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2(목)
 
[교육연합신문=육우균 교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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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를 지식 정보화시대라 한다. 학교 교육의 목표는 학생들이 지식과 정보를 알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는 지식을 전수하는 공장이다. 교육 이론을 따지지 않아도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하는 옛 동요 가사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는 공장의 동시성, 보편성을 상징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학교 제도는 대개 좌뇌 지향적인 교육 현상에서 나왔다고 보아진다. 따라서 예술성, 창조성이 없다. 이는 근대 학교 교육의 시스템이 ‘지혜’를 목표로 삼지 않고, ‘지식과 정보’를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T.S 엘리엇이 말한 지혜보다 상위의 것인 ‘생동하는 생명, 기쁨, 즐거움, 감동에 찬 삶’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정보의 바다에 떠다니는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어떻게 조합, 가공, 응용해 지식을 창출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해 나가느냐 하는 방향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가야 한다. 즉 평면적 지식을 입체적 지식으로 바꿔, ‘지식의 소비자’에서 ‘지식의 창조자’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사회는 지식을 암기하는 단계를 넘어 여러 교과 지식을 활용해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그렇게 해결한 문제를 논·구술을 통해 다른 사람과 잘 소통할 줄 아는 인재를 원한다. 아이를 이런 인재로 키우려면 우리나라의 주체적인 인재 교육인 융합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학생의 학업 성취는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학습에 대한 흥미를 가지지 못하고 있으며 공부하는 것이 즐겁지 못하다. 이는 ‘수포자’란 말로 증명된다. 
 
이어령 박사도 생전에 말한 바이지만 일제 강점기에 뿌리내린 ‘탑-다운’식의 주입식 교육의 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교과가 바로 수학이다. 4차산업의 핵심인 빅데이터, 인공지능이 모두 수학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수학경시대회에서 상은 휩쓸어도 수학 흥미도는 꼴찌 수준이다. 재미와 흥미가 전혀 없다. 새로운 내용을 학습할 때 고통을 느끼기보다는 즐거움을 느끼는 인재가 필요하다. 『논어』에도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라 하지 않았나. 『프랑스 교육처럼』을 쓴 이지현 님에 의하면 프랑스(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 수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나라)에서 고1학년 때 수학 시험을 보았는데, 20점 만점에 12점을 받아 선생님에게 이유를 묻자, 그때 선생님의 코멘트가 ‘개념 부재’, ‘상세 설명 부재’였다고. 다른 친구들 답안을 보았더니 문제 풀이 과정을 빼곡하게 모두 글로 설명해 놓았더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수학 시험 문제는 숫자만 쓰는 단답형, 또는 선다형 시험이잖는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에피소드다. 답은 하나가 아니라는 생각의 전환. 새로운 발견의 즐거움이 있는 수학. 기-승-전 –반복학습이 아니라 호기심의 생산성을 만들어 내는 학습 등등. 
 
이제 4차 산업 시대 교육의 방향은 보편성에서 다양성으로, 다양성에서 개별성으로 바뀌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4차 산업시대의 교육의 방향은 20세기까지의 ‘직선적 사고의 항상적 패러다임’을 ‘원형적 사고의 순환적 패러다임’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리하여 교육의 피라미드 구조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자료, 정보에 초점을 맞추는 교육이 아닌, 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최상위의 것, 곧 ‘생동하는 생명, 기쁨, 즐거움, 감동에 찬 삶’으로 대체하는 교육으로 바꾸어 실천해 나가야 한다. 공장 같은 지식전수형 학교 교육으로 만들 수 없는 원형-순환적 패러다임의 출현으로 학교는 이제 순종교배의 순수함을 보전하려는 엘리트주의가 아니라, 잡종교배(하이브리드)의 다양함과 풋풋함이 넘쳐나는 새로운 실험과 교제가 이루어지는 곳이어야 한다. 
 
이제 지식전수형 교육은 종말을 고했다. 다가올 미래는 연결의 시대다. 생각의 재료를 주고 융합을 통해 이를 버무리는 사고 훈련 과정이 필요하다. 앞으로 생각의 힘을 키우는 교육 외에 대안은 없다. 연결의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는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니라 잘 배우는 사람 즉 배움을 즐기는 사람이 될 것이다. 정보나 지식은 구글을 검색하면 된다. 오죽하면 ‘구글 신’이란 말이 다 있을까. 진정한 공부는 모두 당연하다고 생각한 현상에 대하여 남다른 호기심과 의심의 눈초리로 시비를 걸면서 구체적 질문으로 만들어 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질문은 궁금증과 호기심의 발로다. 다이나마이트의 심지에 갖다 대는 불이다. 세상은 질문하는 자로부터 변화했다. 최진석 교수는 “문명의 모든 것은 생각의 결과이고, 질문의 결과다”라고 했다. 질문할 때만 주체자가 된다. 따라서 주체적 지식의 창조자가 되려면 질문해야 한다. 공부는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여러 가지 현명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독서를 해야 한다. 먼저 통독하고 다음에 정독하는 방식으로 머릿속에서 융합적 사고가 일어날 때까지 빡쎄게 독서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은 복잡하게 서로 연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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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우균 교육연합신문 교육국장

◇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교육연합신문 교육국장

◇ 前중앙일보 공교육 논술자문단 자문위원

◇ 前중등교사 임용시험 채점위원

◇ 前인천미추홀외국어고등학교 교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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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깨봉 칼럼] 4차 산업시대 교육의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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