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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대학 간판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교육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교육은 국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다.” 이 말의 배경처럼 우리에게는 전통적으로 천 년을 내다본다면 나무를 심고, 백 년을 내다본다면 사람을 키우라는 옛말이 있다. 교육은 국가의 미래를 만드는 가장 위대한 투자이자 과업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교육은 사람을 키우기보다 경쟁을 키우고, 꿈을 키우기보다 불안을 키우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새벽의 어둠을 뚫고 학원으로 향하는 학생들, 밤늦게까지 문제집과 씨름하는 아이들, 자녀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미루는 부모들…. 이 모습은 이제 대한민국의 익숙하고 관례적인 풍경이 되었다. 부모의 사랑은 아름답고 거룩하지만, 그 사랑이 사교육 시장의 땔감이 되는 현실은 결코 아름답거나 미덥지 않다. 교육부와 통계청의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교육비는 해마다 천문학적으로 증가해 이미 29조 2000억에 이르렀다. 그래서 부모의 ‘등골 브레이커’라 불리고 있다, 교육은 점점 더 가정의 경제력에 영향을 받는 영역이 되어가고 있다. 교육이 희망의 사다리가 아니라 부모의 지갑 크기를 보여 주는 경쟁이 된다면, 그것은 교육의 위기이자 또한 국가 경제의 위기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하나의 길만을 ‘정답’이라고 믿어 왔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출세하고 성공한다는 믿음, 대학 졸업장이 인생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통념은 우리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해 왔다. 하지만 시대는 이미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신은 어느 대학을 나왔습니까?”가 아니라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로 전환되고 있다. 여기에는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혁명의 시대가 학벌보다 창의성, 암기보다 문제 해결 능력, 졸업장보다 실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이 먼저 보여 주고 있다. 30여 년 전 삼성은 고졸자에게 입사의 문을 열러 놓은 데 이어 최근 국민이 선호하는 대기업, SK그룹이 역량 중심의 채용을 확대하며 ‘4년제 대학 학사 학위’를 입사 조건에서 폐기함으로써 대학 졸업 여부보다 실제 능력을 중요하게 평가하는 방향으로 채용 문화를 바꾸었다. 해외로 시선을 돌리면 오래전부터 독일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원화 직업교육제도를 통해 기술자를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키워 왔고, 세계 여러 기업들도 학위보다 기술과 경험을 인재 선발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 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는 “교육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라는 말이 널리 회자되어 왔다. 여기서의 교육은 시험 점수를 높이는 교육이 아니라 인간의 가능성을 깨우는 교육이다. 대한민국에도 수많은 젊은 장인들이 있다. 특성화고 실습실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 용접 기술 하나로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기술자, 농업과 정보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산업을 만드는 청년, 대학 졸업장이 없어도 세계를 무대로 창업하는 젊은이들… 매년 고교 졸업자의 70% 정도가 일방통행로의 대학을 향한 병목현상을 심하게 겪고 있는 우리는 국가가 먼저 국민 의식을 바꾸는 ‘학벌문화 개선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정부는 능력 중심 채용을 더욱 확대하고, 고졸 기술인과 전문인력에게 실질적인 성장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공공기관은 학벌보다 직무 능력을 평가하는 인사제도를 더욱 공고히 하고, 기업은 학력이 아니라 성과와 역량으로 승진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학교는 대학 진학률보다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얼마나 행복하게 찾아가는지를 교육의 성과로 평가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교육 선진국이 되는 날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년이 자신의 기술과 열정으로 당당하게 사회에 나서고, 그 땀과 실력을 존중받는 날이다. 그날에는 부모가 불안 때문에 학원을 찾지 않을 것이고, 학생은 점수가 아니라 꿈을 이야기할 것이다. 또한 기업은 학벌이 아니라 능력을 경쟁력 삼고, 국가는 누구나 다시 도전할 기회를 주는 사회가 될 것이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숭고한 유산은 화려한 대학 간판이 아니다. "네가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 길에서 정직하게 최선을 다한다면 너는 이미 존귀한 사람이다"라는 믿음을 사회가 함께 품는 것이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학벌 공화국’을 넘어 ‘꿈의 공화국’으로 나갈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이를 ‘진짜 교육’이자, 교육개혁이라 부르는 국가의 대전환기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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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연필과 스마트폰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초등학교 때 크레파스 72색짜리를 선물 받은 기억이 생생하다. 머리맡에 놓고서 잠을 설쳤다.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가난했지만 문구류에 대한 관심과 욕심, 특히 필기구에 대한 관심과 욕심이 아주 컸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문구류에 대한 물욕은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도구를 발명한 역사이면서 기억을 보존하려는 노력의 역사이다. 필기구의 역사는 망각에 저항하려는 인간의 오랜 분투라고 생각한다. 점토판 문자, 파피루스 위 갈대 펜 글을 지나서 동물의 깃털을 다듬어 만든 깃털 펜이 유럽에서 지식과 권위를 기록하는 도구로 쓰였다. 필기구의 속도만큼 인간의 머리도 점차 빨라졌지만 자신의 내면에 대해서는 얼마나 생각을 많이 했을까. 16세기 유럽에서는 흑연을 나무에 끼워 쓰는 방식의 연필이 등장했다. 18세기 말 프랑스의 니콜라자크 콩테는 흑연과 점토를 섞어 굽는 연필 제조법을 개발했다. 19세기에는 만년필이 발전했고, 20세기에는 볼펜이 일상으로 들어왔다. 점성이 높은 잉크와 작은 구슬 모양의 펜촉을 결합한 볼펜은 잉크가 번지는 문제를 줄이고 보다 편리한 필기를 가능하게 했다. 1960년대에 태어난 나에게 필기구 변화는 역사 연표를 보는 듯한 기분이 있다. 어린 시절 연필을 깎고 공책에 글씨를 쓰던 기억에서 출발해 볼펜으로 시험 답안을 채웠다. 교직에서는 시험지 출제를 철필로 하기도 했다. 이후 컴퓨터 자판과 스마트폰이 손에 익숙해졌다. 인류가 오랜 동안 발전시킨 기록 도구들이 한 사람의 생애 안에서 압축적으로 바뀐 셈이다. 도구가 바뀌면서 쓰는 행위의 의미도 달라졌다. 연필은 틀린 것을 지우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볼펜은 한번 남긴 흔적에 책임을 져야 한다. 컴퓨터는 수정과 편집을 자유롭게 했고, 스마트폰은 기록을 시간과 장소의 제약에서 풀어 놓았다. 컴퓨터로 글을 쓰면서 의문이 생긴다. 기록하는 능력이 커질수록 인간의 기억과 사유도 깊어졌을까. 기록의 양과 생각의 깊이는 비례하지 않는다. 이제 인공지능은 질문에 답하고, 글을 쓰고, 인간의 생각을 문장으로 정리한다. 미래의 필기구는 더 이상 손에 쥐는 물건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목소리를 듣고 생각을 정리하며, 머릿속 구상을 그림과 문서로 바꾸는 지능형 도구가 등장할 것이다. 인간은 더 편리하게 쓰기 위해 수많은 필기구를 발명했지만 정작 자신을 이해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문장을 써 왔을까. 상대의 말을 들으며 천천히 적다 보면 말의 속도와 표정, 잠시 멈추는 침묵까지 마음에 들어왔다. 적는다는 것은 기억하는 일이었고, 기억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함부로 잊지 않는 일이었다. 젊은 날에는 무엇을 이루고 어떻게 인정받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기록했다. 삶의 후반에 접어든 지금은 무엇을 더 많이 쓸 것인가 보다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비워야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삶의 아픔을 통과하지 않은 문장이 고통받는 사람을 얼마나 깊이 위로할 수 있을까.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진로융합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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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의 고용정책 칼럼] 사람을 위한 기업이 미래를 만든다
