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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노인과 바다'-성대함과 삶의 본질(뢰화풍괘)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대상전」에 뢰화풍괘를 보면 ‘풍요로운 시대에는 풍요로운 제사를 지내 온 국민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상책이다. 우려하지 말라. 만사가 형통하리라.’고 되어 있다. ‘뢰화풍(雷火豊)’의 ‘풍(豊)’은 그릇(豆)에 수확물을 가득 담아 놓은 모양을 형상화한 글자로 ‘크다’, ‘풍성함’, ‘충만함’을 뜻한다. 그런데 『주역』에서는 이런 성대함을 번개와 같은 순간으로 묘사하고 있다. 성대한 것은 반드시 쇠망하는 것이 천지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뢰화풍의 괘사를 보면 ‘풍요로운 시대에는 풍요로운 제사를 지내 온 국민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상책’이라 되어 있다. 효사를 보면 풍기부(비바람을 막기 위해 덧대는 문), 풍기패(햇빛을 가리는 큰 장막), 풍기부(거적때기 덧문), 풍기옥(건물의 처마를 하늘 높이 치솟게 하는 집)으로 점점 햇빛을 차단한다. 여기서 햇빛은 성대함이다. 그늘은 성대함을 가리는 것이다. 건물은 거대해지고 그 속은 점점 어두워지기만 한다. 문명의 혜택으로 마천루는 햇빛을 보려고 계속 하늘 위로 올라가고, 그에 비례해 마천루의 높이만큼 그림자도 길게 드리워진다. “풍기옥 부기가(豊基屋 蔀期家)” 풍요의 시대, 그 차양도 함께 길어져 햇빛을 가리게 된다. 충분히 조심해야 한다. 여기 뢰화풍괘를 잘 보여주고 있는 문학 작품이 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다. 이 소설은 ‘성대함은 번개와 같은 순간, 즉 찰나라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 헤밍웨이를 만나러 쿠바로 가보자.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불필요한 미사여구나 과장도 없이 절제된 언어로 130페이지의 문장들을 통해 삶의 본질과 통찰을 우리에게 던져주는 고전 문학이다. 노인은 84일째 고기를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주위의 사람들이 노인을 비난하고 운이 없는 사람이라고 피한다. 그러나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빈곤과 불운의 생활 속에서도 움츠러들지 않고 오히려 미끼를 정확하게 놓는 연습을 한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빈틈없이 해내고 싶다. 그래야 운이 찾아올 때 그걸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게 되거든”이라며 망망대해를 나선다. 긍정적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노인의 관점은 앞으로 희망찬 미래는 도래하리라는 확신을 준다. 고기가 잡힌다. 그것도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커다란 청새치를 잡는다. 청새치와의 결투. 사투를 다한 싸움의 끝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승리했다는 성취감뿐. 하지만 그 싸움에서 우리는 누구보다 치열하고 뜨겁게 바다에 나가고 돌아오는 과정 속에서 존재론적인 의미를 느낀다. 우리 손에 생긴 상처와 남아있는 청새치의 뼈가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람은 삶을 살면서 그것을 주름으로, 손과 발로 증명한다. 절대로 머리로 증명하지 못한다. 실천은 머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손과 발로 해야 한다. 머리는 힘든 고통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머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역사와 문학은 손과 발을 기억한다. 청새치와의 혈투는 치열함 속에 삶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노인은 청새치를 잡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84일 동안 단 한 마리의 물고기를 잡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도 인생에서 목표를 이루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노인과 같이 치열한 노력과 끈기를 가졌을 때에야 비로소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삶을 위해 아등바등하는 모습과 유사하다. 청새치를 잡았지만 진정한 시련과 위험은 그때부터다. 상어의 공격은 인생에서 찾아오는 시련과 위기다. 노인은 도망가지 않고 상어를 물리치기 위해 칼을 뽑아 든다. 시련을 회피하지 않고 용기있게 맞서는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청새치를 먹으려고 달려드는 상어떼를 물리치기 위해 용기있게 맞서는 노인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노인은 여러 차례 상어떼의 공격에 맞서 싸운 후 청새치의 살점을 모두 빼앗기고 뼈만 남은 채로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다. 노인은 침대에 눕는다. 소년은 노인이 부탁한 커피와 신문을 가져다 줄 것이다. 노인은 깊은 잠에 빠진다. 여전히 사자 꿈을 꾼다. 투쟁의 끝엔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치열하게 싸운 후 느끼는 승리감, 성취감이 전부다. 이것은 바다를 긍정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어서다. 노인은 바다를 남들처럼 남성형 관사인 ‘엘’ 마르라 하지 않고, 여성형 관사인 ‘라’ 마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엘마르는 바다를 싸워야 할 적이나 일터로 보는 것이고, 라마르는 바다를 큰 은혜를 가진 여성으로 보는 것이다. 인생 자체를 긍정적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거기서 닥치는 시련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시련과 고통 없이 인간은 완성되지 않는다. 우리 삶은 덧없이 치열하다. 그 치열함 속에서 파괴당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 않는다는 존엄성을 갖고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려면 삶을 긍정적이고 희망을 가진 자세로 직면해야 한다. 노인의 ‘어부’라는 직업에 대한 자존감, 소명의식을 배워야 한다. 청새치와의 끈질긴 싸움과 상어 떼의 습격에 고통을 참으며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 『노인과 바다』에서의 압권이다. 노인은 숙련된 어부로서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그는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신체적 한계, 나이, 고독한 삶의 대가를 극복해야 한다. 노인은 그걸 증명했다. 인생은 치열한 싸움이다. 도전과 응전이다. 결국 파괴 당할 순 있어도 패배할 수 없다는 자존심이 인내심을 만들고 결국 우리를 안온한 인생의 길로 이끈다. 노인은 내일을 꿈꾸며 돛대를 쥐고 돌아온다. 긴 투쟁에서 승리했지만 결국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생에서 만나는 시련과 고통을 견디는 힘이 결국 인생을 완성시키는 힘이 된다는 진실을 말해 준다. 인생 그것은 순간 순간을 치열하게 흔적을 남기며 또 내일을 기약하며 살아가는 인내의 흔적이다. 노인의 마지막 다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어. 죽을 수는 있지만 패배할 수는 없지.”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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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다시금 대한민국의 교육개혁에 마음을 열면서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교육개혁이 먼저인가? 사회개혁이 먼저인가? 이는 전통적으로 매우 논쟁의 여지가 큰 물음이다. 마치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의 질문과 유사한 것으로 ‘의식’이 먼저냐 ‘제도’가 먼저냐의 우선다툼이라 할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사회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교육개혁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면 ‘교육’도 넓은 의미의 ‘사회’의 한 영역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루어질 수 없다면 어느 한 쪽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우선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국가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경우는 어떤가? 한국 사회는 교육개혁이 사회개혁보다 우선되어야 함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는 진보교육학자인 김누리 교수의 입장(『경쟁 교육은 야만이다』)이기도 하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두 가지 관점에서 사유할 수 있다. 첫째, 한국 사회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되는 대표적인 사회이다. 이로써 한국인들의 의식은 매우 왜곡되어 있다. 따라서 교육개혁을 통해 학교에서부터 그릇된 의식을 바로잡아야 한다. 김 교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의식이 극단적으로 결여되고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복종심이 이렇게 강고한 사회는 대한민국밖에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일상생활에서 쉽게 경험하고 있다. 예컨대 반공, 가부장, 발전, 경쟁, 능력주의, 공정, 소비 이데올로기 등이 아무런 이론적⋅사회적 저항도 받지 않고 일종의 사회적 규범으로 통용되는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둘째, 선진 독일 교육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독일은 유럽의 68혁명 이후 1970년에 과감한 교육개혁을 이루어 이는 곧 사회개혁의 모태이자 동력이 되었다. 즉, 교육개혁이 완전히 ‘새로운 독일인’을 길러냈고 그들이 장기적인 지속성을 갖고 일관되고 안정적인 사회개혁을 이루어냈다는 것이 매우 합당한 증거라 할 것이다. 따라서 사회개혁의 바탕에 교육개혁이 우선이어야 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은 지금도 개혁을 이어오고 있으며 그 견고함이 여타의 역풍, 후폭풍을 극복하고 있음에 주목하게 된다. 교육개혁이 이루어낸 ‘신독일인’의 모습은 무엇일까? 그것은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주도함에 의해 ‘가장 불우한 나라’에서 21세기의 ‘가장 존경받는 나라’로 탈바꿈한 기적을 이루어낸 것이다. 그들은 시리아 난민을 여타 유럽 아니 세계의 어느 나라와도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117만 명이나 수용하고 포용했으며 이는 지금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에 대한민국은 어떤가? 예멘 난민 500명이 제주도에 왔을 때 한국 사회가 온통 들끓고 반대하여 “한 명도 받아서는 안 된다”는 한 젊은이의 주장이 청와대 게시판에 공개적으로 올라 왔을 때 불과 며칠 사이에 수십 만 명이 동조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었다. 그뿐이랴. 최근 SKY소속 한 대학교에서는 시위하는 청소노동자들을 학생들이 고소하고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 이전에 인천국제공항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는 과정에서 젊은이들이 보인 태도는 어떤가? 이는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버젓이 외치는 젊은이들의 단편적인 모습으로 각인되었다. 이런 모든 부끄러운 현상은 한국 교육이 낳은 병폐이자 심각한 실패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렇게 소위 국가의 인재, 엘리트들을 육성하여 배출하는 교육을 자행하고 있다. 이들은 환자를 볼모로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의료 파업을 강행하고 있으며 각종 사법 농단, 정치 실종, 교육 카르텔 등등의 범법행위와 일탈 행태를 자행하고 있다. 미성숙한 사회의 구성원들로 인한 사회 문제는 교육에의 책임이 크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교육개혁은 사회개혁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물론 어떤 직업인이든 극심한 불평등 없이 정의로운 소득을 취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견지하며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몇몇 사회개혁이 우선적으로 불가피하다. 하지만 교실에서부터 성숙한 민주시민을 키우고 그들이 보다 성숙한 민주사회를 실현해야 한다. 이는 국민적 공감혁명을 통해서 각자도생,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무한경쟁에 의한 반인권적인 우리의 교육을 개혁하는 것만이 필요하다. 우리 교육은 이제 행복한 아이, 성숙한 민주시민, 인간에 대한 존엄사상을 기르는 교육으로 가치와 사상을 바꾸고 이를 구현하는데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절치부심의 자세로 나설 때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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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긍정적인 캐리커처 그리기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지난 토요일에 좋아하는 친구와 대전 중앙시장에서 만나 뼈해장국을 놓고 소주를 마셨다. 식사 후에 친구는 내게 선물을 하고 싶다며 캐리커처 그리는 장소로 안내했다. 7,000원 짜리 캐리커처였다. 1분에 완성해 주는 캐리커처라고 선전문구가 벽에 붙어 있었다. 매직펜 단색으로 인물의 간단한 특징만 잡아서 그려주는 곳이었다. 매직으로 그린 여러 사람의 캐리커처가 벽에 붙어 있었다. 모두가 귀엽고 밝은 모습이었다. 보고 있어도 흐뭇한 얼굴 모습이었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내 얼굴을 계속 힐끔거리면서 보았다. 앉아서 상대의 얼굴을 보는 것이 참으로 어색하다는 것을 느꼈다. 여성 화가의 얼굴을 마주보아야 한다는 것이 너무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정말 오랜 시간동안 여성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해서 본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짧은 시간에도 화가의 얼굴을 정면에서 쳐다보지 못했다. 너무도 어색했다. 그러고 보니 직장에서도 여직원의 얼굴을 정면으로 눈 맞춤을 하면서 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교사도 어린 제자가 훌륭하게 과제를 했을 때 머리를 쓰다듬거나 등을 토닥거리지 못한다. 세상이 많이 각박해진 느낌이다. 초경과 몽정을 하고 나면 호르몬이 몸의 성장을 위해 뇌로 가는 신경세포 확장을 줄인다고 한다. 청소년기 아이는 잔소리와 생각하기를 싫어하게 되고 자기 방에서 나오기를 싫어하게 된다. 호르몬의 특징이 나타내는 과정이다. 청소년은 몸을 키우느라 뇌의 성장은 잠시 미루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 있는 사춘기 시절에 왜 그런 언행을 하느냐고 자녀에게 목소리를 높이면 결국 갈등만 생긴다. 청소년을 대하는 핵심은 기다림이라고 했다. 격동적인 신체 변화를 겪는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 부모도 자식을 대하는 기본은 기다림이고 사랑이다. 눈을 맞추고 등을 토닥여주고 언제나 너를 믿는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보다 좋은 자녀교육은 없을 것이다. 건네받은 캐리커처에는 잔주름이 없고 웃는 모습을 한 내 모습이 있었다. 친구는 캐리커처를 보고 자신과 닮지 않았다고 했다. 모자를 쓰고 활짝 웃고 있는 친구의 캐리커처는 20대 같았다. 사람들이 캐리커처를 좋아하는 이유는 특징적인 장점을 잘 표현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먹고 나와서 보니 사람들이 가게 앞에서 줄을 아까보다 더 길게 서 있었다. 날카롭게 잘못한 사실을 지적하고 잘못에 대하여 꾸중하고 그러한 일을 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청소년은 불안정한 성장 과정에서 흔들리는 존재다. 부모와 교사들이 기다려주고 단점보다는 밝은 장점을 찾아주고 칭찬해 준다면 관계는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다. 캐리커처를 서재에 놓으니 나를 보고 그림 속의 내가 웃고 있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도 사람도 모두 아름다운 세상으로 보일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지닌 긍정적인 특징을 캐리커처 화가처럼 잘 잡아내서 칭찬해 주자. 분명히 그 사람도 좋아할 것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천안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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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아동교육에 안전의식을 다시금 고취(高趣)하자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상큼한 봄날의 햇살이 온 누리를 비추고 날로 푸르러가는 자연은 온갖 아름다운 색상의 꽃들로 만개하여 향기를 내뿜는 계절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자연학습이든 야외수업이든 재잘거리는 아이들과 힘찬 기운을 내뿜는 청소년들이 단체로 자연 속애서 활동하는 광경이 자주 눈에 띤다. 