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6-10(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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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본희 반려詩選] 김치전에 막걸리
    [교육연합신문=구본희詩選] 김치전에 막걸리 부침가루에 갑오징어와 김치를 잘게 썰어 놓고 휘휘 저어 올리브기름에 바삭 지진 전. 노란 양은 잔에 막걸리 따라 집사람과 저녁 대신 하루를 마신다. 비온 뒤 소래바다, 저녁놀에 얼굴 붉히고 창문 사이 스며든 바람에도 말복 끝 더위는 버티고 선다. 그래도 오늘은 숨결이 한결 부드럽다. 막걸리는 시원히 일렁이고 웃음은 잔 끝에서 번진다. 평범한 일상은 이젠 내 삶의 지갑, 행복은 소리 없이 내 옆에 눌러앉는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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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9
  • [전재학의 교육칼럼]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교육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가야 할 길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한국 교육은 과거에 국제사회에서 ‘모범 사례’로 자주 언급되어 왔다. 전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재임 중에 “한국 교육을 보라”며 높은 교육열을 부러워하며 한국 교사들을 “국가 건설자(Nation Builder)”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한국은 3년마다 실시되는 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상위권을 놓치지 않고, 특히 수학과 과학에서 강세를 보이며 세계의 관심을 받아왔다. 이는 학부모의 높은 교육열, 학생들의 노력,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 어우러져 만든 성과다. 그러나 세계가 한국 교육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은 우려도 깊다. 이 글에서는 우리 교육의 양면적 평가에 대해 고찰해 보고 나아갈 길을 제언하고자 한다. 한국 교육의 가장 큰 강점은 무엇보다 높은 학업 성취도다. 성실성과 근면함, 목표를 향한 집중력은 한국 학생들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꼽힌다. 또한 전자 교과서,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수업 등 ICT 기반의 교육 환경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학습 공백을 최소화하는 데 큰 효과를 발휘했다. 체계적이고 일관된 커리큘럼, 우수한 교원 역량 또한 세계 여러 나라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높은 성취’의 이면에는 입시 위주의 과도한 경쟁이 자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우리 교육의 단골 비판 메뉴로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이어지는 과도한 경쟁 구조 속에서 학생들은 정답 맞추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시험 점수를 중심으로 구성된 교육과정은 비판적 사고와 자기주도성을 키우기 어렵게 만든다. 세계 언론은 이를 “점수는 높지만 창의성은 낮은 교육 모델”로 평가하고 있다. 또한 한국 교육의 또 다른 그림자는 사교육이다. 이는 역으로 공교육의 불신과 퇴보를 의미한다. 수능과 내신에 대한 부담은 학부모를 사교육 시장으로 이끈다. 이로써 가계의 격차도 심화되고 있다. 이처럼 출발선이 다른 학생들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는 구조는 교육 본연의 목적을 훼손할 수 있다. 교육의 기회는 평등해야 하며, 그 평등이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오늘날 세계는 4차 산업혁명과 최첨단 디지털, 인공지능(AI) 시대에 걸맞는 창의성과 융합형 인재를 요구한다. 여기에는 정해진 답보다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하다. 이제는 점수 중심의 지능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잠재력을 끌어내며 건전한 비판과 창의적 판단을 끌어낼 수 있는 지성 중심의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과도한 경쟁을 줄이고, 협력과 탐구 중심의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여러 가지 비판이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한국 교육은 이미 세계가 주목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제는 그 시스템을 어떻게 조율하고 개선하느냐가 중요하다. ‘좋은 성적’만으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한때 공부의 신이라 불리던 한국 교육의 엘리트들이 사회와 공직에 진출해 ‘공부 머리’와 ‘일 머리’가 부조화를 이루어 무능의 대명사로 낙인찍히는 것을 최근 우리는 목격한 바 있다. 이는 우리 교육이 양성한 최고 엘리트들의 한계로 우리 교육의 성찰을 필요로 한다. 이제 우리 교육은 무엇보다 학생이 행복하게 배움에 열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 부산 여고생 3명의 집단 자살처럼 우리의 청소년들은 세계적으로 연 10년째를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과도한 학습에 대한 스트레스와 경쟁 교육에 대한 불안과 우울증이 겹쳐 발생하는 현상 중의 하나이다. 학생이 행복하고 교사가 존중받으며 사회가 교육을 신뢰하는 환경이 바로 진정한 교육 강국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이제 우리 교육은 산업화 시대의 ‘한강의 기적’을 이룬 1등 공신이라는 성취에 아직도 도취해 있기보다는 세계의 석학들과 교육 전문가들의 진정 어린 변화의 충고에 귀를 열고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멀다(We have so many miles to go before we sleep)”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구 한 구절을 가슴 깊숙이 품고 변화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도모해야 할 것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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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4
  • [김홍제의 목요칼럼] 교실 안의 네잎클로버 찾기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인생은 예측할 수 없고 노력한다고 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살면서 무언가를 찾고 기대하고 찾아낸다. 네잎클로버는 그 작은 성과를 상징한다. 네잎클로버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네잎클로버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희귀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노력으로 ‘찾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네잎클로버는 단순한 행운의 상징이 아니다. ‘발견하려는 의지’에 대한 작은 보상이다. 토끼풀을 ‘클로버’라고 부른다. 토끼풀 이름 유래는 3가지다. 토끼가 즐겨 먹기 때문이라는 것과 잎이 토끼 발자국을 닮았기 때문이라는 것과 마지막으로 하얀 꽃봉오리가 토끼 꼬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네잎클로버는 세잎클로버의 돌연변이로 10만 개 중 하나 정도로 생긴다고 한다. 혹자는 네잎클로버(행운)를 찾으려고 세잎클로버(행복)를 무심히 지나치는 어리석음을 비유로 말하기도 한다. ‘비정상성’에 가치를 부여하고, ‘정상성’을 하찮게 여기는 셈이다. 정말로 행운은 희귀해야만 가치가 있는 것일까? 행운을 행복으로 바꾸는 비법은 간단하다. 행운의 네 잎에서 욕심이라는 잎 하나를 버리면 된다. 하나 덜어내는 순간 행복의 세 잎 클로버가 된다. 사람들은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세잎클로버는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고 네잎클로버는 우리가 아직 가지지 못한 것이다. 중고등학교 교실을 떠올리면 이런 풍경이 연상된다. 비슷한 시간표, 비슷한 시험과 평가. 이 안에서 학생들은 종종 ‘세잎클로버’처럼 보인다. 각자 다른 생각과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제도와 기준 속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학생들을 정렬한다. 학교는 평범한 ‘세잎클로버’ 속에서 ‘네잎클로버’를 찾는 공간이기도 하다. 교실에는 성적이 뛰어난 학생, 특정 재능이 두드러진 학생, 혹은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발견하고 기록하고 그 학생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발굴’이나 ‘육성’이라고 부른다. 교실 안에서 네잎클로버를 찾는 일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하게 정해진 틀에 맞춰진 뛰어난 학생을 골라내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네잎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열어두느냐에 있다. 교육이 진정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은 소수의 ‘네잎’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 각자가 자신의 형태를 이해하고 확장하도록 돕는 데 있다. 모든 학생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가능성은 단 하나의 기준으로 설명할 수 없다. 교실 안에는 이미 충분히 많은 ‘네잎’이 있다. 다만 아직 그것을 ‘네잎’이라고 불러주지 않았을 뿐이다. ‘네잎을 찾는 일’은 스치듯 지나치면 실패한다. 자세히 보고, 오래 보고, 사랑이 있어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진로융합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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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2
  • [최윤용의 100세 칼럼] 스마트폰 시대의 굽은 목, 만성 목 통증을 해결하는 추나요법의 과학