[교육연합신문=이수연 칼럼] 기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일까?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것,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는 것 모두 중요한 가치이다. 그러나 오늘날 기업에게는 한 가지 역할이 더 요구되고 있다. 바로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며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우리 사회는 청년 일자리, 기업의 인력난, 취약계층의 고용, 지역 간 교육과 일자리 격차 등 다양한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정부나 기업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공공과 민간, 지역사회가 함께 협력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사회적기업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사회적기업은 단순히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이 아니라, 기업 활동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함께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반 기업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사회적기업의 가치는 '사회적기업'이라는 인증 자체에 있지 않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기회를 만들었는지, 얼마나 많은 기업과 지역사회를 연결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지속 가능한 변화를 만들어 냈는지가 더 중요하다. 우리가 만나는 참여자들은 모두 다른 출발선에 서 있다. 첫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도 있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중장년도 있으며, 경력단절여성, 북한이탈주민, 장애인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기업 역시 인재 확보와 조직문화 개선, 교육훈련 등 저마다 다른 고민을 안고 있다. 사회적기업이 해야 할 일은 이들을 각각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기업과 사람, 정책과 현장을 연결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교육이 새로운 시작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취업이 삶의 전환점이 되며, 기업에게는 필요한 인재를 만나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연결이 쌓일수록 지역사회는 더욱 건강한 성장 기반을 갖추게 된다. (주)채움에이치알디 역시 이러한 사회적기업의 철학을 바탕으로 사람과 기업,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국민취업지원제도와 청년도전지원사업, 기업탐방형 일경험, 채용박람회, 기업교육, 평생교육 등 사업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그 목적은 하나이다. 사람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며, 지역사회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연결을 만드는 것이다. 특히, 현장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사회적 가치는 거창한 사업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 사람의 취업을 돕고, 한 기업의 인재 채용을 지원하며, 한 번의 교육을 통해 누군가가 자신감을 회복하는 작은 변화들이 모여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 앞으로 지역사회가 더욱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공공과 민간, 교육기관과 기업이 더욱 긴밀하게 협력하는 생태계가 필요하다. 사회적기업은 그 중심에서 서로의 전문성을 연결하고, 정책이 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것이 지속 가능한 지역발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성장은 사회의 성장과 함께할 때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사람의 변화를 믿고 지역사회와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사회적기업이 존재하는 이유이며 (주)채움에이치알디가 앞으로도 꾸준히 실천해 나갈 가치이다. 다음 회차에서는 지역과 기업, 공공이 함께 만드는 협력 네트워크와 상생의 고용 생태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 이수연 ◇ 인천대학교 경영대학원(MBA) ◇ (주)채움HRD 대표이사 ◇ 고용·교육정책 및 HRD 분야 전문가 ◇ 인천지방고용노동위원회 사용자위원 ◇ 인천출입국·외국인청 사회통합협의위원 ◇ 인천해양경찰서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 인천발달장애인훈련센터 전문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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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가수 지드래곤에게서 배우는 ‘남다름’의 힘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최근 베트남의 한 천재 소녀가 우리 교육에 던진 시사점은 매우 깊게 다가선다. 호앙 흐엉 지앙 학생은 2026년 베트남 고교 졸업시험 A01 계열에서 30점 만점에 29.75점을 받아 전국 공동 수석에 올랐고, SAT에서도 만점을 받았다. 세계의 전통적인 명문대학들을 비롯해 서울대의 입학 허가를 받았으나 최종 KAIST라는 선택지를 택했다. 9월 학기에 입학하여 놀랍게 디자인된 KAIST 캠퍼스 적응에 익숙해지고 과학 연구에 의지를 불태우는 가운데 그가 주목한 인물 한 사람이 뜻밖에도 초빙교수인 가수 지드래곤이었음을 각종 언론은 보도한 바 있다. 지앙 학생은 지드래곤에게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하는 도전 정신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이 한마디는 우리에게 묻는다. “과학 영재가 가수에게서 배울 것이 있는가?”, “무엇을 배우고자 하는가?”… 매우 의아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답은 간단하다. 창의성에는 전공의 국경이 없기 때문이다. 지드래곤은 2024년 KAIST 기계공학과 초빙교수로 임명됐다. KAIST는 그의 대중문화 경험과 창작 역량을 과학기술과 문화산업의 융합에 활용하고자 했다. 이후 KAIST와 함께 AI·미디어 기술을 활용한 작업을 진행했고, 2025년에는 미디어아트와 우주 연구를 결합한 음원 송출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과학의 언어로 예술을 상상하고, 예술의 방식으로 과학을 바라본 사례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청소년 교육이 주목해야 할 것은 ‘지드래곤’이라는 유명인의 이름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한 사람이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하듯이 남들이 하니까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무엇을 다르게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태도다. 이는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이라는 말로 치환하여 이 시대 우리 교육의 중요한 화두로 다시 소환할 필요가 있다. 무리 지은 펭귄들이 얼음 끝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물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위험이 있을 수도 있다. 모두가 머뭇거리는 순간 한 마리가 먼저 뛰어든다. 그 한 번의 도약이 무리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교육에서 퍼스트 펭귄은 어떤 학생인가? 정답을 가장 빨리 맞히는 학생이 아니라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학생이다. 실패하지 않는 학생이 아니라 실패를 새로운 배움으로 바꾸는 학생이다. 남보다 앞서가는 학생이 아니라 남들이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을 찾아가는 학생이라 할 것이다. KAIST가 2026학년도 학사과정에서 ‘창의도전전형’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이런 시대적 흐름과 맞닿아 있다. KAIST는 해당 전형을 통해 과학영재를 선발하고 있으며, 대학 입시 자체에서도 기존의 성취만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잠재력을 바라보는 흐름을 선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흔히 오해하기 쉬운 것은 퍼스트 펭귄 교육이 무모함을 가르치는 것으로 왜곡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용기와 무모함은 다르다. 지드래곤에게서 청소년이 배워야 할 것은 그가 입는 옷도, 부르는 노래도, 얻은 명성도 아니다. 지드래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는 법이다. 누군가는 음악으로 자기 길을 만들고, 누군가는 과학으로, 누군가는 문학으로, 누군가는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분야가 아니라 태도다. “남들이 이렇게 하니까 나도 이렇게 한다”가 아니라, “나는 이것을 어떻게 다르게 해볼 수 있을까?”라고 묻는 태도다. 베트남의 한 천재 소녀가 지드래곤에게서 발견한 것은 결국 유명인의 화려함이 아니었다.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는 인간의 자세였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남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 방법인가, 아니면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방법인가? 교육은 아이에게 완성된 지도를 건네주는 일이 아니다. 아직 길이 그려지지 않은 백지 한 장을 건네고, 그 위에 자기만의 길을 그릴 용기를 갖게 하는 일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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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의 고용정책 칼럼] 함께 일할 때 더 큰 가능성이 열린다
[교육연합신문=이수연 칼럼] 기업의 경쟁력은 뛰어난 기술이나 자본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경험과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때 조직은 더욱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조직문화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중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 고용의 중요성을 꾸준히 이야기해 왔다. 그러나 장애인 고용은 단순히 의무를 이행하는 차원을 넘어,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라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사람을 장애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역량과 가능성으로 바라볼 때 기업과 사회는 함께 성장할 수 있다. 현장에서 기업들을 만나 보면 장애인 고용에 대한 의지는 있지만 실제 채용과 근무환경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채용 이후의 직무 배치, 조직 구성원의 이해, 소통 방식 등은 제도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포용적인 조직문화는 교육과 이해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공공기관과 협력하여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교육, 슈퍼바이저 역량강화 교육, 대기업 장애인 고용 담당자 역량강화 교육 등 다양한 교육을 운영하며 장애인 고용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해 왔다. 