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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용우한의원 유용우 원장 특별 인터뷰] “초심으로 우리 아이 건강을 지키겠습니다.”
    [위클리피플=오미경 기자, 이준영 기자] 소아·청소년 건강의 한방 길잡이 유용우 원장, 외길 의료 인생 위에서 희망을 말하다! “초심으로 우리 아이 건강을 지키겠습니다.” 유용우 <유용우 한의원> 원장/ 한국증류학회 이사 아이가 아픈 것만큼 부모 속을 태우는 일도 없다. 더구나 아직 말도 못 뗀 영유아의 경우라면 자신의 아픔을 울음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모습에 부모는 더욱 애가 타기 마련. 서구화된 식생활 습관과 환경 변화의 영향으로 성장장애나 아토피, 비염 등 만성질환을 앓는 소아와 청소년이 늘어가는 가운데 이러한 질병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이 한의원을 찾는 모습을 상상해 보기로 하자. 아마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한약을 마시거나 침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그러나 20여 년 동안 소아 청소년 질환의 한방치료에만 매달려온 한의사를 만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을까. 소아 청소년 건강을 위한 외길 인생의 주인공, <유용우 한의원>의 유용우 원장을 만나 그가 걷는 길 위의 희망스토리를 꺼내보았다. 취재_오미경, 이준영 기자/ 글_오미경 기자 부쩍 차가워진 바깥 공기를 가르며 아침 일찍 서둘러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위치한 <유용우한의원>에 도착 했다. 평상시와 같이 전통 옷으로 된 진료복을 갖춰 입고 취재진을 맞이한 유용우 원장은 어린 아이 같은 환한 미소가 유난히 눈에 띄는 모습이었다. 유용우 원장, 한방소아과의 문을 열다 “지인의 아이가 밤낮이 바뀌어 가족이 모두 아이를 돌보느라 지쳐가던 것을 보고 아이의 상태를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치료법을 고민해보기로 했던 그 때부터입니다.” 소아 청소년 한방 치료에서 오랜 명성을 쌓아온 유용우 원장에게 그 시작을 묻자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할 무렵부터 궁극적인 소아 청소년 치료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해 지금껏 그 길만을 걸어온 것이라니 곱씹을수록 의미가 더해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유용우 원장은 밤낮이 바뀐 아이의 문제점과 해결에 대한 논의를 거치면서 치료의 큰 가닥을 잡아 1997년 최초의 어린이전문 한의원인 은빛한의원을 개원, 이후 도원아이한의원을 열며 국내에 한방소아과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특히 ‘코로 숨을 쉬어야 몸이 편안하다’는 원리에 중심을 두고 비염을 심층 공동연구 했던 유 원장은 함께 공부하던 동료들과 비염 치료 공동프로그램 [숨길을 열다]를 만들어 전국 수십 개 지점의 한의사들을 성심으로 가르치며 대표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공동체 의료기관으로서 [숨길을 열다]가 선택의 기로에 서면서 비염만을 특화하게 되었고, 그는 소아 청소년들의 다른 질환 역시 외면하면 안 되는 것이 자신의 본분이라 여겨 후배에게 대표원장직을 물려주고 나와 [유용우 한의원]이란 이름을 지키며 성장기 꿈나무들의 건강 멘토를 자처해 오고 있다. 아이들 건강의 출발은 먹거리로부터 “아이들이 자라는 것은 나무가 자라는 것과 같아요. 토질과 물이 나무가 자라는 베이스가 되는 것처럼 몸의 구조적 건강함과 먹거리가 어린이 건강의 핵심입니다.” 소아 청소년 전문 한방 진료라는 큰 틀을 만들어 내부로 파고든 유용우 원장은 크게 만성두드러기, 비염, 육아 및 성장 분야를 전문으로 하여 치료에 매진해 오면서 어린이 건강 문제의 시작은 먹거리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고, 바른 먹거리를 위한 식생활 습관 개선의 중요성을 최우선으로 강조하게 되었다. “흔히 부모들은 아이가 태어나서 두 돌이 될 때까지 어떻게든 빨리, 많이 먹이려고 노력하는데 포유류는 치아의 발달에 따라 소화능력이 달라서 치아가 없을 때와 앞니, 어금니, 송곳니가 날 때의 단계별로 그 시기에 맞는 적정 음식을 먹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고 무조건 잘 먹이고픈 엄마의 욕심이나 아이의 먹고픈 욕구에 의한 음식섭취만 이뤄진다면 장에 부담이 가 결국 몸의 내부 균형이 깨지고, 그것이 외부로 드러나면 알레르기 반응이 되는 것입니다.” 유 원장은 덧붙여 “아이가 처음에는 씹을 수 있는 것, 그 다음에는 후각과 미각을 기준으로 자신에게 맞는 음식을 스스로 알아 낼 수 있다”며 ‘맛이 있다’는 것은 소화시키기에 좋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아이의 특정 음식 거부반응을 단순히 편식으로 여기지 않고, 현재의 몸 상태에 대한 표현으로 이해하여 적정한 음식 종류와 양을 섭취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처럼 올바른 정보와 지식이 뒷받침된 먹거리를 통해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바로 잡고, 균형을 맞춰 스스로 건강해지는 바탕을 마련한다는 점이 소아 청소년 한방 진료의 핵심이라고 말하는 유용우 원장. 그는 이 핵심이 소아 청소년들의 만성질환 및 성장관련 질환 치료의 출발이라면, 그 다음으로는 병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상태에서 약을 통해 치료하고 약간의 운동을 더해 몸의 건강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생활 속 쉬운 실천방법으로 먹거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음식 천천히 오래 씹기’로 꼽았다. “충분히 씹는 움직임은 자신의 소화능력을 판별할 수 있게 해주고, 식도와 위장의 보조운동을 통해 흡인력을 유도케 해 소화를 돕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소아 청소년 건강 지키는 한의학의 가치 제대로 알자 유용우 원장은 한의학을 두고 여전히 진료와 치료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일각의 편견에 대해서는 “한의원이 많지 않던 과거에 주먹구구식의 약제 제조 환경과 약효의 당위성에 대한 인식의 부재 등이 겹쳐 말이 와전되면서 한약의 궁극적인 효능이 왜곡되고, ‘한약을 먹으면 살이 찐다’와 같은 탓하기 식의 잘못된 인식이 생겼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덧붙여 한의학은 사람을 스스로 건강하게 만들면서 치료하는 것에 그 뿌리가 있음을 명확히 되짚어 주었다. 한편, 오랜 시간 소아 청소년 한방 진료 한 길 만을 걸어온 유용우 원장은 그간 치료가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고민을 거듭하는 노력을 기울이며 남다른 연구의 결실을 맺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쓴 한약을 먹지 못하고 버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함께 공부한 동료들과 효과가 그대로 보존되되 무취·무미·무색한 증류한약을 개발 하였고, 침을 무서워하면 긴장으로 인해 침의 효과가 떨어지는 문제에 맞서 붙이는 침인 선침패치를 개발하였다. 또 어린이 응급 상황에서 진정시키는데 유용하게 쓰일 ‘사랑의 소금물’ 제조 및 복용법을 알리는 등 그는 자신이 연구개발한 치료의 성과들을 소아전문한의원 개원을 희망하는 이들에게 무상으로 나누며, 의료의 사각지대에 있는 임산부 및 영유아 층이 중요한 시기에 건강을 놓치는 일이 없길 바라는 뜻을 적극 전달해 왔다. 한의사가 된 약골 소년, 초심을 되새기며 정진하리라 생명과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누구든 마음 놓고 증류한약을 먹으며 치료 받을 수 있도록 전국에 100여개 정도의 소아전문한의원이 생기길 목표했다는 유용우 원장. 오로지 소아 청소년 치료에만 매진하여 온 덕에 그를 거쳐 간 한의원과 후배들도 많이 생겨났고, 지금에 이르렀지만, 유 원장은 결코 순탄치 많은 않은 시간들이었다고 말한다. 태어날 때부터 백일해를 앓아 몸이 약했던 그는 이후에도 결핵과 잦은 잔병치레로 학창시절 내내 고통 속에 지냈다. 그러다 진로를 고민하던 무렵, ‘약한 몸으로 육체노동은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의학에의 운명적인 이끌림을 따라 악조건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였고, 결국 몇 번의 도전 끝에 한의대에 진학 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쉽게 치료의 손길이 닿았다면 고통도 없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이 늘 있었기에 다른 어린이들을 위해 꼭 힘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유용우 원장. 그의 이런 마음은 진료실 뿐 아니라 지역사회 곳곳에 따뜻한 귀감이 되는 도움의 손길로도 전해져 묵묵히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에 관한 이야기를 취재진이 꺼내기가 무섭게 손사래 치던 유 원장은 “내 아이와 같은 아이들이 있는 곳이기에 그것은 거룩한 봉사 개념이 아니라 그저 인연이 닿은 가족을 돌보는 일일 뿐”이라며 답변을 일축했다. 덕분에 관계자를 통해 듣긴 했지만 유 원장과 그의 아내는 고양시의 한 발달 장애인 자활단체에 10년 째 무상진료 및 전시회, 바자회, 콘서트 후원을 계속 해오고 있으며, 노인복지기관 및 어린이 문화공연 지원 등 어려운 이웃의 대소사에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유용우 원장은 “때론 어린이 진료에 대한 진심이 세상의 풍랑에 부딪쳐 한의학을 향한 열정을 잃고, 가족에 대한 애정도 잠시 내려놓을 정도로 상처받은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다시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말하며 그 과정에서 초심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기고 있다고 했다. 그리하여 앞으로 소아 청소년의 건강을 돌보며 연구를 바탕으로 육아법을 정립하고, 비염치료에 관한 환자 관점의 매뉴얼을 만들 것이란 계획도 밝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유용우 원장 앞에서 통하지 않는 얘기 같았다. 강산이 두 번 변하도록 그는 오직 소아 청소년 건강의 한방 길잡이 역할에만 몰두해왔고, 몸이 약한 소년일 때부터 품은 한결같음은 굳건히 뿌리를 내려, 한방의 명의로 소문난 그의 현재를 만들어 냈다. “일산이라는 섬에 오두막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는 유용우 원장. 주간인물은 그가 품었던 첫 의지가 앞으로 분명 더 큰 빛을 발하리라 믿으며 소아 청소년 건강을 위한 그의 한의학 외길 인생에 무한한 응원을 더해본다. Profile.1991: 경희대학교 한의학과 졸업1992: 보원한의원 원장1997: 은빛한의원 원장(국내최초 어린이전문 한의원)1999: 도원아이한의원 네트워크(19개점) 공동대표원장2007: 현)유용우한의원 원장 전)비염치료 네트워크[숨길을열다] 40여개 점 전대표원장(~2012)업적: 1998 증류 탕제법 공동개발(한국증류학회 이사)저서: '한방으로 키우면 훨씬 건강해요'(1997) 유용우, 채기원 공저기타: '발로 뛰어 찾은 한방명의 20'(2011)에 선정됨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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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20
  • [임마누엘피부과 한기덕 원장 특별 인터뷰]‘아토피 피부염ㆍ백반증ㆍ건선’ 난치성 질환에 희망을 노래하는 크리스천 名醫 한기덕 원장을 만나다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전준호, 이선진 기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크리스천 名醫‘아토피 피부염’ 난치성 질환에 희망을 불어넣다 한기덕 임마누엘피부과 원장 | 피부과 전문의 아버님이 공무원이셨으며 경남 진주가 고향인 한기덕 원장은 본래 의사를 꿈꾼 건 아니었다. 그러나 넉넉지 않은 형편과 부모님의 권유로 국립대 의대에 진학하게 되었고 학업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저의 재능을 먼저 발견하고 의대를 권유했는지 몰라요. 어린 시절부터 다친 친구만 보면 제가 꼭 다가가 치료해주고 위로해주곤 했다네요.” 하얀 의사 가운은 그에게 꼭 어울려 보였다. 대학 내내 장학금을 받고 다녔던 그는 졸업할 무렵 어떤 결단과 같은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바로 ‘빚진 자의 마음을 잊지 말자’는 것. 국립대가 아니었으면 비싼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었을 텐데, 나라와 국가가 굳건히 있었고 그 안에 교육시스템과 국민이 있었고, ‘은혜를 입은 내가 있는 것’이라 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훗날, 삶의 ‘질’에 영향력을 미치는 피부과 의사가 된 그는 난치병 피부질환 환자들을 마주하며 오늘도 그리스도의 사랑과 인술을 베풀고 있다. _취재 전준호 기자 / 글 이선진 기자 취재원과 약속이 되어있던 지난 12일 오전 10시. 시각에 맞춰 말끔한 모습으로 병원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기덕 원장은 여유와 기품이 있어 보였다. 그의 진면목을 발견하기에 충분했던 인터뷰. 그는 전문가로서 프로다운 모습과 훈훈한 인간미를 동시에 뿜어냈다. ‘임마누엘피부과’ 병원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크리스천인 그에게 먼저 개원 배경을 묻자 하나님을 만나게 된 이야기와 지나온 발자취로 인터뷰에 운을 떼기 시작했다. 아토피 피부염, 백반, 건선을 잘 치료하는 ‘임마누엘피부과’ 한기덕 원장이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된 건 군에서 2년째 되던 날이었다. “‘하나님이 날 구원하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하나님께 의뢰하는 삶을 살게 되었어요.” 아내를 만난 것도 예비하심이었다. “결혼 후 모든 일을 아내와 함께 기도로 준비하던 때 정말 좋은 조건으로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이 계시는 진주에서 진료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그런데 이사하기 직전에 아내와 함께 동시에 받으며 묵상하게 된 말씀이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였고 결국 진주로 내려가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지요.” 좋은 조건을 마다한 큰 결단이었지만, 잘한 결정이었다. 그 후 놀랍게도 축복의 땅, 하나님이 주신 땅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은 건 그가 두터운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된 기반이 되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의 임마누엘. 그는 병원 이름을 ‘임마누엘피부과’로 짓고 지금껏 수많은 피부질환 환자들을 마주하며 건강주치의가 되어주고 있다. “카드대란 이후 당시 피부과에서 미용만 해도 잘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피부과에서 진료기능을 배제한 채 미용만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임마누엘피부과는 병원의 출발선부터가 남달랐다. 피부과 질환 중 고생을 가장 많이 하는 아토피 피부염, 백반증, 건선 치료를 잘하는 병원이 되겠다는 것. 레지던트 때부터 피부질환 치료를 자연스레 많이 접했던 그는 이 질환들을 잘 치료하여 ‘임마누엘’이 선하게 회자되기를,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선하게 확장되기를 바라고 있다. 취재 차 방문했던 날 임마누엘피부과는 아침부터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곳은 아토피 피부염, 백반증, 건선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입소문을 듣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오는 병원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한의원을 전전긍긍하거나 인터넷에 퍼진 잘못된 정보로 치료를 받다가 시간을 지체하며 증상이 심해져 마지막 보루로 피부과를 찾아온다는 점은 안타깝다. 아토피 피부염 치료가 어려운 이유는 질환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정보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환자들은 스테로이드 포비아(공포증)가 너무 강해요. 그래서 질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드리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모르니까 두려운 거고요, 질환에 대해 바로 알면 행복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는 “피부과 약이 독하고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르면 내성이 생겨 아토피 피부염 치료에 좋지 않다는 잘못된 속설 때문에 치료시기를 놓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 때문에 그는 스테로이드 처방에 있어서도 강도, 나이, 환자의 피부 부위, 증상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사용 방법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을 해주고 있다. 많은 이들을 통해 입증 받은, 피부질환 치료의 우수성에 대해 물어보았다. “아토피 피부염, 백반증, 건선. 이 세 가지 질환에 광선 치료는 중요한 분야입니다. 먹는 약, 바르는 약의 대안적 치료나 주치료에도 중요한 부분이 되지요. 치료 기능이 좋고 치료 예방 효과에도 탁월합니다.” 그에게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을까? “어느 날 아토피질환 환자분이 건선도 치료가 되느냐고 물으셨어요. 알고보니 그 환자분의 아버지가 목사님이셨는데 건선으로 오랫동안 고생하셨던 분이었죠. 아버님을 모시고 오라 해서 그 목사님이 내원하셔서 치료를 받으셨는데 3~4회 만에 피부가 깨끗해지신 거예요. 치료도 치료지만 치료 후 유지가 잘 되신 걸 보니 뿌듯했습니다.” 그렇게 인연을 맺게 된 목사님은 어려움도 기쁨도 함께 나누며 새벽 금식기도와 작정기도로 그가 걸어가는 길을 늘 기도해주는 귀한 동역자가 되었다. 실제 그의 주변에는 그를 격려해주고 기도로 후원해주는 고마운 분들이 참으로 많다. 그러나 병원을 운영해오며 항상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을 터. 그는 “몇 차례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었지만 때때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위로하셨고, 사람을 통해 일하셨고, 넉넉함으로 목마름을 채우셨다”고 했다. 공부하는 의사, 신념 있는 의사 기본적으로 긴 진료시간을 갖는다는 한 원장은 환자들에게 정성을 보여주며 이들의 마음을 얻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그 길이 본질적으로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의사라면 환자에게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환자들의 더 나은 치료를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의료인이다. 기초적인 분야를 많이 다루기에 교수진이 주를 이루는 피부과학회에도 그는 개원 첫해부터 병원 문을 닫고서라도 매해 학회활동을 하며 연구를 이어왔다. “각종 난치성 피부질환에 소소한 내용이라도 기초를 모르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어요. 진료의 팁도 늘어나게 되고요. 기초학회에 가서 세계 연구 자료들과 최근 핫이슈까지 공부하다 보니 환자에게 설명해줄 수 있는 폭도 넓어지고 검증된 새로운 치료법을 도입할 수 있어 저에게는 늘 도전이었습니다.” 심신이 지쳐 자신을 찾아온 이들에게 매번 긴 상담과 설득의 과정을 거쳐 치료에 임하게 만든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환자를 위하는 마음이 더 깊어졌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들에게 피부질환과 치료를 올바로 이해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한 끝에 원내 세미나를 열기 시작한 것이 4~5년 되었어요.” 교육을 받은 그의 환자들이 주변에 세미나 내용을 전할 정도가 되었다니 그를 돕는 동역자가 더 늘어난 셈. 고양시와 협력해 아토피교실을 여는가하면 극동방송 라디오칼럼을 진행하는 등 아토피 피부염 교육과 강의에 보인 강한 열정은 환자를 꼭 잘 치료하겠노라는 그의 의료신념과 맞닿아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을 도와 성장시키며 탁월한 치료결과로 환자의 기쁨이 되며 발생한 수익으로 인재를 양성한다”는 ‘임마누엘피부과의 사명선언문’.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큼지막한 현판이 보이는 이 사명선언문을 되뇌며 다짐하는 한 원장은 1년에 한 번씩 선교여행을 떠나고 있다. 교회에서 선교팀장을 맡고 있기도 한 그는 선교를 갈 때 되도록이면 중학생, 고등학생들도 많이 동참케 한단다. “매해 선교여행을 다녀오면 1년에 한 번씩 인생의 틀을 갖추게 되는 느낌이 들어요. 학생들을 많이 데려가는 이유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꿈과 사역을 보여주고 싶고, 보는 시야를 하나님의 시야로 맞춰주고 싶어서예요. 인재양성이 저의 꿈이기도 하고요.” 미얀마 어린이센터, 러시아 신학교를 짓는데 보내는 후원과 국내외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자녀들을 물심양면 돕고 있는 그를 아버지로 섬겨서일까. 그의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자란 그의 자녀까지도 지구촌 아동 후원에 도움의 손길을 보태고 있다. 그의 열정적인 인터뷰는 어느덧 두 시간을 지나가며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었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을 물었다. “우리나라 미용시술이 자꾸 늘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시술이 늘어나는 이유는 보험이 적용되는 것만으로는 병원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의사라는 영역에서 충실히 진료하고픈 욕구를 가진 의사들이 대부분이지만, 우리나라 의료계의 씁쓸한 현실이랄까요. 어떠한 환경적 억압 없이 진료만 가지고도 운영될 수 있도록 수가나 제도적인 지원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양질의 진료를 위한 구조적 제도개선에 원만한 사회적 합의를 바란다는 그는 사회 통념적인 바람도 잊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든 어디서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는 모양이 상대의 마음은 모른 채 내 마음만 알아달라는 것 같아서 틈은 벌어지는 거겠죠.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토피 피부염 환자를 대할 때 이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헤아려 헌신적인 치료에 온몸을 실었던 그는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도 넓고 깊었다. 의사로서,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또한 아들로서 바람직한 롤모델로 그려지기에 충분했던 한기덕 원장. 그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나눔을 실천하는 이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았다. 그와 마주하는 모든 환자들이 씻은 듯이 낫게 되길, 소중한 나눔 실천으로 더불어 따뜻한 사회가 되길 소망하며, 지금껏 걸어온 것처럼 그의 앞날에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차고 넘치길 기도한다. ◈Profile대한피부과학회 정회원대한피부과의사회 정회원대한백반증학회 정회원, 평의원대한아토피 피부염학회 정회원대한여드름학회 정회원대한모발학회 정회원대한건선학회 정회원국립경상대학교 병원 피부과 외래교수동국대학교 일산병원 피부과 외래교수대한피부과학회 경기서부지부회 대한 아토피 피부염 연구회 간사대한탈모치료학회 간행이사 선임 (현)임마누엘 피부과 원장 1995년 경상의대 졸업2000년 경상대학 병원 전문의 과정 수료2000년 2월 피부과 전문의 취득 * 저서털나라 피부과 전문의 55인이 쓴 탈모 예방과 치료 가이드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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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20
  • [피아노리브레 김의영 대표 특별 인터뷰] 음악과 사람이 살아 숨 쉬는
