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4(토)
 

[위클리피플= 이선진 기자, 오미경 기자]

 

‘Back to the 예루살렘’ 의 그 날까지!

의료선교 앞장서며 나눔의 씨앗 전해 온 아름다운 삶

 

김지영 예사랑마취통증의학과의원 원장/ 한양의대 외래교수

 

 ‘나눔은 돈을 많이 번 다음에, 성공한 다음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눔은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가난을 나누는 것입니다.(중략)’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박노해 시인의 時 한 구절이 뇌리를 스치며 펜을 들기에 앞서 고백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읽을 누군가에게 나눔이 어쩌고저쩌고 하기 전에 기자또한 여려가지 핑계를 이유로 나눔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다. 그러나 뒤늦게 시작한 봉사와 나눔의 삶이지만 건강만 허락된다면 죽는 날까지 계속 하고 싶다는 말로 기자를 독려했던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김지영 원장과의 만남을 벗 삼아 감히 용기 내보려 한다. 한 번쯤은 있을 법한, 더운 여름 날 하나 밖에 살 돈이 없어 친구와 나눠먹은 쌍쌍바 아이스크림의 기억처럼, 나눔이란 소소한 일상 속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가까운 것이라고. 늦기 전에 어서 시작해 보자고.   취재_이선진 기자/ 글_오미경 기자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에 위치한 예사랑마취통증의학과의원을 찾았을 때 마침 병원 입구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고 있던 김지영 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 인사도 나누기 전에 찾는데 힘들지는 않았냐며 손수 뽑은 커피부터 기자에게 건넨 그는 소박한 인품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눈물과 행복의 여정, 글로벌 의료선교 활동
 

 올 해로 37년 째 의사의 길을 걸어오고 있는 김지영 원장이 서울영락교회 사회봉사부 차장, 의료봉사회 회장을 역임하며 빈곤국의 사회적 약자 층에 자신의 의학적 재능과 하나님 말씀을 꾸준히 전해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인 2002년부터 시작됐다. 사실 그가 국경을 넘은 의료선교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에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교회의 前 의료봉사회 회장에게 의료선교 활동을 꼭 이어갈 것을 약속하여 그것을 성공시키리란 마음에서 출발했어요. 그런데 선교 활동에 앞서 현지의 여러 가지 특색과 변수에 대비하고, 리더로서 단원들의 안위 또한 챙겨야 하는 만큼 기도가 더욱 많았어야 했는데 별다른 준비 없이 마음만으로 시작하여 처음 2년 정도는 사실 어려움이 컸지요.”
 특히 김 원장은 캄보디아에서 펼쳤던 첫 해 봉사 당시, 우기가 길어 물이 차 있던 현지의 도로 사정을 모르고 찾은 덕에(?) 침수로 끊어진 길을 동료들과 함께 어렵사리 건너 복음을 전했던 잊을 수 없는 기억을 회상하며 “하나의 학문과도 같은 선교는 반드시 적절한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선교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뒤, 교회에서 MP(Mission Perspectives) 교육을 수료하여 다시 의료선교의 길에 나섰고, 캄보디아를 비롯해 방글라데시, 인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일본, 아프리카 서부의 배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가에 복음을 전파했다. 그 결과 캄보디아 현지에 영락평화교회의 설립과 해군 장교출신으로써 해군의료시설을 세우는 등 당시만 해도 미미했던 한국인들의 캄보디아 봉사가 활성화 되는데 일조하는 값진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빚 진 마음으로 갚아야 합니다.”
 

