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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재] 만화로 풀어보는 이청득심(以聽得心)
    [교육연합신문=글/그림 .문덕근/임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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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4-04
  • [연재] 만화로 풀어보는 사엄도존(師嚴道尊)
    [교육연합신문=글/그림 .문덕근/임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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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28
  • [연재] 만화로 풀어보는 경천애인(敬天愛人)
    [교육연합신문=글/그림 .문덕근/임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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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20
  • [연재] 만화로 풀어보는 경이원지(敬而遠之)
    [교육연합신문=글/그림 .문덕근/임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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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13
  • [연재] 만화로 풀어보는 동성상응(同聲相應)
    [교육연합신문=글/그림 .문덕근/임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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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05
  • [연재] 만화로 풀어보는 사자성어(四字成語)
    [교육연합신문=글/그림 .문덕근/임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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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27
  • 안희정 충남도지사 "학교폭력추방 위한 1000만인 서명운동에 큰 기대"
    [교육연합신문=김현구 기자]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행위 증가, 폭력이라고 인지 못하는 게 원인“ 아동·청소년의 폭력문제는 물리적인 것 외에도 온라인 사이트와 SNS 등을 통한 사이버상의 언어폭력이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인식된다. 실제 ‘사이버 명예훼손 및 모욕’ 관련 신고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보니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안희정 충청남도지사는 세계청년리더총연맹(총재 이산하, WFPL, WORLD FEDERATION OF POWER LEADERS, 아래 세계연맹)(www.wfple.org)과의 인터뷰에서 “사이버 명예훼손과 모욕 행위가 늘어나는 이유는 온라인상에서 험담이 폭력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게 주요 원인”이라며 “특히 스마트폰을 통한 SNS 이용이 활발해지면서 성인을 너머 청소년까지 쉽게 가담할 수 있다는 게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 지사는 “온라인상에서 험담과 허위사실 유포 등의 사례가 잇따르면서 처벌에 앞서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다각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충남도에서 추진 중인 인터넷·스마트폰 중독예방과 해소를 위한 ‘충청남도 스마트쉼센터’ 사업을 소개했다. 2013년 7월 개소한 스마트쉼센터는 운영 부문 3명, 상담사 39명 등 전문가로 이루어진 기관으로서, 정보기기 사용 역기능 해소를 위한 올바른 교육 및 상담으로 인터넷․스마트폰 중독 사전예방과 건강한 정보 활용을 도모하고 있다. 주로 유아·초·중·고·성인 등을 대상으로 예방교육과 함께 중독 위험군에 대한 가정방문상담을 추진하는 게 중요 업무다. 구체적으로 생애주기별 ‘인터넷·스마트폰 레몬교실’ 프로그램은 만0~6세의 유아 대상으로서 유치원 어린이집을 상대로 인터넷·스마트폰 중독 진단검사 및 예방교육을 실시한다. 만7~19세의 청소년 대상으로는 인터넷·스마트폰 중독 현황 및 사례, 예방법, 이용습관 형성 등에 대한 예방교육을 진행한다. 성인들에게는 인터넷·스마트폰 중독 예방법 및 사용습관 조절을 위해 학부모, 군장병, 공공기관, 민간기업 등에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쉼센터에서는 멘토링과 가정방문상담도 진행한다. 멘토링은 청소년 대상의 인터넷‧스마트폰 레몬교실 내용을 보강한 심화과정을 운영하고, 인터넷·스마트폰 중독 예방을 위한 개인의 역할을 강조하는 교육도 집중 운영한다. 한부모 가정, 조손, 저소득층, 다문화, 맞벌이 가정, 장애인, 성인 무직자 등 사회 취약 계층 대상으로는 가정방문상담을 실시한다. 방문상담 신청이 있은 지 일주일 이내에 상담사를 배정해서 내담자 또는 가족과 일정을 논의하고 이후 상담사의 전문 상담이 진행된다. 이에 따른 결과는 매 회기별로 상담 후 7일 이내 실적관리시스템에 결과보고서를 등록하고, 한 달 이내에 내담자만족도를 평가하기 위해 전화 모니터링을 추진한다. 충청남도에서는 지난해 스마트쉼센터를 통한 인터넷․스마트폰 레몬교실 이용 횟수가 총 274회로 2만7천904명이 참여했다. WOW건강한 멘토링은 62회로 1천816명의 청소년이 이용했고, 가정방문상담은 73명의 청소년이 참여했다. 세계연맹에서는 학교폭력 문제를 근절하기 위한 노력으로 제3의 평가 기구 설립을 제안하고 있다. 이 기구를 통해서 대학입시에 필요한 ‘학교폭력 및 예방 활동기록'을 의무적으로 제출할 것을 강력히 제안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안 지사는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인한 입시제도의 폐해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또 대학 입시에 필요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형식적으로 흐를 것 같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제도를 만들기 보단, 현재의 학폭위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학교 내 또래상담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안 지사는 △또래상담자 활동을 한 친구들을 대상으로 인센티브를 제공 △학교 내 의사소통 및 대인관계 훈련 프로그램을 학기 내 패스과목으로 이수하게 하여 대인관계 감수성을 키워주는 것을 제안했다. 특히 그는 2012년 2월부터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교육부와 여성가족부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또래상담사업’을 언급하며 세계연맹의 ‘대한민국 모범리더상’과의 접목을 제안하기도 했다. 또래상담사업은 교내 또래 친구들을 도와줄 수 있는 청소년들을 일부 선발해 양성 교육을 실시하고 교내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활동을 하는 사업으로서, 올해 기준 전국 초·중·고 8천개교에 프로그램이 보급된 상태다. ‘또래상담프로그램’ 은 고민이 있는 또래친구들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먼저 다가가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고 대화하며, 문제해결에 조력함으로써 즐거운 학교 및 건전한 또래문화를 형성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2017년 12월 19일 세계연맹은 학교폭력추방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출범과 함께 대한민국 모범리더상 시상식을 진행했다. 학교 안팎에서 언어폭력을 포함한 각종 학교폭력을 예방하거나 선행을 펼친 학생, 봉사활동을 꾸준히 실천한 모범학생 등 미래의 주역이 될 아이들을 격려함으로써 학생과 선생님이 더불어 행복하고 건강한 학교를 만드는데 기여하기 취지다. 안 지사는 “현재 운영되는 ‘또래상담사업’과 세계연맹에서 실시하는 ‘모범리더상’을 잘 접목하여 운영한다면 학교폭력예방에 가시적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또 “밝고 건강한 사회는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며, 모두의 하나 된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금번 세계청년리더총연맹이 주도하고 있는 학교폭력추방을 위한 1000만인 서명운동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많은 분들의 참여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큰 성과가 있길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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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19
  • 안희정 충남도지사 “건강한 가정의 회복이 청소년 문제 해결의 지름길”
