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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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다. 1988년 9월이었다. 군인생활을 마치고 바로 복직을 해서 머리도 짧은 총각이었다. 학급에서 반장과 부반장은 주번을 하지 않았다. 그런 특권이 있었다. 주번 업무에는 칠판 지우기와 쓰레기통도 치우기도 있었다. 젊은 패기로 생각하기에 옳지 않다고 여겨서 특권을 없앴다. 어느 날 청소검사를 하러 퇴근 무렵에 담임반 교실에 갔다. 플라스틱 쓰레기통 바닥은 찌든 때와 오물로 가득했지만 바닥까지 닦는 주번은 아무도 없었다. 안에 있는 쓰레기만 버려도 훌륭한 주번이었다. 그런데 쓰레기통을 물로 바닥까지 말끔하게 닦아서 물기가 마르도록 쓰레기통을 단정하게 엎어놓은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반장이 주번활동을 하면서 한 행동이었다. 주의 깊게 볼수록 생각과 배려가 깊은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나중에 어떤 어른이 될까 많이 궁금했었다. 
 
25년이 흐른 후에 그 제자가 시청에서 복지관련 부서의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발머리 여학생에서 이제 한 도시의 복지를 책임지는 일을 하고 있었다. 작은 사과나무가 커서 튼실한 사과를 매단 커다란 나무가 된 것을 보고 진심으로 기뻐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는 모습이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름다웠다. 
 
시인 류시화의 책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지인이 추천한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라는 책 속에 ‘직박구리새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흐린 겨울날 건너편 집에 사는 아이가 죽은 직박구리새를 가져와서 묻어달라고 한다. 자기 집에는 마당이 없어서 묻어 줄 곳이 없다는 것이다. 시인은 꽁꽁 언 살구나무 아래의 땅을 무딘 호미로 팠다. 다시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아이는 자신의 낡은 신발 한 짝을 내밀었다. “추우니까 새를 이 신발 안에 넣어서 묻어 주세요.” 그리고는 나머지 신발 하나만 신은 채로 약간 절뚝거리며 돌아갔다.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로. 시인은 ‘나’의 범위를 벗어나서 공감과 연민을 가지면 더 큰 ‘나’가 된다고 했다. ‘나’이외의 타자에 대한 공감과 연민은 인간을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3월 새학기에 담임을 맡아 담임반 교실 문을 열 때 항상 긴장을 했었다. 교사와 학생 모두 만남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부풀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 힘겨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초임교사 시절에 선배교사들은 초장에 군기를 잡아야 한다고 비법을 전수해 주기도 했다. 지나고 보니 가슴을 닫으면 생활은 편안했지만 추억은 없었다. 가슴을 열었을 때 상처도 받았지만 서로 가슴으로 소통하던 때가 진정한 담임이었고 진정한 만남이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려면 가슴을 열어야 한다. 쓰레기통 바닥을 깨끗하게 닦는 배려, 직박구리새를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은 ‘나’를 넘어서는 마음이다. 배려와 사랑이 있는 관계는 거짓이 없기에 세월이 지나도 가슴에 남는다. 타인에 대한 진실한 마음으로 ‘나’를 넘어서서 소통하는 관계가 많아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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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제
◇ 충청남도천안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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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나’를 넘어서는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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