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6(월)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요즘 영화계가 활짝 웃었다. 12.12사태 때의 전두환 군사 쿠데타 사건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 때문이다.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조직하고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전두환 소장은 김재규가 저지른 10.26 사태 때, 보안사령관이란 직책을 십분 활용하여 12.12사태를 일으켜 서울에 따뜻한 민주의 봄이 오는 것을 막았다. 그는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니냐“라고 말하며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혈안이 되었다. 성공하면 혁명이 되는가? 여기 『주역』의 택화혁괘는 말한다. 민중의 협력이 없는 혁명은 허상일 뿐이라고. 
 
혁명은 역사적으로 인류의 진보와 변화를 촉발한 핵심 개념이다. 택화혁괘를 통해 혁명의 본질을 이해하고 혁명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자. 
 
「대상전」에 택화혁괘를 보면 ‘연못 가운데 불이 있는 모습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역(歷)을 새롭게 정하고 삶의 기준이 되는 때를 밝힌다.’고 되어 있다. ‘택화혁(澤火革)’의 ‘혁(革)’은 ‘동물의 가죽’이다. 가죽은 무두질을 통하면 거의 새로운 물질이 된다. 고대 문명에서는 가죽으로 의복, 신발, 장갑, 물통, 배낭, 마구, 칼집, 화살통 등등 수 없는 생활 도구와 전쟁 도구가 만들어졌다. 옛날 천민이었던 가파치들이 이런 일을 했다. 가파치가 없었다면 전쟁도 불가했을 것이다. 이처럼 썩은 것을 제거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적 의미가 변혁, 혁명이다. 택화혁괘는 물과 불이 동거하고 있으니 반드시 개변된다. 물과 불은 서로를 차단시킨다. 물은 불을 끄고, 불은 물을 말린다. 서로를 변혁시키는 것이다. 불의 성질은 위로 올라가는 것이고, 물의 성질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다. 따라서 서로에게 덤벼들어 서로를 멸식시켜 버린다. 그래서 혁(革)이다. 「대상전」에 보면 ‘치력명시(治歷明時)’라고 되어 있다. 역(歷)은 역(曆)이다. ‘역(曆)을 새롭게 정한다’는 것은 혁명의 상징이다. 새로운 국가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다. 
 
이런 택화혁괘와 유사한 문학작품이 바로 최인훈의 필생의 역작인 『광장』이다. 이 소설은 해방 직후에서 6.25 전쟁 이후를 배경으로 남북한의 이념 대립과 그 사이에서 파멸해 가는 ‘이명준’이라는 개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남북한 통일론에 대한 논의가 자유로워지면서 등장했으며, 남북한 이념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한 최초의 소설로 꼽힌다. 
 
이 작품의 주인공 이명준의 여정을 따라가 보자. 작품 내의 시간은 타고르 호에서의 이틀뿐이고, 대부분의 이야기는 명준의 회상이다. 남한의 대학생 이명준은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수난을 당하고, 밀실은 넘치나 '광장'이 없는 현실에 좌절하던 명준은 결국 연인 윤애를 남겨둔 채 월북한다. 그러나 북한 또한 표현의 자유가 극히 제한받는, 각종 집단주의를 위한 광장은 있으나 개인의 '밀실'이 없는 곳이었다. 명준은 월북한 아버지의 힘으로 전공을 살려 처음에는 노동신문에 들어갔는데, 이러한 면들에 실망하고 일부러 건설 현장으로 나간다. 노가다 일을 하다 사고로 부상당해 입원했는데, 거기에서 간호 봉사를 온 발레리나 은혜를 만나게 되고 그곳에서 도피하듯 새 연인 은혜와 인연을 맺는다. 
 
그러던 중 6.25 전쟁이 벌어지고, 공산군 고위 장교로 참전한 명준은 친구 태식을 고문하고 친구 태식의 아내가 된 윤애를 성폭행하고 '악마도 되지 못한' 자신을 비웃는다. 성폭행하는 악몽을 꾼다. 
 
낙동강 전선에서 명준은 간호장교로 투입된 은혜를 다시 만난다. 그곳의 한 동굴에서 둘만의 시간을 가지던 중 은혜는 명준의 딸을 가진 것 같다는 말을 하지만, 얼마 안 가 폭격에 비명횡사하고 만다. 이후 포로가 된 명준은 남한도 북한도 아닌 중립국 행을 선택하게 된다. 남, 북에 모두 실망한 탓도 있었고, 남한으로 가봐야 빨갱이 취급받으며 계속해서 괴롭힘을 당할 게 뻔하고, 북한으로 가 봐야 남로당계인 아버지는 숙청당할 것이라 명준 자신도 무사할 수 없었다. 
 
명준은 중립국으로 지정된 인도로 향하는 타고르 호에 오른다. 그러나 중립국에서도 자신의 행복을 찾지 못할 것을 갈등하던 명준은 처음에 감시자로 여기며 총으로 쏴버리려고 했던 갑판 위 두 갈매기의 모습에서 은혜와 자신의 딸을 떠올리며 마지막 자유의 공간인 푸른 광장으로 뛰어든다. 결국 명준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빨갱이도 반동분자도 없는 곳을 선택하는 불행을 자신의 손으로 맞이한다. 
 
남과 북, 혁명으로 인한 새로운 국가는 어디에도 없었다. 남한을 밀실에, 북한을 광장으로 빗대어 남과 북을 모두 경험하고 나서 이명준은 제3국 중립국을 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택화혁괘의 효사(초9)를 보면 혁명의 시기에는 ‘황소 가죽으로 만든 단단한 허리띠로써 그대의 허리를 조르라’고 했다. 자기 자신을 단속하고 자신의 위상을 단단하게 만들어야 함에도 이명준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6.25 전쟁 중에도 은혜를 만나 감정에 치우쳐 행한 자신의 행동 때문에 결국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 남과 북, 그리고 중립국에서도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없었다. 그가 죽는 장소인 바다가 오히려 이명준에게는 이상향이 되어버린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혁명은 실패했다. 이명준의 실패한 삶은 그가 주변 사람들을 신뢰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진실한 혁명은 정치혁명이 아닌 삶의 혁명, 도덕적 혁명, 의식혁명이어야 한다. 민중의 협력이 없는 혁명은 허상일 뿐이다. 요즘 개봉한 『서울의 봄』이란 영화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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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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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혁명; 썩은 것을 버리고 새로움을 창조하는 과정(택화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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