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교육연합신문=조영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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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사회는 '아이'에 대한 판타지가 강렬하다.

아이들은 (      ) 사랑을 듬뿍 받아야만 한다.
아이들은 어리니까 뭔가를 하면 (      ) 예쁘고 귀엽다.
아이들은 아직 어리니까 (        ) 그럴 수 있다. 
아이들은 (      ) 착하고 예쁨 받아야만 한다.
아이들은 (      ) 좋은 것들을 보고 듣고 자라야 한다.
아이들은 (      ) 행복하게 커야 한다.

(     )가 없이 읽으면 크게 틀린 말 같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저 (       ) 안에 "무조건"을 넣었을 때도 옳은 말일까?
나는 (    ) 속에 “무조건”을 넣어 완성된 문장이 지금 우리 사회가 옳다고 믿고 있는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유명한 영화가 있다. 그 영화 속에서 ‘라일리’라는 한 아이에게는 내면의 컨트롤타워가 있는데, 여러 다양한 감정들이 각자 자신이 가진 특성을 드러내며 라일리의 감정을 컨트롤한다. 영화의 처음에는 ‘슬픔이’나 ‘버럭이’, ‘소심이’, ‘까칠이’등은 부정적인 인상으로 묘사되고 늘 긍정적이고 즐겁고 활기찬 ‘기쁨이’만이 긍정적인 이미지로 묘사된다. 그래서 항상 기쁘고 활기찬 ‘기쁨이’라는 존재가 거의 컨트롤타워를 독차지한다. 
영화를 여러 번 보면서 언제 한번 그 장면에서 내게 들었던 생각은 이랬다. 
'기쁨이가 주도적으로 자리 잡으며 내면은 항상 기쁨으로 가득해야 한다는 것, 또 그것이 옳다고 믿는 것. 그것은 어쩌면 ‘사회 통념적으로, 어른의 시선과 욕망이 투영되어 옳다고 믿고 싶은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영화에서, 컨트롤타워를 독점한 기쁨이의 모든 행동이 라일리를 항상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 주지는 않는다. 결국 기쁨이는 여러 상황들을 통해 슬픔이를 비롯한 다른 감정들이 갖고 있는 진정한 가치를 깨닫고 나서 컨트롤타워의 주도권을 양보하고 그 과정에서 라일리는 더욱 성장한다.

요리나 디저트를 만드는 상황으로 비유하면, 단맛이나 설탕의 맛을 돋보이게 하고 더 복합적이고 완성도 높은 맛을 위해서 일부러 소금, 때로는 신 맛을 내는 재료를 넣는 것과도 같다. 

나는 지금 우리나라가 아이들을 '정서적 당뇨'에 걸리게 하고 있다고 본다. 즉, 우리나라 사회는 학생들을 지나치게 많은 '설탕'만으로 키우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아이를 기르고 성장시키는 것에서 한 종류의 부분만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는 것 같다. 과연 항상 웃고, 행복하고, 즐겁고, 신나며 재미있어서 설레고 기다려지는 것만이 바람직하고 옳은 성장 과정인 것일까?

지금 우리나라는 아이를 교육하는 것에서 '인사이드 아웃'의 ‘기쁨이’, 즉 요리에서 ‘설탕’에 해당하는 것만을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다. 그 유행 속에서 일부 자녀가 없는 청년들은 아직 부모의 역할을 시작도 하기 전에 ‘어떻게 키우지? 키울 엄두도 안 난다.’고 할 만큼 겁먹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으면서도 늘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오늘도 우리 아이에게 화를 냈어. 난 나쁜 부모야.’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의 화살이 결국 학교와 교사에게도 날아왔다. 특히나 그들은 ‘교육을 전공했다’는 '교육자'라는 이름 하에 아주 엄밀한 잣대로 평가당한다. 조금의 오차와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상위 기관과 관리자는 교육 수요자의 요구 및 상위 기관과 관리자의 책임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일선 교사들에게 과중한 책임을 떠밀었다. 일부 학부모는 평생을 길러야하는 자녀에게 자신도 하지 못하는 '이상'을 1년간 수십 명을 담당해야하는 교사에게 요구한다. 

이 모든 상황이 가장 최악으로 겹치면서 나타난 결과가 바로 서울 서이초, 용인 고기초, 의정부 호원초의 안타까운 선생님들의 사연이다. 그리고 수많은 선생님들이 전국 어딘가에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채 여전히 그런 사연들을 겪고 있다.
 
'이론'과 '법' 대로, 늘 마치 자와 칼로 재단하고 자른 듯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아이 앞에 선 어른들, 일선 교사에게 지나치게 '완벽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또한 비현실적인 ‘이상’의 꿈에 빠져 아이에게 '설탕'만 먹이며 키우는 것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아이를 '정신적 당뇨'에 걸리게 한다.
 
이런 분위기와 환경으로 인해 ‘정신적 당뇨’에 걸린 아이는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나만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는 것, 
친구 관계에서 때로는 거절당할 수 있음을 알고 거절의 아픔을 겪어보는 것,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의도하지 않게 상처를 주고 받을 수 있고 그에 맞는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 
누구라도 실수할 수 있지만 실수에 대한 올바른 사과와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 등.. 
인간으로서 성장을 위해 겪어야 할 다양한 경험들을 소화할 수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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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일
◇ 경북 구미 인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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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정신적 당뇨 - 아이를 향한 잘못된 판타지 "무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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