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6(월)
 

[교육연합신문=김현균 기자]

 

사람의 욕망은 밑 빠진 독과 같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하기 때문에, 부자인 사람은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더’를 간절히 바란다. 조금만 더, 행복해지기를.


행복의 기준은 마치 고무줄과 같아서 끊임없이 늘어나기만 할 뿐 결코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꾸준히 불행하다 느끼며 순간의 행복을 갈구한다. 조금만 더, 남보다 더, 행복한 삶을.


여기 세상이 제시하는 ‘평범’의 기준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남보다 조금 더 불행한 사람들이 있다. 남보다 덜 가졌기 때문에, 남보다 더 가져서 불행한 이들.


‘백야’에는 아버지가 없는 대신 남들에게는 없는 빛나는 몸을 갖고 있는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남에게는 없는 ‘빛’을 갖고 있음에도 그로 인해 불행하다.

 

‘빠삐루파, 빠삐루파’에서는 몸이 작아 ‘난쟁이’ 같은 남자와 다리가 ‘반토막’난 그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그들은 남들과 다른 다리 때문에 불행하다.


이런 신체적인 불행뿐 아니라 마음 속 상처로 불행한 인물들도 있다.

 

‘래퍼 K’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래퍼 신동을 취재하던 중 사라진 선배를 대신해 ‘래퍼 K’를 만났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의처증 남편에게 맞는 아줌마, 면접만 백 번 넘게 본 청년, 중간고사를 늘 일등만 하는 학생의 반복되는 지겨움까지, 다양한 불행을 안고 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오후의 문장’에서는 유부남이었던 K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나’와 ‘나’가 이사 온 집에서 살다 아이를 잃어버리고 매일 그 집을 찾아오는 여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푸른 수조’에서는 피부병을 앓고 있는 김씨와 물고기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나’의 고통이 존재한다.


이처럼 책 ‘오후의 문장’ 속의 인물들은 모두 결핍되거나 남과 다름으로 인해 상처받고 불행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인물들을 과장하거나 동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불행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이 자신의 상처를 어떤 식으로 어루만지며 자신이 맞닿고 있는 불행의 기준선을 어떤 식으로 낮추며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셈이다.

 

그 문장 위에 그와 똑같은 문장을 덧쓸 때 나는 좀 떨렸다. 그 위에 무심코 페인트칠을 하는 부주의함과는 생판 다른, 나의 의도적이고 고의에 가까운 행동을 여자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싶어서. 그 문장을 다 쓰고 났을 때 그것은 좀 더 진하고 그래서 예전보다 뚜렷했지만 어떤 모음은 길이가 조금 더 길거나 혹은 약간 삐뚤어졌다. 똑같을 수야 있겠니. 넌 아이고 난 어른인 걸. 다만 나는, 아이가 그걸 썼을 때나 혹은 내가 그 위에 덧쓰고 나서도 여전히 그 문장이 낙서라는 사실에는 변함없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146면)

 

상처를 어루만지는 작업은 ‘오후의 문장’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라 할 수 있다. ‘나’가 아이가 쓴 ‘미르, 헤르 어딨어’ 라는 문장 위에 자신의 글씨를 덧입히는 행위는 자신과 아이를 잃은 그녀에게 일종의 치유 역할을 한다.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미지의 ‘래퍼 K’의 랩과 피부병을 치료해 주는 물고기 ‘발리클리’를 만나고 싶다는 희망 또한 그러한 상처의 어루만짐에 다름 아니다.


이처럼 상처를 완전히 제거할 순 없어도 치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후의 문장’ 속 인물들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발리클리’이며, 내 슬픔을 랩으로 공감해주는 ‘래퍼K’다.

 

이 책이 당신의 마음 속 상처 또한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은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김애현/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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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당신은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오후의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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