 예순이 넘은 지금도 매년 약 2차례 씩 해외 의료선교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 김지영 원장은 “어리든 나이가 많든 누구나 뜻만 있다면 선교나 봉사 등의 활동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좋다”며 작은 것에서부터 나눔을 경험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크리스천에게는 나눔과 섬김의 사역이 당연한 것이지만, 크리스천이 아니고 의사가 아니라도 남을 도울 일은 아주 많아요. 거창한 봉사의 의미를 찾기보다 맡은 바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봉사임을 알았으면 해요.”
 그는 특히 대한민국이 6·25전쟁 직후 국제적 원조를 받던 세계 최고의 빈곤국에서 원조를 전하는 나라로 전환한 최초의 유일 국가인 만큼 같이 피를 흘려주고, 물자를 나누어준 약 21개국의 도움을 잊지 말고, 빚진 마음으로 갚아야 한다고 소리 높였다. “40대 이상의 기성세대들은 타성에 젖어 현재의 좋은 것만 볼 것이 아니라 과거에 어려웠던 우리를 살 수 있게 해준, 지금은 우리보다 사정이 어려운 나라의 국민들에게 도움을 줘야 해요. 그리고 겪지 않은 젊은 세대들에게는 우리의 근대사를 제대로 가르치는 교육부터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김 원장은 “자라나는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이 나눔과 봉사를 알게 되면 분명 세상을 좋게 만드는 일에 더 큰 역량을 발휘할 것”이라며 어른들과 사회의 자각이 필요함을 거듭 강조했다.

 

전문의가 말하는 통증치료 제대로 알기
 

 인터뷰 도중 병원을 찾은 중년의 여성 환자를 만날 수 있었는데 환자는 오랜 경력의 통증의학 권위자인 김 원장의 소문을 듣고 물어물어 찾아왔다며 무릎통증을 호소했다. 긴 진료가 끝나고 김 원장에게 예사랑마취통증의학과의 이야기를 꺼냈지만, 그는 자신은 특별한 의사가 아니라 한 번 이 길에 들어섰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말로 병원이야기에는 영 소질이 없는 모습이었고, 질병과 환자에 대한 진심어린 조언만을 남겼다.
 “과거 기술적 발달이 덜 되었을 때는 통증이 있어도 진찰과 증상 위주로 진단하였지만, 의학장비 기술이 발달한 요즘은 조기에 진단이 가능해졌기에 통증도 증상이 아닌 병으로 인지하고 초기에 제거하는 치료가 중요합니다.” 김 원장은 “흔히 사람들이 급성 통증만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데 오히려 통증을 전달하는 도로인 신경까지 망가뜨리며 3개월 이상 지속되는 만성통증의 경우가 간과하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고,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등을 동반하여 더욱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악순환이 되는 통증의 고리는 어디서 끊느냐가 중요한데 대표적인 치료법으로는 신경차단술이 있다. 신경 주위의 염증과 부종을 가라앉히는 주사를 통해 근육과 혈류, 신경을 회복하여 통증에서 해방시키는 이 시술은 신경을 다루는 고난도 치료이기에 반드시 전문의를 찾아가야 한다. 김 원장은 “통증의학이 마취과에서 연계한 분야로 어찌 보면 수술 시 장막 뒤에 한 꺼풀 가려진 조연이라 볼 수 있지만, 실상은 높은 의료수준을 요하는 분야이고, 의학은 주·조연을 떠나 어느 것 하나 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덧붙이며, 특별히 의술이 뛰어나다기보다 정확한 진단과 실수 없는 정석 치료로 환자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빨리 덜어주는 것이 그의 철학이라 밝혔다.

 

 

 김지영 원장은 3시간여에 걸친 인터뷰의 마지막을 그가 선교 교육을 받던 당시 새겨둔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되 내이며 마무리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8장 19~20절)’ 의사의 길은 물론, back to the 예루살렘을 목표로 의료선교 활동 또한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김지영 원장. 늦게라도 더불어 사는 삶을 깨우친 것에 감사하며, 삶 자체가 나눔이고자 하는 그를 통해 행복으로 더해져(+) 돌아오는 ‘나눔’의 진정한 의미를 모두가 가슴에 담아 실천으로 이어가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profile.
의학박사/마취통증의학과전문의/통증의학세부전문의
한양의대외래교수
대한통증학회정회원
예사랑통증의학과의원 원장
캄보디아 국가 재건 훈장 금장
영락교회 의료선교회 회장/청년부 부감

 

※ 본 기사는 전문미디어그룹인 위클리피플넷(주안미디어홀딩스)와 교육연합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제작된 정보콘텐츠이며 임의의 무단배포 및 사용을 금합니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예사랑마취통증의학과의원 김지영 원장 특별 인터뷰]의료선교 앞장서며 나눔의 씨앗 전해 온 아름다운 삶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