    [위클리피플=김형섭, 오미경 기자] 열심히 일한 당신, 피아노와 함께 ‘여유’를 즐겨라 ‘음악과 사람이 살아 숨 쉬는 <피아노리브레>’ 김의영 피아노리브레 대표 드라마나 영화 속의 로맨틱한 상황에서 단골처럼 등장하곤 하는 것이 주인공이 멋진 피아노 연주와 함께하는 장면이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더해진 명장면을 볼 때면 누구라도 절로 “나도 한 번...”하는 의욕이 일어나기 마련. 하지만 어린 시절 한 번쯤 눌러보았을 법한 피아노 건반 기억의 대부분이 자의로든 타의로든 바이엘로 배우기 시작하는 평범한 피아노학원에서의 경험인지라 아직까지 피아노는 많은 성인들에게 가깝고도 먼(?) 존재로 느껴지는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오로지 성인들만을 위한 피아노 학원을 통해 지친 일상의 ‘힐링’같은 존재로 피아노에 대한 이미지를 재해석하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는 분명 새삼스러운 데가 있다. 피아노를 매개로 음악과 사람의 진정한 하모니를 그려가고 있는 <피아노리브레> 김의영 대표를 주간인물이 만나보았다. _취재 오미경, 김형섭 기자 / 글 김형섭 기자 피아노와 함께 하는 ‘힐링’, 성인을 위한 ‘학원 같지 않은 학원’ ‘피아노 학원’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는 ‘체르니’를 연습하는 어린 학생들이나 입시 준비생들인데 <피아노리브레>에는 어린 학생도 입시생도 없다. 김의영 대표는 어째서 ‘성인만’ 올 수 있는 피아노 학원을 생각하게 된 것일까. “물론 학생들이나 입시생들 문의도 많이 와요. 학원을 경영하는 입장에서야 그런 문의를 받는 게 낫겠지만 저는 정말 말로만 ‘성인전문 피아노 학원’이 아니라 제대로 된 성인 전문 피아노 학원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런 문의는 모두 받지 않고, 성인 취미 수강생들만 받는 겁니다.” 그녀의 나이 올해로 스물여덟, 앳된 외모와는 반대로 시작부터 그녀의 대답은 확고했다. 김의영 대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개인 레슨을 시작해 약 15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소문난 실력자로 인정받아온 전공분야 수재였다. 그러나 그녀는 개인 레슨을 하면서 늘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피아노라는 악기는 손이 건반을 누르는 느낌을 기억해야 하는데, 마음 놓고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학생들의 실력 향상을 기대한다는 것이 조금 어려웠어요. 성인들의 경우는 본인의 의지로 배우고자 하면서도 바쁜 생활에 치여 규칙적, 지속적으로 레슨을 받기도 어려웠죠.” 김의영 대표는 “대다수 일반 피아노 학원의 경우 성인들이 어린 학생이나 입시생들과 같은 공간에서 레슨을 받는 경우가 많아 시작부터 거부감이 클 수밖에 없다”며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우리나라의 정서상 이런 점을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고 말했다. 편안한 연습공간이 없다는 것이 피아노가 여가 생활의 범주에 들어가는데 있어 사람들이 느끼는 첫 번째 진입장벽이라 생각한 김 대표는 음악을 시작하는 것에서 부터 거부감이나 부담감을 적게 느끼면서 할 수 있는 환경을 고려하여 성인들만을 위한 학원을 구상했다. 그리하여 스페인어로 여가를 뜻하는 ‘리브레’ 라는 이름을 걸고, 피아노를 통해 지친 일상을 마음 편히 위로받고 즐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학원 같지 않은 학원’을 꿈꾸며 <피아노리브레>를 열게 되었다. 촉망 받는 피아노 전공자에서 사업가로의 변신 촉망 받는 피아노 전공자로서의 길을 걸어 온 김의영 대표는 더욱이 부모님이 공부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 덕분에 학창시절 공부도 줄곧 잘하는 편이었다. 학교 선생님이었던 그녀의 어머니는 자녀들의 꿈과 학업을 지원하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뒷바라지 하실 정도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고, 똑 부러진 그녀의 성격과 부모님의 든든한 응원에 힘입어 김 대표는 주어진 기회를 두고 끊임없이 경쟁하는 음대에서도 꾸준히 장학금을 받으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김의영 대표가 음악 가운데서도 피아노를 전공으로 선택하게 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돌고래가 피아노 건반 위에서 노는 꿈이 제 태몽이었대요. 어머니는 얼핏 음악을 시켜야하나 생각하시긴 했지만, 정작 제가 피아노를 배운 건 여섯 살 때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직접 졸랐기 때문이었어요. 쑥스러운 이야기지만 당시 학원에서는 저를 보고 천재라고 이야기 했다고 해요. 이 아이는 꼭 음악을 해야 한다고. 그렇게 스스로 좋아 피아노를 즐기며 시작하게 됐어요.” 그러나 김 대표는 여느 악기 전공자처럼 어릴 적부터 쉬지 않고 음악과 악기만을 익히는 길을 걷지는 않았다. 다른 학업도 중요하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 중학교 때는 잠시 휴식기를 가졌고, 가장 중요한 시기에 음악을 쉬었던 그 때의 경험은 오히려 그녀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지금껏 음악을 즐길 수 있었던 바탕이 되었다. 이처럼 스스로가 피아노를 즐기며 시작해 지금에 이른 그녀이기에 당당하게 ‘여가를 즐기자’는 모토로 <피아노리브레>를 열 수 있던 셈이다. 그러나 그녀는 <피아노리브레>가 탄생하기 까지 탄탄대로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전공분야에의 소질이나 욕심이 남달랐던 김의영 대표였기에 가족, 담당교수님, 친구들 모두 그녀가 유학을 통해 전형적인 음악인으로서의 공부를 계속할 것이라 생각했고, 성인만을 위한 피아노 학원을 한다고 했을 때는 만류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다. “주변에서 많이 걱정하셨어요. 저 역시도 이 길을 갈 줄 몰랐으니 그런 반응은 사실 당연한 거였죠. 그래도 제가 생각하는 공간을 꿈꾸며 <피아노리브레>을 준비했고, 학원 위치부터 인테리어까지 작은 곳 하나하나에 제 손길이 닿았기에 애착이 남 달라요.” 아직 어린 그녀지만 <피아노리브레>를 바라보는 애정만큼은 여느 중견 사업가 못지않은 모습이었다. 피아노 학원과 문화 공간의 교집합 <피아노리브레> <피아노리브레>에 들어서면 흡사 카페나 바(bar) 같기도 한 풍경이 펼쳐진다. 여가를 즐길 여유가 없는 성인들을 위해 그녀는 <피아노리브레>를 단순한 피아노 강습 공간만이 아닌 일종의 문화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 바람을 담았다. 동시에 내실을 다지는 것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최상의 피아노 퀄리티와 방음시설을 기초로 하여 본원과 분원 평균 스무 개에 이르는 연습 방을 만들었고, 다양한 목표와 성향, 라이프 스타일을 가진 성인 수강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자체적인 교재 개발을 거듭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 대표는 나중에 자신이 없더라도 사람들이 강사들을 믿고 <피아노리브레>를 찾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은 노력의 일환으로 강사 채용과 교육과정에 있어서도 깐깐하다고 자평했다. 그리고 이것은 곧 레슨의 퀄리티로 이어져 <피아노리브레>만의 자신감 넘치는 명성을 만들고 있었다. 그 중 특히 수강생과 강사, 대표의 구분 없이 구성원들 간의 편안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자연스레 음악과 관심사를 공유하는 모습은 여느 학원에서는 볼 수 없는 <피아노리브레>만의 특징이다. 마치 동호회 활동 모습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하게 할 정도로 다양한 정기모임과 MT 활동 등을 통해 돈독한 관계를 자랑하고 있다. 그녀가 원장실 대신 만든 학원의 홀 공간 덕분에 오히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웃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고, 그것이 <피아노리브레>의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구성원 간의 관계는 <피아노리브레>의 다양한 활동에도 든든한 바탕이 되고 있다.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개인적으로 연주회를 열기도 하지만, <피아노리브레> 가 주최하는 정기적인 연주회를 진행하고 있어요. 매번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지요. 이런 연주회가 끝나면 저 뿐만 아니라 연주자들에게도 좋은 추억으로 그 여운이 길게 가더라고요” <피아노리브레>의 연주회를 지원하겠다는 연락도 많아져 최근에는 서울시 문화재단에서 후원을 받고 유채꽃 축제 기간에 ‘시민과 함께 하는 <피아노리브레> 한강 연주회’를 진행해 이목을 끌었다. “한강시민공원,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잖아요. <피아노리브레>가 지향하는 방향과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도 매력적이었고요. 그리고 꽃과 강, 피아노. 상상만 해도 좋은 그림이잖아요.(웃음)” 카페 같은 공간에서 피아노와 함께 여유를 즐기는 것, 멋지지 않나요? 엄마에게 억지로 등 떠밀려 오는 학생들이 아닌, 자의로 <피아노리브레>를 찾아오는 성인들의 모습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느낀다는 김의영 대표. 그녀는 <피아노리브레>를 개원 일 년 만에 수많은 수강생이 찾는 학원 규모로 키워 놓은 것에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것들을 계획하고 있다. “아직은 하고 싶은 것이 많아요. 제가 계획하고 있는 많은 것들을 통해 사람들이 <피아노리브레>를 찾아 편하게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어요.” 이를 위해 김 대표는 음악 공부에 대한 욕심을 잠시 내려놓고 예술 경영 분야의 학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누구나 음악으로 ‘힐링’이 될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할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피아노리브레>를 통해 피아노를 어렵게 느끼지 않고 편하게 시작해주면 좋겠어요. 카페 같은 공간에서 피아노와 함께 여유를 즐기는 것, 멋지지 않나요?” 김의영 대표의 말에는 피아노가 사람들의 여가 생활의 벗이 되기를 바라는 진정성이 오롯이 담겨있었다. <피아노리브레>의 수강생들로부터 “항상 음악을 즐기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행복하다는 김 대표. 인터뷰 내내 우리는 음악을 통해 새로운 문화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그녀의 열정을 마주할 수 있었다. 더불어 <피아노리브레>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모습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강사들이 있어 고맙다며, 특히 “강남본원의 김성주 실장님이 있어 항상 든든하다”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주변인을 대하는 김 대표의 따뜻한 마음도 느낄 수 있었다.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은 피아노를 사랑하고, 삶을 즐길 줄 아는 김의영 대표가 있기에 <피아노리브레>가 일으키고 있는 ‘음악과 악기, 사람이 한데 모여 만드는 살아 숨 쉬는 문화 공간’이란 물결이 우리 사회에 많은 파동을 일으킬 날도 머지않았음을 믿는다. Profile.성인전문 음악학원 <피아노리브레> 대표숙명여자대학교 음악대학 피아노과 졸업2005 Oliver Kern Masterclass 수료2005 전국학생음악콩쿨 입상2006 음악교육신문사콩쿨 입상2007 DM 듀오연주회 연주2008 Sookmyung 춘계음악회 연주2010 전국신인음악콩쿨 입상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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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12
  • [손호찬피부과 손호찬 원장 특별 인터뷰] "꼭 필요한 최소한의 치료로 평생주치의가 되겠습니다”
    [위클리피플=오미경, 김형섭 기자] 본연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피부를 완성하는 휴먼닥터를 만나다! “꼭 필요한 최소한의 치료로 평생주치의가 되겠습니다” 손호찬 <손호찬피부과> 원장 / 피부과 전문의/ 의학박사 영국의 낭만파 거장 키츠(Jonh Keats)는 그의 시에서 ‘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기쁨’이라고 노래했다. ‘아름다움’이란 본디 주관적인 것이기에 그의 말대로라면 영원한 기쁨을 주는 아름다움은 각자의 판단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외적인 아름다움은 남녀노소 누구나 일생을 품고 있는 욕망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외모를 결정짓는 것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이제는 그야말로 생김새보다 먼저 기준이 되는 것이 ‘주름과 흉터 없는 깨끗한 동안 피부’인 시대. 그러나 열풍에 가까운 이러한 흐름 속에서 과연 우리는 피부의 근본적인 건강을 지키는 것에는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을 런지 의문이다. 오늘 주간인물은 환자와의 진정한 소통을 바탕으로 본연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피부의 완성을 꿈꾸는 휴먼닥터, 손호찬 원장을 만나 건강하게 예뻐지는 길을 그려 보았다. 취재_오미경, 김형섭 기자/ 글 오미경 기자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던 시간보다 늦어지는 일은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인을 만날 때면 으레 있을 수 있는 경우지만, 보통 그럴 때 관계자를 통해 양해를 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손호찬 원장은 갑작스레 환자가 밀려들어 인터뷰를 갖기로 한 시간이 다소 지체되자 취재진이 기다리는 대기실까지 나와 정중히 상황을 설명하고 거듭 미안함을 표현하는 모습에서 남다른 첫인상을 안겼다. basic으로 돌아가 <손호찬피부과>로 태어나다 “환자와의 친밀감을 만드는 것이 간혹 쉽지 않다고 느낄 때면 그런 점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개원의 이유를 묻자 조심스럽지만 단호한 말투로 손호창 원장이 말문을 열었다. 사실 손호찬 원장은 단독 개원을 하기 전, 유명한 대형 피부과 병원 강남점에서 책임원장을 맡아 온, 알만한 이들은 다 아는 검증된 실력의 전문의이다. 그러니 그가 안전한 명성을 뒤로 하고 개원을 하게 된 이유를 제일 먼저 궁금해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 “정확히 말하면 개원을 먼저 염두에 두고 이전의 병원을 그만 둔 것은 아니에요. 쉼 없이 달렸고, 한 1년 정도는 그간 느낀 것들을 정리할 시간을 갖고자 미국으로 가 제 시간을 가졌죠. 그러면서 내 인생에서 지금 이 시기에 어떤 결단을 내린다면 앞으로도 큰 의미가 되리란 확신이 들었고,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의사로서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습니다.” 손호찬 원장은 개원을 하며 3가지를 진료의 중심에 두었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평생주치의’의 마음으로 늘 연구, 치료하고자 하는 것이다. 피부과의사로서 많은 환자들을 접하고 인연을 맺으며 때로는 초등학생이었던 환자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보고, 때로는 장기간의 해외연수나 유학을 마친 후에도 다시 찾아오는 환자를 보아 온 그는 누군가의 인생사에 오래도록 동반자가 된다는 사실에 이러한 마음을 먹었다고. 두 번째는 단순히 눈앞의 문제 해결에 그치지 않고 환자에게 꼭 맞는 진료와 해결책을 제시하는 ‘맞춤진료’이다. 그리고 손 원장은 “무엇보다 환자가 ‘그 병원에 가면 믿고 맡길 수 있다’는 편안한 생각을 하려면 진심을 다한 소통과 공감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세 번째로는 ‘휴머니즘’을 꼽았다. 그의 이런 뜻을 담아 ‘본연의 건강한 아름다움’을 모티브로 도안된 <손호찬피부과>의 로고에는 개원을 통해 Basic을 추구하고 싶었다는 손 원장의 진심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다. ‘본연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피부’를 위하여 손호찬 원장이 전문 분야로 해 오고 있는 모든 치료는 ‘피부 건강’을 기초로 한다. 국내외의 활발한 학회 참여 및 발표, 학술 교류를 통해 빠르게 변하는 선진 의료기술의 국내 도입초기 정착화에 기여해 온 손 원장은 특히 레이저장비를 이용한 주름치료, 미백치료, 여드름치료 분야에 뛰어나며 레이저와 마이크로니들을 이용한 복합흉터 치료영역에서도 실력이 자자해 그의 이름만 듣고 병원을 찾는 이들도 상당수다. “저는 사실 코스메틱 관점이 주가 되는 치료라도 교과서적인 방법을 기본으로 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 가지 치료를 많이 받았지만 치료가 잘 되지 않는다며 내원한 여드름환자 중에는 여드름과 함께 동시에 바탕피부에는 피부자극증상도 있는 경우가 왕왕 있어요. 이런 경우 피부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히 여드름만을 없애는 치료를 지속하면 의도하지 않게 자극성피부염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왜냐하면 얼굴피부만 해도 부위에 따라 지성, 중성, 건성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에 치우친 치료만 하면 결국 바탕피부가 망가지는 결과가 초래 될 수 있거든요.” 손 원장은 “이럴 때 당장 필요한 것은 수술이나 레이저가 아닌 피부에 문제를 일으킨 원인을 제거 및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음을 환자에게 이해시키는 것”이라며 실제로 이 같은 변화만으로 환자의 피부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가 많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한편, 손 원장은 주름탄력이나 리프팅치료에서도 과도한 자극으로 피부에 스트레스가 되지 않도록 환자의 피부 타입과 처해 있는 여건 등을 충분히 진단·파악하여 가장 적합한 치료 강도와 간격을 설정하는 방법을 중심으로 하며, 무엇보다 자연스레 피부가 좋아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특히 사회활동이 많은 연령층이라도 다운타임을 최소화하면 서 안전하게 시술을 받을 수 있는 고강도 직접 초음파 장비인 더블로리프팅, 색소 및 혈관, 탄력을 동시에 개선시킬 수 있는 엑셀브이레이저, 심한 모공과 탄력을 잡아주는 비바체RF, 귤껍질처럼 심하게 패인 여드름 흉터를 치료하는 에코2레이저를 시행하고 있으며 다양한 레이저 시술과 더불어 여러 가지 피부타입의 균형을 잡아주는 다양한 스킨케어 등 피부 건강을 배려하는 신념이 곳곳에 배인 최신의 첨단 진료를 시행하고 있다. 손호찬 원장은 무엇보다 “환자의 현실적 기대감을 이해시키고 최대한 정확한 진단으로 세심하게 결과를 예측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결국 의사와 환자가 함께 충분한 공감을 통해 목표를 합리적으로 정해서 같이 노력하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라 말했다. 덧붙여 그는 “피부는 항상 재생과 탈락을 반복하는 것이기에 피부 고민이 한 번에 크게 해결되길 바라기보다 꼭 필요한 최소한의 치료로 건강과 아름다움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피부를 신체기관의 하나로 인식하여 문제가 생기면 보다 적극적으로 전문의를 찾을 것을 당부했다. 휴먼닥터를 꿈꾸다 언뜻 보면 화려해 보이는 피부과의사란 직업이지만 사실 외부의 변화나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건강과 본연의 아름다움’이라는 균형 잡힌 가치관을 실천하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손호찬 원장이 왜 그 ‘쉽지 않음’을 선택했는지가 더 궁금해졌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가까운 지인들에게 조차 잘 하지 않는다며 그는 꽤 오래 망설인 끝에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렸을 적, 심하게 다쳐 수술을 받은 기억이 있는데 수술 방 천정을 보며 누우니 의사의 존재감이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그게 의사가 된 첫 계기랄까요. 그리고 학생 때 읽은 󰡔성채 [The Citadel, 城砦]󰡕라는 소설에서 느낀 휴머니즘에 입각한 의사 정신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자기 헌신이 뒷받침 되는 의사, 멋있지 않나요.(웃음)” 그래서인지 어릴 적부터 ‘실력 있는 로컬의사’를 꿈꿨다는 손 원장은 피부과 의사로 인연이 닿아 지금에 이른 만큼 “앞으로 많은 분들이 보다 편하고 쉽게 드나들 수 있고, 재능도 나누는 따뜻한 병원이 되고 싶다”고 희망했다. 진료 마감시간을 훌쩍 넘겨 인터뷰가 끝났지만 의학 분야에 몸을 담가온 20여 년이 넘는 시간을 곰곰이 돌아본 기회가 된 것 같다며 미소를 짓는 손 원장을 보면서 의사로서 또 다른 출발선에 서서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있는 그가 이미 책을 통해 자신이 그렸던 ‘휴머니즘이 빛나는 닥터’와 많이 닮아 있음을 취재진은 느낄 수 있었다. 의사로서 더욱 깊어진 그의 무게감만큼이나 깊어가는 이 가을,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은 본연의 피부 건강과 아름다움의 완성을 위해 걷고 있는 휴먼닥터 손호찬 원장의 내일을 더 크게 응원한다. Profile손호찬 원장 피부과 전문의/의학박사전 아름다운나라피부과 강남점 책임원장대한피부과학회 정회원대한레이저학회 정회원대한여드름학회 정회원대한정맥학회 정회원미국피부과학회 정회원미국레이저학회 정회원미국피부외과학회 정회원경희대 의과대학 피부과 외래교수매일경제TV 메디컬센터 MC역임(저서)나이보다 젊어보이는 피부(도서출판 은행나무)맨얼굴 자신감 Whitening book(중앙 M&B)땀냄새 No, 향기 Yes(도서출판 은행나무)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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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12
  • [서기범 원장 특별 인터뷰] 세상을 치료하는 아토피 전문의를 만나다
    세상을 치료하는 아토피 전문의 서기범 원장의 ‘아토피 완치로 가는 길’ 서기범 씨앤유피부과 원장 / 씨앤유 아토피 전문센터 담당원장 / 충남의대 피부과 겸임교수 아토피 피부염은 난치성 질환으로 유명하다. 현대의학, 한의학, 대체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아토피를 치료하려고 노력했지만, 치료의 한계에 부딪혀 ‘아토피는 완치가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았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아토피 통합 치료 뿐 만 아니라 개인치료·전인치료를 통해 ‘아토피 완치’를 목표로 달리고 있는 피부과 의사가 있다. 바로 <씨앤유피부과>의 서기범 원장이다. 아토피 박사 서기범 원장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어본다. _취재 오미경, 이준영 기자 / 글 이준영 기자 Classic, Noble, Unique 최근 피부과 개원의들은 보통 피부질환보다는 피부미용에 중점을 두는 편이다. 그 편이 더 쉽고, 수익도 보장되기 때문. 하지만 씨앤유피부과 원장이자 아토피 치료 전문가인 서기범 원장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저희 씨앤유피부과의 뜻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Classic, Noble, Unique. 이 세 단어의 앞 글자를 따서 병원의 이름을 지었어요. 피부과 본연의 질환 치료에 집중하면서도 모발과 미용 분야까지 놓치지 않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특별한 병원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CNU’에 담긴 의미처럼 씨앤유피부과는 대전 지역의 토탈피부과전문센터로서 메디컬 스킨케어센터, 레이저센터, 아토피센터, 토탈헤어센터 등 다양한 피부과 질환들을 뛰어난 의술과 첨단장비를 이용하여 치료하고 있다. 특히 씨앤유 피부과의 아토피전문센터는 대전 지역에서는 물론, 국내 개원의 가운데 최초로 도입된 전문치료센터로 서기범 원장의 아토피 치료 실력을 듣고 전국에서 환자들이 찾아오고 있다. 아토피 없는 세상을 위하여 10년 동안 꾸준하게 아토피 환자들을 치료해 오고 있는 서기범 원장에게 아토피 질환의 근래 발병 추세를 물어봤다. 서 원장은 “최근 들어 성인아토피 비율이 증가하여 다양한 세대가 아토피로 고통 받게 되면서 아토피에 대한 관심이 더욱 늘어났다”고 강조했다. “아토피의 원인은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 이 두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그 원인이 너무도 다양하기 때문에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죠. 그렇기에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의사가 서로 오랫동안 상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덧붙여서 원장은 아토피 질환의 치료가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보다 아토피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도 그는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아토피 없는 아이 낳기’캠페인이다. 서 원장은 “아토피 치료 연구도 중요하지만, 아토피 예방 연구도 발맞추어 진행되어야 아토피의 완치에 가까워 질수 있다”라고 설명하며 “이 캠페인을 계속 알려서 많은 부모님들이 아토피 없는 튼튼하고 건강한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도록 돕고 싶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서기범 원장은 씨앤유아토피센터를 통해서 치료 부분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현대의학의 장점과 대체의학 치료 전략을 융합하여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씨앤유피부과만의 ‘3단계 개인맞춤치료’와 ‘특수면역치료’는 이런 노력의 결과물이죠. 앞으로도 계속 연구하여 보완·발전시킬 생각입니다.” 또한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서 원장은 ‘닥터스아토피포럼(DAF)’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의들과 정기적으로 의견을 나누며 한국형 아토피 치료의 개발과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아토피치료는 환자와의 공감과 소통에서부터 아토피 질환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많이 연구한 서기범 원장. 하지만 서 원장은 “아토피 질환을 많이 안다고 환자에게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다고 강조했다. “아토피는 지속적인 치료를 동반하는 질환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환자 자신이 ‘내 아토피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서기범 원장은 환자에게 원활하게 아토피 관련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씨앤유피부과만의 아토피 정보지를 만들었다. 서 원장은 “설명만 들을 때보다 환자들의 이해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에 진단과 치료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아이들에게 아토피 질환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어른에게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고 서 원장은 설명했다. “아토피 질환에 대한 내용은 전문용어도 많고 재미있는 요소가 없기 때문에, 아이들이 집중하여 설명을 듣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서기범 원장이 만든 것이 바로 ‘아토피제로’. 비교적 쉽게 아토피 질환에 대한 정보를 담았고, 그림과 만화를 통해 아이들이 집중해서 볼 수 있는 콘텐츠로 구성된 책이다. 실제로 그에게 치료를 받는 어린 환자들은 책을 통해 아토피에 좋지 않은 습관을 쉽게 이해하여 자연스레 생활습관의 개선에 도움이 되었다고. 주는 삶을 살고 싶다 “저는 받은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제는 주는 삶을 살아야죠.” 서 원장은 의사로서 연구하고, 치료하고, 개인병원을 개원하면서 축복받은 삶을 살았다고 설명하며 이제는 ‘진정한 주는 삶을’ 살고 싶다고 전했다. 이미 서 원장은 15년 전부터 교도소를 방문하여 재소자들을 위한 의료 봉사를 펼치고 있으며 취재진을 만난 그 날 역시도 휴진일을 뒤로 한 채 봉사에 여념 없는 모습이었다. 또 대전지역 의사회 의료지원 활동과 네팔 의료봉사 등 다양한 국내외 봉사활동을 통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 중이다. 뿐만 아니라 서기범 원장은 환경에 대한 관심도 남다르다. 그는 ‘대전시민환경연구소’ 이사로 자리하며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민 중이다. “아토피 질환에 대해 연구하다 보니 자연히 아토피의 발병 원인이기도 한 환경문제에도 관심이 많아졌어요. 아토피의 원인이 되는 요소들을 파악하고 있어야하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 저절로 관심이 가게 되더군요.”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나니 어렸을 적 ‘슈바이처’처럼 되고 싶었다는 그의 꿈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토피 환자들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꾸준한 봉사로 사회에 기여하는 서기범 원장.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은 서기범 원장과 같은 ‘좋은 의사’들의 손길이 사회 곳곳에 퍼질 수 있도록 의료계에 힘이 모아지기를, 그리하여 사람의 가려운 곳 뿐 만 아니라 세상의 가려운 곳까지 치료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profile前 충남의대 피부과 교수충남의대 피부과 겸임교수일본 동경 준텐도 의과대학 피부과 방문교수 대한 피부과 학회 정회원대한 피부연구 학회 정회원대한 아토피 피부염학회 상임이사건강보험 심사평가원 피부과 전문위원DAF(닥터스 아토피 포럼) 학술위원장씨앤유피부과 원장(아토피센터)‘아토피제로’ 소아 인지학습도서 저자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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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05
