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3(금)
 

[교육연합신문=권승호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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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訟事)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이야기를 한두 번 쯤은 들어보았을 거야. 옳아.  송사에 휘말리게 되면 시간 잃고 돈 잃은 것 뿐 아니라 정신까지 피폐하게 되니까 가능한 피하는 것이 현명함이지. 


송사가 뭐냐고? ‘송사할 송(訟)’ ‘일 사(事)’로 송사하는 일이라는 뜻으로 법률상의 판결을 법원에 요구하는 일이야, 재판하는 일이지. 살다보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있고 미운 사람 혼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어. 그래서 송사를 시작하게 되는데 한 번 송사에 엮이게 되면 시간도 돈이 많이 들어가고 정신적 고통도 적지 않는 게 일반적이야. 송사에서 졌을 때 정신적 물질적 손해가 큰 것은 물론이고, 송사에서 이겼을 때에도 마냥 기쁘거나 후련하지만은 않아. 이긴 것이 이긴 게 아니라는 표현이 딱 맞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지. 


송사, 즉 재판에 쓰이는 용어부터가 사람을 힘들게 만들어. 민사재판, 형사재판, 기각, 각하, 가처분, 원고, 피고, 상소, 항소, 항고 등의 용어가 머리를 아프게 만들지. 민사재판(民事裁判)은 개인적인 법률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지고 하는 재판이고, 형사재판(刑事裁判)은 형법의 적용을 받는 사건을 가지고 하는 재판이야. 형법이 무엇이냐고? 살인, 강도 같은 범죄, 즉 사회적으로 비난받거나 처벌받는 범죄를 처벌하는 법이 형법(刑法)이야. 이와는 달리 개인과 개인의 갈등을 해결하는 법은 민법(民法)이지. 


‘접근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판사가 구속영장 기각을 결정하였다’는 뉴스 들어봤지? ‘기각(棄却)’이 뭘까? ‘버릴 기(棄)’ ‘물리칠 각(却)’으로 버리고 물리쳐버렸다는 의미야. 법원이 소송을 심리한 결과 형식적 요건은 갖추었으나 타당한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여 소송을 종료하는 것이지. 법원에서 재판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야기야. 


각하(却下)는 ‘물리칠 각(却)’ ‘아래 하(下)’로 물리쳐서 아래로 내려버린다는 의미야. 형식적 요건조차 갖추지 못하여 내용에 대한 판단조차 하지 않고 소송을 종료해버리는 것을 말하지. 소송할 가치가 전혀 없어서 소송을 심리하지도 않고 쓰레기처럼 처리하였다는 뜻인 거야. ‘기각’과 ‘각하’의 공통점은 똑같이 떨어졌다는 점이고, 차이점은 기각은 그래도 본선까지는 갔지만 각하는 아예 예선에서 떨어져버린 것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아. 기각이나 각하와 반대되는 용어는 인용(認容)이야. 인정(認定)하여 허용(許容)한다는 의미지.  


‘영장’은 ‘명령할 영(令)’ ‘문서 장(狀)’으로 명령을 내리는 문서라는 뜻이야. 법원이 형사사건에 관련되는 사람이나 물건에 대해 체포, 구금, 수색, 압수와 같은 강제 처분을 하라고 명령하는 문서인 것이지. 


“가처분신청을 내기로 했다”라는 말 들어 보았지? ‘가처분신청’이 무엇일까? ‘가(假)’는 임시라는 의미고 ‘처분(處分)’은 기준에 따라 처리한다는 의미야. 그러니까 가처분(假處分)은 임시로 처리한다는 의미이겠지. 법원이 최종 판결을 내리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최종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임시로 상황을 그대로 보전해 달라고 법원에 하는 요청이 가처분 신청인 거야. 승소해도 본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 임시 조치를 취해 달라 요청하는 일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아.

 

부동산 가처분신청은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날 때까지 소유자가 소유권 이전 등 부동산에 대한 일체의 처분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신청이고, 공사 중지 가처분신청은 공사를 임시로 중단해 달라는 신청이며,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은 효력을 정지시켜달라는 신청인 것이야. 가처분 신청은 신속한 대응이 목적이기에 절차도 간소하기 때문에 신청 취지 및 이유 등을 적은 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고 해.  


이해가 어렵다고? 예를 들어 설명해줄게. 친구가 돈을 빌려갔는데 갚지를 않는 거야. 그런데 그 친구에게는 집이 한 채 있어. 소송을 해서 돈을 받아내려 했는데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집을 팔아버리게 되면 소송에 이기더라도 돈을 받아낼 수가 없잖아. 그때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집을 팔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가 가처분신청인 거야. 


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받았다고 하자. 그러면 학교에 나올 수 없잖아. 그런데 퇴학 처분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어, 판결이 나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 만약 퇴학 처분이 잘못되었다는 판결이 나오면 그동안 학교에 나오지 못해 입은 손해가 발생하잖아. 그래서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퇴학 처분을 미뤄달라고 신청하는 일이 ‘가처분신청’인 거야. 일시적인 명령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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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권승호

◇ 전주영생고등학교 국어교사

◇ 저서

《삶의 무기가 되는 속담 사전》,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설명해주셨어야 했다》, 《공부의 기본기 한자 어휘력》, 《공부가 쉬워지는 한자 어휘 사전》, 《학부모님께 보내는 가정통신문》

◇ 펴낸곳 도서출판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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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와 친해지는 미친 어휘력] 기각(棄却)과 각하(却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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