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6-10(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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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칼럼/기고 기사

  • [기자수첩] 부산남구청장 선거…1216표 차가 남긴 과제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부산 남구청장 선거는 개표가 끝나는 순간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던 초접전 승부였다. 최종 결과는 더불어민주당 박재범 당선인의 승리였다. 승패를 가른 숫자는 불과 1216표. 득표율 차이로는 0.87%포인트에 불과했다. 이 숫자는 단순한 선거 결과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선거는 어느 한쪽의 압도적인 승리가 아니었다. 남구 주민들은 각자의 생활권과 지역 여건에 따라 서로 다른 선택을 했고, 그 다양한 민심이 모여 최종 결과를 만들어냈다. 권역별 표심을 살펴보면 남구의 민심은 분명하게 갈렸다. 대연권에서는 박재범 당선인이 우세를 보였고, 우암동과 감만1동 역시 박 당선인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반면 용호1동과 문현권에서는 김광명 후보에 대한 지지가 강하게 나타났다. 특히, 용호1동에서 김광명 후보가 기록한 2619표 차의 우세는 이번 선거에서 가장 인상적인 결과 가운데 하나였다. 이에 비해 박재범 당선인은 용호2·3·4동과 대연권, 우암동 등에서 고른 우위를 확보하며 최종 승리를 이끌어냈다. 결국 이번 선거는 특정 지역의 몰표가 아닌 생활권별 민심의 총합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러나 선거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주민들의 메시지다. 박재범 당선인은 7만 186표를 얻어 승리했지만 김광명 후보 역시 6만 8970표를 획득했다. 이는 절반에 가까운 주민들이 김 후보의 정책과 비전에 공감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선거를 단순히 승자와 패자의 구도로 바라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남구 주민들이 행정 혁신과 지역 발전, 복지 확대, 도시 경쟁력 강화 등 다양한 과제를 해결해 달라는 주문을 정치권에 전달한 선거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선거는 끝났지만 남구가 풀어야 할 과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오륙도선 트램 사업, 재개발·재건축, 지역경제 활성화, 고령화 대응 복지정책, 청년 정주여건 개선, 문화관광도시 육성 등 어느 하나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박재범 당선인에게는 남구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주민들의 목소리까지도 행정에 반영하는 포용의 자세가 필요하다. 선거 과정에서 제기된 다양한 의견과 정책 제안을 적극 수렴하는 것이야말로 민선 9기 성공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김광명 후보에게도 따뜻한 격려와 박수를 보내고 싶다. 끝까지 지역 곳곳을 누비며 주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했고, 남구의 미래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제시했다. 비록 선거에서는 아쉬운 결과를 맞았지만 지역 발전을 위한 진정성과 열정은 많은 주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박재범 당선인에게는 축하를, 김광명 후보에게는 위로와 격려를 전한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승패 그 자체보다 결과를 존중하고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있다. 선거 과정에서 경쟁했던 두 사람 역시 남구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경쟁의 시간을 뒤로하고 화합의 시간으로 나아가야 한다. 승자는 주민의 선택에 더 큰 책임으로 답해야 하고, 패자는 주민의 뜻을 존중하며 지역 발전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또한 주민들 역시 선거 이후의 갈등과 대립을 넘어 지역 발전이라는 공동 목표를 향해 힘을 모아야 한다. 1,216표. 누군가에게는 기쁨의 숫자이고 누군가에게는 아쉬움의 숫자일 수 있다. 그러나 남구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 숫자는 갈등의 기준이 아니라 통합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남구 주민들은 이미 선택을 마쳤다. 이제 남은 과제는 선거 과정에서 갈라졌던 마음을 하나로 모아 더 큰 남구, 더 살기 좋은 남구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이번 선거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정치적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구의 새로운 도약과 발전을 위한 출발점으로 기억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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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09
  • [기고] 버드나무가 엮어낸 마을의 기억, 사람을 잇는 공동체 공간 ‘고분도리’
    [교육연합신문=구미화 기고]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의 한 골목길. 화사한 꽃과 푸른 나무가 반갑게 맞이하는 공간이 있다. 주민들이 사랑방처럼 드나들며 이야기를 나누고, 공동체의 온기를 이어가는 마을공동체 공간 ‘고분도리’다. 고분도리는 단순한 카페가 아니다. 이곳은 주민들이 함께 모여 소통하고 문화를 나누며 마을의 정체성을 되새기는 공동체 플랫폼이다. 도심 속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이웃 간 정과 공동체 정신을 되살리는 소중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고분도리라는 이름에는 마을의 역사와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예로부터 이 일대 냇가에는 버드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주민들은 버드나무 가지를 이용해 생활용품인 ‘고리짝’을 만들며 생계를 이어갔다. 고리짝은 버드나무 가지나 대오리를 엮어 만든 상자 형태의 생활도구로, 옷이나 곡식, 생활용품 등을 보관하는 데 널리 사용됐다. 지역 향토사에 따르면 ‘고분도리’는 ‘고블(고리짝)’과 ‘도르(들 또는 마을)’가 합쳐진 말에서 유래했다. 즉 ‘고리짝을 만들던 사람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라는 뜻이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고리짝을 만드는 모습은 사라졌지만, 마을 이름 속에는 선조들의 삶과 노동의 역사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간직한 채 운영되고 있는 고분도리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문화공간으로서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형형색색의 꽃과 정성스럽게 가꾼 화단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야외 테라스는 주민들이 자연 속에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카페 내부 역시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어 누구나 부담 없이 머물 수 있다. 특히, 이곳은 주민 모임과 마을 프로그램, 문화 활동 등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활용되며 세대 간 소통의 장이 되고 있다. 어르신부터 청년, 아이들까지 다양한 세대가 함께 어울리며 마을공동체의 가치를 실천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도 고분도리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한 주민은 “이곳에 오면 자연스럽게 이웃을 만나게 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며,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정을 나누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주민은 “삭막해진 도시에서 마을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며, “이런 공동체 공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 속에서도 마을의 역사와 공동체 정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고분도리. 버드나무로 고리짝을 엮던 선조들의 손길처럼, 오늘날 고분도리는 사람과 사람의 인연을 엮으며 마을공동체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꽃과 향기, 그리고 사람의 온기가 머무는 공간. 고분도리는 오늘도 마을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 구미화 ◇ 고분도리 이사장 ◇ 서구 서대신1동 주민자치위원회 간사 ◇ 前 서구 서대신1동 부녀회 회장 ◇ 前 서구 부녀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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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30
  • [기고] 익수 사고 골든타임, AI가 먼저 발견하는 시대
    [교육연합신문=김종학 기고] 우리는 이미 인공지능(AI)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자동차는 스스로 위험을 감지하고, 공장은 AI가 사고를 예측하며, 병원은 인공지능으로 질병을 분석한다. 그러나 정작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생활체육 안전 현장은 아직도 과거의 방식에 머물러 있다.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수영장이다. 수영장은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하는 생활체육시설이자 건강과 여가를 위한 공간이다. 하지만 동시에 단 몇 초의 사고가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고위험 시설이기도 하다. 현재 대부분의 수영장은 안전요원의 육안 감시와 경험 중심 관리에 의존하고 있다. 물론 현장의 안전요원들은 누구보다 책임감 있게 근무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눈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수영장은 넓고, 이용객은 많으며, 사고는 순간적으로 발생한다. 특히 어린이와 노약자의 경우 물속에서 발생하는 위급상황은 외부에서 쉽게 인지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혼잡 시간대나 사각지대에서는 더욱 그렇다. 실제로 익수 사고의 상당수는 “조금만 빨리 발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바로 이 지점에서 AI 기술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AI 기반 안전관리 시스템은 단순한 CCTV 감시가 아니다. 영상 분석과 데이터 학습을 통해 이상 움직임을 감지하고, 장시간 수면 아래 머무름이나 위험 행동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관리자에게 즉시 경고를 전달한다. 즉, 사고 이후 대응이 아니라 사고 이전 예방 중심의 안전체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AI가 사람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한계를 보완하는 기술이라는 점이다. 안전요원의 경험과 AI의 실시간 분석 능력이 결합될 때 훨씬 높은 수준의 안전관리가 가능해진다. 이미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공공체육시설에서는 AI 기반 수영장 안전관리 시스템 도입이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시범사업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전국적인 표준화와 제도적 지원은 부족한 현실이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IT 강국이다.그렇다면 이제는 기술 경쟁력을 국민 생명 안전 분야에도 적극 연결해야 한다. 특히 고령화 사회와 생활체육 인구 증가로 수영장 이용자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제 수영장의 안전은 단순한 운영 문제가 아니라 공공 안전 인프라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우리는 사고가 발생한 뒤 책임을 따지는 사회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정한 선진 안전문화는 사고를 미리 예방하는 시스템에서 시작된다. AI 안전관리 기술은 거창한 미래 산업이 아니다.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필요한 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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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21
  • [기고] 귀가 먼저 배우는 언어