    [교육연합신문=김현구 기자] “건강한 가정의 회복이야말로 청소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세계청년리더총연맹(총재 이산하, WFPL, WORLD FEDERATION OF POWER LEADERS)(www.wfple.org) 아래 세계연맹)이 신년 특별기획으로 마련한 ‘학교폭력 문제 등 위기의 해법’ 관련 인터뷰에서 안희정 충청남도 도지사는 이같이 말하고 ”청소년들에게 효과적인 범죄예방교육 및 재범방지를 위한 교육프로그램 강화에도 초점을 맞추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고 밝혔다. 최근 청소년들의 폭력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실효성 문제와 함께 ‘소년법’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안희정 지사는 “아무리 좋은 제도를 갖고 있어도 그것을 운용한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면 목적한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람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 지사는 자치위원회를 실효성 있게 운영하기 위해 △교사의 근무 년 수에 상관없이 교사를 대상으로 한 학교폭력 관련 전문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 △청소년 특성을 잘 이해하고 전문성을 갖춘 자치위원회의 인력풀 구성 △학교, 경찰, 지역사회 전문기관의 네트워크를 통해 위기학생에 대한 집중적 위기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안 지사는 소년법 개정 사안에는 “소년법의 내용을 근거로 청소년을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바르게 육성하는 것을 목적 한다”며 개정을 통한 강경 선회에는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소년법 제 1조에는 소년의 환경 조정과 품행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고 형사처분에 관한 특별조치를 함으로써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으로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동학대 문제도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지 오래다. 일각에서는 자녀에 대한 부모교육이 확산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시·도 차원의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 지사는 “아동학대사건을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놀랐다. 우리나라 아동학대의 경우 절대적인 수가 부모에 의해 행해진다고 하는데 그래서 부모의 역할 및 자녀 이해 등 부모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안 지사에 따르면, 충남도는 부모교육에 대한 관심과 함께 가족문제를 돕는 기관들을 지원하고 있다. 충남도는 건강가정지원센터(4개소), 다문화가족지원센터(6개소),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통합센터) 등 총 18개소를 통해 가족생애주기 교육 및 한부모 가족, 다문화 가족, 맞벌이가족, 합의이혼 가정 등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부모교육’, ‘남성대상 아버지교육’, ‘법원연계 부모교육’ 등 다양한 형태의 부모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충청남도 건강가정을 위한 부모학습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부모학습 활성화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했다. 이를 기반으로 내년에는 부모학습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좀 더 체감을 높이는 사업으로 부모교육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아동과 청소년 폭력 외에도 우리 사회는 여성폭력사건 예방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시급한 상황이다. 2015년도 경찰 통계를 보면, 강력범죄 피해자 가운데 여성이 85.6%이며, 폭력 피해자 가운데 성폭력의 경우 여성이 94%를 차지했다. 안 지사는 “여성과 청소년이 사회적으로 약자이다 보니 폭력으로부터 쉽게 노출되어 있다”라며 “특히 강남역 사건처럼 불특정 대상을 향한 막무가내 분노의 표출은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하는 폭력예방 활동과 피해자를 보호하고 구조하는 지원체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 모두가 타인도 나처럼 소중하다는 시민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 도에서는 양성평등과 인권보호를 위해 조례를 제정하여 제도적 틀을 만들고, 교육을 통한 의식 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충남도는 11월을 ‘여성폭력 추방의 달’로 정하고 있고,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등 여성‧아동 대상 폭력근절 및 피해자의 인권보호를 위한 시책들을 추진 중에 있다. 가령 ‘당신의 관심이 가정폭력을 멈춘다’는 의미를 담아 매월 8일을 ‘보라데이’로 정해놓았다. ‘보라’는 가정폭력 및 아동학대 예방과 피해자(아동) 조기발견을 위해 주변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시선으로‘보라’는 뜻이다. 충남도는 여성긴급전화 1366충남센터와 지방자치단체, 지역경찰서, 폭력 상담소, 아동·여성안전지역연대 등 지역 유관기관이 함께 홍보와 인식개선을 위한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또한 상담소나 센터, 보호시설을 통해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를 대상으로 개별상담‧집단상담, 독서‧미술‧원예 치료 등 다양한 치료‧회복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문화체험 및 심신회복프로그램 등도 함께 운영하여 피해자들의 안정에 도움을 주고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가족은 미리 누리는 천국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 만들기에 더욱 노력하겠다”며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물리적, 언어적 폭력은 이 사회에서 없어져야 한다”며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폭력을 사라지게 하는 좋은 수단이다. 여기에 관심을 더한다면 이 세상은 더 밝고 행복한 사회가 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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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02
  • 야구의 도시 마산(현 창원시)의 야구 역사
    [교육연합신문=김호기 기자] 마산에서 야구가 시작된 지 올해로 100년이 된다. 마산 야구의 첫 행보는 1914년이라는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산 최초의 야구팀에 관한 기록은 창신중·고등학교에서 발간한 ‘창신 100년사’에 수록돼 있다. 1894년 호주선교부에서 파송한 아담슨(Rev. A. Adamson, 한국명 孫安路) 선교사는 마산에 와 성호리에 마산포교회(창신학교의 전신)를 설립하고 초대 교역자로 목회 활동을 하면서 한인 가옥을 사들여 예배당으로 사용하였다. 그 후 1909년 정식으로 창신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아 1914년에 야구부와 축구부를 창단했다는 내용이다. 1911년 교사로 부임한 국학자 안확(1886~1946) 선생도 야구부 창단에 힘을 보탰다. 당시 매사에 적극적이고 선구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또 그런 행동을 방식을 실천하던 안확 선생은 “방안에 앉아서 책만 읽다가 나라를 잃어버렸으니…우리는 문(文)도 해야 하지만 무(武)도 닦아야 하겠다. 곧 건강한 신체가 나라를 되찾는 원동력이 되니, 매일 집에서 체조를 하고 운동장에서 놀 때는 뛰면서 놀아라.” 이렇게 가르치고 생활화하기를 역설하였다. 즉, 마산에서의 야구는 이렇게 시작하였으니 곧 일제를 이기는 힘을 기르기 위한 극일(克日) 수단이었다. 물론 당시 경기 모습은 오늘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했다. 새끼줄이나 헌옷을 뭉쳐 공을 만들었고 나무막대가 곧 야구 방망이였다. 이러한 태동은 오늘의 프로야구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야구’에 대한 첫 공식적 기록이 1914년 창신학교 야구팀 창단이라는 것일 뿐, ‘야구’라는 신문물이 언제 마산에 전해졌는지는 확실치 않다. 경남대 모 교수는 “마산은 지리적으로 일본과 인접한 곳에 위치하여 일본 유학생들을 통해 일찍 신문물을 비롯한 스포츠와 야구 등에 눈을 떴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창신학교 야구부가 이후 어떻게 운영되고 변모해 갔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창신 100년사(2008년)를 집필한 김재하 창신고 교사는 “동아일보사와 부산대학교 도서관에 있는 기록들을 샅샅이 뒤졌지만 야구부에 대한 번뜩이는 기록은 많이 찾지를 못했다”며 “학교에 남아있던 기록도 신사참배 거부로 인한 일시 폐교(1939년)와 함께 세월의 아픈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대구 계성고등학교에서 발간한 ‘계성 100년사’에 ‘계성학교 야구부가 인근에 마땅한 상대팀이 없어 마산 창신학교에 가서 친선경기를 가졌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것은 마산 최초의 대외적인 스포츠 교류이기도 했다. 1920년대에 들어오면서 야구는 화끈한 마산시민들의 입맛에 맞는 ‘오락’으로서의 면모도 갖추기 시작했다. 이러한 열기를 부추겼던 것이 1921년 노비산과 육호광장 중간 2,700평 부지에 ‘마산구락부운동장’이 설립된 일이다. 당시 일종의 사회·정치계 사교클럽이었던 ‘마산구락부’가 약 6,000원의 공사비를 마련해 운동장 터를 닦았다는 기록이 ‘마산시 체육사’와 ‘한국 야구사’에 나온다. 이곳은 매년 5~6월 시민운동회가 열리고, 1921년 ‘마산야구대회’가 열리기도 하는 등 마산의 스포츠 메카로 기능했다. 이때 창신학교 야구부 출신의 김 모 씨를 주축으로 한 ‘구성(九星)야구단’이 조직돼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 야구단을 초청해 이곳에서 친선경기를 벌이며 인기를 모았다. 이것이 마산 야구 100년 출발에 대한 얘깃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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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18
  • [황재순 박사의 아, 그렇구나!] '클레멘타인'이 사실은 광부의 딸이라는데...
