폐, 소비자신뢰지수, 유동성, 어닝쇼크, 공매도, ELS, 환차임, 모라토리엄, 매매계약에 대한 것을 많은 예시와 실질적인 토의와 토론으로 배워야 한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정치에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수업에 정당의 공약을 수업자료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순수하게 학생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우리는 그런 수업을 할 수 없다. 한국 정치에 대한 평가는 한국이 이룬 선진국 경제 수준과 동떨어진 꼴찌 근처에서 맴돌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교육에서 정치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 탓도 있을 것이다. 위험하다고 칼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 성장해서도 요리를 제대로 할 수 없다. 경제와 정치는 우리 일상과 밀접한 영역이다. 기준금리, 물가, 부동산, 환율, 무역에 따른 사회변화를 알아야 한다. 친환경 에너지와 ESG경영도 경제와 연관이 있다. 정치에 따라 새로운 사회 변화도 이루어진다. 우수한 몇 명의 결정만으로 국가 경제를 만들어가는 시대를 벗어나야 한다. 정치도 정치인 몇 명이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국민이 주권의식을 가지고 경제대국, 민주국가를 올바르게 세워가려면 우선 교육에서 그 국민에게 올바르고 실질적인 경제교육과 정치교육이 실현되어야 한다. 한국은 경제 대국이자 민주주의를 가장 빠른 시간에 보여 준 모범적인 혁신 국가이다. 대내외적으로 위기가 오고 있다. 경제에 대한 굳건한 국민 의식과 교양, 정치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주체성을 지닌 국민이 더욱 필요한 시대이다. 교육은 현실에서 유리될 수 없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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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경제와 정치에 대한 실질적 학교 교육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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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창의융합형 인재 육성을 위해 교사에게 필요한 역량은?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2022 개정교육과정은 디지털 대전환 시대가 필요로 하는 창의융합형 인재 육성을 핵심으로 한다. 하지만 우리 교육은 주어진 교과목과 교과 지식의 부적합성, 교과목과 교육 내용의 과다, 지속적인 개선 노력 부족 등으로 인해 정작 교육과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교육과정이 바뀌어도 각 교과의 기득권에 밀려 새로운 교과 운영으로 완전하게 틀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역대 정부는 한때 교육과정 수시개정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생각과 실행의 괴리를 겪으며 흐지부지한 상태에 머무르면서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못했다. 그렇다면 결과가 이렇게 된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우리의 교육과정 개편은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교육과정위원회의 구성에서 해당 교과 관련 전문가와 교사가 융합을 이루기보다는 교과의 이기주의를 내세우기 급급했다. 둘째,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구성을 살리지 못했다. 셋째, 교과 내용의 과다로 창의적 인재 육성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처럼 창의융합적 역량을 기르기 위한 교육과정 운영의 주요 장애물은 바로 교사가 교과 지식에 대한 이해를 뛰어넘어, 이를 활용하고 융합하는 교과서가 과다한 교과목의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교육과정 개정이 기존의 틀을 시대에 합당하게 구성하지 못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일정 시점이 되면 해당 법이 자동 폐기되는 교과목과 교과 내용 일몰제의 적용이 요구된다. 현 제도가 촉발한 문제점은 현 제도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면 교사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 먼저 교사는 각 교과의 핵심적 내용 간 상호 연계성, 학년 간 내용의 위계성을 이해하고 실천할 역량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학생이 통합된 시각을 가지고 융합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이는 교사가 수업에서 주도적 역할을 함으로써만이 가능하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창의성은 ‘모방의 모방’이라고 하듯이 기초 개념을 포함한 핵심 지식을 철저하게 이해하고 이를 응용하는 교사의 역량이다. 또한 교사는 학생의 학습 개선을 돕는 평가, 학생 스스로 하는 성찰적 평가 등 과정중심 평가에도 교육전문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때 순간순간의 과정 이해 확인 및 총괄평가 등을 통해 학생들에게 핵심 지식의 인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더불어 교사는 학생들이 배움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탐구학습 및 협동학습에 기꺼이 참여하고 적응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국가와 교육청은 교사가 이런 역량을 갖추도록 연수 기회를 제공하고 교사 전문학습공동체를 적극적으로 지원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여기에는 학급당 학생 수 감축 및 법정 교사 확충도 지속적으로 병행되어야 한다. 미국의 교육부 장관을 지낸 리처드 라일리는 “우리는 아직 발생하지고 않은 문제를 해결하고 개발되지도 않은 기술을 사용하며, 아직 세상에 없는 직업을 준비하도록 학생들을 교육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미래에 필요한 역량을 준비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방증하고 있다. 교사는 학생들이 창의력을 배양하기 위해 끈기와 인내력, 주어진 과제를 완수하려는 집념 등 창의력의 토대가 되는 역량을 끊임없이 계발해야 한다. 또한 창의적인 인재는 창의성이라는 필요조건과 따뜻한 인간애라는 충분조건을 갖추도록 교사로서의 고유 역할에도 책임을 다해야 한다. 교사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대비하는 방법으로 가능한 한 유연한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자는 노자 성인의 가르침을 제언하고자 한다. “봄날의 새잎은 부드럽고 가을 나뭇잎은 딱딱하다. 부드러운 것은 생명에 가깝고 굳어 딱딱한 것은 죽음에 가깝다. 상대의 주장이 나와 다를 때 화가 치민다는 것은 내가 굳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모두가 같은 길로 나아가더라도 급류를 차고 튀어 오르는 연어처럼 한 번 거슬러 올라 역행하는 용기와 행동이 필요하다.” 이것이 창의적 인재를 키우는 교사가 갖추어야 할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필수적인 역량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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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창의융합형 인재 육성을 위해 교사에게 필요한 역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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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바랭이 - ‘마디’를 만드는 일, 인생 성공의 비밀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바랭이는 농부들을 가장 귀찮게 하는 풀이다. 어쩌면 농부의 한 해는 ‘바랭이와의 한 판 승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랭이는 잡초의 여왕이다. 바랭이는 땅 위를 기면서 줄기 밑 부분의 마디에서 새 뿌리가 나 아주 빠르게 퍼져 나간다. 그래서 옛날 우리 부모님들의 허리가 휘도록 밭을 매게 한 잡초가 바로 이 바랭이 풀이다. 