    [교육연합신문=최윤용 칼럼] 스마트폰과 PC 앞에서 현대인이 보내는 긴 시간은, 만성 목 통증이라는 무거운 짐으로 돌아옵니다. 2025년 출간된 최신 해외 임상진료지침에서는, 성인의 절반 가까이가 매년 한 차례 이상 목 통증을 경험한다고 보고했습니다. 특히, 3개월 이상 지속되는 '만성 비특이성 목 통증(Nonspecific chronic neck pain)'은 뚜렷한 해부학적 병변이나 외상이 없음에도 통증과 뻣뻣함이 지속되는 별도의 질환 범주로 분류됩니다. 유럽 통증 저널(European Journal of Pain, 2025)에 게재된 체계적 문헌고찰에서는 목 통증의 강도가 높거나 심리적 스트레스가 동반될 경우, 단순 근육통을 넘어 지속적이고 재발하는 장애로 고착화된다고 지적합니다. 이로 인한 만성적인 피로 누적과 수면 장애는 학생들의 학습 능력은 물론 직장인의 업무 효율을 심각하게 떨어뜨리며, 나아가 사회경제적 비용 증가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목 통증이 만성화되기 전에 구조적·장기적 원인을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치료를 고려하는 것이 효과적인 예방책이 될 수 있습니다. ○ 근골격계 균형을 회복하는 한의 수기치료, 추나요법 만성적으로 굳어진 목 관절과 근육을 치료하는 대표적인 한의학적 방법으로 '추나요법'이 있습니다. 국제 학술지 Integrative Medicine Research(2014)에 소개된 바와 같이, 추나요법은 한의사가 손과 신체 일부 또는 추나 테이블과 같은 보조 기구를 활용해 척추·관절·근육·인대의 비정상적인 틀어짐을 교정하고 기능을 회복시키는 대표적 한의학 수기치료입니다.2019년 추나요법에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된 이후 그 활용도는 급증했습니다. 최근 국제 학술지 BMJ Open(2025)의 대규모 청구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보험 적용 이후 근골격계 질환 환자들의 추나요법 이용이 안정적으로 정착하며 활용 범위가 확대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대중이 체감하는 추나요법의 임상적 효용성과 안전성이 그만큼 높다는 사실을 방증합니다. ○ 현대적 과학연구를 통해 입증된 추나요법의 치료 효과와 경제성 추나요법의 효과는 경험적 차원을 넘어, 엄격하게 설계된 현대 과학 연구를 바탕으로 국제 저명 학술지에 그 효용이 객관적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첫째, 기존 일반 치료 대비 우월한 통증 감소 효과입니다. 저명 의학 저널 JAMA Network Open(2021)에 발표된 다기관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은 만성 목 통증 환자에게 5주간 추나요법을 시행한 결과, 진통제와 물리치료 중심의 일반 치료군보다 목 통증과 기능 장애 지수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개선되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효과는 교통사고로 인한 급성 목 통증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Journal of Integrative Medicine, 2026)에서도 일관되게 확인되어, 추나치료가 급성 및 만성 통증 모두에서 유용한 치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장기적인 비용-효용성입니다. 통증이 줄어들면 환자가 병원을 찾는 횟수와 결근율이 감소합니다. 국제학술지 Frontiers in Medicine에 실린 2022년 비용-효용 연구에서는 추나요법이 일반 치료에 비해 초기 치료 비용이 발생하더라도 환자의 삶의 질 향상(QALY)과 사회적 비용 절감을 고려할 때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적으로 유리한 치료 대안임을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셋째, 최신 뇌 영상(fMRI)을 통한 통증 억제 기전의 규명입니다. 단순히 굳은 근육을 푸는 것을 넘어, Frontiers in Neurology에 2024년 발표된 휴식 상태 fMRI 연구는 추나치료가 통증성 경추증 환자의 대뇌에서 통증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특정 뇌 영역의 비정상적인 활성도를 정상화한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확인했습니다. 이는 추나요법이 뇌 신경망의 가소성(plasticity)을 조절하여 만성 통증의 악순환을 중추신경계 수준에서 억제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 일상에서 실천하는 바른 목 건강 관리와 융합적 접근 한의사의 전문적인 교정 치료와 더불어 환자 스스로의 적극적인 생활 관리가 병행될 때 목 통증은 효과적으로 관리될 수 있습니다. JAMA Network Open (2022)의 최신 연구는 수기치료 단독 시행보다 근력 강화와 스트레칭이 결합된 적절한 운동요법을 병행했을 때 통증 감소와 목 기능 회복이 훨씬 극대화됨을 보였습니다. 일상생활에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스마트폰을 보거나 목을 길게 빼고 모니터를 응시하는 자세를 피해야 합니다. 귀와 어깨의 중심선이 일치하도록 턱을 가볍게 당긴 자세를 유지하고, 매시간 자리에서 일어나 목과 어깨를 부드럽게 늘려주는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꾸준한 스트레칭과 규칙적 휴식에도 불구하고 목과 어깨에 해소되지 않는 통증이 몇 주 또는 한 달 이상 지속된다면, 지체 없이 전문적인 한의 진료를 받아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추나요법을 통해 목의 균형을 회복하고 만성 통증을 해소하여 건강한 학습과 업무 환경으로 빠르게 복귀하시기를 기대합니다. 참고문헌 (References) 1.El-Allawy A, Hecht N, Luedtke K, Schleicher P, Weidner N, Kötter T. Clinical Practice Guideline: Nonspecific Neck Pain. Dtsch Arztebl Int. 2025 Oct 3;122(20):552-557. doi: 10.3238/arztebl.m2025.0119 2.Yu CWG, Wongwitwichote K, Mansfield M, Deane JA, Devecchi V, Falla D. Physical and Psychological Predictors for Persistent and Recurrent Non-Specific Neck Pain: A Systematic Review. Eur J Pain. 2025 Nov;29(10):e70168. doi: 10.1002/ejp.70168 3.Park TY, Moon TW, Cho DC, Lee JH, Ko YS, Hwang EH, Heo KH, Choi TY, Shin BC. An introduction to Chuna manual medicine in Korea: History, insurance coverage, education, and clinical research in Korean literature. Integr Med Res. 2014 Jun;3(2):49-59. doi: 10.1016/j.imr.2013.08.001 4.Baek GG, Ha IH, Lee YJ, Shin YJ, Shin BC. Analysis of the utilisation of Chuna manual therapy for musculoskeletal disorders after its coverage under national health insurance in Korea: a retrospective analysis. BMJ Open. 2025 Aug 8;15(8):e094099. doi: 10.1136/bmjopen-2024-094099 5.Lee J, Cho JH, Kim KW, Lee JH, Kim MR, Kim J, Kim MY, Cho HW, Lee YJ, Lee SH, Shin JS, Prokop LL, Shin BC, Ha IH. Chuna Manual Therapy vs Usual Care for Patients With Nonspecific Chronic Neck Pain: A Randomized Clinical Trial. JAMA Netw Open. 2021 Jul 1;4(7):e2113757. doi: 10.1001/jamanetworkopen.2021.13757 6.Choi SW, Kim KH, Yoon JY, Lee SW, Park JW, Hong HW, Kyeong DH, Kim MK, Kim SN, Kim CY, Lee YJ, Lee JH, Kim JY, Ha IH. Effectiveness and safety of manual therapy for inpatients with traffic accident-induced acute neck pain: A randomized controlled trial. J Integr Med. 2026 Jan;24(1):81-89. doi: 10.1016/j.joim.2025.10.008 7.Ha IH, Kim ES, Lee SH, Lee YJ, Song HJ, Kim Y, Kim KW, Cho JH, Lee JH, Shin BC, Lee J, Shin JS. Cost-Utility Analysis of Chuna Manual Therapy and Usual Care for Chronic Neck Pain: A Multicenter Pragmatic Randomized Controlled Trial. Front Med (Lausanne). 2022 May 11;9:896422. doi: 10.3389/fmed.2022.896422 8.Song S, Fang Y, Wan X, Shen L, Hu Y, Lu C, Yue T, Chen L, Chen J, Xue M. Changes of regional brain activity following Tuina therapy for patients with painful cervical spondylosis: a resting-state fMRI study. Front Neurol. 2024 Sep 13;15:1399487. doi: 10.3389/fneur.2024.1399487 9.Cheng ZJ, Zhang SP, Gu YJ, Chen ZY, Xie FF, Guan C, Fang M, Yao F. Effectiveness of Tuina Therapy Combined With Yijinjing Exercise in the Treatment of Nonspecific Chronic Neck Pain: A Randomized Clinical Trial. JAMA Netw Open. 2022 Dec 1;5(12):e2246538. doi: 10.1001/jamanetworkopen.2022.46538 ▣ 최윤용 ◇ 큰나무한의원 대표원장 ◇ (주)으뜸생약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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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30
