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대상전에 택산함괘를 보면 ‘산 주위를 연못이 흘러내려 산을 윤택하게 하듯이 연못과 산은 서로를 생성한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마음을 비움으로써 타인들을 포용한다. 즉 자기를 비움으로써 많은 것을 느낀다.’고 되어 있다. ‘택산함’의 ‘함(咸)’은  戌(도끼)으로 口(어떤 지역 혹은 성)을 모두 파괴하는 데서 나왔다. 다른 풀이는 戌(도끼)을 들고 일제히 口‘(함성)을 지르는 모습이라 한다. ‘다함’, ‘모두’의 뜻이다. 함(咸)‘ 자 밑에 ‘마음 심(心)’자를 붙이면 감(感)이 된다. ‘느낀다’는 의미다. 삼라만상 모두가 느낌을 떠나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7정(喜怒愛樂哀惡慾)과 이성, 언어까지 포함하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함괘는 부부의 모습, 남녀 간의 사랑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따라서 함괘는 건곤에 비교될 수 있는 새로운 출발이다. 그래서 『주역』을 상・하경으로 구성할 때, 상경은 건 곤 - 감 리괘까지고, 함 항 - 기제 미제까지가 하경이 된다. 
 
그 중 최상의 느낌은 젊은 남녀의 호상 감응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발랄한 표현이다. 남녀의 발랄한 교감은 생명의 탄생이라는 위대한 선물을 준다. 인간만이 아니다. 식물도 교배함으로써 결실을 맺는다. 광물도 그렇다. 양자역학적으로 보면 물질은 양전기를 띤 원자핵과 음전기를 띤 전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이 서로 교감운동을 통하여 그 균형이 유지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은상은 「사랑」이란 시에서 “탈대로 다 타시오/타다 말진 부디 마오/타고 다시 타서/재 될 법은 하거니와/타다가 남은 동강은/쓸 곳이 없소이다.”라고 말하며 사랑을 하면 그 사랑의 마음을 상대에게 모두 태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뿐만 아니라 동물, 식물, 광물까지도 그와 관계할 땐 느낌으로 한다. 보고 싶은 꽃이 있고, 갖고 싶은 광물도 있다. 그것을 느낌이 먼저 안다. 
 
헬렌 켈러의 스승은 앤 설리번이다. 앤 설리번은 그와 같은 장애인인 헬렌 켈러를 가르칠 때 오직 느낌으로써 했다. 예를 들어 ‘물(water)’이라는 단어를 가르칠 때 남들처럼 단어 스펠링에 초점을 맞추어 가르치기보다 물가로 헬렌 켈러를 데려가 물을 직접 손으로 만져보게 한 것이다. 직적 헬렌 켈러의 손으로 물의 흔적을 느껴보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것이 물이라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앤 설리번이 있었기에 헬렌 켈러가 장애를 극복하고 교육자, 작가, 사회운동가가 될 수 있었다. 필자는 세상의 유명한 영웅이라 여기는 나폴레옹, 알렉산더대왕, 징기스칸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헬렌 켈러였고, 그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앤 설리번이라고 생각한다. 오직 ‘느낌’으로 교육할 수 있었던 위대한 스승이었다. 
 
잠깐! 샛길로. 필자도 앤 설리번의 흉내를 낸 적이 있었다. 중학교 교사 시절, 학생들이 ‘사랑’이 뭐냐고 묻길래, 그리스의 비극 시인 에우리피데스가 한 말 “사랑은 가장 달고 가장 쓴 것”을 인용하고 나서 아이들에게 느낌으로 알려줘야 하겠다고 생각해, 저기 창 밖 교정에 있는 라일락 잎사귀를 따오라고 해서 학생들에게 잎사귀를 입으로 씹어보라고 했다. 학생들은 “아이 퉤 퉤”하며 쓰다고 난리였다. 이윽고 점심시간이 지나고 교장 선생님의 호출과 함께 질타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교정에 있는 라일락 잎사귀를 모두 따서 가지만 남았다는 말과 함께 필자가 책임지라는 말도 안 되는 질타였다. 사랑의 이별은 쓰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을 느낌으로만 가르치려 할 때는 더 쓰다는 것을 알았다. 
 