단순히 법과 제도를 설명하는 교육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례를 공유하고, 조직이 함께 고민하며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실무 중심의 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ESG 경영이 기업의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으면서 장애인 고용 역시 사회적 책임을 넘어 지속 가능한 경영의 핵심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조직은 더 넓은 시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구성원들이 협력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장애인 고용은 특정 계층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과정인 것이다. 포용적인 일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장애의 유무와 관계없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교육은 이러한 변화를 시작하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며, 조직이 함께 성장하는 기반이 된다. 앞으로의 고용정책은 채용 숫자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드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다양한 역량이 발휘되는 조직이 결국 더 큰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좋은 일터는 모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곳이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의 가능성을 믿는 조직은 더 큰 혁신을 만들어 낸다. 사람 중심의 교육과 포용적 조직문화를 통해 모두가 함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현장에서 실천하고 있는 HRD의 또 다른 가치이다. 다음 회차에서는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사회적기업의 역할과 지역 협력 네트워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 이수연 ◇ 인천대학교 경영대학원(MBA) ◇ (주)채움HRD 대표이사 ◇ 고용·교육정책 및 HRD 분야 전문가 ◇ 인천지방고용노동위원회 사용자위원 ◇ 인천출입국·외국인청 사회통합협의위원 ◇ 인천해양경찰서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 인천발달장애인훈련센터 전문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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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슴베 사랑
[교육연합신문=구본희詩選] 슴베 사랑 나무 자루 속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어둠 칼날의 뿌리가 산다. 번득이는 날 아래 깊숙이 몸을 감춘 채 칼과 자루 사이 다리를 놓는다. 자루가 부서지면 칼날은 제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슴베는 허공에 홀로 남는다. 서로 다름을 품어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 비로소 한 몸으로 산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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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사유하는 인간을 위한 학교 교육의 길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 389쪽에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철학자 닉 보스트롬이 출간한 『슈퍼인텔리전스』에서 괴테의 ‘마법사의 제자’를 떠올리게 하는 사고 실험을 통해 초지능 컴퓨터의 위험을 알려주고 있다. 클립공장에서 초지능 컴퓨터 한 대를 구입하고 컴퓨터에게 클립을 최대한 많이 생산하라는 간단한 업무를 지시한다. 그러자 컴퓨터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구를 정복하고 모든 인간을 죽이고 탐사대를 보내 다른 행성들까지 모조리 점령하더니 결국 그 어마어마한 자원을 사용해 은하계 전체를 클립공장으로 가득 채운다. 컴퓨터는 시킨 일을 정확히 수행했다. 컴퓨터의 문제는 사악하다는 것이 아니라 사유가 없는 특별히 강력한 실행력을 가진 존재라는 데 있다. ‘이용자 참여를 극대화하라’는 목표를 설정한 유튜브는 분노와 정치적 편향을 부풀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가짜뉴스로 블로거는 돈을 벌고 유튜브 회사는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각국에서 가짜뉴스에 기반을 둔 음모론과 극단적 주장이 세력을 확장하여 상대방을 근거 없이 공격했다. 교육이 경제 논리와 성과주의에만 종속되면 안 되는 이유이다. 교육이 인간다워야 한다는 기존 명제에서 벗어나면 교육은 인간을 도구화하게 된다. 한국 교육정책은 학생을 ‘사유하는 인간’이 아닌 ‘정답을 맞히는 기계’로 길러왔다. 정부의 혁신은 입시 제도 개편에 불과할 뿐이었다. 학생은 점수와 등급에 갇혀 있고 교사는 행정과 입시에 짓눌려 있다. 정답 찾기에 매몰된 한국의 교실에는 미래가 없다. 사유의 문을 닫고 정해진 답만으로 달리게 하는 교육은 시효가 다한 교육이다. 기계를 효율적으로 많이 만드는 것은 이제 로봇공장이나 컴퓨터 공장에서 하면 된다. 학교는 생각하는 인간을 키우고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인간’을 만들어 가야 한다. 침묵을 강요하는 교실에서 사유는 자랄 수 없다. 질문하는 교실로 만들어야 한다. 질문을 던지고 대안을 모색하는 경험을 학생에게 많이 주어야 한다. 사유는 자유다. 사유는 창조의 근원이다. 답습이 아닌 새로운 길을 펼쳐가는 힘은 깊은 성찰에서 비롯된다. 사유는 창의적 미래를 열어가는 동력이다. 사유 없는 교육과 사유 없는 사회는 위험하다. 사유 없는 교육은 사유 없는 사회를 만들어 내고 있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개인은 여론에 휘둘리고 정책 권력의 수동적 소비자가 될 뿐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창의와 혁신을 외치지만 사유 없는 창의는 공허하다. 질문을 억누르고 정답만을 강요하는 지금의 교실은 그래서 사유하는 공간으로 변화해야 한다. ‘정답 공장’이라는 교실의 역할에서 벗어나야 한다. 높은 시험점수로 일류대학에 진학시키는 교육이 아닌 성찰하며 자신의 삶을 주도하고 사유하는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교육이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학교 교육의 본분이다. 교실을 사유와 성찰의 공간으로 되돌려주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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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사유하는 인간을 위한 학교 교육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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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매미탈
-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매미탈 은행나무 밑둥에 가벼운 화석 하나, 탯줄처럼 남았다. 어두운 땅속에서 긴 시간을 견디며 희망 품고 나온 몸. 고요한 번뇌 끝에 자신을 찾다가 스스로를 버렸다. 목소리까지 벗은 보잘것없는 몸이지만, 외롭지 않다. 햇빛도, 바람도, 새소리 머물다 간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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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매미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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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경계를 넘는 붉은 꽃 - 석산(상사화)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잇는 이 꽃은 그저 아름다움을 넘어, 깊은 의미와 전통을 지닌 존재로 우리에게 삶의 본질을 되새기게 한다.” 꽃이 피면 잎이 없고, 잎이 돋으면 꽃이 없다. 석산은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운명을 안고 핀다. 삶과 죽음, 시작과 끝, 존재와 소멸이 한 몸에 깃들어 있다. 붉게 타오르는 꽃잎은 강렬하지만, 그 안에는 이루어지지 않는 애틋함이 깃들어 있다. 하나로 이어질 수 없는 인연, 그러나 끊어질 수도 없는 존재. 석산은 죽음의 문턱에서 피어난다. 무덤가와 절벽, 길 끝자락에서 불길처럼 타오른다. 그 붉은 빛은 소멸을 노래하며, 동시에 부활을 속삭인다. 열매를 맺지 않는 꽃.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생명. 땅속 깊이 묻힌 알뿌리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싹을 틔운다. 죽음 속에서도 끝나지 않는 순환이 있다. 석산은 단절을 상징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연결을 암시하는가? 무덤가에 피어난 붉은 꽃은 떠난 자와 남은 자가 함께 숨 쉬는 자리.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을 이어가는 또 다른 방식이다. 석산의 붉은 빛은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석산은 우리에게 묻는다. 이별을 넘어서, 다시 피어날 준비가 되었는가? 슬픔이 삶을 멈추게 할 것인가, 새로운 시작의 힘이 될 것인가? 석산은 말없이 보여준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생명은 다른 모습으로 이어진다고. 무덤에서 자궁으로 뿌리내린다. 붉은 빛 속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가?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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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경계를 넘는 붉은 꽃 - 석산(상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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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반공일을 아시나요