특히 고만고만한 키에 비슷한 복장으로 서로 손을 잡고 같은 모양의 앙증맞은 조합을 이루는 새싹들의 모습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에 가슴을 부풀게 한다. 어느 시인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지만 주변의 실상은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하는 모습이 훈훈한 계절이다. 하지만 노파심에 우려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바로 어린 생명들의 안전을 보장해야 할 어른들의 의식의 결여와 순간적인 방심에 따른 무책임이다. 한 무리나 집단의 아동들을 이끄는 야외 활동에는 반드시 책임 있는 어른이나 교사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일상에서 습관화된 행동이나 교육 현장에서 방만한 행동을 보이는 어른들은 이른바 ‘제 버릇 개 못주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아이를 맡긴 학부모나 교육을 하는 다른 동료들에게 피해와 결례를 범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바로 아이들과 따로따로 행동하는 어른들의 무책임과 무분별함 때문이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인근 공원에 걷기 운동이나 산책에 나선다. 그런데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모습에 주위를 둘러보면 어디선가 한 무리의 아이들이 줄을 지어 이동을 한다. 자연 속에 던져진 아이들의 모습은 의례 들떠 있고 특유의 생동감, 역동성이 넘쳐 난다. 그렇기에 몸동작과 발걸음에 나타나는 행동은 이성(理性)적이라기보다는 감정(憾情)에 따르는 경향이 강하다. 곧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과 같은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아이들의 특성이고 특히 자연과 함께 할 때 천진난만한 영혼들의 야성(野性)의 발현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들 주위에는 반드시 누군가 안전을 책임지고 보호해야 할 어른이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보육 담당자든 교사든 안전에 대한 책임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안전제일(safety first)’은 공사장에만 있는 구호가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인솔하는 아이들 앞에서 책임을 방기하고 사적인 스마트폰 사용에 몰입해 있다. 뒤를 따르거나 일정한 장소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은 연령대별로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제각각 흥에 겨워 대열에서 이탈하기 쉽다. 그런데도 책임질 교사는 자신들의 오장칠부의 하나가 되어 버린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거나 귀에 댄 채 무엇인가 또는 누군가에게 온 정신이 팔려있다. 결국 몰입의 순간이 지나쳐 책임마저 방기하는 사고가 유발된다. 그런 결과를 이미 우리는 무수히 반성하고 새롭게 결의하곤 했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일찍이 넬슨 만델라가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그 사회의 영혼을 더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고 한 말은 우리를 두고 한 말 같다. 전국의 초중등학교는 일과 시간 중에 얼마간은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규정에 의해 자제하거나 제한하고 있다. 그것이 아이들의 협의에 따른 자체적인 규정이든 아니면 학부모의 동의를 구한 교사나 학교의 규정이든 분명히 교육 목적상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내린 소중한 결단이다. 따라서 아이들과의 수업 중에 교사 역시 개인적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지극히 상식이자 아이들과의 수업 예절이다. 하지만 교실을 야외로 옮긴 순간에 이를 망각한 채 자신의 중독성 습관에 따라 자기도 모르게 아이들 앞에서 교사답지 못한 행동을 범하는 것은 강력한 경각심과 규제가 필요하다. 왜냐면 무책임한 교사로 인해 수많은 아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과 방심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방심하면 큰 코 다친다”는 옛말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 주변에 도사린 안전사고에의 불감증은 이렇게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체험학습이나 야외수업 등으로 교사가 학생들을 인솔 할 시에 개인적으로 스마트폰의 사용을 법적으로 강력하게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용의 목적이 불가피한 것이 있을 수 있어 지나치다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예고 없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여기엔 상시 대비하고 준비하는 마음과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유비무환(有備無患) 자세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투철한 책임과 사명의식이 함께 해야 비로소 가능하다. 오늘도 곳곳에서 우리의 미래인 새싹들에게 닥쳐 올 비극적인 사고로부터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은 어른들의 강력한 성찰과 책임의식, 영혼에서 오는 것임을 잊지 말자.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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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교사와 의사의 명예가 빛날 때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음절 하나 차이다. 의사와 교사. ‘님’과 ‘남’도 그야말로 점 하나 차이다. 의사와 교사는 님과 남과의 차이만큼이나 대우가 다르다. 국민과 환자가 우선이라며 2,000명을 고수하던 정부가 의대정원을 50%에서 100%로 대학 자율적으로 하라는 양보안을 냈다. 의사협회는 거부했다. 대형병원 전공의가 병원을 이탈한 지 두 달이 되어 간다. 2020년에도 집단휴업을 했지만 지금처럼 길지는 않았다. 당시와 다르게 서로가 상대의 타협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사태 수습을 위한 대화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상대에게 무릎 꿇고 두 손 들고 항복을 하라는 결연한 대결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작년 7월 서이초 사건 이후 교사들은 토요일마다 폭염에도 검은 정장을 입고 ‘질서정연’한 집회로 항의를 했다. 교사들은 신속한 법률개정을 요구했지만 대답이 없었다. 교사들은 움직이지 않는 정부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작년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을 선언했다. 단 하루의 연가였다. 정부는 그날 연가를 내는 교사에게 중징계하겠다는 엄포를 계속 방송에 내보냈다. 당시 거리로 나섰던 교사와 지금 병원을 떠나 있는 전공의는 비슷한 연배다. 젊은 세대로서 국가고시를 통하여 자격을 얻은 전문직종 종사자이다. 전공의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해결될 때까지 무기한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결의를 다지고 있다. 교사정원을 다 채운 학교가 거의 없다. 학교에 기간제 교사와 다양한 공무직이 증가하고 있다. 학교는 수업도 힘들지만 복지, 건강, 급식 등 다양한 요구로 그야말로 점입가경의 어려움을 감내하고 있다. 교대와 사범대 학생들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며 교생실습을 거부하고 휴학을 집단으로 한다면 지금의 교육부는 어떻게 대응을 할까. 교사가 교사 정원이나 교육 정책이 불합리하다고 어린 학생을 두고 무기한으로 교실을 이탈하고 이후 대화를 모두 거부하고 휴직을 한다면 여론과 정부는 어떻게 했을까. 1989년에 교사 1,500명을 해직시키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들이 해임된 이유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 하나였다. 역설적으로 코로나19로 학교의 존재가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를 국민이 깨닫게 되었다. 부모들은 학교가 단지 수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의대 정원파동으로 전공의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의료가 국민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가를 국민들이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하나뿐인 생명을 다루고 있는 의사와 부모에게 소중한 자녀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교사는 국가의 중요한 인적 자산이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교육계 출신 12명이 국회에 입성한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때보다 1명 많다. 9명이 대학교수 출신이고, 초등교사 출신 2명과 학교 비정규직 출신이 1명이다. 4명이 지역구 당선자이고 비례대표가 8명이다. 교사가 죽거나 주말마다 집회를 하지 않더라도 백년대계를 위한 교육 입법을 해주기 바란다. 교사와 의사의 명예는 자기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때가 아니라 자신이 아닌 국민에 봉사할 때 더욱 빛난다. ▣ 김홍제 ◇ 충청남도천안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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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풍천소축의 철학–작은 축적의 위대함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는 삶에서 어떻게 위대함을 달성할 수 있을까? 그 답은 “바람이 멈추니 작은 쌓임이다”라는 소축괘에 담긴 철학에 있다. 이 철학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작은 노력과 경험의 축적이 어떻게 위대함을 창출하는지 그 핵심을 알려준다. 「대상전」에 소축괘를 보면 ‘바람이 하늘 위를 간다. 그러니 작게 쌓을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바람이 불어 구석진 곳으로 낙엽이 쌓여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크게 비가 내리거나 해서 민중에게 혜택을 베풀거나 할 수가 없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내면의 덕을 아름답게 축적시켜야 한다. 멈춤은 작게 쌓인다. 그러니 더욱 자신의 덕성을 다듬는데 온 힘을 길러야 한다. 풍천소축괘는 바람이 불어 땅에 떨어진 낙엽들이 모여 한 곳에 쌓이는 모습이다. 종잣돈이 쌓이면 더욱 분발하여 끌고 가야 한다. 중간에 주저앉아버리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 탄탄해질 때까지 부지런히 반복해서 일해야 한다.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의 「풀잎」(Leaves of Grass)은 작은 축적의 본질을 반영하는 시다. 그의 시는 일상적인 경험들을 통해 삶의 본질을 탐구하며 작은 순간들이 어떻게 큰 전체를 형성하는지를 보여준다. 한 아이가 두 손에 잔뜩 풀을 들고서 "풀은 무엇인가요?"하고 내게 묻는다. 내 어찌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겠는가. 나도 그 아이처럼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필연코 희망의 푸른 천으로 짜여진 내 천성의 깃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그것은 주님의 손수건이다. 하느님이 일부러 떨어트린 기념품일 터이고, 소유자의 이름이 어느 구석에 적혀 있어, 우리가 보고 "누구의 것"이라고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나는 추측하노니- 풀은 그 자체가 어린 아이, 식물에서 나온 어린 아이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것은 모양이 한결같은 상형문자일테고 그것은 넓은 지역에서나 좁은 지역애서도 싹 트고 흑인과 백인, 캐나다인, 버지니아인, 국회의원, 검둥이, 나는 그들에게 그것을 주고 또한 받는다. 또한, 그것은 무덤에 돋아있는 깎지 않은 아름다운 머리털이라고 생각한다. (생략) 풀잎 하나하나가 삶의 중요한 부분을 상징하며 작은 축적의 과정을 강조한다. 작은 순간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위대한 것으로 만든다는 것을 시로 나타낸 것이다. 그는 위대함을 추구하려면 인내와 끈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은 이익을 축적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작은 축적의 과정을 통해 개인은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세상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풀잎’과 ‘작은 축적’의 관계는 위대함이 하나의 거창한 몸짓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인격을 형성하는 소소한 일상적 경험의 축적을 통해 이루어짐을 시사한다. 삶의 웅장함은 단순한 기쁨, 평범한 경험, 역경을 극복하는 회복력의 융합에서 나타난다. 행복한 존재의 비결은 앞으로 나아가는 모든 발걸음이 아무리 작더라도 인생의 위대한 걸작을 만든다는 깨달음에 있다. 노자의 『도덕경』에 보면 ‘유약승강강(柔弱勝剛强)’이란 말이 나온다. 유약한 것,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는 뜻이다. 노자의 이 말은 자연의 본래적인 모습을 묘사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노자 자신이 기획한, 부드럽고 여성적인 문명이, 공자나 법가식의 남성적인 문명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부드럽고, 약한 것들은, 굳세고 강한 것들의 파괴적인 속성과 맞서 왔고, 문명의 저항에 맞서 자연의 가치들을 옹호해 왔다. 특히 고은의 「열매 몇 개」는 ‘유약승강강’의 진리를 실천하는 시로, 작고 약하지만 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짧으니 시 전문을 보자. 「지난 여름내 땡볕 불볕 놀아 밤에는 어둠 놀아 여기 새빨간 찔레 열매 몇 개 이룩함이여. 옳거니! 새벽까지 시린 귀뚜라미 울음 소리 들으며 여물었나니」 시인은 가녀리고 약한 것들을 아끼고 중요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여름 한 철 찔레가 겪어야 했을 고통과 시련(땡볕, 불볕, 어둠)을 떠올린다. 고통과 함께 논다는 긍정성을 보여준다. 2연에서 시인은 열매를 맺는데 숨은 공로자를 찾아낸다. 바로 귀뚜라미다. 귀뚜라미가 열심히 울어주어서 자그마한 찔레 열매 몇 개가 맺어질 수 있었다는 유쾌한 상상이다. 이는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도 비슷한 발상을 보여준다.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가 울고 천둥이 울었다는 그 싯구. 시인은 ‘찔레 열매 몇 개’라고 하는 이 작고 소박한 생명체의 탄생에서 생명력을 발견하고 놀라워한다. 어떤 것에 감탄할 줄 안다는 것은 그것의 가치를 안다는 것이다. 작고 가녀린 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작고 가녀린 것의 생명력 앞에서 감탄할 줄 안다. 감탄할 줄 아는 능력, 그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많은 것들 중 하나다. 작은 축적의 철학을 받아들이자. 그것이 위대함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집요하게 낙엽을 쌓듯이 경험과 덕과 승리를 모으자. 평범한 것이 비범한 것으로 탈바꿈하면서 꾸준한 발전이 가져오는 변혁의 힘을 목격할 것이다. 위대함은 결국 가능성의 지평을 넘어 꿈을 꾸는 인내와 용기의 실에서 엮이는 것이기 때문에 흔들림 없는 정신으로 도전하며 안락함의 한계를 넘어 나가야 한다. 이처럼 바람이 하늘 위를 가니 작게 쌓일 뿐이다. 이런 때는 내면의 덕을 아름답게 온축시키는 데 전념하는 것이 좋다고 『주역』은 말한다. 인간의 경험과 세계 이해를 형성하는데 있어 작은 순간과 경험의 축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양적 축적은 질적 변화를 가져온다. 풍천소축괘의 효사를 보자. 지(地)의 자리다. 바람이 부니 무엇이든 변동이 심하다. 선택할 수 없을 때는 스스로 열리는 마음이 정한 길을 따라가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운명이다. 인(人)의 자리다. 수레바퀴에서 축이 빠진다. 조금씩 아껴가면서 모은 종잣돈을 굴리려고 살피고 있는데 돈 쓸 일이 많아지고, 여기저기서 뜻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하여 종잣돈을 쓰게 된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럴 때는 자기 내면의 성실함을 믿고 열심히 자기 일에 매진해야 한다. 인의 자리이기 때문에 도전하는 용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면 수레바퀴의 축이 빠졌어도 수레를 끌 수 있다. 작게 쌓였으나 크게 된다. ‘네 시작은 미미했으나, 너의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말씀처럼. 천(天)의 자리다. 달이 초승달에서 보름달이 되었다. 인생 말년에 베풀고 봉사하는 삶을 살자. 그리하면 남들에게 존경을 받을 것이다. 인생 말년이 평화롭고 안정된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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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리더의 질문, 리더의 이해
