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6-17(수)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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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그냥 장난이었는데요?


분노가 일었다. 담임을 하면서 학생에게 가장 화가 나는 일은 괴롭힘이었다. 약한 동급생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학생을 보면 참을 수가 없었다. 지나가면서 머리를 툭툭 치면서 갑자기 목을 누르거나 연필로 등을 찌르거나 한다. 울면 더 놀리면서 ‘내가 뭐?’라는 표정을 짓는다. 담임이 발견해서 제지하면 “아니 그냥 친해서 장난한 거예요.”하며 그냥 쓱 지나간다. 

 

약한 친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지속성에 있다. 장난이라고 하는 폭력은 지속적이고 상대를 조롱하고 중단요청에 대한 무시를 반복한다. 상대 반응을 즐기며 자신의 가학성을 조금씩 높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교묘하게 처벌을 피할 정도의 경계선에서 폭력을 행사한다. 걸리면 장난이라고 하거나 상대방이 원해서라고 하기도 한다. 

 

나는 그 학생에게 묻는다. 너보다 힘이 센 친구에게 그렇게 장난을 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냐고. 당연히 그런 적은 없다. 장난이라는 말은 폭력을 감추기 위한 포장일 뿐이다. 친구를 곤충이나 작은 힘없는 동물처럼 학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곤충의 다리를 자르고 날개를 자르고 하다가 결국은 목을 잘라내고 죽음의 고통에 꿈틀대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장난의 강도는 점점 강해진다. 그래서 초기에 작은 장난이라도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지 말도록 교육하고 훈화하는 것이 담임교사인 나에게 주어진 중요한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교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교사에게 성적인 농담을 하는 학생을 그냥 모른 척하고 두면 안 된다. 그런 행동은 교사에 대하여 더 많은 위해를 할 가능성을 키워주는 것이다. 교실에서 교사 권위를 무시하는 학생을 어찌 할 수 없다는 것은 교육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거나 장난을 치거나 교사의 지시를 무시하는 학생(그런 학생은 조금씩 강도를 더해간다)은 어느 정도의 징계를 받지 않은 선을 넘나들면서 학교와 교사를 능멸하려 한다. 성취의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작은 싹부터 반드시 끊어주어야 한다. 학생이 파괴와 능멸이라는 어긋난 성취 재미를 느끼고 사회로 진출하기 전에 학교와 교사가 단호하게 끊어주어야 하는 중요한 일이다. 

 

스타벅스 ‘5·18 탱크 데이’ 이벤트가 사회적 공분을 불렀다. 대표가 사과도 했다. ‘일베’ 등장 이후 혐오 놀이는 일상화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 앞 ‘폭식 투쟁’처럼 혐오가 유희의 형태로 오고 있다. 혐오 세력은 계산된 모호성으로 도발적 메시지를 던지고 비난에 처하면 의도성을 부인한다. 제재가 가해지면 ‘전체주의’로 비난하며 자신을 억압받는 피해자로 만든다. 쟁점을 ‘표현의 자유’로 바꾸어 비난을 무력화하고 결국 자신의 도발을 사회가 관용하게 만든다. 민주국가라면 극단주의 행위를 예방하고 처벌하는 강력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 

 

학교 교육은 작은 틈을 막는 것에서 시작한다. 상대에 대한 폭력적인 장난을 그대로 두면 더 큰 분란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운동경기든 사람 사는 것에서든 작은 것부터 챙겨야 한다. 작은 일을 대하는 삶의 방식이 한 사람의 품격과 사회의 품격을 만든다. 교실에서 작은 일을 어떻게 대하는가, 바로 그 자리에서 진정한 인간 존중과 교육은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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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진로융합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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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그거 그냥 장난이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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