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7(화)
 

[교육연합신문=성명제 기고]

전국 한자교육 운동 총 연합회 진태하 이사장님께서 서거 하신지도 벌써 1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한자교육을 위해 많은 세월동안 불철주야로 애쓰셨던 발자취가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그분은 한 대학의 교수, 학자로 머물지 않고 평생을 오로지 전 국민이 한자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알게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셨습니다. 매월 ‘한글+漢字문화’를 발간, 국내외에 배포하여 한자교육의 필요성과 고품격 한자문화를 알리는 한편 한자교육 찬성을 이끌어 내기 위한 수많은 대규모 집회를 주도하고 관계요로에 협조를 얻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간절히 소망하던 뜻을 끝내 못 이루시고 영면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분의 못 다한 유업을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재도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나라에는 초등학교 한자교육실시를 열망하는 수많은 지지자들의 강력한 힘이 상존하고 있습니다. 저마다의 삶터에서 끊임없이 소원하고 한자교육에 세우점지(細雨漸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진 박사님의 거국적 견지에서 펼친 운동을 구체적·실질적으로 극대화시킨 분들도 많습니다. 성균관대 전광진 교수는 십년 전에 한자사전인 ‘속뜻사전’을 출판하여 전국에 보급·홍보함으로써 교육현장의 오랜 타성인 무조건 암기교육위주 교육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번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폐기한 초등학교 한자교육 실시안은 사실상 전 교수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초등학생 딸이 어떤 날 물어보는 수학용어의 뜻을 가르쳐 주다가 맞춤형 학습 사전의 필요성을 깨닫고 12년간의 산고 끝에 출판했답니다. 당초에는 출판사에 원고를 의뢰했는데 모든 곳에서 거절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본인의 사재를 들여서 출판을 했다고 합니다. 상업적 이익을 기대했다기보다 오직 학자적인 양심과 의지로 학교교육에 보탬을 위해서였다고 봅니다. 

 

전 교수가 만든 사전은 기종 사전의 부족함을 채운 한발 진화한 사전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기존 사전은 한자어의 경우 해당 한자는 괄호 안에 표기가 되어 있는데 한자를 배우지 않는 학생의 눈에는 그냥 액세서리처럼 붙어 있을 뿐이고 많은 한자어의 뜻풀이는 어려워서 사전의 만족도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한 초등학교 학생용 사전에서 ‘재적(在籍’)을 찾아보면 풀이가 ‘호적·학적 등에 있음.’이라고 했습니다. 초등학생이 ‘학적’,‘호적’의 뜻을 알 길이 없으니 혹 때려다 혹 붙인 꼴입니다. 그런데 그 사전은 한자의 훈과 음을 표기하여 학습자가 낱말의 뜻을 알기 쉽게 했습니다. 예를 들어 보면 기존사전이 ‘불면(不眠)’을 ‘잠을 자지 아니함.’이라고만 풀이했는데, 그 사전은 한자 각각의 훈과 음을 ‘아닐 불, 잠잘 면’으로 나타내어 한자를 몰라도 익힐 수 있게 하고 ‘잠을 자지(眠 )않음(不)’로 풀이하여 그 낱말의 뜻이 왜 그런 뜻인가를 분명히 알게 함으로써 순간의 기쁨과 통쾌함을 맞보게 하고 있습니다. 무조건 외우게 한 암기위주교육에서 벗어나서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할 수 있고 언제나 가까이 할 수가 있는 친구 같은 도구가 되게 하였습니다.  

 

필자도 한자를 지도하면서 그런 사전이 나오기를 오래전부터 바랐는데 마침 그 사전을 접하고 좋은 친구를 만난 것처럼 무척 반겼습니다. 재직하는 학교에서 곧바로 교사들의 동의를 얻고 4학년 이상이 이 사전을 활용하여 교과서에 나오는 한자어를 지도하게 하였습니다. 본인도 직접 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주 1회도서관에서 가르쳤습니다. 

 