  • [분당 ms성형외과 김인규 원장 특별 인터뷰] 마음 속 봄을 찾아주는 '동안성형'의 명의 김인규 원장을 만나다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이선진, 이준영 기자] 마음 속 봄을 찾아드립니다! 김인규 ms성형외과 원장 / 성형외과 전문의 ms성형외과 사이트를 보면 여느 성형외과 사이트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사진이나 광고성 이미지 보다는 올바른 의료정보를 전달코자 하는 텍스트가 다수인 것. 여기에는 김인규 원장의 굳은 신념이 담겨있다. “상담을 할 때도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고객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끔 충분히 설명해드리는 편입니다. 꼼꼼한 상담과 사전준비는 수술 완성도의 기본이거든요. 처음 내원하시고 충분한 상담을 거친 후 고객의 요구사항과 실제 가능한 범위, 기타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충분한 정보공유로 차별화된 진료를 하고자 합니다.” 성형외과 전문의인 그는 올바른 성형정보와 조언을 들려주기 위해 그간 수많은 성형칼럼을 연재해왔다. 성형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인터넷 포털에 ‘김인규 원장’을 검색해보거나 이 병원 홈페이지를 주목해보라. 주옥같은 알짜배기 성형정보들이 속속들이 드러날테니 말이다. 과장된 설명이나 기대심리를 유발하지 않고 정직하고도 충분히 검증된 효과 있는 진료를 표방하고 있는 김인규 원장. 많은 모델들의 성형주치의이자 2007년부터 각종 레이싱모델 심사위원으로 꾸준히 위촉되어온 그는 감각적인 안목과 전문실력으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오늘 <주간인물>은 정도를 걷는 소신 진료로 많은 이들에게 동안미인의 꿈을 이루도록 한 김인규 원장을 만나 그의 전문가적 조언을 들어보았다. _취재 이선진, 이준영 기자 / 글 이선진 기자 ‘동안성형’으로 젊고 밝게 사는 법!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 전공의를 수료한 김인규 원장은 공중보건의 시절을 인천 영종도 옆 작은 섬마을에서 지냈다. 의료기관이 하나밖에 없었던 그곳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마주하며 무료 이동진료를 했던 것이 그의 첫 의사생활의 시작이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무료 이동진료를 돌며 열심히 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진료를 보면서 ‘사람 심리를 편하게 해줄 수 있는 부분을 내가 좋아하는구나’라는 점도 새로이 느낄 수 있었고요.” 진심이 통했을까. 마음을 다해 진료한 것이 입소문이 퍼지자 여러 방송사에서 취재요청이 들어왔고 그는 ‘섬마을 지킴이’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의료계에 발을 딛게 된 그는 대학에서 fellow 연구강사, 전임강사를 거쳐 분당 ms성형외과를 개원, 올해로 7년차를 맞이하며 많은 이들에게 새 희망을 선사하고 있다. ms성형외과의 ms는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Mind Spring의 ‘ms’를 딴 약자입니다. ‘마음 속 봄을 찾아드립니다’라는 뜻이죠.” 마음속의 자신감을 회복하여 인생의 봄날을 선사하겠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개원한 ms성형외과는 남녀노소 누구나가 꿈꾸는 동안성형에 사명감과 자부심을 갖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전에는 성형을 하는 목적이 대부분 ‘예뻐지는 것’이었으나 요즘에는 더 젊고 밝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 더욱 다양한 연령층에서 동안성형을 선택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렇다면 동안의 조건이란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김 원장은 ‘피부상태’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피부가 하얗고 깨끗하다든지, 다크서클이 없고 눈밑에 도톰한 애교살이 있다든지 큐트포인트를 살려준다면 동안의 이미지가 형성될 것입니다. 불필요한 지방이나 처진 부분을 흉터나 흔적 없이 자연스럽게 리프팅하는 시술 등으로 높은 만족을 드리고 있습니다.” 또한 동안성형을 포커스로 한 데에는 ‘눈성형’이 중요한데, 눈 주변의 피부는 노화에 영향을 많이 미치며 그 중 눈 주변의 조직과 지방층의 피부 탄력도가 감소될 때 눈 밑이 불룩해지고 피부가 처져보이는 현상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욱 심해지기 때문이다. “연령대 별로 노화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추천하는 솔루션도 다릅니다. 20~30대와 같은 젊은 층에서는 주로 눈밑지방이 불거져서 생기는 다크써클이나 옅어지거나 없어지는 애교살과 큐트포인트에 대한 ‘동안성형’을 추천하고, 40~50대의 장년층에서는 눈썹이 처지고, 늘어지는 눈꺼풀처짐과 눈밑에 불거지는 지방과 주름들, 처지면서 꺼져가는 볼살 증상에 대한 ‘동안-회춘성형’을 추천하는 편인데, 그중 가장 반응이 좋은 대표적인 수술은 ‘눈밑지방이동술’과 ‘엔도타인 성형’입니다. 본인의 인상은 크게 바꾸지 않고 흉터가 남지 않기 때문에 어찌보면 동안성형의 큰 의미를 가장 충실하게 담은 수술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아름답고 생기 있는 동안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김 원장은 “눈밑 지방으로 인한 다크서클이 생기는 현상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눈밑의 지방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눈밑의 지방이 꺼진 부위로 재배치시키는 ‘눈밑지방이동술’이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흉터가 생기지 않고 눈 밑 애교살을 만드는 안륜군의 톤이 약간 증가하면서 애교살이 강화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게 되는 것. 40대 이후 눈밑 지방이 불룩해지는 현상과 함께 눈밑 주름이 많아지고, 애교살이 없어져 처진 경우에는 눈밑의 지방을 재배치하면서 주름까지 개선할 수 있는 ‘하안검 성형술’이 효과적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 실천하고 싶어동안성형의 메카로 자리매김한 분당 ms성형외과. 동안성형이라는 한 가지 빛나는 목표를 위해 직원들과 조화로운 하모니를 이루며 이곳을 이끌어가고 있는 김 원장은 ‘수술의 완성도가 높은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수술에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어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 더욱 성의있게 진료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컨디션 관리도 중요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의 힘 있는 말 속에 자신감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차가운 머리와 냉철함을 유지하며 실수함이 없도록 늘 다짐하고 노력하는 김인규 원장은 학창시절부터 취미로 이어온 기타 연주에도 손을 떼지 않고 있다. 악기를 다뤄서 좋은 건, 일과 삶에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점에서도 득이 되겠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보다 풍요로운 인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개인적인 꿈은 언젠가 라이브 바를 운영하는 것이에요. 배고픈 뮤지션들을 도와주는 것이 꿈입니다.” 더불어 의료인이자 사회 구성원으로서 무료봉사나 재능기부 등 사회공헌 활동을 할 기회가 앞으로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김인규 원장. 수술을 마친 늦은 저녁시간, 컨디션이 좋지 않음에도 진심을 담아 열정적인 인터뷰를 이어가던 김 원장의 모습은 긴 시간 여운으로 남았다. 외모도 경쟁력이 된 시대. 거울 속에 늘어가는 주름과 다크서클을 바라보며 언제까지 한숨만 짓겠단 말인가. 움츠러 있던 많은 이들이 그를 만나, 마음 속에 봄이 어서 꽃피었으면 좋겠다. ◈profile연세대학교 졸업 세브란스병원 전공의 수료연세대학교 신촌세브란스병원 외래교수전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전임교수前 압구정 더 스타일 성형외과 원장대한 성형외과학회 정회원대한 미용성형외과학회 정회원대한 수부외과학회 정회원TAIWAN CHANGGUNG MEMORIAL UNIVERSITY HOSPITALINTERNATIONAL FELLOWSHIP각종레이싱모델 심사위원 역임(2007.1~)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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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04
  • [아일린의원 한의원 김서연 원장 특별 인터뷰] 양한방(서양의학·한의학) 병행치료로 '꿈꾸게 하는 아름다움'을 선사하다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전준호, 이선진, 김형섭 기자] 양한방(서양의학·한의학) 병행치료로 만들어 가는 김서연 원장의 ‘꿈꾸게 하는 아름다움’ 김서연 아일린의원 한의원 원장 / 의사·한의사 양한방 협진 전문인정의 / 대한의사한의사 복수면허의사협회 학술이사 이른바 융합 시대다. 산업은 물론 국가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분야에서의 결합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는 융합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제는 의학계에서도 융합의 바람이 불고 있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의 협진이 그것이다. 그리고 협진을 넘어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다소 낯선 ‘양한방 통합 진료’를 테마로 환자들에게 ‘꿈꾸게 하는 아름다움’을 주고자 노력하는 미용의학 분야의 의사가 있다. 바로 <아일린의원 한의원>의 김서연 원장이다. 아름다움의 중요성과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 나날이 커지는 지금, <주간인물>은 성공적인 양한방 통합 진료 모델로 자리 잡은 김서연 원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_취재 전준호, 이선진 기자 / 글 김형섭 기자 새로운 꿈을 갖게 하는 양한방 전문의 “새로운 꿈을 갖는다는 것이 어떤 건지 잘 알아요. 지금은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저는 꿈이 없는 삶을 살았거든요. 환자들에게 제 진료를 통해 새로운 꿈을 갖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양한방 병행이라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돌아온 김서연 원장의 대답이다. 양한방 병행치료를 연구해오며 진료한 환자들이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줄 때마다 가슴 벅찬 느낌을 받았다는 그녀는 자신의 현재 삶에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시도에 얽힌 일화가 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체는 유기적으로 얽혀 있기에 사람을 만나고 관찰하는 것 자체가 큰 공부가 된다는 김 원장. 그녀에게 환자는 처음부터 지금 같은 의미였을까. 사실 김 원장은 어린 시절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으셨던 부모님께 칭찬받고 인정받기 위해서 공부해왔노라고 고백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었던 그녀는 전교회장이며 각종 어린이단체 회장을 도맡는 등 그야말로 모범생이었다. 김 원장의 어머니는 그녀가 네 살 때 피아노를 배우게 하셨고 일곱 살 때 동빙고동에 있던 원어민 집 딸과 친구를 맺게 해주시는 등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전 많은 기회를 주셨었다. 어릴 적부터 여러 피아노 대회에서 입상을 했던 그녀는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었노라 으레 이야기했지만 갑자기 손가락에 생긴 종양으로 인해 그 꿈은 좌절되고 만다. 수술을 받게 된 손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그 날 이후 그녀의 꿈은 ‘수술해주신 의사선생님과 같이 되는 것’이었다 한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의사가 되고자 했던 이유도 처음에는 단순한 이유였어요. 사회적 지위나 닮고 싶은 이미지 같은. 어떤 다른 목표가 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나 2005년 갑작스러운 출혈과 함께 찾아온 그녀가 겪은 첫 아이와의 이별은 의사로서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남편과 자신이 의사임에도 스스로 무언가 어떻게 할 수 없었다는 생각에 우울증에 빠지게 될 수도 있었을 무렵, 서양의학에서 보게 되는 원인불명의 병에 한계를 느끼고 한의학 관련 정보들을 조사하며 공부하기 시작한 것. 한의학 책을 접하게 됐던 데에는 한의학도인 여동생의 영향도 있었다. 당시 한의학 서적에 종교서처럼 빠져 들었다고 밝히는 김 원장은 이후 한의대로의 편입을 통해 서양의학, 한의학 두 분야에서의 경험과 지식을 갖춘 양한방 협진 전문의가 될 수 있었다. 김 원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공부가 그렇게 재미있었던 적이 없어요. 이미 의사였기에 책 속의 구절 하나하나가 다르게 느껴졌고, 방학이나 야간에 진료하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어요. 그러면서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줄 수 있다는 건 정말 고맙고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김 원장이 한 때 불임·난임·출산 등의 문제로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관련 정보를 올리기 시작했던 카페는 단기간 회원수가 1만명에 이르기까지 했다. 꿈을 꿀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결심이 누군가의 희망이 되었던 것이다. 김 원장의 이런 결심은 ‘기품 있게 빛나는 아름다움’을 뜻하는 ‘아일린’이라는 이름에서도 잘 드러난다. “미적 감각과 꽤 괜찮은 손재주, 양한방 협진을 통해서 ‘건강한 아름다움’, ‘기품 있게 빛나는 아름다움’을 전해드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불임·난임 치료 대신 미용의학을 택한 것에 후회가 없다는 김 원장은 건강한 아름다움을 찾아감으로써 임신에도 분명히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한편, 김 원장은 양한방 협진과 병행의 차이점에 대해 “양한방 협진의 경우에는 의사와 한의사가 각자의 혹은 서로의 입장을 생각해서 스스로 걸러내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생기게 되는데, 보통 거기서 갭이 생길 여지가 많죠. 반면 양한방 병행은 양쪽의 분야를 경계 없이 넘나드는 것이 큰 메리트예요”라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자유롭게 양한방을 넘나들며 주변으로부터 독특하거나 창의적인 시술을 개발한다는 찬사를 많이 받고 있다. 자연과 미술작품 등에서 모티프를 얻는다는 김서연 원장은 환자 개개인의 특성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진료하는 양한방 병행 진료의 장점을 설명하며 계절에 따른 나무의 변화를 예로 들었다. “계절적으로 봄에는 식물의 수액을 느낄 수 있고, 가을에는 가지가 말라가는 것으로 차이가 나듯이 사람마다 살성, 피부 탄력이 다르고, 계절마다 다르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종합적인 부분에서 살펴보는 한의학적인 토대를 잡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리고 양의학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응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고, 과감한 시도가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이죠.” 그녀의 과감한 시도들은 본인에게 직접 하는 안정성 테스트들이 전제된다. 인터뷰 당일에도 본인의 얼굴 절반에 안정성 테스트를 하기 위해 레이저 시술을 받았다며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진심어린 의사의 자세가 느껴졌다. 최근 그녀는 화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루시안 프로이드의 그림에 빠져 있다. 모델과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그 사람의 실체를 담아내고자 했다고 하는데 역시 의사라서 그런지 해부학이 스며들어 있다. “루시안 프로이드는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서서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앉아서 하는 작업에서 잃게 되는 부분들이 싫어서 자유롭고 싶어서라고 하는데 이를 보고 한건 아니지만 매선침이나 필러시술, 리프팅 시술 시 저는 서서, 받으시는 분은 앉아서 받게 해드릴 때가 많습니다.” 중력의 영향을 배제하고자 시작한 일이기도 하고 시술할 때 좀 더 자연스러운 느낌을 받아서란다. 하얀 피부에 의사 가운이 참 잘 어울리는 그녀. 시술하는 그녀의 모습은 예술작품이자 한 폭의 그림 같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의 경계 넘나드는 연구, 꾸준히 노력할 것 김서연 원장은 양한방 병행 분야의 전문가로서 다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미용의학적 양한방 병행치료 프로토콜을 정립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함은 물론, 대한의사한의사 복수면허의사협회에서 학술이사를 맡고 있는 김 원장은 학술 발표에서도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의 경험을 나누려고 노력한다. 많은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리프팅, 안티에이징 시술을 위한 매선침과 필러시술에 한의학적인 보사개념을 적용해서 시술하는 아큐필테라피를 고안하여 시술에 대한 강의를 진행, 많은 관심과 격려를 받았고, 학회 및 세미나를 통해서 ‘의사를 교육하는 의사’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본인의 콜라겐이 재생되는 것을 이용한 엘란쎄 필러 시술은 외국인에게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의료관광을 대전시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김 원장은 아큐필테라피 이외에도 본인이 임상자문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레이저나 초음파 장비를 이용하여 ABC토닝, 물방울레쥬베, 실크리프팅, 돌체드로잉, 애교매선, 시크릿물광주사 등 다양한 시술을 고안하여 시술 만족도를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편 김 원장은 표진인 박사와 함께 닥터24시라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잘못된 의학 정보들에 대한 진실을 밝혀주고, 정확한 양질의 정보를 전달하는 부분에서의 가치가 매력적이었기에 도전해 볼 만 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더 좋았던 점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저 스스로도 성장하는 기회가 된다는 점이예요. 다른 분야에서 이미 대단한 성과를 이룬 동료, 선배들을 만나며 녹화 때 마다 더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울 수 있어요”라며 감사한 기회라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활동들에 대해 그녀는 “최적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양쪽 의학의 경계를 머리 속으로 자유롭게 넘나들며 연구한 부분들이 인정을 받고 있는 것 같다”면서도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역시 의사로서 항상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소견을 밝혔다. 더불어 대한의사한의사 복수면허의사협회에서 양한방 병행과 끊임없는 검증을 통해 더 나은 의료 환경을 제공하고자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엄마 같은 손길로 꿈을 꿀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의사 인터뷰 말미, 좋은 의사란 어떤 의사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김 원장은 “환자의 아픔을 자기 아픔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환자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조심해야죠. 의사로서 가져야 할 냉철한 부분은 필수적이니까요”라고 대답했다. 덧붙여 “의사 본인이 가장 건강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내가 최고라는 자부심도 있어야 하겠죠. 결과적으로는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고, 더 많은 꿈을 꿀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의사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라며 자신이 가진 의사로서의 가치관을 분명히 밝혔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니 김서연 원장에게 메일 한 통이 와 있었다. ‘처음을 돌아보고 나니 진료 하나하나에 더욱 정성이 묻어나더군요. 초심을 잃지 않고 좋은 의사, 괜찮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앞으로도 더욱 정진하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취재진에 보여준 환자를 생각하는 진심어린 마음도 아직 본인에게는 부족했나보다. 얼마 전 환자에게 ‘엄마 손길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이나 행복했다는 김서연 원장. 그녀의 딸 나혜(娜慧)를 사랑하는 만큼이나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에 깊이가 느껴지는 의사다. <주간인물>은 의료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며 환자로 하여금 새로운 꿈을 꾸게 하는 의사, 김서연 원장의 행보를 응원한다. ◈Profile 대한의사, 한의사 복수면허의사 협회 학술이사대한 한방피부과학회한방 비만학회대한 미용성형 웰빙학회대한 비만연구의사회대한 비만학회대한 비만치료학회대한 일차진료학회 ㈜Creative ilooda 임상자문의사㈜Wellcomet사 LDM Perfectwave 임상자문의사 아일린 클리닉 대전본점 대표원장아일린 한의원 대전본점 대표원장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3-11-04
  • [고일환 원장이 전하는 '밝은 세상'이야기]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오미경 기자, 이준영 기자]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입니다”원추각막, 각막확장증 수술 전문의가 만드는 ‘밝은 세상’이야기고일환 수연세안과(SU연세안과) 대표원장 안과 의술과 의료장비가 발전하며 라식·라섹 수술은 안과에서 받을 수 있는 보편적인 의료서비스가 되었고, 덕분에 라식·라섹 수술을 하는 안과 개원의와 수술을 받는 환자들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라식·라섹 수술 이후의 합병증 및 부작용과 그 치료 방법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편으로 그만큼 수술경험이 풍부하고 정확한 의학정보를 전달해 주는 전문의와 전문병원의 존재가 중요하다. 라식·라섹 수술의 대표적 부작용인 원추각막, 각막확장증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안과전문의, 수연세안과(SU연세안과)의 고일환 원장을 주목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위클리피플>은 고일환 원장을 직접 만나 아직은 생소한 원추각막, 각막확장증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들을 직접 들어보았다. _취재 오미경, 이준영 기자 / 글 이준영 기자 진료가 끝날 무렵, 취재진이 수연세안과(SU연세안과)를 찾았다. 마치 카페를 연상시키는 듯 편안한 분위기의 대기실에서 만난 고일환 원장은 병원 곳곳에서 느껴지는 말끔한 분위기를 그대로 닮은 인상과 침착한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안전’을 최우선에! 지금이 있기까지 그의 출발을 가장 먼저 궁금해 하는 취재진을 향해 고일환 원장은 특별할 것은 없는 시작이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처음에는 서울의 성내동에서 안과의원을 개원했습니다. 많은 개원의들이 그렇듯이 그 지역의 안과 주치의로서 지역민들의 눈 건강 전반을 고루 돌볼 수 있는 ‘안전’한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였죠.” 꾸준하게, 그리고 성심성의껏 환자를 치료했었기 때문인지 자연스레 방문하는 환자들도 많아졌다. “타 지역에서 방문하는 환자, 고난이도의 수술이 필요한 환자 등 다양한 환자들이 내원하기 시작하면서 병원 위치와 규모의 변화를 모색해야 했어요.” 자신을 찾는 더 많은 환자들을 생각하며 안과 질환 및 그 부작용까지 치료받을 수 있는 전문 안과로서 강남지역에서 수연세안과(SU연세안과)를 개원한 고 원장은 “치료의 영역 가운데 주로 수술을 많이 하다 보니 ‘안전’이라는 가치를 가장 최우선에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원추각막·각막확장증, 도대체 무엇일까? 고일환 원장은 안과질환 중에서도 원추각막·각막확장증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원추각막과 각막확장증은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함은 물론, 안과 분야 가운데서도 매우 고난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고 원장은 차분하고 꼼꼼하게 손수 발병의 원리를 그려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원추각막이란 각막의 일부가 점점 얇아지면서 원래의 둥근 모양을 유지하지 못하고 차츰 돌출되어 원추모양으로 변하는 상태의 질환을 말합니다. 라식·라섹 수술의 부작용으로 원추각막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을 각막확장증이라고 하지요.” 이제는 너무도 흔해진 라식·라섹 수술은 기본적으로 각막을 깎아내는 수술이다. 그런데 각막의 두께를 안전기준 이상으로 많이 깎아내게 되면 안구가 밀려나오면서 각막이 변형되고, 한번 밀려나온 각막은 계속 밀려나오기 때문에 증상이 많이 진행되었을 경우에 각막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고 원장은 “예전에는 원추각막 치료 방법으로 각막이식이 유일했지만 각막이식은 아무래도 기증자가 적고 실패확률이 높다는 단점이 있어 대체할 수술방법에 대한 연구가 중요했다”며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한 연구와 의료기계 등의 발달에 힘입어 조금 더 섬세하고 정교한 치료가 가능해지는 안과 치료 패러다임의 변화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레이저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라섹 수술에 칼을 이용했기 때문에 의사의 술기에 결과를 의지하는 측면이 강해 그만큼 안전성에서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첨단 장비들이 등장하면서 점차 ‘안전성’이 강화되었고, 이로 인해 원추각막·각막확장증의 치료법들인 인택·케라링과 같은 ‘각막 내 링 삽입술’, 그리고 ‘콜라겐 교차결합술’ 등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인택과 케라링은 대표적인 ‘각막 내 링 삽입술’이다. 각막이식에 비해서 수술시간도 짧고 그 효용성도 탁월하다. 고일환 원장은 “이 수술방법을 통해 원추각막·각막확장증의 진행을 억제시키거나 정상 각막 모양으로 되돌릴 수 있는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콜라겐 교차결합술’도 각막의 결합을 견고하게 하고, 원래의 모양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원추각막교정술 중 하나이다. 수술 실력과 경험이 매우 중요한 고난이도의 수술방법이기에 어느 병원에서나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며, 환자의 각막 상태에 따라 수술여부가 결정되기도 한다.고 원장은 “최근 국내외 학회에서 ‘각막 내 링 삽입술’과 ‘콜라겐 교차결합술’을 함께 적용하여 원추각막·각막확장증의 교정과 진행 억제효과를 높이는 방법이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하며 “실제로도 이 방법을 통해 많은 원추각막·각막확장증 환자들에게 더 나은 수술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그는 “사람마다 각막의 모양이나 상태가 제각각 다르기에 수술을 진행하기 전에는 반드시 환자와 의사의 충분한 상담, 정밀한 검사를 통해서 어떤 수술이 가장 최고의 결과를 가져다줄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잊지 않았다. 환자들과의 충분한 소통이 중요하다 고일환 원장은 그 무엇보다 환자와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의료인이었다. “시력교정 합병증에 대해 환자들에게 설명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시력교정을 하지 않고 평소처럼 안경을 쓰고 지냈다면 생기지 않았을 병이기에, 막상 환자들은 쉽게 납득을 못하는 것이죠. 예전에는 합병증에 대해 환자에게 충분하게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 경우가 꽤 있다 보니 오히려 자세히 설명하여도 받아들이지 않거나, 심한 경우엔 ‘의사가 실력이 없으니까 일어나지도 않은 합병증을 저렇게 설명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하는 적도 많았어요. 