줄기를 옆으로 뻗으면서 뿌리도 함께 내리니 미리 뽑지 못하면 결국 뽑는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 바랭이가 독하고 질기지만 우리 어머니들은 이보다 더 독하고 질긴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독하고 억센 생명력과는 달리 바랭이는 단맛이 나는 풀이다. 그래서 소나 염소 등 초식동물들이 매우 좋아한다.(출처 : 뉴스서천(http://www.newssc.co.kr)) 대개 잡초의 생존전략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옆으로 퍼져가며 자신의 생활영역을 점점 늘려가는 진지확대형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위로 자라며 빛을 독점하면서 자신의 영역에서 우위성을 도모하는 진지 강화형 전략이다. 바랭이는 여왕답게 이 두 가지의 전략을 다 쓴다. 즉 넓게 트인 곳에서는 줄기를 옆으로 가듯이 뻗어가며 자신의 영역을 넓혀 가고, 라이벌의 작물이 있는 곳에서는 위로 뻗어가며 상대 누르기에 골몰한다. 이것이 바랭이의 생존전략이다.(출처 : 풀들의 전략) 그런데 바랭이의 생존전략 가운데 비밀이 하나 있다. 바로 줄기의 마디다. 바랭이는 줄기 가운데에 반드시 마디를 만드는데, 이 마디가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라면서 줄기 가운데 마디를 만들고, 거기로부터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뻗으면 뻗을수록 줄기 끝은 원뿌리로부터 멀어진다. 필요하면 마디에서 뿌리를 만들고 그곳을 통해 최전선에 물자를 공급할 수 있다. 이렇게 바랭이는 마디 뿌리를 이용하여 자꾸 줄기를 뻗어갈 수 있는 것이다. 멀리까지 자신의 영역을 확대해 갈 수 있다. 그래서 비바람이 거칠게 불어도 쓰러진다거나 꺾인다거나 하는 일이 없다. 인간에게 베이거나 뽑히는 일이 있을 때도 바랭이는 괜찮다. 마디에서 뿌리를 내리면 된다. 바랭이가 마디를 만들지 않았다면 잡초의 여왕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마디! 인생도 마찬가지다. 긴 인생을 알차게 살려면 마디를 두어야 한다. 인생의 마디는 무엇일까? 그것은 돌, 입학식, 졸업식, 성년식, 결혼식 등 인생을 살면서 거쳐야 할 통과의례다. 마디는 휴식이다. 대나무는 외부의 충격에도 부러지지 않는다. 마디가있기 때문이다. 삶의 마디마다 축제를 벌여야 한다. 그러면 삶이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축제가 없는 삶은 인간을 쉬 늙어버리게 만든다. 마디를 만들어 젊게 살자. 지속 가능한 삶은 마디가 있는 삶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어려운 고비를 만나게 되고. 그 고비를 넘어서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고비로부터 성장을 향한 재출발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생에서 마디를 만들어 고비가 될만한 행사를 많이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각종 이벤트, 페스티벌, 축제, 기념일 따위다. 부질없는 일처럼 보일지는 모르지만 그런 날을 잘 챙기는 것이 결국은 성공의 지름길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기념일은 생의 활기를 주기 때문이다. 1년은 12달이다. 1월에 세운 계획을 계획대로 행하지 못했을 때, 2월이 있다. 이런 식으로 각 달마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면 된다. 인생에서 마디를 만든다는 것은 인생의 마라톤에서 완주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히말라야산(8,848m)을 완등하기란 매우 힘들다. 전문등산가들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제 1지점, 제 2지점하는 식으로 일정한 구간을 나누어 등정한다. 한번에 쉼없이 등정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의 삶도 생각하기에 따라 히말라야산 만큼이나 길다. 바랭이는 베이거나 뽑히더라도 거기에 한 마디만 남아 있으면 거기에서 다시 시작한다. 역경을 넘는 바랭이의 비밀은 튼튼한 마디에 있다. 500~1,000페이지의 책을 앍으려면 책의 챕터별로 나누어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가 학교에서 온종일 공부하는 일도 지루하고 재미없다. 그래서 고등학교는 50분, 중학교는 45분 하는 식으로 수업 시간을 나누어 놓았다. 그렇게 하면 지루하지 않게 온종일 공부를 할 수 있게 된다. 재미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라도 마디를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바랭이 풀에서 배워야 할 전략이다. 바랭이의 마디 뿌리는 안정성을 제공하여 멀리 퍼질 수 있고 바람이나 비와 같은 외부 힘을 견딜 수 있게 한다. 인생에서 이는 기반을 무너뜨리거나 잃지 않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적응 가능한 전략과 지원 지점을 갖는 것의 가치를 시사한다. 또한 마디는 여러 위치에 뿌리를 내리고 다양한 지점에서 자양분을 끌어낼 수 있는 미니 지원 시스템 역할을 한다. 이는 우리가 아무리 멀리 나아가더라도 우리를 키우고 안정시킬 수 있는 강력한 연결과 지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중앙 집권과 지방 분권의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바랭이는 잘리거나 훼손되더라도 마디에서 다시 자란다. 이는 좌절에 직면했을 때 회복력의 가치를 가르쳐 준다. 바랭이처럼 튼튼한 기초가 있으면 아무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회복하고 새롭게 성장할 수 있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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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바랭이 - ‘마디’를 만드는 일, 인생 성공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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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비행기에 몇 개의 탁구공을 채워야 가득 찰까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비행기 안에 탁구공이 얼마나 들어갈까요’라는 내용을 면접에서 질문받으면 얼마나 당황할까. 바로 구글 회사의 면접 질문이었다. 얼마 전 구글 한국지사에 다녀왔다. 창업자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다 정보검색을 찾았다고 했다. 구글은 2명을 시작으로 해서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다. 정말 탁구공이 몇 개나 들어갈까. 답이 아닌 사고 과정을 보려는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자면 먼저 어떤 비행기인지, 승객은 있는지,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질문을 해야 할 것이다. 무조건 자신의 판단만으로 비행기 내부를 자기가 상상해서 판단하고 계산해서 수만 개의 탁구공을 계산하여 답변하면 불통의 이미지만 줄 뿐이다. 세상살이에 정답이 있는가. 답이 없는 인생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인재가 필요하다. 지식 분야에서는 인공지능을 당해낼 수 없다. 호기심과 질문이 인간을 성장하게 하는 방식이다. 질문하고 성찰하는 인재가 더욱 필요한 시대로 접어들었다. 질문을 해야 다양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 새로운 판단을 하고 성찰을 해야 한다. 시키는 대로 우격다짐으로 빠른 답이라도 내놓은 시대는 이미 저물어가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서 인간의 역할은 답변하는 위치에서 질문자로 전환되어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개인의 ‘질문 능력’을 교육하고 평가하는 것을 교육 과정에 포함해야 한다. 정답 찾기와 지식 암기의 기존 교육은 바뀌어야 한다. 질문을 찾는 능력은 인공지능 시대 개인의 역량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이다. 기존의 교육 시스템으로는 이러한 능력을 키울 수 없다.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질문하는 힘’을 키우는 새로운 교육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왕성한 호기심과 비판적 사고능력, 창의성을 얻을 수 있다. 그러한 능력이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핵심 능력이다. 차별과 혐오를 놀이로 삼는 학생들의 행동이 요즘 증가하고 있다. 학생들이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 혐오를 ‘유머’나 ‘장난’으로 소비하는 현상이 여러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다. 온라인에서 벌어졌던 혐오 정치가 교실까지 확산하고 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성찰이나 사고보다는 남들이 하는 장난을 군중심리로 따라 하고 있다. 