    [교육연합신문=황재순 칼럼]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려 있어서 마치 우리나라 민요처럼 친숙해져 버린 미국 민요 '클레멘타인'.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애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이렇게 1절만 불렀을 때에는 늙은 어부의 철없는 딸이 마치 어디로 도망이라도 간 것처럼 생각되지만 3절까지 다 불러 보면 어린 딸이 바닷가에서 아빠를 기다리다가 파도에 휩쓸려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바닷가 늙은 어부에 대한 딱한 마음에 노래를 부르는 중에도 눈시울이 따끈해지고는 했지요.그래서 클레멘타인이 바닷가 어부의 딸이라는 사실에 아무도 의심을 품지 않았습니다.그런데 중학교의 음악 교과서에 이 노래의 영어 가사가 실리면서... In a cavern, in a canyon, Excavating for a mineDwelt a miner forty niner, And his daughter Clementine ===Oh my darling, oh my darling, Oh my darling, Clementine!===Thou art lost and gone forever Dreadful sorry, Clementine 아, 이게 웬 일입니까? 동굴이 나오고 탄광도 나오고 광부도 나오고...전혀 놀라지 않는 걸 보니 영어 실력이 좀 많이 부족한가 보군요. 첫 두 줄을 번역해 보면 동굴에서, 협곡에서, 탄광을 파 내면서 49 갱판 광부와 그의 딸 클레멘타인이 살았다네 어부의 딸로만 철석같이 믿고 있던 클레멘타인이 광부의 딸이라고 합니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한 번 알아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1849년부터 미국 서부에 불어 닥친 금광 채굴 바람은 수많은 사람을 광부로 몰리게 하였고, 그들 모두가 부자가 된 것은 아니었으며 대부분이 죽지 못해 사는 정도... 그 탄광 계곡 오막살이에 아빠의 커다란 신발을 끌고 오리 새끼 따라 나섰던 클레멘타인이라는 어린 소녀가 계곡의 급류에 휩쓸려간 슬픈 이야기가 있었고... 캘리포니아 광부들 사이에서 스페인어로 신세를 탄식하면서 불렀던 노래가 있었고... 그것을 영어로 번역하고 또다시 한국말로 번역하였는데, 1930년대 박태원이란 소설가가 번역하는 과정에서 광부의 딸을 어부의 딸로 바꿔치기 했고... 누구를 의심할 줄 모르는 착하디 착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어가사로 클레멘타인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까지도 '늙은 어부의 딸'이겠거니 생각하고 다들 그냥 넘어 간 것입니다. '클레멘타인'은 광부의 딸입니다. 뭐가 이상하면 좀 찾아보고 그럽시다요.참, 여기서 '49갱판'은 '1849년 형성된 미국 서부의 무법천지 탄광사회'를 말하구요.그리고 일본에서는 이 노래의 곡조만 빌려서 유치원용 일본어 학습 동요로 쓰고 있더군요.클레멘타인을 어부의 딸로 알고 있는 것은 한국인들 뿐이니 절대 소문 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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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18
  • [황재순 박사의 아, 그렇구나!] 이준 열사께서는 정말 할복으로 자살하셨을까요?
    [교육연합신문=황재순 칼럼] 누가 어떻게 그런 소문을 냈는지 몰라도 현재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들 알고 있지요.북한에서 만든 이준 열사 연극에서도 만국평화회의장에서 할복하는 것으로 되어 있더군요. 할복자살이란 원래 전투에서 패한 일본 사무라이들이 패전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지 않고 자기 혼자만 책임을 지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장렬한 자살방법의 하나인데요... 정장을 하고 앉아서 작은 칼로 자신의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내 들면 고통을 줄여주는 차원에서 그 옆의 사람이 큰 칼로 목을 쳐 주는 방식인데, 대개의 경우 할복자살하는 사람은 두고두고 일본 사람들 존경의 대상이 되곤 하지요. 할복자살이란 것이 이와 같이 일본의 전통적인 사무라이 자살 방식인데 우리의 이준 열사가 그런 방식으로 자살하지도 않았지만, 또 그런 방식으로 돌아 가셔서도 안 되지요. 할복자살이 멋있는 죽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누군가가 이준 열사의 죽음을 과장하여 표현한 것 같은데.... 사실 따지고 보면 할복자살을 멋있게 보는 그 자체가 일제의 잔재라고 볼 수도 있지요. 서울 남대문역에서 서로 다른 날 기차에 오른 이준, 이상설 공과 헐버트 목사 일행은 만주 용정에서 만나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이용익으로부터 대표 신임장과 고종황제가 러시아 황제에게 보내는 밀서를 받아 다시 기차를 타고 러시아 피터스버그에서 러시아 황제에게 밀서를 전달하고 주 러시아 이범진 공사의 아들 이위종과 함께 기차로 헤이그로 갔는데, 워낙 장거리 여행인 데다 정신적인 피로까지 겹쳐서 이준 공은 네덜란드의 어떤 병원에서 조국의 운명을 걱정하는 유언을 남기고 조용히 세상을 떠난 것으로 네덜란드 국회도서관 보관 신문철에서 확인되었습니다. 나이는 48세. 병명은 급성종양. 네덜란드 헤이그의 만국평화회의.이 회의는 원래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제창하여 결성된 전세계 외교팀들의 회의이지요, 이것이 나중에 국제연맹으로, 국제연합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지요. 1907년 6월 15일부터 제2회 만국평화회의가 헤이그에서 열렸는데, 이 회의 기간 동안 전세계 뉴스의 초점이 되었던 인물은.... 본회의에 한번도 참석하지 못했으면서도 장외에서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였던 약관 20세의 이위종 공이었지요. 이위종 공은 20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유창한 외국어 솜씨로 특별연설에다 단독회견 등으로 만국일보의 1면 머리기사를 여러 차례 장식하였고, 허울뿐인 만국평화회의의 무능함까지 질타하는 등 만국평화회의의 실질적인 뉴스 메이커 역할을 하였습니다. 덕분에 일본은 국제적으로 큰 망신을 당하였고, 밀사를 보낸 고종황제는 이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즉각 폐위가 되어 대한제국의 황제가 순종으로 바뀌어 버리는 사태가 벌어졌지요. 이 때 쫓겨난 고종황제는 12년 뒤 1919년 서거하셨는데 이 장례식 보러 온 백성들이 3.1만세 운동을 일으켰고, 헤이그에 묻혔던 이준열사는 1963년 서울 수유리로 이장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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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9-25
  • [문화기획]유네스코 세계유산 알아보기(10)
    [교육연합신문=우병철 기자] 문화재청(청장 김찬)은 오는 25일과 26일 이틀에 걸쳐 저녁 7시 30분부터 국립국악원 예악당(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중요무형문화재 공연을 개최한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무형유산 중 무대공연이 가능한 8개 종목을 선별해 상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 공연을 개최할 계획인데, 이번 4월 25일과 26일에는 가곡, 종묘제례악, 줄타기, 남사당놀이가 공연된다. 다음 8월 24일과 25일에는 판소리, 처용무, 강강술래, 영산재를 중심으로 공연될 예정이다. 4월 25일 공연의 첫 번째 무대는 가곡 예능보유자가 모두 출연하며, 조선 성종 때 궁중에서 불렸던 가곡을 감상할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다. 두 번째는 종묘제례악보존회의 무대로 종묘제례악을 작곡한 세종을 역사적·정치적·심리적으로 추적해가는 스토리텔링 영상극이 웅장한 연주와 함께 펼쳐진다. 또 26일 공연에서는 남사당놀이보존회와 줄타기 예능보유자 김대균이 이끄는 줄타기보존회가 각 장르의 명장면만을 모아 공연을 펼친다. 줄타기와 남사당놀이는 대중에게 인기가 좋은 장르 중 하나로 재미있고 신명 나는 무대가 될 것이다. 유네스코는 2003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에 따라 문화적 다양성과 창의성의 원천인 무형유산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고 무형유산 보호를 위한 국가적, 국제적 협력과 지원을 도모하기 위하여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과 긴급 보호목록 등재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2005년까지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이라는 명칭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나, 지금은 세계유산과 마찬가지로 정부 간 협약으로 발전됐다. 우리나라는 2001년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을 시작으로 판소리, 강릉단오제,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영산재,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처용무, 가곡, 대목장, 매사냥, 줄타기, 택견, 한산모시짜기 14개 종목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했다. 