    [교육연합신문=이상헌 기고] 부산에서 외국 관광객들을 안내하다 보면 흥미로운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에 도착해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어는 대개 단순하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맛있어요.” 그 짧은 몇 마디를 배우는 과정은 놀라울 만큼 자연스럽다. 그들은 한글 자음부터 공부하지 않는다. 받침 규칙을 외우지도 않는다. 문법책을 펼치지도 않는다. 그저 한국인의 말을 듣고 따라 한다. 발음이 조금 어색해도 문제는 없다. “감사합니다”를 “캄사함니다”처럼 말해도 사람들은 의미를 이해하고 웃으며 답한다. 언어는 완벽한 문법보다 ‘소통하려는 의지’에서 먼저 시작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필자는 이 모습을 볼 때마다 한국 영어교육의 현실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영어를 너무 빨리 ‘눈’으로 배우기 시작한다. 알파벳 암기, 철자 시험, 문법 용어, 독해 해석… 물론 그것들도 중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언어 습득의 자연스러운 순서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지나치게 문자 중심 교육으로 들어간다는 점이다. 사실 인간은 원래 언어를 ‘귀’로 먼저 배운다. 아기는 “엄마”라는 글자를 보고 배우지 않는다. 수없이 소리를 듣고, 표정을 보고, 상황 속에서 의미를 연결하며 말을 익힌다. 외국어도 본질은 같다. 언어학자 Stephen Krashen 역시 ‘이해 가능한 입력(Input Hypothesis)’ 이론을 통해 언어는 문법 설명 이전에 충분한 듣기 경험과 반복 노출 속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어권 아이들도 문법보다 소리를 먼저 익힌다. “You okay?”, “See you later.”, “No problem.” 아이들은 처음부터 문장을 분석하지 않는다. 그 표현을 하나의 ‘소리 덩어리’로 기억한다. 그리고 반복 속에서 의미와 상황이 연결된다. 반면 한국 학생들은 종종 정반대의 과정을 경험한다. 읽기는 가능한데 들리지는 않는다. 문법 문제는 잘 푸는데 말은 어렵다. 이는 영어를 ‘언어’보다 ‘시험 과목’으로 먼저 접했기 때문이다. 실제 회화의 영어는 교과서처럼 또박또박 흘러가지 않는다. “What are you doing?”은 실제 회화에서는 “Whaddaya doing?”처럼 들리기도 한다. 영어를 문자로만 배운 학생들에게는 분명 아는 단어인데도 실제 소리는 전혀 다른 언어처럼 느껴진다. 결국 영어에 대한 자신감은 점점 줄어들고, 영어는 ‘두려운 과목’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외국어의 핵심은 완벽한 문법보다 ‘익숙함’에 있다. 많이 듣고, 자주 따라 하고, 반복 속에서 자연스럽게 입에 붙는 경험. 그 과정 속에서 언어의 리듬과 억양, 감정까지 몸으로 기억하게 된다. 필자는 외국어 입문 단계에서는 반드시 ‘귀와 입’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짧은 표현을 반복해서 듣고 따라 하며 영어의 리듬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문장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먼저 영어 소리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을 줄이는 일이다.그리고 일정 수준 이후에는 읽기와 문법이 반드시 연결되어야 한다. 소리만으로는 사고의 깊이를 넓히기 어렵기 때문이다. 듣기와 말하기 위에 읽기와 문법이 쌓일 때 비로소 언어는 단순 회화를 넘어 ‘생각하는 도구’가 된다. 중요한 것은 순서다. 소리 ▶의미 ▶구조 이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문법은 암기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익숙해진 표현을 이해하는 도구가 된다. 그렇게 배운 문법은 훨씬 오래 기억된다. 필자가 구상 중인 ‘레고 영어’ 역시 이런 철학에서 출발한다. 레고 블록이 작은 조각들을 연결해 큰 구조를 만들 듯, 영어 역시 짧은 소리 표현과 상황 중심 반복을 통해 먼저 ‘영어 블록’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I’m fine.”, “How much is it?”, “Can I help you?” 이런 표현들이 반복 속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익으면, 이후 문법과 독해는 훨씬 쉽게 연결된다. 결국 언어는 살아 있는 소리다. 관광객이 “감사합니다”를 배우는 모습 속에는 외국어 교육의 중요한 원리가 숨어 있다. 인간은 원래 듣고, 따라 하고, 익숙해진 뒤에 분석한다. 영어도 마찬가지다.귀가 먼저 영어를 받아들이고, 입이 먼저 리듬을 기억할 때 영어는 더 이상 시험 문제가 아니다. 그 순간 영어는 비로소 ‘사용하는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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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20
  • [기고] 교육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교육연합신문=오승한 기고] 최근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의 재선 이후 일각에서는 “3선은 어렵다”는 정치적 관점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교육은 일반 행정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영역이다. 정치 논리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라, 학생의 성장과 미래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하는 분야다. 교육 정책은 단기간에 성과를 확인하기 어렵다. 학생 한 명의 성장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학교 현장의 변화 또한 꾸준한 축적을 통해 이루어진다. 학습 환경 개선, 교사 역량 강화, AI·디지털 교육 혁신, 맞춤형 교육 확대, 학교 시설 및 교육 인프라 구축 등은 모두 중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하는 과제들이다. 특히 미래교육의 핵심으로 떠오른 AI 기반 교육정책은 더욱 그렇다. ‘학생성공시대 AI교육’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학생 개개인의 역량을 키우고 미래 사회에 필요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장기 프로젝트다. AI 교육 생태계 조성, 디지털 격차 해소, 교사 전문성 강화, 맞춤형 학습 시스템 구축은 몇 년 안에 완성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책 방향이 중간에 흔들리거나 단절된다면 이미 축적된 노력과 성과가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피해는 학생들과 학교 현장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도성훈 인천교육감이 강조해 온 ‘읽걷쓰(읽고·걷고·쓰기)’ 정책 역시 중요한 교육 철학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읽걷쓰는 단순한 독서 활동을 넘어 학생들이 스스로 읽고, 생각하며, 삶 속에서 경험을 확장하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이다. 디지털 시대일수록 사고력과 인문학적 감수성, 자기주도적 학습 역량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읽걷쓰 교육은 학생들의 기초학력과 창의성, 정서적 성장까지 함께 키우는 미래형 교육 모델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러한 정책 또한 단기간이 아닌 지속적인 실천과 축적 속에서 완성될 수 있다. 교육은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매번 방향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 최소 10년 이상의 장기적 비전 아래 안정적으로 추진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정책의 연속성과 일관성은 매우 중요하다. 재선 교육감의 지속적 리더십은 단순한 임기 연장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교육 혁신을 완성 단계로 이끌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정책의 안정성이 확보될 때 학생들은 체계적이고 예측 가능한 교육 환경 속에서 성장할 수 있다. 교사들 역시 중장기 목표 아래 전문성을 키울 수 있으며, 학교는 지속 가능한 혁신 구조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교육이 지향해야 할 본질적 가치다. 결국 도성훈 인천교육감의 3선 논쟁은 단순한 정치적 해석의 문제가 아니다. 인천교육의 미래를 어떤 방향으로 이어갈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다. 교육의 중심에는 정치가 아니라 학생이 있어야 하며, 미래세대를 위한 정책의 지속성과 안정성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인천의 미래는 결국 교육에 달려 있다. 그리고 교육의 힘은 단절이 아니라 지속성에서 나온다. ▣ 오승한 ◇ 비영리민간단체 인천주니어클럽 회장 ◇ (사)한중문화협회 인천광역시지회장 ◇ 인천광역시교육청 국제교류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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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19
  • [기고] 불보다 먼저 죽이는 것, 연기다
    [교육연합신문=안오룡 기고] 화재 현장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불이 아니라 연기다. 그리고 그 속에 섞인 유독가스다. 우리는 여전히 화재를 ‘불과의 싸움’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일산화탄소와 시안화수소와 같은 유독가스는 단 몇 분 만에 사람의 의식을 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가 순식간에 생명을 앗아가는 것이다. 불길을 피했더라도 숨을 쉴 수 없다면 탈출은 시작조차 할 수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화재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불보다 먼저 ‘연기’에 갇힌다는 사실이다. 현대 건축물은 플라스틱과 합성소재, 각종 내장재로 채워져 있다. 이들이 연소되면서 발생하는 독성가스는 과거보다 훨씬 빠르고, 훨씬 치명적이다. 불길이 번지기 전에 이미 공간은 보이지 않는 독으로 채워지고, 사람들은 방향 감각을 잃은 채 쓰러진다. 문제는 명확하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대비하지 않았다. 건물마다 소화기는 있다. 경보기는 울린다. 스프링클러도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그 순간, 개인이 숨을 지킬 수 있는 장비는 없다. 불을 끄기 위한 준비는 되어 있지만, 사람을 살리기 위한 준비는 빠져 있는 것이다. 소화기와 감지기로는 불을 알릴 수는 있어도, 사람의 생명을 지킬 수는 없다. ■ “5분이면 끝난다”…그리고 15분 화재에서 생존을 좌우하는 시간은 길지 않다. 유독가스에 노출된 후 약 5분, 이미 치명적인 상황이 시작된다. 그리고 남은 시간, 15분이 ‘골든타임’을 버틸 수 있느냐가 생사를 가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 15분을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준비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구조대가 도착하기까지, 대피 경로를 찾기까지 필요한 그 시간은 오롯이 개인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 왜 우리는 ‘살아남을 준비’를 하지 않는가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기술은 존재한다. 문제는 정책과 인식이다. 화재 대응은 여전히 ‘진압’ 중심에 머물러 있고, ‘생존’은 개인의 선택으로 방치돼 있다. 현대의 화재는 과거와 다르다. 건물은 높아졌고, 구조는 복잡해졌으며, 내부는 더 많은 유독물질로 채워져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안전 기준은 여전히 과거의 틀에 머물러 있다. 소화기와 감지기로는 불을 알릴 수는 있어도 사람의 생명을 지킬 수는 없다. ■ 현장의 조언 “연기를 피하려 하지 말고, 버틸 준비를 해야 한다” 화재가 발생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기를 피하려고만 한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연기를 완전히 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이다. 구조대가 도착하기까지의 짧은 시간, 단 10분에서 15분을 확보할 수 있다면 생존 가능성은 크게 달라진다. 이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개인 보호장비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하고 싶다. ■ 생명구조 마스크, 패러다임을 바꾸다 이제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 불을 끄는 것에서, 사람을 살리는 것으로.생명구조 마스크는 그 전환의 출발점이다. 산소를 공급하고 유독가스를 차단해 최소한의 생존 시간을 확보하는 장비. 핵심은 단순하다. “버틸 수 있게 만드는 것.” 그 15분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다. 한 사람의 생명이고, 한 가족의 미래다. ■ 이제는 국가가 답해야 한다 화재 대응을 개인의 책임으로 남겨둘 수는 없다. 이는 분명히 공공의 영역이며, 국가의 책무다. 이제는 결단이 필요하다. 다중이용시설에 개인 생존 보호장비 비치 기준 의무화, 기존 소방 기준을 넘어선 호흡 보호 중심 안전 체계 전환, 어린이·노약자 등 취약계층 대상 공공 지원 확대, 지방자치단체 중심의 시범 도입 및 단계적 보급 정책 추진은 선택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위험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다. ■ “15분을 준비하는 사회”가 생명을 지킨다 재난은 막을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바꿀 수 있다. 그 차이는 단 15분이다. 그 15분을 준비할 것인가, 아니면 또 다시 놓칠 것인가. 사람을 죽이는 것은 불이 아니다. 숨을 쉴 수 없게 만드는 환경이다. 그렇다면 해답도 분명하다. 사람이 숨 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준비, 단 15분을 버틸 수 있는 사회다. ▣ 안오룡 ◇ (주)세이빙스토리 회장 ◇ (주)유월무역 회장 ◇ (주)지앤지 대표이사 ◇ (주)콜 사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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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기고
    2026-05-07