그 결과에 따른 폐해는 심각하다. 국경없는기자회(RSF)는 2024년 5월에 세계언론자유지수를 발표했다. 대한민국은 2023년 47위에서 15계단 하락한 62위였다. 국경없는기자회는 매년 세계언론자유지수를 평가하는데 '좋은 상황(Good Situation), 만족스러운 상황(Satisfactory Situation), 문제적 상황, 어려운 상황(Difficult Situation), 매우 심각한 상황(Very Serious Situation)' 등 5개 영역으로 분류하는데 대한민국은 '문제적 상황(Problematic Situation)'에 속하고 있다. 질문하는 인간과 성찰하는 인간이 민주시민교육의 토대가 될 것이다. 시대는 인성과 창의성을 갖춘 성찰하는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교육자는 이 혼란한 세상에도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교육을 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할 사명이 있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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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비행기에 몇 개의 탁구공을 채워야 가득 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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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학교는 학생들에게 보다 허용적이고 민주적인 공간이어야 한다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학교는 학생을 교육하는 공간이다. 이는 실수나 잘못을 통해 학생 스스로 또는 교사를 통해 뭔가를 깨닫고 배우는 공간이 학교라는 의미다. 그런데 학교는 학생이 수업을 듣고, 받아쓰고, 반복해서 외우기를 제외한 뭔가를 하면 자꾸 제동을 당한다. 따라서 학교에 다닐수록 실수든, 잘못이든 뭔가 할 기회가 차단된다. 그뿐이랴. 만약 학생이 교사의 생각과 다른 행동을 했을 때는 심하게 야단을 맞거나 철저히 설득당하거나 무관심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학생들은 칭찬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혼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독한 자기 검열을 반복하니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때론 억울한 일을 당해 문제 제기라도 하면 ‘모난 돌’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그래서 학생은 ‘학습된 비관’이 생기고 침묵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결국 자유로운 시민이 아니라 굴종적인 시민으로 훈련되는 것이다. 이는 바람직한 민주시민 육성이란 교육의 목표와는 유리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학교는 ‘생활지도’라는 명분으로 이런 교육을 거의 반자동적으로 실시한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상황이 좀 나아졌다고 해도 보수성이 강하고 수구적 성향의 학교는 사회의 타 분야와 달리 변화의 속도가 대부분 늦은 편이다. 그런데 이조차 학교별, 지역별로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것이 이른바 그 학교의 전통적인 문화가 되고, 결과적으로 교사나 학생이나 사회적 불의와 부정을 보아도 무신경하게 되는 교육을 초래한다. 잠시 이해하기 어려운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모 중학교에서 시험 전 A교사는 교과 진도가 일찌감치 끝나 학생들에게 자습시간을 주었다. 그러자 B학생은 습관대로 휴대폰을 꺼내 음악을 들었다. 그런데 A교사는 학생의 행동을 ‘수업 시간에 휴대폰을 사용한 것’으로 간주해 압수했다. B학생은 다소 어안이 벙벙해 일단 쉬는 시간에 A교사의 오해를 풀며 사정해 보기로 작정했다. B학생은 A교사로부터 휴대폰 예절을 비롯해 ‘내 자습 시간에는 공부만 해야 한다’는 꾸중과 훈계를 받고 1~5일간의 압수 기간을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A교사는 자신의 담당 학급 복도 바닥을 청소시켰다. 이를 알게 된 담임교사 C는 성정이 여린 관계로 동료교사의 지도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했다. 결국 B학생은 A교사 학급의 복도 청소를 하고 휴대전화를 돌려받았다.” 이는 사건 자체가 매우 비상식적이고 비교육적이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는 학교 특유의 ‘칸막이 문화’로 인해 교사들 간에도 학생지도 방식에 큰 차이를 드러낸다. 이 사건 뿐만이 아니다. 교사에 따라서는 학급 학생이 자신의 지도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면 곧 바로 괘씸하다는 감정에 치우쳐 청소를 한 뒤에 10분~30분, 심지어는 그 이상의 시간을 학급 전체를 기다리게 하는 방식으로 학생들을 길들이기도 한다. 교사들은 이를 흔히 ‘생활지도’라 부르며 몇 번만 반복하면 학생들이 잘 따른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이는 득보다 실이 크다. 당연히 학부모가 민원 제기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학생들의 방과 후 계획에도 지장을 주는 연쇄적인 부정적 파급 효과를 유발한다. 그런데도 일부 학생들은 그런 담임의 행동을 “다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수용을 하며 길들여지기를 감수한다. 이렇게 우리의 학교는 아이들을 교육해 왔고 이에 대해 획기적인 개선 없이 오늘에 이르렀고 안타깝게도 지금도 교사에 따라서는 이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있다. 이는 일종의 가혹 행위를 즐기는 ‘사디스트’로 비교육적인 것은 물론 비인간적이다. 다양한 생각 자체를 억압하고 특히 청소년들의 다양한 의견과 건전한 비판의식을 차단함으로써 ‘바람직한 민주시민 육성’이란 교육목표를 크게 훼손한다. 학교는 학생들 사이에 발생하는 일들은 학급회나 학생회에 안건으로 위임해 자체적으로 이를 성찰하고 협의에 의해 결정도록 허용하는 방식의 교육을 널리 견지해야 한다. 이것이 학교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보다 배움에 이르는 공간으로 다가서고 자체적인 협의와 공론화의 과정에 따라 학생 자치능력을 최대로 키우는 민주시민교육의 구현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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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학교는 학생들에게 보다 허용적이고 민주적인 공간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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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부들 - ‘나’가 사라지면 ‘함께’라는 것이 살아난다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어릴 때 연못가에 가면 핫도그가 땅에 박혀 있는 모습의 식물을 본 적이 있다. 그냥 뽑아서 먹어도 될 것 같은 비주얼이었다. 자라서 보니 그게 부들이라는 식물이었다. 꽃가루받이를 할 때 부들부들 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외국의 어떤 사람이 부들 줄기를 먹었는데 식감이 젖은 마분지를 씹어먹는 것 같다고 했다. 부들은 갈대와 함께 하천의 수질 환경을 개선하는 데 쓰이는 주요 식물이기도 하다. 군락을 이루는 습지식물이라는 특징을 이용해 물을 여과하고 흐름도 조절해 준다. 또한 부들 군락은 하천에 사는 수많은 새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꽃말은 '거만'. 서양에서는 꽃이삭이 고양이 꼬리처럼 보여서 그런 꽃말이 생겼나 보다. 꼿꼿한 꽃대가 거만하게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습이라 붙여진 꽃말일지 싶다.(출처: 생생비즈 https://www.livebiz.today) 『시경』 「진풍(陳風)」 제10편 택피 3장(澤陂三章)에 아름다운 부들과 연꽃을 보고 사모하는 마음을 노래한 시가 있다. 연못가 저 언덕에 부들 연꽃 한창이네 멋있는 저 사나이 훤칠하고 근엄해서 자나 깨나 하릴없이 뒤척이며 지셉니다 ‘저 연못가 언덕에 피어 있는 부들과 연꽃처럼 아름다운 사람이여, 너로 하여금 내가 속상하고 병 된들 어떠하리오, 자나 깨나 네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눈물 콧물만 줄줄 흐르는구나.’로 해석된다. 부들을 남성에, 연꽃을 여성에 비유하며 조화롭게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부들과 연꽃이 피어 있는 연못가에서 한 여인이 멀리 떨어져 있는 남자를 그리워한다는 내용이다. 