가르친 효과가 어떨까 가끔 궁금하기도 했는데, 퇴직하고 한참 된 작년에 일이었습니다. 필자가 직접 지도했을 때 열심이었던 당시 5학년 오기준이란 학생의 학부모가 생각지도 않게 전화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교장선생님께서 가르친 한자를 잘 배우고 학습에 잘 활용해서 고대에 입학했다”고 하면서 좋아했습니다. 그 학부모 가족은 그 사전을 거실에 놓고 신문이나 TV뉴스를 볼 때 모르는 한자어가 나오면 보곤 했다고 합니다. 또 목동에서 한 학부모를 만난 일이 있는데 자기 아들이 그 사전으로 공부를 잘해서 과학 고등학교에 들어갔다고 하면서 감사하다고도 했습니다. 사전을 찾으며 공부를 해서 효과를 많이 봤다는 예기를 여기저기서 들을 때마다 ‘그렇게 산 내 인생은 꽤 괜찮았구나!. ’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속뜻사전을 통한 교육에 열심이었던 분들은 필자가 알기에도 여러분들이 있습니다. 전남 함평의 김승호 전 교육장은 ‘속뜻사전’이 한자어지도에 안성맞춤임을 깨닫고 관내 학교 보급에 적극 힘쓰고 연수를 통해서 효율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방안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서울 목운초등 학교 박인화 교장은 재동학교 재직 시에 동창회의 협조로 사전을 기증받아 해마다 재학생들 전원에게 나눠주며 가르쳤습니다. 그런가하면 원정환 교장은 여러 학교를 옮길 때마다 한자어쓰기 학습장까지 창안하여 사전학습교육을 실시하고 교사들이 잘 가르치도록 도왔습니다. 서울묘곡초의 민기식 선생은 속뜻사전 활용을 습관화시키기 위해서 학생들이 어려운 낱말을 찾을 때마다 특별히 여러 색깔의 스티커를 해당 페이지에 붙이게 하여 재미를 느끼면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동료교사에게도 활용의 필요성과 효과를 입증 하는데 힘썼습니다. 이상과 같이 수많은 학교에서 이 사전 찾기 교육을 한 결과 학력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사전읽기를 통해서 인생역전 드라마를 쓴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2012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중국의 작가 모엔(莫言)은 공식 학력이 초등학교 5학년 중퇴입니다. 그 이후에는 집에서 혼자 사전 읽기를 생활화함으로써 세계적인 문호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고 합니다. 또한 분은 우리나라의 대표 시인 고은입니다. 그분은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매일같이 국어사전을 통독하였다고 합니다. 출감이후 ‘만인보(萬人譜)’라는 대작을 쓰게 된 것은 바로 사전통독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선진국 중에는 사전교육을 강화해서 국력을 키우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미국 같은 나라는 학교교육의 뿌리를 튼튼하게 한 ‘Dictionary Project’가 있습니다. 그들이 내세운 슬로건은 Reading makes a country great’(독서가 나라를 강하게 만든다)입니다. 미국을 더욱 강대한 나라로 만드는 이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해서 우리의 국어사전에 해당하는 영어사전을 해마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기증합니다. 우리교육이 무상으로 급식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일로 골몰할 때  저들은 학생들의 머리를 채우는 사전 기증운동에 몰두하고 있던 셈입니다.

 

가까운 나라 일본도 초대형 교육기업 베네세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사전 찾기’ 학습 열풍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1989년에 처음 실시된 ’사전 찾기 수업‘ 방식은 아이치(愛知)현 가리야(刹谷)시에 있는 구성(龜城)초등학교 후카야 게에스케(深谷奎助)선생님이었습니다. 이 수업은 학교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사전과 친해지는 계기가 되어 ’자기 주도적 학습‘열풍을 일으켰고 초등학생들의 학력을 높이는데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국민적인 주목을 받아 그 열풍이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시작된 이 수업방식이 중고등학교로 확산되었고, 전국의 수많은 학생들과 교사, 학부모들이 열정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앞서의 선진국들이 일찍부터 사전교육의 중요성을 알고 어휘력을 키우기 위해 사전보급과 지도에 힘쓰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미미한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암기위주교육, 일제 식 지도가 문제입니다. 교실에서는 학생들의 질문이 말랐고 정답만 외우는 구태의연한 공부가 이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제 이런 병폐와 결별할 때가 되었습니다. 인공지능시대에 무조건 외우는 식의 공부는 통하지 않습니다. 공부란 끊임없이 솟구치는 의문 을 풀어나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학문(學問)’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교육은 학생들의 질문을 유도하고 질문에 성실히 답변하는가 하면 토론의 장에서 답을 구하는 학습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런 교육풍토에서 자란 국민들이 노벨상을 23%나 차지하는 데는 우연이 아닙니다.

 

공부의 기본은 글을 읽을 때 모르는 어휘가 나오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반드시 알고 넘어가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은 글을 읽다가 몰라도 대수롭게 여기고 지나가는 습관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옳지 못한 이런 습관은 학교교육에 책임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국어교육과정에서 사전학습이 3,4학년 때 몇 단원이 나오지만 활용방법만 지도하고 그걸 학생들이  공부할 때 습관화하도록 하는 지도가 없습니다. 공부할 때 사전 찾기가 몸에 배어 뭔가 모르는 것이 나올 때마다 스스로 알아보려는 주도적인 학습태도를 지니게 하는 교육이 중요합니다. 논어에서는 學而不思則罔(생각이 없는 배움은 얻을게 없다)이라고 했습니다.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덮어놓고 하는 일이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공부할 때 의례건 사전을 옆에 두고 모르는 어휘의 뜻을 알게 해야 학생 각자의 학력향상은 물론 국가의 교육 경쟁력을 키울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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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덮어놓고 하는 공부’, 사전(辭典) 찾아 공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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