  • [기고] 말(言)의 질서와 신뢰의 회복, 정명(正名)에서!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선거의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우리 사회는 거대한 민주주의의 시험대에 서게 됩니다. 선거는 본래 국민의 신뢰를 확인하고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신성스러운 시스템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선거의 풍경은 어떠한가요? 퇴직한 교육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우리 사회의 ‘말의 질서’는 처참히 무너져 내렸고, 그 자리는 혐오와 선동, 무책임한 공약들이 채우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의심마저 드는 것은 너무 나간 걱정인가요? 공자는 일찍이 정치를 묻는 제자인 자로에게 ‘정명(正名)’, 즉 ‘이름을 바로잡는 것’을 정치의 첫걸음으로 꼽았습니다. 군자는 군자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부모는 부모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이 평범한 진리가 무너질 때 사회는 붕괴하기 때문입니다. 이름이 분명하지 않으면, 개념이나 명칭이 공유되고, 소통되는 데 논리적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즉 이치에 맞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말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질 없게 되는 것입니다. 공자는 논리적 연쇄를 통해 이를 경고했습니다. 명분이 바로 서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名不正 則言不順), 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국가의 대사가 성취되지 않으며(言不順 則事不成), 결국 예악과 법치라는 사회적 신뢰 시스템이 통째로 흔들려 백성들이 손발 둘 곳조차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악이 바로 서지 않으면, 사회 질서, 그다음에 이데올로기, 사회를 지배하는 어떤 질서, 사회 규칙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비극은 ‘말의 타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 정도는 그냥 우습게 지나가는 것입니다. 말이라는 우리말은 ‘크다.’는 뜻과 함께 ‘끝’이라는 뜻으로 한 사람을 크게 성장시킬 수도 있고, 한 사람을 ‘끝낼 수도 있다.’을 정도로 타인을 해칠 수도, 혹은 스스로를 경계해야 함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선거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언어들은 ‘설득’이 아닌 ‘선동’으로 전락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공자는 확실치 않은 지식으로 대중을 현혹하는 것을 경계하며 “모르면 입을 다물라(多聞闕疑).”고 가르쳤습니다. 이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지식인과 공직자가 가져야 할 무거운 언어적 책임감을 뜻합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말의 무질서’가 교육에 미치는 악영향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선거판을 보며 “이기기 위해서라면 거짓말과 비방도 전략이 될 수도 있다.”는 잘못된 가치관을 학습할 수도 있습니다. 공자는 이를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이라는 국가 경영 전략으로까지 언급했습니다. 군대(兵)와 식량(食)이 풍족해도 국민의 신뢰(信)가 없으면 국가는 존립할 수 없다는 말로, 신뢰 시스템의 붕괴는 곧 공동체의 종말까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신뢰를 복원할 것인가? 그 해답은 ‘수치심(羞恥心)’의 회복에 있습니다. 맹자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정의(義)의 시작이라고 보았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명분에 어긋났을 때, 뜨거운 부끄러움을 느끼는 ‘염치’가 살아날 때, 비로소 말의 질서가 바로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자가 말한 “행기유치(行己有恥)”, 즉 자기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선비 정신이 정치인과 시민 모두에게 절실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본래 ‘말’로 이루어지는 제도라고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말하기 전에 ‘진실한가? 선한가? 유용한가?’라는 세 가지 체에 걸러야 한다고 했고, 부처는 바른말(正語)을 수행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다시 신뢰받는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수레의 연결고리(輗, 軏)와 같은 신의를 회복해야 합니다. 연결고리가 없는 수레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듯, 신의 없는 사회는 결코 미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選擧라는 시스템을 넘어, 우리 삶의 근간인 언어의 품격을 되찾아야 할 때입니다. 내뱉은 말이 행실이 되고, 그 행실이 다시 신뢰라는 이름의 열매를 맺을 때, 우리는 비로소 ‘백성이 손발을 편안히 둘 수 있는’ 도(道)가 있는 사회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우리 사회를 정화하는 가장 강력한 힘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선거가 교육에 미치는 선한 영향과 악한 영향은 민주주의의 산 교육장입니다. 학생들이 정책 토론과 투표 과정을 보며 주권자로서의 책임감과 공동체 의식을 배운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선거 과정에서의 흑색선전, 편 가르기, 언어 폭력은 교육적으로 치명적입니다. “아이들이 목적을 위해 수단(거짓말, 비방)을 정당화해도 된다.”는 잘못된 가치관을 학습하게 됩니다. 선거의 교육적 선한 영향력을 제고하는 방법으로 공자가 강조한 위기지학(爲己之學, 나를 닦는 공부)의 태도가 선거 문화에 도입되어야 합니다. 후보자는 자신의 정책이 교육적 가치에 부합하는지 성찰해야 하며, 유권자는 ‘누가 더 도덕적 모델이 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는 풍토를 조성해야 합니다. 선거는 신뢰 시스템과 민의의 반영입니다. 국민들의 생각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방법을 공자는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이라 하여 정치의 근본을 ‘신뢰’라고 했습니다. 국민의 생각이 반영되려면 ‘정명(正名)’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자체장은 지자체 장답게, 시민은 시민답게, 각자의 위치에서 진실한 정보를 바탕으로 소통할 때 신뢰 시스템이 작동합니다. 공자가 말한 ‘다문궐의(多聞闕疑)’를 의미합니다. “많이 듣되 의심스러운 부분은 빼놓고 말하라.”는 뜻입니다. 이는 단순히 침묵하라는 것이 아니라, ‘확실치 않은 지식으로 남을 현혹하거나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지 말라.’는 지식인의 엄격한 책임감을 강조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말의 질서’가 무너졌다는 의미는, 즉, 말은 칼처럼 신중해야 한다는 경고입니다. 말의 질서가 무너졌다는 것은 단어가 가진 본래의 정의가 왜곡되고(명칭의 타락), 말에 책임(행동)이 따르지 않는 언행 불일치의 상태가 고착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선거가 말의 질서에 미치는 영향의 언어는 ‘설득’이 아닌 ‘선동’으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표를 얻기 위한 자극적인 언어는 말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상대에 대한 혐오를 생산하여 사회적 담론의 질을 저하시킵니다. 信이라는 글자는 ‘사람(人)’과 ‘말(言)’이 합쳐진 것입니다. 사람의 말이 곧 그 사람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정치권부터 공약을 반드시 지키는 모습을 보이고, 일상에서 정직함이 손해 보지 않는 사회적 보상 체계가 확립되어야 합니다. 말의 중요성을 언급한 성인인 소크라테스는 “말하기 전에 세 가지 체(진실, 선함, 유용함)에 걸러라.”고 했습니다. 부처는 정어(正語)를 강조하며, 거짓말, 이간질하는 말, 험한 말, 꾸며대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수행의 핵심으로 보았습니다. 명분이 바로 서지 않으면 말이 논리에 맞지 않고, 말이 논리에 맞지 않으면 사회적 과업(事)이 실패합니다. 예악불흥(禮樂不興), 일이 안 풀리면 문화적 질서(예악)가 무너지고, 결국 공정한 법 집행(형벌)이 불가능해져 백성들이 불안에 떨게 됩니다. 공자는 군대(兵)나 먹을 것(食)보다 중요한 것이 신뢰(信)라고 했습니다. 신뢰가 없으면 공동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신의’가 없으면 사회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비(士)란 자기 행동에 부끄러움을 알고, 사명을 완수하는 사람입니다. 국가가 도가 없을 때 녹봉(穀)만 탐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마음이 정치의 시작이라고도 했습니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 성현들의 삶을 통해 ‘어떻게 사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가?’를 성찰하게 해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당당하게 시인하는 것을 ‘용기’로 대접해 주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남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양심이라는 거울 앞에 서는 신독(愼獨)의 자세를 생활화해야 합니다. 앞선 나라는 신뢰로부터 나옵니다. 진(秦)나라 효공 때 재상 상앙은 약 9m 높이의 나무를 남문 시장 거리에 세우고 누가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면 그 사람에게 거금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한 백성이 속는 셈치고 나무를 옮기자, 약속대로 거금을 주었습니다. 이는 국민과 맺은 신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진나라 백성들은 믿음을 갖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진나라는 중국을 통일했습니다. 개인은 물론 사회나 국가도 신용을 잃어버리면 설 땅이 없습니다. 신용은 인간관계의 기본 질서요 사회 존립의 근본 원리입니다. 믿지 못하는 사람과 친해질 수도, 동업할 수도 없으며, 우정도 협동도 사랑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용은 인간의 으뜸가는 도덕적 자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야 정치권 모두 ‘민생’은 뒷전이고 싸움질에만 골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생을 반드시 살리겠다.”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겠다.” 등 그 숱한 약속들은 말 잔치로 끝난 경우가 많습니다. 교육도 정치도 가장 큰 자산은 신뢰입니다. 정치인들은 ‘무신불립’을 각인해야 할 것입니다. 교육도 학생들과 학부모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데 무엇이 먼저일까를 사유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서양의 격언에도 돈을 잃어버리는 것은 인생의 적은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요 또 용기를 잃어버리는 것은 인생의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신용을 잃어버리는 것은 인생의 전부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금년 한여름에도 신뢰라는 명제를 한번 깊게 되새겨 보면서 지내봄이 어떨까 하는 화두를 던져봅니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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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06
  • [기고] 고독한 열정이 빚어낸, 두 번째 인생의 선율