-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얼마 전 엄마의 생신으로 고향에 다녀왔다. 다녀오는 길에 아내가 질문을 했다. “오빠, 어제는 왜 화가 났어?” 고향에서 부모님을 뵙고 식사를 나누던 도중 아내와 작은 마찰이 있었다. 사소한 이유 때문이었다. 아내의 말인즉슨, 부모님이랑 같이 식사자리에 있으면 대화도 나누고 못다 한 이야기도 해야 하는데, 내가 휴대폰만 보고 있더라는 거였다. 그래서 ‘휴대폰 좀 그만 만져.’하고 한 마디 했는데, 한숨을 푹 쉬더라는 거였다. 내 반응에 아내는 “왜 그렇게 예민해?”하고 이야기했고, 나는 부모님이 계신 자리에서 “너는 분위기 파악도 못해?”하고 일갈했다. 아내는 잠자코 앉아있었다. 내 고향은 경북 안동이다. 안동에서 초, 중, 고,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줄곧 타지에서 생활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도 그리 열심히 활동하지 않았다. 학과 대표에 여러 동아리 회장직을 겸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공 수업을 빼먹고 놀러 다니기 일쑤였다. 전국으로, 해외로 돌아다니며 다양한 활동을 했다는 게 유일한 자랑거리다. 덕분에 졸업 평점은 4.5점 만점에 3점이 채 안되었다. 아들의 심장소리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아버지였다. 전화로 “아버지! 산부인과에서 아들의 심장소리를 들었습니다!”하고 말하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 산소에 찾아가서 눈물을 흘리셨던 분도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친척들은 모두 단명하셨다. 고향에서 아버지는 “내가 예순다섯인데, 우리 친척들 중에 제일 오래 살았다.”하고 이야기하실 정도였다. 자식 때문에 평생을 단명에 대한 두려움으로 살아오셨을 아버지의 얼굴이 무척 고단하게, 한편으로는 무척 행복하게 보였다. 부모님이 건강하게 살아계심이 인생에 찾아오는 수많은 행복들 중 하나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유년시절은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의 연속이었다. 누구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고, 중고등학교 시절이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경상도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부모님은 상당히 완고한 성향을 가진 분들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무척 어려워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부모님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1990년대 시절 교사들의 체벌은 당연한 것이었고, 학교폭력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던 시대였다. 부드럽고 따뜻한 대화, 마음에 힘이 되고 용기가 되는 이야기를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과 나눈 기억은 별로 없다. 왕따도, 문제아도 아니었지만 마음은 늘 어두웠다. 힘들고, 어렵고, 수고스럽기만 한 유년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냈다. 턱걸이로 집 근처에 있는 지방대학을 겨우 입학한 것도 당시 내 지적 수준에서는 상당한 쾌거였다고 생각해야 할 정도였다. 성인이 되고 나서 다양한 활동들을 하며 내가 상당히 외교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난 뒤에야 어린 시절의 어려움들과 수고스러웠던 기억들이 조금씩 이해가 되긴 했다. 그렇다고 해서 고향이 내게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 있거나 마음에 아련한 슬픔을 주는 곳은 아니었다.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 상처만 남은 곳, 그다지 정이 가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고향에 가는 게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두 번 다시는 방문하지 않았을 도시로 내 마음에 남아 있다. 고향이 너무 싫어서, 대학만 졸업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이 시골을 떠나리라 마음먹을 정도였다.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해서 부모님을 뵈러 가는 거라면 이야기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늘 마음에 빚을 지고 가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아마 평생 지고 가야 할지도 모를 마음의 앙금인 셈이다. 게다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부모님이지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같은 기억들 때문에 같이 있어도 딱히 나눌 대화거리가 없었고, 실시간으로 업무를 확인해야 하는 일 특성상 틈틈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게 습관이 되어 있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사소한 말다툼이 발생한 것이었고, 급기야 분위기까지 냉랭하게 만들어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어찌 되었건 아내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이는 곧 아내를 이해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오빠에게 왜 화가 났냐고 물은 이유는, 오빠를 이해하고 싶어서 그런 거였어.” 경청은 올바른 질문에서 시작된다. 올바른 질문을 하지 않으면 올바른 답이 나올 수 없고, 엉뚱한 대답을 듣게 된다. 당연히 경청이 안된다. 경청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면 올바른 대화가 불가능하다. 오랜 시간 동안 교육업에 몸담아왔기에 상대방을 이해시키는 것과 질문하는 것의 힘이 크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모든 인간관계 속에서 올바른 질문과 이해는 상대방을 내 편으로 만드는 가장 훌륭한 기술 중 하나라고 믿는다. 그날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는 엄마(시어머니)를 마음 깊이 존경한다고 이야기했고, "내가 좋아서 결혼하기로 한 남편인데 왜 시부모님 앞에서 괜한 면박을 주겠어? 그렇지 않아. 잘 몰라서 이해를 못 했을 뿐이야."하고 내 마음을 달래주었다. 나의 유년시절에 얽힌 이야기,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아들을 키우고 가르치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시시콜콜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지만, 실은 무척이나 멋진 경험이었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이 이야기한 것처럼, '삶은 옳고 그름, 정의와 부정에 관한 이견으로 가득하게 마련'이다. 가족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내는 나의 사소한 실수에 대해 지적하고 질책하지만, 나는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와 같은 상처로 가득한 유년시절을 떠올린다. 나는 아내의 잘못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지만, 사실은 아내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이해관계가 달랐던 것뿐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질문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어제보다 더 나은 리더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 전준우 ◇ 작가, 강연가, 책쓰기컨설턴트 ◇ 前국제대안고등학교 영어교사 ◇ [한국자살방지운동본부] ◇ [한국청소년심리상담센터] 채널운영자 ◇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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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리더의 질문, 리더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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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알리기 프로젝트 Fun&Easy Guide to Korea] The Founding Myth: Dangun Story
- [교육연합신문=유정희 연재] ◈ 건국신화 : 단군이야기 가온) 손에 무엇을 들고 있어요? 애니) 이건 마늘과 쑥이에요 가온) 왜 그것을 들고 있는데요? 애니) 내가 먹으려고 해요 가온) 뭐라고요! 그걸 왜 먹으려는 데요? 애니) 옛날에 어떤 곰이 동굴 안에서 21일간 마늘과 쑥을 먹은 후, 아름다운 여자가 되었다고 들었어요. 가온) 그건 신화예요. 게다가 당신은 곰도 아니고요! 애니) 농담이었어요. ◈ Tell me more 옛날에 하늘을 다스리는 신의 아들 환웅이 세상을 다스렸어요. 그때 호랑이와 곰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매일 환웅에게 기도했어요. 환웅은 호랑이와 곰을 불러 마늘과 쑥을 주며 “동굴에서 100일 동안 마늘과 쑥만 먹고 견디면 사람이 될 수 있다”라고 하였어요. 그러나 호랑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못 참고 포기하였어요. 그러나 참을성 많은 곰은 홀로 동굴에서 견디었어요. 놀랍게도 곰은 21일 만에 아름다운 여자로 변했어요. 환웅은 웅녀를 그의 부인으로 삼았는데 웅녀는 아들을 낳고 단군이라 이름 지었어요. 단군은 자라서 고조선을 세웠어요. 고조선은 한국 역사에 있어 최초의 국가이지요. ◈ 역사 돋보기 요즘, 대부분의 엄마는 아기를 낳은 후 산후조리원에 들어가서 몸을 회복해요. 하지만 예전에는 아이를 낳은 집에는 삼칠일 동안 금줄을 쳐서 산모와 아기를 보호했어요. 삼칠일은 3x7일, 곧 21일을 말하는데, 21일은 웅녀가 사람이 되기 위해 동굴에 머물렀던 기간으로, 건국 신화를 통해서 우리 전통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 수 있어요. 그리고 3은 하늘, 땅, 사람을 뜻하고, 7은 음·양과 오행을 합한 수라고도 해요. 단군신화에 대해 학계에서는 신화로서만 보지 않고, 역사로서 고조선의 실체를 연구·발굴하는 고고학적 노력을 계속하고 있어요. ▣ 지은이 유정희 ◇ 국제교류문화진흥원 원장 ◇ 마리이야기 대표 ◇ 융합관광콘텐츠학회 국제학술대회위원장 ◇ 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 이사 ◇ 저서 《Fun & Easy Guide to Korea》, 《담덕이야기》, 《궁파이야기》, 《창덕궁》,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 펴낸곳 응용한국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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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알리기 프로젝트 Fun&Easy Guide to Korea] The Founding Myth: Dangun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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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와 친해지는 미친 어휘력] 숙주(宿主)
- [교육연합신문=권승호 연재] 무엇이 인간에게 코로나19를 옮겼을까? 박쥐를 중간 숙주로 지목하는 과학자도 있고 밍크를 중간 숙주로 지목하는 과학자도 있어. 숙주가 무엇이냐고? ‘머무를 숙(宿)’ ‘주인 주(主)’로 머물러있으면서 주인 행세하는 동물이나 식물이라는 의미인데 기생생물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생물이라고 이해하면 쉬울 거야. 마지막 숙주를 최종숙주라 하고 발육 도중에 기생하는 숙주를 중간숙주라 하지. 기생(寄生)이 뭐냐고? ‘맡길 기(寄)’ ‘살 생(生)’으로 남에게 몸을 맡겨 살아가는 일을 가리켜. ‘벌래 충(蟲)’이 더해진 기생충(寄生蟲)은 사람이나 생물의 몸 안이나 밖에 붙어살면서 영양분을 빨아먹는 동물을 가리키지. 그렇기 때문에 이 ‘기생충’은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남에게 의존하여 사는 사람을 비난조로 이를 때도 많이 쓰이곤 해. 공생(共生)도 있는데 서로 도우며 함께 산다는 의미야. 종류가 다른 생물이 같은 곳에 살면서 서로에게 이익을 주며 함께 사는 일을 가리키지. 악어와 악어새, 충매화와 곤충, 콩과식물과 뿌리혹박테리아 등이 공생의 예야. 기억나지? 기생충이라는 제목의 영화. 아카데미상 4관왕을 수상한 영화. 그런데 영화 속 기택네 가족은 박사장 가족의 기생충일까? 아닌 것 같은데, 공생관계(共生關係)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기택네가 박사장네 가족의 희생으로 살아가는 것 아니라 기택네는 노동을 공급하고 박사장네는 기택네 노동을 공급받아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서로 싸우지도 시기하지도 않으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옛날에, 잔치나 술자리에서 노래하고 춤추면서 흥을 돋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여자가 있었고 그 사람들을 기생이라 했던 것 알지? 기생충과 연관시키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전혀 다른 개념이야. ‘기생 기(妓)’에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생(生)’으로 흥을 돋게 하는 사람을 일컬었으니까. 전염병을 역병(疫病)이라 하는 것, 알지? 그래. ‘전염병 역(疫)’이야. 병원체에 의해 일어나는 악성 유행병을 역병이라고 해. 역학조사(疫學調査)는 무엇일까? 역학(疫學)이 어떤 지역이나 집단 안에서 일어나는 전염병에 관해 조사하고 연구하며 예방하는 의학을 가리키잖아. 그러니까 역학조사는 전염병의 발생 원인과 발생 지역이나 집단의 특성을 밝히는 일을 말하지. 전염병을 이야기할 때 전수조사(全數調査)나 표본조사(標本調査)에 착수했다는 말 들어보았지. 전체 숫자를 조사했다는 의미로 대상이 되는 통계집단의 단위를 하나하나 전부 조사하는 관찰 방법을 ‘모두 전(全)’ ‘숫자 수(數)’를 써서 전수조사라 해. 일부를 조사함으로써 모집단 전체에 관한 정보를 추측할 수 있도록 계획된 조사 방법은 표본조사(標本照査)야. ‘우듬지(나무의 끝부분) 표(標)’ ‘중심 본(本)’으로 끝부분과 중심만 보고서 전체를 추측해 알아낸다는 의미지. ▣ 지은이 권승호 ◇ 전주영생고등학교 국어교사 ◇ 저서 《삶의 무기가 되는 속담 사전》,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설명해주셨어야 했다》, 《공부의 기본기 한자 어휘력》, 《공부가 쉬워지는 한자 어휘 사전》, 《학부모님께 보내는 가정통신문》 ◇ 펴낸곳 도서출판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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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와 친해지는 미친 어휘력] 숙주(宿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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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죽음과 삶 가운데 서서
-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아침 출근길에 아들이 "아빠, 가지 마" 하고 떼를 쓰며 울었다. 간신이 떼어놓고 가려는데, 이제는 "아빠, 가"하고 떠다 민다. 눈물을 펑펑 흘리며 떠미는 아들을 두고 문으로 향하는데 이번에는 잽싸게 뛰어와서 바짓가랑이를 잡고 더 크게 울었다. 그런 아들을 품에 안고 한참을 다독이다가 귓가에 대고 이야기했다. "아빠는 세상을 다스리러 가는 거야. 아빠가 세상과 싸우지 않으면, 아빠도 세상에 있는 수많은 바보들처럼 평범한 사람으로 살게 될 거야. 아빠가 바보처럼 사는 것보다,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는 게 좋겠지?" 그리고 사무실에 왔는데, 동료의 지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분은 남편과 저녁밥을 먹던 중이었다.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밥을 먹다가 갑자기 스르르 뒤로 넘어갔고,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54세. 한창 일해야 할 나이였다.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사세요." 장례식에 다녀온 동료가 내게 이야기한 말이다. 그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듯 "참 허무하다."하고 이야기했다. 아프리카에서 귀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2009년 1월이었다. 평소 건강관리를 위해 수영을 다니시던 분이었는데, 수영을 하고 나와서 샤워하다가 쓰러지셨다는 거였다. 58년생이신 아버지가 52세 되시던 해에 발생한 일이었다.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고 계시던 주변분들이 신고를 하고 인공호흡을 해주셨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다. 뒤로 쓰러지셨으면 뇌진탕으로 위험했을 텐데, 다행히 앞으로 쓰러지셨다. 하지만 앞니가 모두 부러지는 바람에 50대 초반부터 틀니를 하셔야 했다. "한 번 쓰러지고 나니, 다음에 쓰러지면 그때는 못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구나."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었다. 내 나이 26살 때 일이었다. 최근 생각보다 꽤 괜찮아서 잘 쓰고 있다는, '신뢰할 만한 지인들'의 권유로 유튜브 프리미엄을 써보기로 했다. 