부들의 잎과 줄기의 생김새가 호탕한 성격을 갖고 있어 남성적이고, 연꽃의 꽃잎은 여성스럽다는 점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가까이 있으면 좋을텐데, 나는 홀로 있으니 눈물만 흐른다고 그리운 마음을 호소하고 있는 시다. 그 옛날에도 문학적인 소재로 부들이 쓰였다는 방증이다. 부들은 ‘여우의 촛불’로도 부른다. 부들 이삭에 알코올이나 석유 같은 걸 충분히 적셔서 불을 붙여보면 마치 촛불과 같은 예쁜 불꽃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다. 부들은 수술과 암술이 너무 가까워 수술의 꽃가루가 암술에 묻기 쉽다. 그래서 수꽃이 지고 나서 한참이 지난 후에 암꽃을 피우게 된다. 또한 부들은 풍매화이기 때문에 부들 씨앗의 아래에는 부들의 이삭털이라 하는 흰 털이 붙어있다. 마침내 때가 되면 이삭 안으로부터 부들 씨앗이 솟아오르듯 나타나 흰색의 이삭털을 이용하여 바람을 타고 날아올라 간다. 부들 이삭 하나에는 씨앗이 대략 35만 개 이상 들어있다. 작은 이삭 하나 속에서 35만 개 이상의 생명 활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삭 하나에 35만 개의 꽃이 모여 피기는 쉽지 않으리라, 그래서 부들은 단순한 구조와 크기도 서로 양보하는 것처럼 작게 만들고 있다. 35만 개의 꽃이 모여서 틈 하나 없는 이삭 하나를 이루고 있다. 힘을 모은다고 하는 것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지구에 살고 있는 65억 인류에게 부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면 어떻게 65억 인류가 하나로 모아질까? 흔히 우리는 하루를 낮과 밤으로 경계 짓는다. 낮은 가시성과 더불어 좋은 것으로, 밤은 어둠과 함께 나쁜 것으로 관계지어 서로 반대쪽에 놓는다. 그러나 실제는 다르다. 하루는 태양을 기준으로 한 지구의 자전의 두 측면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실제는 하나를 가지고 둘로 나누어 경계 짓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즐거움과 고통, 성공과 실패, 선과 악에 대해 언어로 경계 짓고 한쪽의 삶에 집착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스트레스와 불만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는 우리가 이원성의 한 면에 집착하면서 다른 면을 거부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계곡 없는 산을 가지려 하는 것과 닮았다. 악 없는 선, 고통 없는 쾌락, 실패 없는 성공은 이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해안선을 보라. 그 경계 안에는 바닷물과 모래가 뒤섞여 있다. 경계는 언어가 만들어낸 마법의 환상에 불과하다. 극과 극이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불화는 조화로 사라지고, 투쟁은 춤으로 변하며, 오랜 적들은 연인이 된다. 우리는 언어가 준 마법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면 무한한 자유의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실재하는 세상은 무경계다. 경계는 언어가 준 마법의 환상이다. 실제 위에 덧씌운 경계 속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그러면 인류는 하나가 된다. 이진경이 『노마디즘2』에서 말했다. “모든 사람의 적은 자아(自我)다. ‘나’가 사라지면 ‘함께’라는 것이 살아난다.”라고.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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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부들 - ‘나’가 사라지면 ‘함께’라는 것이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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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의 클래식 스토리] 기다림의 시간들
- [교육연합신문=전미경 칼럼] 연주를 하러 다니다 보면 참으로 많은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어떤 곡을 연주하는 시간보다도 어떨 땐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 때도 있으니 나의 삶에서 기다림이란 음악의 한 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크게는 연주하는 장소까지 오고 갈 때의 기다림, 연주 순서를 기다릴 때의 기다림, 세부적으로 들어가 본다면 연주하는 순간순간에도 악장과 악장 사이의 기다림, 쉬는 부분이 나올 때, 그리고 나의 악기가 다시 나오는 부분을 연주할 때까지의 작은 기다림까지. 삶이 기다림의 연속이다. 굳이 연주자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림에 쓰고 있을까?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를 기다린다던가, 로또에 당첨될 날을 기다릴 수도 있고 자신이 목표한 소망이 이뤄질 날을 기다리기도 하고 다 열거하지 못할 정도로 많을 것이다. 음악사에서도 보면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곡들도 있고 오랜 시간의 기다림과 수정 끝에 세상에 나오게 되는 곡들도 있다. 그리고 오랜 시간 기다렸지만 세상의 빛을 미처 보지 못하는 곡들도 있다. 핀란드의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의 교향곡도 우리가 아는 7곡은 있지만 나머지 한 곡은 세상에 나오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향곡의 작곡가로 알려질 만큼 그의 7개의 교향곡은 훌륭하며, 그 자신도 교향곡은 인생의 각 단계에 대한 신앙고백과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8번째 교향곡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대단했던 것 같다. 마지막 교향곡 7번도 작품의 구상부터 완성까지 거의 8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 걸 보면 역시 예술작품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어쨌든 7번째 교향곡을 완성한 것이 그의 나이 59세 때인데 그 이후로 91세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는 신곡을 세상에 내놓는 것에 큰 부담을 느낄 만큼 예민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8번째 교향곡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기다렸던 것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나오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해지는 얘기에 의하면 작곡가 자신의 맘에 들지 않아 스스로 벽난로에 던져 태워버렸다고 한다. 시벨리우스는 그의 인생의 마지막 30년 동안 이전의 곡들보다 더 나은 곡들을 만들어야만 한다는 굉장한 부담감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 삶도 오래 준비하고 시도하고 노력하지만 결국은 긴 기다림에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지 않은가. 기다림이라는 오랜 시간이 반드시 해피 앤딩의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닌가 보다. 사람들은 기다림에 대해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 긍정적인 시각도 있을 것이고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즉각적인 결과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기다림에 조급함을 가지기도 하며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급하게 생각하는 것이 어떤 문제를 악화시키거나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만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기다림은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우리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을 통해 인내심을 배우고, 사색하고, 자기 성찰의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때로는 희망을 동반하기도 하지 않던가. 