    [교육연합신문=정현도 기고] “인생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라 믿습니다. 음악은 그 길 위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는 가장 따뜻한 동반자입니다. 때로는 삶이 잠시 멈춘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다음 길을 향해 흐르고 있습니다. 색소폰의 한 음 한 음은 그 흐름을 다시 이어주는 작은 숨결이 되고, 잊고 있던 설렘과 용기를 다시 깨워줍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순간이 바로 우리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간이라 믿습니다.” 지난 2012년, 우리는 조용히 모였다. 교단을 떠난 뒤 찾아온 시간은 생각보다 길고 낯설었다. 수십 년을 아이들과 함께 숨 쉬며 살아온 날들이었기에, 그 공백은 단순한 여유가 아니라 마음 한 켠의 빈자리처럼 느껴졌다. 그때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 바로 색소폰이었다. 오래전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꿈을 다시 꺼내는 일이기도 했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에서 처음 마주하는 새로운 시작이기도 했다. 처음은 쉽지 않았다. 소리는 흔들렸고, 호흡은 짧았으며,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순간이 더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색소폰은 거짓이 없다. 숨결이 닿는 만큼만 소리가 나고, 삶을 살아온 깊이만큼만 울린다. 그래서 우리는 연주를 배우며, 어쩌면 다시 ‘나 자신’을 배우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의 모임은 조금씩 달라졌다. 교육계 퇴직자들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일반인들도 함께하고 있다. 직업도, 나이도, 살아온 길도 다르지만 색소폰 앞에서는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선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서로의 호흡을 맞추며 우리는 어느새 하나의 따뜻한 공동체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윤기호 선배 교장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교단을 떠났지만 배움을 멈춘 적은 없습니다. 지금의 도전은 늦은 시작이 아니라, 가장 나다운 삶을 다시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색소폰의 한 음 한 음이 우리의 지난 시간을 품고, 또 새로운 내일을 열어가길 바랍니다. 함께하는 이 시간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또 하나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그 말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오래 머물렀다. 인생의 후반기에 다시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한 음이 제대로 울려 퍼지는 순간, 그 작은 성취는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밝힌다. 함께 연주하며 서로의 숨결을 맞추는 시간, 그 속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충분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어느 작은 공연이 끝난 뒤였다. 한 관객이 조용히 다가와 물었다. “저도… 지금 시작해도 될까요?” 우리는 미소로 답했다. “지금이 가장 좋은 때입니다.” 인생에는 늦은 시작이 없다. 다만, 다시 시작할 용기가 있을 뿐이다. 고독 속에서 시작된 우리의 열정은 이제 서로를 지지하는 힘이 되었고,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길을 여는 작은 불빛이 되고 있다. 오늘도 우리는 색소폰을 든다. 남은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연주하기’ 위해서다. ▣ 정현도 ◇ 고독과 열정 동호회 원장 ◇ 前부산대연고등학교 교장 ◇ 前용호1동 주민자치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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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04
  • [기고] AI가 일하는 사회, 인간 역할의 재정의
    [교육연합신문=오양환 기고] “그분이 아주 뛰어난 인재라고 들었습니다. 우리 회사의 IT 혁신을 맡겨도 될까요?” “아닙니다. 그분은… 너무 우수해서 오히려 ‘위험’합니다.” 귀를 의심케 하는 이 기묘한 대화는 어느 기업의 채용 자문 현장에서 실제로 오간 것이다. 최고의 찬사가 되어야 할 ‘우수함’이 어째서 칼날이 되어 돌아온다는 뜻일까. 이 역설적인 경고는 AI가 일의 심장부로 침투한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마주한 서늘한 미래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재 한 명이 조직을 살리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단 한 명의 초우수 인재와 AI의 결합이 기존의 조직 체계를 통째로 무너뜨릴 수도 있는 시대다. 어느 한 중견기업의 사례는 이를 극명하게 증명한다. 소위 ‘천재’라 불리는 한 명의 인재가 투입된 지 불과 6개월 만에, 그 기업은 인류가 수 세기 동안 정립해온 ‘고용’과 ‘협업’이라는 근간을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 10명의 업무를 대체한 단 하나의 지능 그 인재는 부임 직후 회사의 모든 사무 공정을 현미경처럼 분석했다. 그리고 AI 기반의 가상 직원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극적이었다. 10명이 넘던 관리·사무직 부서는 순식간에 해체되었고, 사무실에는 단 한 명의 임원만 남게 되었다. 전화 응대는 남녀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상황에 맞게 톤을 조절하는 AI가 맡았고, 복잡한 문서 작성과 보고, 고객 소통은 실시간으로 처리되었다. 심지어 정기 세무조사를 위해 방문한 세무 공무원들조차 AI의 완벽한 응대에 압도당했다. 수만 페이지의 회계 자료를 단 몇 초 만에 분석해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AI 앞에서 인간의 추궁은 무력했다. 법적으로도 문제는 없다. 기업은 효율화를 선택할 자유가 있고, AI 활용을 규제하는 명확한 법적 근거는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혁신은 사무직에 그치지 않았다. AI가 공정 설계와 로봇 제어를 직접 결합하면서 블루칼라 업무까지 빠르게 자동화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불과 6개월 만에 ‘사장 혼자만 남은 회사’가 등장했다. 인간 직원이 사라진 자리를 무한한 지능과 지치지 않는 기계가 채운 것이다. ‘AI 자기 복제’가 가져올 인재의 대홍수 이 이야기의 결말은 더욱 큰 충격을 안긴다. 그 초우수 인재는 결국 자신의 사고방식과 문제 해결 방식을 학습한 이른바 ‘AI 자기 복제본’을 만들어냈다. 이제 기업은 사람을 새로 채용하고 교육하는 수고를 들이지 않는다. 검증된 인재의 사고 능력을 그대로 복제한 ‘가상 인재’를 도입하는 편이 훨씬 저렴하고 빠르며, 확장성 면에서도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한 명의 천재와 경쟁하는 시대가 아니라, 그 천재를 본뜬 수십, 수백 개의 가상 지능이 동시에 일하는 시대의 문턱에 서 있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진보를 넘어, 인간이 사회 속에서 가져왔던 ‘희소성’과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이다. 기술의 속도가 아닌, ‘사회적 준비’의 속도를 고민할 때 이 사례는 단순히 어느 효율적인 기업의 성공담이 아니다. AI가 가져올 폭발적인 생산성 향상 뒤에 숨겨진 ‘일자리 실종’과 ‘구조적 소외’를 예고하는 경고등이다. 국가 입장에서는 기업 이익이 늘어 세수가 확보될지 모르나, 그 안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노동자들의 존재는 거대한 사회적 숙제로 남게된다. 이제 우리는 AI를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로 방치할 것인지, 아니면 AI를 도구로 삼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주체로 인간을 재정립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AI 시대에 인간이 준비해야 할 핵심은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니다. AI가 흉내 낼 수 없는 ‘비판적 사고’, ‘윤리적 판단’, 그리고 ‘현장과의 공감 능력’을 갖춘 리더로 거듭나는 것이다. AI 사회는 이미 시작됐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알고리즘이 아니라, 기술의 속도에 발맞춰 인간의 존엄과 노동의 가치를 재설계하는 사회적 합의의 속도다. 미래의 공장은 AI와 인간이 함께 성장하는 공간이어야 하며, 그 길을 찾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기성세대와 리더들의 마지막 책무일 것이다. ▣ 오양환 ◇ (유)코아시스템 CEO ◇ 경남대학교 AI·SW융합전문대학원 원우회장 ◇ (사)한국인공지능기술산업협회 부산경남 지회장 ◇ 前인제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겸임교수 ◇ 前창신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겸임교수 ◇ 일본 동경 Coredump SW사 근무 ◇ 창녕군 남지초·중학교·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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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01
  • [기자수첩] ‘셀프 심사’가 만든 국가대표…공정성은 어디에 있었나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국가대표 선발 과정은 어떠한 경우에도 공정성과 투명성이 최우선으로 담보되어야 하는 공적 절차다. 특히 국가를 대표해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지도자를 선임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국민적 신뢰를 기반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한수중핀수영협회의 이번 국가대표 지도자 선발 과정은 이러한 기본 원칙을 스스로 허물었다. 심사를 맡은 경기력향상위원회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각각 감독과 코치에 지원했고, 심사 과정에도 참여한 뒤 최종 선임됐다. 누가 보더라도 납득하기 어려운 ‘셀프 심사’ 구조다. 이해관계자는 심사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공공 영역의 최소 기준이다. 이는 단순한 규정이 아니라 공정성을 지탱하는 마지막 방어선이다. 그 선이 무너진 순간, 결과는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논란이 커지자 협회는 선발을 무효화하고 재공모에 나섰다. 그러나 그 사이 발생한 행정 혼선과 시간 손실은 오롯이 선수단의 부담으로 돌아갔다. 대회를 앞둔 국가대표에게 지도자 공백은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라 경기력에 직결되는 심각한 변수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실수’로 치부하기 어렵다. 이해충돌 관리 실패, 독립성 없는 심사 구조, 불투명한 기준, 그리고 사전 검증 부재까지.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에 있다. 더욱이 여성 선수 비중이 상당한 대표팀에서 여성 지도자가 단 한 명도 선발되지 않았다는 점은 시대 흐름과도 어긋난다. 적합 판정을 받은 후보가 있음에도 관례를 이유로 배제됐다면, 이는 공정성 이전에 구조적 문제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국가대표 선발은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 과정이 공정해야 결과도 존중받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책임 회피가 아니라 제도 개선이다. 이해충돌 방지 장치의 실질적 작동,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독립적 심사 구조, 그리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투명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국가대표는 특정인의 자리가 아니라 국민의 자리다. 그 자리가 ‘누가 뽑았는지’가 아니라 ‘왜 뽑혔는지’로 설명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신뢰는 회복된다. 이번 논란이 또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지, 아니면 체육계 구조를 바꾸는 계기가 될지는 지금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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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29
  • [기고] ‘나의 미래!’ 스스로의 허물을 찾는 엄격함에서
    [교육연합신문=김성희 기고]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 선택의 이면에는 과거의 경험이 남긴 '기억'이라는 강력한 데이터베이스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성공의 기억과 실패의 기억은 단순히 과거의 기록에 머물지 않고 우리 뇌의 회로에 관여하여 개인의 미래의 행동 방향을 결정짓게 됩니다. 성공을 경험할 때 우리 뇌에서는 도파민(Dopamine)을 분출합니다. 이는 뇌의 보상 회로를 자극하여 "이 행동은 유익하니 다시 반복하라"는 신호를 보내며 '자기효능감'을 만들어 냅니다. "위대한 일은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작은 일들이 모여 이루어진다." 자기효능감은 타고나는 기질이라기보다 훈련을 통해 근육처럼 키울 수 있는 능력에 가깝습니다. 반면, 실패의 기억은 공포를 담당하는 편도체(Amygdala)를 강하게 자극합니다. 실패의 기억은 생존에 위협적인 신호로 인식되어 성공보다 훨씬 선명하게 저장되는데, 이를 잘못 관리하면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기 쉽습니다. 아이들의 편도체를 잠재우고 전두엽을 깨우는 것은 교육자의 따뜻한 시선과 일관된 지지입니다. 교육자의 태도는 아이가 실패의 기억에 함몰될지, 아니면 그 실패를 딛고 성장의 디딤돌로 삼을지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변수가 됩니다. 아이들에게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선물하는 것은 거창한 커리큘럼이 아니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만드는 어른들의 단단한 지지와 믿음입니다. 실패의 기억을 '나의 무능력'이 아닌 '수정해야 하는, 충분히 변화가 가능한 경험적 데이터'로 해석할 때, 뇌는 비로소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 마인드셋'의 단계로 들어갑니다. 실패의 기억을 가장 적극적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의지'로 연결한 인물은 《논어(論語)》와 《회남자(淮南子)》 등에 등장하는 위나라의 현자 거백옥입니다. 그의 삶은 기억을 대하는 태도가 한 인간을 얼마나 위대하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거백옥은 쉰 살이 되었을 때, 자신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충격적인 선언을 합니다. "五十而知四十九年之非" (오십이지사십구년지비) "쉰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지난 49년 동안의 삶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그는 이 불편한 기억들을 회피하는 대신, 매일 아침 "어제의 나의 실패를 직시하는 것"에서 변화의 의지를 끌어냈습니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은 《논어》 〈헌문(憲問)〉편에서 공자와 거백옥의 사자가 나누는 대화로 더욱 구체화됩니다. 