무형유산은 한 가지 모습으로 고착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역사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며 계속 변화·발전하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우리 무형유산의 전통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전통예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접근을 시도한다. 이를 통해 전통예술이 새로운 방식으로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지 확인할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본 공연의 관람을 희망하는 분은 관람티켓 신청 전용 웹사이트(http://korearts.or.kr)에서 신청해야 입장이 가능하며, 관람료는 무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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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4-23
  • [문화기획]유네스코 세계유산 알아보기(9)
    [교육연합신문=우병철 기자] 12월 16일 강원도 평창 오대산 사고와 월정사에서는 조선왕실의궤가 100여년 만에 일본에서 돌아왔음을 알리는 환수 고유제(告由祭)와 환영행사가 열렸다. 지난 10월 18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한·일정상회담을 위한 방한 시 일본으로 반출됐던 조선왕조도서인 대례의궤 1책, 왕세자가례도감의궤 2책, 정묘어제 2책 등 5책을 우선 국내로 반환한데 이어 12월 6일 나머지 1,200책의 도서가 인천공항을 통해 모두 반환됐고 문화재청에서는 인천공항에서 영접 및 환영행사를 개최하고, 13일 종묘에서 환국된 조선왕조도서 1,205책에 대한 고유제례를 열었다. 환국된 조선왕조 도서 1,205책 중에는 조선왕실의궤 81종 167책이 포함되어 있다. 167책의 의궤 중에는 오대산 사고본이 44종 81책이다. 고유제는 종묘제례보존회의 주관으로 오대산 사고에서 약 30분간 진행됐으며, 환영식은 월정사 대법륜전에서 식전행사인 오대산 학춤을 시작으로 의궤 봉안식, 공로패 증정 순으로 약 1시간 30분가량 진행됐고 환영식이 끝나는 3시부터 되찾은 조선의 보물, 의궤 북 콘서트가 열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알아보기 오늘은 조선왕조 의궤에 대해 알아보자. 조선왕조 국가의식의 핵심을 이루는 길례(吉禮, 제사)와 가례(嘉禮, 혼인 등), 빈례(賓禮, 사신 접대 등), 흉례(凶禮, 장례 등), 군례(軍禮, 군사 훈련 등)를 기록한 이 의궤(儀軌)는 국가의식의 흐름과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특히 행사의 진행과정을 날짜순으로 자세히 적고,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과 비용 및 재료까지 세밀히 기록해 놓았으며, 의식에 쓰인 주요 도구와 행사 장면을 천연색으로 그려 놓아 시각적 효과와 현장성까지 살려 놓은 것이 큰 특징이다.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된 546종 2,940책의 각종 의궤, 한국학 중앙연구원 장서각(藏書閣)에 소장된 287종 490책의 각종 의궤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의궤는 조선왕조에서 유교적 원리에 입각한 국가 의례를 중심으로 국가의 중요 행사를 행사 진행 시점에서 당시 사용된 문서를 정해진 격식에 의해 정리하여 작성한 기록물이다. 같은 유교문화군에 속하는 중국, 일본, 베트남 등에서는 의궤의 체계적인 편찬이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의궤는 조선시대 600여년에 걸쳐 (1392-1910) 왕실의 주요 행사, 즉 결혼식, 장례식, 연회, 사신영접 등 뿐 아니라, 건축물·왕릉의 조성과 왕실문화활동 등에 대한 기록이 그림으로 남아져 있어 600여년의 생활상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희소성을 가지고 있다. 총 3,895 여권의 방대한 분량에 이르는 의궤는 왕실의 주요한 의식이 시기별,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어서, 조선왕조 의식의 변화 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를 비교연구, 이해하는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반차도, 도설 등 행사모습을 묘사한 시각 콘텐츠는 오늘날의 영상자료처럼 당시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예컨대 정조의 능행도(陵幸圖)는 전 여정을 15.4m에 걸쳐 표현하고 있다. 이런 형태(시각중심 visual-oriented)의 기록유산은 뛰어난 미술장인과 사관의 공동작업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 마디로 의궤는 장기간에 걸쳐 조선왕조의 주요 의식을 방대한 양의 그림과 글로 체계적으로 담고 있으며 이러한 유형은 동서양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매우 뛰어난 기록유산의 가치(outstanding value of documentary heritage)를 지니고 있다. 세계사 맥락에서 유교의 중요성이 저평가되고 있는 면이 없지 않다. 유교는 세계의 조그만 한쪽 구석에 존재했던 문화가 아니다. 유교가 지배했던 영토는 그 면적으로 볼 때 서유럽보다도 몇 배나 컸으며 인구 수에 있어서도 유럽, 서남아시아 및 중동을 초과하는 큰 규모였다. 유교권은 최소 14세기까지 전세계를 2~3개 권역으로 분할하던 주요 문화권 중 하나였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수차례에 걸친 야만족의 침입과 이들에 의한 점령으로 인해 시간이 경과하며 전통 의식은 원형을 점차 잃어갔다. 특히 몽골 침입 기간 동안 유교 의식을 수록한 문헌 상당수가 소멸됐다. 이에 반해 한국은 그러한 침입을 경험하지 않았기에 전통 유산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며 천 년 동안 진정성을 훼손하지 않고 유교 의식을 봉행하는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의궤는 대부분의 유교사회에서 잊혀진 과거 유산을 보존하고 있는 기록이다. 또한, 의궤는 조그마한 군주국가의 기록이 아니라, 한때 세계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유교 전통의 핵심을 대표하는 기록이다. 조선왕조 의궤는 2007년 6월 제8차 유네스코 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6.13∼15, 남아공 프레토리아)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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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2-17
  • [문화기획]유네스코 세계유산 알아보기(8)
    [교육연합신문=우병철 기자] 스위스에 본부를 둔 '뉴세븐원더스' 재단은 11월 12일 오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제주도를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유네스코 자연과학분야 3관왕 획득에 이은 7대 자연경관 선정으로 제주도는 관광산업 발전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제주도와 함께 이번에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된 곳은 브라질 아마존·베트남 하롱베이·아르헨티나 이구아수 폭포·인도네시아 코모도국립공원·필리핀 푸에르토프린세사 지하강·남아프리카공화국 테이블마운틴 등이다. 오늘은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지정된 제주도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알아보자.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지역은 한라산, 성산일출봉, 거문오름용암동굴계3개이다. 한라산은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서 화산 활동에 의해 생성된 순상화산체이다. 성산일출봉은 제주도에 분포하는 360개의 단성화산체(cinder cones:제주방언으로는 오름이라 함)중의 하나이며, 수성화산체로서 해안선 근처에 뛰어난 경관을 제공하는 응회구이다. 거문오름용암동굴계는 지금으로부터 약 10~30 만 년 전에 거문오름에서 분출된 용암으로부터 여러 개의 용암동굴이 만들어 진 것이며, 이 동굴계에서 세계자연유산으로 신청된 동굴은 벵뒤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그리고 당처물동굴이다. 제주도는 약 180만 년 전부터 역사시대에 걸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졌다. 한라산 정상부에는 한라산 조면암과 백록담현무암이 분포하며 한라산조면암은 높은 점성을 갖고 돔상으로 솟아 한라산을 더 웅장하게 만들고 있다. 해뜨는 오름으로도 불리는 성산일출봉은 약 4만에서 12만년 전 얕은 수심의 해저에서 수성화산분출에 의해 형성된 전형적인 응회구이다. 