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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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어디다 두었는지 기억나지 않아서 후끈거리는 열기로 가득한 주차장을 밤새 헤매는 꿈을 가끔씩 꾼다. 꿈인 것이 다행스러웠다. 핸드폰을 식당에 두고 와서 허겁지겁 식당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우산은 방문한 곳을 나올 때 비가 오지 않으면 그냥 두고 나오기 일쑤다. 핸드폰 일정표 앱에 메모를 했는데도 지인의 아들 결혼식을 지나쳤다. 기차표까지 예매를 했던 일정이었다. 
 
학생들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해 여러 번 번호대로 이름을 쓰며 외우기도 했지만 일 년만 지나도 얼굴은 기억하지만 이름은 계속 헷갈렸다. 한동안 A4용지를 두 번 접어 메모지로 만들어 주머니에 항상 넣고 다니며 잊지 말아야 할 내용을 썼다. 빨랫감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지 않았다고 아내에게 지청구를 듣기도 했다. 지금은 종이보다 핸드폰 일정관리 앱을 활용한다. 좋은 세상이다. 
 
기억은 관심의 척도다. 중요한 것은 잊지 않으려 하고 내용을 반복한다. 친구, 형제, 부모, 연인의 기념일을 기억하는 것은 관심의 표현이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기억하는 것을 떠올려보라. 핸드폰에 많은 사람들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지만 기억에서 멀어지는 사람들 숫자는 점점 많아진다. 
 
메모에는 행사도 있지만 잊지 않아야 할 작은 행복들을 기록해야 한다. 햇살이 무지개를 만드는 아침이슬처럼 작고도 아름다운 순간들 말이다. 인간은 관계에서 행복을 느낀다. 혼자서  비싼 스테이크를 먹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갈비탕을 사주면서 같이 먹으면 더 행복하다. 나는 네가 있음으로 해서 더 뚜렷하게 존재감을 느낀다. 존중하는 관계와 인정받는 관계가 기억의 그물망에서 형성된다. 서로는 사회적 존재로 더욱 빛난다. 
 
회식을 하고 나서 핸드폰을 잊어버린 적이 있다. 늦은 밤이었지만 길을 되짚어 찾아갔다. 택시에서 내린 아스팔트 바닥 자리에 핸드폰이 다소곳하게 가만히 앉아있었다.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핸드폰과 다시 만난 순간은 친한 지인을 만난 것보다 더 기뻤다. 찾기는 했지만 핸드폰을 잃어버렸을 때 그 황망함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핸드폰은 대리점에서 다시 살 수 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교육적 가치는 무엇인가. 수염을 깎듯이 매일 잊지 말아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부끄러움과 양심을 잊는 것은 인간다움을 잊는 것이다. 교육자와 정치가는 과연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망각하는가. 
 
망각은 정상적인 생활을 위해 필요한 기능이다. 문제는 잊어야 할 것은 잊지 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는다는 것이다. 수십 년 전에도 교권 침해, 학교 붕괴, 악성 민원 개선과 입법요구가 있었다. 복마전처럼 얽혀진 교육 문제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많은 교육 법안들이 아직도 처리되지 않고 있다. 정치인들은 불리한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뉴스를 보거나 거리에 있는 정치적인 현수막을 보면 당사자가 아닌데 내가 부끄럽다. 개인의 핸드폰보다 더 중요한 양심과 사명감을 망각한 것은 아닌지 우리도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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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학생교육문화원 예술진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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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건망증과 교육적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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