느낌은 나의 존재 여부와 직결된다. 삶은 느낌에서 시작된다. 『반야심경』에 보면 ‘안이비설신의’, ‘색성향미촉법’이라 하여 여섯 가지 느낌의 강도를 말하고 있다. 안은 시각인데, 이것은 느낌 중 가장 신뢰할 수 없는 것이라 한다. 시각은 미혹되기 십상이다. 새끼줄을 보고 뱀이라 하기도 하고 우산도 그림자만 보고 칼이라 한다. 마술사가 마술을 부릴 때 눈속임을 최우선하고 있는 이치다. 시각보다 조금 신뢰가 가는 감각은 청각이다. 이런 식으로 후각, 미각, 촉각, 의식의 순서로 감각이 강해진다. 의식은 뇌의 감각이라 하는데, 한 번 형성된 의식은 목숨과도 바꾸지 않는다. 남의 의식을 바꾸는 행위는 그래서 어렵다. 
 
느낌의 주인이 되어야 행복하다. 인간은 자신에 대한 느낌을 완전히 살리는 데서부터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다. 택산함의 효사에 보아도 발가락부터 시작하여 장딴지, 허벅지, 머리, 어깨, 허리, 엉덩이를 거쳐 윗턱, 뺨, 혀까지 그 느낌을 찾아내라고 한다. 언어는 언어 이전의 느낌의 바탕 위해서만 유효하다. 발가락에서 등 근육까지 그 몸의 총체적 느낌 위에서만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을 함부로 내뱉어서는 안 된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말을 해야 한다. “입 속의 말은 내가 주인이지만, 입 밖의 말은 나를 노예로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또한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여 갈등을 일으킨다. 
 
세상의 모든 갈등은 말에서 시작됨을 잊지 말라. ‘말은 사상의 옷이다.’, ‘말은 화석이 된 시다’. 말. 그것으로 인하여 죽은 이를 무덤에서 불러내고, 산 자를 묻을 수도 있다. 
 
노신의 『입론』에 있는 말에 대한 일화다. 어떤 집안에 사내 아이가 태어나 온 집안이 말할수 없이 기뻐하였다. 한 달이 되었을 때 아기를 안고 나와 손님들에게 보여주었다. 말할 것도 없이 한 가지 길조의 말을 얻어내려는 생각에서였다. 한 사람이 말하였다. “이 아이는 장차 돈을 많이 벌겠군요.” 그는 이에 감사하다는 말을 한바탕 들었다. 한 사람이 말하였다. “이 아이는 장차 큰 벼슬을 하겠군요.” 그는 이에 몇 마디 겸손해하는 말을 되받았다. 또 한 사람이 말하였다. “이 아이는 장차 죽게 되겠군요.” 그는 여러 사람에게 매를 한바탕 맞게 되었다. 죽게 될 것이라 말한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고, 부귀하게 될거라고 말한 것은 거짓일 가능성이 많았다. 그러나 거짓말을 한 사람은 좋은 보답을 받고, 필연적인 것을 말한 사람은 얻어 맞았던 것이다. 그러면 거짓말을 하지도 않고 얻어맞지도 않게 말해야 한다면 이렇게 말해야 한다. “아, 아가야! 보시오! 얼마나……. 아유! 하하!” 자기의 생각을 말하지 말고, 있는 사실만 그대로 말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교언영색을 진실이라 믿고 사실을 진실이라 믿지 않는다. 말을 신중하게 사용해야 하는 이유다. 
 
택산함괘는 산의 특성인 ‘허심무아(虛心無我)’의 모습을 배우라고 한다. 산은 실상 물로 배를 채우지 않고 항상 계곡으로 물을 흘러내려 버림으로써 배를 비운다. 산은 물을 내려보내고 속을 비워야만 그 형태를 유지할 수 있고 또 비가 내리면 끊임없이 그 수분을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심무아의 모습을 본받아 마음을 비움으로써 타인들을 포용하는 자세가 『주역』 하경의 바탕을 마련한다. 느낌이다. 세상 만물을 대할 때 나 자신을 버리고 오직 무아(無我)로서 느낌을 마주 대하라. 있는 그대로. 보이는 대로. 그러면 우주와 춤을 추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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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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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느낌의 무한한 매력 – 우주와 춤을 추는 삶(택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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