  • [전재학의 교육칼럼] 요즘 교육 현장에서 가장 핫(Hot)한 말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최근 학교 현장에서 유행하는 말이 이제는 사회 곳곳에서도 널리 유행하고 있다. 초등학교 교실, 중학교 수행평가 시간, 고등학교 탐구 보고서 지도 현장, 심지어 대학 강의실까지 관통하는 가장 ‘핫(hot)한 말’이 있다. 바로 “이건 AI한테 물어보면 돼요”이다. 이를 조금 변주하면 “챗GPT에 돌려봤어요”, “프롬프트 이렇게 쓰면 답 잘 나와요”, “AI랑 같이 했어요”이다. 이 짧은 문장들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다. 지금 교육이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을 잃고 무엇을 다시 찾아야 하는지를 은근히 고백하는 시대의 은유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이 뜨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는 것’의 시대가 끝났기 때문이다. 과거 교실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말은 “외워라”, “정답은 이것이다”였다. 그러나 지금 학생들은 이미 알고 있다. 정답은 더 이상 찾기 어려울 정도로 희소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AI는 질문만 던지면 즉시 설명하고, 요약하고, 비교하고, 심지어 글까지 써 준다. 그래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묻는다. “굳이 이걸 외워야 하나요?” 그리고 그 질문 끝에는 늘 이 말이 따라온다. “AI가 다 해주는데요~” 이 말은 게으름, 나태함의 선언이 아니라, 지식 중심 교육에 대한 조용한 저항이자 불복종이다. 이처럼 “AI한테 물어본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이제 교육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이다. 이 말이 시사하는 교육적 전환은 분명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묻느냐, 어떻게 질문을 구조화하느냐, 나온 답을 어떻게 해석하고, 판단하고, 책임지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교실에서 은근히 또 다른 말이 유행한다. “프롬프트가 중요해요.” 이 말은 교육의 중심이 지식 → 사고, 암기 → 질문, 정답 → 판단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AI는 계산기와 결코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계산기가 수학 실력을 대신해 주지 않듯, AI도 생각하는 힘까지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교실의 언어는 교육을 무엇에 비유하고 있는가? 바로 교육은 ‘지도’에서 ‘나침반’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AI한테 물어보면 돼요”라는 말은 교육을 하나의 비유로 바꾸어 놓고 있다. 과거 교육이 정확한 지도를 나눠주는 일이었다면, 지금 교육은 방향을 가늠하는 나침반을 알려주는 일이다. 지도는 AI가 더 잘 그린다. 하지만 어느 길을 갈지, 왜 그 길을 선택할지, 중간에 길을 바꿀 용기는 있는지, 이것은 여전히 인간의 선택 몫이다. 그래서 이 유행어는 역설적으로 교사의 역할이 사라진다는 말이 아니라, 더 깊어진다는 신호라 할 수 있다. 지금 교실에 필요한 질문은 “AI를 써도 되나요?”가 아니다. 이제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이 답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 “이 선택이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다시 볼 수 있는가?”, “나는 이 결과에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들은 AI가 대신 던져주지 않는다. 교육만이, 교실만이, 교사와 학생의 관계만이 만들어낼 수 있다. 이제 가장 위험한 말은 이것이다. “AI 때문에 교육이 끝났다.”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AI 때문에 교육의 본질이 드러나고 있다. 요즘 교실에서 “AI한테 물어보면 돼요”라는 말의 유행은 교육의 패배 선언이 아니라, 교육이 다시 사람에게로 돌아오고 있다는 징후다. 따라서 AI시대는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를 다시금 펼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교육은 지식을 가르치는 일만이 아니라, 질문할 줄 아는 인간, 판단할 줄 아는 시민, 책임질 줄 아는 지식인을 길러내는 일이다. AI는 답을 준다. 하지만 교육은 여전히 묻는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이 질문이 사라지지 않는 한, 교육은 결코 한 시대의 유행(trend)처럼 끝나지 않을 것이다. 바야흐로 교육은 질문과 선택의 시대로 깊숙이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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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20
  • [김홍제의 목요칼럼]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사람인가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모처럼 아내와 영화를 보았다. 천만 관객이 가까워지던 ‘왕과 사는 남자’였다. 지금은 천만 관객을 훌쩍 넘었다.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는 관광객이 5배로 늘었다고 한다. 줄거리는 모두 아는 이야기였다. 사람들이 이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엄흥도가 줄을 당길 때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를 들었다. ‘모두가 결말을 아는 내용과 큰 반전이 없는 이 영화가 왜 이렇게 인기가 있을까’하는 의아함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왜 어떤 사람은 권력 앞에서도 양심을 지킬까? 엄흥도의 선택은 단순히 왕에게 충성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한 인간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교육에서 강조하는 도덕적 용기도 인간 존중의 마음에서 나온다. 우리는 직장, 사회적 지위, 직함 같은 여러 ‘왕관’을 쓰고 살아간다. 하지만 결국 그것을 벗고 나면 남는 것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뿐이다. 2월 28일에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폭격으로 수많은 초등학생이 사망했다는 소식은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얼마나 많은 피를 뿌려야 전쟁이 멈출까? 이란과 미국, 이스라엘 간 충돌이 격화되면서 무차별 공격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은 양쪽 지도자 모두가 정의를 말하는 것이다. 살상과 파괴를 서로의 전쟁 성과로 홍보하는 뉴스를 보면서 정의와 힘에 대하여 생각한다. 갈등과 정치적 계산으로 전쟁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정치 지도자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이었다. 도시가 파괴되고 가족이 흩어지며 어린 학생들까지 전쟁의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다. 국가의 힘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주식이 곤두박질하고 세계 경제가 요동을 치고 있다. 미국과 이란 사이의 긴장은 국제 뉴스의 한 장면으로 스쳐 지나가기 쉽다. 이 전쟁을 교육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이 사건은 단순한 외교 현안이 아니라 문명을 가르치는 방식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세계를 어떻게 읽도록 가르치고 있는가. 영화와 전쟁 이야기가 전혀 다른 시대와 상황을 다루면서도 비슷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영화에서 권력을 잃은 왕은 인간적인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전쟁의 역사에서는 권력 경쟁이 얼마나 많은 시민의 삶을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 준다. 두 사례 모두 권력 그 자체보다 인간의 삶과 공동체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역사는 우리에게 같은 교훈을 준다. 권력은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하며 인간의 삶보다 더 중요한 권력은 없다는 것이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왕과 권력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세상을 조금 더 인간답게 만드는 사람들은 이름이 크게 기록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위험을 감수하고도 옳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다. 학생들이 왕의 이름이나 전쟁의 연도를 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지는 것이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사람인가?’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진로융합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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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19
  • [최윤용의 100세칼럼] 봄바람과 함께 찾아온 불청객, 알레르기 비염의 과학적 관리
    [교육연합신문=최윤용 칼럼] ○ 새학기 숨길을 막는 알레르기 비염의 원인 차가운 겨울 바람이 물러가고 따뜻한 봄기운이 피어나는 3월입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콧물과 재채기, 코막힘으로 인해 두려운 시기이기도 합니다. 해외 연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약 15%가 이 알레르기 비염(allergic rhinitis)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 질환은 코 점막이 꽃가루, 먼지 등 특정 항원에 과민 반응을 일으켜 점막 장벽이 손상되고 제2형 도움 T세포(T-helper type 2) 매개 염증이 발생하는 면역 질환입니다. ○ 계절 탓으로 돌린 코막힘, 수면과 학습을 위협하는 전신 질환 많은 분들이 알레르기 비염을 "봄철에만 잠깐 견디면 되는 병" 혹은 "증상이 심할 때 개인적으로 항히스타민제를 구입하여 복용하면 되는 가벼운 질환"으로 오해합니다. 하지만 이를 방치할 경우 천식, 습진, 만성 부비동염(축농증) 등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만성적인 두통과 수면 장애를 유발하게 됩니다. 특히 새 학기를 맞은 학생들에게 코막힘으로 인한 수면의 질 저하는 집중력과 학습 능력을 심각하게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요인이 됩니다. 알레르기 비염은 평생 안고 가야 하는 불치병이거나 반드시 수술을 해야만 낫는 질환이라는 오해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알레르기 비염은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가 병행될 경우 예후가 비교적 좋은 질환으로 평가되며, 적절한 관리를 통해 증상의 완전한 소실 및 원인 노출 종료 후 치료를 마칠 수도 있습니다. 