蘧伯玉 使人於孔子 (거백옥 사인어공자) 거백옥이 공자에게 사자를 보내니, 孔子 與之坐而問焉 曰 (공자 여지좌이문언 왈) 공자가 그와 더불어 앉아 묻기를, "夫子 何爲?" (부자 하위?) "선생(거백옥)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對曰 "夫子 欲寡其過而未能也" (대왈 부자 욕과기과이미능야) 사자가 대답하기를,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허물을 줄이고자 하시나, 아직 뜻대로 되지 않아 고민하고 계십니다.“ 거백옥은 남들이 우러러보는 현자의 위치에 있었음에도, 자신의 뇌 속에 저장된 '실패'의 기억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기억들을 현재의 자신을 담금질하는 정(釘)으로 삼아, 매일같이 스스로를 새롭게 빚어냈습니다. 거백옥의 ‘직시’가 주는 메시지는 메타인지의 용기입니다. 공자와 거백옥의 대화는 ‘완성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삶’을 보여줍니다. 그 첫째는 불편함의 수용입니다. 자신의 49년 치 실패를 낱낱이 꺼내 놓는 것은 뇌의 방어기제를 거스르는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 ‘불편한 직시’만이 고도의 메타인지를 활성화합니다. 둘째로, 겸손한 혁신입니다. “허물을 줄이고자 하나 능히 하지 못한다.”는 고백은, 변화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음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정질(담금질)하는 태도가 진정한 현자의 조건임을 말해줍니다. 현대의 스티브 잡스 역시 거백옥과 닮은 꼴의 궤적을 보입니다. 1985년 자신이 만든 애플에서 해고당한 일은 그에게 치욕적인 실패의 기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기억에 매몰되어 세상을 원망하는 대신, 자신의 독단적이었던 과거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잡스는 훗날 이 시기를 통해 '성공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가벼움'을 얻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잡스의 사례는 ‘실패를 통한 유연성의 획득’을 시사합니다. 그 첫째는 중압감에서 가벼움으로입니다. 성공의 신화에 갇혀 있던 자아를 버리고, 실패라는 치욕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유’로 치환입니다. 둘째는 경직된 회로의 파괴입니다. 과거의 독단적 성공 기억이 만든 경직된 사고 회로를 실패라는 충격요법으로 끊어내고, 더 창의적이고 수용적인 리더로 거듭나는 ‘자기 혁신’의 모델을 보여줍니다. 이는 거백옥이 쉰 살에 과거의 허물을 씻어내고자 했던 노력과 궤를 같이합니다. 실패의 기억을 통해 기존의 경직된 사고 회로를 끊어내고, 더 유연하고 창의적인 리더로 거듭난 것입니다. 거백옥과 공자가 지향한 삶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자세입니다. 남들의 칭송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의 허물을 찾는 엄격함입니다. “지나온 세월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역설적으로 “앞으로의 시간은 다를 수 있다.”는 강력한 낙관론에서 비롯됩니다. 결국 미래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그 사건을 토대로 오늘 우리가 내리는 해석과 실천의 총합입니다. 거백옥이 매일 자신의 허물을 줄여가며 스스로를 혁신했듯이, 우리 역시 실패의 기억을 '나를 무너뜨리는 상처'가 아닌 '나를 완성하는 동력'으로 삼을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교육자와 부모는 아이의 편도체를 안정시키는 ‘따뜻한 지지대’가 되어야 하며, 아이의 실패를 ‘수정 가능한 데이터’로 인식하게 돕는 것이 진정한 교육자의 자세입니다.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주시는 선생님들의 그 ‘따뜻한 시선’이 아이들의 편도체를 잠재우고 위대한 전두엽을 깨우는 가장 강력한 도구임을 잊지 마시길 응원합니다. ▣ 김성희 ◇ SLA 어학원 원장 ◇ 무등 환경단체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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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7
  • [기고] 천부경(天符經) 철학으로 본 삶과 배움의 가도(街道)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태양과 만물 공생의 기저는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빛(태양)이라고 합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태양 에너지를 근간으로 생명력을 유지합니다. 살이(삶) 근거의 99.86%가 태양에 의지한다고 합니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태양 광선을 유기 화합물로 전환하며, 동물과 인간은 그 에너지를 섭취함으로써 삶을 영위합니다. 해(태양)는 차별 없이 모든 만물을 비추며, 자신의 에너지를 아낌없이 내어줌으로써 생태계의 거대한 순환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현상을 넘어, ‘조건 없는 사랑’과 ‘생명의 연속성’이라는 우주적 질서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천부경에는 ‘본심본태양(本心本太陽)이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사람의 본래 마음은 본래 밝은 태양과 같다.”는 뜻으로 광명성과 보편성, 자각의 철학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어둠을 밝히는 태양과 같은 순수한 지혜와 밝음이 이미 존재한다는 선언이며, 이는 광명성(光明性)을 말하는 것입니다. 보편성은 태양이 하늘 높이 떠서 온 세상을 비추듯, 우리 마음의 본질 또한 사사로운 욕심에 가려지지 않는다면 만물을 사랑하고 포용할 수 있는 거대한 에너지를 갖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자각의 철학은 외부에 있는 태양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태양(본성)을 깨우고 회복하는 것이 인간 완성의 길임을 가르칩니다. 또한 천부경은 운명공동체의 가치관을 말합니다. 천부경은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로 시작해서 一終無終一(일종무종일)로 끝납니다. 이는 우주의 모든 존재가 하나의 뿌리에서 나와 다시 하나로 돌아가는 운명공동체임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그 첫째로 가치관을 이야기합니다. ‘나'와 ‘남’이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연결된 하나라는 ‘일체감’을 가져야 한다고 외칩니다. 또한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는 공감의 자세, 그리고 조화와 상생을 중시하는 태도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경쟁보다는 협력을, 독점보다는 공유를 실천하는 삶이 천부경적 공동체 삶의 핵심입니다. 본심본태양(本心本太陽)이 주는 현대적 교훈은 현대인들에게 ‘자존감의 회복’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두 가지 교훈을 줍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안의 밝은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재능과 열정(빛)을 나 혼자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밝히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자아실현과 사회 공헌의 일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처럼 하는 배움의 자세와 태도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배움은 해처럼 하는 것’이라는 말은 다음과 같은 학습의 자세를 시사합니다. 해가 매일 어김없이 뜨듯, 배움 또한 쉼 없이 정진해야 합니다. 이것을 지속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지식을 가리지 않고 섭취하되,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길러야 합니다. 무차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운 것을 가슴 속에만 가두지 않고, 행동과 실천을 통해 세상에 이로운 영향력을 발휘(방사)해야 합니다. 즉 발산해야 합니다. 저 하늘에 해를 봤더니, 해는 말이야, 우리를 위해서 일하지 않아. 그냥 해는 자기 일을 할 뿐이야. 그런데 그의 영향이 우리 모두를 살리는 거야. 그러니 ‘너도 해처럼 살아야 돼’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면서, 교훈이면서, 명령이면서, 인류에게 주는 천명(天命)입니다. 모든 경전의 원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본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를 알아야 우리 홍익인간,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 나무 막연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게 관념적으로만 이해를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교육법 1조에 ‘홍익인간’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관념적으로만 이해하니까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 ‘홍익인간’, 좋은 말이지. 그런데 홍익인간이라는 말이 한자를 우리처럼 하면, ‘홍익’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면? ‘해처럼 하나 됨’, 이런 말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홍익’이라고 문자를 만든 것입니다. 그 가르침, 으뜸가는 가르침이 천부경에 담겨 있고, 천부경은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그 삶의 방식,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때로 우리가 그것 때문에 방황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에 대한 결정적 해답이 ‘해처럼’입니다. 이처럼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들은 내일부터 해가 새롭게 보일 것입니다. ‘나도 해처럼 살아야지’, ‘해는 어떻게 하고 있지?’ 해를 보는 생각이 달라져야 합니다. 이런 생각이 들지 않으면, 망치로 한 방 맞은 것 같은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누구의 가르침을 배우고 따르고, 매번 반복해서 듣고의 문제가 아니라 개개인들이 자기 내면에서 각성이 일어나야 합니다. 천부경의 결정적 명령!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 그것이 ‘해와 같이’, ‘해처럼’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인문학을 하는 사람치고, 천부경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81자의 한자를 자기 마음대로 풉니다. 수백 명이 천부경을 썼는데, 책마다 내용이 다릅니다. 천부경은 한국 철학의 핵심이며, 세계인의 양식입니다. 양식은 일상입니다. 우리말과 우리글은 가치관과 인생관을 이야기합니다. 첫째, 우리말(한국어)과 우리글(한글)은 ‘천지인(天地人) 삼재’의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인생관입니다. 하늘(·), 땅(ㅡ), 사람(ㅣ)이 어우러진 글자 구조처럼,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순응하며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가치관을 심어줍니다. 둘째, 수평적 소통입니다. 누구나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게 만든 한글은 ‘지식의 민주화’와 ‘모두가 존엄한 세상’을 꿈꾸는 인본주의적 인생관을 반영합니다. 弘益人間(홍익인간)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홍익인간은 단순히 ‘남을 돕는다.’는 수준을 넘어, ‘인간 세상을 널리 유익하게 한다.’는 통치 철학이자 삶의 목적입니다. 이는 나의 존재 가치를 타인의 행복 속에서 찾는 고차원적인 이타주의입니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지속 가능한 발전(Sustainability)과 지구촌 공생의 정신과 맥을 같이 합니다. 설마 한국인으로서 ‘살림’, ‘살림살이’라는 말 모르는 이가 있을까요? 홍익을 어렵게(?) 느낄만한 많은 장삼이사들을 배려해서 만든 용어가 ‘살림’이고 ‘살림살이’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삶, 살아감을 ‘살림’ 또는 ‘살림살이’라고 말합니다. ‘살림’, ‘살림살이’가 무슨 말인가? 누군가를, 무언가를 ‘살리는 것을 자기 삶의 목표로 하겠다.’는 다짐이 바로 ‘살림’이고 ‘살림살이’입니다. 전쟁과 폭력, 이해타산이 난무하는 정글과도 같은 세상에서 권력이나 명예나 각종의 이익 추구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겠다는 각오가 훨씬 현실적으로 보이는데, 한국인은 도대체 그 정체가 무엇이어서 평생 수신제가도 힘겨울 듯한 사람들조차도 자기 삶의 목표를 ‘살림’이라는 거창한 말로 부르는 것일까요? 더구나 누구도 회피할 수조차 없도록 아예 생활 용어로 못 박아, 노상 고백하면서 살 수밖에 없도록 장치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한국인의 공동체적 철학, 사고의 경향을 알지 못하고는 쉽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홍익’의 개념을 정립한 이들이 누구인가? ‘홍익’의 조건을 갖춘 사람들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라면 ‘홍익’ 본연의 근본 이념에 반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근기가 조금 부족한 사람들일지라도 ‘홍익’에 동참할 수 있는 방편으로 배려한 장치가 바로 ‘살림’이라는 말이다. 살면서 노상 ‘살림’을 생각하라는 의미다. ‘살림살이’가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우리말 ‘살림’은 ‘살리다.’라는 동사에서 왔습니다. 진정한 경제 활동이나 일상생활(살림살이)의 목적은 나를 포함한 주변의 생명을 ‘살려내는 것’에 있어야 합니다. 죽이는 경쟁이 아니라 살리는 상생의 미학이 진정한 살림살이의 지혜입니다. 천부경의 핵심 명령은 ‘해처럼 살아라.’입니다. 해처럼 산다는 것은 ‘자각(自覺)과 방사(放射)’의 삶입니다. ‘자각’은 ‘자발적 삶’입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처럼 주도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둘째는 ‘따뜻한 포용’입니다. 차가운 이성이 아닌 따뜻한 감성으로 만물을 품어주는 삶입니다. 셋째는 ‘어둠의 소멸’입니다. 내가 가는 곳마다 갈등과 어둠이 사라지고 밝음과 희망이 샘솟게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천부경이 제시하는 최종적인 천명은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입니다. “사람 안에 하늘과 땅이 하나로 녹아 있다.는 말입니다.” 결국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며, 하늘의 뜻을 지상에 구현하는 대행자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천명은 내 안의 태양을 찾아(本心本太陽), 홍익인간의 마음으로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며(弘益人間), 모든 생명을 살리는(살림살이) 것입니다. 우리는 한 점의 빛으로 시작해 온 우주를 밝히고, 다시 그 거대한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영광스러운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천부경이 우리에게 전하는 준엄하고도 따뜻한 명령입니다. 天符經을 찾아, 天符經의 부름을 따라 힘찬 발걸음을 옮겨봅시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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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7