-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반공일을 아시나요 반공일을 아시나요. 예전엔, 토요일 전날이면 괜히 기분 좋던 그런 시절이 있었지요. 지금은 그 반공일이 온공일이 되었지만, 설렘은 반으로 줄었지요. 이틀 쉬는 게 당연해진 탓이겠지요. 요즘은 주 4.5일 근무제도 슬며시 고개를 든다지요. 그 젊은 날, 바쁨 속에 숨어 있던 작은 행복 ㅡ 반공일이, 코시오스코 카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속에서 문득, 미소처럼 떠오릅니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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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반공일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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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공부에 자신감을 갖게 하는 ‘작은 성공 경험’의 힘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공부를 어려워하는 요즘 학생들 오늘날 많은 학생들이 공부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능력 부족이 아니라 자신감 부족이다. 많은 학생들이 ‘나는 공부를 못해’, ‘나는 머리가 나빠’, ‘나는 해도 안 돼’라는 말을 자주 말하는 것은 언뜻 단순한 푸념처럼 들리지만, 그 이면에는 반복된 실패와 좌절의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공부에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이 가장 절실하다. 이를 위해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작은 성공 경험’을 반복적으로 쌓게 해주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에 몇 가지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 작은 성공 경험을 쌓게 하는 방법들 첫째, 목표를 작게 나누면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중간고사 1등급 받기’, ‘전 과목 90점 이상’과 같은 크고 추상적인 목표를 세운다. 이는 아마 “목표는 클수록 좋다”는 말에서 온 오해인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목표는 도달하기 어렵고, 실패했을 때 좌절감만 더 커진다. 따라서 교사나 부모, 혹은 학생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목표를 작고 구체적으로 쪼개는 것이다. 예컨대, “오늘 수학 문제 5개만 정확히 풀기”, “영어 단어 10개 외우고 스스로 시험 보기”처럼 당장 실행 가능한 단위로 나누면 성취 경험이 생기고, 이는 나도 할 수 있다는 감정을 자극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즉각적인 피드백과 긍정적 강화가 필요하다. 작은 목표를 달성한 후에는 반드시 즉각적인 피드백과 긍정적인 강화가 필요하다. 이는 뇌가 성공을 학습하고, 더 큰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뇌 과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여기에는 “잘했어, 오늘 목표 달성했네.”, “이 문제는 너 혼자 힘으로 풀었잖아” 같은 짧은 칭찬 멘트가 아이의 내면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노력과 과정을 칭찬하는 것이다. 이는 학생이 성적이라는 외부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성장을 느끼는 데 집중하게 만들 수 있다. 셋째, 나만의 공부 방식 찾기다.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공부법을 적용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말하면서 외우는 것이 효과적이고, 누군가는 글로 써야 기억이 잘 된다. 누적된 실패 경험을 지닌 학생일수록 “나는 이런 식으로 해봤자 안 돼”라는 인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학생이 다양한 방법을 실험하고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만의 학습 루틴이 생기고, 그것이 습관화되면 자기 효능감이 자연스럽게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비교보다 자기 성장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학생들이 자신감을 잃는 가장 흔한 이유 중 하나는 타인과의 ‘비교’다. 특히 요즘은 SNS나 학교 내 성적 시스템 등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실시간으로 체감하게 되며, 이로 인해 무기력감이 더 심해진다. 따라서 학부모나 교사는 학생이 ‘어제의 나’와 비교하며 스스로 성장을 인식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전에는 이 개념을 이해 못 했는데 이제는 설명할 수 있다”와 같은 피드백이 반복되면, 학생은 공부를 통해 발전하는 자신을 체감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공부에 대한 자신감도 상승시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배울 수 있다는 자신감 심어주기 결국 공부에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은 대단히 거창하거나 복잡한 방법이 아니다. 핵심은 작은 성공의 반복, 긍정적인 피드백, 개인화된 학습 전략, 그리고 비교가 아닌 성장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학생의 마음속에 ‘나도 할 수 있다’는 신념을 심어주고, 장기적으로 학습에 대한 자발성과 의욕을 이끌어낼 수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교육의 본질은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배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어 자기 주도 학습능력을 고양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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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공부에 자신감을 갖게 하는 ‘작은 성공 경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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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폐쇄적 시험의 나라에서 벗어나 성장하는 배움의 나라로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지금의 입시제도 개선이 한국 교육과 사회를 바꾸는 첫 단추이다. 성장보다 족쇄가 되는 한국의 대학 입시 구조를 조만간 걷어치워야 한다. 점수 경쟁의 굴레를 끊고 과정 중심의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의 입시는 고쳐 쓰려고 하지 말고 폐기하고 다시 세워야 한다.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옳지 않은 것은? [보기]에서 올바르게 고른 것은?’ 이런 질문을 6년 이상 받고 그런 시험 결과로 줄 세우는 교육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이런 교육으로 미래 역량을 갖춘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한국 중등학교 교육위기의 뿌리는 입시 중심 패러다임이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모두가 입시 공룡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이 패러다임은 매우 견고하다. 이 구조를 해체하지 않으면 그 어떤 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 입시의 굴레를 끊고 성장 중심 교육으로 전환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다음 세대를 위한 진정한 투자이자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입시의 굴레를 끊어야 한국 교육이 산다.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대학 진학을 객관식 위주의 일회성 수능시험 점수에 맡기는 현재 구조가 사회적 불평등을 확대하고 있다. AI 기반 평가 시스템을 활용해 탐구 과정, 프로젝트 참여, 사회봉사 경험까지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기록하여 공정성과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 국가가 직접 ‘공교육형 AI 학습 플랫폼’을 운영하여 무상으로 수준별 학습 콘텐츠를 활용하게 해야 한다. 고액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도 학습 격차를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서열, 점수, 사교육의 삼중고를 넘어서야 미래 세대를 위한 희망이 있다. 뗏목은 강을 건너면 버려야 한다. 대학 입시는 단일 시험이 아니라 포트폴리오 기반 평가로 전환해야 한다. 학생이 학교에서 경험한 탐구, 프로젝트, 사회적 기여가 입시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점수 경쟁이 아닌 성장의 가능성을 보는 교육 방식이어야 한다. 학벌의 사슬도 끊어야 한다. 입시 문제의 핵심에 ‘대학 서열’이 있다. 모든 교육과정이 그 목표에 종속된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대학 간 격차를 줄이고, 지역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인재 선발 방식을 학벌이 아닌 방법으로 대신해야 한다. 사회도 대학 졸업장이 아니라 역량 기반 채용을 확산시켜야 한다. 인재 선발은 프로젝트와 경험 중심의 평가 시스템을 정착시켜서 ‘어느 대학 출신인가’보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 한국 교육의 미래를 살리는 길은 분명하다. 입시의 굴레에서 벗어나 ‘성장 중심’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미래 세대를 위한 진정한 투자이며, 우리 사회가 선택해야 할 용기다. 대학 서열 해체, 평가의 다원화, 공교육 강화, 사회적 채용 혁신. 이러한 혁신이 함께 실천되어야 한다. 잘못을 분명히 알면서도 혁신을 거부하는 사회는 미래를 포기하는 사회다. 입시 철폐가 공허한 구호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그것만이 미래 세대에게 ‘시험이 아닌 삶을 위한 교육’을 돌려줄 수 있는 길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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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폐쇄적 시험의 나라에서 벗어나 성장하는 배움의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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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흔들리는 갈대, 부러지지 않는 삶 - 갈대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고요함과 흔들림, 공허와 충만, 생각과 내려놓음 사이의 균형 속에서 성장과 기쁨을 찾을 수 있다.” 갈대는 흔들린다. 바람이 불면 휘어지고, 강물이 흐르면 몸을 맡긴다. 단단한 나무처럼 버티지 않고, 흔들림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들은 그것을 약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갈대는 무너지지 않는다. 그 비밀은 속을 비운 데 있다. 텅 빈 줄기는 바람이 지나갈 길을 내주고, 강한 저항 대신 유연하게 흐름을 따른다. 버티려 하지 않지만, 쓰러지지도 않는다. 부러지는 것은 언제나 단단한 것들이다. 우리도 그렇다. 삶은 예상할 수 없는 바람과 같다. 우리는 불확실성 속에서 흔들리고, 고민과 선택의 순간마다 방황한다. 하지만 불필요한 집착을 내려놓을 때, 더 단단해진다. 흔들리는 것은 약함이 아니다. 흔들리면서도 다시 중심을 잡는 것, 그것이 진짜 강함이다. 바람이 거세도, 갈대는 쓰러지지 않는다. 흔들림 속에서 균형을 찾고, 흐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흔들려도 괜찮다. 흔들리면서 길을 찾고, 흔들리면서 강해진다. 갈대가 속삭인다. “흔들릴지라도, 사라지지 말라.”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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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문부엉이
