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갑자기 교장실 문이 난폭하게 열리더니 한 남자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그리고 교장인 내가 있는 자리에서 6학년 두 개 반 담임, 또 원인 제공을 했다는 아이를 불러 달라며 다짜고짜 큰소리로 교장실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다.
 “잘 오셨어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많이 속상하셨군요. 진정하시고 자초지종을 말씀해 보세요”
학부모를 진정시키고 들어 본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아들이 다른 반 학생에게 맞았다. 때문에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고 그런 이유로 학부모는 교장실까지 찾아와 가해학생을 불러다 놓고 아들이 맞은 것처럼 똑같이 때려 주리라 결심했다는 것이다. 화가 날 수는 있으나, 보통 상식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언행이었다.
우선, 학부모에게 교육적인 입장과 견해를 가지고 해결하자고 권유를 한 이후, 이어 담임과 상담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학부모가 차츰 진정이 돼 가 돌아갈 무렵엔 거듭 사과까지 하며 소동은 마무리됐다.

 

여기서 모 대학 전 총장이었던 박 모 박사의 어린 시절 일화를 살펴보자. 박사의 아버지는 가정형편이 어려웠지만, 아들을 대구 중학교에 유학을 보내 뒷바라지했다. 그러나 학급 석차 68/68로 꼴찌를 기록, 성적표를 그냥 내보이지 못한 박사는 1/68로 고쳐 아버지께 드렸다.
박사가 1등 했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 온 친지들은 "박군은 공부를 잘 했더냐?"하고 물었다.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제… 이번에는 어쩌다 1등을 했는가 배…" 라며 재산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했다.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17년 후 대학교수 신분이 된 박사는 과거의 일을 아버지께 사죄했다. 담배를 태우던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그만 해라…. 민우(손자)가 듣는다"라는 말로 짧게 일축했다. 박사는 “아버지의 넓으신 아량이 나를 만드셨다”고 말한다.  

 

한편,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내게 이런 자녀를 주옵소서.”라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기도문은 부모가 자녀를, 교사가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해야하는 지에 대해 큰 시사점을 주고 있다.

‘약할 때에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여유와/ 두려울 때에 자신을 잃지 않는 대담성을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태연玖�/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자녀를 내게 주옵소서/ (중략)/ 그를 평탄하고 안이한 길로 인도하지 마옵시고/ 고난과 도전에 직면하여 분투 항거할 줄 알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폭풍우 속에선 용감히 싸울 줄 알고/ 패자를 관용할 줄 알도록 가르쳐주옵소서(생략).’

 

맥아더 장군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있지만, 전쟁 중에서도 자식을 사랑할 줄 아는 아버지였으며 자녀에게 존경받는 아버지였을 것이라고 이 기도문으로 미루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람만들기’의 저자인 버지니아 사티어(Satir. 1991)에 의하면 ‘순기능’의 가정은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의 역할에 충실하며 자녀들은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밝고 건강하게 성장하는데 반해, 역기능의 가정을 보면 가족 구성원들 간에 역할 정립이 미약하고 자녀들은 대부분 문제아로 성장한다고 한다. 문제아는 아이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 책임이 있다는 말이 된다.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은 바로 가정교육의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교실은 부모가 만들고 길러온 작품의 전시장이며 아이들의 가정 문화를 비춰 볼 수 있는 반사경이다. 밝은 웃음이 많은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역시 밝고 명랑하다. 집에서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아이는 학교에서도 함부로 버린다. 그러므로 기본 생활 습관은 일차적으로 가정에서 부모에 의해 형성되어야 한다. 긍정적인 사고와 배려정신, 밝은 미소를 지닌 바른 문화시민교육은 부모의 손을 잡고 나들이 할 때부터 길러진다.

 

교육은 학교가 일부분을 분담하며 가정교육과 사회교육이 두 개의 수레바퀴처럼 함께 가야 한다. 가정교육이 잘 되면 학교 교육이 수월하고 가정교육이 사각지대에 빠질수록 학교 교육도 힘들어진다.

 

미국의 한 가정상담연구소 조사에 의하면, 역기능의 성향을 보이는 가정이 60%에 달한다고 한다. 어떤 공장의 생산품 중 60%가 불량이면 그 공장은 문을 닫아야 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로 인해 손해를 볼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이야기도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아버지와 자녀의 대화시간은 하루 평균 37초, 부부간의 대화시간이 24분이라는 연구조사 발표도 있다. 청소년의 51.9%가 자살을 생각해 보았고 남학생은 가출 청소년이 매년 1만 명 이상이며 그중 85%가 유흥향락업소에 종사하고 있다. 미혼모들이 부쩍 증가하고 있으며 49%가 19세 미만이다. 이런 청소년들이 자라서 형성되는 사회의 미래는 어둡고 우울하다.

 

이는 가정의 문제이고, 가정의 문제는 특히 아버지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우리 아버지들의 자녀사랑은 경제적인 의무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현대사회의 남자들은 일 중심으로 살아간다. 일 중심의 문화는 출세 지향적인 성향으로 변하고 스트레스도 받게 마련이며 잘못된 음주문화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경향이 많다. 그로 인해 가족 간에 긴장감이 조성되고 인격적인 관계가 파괴되기도 한다. 요즘은 맞벌이로 인한 가족간의 만남 부족, 골프 과부, 낚시 과부란 말도 가족과 소통의 문제로 비화된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자녀들은 고아 아닌 고아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책에서 본 이야기다. 미국에서 판사가 재판을 하던 중, 피고인의 얼굴을 보니 자기가 아주 존경했던 훌륭한 법조인의 아들이었다. 사건을 맡은 판사는 의아했고 피고인으로부터 부자(父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제게 무슨 일이 있어 아버지를 찾을 때면 아버지는 책을 읽는 것에 열중해 다른 것에 전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사춘기 시절, 제가 방황할 때도 매우 중요한 판례를 맡고 있다는 이유로 대화를 단절했습니다. 그분은 제가 필요할 때 곁에 없었습니다….”
맥아더장군의 기도문도 부(富)나 명성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자녀들에게 아버지가 필요할 때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세계적인 추세로 비춰볼 때 우리 아이들에게 부모의 유산보다는 ‘유머’를 물려주고, 공부에 앞서 ‘신용’과 ‘자주적인 생활태도’를 형성하도록 지도해 ‘글로벌 리더’로서의 기초적인 역량을 키워주는 것이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 아이는 지금 아버지의 등만 쳐다보고 자라는 것은 아닐까?’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남성들이 진정한 아버지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서 한 번쯤 이런 물음을 스스로 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기찬 상인천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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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녀는 아버지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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