그러나 합병증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고, 환자들에게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의 계속된 노력에 환자들도 이제는 합병증에 대한 정보가 꼭 필요한 것임을 납득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고일환 원장은 라식·라섹 수술이 더 좋은지, 안내렌즈삽입술이 더 좋은지에 대한 물음을 갖는 것은 우문(愚問)이라고 말했다. “합병증에 대해 연구하고 많은 케이스를 수술하다보니 질환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앞서 말했듯 환자 눈의 모양 및 상태는 미세하게라도 제각각 다른 것이 일반적입니다. 라식·라섹 수술과 안내렌즈삽입술을 했을 경우 생길 수 있는 합병증의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환자의 눈에 더 알맞은, 혹은 리스크가 더 적은 수술을 진행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환자와의 세심한 상담이 필요한 것이고요.” 수술의 장단점과 합병증 가능성에 대한 환자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라면 상담만 한 시간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는 고일환 원장. 어떤 치료든 환자와의 충분한 교감과 이해가 바탕이 된 상담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고 원장을 비롯해 수연세안과(SU연세안과)의 의료진은 검안사가 간단하게 질환에 대해 설명하는 시스템이 아닌, 최종적인 수술 검안까지 꼼꼼하게 의사가 직접 하는 등 최상의 결과를 내기 위해 치료의 모든 단계에 신중함을 기하고 있다. 환자를 가족처럼 고일환 원장은 오랫동안 성심성의껏 환자와 상담하고, 정확한 의료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역지사지’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저는 환자를 만날 때 늘 ‘환자를 가족처럼’이라는 말을 새겨둡니다. 좀 식상할 수도 있지만요(웃음). 만약에 제 가족들이 안과질환을 상담 받고 어떤 수술법을 활용하여 치료할지 결정해야 한다면, 저로선 아마 최선의 방법을 고려해 대답을 해주겠죠. 마찬가지로 환자를 내 가족처럼 상담해 주는 것, 그것이 저의 원칙입니다.”담담하지만, 단호하게 자신의 분야에 대해 긴 이야기를 해나간 고일환 원장은 집념 있는 노력으로 지금에 이른 그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기자의 말에는 “평탄하게 살아온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고난을 극복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큰 능력이 있어서라기보다 꾸준하게 내 분야를 연구하다 보니 자연스레 지금에 이르게 된 것 같다” 는 짧은 대답으로 대신했다. 자신을 포장하는 데에는 특별한 재주 없는 그였지만 원추각막·각막확장증 분야에서 그가 일군 수많은 수상경력과 환자 치료의 사례들만으로 그의 겸손함은 더욱 빛나 보였다. “난치병, 합병증 등 안과의 어려운 분야들을 계속 연구하고, 이런 분야의 수술법을 발전시켜 더 안전하게 환자분들을 치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남긴 고일환 원장의 포부는 그 자체로 믿음직스러운 신뢰감을 안겨 주었다. 어려운 질환도 포기하지 않는 그와 같은 의료인이 있기에 우리는 오랫동안 밝게 세상을 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눈은 마음의 창’이니까 말이다. ProfileKOH IL HWAN, M.D약력(Profile)-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세브란스 병원 인턴, 레지던트 수료, 안과 전문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안과 외래 조교수- 카톨릭 의과대학 서울성모병원 안과 외래 교수- 미국 백내장 굴절 수술학회(ASCRS) 정회원수상경력(Winning a Prize)- 알티산 베스트 스킬상 수상(2006)- 알티플렉스 베스트 스킬상 수상(2008)- 알티플렉스 Honor Award 수상(2009, 2011)- ICL 우수인증 수상(2007)- 국내 최초 인택스, 케라링 삽입술 동시 인증(2007) - 아시아 최초 원추각막 / 각막확장증 The Lord of the Keraring 수상(2009)- 아시아 최초 원추각막 / 각막확장증 Master of Intacs 수상(2011), 아시아 최다 수술 인증(2012)- 베리플렉스 Global Expert user 수상(2011)- 알티산 / 알티플렉스 Global Instructor 수상(2012)- OPHTEC World's Great Surgeon 수상(2012)- 안내렌즈 World Class Pioneer 수상(2012)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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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0-29
  • [체리쉬 성형외과 피부과 이일형 원장 특별 인터뷰] 어려운 눈 재수술·코성형으로 삶에 희망을 열어주다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이준영 기자] 어려운 눈 재수술·코성형으로삶에 희망을 열어준 성형외과 의사이일형 체리쉬 성형외과 피부과 대표원장 지하철 논현역 3번 출구 앞에 자리하고 있는 ‘체리쉬 성형외과 피부과’는 ‘소중히 여기다, 아끼다’라는 뜻의 ‘cherish’를 명명하여 이름 그대로, 고객의 마음을 소중히 여기고 만족을 주기 위해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월요일 이른 아침, 취재원과 약속이 된 기자는 환한 웃음을 띠며 소탈하게 우리를 맞이하는 이일형 원장과 마주할 수 있었다. “어떤 거창한 뜻을 가지고 개원했다기 보다는 미용성형 트렌드가 계속 바뀌는 요즘, 발전된 성형시장에 맞게 본인의 성형과 관련된 수요를 바탕으로 최대한 만족을 느끼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개원된 체리쉬 성형외과 피부과는 성형외과 진료를 전담한 이일형 원장과 피부과 진료를 맡은 장지영 원장의 각 분야별 협진 종합 진료로 고객의 기대에 부응하는 높은 만족도를 선사하고 있다. 이일형 원장이 이끌고 있는 체리쉬 성형외과 피부과는 국제표준규격인 ISO9001 인증을 획득하여 병원운영 및 서비스 부문 뿐 아니라 병원 장비와 시설, 윤리성 그리고 수술만족도와 실적 등 다양한 항목에 대한 검증을 마쳐 믿고 찾을 수 있는 병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_취재 이선진, 이준영 기자 / 글 이선진 기자 변화하는 의료계를 리드하다 “미용성형 분야는 노하우가 중요합니다. 공개된 시술이 아니라 비공개된 시술도 많고요. 재건성형의 경우 수술 자체가 광범위하고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야 하지만, 미용성형은 커다란 수술 보다는 자그마한 변화가 크게 작용하는 비법·술기들이 많습니다.” 성형 쪽은 비보험이라 의사의 재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자 사업적인 마인드 또한 중요한 부분이 된다. 이 원장은 “손재주가 좋고, 성형외과적 감각과 기술을 살릴 수 있는 지금의 일이 자신의 적성에 잘 맞는다”고 했다. 자신만의 의술에 미적 감각까지 전문분야에 노하우를 보유한 그이지만,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환자 치료와 의료계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신지식 의료인이다. “내 역량을 어떤 상황에서든 발휘할 수 있도록 끌어올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 의사들과의 모임을 가지며 끊임없이 정보 공유를 나누는 기초를 기반으로 해서 술기에 대한 시뮬레이션도 해보고 책도 많이 찾아보며 감각을 갖고 적용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의료계에서 안주하거나 따라갈 게 아니라 리드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동안성형을 꿈꾼다면? 이어서 열정 가득한 눈으로 자신의 전문분야를 설명하는 이 원장. 그가 주력하는 분야는 무엇일까? 그는 눈, 코성형과 PRP자가지방이식, 리프팅 등 성형에 관한한 전문가이다. “눈, 코성형은 기본이지만 가장 컴플레인이 많고 예민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눈의 경우 비대칭을 갖고 계신 분들이 대부분이고 양쪽 눈의 구조적인 차이를 누구나 가지고 있기 때문에 똑같이 만든다는 건 숙련된 많은 노력도 필요하고 어렵습니다. 또한 눈은 하루에도 수천 수만 번을 움직이는 가장 활동이 많은 부위이지만, 굉장히 예민해서 눈두덩이 조직의 조그만 변화에도 민감하게 변하여 얼굴전체 표정에 미치는 영향은 굉장히 큽니다. 눈성형은 그만큼 수술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아 어려운 수술입니다. 코는 얼굴의 중심으로 개인의 인상을 좌우하는 핵심부위입니다. 코성형의 경우 콧대의 높이 정도, 코끝의 모양, 콧볼의 모양, 얼굴전체에서의 비율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며 얼굴 전면이 노출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민감합니다.” 얼굴지방이식은 이미 대중화가 되었고 누구나 받고 싶어하는 시술이다. 동안성형의 기본이 된 이 시술은 얼굴의 균형과 입체도를 고려해서 시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코의 위치, 앞볼의 위치, 이마관자의 돌출정도, 턱선 등을 얼굴전체적인 조화를 고려해서 시술해야 이상적인 모양과 비율이 나옵니다.” 전문분야의 실력은 기본이요, 미적감각도 꼭 필요한, 중요한 포인트라 하겠다. 체리쉬 성형외과 피부과에서 시행하는 ‘고농축 PRP자가지방이식’은 얼굴에 볼륨감을 높이고 주름까지 개선 가능한 시술이다. 기존의 PRP지방이식은 혈액으로부터 추출되는 PRP(Platelet rich plasma)가 얼굴전체에 도포할 때 PRP를 희석하지만, PRP 고농축 지방이식은 PRP를 안면전체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용량을 채취한 후 희석없이 시술해 더욱 확실한 효과를 볼 수 있다. 리프팅 시술은, 예전에는 피부를 절개해서 꿰매는 시술을 하여 흉터가 남거나 신경, 혈관 손상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소지가 있었다. 하지만 의료기술이 많이 발전한 요즘 수요는, 실을 이용한 시술이나 초음파, 고주파를 통한 리프팅 등 비절개 리프팅을 선호하는 추세이다. “실을 이용하는 리프팅에도 녹는 실, 녹지 않는 실에 따라 시술 방법이나 효과가 달라집니다.” 녹는 실의 경우 유지기간이 짧지만 시술이 간단하고 수면마취나 신경차단술이 필요 없이 간단하게 할 수 있어 부담없는 시술이라 할 수 있다. 녹지 않는 실을 이용한 일명 ‘이지리프팅’은 실이 생체 친화적이라 이물감이나 부작용이 없으며 수술에 버금가는 드라마틱한 리프팅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볼살이나 처진 살을 잡아주는 인대역할을 하기에 강력하고 효과 지속력이 뛰어나며 피부 진피층의 콜라겐 생성 촉진, 세포재생촉진 효과와 피부탄력, 주름제거 효과에 탁월하다. “저를 만나 고객이 새 인생을 되찾고 자신감 얻는 모습에 보람을 느낍니다” 체리쉬 성형외과 피부과는 가장 기본이 되면서도 가장 만족시키기 어려운 분야인 눈, 코성형이 메인 포커스인 만큼 그에게는 타 의료기관에서 검증되지 않은 잘못된 시술을 받고 부작용을 겪고 있는 눈, 코 재수술 환자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다. 그에게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을까? “쌍꺼풀 재수술을 받은 분이었어요. 10여 년 전에 쌍꺼풀수술을 하신 분인데 처음 수술이 문제가 생겨 여러 병원을 거쳐 네 번 정도 재수술을 하셨던 분이었어요. 해부학적인 구조도 많이 손상된 상태였습니다. 눈두덩이가 내려앉고 유착에 의한 안검하수가 심해서 눈을 뜨기조차 불편한 분이었지요. 재수술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다 마음고생도 많이 하셨던 그 분이 소개를 받고 저를 찾아온 것이었어요. 타병원에서 재수술을 4차례나 받고 여러번 실패한 상태였기 때문에, 5번째 재수술을 하기에 저 또한 부담이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수술을 해드린 결과, 수술 후 안검하수가 교정되고 눈뜨기가 편해지면서 눈매도 아름답게 자리잡아 굉장히 만족해하시는 모습을 보고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처럼 눈성형 하나만으로도 얼굴윤곽과 표정이 자연스러워지는 것을 보면 작지만 그 분에게는 삶의 큰 변화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의 업(業)으로 인해 새 인생을 되찾고 자신감을 얻으며 고마움을 표시하는 이들을 마주할 때 그는 성형외과 의사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미적 변화를 위해 수술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영향이 큽니다. 헌데, 미관상의 문제 뿐 아니라 눈을 뜰 때마다 불편함을 느낀다든가 기능상의 문제가 생긴다면 그 절망스러움은 말할 것도 없겠죠! 이러한 부작용을 해결했을 때 본인이 느끼는 만족도는 상상이상입니다.”그는, 수술 후 어떤 변화가 생길지 파악이 쉽지 않지만 충분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환자에게 제시해주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 몫이 전문가의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일부 성형외과 의사는 지나친 기대를 주거나 환상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본원에서는 재수술 환자에게 얻을 수 있는 것들, 얻지 못할 것들 그리고 잃을 수 있는 것들 등 인포메이션을 확실히 주고 정말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인지 가감없이 인지할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담보로 생명을 거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까. 성형에 100% 만족이란 있을 수 없다.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있다, 그러나 얻는 것이 잃는 것보다 만족할 만큼 많으면 성공”이라고 그는 말한다. ‘솔직한 의사가 가장 좋은 의사’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성형외과 문턱에 들어와 상담을 할 때 상담실장이 아닌, 의사와의 상담을 충분히 거쳐 시술이 이뤄져야 함을 강조했다. 전문의인 의사와 고객이 소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미에 대한 가치는 주관적입니다. 집도의가 이렇게 저렇게 해라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지요. 고객의 미적 기준과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는 관점을 타협해야 합니다. 수술 전 충분한 상담이 이뤄지고 수술 후 결과를 정확히 예측해 미리 제시해준다면 서로가 만족하는 원만한 수술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의사를 믿고 따라와 주는 ‘믿음’ 또한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하고요.” 이 원장은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속초로 이사를 갔다. 그의 부친은 경동대학교 총장을 지내신 분으로 교육계에 오래 몸 담으셨다고 한다. 지면을 빌어 하고픈 말을 전하는 그는 “주변에 많은 분들이 소중하고 훌륭한 가르침을 주셨다, 인생의 지표가 될 수 있는 작지만 소중한 가르침은 가까운 곳에 있다”며 감사함을 표했다. 정직과 성실을 가훈으로 삼아서 가르쳐주신 아버지와 겸손함을 미덕으로 몸소 보여주신 어머니, 가족사랑을 항상 보여주시는 장인장모님과 사랑하는 아내,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이들에게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며 가족애(愛)를 전했다. 기자가 만난 이일형 원장은 차가운 성형외과 의사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솔직하고 정직한 매력의, 따뜻한 인품을 소유한 의사였다. 결국은 의사와 환자와의 만남도, 면대 면(面) 사람과의 공감대 형성과 소통이 중요하기에. 끊임없이 새로운 의료기술을 연마하고 수술대에 올라야 하는 의사라는 직업에 차가운 머리와 냉철한 판단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그를 믿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인술을 발휘해야 하는 ‘따뜻함’은 의사로서 꼭 필요한 덕목이라 생각된다. 기자가 만나본 그는 자신이 희망한다던 ‘좋은 의사’임에 틀림없었다. 의사로서 냉철한 머리와 더불어 따뜻한 가슴을 가졌으니 말이다. ◈Profile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대학원 졸업한림대학교 부속 강동성심병원 인턴한림대학교 성심병원 전공의 / 전문의대한미용외과학회 정회원한국미용외과의학회 정회원대한비만노화방지학회 정회원비만의사연구회 정회원KFMS 인정의대한미용웰빙학회 정회원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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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0-29
  • [NHI뉴헤어모발이식센터 김진오 원장 특별인터뷰]1%의 희망이라도 소중한 가치로, 모발이식의 기준을 쓰다
    [위클리피플=오미경 기자, 이준영 기자] “우리가 이식한 모발은 모두 자라게 한다” 1%의 희망이라도 소중한 가치로, 모발이식의 기준을 쓰다 김진오 NHI뉴헤어 모발이식센터 원장/ 미국모발이식 전문의(ABHRS) 요즘 아이들에겐 낯설 테지만 30대 이상의 세대들이라면 어릴 적 한번쯤은 “아무개야~대머리 깎아라~”라는 작자 미상의 구전 유행어를 입에 올려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묘한 멜로디로 누군가를 놀리고 싶을 때 자주 사용하곤 했던 이것은 사실 쓰는 이에게야 ‘재미로 한 번’일지 모르지만 실제 대머리, 탈모인에게는 웃어넘길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이 되는 말이었으리라. 탈모인구 100만 시대, 우리 국민 5명 중 1명은 이 유행어에 쌍심지를 켜고 있다는 예상이 가능할 정도이다. 게다가 가을이면 여름 내 무더위로 지친 체내의 부족한 영양 상태로 모발의 생장기가 짧아지면서 평소보다 빠지는 양이 증가해 탈모로 고민하는 이들의 마음은 더욱 휑하기만 하다. 그러나 여기, ‘단 1%의 희망이라도 있는 도전이라면 할 수 있는 것은 다해보자’는 신념으로 탈모와 모발이식에 대해 불철주야 고민하고 연구하는 삶이 즐겁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毛자란 당신을 위한 믿음직스러운 지원군이 되어 줄 NHI뉴헤어 모발이식센터 김진오 원장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_취재 오미경 , 이준영 기자/ 글 오미경 기자 세계적인 모발이식 NO.1 미국 NHI(New Hair Institute), 한국에 상륙하다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왜 성형 전문의로 계속 가지 않고 모발이식 분야에 뛰어들었는가?”라며 입을 연 김진오 원장은 “모발이식 분야에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서”라는 짧고 굵은 대답으로 자리에 앉자마자 취재진의 궁금증을 더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김진오 원장이 성형외과 전문의로서 일반적인 미용성형을 하면서 조금씩 모발이식을 했을 때 만해도 국내에서 모발이식 분야는 마이너 영역으로 평가되곤 했었다. “어느 날 우연히 외국에서 모발이식을 하고 와서 좋은 결과를 보인 사람을 만났어요. 이거다 싶었죠. ‘모발이식 병원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는 식의 당시 국내 인식과 반대로 진화하는 의학 분야일 수 있겠다고 생각 했어요.” 한계가 있다고 여겼던 분야에서 의학적 가능성을 발견한 그는 그 길로 모발이식 선진기술을 보유한 미국 유명 의료인들에게 메일을 보내 배우고 싶다는 의지를 전했고, 여러 곳에서 그의 의견을 수용하는 답이 돌아왔다. 제대로 공부 해보자고 생각한 김 원장은 그렇게 미국으로 떠나 1년 여 시간동안 많은 병원을 찾아다니며 모발이식에 관한 기술적 정보와 실력을 습득해 나갔다. 그러던 중 미국 모발이식 전문병원인 NHI(New Hair Institute)에 머물면서 미국 모발이식의 아버지라 불리는 William R. Rassman을 만났고, 그로부터 함께 해보잔 제안을 받은 김 원장. 그러나 그는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해보겠단 맘으로 한국에 돌아와 마침내 2009년, 세계 모발이식 수술의 표준을 바꾸어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 NHI의 분원을 처음으로 한국에 상륙시키게 된다. 1%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NHI뉴헤어 모발이식센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선진화된 모발이식 의학에 대한 열정과 의지로 세계 최초 ‘모낭단위 모발이식’과 ‘비절개법 모낭단위 모발이식’을 성공시킨 개척병원 미국 NHI본원의 수술방법을 한국에 소개한 김진오 원장은 이후에도 선진기술과 시스템을 한국에 정착시키며 끊임없는 교류와 자기 연구를 이어갔다. 그리하여 지금은 오히려 진일보한 기술과 개선된 체계들을 본원에 역수출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모낭단위 모발이식은 모낭을 무조건 하나로 분리·이식 하던 기존의 방식을 모낭이 생긴 모양 그대로 분리·이식 하는 방법으로 바꾼 것이며, 뒷머리에서 떼어낸 두피를 고배율 디지털 현미경을 통해 모낭단위로 분리한 후 손상을 최소화해 이식했을 때 최상의 결과를 낸다는 원리에 기반 한다. 그리고 절개법과 ‘모발채취과정’에서 차이가 나는 비절개법 모발이식은 모낭 하나하나를 뒷머리에서 직접 채취하는 방법인데 김진오 원장은 이를 바탕으로 혁신에 가까운 비절개법 모발이식(FOX™)을 학계에 발표, 모낭 세포를 채취해 보관했다가 이식 시 모공을 만들 때 아주 가는 0.8mm 직경의 펀치로 촘촘하게 만듦으로써 적은 상처와 통증, 빠른 회복, 높은 생착률을 보이는 슬릿(SLIT)방식을 통해 성공적인 모발이식을 선보이고 있다. 김진오 원장이 탈모와 모발이식을 다루는데 있어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단 1%라도 결과의 차이를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환자의 수술에 접목시켜 개선하려는 노력이다. “우리의 목표이자 비전이 ‘우리가 이식한 모발은 모두 자라게 한다.’라는 것 이예요. 다른 곳에서 모발이식을 해도 90점은 나올 수 있지만 91점, 92점짜리 성공을 만들어내려고 합니다. 비록 1%의 차이지만 이런 디테일함이 모이면 결과는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환자에겐 아주 큰 부분이 될 수 있죠.” 이 같은 그의 신념을 따라 NHI뉴헤어는 모발이식 분야에서 남다르게 시도하는 것들이 많다. 먼저, 고배율 디지털 현미경을 수술 전 과정에 사용하는 것이 특징인데 시간과 인력이 다소 필요할지라도 완벽하게 확인된 모낭만을 이식하고, 수술 팀의 컨디션에 의해 수술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을 전무하게 만들어 항상 표준화된 결과를 내고자 하는 이유에서다. 수술 실 내에는 LCD모니터가 있어 환자가 직접 눈으로 확인도 하고, 모낭분리 과정에 임하는 수술 팀의 관리 감독까지 주의 깊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정확한 탈모 상태 검진을 위한 머리숱계측검사와 이식된 모낭세포에 높은 압력의 산소를 공급해 생착률을 높이는 고압산소치료프로그램, 모낭 보관의 편의를 위해 흔히 냉매에 보관하는 것과는 달리 최적 보관 온도인 4℃로 유지되는 저온냉각기의 개발, 모발이 아닌 모낭세포를 이식하는 것 인만큼 흔히 쓰이는 식염수가 아니라 장기보존액에 모발을 보존하는 것도 눈에 띄는 특징이다. 또 모낭의 공기 중 노출을 최소화하여 모낭 영양상태를 보존하는 아쿠아 커팅 방법과 무흉터 봉합법 등에 이르기까지 수술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고민했을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NHI뉴헤어 만의 장점은 열 손가락에 꼽기도 힘들 정도다. 이러한 결실을 맺기까지 김진오 원장은 매년 평균 5회 이상의 논문 및 학술 활동은 물론, 그 이상의 학회 참여와 강연, 연구를 꾸준하게 해나가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유일하게 3년 연속으로 슬릿 방식 모발이식을 학회에 발표한 김 원장은 최근에는 SMP(두피문신)에 관해서도 집중 연구 하고 있다고 전했다. 더불어 기술의 진화에 앞서 모발이식 비전문가를 투입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수술을 지양하며, 고객만족 보증제를 실시하는 등 기본적으로 정직과 윤리라는 의료 본분에 충실하고자 하는 노력이야말로 NHI뉴헤어의 가장 큰 실력이 되었다. 환자에게 ‘진짜 나를 걱정해주는 의사’로 기억되고 싶다 김진오 원장은 인터뷰 내내 가감 없는 솔직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렇게 솔직한 인터뷰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자신을 포장하는 말에는 영 소질 없어 보이는 그였다. 그러나 탈모와 모발이식에 관한 이야기만큼은 누가 따라올세라 술술 풀어놓는 모습을 보며 천생 의사란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멋있는 것을 하고 싶었다.”라는 말로 의사가 된 지난 시간 또한 짤막하게 정리한 김 원장이었지만 사실 그것이 의료인 김진오의 전부가 아님을 이미 그와의 대화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넘치는 호기심과 의욕, 생각한 것은 무조건 시도해보고 결과를 만들고야 마는 행동력, 심지어 사는 것도 일하듯이 한다는 잔소리를 들을 만큼 세세한 계획 속에서 움직이는 몸에 밴 생활 습관 등은 그로 하여금 끊임없이 탈모와 모발이식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준 원동력임에 틀림없었다. “예전의 저는 많이들 그러하듯 환자의 드라마틱한 변화에 주로 집중했던 것 같아요. 미용성형을 하면서는 아무래도 더 그랬었겠죠. 하지만 모발이식 전문의로 환자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탈모는 당장에 위급한 생명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당사자에겐 소소한 일상을 앗아가는 말 못할 고통이기 때문에 크든 작든 의사가 환자의 아픔에 진정으로 귀 기울여주는 것이 가장 먼저이고 중요하거든요. 아주 작은 효과라도 환자에겐 큰 희망이 되는 걸 보면서 한 개의 모낭이라도 더 생착 시키기 위한 1%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인지 김 원장은 블로그를 통해서도 많은 이들과 수시로 소통하며 충분한 답변을 위해, 하나라도 더 이야기해주기 위해 열심인 의사로 유명하다. “블로그 활동은 환자와 진짜 교류를 할 수 있고, 아이디어도 얻는 좋은 방법”이라 말하는 그는 “앞으로 우리가 이식한 모발을 모두 자라게 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이 분야의 변화를 선도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며 또 다른 기대감을 품게 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감히 공자님 말씀에 토를 달자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천재로 부르는 이들 중에 노력하지 않고, 즐기지 않은 천재를 본 기억이 없는 필자로선 거꾸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재미있으면 노력하게 되고, 노력하면 알게 된다.’라고. 김진오 원장과의 만남은 그것을 다시금 새록새록 깨우쳐 주기에 충분했다. 모발이식 분야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 재미가 있었고, 그래서 남들에게 간혹 안쓰러운 눈빛을 받아가면서도 스스로 좋아 개의치 않고 노력했으며, 마침내 젊은 나이에 국내외 모발이식 분야에서 인정받는 실력과 지식으로 지금에 이른 김진오 원장. 탈모와 모발이식을 향한 그의 고민과 연구는 앞으로도 한 걸음씩 계속 진보할 것이다. 이 가을, 머리카락 사수에 여념 없는 상처 입은 이들에게 1%의 희망이라도 더 안겨주기 위해. profile.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동 대학원 의학석사연세 세브란스병원 외래교수성형외과 전문의미국모발이식 전문의(ABHRS)대한성형외과학회 종신회원 (KPRS)대한성형외과학회 학술위원대한모발이식학회 정회원 (KSHRS)대한모발이식학회 학술이사 대한성형외과 모발성형연구회 정회원세계모발이식학회 정회원 (ISHRS)아시아모발이식학회 정회원 (AAHRS)한국 존슨앤드존슨 메디컬 탈모 자문의포털사이트 NAVER 의료상담 자문의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3-10-22
