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대상전에 화지진괘를 보면 ‘태양이 처음 땅에서 솟아올라 점점 올라가면서 밝아지는 모습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 자기에게 구유되어 있는 밝은 덕을 밝게 한다.’고 되어 있다. ‘화지진(火地晋)괘’의 ‘진(晋)’이란 ‘나아간다’는 의미다. 해가 떠오르니 만물이 해와 더불어 점점 성대해지는 것을 말한다. 아침 해가 떴으니 서서히 모험을 떠나라. 
 
화지진괘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최근에 나온 『슈퍼 토끼』(유설화 저, 책 읽는 곰, 2020)다. 다음은 유설화님이 쓴 『슈퍼 토끼』 와 『슈퍼 거북』의 두 작품을 필자가 재구성해 본 이야기다. 
 
우리가 잘 아는 동화 「토끼와 거북」의 뒷이야기다. 경주에서 진 그 토끼는 어떻게 되었을까? 슈퍼 토끼가 들려주는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법! 거북이가 느리다고 얕잡아 보다가 경주에서 진 토끼는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다른 동물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다. 다시는 달리기를 안 한다고 결심한 토끼는 달리는 법을 잊어버릴 정도로 자기 몸을 망친다. 배불뚝이가 되어 한없이 자신감을 잃어버린 토끼는 땅만 보고 다닌다. 한편 경주에서 이긴 거북이는 행복했을까? 처음에는 어리벙벙했을 것이다. 그런데 역시 다른 동물들이 “그거 속임수로 이긴 것 아니야.”,“어떻게 거북이가 토끼를 이길 수 있니”하는 소리를 듣는다. 거북이는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 ‘그 경주는 아주 정당했고, 나는 성실히 경주에 임했어’라고 생각하며 고립감이 빠졌다. 토끼와 거북이 모두 그 경기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재경주를 하기로 했다. 결과는 물론 그동안 이를 간 토끼가 승리했다. 토끼는 기뻐했고, 거북이는 재경주에 지고 집으로 돌아와 마음 편히 잠을 잤다. 
 
이 동화는 아동을 위한 동화지만 어른을 위한 동화라 해도 무방하다. 현대인은 외부의 평가에 민감하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기대를 생각하면 나로 살기보다는 그 시선에 맞춰서 살게 된다. 한없이 위축되고 실망하면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고 산다. 나답게, 내 모습 그대로 살기가 쉽지 않다. 진짜 자기 모습으로 살지 못할 때의 우울감과 고립감은 자신을 더욱 외딴 섬에 유배시킨다. 이렇게 해서 자기 자신을 잃게 된다. 자신을 위한 삶을 살지 못한다. 그래서 토끼와 거북이는 재경주에 합의한다. 물론 경주 자체가 토끼에게 유리하고 거북이에게 불리하다. 결국 유리한 토끼가 이기고, 불리한 거북이가 진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 당연한 결과가 남들의 입장이 아닌 자신들의 입장에서 치른 경주였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첫 경주에서는 토끼와 거북이 모두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토끼는 이길 수 있는 경주였는데, 자신의 자만심, 겸손의 부재 등을 책망했을 테고, 거북이는 이겼지만 자신의 성실함에 흠집이 잡혔다. 속임수를 썼을 것이라는 주위의 의심을 받는 존재라는 책망 속에 고립감을 느꼈을 것이다. 남의 존재를 너무 의식하는 삶을 살지 말자. 그보다는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자. 남을 위한 삶과 자신을 위한 삶 중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에 대한 전문가는 나 자신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현재의 평가에만 휘둘리는 사람은 불행해진다. 
 
여기 김현숙님의 「모과」라는 시가 있다. 짧으니 전문을 보자.

하느님이  
물었지.
얼굴을 가질래?
향기를 가질래?
난 
향기를
가지기로 했어.
자, 
맡아 봐.
내 향기! 
 
왜 우리가 남의 기대대로, 남의 말대로 살지 않고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단적으로 말해주는 시라 생각한다. 틀에 박힌 ‘어떤 모습’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자유로움’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타인들의 시선과 틀에 얽매이지 않고 좀 더 자유롭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아야 하지 않을까? 
 
화지진괘는 태양의 밝음을 닮은 괘이다. 스스로 자기에게 구유(具有)되어 있는 밝은 덕을, 태양이 온 누리를 밝게 비추듯이, 아가페적으로 타자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태양과 달은 모두 밝다. 태양은 낮에, 달은 밤에 밝다. 그러나 둘의 차이도 있다. 태양의 밝음은 그 자체로 가지고 있는 밝음이고, 달은 타에 의지한 밝음이다. 인간의 덕성은 존재 그 자체의 고유한 덕성이다. 자신의 덕성이 뭔지도 모르고 모두 ‘얼굴’을 가지려고 할 때, 자신의 고유한 덕성이 무엇인지를 알고 향기를 가질거라는 ‘모과’의 선택은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실현한다. 그래서 세상에 밝은 향기를 가득 내뿜는다. 
 
화지진괘는 스스로 빛을 밝히는 반딧불이처럼 내 안에서 내가 생산해낸 쾌락의 소중함을 깨닫고 타인들의 시선과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지혜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육우균.jpg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전체댓글 0

  • 80235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육우균의 周易산책] 나아감은 모험의 시작이다(화지진)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