무료 서비스 기간이 종료되기 며칠 전에 알람 설정을 해둔 채 무료로 프리미엄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데, 의외로 광고 없이 쓰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검색하는 단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프리미엄 활용 전에 검색한 단어들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광고 없는 뽀로로 ·뽀로로 1시간 ·뽀로로 키즈 ·맛있게 먹자 ·영화음악 1시간 그리고 프리미엄을 이용하고 난 뒤 검색한 단어들의 순서다. ·일리아드 ·하버드 수업 ·헬스 식단 ·성공철학 ·프린스턴 강의 ·일리아드 강해 ·고흐 ·오디오북 세상을 떠난 그분이 자신의 마지막이 오늘이 아닌 어제였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매 순간 어떤 선택을 해왔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가족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매 순간 감사의 마음으로 세상 모든 것들에 작고 소중한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리라 다짐했을 것이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세상과의 단절, 나아가 가족과의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가족은 모든 단위 중에서 가장 상위에 존재하는 최소의 기관이다. 가족이 있기에 우리는 더 정직한, 순수한, 이성적인 판단과 선택에 순응하며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이처럼 함께 밥을 먹고, 숨을 쉬고, 손을 잡고 담소를 나누던 수많은 시간들을 그저 한 줌의 재로 만들어버리는 찰나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차갑게 식혀주고 명확하게 보여준다. 변하지 않은 채 몇 시간이고 지속되는 마음의 상태는 없다.'는 마크 트웨인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죽음 이후에 남은 가족들과 친구들은 속절없이 지나가는 시간들을 애써 외면하며 사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항상 죽음을 앞에 두고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존재의 핵을 제외한 모든 것은 실은 허상이다. 우리가 온전히 '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육신과 감각, 사고와 지능, 돈과 명예, 능력과 재능까지도 모두 잠시 빌린 것이며 어딘가에서 우연히 얻은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그 공적은 오직 나만의 것이다'라는 생각은 아무런 근거도 실체도 없는 망상에 불과하다. -왜 리더인가 197P, 이나모리 가즈오, 다산북스 기억조차 희미한 어느 순간부터 감사일지를 쓰고 있다. 매일 감사 일지를 쓰는 동안, 이전에 없던 감사가 마음을 채우는 것을 느낀다. 처음에는 억지로 적어 내려 가던 감사 일지가 지금은 진정한 감사가 되어 빼곡하게 노트를 채운다. 처음에는 ‘말할 수 있는 입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족을 주셔서 감사합니다.’하던 것이 갈수록 ‘볼펜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커피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휴대폰을 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바뀐다. 지금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손가락의 감각, 모니터를 바라볼 수 있는 건강한 눈, 목을 축일 수 있는 물, 그것도 정수기의 필터를 통과하여 실 한오라기만큼의 먼지도 찾아볼 수 없는 깨끗한 물, 그처럼 깨끗한 물을 삼킬 수 있는 건강한 목, 째깍째깍 움직이는 시계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강한 귀도 모두 하늘의 선물이며 축복이라는 것을 안다. 죽음과 삶 가운데 존재하는 것들 중에 이처럼 큰 의미를 가져다주는 감사를 제외한다면, 그 외에 또 무엇이 의미있는 것으로 남는단 말인가. ▣ 전준우 ◇ 작가, 강연가, 책쓰기컨설턴트 ◇ 前국제대안고등학교 영어교사 ◇ [한국자살방지운동본부] ◇ [한국청소년심리상담센터] 채널운영자 ◇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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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죽음과 삶 가운데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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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와 친해지는 미친 어휘력] 호우주의보(豪雨注意報)
- [교육연합신문=권승호 연재] ‘호우주의보’ ‘호우경보’에서 ‘호우’가 무슨 의미냐고? ‘비 우(雨)’인 줄은 알겠지만 ‘호’의 의미는 모르겠다고? 좋아. 괜찮아. 지금 알아도 괜찮아. ‘뛰어날 호(豪)’야. ‘뛰어날 호(豪)’는 뛰어나고 화려하다는 호화(豪華), 강하고 뛰어나다는 강호(强豪), 부유함으로 뛰어나다는 부호(富豪), 글 쓰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문호(文豪), 뛰어나게 사치스럽다는 호사(豪奢)에도 쓰여. 역사시간에 자주 등장하는 호족(豪族)도 마찬가지냐고? 듣고 보니 맞네. 뛰어난 집안, 권세가 당당한 집안을 가리키니까. 지방에서 재력과 세력을 바탕으로 힘을 과시하는 사람은 토호(土豪)라고도 했지. 일정 시간동안 일정량 이상의 많은 비가 내릴 때 기상청에서 내리는 기상특보를 호우주의보, 호우경보라 한다는 것은 알지? 그러면 주의보와 경보 중 어느 것이 비가 더 많이 온다는 것일까? 주의보(注意報)는 주의를 주는 예보이고 경보(警報)는 경계하라는 예보야. 주의하라는 말보다는 경계하라는 말이 더 강한 느낌이니까 경보일 때 비가 더 많이 오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돼. 운동경기에서도 작은 파울이면 ‘주의’를 주고 큰 파울이면 ‘경고’를 준다는 것을 생각하면 헷갈리지 않을 거야. 호우주의보는 3시간 동안 강우량이 70mm 이상 또는 12시간 동안 110mm 이상의 비가 예상될 때 발령되고, 호우경보는 3시간 동안 강우량이 90mm 이상 또는 12시간 동안 180mm 이상의 비가 예상될 때 발령된다고 해. 호우와 비슷한 말에 폭우가 있어, ‘사나울 폭(暴)’으로 사납게 한꺼번에 많이 쏟아지는 비를 일컫지. ‘국지성 폭우’라는 말 들어보았지? ‘국지(局地)’는 한정된 범위의 지역이라는 의미야. ‘침수가 우려된다.’고도 하는데 ‘담글 침(浸)’으로 집, 논밭, 도로 등이 비로 인해 물에 잠긴다는 의미야. 범람(氾濫)은 또 뭐냐고? ‘넘칠 범(氾)’ ‘넘칠 람(濫)’으로 물이 넘쳐흐른다는 의미야. 그런데 범람은 바람직하지 못한 사상, 물건, 세력 등이 마구 쏟아져 나와 퍼진다는 의미로도 많이 쓰여. 비가 많이 오면 제설(除雪) 작업을 한다고 하지? ‘없앨 제(除)’ ‘눈 설(雪)’로 눈을 없애는 작업이야. 도로 가장자리에 있는 제설함(除雪函)을 본 적 있을 것인데 눈을 제거하는데 사용하는 모래나 염화칼슘 등을 넣어서 보관하는 상자야. ‘제막식(除幕式)’이라고 들어 보았니? 동상(銅像)이나 기념비(紀念碑) 등을 세운 다음에 기념하기 위한 의식을 일컬어. 왜 제막식이라 하냐고? ‘없앨 제(除)’ ‘막 막(幕)’으로 막을 없애는 의식이기 때문이야. 이해가 안 된다고? 동상이나 기념비를 다 만든 다음에 흰 헝겊으로 씌워놓았다가 의식을 시작하게 될 때 관계자들이 모여 그 막을 내리기 때문에 그렇게 붙인 것이야. ‘보(報)’는 ‘알릴 보(報)’야. 사실에 대해 알려줌을 통보(通報)라 하고, 정보를 제공함을 제보(提報)라 하며, 새로 들어온 사실을 빨리 알려주는 일을 속보(速報)라 해. 적의 내부에 침투하여 적의 형편을 살펴서 알려줌을 첩보(諜報)라 하고, 자세하게 알림을 상보(詳報)라 하며, 어떤 내용을 여러 사람에게 널리 알리기 위하여 벽이나 게시판 등에 붙이는 종이를 벽보(壁報)라 하지. ‘홍보’ ‘대자보’도 ‘알릴 보(報)’냐고? 그래. 널리 알리니까 홍보(弘報)인 것이고, 큰 글자를 써서 벽에 붙여 알리니까 대자보(大字報)인 것이야. ▣ 지은이 권승호 ◇ 전주영생고등학교 국어교사 ◇ 저서 《삶의 무기가 되는 속담 사전》,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설명해주셨어야 했다》, 《공부의 기본기 한자 어휘력》, 《공부가 쉬워지는 한자 어휘 사전》, 《학부모님께 보내는 가정통신문》 ◇ 펴낸곳 도서출판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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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실패로부터 비롯되는 인사이트
-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살다 보면 다양한 인간관계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인간관계는 놀라운 인사이트를 제공해주는 귀한 기회로 연결되기도 한다. 최근에 만난 두 분 역시 운명처럼 시작된 인연이었다. 글을 쓰면서 알게 된 분들이었다. 두 분 모두 나와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실패에 대한 경험이었다. 한 분은 지난 10여 년 간 실패를 많이 경험했다고 이야기하셨다. 아내분도 그런 실패를 견디는 것이 힘들었던 것일까? 아내에게 "있잖아, 내가..."하고 운을 떼면 아내분에게 즉시 돌아오는 대답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 마. 그냥 가만히 있어.“ 그의 주변에는 훌륭한 지인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사업이나 향후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면 "형님, 그것 참 좋은 생각입니다. 멋져요. 좋은 아이디어입니다!"하고 응원하며 격려해준다고 이야기했다. 뒤이어 "근데 그 친구들도 지금까지 계속 실패만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하고 대답했다. 우리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다. 반면에 "이제 젊은 나이도 아닌데 그만 좀 하자. 뭘 자꾸 하려고 하냐?"하는 반응을 보이는 분들 대다수가 평범하게 살면서 본업에 만족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여서 해주셨다.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한참을 낄낄거리면서 웃고 떠들며 대화를 나누었지만,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놀라운 시간이었다. 평생 잊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한 기회이자 멋진 경험이었다. 앞서 언급한 분과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사람들의 관심사는 여가, 즉 레저로 옮겨지게 되어 있습니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등산이 유행이었지 않습니까? 지금은 등산 가는 사람은 별로 없고, 골프를 주로 치러 다닙니다. 골프도 성공한 기업가나 연세 많으신 분들이나 배우는 운동이었는데 지금은 젊은 분들도 골프를 많이 배우지 않습니까? 이 시기가 지나면 해양 스포츠로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스쿠버 다이빙, 요트, 크루즈 여행 등등. 상당히 큰 시장입니다. 사업성이 있어요." 국내 최고 수준의 다이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상당한 인사이트가 느껴졌다. 반면 그에게도 어려움이라는 게 분명히 존재했다. "스쿠버 다이빙은 위험한 분야입니다. 언젠가 20대 여대생이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다가 숨지는 사건도 있었는데, 소식을 들은 부모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렇기에 상당한 경험과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한 분야에 남보다는 앞서 나가는 분들이 계시지 않습니까? 저도 스쿠버에 있어서는 정점을 찍었습니다. 국내 유수한 다이빙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실력 역시 저 정도의 레벨입니다. 이 분야에 대해서 함께 사업을 키워나가고 싶은데, 비즈니스화 시킬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아무도 없습니다. 언뜻 제안을 해봐도 반응은 비슷합니다. '에이, 되겠어?' 정도인 겁니다." 상당한 실력과 능력. 그 뒤에는 능력을 뒷받침해줄 통찰력Insight이 필요하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통찰력의 가동범위를 키워준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뜻이 아니었을까. 함께 이야기를 나눈 또 다른 한 분은 브랜딩 전문가이자 마케터였는데, 천재적인 드로잉 실력과 더불어 삶을 관조하는 인사이트가 상당히 뛰어났다. 그분은 실패와 성공의 공식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고난의 크기만큼 탄력의 범위가 커진다는 이야기였다. "실패한 뒤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구간이 5라고 했을 때, 그 5의 깊이만큼 성장하는 게 인생이 아닌가 싶어요. 5만큼 떨어졌으면 그만큼 비례하면서 5, 10, 15로 성장하는 과정이 반드시 있더라고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는 코린도스인들과 케르퀴라인들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케르퀴라인들은 함대를 3개 선단으로 나누고 각 선단에는 3명의 장군을 배치했는데, 그 3명의 장군들 중에서 한 명씩 골라서 배를 전두 지휘하게 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1장 48절) 3이라는 숫자가 완벽한 숫자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지만, 역사적으로 3이라는 숫자에 담긴 의미가 다양한 것은 사실이다. 옛날 사람들은 1은 남자를 의미하고 2는 여자를 의미하며 3은 완성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했다. 성경에서는 성부, 성자, 성령을 일컫는 숫자이며, 하나님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회학에서 봤을 때 3은 집단을 의미하는 최소 단위가 되고, 집단의 행동은 곧 사회적 규범이 된다. 개미들은 3마리가 있어도 1마리가 그룹을 인도한다. 100마리, 1,000마리, 10,000마리가 되어도 마찬가지다. 3개의 그룹 중에서 하나의 그룹이 다른 그룹을 통솔하는 리더가 되어 다른 그룹을 이끈다. 대화를 나눈 우리는 모두 각자의 그룹을 이끌게 될 리더자들이었다는 점에서 묘한 감정이 일었다. '좋은 취지를 가진 사람들과 친목도모를 위한 모임'으로서의 성격도 분명히 있으나, 그 너머의 세계에 대한 통찰력을 나누는 자리였으므로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은 주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류의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좋은 분들을 만나고, 좋은 대화를 나누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나간다는 것. 실패하지 않았더라면 얻지 못했을 기회들이었다. 통찰력의 가동범위를 넓혀준다는 점에서 봤을 때, 실패는 결코 나쁜 게 아니었던 것이다. ▣ 전준우 ◇ 작가, 강연가, 책쓰기컨설턴트 ◇ 前국제대안고등학교 영어교사 ◇ [한국자살방지운동본부] ◇ [한국청소년심리상담센터] 채널운영자 ◇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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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실패로부터 비롯되는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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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와 친해지는 미친 어휘력] 습지(濕地)
- [교육연합신문=권승호 연재] 일정 기간 동안 얕은 물에 잠겨있어서 토양이 물로 포화되어 있는 땅을 습지라 하는데 ‘젖을 습(濕)’ ‘땅 지(地)’로 젖은 땅, 축축한 땅, 습기가 많은 땅이라는 의미야. 습지는 우리의 삶에 엄청 중요하기 때문에 보호해야만 해. 습지가 무슨 역할을 하기에 중요하냐고? 습지에는 물과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에 아주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어. 이러한 생명체를 유지시켜주고 보호해주는 역할을 습지가 하는 거지. 습지에는 플랑크톤이나 유기물질이 많은데 이들이 수서곤충이나 어패류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 그리고 곤충이나 어패류는 조류, 양서류, 포유류의 먹이가 되지. 습지가 없어지게 되면 이 커다란 먹이사슬이 없어진다고 할 수 있어. 수서곤충이 뭐냐고? ‘살 서(棲)’ ‘물 수(水)’로 하루살이, 잠자리, 모기와 같이 물속에서 사는 곤충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야. 어패류는 또 뭐냐고? ‘물고기 어(魚)’ ‘조개 패(貝)’로 어류와 조개류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지. 양서류도 알고 싶다고? ‘둘 양(兩)’ ‘살 서(棲)’로 물에서도 땅에서도 사는 동물이라는 뜻이야. 습지는 우기(雨氣)나 홍수(洪水) 때의 과다한 수분을 토양 속에 저장하였다가 건기(乾期)에 지속적으로 주위에 공급함으로써 수분을 조절하는 역할도 해. 주변 지역의 대기 온도 및 습도 등을 조절하는 것이지. 또 대기로의 탄소 유입을 차단하여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의 양을 적절히 조절해주는 역할도 하지.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은 수질 오염 물질 제거야. 습지에 서식하는 동물, 식물, 미생물과 습지를 구성하는 토양 등은 주변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각종 오염된 물을 흡수하여 오염 물질을 정화시켜서 깨끗한 물로 흘려보내고 있어. 습지는 이러한 자정 능력으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에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거야. ‘젖을 습(濕)’이라 했는데 ‘축축하다’ ‘물기가 많다’는 뜻으로도 쓰여. 공기 가운데 수증기가 들어 있는 정도를 습도(濕度)라 하고, 무엇을 만들거나 처리하는데 액체를 사용하는 방식을 습식(濕式)이라 하며, 피부에 습기를 오랫동안 보존하여 피부의 열감, 가려움, 건조함 등의 불편을 줄여주고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일을 보습(保濕)이라 해. 습기를 보호해준다는 의미지. 습한 지대를 습지대(濕地帶)라 하고, 미나리나 끈끈이주걱처럼 습지에서 자라는 식물을 습지식물(濕地植物)이라 하며, 지나치게 습한 것으로 인해 받은 해로움을 습해(濕害)라 하는 거야. 살갗에 진물이 나는 염증을 습진(濕疹)이라 하고, 실내의 습도를 조절하는 데 쓰이는 기구를 가습기(加濕器)라 해. ‘땅 지(地)’라 했는데 ‘땅’의 의미 뿐 아니라 ‘장소’ ‘위치’ ‘처지’이라는 의미로도 쓰여. 간척지(干拓地), 토지(土地), 택지(宅地), 묘지(墓地), 지하(地下)에서는 ‘땅’이라는 의미이고, 관광지(觀光地), 명승지(名勝地), 지대(地帶), 지역(地域), 시가지(市街地), 지방(地方)에서는 ‘장소’라는 의미야. 지위(地位)에서는 ‘위치’라는 의미이고, 역지사지(易地思之)에서는 ‘처지’라는 의미지. 역지사지가 뭐냐고? 처지(입장)를 바꾸어서 그것을 생각한다는 의미야. ‘지(之)’는 대명사로 쓰였지. ▣ 지은이 권승호 ◇ 전주영생고등학교 국어교사 ◇ 저서 《삶의 무기가 되는 속담 사전》,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설명해주셨어야 했다》, 《공부의 기본기 한자 어휘력》, 《공부가 쉬워지는 한자 어휘 사전》, 《학부모님께 보내는 가정통신문》 ◇ 펴낸곳 도서출판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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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의 클래식 스토리] 쇼팽의 연습곡 ‘혁명’