높이 182m로 제주도 동쪽 해안에서 거대한 고성처럼 자리잡고 있는 이 응회구는 사발 모양의 분화구를 잘 간직하고 있다. 거문오름용암동굴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용암동굴은 만장굴로서 이 동굴의 길이와 규모는 세계적이다. 만장굴과 김녕굴은 길이뿐만 아니라 통로의 규모면에서도 세계적이다. 또한 벵뒤굴은 미로형 동굴로서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통로의 형태를 보인다. 대부분의 용암동굴은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다양한 규모와 형태, 미지형, 그리고 동굴생성물을 보여준다. 세계적인 경관과 가치를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동굴은 제주도 해안 저지대의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이다. 이들 동굴 내에는 용암동굴 내에서는 흔히 볼수 없는 석회질 동굴생성물이 성장하고 있으며, 이들 동굴생성물의 규모, 형태, 분포 및 밀도는 가히 세계적인 수준이라 평가된다. 특히 종유관, 종유석, 석순, 석주, 휴석, 커튼, 동굴산호 등, 아주 다양한 동굴생성물이 잘 보존된 이 동굴들은 전 세계적으로 용암동굴 내의 탄산칼슘으로 이루어진 2차 동굴생성물이 가장 발달된 동굴로 평가된다. 당처물동굴은 규모가 매우 작은 동굴이지만, 이 동굴 내에서 발견되는 석회질 동굴생성물은 세계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용천동굴의 큰 규모와 석회질 동굴생성물은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화려한 장관을 이룬다. 이처럼 제주도의 동굴은 학술, 문화, 산업 및 관광 자원의 면에서 매우 중요하고, 수많은 측화산 및 용암동굴은 지구의 화산 생성과정 연구에 있어 큰 학술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제주도는 생물다양성보전의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한국산 관속식물의 약 절반이 제주도에 자생하며 약 200여종의 한국 특산종이 분포한다. 또한 한국의 멸종위기종 및 보호야생종의 약 1/2이 제주도에 분포한다. 제주도의 정상부에는 빙하시대에 남하했던 한대성 식물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저지대와 섬의 난림대에도 많은 고유종과 멸종위기종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한라산은 생태계의 보고로서 식물 총 1,565종과 동물 1,179종이 자생하고 있다.2007.6.27(수)일, 뉴질랜드 크아이스트처치에서 열린 제31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제주화산섬과 용암동굴 (Jeju Volcanic Island and Lava Tubes)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세계유산적 가치 제주도는 수많은 측화산과 세계적인 규모의 용암동굴, 다양한 희귀생물 및 멸종위기종의 서식지가 분포하고 있어 지구의 화산 생성과정 연구와 생태계 연구의 중요한 학술적 가치가 있으며,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의 아름다운 경관과 생물· 지질 등은 세계적인 자연유산으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등록기준 :세계자연유산기준 (vii), (viii) (vii) 최상의 자연현상이나 뛰어난 자연미와 미학적 중요성을 지닌 지역을 포함하여야 한다. (viii) 생명의 기록, 지형의 발달에 있어 중요한 지질학적 진행 과정, 또는 지형학이나 자연지리학적 측면의 중요 특징을 포함하여 지구 역사상의 주요 단계를 입증하는 대표적 사례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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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1-14
  • [문화기획]유네스코 세계유산 알아보기(7)
    [교육연합신문=우병철 기자] 보건복지부(장관 임채민)는 10월 31일(현지시각) 프랑스(파리)에서 열린 제36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이 되는 2013년이 ‘유네스코 기념의 해’로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유네스코 기념의 해’ 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선정된 것으로, 유네스코는 2004년부터 2년마다 유네스코와 관련된 인물 또는 기념일이 있는 해를 전 세계적 중요성을 부여할 목적으로 ‘유네스코 기념의 해’로 선정해 오고 있다. 이번에 '2013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이 ‘유네스코 기념의 해’에 선정된 것은 동의보감이 2009년 7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유네스코의 숭고한 사명을 공유한다는 점 등이 세계 의료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아 ‘유네스코 기념의 해’로 선정됐다. '2013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이 ‘유네스코 기념의 해’로 선정됨에 따라 ‘유네스코’ 공식로고를 사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동의보감 400주년이 되는 2013년을 계기로 한의약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및 산업화 촉진 등을 위해 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인 '2013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국제적 공감대 형성 및 해외 유치활동에도 크게 기여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동의보감은 1613년 한국에서 집필된 의학적인 지식과 치료기술에 관한 백과사전으로, 왕의 지시 하에 여러 의학 전문가들과 문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허준(1539~1615)이 편찬했다. 동의보감은 동아시아 의학의 발전 뿐 아니라,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어, 19세기까지는 유래가 없었던 예방 의학과 국가적으로 이뤄지는 공공 보건정책에 대한 관념을 세계 최초로 구축했다. 동의보감은 한국적인 요소를 강하게 지닌 동시에, 일반 민중이 쉽게 사용가능한 의학지식을 편집한 세계 최초의 공중보건의서라는 점을 인정받아 2009년 등재됐다. 전문가들은 또한 동의보감이 질병 치료와 관련해 정신적·심리적 측면을 강조하는 동양의학의‘총체적 접근법’을 담고 있어, 단순한 기술적인 가치를 넘어 사회적·철학적 가치가 인정된다고 보았다. 아울러 초간본 동의보감이 이상적인 보존 환경에 놓여 있다는 점도 높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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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1-01
  • [문화기획] 유네스코 세계유산 알아보기(6)
    [교육연합신문=우병철 기자] 경주는 한민족의 세계문화유산 상징의 로고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8개의 세계문화유산중 경주는 석굴암과 불국사, 경주 역사 유적지구 등 2개를 보유하고 있다. 신라 천년의 영화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경주는 아울러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적인 역사도시다. 경주역사유적지구(Kyongju Historic Areas)는 신라천년(B.C 57 - A.D 935)의 고도(古都)인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있는 불교유적, 왕경(王京)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이미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일본의 교토, 나라의 역사유적과 비교하여 유적의 밀집도, 다양성이 더 뛰어난 유적으로 평가된다. 2000년 12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유산이 산재해 있는 종합역사지구로서 유적의 성격에 따라 모두 5개 지구로 나누어져 있다. 불교미술의 보고인 남산지구, 천년왕조의 궁궐터인 월성지구, 신라왕을 비롯한 고분군 분포지역인 대능원지구, 신라불교의 정수인 황룡사지구, 왕경 방어시설의 핵심인 산성지구로 구분되어 있으며 52개의 지정문화재가 세계유산지역에 포함되어 있다. 경주 남산은 야외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신라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곳으로 신라 건국설화에 나타나는 나정(蘿井), 신라왕조의 종말을 맞게 했던 포석정(鮑石亭)과 미륵곡 석불좌상, 배리 석불입상, 칠불암 마애석불 등 수많은 불교유적이 산재해 있다. 월성지구에는 신라왕궁이 자리하고 있던 월성, 신라 김씨왕조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계림(鷄林), 신라통일기에 조영한 임해전지, 그리고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시설인 첨성대(瞻星臺)등이 있다. 대능원지구에는 신라왕, 왕비, 귀족 등 높은 신분계층의 무덤들이 있고 구획에 따라 황남리 고분군, 노동리 고분군, 노서리 고분군 등으로 부르고 있다. 