호전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주된 이유는 알레르기 비염이 불치병이기 때문이 아니라, 치료가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거나 원인 항원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레르기 비염은 단순한 코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 전반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전신 질환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습니다. ○ 최신 연구에서 제안하는 한의 치료의 면역 조절 효과 한의 치료는 증상의 일시적인 억제를 넘어, 무너진 코 점막의 환경을 개선하고 면역 체계의 균형을 되찾는 방향으로 알레르기 비염 증상 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작용 기전과 효과는 국제 점차 학술지에 게재된 연구들을 통해 점점 더 자세하게 규명되고 있습니다. 첫째, 비강 내 침 치료의 즉각적인 점막 안정화 효과입니다. 2023년 출판된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에 따르면, 코 주변의 특정 부위에 시술하는 침 치료가 만성 알레르기 비염 환자의 증상 개선에 탁월한 효과를 보였습니다. 또한, 베이지안 통계기법을 활용하여 여러 임상시험 결과를 합성한 메타분석 연구를 통해서도 다양한 침 치료 기법이 비염 증상을 유의미하면서도 안전하게 완화할 수 있다는 결과가 확인되었습니다. 둘째, 다양한 호흡기 질환에 오랜 기간 활용되어 온 한약의 면역 조절 및 항염증 효과입니다. 예컨대, 2022년 메타분석 연구에서는 맑은 콧물과 재채기를 동반하는 비염에 현재도 널리 활용되는 한약 ‘소청룡탕’이 뛰어난 유효성과 안전성을 보였습니다. 더불어, 호흡기 면역력이 저하된 환자에게 쓰이는 '옥병풍산'의 경우, 2025년의 이중맹검 임상시험을 통해 관련 질환에 자주 시달리는 비염 환자에게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2026년 발표된 최신 임상-실험 중개연구 (translational research)에서는 이 옥병풍산 기반 코 점적액(nasal drops)이 점막의 염증 매개 경로를 억제하고, 면역 세포(Th17/Treg)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작용에 대해 분자생물학적 수준에서 그 기전을 규명해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호흡기 건강 관리법 봄철 비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생활 속 적극적인 환경 관리가 1차 치료법으로 동반되어야 합니다. 꽃가루가 날리는 시기에는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사용하여 외부 항원의 실내 유입을 차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내 주요 항원인 집먼지진드기의 번식을 막기 위해 제습기 등을 활용하여 실내 습도를 30~50%로 유지해야 합니다. 아울러 반려동물이 있다면 침실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침실과 주요 활동 공간에 고효율 공기청정 필터를 가동하여 공기 중의 항원을 제거하는 것이 권장됩니다. 외출 후에는 등장성 또는 고장성 생리식염수를 이용하여 비강 내부를 세척하면 점막에 붙은 항원을 물리적으로 제거하여 증상 중증도를 유의미하게 낮출 수 있습니다. 각별히 주의해야 할 점은 무분별한 약물 오남용입니다. 개인이 임의로 판단하여 의료진의 처방 없이 국소 비강 충혈제거제(코막힘 스프레이) 등을 장기간 남용할 경우, 오히려 코 점막이 비대해지고 기능이 망가지는 약물유발성 비염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알레르기 비염은 단순한 코의 불편함을 넘어 삶의 질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복합 면역 질환입니다. 따라서 막연히 임의로 약물을 활용하기보다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철저한 생활 환경 관리와 함께 전문가의 정확한 진단에 따른 맞춤 치료를 병행하여 건강한 호흡을 유지하시길 바랍니다. ■ 참고문헌 (References) 1. Bernstein JA, Bernstein JS, Makol R, Ward S. Allergic Rhinitis: A Review. JAMA. 2024 Mar 12;331(10):866-877. doi: 10.1001/jama.2024.0530 2. Yin Z, Geng G, Xu G, Zhao L, Liang F. Acupuncture methods for allergic rhinitis: a systematic review and bayesian meta-analysis of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Chin Med. 2020 Oct 12;15:109. doi: 10.1186/s13020-020-00389-9 3. Liu LL, Gong Z, Tang L, Yan ZF. A novel and alternative therapy for persistent allergic rhinitis via intranasal acupuncture: a randomized controlled trial. Eur Arch Otorhinolaryngol. 2023 Jun;280(6):2773-2783. doi: 10.1007/s00405-022-07793-x 4. Yan Y, Zhang J, Liu H, Lin Z, Luo Q, Li Y, Ruan Y, Zhou S. Efficacy and safety of the Chinese herbal medicine Xiao-qing-long-tang for allergic rhiniti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of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J Ethnopharmacol. 2022 Oct 28;297:115169. doi: 10.1016/j.jep.2022.115169 5. Lin ZX, Ho TM, Xian YF, Chan KL, Xu QQ, Lo CW, Wu JCY, Hon KL, Leung SB, Chia CP, Sum CH, Chow TY, Cheong PK, Ching JYL, Zhang H, Leung KC, Lin WL. Exploring the efficacy and safety of Yu-Ping-Feng powder with variation against allergic rhinitis: a randomized, double-blind, placebo-controlled trial. Chin Med. 2025 May 26;20(1):70. doi: 10.1186/s13020-025-01120-2 6. Hu Y, Fu L, Ren Q, Wang F, Luo H, Li J, Wang X, Tian L. Yu-Ping-Feng nasal drops relieve allergic rhinitis via TRPV1/Ca2+/NFAT pathway. J Ethnopharmacol. 2026 Jan 30;355(Pt A):120618. doi: 10.1016/j.jep.2025.120618 ▣ 최윤용 ◇ 큰나무한의원 대표원장 ◇ (주)으뜸생약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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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14
  • [전재학의 교육칼럼] 학교를 이끄는 새로운 교육 리더십의 필요와 중요함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현시대 우리의 학교 교육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교육 리더십’은 무엇인가? 이는 한 마디로 더 이상 교장을 정점으로 한 지시와 통제의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유리처럼 투명하게 학생·학부모·교사의 깨지지 않는 신뢰의 구조를 세우는 일이다. 이는 국가 경영의 입장에서는 무신불립(無信不立)과 같은 맥락이다. 정보는 넘치지만 방향은 흐릿한 시대, 성적은 높아졌지만 배움의 의미는 옅어진 우리 학교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에서는 다시 지금 학교를 이끄는 새로운 교육 리더십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보다 구체적으로 진술하고자 한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교육이 효율과 표준화를 중심으로 발전했다면, 오늘날의 교육은 연결과 공감, 그리고 자율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세계적 교육 혁신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High Tech High는 교장을 ‘관리자’가 아니라 ‘학습 설계자’로 규정한다. 그들은 학생에게 프로젝트를 맡기고, 교사에게는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자율권을 부여한다. 리더는 간섭하지 않는다. 대신 “이 배움이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가?”라고 질문한다. 그 질문이 일부의 학교를 바꿔 왔고 이제는 모든 학교로 보편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시대적인 요구가 되었다. 교육 선진국 핀란드의 교육 개혁을 이끈 Pasi Sahlberg는 “신뢰는 정책이 아니라 문화다.” 라고 말했다. 핀란드의 학교에는 전국 단위 일제고사가 거의 없다. 대신 교사 전문성에 대한 깊은 존중과 신뢰가 있고 그에 합당한 대우가 있다. 리더는 교사를 통제하지 않는다. 교사의 성장을 지원할 뿐이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학생은 시험을 위해 공부하지 않고, 삶을 위해 배운다. 이것이 신뢰 기반 리더십의 힘이자 결과다. 우리 사회에서도 변화의 씨앗은 싹트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 자치회가 교육과정 운영에 직접 참여하고, 교사 협의체가 학교 의사결정의 중심에 선다. 한 중학교에서는 ‘시험 없는 한 학기’를 도입해 지역사회 문제 해결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학생들은 지역 하천의 수질을 조사하고, 상인들과 인터뷰하며, 정책 제안서를 작성했다. 교장은 단 한 번도 “성적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지 않았다. 대신 “이 경험이 너를 어떻게 성장시켰는가?”를 물었다. 그 질문 하나가 학생의 눈빛을 바꾸었다. 새로운 교육 리더십은 세 가지 전환을 요구한다. 첫째, 통제에서 신뢰로, 둘째, 평가에서 성장으로, 셋째, 독점에서 공유로의 전환이다. 이를 위해서 리더는 더 많이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이 듣는 사람이어야 한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목소리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설계자여야 한다. 