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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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 귀족 자녀를 가르치는 선생들은 노예였다고 한다. 로마에게 땅과 일터를 침탈당한 지식인들은 로마로 끌려와 로마 귀족들 자녀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다. 선생들이 사는 지역 길옆에는 선술집들이 즐비했다고 한다. 노예 신분의 선생이 하는 훈육을 귀족 자녀들이 고분고분 잘 들었을 리 없다. 얼마나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이었겠는가. 하지만 어찌 하겠는가. 술로 달랠 수밖에. 
 
로마 귀족 아이에게 힘없는 노예 선생이 철학과 수학, 역사를 가르치는 일은 노동보다 힘들었으리라. 지금도 남의 귀한 자녀를 가르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학부모 중에는 학교나 교사를 자기 자녀만을 위한 편의점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다. 이래저래 선생들은 술과 인연이 많다. 속상한 일이 하나둘이 아니다. 성공한 친구, 다양한 방법으로 속을 썩이는 학생들, 자존감을 꺾는 관리자와 학부모, 많은 업무와 선생다움을 지키는 일이 모두가 술을 부르는 것들이다. 
 
양주를 먹는 교사는 상상이 안 된다. 초임시절에 선배교사들은 후배를 시장골목 술집에 데리고 다녔다. 순대나 허파를 안주로 하는 막걸리주점에서 술만 먹는 것이 아니라 힘든 학생지도나 수업에 대해서 자기 경험을 살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초임교사들은 시루의 콩나물처럼 그런 이야기를 듣고 조금씩 성장했다. 술을 먹으며 가슴 속 힘겨움을 삭였고 동료들과 따스한 위로와 격려 담긴 정담을 나누었다. 선후배가 학교에 근무하면서 겪는 어려움만이 아닌 성장과정과 가족 간 어려움까지 토로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던 시대가 있었다. 
 
학교는 상품보관 창고가 아닌 사람을 키우는 곳이다. 학생에 대한 애정과 고민이 없다면 견디기 힘든 곳이다. 정부와 기관에서 교권 붕괴에 대한 방안으로 교사면담예약제, 학생생활기록부 기재, 학생인권조례 개정, 소송비 지원 등 다양한 안을 만들고 있다. 양측 법적 대립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칼로 덤비는 사람을 총으로 제압하면 상대는 총보다 더 강한 무기를 가지고 나올 것이 명약관화하다. 학교공동체가 서로 소통하고 학교 스스로 자치와 치유능력을 가져야 한다. 
 
선후배 교사들 사이에 교류 통로가 보이지 않는다. 메마른 교사관계는 교사와 학생 사이에도 전이되고 학부모와의 사이에도 전이된다. 메마른 관계영역이 사막처럼 넓어진다. 인간관계가 없는 사막에 모래바람이 인다. 
 
1박 2일 연찬회도 없어지고 친목회마저 없애는 학교가 늘어난다. 자가용이 많아지면서 술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정겨움과 소통도 같이 없어져서 안타깝다. 술이 아니더라도 서로 소통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선후배가 막걸리를 나누며 학교와 가정에서 겪은 힘든 속내를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던 시절이 그립다. 술보다도 소통하던 마음이 그립다. 지난 한 달 동안 선배, 후배, 동료, 자녀, 학생에게 식사나 차를 함께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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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학생교육문화원 예술진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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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교사와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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