- [교육연합신문=전미경 칼럼]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쇼팽은 평생을 피아노곡을 만드는데 전념했는데, 27개의 연습곡을 남겼다. 이 연습곡(etude)들은 피아노 연주의 테크닉 연습을 하는 데에도 중요하지만 음악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어 피아니스트들의 연주곡으로 많이 쓰이기도 하고, 피아노 입시생들의 입시 곡으로도 매번 쓰이고 있다. 이 중에서 Op.10, 12번 연습곡은 ‘혁명’이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곡이 만들어진 1831년은 러시아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공격했던 해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벌써 3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1831년 폴란드인들이 느꼈을 공포와 슬픔, 아픔을 지금 21세기 우크라이나 국민들도 겪고 있는 것이다. 매일 뉴스에 나오는 우크라이나 소식을 보면 누군가는 가족을 잃고, 누군가는 고향을 잃었으며, 또 누군가는 전쟁의 포환 속에서 두려움과 불안에 떨며, 아픔과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올 때마다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내 가족, 내 형제와 그런 일을 겪는다면... 생각만 해도 두렵고 분노가 끓어오르지 않을 수 없다. 우크라이나의 전쟁 상황을 보다가 폴란드가 조국인 쇼팽이 느꼈을 분노와 화가 그대로 담겨 있는 것 같은 그의 연습곡 ‘혁명’이 떠오른 건 그래서이다. 쇼팽은 스무 살 무렵 유럽으로 연주 여행을 떠나는데 이후 서른아홉의 짧은 생을 살다 가는 동안 자신의 조국에 다시는 돌아가지 못했다. 자신의 조국 폴란드에서 혁명이 일어나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둘 조국으로 자원하여 돌아갈 때 쇼팽도 그러길 원했으나 그의 아버지가 나라를 위하는 애국심은 음악을 열심히 하는 방법으로도 될 수 있다고 조언하여 계속해서 유럽에서 연주와 작곡에 매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바르샤바가 러시아에 의해 함락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의 심경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래서 탄생한 곡 ‘혁명’은 그때의 쇼팽의 격렬한 심경이 아주 잘 드러나 있다. 바르샤바가 러시아에 점령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쇼팽은 고향에 있는 가족들 걱정을 많이 하였을 것이다. 그는 ‘신은 없는 것인가? 아니면 신 자신이 모스크바 사람인가?’라고 외쳤다고 하는데 그 정도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워낙에 허약한 체질과 병세가 악화되어 서른아홉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면서 누나에게 자신의 심장은 고향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고 하며, 그래서 죽음 후 바로 해부하여 심장은 바르샤바의 성 십자가 교회에 보내어지고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쇼팽의 몸은 그가 마지막까지 지냈던 프랑스 라세즈의 묘지에, 조국을 떠날 때 친구들이 병에 담아준 흙에 덮여 묻혔다. 전쟁은 모든 것이 비극이다. 비록 쇼팽은 병세가 안 좋아져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죽어갔으며 지금 이 시간도 누군가는 가족의 생사를 걱정하며 밤잠을 설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을 위해서 생명이 희생되어야 하며 우리의 삶에서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던가?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은 우리가 정말 중요하게 지켜야 할 것들을 희생시킨다. 이생에서 영원한 것이 없음을 깨닫고 이기심과 욕심에서 비롯되는 희생이 더 이상 없는 세상이 오길 기도해본다. ▣ 첼리스트 전미경 ◇ 가천대 관현악과 졸업(첼로전공) ◇ 서울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수석 역임 ◇ 금천 교향악단 부수석 역임 ◇ 의왕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 강동 챔버 오케스트라 단원 ◇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첼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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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의 클래식 스토리] 쇼팽의 연습곡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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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지도자의 영향력
-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가까운 지인이 헬스 트레이너로 재직하고 있다. 꽤 오랫동안 운동을 해왔다. 키는 175인데 몸무게가 95kg에 육박한다. 멀리서 봤을 때 불룩하게 나온 배 때문에 전혀 트레이너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의 거대한 팔뚝과 가슴근육은 꽤 튼튼하다. 소위 말하는 벌크업Bulk up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그는 결코 훌륭한 트레이너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루는 그가 하소연을 해왔다. 평소 이렇다 할 하소연을 하지 않는 사람인데 무슨 일인가 싶어 들어보았다. 그의 말인즉슨, 남의 뒷담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충고에 의하면 '트레이너가 그렇게 몸 관리를 해서 어떻하냐'는 거다. 선명한 근육을 갖고 자기 관리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뱃살만 뒤룩뒤룩 찌워서 무슨 트레이너를 하느냐는 식의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고 했다. 몇 번을 설명해줘도 이해를 못 하고 더 큰소리를 치느라 힘이 빠진다고 이야기하며, 한동안 상심에 젖어 있었다. 얼마 뒤 그는 자신이 팀장으로 근무하는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의 관장에게 이런 사정을 털어놓았고, 수많은 프로급 보디빌더와 트레이너를 양성한 경력이 있는 관장은 그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한마디로 일축해버렸다. "무슨 소리야?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먹고 더 찌워야 돼!"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양성하는 관장이 아니었더라면 그의 말이 그렇게 힘있게 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림잡아 50은 훨씬 넘어 보이는 중년 관장이었으나 다부진 어깨, 떡 벌어진 가슴, 꼿꼿한 허리, 그리고 거대한 허벅지 둘레가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님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는 나의 지인을 향해 "일단은 몸을 계속 키워야 돼. 근육량도 이 정도면 괜찮지만, 지금보다 10kg은 더 찌워야 될 거야. 그러려면 더 많이 먹고 더 열심히 운동해야 돼."라고 이야기하며 '지도력이란 무엇인가'를 정확히 보여주었다. 지도력은 '누군가로부터 지도받지 않았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을 하게 만드는 능력'을 일컫는 단어다. 여기에서 지도력은 명령order이 아니라 지도coaching에 힘이 실린다는 점을 명심하자. 명령order은 상하 관계 혹은 종속관계에서 생활하는 모든 사람이 일상적으로 듣는 단어다. 지도coaching는 상하관계나 종속관계보다는 파트너 관계에서 주로 들을 수 있는 단어다. 일상생활에서 지도력을 갖춘 사람들이 보기 드문 이유다. 베이비 붐 세대, x세대, y세대, z세대가 지나고 mz세대가 돌아왔다고 한다. 이젠 mz세대를 넘어 새로운 세대가 도래할 지경이다. 같은 국가, 같은 민족, 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세대가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방식을 갖고 상대방을 관찰하고 해석한다. 올바른 판단력을 갖춘 사람이야 사람을 보는 눈이 있어서 적당히 거리를 두며 나쁘지 않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겠지만, 사람을 보는 눈 자체가 모호한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지도자의 능력이 필요한 이유다. 지도자는 기본적으로 칭찬에 익숙하다. 지도자가 되고 싶다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상대방의 장점을 찾아 칭찬하는 것을 몸에 익힐 필요가 있다. 칭찬은 지도자가 휘두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무기이자, 비용이 들지 않는 선물이다. 칭찬은 상대방의 장점을 발견할 수 있는 눈과 마음이 있는 사람들만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부정을 멀리하고 칭찬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충분히 지도자로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칭찬에 인색하지 않기’와 같은 덕목은 지도자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능력에 불과하다. 지도자가 되는 데 필요한 자질을 갖추기 위해서는 자신을 다스리는 훈련이 필요하다. 독서, 글쓰기, 명상, 요가, 혼자만의 산책 등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자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호간의 소통과 단합을 빌미로 의미 없는 모임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니라 혼자만의 여행이 필요한 셈이다. 세대차이는 서로 간의 이해관계와 인식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내면의 그릇이 얼마나 크고 작은가에 따라 나뉘어지는 관계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인간관계는 평생 어려운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진정한 지도자에게는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할 기회를 제공해줄 사색의 시간 외에 그 어떤 여유도 필요하지 않다. ▣ 전준우 ◇ 작가, 강연가, 책쓰기컨설턴트 ◇ 前국제대안고등학교 영어교사 ◇ [한국자살방지운동본부] ◇ [한국청소년심리상담센터] 채널운영자 ◇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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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지도자의 영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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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와 친해지는 미친 어휘력] 독과점(獨寡占)
- [교육연합신문=권승호 연재] 독과점 지위를 이용해 상품 가격을 인상했다는 뉴스도 있고 독과점 금지법 위반을 조사했다는 뉴스도 있어. 독과점(獨寡占)은 독점과 과점을 아울러 이르는 말인데 독점(獨占)은 ‘홀로 독(獨)’ ‘차지할 점(占)’으로 홀로 차지한다는 의미고, ‘적을 과(寡)’의 과점(寡占)은 적은 수의 기업이 어떤 상품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의미야. 그러니까 하나의 기업이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상태인 독점과 두 개 이상의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과점을 아울러 독과점(獨寡占)이라 하는 것이지. 독과점은 경쟁이 없는 시장 형태이기 때문에 완전 경쟁 시장보다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어. 독점이나 과점 시장에서 결정되는 상품이나 용역의 가격을 독과점 가격이라 하고, 특정 상품의 시장을 전적으로 또는 대부분 지배하여 경쟁자 없이 행하는 사업을 독과점 사업이라 하며, 독점과 과점이 형성된 시장 구조를 독과점 구조라 해. ‘용역’이 무엇이냐고? ‘쓸 용(用)’ ‘일 시킬 역(役)’으로 ‘사람을 써서 일을 시킨다’는 의미인데 생산과 소비에 필요한 육체적 정신적 노력을 제공하는 일이라는 의미야. 독과점 체제라는 것도 있는데 특정 상품의 시장을 전적으로 지배하여 경쟁자 없이 행하는 체제를 일컫지. ‘스크린 독과점’이라고 들어보았니? 소수의 영화가 대부분의 상영관을 차지하여 상영되는 현상을 말해. 독과점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단어가 담합과 카르텔이야. 독과점 업체들이 담합을 통해 멋대로 가격을 정하기 때문이고, 카르텔을 형성하여 이윤을 높이기 때문이지. 담합이 뭐고 카르텔이 뭐냐고? 담합(談合)은 ‘말씀 담(談)’ ‘합할 합(合)’으로 두 사람 이상이 말을 합해서 하나로 만든다는 의미야. 남들은 모르게 자기들끼리 미리 짜고 약속했다는 뜻인데 경쟁 입찰에서 몇몇의 입찰 참가자들이 서로 짜고 입찰 가격이나 낙찰 대상자 등을 정하여 실질적인 경쟁을 제한하는 행동을 말하지. ‘카르텔’은 동일 업종의 기업이 경쟁의 제한 또는 완화를 목적으로 가격, 생산량, 판로 등에 대하여 협정을 맺는 것으로 형성하는 독점 형태야. 같은 종류의 생산품을 제조하는 기업 사이에 판매 가격을 협정하는 카르텔을 가격 카르텔이라 하는데, 협정되는 가격은 가격 인하를 막고 경쟁을 배제하기 위한 최저 판매 가격이 되지. 일정 가격 이하로는 제조품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하는 것을 말해.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가격 카르텔에 의한 기업의 횡포에서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독점 규제를 하고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독과점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를 독과점법(獨寡占法)이라 해. 독과점 활동을 제한하여 소비자를 보호하고 중소기업을 보호 육성하기 위한 법인 것이지.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독과점 사업자를 지정하여 이들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 일반 사업자보다 강하게 제재를 가하고 있어. ‘침묵의 카르텔’이라고 들어 보았니? 함께 침묵하자고 약속한다는 의미인데, 사회 집단이나 이해 집단 내에서 특정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 집단의 구성원들이 이에 대해 침묵하고 외면하여 사건이 은폐되는 사회 현상을 이르는 말이야. 비겁한 침묵이라 할 수 있고 정의롭지 못한 침묵이라 할 수 있지. ▣ 지은이 권승호 ◇ 전주영생고등학교 국어교사 ◇ 저서 《삶의 무기가 되는 속담 사전》,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설명해주셨어야 했다》, 《공부의 기본기 한자 어휘력》, 《공부가 쉬워지는 한자 어휘 사전》, 《학부모님께 보내는 가정통신문》 ◇ 펴낸곳 도서출판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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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와 친해지는 미친 어휘력] 독과점(獨寡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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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나이가 들면서 사라져가는 것들