실패를 처벌하지 않고 학습의 자산으로 전환하는 문화 창조자여야 한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최첨단 디지털 과학·기술의 시대에 리더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인공지능(AI)이 교육 깊숙이 파고들고, 지식을 전달하는 시대에 학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답은 명확하다. 질문하는 힘, 협력하는 능력, 공감하는 태도, 이 3가지를 기르는 것이다. 이는 상명하달식 명령으로 길러지지 않는다. 존중과 참여의 경험 속에서만 자란다. 새로운 교육 리더십은 거창한 슬로건이 아니다. 그것은 학생의 의견을 경청하는 태도이며, 교사의 교육방식을 지지하는 결단이며, 실패한 수업이라도 비난 대신 성찰로 이끄는 용기다. 유리처럼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유리처럼 단단하게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 그것이 이 시대 교육이 요구하는 새로운 교육 리더의 모습이어야 한다. 교육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다. 그리고 리더십은 그 이야기를 가능하게 하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지금 우리의 학교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규정이 아니라 더 깊은 신뢰다. 이제는 모든 학교 교육이 통제의 시대를 넘어 공감의 시대로, 경쟁의 문화를 넘어 성장의 문화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 아이들의 내일을 지키는 가장 혁신적인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대통령조차 “AI 3대 강국”, ”국가 과학자 양성“을 선언하며 ”하루가 늦으면 한 세대가 늦춰진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교육 선언으로 그치지 않고 국가 지도자와 모든 교육 리더들의 실천과 행동만이 필요할 뿐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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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13
  • [구본희 반려詩選] 뽀샵하는 사회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뽀샵하는 사회 언제부턴가 아름다움도 만들어졌다. 사실보다도 더 진짜 같은 가짜 현실 속에서ㅡ 마법 거울은 묻는다. "누가 가장 아름다운가?" 모두 백설공주 되어 나만의 만족을 좇는다. 왜곡된 옷을 입은 진실도 조용히 비틀리고, 모두 획일화된다. 진짜 나를 잃어간다. 꾸밈이 기본 예의인 이 사회 속에서ㅡ 사진 속 얼굴도, 화장 뒤 표정도, 오늘 우리는 가면을 쓴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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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10
  • [전재학의 교육칼럼] 이제는 ‘뽑는 교육’에서 ‘키우는 교육’을 지향해야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우리는 오랫동안 인재를 국가의 동량(棟梁)으로 간주해 우수한 인재만을 뽑으려고 몰입해 왔다. 그래서 역량을 키워 잠재력이 높은 인재를 많이 확보하는 학교가 소위 ‘명문고’, ‘명문대’로 이 사회에서 우위를 독점했다. 이는 처음부터 능력이 출중한 인재를 학교에서 교육의 기능을 발휘해 더욱 출중한 인재로 키웠다고 판단하기엔 한계가 있다. 잠재력을 가진 학생들이 모여 또래 집단의 경쟁을 통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우수한 결과를 내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를 두고 우리는 인재를 길러 왔다고 스스럼 없이 말해 왔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의 교육은 인재를 ‘키운’ 것이 아니라, 미리 자라난 아이를 골라내는 일에 더 익숙했다. 시험은 능력을 발견하기보다 순위를 만들었고, 학교는 성장을 돕기보다 선발을 준비하는 공간이 되었다. 이제는 분명히 말해야 한다. 인재 양성의 방향은 뽑는 것 즉, 선발이 아니라 키우는 것, 성장이라고 말이다. 선발 중심 교육은 효율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짧은 시간 안에 상위 몇 퍼센트를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가능성은 무시된 채 사라진다. 성장할 수 있었던 아이, 늦게 피는 아이, 다른 방식으로 빛날 아이들은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포기하게 만든다. 선발은 결과를 가르지만, 성장은 가능성을 키운다. 교육이 선택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세계의 교육 선진 사례는 이미 이 방향 전환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핀란드는 조기 선발과 학교 서열화를 철저히 배제하고, 모든 학생이 자신의 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 결과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높은 성과를 유지하면서도 학력 격차는 작다. 이는 특별한 아이들만을 골라낸 결과가 아니라, 대다수 아이들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도록 기다리고 지원한 결과다. 국내에서도 작은 변화의 가능성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경쟁 대신 과정 중심 평가를 도입한 학교, 성취 수준보다 학습의 변화와 노력을 기록하는 교사들, 뒤처진 학생을 분리하지 않고 함께 성장시키는 학급 운영 사례들은 이를 말해 준다. 아이들은 서열이 낮아서가 아니라, 기다려 주지 않았기 때문에 성장하지 못했던 것임을 말이다. 성장 중심 교육은 느리고 번거롭다. 단기간에 성과를 수치로 증명하기 어렵고, 교사의 전문성과 책임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교육은 본래 느린 일이다. 씨앗을 뿌린 다음 날 열매를 요구하지 않듯, 아이의 가능성 역시 시간과 신뢰 속에서 자란다. 선발은 관리가 쉽지만, 성장은 돌봄과 책임을 요구한다. 그래서 성장 중심 교육은 곧 기성 세대의 각오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제 선언해야 한다. 교육의 목적은 더 빨리 앞서가는 아이를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가 어제보다 한 걸음 더 성장하도록 돕는 것임을. 시험은 줄 세우기보다 학습을 돕는 도구가 되어야 하고, 평가는 탈락의 근거가 아니라 성장의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 학교는 선발의 전초기지가 아니라, 가능성이 안전하게 자라는 공간이어야 한다. 인재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진다. 그리고 그 출발선은 결코 같지 않다. 교육의 역할은 출발선의 차이를 이유로 탈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끝까지 성장할 수 있도록 책임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공정의 본래 의미이며, 미래 사회가 교육에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 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뽑는 교육’에 머물 수 없다. 이제 교육은 선언해야 한다. 인재 양성의 길은 선발이 아니라 성장이라고 말이다, 그 선언이 말에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학교는 다시 희망이 될 것이다. 이는 곧 학교와 국가의 존재 이유인 사회적 신뢰의 주춧돌이 될 것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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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6
  • [김홍제의 목요칼럼] 자본주의 시대의 금융교육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돈의 심리학』과 『돈의 방정식』이라는 책을 설날 연휴에 읽었다. 자본주의 시대에 살면서 돈에 대한 개념이 너무도 없다는 자각에서 구입한 책이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대중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 주는 증표라고 생각한다. 지구 위 모든 나라를 아우르는 테마는 경제, 즉 돈이다. 정치, 교육, 사회, 환경에 모두가 돈이 들어가 있고 전쟁도 돈이 들어가 있다. 돈이 중세 시대의 종교처럼 군림하고 있다. 이를 직시하고 올바른 경제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학생을 사랑한다면 학생이 돈 중심사회에서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경제에 대한 안목을 키워주는 교육이 옳은 방향이다.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행복도 그만큼 커지리라고 믿는다고 한다. 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족의 사랑, 친구 간의 우정, 건강, 경험, 존경 등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꽃이 하나도 없는 외계에서 온 사람은 이 지구상에 있는 많은 꽃을 보면 감탄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소중한 것이 너무도 흔하고 많으면 우리가 그 감사함을 모른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지금보다 월급이 딱 2배만 더 있으면 더 행복할 것이라고 한단다. 200만 원을 버는 사람은 400만 원이면 행복할 듯하고, 400만 원을 버는 사람은 800만 원만 벌면 행복하다고 하고, 800만 원을 버는 사람은 1억 600만 원을 벌면 행복하다고 생각한단다. 과연 그럴까. 저자는 그런 행복은 일시적이라고 했다. 성공을 하고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직장을 얻고 멋진 결혼을 하는 것은 사실 일시적인 행복을 위한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일시적인 것에 있지 않다. 지속적인 행복은 자신에 대한 신뢰와 타인에 대한 공감과 존경, 사랑의 관계 속에 있다. 행복과 돈의 관계를 거시적이고 진솔하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 학생 중심 교육이라면 학생에게 필요한 것을 가르치는 것이 의무이고 양심적 태도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가르치지 않고 도구로서의 교육을 한다면 교육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이다. 영교육과정은 아이즈너(Eisner)가 『교육적 상상력(Educational Imagination)』에서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과정을 가리켜 영(null) 교육과정이라 부르면서 시작되었다. 현재는 ‘배울 만한 가치가 있지만 공식적 문서에 포함되지 않거나 포함되어 있어도 실제 수업이나 운영에서 다루어지지 않아 학생이 학습할 기회가 없는 교육 내용이나 경험’의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교육과정 속에 모든 내용을 담을 수는 없다. 어떤 것은 선택되고 또 다른 내용은 배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 교육과정의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대가 변하면서 학생들이 배워야 할 내용 중에서 정작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 빠지지 않았는지를 반성하고 점검해야 한다. 대부분의 학생은 사회에 나가서 노동이나 경제활동을 해서 수입이 있어야 먹고 살 수 있다. 당연히 회사의 근무에 대한 교육, 일의 정당성, 권리의 주체성, 진정한 행복과 경제 등을 교육에 넣어야 한다. 현대의 노동은 노예의 노동이 아니다. 현대 시민은 창조적이고 효율적이고 협력적이고 나라와 국가를 위한 태도와 방식을 고민하는 시민 근로자여야 한다. 글을 읽거나 쓰지 못하는 ‘문맹’은 불편할 뿐이지만, ‘금융문맹’은 생존을 위협한다는 말이 있다. 국가 경쟁력과 개인 행복을 위해서는 진정성 있는 청소년기 금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진로융합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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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5
