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2(목)
 
[교육연합신문=육우균 교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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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11월 17일(을사늑약)부터 1945년 8월 15일(조국광복)까지 일본은 우리 국민에게 총이나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식민교육은 인문학이 완벽히 배제된 우민화 교육이었다. 
 
이후의 교육은 그들의 우민화 교육이 성공했음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초·중·고·대학 어디라도 좋다. 학교 현장에 가 보라. 인류의 문명을 진보시키고 역사를 바꾼 원동력인 인문학적 대화와 질문, 치열한 사색, 위대한 깨달음은 찾아볼 수 없다. 죽은 지식의 강제적 주입, 맹목적 암기, 기계적 문제 풀이, 친구와의 무의미한 무한 경쟁만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청년들은 그렇게 불행하고 나약하고 소극적인 20대가 되어 사회에 나온다. 광복 이후 지난 70여 년 동안 우리 교육을 지배한 이 사악한 교육의 목적은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었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이 생각할 줄 모르면 죄다. 결국 식민교육은 우리를 범죄자로 만들었다. 그런 교육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우리 교육 당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되풀이해서 강조한다. “수능 문제는 교과서 밖에서는 내지 않는다. 수능 교육 방송만 잘 봐도 70%는 맞출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우리는 수능에 대비하기 위해 정해진 범위 내에서 외우고 외워서 실수만 하지 않으면 된다. 한창 지식욕이 왕성한 고교 시절의 금쪽같은 소중한 시간을 이렇게 한 줌의 지식만 가지고 끊임없이 반복하며 실수하지 않는 연습만 하면서 보내게 하는 것이 타당한가? 언제든지 인터넷에서 검색이 가능한 시대에 차고 넘치는 지식과 정보는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는 길이 아님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그러면 경쟁을 제거하는 것이 교육일까? 세상 모든 생물들은 하다못해 풀들까지도 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현재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개선하려는 동기’를 속성으로 지닌다. 경쟁을 제거하는 것은 ‘개선하려는 동기’를 지닌 인류를 모독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 현장에서는 경쟁이 제거될 수 없다는 점이다. 고교평준화 정책이 잘못된 이유다. 신분의 사다리가 망가져 가고 있다. 예전 가난한 시절에는 공교육이 일부라도 싸고 질 높은 교육을 공급했는데, 지금의 공교육은 다 같이 공부를 덜 하게 만드는 데에만 전념하고 있다. 
 
어떻게 우리나라는 교육정책의 최대 목표가 ‘사교육비 절감’인가? 학교에서 경쟁을 피하고 고교평준화를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사교육비 절감이란 기준에서 나온 것이다. 전국 학생들이 EBS 교육방송의 강사에게서 똑같이 받은 수업으로 수능시험에 대비하란 말인가? 일방향적인 관계로 어떻게 교육이 가능한가? ‘줄탁동시(啐啄同時)’라고 했다. 교육은 예로부터 쌍방향적 관계일 때 그 시너지 효과도 큰 것이다. 물론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예외가 되겠지만. 
 
프랑스 현대철학자 질 들레즈의 말을 빌려 보자. 그는 ‘홈패인 공간’과 ‘매끄러운 공간’의 개념을 말했다. ‘홈패인 공간’이란 고속도로처럼 주어진 방향으로만 가야 한다. 옆으로 셀 수가 없다. 앞을 향해 질주하거나 낙오해야만 하는 둘 중 하나만 있는 교육을 뜻한다. 현재 우리의 교육이 바로 ‘홈패인 공간’과도 같다. 맹목적으로 천편일률적인 인간을 공장에서 생산하듯 학교에서 만들어 사회에 내놓는다. 이제 4차 산업시대다. ‘홈패인 공간(교육)’보다는 ‘매끄러운 공간(교육)’ 예를 들면 사바나 초원이나 아라비아 사막처럼 평평하게 펼쳐져 있어 사방 어디로든지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홈패인 교육’은 실패와 성공이라는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 그러나 실패는 성공의 반대말이 아니다.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과정이다. 실패해야 성공할 수 있다. 두려워하지 말자. 매끄러운 공간을 흐르는 물은 사방 어디로든지 흘러 다른 것들과 합쳐져 융합하고 거기에서 창의적인 생산물을 만들게 된다. 지식의 수용자가 되지 말고 이제 지식의 창조자가 되자. 
 
인격을 가진 한 인간에게 점수로 평가받는 것이 현재 우리 아이들이다. 이런 획일적인 사고와 기준으로 어떻게 창조적인 인재를 만들 수 있나? 창조는 자유로운 개인, 다양성, 이종 간의 연결에서 나온다. 이런 우리의 교육 현실 앞에서 어떻게 세계와 경쟁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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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우균 교육연합신문 교육국장

◇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교육연합신문 교육국장

◇ 前중앙일보 공교육 논술자문단 자문위원

◇ 前중등교사 임용시험 채점위원

◇ 前인천미추홀외국어고등학교 교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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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깨봉 칼럼] 現교육제도의 실태와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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