-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에피쿠로스가 남긴 인생의 행복을 위한 3가지 중요 요소가 있다. 우정, 자유, 사색이다. 긍정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은 행복의 5가지 요소를 긍정 정서, 의미, 성취, 관계, 몰입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대할 수 없는 것들이다. 에피쿠로스의 우정, 자유, 사색은 마틴 셀리그먼이 이야기한 5가지와 연결되어 있다. 긍정적인 정서는 진심어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 혹은 가족의 사랑과 우정으로부터 비롯되는 심리적 안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그런 관계 속에서 우리는 세상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마음의 평안과 자유를 느낄 수 있다. 그런 관계 속에서 의미 있는 성취를 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고, 그 힘을 통해서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몰입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이론만으로는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즉, '이론에만 치우친 행복의 요소들'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 대부분의 요소들이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사라져가는 것들이라는 데 있다. 10대 시절에는 다양한 부류의 친구들이 있다. 조용한 성향을 가진 친구, 과격한 성향을 가진 친구, 거짓말에 능하거나 욕을 잘하는 친구,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는 친구 등등 다양하다.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경우도 있지만, 다양한 부류의 친구들을 접하는 동안 나와 맞는 친구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대부분 나와 맞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이어나간다. 이 때 만들어진 훌륭한 친구관계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큰 도움을 주고 받는 평생친구가 되기도 한다. 20대가 되어 사회생활을 하면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친구관계가 절실해진다. 계획보다 행동에 능하며 진취적인 성향을 바탕으로 훌륭한 성과를 만들어내는 친구들이 주변에 있다면 확실히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다 30대가 되고 40대가 되면 그야말로 믿을 수 있는, 충분히 신뢰할 만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친구에서 동료로, 동료에서 동지로 나아가는 길목에 서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사라져가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위대한 철학자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19세기 영국 총리)의 말처럼 "삶은 시시하게 살기엔 너무 짧다." 그럼에도 시시하게 살면서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너무나 많다. 나이가 들면서 늘어나는 것은 주름뿐만이 아니다. 10대 시절에는 대학 입시라는 틀에 박혀서 살고, 대학생이 되면 취업만 준비하다가 중요한 시기를 흘려버린다. 결혼 이후에는 자녀들의 사춘기 혹은 입시 준비로 어려움을 겪는 일이 생기고, 나이가 들어 업무 재량이 업그레이드 되면서 판단력과 경영능력이 필요해지는 때가 온다. 그때부터는 자기관리에 있어서는 시간과 건강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많은 부분이 달라진다.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 즉 자기관리 능력Self-control ability을 갖추지 못하면 어떤 식으로든지 도태되기 마련이다. 앞서 언급한 마틴 셀리그먼의 '행복의 5가지 요소'와 에피쿠로스가 남긴 '인생의 행복을 위한 3가지 중요 요소'는 분명히 생각해봐야 할 만한 요소들이다. 이론만으로 행복을 정의내리기엔 행복은 너무 추상적이기 때문에 진지하게 사색의 시간을 가지며 나를 돌아봐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는다면 긍정적인 정서, 의미, 성취, 관계, 몰입 중 어떤 것도 정확하게 현실화할 수 없다. 우정, 자유, 사색도 마찬가지다. 충분한 시간과 경제적 여유를 가진 백수가 아닌 바에야 성장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과 행복의 3요소를 토론주제로 삼을 만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나이가 들면서 사라져가는 것들을 무의미하게 바라만 봐야 할 것인지, 사라져가는 것들을 붙들고 힘있게 도약할 것인지는 오직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 전준우 ◇ 작가, 강연가, 책쓰기컨설턴트 ◇ 前국제대안고등학교 영어교사 ◇ [한국자살방지운동본부] ◇ [한국청소년심리상담센터] 채널운영자 ◇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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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나이가 들면서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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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의 클래식 스토리] 우울할 때 듣는 클래식 음악
- [교육연합신문=전미경 칼럼] 사람은 누구나 우울할 때가 있다. 요즘처럼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가 발달한 세상에서는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즐겁고 행복해 보이는 것만 같다. 인터넷 상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여유로운 삶의 모습과, 매일매일이 즐거운 일로만 가득 차 있어 보여 많은 사람들을 위축시키곤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이 과연 그럴까? 사람이 산다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돈이 많다고 해서 늘 행복하기만 하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재벌들은 다 행복해야 할 텐데 그렇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행복하다면 마음에 평화와 즐거움이 가득해 수명도 길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100세 시대라고 하는 이 시대에, 재력가인 유명한 사람들의 수명을 보면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의 삶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갖고 있었는가와 큰 연관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돈뿐만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고 마냥 행복하기만 한 것도 아니요, 내가 원하는 것을 손에 쥐었다고 평생 행복하기만 하지도 않다. 모든 것은 순간이며 그 순간이 지나면 안 좋은 상황에 놓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사람의 삶은 기쁜 일만 있지도 않고 슬픈 일만 있지도 않다. 우리는 언제든 기쁘고 활력이 넘칠 수도, 또 우울해서 기분이 한없이 다운될 수도 있다. 지금 좋은 상황에 있다고 오만방자해서도 안되며 지금 슬픈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한없이 우울해할 필요도 없다.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보면 위대한 음악가들도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는 비참하고 가난하고 인정받지 못하며 그렇기에 우울하고 슬픈 삶을 살았던 분들이 참으로 많다. 사람마다 기분이 우울할 때 어떤 음악을 듣느냐는 사실 다를 수 있겠다. 신나는 음악으로 기분전환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슬픈 음악으로 감정을 달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우울할 때면 가슴 깊숙이 파고들어 절절한 슬픔을 노래하는 음악이 더 와닿는다. 그렇게 음악과 함께 내 속의 나를 만나는 시간이 훨씬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 많은 곡들이 있지만 특히 떠오르는 두 곡이 있다. 먼저 독일의 작곡가 막스 브루흐(Max Bruch)의 콜 니드라이(Kol Nidrei)라는 곡이다. 관현악과 첼로를 위한 이 곡은 시작부터 비통함과 흐느끼는 듯한 슬픔을 담고 있다. 유대교의 속죄의 날 전야에 부르던 옛 성가가 있었는데 브루흐가 이 성가의 멜로디를 환상곡 형식으로 재창조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종교적이고 민속적인 색채가 강하게 묻어나는 곡이기도 하지만, 브루흐는 실제 유대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는데 그의 사후 나치가 집권하면서 브루흐 집안을 유대교로 의심하여 그의 곡들이 연주되는 것을 10여 년에 걸쳐 막았다고 하며, 그의 집안 사람들은 나치에게 심한 박해를 받았다고 한다. 이 곡을 듣거나 연주하고 있으면 종교를 떠나서 순수한 마음으로 신 앞에 겸손한 자세로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느껴진다. 후에 모든 오해가 풀려 브루흐의 곡 중에선 바이올린 협주곡 1번과 더불어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이 되었다. 한 곡을 더 얘기해보자면 러시아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빼놓을 수 없다.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협주곡을 4곡을 만들었는데 첫 번째 곡을 발표하고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좌절하고 슬럼프에 빠져 3~4년 동안 아무 곡도 쓰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이 곡엔 마치 라흐마니노프의 인생이 투영된 것처럼 1악장은 어둡게 시작하고 2악장에서는 절망과 희망이 교차되는 느낌이며, 3악장에서는 밝고 긍정적인 선율로 노래를 한다. 첫 번째 협주곡으로 인한 좌절, 그로 인한 자신의 내면과의 싸움, 좌절을 극복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노래하는 라흐마니노프의 기쁨이 들어있다. 음악이 모든 것을 치유해 줄 순 없겠지만, 우리가 내면의 나를 위로하고 좀 더 활기찬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작은 위로가 되어주는 것은 분명하다. 누구에게나 우울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우울함이 찾아왔을 때, 나를 한번 더 살펴보고 음악이라는 작은 위로와 함께 한다면 우리는 좀 더 성숙한 어른이 되어 있지 않을까. ▣ 첼리스트 전미경 ◇ 가천대 관현악과 졸업(첼로전공) ◇ 서울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수석 역임 ◇ 금천 교향악단 부수석 역임 ◇ 의왕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 강동 챔버 오케스트라 단원 ◇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첼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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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의 클래식 스토리] 우울할 때 듣는 클래식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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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선택의 함정
-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내가 갖고 있는 기술을 세상에 널리 알려 활용토록 하겠다." 교세라의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가 한 말이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기업가다. 20대에 창업을 해서 교세라의 명예회장이 되기까지 70여 년간 현장에서 실무를 쌓은 살아있는 경영의 신이다. 78세 되던 해 JAL(일본항공) 경영을 맡아 20조에 달하는 적자를 청산하고 파산 2년 8개월(1155일)만에 도쿄 증권거래소 재상장이라는 최단 기록을 세웠다. 직원의 행복 추구, 기본적인 소양의 가치 추구, 아메바 경영을 바탕으로 32,000명에 달하는 전 직원으로 하여금 숫자를 보는 경영을 가능케 했다. 일본 역사상 전무후무한 경영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런 이나모리 가즈오에게 무슨 실패가 있었을까. 이나모리 가즈오가 "내가 갖고 있는 기술을 세상에 널리 알려 활용토록 하겠다."라고 마음의 기준을 정한 뒤 사업을 시작했을 때, 회사는 순풍을 만난 배처럼 성장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직원들로 인해 상당한 마음의 상처를 입는 일이 발생했다. 고졸 사원들이 승진, 상여금 인상 등의 처우 개선을 비롯한 더 나은 조건을 제공해줄 것을 요구하는 요청서를 들고 와서 난동을 부린 것이었다. 겨우 직원들을 설득하고 달랜 뒤 보내긴 했지만, 이후 회사의 존재 여부에 대해 깊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창업한 지 불과 수년만에 회사의 존폐 여부가 불확실해진 상황에 처한 것이었다. 이후 이나모리 가즈오는 '회사는 직원의 생활을 지켜주고 행복한 인생을 가져다주는 것이어야만 사명이 되고 경영의 의의가 될 수 있다.'는 미션으로 새로이 재정립하고 회사를 성장시켜나가기 시작했다. 결과는 역사가 증명한다. 이후 그는 교세라의 급성장이 '직원의 행복 추구'라는 다소 도덕책적인 이타심에서 비롯되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살아있는 경영의 신을 만든 모토는 '직원의 행복 추구'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선택의 재고를 통해 역사에 획을 긋는 위대한 기업을 만들어냈다. 1인 기업이 대세다. 대부분의 직장이 '평생 부정적인 생각만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점에서 소소한 창업을 준비하거나 작게나마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름도 거창한 스타트업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훌륭한 엔지니어나 디자이너, 개발자들도 있다. 보고만 있어도 가슴 깊이 껴안아주고 싶을 만큼 위대한 마인드와 창의력으로 똘똘 뭉친 훌륭한 인재들이 조금씩 사회에 등장하고 있는 시대다. '단군 이래 가장 돈 벌기 좋은 시대'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닌 셈이다. 요즘 시대에 가난하다면 죄를 짓는 거라는 말도 등장했다. 그러나 사업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나 경영자의 마인드가 없다면 사업실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 직장인의 뇌와 경영자의 뇌는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부모님이 직장생활만 오래 하신 분들이었거나 주변에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없었던 사람이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무척 어려운 일이다. 생각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1인 기업을 준비하라는 말을 허투루 들어서는 안된다. 사업뿐만이 아니다. 모든 일에는 선택의 함정이 있다. 공부든, 이성친구든, 친구관계든, 무엇이든 마찬가지다. 옳다고 믿었던 일이 옳은 일이 아니었을 때, 용기를 갖고 추진했던 일이 수포로 돌아갈 때, 괜찮은 선택이라고 믿었던 일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을 때, 우리는 상당한 피해를 입거나 어려움을 당한다. 그렇기에 매 순간 올바른 선택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며, 또 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 선택이 틀렸다면, 더 나은, 또 다른 선택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수고스럽지만, 결과적으로 나를 더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는 길이다. ▣ 전준우 ◇ 작가, 강연가, 책쓰기컨설턴트 ◇ 前국제대안고등학교 영어교사 ◇ [한국자살방지운동본부] ◇ [한국청소년심리상담센터] 채널운영자 ◇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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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선택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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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와 친해지는 미친 어휘력] 집행유예(執行猶豫)
