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교육연합신문=전준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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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서 메시지를 받았다. 

'전준우 작가님, 안녕하세요?'하고 시작하는 장문의 메시지였다. 연기를 전공한 27살의 젊은 청년이었다. 자기 계발과 책 쓰기에 관심이 있어서 이런저런 책을 찾아보던 중, 우연히 <탁월한 책쓰기>를 읽게 되었고, 무척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며 감사하다는 메세지를 보내왔다. 나도 '좋은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하고 답장을 했고, 맞팔을 했다. 

 

최근에 물류회사를 인수했다. 새벽 4시 반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퇴근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책을 쓰고 독서를 하기 위해서 4시에 일어나는 것과 일을 하기 위해 4시에 일어나는 것은 꽤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중노동이었다. 직원도 한 명 뽑았지만, 4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처리하는 데 10시간이 걸렸다. 직원관리, 일처리, 재무, 회계, 세금처리까지 어느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너무 바빠서 육아와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 이어졌다. 일상이 지쳐갔다. 

 

김훈 작가의 책 <연필로 글쓰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나온다. 동네에서 만난 어린 아이랑 아이의 엄마가 김훈 작가를 향해 '할아버지'하고 이야기한 것이었다. 마을 할머니들이 둘러앉아서 이야기하는 몰래 엿듣는 내용도 나온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는데 대충 그런 내용이다. 흥미로웠다. 

 

일흔이 훌쩍 넘는 노신사에게 할아버지라고 이야기한 게 뭐 그리 대수이며, 마을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행위가 뭐 그리 추천할 만한 일일까마는, 나는 조금 생각이 달랐다. 김훈 작가는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며,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대大작가다. 김훈 작가의 책은 출간되는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만의 독특한 문체와 탄탄한 스토리 구성 능력은 상당히 뛰어나다. 수십 년간 신문 기자로 살아오면서 터득된 기술일 수도 있고, 내면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자신만의 독특한 능력일 수도 있다. 여하튼 평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정경사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김훈'이라는 이름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럼에도 그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는 그저 하릴없이 시간만 때우는 '할아버지'이며, 할머니들의 속내를 엿듣기 위해 곁귀를 쫑긋 세우고 연신 입을 삐쭉거리는 동네 할배에 불과한 것이다. 

 

나를 돌아보았다.

작가는 무엇일까. 작가는 뭘 하는 사람일까. 

 

책을 쓰는 것, 작가가 되는 것, 소설가가 되는 것. 그것은 어린 시절에 내가 가졌던 막연한 꿈이었다. 그렇기에 책을 출간해서 작가가 되고 난 뒤, 이후에도 몇 권의 원고들이 출판사와 계약이 되고 난 뒤, 소설 집필작업이 막바지에 다다른 어느 순간, 막연한 꿈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놀랍도록 즐거워하고 행복해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한 권 두 권 쓰다 보니 책을 써내는 게 어렵지 않게 느껴졌고, 꿈이란 게 이다지도 시시한 것에 불과한 것인가 하는 자괴감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일을 하는 것도 나로 하여금 작가로서의 삶보다는 돈의 노예가 되어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해서 마음을 꽤 심란하게 만들었다. 

 

그렇다 보니 글을 쓰는 행위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며 밥벌이를 하는 요즘, 내가 작가라는 사실이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에 꽤 오랫동안 마음을 두고 살아왔다. 까짓것 책 몇 권 써낸다고 해서 그 자체가 큰돈이 될 리도 없을뿐더러, 살면서 책 몇 권 써낸 사람들도 세상에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원 강사로 일하는 아내는 오후 3시쯤 출근해서 밤 11시, 12시가 되어 들어오는데, 덕분에 저녁 시간 육아를 병행하며 글까지 써내는 것도 상당히 버겁고 힘든 일로 느껴졌다. 돈이나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매일 주야장천 글이나 쓰고 책이나 읽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랬겠지만. 

그때 20대 젊은 독자의 메시지를 받은 것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주인공은 디스토피아 세계를 향한 반항의 일환으로 노트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무척 위험한 일이다. 걸리는 순간 사형이다. 사각사각 글 쓰는 소리도 도청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그는 글을 쓴다. 체제에 대한 반항, 자유를 향한 몸부림, 숨죽여가며 글을 쓰는 행위에 그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셈이다. 난데없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물류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으나, 적어도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사형당할 수도 있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글을 쓰며 살고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독자가 남긴 메시지가 주는 울림은 컸다. 나는 다시 책을 손에 쥐었고, 펜을 들고 밑줄을 그으며 문장들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노트를 펴서 글을 쓰고, 노트북을 열어 브런치 창을 켜고, <작가의 서랍>에 저장해 두었던 원고들을 꺼내서 수정하기 시작했다. 밀린 칼럼을 쓰고, 묵혀두었던 소설의 퇴고를 시작했고, 출판사 등록서류도 마무리지었다.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오묘하고 놀라운 즐거움인지 모른다. 

 

책을 출간하고 난 뒤, 무슨 일을 했던지간에, 나는 작가로 살아왔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며, 또 그 자체 만으로도 상당히 의미 있는 일들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고, 그렇다고 지체하지도 않고 꾸준히 글을 써 왔다. 그 행위 자체가 나에게 있어서 가장 의미 있는, 나를 살아있게 하는 기회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살기 위해 글을 쓴다. 살아내기 위하여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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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준우

◇ 작가, 강연가, 책쓰기컨설턴트

◇ 前국제대안고등학교 영어교사

◇ [한국자살방지운동본부]

◇ [한국청소년심리상담센터] 채널운영자

◇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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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인생학교 행복교육] 독자의 메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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