결국은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태도와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 첼리스트 전미경 ◇ 가천대 관현악과 졸업(첼로전공) ◇ 서울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수석 역임 ◇ 금천 교향악단 부수석 역임 ◇ 의왕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 강동 챔버 오케스트라 단원 ◇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첼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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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의 클래식 스토리] 기다림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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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애국과 인간 존엄 교육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일반적으로 위정자들이나 정치인들이 애국을 거론할 때는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삶을 증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른바 가면을 쓰고 둔갑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실제로는 국가를 해치는 매국의 속성이 배어 있다. 왜냐면 뒤에서는 자신과 집단의 이익과 권력을 철저히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국민 전체를 폄훼하고 상황을 스스로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는 위정자들이 국민을 그저 ‘혜택 받는 대상’으로 전락시키기 위해 오랫동안 구가한 수법이다. 따라서 개개인의 고통과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분투는 은폐되고 개인은 말없이 희생되기 마련이다. 이런 애국은 충성과 당위만을 강요하고 국민 개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위정자들이 망치는 나라를 국민이 되찾고자 하는 것은 언제나 그 이면에 자기 삶의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열망이 굳게 내재한다. 개인의 존엄은 누구도 뺏을 수 없고 함부로 폄훼할 수 없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의 제 1조 1항이다. 여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제10조에 대해 의무를 진다. 결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존중은 바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주춧돌인 것이다. 우리의 뿌리는 이 땅에서 일군 고단한 국민으로서의 삶에 있다. 따라서 우리의 가치는 위정자가 규정할 수 없다. 우리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매우 당연한 일이지만 누구도 우리 전체를 결코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국민 개개인의 삶을, 서로를, 지극히 존중해야 한다. 일찍이 시인 김수영은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고 일갈했다. 누구에게는 더러웠는지 모르지만 고단했던 우리에게는 지금 이 시대가 그 자체만으로도 존중받을 전통과 역사라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우리 삶 자체는 한없이 가치 있고 소중하다. 우리는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있지만 더 이상 누군가에게 고개 숙이거나 지배당할 수는 없다. 이 땅에서 우리 개개인이 살아 온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존중받고 사랑을 받아야 한다. 왜 위정자와 정치인들이 만들어 놓은 진흙탕에 빠져 험난한 탈출을 구가하고, 가슴앓이하며 절망 속에서 한숨을 쉬어야 하는가? 우리는 이제 그만 여기서 멈추어 저 멀리 남미와 아프리카 국민들처럼 퇴락한 국가에서 살아야 하는가? 그것도 부족해 서로를 증오하고 혐오하며 살아야 하나? 인간 개개인의 존엄을 어디서 다시 찾아야 하는가? 지금 우리는 이 땅에서 하루하루 평온하고 안정된 호흡을 하며 살 수가 없다. 대통령부터 자국민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싹 다 정리하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 전에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 국민과 더불어 평화스럽게, 상호 존중을 하면서 존엄한 인간답게 살 수는 없는가? 왜 이렇게 국가를 위한다고 하면서, 애국을 주장하면서, 나라를 매국으로 몰고 가는가? 인간에 대한 존엄 의식이 없고, 인간을 최고의 목적으로 대우하지 않고, 출세와 성공, 권력 지향의 수단으로만 삼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 교육이 배출한 최고의 엘리트가 아닌가? 그런데 어찌 사람이 그 모양인가? 일치와 사랑을 말하는 많은 종교인들조차 등을 돌리는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우리의 헌법에서 인간의 존엄을 찾자.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의 핵심이다. 세상이 불만족스러울 때 세상을 바꾸는 힘은 어느 개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국민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개인은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국가에 살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인간으로서 최고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도록 인간 존엄 교육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삶이 추구하는 행복이고 인간의 권리다. 가면의 탈을 쓰고 애국을 강요하는 나라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넘치는 나라를 우리 모두가 만들어야 한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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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애국과 인간 존엄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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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바람개비와 산삼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축제를 하는 곳이나 관광지에 가면 바람개비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바람개비는 자기 의지로 혼자 돌지 않는다. 바람이 불면 돌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서 있다. 길가에 죽 늘어서서 관광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바람개비의 삶에 고민은 없다. 그저 바람에 따라 자신의 몸을 열심히 움직이면 된다. 고장이 나는 순간까지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바람개비의 숙명이다. 바람개비의 삶은 기계적 삶이고 순종적인 삶이고 사색 없는 삶이다.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일면 부지런하게 보이지만 바람개비의 삶에서 진실함을 느끼기는 힘들다. 신나게 도는 바람개비는 단지 바람이 많이 분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고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현란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바람이 그치면 바람개비는 혼자 돌지 못하고 돌고 싶은 의지도 없어 보인다. 다만 축제를 위해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바람개비처럼 사는 사람이 있다. 고민도 생각 없는 편안한 삶. 월급이라는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삶. 그런 사람은 주어진 일만 하면 자신이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 바람이 역풍이든 순풍이든 그저 돌기만 하면 된다. 기계와 같다. 폐기가 될 때까지 그저 바람에 순응하며 살다가 낡아지면 폐기된다. 직장에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하지만 자신의 성장에는 관심이 없다. 축제장의 바람개비들은 빛깔이 원색으로 화려하다. 그 화려함이 내면의 허전함을 더욱 커 보이게 한다. 산삼은 새가 삼의 씨앗을 먹고 날아가다가 떨어진 씨앗에서 자연 발아한 삼이다. 씨앗이 습하고 적절한 곳에 떨어지는 확률은 매우 적다. 그러한 곳에 떨어졌어도 혼자서 곰팡이균과 수분과 햇빛과 많은 위험을 오롯이 오랜 기간 견뎌야 한다. 