  • [기고] 그날, 교실에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교육연합신문=황영식 기고] 교단에 서는 사람에게 학생은 단순한 제자가 아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삶이며, 세상으로 나아가기 전 우리가 잠시 맡아 기르는 존재다. 그래서 교사는 늘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배웅한다. “잘 다녀오너라.” 그 말은 무사 귀환을 바라는 기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2014년 봄, 그 약속은 무너졌다. 세월호 참사는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교실로 돌아오지 못한 비극이었다. 그날 이후 교사들의 마음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결석’이 남았다. 왜 아이들은 돌아오지 못했는가. 아이들의 잘못은 없었다. 문제는 어른들이었다. 안전보다 효율을 앞세운 구조,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대응 체계,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회가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다. 그 이후에도 재난은 반복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구조적 문제다. 사회는 하나의 교실이며, 국가는 가장 큰 교육자다. 반복되는 사고는 잘못된 사회적 학습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제 책임을 묻고, 교훈을 제도화해야 한다. 진상 규명은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며, 책임자에 대한 합당한 조치는 반복을 막기 위한 사회적 기준이다. 국가의 사과와 배상 역시 공동체 책임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기억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생명안전 기본법 제정, 독립적인 재난조사 체계 구축, 예방 중심의 안전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세월호 12주기를 맞아 다시 다짐한다.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던 그날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남은 아이들에게 더 안전한 사회를 물려주겠다고. 우리는 아이들에게 말해 왔다. “너희는 우리의 미래다.”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다. 그 미래를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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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6
  • [기고] 경험이 경쟁력이다…우리 아이 교육, 이제는 ‘현장’으로 가야 한다
    [교육연합신문=김미혜 기고] 입시 중심 교육이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다. 점수와 등급, 스펙을 쌓는 데 집중해 온 결과, 아이들은 많은 지식을 갖추었지만 정작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능력,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는 힘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지식은 넘치지만 질문은 줄어들고 있다. 정답을 찾는 데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데는 서툰 것이 지금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이제 교육의 방향은 분명히 달라지고 있다. ‘무엇을 아는가’보다 ‘어떤 경험을 했는가’가 더 중요한 시대, 그리고 그 경험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짓는 시대다. ■ 교실을 넘어 세계로 나가는 교육 글로벌 시대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낯선 환경 속에서도 스스로 적응하고,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며, 타인과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러한 역량은 단순한 교실 수업만으로는 길러지기 어렵다. 실제 상황 속에서 부딪히고, 소통하고, 해결해 나가는 경험이 축적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해외 체험형 교육 프로그램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다. 단순한 ‘어학연수’를 넘어, 실제 학교 수업에 참여하고 또래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문화 속에서 배우는 교육은 교과서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가치다. 미국 위스콘신주의 명문 사립고에서 운영되는 글로벌 리더십 캠프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 있다. 학생들은 3주 동안 현지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기숙사 생활을 하며, 미국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한다. 이 과정에서 영어는 ‘과목’이 아닌 ‘도구’가 되고, 학습은 ‘시험’이 아닌 ‘경험’으로 전환된다. ■ ‘짧지만 깊은 변화’가 만들어내는 성장 일각에서는 “3주라는 시간이 과연 충분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경험의 밀도’다. 익숙한 환경을 벗어난 순간,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처음에는 서툴고 두렵지만,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점차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키워간다. 낯선 언어로 말을 걸고, 다른 문화 속에서 관계를 맺고, 스스로 하루를 계획하며 생활하는 경험은 아이에게 강한 자기 효능감을 심어준다. “나는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은 단순한 학습 동기를 넘어, 인생 전반을 이끄는 중요한 자산이 된다. 또래 외국 학생들과의 교류는 단순한 언어 습득을 넘어,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형성하게 한다. 이는 앞으로의 글로벌 사회에서 필수적인 경쟁력이 될 것이다. ■ 학부모의 선택이 아이의 방향을 바꾼다 결국 교육은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아이의 미래를 결정짓는다.과거에는 안정적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다. 변화가 빠른 사회일수록, 정해진 길보다 스스로 길을 찾는 힘이 더욱 요구된다. 아이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스스로 꿈을 그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오늘날 학부모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보호를 넘어 ‘기회의 제공자’로서의 역할이 강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경험이 스펙을 넘어 ‘자산’이 되는 시대 이제 경험은 단순한 이력이 아니라, 아이의 정체성과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자산이 되고 있다. 입시에서도 변화는 뚜렷하다. 단순한 성적보다 과정과 성장, 그리고 경험 속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변화했는지가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리더십 캠프와 같은 프로그램은 단순한 해외 체험이 아닌, 아이 스스로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 안에서 아이는 언어를 배우고, 세상을 이해하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3주라는 시간은 짧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얻는 깨달음과 변화는 아이의 인생에서 결코 짧지 않은 흔적으로 남는다. ▣ 김미혜 ◇ 국제진로전문가 ◇ 위스콘신대학교 한국입학홍보처 이사 ◇ UHR Korea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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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5
  • [기고] "왜 지금 다시 문해력인가"…시선추적기술이 교육에 던지는 질문
    〔교육연합신문=석윤찬 기고〕 교실에서 우리는 자주 비슷한 장면을 마주한다. 아이는 교과서를 펴고 고개를 숙인 채 줄을 따라가며 읽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히 읽는 듯하다. 그러나 내용을 물으면 답이 비어 있고, 문제를 풀게 하면 엉뚱한 선택지를 고른다. 이때 교사는 잠시 멈칫하게 된다. 이 아이는 읽지 않은 것일까, 읽었지만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읽는 척만 하고 있었던 것일까. 문해력의 문제는 새롭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 이 문제가 교육 현장에서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분명하다. 문해력이 더 이상 국어 한 과목의 성취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수학 문장제 문제를 이해하는 능력, 사회 교과서의 개념을 연결하는 능력, 과학 실험 절차를 해석하는 능력, 디지털 환경에서 정보를 선별하고 신뢰도를 판단하는 능력까지 거의 모든 학습은 문해력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이제 문해력은 특정 교과의 문제가 아니라 학습 전반을 떠받치는 기초 역량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아이들의 문해력을 어떻게 보아 왔을까. 대체로 결과 중심이었다. 시험 점수, 독후감, 발표, 수행평가, 교사의 관찰 기록이 주요 판단 근거였다. 물론 이런 지표는 중요하다. 그러나 결과만으로는 읽기의 과정을 충분히 볼 수 없다. 문장을 천천히 읽는 아이가 있다고 해서 곧바로 읽기 능력이 낮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낱말은 읽지만 문장 의미를 통합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오히려 매우 신중하게 읽는 좋은 독자일 수도 있다. 반대로 빨리 읽는 아이가 반드시 잘 읽는 것도 아니다. 빠르게 훑으면서 핵심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이 정말 알고 싶은 것은 정답을 맞혔는가만이 아니라, 아이가 어떻게 읽었는가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선추적기술은 중요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시선추적은 아이의 읽기 결과가 아니라 읽기 과정을 조금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학생이 화면이나 글의 어느 부분을 오래 보는지, 어디에서 멈추는지, 어느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는지, 어떤 순서로 정보를 탐색하는지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보이지 않던 읽기의 흔적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물론 시선추적기술이 교사를 대신해 문해력을 자동 판정해 주는 마법의 도구는 아니다. 교육은 언제나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고, 아이의 읽기 행동은 컨디션, 배경지식, 과제 난도, 정서 상태, 수업 설계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되읽기라도 어떤 학생에게는 어려운 문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일 수 있고, 다른 학생에게는 줄을 놓친 결과일 수 있다. 따라서 시선 데이터는 정답이 아니라 해석의 단서다.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그 데이터를 교육적으로 읽어 내는 교사의 전문성이다. 그럼에도 시선추적기술의 의미는 크다. 지금까지 교사는 ‘읽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와 ‘실제로 읽고 있는 아이’를 분명히 구분하기 어려웠다. 한 교실 안에 20명, 30명의 학생이 있을 때 개별 학생의 눈 움직임까지 살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시선 데이터는 읽기의 미세한 흔적을 보여 준다. 어떤 학생은 첫 문단에서 지나치게 오래 머물고, 어떤 학생은 핵심 문장을 건너뛰며, 어떤 학생은 문제의 선택지를 먼저 훑고 본문을 대충 읽는다. 