  • [구본희 반려詩選] 갯골의 함성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갯골의 함성 -제107주년 삼일절 기념 헌시- 소래나루 갈매기 떼 낮게 선회하고 소금기 마른 갯골 붉은 퉁퉁마디 사이 그을린 얼굴 새끼줄 여민 무명 바지 품속 깊이 숨겨 온 그날의 태극기 하나둘 들불로 번질 때 “대한 독립 만세” 포구는 시린 함성으로 흰 파도처럼 일렁였다 색바랜 필름 속 낮은 바람으로 맴도는 그날의 파열음 내 심장에 아직 타오른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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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4
  • [전재학의 교육칼럼] 새로운 학기, 내 인생의 '참주인'으로 당당히 서는 법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새로운 학기를 앞둔 전국의 초중고는 설렘과 긴장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새 학기의 시간표를 받아 든(들) 학생들의 마음속에는 아마도 '이번 학기는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되는데'라는 조급함이 함께 자리 잡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적과 진학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몸을 싣기 전, 여러분이 반드시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나는 지금 내 인생의 '참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남이 짜놓은 각본 위의 연기자로 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글에서는 우리 청소년들이 자기 인생의 참주인으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동서양의 지혜의 보고(寶庫)인 고전(古典)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당나라의 고승 임제 선사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는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그곳이 모두 진리(진실)가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흔히 내가 원하는 대학에 가거나, 어른이 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을 때만 내 인생의 주인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임제 선사가 말하는 '주인'은 환경의 노예가 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 첫째, 타인과의 비교의 감옥에서 벗어나기다. 예컨대, 친구가 나보다 수학 성적이 높다고 해서 열등감을 느끼는 것은 내 기분을 '친구의 성적'에 맡겨버린 상태라 할 수 있다. 이때 자신은 주인이 아니라 환경에 휘둘리는 '객(客)'일 뿐이다. 둘째, 현재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공부를 하는 이유가 "내가 나의 성장을 위해 이 시간을 선택했다"라고 마음먹는 순간, 지루한 학습 공간은 나를 위한 단련의 장으로 변할 것이다. 서양 철학사에서 인간의 주체성을 가장 강렬하게 외친 망치를 든 철학자라 불리는 니체는 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 정신의 변화 단계를 세 단계로 설명한다. 첫째는 낙타이다. 이는 타인이 지운 짐을 묵묵히 지고 "해야 한다"는 명령에 복종하는 단계다. 둘째는 사자이다. 이는 기존의 가치에 "아니오"라고 외치며 자유를 쟁취하려는 투쟁의 단계다. 셋째 단계는 바로 '어린아이'이다. 이는 "어린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시작이자 하나의 놀이다“에 근거하고 있다. 즉, 어린아이는 자기 일에 몰입해 주변을 잊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는 진정한 자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참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낙타처럼 억지로 짐을 지는 것도, 사자처럼 매사에 반항만 하는 것도 아니다. 어린아이가 놀이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듯, 자신의 삶을 하나의 '놀이'이자 '창조'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바로 자기 삶의 주인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참주인'의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여기에 그 세 가지 지침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나만의 언어'를 소유하라. 남들이 좋다는 학과, 남들이 입는 옷, 남들이 쓰는 유행어에만 매몰되지 않길 바란다. 주권(主權)은 내 생각을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 언어의 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둘째, '작은 승리'를 매일 목표로 하길 바란다. '오늘 단어 10개 외우기', '쉬는 시간 5분 명상하기'처럼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완수할 수 있는 작은 성취들이 모여 스스로의 삶은 통제 가능하다는 강력한 주인 의식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셋째, 실패할 권리를 당당히 행사하라. 결과가 나쁘더라도 "이건 내가 선택한 과정에서 얻은 데이터야"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는 이미 주인이라 할 수 있다. 청소년 제위여, 학교에서 스스로를 '입시 기계'나 '평균 이하의 존재'로 정의하지 않기를 바란다. 여러분은 철학자 칸트가 말한 '자율적 인간'이며, 장자가 말한 '소요유(逍遙遊,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노니는 경지)'의 잠재력을 가진 귀중한 존재이다. 새 학기, 새로운 마음과 자세로 교문을 들어설 때 마음속으로 이 한 문장을 새겨보길 바란다. "이 시간의 주인은 나다. 나는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오늘을 선택했다"고 말이다. 여러분이 당당한 '참주인'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길 진심으로 응원하는 바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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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7
  • [전재학의 교육칼럼] ‘독서국가’의 선언, 그러나 사서교사는 어디에 있는가?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최근 국회 교육위원회가 ‘독서국가’를 선포했다는 소식은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 매우 반가운 사실이다. 문해력 저하, 사고력 빈곤, 학습격차 심화라는 위기의식 속에서 독서를 국가 교육의 핵심 전략으로 재정립하겠다는 선언은 분명 시대에 부응한 요청이다. 그러나 선언은 시작일 뿐이다. 정책은 사람을 통해 구현된다. 그 중심에 있어야 할 사서교사의 전국 배치율이 16%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현실은 ‘독서국가’가 아직 구호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서교사는 단순히 책을 정리하고 또 관리하는 인력이 아니다. 교과 수업과 연계한 정보활용교육, 독서교육,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교원이다. 핀란드나 독일 등 독서 선진국에서는 학교 도서관과 사서교사가 교육과정의 한 축을 담당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도서관은 있어도 사람은 없다”는 말이 교육 현장의 자조처럼 회자되고 있다. 문제의 출발점은 우리의 사서교사 양성과정에 있다. 현재 사서교사는 교원자격증을 취득해야 하지만, 양성과정은 극히 제한적이고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 일부 대학에서만 사서교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으며, 매년 배출 인원도 매우 적다. 그 결과 임용시험 자체가 거의 열리지 않거나, 열리더라도 극소수만 선발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예비 사서교사들은 수년간 임용을 준비하다 결국 진로를 포기하거나, 기간제·비정규직 형태로 현장을 떠돌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양성과정의 질적 수준이다. 많은 과정이 여전히 ‘도서관학’ 중심에 머물러 있어, 실제 학교 현장에서 요구되는 교육역량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한 중학교에서 사서교사가 교과교사와 협력해 프로젝트 수업을 설계하려 했지만, 협력수업 경험이나 교육과정 이해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례는 낯설지 않다. 이는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양성과정에서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충분히 길러주지 못한 구조의 문제다. 현장 사례는 사서교사의 효과를 분명히 증명한다. 사서교사가 상주하는 한 초등학교에서는 매일 아침 ‘10분 독서’가 형식이 아닌 생활이 되었다. 