인삼은 온전히 인간의 재배로 밭에서 키워진 것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의 손이 간다. 장뇌삼은 인삼을 산에 옮겨서 심어 키우거나 인삼의 씨를 산에 뿌려 키운 인삼을 통칭한다. 다시 말해 사람 손으로 산에서 재배한 인삼을 말한다. 결국 멀리 떨어져 있어도 산삼과 다르게 관리하고 통제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고난이 산삼의 향을 짙게 하듯이 인간에게도 고난은 깊은 성찰과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 현대는 모든 것이 자동화하고 편리한 것을 우선한다. 그러한 시대의 양상이 인삼이나 바람개비 같은 인간을 양산하고 있다. 공장에서 물품이 나오듯이 쉽고 값싸고 보람이나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삶을 만들어 낸다. 인간에게 도전과 고난과 역경은 깊고 성숙한 인품의 바탕이 된다. 살면서 어려움을 피하고 쉽게 풍족하고 편안한 삶을 추구하다 보면 껍데기만 남게 된다. 어느 순간 문득 자신을 돌아보면 공허함과 허무함만 느끼게 된다. 산삼은 자라는 속도가 인삼보다 훨씬 느리다. 산삼은 인삼보다 약효가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인삼은 빠르게 자라고 크고 굵다.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쉽게 인간을 맞춤형으로 재배하려는 인식이 몰려오고 있다. 바람개비의 인생을 살 것인가. 산삼의 인생을 살 것인가. ▣ 김홍제 ◇ 충청남도천안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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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칡 - 정작 칡은 갈등하지 않는다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구상 시인의 「꽃자리」란 시를 보자.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엮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주어진 조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탈출하고 싶은 바로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 자리가 행복을 가져온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해도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어느 곳이든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자기가 앉은 자리가 꽃자리가 된다. 칡은 낮잠을 자는 식물로 상당히 게으른 풀이다. 빛이 너무 강하면 광합성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칡은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에는 잎을 세워 지나치게 강한 햇살을 피한다. 또한 밤이 되도 광합성을 할 수 없다. 잠을 자면서 광합성을 할 수 있는 것은 ‘입바늘’이라 하는 구조를 잎의 아랫부분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효율 높게 햇빛을 받아들인다. 칡꽃의 꽃말은 ‘사랑의 한숨’이다. 꽃말답게 산이든 들이든 정원이든 일단 칡에 잡히면 한숨만 나온다. 그러나 칡의 열매는 산속 굶주린 새들의 먹이가 되고 숙취 해소에도 좋다. 칡은 대단히 빨리 자라는 잡초다. 나무도 타고 나무를 탈 수 없는 환경이 되면 칡은 바로 땅 위로 줄기를 뻗어간다. 세상의 나무들이나 잡초들이 하늘로만 곧게 자랄 생각만 한다. 그래서 낭패를 보는 일이 생긴다. 칡은 생각을 바꾼다. 위로 올라갈 수 없으면 땅을 본다. 곧장 땅 위로 줄기를 뻗는다. 2022년 방송(tvN 토일 드라마)되었던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한 장면이 떠오른다. 옛 애인이었던 동석(이병헌 역)을 찾아 제주에 왔다가 떠나는 장면에서, 동석은 자기처럼 후회하지 말고, 나중이 아닌 현재를 바라보라며 선아(신민아 역)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준다. “아버지 배 타다 죽고, 동희 누나는 물질하다 죽고, 엄마는 매일 바다만 봤어. 바로 등만 돌리면 내가 있고, 한라산이 저기 떡하니 있는데. 이렇게 등만 돌리면 아버지, 동희 누나, 죽은 바다도 안 볼 수 있는데...” 하며, 앞만 바라보는 선아에게 뒤를 보면 선아 편인 자신도 있다며 조언해 준다.(우리들의 블루스 10회) 우리는 삶을 살면서 수많은 갈등을 한다. 그런 갈등에 함몰되면 삶 자체가 망가진다. 그럴 때는 고개를 돌려 뒤를, 옆을, 아래를 바라보라. 거기엔 갈등이 없는 세상이 펼쳐져 있다. '갈등(葛藤)'은 칡과 등나무의 관계에서 나온 말이다. 인간의 삶에서 갈등이 없으면 삶 자체가 맹맹하다. 싱겁다. 그래서 소설에도 갈등 구조가 있지 않은가. 갈등이 없으면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춘향이와 이몽룡이 만나서 서로 사랑하고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살다 죽었다”라고 한다면 누가 『춘향전』을 읽겠는가. 칡과 등나무의 갈등이 아무리 심해도 해소할 방법이 있다고 한다. 두 덩굴을 조금 느슨하게 감아 올라가게 해놓으면, 갈등을 해결하고 사이좋게 공생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도 이런 방법이 없는지 지혜를 모아야 하지 않을까. 갈등 속에서도 여유와 위트를 잃지 말자.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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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칡 - 정작 칡은 갈등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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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교원 감축은 교육개혁 의지의 실종과 같다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2025년 새 학년을 앞두고 17개 시⋅도 교원 정기 인사가 속속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교육개혁’을 부르짖는 정부의 개혁 의지는 있기나 한 것인가? 아니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무지의 소치인가?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정부의 조치가 반복되고 있다. 차라리 교육개혁이란 말을 하지나 말지, 하는 아쉬움과 절망감이 압도한다. 이는 ‘학령인구가 감소하는데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도 당연히 줄여야 한다.’는 단순 사고에서 한 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문제가 이처럼 간단한 것이라면 누가 교육문제와 교육개혁을 언급하겠는가? 최근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올해 초중등교원의 정원이 3000명 가까이 줄어든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1월 31일 이런 내용을 담은 지방교육행정기관 및 각급 공립학교에 두는 국가공무원 정원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교원정원 감축은 2022년 1,089명, 2023년 3,401명, 2024년 4,296명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올해 역시 2998명 감원이다. 교원 정원 산정 기준을 '학급당 학생수 20명 이하'로 설정할 때 지난해 학급당 학생수가 21명 이상인 초·중·고(일반고) 학급은 전체의 71.7%에 달하며, 26명 이상인 학급도 32.1%에 이른다. 이런 교원의 정원 감축은 교육부가 아닌 기획재정부 및 행정안전부 소관이다. 물론 교육부의 자료를 근거로 하겠지만 실질적인 담당 부서에서 초중고 학교 현장에 대해 느끼는 인식과 현실 감각은 크게 다를 것으로 본다. 이는 언뜻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만 보이는 각종 수치와 예산에만 집중해 탁상공론식으로 짜 맞춘 것이라 믿기에 여기에 과연 개혁이란 국가적 대과업에 대해 접근하는 자세와 태도, 즉 영혼이 없는 좀비의 행태로 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흔히 ‘정치는 생물’과 같다고 말한다. 이는 교육에도 같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교육이 단지 숫자 놀음이나 퍼즐 맞추기와 같은 즐기는 게임이라면 누가 교육을 국가백년대계라 말하고 교사에게 사도(師道)를 요구하고 미래 세대에 대한 사랑과 봉사, 헌신을 말하겠는가? 우리는 만만한 천연자원조차 하나 없는 자연적 환경에서 오직 인재 육성에 국가의 명운을 걸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이 만큼 사는 것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에 진입한 것도 ‘교육의 힘’이라는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는가? 