  • [분당 리얼미의원 이우석 대표원장 특별 인터뷰] ‘리프팅·비만’분야의 Key doctor 이우석 원장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김정은 기자] 끝없는 정진으로 ‘도전’해온 삶!‘리프팅·비만’분야의 Key doctor 이우석 원장 이우석 분당 리얼미의원 대표원장 / 전문의 많은 이들이 더 ‘잘사는 법’을 고민한다. 리얼미의원에는 환자들의 입장에서의 직접 경험으로 ‘잘 치료하는 법’을 고민하는 의사가 있다. 자신의 경험이 모두가 잘사는 법이자 믿음에 대한 약속이라고 말하는 이우석 원장을 <위클리피플넷 선정 신지식인 名醫>로 소개하여 그만의 투철한 의료철학에 대해 들어보았다. _취재 이선진 기자, 글 김정은 기자 숨겨진 진짜 ‘나’를 찾는다! 리얼미의원은 뜻 그대로 ‘진짜 나’를 찾는 것을 지향한다. 피부와 리프팅, 건강한 비만치료의 선두주자로, 이우석 원장이 개발한 ‘동안미용성형’을 체험하기 위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나답게 다이어트하고 나답게 예뻐지게 도와주는 것이 제가 하고 싶은 일이자 하고 있는 일입니다.” 이우석 원장은 다이어트 대회에서 우승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초고도비만 환자들의 건강한 다이어트를 돕고 있다. 자문의가 아닌 도전자로 방송에 출연하게 된 것은 이례적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실제로도 주변 사람들이 자문의가 아닌 다이어트 도전자로 출연한다는 것에 의아해하며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쟁쟁한 우승후보들을 제치고 당당히 우승자에 이름을 올렸고 그날의 경험은 이우석 원장만의 특별한 이력으로 남아있다. “조언은 의사로서 쉽게 할 수 있지만 직접 도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요. 경험을 통해 초고도비만 환자들이 다이어트 할 때의 고충 하나하나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만을 하나의 질병으로 제대로 알고 치료할 수 있게 되었지요.” 우승의 비결은 진짜 나를 알고 나답게 다이어트 하는 것이었다. “갖가지 다이어트 방법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이어트를 하는데 유행을 따라가듯 하는 건 절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각자의 체질이 다르듯 나에게 맞는 식단이 있고 운동법이 있는 거예요.” 이 원장은 한 가지 방법만으로는 절대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한 식단조절과 운동을 꾸준히 병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몸의 상태를 규칙적으로 체크하고 휴식기가 필요할 때는 과감히 쉬었다가 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조건 목표치를 달성하려고 하기보다 건강한 다이어트를 해야 합니다. 자칫하면 몸이 망가질 수가 있기 때문에 진짜 내 몸을 깊이 알고 나에게 맞는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가 말하는 이상적인 비만치료란 운동과 식이요법, 의학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 한다. 의사를 가르치는 의사 이우석 원장의 활동은 학회와 세미나에서도 빛을 발휘한다. 많은 분들 앞에서 강의를 한다는 것은 도전이자 스스로에 대한 검증이기도 하다는 그는 젊은 의사이기 때문에 연구, 시술결과발표에 나태해질 수가 없다고 말한다. “학회 전 날이면 후회도 합니다. 긴장도 많이 하고요. 하지만 내 자신이 모든 과정 속에서 발전하는 것을 느낍니다. 더 잘해야겠다는 약속이 되기 때문이지요. 지금은 나름대로 경험이 쌓여서 편안하게 하는 편입니다(웃음).” 그는 현재 다루고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연구하고 검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진료와 함께 병행하기가 힘들지만 환자들에게 더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기쁘지요. 특히 미용분야 의사들은 대중들과 동종업계 전문가들 모두에게 인정받아야 합니다. 현실에 안주해서는 발전하는 의료기술을 결코 따라갈 수 없습니다”라며 오랜 경력이 있으면서도 꾸준히 연구하고 결과를 검증하는 분들을 보면서 그 모습을 닮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그가 말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원장은 따라가기보다 앞장서는 것을 좋아한다. 서적을 보며 배우고 다른 논문과 비교, 응용을 통해 연구를 하고 강의를 통해 효과적인 시술방법을 많은 의사들과 나누고 있다고. 이 원장은 얼굴 라인 살리기에 이용하던 녹는 실을 응용하여 허벅지와 종아리에 주입하는 시술을 개발했고 현재는 보편화되어 많은 병원에서 시술하고 있다. “저를 선택하고 믿어주는 환자들에게 저 또한 믿음을 주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병원 시술은 피부 속 내 콜라겐을 생성시킨다든지 누구나 받아서 근본적으로 몸이 좋아질 수 있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몸에 더 좋아지는지 효율적으로 시술할 수 있을지 ‘내 가족에게 권하고 내가 받고 싶은 시술을 하자’는 것이 제 한결같은 신념입니다.” 그는 앞으로 양방과 한방, 운동센터 세 가지를 꾸려 종합 다이어트센터를 세우는 것이 목표이다. 비만전문 관리팀을 체계적으로 꾸밀 생각이다. “현존하고 있는 비만 치료법 중 검증되고 안전한, 가장 좋은 것들만 모아서 환자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습니다. 세계적으로 경쟁해도 손색없을 만큼 경쟁력 있는 다이어트센터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뒤이어 시술과 운동, 약물 처방까지 조화를 이룬 연구결과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이 원장. “현재 우리나라 성형의학 수준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나아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녹는금실을 이용한 리프팅 시술을 연구 중에 있습니다. 공신력 있는 의학 책에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역할을 한 리프팅 전문 의사로 이름 올리는 것이 꿈입니다”라며 우리나라 비만치료의 발전을 위해서도 계속 도전할 것이라고 그가 말했다. “한국의 미용 시술이 아시아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 인정받아 한류열풍을 타고 세계에서 중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릴 적부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해온 그는 “도전해서 안 된다고 포기 말고 계속해 가다보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 되든 안 되든 도전해 앞으로 나아가면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발전적인 삶을 살 수 있다, 근성있고 도전적인 젊은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젊은이를 향한 애정어린 조언도 잊지 않았다. 젊은 감각과 도전으로, 아름다워지고 싶어하는 많은 이들에게 ‘리얼뷰티코치’가 되어주는 이우석 원장을 주간인물이 함께 응원한다. 분당 리얼미의원 http://www.real-mi.co.kr ◈profile리얼미 피부성형클리닉 대표원장대한 미용성형레이저학회 이사대한 미용웰빙학회 이사신구대학교 겸임교수(전)분당 미앤미 원장(전)성모피부과 원장(전)레스틸렌 필러 교육의사, 레스틸렌 코리아 본사초청 라이브 강의스컬트라 키닥터 선정 및 전문교육 의사아시아 스컬트라 전문가 포럼(ASEF)자문위원앨러간 보톡스, 쥬비덤 필러 교육의사래디어스 필러 교육의사대웅제약 퍼펙타 필러, 페이스텀 필러 key doctor선정 및 전문 교육의사중외제약 스킨필 필러 교육의사디스포트 보톡스 교육의사, 디스포트 본사 초청 강의보듈렉스 보톡스 교육의사울트라 브이 본사 초청 강의더블로 리프팅 key doctor 및 자문위원오메가 리프팅 교육의사이실로 리프팅 key doctor 및 자문위원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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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0-19
  • [담소유외과 김정윤 원장 특별 인터뷰] '담석증' 단일통로 복강경 담낭절제술에 국내 1인자! 김정윤 원장을 만나다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이준영 기자] 도전과 개척정신으로 새로운 길을 제시하다단일통로 복강경 수술의 명의 김정윤 원장 김정윤 담소유외과 원장 |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교수 | 고려대학교 의료원 외래교수 성형외과와 피부과가 즐비한 ‘의료관광’의 메카 강남. 수많은 병원들이 국내외 환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마케팅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주목할 만한 병원이 하나 있다. 바로 담소유외과다. 외과의 특성화된 분야인 복강경 담낭절제술과 탈장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이 병원은 입소문을 통해 전국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위클리피플>은 특히 단일통로 복강경 담낭절제술의 국내 1인자로 알려진 담소유외과의 김정윤 원장을 만나 최고의 외과수술병원을 향해 달려가는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_취재 이선진, 이준영 기자 / 글 이준영 기자 외과 전문 병원, 담소유외과 강남은 이제 각종 성형외과와 피부과 같은 미용 목적 병의원의 각축장이다. 어느 정도 수익이 보장되어 있고, 최근 창조경제의 핵심 사업으로 주목받는 ‘외국인 의료관광’유치에도 유리하기 때문에 성형외과·피부과 위주로 강남 인근에 너도나도 개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인지 몰라도 강남의 빌딩 위에 떡하니 위치한 ‘담소유외과’라는 간판은 꽤나 이색적이었다. 담소유외과의 김정윤 원장은 “지역의 병원이 아니라 전국적인 외과 수술 병원이 되고 싶다는 포부로 강남 한가운데에 담소유외과를 개원했다”고 말하며 “담소유외과는 대학병원에 버금가는 수술 실력을 가진 전문의들이 수술하며, 수술에 최적화된 병원시스템을 구비하고 있는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병원이다”라고 덧붙였다.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다 종합병원·대학병원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의사들을 모아놓고 양질의 의료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만큼 찾아오는 환자들의 수도 많다. 김정윤 원장은 “종합병원·대학병원은 워낙 바쁘기 때문에 환자와의 상담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고, 꽉 찬 다른 수술 스케줄 때문에 수술이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연기되는 일이 부지기수다”라고 말하며 “일반 복강경 담낭절제수술을 대학병원에서 4000회 이상 집도했는데, 워낙 스케줄이 많다보니 기계적으로 수술하게 된 기억이 있다”고 밝혔다. 환자와의 직접적인 소통이 적고, 수술에만 집중해야하는 환경인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김정윤 원장은 외과에 대한 한 가지 편견을 버리라고 조언한다. 김 원장은 “외과수술은 보통 종합병원·대학병원에서 하고 있고, 일반사람들도 보통 종합병원·대학병원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담소유외과가 주목받을 만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편견을 깰 수 있기 때문이다. “담소유외과는 복강경 수술 전문 병원으로서 최신 장비와 실력 있는 의료진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정규직 간호사가 3교대로 근무하고 있으며, 충실한 상담을 통해서 환자, 보호자, 의사가 전부 그 환자의 질환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한 후 수술에 임하고 있습니다.” 덧붙여서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드라마에 나올 법한 외과 의사들도 분명히 필요합니다. 종합병원·대학병원에서 수술하고 연구하시는 교수님들은 대한민국 의료계에 큰 기여를 하고 계시는 분들이죠. 그러나 대학병원에서 꼭 수술해야 하는 질환이 있고, 외과 개원 병원에서도 충분히 수술할 수 있는 질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담소유외과에 오시면 대학병원 급의 의료시스템으로 안전하고 효과적인 외과 수술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또한 담소유외과는 편리한 온라인 상담 시스템을 자랑한다. 환자들이 온라인을 통해 직접 전문의와 상담할 수 있어 정확한 의료정보를 얻을 수 있고, 정확한 상담을 통해 내원한 환자들이 허탕 치는 일 없이 제대로 된 수술을 받을 수 있다. “인터넷에 있는 의학 정보는 두 가지로 나뉜다고 생각해요. 정말 정확하거나, 아니면 아예 잘못된 정보거나 둘 중 하나죠. 정확한 의학정보를 얻고자 한다면 전문분야의 의료진과 직접적으로 상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정윤 원장의 조언이다. 담석이나 탈장, 혹은 각종 외과적 질환으로 고민이라면 지금 담소유외과 홈페이지를 방문해도 좋을 것이다. 단일통로 복강경 담낭절제술의 명의 김정윤 원장은 단일통로 복강경 담낭절제술의 1인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단일통로 복강경이라는 용어는 일반인들에게 아직 생소하다. 단일통로 복강경 담낭절제술은 담석증, 담낭결석, 담낭용종, 담낭염 등을 수술하는 가장 최신식 방법으로 김 원장은 “수술 시 3~4곳에 구멍을 뚫어 수술하는 복강경 수술은 보편화된 상태이지만, 단일통로 복강경 수술은 일반 복강경 수술보다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대학병원·종합병원에서도 쉽게 볼 수 없다”라고 밝혔다. 일반 복강경 담낭절제술도 대학병원에서 4000회 이상 경험한 복강경 담낭절제술의 명의 김정윤 원장은 담소유외과를 개원한 이래로 지금까지 500회 이상의 단일통로 복강경 수술을 집도 했다. “단일통로 복강경 수술은 배꼽에 구멍을 내어 이 구멍 하나만으로 수술합니다. 이 외부적 상처를 비약적으로 줄이는 수술법을 통해 담석 혹은 담낭증 환자들이 당일 내원해서 다음 날 퇴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술 시간이 긴 것은 단일통로 복강경 수술의 가장 큰 단점이었다. 하지만 김정윤 원장은 이 단점도 극복했다. “케이스마다 다르겠지만 단일통로 복강경 수술은 평균적으로 20분 내외로 마무리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김 원장이 대학병원·종합병원에서도 어려운 단일통로 복강경 수술을 일반 복강경 수술 대신에 활용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처음 단일통로 복강경 수술을 했을 때 난이도가 높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수술을 왜하나 싶었죠. ‘내가 아니면 누가 하나’라는 생각도 들고, 오기도 생겨서 결국에 개원하여 단일통로 복강경 수술을 주로 하게 되었습니다. 수술 케이스가 늘어가면서 오래 걸렸던 시간도 20분 내외로 단축시킬 수 있었고, 최소한의 상처에 퇴원도 빠르게 할 수 있어 환자들의 만족도도 높아졌죠.” 김정윤 원장은 지금까지의 수술 경험들을 바탕으로 단일통로 복강경 수술에 관한 각종 학회에서 발표를 계획하고 있다. 후배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다 외과는 인기 있는 전공이 아니다. 개원이 편하고, 수익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전공을 선택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김정윤 원장은 ‘외과외길인생’이라고 할 만큼 외과 이외의 다른 길은 생각해본 일이 없다. “진주제일병원 원장으로 계시는 외삼촌이 외과의사로 활약하셨기 때문에 외삼촌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때문에 무조건 의사, 그것도 외과의를 꿈꾸었던 것 같아요. 외삼촌은 90년대에 미국 학회에서 CD 한 장을 가지고 복강경 수술을 공부한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이 투철하신 분입니다. 배워야 할 점이 많은 분이죠.”담소유외과를 개원하게 된 것도 이러한 도전정신이 작용한 결과일까. 개원이 어렵다는 외과에 대한 편견에도 불구하고 김정윤 원장은 과감하게 담소유외과를 개원했다. 김 원장은 “외과 후배들에게 외과의로서 개원하여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설명하며 “나를 보며 후배들이 외과의로서 큰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후배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다는 김정윤 원장은 병원 경영이 어느 정도 안정된 이후에는 사회공헌에도 관심을 가지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대한외과학회에 기부하였고, 현재 후배들을 위한 교육에 자신의 기부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고. 또한 김 원장은 “강남 지역에 위치한 병원으로서 강남 보건소와 결연해서 환자 무료치료에 참여하려고 계획 중에 있다”라고 말하면서 “담소유외과가 특성화된 외과치료를 하다 보니 무료 수술을 필요로 하는 환자가 많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좋은 일에 힘을 보태어 지역사회에도 일정 기여를 하고 싶기에 구체적으로 진행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김정윤 원장은 맨땅에 헤딩하는 격으로 개원했을 때 도움을 주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김 원장은 “고대안암병원에서 나를 많이 가르쳐 주신 서성옥 교수님, 그리고 내가 수많은 쓸개 수술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신 김영철 교수님, 이 두 분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신 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또한 담소유외과에서 함께 의료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성렬 원장님도 많은 아이디어를 내주시는 분으로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병원의 규모를 늘리되 종합병원이 아닌 국내 제일의 특성화 외과 전문 병원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저를 도와주고 격려해준 많은 사람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정직하고 정확한 진료와 수술을 해나가겠습니다.”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을 가진 뛰어난 외과의로서 후배들의 멘토가 되고 있는 김정윤 원장. 그와 같은 후배 의료인들이 더욱 많아져서 ‘외과수술은 무조건 종합병원·대학병원으로 가야한다’, ‘외과는 미래가 불투명하다’라는 편견이 사라지고 환자들이 다양하고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내일을 기대해 본다. ◈Profile학력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졸업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외과학 박사경력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외과 전공의일본 구루메대학병원 외과 교환교수고려대학교 안암병원 간이식센터 교수고려대학교 안암병원 담낭/담도센터 교수고려대학교 의료원 외과 외래교수학회활동대한의사협회 평생회원대한외과학회 평생회원한국간담췌외과학회 정회원 대한내시경복강경외과학회 평생회원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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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0-15
  • [밸리뉴의원 신이경 원장 특별 인터뷰] 종아리 성형의 비전을 제시한 정형외과 전문의를 만나다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이준영 기자] 종아리 MICP(최소침습다중차단술)로종아리 성형의 비전을 제시한 전문의를 만나다신이경 밸리뉴의원 원장 | 정형외과 전문의 어머님이 해녀이셨고 제주도 태생인 신이경 원장은 여수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뒤 제2의 고향인 부산에서 오랜 생활을 했다. 자라면서 운동을 좋아해 다치기도 숱하게 다쳤고 정형외과에서 치료를 많이 받았다는 그는 어릴 적부터 꿈이 확고했다. 단지 ‘의사가 되겠다’가 아닌 ‘정형외과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꿨고 그 꿈은 현실이 되었다. 이대목동병원 정형외과 수련의, 전문의 및 전임의를 마친 그는 해병대로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제대 후, 정형외과 중에서도 척추, 말초신경 파트를 택하게 된다. “펠로우 임상강사를 마치고 서울적십자병원에서 봉직의로 지내던 어느 날이었지요. 타 병원에서의 종아리 시술 부작용으로 고생하시던 분이 저를 찾아왔고 만족스러운 시술을 해드린 그날 이후로 각종 종아리 시술 부작용 환자들이 저를 찾아 물밀듯이 밀려왔습니다.” 알고 보니 신 원장을 만나 종아리 라인에 자신감을 찾게 된 환자들이 서로의 고민을 나누던 <종아리 성형 부작용> 인터넷 카페에 자발적으로 치료성공후기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제대로(?) 입소문이 나게 된 것이다. 결국 척추 환자보다 타 병원에서의 종아리 성형 부작용을 안고 그를 찾아온 사례가 더 많은 경지에 이르렀다. 자신이 개발한 종아리 MICP 강의와 라이브 시연을 국내외 의료진을 대상으로 할 정도로 종아리 시술분야의 Professor가 되고 있는 신이경 원장. 이번 주 <주간인물>은 종아리 시술에 대한 전문가 조언과 그의 의료비전을 심도있게 들어보았다. _취재 이선진, 이준영 기자 / 글 이선진 기자 부작용 문제를 해결한 업그레이드 종아리 시술을 개발하다 “척추의사로 개원을 하게 될 경우 제 앞날을 생각해보았습니다. 환자 입장에서 볼 때 비수술적 치료의 자연스러운 회복이 가장 이상적인 치료일 터인데, 만약 내가 빚을 내서 개원하는 상황이라면? 자본주의 성향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수술로 치료 가능한 환자에게 무리한 수술을 강요하도록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을 확고히 하자 한 줄기 빛이 보였다. 8여년 전이던 당시는 ‘종아리퇴축술’이 ‘성형의 종결점’인 것처럼 성행하던 시기였고 무분별한 시술로 부작용이 만연하기 일쑤였다. “일명 이름 붙여진 ‘종아리퇴축술’은 사실 의학용어도, 성형의 개념도 아니지요.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발달된 근육을 줄여 이상적인 종아리 라인을 가지게 하는 시술이 ‘종아리 시술’입니다. 이는 ‘미용’ 목적 이상의 ‘기능’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기능은 무시하고 근육에 대한 생리역학적인 개념을 간과한 채 영구적인 근육 축소에만 초점을 둔다면 ‘보상근육의 발달’ 등 또다른 부작용이 생기게 마련이지요. 종아리 시술 부작용 환자들을 접하며 치료하다 보니 ‘정형외과 전문의’로서 저만의 강점을 살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척추에서 내려오는 신경분지’를 미세하게 다루는 분야이기 때문에 ‘내가 하면 잘할 것’이란 확신이 들었고 그 길로 들어서게 된 신 원장은 8년째 종아리 시술 전문의로서 활약을 돋보이고 있다. “저를 찾아온 고객들을 보면 저희 종아리 MICP를 다른 병원들의 종아리퇴축술 개념과 많이 혼동하십니다. 오히려 종아리퇴축술이 가지는 단점인 여러 가지 부작용의 문제를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고요. 여전히 잘못된 정보나 광고에 현혹돼 타 병원에서 시술하시고는 여러 부작용의 문제들로 찾아오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아리퇴축술’은 종아리근육인 알통근육을 줄이는 모든 수술을 통칭하지만, 이는 정형외과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지금도 많은 병원에서 신경차단술을 합니다. 보톡스 주사나 신경용해술을 응용한 다양한 시술도 이루어지고 있고요. 하지만 해부학적이고도 정형외과적인 깊은 고찰 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신 원장은 “장비의 안전성에 대한 연구와 조직손상의 정도에 따르는 부작용의 문제, 장기적인 모양의 문제를 간과하는 경향이 많은 게 문제”라고 말한다. 신경절제술을 근거로 한 최초의 종아리퇴축술은 1993년에 이루어졌다. 이후 여러 변화와 방법들을 거치면서 종아리성형, 즉 종아리를 슬림하게 하려는 의사들의 노력은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최초에, 종아리 근육을 미용상의 목적으로만 줄인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었다. 적어도 뇌성마비환자에게 치료목적으로 하던 신경절제술을 정상의 일반 여성들에게 한다는 것이 의사의 입장에서도 사실은 어려운 생각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종아리퇴축술의 개념은 그렇게 시작됐다. 종아리퇴축술의 부작용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만도 많은 연구와 고민을 했던 그는 자신만의 종아리 MICP(최소침습다중차단술)을 개발했다. “MICP는 미세한 캐눌라로 신경분지를 정밀하게 탐색해 차단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기존시술보다 근육손상이 적고 아주 미세한 바늘을 이용하기 때문에 흉터가 거의 남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수면마취가 아닌 국소마취로 진행되어 다른 감각신경의 차단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안전성을 살린 최대의 장점이 될 것”이라고 신 원장은 말했다. MICP로 수많은 시술을 집도한 그는 종아리 축소술에 최적화된 의료장비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리하여 뇌와 척추 등 치료 장비의 원천적 기술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코스만’社와 1년 여 컨택을 시도했던 그는 그곳과의 장비개발은 어렵게 되었지만, 해외에 비해 유지 보수가 쉽게 가능한 국내 의료기기 제조업체 ‘아프로코리아’와 컨택, 끊임없는 연구 노력 끝에 넉달 전 ‘신경 탐색 및 차단기’를 개발해내기에 이른다. 국내외 의사들에게 종아리 분야 professor가 되다 종아리축소술의 시작 단계부터 연구에 집중을 해온 정형외과 전문의로서 올해 8년차를 맞이하는 신 원장은 8년간의 데이터를 모아 최근 공개하기 시작했다. 지난 2013 KCCS Lower Extremity Contouring Surgery학회에서는 국내외 의사를 대상으로 종아리 MICP 강의 발표와 라이브 시술을 직접 시행하며 그가 개발한 종아리 MICP의 우수성을 입증시키기도 했다. 이 학회는 종아리성형 뿐 아니라 휜다리 교정, 사지연장술, 허벅지지방흡입과 지방이식 등 하지체형과 관련된 각 분야별 전문의들이 각자의 영역이 갖는 한계와 우수성을 나누며 발전적인 의료 지향점을 찾아가도록 연구하는 전문적인 미용성형학회이다. 신 원장은 최근 많은 외국의사들을 대상으로 MICP에 대한 티칭과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 미용성형학회(ASACS) 종아리 성형 프로페셔널을 맡고 있기도 한 그는 “일본, 중국, 홍콩, 대만 등 아시아 각국 의사들이 종아리 MICP에 뜨거운 관심과 호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1년 전부터 공식적인 학회를 통해 최소침습 종아리성형을 전파해오며 올해부터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는 신 원장은 이제 국내로 눈을 돌려 왜곡된 종아리성형 시장을 바로 잡아나가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처음에는 제가 개발한 종아리 MICP를 공개할 경우 국내 의사들과 상호 경쟁자가 될 것이란 생각에 오픈을 꺼려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혼동하시는 종아리퇴축술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부작용 사례와 이미지 때문에 종아리 시장이 축소되는 상황을 보니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종아리 시술은 좌식생활을 해온 우리민족의 특성상 한국의료로 특화된 부분이기에 아시아권 종아리 시장을 향해 무한히 성장할 수 있는 영역이거든요. 이제는 제가 MICP를 많은 의사들에게 공개해서 부작용 없는 종아리 시술을 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국내외 학회 참여를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신 원장은 종아리 성형시술 환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분야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사람들의 경과적인 데이터들을 수집하고 있다. 시술 이후에 나타날 수 있는 현상들을 보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는, 한번에 끝내는 수술적 개념이 아니라 얼마든지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근육의 형태가 발달되고 변할 수 있는 시술적 개념이다. 그는 시술 후 1~2년에 한번씩은 환자를 내원하도록 해 경과를 보면서 리터치해주고 있다. 만약 실력 없는 의사라면 사후관리를 자신 있게 내걸 수 없기에, 그에게 시술받은 환자들의 치료 만족도는 매우 높다. 왜곡된 종아리 미용분야 인식을 바로잡아 의료발전 이끌 것 현대의 많은 여성들은 예쁜 종아리를 갖고 싶다는 욕망에도, 한편의 부작용 걱정에 ‘종아리 시술’을 선뜻 결정하지 못한다. 그러나 정형외과 전문의 신이경 원장을 만났다면 그런 걱정 따윈 필요 없으니 걱정 붙들어 매시길. 그의 종아리 MICP 덕분에, 종아리 퇴축술에 발생됐던 여러 부작용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었으니 말이다. “의사들 사이에서도 ‘종아리 시술은 하지 말라’는 왜곡된 관점을 많이 갖고 있는데요. MICP는 종아리 퇴축술이 가지고 있는 많은 부작용의 문제를 해결한 방법이고 꾸준히 업그레이드 되고 있는 방식입니다. 지속적인 연구들을 이뤄왔고 타 병원의 많은 부작용 문제들을 해결해드리며 더 큰 사명감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왜곡된 종아리 미용분야를 바로잡아 많은 의사들에게 올바른 지식을 알리기 위해 학회활동과 논문, 후학양성에 힘써 Key Doctor가 되겠다고 다짐하던 신이경 원장. 자신과 같은 의사들이 편하게 시술할 수 있도록 규격화시키고 종아리에 특화시킨 의료기기를 개발해 세계 최고 수준의 반열에 올려놓은 신 원장은 도전정신과 사명감이 투철한 인물이었다. 인터뷰 말미에, 그와 오랜 시간 함께 하며 의지가 되어준 그의 친동생 밸리뉴의원 ‘신이문 총괄부장’의 귀띔에 의하면 ‘형님은 무언가 한 분야에 몰입하면 무서운 집중력과 성과를 내는 분’이라며 일언했다. 자신의 발자취를 통해 묵묵히 종아리 분야의 비전을 밝혀온 그에게 존경을 표하며 주간인물은 앞으로 한국 의료위상에 더 큰 것을 기여할 신이경 원장과 밸리뉴의원의 희망찬 앞날을 힘차게 응원할 것이다. ◈Profile 이화여대 목동병원 정형외과 수련의이대 목동병원 정형외과 전문의 및 전임의해병대, 해군포항병원 정형외과 과장이대 병원 정형외과학 교실 외래교수이화여대 스포츠의학 대학원 교수독일 St.Anna Hospi., 미국 UCLA Hospi.연수서울 적십자병원 정형외과 과장 -척추 및 말초신경분야 아시아 태평양 미용성형학회(ASACS) 종아리 성형 프로페셔널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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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0-15