-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문부엉이 우리 집 현관문엔 부엉이 한 마리 살고 있다. 자기 혼자는 울 수도 없는 새. 하지만 그 침묵은 영롱해 더 슬프다. 영겁의 연(緣)에 갇혀 하늘로 날 수는 없지만. 밤낮 뜬 눈으로 안으로 담금질하며, 조용히 먼 둥지 그려본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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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변화에 춤추는 존재 - 뚝새풀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변화에 대처하려면 호기심과 용기가 필요하다. 불안은 위험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다.” 뚝새풀은 논에서도, 밭에서도 자란다. 땅이 다르면 삶의 방식도 달라진다. 논에서 자라는 뚝새풀은 뿌리를 깊이 내려 안정을 찾고, 밭에서 자라는 뚝새풀은 바람을 타고 멀리 퍼진다. 하나는 머물고, 하나는 떠난다. 머무르는 것이 안전할까? 떠나는 것이 더 강할까? 논형 뚝새풀은 같은 자리에서 자란다. 자가수분을 통해 유전자를 유지하며, 익숙한 환경에서 강한 생명력을 가진다. 안정 속에서 성장하지만, 변화에는 취약하다. 변화의 바람이 불면, 그 강함은 오히려 약점이 된다. 반면, 밭형 뚝새풀은 바람을 타고 떠난다. 타가수분을 통해 다양성을 키우고, 새로운 환경에도 빠르게 적응한다. 흐름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어디에서든 살아남을 길을 찾는다. 가장 강한 존재가 아니라, 가장 유연한 존재가 결국 살아남는다. 삶도 그렇다. 익숙한 환경 속에서 머물 것인가? 아니면 불확실성을 기회로 삼을 것인가? 변화를 두려워하면, 안전할지 모르지만 한계가 생긴다.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일 때, 더 넓은 가능성이 열린다. 뚝새풀은 묻는다. “당신은 논형인가, 밭형인가?”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예상할 수 없는 흐름이 몰아친다.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살아남는다. 단단함이 아닌 유연함, 익숙함이 아닌 도전. 당신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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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변화에 춤추는 존재 - 뚝새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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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니체가 교사에게 건네는 철학적 위로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너 자신이 되어라.” 이 단순하고 짧은 말은 ‘망치를 든 철학자’라 불리는 독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가 우리 모두에게 남긴 가장 울림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존재는, 바로 지금 교실에 앉아 있는 중고등학생들이고, 그 메시지를 가장 먼저 건네야 할 사람은 교사라는 생각이다. 그만큼 교사는 어린 아이들의 학습과 생활(인성)지도 등 교육에 책임지고 있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매일 수많은 아이들과 마주하는 교사에게는 때로는 지치고, 속상하고, 답답한 순간들이 찾아 온다. 아이들은 왜 이렇게 집중하지 못할까, 왜 이렇게 쉽게 포기할까, 왜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할까,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도 한다. 하지만 니체는 말한다. “인간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되어가는 존재’다.”라고 말이다. 학생들은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누구인지 묻는 것조차 두려운 나이다. 그들은 ‘정답’을 찾고 외우는 데 익숙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혼란에 빠진다. 시험의 점수는 명확하지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는 점수가 매겨지지 않는다. 그런 아이들에게 니체는 조용히 다가와 말한다. “너는 너 자신을 만들어 가는 조각가다. 너는 아직, 되어가는 중이다.” 그렇기에 교사는 아이를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변화의 곁을 지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때로는 조용히 지켜봐 주고, 때로는 무너지려는 아이에게 “괜찮아, 너는 다시 일어설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니체는 인간의 본질을 ‘극복’이라 했다. “인간은 자신을 넘어설 수 있는 존재다.” 이 말은 교사에게도 큰 위로가 된다. 때로는 이 아이가 정말 변화할 수 있을까, 이대로 어른이 되면 어떻게 할까, 걱정이 밀려온다. 하지만 니체는 “한 사람의 가능성은 그가 지금 어떤 모습이냐가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느냐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실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아이들 중에는 누군가는 상처를 품고 있고, 누군가는 깊은 불안을 껴안고 있으며, 누군가는 어른에게 실망한 채 마음의 문을 닫고 있다. 그런 아이들은 쉽게 분노하고, 무기력해지고, 냉소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모든 행동은 하나의 외침이다. “선생님, 저는 아직 저를 잘 모르겠어요. 저도 저를 사랑하는 법을 모르겠어요.” 니체는 또 “괴물과 싸우는 자는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심연을 오래 들여다보면, 심연도 너를 들여다본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교사들에게도 적용된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규율을 지키고 수업을 하다보면, 때로는 ‘통제’가 ‘이해’보다 앞설 때가 있다. 하지만 아이를 억누르고 틀 안에 가두려 할수록, 교사는 자신도 모르게 ‘괴물’이 되어버릴 위험이 있다. 니체는 “아이를 바꾸고 싶다면, 먼저 그 아이의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교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아이들은 교사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사랑을 배우며, 자기 존재의 가치를 배운다는 것이다. 학생이 자기 자신을 믿기 위해서는 먼저 한 사람의 어른, 즉 교사가 그를 믿어줘야 한다. 니체는 말한다. “삶을 견디게 만드는 힘은, 그 삶의 ‘이유’를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 현실은 많은 아이들이 아직 그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그들에게 교사는 ‘나를 믿어준 단 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교사는 교사라는 존재로서 충분히 의미 있고 위대한 일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아이들은 교실에서 작게, 조용히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는 성적표나 태도점수로는 보이지 않지만, 한 번의 눈빛과 한마디 말로 시작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지금 이순간도 만들어지고 있다. 문제행동을 한다면 이는 실패하고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성장통을 앓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 아이는 아직, 되어가는 중이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 역시, 교사로서 계속되어 가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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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니체가 교사에게 건네는 철학적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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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병은 또다른 가족
-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병은 또다른 가족 사람은 병 없이 살 수 없다. 감기처럼 스쳐 가고, 암처럼 삶을 뒤흔들며 불쑥 찾아오는 가족처럼 곁에 있다. 몸이 멀쩡해도 마음은 주저앉고, 겉은 웃고 있어도 속은 텅 비어간다. 병은 염색처럼 감추지 말고, 반려처럼 조용히 안아야 한다. 두려움을 내려놓고 서로를 알아가는 일ㅡ 그것이 병과 함께 건강하게 사는 길이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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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병은 또다른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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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아무것도 아닌 사람과 특별한 사람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어 이런 말을 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 외신들은 '아무것도 아닌'을 어떻게 번역했을까. 외신은 각각 '하찮은(insignificant)', '보잘것없는(a nobody)', '중요하지 않은(no importance)' 등으로 번역했다. 사전에서 ‘아무것’이 ‘아니다’를 만나면 ‘특별하거나 대단한 어떤 것’이라는 뜻을 갖는다고 한다. ‘아무것’이 ‘특별한 것’이란 뜻을 갖게 된 건 ‘아무것도 아니다’를 ‘별것 아니다’로 바꿔 쓸 수 있고, ‘별것’이 특별한 것이란 뜻이니 ‘아무것이 아니다’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별 볼 일 없고 하찮은 존재’라는 뜻이 된다. 일상적으로는 자신이 스스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오’라고 말하면 그 말은 자신의 겸손함을 표현하는 어법이다.‘ (한겨레신문’, 8월 7일자, ‘말글살이’ 참조)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대통령을 당선시킨 1등 공신은 ‘보통 사람 노태우입니다’라는 선거 문구였다.