요즘은 전국에 걸쳐 학교를 떠나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이는 거두절미하고 우리의 학교 환경에 우려와 걱정이 앞선다. 특히나 유능한 2030 MZ 세대들이 처우 및 교권에 대한 불만으로 교단을 등지고 있다. 또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일당백의 중견교사들도 악화된 ‘교권추락’과 ‘교사 때리기’에 절망해 학교를 떠나고 있다. 그 자리를 비정규직(기간제 15.4%) 충원이 학교마다 전쟁을 치르듯이 학년 내내 지속되고 있다. 심지어 교과에 따라서는 한 학년에 정규직이 한 명도 없이 전원 기간제로 채우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현재 우리 학교들의 민낯이다. 대도시의 과밀학급(학생 수 28명 이상), 과대학교(학년 당 12학급 이상)는 여전하다.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서울만 해도 13.2명이지만 강남구와 서초구는 각각 14.7명, 15.0명이다. 잠시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덩치가 큰 학생들 32~34명이 가득 찬 교실을 상상해 보라. 거기엔 숨조차 쉴 공간의 여유가 없다. 그뿐이랴. 학생 식당이 없어 먼지가 풀풀거리는 교실에서 중식 배식을 하는 학교도 많다. 그 속에서 담임교사들은 제 때에 식사도 못하고 중식지도를 한다. 가장 중요한 교육 문제는 학생들이 교사와 한 마디도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하교를 하는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많은 학생들에 비해 교사 수가 적기 때문이다. 가장 단순한 사례지만 교사의 부족으로 교육의 질 저하는 심각한 상태다. 고민이 많은 질풍노도의 청소년들에게 개별적인 따뜻한 상담 기회조차 제공할 수 없다. ‘콩나물 교실’에 교사가 부족한 서울 등의 대도시 학교들은 개인별 맞춤식 교육은 먼 나라 얘기다. 단지 숫자 맞추기로 교원 감축을 함으로써 교육개혁의 의지가 상실한 것에 우려가 크다. 학령인구 감소보다 교사 정원 감축 속도가 더 빠른 현실에서 부디 법정 교원 정원만이라도 채우는 교육개혁을 속히 실행해 안정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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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교원 감축은 교육개혁 의지의 실종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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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달맞이꽃 -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밤의 촛불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이해인 수녀님의 「달맞이꽃」을 보자. 당신은 아시는지요? 달님 당신의 밝은 빛 남김 없이 내 안에 스며들 수 있도록 이렇게 엷은 옷을 입었습니다 해질녘에야 조심스레 문을 여는 나의 길고 긴 침묵은 그대로 나의 노래인 것을, 달님 맑고 온유한 당신의 그 빛을 마시고 싶어 당신의 빛깔로 입었습니다 끝없이 차고 기우는 당신의 모습 따라 졌다가 다시 피는 나의 기다림을 당신은 아시지요? 달님 - 이해인, 『시간의 얼굴』(분도출판사, 1989) 당신은 하루 중에 낮이 좋은가? 밤이 좋은가? 위 시를 읽고 있으면 밤이 낮보다 좋을 것이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라는노래가 있다. 이 노래는 1996년에 발표된 ‘배영준’ 작사 작곡의 곡으로, 발매 이후 지금까지 오랜 사랑을 받아온 곡이다. 최근에는 뉴진스가 리메이크해 불러 더욱 유명해졌다. 밤은 사랑을 위한 시간이다. 아름다운 밤을 만드는데 달맞이꽃도 한몫을 한다. 밤에만 꽃을 피운다고 하여 달맞이꽃이라 한다. 어둠 속에서 산뜻한 느낌이 드는 노란색 꽃을 피운다. ‘밤의 촛불’이란 독일 이름 그대로다. 달맞이꽃의 꽃말은 ‘기다림, 말 없는 사랑, 밤의 요정’이다. 기다림은 애달프고 아름다운 일이다. 달맞이꽃은 해가 저물기를 기다렸다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일제히 꽃을 피운다. 마치 해가 지고 어둠이 밀려오면 활동을 개시하는 좀비처럼. 달맞이꽃의 생존전략은 경쟁을 피하는 데 있다. 낮의 격렬한 경쟁을 피해 큰달맞이꽃은 경쟁 상대가 적은 밤에 꽃을 피우는 길을 택했다. 밤은 벌레의 수도 적지만 경쟁이 되는 꽃도 적기 때문에 벌레를 독점할 수 있다. 진한 포도주 향기로 참새나방을 유혹하여 꽃가루를 옮기는 전략이다. 꽃가루는 끈기 있는 실로 이어져 꽃가루가 실처럼 이어서 딸려 나온다. 이 장면을 보면 기다린만큼 그리움은 깊어지고 그 뒤를 잇는 이별이 꼭 이런 느낌이리라. 깜깜한 어둠 속에서 노랗게 핀 꽃을 보고 있노라면 꽃이 하나의 인격체 같다. 높은 인품과 기품을 함께 지니고 있는 선비같은 꽃이다.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정의의 길을 홀로 꿋꿋이 가는 모습을 본다. 기다린다는 것은 수동적인 행동이다. 불안한 감정에 빠져드는 일도 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품 있게 기다리고 있으면 그것이 비록 작은 풀 한 그루에 지나지 않더라도 거대한 산과 같은 존재감을 뿜뿜 내비치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큰달맞이꽃과 같은 인물은 탱크맨이다. 탱크맨은 흔히 무명의 시위자로 부르는, 1989년 6월 5일 중국에서 일어난 톈안먼 사건 직후 천안문 광장 방면에 있는 거리에서 전차의 앞길을 가로막는 영상에 등장하는 남성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천안문 광장에 전차 18대가 행진하던 도중, 맨 앞에 있던 전차가 그를 피해 전진하려고 하나 계속 전진을 막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당시 영국의 언론 선데이 타임스에서는 19세였던 왕웨이린(王維林)이라고 보도했고, 본명이 장웨이민(張為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출처: 위키백과)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1979년 12·12 군사 반란 당시 육군 수도경비사령관(소장 계급)이었던 장태완 장군이 그러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전두환(황정민 분)과 유일하게 맞섰던 장태완(정우성 분)의 모습이 큰달맞이꽃에 어른거린다. 비록 실패했지만 그들의 어둠의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품 있는 정의로운 행동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모범이 된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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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달맞이꽃 -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밤의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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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권력과 폭력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권력과 폭력은 어떻게 다른가? 강도가 든 총은 무서운데 경찰이 들고 있는 총은 왜 무섭지 않은가? 폭력의 시대를 걱정했던 바가 있다. 편협한 편가르기와 알고리즘에 의한 상대방에 대한 증오가 싹틀 때부터 그 조짐은 보여왔다. 상대방의 폭력은 민주주의 파괴이지만 자신들의 폭력은 방어권이라는 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나는 여러분에게 충고합니다. 친구들이여 벌하고자 하는 충동이 강한 사람들을 모두 불신하십시오.’ 이 문장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니체는 처벌 욕구가 강한 사람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거나 정당화하려는 욕망이 있으며 이는 정의를 이루기보다 오히려 불의와 폭력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경제선진국에 들어서던 한국에게 고소와 고발을 남발하는 정치는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부분이다. 교육은 학교만 하는 것이 아니다. 미디어와 사회가 주는 교육이야말로 실제적인 산교육이다. 다른 존재를 포용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서로 다르다는 것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보완의 대상이어야 한다. 화엄경의 핵심도 다른 것을 포용하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갈등이 있다고 다른 쪽을 제거하면 세상은 무너진다. 