이런 정보는 단순한 연구자료가 아니라 수업 설계와 피드백, 상담의 언어를 바꾸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좀 더 집중해서 읽어 보자”는 말은 흔하지만 학생에게는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반면 “너는 제목과 첫 문단은 오래 보았지만, 문제의 조건이 있는 부분은 빨리 지나갔구나” 또는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멈추기보다 앞뒤 문맥을 먼저 보자”와 같은 피드백은 훨씬 구체적이다. 시선추적기술은 문해력 지도를 태도 중심의 지시에서 전략 중심의 지도 쪽으로 옮겨 갈 수 있게 한다. 지금 학교 현장의 문해력 담론은 때로 지나치게 무겁고, 때로 지나치게 단순하다. 한편에서는 “아이들이 예전보다 책을 안 읽어서 문제”라고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AI 시대이니 새로운 기술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한쪽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자동으로 깊은 이해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기술을 들인다고 곧바로 읽기 능력이 자라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읽기의 본질을 다시 붙드는 일이다. 문해력은 글자를 읽는 능력에서 끝나지 않는다. 의미를 연결하고, 맥락을 추론하고, 중요한 정보를 가려내고, 스스로 이해를 점검하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미세하다. 그래서 이제 문해력 논의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한탄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아이들은 실제로 어떻게 읽고 있는가”를 묻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시선추적기술은 바로 그 질문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다. 그것은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교육의 본질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수단이다. 학생의 읽기 과정을 더 면밀히 보고, 더 섬세하게 이해하며, 더 정확하게 돕기 위해서다. 앞으로의 문해력 교육은 두 가지를 함께 가져야 한다. 하나는 인간 교사의 해석력이고, 다른 하나는 보이지 않던 학습 과정을 드러내는 기술이다. 교사는 여전히 중심에 있어야 한다. 다만 앞으로의 좋은 교사는 아이의 답안지만 읽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의 읽기 과정까지 읽어 내는 사람일 것이다. 문해력의 미래는 더 많은 시험지에 있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은, 아이가 한 문장을 읽을 때 어디에서 멈추고 어디로 되돌아가며 무엇을 놓치는지를 조용히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 석윤찬 ◇ 서울대 전기공학부 ◇ 비주얼캠프 대표 ◇ 시선추적(Eye-tracking) 기술 분야 창업가 ◇ AI 기반 시선추적 소프트웨어 “SeeSo” 개발 ◇ 문해력코스웨어 리드포스쿨 공급 ◇ 기술혁신대전 국무총리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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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0
  • [기고] 늦게 배운다는 것의 의미
    [교육연합신문=황영식 기고] 사람은 언제까지 배울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로 살아가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부산 남구 기러기문화원 해람학교에는 조금 특별한 학생들이 있다. 대부분 노년의 학습자들이다. 이들은 어린 시절 학교에 다닐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했다. 가난과 전쟁, 그리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시대 속에서 배움은 늘 뒤로 밀려나 있었다.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아온 이들이 다시 교실에 앉는다. 오상호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공장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했고, 박춘화 할머니는 만주에서의 유년 시절을 지나 평생을 생계에 묶여 살아왔다. 두 사람에게 학교는 언제나 ‘다음에’로 미뤄진 삶의 영역이었다. 처음은 쉽지 않다. 글자는 낯설고, 손은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다. 한 글자를 쓰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교실에서는 그 시간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이 말은 단순한 배려가 아니다. 배움의 속도가 아니라, 배움의 지속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선언이다. 해람학교의 교실에서 배움은 경쟁이 아니라 과정이다.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다. 입학식에서 교장은 말한다.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온 것입니다. ”그리고 졸업식에서는 다시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왔느냐가 아니라, 끝까지 걸어왔느냐입니다.” ‘시와 음악의 밤’과 같은 자리에서는 배움이 단순히 글자를 익히는 것을 넘어, 삶을 노래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힘이 된다고 말한다. 배움은 결국 사람을 사람답게 이어주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배움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다. 삶을 다시 구성하는 과정이다. 오랫동안 ‘못 배운 사람’이라는 낙인처럼 따라다녔던 자기 인식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새롭게 이해하는 시간이다. 그 변화는 일상의 작은 장면에서 드러난다. 버스 정류장에서 목적지를 읽고, 거리의 간판을 소리 내어 읽고, 키오스크 앞에서도 더 이상 주저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이들에게는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경험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이제 와서 배우느냐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편지를 쓰고 싶어서입니다.” 자식들에게, 그리고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말을 이제는 글로 남기고 싶다는 것이다. 그 편지는 과거의 자신에게 닿는다. 힘겨운 시간을 견뎌낸 어린 날의 자신에게, 이제는 괜찮다고 말해 주는 방식으로. 해람학교의 교실은 단순한 교육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다시 읽는 장소이며,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기다림이 있다. 조급함이 아닌 기다림, 비교가 아닌 존중, 경쟁이 아닌 동행. 이러한 교육은 개인을 넘어 사회로 확장된다. 성인 문해교육은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사회 참여를 회복하는 공공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기러기문화원 해람학교는 오랜 시간 한글교육을 이어오며, 늦게 시작한 배움이 결코 늦지 않았음을 증명해 왔다. 이곳에서 졸업장은 학력의 증명이 아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다시 선택했다는 기록이다. 배움에는 늦음이 없다. 다만 시작이 있을 뿐이다. 오늘도 이 교실에서는 누군가 자신의 첫 문장을 써 내려간다. 서툴지만 분명하게, 그 문장은 삶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 ▣ 황영식 ◇ 기러기문화원 해람학교 교장 ◇ (재)하정육영장학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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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6
  • [기고] 아이마다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다
    [교육연합신문=고선화 기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하루하루 기적이 쌓이는 과정이다. 아이마다 성장의 속도와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특히, 발달장애 아동을 양육하는 시간은 기다림의 의미를 다시 배우게 한다. 작은 변화 하나에 담긴 기쁨, 그리고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결코 한 가정만의 몫이 아니다. 아이 한 명이 성장하기까지는 학교와 지역사회, 그리고 제도의 뒷받침이 함께해야 한다. 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어려움을 안고 있다.누군가는 말이 느리고, 누군가는 움직임이 불편하다. 또 어떤 아이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렵고, 교실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도전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이 있다. 아이들의 마음은 모두 같다는 것이다. 함께 웃고 싶고, 함께 배우고 싶고, 함께 어울리고 싶은 마음. 그 단순하고도 당연한 바람이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쉽지 않은 현실이라는 점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우리는 오랫동안 아이들을 나누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그 안과 밖을 구분하며 살아왔다. 이제는 그 경계를 허물어야 할 때다. 아이를 기준으로 세상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이들을 품어야 한다. 학교는 더 따뜻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아이 한 명 한 명의 ‘다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당연한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 돌봄과 교육 역시 더 이상 가족에게만 맡겨질 문제가 아니다. 그 책임은 사회가 함께 나누어야 한다. 다행히 지역사회 곳곳에서는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함께하는 프로그램, 주민과 봉사자들이 참여하는 돌봄 활동,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작은 손을 잡아주고, 한 걸음을 함께 내딛어 주는 일.그 사소한 실천이 아이들에게는 세상과 연결되는 큰 힘이 된다. 아이들이 차별 없이 웃을 수 있는 사회, 부모가 조금 덜 불안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은결국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작은 변화가 모여 큰 변화를 만든다.그 시작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곁에 있는 아이를 이해하려는 마음에서부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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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2
  • [기고] 만우절에 남기는 작은 연극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나는 매년 4월 1일이면 200만 원짜리 거짓말을 한다. 영화의전당에서 근무한 지도 어느덧 16년. 직장 옆에는 아시아 최대 규모라 불리는 백화점이 자리하고 있다. 그 규모만큼이나 사람도 넘쳐난다.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 낮에도 도로가 주차장처럼 막히기 일쑤다.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5시 야외콘서트가 있는 날이면 나는 오후 2시에 출근한다. 연주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리허설을 지켜본 뒤 관객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차를 가지고 가려면 정오 무렵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두 시간쯤 지나면 백화점 인파로 도로가 꽉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불편한 교통 체증 속에서도 한 가지 위안이 있다. 점심 메뉴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백화점 식당가에는 언제나 다양한 선택지가 기다리고 있다. 1년 전 오늘, 2025년 4월 1일 화요일.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작됐다. 오전 10시, 부산의료원장이 영화의전당을 찾았다. 새로 취임한 배우 출신 대표에게 병원 홍보영상 제작 협력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환자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의료원의 회생을 위해 대대적인 홍보를 준비 중이라는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11시에는 서울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생중계 회의가 진행됐다. 예상보다 쌀쌀한 날씨에 대비해 관객들에게 따뜻한 복장을 안내하는 문자 발송과 현장 안내판 설치까지 세세한 논의가 이어졌다. 회의를 마친 뒤 공연팀 동료들과 백화점 식당가로 향했다. 그날의 메뉴는 부대찌개였다. 라면과 우동사리를 추가해 배가 터질 듯 먹고 나왔다. 그러나 배부름도 잠시,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갑작스러운 신호가 찾아왔다. 급히 1층 스타벅스 뒤편 화장실로 향했다. 두 번째 칸에 들어가 앉는 순간, 시야에 낯선 물체 하나가 들어왔다. 왼쪽 휴지걸이 위에 놓인 큼지막한 손지갑. 순간 손이 멈췄다. 조심스럽게 지갑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오만원권 지폐가 빼곡히 들어 있었다. 