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는 김대중, 김영삼 후보와 경쟁하면서 ‘보통 사람의 위대한 시대’와 같은 슬로건을 내세워 당선되었다. '보통 사람 노태우' 이미지가 당시의 국민 마음을 사로잡았다. 노태우 대통령도 나중에 알고 보니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일반사람은 보통 사람이나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기보다는 ‘특별한 사람’이 되어 ‘특별한 대우’를 받으며 살고 싶어 한다. 사교육. 5세 고시. 의대에 미친 교육, 우수반 편성은 특별한 대우에 대한 욕망이다. 영재교육, 국제학교, 특별한 학교를 좋아하는 학부모의 심리도 그런 욕망의 표현이다. 공직자의 기관장에 대한 자리다툼도 특별함에 대한 욕망이다. 특별대우에 대한 욕망은 경쟁, 차별, 열등감, 갈등을 만들었다. 빗나간 자식 사랑 경쟁은 모두를 지옥으로 내몰았다. 교육과 예술 분야는 ‘욕망의 부재’가 ‘진정한 특별함’을 만든다. ‘얀테의 법칙’이란 말이 있다. 10가지 규칙이 있지만 요약하면 '당신 스스로 남들보다 더 뛰어나거나 특별하다 생각하지 마라.'라고 한다. 이 법칙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평등사회와 복지 선진국으로 이끈 기반이 되었다고 한다. 얀테의 법칙에 따르면 왕족조차 '높은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 정말로 왕족조차 권위를 드러내기보다는 소탈해지려는 노력을 한다고 한다. 인간은 거기서 거기다. 대동소이하다. 따지고 보면 인간은 다 같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먹고 화장실에 가고 비슷한 내장과 뇌와 손발을 가지고 있다. 다만 좀 키가 크거나 암기를 잘하거나 장애가 있거나 할 뿐이다. 사자와 개미, 전나무와 채송화처럼 아주 다른 종이 아니다. 선생은 학생이 진정으로 타인과 공감을 이루고 겸손함으로 세상을 살게 도와주어야 한다. 자녀와 학생이 ‘특별함에 대한 욕망’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겸손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 교육계와 가정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진심으로 고민해야 한다. 아무것도 아닌 학생은 없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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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아무것도 아닌 사람과 특별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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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보이지 않는 힘으로 세상을 뚫다 - 방동사니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힘의 원천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 진정한 힘이란 외면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방동사니는 어디에나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잡초라 부르며 하찮게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거친 아스팔트를 뚫고 솟아나는 강한 생명이다. 누구도 보살피지 않지만, 스스로 살아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모으며, 어느 순간 세상의 틈을 뚫고 얼굴을 내민다. 그 힘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방동사니는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뿌리를 깊이 내린다. 단단한 돌 틈 사이에서도,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버틴다. 제초제가 뿌려지고, 수없이 밟혀도 다시 살아난다. 장애물이 클수록 뿌리는 더욱 깊어지고,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힘을 만든다. 우리도 그렇다. 쉽게 드러나지 않는 노력이 가장 강한 힘을 만든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내면에서 단단하게 쌓인 힘이 어려운 순간을 뚫고 나올 수 있게 한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준비한 자만이 끝내 길을 연다. 방동사니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환경에서도 다시 살아나며, 그 존재를 증명한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준비하고, 내면의 힘을 단단하게 키운다면 어떤 어려움도 뚫고 나아갈 수 있다. 방동사니가 묻는다. “너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힘을 키우고 있는가?”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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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반려인간(伴侶人間)
-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반려인간(伴侶人間) 자식이 있어도 제 살기 바빠 안부조차 잊는 세상. 결혼을 해도 아이 키울 엄두 없어 자식조차 낳지 않는 현실. 후진과 개발, 선진이 뒤엉킨 세대, 풍요와 편리함은 더 깊은 고독을 잉태했다. 이제는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시대. 자식도 찾지 않는 노년의 외로움을 달래는 반려인가, 부모 되기를 포기한 무자식 상팔자의 반려인가. 반려동물의 눈을 바라본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문득, 나도 누군가의 반려인간이면 좋겠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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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자사고와 공립고, 진정한 교육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가?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한국의 고등학교 교육은 오랫동안 ‘입시 중심’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자율형 사립고(이하 자사고: 특목고의 기능을 대표하는 유형))와 공립고(일반고의 대표적 유형)다. 자사고는 “자율”이라는 이름을 달고 탄생했지만, 실상은 경쟁 위주의 교육을 심화시키는 제도로 전락했고, 공립고는 형식적인 평등에 갇혀 교육의 질적 다양성을 놓치고 있다. 이 두 제도가 과연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교육의 방향과 부합하는지, 진지하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자사고의 존재 이유를 보자. 그것은 한마디로 다양성과 자율성에 있다. 학교마다 독자적인 교육과정을 구성해 학생의 개성과 창의성을 신장하겠다는 것이 취지였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상당수 자사고는 명문대 진학률을 경쟁력으로 내세우며 사실상 ‘입시 사관학교’로 기능하고 있다. 예컨대 전국적으로 유명한 지방의 한 자사고는 2024년도 약대 및 의학계열(의⋅치⋅한⋅수)의 진학률이 졸업생의 40~50%에 이르렀다. 가히 ‘의대 사관학교’인 셈이다. 이런 성향으로 보아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기대한다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라 할 것이다. 서울 강남의 일부 자사고는 내신(수시전형)보다 수능(정시전형) 준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단편적인 총평에 불과할 뿐이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공교육의 정상적인 흐름을 크게 왜곡시키고 있는 점이다. 자사고가 고교 서열화를 고착화시키고, 사교육 의존도를 높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구조는 교육 기회의 불균형을 초래하며, 가정의 경제력이 곧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이른바 ‘부의 세습’을 부추기는 불공정한 환경을 조장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전국적으로 일반화 되어가는 경향이라 볼 수 있다. 반면에 공립고는 제도적으로 평등을 지향한다. 대부분의 학생이 거주지 학군 내 무작위 배정을 통해 진학하며 교육의 형평성과 접근성 면에서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교육의 다양성과 역동성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공통 교과 위주의 교육은 평균적인 학생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뛰어난 학생이나 특별한 관심사를 가진 학생에게는 도전이나 자극이 되지 못한다. 게다가 교사의 자율성이 제한되고 학교 자체도 혁신적 시도보다는 안정적인 운영에 집중한다. 그 결과, 공립고는 때때로 ‘관리형 교육’에 머무르며 학생의 잠재력을 충분히 끌어내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결국 자사고와 공립고 모두 교육의 본질에서 어긋난 점이 드러나고 있다. 부연하자면 자사고는 지나친 경쟁과 서열화로 교육의 공공성을 훼손하고, 공립고는 제도적 평등에 안주한 채 학생 개개인의 다양성과 성장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 양극단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교 교육은 단순히 대학 진학을 위한 ‘통과의례’가 아니라, 삶을 설계하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시기여야 한다, 입시 실적이 아니라 교육의 질과 다양성, 그리고 학생의 성장 가능성을 중심으로 한 학교 운영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첫째, 고교체제 개편 논의는 입시 결과가 아닌 교육의 본질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교육부는 자사고 폐지나 전환을 단순한 ‘형평성’ 차원이 아니라, 공교육 전반의 질적 향상과 연계된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 둘째, 공립고에도 교육과정의 자율성을 확대해 각 학교가 지역 특성과 학생의 요구에 따라 특색 있는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것이 점차 확대하려는 자율형 공립고(자공고) 2.0 정책의 목적인 것으로 보인다. 셋째,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강화해 교육의 주체로서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는 자사고, 공립고 모두에 해당한다. 