- [교육연합신문=권승호 연재] ‘이런 쓰레기 같은 사람에게 집행유예라니?’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라는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있어. ‘집행유예(執行猶豫)’는 ‘집행’에 ‘유예’가 더해진 합성어인데, 집행(執行)은 잡아서 행한다는 의미고, 유예(猶豫)는 미루거나 늦춘다는 의미야. 유죄의 형(刑)을 선고하면서 이를 즉시 집행하지 않고 일정 기간 그 형의 집행을 미루어주는 것을 집행유예라 하는 것이지. 그 기간에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되면 선고했던 형의 효력을 상실하게 하는 제도인 거야. 가벼운 죄를 범한 사람이나 초범자에게 많이 적용하고 있지.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은 기쁠까 슬플까? 무죄 선고를 받지 못하였으니까 못마땅할 수 있고 불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일단 교도소로 가지 않고 집으로 가게 되니까 기쁘지 않을까? 죄가 더 가볍다고 판단될 때에는 선고유예(宣告猶豫)를 내리기도 해. 징역 몇 년을 선고할 것인가를 미룬다는 의미지. 죄가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크지 않다고 판단될 때 선고를 미루는 것이라 해석하는 것이 괜찮을 것 같아. 집행유예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잘못 없이 유예 기간을 보내게 되면 형의 선고는 효력이 없어지게 되지. 징역(懲役)과 금고(禁錮)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일을 시키느냐 일을 시키지 않느냐의 차이야. 그럼, 일을 시키는 것이 징역일까 금고일까? ‘역(役)’이 병역, 노역, 악역, 고역, 부역, 사역 등에서처럼 ‘일하다’는 의미고 ‘고(錮)’가 ‘가두다’는 의미인 것을 생각한다면 헷갈리지 않을 것 같아. 죄인을 교도소에 가두어 일시키는 형벌은 징역이고 교도소에 가두어두기만 할뿐 노역은 시키지 않는 형벌은 금고인 것이지. 잠깐,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물건 중에 교도소의 재소자들이 만든 제품이 있다는 사실 알고 있니? 징역형을 선고 받은 교도소의 재소자들은 일을 하도록 되어 있다고 했지? 교도소에서 만들어진 물건들은 수형자들의 기술 연마와 근로정신 함양을 위한 것이기에 다른 제품보다 저렴하다고 해. 발생한 이윤은 수형자에게 작업 장려금으로 지급되어 수형자들의 성공적인 사회복귀에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고 하니까 구매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교도소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구입이 가능하다고 하니까 관심 가져주면 좋겠어. ‘변호사법 위반혐의로 기소했다’라고 하는데 기소(起訴)는 ‘일으킬 기(起)’ ‘소송할 소(訴)’로 소송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법원에 심판해달라고 요구하는 일이야. 공소(公訴)라고도 하는데 ‘숨김없이 드러낼 공(公)’ ‘소송할 소(訴)’로 숨김없이 드러내 놓고 소송한다는 의미지. 검사가 어떤 형사사건에 대하여 법원에 재판을 청구하는 일을 가리켜. 고소(告訴)와 고발(告發)이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지? 고소(告訴)는 피해자나 피해자의 법적 대리인이 수사 기관에 범죄 사실을 신고하여 기소를 요구하는 의사 표시고, 고발(告發)은 피해자 아닌 제3자가 수사 기관에 범죄 사실을 신고하여 기소를 요구하는 의사 표시야. 고소는 ‘억울해서 소송하겠음을 알린다.’로, 고발은 ‘사건이 발생한 것을 보았기 때문에 알린다.’로 이해하면 헷갈리지 않을 것 같아. 사법부(司法府)가 무슨 의미인 줄 생각해 본 적 있니? ‘맡을 사(司)’ ‘법 법(法)’ ‘관청 부(府)’로 법을 맡은 관청이라는 의미야.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정치를 논의하고 풍속을 바로잡으며 관리들의 잘못을 조사하여 그 책임을 탄핵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를 사헌부(司憲府)라 했는데 ‘맡을 사(司)’ ‘법 헌(憲)’으로 법을 맡아 다스리는 관청이라는 의미였어. 조선시대에 임금께 옳지 못하거나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말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를 사간원(司諫院)이라 했는데 간언(諫言)하는 일을 맡아보는 관청이라는 의미였지. 모임이나 예식에서 차례를 따라 그 일을 진행하는 사람을 사회자(司會者)라 하는 이유 역시 회의를 맡은 사람이기 때문이야. 어떤 사건에 대해 판사에게 재판해 달라고 요청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검사하는 사람이기에 ‘검사할 검(檢)’ ‘사건 사(事)’의 검사이고, 죄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고, 있다면 얼마 만큼인지 판가름하는 사람이기에 ‘판가름할 판(判)’의 판사야. 변호사(辯護士)는 어떤 의미냐고? ‘말 잘할 변(辯)’ ‘보호할 호(護)’ ‘선비 사(士)’로 말을 잘해서 의뢰인을 보호해주는 선비(사람)라는 의미야. ▣ 지은이 권승호 ◇ 전주영생고등학교 국어교사 ◇ 저서 《삶의 무기가 되는 속담 사전》,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설명해주셨어야 했다》, 《공부의 기본기 한자 어휘력》, 《공부가 쉬워지는 한자 어휘 사전》, 《학부모님께 보내는 가정통신문》 ◇ 펴낸곳 도서출판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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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와 친해지는 미친 어휘력] 집행유예(執行猶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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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작게 보이는 것의 의미
-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길을 가다가 경찰서에서 할머니의 손을 잡고 나오는 어린아이를 보았다. 초등학교 1, 2학년 정도 되어 보였을까. 정말 어린아이였다. 그런데 옷차림은 초등학교 2, 3학년 아이의 옷차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빨갛게 염색한 머리, 스냅백, 허리춤에는 손수건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박스티에 조거 팬츠, 스니커즈. 20대 청년들이 입고 다닐 만한 스타일이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 아이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이끌리다시피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나머지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나는 멀어져 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내 시야에서 영영 사라져 버릴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까지 그 아이는 한 번도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도, 할머니의 손을 놓지도 않았다. 무척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껄렁해 보이는 스타일의 어린아이, 할머니의 손을 잡고 경찰서에서 나오던 아이, 나는 어쩌면 그 아이가 느꼈을지도 모를 두려움, 걱정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SNS의 영향으로 이른 나이에 다양한 정보들을 접하게 된다'는 식의 틀에 박힌 결과는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어른들이 몰라서 그렇지, 요즘 애들이 빨라.", "자식이 염색해달라고 하는데 부모가 안 해주고 배길 수 있어?" 하고 웃어넘겨버릴 만한 장면이었다면 그 장면이 뇌리에 그렇게 강하게 박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두렵거나 민망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과 기술이 어른에 비해 부족하다. 두렵거나 민망한 상황이 생기면 눈과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른다. 그때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러나 핏기가 가신 얼굴로, 주머니에 손을 꽂고, 가만히 서 있는 것이다. 주변에 철봉이 있다면 철봉에 매달리거나. 슈퍼마켓에서 몰래 과자 갖고 나오기, 약한 친구 괴롭히기, 치고받고 싸우기. 어린아이들이 주로 하는 나쁜 행동들이다. 아마 그 아이도 이런 나쁜 행동들을 통해 경찰서에 방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성인도 잘못을 저지른 대가로 경찰서에 방문하는 게 두렵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법의 잣대를 통해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어린아이라면 그 두려움은 더욱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할머니의 손을 꼭 잡은 고사리처럼 작았던 그 아이의 손이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나만의 상상이다. 아무런 근거 없는 착각일 수도 있다. INFJ라는 성향에 걸맞게 별 것도 아닌 일에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내 착각이 사실이라면, 그 아이의 두려움은 누가 보듬어주고 없애줄 것인가. 학창 시절에도 비슷한 친구들이 있었다. 노랗고 빨갛게 염색한 머리, 튀는 옷차림, 주머니에 꽂은 손, 껄렁한 태도. 어쩌면 그 나이대에서만 가능한 패션과 태도일 수 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친구들은 대부분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가운데에서 성장한 친구들이었다. 부모님의 불화, 가정폭력, 이혼, 강압적인 부모님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이었다. 그 당시에 비싼 옷과 비싼 운동화를 입고 다니던 친구들 대부분이 평탄하지 않은,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그들은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서, 하지만 해결할 수 없는 두려움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잘못된 길을 선택했던 게 아니었을까?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조심스레 추측해볼 따름이다. "생각이 큰 사람은 듣기를 독점하고, 생각이 작은 사람은 말하기를 독점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크게 생각할수록 크게 이룬다」 162P, 데이비드 슈워츠, 나라 출판사 - 슬플 때 슬퍼하고, 힘들 때 힘들다고 이야기하고, 어려울 때 어렵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마음의 그릇. 정말 큰 사람이 가진 내면의 자질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무엇보다 생각이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의 차이는 듣는 능력에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진리다. 결과적으로 누구와 사귀고 관계를 맺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기준이 된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걸어가던 그 아이의 미래가 눈부시게 빛나기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의 즐거운 만남으로 인해 큰 리더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 전준우 ◇ 작가, 강연가, 책쓰기컨설턴트 ◇ 前국제대안고등학교 영어교사 ◇ [한국자살방지운동본부] ◇ [한국청소년심리상담센터] 채널운영자 ◇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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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작게 보이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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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의 클래식 스토리] 내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
- [교육연합신문=전미경 칼럼] ‘늙으신 어머니 내게 이 노래를 가르쳐주실 때 두 눈에 눈물이 곱게 맺혔었네. 이제 내 어린 딸에게 이 노래 들려주려니 내 검게 탄 두 뺨 위로 한없이 눈물 흘러내리네.’ 우리가 잘 아는 교향곡 ‘신세계로부터’의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작의 가곡집 <집시의 노래>(Op.55, 1880) 중 네 번째 노래 ‘내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의 내용이다. 드보르작은 세 아이를 저세상으로 보낸 뒤인 1880년 이 노래를 작곡했다. 이 노래를 들어야 할 아이들은 세상에 없었지만, 아이들을 잃은 슬픔에 빠져있던 드보르작 부부의 곁에서 힘이 되어 주었던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에 대한 추억을 담고 만들어진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는 그 누구도 혼자 태어난 사람은 없다. 해마다 5월 어버이날이 돌아오면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모님께 마음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곤 하지만, 그것이 어떤 한 날에만 표현할 일이던가. 드보르작도 부모가 되었지만 세 아이를 자신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런 드보르작의 곁에서 자식의 슬픔을 위로하고 같이 눈물 흘려준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존재가 없었다면 이 생에서의 삶이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내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를 포함한 가곡집 <집시의 노래>는 독일 시인 아돌프 헤이두크의 시에 곡을 붙여 만들어졌는데 집시들의 삶과 정열, 멜랑콜리, 사랑, 자유에 대한 갈망들이 이 노래집 전체에 걸쳐 다양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노래들이 대부분 활력이 넘치고 집시의 자유정신과 강한 기질을 느낄 수 있는데, 네 번째 곡인 이 곡만 예외적으로 분위기가 다르다. 이 가곡집에 있는 노래 중 가장 유명한 곡도 이 노래다. 그래서인지 여러 가지 버전으로 편곡되어 연주되고 있는데, 노래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나 각종 악기의 소품으로 이 곡이 갖고 있는 애잔한 정서의 멜로디가 널리 연주되고 있다. 우리가 어린 시절, 아플 때나 잠들 때 늘 곁에서 지켜봐 주시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아련하게, 하지만 그것이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렸다는 알 수 없는 쓸쓸함으로 다가온다. 그때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하나 둘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이 영원할 것만 같았지만 우리 삶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또한 이제 하나씩 깨달아 간다. 늘 엄하고 무서운 존재로, 강하고 건강한 모습으로만 보이던 부모님이 어느 날 문득 너무나 왜소하게 느껴졌을 때의 그 느낌.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인생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국 산다는 것은 받아들여야 할 것들은 받아들이고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나씩 깨닫게 되는 것들이 늘어날수록 이런 음악이 가슴에 남겨주는 여운도 점점 커진다. ▣ 첼리스트 전미경 ◇ 가천대 관현악과 졸업(첼로전공) ◇ 서울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수석 역임 ◇ 금천 교향악단 부수석 역임 ◇ 의왕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 강동 챔버 오케스트라 단원 ◇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첼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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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의 클래식 스토리] 내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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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자존감과 인간관계
-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최근에 인간관계가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20대 취준생 여성과 상담을 한 적이 있다.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은 경력을 가진 아가씨였다. 덕분에 대학에 입학한 뒤로부터는 용돈을 벌어서 썼고, 자신의 힘으로 해외여행도 다녀온 경험이 있었다. 조직에서 마다할 리 없는 인재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나는 그 아가씨가 웃는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시종일관 굳어있는 표정, 일자로 꾹 다문 입술, 의심의 눈초리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전혀 편안한 감정을 느낄 수가 없었다. 굉장히 불편하고 어색한 자리였다. 물론 그 아가씨는 나를 잘 모른다. 나도 그 아가씨를 잘 모른다. 그의 이력서, 말투, 표정을 통해 대략적인 정보를 판단할 뿐이었다. 내가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심리학에 기반한 상담과 면담, 컨설팅 사업, 강의를 해왔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섣부른 오해나 판단이라고 오해할 독자들도 있었으리라. 나의 저서인 [초성장 독서법]에서 이야기했듯이, 모든 사람의 성장곡선은 어느 시점에서 급격한 변화를 띠기 시작한다. 성장곡선의 단계에서 위로 올라가는 사람이 있고 아래로 급강하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사람의 인생에 공통적으로 찾아오는 성장곡선에서 상당히 큰 폭으로 성장하거나 혹은 지구의 중심 핵까지 추락하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상대방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학교나 회사와 같은 조직사회일수록 더욱 그렇다. 생각과 가치관이 모두 다른 사람들이 모여있는 조직사회에서 별로 원하지도 않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가는 일이 마냥 재미있는 일로 여겨질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인간관계를 지혜롭게 유지해내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들 중 대다수는 상당히 높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이다. 게다가 겸손하다. 상대의 불평과 질책에 죄송하다는 말이 먼저 나오고, 잘못을 인정하는 자세가 습관화되어 있다. 그렇다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놀랍게도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 대다수는 '남들보다 내가 낫다'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내가 나아야 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나를 발견하니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내가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인간관계가 상당히 어렵다. 