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대상전에 수천수괘를 보면 ‘구름이 하늘 위에 있는 모습’이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었다. 곧 비가 온다.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인생이란 적절한 때의 기다림이다. 이럴 때 ‘군자는 사태를 밀어붙이지 않고 음식으로써 즐거운 연회를 벌이면서 기다리면 된다.’고 되어 있다. 진인사대천명이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삶에서 기다림은 피할 수 없는 감정이다. 예를 들어, 미루기 힘든 일이나 이루고 싶은 목표를 위해 오랜 기간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불안과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기다림의 괘는 이러한 기다림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기다림을 극복하고 즐거움을 찾아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즉 이 괘에서는 인간이 기다림을 견디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시도한다. 모임을 즐기고, 관계를 키우며, 스스로 위안을 찾고, 기다림을 이기고 행복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인간은 기다림 속에서도 자신을 위로하며 기다림을 극복하고 즐거움을 찾아낼 수 있다. 기다림에 수반되는 기대와 간절함, 그리고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인내와 끈기의 필요성을 동반한다. 
 
기다림을 주제로 한 시는 김영랑이 1934년에 발표한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다. 모란의 개화와 낙화를 제재로 하여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모란이 피는 것을 간절히 기다린다. 이 작품에서 모란은 화자가 간절히 바라는 대상이나, 이상을 상징한다. 특히 마지막 구절인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을 보면 왜 찬란하고 슬픈 봄이라고 했을까. 봄에 모란이 피니까 찬란하고, 또 봄에 모란은 지니까 슬픈거다. 모란이 피니까 질 수밖에 없다. 역설적인 표현이다. 1년은 365일, 모란이 피는 기간은 5일, 그러니까 ‘360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라고 한 것이다. 기다림은 꽃이 피는 때까지다. 꽃이 피면 이내 진다. 찰나다. 순간이다. 화무십일홍이라 하지 않던가. 따라서 꽃이 피는 봄을 기다림은 꽃이 피기 시작해서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때까지만 기다림이지, 막상 꽃이 폈을 때는 기다림은 저만치 가버리고 만다. 그래서 슬프다. 그리고 찬란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은 모두 찰나에 있다.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하는 「구슬비」라는 동요의 알토란 같은 싯구가 생각난다. 빗방울이 어느새 은구슬과 옥구슬이 되었다가 다시 빗방울로 사라진다. 그 찰나의 순간을 본 사람만이 가장 가치 있는 은구슬, 옥구슬을 마음속 깊이 가지는 것이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은 고기가 잡히지 않는 84일 동안 기다렸다. 그리고 85일째 되던 날, 바다로 나갔다. 바다에서 이틀을 보내고 노인은 낚시에 걸린 청새치가 길이 4.5m, 몸무게 900kg로 굉장히 강한 상대라는 것을 알았다. 그에 비해 노인은 자신의 힘을 장기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이틀 간의 사투에서 겨우 붙잡는다. 경망스럽게 조급히 서두르면 적과의 싸움에서 지게 된다. 장기계획을 세우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노인이 청새치를 잡은 후가 더 큰 시련이었다. 바로 상어 떼의 습격이다. 우리 인생도 자기가 목표로 한 일을 어느 정도 성과를 냈을 때 더 큰 시련이 닥쳐온다. 필자도 동기들보다 먼저 교감이 되려고 아등바등하다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 후 가나다라, 아야어여부터 다시 배우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틈나는 대로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내뱉었다. 자신감은 제로 상태였다. 만나는 사람들이 무서웠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일도 자신감이 떨어져 망설였다. 그러다가 겨우 횡단보도를 건넌 후에 가로수를 붙들고 소리죽여 하염없이 울었다. ‘이러면 안 된다. 이렇게 살아선 안 된다.’ 하며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다. 마침내 복직해서 학생들을 가르쳐 보니 너무 힘들었다. 한 시간 수업하면 그날은 완전 녹다운(knockdown) 상태가 되었다. 학생들과 동료들에게 폐만 끼치는 것 같아 퇴직을 결심했다. 그리고 신문사 문을 두드렸다. 파출소 피하려다 경찰서 만난다고, 신문사는 학교보다 더 힘들었다. 우선 평상시 쓰는 말부터 달랐다. 무척 거칠었다. 적응하기 정말 힘들었다. 이를 악물고 벼텼다. 성실하게 적응해 나갔다. 수습기자, 교육전문기자, 교육국장을 거쳐 현재 주필이 되었다. 노인은 상어의 공격에 도망치지 않고 상어를 물리치기 위해 칼을 뽑아 든다. 시련을 회피하지 않고 용기있게 맞서는 노인이 아름답다. 노인은 여러 차례 상어의 공격에 맞서 싸운 후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다. 비록 상어에게 모든 고기는 빼앗겼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치열하게 싸운 후 맛보는 진정한 승리감, 성취감이었다. 
 
필자를 버틸 수 있게 해 준 것은 독서와 글쓰기였다. 읽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쓰기 위한 독서를 했다. 쓰기 위한 독서를 하면 독서의 방법이 달라진다. 독자들도 한번 해보시라. 단어를 유심히 보게 되고, 동사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강, 나무, 사랑 등의 명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흐른다, 자란다, 사랑한다의 동사가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삶은 명사가 아니라 오직 동사로 이루어진다. 실천의 중요성을 인정하게 된다. 서면 그저 땅 위일 뿐이나 걸으면 길이 된다. 삶의 시련을 겪어보면 오직 동사만이 진실이라는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어. 죽을 수는 있지만 패배할 순 없지”, “희망을 버리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그것은 죄와 같아”, “고기가 고기로 태어났듯이, 나는 어부가 되기 위해 태어났어” 주옥같은 명대사들이 일제히 일어서는 소리를 듣게 된다. 
 
생텍쥐베리의 작품 『어린 왕자』에서는 기다림의 설렘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어린 왕자는 이튿날 다시 왔다. 그러자 여우가 이렇게 말했다.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벌써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지나갈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을 느낄 거야. 4시가 되면 벌써 안절부절못하고 걱정이 되고 말 거야. 행복이 얼마나 값있는 것인지를 알아낼 거란 말이야.”」 
 
『주역』에서는 기다림의 해결책을 ‘음식연락(飮食宴樂)’하라고 했다. 음식으로 즐거운 연회를 벌이라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기다림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불안하게, 조급하게 기다리지 말고, 긍정적으로, 마음 편하게, 음식을 즐기면서 기다리라는 것이다. 기다림의 향연은 우리를 기쁨과 슬픔으로 이끌 수도 있고, 이상적인 존재를 갈망하면서도 우리 욕망의 덧없는 본성과 마주하게 한다. 삶의 본질은 기다림의 수수께끼에 있다. 
 

육우균.jpg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전체댓글 0

  • 98221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육우균의 周易산책] 기다림은 비가 되려는 구름이다(수천수)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