우리는 이제 ‘어떤 학교가 더 좋은가’를 묻기보다는 ‘학교는 무엇을 위해 존재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진정한 교육은 성적이 아닌 삶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자사고든 공립고든, 그 학교가 학생 한 명 한 명의 가능성을 존중하고, 미래를 살아갈 민주시민의 자질과 역량을 길러주는 곳이라면, 비로소 교육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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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자사고와 공립고, 진정한 교육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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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즐거운 인생을 위한 예술교육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사는 것이 즐거우신가요? 나이가 들수록 되도록 즐겁게 살고 싶다. 사는 것이 즐겁게 느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즐겁다는 것은 보람을 느끼거나 재미가 있거나 보상이 크거나 칭찬을 듣거나 인정을 받거나 성취감을 느낄 때일 것이다. 즐거움을 느끼지 못할 때는 지루하거나 실패하거나 의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일을 할 때이다. 사는 일이 항상 즐거울 수는 없다. 하지만 이왕 사는 거라면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멋진 삶, 의미 있는 삶, 성공한 삶, 건강한 삶이 있지만 즐겁지 않다면 인생은 숙제일 뿐이다. 근대에 와서 쇠사슬에 묶여 강제 노역을 하는 전통적 노예는 없어졌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엇인가에 지배를 당하는 심리적 노예는 많다. 돈은 가장 강력한 족쇄이다. 보이지 않는 세련된 방식의 구속으로 지배를 당하는 현대인은 항상 일에 바쁘다. 돈, 건강, 의무, 성과에 매몰되어 살다보면 출구에는 커다란 허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가 일상을 장악하면서 인정 욕구에 예속되기도 한다. 인공지능마저 인간의 사고를 알고리즘으로 예속하려고 한다. 인간의 인정 욕구는 생리적 욕구가 아닌 심리적 욕망이다. 남에게 인정받는 일은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믿음을 통하여 살아갈 힘을 얻는 일이다. 타인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자신의 진정성을 속이는 것이 비극의 시작이다. 재미있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새로운 것이 재미를 준다. 여행한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에 ‘여행’이 많은 것은 그런 이유이다. 배운다는 것도 새로운 경험과 대면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게 하려면 예술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가정, 학교, 사회, 국가가 예술교육에 지금보다 더 노력, 시간,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 ‘쇼생크의 탈출’이라는 영화에서 죄수들에게 들려오는 아리아는 예술의 마력을 보여준다. ‘앤디’라는 남자주인공이 간수를 화장실에 가두고 감옥 전체에 들려주는 음악은 ‘피가로의 결혼’ 3막에 나오는 이중창 ‘산들바람이 불고’라는 아리아이다. 공간은 여전히 교도소 마당이지만 음악이 흘러나오는 그곳은 마법처럼 아름다움이 오로라처럼 일어난다. 실수와 반성에서 내면의 성장이 있다. 전기밥솥에 물만 맞추어 부으면 밥이 간편하게 된다. 타지도 않고 질지도 않다. 실패가 없다. 이야기도 없고 성장도 없다. 밥을 태우거나 질게 하거나 되게 하거나 해야 웃음이 있고 반성이 있고 이야깃거리가 있다. 손으로 당기고 밀고, 입으로 불고, 손가락으로 힘들여 튕기고 여닫는 동작으로 소리가 나온다. 그 소리는 같은 듯 다르다. 그 다른 것을 느끼러 연주회장에 간다. 다른 것들의 조화가 아름답다. 인생을 즐기려면 예술에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선진국이 왜 예술교육에 많은 투자를 했는가를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점점 예술교육의 필요성이 새롭게 다가온다. 우리가 학생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학교에서 예술과 스포츠, 동아리 활동을 활성화해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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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즐거운 인생을 위한 예술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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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좋은 교사는 어떤 사람인가?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좋은 교사는 어떤 사람인가?” 교육계에 몸담은 지난 40년 세월 동안 필자는 수없이 이 질문을 되뇌었다. 교사로, 교감으로, 그리고 교장으로 다양한 학교와 아이들을 만나며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삶 속에서 찾고자 노력해 왔다. 필자는 그 과정에서 특히 학교의 관리자가 되어 봉직했던 중고등학교에서의 교육 현장이 중요한 마무리이자 사고의 큰 전환점이 되었음을 고백하고자 한다. 첫째, 좋은 교사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사람이다. A학교에서 한 학생이 잦은 지각과 무기력한 태도로 교내 문제아로 낙인찍히곤 했다. 그 아이와의 쉽지 않은 대화를 통해 밝혀진 것은, 아침조차 거르며 열악한 가정환경 속에서 힘겹게 상당한 거리의 학교를 다닌다는 사실이었다. 그 후 필자는 담임교사와 함께 아침 간식을 제공하며 생활지도를 병행했고, 점차 그 학생은 자율적으로 교내활동에 참여하고 수업에도 몰입하기 시작했다. 이 학생을 통해 결과보다 과정을, 성적보다 사람을 먼저 보는 교사의 시선, 그것이 한 아이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둘째, 좋은 교사는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B학교 재직 당시, ‘자기주도 학습 프로젝트’ 운영을 권장하고 관리하며 교실 구조를 바꾸는 공간 혁신을 통해 교육적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기존의 일방향 수업 대신 학생 주도 토론과 탐구 과제를 중심에 둔 일명 프로젝트 수업(PBL) 방식이었다. 초기에는 “답이 없으면 어떻게 공부하나요?”라는 학생들의 불안한 질문이 많았지만 필자는 선생님들도 답을 모를 수 있고, 따라서 교사-학생이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 교육이라고 학생들과의 진솔한 대화 시간을 이용해 설득해나갔다. 그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틀려도 괜찮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스스로 탐구하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이로써 진짜 배움은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실감했다. 나중에 그 아이들이 발표를 통해 한 뼘씩 크게 성장한 사실이 놀라웠다. 셋째, 좋은 교사는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C학교에서 근무할 당시 학생회 학생들과 1:1 면담을 실시했던 일이 있다.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고, 복도나 운동장, 또는 도서관에서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즉시 말을 건넸다. “○○야, 오늘 하루 어땠어?”, “◇◇야,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어?”라는 짧은 질문에도 아이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교감 선생님이 제 이름을 알아요.”라는 한 학생의 말에서 필자는 교육의 본질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진심 어린 관심은 지시보다 강력하고, 사랑은 어떤 교육 기술보다 깊은 울림을 남긴다는 사실을 말이다. 현재 필자는 교직을 떠났어도 여전히 우리 교육에 대해 생각하고 어떤 교육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사유하며 글을 쓰고 있다. 지금 “좋은 교사란 어떤 사람인가?”를 쓰면서 과거 필자 자신도 결코 완성된 교사가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한다. 좋은 교사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매일 아이들 앞에 진심으로 서려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교실 어딘가에서, 아이 한 명 한 명을 위해 애쓰고 있는 모든 교사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스스로 묻기를 바란다. 당신은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가, 그리고 어떤 교사를 기억하고 있는가, 말이다. 좋은 교사에 대한 기준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예컨대 인공지능(AI)과 로봇, 첨단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디지털 시대에는 ‘질문하는 학생’에 중점을 두고 가르쳐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변함없이 좋은 교사란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기다려줄 수 있는 인내심, 아이들의 실수나 과오를 너그럽게 수용하고 오히려 이를 격려하고 응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갈수록 힘들고 어려운 교육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사도를 걸으며 ‘교학상장’, ‘청출어람’ ‘솔선수범’의 교육사상과 철학을 실천하며 교사 본연의 길을 가고 있는 선생님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저절로 존경과 사랑의 마음이 앞선다. 좋은 교사는 결코 화려한 언변이나 계획된 꾸밈이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이 아니라 앞에서 선도하는 사람(First Mover)이 되어 학생과 학부모, 동료교사의 지지와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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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좋은 교사는 어떤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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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이름을 넘어 피어나다 - 개여뀌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는 모두 이름에 담긴 의미보다, 자기 스스로 정체성을 정의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 개여뀌, 이름부터 남루하다. ‘개’가 붙는 순간, 진짜가 아닌 가짜가 된다. 사람들은 이름만으로 그것을 하찮게 여긴다. 그러나 이름이 본질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이름이 전부라면, 그 속에 숨은 진짜 가치를 놓치게 된다. 