무덤의 발굴조사에서 신라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금관, 천마도, 유리잔, 각종 토기 등 당시의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유물들이 출토됐다. 황룡사지구에는 황룡사지와 분황사가 있으며, 황룡사는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되었으나 발굴을 통해 당시의 웅장했던 대사찰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으며 40,000여 점의 출토유물은 신라시대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산성지구에는 A.D 400년 이전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명활산성이 있는데 신라의 축성술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영향을 끼쳤다. 1.남산지구(사적 제311호) 보리사 마애석불(지방유형문화재 제193호) 경주남산 미륵곡 석불좌상(보물 제136호) 경주남산용장사곡 삼층석탑(보물 제186호) 경주남산용장사곡 석불좌상(보물 제187호)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천룡사지 삼층석탑(보물 제1188호) 남간사지 당간지주(보물 제909호) 남간사지 석정(지방문화재자료 제13호) 경주남산리 삼층석탑(보물 제124호) 경주배리 석불입상(보물 제63호)경주남산 불곡 석불좌상(보물 제198호) 경주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보물 제199호) 남산 칠불암 마애석불(보물 제200호)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보물 제201호)경주 삼릉계 석불좌상(보물 제666호) 남산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지방유형문화재 제19호) 남산 삼릉계곡 선각 육존불(지방유형문화재 제21호) 경주남산 입곡 석불두(지방유형문화재 제94호) 남산 침식곡 석불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12호) 남산 열암곡 석불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13호) 남산 약수계곡 마애입불상(지방유형문화재 제114호) 남산 삼릉계곡 마애 석가여래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58호) 남산 삼릉계곡 선각 여래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59호) 경주배리 윤을곡 마애불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95호) 배리 삼릉(사적 제219호)신라일성왕릉(사적 제173호)신라정강왕릉(사적 제186호) 신라헌강왕릉(사적 제187호) 지마왕릉(사적 제221호) 경애왕릉(사적 제222호)신라내물왕릉(사적 제188호)경주포석정지(사적 제1호) 경주 남산성(사적 제22호)서출지(사적 제138호)경주나정(사적 제245호)경주남산동 석조감실(지방문화재자료 제6호)백운대 마애석불입상(지방유형문화재 제206호) 2.월성지구경주 계림(사적 제19호)경주월성(사적 제16호)경주임해전지(사적 제18호)경주 첨성대(국보 제31호)내물왕릉, 계림, 월성지대(사적및명승 제2호) 3.대능원지구 신라 미추왕릉(사적 제175호)경주황남리고분군(사적 제40호)경주노동리고분군(사적 제38호) 경주노서리고분군(사적 제39호)신라 오릉(사적 제172호)동부사적지대(사적 제161호) 재매정(사적 제246호) 4.황룡사지구 황룡사지(사적 제6호)분황사 석탑(국보 제30호) 5.산성지구 명활산성(사적 제47호) 세계유산적 가치경주역사유적지구는 한반도를 천년이상 지배한 신라왕조의 수도로 남산을 포함한 경주 주변에 한국의 건축물과 불교 발달에 있어 중요한 많은 유적과 기념물들을 보유하고 있다. 등록기준 : 세계문화유산기준 (Ⅲ) (Ⅲ) 독특하거나 지극히 희귀하거나 혹은 아주 오래된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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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0-18
  • 유네스코 세계유산 알아보기(5)
    [교육연합신문=우병철 기자] 오늘은 565번째 맞이하는 한글날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훈민정음에 대해 알아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사업은 세계의 기록유산이 인류 모두의 소유물이므로, 미래세대에 전수될 수 있도록 이를 보존하고 보호하고자 하며 기록유산에 담긴 문화적 관습과 실용성이 보존되어야 하고, 모든 사람들이 방해받지 않고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돼있다. 훈민정음이란 백성을 가르치는 올바른 소리란 뜻이며, 조선 왕조 제4대 임금인 세종이 그때까지 사용되던 한자가 우리말과 구조가 다른 중국어의 표기를 위한 문자체계여서 대다수 백성들이 배워 사용할 수 없는 사실을 안타까워하여 세종 25년(1443)에 우리말의 표기에 적합한 문자체계를 완성하고 "훈민정음"이라 명명했다. 세종 28년(1446)에 정인지 등이 세종의 명을 받아 설명한 한문해설서를 전권 33장 1책으로 발간하였는데 책의 이름을 훈민정음이라고 했다. 해례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 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현존 본은 1940년경 경북 안동 어느 고가에서 발견된 것으로서 국내에서 유일한 귀중본이다. 세종은 새로 만든 새문자에 대하여 창제의 목적을 밝힌 서문과 새문자 하나하나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예시하고 설명한 글을 짓고 집현전의 학자들에게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용례를 짓도록하여 책을 만들고 이것을 백성들에게 널리 공표했다. 이 책에는 세종어제 서문과 훈민정음 음가 및 운용법을 밝힌 예의편이 제자해, 초성해, 중성해, 종성해, 합자해, 용자해 순으로 기술되어 있다. 세계의 많은 민족들이 자기의 언어를 표기하기 위하여 문자를 만들려고 노력했으나, 한글과 같이 일정한 시기에 특정한 사람이 이미 존재한 문자에서 직접으로 영향 받지 않고 독창적으로 새 문자를 만들고 한 국가의 공용문자로 사용하게 한 일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더욱이 새 문자에 대한 해설을 책으로 출판한 일은 유례가 없었던 역사적인 일이었다. 특히, 이 책에서 문자를 만든 원리와 문자 사용에 대한 설명에 나타나는 이론의 정연함과 엄정함에 대해서는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정인지의 서문이 1446년 음력 9월 상순에 쓰여졌다고 되어 있어 늦어도 음력 9월 10일에 출판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에서 이 책의 출판일을 기념하여 한글날로 제정한 것이나 유네스코에서 문맹퇴치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세종대왕상을 주는 것은 이 책의 문화사적 의의를 나타낸다. 훈민정음은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됐다. 훈민정음, 곧 한글은 28자로 된 알파벳으로, 오늘날에는 4가지가 안 쓰이고 24자만 쓰이는데, 한국어를 완벽하게 표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배우기와 사용하기에도 편리한 문자체계이다. 문자체계 자체로도 독창적이며 과학적이라고 인정되고 있어 그 의의가 크다 할 것이다. 이 책은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최항, 박팽년, 강희안, 이개, 이선로 등 집현전의 8학자가 집필한 것으로 훈민정음의 내용을 살펴보면 두 부분으로 되었는데 제 1부는 세종이 지은 것으로 책의 본문에 해당된다. 본문의 내용은 새문자를 창제한 목적을 천명한 훈민정음 서문과, 새문자 28자를 초성11자로 나누어 차례로 예시하고 설명한 다음에 이들을 결합하여 우리말을 표기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예구로 되어 있다. 제2부는 세종의 명령에 따라 젊은 학자들이 지은 본문에 대한 주석이다. 그것은 새문자의 제작원리를 설명한 제자해, 음절 두음을 표기하는 자음 17자를 설명한 초성해, 모음 11자를 설명한 종성 해, 음절말지음을 설명한 종성해, 초성·중성·종성이 결합하여 음절을 표기하는 방법을 설명한 합자해, 새문자로서 단어를 표기한 예를 보인 용자례의 6장으로 나뉜다. 끝에는 정인지의 훈민정음해례본 서문이 붙어있다. 훈민정음은 전체 분량이 본문 4장, 주석과 정인지의 서문 29장으로 된 33장에 지나지 않으나, 이론 전체가 정연하고 서술이 과학적인 내용의 책이다. 문자를 만든 원리와 문자 사용에 대한 설명에 나타나는 이론은 현대의 세계 언어학자들이 높이 평가하고 있다. 훈민정음을 서지학적으로 살펴보면 본체가 33장, 표지가 2장으로 된 책인데, 세로 32.3cm,가로 20cm의 크기로 되어 있다. 장정은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5침안으로 된 선장본이다. 책의 크기가 당시 중국과 일본의 책들보다 크다. 이 책은 유려한 글씨로 정료하게 새긴 목판으로 인쇄되어 있다. 사용된 종이나 먹도 우수하여 한국의 15세기 출판문화의 우수함이 드러나 있다. 책장은 각기 2면이 인쇄되어 있는데, 인쇄된 1면의 크기는 세로 23.3cm, 가로 16.5cm이다. 이 책에는 구두점과 성조 표시의 구너점이 사용되어 있다. 세종이 창제한 새 글자는 오늘날까지 자형이 조금씩 변화되어 왔으나 이 책의 자형이 가장 초기의 모습이다.
