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우균의 周易산책] 가정의 화목은 성(誠), 부(孚), 애(愛)의 조화로부터-'여자의 일생'(풍화가인괘)
두드리지 마라. 삶의 문은 이미 열려 있다.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대상전」에 풍화가인괘를 보면 ‘불이 바람을 타고 잘 타오르는 모습’이다. 불이 타면 따뜻한 바람이 일듯이, 한솥밥을 먹으며 화목한 집안을 가꾼다는 뜻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평소의 언행을 정의롭게 한다.’고 되어 있다. 가인(家人)은 가족을 의미한다. 가족에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은 여성이다. 가정의 평화는 결국 여성에 의하여 유지되기 때문이다.
옛 고조선의 가인(집을 지키는 사람)들은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잘 간수하는 것이 생활의 중대사였다. 남자가 사냥을 하러 나가면 여자가 집에 남아 불을 지켰다. 정지용의 「향수」에 나오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火),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風) 말(馬)을 달리고” 이 시에도 풍(風), 화(火)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러한 전통으로 가정에서 원만한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저마다의 본분을 지키고 맡은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이를 일컬어 ‘언행유항(言行有恒)’이라 했다. 결국 퐁화가인괘는 집 안에서 축적된 도덕성이 밖으로 미치게 되었다는 인간 세상의 원리를 밝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밥상머리 교육이 유지되고, 이것이 있기 때문에 세상읜 윤리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언행유항(言行有恒)을 잘 보여주고 있는 문학작품이 있다.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이다. 모파상은 19세기 유럽의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자연주의 문학은 인간의 삶을 아무런 의도 없는 객관적인 자연 현상처럼 바라보는 문학을 말한다. 『여자의 일생』은 모파상을 프랑스 문학의 스타로 만들어준 대표작이다.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가진 잔느라는 여인이 온갖 삶의 비극을 거치며 그 환상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냉정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여주인공 잔느를 너무 많은 풍파 속으로 밀어넣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환상과 낙관이란 예측할 수 없는 자연 현상 같은 삶 앞에서 얼마나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또 이렇게 삶의 풍파에 나약하게 흔들리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모두의 숙명이란 것도 보여준다.
17살 잔느는 노르망디 지역의 푀플성을 소유한 남작 부부의 외동딸이다. 세상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처녀다. 어느날 마을 사제의 소개로 매혹적인 외모의 귀족 청년 줄리앵을 만난다. 곧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 결혼 후에도 줄리앵은 백작부인과 불륜은 맺고, 시녀인 로잘리도 겁간한다. 그 사건 후 잔느는 그의 아들 폴을 집안에서만 애지중지 키우고 있다. 폴은 그런 잔느의 숨막히는 치마폭 속에서 아는 것도 별로 없는 정신적 유아로 머물게 된다. 청년이 된 폴은 기숙학교에 입학하고 창녀와 사랑에 빠지며 빚을 지고 방탕한 생활을 한다. 폴의 빚 때문에 두 농장까지 저당 잡히게 된다. 홀로 남은 늙고 지친 잔느 앞에 어느날 남편의 사생아를 낳았던 로잘리가 찾아온다. 로잘리는 자신이 잔느의 아버지가 지참금으로 준 토지재산 덕분에 성실한 남편을 만나 평탄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었고 얼마 전 아들을 장가보내고 남편과 사별한 후 혼자 지내고 있었다. 로잘리는 잔느의 집 살림도 하고 돈 관리도 알뜰하게 대신해 준다. 폴에게서 편지가 온다. 내용은 함께 지내던 창녀가 사흘 전에 자신의 딸아이를 낳고 죽어가는데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으니 아이를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기차역에서 아이를 받아 온 로잘리는 잔느에게 안겨준다. 죽음 같디 절망적인 삶을 살다가 너무나 오랜만에 생명의 환희를 느낀다. 아이에게 키스하는 잔느를 보며 로잘리는 말한다.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좋은 것도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랍니다.”
잔느의 삶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 어떤 불행한 삶이 건 행복한 삶이 건 해가 뜨는 날도 있고 소나기가 내리는 날도 있다는 것 그렇게 통제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자연 현상처럼 흘러가는 게 우리네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절망에 빠진 잔느를 구한 것은 신이 아니라 과거의 유부남과 부정을 저질러 사생아까지 낳은 여인(로잘리)이었다. 모파상은 이를 통해 진정한 구원은 하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부정을 저지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주변 사람들을 통해 온다고 말해 주는 듯하다.
