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2(목)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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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사고라는 것을 할 만한 나이가 된 뒤에는, 딱히 나를 안쓰럽거나 불쌍한 존재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크고 작은 어려움은 있었으나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 경우는 별로 없었기에, 나이가 들어갈수록 재밌고 감사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서재 말고 편안함을 느끼는 장소가 또 하나 있다. 주방 싱크대 아래 구석진 곳, 그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을 때 그렇게 편안함을 느낀다. 
 
하루는 사무실 주방 싱크대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서 물을 마시고 있는데 지나가던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왜 거기 앉아 계세요?”
“아, 그냥요.”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표정이었다. 
 
등이 쏙 들어가는 주방 싱크대 모서리에 쪼그리고 앉아 있으면 그렇게 폭 들어맞을 수가 없다. 등을 대고 쭈그리고 앉아서 물이나 음료를 마시노라면, 혹은 퍽퍽한 고구마를 먹고 있노라면, 그렇게 맛이 좋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분위기 좋은 카페도 많고 푹신한 소파를 준비한 곳도 많은데, 하고 많은 자리 중에 왜 여기가 편할까 생각해보았다. 신체적인 굴곡에 맞춰진 모서리 공간, 주방이 주는 특유의 아늑한 분위기, 혼자만 느낄 수 있는 심적인 여유와 여유를 보장해주는 자유로운 시간 등등. 우선은 거기까지였으나, 굳이 한 가지 이유를 더 꼽자면 '인간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의외의 편안함을 느낀다.'는 사실이었다. 
 
누군가 물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요?"
그에게 대답했다.
"시간이 아까워서요." 
 
학창 시절에는 얼른 대학생, 직장인이 되고 싶었다. 현실이 버겁다고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남들이 들으면 우스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단 한 번도 10대로 돌아가고 싶었던 적이 없을 정도로 힘든 시기였다. 잿빛 하늘처럼 울적하고 우울하기만 하던 10대 시절이 지나고 내 능력과 주관에 따라 뭔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시간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38살의 전준우, 39살의 전준우가 지나고 나면 불혹의 전준우가 찾아오고, 그 시간이 다시 지나면 지천명의 전준우가 온다. 늙수레한 외모를 두고 달리 부를 표현이 없어 불혹이니 지천명이니 하지만, 존경스러운 불혹과 겸손을 깨닫게 해주는 지천명의 리더들도 분명히 우리 주위에 있는 반면에, 예순이 넘도록 나잇값 못하는 철부지 노망쟁이들 역시 수두룩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렇다 할 생각이나 계획 없이 시간을 허비해버린다면 그들과 다를 바 없는 노년을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그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그렇기에 극한의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움을 준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하는 일이 많다는 뜻이거나, 시간관리에 소홀하다는 뜻이거나 둘 중 하나다. 딱히 시간관리에 소홀하진 않으나, 하는 일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늘 시간이 없었다. 선택과 집중의 의미도 알고 중요한 것도 알지만, 고정적인 월급을 제공할 테니 일은 1.5배에서 2배 정도 해달라고 지시하는 회사생활은 체질상 맞지 않았다. 시간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글도 써야 하고, 책도 써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고, 좋은 분들과 식사도 해야 하고, 훌륭한 분들이 참석하는 모임에도 참석해야 하고, 강의도 해야 하고, 사업도 해야 하고, 사색도 해야 하고, 종교생활도 해야 하고, 아들과 책도 봐야 하고, 아내와 영화도 봐야 하고, 데이트도 해야 하고, 가족과 여행도 가야 하는 게 내가 해야 되는 일들이었다. 의미 있는 일에 대한 고찰을 위해서라면 돈을 받지 않고도 일할 의향이 있었지만, 늘 칼퇴근을 하는 나를 보고 "당신은 우리랑 일할 수 없을 것 같으니,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라."는 어느 회사 대표의 말에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예, 알겠습니다."하고 짐을 싸서 나온 적도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바로 다른 회사로 출근했다. 와달라고 하는 곳은 많이 있었다. 
 
열심히 산다고 해서 인생에 여유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기회를 잡지 않으면 여유는 찾아오지 않았다. 꽤 오랫동안 어려운 시간을 보냈던 이유였다. 기회를 분별할 만한 눈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을 지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순간 모든 순간이 여유롭게 다가왔고, 조금씩 일을 하면서 여유를 찾는 스타일로 바뀌어갔다. 누구는 인생이 쓰다고 하고 삶의 무게가 무겁다고 하는데, 나는 하루하루 흘러가는 순간의 연속이 너무 달달하고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매 순간을 살고 있다. 그렇기에 “삶의 무게”라던지, “인생이 쓰다.”는 식의 표현을 상당히 싫어한다. 쓰면 달게 만들던지, 무거우면 덜어낼 생각은 하지 않고 계속 쓰다 무겁다고만 이야기하는 무리를 곁에 두고 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나와 가족만 힘들어졌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성경 고린도후서 8:2> 
 
수천 년 전 형성된 초대교회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환난의 많은 시련은 지금 우리가 겪는 시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어려움과 문제였을 줄 안다. 그러나 그런 극한 가난을 통해 마음에 형성된 굳건한 믿음과 기쁨이 연보를 하게 하였고, 초대 교회가 형성되는 데 큰 기틀을 마련해주었다. 수많은 예수쟁이들이 판을 치고 타락한 종교인들이 시끌시끌 떠들어대는 이 시국에, 극한 가난을 즐긴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 덕분에 지혜로 충만한 사람들이 태어났고, 그들이 만든 결과물들을 통해 우리는 삶에 상당한 편리와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삶 속에 찾아오는 극한의 과정은 상당한 쾌감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극한의 과정을 즐겨보자. 굳이 익스트림 스포츠가 아니더라도 극한의 즐거움은 무수하게 많다. 나에게 극한의 즐거움을 선사해준 것은 독서, 글쓰기, 다양한 의미 있는 과정들의 연속이었기에 그에 걸맞은 최소한의 결과를 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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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준우 

◇ 작가, 강연가, 책쓰기컨설턴트

◇ 前국제대안고등학교 영어교사

◇ [한국자살방지운동본부]

◇ [한국청소년심리상담센터] 채널운영자

◇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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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극한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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