    • 기획·연재
    • 연재
    2011-10-09
  • 유네스코 세계유산 알아보기(4)
    [교육연합신문=우병철 기자] 조선 왕조는 1392년에 고려 왕조가 끝난 이후 시작되어 5백 년 이상의 지속된 역사를 지녔다. 조선 왕조 시대에 있었던 총 27대 왕과 왕비 및 추촌된 왕과 왕비의 무덤을 일컬어 조선 왕릉이라 한다. ‘조선왕릉’은 우리나라의 유교적인 문화 전통이 확고하게 드러나는 문화유산이다. 특히 조선시대 때 강조되었던 ‘조상숭배’라는 유교적인 개념을 바탕으로 나라의 최고의 권위자로써 왕의 무덤을 신성화하는 전통이 형성됐다. 죽은 왕의 무덤을 웅장하게 만들고 참배함으로써 죽은 왕에 대한 숭배 뿐 만아니라, 현재 살아있는 왕의 권위까지도 더불어 강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조선왕릉은 전체 42기 가운데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하고 우리나라에 있는 40기 모두가 세계문화유산 등재되었다. (붙임 조선왕릉 분포 현황 참조) 조선왕릉 42기를 살펴보면, 폐위된 두 명의 왕의 무덤은 포함되지 않았다. (제10대 연산군, 제15대 광해군) 조선 왕족의 무덤은 능, 원, 묘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능(陵)은 추존왕, 추존왕비를 포함한 왕과 왕비의 무덤이다. 원(園)은 왕세자와 왕세자비, 그리고 왕의 사친(私親: 종실로서 임금의 자리에 오른 임금의 생가 어버이)의 무덤을 일컫는 말이다. 묘(墓)는 왕의 아들, 딸인 대군과 공주, 왕의 서자, 서녀인 군과 옹주, 왕의 첩인 후궁, 귀인 등의 무덤을 말한다. 또한 ‘조선왕릉’은 이러한 유교적 질서에 맞춰서 능역을 조성했다. (능침/성역-제향/성역과 속세가 만나는 공간-진입/속세) 왕릉의 형태는 총 여섯 가지로 나뉘는데 구분은 봉분의 형태에 따른다. (단릉, 쌍릉, 삼연릉, 동원이강릉, 동원상하봉릉, 합장릉) 조선왕릉이 퍼져있는 지역을 살펴보면 크게 서울 시내와 서울 동쪽, 서쪽으로 나눌 수 있다. 왜냐하면 왕실의 능역을 그 당시 도성인 한양을 중심으로 반경 4킬로미터 밖에서 40킬로미터 안에 두도록 하는 법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지역들을 풍수적 길지로써, 현 시대에도 서울 도심 속에서 녹지를 만끽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 되었다. 2009년 6월 30일,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조선왕릉' 40기전체는 유네스코 세계유산(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조선왕릉이 풍수지리사상을 바탕으로 조영되었으며, 엄격한 질서에 따라 내부 공간을 구성하면서도 아름다운 주변 산세와 어우러져 주목할 만한 신성한 공간을 창출했고, 봉분과 조각, 건축물들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룬 탁월한 사례로 동아시아 묘제의 중요한 발전단계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또 조선시대부터 오늘날까지 600년 이상 제례의식을 거행하면서 살아있는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독특한 공간이라는 점도 높이 평가했다. 조선왕릉의 등재로 한국의 세계유산은 문화유산 8점 자연유산 1점 등 총 9점으로 늘어났다. 세계유산적 가치‘조선왕릉’은 조선왕조의 독특한 장묘 문화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이 당시 조선왕조의 세계관, 종교관 및 자연관을 바탕으로 타 유교 문화권 왕릉들과는 다른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조선왕릉’은 5백년 이상 존속한 조선왕조를 대표하는 건축양식이다. 당대의 시대적 사상과 정치사 뿐 만아니라, 조선시대의 예술적 독창성이 뚜렷이 나타나있다. 끝으로 조선 왕릉에서 세기를 걸쳐서 지속되어 온 제례의식이다. 1910년 조선왕조가 막을 내린 이후로부터 전주 이씨 종약원으로 인해 현재까지 왕릉 제례가 지속되어오고 있다. 이 외에 국가 제례가 정기적으로 이어지고, 종묘 또한 설립되었다. 그러므로 ‘조선왕릉‘은 조선시대에 강조되었던 조상숭배의 전통문화가 이어져 올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등록기준 :세계문화유산기준 (III), (lV), (VI) (III) 독특하거나 지극히 희귀하거나 혹은 아주 오래된 유산 (IV) 가장 특징적인 사례의 건축양식으로서 중요한 문화적, 사회적, 예술적, 과학적, 기술적 혹은 산업의 발전을 대표하는 양식 (VI) 역사적 중요성이나 함축성이 현저한 사상이나 신념, 사진이나 인물과 가장 중요한 연관이 있는 유산
    • 기획·연재
    • 연재
    2011-09-26
  • [문화기획] 유네스코 세계유산 알아보기(3)
    [교육연합신문=우병철 기자] 세계유산은 전 세계 153개국이 보유하고 있는 936점(2011년 8월 현재)에 이른다. 이 가운데 문화유산이 725점, 자연유산 183점, 복합유산이 28점이다. 2011년 8월 현재 세계유산협약 가입국은 187개국이다.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 유산은 35점(2011년 8월 현재)이며, 이 가운데 문화유산이 18점, 자연유산이 17점이다. 수원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선왕인 영조의 둘째왕자로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의 화산으로 천봉하고 화산부근에 있던 읍치를 수원의 팔달산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원화성은 규장각 문신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만든 성화주략(1793년)을 지침서로 하여, 재상을 지낸 영중추부사 채제공의 총괄아래 조심태의 지휘로 1794년 1월에 착공에 들어가 1796년 9월에 완공되었다. 축성시에 거중기, 녹로 등 신기재를 특수하게 고안·사용하여 장대한 석재 등을 옮기며 쌓는데 이용했다. 수원화성 축성과 함께 부속시설물로 화성행궁, 중포사, 내포사, 사직단 등 많은 시설물을 건립하였으나 전란으로 소멸되고 현재 화성행궁의 일부인 낙남헌만 남아있다. 수원화성은 축조이후 일제의 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성곽의 일부가 파손·손실되었으나 1975~1979년까지 축성직후 발간된 "화성성역의 궤"에 의거하여 대부분 축성 당시 모습대로 보수·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성의 둘레는 5,744m, 면적은 130ha로 동쪽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평산성의 형태로 성의 시설물은 문루 4, 수문 2, 공심돈 3, 장대 2, 노대 2, 포(鋪)루 5, 포(咆)루 5, 각루 4, 암문 5, 봉돈 1, 적대 4, 치성 9, 은구 2등 총 48개의 시설물로 일곽을 이루고 있으나 이 중 수해와 전란으로 7개 시설물(수문 1, 공심돈 1, 암문 1, 적대 2, 은구 2)이 소멸되고 4개 시설물이 현존하고 있다. 수원화성은 축성시의 성곽이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북수문(화홍문)을 통해 흐르던 수원천이 현재에도 그대로 흐르고 있고, 팔달문과 장안문, 화성행궁과 창룡문을 잇는 가로망이 현재에도 도시 내부 가로망 구성의 주요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 등 200년전 성의 골격이 그대로 현존하고 있다. 축성의 동기가 군사적 목적보다는 정치·경제적 측면과 부모에 대한 효심으로 성곽자체가 '효' 사상이라는 동양의 철학을 담고 있어 문화적 가치외에 정신적, 철학적 가치를 가지는 성으로 이와 관련된 문화재가 잘 보존되어 있다. 