‘자모(慈母)에 패자(敗子)가 많다’는 우리의 속담이 있다. 이 말은 지나친 자애가 넘치는 어머니의 슬하에서는 도리어 방자하고 버릇없는 자식이 나온다는 말이다.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에서도 주인공 잔느는 그의 아들 폴에게 치마폭 사랑을 쏟아붓는다. 그것에 아들 폴은 질려 버리고 삐딱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훌륭한 부인은 집안을 잘 이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남편하기 나름이다. 결국 가정의 화목은 부부가 서로 소통하고 사랑하고 서로를 위할 줄 알아야 한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말이 흔한 말이지만 그 말처럼 위대한 말도 없다. 공기처럼 흔하지만 되새겨 보아야 할 말이다. 가정이 잘되어야 사회가 잘되고 나라가 잘 된다. 그래서 맹자는 가인의 출발이며 종착지는 성(誠)이라 했다. 풍화가인괘의 효사 중 上9에 “유부위여(有孚威如)”라 했다. 집안을 다스리는 최초의 원칙은 성실함(誠), 마음 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말이다. 조화로운 가정 생활을 조성하는 데 있어 이해, 용서 및 의사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풍화가인괘의 효사를 보자. 먼저 지(地)의 자리다. 初9 효사다. 결혼을 하면 3년 동안은 서로의 집안에 대해 배운다. 남남이 만났으니 서로의 집안에 대해 모른다. 무조건 양보하고 배우려 해야 한다. 그래야 집안이 평안하다. 그리고 부부지간도 서로의 법도를 세우며 지내야 한다. 3년 동안 그렇게 하면 된다. 그리고 집안의 여자(부인, 며느리)는 음식을 잘 만드는 일에 열중해야 한다. 음식을 잘 만들면 집안 사람들이 그 음식 곁으로 모이게 된다. 음식은 소통의 기본이다. 거기다 가정의 화목은 덤이 된다.
인(人)의 자리다. 누차에 걸쳐 말하지만 인의 자리는 매우 중요한 자리다. 민중계급에서 지배계급으로 뛰어오를 수도 있어서다. 남편의 집안이 매사에 너무 엄격하면 집안 사람들이 헉헉댄다. 숨통이 조여 온다. 또한 집안이 엄격함이 없이 너무 너그러워도 안 된다. 며느리와 자식이 희희덕거리면 집안 꼴이 남사스럽다. 「사랑이 뭐길래」라는 주말 드라마가 MBC방송에서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김수현 작가와 박철 PD 연출로 만들어진 엄격한 현대판 자린고비 이 사장 집안과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박 이사 집안이 사돈을 맺으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코믹하게 그린 홈드라마다. 당시 평균 시청률이 59.6%라는 경이적인 기록이었다. 이 사장네(김혜자와 이순재, 그의 아들 최민수)와 박 이사네(김세윤과 윤여정, 그의 딸 하희라)의 서로 다른 생활 양식을 대비시키는 가운데 부모 세대의 전통적 가치관과 자식 세대의 자유분방한 가치관의 조화를 추구한 드라마다. 당시 세대갈등을 해결하는 모태가 된 드라마다. 上9 효사에도 나오듯이 가정을 잘 돌보려면 ‘유부위여(有孚威如)’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드라마였다.
천(天)의 자리다.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은 집안을 잘 다스린 사람들이다. 『대학』에 나오는 ‘수신체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다. 작은 집안도 분란을 만드는 사람이 어떻게 그보다 큰 나라를 다스릴 것인가.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다. 우리가 훌륭한 왕이라 일컫는 세종이나 정조도 그의 아들을 그렇게 잘 다스리지 못했다. 그래서 上9 효사에 ‘유부위여(有孚威如)’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리라. 즉 집안을 다스리는 최초의 원칙은 성실함(誠), 마음 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실(孚), 그리고 사랑(愛)인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루어야 즉, 풍화가인괘는 아버지의 엄격함과 어머니의 자애로움이 조화를 이루어야 집안을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게 만들 수 있다는 평범한 지혜를 우리에게 준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