교과 연계 독서수업을 통해 아이들은 책을 ‘과제’가 아니라 ‘생각의 도구’로 인식하게 되었고, 그 결과 글쓰기와 토론 능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반면 사서교사가 없는 학교에서는 도서관이 자물쇠로 잠긴 채 창고처럼 방치되거나, 단순 대출 공간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소속 교사 또한 학생 앞에ㅓ 책 한 권을 선도해 읽는 학교 문화를 이끌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독서 격차는 곧 교육 격차로 이어진다. 이제 개선이 필요하다. 첫째, 사서교사 양성과정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국립대와 교육대학을 중심으로 사서교사 전공 트랙을 신설하고, 안정적인 임용 규모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둘째, 양성과정의 질적 전환이 필요하다. 교육과정 이해, 수업 설계, 교과 협력, 디지털·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핵심 역량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셋째, 현직 교사를 대상으로 한 전환·연수 과정도 적극 도입해 학교도서관 전문인력을 단계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책을 읽지 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이 말은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을 패러디한 것이다. 한때 일본은 책읽는 민족으로 널리 알려졌었다. 그 결과는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 27명을 배출한 선진국으로 변모했다. “내 인생의 8할은 어려서 마을 도서관에서 이루어졌다”는 빌 게이츠의 말은 이미 널리 회자된 바가 있다. 역사상 물줄기를 크게 바꾼 세계적 위인들이 한때 책 읽기에 몰입한 ‘독서광’이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서사로 전해지고 있다. ‘독서국가’는 책의 양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책을 통해 질문하고, 연결하고, 사유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사서교사는 독서국가의 장식물이 아니라 엔진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선언이 아니라, 그 엔진을 키우겠다는 국가의 실질적인 결단이다. 사서교사 양성이나 임용 없는 독서국가는 모래 위에 지은 집 즉, 사상누각(沙上樓閣)과 결코 다르지 않음을 다시금 확고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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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0
  • [김홍제의 목요칼럼] 성공을 가르친 교육, 침묵을 배운 사회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2019년 미국 금융가이자 사교계 인사였던 제프리 엡스타인(Jeffrey Epstein)이 미성년자 성착취과 인신매매 혐의로 체포된 뒤 구치소에서 사망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사건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엡스타인은 정계·재계·학계·문화계 가릴 것 없이 돈과 권력, 명성을 가진 자는 누구나 자신의 섬으로 초대했다. 그 섬은 나중에 미성년 피해 여성들이 최소 1,000여 명 정도로 추정되는 장소였다. 초대받은 사람 중에 성착취를 했다고 인정한 사람은 없다. 이들의 성범죄를 유추할 수 있는 근거는 엡스타인 파일 속에 담긴 수많은 이메일과 사진뿐이다. 엡스타인 사건의 핵심은 범죄의 잔혹성만이 아니다. 왜 그렇게 오랫동안 단죄되지 않았는가에 있다. 많은 사회 유명 인사들이 그와 교류했지만 문제 제기는 거의 없었다. 권력자들의 네트워크는 서로를 보호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엡스타인은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에 입사하기 전에는 사립학교 교사였다. ‘엡스타인 사건’ 연루 주요 인사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빌 게이츠 MS 창업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놈 촘스키 교수, 영국 앤드루 전 왕자, 뵈르게 브렌데 세계경제포럼 총재 등이다. 그 명성이 충격적이다. 제프리 엡스타인 사건은 한 범죄자의 타락으로만 읽기엔 너무 많은 것을 드러냈다. 그것은 권력, 돈, 명성이라는 이름의 ‘성공’이 어떻게 도덕적 감각을 마비시키는지 보여준 사건이다. 한국 교육은 오랫동안 ‘어디에 들어갔는가’를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했다. 명문대, 대기업, 고소득 직업. 어릴 때부터 성취와 경쟁의 언어로 살아왔다. 성공의 기준이 단선적이다. 그럴수록 성공을 둘러싼 윤리적 질문은 주변으로 밀려났다. 엡스타인 사건에서 보듯이 사회적 지위는 때로 면죄부처럼 작동했고 주변의 엘리트들은 침묵을 선택했다. 능력과 네트워크가 도덕적 판단보다 앞설 때 사회 정의는 쉽게 무너졌다. 한국 사회도 예외가 아닐 수 있다. 라캉의 말을 보면 인간은 단순히 욕구를 충족하는 존재가 아니라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다. 권력과 부, 명성과 네트워크는 곧 상징계에서의 승인이다. 엡스타인은 그 상징적 권력을 매개로 욕망의 중심에 서 있었고 많은 이들은 그 주변에서 침묵을 선택했다. 우리는 무엇을 성공이라 가르쳐왔는가. 명문대, 자산, 인맥을 향한 경쟁 속에서 ‘타자의 욕망’을 내면화하도록 교육한 것은 아닌가. 우리는 공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자로서 윤리적 주체 대신 상징적 지위를 좇는 주체로 학생을 길러낸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라캉에게 욕망은 제거할 대상이 아니라 자각하고 책임져야 할 구조다. 교육은 바로 그 책임을 가르치는 장이어야 한다. 엡스타인 사건은 욕망을 통제하지 못한 개인의 타락이 아니라 욕망을 성찰하지 못한 사회의 실패다. 교육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무엇을 가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주체로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질문하게 하는 것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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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9
  • [구본희 반려詩選] 와우디족(Wow-di 族)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와우디족(Wow-di 族) 손끝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세대들. 웃음도, 분노도 쇼츠처럼 스쳐간다. 느림은 지루하고 침묵은 불편해, 스크롤 속에서 하루를 소비한다. 감정은 이모티콘으로, 대화는 댓글 몇 줄이면 족하다. 밥을 고르고 영화를 클릭하며 우리는 '와우'에 중독된 삶을 산다. 손안의 세상ㅡ 화면은 눈부시지만, 마음은 에덴강 너머 어스름 속에 잠긴다. ※와우디족(Wow-di 族): Wow와 Digital 이 합성된 신조어.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디지털 소비에 심취한 세대를 성찰.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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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8
  • [김홍제의 목요칼럼] 정성스러운 한 걸음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딱히 믿는 종교는 없지만 주말에 1박 2일로 고창 선운사에서 하는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 눈도 오고 혹한 날씨에 볼이 따갑도록 추웠지만 마음은 충만함을 얻었다. 새벽 4시 새벽예불이나 캄캄한 밤길을 걸어서 가는 길이나 법당의 불빛이 사진처럼 가슴에 선명하게 저장되었다. 짧은 체험 중에 배운 것은 ‘지금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긍정적 실천이다. 미완성이고 부족한 인간이 욕망과 욕심으로 충돌하여 갈등을 만들고 아파하며 고통을 겪는다.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서 구름 밑에 보이는 도로와 집을 보면 그 많은 갈등이 개미 다리보다 작고 하찮은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런 하찮은 것들이 모여서 지지고 볶는 세상이 되고 그 안에서 금방 후회할 일로 싸우고 속이고 힘들어한다. 생명체의 우연과 필연으로 삶은 욕망의 연료로 하루를 시작한다. 만족과 불만족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면서 시간과 공간을 채우고 있다. 산다는 것이 별것 아니다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산다는 것처럼 놀라운 축복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이렇게 알맞은 온도와 햇살과 생명체들이 살 수 있는 이곳이 바로 기적 같은 천국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의 작품인가. 신문에서 ‘5,000일 기도해 보니 지금 이 순간, 한 걸음이 소중’(조선일보, 1월 30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었다. 5,000일이나 기도하고 무엇을 얻었을까. 호기심이 생기는 기사 제목이었다. 광주광역시 무각사 주지 청학 스님은 19년간 이어온 ‘5,000일 기도’를 2월 7일 마친다. 스님의 기도는 2007년 8월 13일 주지 부임한 날 시작됐다. 매일 새벽 4시, 오전 10시, 오후 6시 하루 세 차례 1시간 30분씩 108배하고 목탁 치며 금강경을 독송했다. 기도는 치열했다고 한다. 휴대전화와 자동차를 없앴고 바깥출입을 끊었다. 그렇게 기도하는 사이 목탁 3개가 깨져 나갔고 가사, 장삼, 방석은 얼마나 해지고 기웠는지 모른다. 50대 중반에 시작하여 5,000일 기도를 올리는 사이 70대 중반에 이른 청학 스님의 말이다. “5,000일 기도를 마치면 나한테 큰 깨달음이 오지 않을까 기대한 적도 있어요. 아니에요. 가장 큰 깨달음은 오직 한 걸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직 한 걸음이란 현실에 충실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오직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는 것이 5,000일을 수행하면서 얻는 거대한 깨달음이다. 생각과 말만 무성하면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교육계에 ‘정치의 바람’이 불고 있다. 6월 3일로 예정된 교육감 선거 얘기다. 연일 출마를 준비하는 인사들의 출판기념회, 출마 선언 소식이 들려온다. 지인 얼굴도 현수막에 올라왔다. 진정으로 교육에 헌신하겠다는 교육감 후보의 얼굴이 지면에 올라온다. 교육은 진정성과 안목을 가진 지도자가 이끌어 가기를 바랄 뿐이다. 앞으로 많은 공약이 난무할 것이다. 공약은 많았지만 정작 교육은 과거의 정책을 재탕하거나 퇴행하는 일이 많았다. 정성스러운 한 걸음은 올바른 실천이다. 이번 교육감 선거를 통해 진정성 있는 교육 성장이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올바른 선택도 의미 있는 한 걸음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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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05