  • [한국외국어대학교 남성우 명예교수 특별인터뷰] 인류 최고의 문자 한글, 세계의 중심 될 수 있다!
    “인류 최고의 문자 한글,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어 보존·발전 위해 평생 바쳐온 한국외국어대학교 남성우 명예교수를 만나다 남성우 한국외국어대학교 사범대학 한국어교육과 명예교수/ 국어사연구회 회장 ‘스릉흔드’, ‘지못미’, ‘쩐다’ ‘ㅋㅋㅋ’. 인터넷을 통해 글을 읽고 있는 이들이라면 앞의 단어와 같은 인터넷 용어를 한두 개쯤은 접해 봤을 것이다. 사실 인터넷까지도 안 간다. 요즘은 SNS를 통해서도 비속어, 줄임말, 속칭 ‘외계어’라 불리는 조합 언어까지 쉽게 번져 생활 속 ‘한글 파괴’ 현상이 너무도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훈민정음 서문에서 세종이 밝혔던, ‘누구나 쉽게 쓰고 읽어 백성들의 의사 표현의 불편함을 덜어 줄’ 훈민정음 즉, 한글의 목적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오는 9일 한글날 567돌을 맞이하는 우리나라 언어, 문화의 씁쓸한 자화상이다. 그러나 척박하게 변해 가는 한글의 현주소 속에서도 한글의 뿌리 보존과 가르침에 앞장서 온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어교육과 남성우 명예교수는 글로벌 시대에 맞춰 한국어 교육의 중요성을 새롭게 제고할 수 있는 희망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가 말하는 희망의 빛줄기를 『주간인물』이 따라가 보았다. _오미경 기자 “단언컨대, 한글은 세계 최고의 문화유산입니다” ‘인류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는 한글은 세계의 석학과 지성들로부터 이미 그 위대함을 입이 닳도록 칭송받아 왔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24개의 한글 자모는 문자로서는 간단하지만 약 11,000여 개 이상의 소리를 표현해 내는, 그 변환이 무궁무진한 문자로 오늘날 인류에게 소리와 감정을 가장 완벽히 구현해 주는 문자라고 알려져 있다. 50년이 넘도록 한글과 함께 해 온 한국외대 한국어교육과 남성우 명예교수는 “한글은 세계 2,900개의 언어 가운데 독창적인 탄생 기록을 가진 유일한 문자”라고 운을 떼었다. 그는 한글이 인간의 발음 기관의 모습을 본뜬 상형 이론에서 출발해 소리와 문자의 일치성이 뛰어나고, 습득이 용이하며, 대한민국을 문맹률 0%의 나라로 만들어 낸 훌륭한 자산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유네스코는 1990년부터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정신을 기리는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UNESCO King Sejong Literacy Prize)을 제정하여 시상을 하고 있을 만큼 한글은 단언컨대, 세계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손꼽히고 있다. 우리말의 뿌리, 중세국어의 대가 남성우 교수 훈민정음이 창제된 1443년부터 16세기 말까지의 국어를 일컫는 중세국어는 현대국어의 뿌리가 되는 것으로 남성우 교수는 이 분야 최고의 학자이다. “주로 그냥 중세국어로 부르지만 크게는 고려 시대의 전기 중세국어와 훈민정음 창제 이후부터 16세기까지의 후기 중세국어로 나뉜다”고 설명한 남 교수는 특히 중세국어의 의미론적 연구에 주력하여 우리말의 가치를 역사 그대로 보존하고 알리는 데 한결같이 노력해 왔다. “중세국어로부터 시작된 우리말을 올바로 알아야 현대국어도 제대로 아는 것이고, 그래야만 우리의 문화유산을 세계적인 것으로 키워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학문이란 것이 사실 끝이 없어요. 돌이켜 보면 중세국어 연구를 위해 보낸 시간들은 스스로와의 싸움이었던 것 같아요.” 한국어 학자로서 남다른 집념을 발휘한 남 교수는 중세국어에 관한 방대한 분량의 저서를 간행하여 주목을 받았다. 그가 2007년에 간행한 『중세국어 문헌의 번역 연구』는 대한민국 학술원 선정 2007년 우수학술도서로, 2000년부터 2011년까지 10여 년의 연구, 집필 끝에 펴낸 『구급방언해와 구급간이방의 동의어 연구』는 2012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을 정도로 중세국어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바로 세우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 중 2011년에 펴낸 그의 저서 『구급방언해와 구급간이방의 동의어연구』는 15세기에 간행된 두 개의 의서 『구급방언해』와 『구급간이방』에서 확인되는 동의어를 고찰할 목적에서 작업한 것으로 고유어와 한자어 사이의 동의, 한자어간의 동의를 총 4장에 걸쳐 다룬 대대적인 작업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남 교수의 학문 연구는 2001년에 그가 간행한 또 다른 저서 『월인석보와 법화경언해의 동의어 연구』의 증보판 작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남성우 교수는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월인석보 사전』을 만드는 것이 학자로서 남은 꿈이자 자신이 해낼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한글, 진정한 세계화로 가는 길 남성우 교수의 한글 사랑 외길 인생은 학술·연구의 업적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1975년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어교육과에 부임한 뒤, 만 31년의 정년을 마친 지금도 명예교수로 재직하며 후학들을 위한 가르침과 한글 사랑을 이어가는 천생 교육자이다. 게다가 딱딱하고 권위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먼, 학생들과 허물없이 소통하는 따뜻한 성품까지 지녔다. 그가 교수로 근무할 당시에는 선배 교수의 완고한 추천으로 한국어교육과의 학과장을 역임, 9년이나 활동을 이어 갔으며, 현재는 각 대학 교수 및 국어 연구자들의 모임인 ‘국어사 연구회’의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등 남 교수는 다방면에서 온화하면서도 단호한, 한글에 대한 변치 않는 집념과 열정의 에너지를 펼치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어의 세계화를 바라보는 그의 조언에는 깊은 고민과 진한 애정이 묻어난다. “한국외대 한국어교육과는 제가 이곳에 부임하기 1년 전인 1974년에 신설되었어요. 중등학교에서 국어 교육을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의 국어 교사를 양성하고, 한국어 교육의 이론적 지식을 교육 현장에서 창의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한국어 교사 양성을 위한 목적으로 말입니다. 물론, 신설학과가 겪는 어려움도 있었죠. 한국어 교육에 대한 인식이 미미했던 때라 학과에 대한 불만이 많았고, 학생들은 졸업 후의 진로를 고민했어요. 그 때마다 강의실 안팎에서 허심탄회한 이야기도 많이 해 주었고요. 그러다 점차 학과가 성장하였고, 신설 당시는 하위권에 머물렀던 학과 입학 성적이 이제는 전체 학과 가운데 5위 안에 드는 수준까지 이르렀네요.” 남 교수는 한국어교육과가 성장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로 ‘국력 신장에 따른 한국어의 국제적 위상 상승’을 꼽았다. 거기에 문화계의 한류 영향까지 겹치며 세계의 이목이 한국과 한국어에 집중된 결과라는 것이다. 실제로 92년부터 1년 간 일본의 칸다외어대학 한국어학과 교수로 잠시 재직하며 한국어를 바라보는 외국의 달라진 시각을 체감한 그는 20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어의 국제적 입지가 더욱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어가 진정한 세계의 언어가 되기 위해서는 한류와 같은 흐름도 힘이 되지만 무엇보다 장기적이고 궁극적인 국력 신장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로마의 라틴어나 청 나라의 만주어 등을 보세요. 나라의 힘은 그 나라 언어의 힘과 비례함을 알 수 있지요. 우리도 우리말이 가진 힘과 가치를 제대로 알고 지키려면 국력을 키워야 해요. 그리고 스스로 한국어에 대한 자긍심을 키우는 노력을 해 정작 국내에서는 푸대접을 받고 있는 한국어의 현실을 개선해야 합니다.” 남성우 교수는 “영어를 틀리면 창피해하면서 한국어를 틀리는 것에는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우리의 모순된 자화상이 바뀌려면 어렸을 때부터 국어사전을 가까이 하는 생활 습관을 갖고, 학자들은 계속적인 학술 연구를, 사회와 국가는 이러한 연구의 실용화에 대한 노력 및 한국어 교육자들을 위한 학업 지원 등을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한국어에 대한 자긍심이 깊게 배인 노력을 모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덧붙여 한국어에 대한 자긍심이 자칫 한글을 공용어격으로 쓰는 소수 민족에 대한 우월주의나 한글 사대주의로 변색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노력도 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성우 명예교수가 학생들에 전하는 편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국어선생님의 추천으로 운명처럼 결심을 굳히고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한 뒤, 줄곧 이 길만을 걸어 온 남성우 교수는 한 분야를 오래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아직도 사회에 자신의 역할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설렘을 느낀다며 학생들을 향한 애정 어린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시류에 따르기보다 소신 있는 자기 진로를 정해 밀고 나가세요. 여러분이 보내는 지금 그 시기는 유난히 해가 긴, 시련과 성장의 연속인 시간일 뿐, 어느 것도 실패가 아니니 후회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자기만의 걸음으로 길을 걷는 노력을 해 보십시오.”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이라 하지 않던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는 신념을 가지고, 주어지는 모든 일에 그저 묵묵히 최선을 다해 임한 결과 지금의 자리에 오른 남성우 교수를 보면 그가 지나온 발자취 속에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한글을 보존하고 발전시켜 나갈 길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듯하다. 스스로 우리의 언어에 대한 자긍심을 되새기고, 진정한 아름다운 언어로 가꾸어 내기 위해 사회적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국력의 신장 속에 한 단계씩 한글이 세계의 언어문화로 성장하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정신이자 핵심 자산인 한글의 위상을 진정으로 높이는 우리의 남은 몫인 것이다. 『주간인물』은 한국어가 세계의 공용어가 되는 그날까지 남성우 교수의 식지 않는 한글 사랑을 뜨겁게 응원한다. profile.(약력)1963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1969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문학석사1986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문학박사1975~2006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사범대학 한국어교육과 교수 역임現 한국외국어대학교 사범대학 한국어교육과 명예교수(저서)『國語意味論』『十五世紀 國語의 同義語 硏究』『月印釋譜와 法華經諺解의 同義語 硏究』『16세기 국어의 동의어 연구』『中世國語 文獻의 飜譯 硏究』『救急方諺解와 救急簡易方의 同義語 硏究』(역서)『意味論의 原理』『意味論: 意味科學 入聞』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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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0-10
  • [카이로송의원 송준한 원장 특별 인터뷰] 국내 카이로프랙틱 의학을 전 세계로 발전, 계승시키고자 노력하는 송준한 원장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김정은 기자] 2대째 카이로프랙틱을 이어오고 있는 척추신경 전문의 송준한 원장을 만나다송준한 카이로송의원 원장 ‘손’과 ‘치료’라는 뜻의 그리스어를 더해 불리어지고 있는 카이로프랙틱. 선진국에서는 이미 110년의 전통을 이어오고있는 카이로프랙틱은 보충하여 완전하게 한다는 의미의 ‘보완의학’으로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인정받았으며 척추질환의 통증치료와 자세교정에 효과가 탁월한 치료법이다. 현대인들의 고질병으로 자리 잡고 있는 각종 디스크 질환을 수술이나 약물치료 없이 손으로 치료하며 국내 보급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카이로송의원 송준한 원장을 <주간인물 Weekly People>이 만나보았다. _취재 이선진 기자 / 글 김정은 기자 대를 이어온 ‘손’의 역사 카이로송의원 송준한 원장의 카이로프랙틱 치료는 2대째 이어져오고 있다. 부친 송영섭 박사에 이어 지금까지 그가 비수술로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카이로프랙틱에 대한 믿음이 크게 작용했다. “공군사관학교 13기로 졸업하셨던 아버지께서는 공군 조종사로 활동하셨습니다. 고된 훈련과 조종사 업으로 허리에 충격을 많이 받으셨기 때문에 평소 허리 통증을 호소하셨습니다. 허리가 심하게 아파오기 시작하자 군 병원에서 검사를 받으셨는데, 디스크 진단을 받으셨어요. 조종사는 허리 수술을 받게 되면 더 이상 조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허리에 충격이 가해지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군 조종사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송영섭 박사는 수술 없이 디스크 치료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1년 가까이를 제대로 걷지도 못하셨어요. 이것저것 참 많은 수를 써봤습니다. 안 해본 방법이 없을 정도였어요. 그러다 우연히 지인에게 카이로프랙틱을 소개 받았습니다.” 6개월 동안 꾸준히 치료를 받은 결과 눈에 띄게 회복된 송영섭 박사는 다시 조종사의 꿈을 이어갈 수 있었다. 카이로프랙틱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후 아버지께서는 독학으로 공부하셨습니다. 직접 치료해 보기도 하셨고요. 아버지가 계시던 부대에서도 카이로프랙틱으로 유명해지시기 시작했어요.” 직접 환자들을 치료하며 더 강한 믿음이 생겼다는 송영섭 박사는 전문적인 공부를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그렇게 운명적으로 만난 카이로프랙틱이 아버지의 본업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교육을 굉장히 중요시하셨기 때문에 저와 동생도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었어요. 아버지와 같은 학교인, 카이로프랙틱 전문 Palmer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10년 이상 공부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카이로프랙틱의 효과를 알게 된 그는 아버지를 따라 자연스레 카이로프랙틱을 공부했다. 카이로프랙틱에 대한 의료법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송영섭 박사는 선구자로서 의술에 대한 믿음과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활발하게 환자들을 치료했다. “저는 어릴적부터 카이로프랙틱의 효과를 직접 보며 우리나라에도 꼭 필요한 의술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뜻을 같이하고, 뒤이어 카이로프랙틱을 전하고 있지요.” 송준한 원장은 한국에 돌아와 의술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다시 의대에 진학하여 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전문 병원인 카이로송의원을 개원했다. 만성적인 근골격계 질환의 확실한 해법 통증제로시스템은 재발없는 치료를 지향하는 카이로송의원만의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이다. 치료뿐 아니라 운동요법, 식생활관리까지 전반적인 관리를 통해 통증은 물론 재발 예방도 해주는 스마트한 시스템이다. 송 원장은 “통증의 원인은 단순히 허리, 목 자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평소 좋지 않은 자세, 운동부족, 영양의 불균형, 신경기능의 약화 등 허리 통증 하나의 증상에도 다양한 문제들이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통증의 원인부터 치료하기 위해서는 근육, 근막, 자세, 운동, 영양, 신경 등 다양한 접근의 치료와 검사가 같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몸의 건강상태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디스크 환자에게 수술만이 절대적인 해결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정말 수술을 해야 하는 환자는 전체 디스크환자의 10~20%일 뿐 80%이상은 수술 없이 치료가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희 카이로송의원은 신경계를 중요시 하고 질병에 대한 접근 방법과 치료 과정 및 치료 목표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질병이 ‘있다’ 혹은 ‘없다’가 아니라 우리 몸 상태가 건강에 가까운지, 질병에 가까운지를 하나의 스펙트럼선상에서 파악하고 더욱 건강해지도록 하는 방향에서 모든 진료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의 신경은 척추를 통해 뻗어있다.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골격계의 정렬이 흐트러지면 신경이 눌리게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통증을 느끼게 되고, 정렬을 바로 잡아주면 눌렸던 신경이 바르게 돌아오면서 통증이 줄어들고 제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다. “통증뿐만이 아닙니다. 요추 쪽으로 내려오면 소화기능 또한 영향을 받게 됩니다. 생리통이나 하지부종, 혈액순환 장애 등 여러 문제가 발생될 수 있지요”라고 송 원장은 말했다. “흔히 카이로프랙틱을 단순 골격 교정 치료 정도로만 생각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정은 2차적인 결과이지요. 카이로프랙틱의 궁극적인 치료 목표는 교정을 통해 신경들이 제 기능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신경통증 치료인 것이지요.” 카이로프랙틱 치료는 수기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보다 전문적인 지식과 실력, 풍부한 경험을 필요로 한다. “치료를 잘못하게 되면 소뇌와 대뇌까지 바로 영향이 가기 때문에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인체공학, 신경학을 모두 공부해야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지요.” 근본적인 원인치료, 환자중심의 치료로 신체의 구조적인 비대칭의 교정, 기능이 떨어진 대뇌반구의 자극, 휘어있는 척추의 교정 등 신체의 전체적인 분석을 한 후 이를 통해 병의 치료는 물론 정상적인 성장을 도와 더욱 건강해지도록 하는 것이 카이로송의원의 목표이다. 국내 카이로프랙틱 의학을전 세계로 발전, 계승시키고자 카이로프랙틱 치료의 결과는 매우 드라마틱하다. “부축 없이는 걷지 못했던 환자, 다리가 땅기고 저려서 앉을 수도 설 수도 없었던 환자가 카이로프랙틱 치료를 통해 무리 없이 걸어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환자들을 마주하며 보람과 사명감을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많은 환자들은 소위 ‘입소문’을 통해 카이로송의원을 찾아오고 있다. “먼저 치료 받으신 분의 소개로 내원하는 환자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대부분 부담이 큰 수술보다는 비수술 치료를 많이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수술 후 통증이 계속되어 이곳에서 치료를 받으신 후 호전된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카이로프랙틱은 통증 치료 뿐만 아니라 재발 방지를 위한 관리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두고 치료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고 한다. 국내 카이로프랙틱의 선구자로 활약하고 있는 송 원장은 우리나라 대체의학의 현주소를 되짚으며, 새 정부를 향한 바람을 힘주어 말했다.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에 발맞추어 가고 있는 만큼 의료계에서도 대체의학에 대한 열린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 중에서도 ‘카이로프랙틱’은 대체의학의 선두주자라 하겠습니다. 의료계를 보면 양방이나 한방으로 치우쳐져 있는데, 이 우수한 의학에도 치료에 한계란 있을 수 있는 부분이고, 마찬가지로 제 영역에도 한계란 따르는 부분입니다. 바라옵건대, 많은 의료인들이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면서 자신의 전문성을 벗어나는 영역이 있다면 다른 의료기관이나 영역으로 환자를 소개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했으면 합니다. 정부와 의료기관, 의사들이 같이 대체의학을 연구하고 소비자 역시도 대체의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조사하여 철저히 검증하고 이미 선진국에서 검증받은 바와 같이, 환자에게 도움이 될 의학이라는 것을 고려해 한국에서도 더 빨리 도입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의사와 한의사들이 카이로프랙틱 치료를 하고 있다. 송 원장은 그들에게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과 환경이 조성되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아직은 카이로프랙틱이 인정비급여로 지정되어 환자들이 치료하는데 부담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하는 그는 “건강보험공단에서 급여진료로 전환해 환자들이 진료비 혜택을 볼 수 있기를, 그리하여 더 많은 환자들이 수술이나 시술 전에 비수술적 치료로 효과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며 새 정부에 바람을 전했다. 이어서 그는 “수술이나 시술 후 관리가 안 되면 충분히 재발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학생 때부터 바른 자세와 생활습관을 들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올바른 생활습관과 자세를 교육시킬 수 있는 조기예방적 시스템이 구축되었으면 합니다.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 교육기관이나 카이로프랙틱 전문 클리닉들이 생겨난다면 국민 건강은 물론, 정부의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송 원장이 국가적 차원에서 조망하는 그의 진지한 고민과 바람은 결국, 척추로부터 고통 받는 많은 환자들을 통증에서 해방시키고 일평생 돌보겠다는 그의 진심 어린 마음과 깊은 신념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짐작컨대 이는, 그의 선친 송영섭 박사가 남긴 정신적 유산이리라. 숭고한 마음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송 원장이 회고하는 故 송영섭 박사는 자신의 아픈 몸을 스스로 치료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그와 같은 척추질환 환자들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주치의로서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카이로프랙틱 전문 병원으로서 이런 우수한 치료 시스템을 발전시키고 유지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적인 치료법 ‘카이로프랙틱 의학’이 국내를 넘어, 동남아에 전파하고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송준한 원장. 더불어, 앞으로 많은 사회활동들을 통해 사회로부터 받은 은혜를 넉넉하게 베풀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더 큰 기대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의 선구자적인 끝없는 열정과 노력으로 국내 카이로프랙틱 의학이 더욱 발전되어 명맥을 이어나가고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주간인물이 그의 희망찬 앞날을 함께 응원한다. ㅁProfileㆍ미국 Palmer College of Chiropractic 졸업ㆍMichigan주 카이로프랙틱 의사면허 취득ㆍFatima College of Medicine 졸업ㆍ대한민국 의사면허 취득ㆍ미국 척추신경학회(Chiropractic Neurology)주관 척추신경전문의 과정 수료ㆍ미국 척추신경전문의ㆍ대한 스포츠의학회 스포츠분과전문의ㆍ대한최면치료학회 초,중,고급과정 수료 ㆍ포천중문의대 대체의학대학원 IMS 고급연수과정 수료ㆍ국제 IMS 강사 자격 취득ㆍ카이로프랙틱 응용근신경학 인정의ㆍ대한 카이로프랙틱 협회(KCA) 정회원ㆍ미국 카이로프랙틱 협회(ICA) 정회원ㆍ대한 IMS 학회 정회원ㆍCANADA iSTOP 정회원ㆍ대한 최면치료학회 정회원ㆍ대한 임상요가학회 국제이사ㆍ대한 응용근신경학회 국제이사ㆍ대체의학 교수협의회 출제위원 및 자문위원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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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0-09
  • [경기대학교 오용환 교수 특별인터뷰] 우리 아이 건강한 성장, 미술교육에서 답을 찾다!