성곽의 전돌, 건조물의 기와 등이 독특한 방법으로 제작되어 있어 현재의 기술로 이를 재현하기 어려워 보수시 문제점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계속 연구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수원화성은 중국, 일본 등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평산성의 형태로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시설의 기능이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동양 성곽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성벽은 외측만 쌓아올리고 내측은 자연지세를 이용해 흙을 돋우어 메우는 외축내탁의 축성술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성곽을 만들었으며, 또한 수원화성은 철학적 논쟁 대신에 백성의 현실생활속에서 학문의 실천과제를 찾으려고 노력한 실학사상의 영향으로 벽돌과 돌의 교축, 현안·누조의 고안, 거중기의 발명, 목재와 벽돌의 조화를 이룬 축성방법 등은 동양성곽 축성술의 결정체로서 희대의 수작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당대학자들이 충분한 연구와 치밀한 계획에 의해 동서양 축성술을 집약하여 축성하였기 때문에 그 건축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축성 후 1801년에 발간된 "화성성역의궤"에는 축성계획, 제도, 법식뿐 아니라 동원된 인력의 인적사항, 재료의 출처 및 용도, 예산 및 임금계산, 시공기계, 재료가공법, 공사일지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성곽축성 등 건축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기록으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수원화성은 사적 제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팔달문(보물 제402호), 화서문 (보물 제403호), 장안문, 공심돈 등이 있다. 수원화성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세계유산적 가치18세기에 완공된 짧은 역사의 유산이지만 동서양의 군사시설이론을 잘 배합시킨 독특한 성으로서 방어적 기능이 뛰어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약 6km에 달하는 성벽안에는 4개의 성문이 있으며 모든 건조물이 각기 모양과 디자인이 다른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등록기준 :세계문화유산기준 (Ⅱ), (Ⅲ) (Ⅱ) 일정한 시간에 걸쳐 혹은 세계의 한 문화권내에서 건축, 기념물조각, 정원 및 조경디자인, 관련예술 또는 인간정주 등의 결과로서 일어난 발전사항들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유산 (Ⅲ) 독특하거나 지극히 희귀하거나 혹은 아주 오래된 유산
    • 기획·연재
    • 연재
    2011-09-22
  • [문화기획] 유네스코 세계유산 알아보기(2)
    [교육연합신문=우병철 기자] 유산이란 우리가 선조로부터 물려받아 오늘날 그 속에 살고 있으며, 앞으로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자산이다. 자연유산과 문화유산 모두 다른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우리들의 삶과 영감의 원천이다. 유네스코는 이러한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자연유산 및 문화유산들을 발굴 및 보호, 보존하고자 1972년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 보호 협약을 채택했다. 해인사 장경판전은 13세기에 만들어진 세계적 문화 유산인 고려 대장경판 8만여장을 보존하는 보고로서 해인사의 현존 건물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장경판전은 정면 15칸이나 되는 큰 규모의 두 건물을 남북으로 나란히 배치하였다. 장경판전 남쪽의 건물을 수다라장, 북쪽의 건물을 법보전이라 하며 동쪽과 서쪽에 작은 규모의 동·서사간판전이 있다 건물을 간결한 방식으로 처리하여 판전으로서 필요로 하는 기능만을 충족시켰을뿐 장식적 의장을 하지 않았으며, 전·후면 창호의 위치와 크기가 서로 다르다. 통풍의 원활, 방습의 효과, 실내 적정 온도의 유지, 판가의 진열 장치 등이 매우 과학적이며, 합리적으로 되어 있는 점은 대장경판이 지금까지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평가받고 있다. 장경판전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조선 세조 3년(1457) 어명으로 판전 40여 칸을 중창하였고 성종 19년(1488) 학조대사가 왕실의 후원으로 30칸의 대장경 경각을 중건한 뒤 보안당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광해군 14년(1622)에 수다라장, 인조 2년(1624)에는 법보전을 중수했다. 장경판전은 가야산 중턱의 해인사에 위치한 관계로 서기 1488년 조선 초기에 건립된 후 한번도 화재나 전란 등의 피해를 입지 않았으며, 보존 가치가 탁월한 팔만대장경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장경판전은 세계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며, 해인사의 건축기법은 조선 초기의 전통적인 목조건축 양식을 보이는데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은 물론, 건물내 적당한 환기와 온도·습도조절 등의 기능을 자연적으로 해결할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 판전에는 81,258장의 대장경판이 보관되어 있으며, 글자 수는 무려 5천2백만자로 추정되는데 이들 글자 하나 하나가 오자·탈자없이 모두 고르고 정밀하다는 점에서 그 보존가치가 매우 크며, 현존 대장경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내용의 완벽함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는 문화재이다. 대장경판은 고려 고종때 대장도감에서 새긴 목판이다. 대장경은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으로서 불교경전의 총서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해인사 대장경판은 고려시대에 판각되었기 때문에 고려대장경이라 하며 또한 판수가 8만여 판에 이르고 8만4천 법문을 수록했다 하여 8만대장경이라고도 한다. 고려 현종(1009~1031, 재위) 때 새긴 초조대장경은 몽고의 침입에 불타버려 다시 새겼다하여 재조대장경이라 일컫기도 한다. 이 대장경판은 초조대장경이 불타버리자 고려 고종 19년(1232)에 몽고의 침입을 불력으로 막기위하여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대장경판을 다시 조각하기 시작했다. 대장경판은 당초 경상남도 남해에서 판각하여 강화도 대장경판당으로 옮기고 보관하였으나 고려말 왜구의 빈번한 침범으로 조선 태조 때인 1398년 현재의 해인사 장경판전에 옮겨 보관 중이다. 이 대장경판은 개태사의 승통인 수기(守其)가 북송관판과 거란본 및 우리의 초조대장경을 대조하여 오류를 바로잡은 대장경이다. 이규보가 지은 '대장각판군신기고문'에 보면 현종 2년(1011)에 거란병의 침입때 대장경을 새겨 거란병이 물러갔음을 상고하고, 몽고의 침입으로 이 대장경판이 불타버려 다시 새기니 몽고의 침입을 불력으로 물리치게 하여 달라는 염원을 기록하고 있다. 대장경판은 고종 24년(1237)부터 35년(1248)까지 12년 동안 판각하였는데 준비기간을 합치면 모두 16년이란 기간이 걸려 완성 된 것이다. 해인사 동·서사간판전에 봉안되어 있는 불교 경전은 국가에서 새긴 고려대장 경판과는 달리, 고려시대에 사찰에서 새긴 고려각판이다. 팔만대장경은 불교의 경·율·논 삼장을 집대성하였기에 세계불교연구의 귀중한 문헌으로, 이 대장경은 일본이 신수대장경을 만들때 표준으로 삼았으며, 중국에도 역수입되고, 영국·미국·프랑스·독일 등 서구 선진국에도 전해져 세계불교 연구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해인사 장경판전은 국보 제52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서는 대장경판 81,258판(국보 제32호), 고려각판 2,725판(국보 제206호), 고려각판 110판(보물 제734호)이 있으며,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세계유산적 가치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오랜 역사와 내용의 완벽함, 그리고 고도로 정교한 인쇄술의 극치를 엿볼 수 있는 세계 불교경전 중 가장 중요하고 완벽한 경전이며, 장경판전은 대장경의 부식을 방지하고 온전한 보관을 위해 15세기경에 건축된 건축물로 자연환경을 최대한 이용한 보존과학 소산물로 높이 평가되고있다. 등록기준 : 세계문화유산기준 (Ⅳ), (Ⅵ) (Ⅳ) 가장 특징적인 사례의 건축양식으로서 중요한 문화적, 사회적, 예술적, 과학적, 기술적 혹은 산업의 발전을 대표하는 양식(Ⅵ) 역사적 중요성이나 함축성이 현저한 사상이나 신념, 사진이나 인물과 가장 중요한 연관이 있는 유산
    • 기획·연재
    • 연재
    2011-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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