대략 100장, 500만 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걸 그냥 들고 나가면…? ’곧바로 또 다른 생각이 뒤따랐다. ‘여긴 CCTV 천국이다.’ 짧은 갈등 끝에 나는 안내센터로 향했다. 분실물 습득 신고를 하고 명함을 남겼다. 돌아오는 길, 괜히 마음이 가벼워졌다. 오후 3시, 부산시의회 정책지원담당관 미팅이 있어 자리를 옮겼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해운대경찰서 우동지구대였다. 조금 전 습득한 지갑과 관련해 확인할 사항이 있으니 방문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보상금. 법적으로 습득자는 일정 비율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만약 20%라면 100만 원. ‘100만 원….’ 그 숫자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구대에 도착하자 경찰관은 신분 확인을 마친 뒤 봉투 하나를 건넸다. 지갑 주인께서 감사 인사와 함께 전해달라고 하셨다. 봉투를 여는 순간, 나는 말을 잃었다. 오만원권 40장. 200만 원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걸 받아도 되는 걸까. 잠시 망설이자 경찰관이 덧붙였다. “보상금은 100만 원이고, 나머지는 법적 기준에 맞게 전달된 금액입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갑 주인은 어떤 분입니까?” 경찰관은 잠시 망설이다 답했다. “해운대역 인근 사찰의 스님입니다.” 뜻밖의 대답이었다. 나는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지만, 스님은 신분 공개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잠시 고민한 끝에 나는 봉투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그때 경찰관이 작은 종이 하나를 건넸다. 사찰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종이를 펼쳤다.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그 안에 적힌 한 줄을 바라보았다. 만우절. 이 이야기를 나는 매년 4월 1일이면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사람들은 처음엔 진지하게 듣는다. 이야기가 중반을 지나 ‘200만 원 봉투’ 대목에 이르면 분위기는 금세 달아오른다. “대박이다!”, “오늘 저녁은 네가 쏴라!”, “회에 소주 가자!” 그들의 기대가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 나는 마지막 한 줄을 꺼낸다. "그 종이에 뭐라고 적혀 있었냐면, 만우절.” 잠시 정적이 흐른다. 이내 한숨과 야유가 터져 나오고, 곧 웃음이 번진다. 나는 그 순간이 좋다. 짧은 이야기 하나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결국 웃음으로 끝나는 시간.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소박한 연극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또 하나의 거짓말을 준비한다.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웃음을 남기기 위해... ▣ 서승우 ◇ (재)영화의전당 공연본부장 ◇ 동천고등학교 총동문회 부회장 ◇ 부산시 영화영상정책위원회 위원 ◇ 부산 남구립예술단 운영위원 ◇ 부산연극연극상 선정위원 ◇ 부산창작오페라단 이사 ◇ 前부산문화재단 이사 ◇ 前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운영위원 ◇ 前부산국제연극제조직위원회 부집행위원장 ◇ 前부산연극협회 부회장 ◇ 2025년 국무총리표창장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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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1
  • [기고] 다시 일상을 이어가게 하는 시간, 보호관찰
    [교육연합신문=김미정 기고] 뒷북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요즘 한 드라마에 빠져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다양한 이유로 정신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이 병동에서 벌이는 해프닝을 주제로 다룬 드라마다. 정신병동 간호사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드라마는 정신질환을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이해와 회복의 시선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우울한 주제일 수도 있는 이야기가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들의 회복은 극적인 완치가 아니라 조금 덜 아픈 상태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보호관찰 현장에서 마주하는 모습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최근 보호관찰 대상자 가운데 정신건강 문제를 동반한 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현상이라기보다는 그동안 개인과 가족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문제가 이제야 사회 밖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우울증, 양극성장애, 조현병과 같은 질환을 숨기거나 개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치료를 통해 증상이 조절될 수 있다는 사회적 이해가 확산되고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개선되고 있어 사회가 한 걸음 더 책임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그러나 정신질환과 관련된 강력범죄가 보도될 때마다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 불안은 결국 ‘누가, 어떻게, 계속 이런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살피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보호관찰은 바로 그 지점을 담당하며 치료와 사회내 관리를 이어주는 안전장치의 기능을 한다. 정신질환을 가진 대상자에 대한 보호관찰은 판결문을 검토하는 단계부터 시작된다. 범죄의 내용, 양형의 이유를 꼼꼼히 살피고, 보호관찰 기간 중 지도·감독의 방향과 지원 방안을 모색한다. 정신질환 대상자는 진단서를 제출하고, 정신질환이 의심되는 대상자는 정신건강 선별검사를 실시하여 판단한다. 정신질환 대상자로 판명되면 보호관찰 기간 중 치료를 임의로 중단하여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기적인 진료 및 복약 사실을 확인하고 필요하면 보호관찰관이 병원에 동행하기도 한다. 2023년부터는 보호관찰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정신질환자의 보호관찰 종료사실을 경찰과 지자체에 통보하여, 종료 후에도 치료가 중단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는 최근 강조되고 있는 기소유예 마약사범의 회복과 사회복귀를 위한 ‘사법-치료-재활 연계모델’의 취지와도 맞닿아 있다. 보호관찰은 결국 사람을 다루는 일이다. 재범이나 보호관찰관의 정당한 지시를 위반할 경우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보호관찰 대상자를 지역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복귀시키는 데 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보호관찰관은 생계지원이 필요하면 행정복지센터와 협력하고, 치료 지속여부를 더 면밀히 확인하기 위해서는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와 연계한다. 취업과 자립을 돕기 위해 법무보호복지공단 등 다양한 지역자원과 협력하는 일도 보호관찰 업무의 중요한 부분이다. 드라마 속 의료진이 환자의 작은 변화에도 의미를 두듯, 보호관찰관의 현장도 그렇게 흘러간다. 보호관찰 대상자의 극적인 변화보다 중요한 것은 사고 없이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일,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더 안정된 일상을 이어가게 하는 일이다. 그들이 다시 일상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책임지는 일, 그것이 지금 보호관찰관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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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1
  • [기고] 자아 완성! 시대의 거친 바람을 이기는 나만의 고결한 향기
    [교육연합신문=김성희 기고] 알고리즘의 시대, ‘나’에 대한 본질을 묻습니다. 모든 것이 자동화되고 AI가 인간의 지능을 추월하는 ‘초연결 시대’입니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타인이 정해 놓은 유망 직종이나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길에서 ‘천직(天職)’을 찾으려 방황합니다. 하지만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참된 천직은 단 하나,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찾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천직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직업’이 아니라, 내면의 씨앗이 꽃을 피우는 ‘과정’, 그 자체라고 말입니다. 天職은 배움과 실천으로 빚어내는 자신만의 길이고 모습입니다. 그래서 공자(孔子)는 말합니다. ‘태생적 천재’는 없다, 오직 ‘구하는 자’만 있을 뿐이라고! 우리는 흔히 천직을 ‘운명적으로 타고난 특별한 재능’이라 오해합니다. 그러나 성인(聖人) 공자조차 『논어』에서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다. 옛것을 좋아하고 민첩하게 그것을 구하는 자(好古敏以求之者)일 뿐이다.” 공자가 강조한 천직의 핵심은 ‘역동적인 배움’입니다. 배움은 지식을 채우는 행위를 넘어,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깨닫고 끊임없이 가능성을 확장해 나가는 작업입니다. 즉, 천직은 완성형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배움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공자가 ‘배움의 태도’를 말했다면, 벤자민 프랭클린은 그 배움을 삶에서 어떻게 ‘실천’으로 구현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가난으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밤새 읽은 문장을 다시 써보는 ‘재구성 훈련’을 통해 지식을 손끝의 감각으로 익혔습니다. 특히 그는 자신의 인격을 닦기 위해 ‘3가지 덕목’을 세우고, 매일 밤 검은 점을 찍으며 자신을 점검했습니다. 절제: 배부르도록 먹지 말 것, 결단: 결심한 것은 반드시 실행할 것, 겸손: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본받을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절제, 결단, 겸손, 이 세 가지 덕목이 자신의 몸에 흐르도록 하고, 그것를 점검하는 일로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이처럼 철저한 자기 수련(Self-Discipline)을 통해 그는 인쇄공에서 과학자로, 다시 외교관으로 자신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그에게 직업은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수련의 장’이었을 뿐입니다. 결국 천직이란 특정 직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제보다 나은 나’를 만들어가는 자아 완성의 과정입니다. 우세남의 시 <선(蟬)>에 등장하는 매미가 생각납니다. “居高聲自遠(거고성자원), 높은 곳에 머무니 소리 절로 멀리 퍼지는 것이지, 非是藉秋風(비시자추풍), 가을바람을 빌린 것이 아니라네. 매미의 울음소리가 멀리 퍼지는 것은 가을바람, 외부의 환경이나 타인의 도움 덕분이 아니라, 높은 곳, 고결한 인격과 수련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남의 힘을 빌려 돋보이려 하기보다, 스스로의 내면을 닦아 빛을 내야 합니다. 오늘 내가 읽은 한 줄의 문장을 행동으로 옮길 때, 그것이 자신을 지키고 키워주는 내면의 힘이 되어 비로소 하늘이 내린 단 하나의 진짜 직업, ‘자아 완성’의 천직을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개인의 완성을 넘어 ‘공동체의 완성’으로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경계를 허무는 공감, 초연결 시대의 기술은 우리를 잇지만, 마음은 단절시키기 쉽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타인의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할 때, ‘나’라는 개인은 비로소 ‘우리’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됩니다. 프랭클린이 자신의 덕목을 사회적 헌신(외교, 과학적 발견)으로 연결했듯, 지속 가능한 배움과 나눔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쓰여져야 합니다. 외부의 평가나 알고리즘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인격을 닦는 사람들의 ‘고결한 향기’가 모일 때, 인류는 비로소 기술에 매몰되지 않는 존엄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가을바람을 빌리지 않아도 울려 퍼지는 매미 소리’처럼, 당신의 진심 어린 실천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기를 응원합니다.” 세계인을 향한 공동체 의식과 ‘더 나은 나’를 위한 묵묵한 발걸음만이 ‘나’를 ‘나’이게 하고 ‘세계’를 ‘세계’이게 하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 ‘그런 세상’을 꿈꿉니다. ▣ 김성희 ◇ SLA 어학원 원장 ◇ 무등 환경단체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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