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7(화)
 

[교육연합신문=오범세 논설위원]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 있을까?
눈물 없는 눈, 차가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인생도 있을까?

 

수구초심(首丘初心-狐死歸首丘 故鄕安可忘 )이라, 나이가 들면서 고향을 더욱 그리워하고 늙어가면서 눈물이 많아짐을 어찌하랴.

 

안동에 사시는 작은형님과 함께 고향 산천을 둘러보며 “우리는 여기서 나무도 하고 풀도 베며 살아왔다”며 울먹이고 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난다. 아마 가난 속에서 힘들었다는 기억 보다 고향에 찾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니 향수(鄕愁)에 젖은 눈물이었으리라.

 

고향을 등지면 안된다고 당부하셨던 어머니 생각이 난다.
우리 6남매는 제각기 살길을 찾아 객지로 간지 어언 4,50년, 생각하면 그리운 내 고향을  어찌 잊으리오. 그리고 순서 없이 가버린 피붙이를 생각하자니 가슴 메이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우리는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인생길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대망(大望)의 꿈을 이루어 가고 있음을 감사할 뿐이다.

 

시인 이해인 수녀(詩人-李海仁 修女)는 “기쁠 때 ,슬플 때 피어나는 눈물은 그대로 기도(祈禱)가 되고 뼛속으로 흐르는 음악(音樂)이 된다.”고 그의 삶의 여정(旅程)을 술회(述懷)하고 있다.

 

눈물(a tear)은 눈을 보호하고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생리적으로 눈물샘에서 계속 촉촉이 분비되는 깨끗한 체액(體液])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눈물은 98.5%의 물과 나트륨, 칼륨, 단백질, 지방 등으로 구성 되어 있고  눈물에는 항균물질(抗菌物質)이 있어 독소(毒素)를 배출(排出)하고 각막(角膜)을 보호해 준다고 한다.

 

“눈물이 메마르다는 것은 감격의 샘이 고갈 되었다는 것이요 눈물은 기쁨과 슬픔의 언어이기에 눈물은 우리의 영혼을 정화시키며 인격을 심화 시킨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눈물의 가치를 예찬(禮讚)하였다.

 

그러기에 눈물은 어떤 자극에서나, 불행 때문에, 나약한 사람이니까 흘리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기뻐서 ,반가워서, 감동 감격해서 ,감사해서 흘리는 눈물도 있을 것이고 슬픔과 괴로운 일 ,또 만날 수없는 이별의 아픔 때문에 우리는 숱한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고 있는 인생인 것을 되뇌어 본다.

 

이로써 눈물은 감정의 징표(徵表)이며 소리 없는 웅변(雄辯)이고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대화(對話)요 진실(眞實)한 사랑의 씨앗인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우리는 초등학교 졸업식장에서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를 부르며 얼마나 흐느꼈는지 ,요즘은 그 아름다운 정겨움이 사라져 가고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헤어질 때 눈물 짖는 교사와 학생들의 뭉클한 장면이 곧 인성교육(人性敎育)의 결실이 아닐까?

 

인천작전초등학교에서 교감으로 있을 때 우리 학생들이 아웃 부현동(신설)학교로 분리하는 식을 마치고 교직원들이 양쪽에 서서 학생을 보낼 때 구술 같은 눈물로 환송하였다.
왜 그랬을까? 물을 필요가 없다.

 

필자는 사회교육 주부교실 강의 시에 가끔 가곡 부르기, 시낭송 시간을 갖는다. 그럴 때 마다 수강생들은 눈물을 글썽인다. 아마도 고향이 그리워서, 아니면 먼저 간  이를 생각하며 흘리는 내면의 슬픔이었으리라 짐작을 해본다.

 

우리는 TV를 시청하면서도 남몰래 값진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성찰(省察)해 보았을 것이다. 요즘도 고요한 밤에 마음에 부딪히는 장면을 보며 눈시울을 적시곤 한다. 그러기에 혹자는 TV는 바보상자라니 멀리 하라고 하지만 내겐 많은 교훈과 교양을 높이며 정서를 순화 시키는 문명의 이기라 생각한다.