공멸한다는 것이다. 전쟁은 항상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고 후유증도 깊었다. J.M.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라는 소설에서는 인간성과 권력의 대립을 통해 폭력의 본질과 권력의 잔혹함을 말하고 있다. 쿳시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두려움과 편견을 통해 만들어내는 ‘적’이 얼마나 허상적이며 폭력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경고하고 있다. 이념이 만들어내는 사랑은 고귀하게 보이지만 거기에는 반성과 사랑이 없다. 그러므로 위험한 사랑이다. 거짓 권력의 정신에는 사랑이 없다. 욕망만 있을 뿐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1928~2016)가 1990년 펴낸 『권력이동』에서는 농업사회(제1물결)에서 산업사회(제2물결), 정보사회(제3물결)로 옮겨가면서 권력이 이동하는 현상을 탐구했다. 사회를 통제하는 힘은 물리력과 부에서 지식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제 법에 의한 판단이 권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다. 국가 권력은 국민 구성원의 합의된 약속이며 곧 국가 권력은 법의 형태로 발현되고 국가 권력자는 이 법을 실행하는 자이다. 이를 법치주의라고 한다. 서로를 견제하고 수용하고 포용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의 지혜이다. 이미 오랜 기간을 통해 검증된 방법이다. 학교에서 체벌이 사라진 것도 그 방법이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물론 어려운 길이다. 쉬운 폭력의 길이 아닌 어렵더라도 사람다운 길을 가야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생각은 결국 전 세계를 장님으로 만들 뿐이다.’ 이 말은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우리가 문명사회로 오면서 쌓아온 것은 평화적인 방법을 통한 갈등의 협상이다. 그것이 폭력이었다면 가장 쉬운 야만의 길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천안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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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학교는 ‘양심 교육’에 보다 집중해야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옛적에 우리는 ‘양심에 털 난 놈’, ‘양심과 엿 바꿔 먹은 놈’ 등 양심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하곤 했다. 또한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르게 하라’는 말로 정직하게 살 것을 권유함으로써 양심적인 행동을 강조했다. 최근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올해 첫 자신의 저서인 「양심」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양심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양심을 “마음 속 불편하게 꿈틀거리는 그것”으로 규정하고 본인이 직접 양심에 따라 행동했던 여러 일화들을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다. 필자는 본고에서 우리가 왜 학교에서 ‘양심 교육’이 필요한가를 밝히고자 한다. 다시 최 교수 이야기다. 그는 스스로 ‘얼어 죽을 양심’이라 말하며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겪을만한 온갖 탄압을 다 겪었으며 때로는 전국 곳곳에서 쉬지 않고 걸려 오는 전화로 수없이 쌍욕을 들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다행히 감옥살이는 피했지만, 계좌 추적, 세무조사, 연구비 박탈 등을 감내해야만 했다고도 밝혔다. 이처럼 양심은 말처럼 쉽지 않으며 특히 양심에 근거한 행동이 불러오는 결과는 이해타산에 따라 사람들로부터 극과 극의 뒷감당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심은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와 국가를 지탱하는 근간이라 할 수 있다. 일찍이 맹자 성인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성을 구분하여 4단으로 언급했다. 이는 곧 옳고 그름을 가리는 시비지심(是非之心)과, 타인에 대해 연민의 마음을 갖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인간의 옳지 못한 행동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 그리고 겸손히 마다하며 받지 않거나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인 사양지심(辭讓之心)이 그것이다. 성인은 이런 4가지 마음이 없으면 인간이 아님을 주장했다. 왜냐면 모두가 그 바탕에 인간으로서의 최소의 양심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자는 성선설의 효시(嚆矢)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제 양심을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양심이란 단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학자들은 사회에서 언어가 사라지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단어의 쓰임새가 아예 없어졌거나 또 하나는 다른 단어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라 한다. 서두의 최 교수가 양심을 대체할 단어를 억지로 찾아낸 게 ‘쪽팔리다’였다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양심을 강조하고 나선 데는 '공평+양심=공정'이란 등식을 서울대 졸업식 축사에서 말했던 것으로 올라간다. 즉, 양심을 빼고는 공정을 얘기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양심을 말하는 사회로 되돌려야 한다. 특히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의 양심 회복은 그 무엇보다도 시급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우리의 단편적인 교육의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어느 부모는 자신의 딸이 외국인 노동자의 아이와 손을 잡고 내려온 후에 즉시 딸의 손을 떼어낸 뒤 아이의 손을 물티슈로 닦던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이는 우리 사회가 글로벌 인재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괴물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깊이 성찰을 요하는 대표적 사례다. 양심, 말로는 쉽지만 행동은 참 어렵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려서부터 교육을 통한 양심적인 행동을 보다 습관화하고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현실은 철저하게 개인 기준으로 양심을 저버려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을 다 속여도 딱 하나는 속일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자신의 양심이다.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을 못 속여서 불편해하다가, 시차를 두고 올바른 선택, 올바른 행동으로 복귀하지 않는가? 이는 양심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기반이자 주춧돌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학교에서 ‘공부나 잘 해!’라고 말하며 학생들의 모든 것을 무조건 감싸고 도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게 자란 엘리트들은 독불장군이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불통과 고집, 오만과 무능, 무도의 인간으로 이 사회에 배출되고 있다. 그들이 보여주는 극단적 이기주의와 패권주의, 맹목적인 권력추구는 오직 성공과 출세의 교육 가치에만 몰입되어 한 치의 양심 교육조차 부재가 가져온 결과물임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 누가 이를 감히 부정할 것인가?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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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학교는 ‘양심 교육’에 보다 집중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