    [위클리피플=오미경 기자] 우리 아이 건강한 성장, 미술교육에서 답을 찾다! ‘아동미술’과 함께한 오용환 교수의 아름다운 人生 오용환 경기대학교 사회교육원 주임교수/ 한국미술협회자문위원/ 관인 꽃동산 어린이집 이사장 아기들이 엄마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가장 먼저 접하는 환경은 눈부신 빛과 소리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시각은 모든 감각기를 이용해 자신이 앞으로 생존해 나갈 곳을 탐색하는 아기들에게 다른 감각기의 발달을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데, 아동기의 창의·인성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시각발달에 좋은 미술교육에서 자녀 성장의 답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국내 아동미술 교육의 변천사를 온 몸으로 흡수하며 어린이 미술교육의 진보를 위해 한 평생을 걸어온 경기대학교 오용환 교수의 이야기가 눈길을 끄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을 꾸밈없이 표현해내는 창구로써 아동미술교육을 말해 온 그를 만나 30년이 넘도록 쉼 없이 이 길을 내달리고 있는 아름다운 인생화폭을 펼쳐보았다._오미경 기자 예기치 않았던 시작, 운명이 되다 오용환 교수가 ‘아동미술’과 인연을 맺어 온, 그의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은 흔히 떠올리는 화가나 미대교수의 모습과는 시작부터가 사뭇 다르다. 원래 그림그리기를 좋아해 화가를 꿈꾸던 오 교수는 고등학교 졸업 무렵, 어려운 집안환경과 부모님의 완고함에 부딪쳐 맏이로서 직업전선을 택한 것이다. 그는 선배가 운영하는 화실에 드나들며 아이들을 지도하는 일을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 길에 접어들었다. 애초에 계획한 출발은 아니었으나 자신을 따르는 순수한 아이들을 보며 가르치는 일의 보람을 일깨운 그는 그 뒤, ‘푸른미술연구소’를 세워 어린이와 입시생 지도에 나섰고, 불모지나 다름없던 아동미술을 알리왔다. 그러면서 서울시교육위원회의 인가를 받아 연구소를 학원으로 변경, 입소문을 타고 곳곳에서 찾는 이들 덕분에 눈에 띄는 성장을 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그 즈음, 덕수궁 옆 중앙국립공보관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열고, 원생들과도 전시회를 갖는 등 화가이자 교육자로서 모두 승승장구한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오 교수는 미술학원연합회 동부지부장을 역임하는 등 아동미술의 궁극적인 발전 방향 제시를 위해 다방면으로 적극 노력했다. 어린이 미술교육의 진보를 그려온 만학도 화가의 열정 드라마틱한 화가 오용환 교수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 중 하나는 해외교류를 통해 국내 아동미술 교육에 새로운 시도를 꾀했다는 점이다. “80년대 들어와 미술학원이 부흥기를 맞이하긴 했지만,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던 70~80년대에는 아동미술교육에 관한 책이나 연구자도 거의 없고, 순수미술에 치중하는 경향이 커 아동미술 교육의 궁극적 발전에는 한계가 있었어요. 그러던 중 학회 등을 통해 조금씩 해외의 자료들을 접하게 되면서 아동미술의 중요성을 알리고, 전문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저를 포함한 5명의 아동미술교육 작가들이 뜻을 모아 한국청소년미술협회 주관으로 일본에서 진행된 한일합작 청소년미술제에 참여했습니다. 거기서 제가 지도한 어린이가 최우수상을 받았고, 동료들과의 전시회도 열면서 당시 일본 언론으로부터 많은 플래시 세례를 받았어요(웃음).” 해외 무대에서 말로는 다 못할 뿌듯함과 기쁨을 맛 본 오 교수는 일본에서 돌아오자마자 학문에의 열정을 더욱 불태우며 또 하나의 인생 드라마를 만들어갔다. 정부의 주도로 1985년, 미술학원을 유치원으로 전환하는 정책이 이뤄져 그는 곧바로 방통대 유아교육학과에 입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파란유치원의 원장이 되었고, 미술에 대한 지식을 더 쌓아 미래의 어린이 지도자들을 가르치리란 꿈으로 경기대 회화과에 편입해 수석졸업과 총장상의 영예를 누렸다. 게다가 그는 동대학 교육대학원까지 우수 졸업을 하기에 이른다.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놓지 않으면서 내 공부를 하다 보니 불이 붙더라고요. 이른 직업적 성공도 겪었지만 공부에 대한 열망은 늘 마음속에 있었어요. 신갈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마침내는 대학 강단에 서는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숙명여대, 한양대를 지나 경기대학교에서도 강의를 하게 된 그는 당시 속초의 동우대학교 유아교육학과 교수 공개채용에도 응시하여 합격하는 등 미술과 유아교육을 넘나들며 대학 교수로서 원 없이 역량을 발휘하였다. 비록 출발은 평범하지 않았을지라도 그의 멈추지 않는 노력과 집념이 이뤄낸, 꿈을 이룬 결과였기에 더 값진 순간이었으리라. 뿐만 아니라 그의 실력이 더욱 소문이 나면서 문화센터 강의 요청과 개인지도 요청까지 쇄도하였다. 종횡무진 활약해 온 오 교수는 90년대에 예술의 전당 최초의 개인전을 열기도 했으며, 국내·국제전에도 다수 참여하는 등 끊임없는 작품 활동으로 자기개발 또한 이어나갔다. 1991년에는 그의 인생에서 큰 상처로 남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힘든 치료시기를 보내기도 했던 그였지만, 오 교수는 몸에 밴 듯 여전히 미술과 함께였다. 이 밖에도 세계예능미술교류협회 주관의 미술대회 심사, 소년한국일보 미술대회 심사를 10년 넘게 이어오는 등 오 교수는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어린이가 미래다 '꽃동산 어린이집'의 교육 어린 시절 조부모의 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연 속에서 살아온 오용환 교수는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도 자연에서 뛰놀며 아이다운 상상력과 순수함으로 성장하길 바라 3년 전, 경기도 광주에 아내와 함께 둥지를 틀었다. 오 교수는 “아동의 미술은 소질이 있어야만 하는 것도, 직업적 목적 때문에 하는 것도 아닌, 상상력과 꿈의 자양분으로서 이뤄져야한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은 그리기나 만들기를 통해 자신을 오롯이 표현해내고 오감을 발달시키면서 자연스레 정서안정과 인격의 형성까지 이루게 됩니다.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를 통해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부분이죠. 어린 시절에는 교과목 교육보다 마음껏 뛰놀며 잠재된 성향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밝은 성장이 중요해요.” 오 교수는 아동미술교육의 중요성이 고취되기 위해서는 먼저 정부와 국회에서 미술문화를 보다 쉽게 접근하고 그 중요성을 알려야한다고 역설하며 “아동미술 교육은 명령적, 기계적이 아닌 창의성과 경험, 자유에 바탕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작품세계만큼이나 자연냄새 물씬 나는 동화 같은 꽃동산어린이집에서 지금도 미술교육을 하고 있는 오 교수는 음악과 사회복지까지 전공한 아내와 함께 아이들의 풍요로운 교육 환경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사회 봉사에도 발 벗고 나서며 스스로 아이들의 본이 되고자 하는 마음 또한 그대로 전하고 있다. 오용환 교수는 앞으로 미술연구소를 설립하여 후배들에게 그간의 배움과 경험을 나누고, 세계 18개국 아동미술 교육을 연구한 책도 출간할 예정이다. 꿈꾸는 이의 얼굴은 언제나 빛이 나지 않던가. 또 하나의 계획을 전하며 환하게 웃어 보이는 그에게서 아동미술을 향한 변치 않는 열정만큼이나 빛나는 순수함을 발견 할 수 있었다. profile. 現 경기대학교 사회교육원 주임교수 한국미술협회, 경기대학 총동문회 자문위원 한국기독교미술협회운영위원 한국국제미술협회부이사장 아트피아미술협회부이사장 서울미술협회이사, 사실련예술분과위원장 관인 꽃동산 어린이집 이사장 사단법인 한국여가문화지도자연합회 부이사장 퇴촌 주민자치위원 홍보분과 -경기대학교 동 교육대학원 미술과 졸업-개인전 9 회(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 등)-한국, 프랑스 50주년 한인회 초대전-타쉬켄트 국제 비엔날레 특별전-추상수채화협회 회장 역임-경기대학교 인문예술학부 전담교수 역임 -동우대학교 유아교육학과 겸임교수 역임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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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피니언리더스
    2013-10-02
  • [호식이두마리치킨 최호식 대표 특별 인터뷰] 최고의 품질과 고객 감동을 실현하다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이준영 기자, 김정은 기자] ‘의리 경영, 상생 경영’으로 최고의 품질과 고객 감동 실천하는<호식이 두 마리 치킨>최호식 호식이두마리치킨 대표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는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자신의 이익보다 자신을 믿고 함께 일하는 많은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에 반해 오랜 시간 의리를 지키며 일으킨 ‘군자’ 기업이 있다. 포화 상태인 치킨 외식업계의 대형 프랜차이즈 기업들 사이에서 ‘한 마리 가격에 두 마리’라는 창조적 가격파괴 마케팅으로 업계에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당당하게 발 맞춰 성장하고 있는 <호식이 두 마리 치킨>의 최호식 대표를 <주간인물 WEEKLY PEOPLE>이 만나보았다. _취재 이준영 기자/ 글 김정은 기자 누구나 느끼는 아쉬움을 사업 아이템으로!“여느 가정처럼 저희도 가족끼리 치킨을 즐겨먹었어요. 하지만 네 사람이 먹기에는 가격에 비해 양이 늘 아쉬웠지요.” 식구가 모여 앉아 치킨을 먹을 때면 늘 가격과 양에 대한 아쉬움을 느꼈다는 최호식 대표는 문득 ‘한 마리 가격에 두 마리를 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먹어도 양이 차지 않는 아쉬움에 우연히 든 생각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생각이 커지자 그는 직접 실행으로 옮겼고, 치킨에서 가장 중요한 육계 가격을 알아보았다. 오랜 시간 발로 뛴 결과, 한 마리 가격에 두 마리를 먹을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은 적중했고, 사업 아이템으로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상에서 늘 느끼던 아쉬움이 대박 아이템이 된 순간이다. 그 후 치킨 박사가 되기 위해 직접 닭을 튀겨보고, 여러 가지 양념도 만들어 가게를 운영해 보면서 1년이라는 시간동안 사업을 위해 공부를 한 그는 1999년 1월,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건 <호식이 두 마리 치킨>으로 외식업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최초의 창조적 가격 파괴 마케팅으로 공략하다 한 마리 가격에 두 마리를 판매한다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이었다. “당시 외식업계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기 때문에 모두가 실패할거라고 했어요.” 하지만 그것은 고정관념이었을 뿐, 최호식 대표는 1년 동안을 연구하면서 오히려 사업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문제는 가맹점을 모집해야 하는데 여러 매체를 통해 아무리 광고 홍보 활동을 해도 가맹점 계약이 힘들었습니다. 긍정적인 반응으로 계약하기로 했던 사람들도 정작 계약 당일에는 오지 않더라고요. 1년여 동안 가맹점 모집이 되지 않아 가족 모두가 지쳐 있었고, 나중에는 아내까지 포기하자고 하더군요.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의 일념이 강하게 남아있어 저는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견뎌내기로 했죠”라며 힘들었던 시간들을 회상했다. “어느 날은 아들이 호랑이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큰 호랑이가 두 마리나 꿈에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하필 호랑이가 두 마리나 꿈에 나왔다는 것에 가족 모두는 길몽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모두의 바람처럼 신기하게도 바로 다음날 첫 계약자가 나타났고, 일주일동안 연달아 계약이 성사되면서 <호식이두마리치킨>은 본격적으로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다. 최호식 대표는, 돌이켜보면 1년이라는 시간이 지옥 같았지만 꿈에 나타난 호랑이 두 마리에 아주 큰 뜻이 있었다고 회상하며 웃어보였다. 꿈꾸던 일들이 현실로 이루어지니 절로 힘이 나지 않겠는가. 그는 그때의 성취감과 희열감으로 지금까지 기업을 운영해오고 있다고 했다. 가맹점이 생겨나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한 사람의 아쉬움이 모두의 아쉬움을 해소해 준 순간이다. 그렇게 <호식이 두 마리 치킨>은 꾸준히 성장했다. 최호식 대표는 대전 땅에 1호점이 탄생하던 때를 추억했다. 그 날의 희열감을 잊지 못한다며 타 지역 지사까지 생겨나고, 서울에 1호점까지 탄생한 순간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지금까지 이 사업을 해오면서 개인의 이익만을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어려운 분들이 저를 믿고 함께 하면서 행복해 하시는 모습에 반해버렸습니다. 그것이 사명감이 되었고, 저의 피로회복제이지요(웃음).” ‘의리’라는 무기 <호식이 두 마리 치킨>을 성공 궤도에 올려놓은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의리’가 무기라고 말하는 그의 대답에서 경영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처음 시작 할 때의 거래처들과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닭을 거래하고 있는 ‘하림’과는 벌써 15년째네요.” 여러 가지 원재료 등을 거래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상대가 먼저 등을 돌리지 않는 이상 계속 거래를 하고 있다. 특히 ‘하림’과는 공동 마케팅 협약으로 맺어질 만큼 든든한 파트너가 되었다고. “오랜 시간 거래처들과 우정을 다져왔기 때문에 고객님들에게 최고의 품질로 최고의 맛을 선물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저처럼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제일 중요한 무기가 약속과 의리입니다.” 이러한 그의 경영 철학은 친인척으로 이루어진 경영주들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전국 가맹점의 1/3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친인척 경영주들이 두텁게 형성되어있다. 이는 <호식이 두 마리 치킨>만의 차별화 된 자랑거리라며 힘주어 얘기하는 그의 표정에서 남다른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먼저 창업한 점주들이 가장 가까운 친인척들에게 소개하면서 생겨난 체인점이 680여개 매장 중 240여개가 된다. <호식이 두 마리 치킨>만의 이러한 현상은 타 브랜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최 대표는 “체인점을 운영하시던 점주님들이 각 지사의 지사장까지 맡게 되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의 꿈을 이루는데 제가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몰라요”라며 웃어보였다. 포화상태인 프랜차이즈 치킨 업계에서 <호식이 두 마리 치킨>이 이토록 성장한 비결과 원동력은 바로 의리경영, 상생경영이었다. 성공과 실패는 ‘아주 작은’ 차이 완전히 새로운 마케팅 방식으로 경영하다보면 마주칠 수 있을 법한 크고 작은 위기들을 그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 “어려운 상황에선 늘 자신에게 더 엄격해집니다. 보통 어려움을 겪게 되면 좌절하여 슬럼프에 빠지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저는 그러한 과정들을 극기 훈련으로 승화시킵니다”라고 말하는 그는 부정과 긍정의 차이는 작은 먼지처럼 가볍다고 말한다. “작은 차이지만 그것에 대한 결과는 엄청나죠.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힘든 순간이야말로 나를 더 튼튼하게 단련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에게는 오히려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새벽에 잠이 깬 상태에서 눈을 감은 채 누워 명상을 한다는 그는 조용한 새벽 시간에 자신 앞에 놓인 어려움과 극복 방법을 생각하고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할지를 결정한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출근해서 생각해보면 새벽 명상시간에 생각했던 결과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명상시간에 생각했던 것을 잊지 않고, 그대로 결정하는 편입니다. 늘 명상할 때 했던 생각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는 성공과 실패의 차이란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의 차이라며, 개인 시간 중 꽤 많은 시간을 명상 하는 데에 할애한다고 전했다. 맛도 두 배, 양도 두 배, 기쁨도 두 배! <호식이 두 마리 치킨>은 올 해 1000호점 오픈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그들만의 의리경영으로 만들어진 친인척 경영주 창업 현상은 현재 한국 기록원에 등재될 수 있는 수순을 밟고 있다. 더 나아가 세계 기네스북에도 등재할 예정이다. 또한 최호식 대표는 치맥 페스티벌 매출전액 기부, 사랑의 쌀 기부와 그 외 장학금지원 등 <호식이 두 마리 치킨>과 함께 사회 공헌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또 해외 진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그는, 적자 진출이 아닌 흑자 진출을 위해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맛도 두 배, 양도 두 배, 기쁨도 두 배’라는 기업 캐치프레이즈처럼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가겠다고 말하는 최호식 대표. “우리 기업이 우리나라 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전력으로 달리겠습니다”라며 <호식이 두 마리 치킨>을 사랑해주시는 모든 점주님들과 직원들, 그리고 고객님들의 행복 가득한 얼굴을 잊지 않고 꿈을 위해 늘 돕겠다고 말하는 최호식 대표의 깊고 따뜻한 마음이 가을의 파란 하늘과 닮아있었다. ◈profile * 주요경력계명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 총동창회 회장 역임계명대학교 총동창회 부회장국민 생활체육 전국 인라인스케이팅 연합회 회장 역임대구지방검찰청 서부지청형사조정위원 역임대구서부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운영위원장 역임대구서부 범죄피해자지원센터 부이사장 역임한국식품 외식산업발전협회 회장 역임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수료대한민국 신지식인협회 부회장한국프랜차이즈협회 부회장 * <호식이 두 마리 치킨> 수상 및 활동 내역2004년 6월 프랜차이즈 대상 수상2004년 11월 2004년 고객감동 power Brand "KHANT" 대상2004년 12월 경영혁신우수기업 대상 수상2008년 11월 중소기업경영 대상 수상2009년 11월 미래선도경영 & 기술혁신우수기업 선정2009년 12월 대한민국 신지식경영인 대상 수상2010년 10월 2010 한국프랜차이즈 대상 수상2010년 10월 2010 소비자만족 대상 수상2011년 3월 2011 한국을 빛낸 창조 경영인 대상 수상2011년 4월 소비자가 뽑은 2011년 한국소비자만족지수 1위업체 선정2012년 6월 대한민국 자랑스런 혁신 한국인 선정2012년 6월 한국경영혁신우수기업 선정2012년 7월 대한민국을 빛낸 대표 브랜드 선정2012년 11월 대한민국 세종나눔봉사대상 최고대상 국방부장관상 수상2012년 12월 대한민국 사회공헌대상2013년 2월 2013 한국을 이끄는 혁신리더 선정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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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0-02
  • [황재순 박사의 아, 그렇구나!] 이준 열사께서는 정말 할복으로 자살하셨을까요?