 

우리는 간혹 죽음을 잊고 살다가 주변의 친지(親知)와 일가친척(一家親戚)들의 임종(臨終) 소식을 접할 때 마다 별안간 가슴에 찬바람이 일고 서글퍼짐을 경험했을 것이다.

 

가난한 시인(詩人) 박목월 교수(朴木月-박동규 교수의 부친)는 사랑하는 아우를 천국에 먼저 보내면서 그의 시(詩 ) 하관(下棺)에서 “동생의 머리맡에 성경을 얹어 주고 주여! 용납 하소서/너는 어디로 갔느냐?” 기도하며 목 놓아 울었다.

 

형은 동생을 지켜주지 못한 아픔과 더 잘 해주지 못한 아쉬움, 대화가 단절된 시공간 사이에서 인간의 고뇌를 토로하였다.

 

근래에도 박동규 교수는 아버지를 가난한 시인, 눈물 많은 분이라며 행복했던 시절을 떳떳이 전하여 듣는 이의 가슴을 찡하게 한다. 얼마나 진한 눈물을 흘렸을까? 생각하니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처지에 있는 나도 눈물이 주르르 흘러나옴을 어쩔 수 없었다.

 

영국(英國)의 다이에나 왕세자비의 장례식에 온 국민이 울면서 애도(哀悼)했다고 한다.
성경상에서도 보면 성육신으로 오신 예수님도 인간의 죽음 앞에, 또 조국을 생각하며 우셨다고 했으며 다윗 왕도 아들의 죽음 앞에서 목 놓아 통곡했다고 한다.
이렇게 눈물은 감정의 변화에 따라 흘리는 것이며 그 사람의 결의가 담겨진 내면적 경건( 敬虔)의 심정이리라.

 

또 이런 말이 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마라 (Dont talk life with anyone  who's never faced difficulties.)  눈물의 기도는 천국 문을 여는 열쇄이다(탈무드)

 

그렇다, 우리의 삶의 과정은 피와 땀과 눈물로 점철(點綴)된 여정으로 인간의 한계 상황에서 창조주를 의지하며 칠전팔기(七顚八起)의 눈물겨운 성실한 노력이 따라야 한다. 누구든지 살다가 힘들 때, 순서 없이 가버린 석별의 아픔에, 자식들이 성공할 때, 그리움에 지쳤다가 만날 때 가슴 뜨겁게 눈물을 흘린 기억이 있으리라 본다.

 

눈물은 따스함이 있다. 사랑과 진실이 담겨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울고 눈물을 보이면 청승 떤다고 하지만 서정시인(抒情詩人) 김소월(金素月)이 말했듯이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하며 속으로 울었다.

 

이제 남몰래 흐느끼는 순간순간마다 우리의 마음에 쌓인 고통 슬픔과 절망이 쏟아져 나와 후련함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슬퍼도 울고 기뻐도 울어야 하는 이 아름다운 눈물은 스트레스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방어기제가 된다고 한다.

 

병상에서 투병생활을 하는 이도 마음껏 울면 심한 병도 호전되고 기적적으로 낫는다하여 요즘은 웃음 치료, 미술 치료, 음악치료에 이어 울음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눈물은 인간만이 흘리는 원초적(原初的) 순수(純粹)요, 신(神)이 내린 묘약(妙藥)이라 할 수 있다.

 

오늘도 내일도 산책을 하면서 먼데 하늘을 우러러 보며, 시원한 숲속을 쳐다보며. 잘 살아주는 자손을 지켜보며 행복한 눈물을 흘리고 싶다.

 

이제 골방에 누워 애창곡을 들으며 혼자서 저만치 눈물의 의미(意味)를 생각해 본다.

 

 

 

 

오범세 前 인천청천초등학교 교장
인천교육대학 졸업
인천 작전초 교감
인천 청천초 교장
학교경영 우수교 표창
한자지도사(성균관장)
사회교육 강사(한국어, 한문, 교양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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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눈물의 의미(意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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