당연한 사실 아닌가? 나보다 못한 사람과 있는데 어떻게 평안할 수 있는가? 나는 인간관계가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성향은 모두 달랐다. 말수가 적은 사람도 있고, 쉬지 않고 재잘재잘하는 사람도 있다. 키가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다. 어린 아이, 학생, 직장인 등등 직업도 다양했다. 동일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딱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상대방보다 내가 낫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물론 입 밖으로 "내가 저 사람보다 낫다!"하고 말하거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정치인들, 혹은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을 세밀하게 파고 들어가보면, 상대방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발견해낼 수 있다. 모든 인간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숨어있는 그 교만, 그 교만을 뽑아내서 버리는 순간, 인간관계에서 오는 대다수의 문제점이 해결된다. 확실히 인간관계는 어렵다. 인간이 개입되는 순간 모든 일은 복잡하고 힘들고 귀찮은 과정으로 변한다. 혼자 조용히 생각할 수 있는 사색의 시간이 모두에게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상대방보다 낫다는 마음을 버리는 순간,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상당히 큰 폭으로 감소된다. 인간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면 먼저 내가 상대방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교만을 버리는 연습을 해보자. 혹시 아는가? 당신이 다음 시대의 리더가 될지. ▣ 전준우 ◇ 작가, 강연가, 책쓰기컨설턴트 ◇ 前국제대안고등학교 영어교사 ◇ [한국자살방지운동본부] ◇ [한국청소년심리상담센터] 채널운영자 ◇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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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자존감과 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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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와 친해지는 미친 어휘력] 자의적(恣意的)
- [교육연합신문=권승호 연재] ‘자의적’의 ‘자’를 ‘자기 자(自)’ ‘뜻 의(意)’로 생각하여 ‘자기 뜻대로’라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방자할, 제멋대로 자(恣)’야. 정해진 규정이나 질서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하는 생각이나 행동을 자의적(恣意的)이라 하는 것이지. 언어의 특성 중에 자의성이 있다는 것 알고 있니? 제멋대로 이름을 붙였다는 뜻이야. 의미와 소리(단어)가 필연적이지 않고 제멋대로라는 이야기지. ‘얼굴’을 ‘얼굴’이라 해야 할 필연적 이유가 없음에도 누군가가 제멋대로 ‘얼굴’이라 이름 붙였기에 사람들이 ‘얼굴’이라 이름 붙여 사용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야. ‘아버지’라 할 필연적 이유가 없었음에도 ‘아버지’라 하고 ‘파더(father)’라 할 필연적 이유가 없었음에도 파더(father)’라 하며 ‘부(父)’라 할 필연적 이유가 없었음에도 ‘부(父)’라 한다는 이야기인 것이야. 방자하게 제멋대로 행동함을 자행(恣行)이라 하는데 이때도 ‘제멋대로 자(恣)’야. ‘나쁜 짓을 서슴없이 자행하다’ ‘약탈을 자행하였다’처럼 쓰지. ‘오만방자(傲慢放恣)하게 행동했다’라는 말 들어 보았지?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거나 거만함을 ‘오만’이라 하고, 무례하며 건방짐을 ‘방자’라 하는 거야. ‘자의’와 비슷한 말에 임의(任意) 수의(隨意)가 있어. ‘임의로 처리할 수 없다’ ‘임의적 판다’ ‘임의로 변조한 사실이 드러나’로 쓰이고 ‘수의계약에 의한 매각’ ‘수의계약은 불법이다’ 정도로 쓰이지. 임의(任意)는 ‘맡길 임(任)’으로 뜻에 맡긴다는 의미인데 일정한 기준이나 원칙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의미야. 수의(隨意)는 ‘따를 수(隨)’로 자신의 뜻(생각)에 따른다는 의미이지. 수의계약이 무엇이냐고? 자기의 뜻대로, 자기 마음대로 하는 계약인데 그것이 왜 불법이냐고? 개인의 일을 개인이 마음대로 하는 계약은 불법이 아니지. 하지만 공공기관이 계약할 때에는 문제가 달라. 가격이 낮은 경우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경쟁계약(競爭契約)을 해야 하는 거야. 수의계약일 경우에 공정성이 떨어지고 특혜 시비가 발생하며 비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지. 친척이나 지인에게 많은 액수로 공사를 계약하고 비싼 가격으로 물건을 계약하는 일은 비리인 것 분명하잖아. ‘스스로 자(自)’를 쓴 자의(自意)도 있어. 스스로의 뜻, 자신의 뜻, 자기의 생각이나 의견이라는 의미지. ‘자의 반(半) 타의 반(半)’이라는 말 들어보았지? 자신의 의지 반절 다른 사람의 의지 반절이라는 의미야. 자신이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워 어떤 일을 하였을 때 쓰는 표현이지. ▣ 지은이 권승호 ◇ 전주영생고등학교 국어교사 ◇ 저서 《삶의 무기가 되는 속담 사전》,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설명해주셨어야 했다》, 《공부의 기본기 한자 어휘력》, 《공부가 쉬워지는 한자 어휘 사전》, 《학부모님께 보내는 가정통신문》 ◇ 펴낸곳 도서출판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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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시간을 통제하라
-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언젠가 SNS에서 가슴 아픈 사진을 본 적이 있다. 한 아이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아이가 엎드린 곳에는 사람의 형상을 그린 그림이 있었다. 마당에 엄마를 그려놓고 가슴에 안겨있는 그림이었다. 아이의 엄마는 택시운전사였다. 어느 날 손님을 태우고 운전하다가 사고로 다리 아래로 추락했다. 택시가 강에 빠지면서 엄마도 택시와 함께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아이는 마당에 엄마를 그려놓고 엄마의 가슴에 안겼다. 차디찬 엄마의 심장을 느끼며, 아이는 말없이 마당에 그려진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생이 80까지라고 했을 때,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나도 이제 절반 정도는 온 듯하다. 마흔이 되기까지 즐겁고 감사한 일이 많았지만, 앞으로는 내려놓는 훈련이 필요한 시간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들은 지금까지 지내온 시간들보다 결코 더 젊거나 빛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알게 모르게 수많은 사건 사고와 마주치고 있었지만, 하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오늘, 그리고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느 순간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시간을 30분 단위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주 어려웠다. 딱히 변하는 게 없어 보이는 일상 속에서 30분 단위로 시간을 관리한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고, 굳이 이렇게까지 해가면서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아야 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시간을 관리해야 하는 이유를 되새겨보다 보면 그런 스트레스도 사치로 느껴지곤 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습관이 되고 나니 시간이 내 손에 들어와서 관리가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업무의 효율성이 상당히 올라가는 동시에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도구로도 손색이 없는 나만의 장점이자 무기가 되는 것을 발견했다. 도대체 시간을 30분 단위로 관리하는 사람을 곁에 두어서 나쁠 이유가 무엇인가? 잘 아는 지인은 매일 아침 4시에 일어난다. 그 시간에 일어나서 독서하고, 필사하고, 1시간 운동을 하고, 밥을 먹고, 사무실로 향한다. 그렇게 정해진 루틴을 매일 SNS에 기록하고 있다. 나도 이전에는 4시 반에서 5시 사이에는 일어났는데, 최근에는 늦은 시간까지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아져서 6시까지는 꼬박 숙면을 취하고 있다. 힘들기 때문이다. 남자도 힘들어서 못하는 반복적인 루틴을 그분은 해낸다. 아주 겸손한, 게다가 상당한 미모를 가진 여자분이다. 심지어 워킹맘이다. 시간을 관리하면서 자기 자신의 육체와 정신도 함께 관리하는 분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겸손에 마음이 서서히 젖어듦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대부분 겸손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겸손이라는 것이 아무에게나 고개를 조아린다거나 이마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하는 겉치레 형식의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시간을 관리하는 사람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존경스러운 삶을 사는지도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들은 정말 예의 바르고 자기 관리에 투철하며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 중 하나다. 시간은 가장 값비싼, 그러나 세상 모든 사람에게 무료로 주어진 소중한 선물임을 기억한다면, 그 시간을 무엇과 맞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이 우리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무한정 주어지지만, 아무에게나 무한정 주어지지 않는다.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사고를 가진 사람인지에 따라 시간은 하루에 24시간이 될 수도, 12시간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하루를 48시간처럼 활용한다. 생산성의 효과일 수도 있고, 직업의 효과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의 시간은 압축된 시간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연봉이 5억인 사람의 1년이 연봉 5,000만 원인 사람의 10년과 맞먹는 것과 같은 이치다. 복리의 개념을 함께 따져본다면 10년이 아니라 15년, 혹은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시간이 압축된 시간이 아니라면, 나의 미래도 느슨하게 풀어진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오늘부터라도 압축된 시간의 형태로 만들어서 생산성의 효과를 드높이는 데 활용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지금껏 상상해보지 못한 위대한 결과를 만드는 데 일조하게 될 지도 모른다. ▣ 전준우 ◇ 작가, 강연가, 책쓰기컨설턴트 ◇ 前국제대안고등학교 영어교사 ◇ [한국자살방지운동본부] ◇ [한국청소년심리상담센터] 채널운영자 ◇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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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시간을 통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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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의 클래식 스토리] 깊은 슬픔 속 위로의 선율
- [교육연합신문=전미경 칼럼] 매 순간순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나? 삶이 전쟁과 같다고 생각되는가? 우리는 삶 한가운데서 마치 전쟁처럼 치열하게 오늘도 살아내고 있다. 평화는 언제 오는 것인가. 문득 뉴스에서 나오는 나라 안팎의 혼란한 소식들을 듣고 있자니, 이 혼란스러움은 비단 정치나 경제처럼 거국적인 문제 말고도 우리의 하루하루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까지 든다. 오늘도 뉴스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파괴된 도시의 모습과 부상당하거나 사망한 시민들의 모습을 보도하느라 시끄럽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고 전쟁이 시작된 지 벌써 50여 일이 지났다. 군인들은 물론이고 민간인, 아이들까지도 다치고 사망하는 전쟁의 현실은 차마 눈 뜨고 보고 있기 힘들다. 수많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전쟁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당장 한 치 앞의 인생도 알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이 짧은 인생이 언제 어떤 불의의 사고로 앞당겨질지 모르는 불완전한 존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누리고자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아니 심지어 그마저 힘이 달려 겨우 삶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의로 또는 타의로 치열함을 선택하든, 어쩔 수없이 삶을 살아내고 있던, 스스로가 느껴야 하는 인생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무겁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부자든 가난하든, 젊든 늙었든, 그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누구나 죽는다. 인간의 삶은 심지어 너무나 짧다. 그저 사랑하고 늘 웃으며 행복하기만 하여도 짧은 인생인데... 전쟁이라니? 어떤 이유에서건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것이 무고한 시민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어떤 대중가수가 부른 노래 중에 그런 가사가 떠오른다. ‘전쟁 같은 사랑~~’ 갑자기 웃음이 난다. 웃겨서 웃는 게 아니고 씁쓸해서 나오는 웃음이다. 우리 삶의 그 무엇도 전쟁 같진 않았으면 좋겠다.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보면서 더더욱 전쟁이 무섭고 두렵다. 우리나라도 남북으로 나누어져 아직은 휴전 상태라는 특수한 상황에 있는 나라다. 전쟁이라는 것이 비록 내가 태어난 이후에 직접 겪진 않았어도 늘 불안한 상황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상황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지는 것도 그래서 더 그런 것 같다.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은 끊임없이 전쟁을 해왔다. 인간의 이기심이 빚은 결과이겠지만, 그런 전쟁의 아픔 속에서도 위대한 음악은 탄생했다. 전쟁의 비극적인 아픔과 슬픔이 너무나 잘 표현되어 있는 엘가의 ‘첼로 협주곡 마단조’가 그런 곡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포탄 소리를 들으면서 탄생한 이 곡은 너무나 비극적이어서 듣고 있으면 그 비참한 슬픔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이 곡은 초연 당시 별로 좋은 평을 듣지 못했다. 왜냐하면 작곡가 엘가의 곡들은 사랑스럽고 밝은 곡들이 많기 때문에 아마도 그런 곡들을 기대했으리라. 청중들의 반응은 썰렁했다고 한다. 하지만 비탄에 잠긴 첼로의 소리로 노래하는 이곡은 시간이 지나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 곡을 얘기할 때 꼭 떠올리게 되는 연주자가 있는데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희귀병으로 너무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자클린느 뒤프레이다. 그녀가 연주한 엘가의 ‘첼로 협주곡 마단조’엔 그녀의 삶과도 닮은듯한 엄청난 슬픔의 탄식과 비극적인 아름다움이 담겨있다. 비극적인 전쟁의 시대적 배경 가운데 탄생한 이 곡은 듣고 있노라면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며 심지어 깊은 슬픔 속에서도 마음의 위로를 주는 것만 같다. 그것이 음악이 가진 힘이다. 세상의 깊은 슬픔을 다 안고 있는 음악이 사람에게 주는 깊은 위로와 안식을 첼로의 중후한 소리와 함께 많은 이들이 느껴 봤으면 좋겠다. ▣ 첼리스트 전미경 ◇ 가천대 관현악과 졸업(첼로전공) ◇ 서울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수석 역임 ◇ 금천 교향악단 부수석 역임 ◇ 의왕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 강동 챔버 오케스트라 단원 ◇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첼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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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의 클래식 스토리] 깊은 슬픔 속 위로의 선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