  • [구본희 반려詩選] 약손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약손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우면 투박한 손마디가 마른 배를 더듬는다 “엄마 손은 약손” 낮은 주문에 통증은 잠들고 눈을 뜨면 아픔은 먼 데로 물러나 있다 지금 우리는 앓고 있다 서로의 상처를 할퀴는 시대 조건 없이 덮어 줄 그 손길이 유난히 그립다 그 손 끝에서 시작될 평온한 하루를 다시 기다려 본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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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03
  • [전재학의 교육칼럼] 실존주의 철학사상이 다시금 우리의 교실에 던지는 질문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이는 한때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한 적이 있으며 196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문학적 우수성을 놓고 등급을 매기는 방식에 반대해 수상을 거부한 적이 있는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인 장 폴 사르트르가 지은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의 상징적인 문장이다. 이 문장은 철학사의 명제이자, 오늘의 교육을 향한 질문이다. 인간은 어떤 ‘정해진 틀’로 태어나는 존재가 아니라, 선택과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존재라는 급진적인 자유의 철학은 성취와 효율을 중시해 온 대한민국 사회, 특히 교육 현장에 불편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 교육은 오랫동안 학생의 본질을 성적으로 규정해 왔다. 등수와 점수는 학생을 설명하는 가장 간편한 언어였고, 대학 서열은 가능성의 지도를 대신했다. 그 결과 학생은 ‘아직 무엇이 될 수 있는 존재’라기보다 ‘이미 평가된 존재’로 취급되곤 했다. 그러나 실존주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교육이 가장 경계해야 할 오류라 할 수 있다. 왜냐면 학생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형성해 가는 과정 속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을 “자유롭도록 단죄된 존재”라고 말했다. 이는 선택하지 않을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존재라는 뜻이다. 안타깝게도 이 명제는 오늘의 우리 청소년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그들은 진로를 선택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대신 정해 주고, 생각하지 않으면 사회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밀려간다. 이를 반영하듯이 한때 우리의 청소년들은 대학에 진학하고서도 부모가 교수에게 학점을 따지며 관리하고, 심지어 군대에 가서도 지휘관에게 훈련 및 모든 과정을 밝히길 요구하며, 취업에도 일일이 나서 관여하는 등 매사 개입하고 지시하는 등 믿기지 않는 상황들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문제는 비록 일부라 하더라도 우리의 청소년들이 선택 그 자체보다, 선택의 책임을 배울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의 역할은 명확하다. 교육은 정답을 제시하는 일이 아니라, 학생이 자신의 선택을 사유하고 그 결과를 성찰하도록 돕는 일이어야 한다. 프로젝트 수업에서의 실패, 토론 수업에서의 소수 의견, 진로 탐색 과정에서의 흔들림은 제거해야 할 잡음이 아니라 교육의 핵심 장면이다. 그 경험 속에서 학생은 “나는 내가 한 선택의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 존재”라는 감각과 책임의식을 얻게 된다. 잠시 다른 사례를 살펴보자. 어느 고등학생이 안정적인 진학 경로 대신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의 탐구 활동을 선택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선택이 당장 높은 성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학생은 이미 중요한 배움을 얻었다. 즉, 타인의 기대가 아닌 자신의 판단으로 삶의 방향을 고민해 보았다는 사실이다. 실존주의적 교육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이를 지도해야 할 교사 역시 변화가 요구된다. 교사는 지식을 전달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질문하도록 돕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왜 그렇게 생각했니?”, “다른 선택은 가능했을까?”라는 질문은 단순한 수업 기법을 넘어, 학생을 존재의 주체로 존중하는 태도다. 사르트르는 개인의 선택이 곧 인류 전체에 대한 책임이라고 보았다. 이는 우리 교육의 목표인 민주시민 양성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 자신의 결정이 타인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하는 학생은 규칙에 의거 길들여진 존재가 아니라, 책임 있는 민주 시민으로 성장한다. 교육은 결국 인간을 다루는 일이다. 점수와 결과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존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실존주의는 다시 오늘의 우리 교실에 이렇게 묻고 있다. “이 학생은 어떤 점수를 받았는가?”가 아니라, “이 학생은 어떤 선택을 통해 자기 자신이 되어 가고 있는가?” 이 질문을 외면하지 않을 때, 우리 교육은 다시 휴머니즘을 간직한 인간의 모습을 회복할 것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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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30
  • [김홍제의 목요칼럼] 성심당 빵집이 던지는 질문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내 고향은 대전이다. 초,중,고 학교를 대전에서 다녔다. 대전은 유명한 ‘노잼 도시’였다. 그런데 새롭게 관광명소가 된 곳이 있다. 역사적인 사찰도 아니고 단풍이 고운 명산도 아니다. 빵집이다. 성심당 빵을 사려고 사람들이 줄을 서고 주변 칼국수 가게까지 사람이 늘더니 대전을 대표하는 명소가 되었다. 주말과 평일 가리지 않고 대전 중구 은행동 성심당 본점 앞에는 늘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쟁반 가득 빵을 골라 담는 사람들은 행복해 보인다. 빵집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궁금했다. 사람들을 이렇게까지 기다리게 하는 성심당의 힘은 무엇인가. 빵에 대한 진심, 합리적 가격, 약자를 위한 기부 등 성심당이 실천하는 '착한 기업'의 가치가 인기의 비결이라고 한다. 과연 성심당은 어떻게 70년 동안을 이어오고 있을까. 우리가 배울 점은 없는가. 학교도 이렇게 학생이 오고 싶은 곳이 되었으면 하는 욕심이 든다. 성심당은 빵집의 본질이 ‘빵의 맛’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본질에 대한 집요함이다. 교육도 다르지 않다. 교육의 본질은 입시 성과나 화려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배움이 실제로 일어나는 교실이다. 보여주기식 정책, 단기 성과, 수치화된 결과에 몰두하면 정작 수업의 질과 교사의 전문성이라는 핵심은 뒤로 미뤄진다. 성심당이 반죽과 오븐 앞을 떠나지 않듯 교육 역시 교실과 아이들 곁을 떠나면 안 된다. 성심당은 빵을 통해 말한다. 교육도 그래야 한다. 성심당은 전국 어디에나 있는 빵집이 되지 않았다. 대신 ‘대전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빵집’으로 남았다. 모든 학교가 똑같은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똑같은 성취 기준만을 좇는 현실에서 학교는 특색이 없다. 학교는 지역의 역사와 삶, 아이들의 현실을 품을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배움의 공간이 된다. 과거에 학교는 지역사회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성심당은 등록상표 43건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소비자의 입맛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부단한 연구와 상품개발을 통해 입맛을 선도하는 빵집이라는 말이다.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원칙이 있다는 말이다. 시대가 변했는데 과거의 틀을 고집하는 분야에서 성장은 없다. 성심당은 1956년 문을 연 이래 복지단체에 빵 기부, 수억 원 넘는 장학금, 미혼모와 신생아를 위한 병원 진료비 기탁 등을 해왔다고 한다. 법인 설립 뒤 20여 년 동안 펼쳐온 기부활동은 모두 12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성심당의 인기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상승장만 가는 주식이 없듯이 언젠가는 내리막길을 갈 것이다. 하지만 빵을 만들어서 한 지역을 관광명소로 만드는 일은 드문 일이다. 거기에는 분명하게 배울 점이 있다. 성심당 임선 이사가 강연에서 밝힌 성심당 성공 공식은 ‘단기적 이익이 아니라 고객이 느끼는 가치에 집중한 게 성공 비결’이라고 한 적이 있다. 오늘 학교는 과연 본질에 충실하면서 따뜻한 가치를 존중하는가. 대전의 작은 빵집이 던지는 질문은 가볍지 않다. 성심당은 묻는다. “우리는 빵을 통해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가치가 있다. 오늘날 학교는 과연 무슨 가치로 교육을 하고 있는가”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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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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