    [교육연합신문=황재순 칼럼] 누가 어떻게 그런 소문을 냈는지 몰라도 현재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들 알고 있지요.북한에서 만든 이준 열사 연극에서도 만국평화회의장에서 할복하는 것으로 되어 있더군요. 할복자살이란 원래 전투에서 패한 일본 사무라이들이 패전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지 않고 자기 혼자만 책임을 지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장렬한 자살방법의 하나인데요... 정장을 하고 앉아서 작은 칼로 자신의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내 들면 고통을 줄여주는 차원에서 그 옆의 사람이 큰 칼로 목을 쳐 주는 방식인데, 대개의 경우 할복자살하는 사람은 두고두고 일본 사람들 존경의 대상이 되곤 하지요. 할복자살이란 것이 이와 같이 일본의 전통적인 사무라이 자살 방식인데 우리의 이준 열사가 그런 방식으로 자살하지도 않았지만, 또 그런 방식으로 돌아 가셔서도 안 되지요. 할복자살이 멋있는 죽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누군가가 이준 열사의 죽음을 과장하여 표현한 것 같은데.... 사실 따지고 보면 할복자살을 멋있게 보는 그 자체가 일제의 잔재라고 볼 수도 있지요. 서울 남대문역에서 서로 다른 날 기차에 오른 이준, 이상설 공과 헐버트 목사 일행은 만주 용정에서 만나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이용익으로부터 대표 신임장과 고종황제가 러시아 황제에게 보내는 밀서를 받아 다시 기차를 타고 러시아 피터스버그에서 러시아 황제에게 밀서를 전달하고 주 러시아 이범진 공사의 아들 이위종과 함께 기차로 헤이그로 갔는데, 워낙 장거리 여행인 데다 정신적인 피로까지 겹쳐서 이준 공은 네덜란드의 어떤 병원에서 조국의 운명을 걱정하는 유언을 남기고 조용히 세상을 떠난 것으로 네덜란드 국회도서관 보관 신문철에서 확인되었습니다. 나이는 48세. 병명은 급성종양. 네덜란드 헤이그의 만국평화회의.이 회의는 원래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제창하여 결성된 전세계 외교팀들의 회의이지요, 이것이 나중에 국제연맹으로, 국제연합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지요. 1907년 6월 15일부터 제2회 만국평화회의가 헤이그에서 열렸는데, 이 회의 기간 동안 전세계 뉴스의 초점이 되었던 인물은.... 본회의에 한번도 참석하지 못했으면서도 장외에서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였던 약관 20세의 이위종 공이었지요. 이위종 공은 20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유창한 외국어 솜씨로 특별연설에다 단독회견 등으로 만국일보의 1면 머리기사를 여러 차례 장식하였고, 허울뿐인 만국평화회의의 무능함까지 질타하는 등 만국평화회의의 실질적인 뉴스 메이커 역할을 하였습니다. 덕분에 일본은 국제적으로 큰 망신을 당하였고, 밀사를 보낸 고종황제는 이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즉각 폐위가 되어 대한제국의 황제가 순종으로 바뀌어 버리는 사태가 벌어졌지요. 이 때 쫓겨난 고종황제는 12년 뒤 1919년 서거하셨는데 이 장례식 보러 온 백성들이 3.1만세 운동을 일으켰고, 헤이그에 묻혔던 이준열사는 1963년 서울 수유리로 이장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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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9-25
  • [바디코디 김은옥 원장 특별 인터뷰] 건강을 돌보지 않은 당신, 성공을 바라지 마라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하여라 기자] 건강을 돌보지 않은 당신, 성공을 바라지 마라김은옥 피지오테라피스트가 전하는 ‘성공의 핵심’김은옥 바디코디 원장 / 피지오테라피스트 ‘스티븐 잡스는 성공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잡스의 성공여부에는 거의 이견이 갈리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그래서 ‘실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잡스는 ‘애플 신드롬’을 일으킨 장본인, 시대를 선도하는 기술자, 픽사와 애플을 혁신적으로 이끈 CEO로 기억된다. 그의 ‘스펙’을 보면 성공에 의문을 갖기 어렵다. 바디코디 원장이자, 김은옥 피지오테라피스트는 “아무리 성공했다고 해도 건강을 잃는다면 진짜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라고 반문한다. 그녀의 말에 ‘진짜 성공’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성공으로 내모는 사회에서 우리는 자의 반 타의 반 ‘워커홀릭’으로 산다. 몸은 매일 혹사당한다. 여기에 빨리 성공해야 한다는 시간적인 압박감까지 더해진다. 몸을 돌보지 않아 성공의 대가로 생명을 지불한다. 성공하고 싶다면 ‘내 몸의 소리를 들으라’는 김은옥 피지오테라피스트를 만나 성공에 대한 정의를 다시 세워봤다. _취재 이선진, 하여라 기자 / 글 하여라 기자 몸과 마음을 함께 돌봐라 어느 날 한 여교수가 김은옥 원장을 찾아왔다. 여교수는 ‘강단을 떠나고 싶다’고 김 원장에게 토로했다. 김 원장은 ‘모든 과정이 끝난 후에도 그 말을 하시는지 보겠다’며 자신만만하게 여교수 신체치유에 들어갔다. 지금 여교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못 궁금해 졌다. “강단에서 예전보다 더 열정적으로 일 하고 계세요. 교수님은 일에 지쳐 그만두고 싶은 걸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 체력이 부족해 일이 즐겁지 않았던 거죠.” 여교수의 사례를 듣고 나니 피지오테라피가 정확히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김 원장은 피지오테라피를 ‘근육과 신경을 조정하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근육이 제 위치에 있어야만 근육의 지탱을 받는 뼈와 신경도 제 자리에서 원활하게 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 피지오테라피의 핵심이다. 피지오테라피스트라고해서 김 원장은 ‘신체’만 돌보지 않는다. ‘정신건강’도 함께 살핀다. 김 원장은 오랫동안 연구를 진행하면서 몸과 마음이 함께 치유되어야 ‘진짜 건강한 삶’이라는 걸 알게 됐다. “처음에는 몸 연구만 했어요. 고객들을 치유하면서 고객 각자의 삶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왜 이 사람 몸은 이렇게 안 좋아졌을까’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됐죠. 몸에 삶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더라고요. 우리 몸은 화가 나거나 긴장하면 뻣뻣해져요. 분노하면 신체 장기들이 경직되고, 호흡도 죽은 듯이 멎어, 신체가 긴장 상태로 돌변합니다. 몸의 모든 에너지가 바뀌는 거죠. 이렇듯 몸과 마음은 철저하게 하나입니다.” 김 원장은 모든 고객들이 정신적인 안정감을 찾을 수 있도록 NLP(신경언어프로그램)트레이너 과정을 거쳤으며, 최면치유트레이너 자격증까지도 따냈다. 전문적인 상담으로 과거 정신 상처와 부정적인 무의식 정서까지 치유한다. 여기에 피지오테라피를 통해 신체 건강도 함께 챙기니 몸과 마음을 함께 돌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고객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그래서 김 원장을 찾아온 고객들은 자연스레 단골이 되고, 김 원장과 친구가 된다. 인터뷰 중간에 바디코디를 찾은 고객들을 보면, 모두 김 원장을 친구처럼 편안하게 대했다. 건강을 잃는 순간 모든 걸 잃는다 “내 삶의 발전도, 열정도 모두 건강에서 나옵니다.”김은옥 원장은 좋은 생각이 건강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인식을 답답하게 느꼈다. “건강이 뒤따라주지 않는데 좋은 생각이 과연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을까요? 좋은 생각도 몸으로 움직여야 실현이 되는 겁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행동하지 못 한다면, 생각과 몸이 계속 싸워요. ‘하지 못 한다’와 ‘해야 한다’는 괴리감으로 인해 삶의 절망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 깨달음은 김 원장의 직접적인 경험에서 비롯됐다. 아이 둘을 제왕절개로 출산한 김 원장은 출산 이후부터 몸이 급격하게 부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신마취의 후유증 탓인지 무기력감에 빠졌다. 신체가 생각처럼 따라주지 않자, 삶의 행복은 사라졌다. ‘내가 저걸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김 원장을 짓눌렀다. 그 스트레스로 인해 몸 상태는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몸이 아프니 삶의 열정도 사라지고, 주위의 모든 게 다 귀찮아졌어요.” 피지오테라피스트 일도 생존 몸부림에서 시작됐다. 병원에 다니며 좋다는 치료법을 총동원해 봤지만, 몸은 회복되지 않았다. 그 때부터 직접 신체에 대해서 공부하며 스스로 몸을 케어했다. 그리고 피지오테라피스트 전문가가 되었다. 열정도 건강에서 출발 독일에서 바이올린 공부를 하고 있는 자녀를 둔 어머니가, 어느 날 김 원장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그 분은 피지오테라피를 자녀에게 권하고 싶었지만, 한 달 넘게 자리를 비우고 와야 하는 자녀가 마음에 걸렸다. 김 원장은 당장 유학중인 자녀를 데리고 오라고 어머니에게 조언했다. “자녀분이 처음에 바디코디에 와서 한 말이 ‘제가 이 일(바이올린 연주)을 계속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였어요. 몸 상태를 보니 재능 부족으로 진로를 포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 체력적으로 견딜 수 없으니 다른 일을 찾고자 한다는 걸 깨달았죠.” 김 원장은 체력만 보강된다면 진로 고민은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여교수에 이어 또다시 김 원장은 ‘모든 과정이 끝나고도 바이올린을 그만둔다고 말 하는지 보겠다’고 다시 한 번 장담하였다. 그 유학생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가자, 김 원장은 유학생이 처음 한 말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자신 덕분에 한 사람이 제 길을 가게 되어서 뿌듯했다. “내 건강을 돌보면서 역향력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야 삶의 질도 달라져요. 열정도 건강해야 나오죠. 모든 사람들이 신체가 내 삶의 ‘도구’라는 사실을 인지했으면 좋겠어요. 전쟁터에 나갈 때 ‘녹슨 총’을 가지고 가면 잘 싸울 수 있나요. 유학생 어머니도 잠시 공부 중단하는 걸 걱정했는데, 우리가 시간을 앞당겨 성공한다고 쳐도, 그게 지속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에요. 5년 할 것을, 3년 만에 해내고 쓰러져서 죽으면 이게 성공일까요, 아니면 5년 동안 내 건강도 잘 챙기면서 성공하는 것이 옳은 걸까요, 어떤 쪽이 진짜 성공이라고 생각하세요?” 누구나 후자를 선택하지 않을까. 잡스가 아쉬웠던 것도 이 대목에서였다. 그가 좀 더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지혜가 있었더라면, 그는 세상을 발전시키는데 꽤 오랫동안 더 많은 공헌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빠른 성공을 위해서 우리가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아니 묄세 “태풍이 와도 나무가 끄떡없이 버티려면 뿌리가 튼튼해야 해요.”김은옥 원장은 이해하기 쉽게 나무에 빗대어 성장기 기초 건강을 다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했다. 키 크라고 호르몬제를 아이들에게 투여하고, 면역력을 기른다고 약도 먹이지만, 신체가 균형과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다면 굳이 비싼 돈을 들여 건강을 챙길 필요가 없다는 것이 김 원장의 지론이다. 김 원장은 자녀들의 공부에만 집중하지 말고, 성장기 체력관리에도 부모들의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모든 근육과 뼈들이 제 위치에 있다면 아이들은 알아서 잘 큽니다. 우리 몸은 이미 그렇게 만들어져 있어요. 성장 할 때 균형만 잘 잡아주면 될 걸, 시기를 놓쳐 많은 시간과 큰 공을 들여요.” 성장기에 피지오테라피로 바른 신체 균형과 조화를 이룬다면 두뇌가 개발되고 아름다운 외모까지도 가질 수 있다. “근육 조정을 하면 아이들의 성장판이 자극되니 키 크는 건 물론 두뇌 개발까지 됩니다. 유독 산만한 아이가 있는데, 몸의 균형이 올바르지 않아서 산만할 수도 있어요. 요즘은 부모님들이 먼저 아이 외모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데, 신체의 균형이 바르면 외모도 예쁠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은 삶에 확신을 준다 고용 불안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점점 커져간다. 취업 걱정, 정리 해고 걱정, 노후 준비 걱정 등 불안의 연속이다. 그러나 김 원장에게만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육체가 건강하다면 마음먹은 일을 할 수 있으니 두렵지 않아요. 내 스스로 어떤 상황이 닥쳐도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미래가 불안하지 않은 거예요. 정작 사람들은 이 포인트를 잘 모르더라고요. 체력이 뒷받침이 안 되면 내가 아무리 마음을 바꿔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우선 몸부터 만들라고 말해요. 내 건강에 귀 기울이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왜 피곤한지, 그 사인은 무엇 때문인지, 내 몸에 귀를 기울여 내 삶의 자원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해요.” 김은옥 원장은 포드 자동차의 창업자 헨리 포드의 말을 인용해 말했다. “기계도 쉬어야하는데 하물며 인간의 몸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휴식이 필요해요. 일과 휴식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김 원장은 ‘건강이 내 삶을 행복하게 하고 역량 있게 만들어 준다’라는 조언을 독자들에게 남겼다. 그녀의 조언이 숨 가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 여유를 가져다주는 물꼬가 되었으면 좋겠다. ◈Profile라이센스 및 수료한국기독 봉사회 한의학회 침구학 수료국제 아로마 강사자격취득 피부관리사 국가자격증 취득머슬테라피 사범과정 수료응용근신경학과정 수료한국 NLP트레이너한국 NLP최면트레이너한국머니코치과정 수료현 바디코디 원장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2013-09-25
  • [트루맨 남성의원 왕십리점 장주현 원장 특별 인터뷰] 남성토탈클리닉에서 ‘진짜 남자’를 만드는 의사 '장주현 원장'을 만나다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이선진, 이준영 기자]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이다남성토탈클리닉에서 ‘진짜 남자’를 만드는 의사장주현 트루맨 남성의원 왕십리점 원장 “아이고, 이걸 말해야하나?” 남성의원에서 상담 받는 사람들 대다수의 반응이 이렇다. 성문화가 개방적으로 변하고 있는 현대사회일지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남성 질환에 대한 인식은 폐쇄적이고 익숙하지 않다는 증거이다. 그렇기에 남성의학을 세상으로 끌어내려는 노력은 계속 되고 있다. 특히, 뛰어난 의술을 통해 남성 의학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리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는 비뇨기과 전문의가 있어 <위클리피플>에서 만나보았다. <트루맨 남성의원 왕십리점> 장주현 원장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어보자. _취재 이선진, 이준영 기자 / 글 이준영 기자 남성들이여, 솔직해져라 남성의원에 간다는 것은 왠지 꺼려진다. 모든 남성들이 그럴 것이다. 고민만 하다가 결국 다음으로 미루거나 방문을 포기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트루맨 남성의원의 장주현 원장은 “60~70대 어르신들부터 20대 젊은이들까지 남성 질환이 발생하는 연령대는 매우 다양하다”라고 말한다. “남성이라면 누구나 남성 질환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절대 창피하거나 부끄러운 질환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로 현대의학의 발전으로 노년에도 부부관계가 가능하기 때문에, 나이를 불문하고 남성 의학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보통 비뇨기질환이 소위 말하는 ‘나쁜 짓’을 해서 생긴다는 속설도 잘못된 것이다. 장주현 원장은 “요도염이나 전립선염은 일반적인 경우에도 생길 수 있는 비뇨기 질환이다”라고 설명하면서 “편하게 비뇨기과를 방문하여 다른 합병증으로 치료가 어려워지기 전인 증상 초기에 치료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라고 설명했다. “솔직하게 전문의와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치료를 가져다줍니다.” 또한 트루맨 남성의원은 100% 남자 간호사들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편안하게 방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남성토탈클리닉 ‘트루맨 남성의원’ 왕십리 역 근방에 위치한 ‘트루맨 남성의원’ 왕십리점. 장주현 원장이 운영하고 있는 이 병원의 가장 큰 특징은 비뇨기과 수술·치료는 물론이고 남성체형성형까지 해결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장주현 원장은 “요즘 남성의원에서 한 가지 분야만 전문적으로 하는 것보다 다양한 분야를 접목시켜서 종합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추세다”라고 말하며 “트루맨 남성의원은 비뇨기과 수술, 남성체형성형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외형을 개선시키고 남자들의 자신감도 회복시키고 있기 때문에 <남성토탈클리닉>이라고 소개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남성의원이라면 성기능 개선 수술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데 남성체형성형이라니 상당히 이채롭다. 최근 남성들도 외형적인 부분에 관심이 높아져 트루맨 남성의원에서는 여성형유방증 (여유증) 수술, 복부지방흡입, 복근성형, 허벅지지방흡입, 엉덩이지방흡입, 액취증·다한증 치료 등 다양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 이슈가 되었던 여유증은 남성의 가슴이 발달하여 여성의 유방처럼 봉긋해지는 현상으로 보통 여성호르몬 증가로 인한 유선조직의 민감한 반응과 가슴부위의 지방과다 축적으로 발생한다. 장주현 원장은 “트루맨 남성의원의 수술방법은 매우 효과적이며 안정적이다" 라고 말하면서 “흉터가 적고 가슴의 라인도 살려 모양도 보기가 좋으며 합병증 확률도 낮아 수술 받은 환자들이 모두 만족해한다”라고 강조했다. 복부지방흡입과 복근성형, 허벅지지방흡입 등 지방 제거를 위해 트루맨 남성의원에 내원하는 사람들도 많다. 장주현 원장은 “지방흡입을 통한 군살제거 뿐만 아니라 복근라인을 잡아주는 성형도 가능하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체험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체형성형은 수술 후 관리도 매우 중요합니다. 1~2개월의 기간 동안 압박복을 꼭 착용하고 수술 후에는 조심스런 자세로 활동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사람에게 맞는 치료가 가장 좋다 트루맨 남성의원은 비뇨기과 수술 전문병원으로서 당연히 비뇨기과 치료도 뛰어나다. 특히 장주현 원장은 ‘국제인명센터(IBC)’에서 지정하는 ‘2013 올해의 세계 선도의학자’로 선정되었다. “SCI, SCI(E)에 발표한 논문들과 남성의학 분야에 대해 연구했던 것들이 나름 인정을 받아 운 좋게 선정되었다고 생각해요. 부끄럽네요.” 장 원장의 겸손한 대답 속에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이렇게 장주현 원장을 포함한 트루맨 남성의원의 전문의들은 조기사정(흔히 말하는 조루), 발기부전, 남성 확대수술, 전립선 질환, 남성갱년기, 포경 수술, 정관 수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치료를 보여주고 있다. 장주현 원장에게 트루맨 남성의원의 특별함에 대해 들어보았다. 먼저 조기사정의 비뇨기과 치료법은 정답이 없다. 각종 약물요법과 수술 등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신경차단술이다. “기존의 조기사정 수술은 신경 절단 수술이었습니다. 이상감각, 통증, 발기부전 등 부작용 확률이 높았었죠. 하지만 트루맨 남성의원 만의 신경차단술은 기존의 신경 절단 수술보다 합병증과 부작용이 훨씬 적습니다. 또한 절개를 최소화하고 이후에 복원도 가능하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수술 부담이 적으면서 효과가 뛰어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발기부전 치료도 먹는 약, 주사제, 수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된다. 장주현 원장은 “요즘에 특허가 풀려서 다양한 약들이 많이 출시되어 예전보다 약값도 저렴해졌다”라고 말하며 “약과 주사제에도 효과를 볼 수 없는 경우 시행되는 보형물 수술도 안전하고 만족도가 높기 때문에 다양한 방향으로 치료가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트루맨 남성의원은 굴곡형 보형물·팽창형 보형물 삽입수술에서 안전하고 뛰어나기로 정평이 나있다. 남성 확대수술은 자가 지방을 미세 주입하는 확대 방법과 대체진피를 통한 확대 방법 등이 있다. “필러로 확대하는 방법도 있지만 몸 안에서 물질이 이동하는 경향이 있고 물컹거리기 때문에 이 두 가지 방법으로 주로 수술하고 있습니다.” 또한 장주현 원장은 “자가 지방이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착률이다”라고 말하면서 “자가 지방을 주입하는 나름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착률도 매우 높은 편이다”라고 강조했다. 각종 수술에 대해 설명하면서 장주현 원장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은 바로 ‘그 사람에게 맞는 치료법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마다 신체적 특징이나 질환의 이유가 천차만별입니다. 남성 확대수술을 예로 들자면 마른 사람들의 경우 지방 생착률이 좋지 않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확대수술을 진행하는 것이 효율적이죠. 무엇보다도 환자분들 개개인의 특성을 잘 파악하여 맞춤형 수술·치료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이다 포항공대 물리학과 출신의 장주현 원장이 비뇨기과 전문의의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장 원장은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은 있었다”고 설명했다. “물리학은 물론 재미있고 훌륭한 학문입니다만 당시에 저는 실생활에 활용되는 좀 더 현실적인 학문을 하고 싶었습니다.” 장주현 원장은 포항공대 졸업 후 결국 수능을 보고 서울대학교 의대에 합격했다. “평생 동안 계속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타인을 치료하고 자신도 보람을 느끼는 의사라는 직업이 저와 가장 잘 맞을 것 같았습니다.” 의대 생활의 어려움도 많았다. “물리학이 하나의 원리를 응용하는 학문이라면 의학은 암기해야하는 부분이 많은 학문이라 처음엔 조금 힘들었죠.” 하지만 장주현 원장은 “서울대학교에서 인턴 생활을 하면서 직접 환자를 대하다 보니 의학적으로, 인간적으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배워가는 과정 속에서 다른 분야보다 구체적이고 세밀한 치료가 필요한 비뇨기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연구와 치료, 그리고 수술에 뛰어난 비뇨기과 전문의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환자들을 보면서 항상 마음에 되새기는 말이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병원 수업시간에 들었던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이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친절과 봉사도 중요하지만 결국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고 수술할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된다는 말이었죠. 저희 병원이 비뇨기과 수술 전문병원이기에 이 말은 항상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임상 데이터가 모이면 논문 쓸 계획 장주현 원장은 남성의학 분야에 대해서 “명확하게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많기에 연구할 부분도 많은 것이 남성의학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많은 환자분들이 적극적으로 병원에 방문해 주시고 치료받으셔야 임상 경험도 쌓이고 비뇨기과 연구도 발전할 것입니다.” 또한 장 원장은 “논문을 쓰다보면 많은 사람들의 연구 자료와 데이터를 찾아보며 배울 수 있고, 최신 치료법을 접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의 치료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라고 설명하면서 “트루맨 남성의원에서 진료하면서 임상 데이터가 잘 모이게 되면 지금까지 치료·수술하면서 쌓아온 지식을 바탕으로 논문을 쓸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역사적으로 유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던 우리나라에서 성의식·성문화는 매우 억압되어 있던 것이 사실이며, 아직도 이러한 문제들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쑥스러워하는 남자들이 대다수다. 하지만 비뇨기과 질환과 각종 성기능 문제들은 더 이상 이불 속에 숨겨 놓고 끙끙 앓고 있을 문제가 아니다. 장주현 원장과 같은 실력 있는 의료인이 있으니 혼자서 고민하지 말고 한번 병원 문을 두드려보는 것은 어떨까? 자신감 넘치는 ‘진짜 남자’의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Profile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서울대학교 병원 인턴 수료가천의대 길병원 비뇨기과 전문의가천의과대학 대학원 석사 2013년도 IBC 선정 세계 선도의학자 現 대한비뇨기과학회 정회원現 대한남성과학회 정회원現 대한전립선학회 정회원現 대한요로생식기감염학회 정회원現 대한비만체형학회 정회원現 국제비만체형학회 정회원現 트루맨 남성의원 왕십리점 원장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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