개여뀌는 화려하지 않다. 진짜 꽃처럼 보이도록, 가짜 꽃봉오리를 단다. 겉모습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남는다. 이것은 속임수가 아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생존하는 자연의 지혜다. 우리도 그렇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 속에서 흔들리지만, 이름이 우리의 가치를 결정짓지는 않는다. 진정한 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란다. 겉모습에 가려진 노력과 인내가 진짜 삶을 만든다. 개여뀌는 눈에 띄지 않아도 살아남는다. 가짜 꽃을 피우지만, 결국 진짜 꽃을 준비한다. 우리는 이름을 넘어야 한다.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스스로의 본질로 살아가야 한다. 개여뀌가 묻는다. "네가 가진 이름이 아니라, 너 자신으로 살고 있는가?“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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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산책] 이름을 넘어 피어나다 - 개여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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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마음을 따스하게 하는 존중의 아름다운 말하기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대낮에 시각장애인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서로 몸을 부딪쳤다. 한 사람이 말했다. “아니 이 사람아, 두 눈 똑바로 뜨고 다니지 못해?” 그러자 다른 시각장애인 한 사람이 말한다. “보면 모르냐?” 배려는 상대방의 입장도 생각하는 태도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대하여 자기중심으로 판단하고 대응한다. 직장에서 가장 힘든 업무는 자기가 맡은 일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만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사정 속에서 살고 있다고 믿는다. 상대방도 자신과 같은 힘든 상황 속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판단하지 않는다. 내가 힘들면 상대방에게 소리를 쳐도 괜찮고 무례를 범해도 된다는 태도와 논리가 사회에 만연하다. 실제로는 상대방도 더 힘든 상황에 있을 수 있다. 모두가 사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 거친 말 속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힘드니 상대방이 양보해야 한다고 한다. 악성 민원도 이런 태도에서 나온다. ‘내로남불’도 자기중심적 이중잣대의 공격언어이다. 공정한 ‘역지사지’의 태도가 아쉽다. 어릴 때 읽은 동화 내용이 가끔 떠 오른다. 말할 때마다 입에서 금은보화가 나오는 아가씨와 징그러운 파충류가 입에서 쏟아져나오는 아가씨 이야기이다. 불쌍한 노파를 도와준 아가씨는 말할 때마다 입에서 금은보화가 쏟아져 나온다. 이를 부러워 한 다른 아가씨가 우물에 갔지만 노파를 도와주지 않고 비난만 하고 집에 오자 온갖 징그러운 생물들이 말할 때마다 입에서 마구 나왔다. 살아가면서 이 단순한 이야기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하루종일 어떤 말을 하며 하루를 지냈는가를 반성한다. 내가 힘들다고 느낄 때면 상대방의 요구에 거친 말이 나오게 된다. 내 힘겨움을 알아주지 못하는 마음에 서운한 말을 하기도 한다. ‘혀 밑에 도끼가 들었다’는 속담도 있고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상대를 배려하는 아름다운 말이 더 소중하다. 부부와 친구 사이도 마찬가지다. 교사가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 존중의 아름다운 말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언어는 그중에서도 중요한 요소이다. 언어는 관계를 이어 나가는 주요 수단이다. 존중받는 존재로 살고 싶은 것은 생명체의 본능이다. 그런 학생들에게 따스한 말로 하루를 시작하자. 사는 것이 힘들지만 아름다운 말은 어둡고 힘든 마음에 따스한 온기를 주는 한 줄기 빛이 된다. 세상살이가 각박하고 힘들어도 선생님은 말을 곱게 해야 한다. 그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다. 때로는 학생이나 학생 부모에 대한 비난 한마디가 평생 가슴에 남기도 한다. 교사는 매일 학생에게 많은 말을 해야 하는 존재이다. 교사는 자신의 말 한마디가 징그러운 뱀인가 아름다운 보석인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 교실에 뱀을 한가득 풀어놓은 교사가 되지 말자. 학생에게 삶에 도움이 되는 보석보다 따스하고 아름다운 말을 하자. 말은 관계 회복의 열쇠가 되기도 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자존감을 키워주기도 한다. 아름다운 말은 상대를 존중하는 말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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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마음을 따스하게 하는 존중의 아름다운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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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왜 학교는 학생들의 운동량을 높여야 하는가?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최근 국내 언론들은 청소년들의 신체활동 실천율 즉, 운동량이 ‘세계 꼴찌’ 수준임을 앞 다투어 보도했다. 이에 대한 가장 큰 이유로는 “학원 다니기 힘들고 운동할 곳이 없다”라는 반응이 압도적이다. 운동량은 중학생일 경우 22%, 고등학생이 되면 13%로 급감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이에 학교와 교육 당국은 건강상의 이유는 물론 학습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도 학생들의 운동량 확보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이를 다양한 측면에서 강화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 국내 한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중학생 A양(15)은 땀 흘리는 것을 싫어해 체육 시간을 꺼린다. 학교는 버스를 타고 다녀 하루 10분 남짓 걷는다. 주말에는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동영상을 보느라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는다. 그녀는 “주변에 마땅히 운동할 공간도 부족하고, 학원만 다녀와도 힘들어서 운동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뿐이랴. 매일 한 번에 최소 10분 이상을 걸었다는 여학생 비율은 겨우 절반을 넘는다. 이는 외국의 또래에 비하면 운동 부족 현상이 매우 심각한 상태다. 최근 질병관리청의 ‘2025년 국민건강 통계 플러스’ 보고서에 의하면 학생들의 운동량(하루 60분, 주 5회 이상)은 중학생 21.5%, 고등학생 12.9%로 밝혀졌다. 이는 입시부담이 커질수록 운동에 소홀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국가별 비교로 보면 2023년 한국 고교생은 13.4%로 미국 고교생의 46.3%보다 월등히 낮았다. 특히 한국의 여고생은 6.6%로 미국 여고생의 36.0%에 비해 1/5 수준에 불과했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분석 결과에서도 한국의 청소년은 운동 부족 상태가 94.2%인 반면에 세계 평균은 81%, 미국 72%, 싱가포르 76.3%와 비교해서 매우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과거 70년대 우리의 상당수 전통 명문교의 지덕체 교육활동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당시 학교는 정규 체육 교과 수업과는 별도로 교육의 특성화에 나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1인 1운동을 적극 실행하였다. 이는 1인 1악기 교육과 함께 소위 ○○학교하면 태권도, 유도, 검도, 기타, 하모니카 등으로 학교의 이미지가 자동 연계되던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과는 다른 교육과정운영으로 가능했지만 여기엔 학교장과 교사들의 교육철학과 고유한 학교문화 즉, 전통 만들기에 열정과 사명감이 함께 하면 현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제는 어찌 보면 여건이 과거보다 더 유리한 상황이라 할 수도 있다. 왜냐면 잘 나가는 K팝처럼 K댄스로 학생들의 건강과 운동량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는 콘텐츠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K댄스를 전교생을 대상으로 주 2~3회 10~30분씩 운영한다면 이 또한 긍정적인 교육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뿐이랴. 요즘 건강상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는 ‘맨발 걷기’도 학교 운동장을 활용하면 학생들의 관심과 성과를 거둘 것으로 짐작된다. 그만큼 춤과 노래에 익숙한 신세대들이 학교에서 장려하는 (맨발)걷기 운동까지 함께 한다면 우리 청소년들에게 보다 건강을 위한 운동량 확보에 최적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학교는 학생들의 경제적 부담을 고려해서도 실행 의지만 갖는다면 비용이 들지 않고도 걷기 운동을 생활화할 수 있다. 매일 10분 이상 걷는 청소년은 주 5일 미만 걸을 때보다 운동량이 3배가량 높았고 학교 체육 수업에서도 주 3회 이상 직접 운동하는 학생은 전혀 운동하지 않는 학생보다 약 2.5배 높은 연구 결과도 확증할 것이다. 이는 최근 경고음을 내는 학생들의 비만율과 스트레스 인지율을 낮추는 효과에도 탁월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제 학생들의 운동이 생활화되도록 적극 실천하는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는 학생들의 ‘학교 선택 선호도’와 학부모의 ‘학교 참여’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초래할 것이다. 학교 차원에서 학교장의 철학과 교사들의 협조와 추진력만 있으면 ‘학교 재량 시간’을 활용해 교육과정에 적용할 수 있다. 이밖에 학생들의 운동량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창의적인 방안은 학생의 성장⋅발전과 바람직한 학교문화 창조, 그리고 학생들의 학교생활 만족도 및 행복지수 등 부가적인 측면과 궁극적으로는 학력향상에도 지속적인 플러스의 효과를 유발할 것으로 확신한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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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왜 학교는 학생들의 운동량을 높여야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