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6-10(수)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대상전」에 풍수환괘를 보면 ‘바람이 물 위를 간다. 모든 것을 흩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간난이 생긴다. 환난의 시기에는 하느님께 제사를 지내야 한다. 그래서 흐트러진 인심을 다시 규합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풍수환(風水渙)’의 ‘환(渙)’은 ‘흩어지다’라는 의미다. 물이 흩어지는 모습이다. 어려움을 흩날려버리고, 험난한 고비를 근원적으로 풀어버리는 것을 일컬어 ‘환(渙)’이라 한다. 능히 험난을 풀어버릴 수 있으므로 형통하다. 이 괘사에도 형(亨), 이(利), 정(貞)이 있다. 괘의 격이 높다. 
 
풍수환괘를 보여주는 문학작품으로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에세이가 있다. 이 에세이의 작자인 빅터 프랭클은 유대인으로 정신과 의사다. 그는 20세기 인류 최대의 비극인 홀로코스트를 경험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수감되었다가 1945년 종전과 함께 극적으로 수용소에서 해방된 인물이다. 정신과 의사답게 아주 담담하고 사실적으로 수용소 생활에서의 고통과 그 고통을 이겨 내는 과정들을 기술하고 있다. 
 
죽음의 수용소로 떠나기 위해 유럽 전역에서 온 1,500명의 유대인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하자 그들 중 90%는 곧장 가스실로 갔고, 나머지 10%의 사람들은 짐승처럼 온몸이 벌거벗겨진 채 털이 깎이고 이름이 아닌 수감번호로 불리며 나치 감시자들의 폭력과 욕설에 시달리게 된다. 가축우리 같은 수용소에서 추위와 굶주림과 노동에 시달려야 했고, 하루 한 번 배급되는 빵과 묽은 수프가 그들이 먹는 음식의 전부였다. 이제 그들은 자신이 갖고 있던 명성이나 재산은 더이상 아무 의미가 없고 학대당하는 몸뚱이 하나만이 그들이 가진 전부가 되었다. 그들은 ‘집행유예 망상’이라는 정신상태가 된다. 수용소의 생활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믿고, 금세 이 고통이 끝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게 된다. 그러나 수감자들은 시궁창 오물을 치우는 일에 배정되어 똥물이 얼굴에 튀어서 닦으면 감시자들이 가차없이 주먹질을 해대고, 조금만 힘든 모습을 보여도 동료 수감자들 앞에서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제 ‘무감각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2시간 전에 자신과 얘기를 나누던 동료 수감자의 끔찍한 시체를 보고도 바로 수프를 먹을 수 있게 되고, 맨발로 눈길을 걸어야 하는 동료 수감자가 어린애처럼 엉엉 우는데도 아껴둔 빵을 개걸스럽게 먹느라 정신이 없다. 동료 수감자보다 건강하게 보여서 가스실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매일 깨진 유리로 면도를 하기도 한다. 이들은 오로지 생존의 문제에만 집중하게 된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지옥같은 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여전히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른바 고통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첫째로 과거로의 도피, 둘째 어딘가 있을 나의 아내 생각, 셋째 정신적 영역으로의 도피다. 필자도 군대에서 겨울에 혹한기 훈련을 받을 때인데 밤에 보초를 서야 했다. 날씨가 너무 추워 2시간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때 대학 시절과 시골 생활 등 과거를 회상했다. 또한 미래의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러면 2시간이 훌쩍 가버린 기억이 있다. 또한 논산 훈련소 훈련병일 때 배가 너무 고파서 낮에 나눠준 건빵을 먹고 싶어 주머니에 한 줌 건빵을 넣고 화장실로 갔다. 문을 잠가 놓고 건빵을 개걸스럽게 먹었다. 3분이 지났다. 선임하사가 화장실로 왔다. 점검했다. 필자는 그것도 모르고, 건빵 먹는데 정신이 팔려 목이 매이는 것을 참으며 꾸역꾸역 건빵을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갑자기 화장실 문이 활짝 열리며 문에 채여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건빵이 여기저기 흩어져 버렸다. 선임하사에게 끌려 나온 뒤 취조가 시작됐다. “사회에서 뭐하다 왔냐?”, “왜 화장실에서 건빵을 먹었나?” 등등을 묻고, 필자는 간단히 대답했다. “예, 사회에서 교사하다 왔습니다.”, “예, 배가 고파서 그랬습니다.” 선임하사는 필자를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서 “내일 공급병을 뽑는데, 네가 손을 먼저 들어라.” 필자는 공급병이 뭘 병사인지도 모르고 손을 번쩍 들었다. 이후 공급병이 되어 훈련병들의 식기, 숟가락, 젓가락, 총에 꽂는 칼을 창고에서 공급받아 훈련병들에게 나눠주는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그 대신 공급병은 대부분의 훈련에서 예외가 되었다. 그 후 마음 편히 훈련병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것은 인간은 고통을 가져다주는 외부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그 고통을 자신의 태도에 따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련으로부터의 자유는 본인의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 성자가 될지 돼지가 될지는 결국 본인의 삶에 대한 의지로 결정나게 된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는 니체의 말처럼 수용소에서 꾼 꿈과 나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지옥같은 수용소에서도 살아날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인간은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기도 하지만 가스실에 들어가며 주기도문을 외울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지 기대하지 말고, 우리가 삶의 과제들을 어떻게 책임져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문학작품이다. 
 
우리네 인생은 모든 것이 모일 때도 있지만 모든 것이 흩어지기만 할 때도 있다. ‘흩어짐’ 그 자체는 우리에게 긍정적 의미를 지니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우리 삶의 과제는 이러한 흩어짐 속에서 오히려 간난을 흩날려버리고 건공입덕(建功立德)하는 데 있다. 
 
빅터 프랭클은 정신과 의사였다. 그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오게 되자 그의 인생은 흩어지게 된다. 가족을 잃고 자신의 쌓아온 명예와 부를 모두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러한 지옥 속에서도 사람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깨닫게 되자, 그는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풍수환의 괘사에도 ‘과감한 행보의 모험을 감행해도 이(利)가 있다’고 했다. 
 
풍수환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작을 찾을 수 있는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환(渙)은 어려움을 흩어버리는 것을 나타내지만 이는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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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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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죽음의 수용소에서'-간난의 시작과 인간의 의지(풍수환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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