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6-16(화)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택수곤괘는 위에 연못(☱)이 있고, 아래에 물(☵)이 있는 모양이다. 연못에서 물이 다 빠져 내려가 물이 없는 모습이다. ‘택수곤(澤水困)’의 ‘곤(困)’은 ‘곤궁하다’의 의미다. 곤(困)은 낡은 초막집 안이 다 무너져 내려 나무가 헝크러져 있는 모양이다. 또 담으로 둘러싸인 집이나 동네를 막고 있으니 출입이나 소통이 어려운 상태이기도 하다. 군자가 소인에게 둘러싸여 곤궁한 모습이다. 

 

이와 같은 택수곤괘와 유사한 문학작품으로 김훈의 『칼의 노래』를 꼽을 수 있다. “충무공 -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라는 부제를 단 『칼의 노래』는 임진왜란 중 이순신의 백의종군 무렵부터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까지의 이야기다. 이후 좌의정에 추정되고 ‘충무’라는 시호를 받았다. 한참 후인 정조 17년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여기까지가 이순신의 이력이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학교에서 역사 시간에 배운 다 아는 이야기다. 

 

인간 이순신의 삶 속 이야기는 『칼의 노래』라는 소설을 살펴봐야 알 수 있다. 이것이 인문학적 상상력의 힘이다. 역사가 담아낼 수 없는 인간적인 영웅의 삶을 이 소설이 보여준다. 한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장군으로서의 고뇌, 혈육의 죽음에 대한 심정, 여인과의 통정 등과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까지 서술되어 있다. 게다가 이순신 장군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몰입도 상당하고, 함께 고뇌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하게 제공하고 있다. 그 힘을 김훈의 작가 정신이 보여준다. 그의 간결하고 힘 있는 문장으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의 힘은 이 소설의 첫 문장으로부터 시작된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피는 숲에 저녁 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섬들은 바다의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 싶었다.” 이 소설이 출판되고 난 후 김훈의 뒷 담화다. 첫 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를 “꽃은 피었다”로 할까, 몇 번 망설이다가 “꽃이 피었다”로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김훈의 작가 정신은 그의 문장 쓰기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실로 압도적인 문장력을 바탕으로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인간 이순신의 내적 갈등을 잘 표현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남아 있습니다. 신의 몸이 살아있는 한, 감히 적은 조선의 바다를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 여기서 이순신은 왜 ‘아직’이란 말을 사용했을까. ‘밖에’가 아니고. ‘12척밖에’가 아니고, ‘아직 12척의 전선이’라고 했을까. 이순신의 긍정의 힘이다. “비관주의자는 어떤 기회 속에서도 어려움을 보고, 낙관주의자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기회를 본다‘고 윈스턴 처칠은 말했다. 위기는 기회다. 인간은 곤궁의 지극함 속에서 후회와 반성을 아니할 수 없다. 후회와 반성이 없는 곤궁은 파멸일 뿐이다. 『난중일기』를 통하여 지극한 후회와 반성의 삶을 산 이순신은 택수곤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택수곤괘의 효사(상6)에서 ‘유회정길(有悔征吉)’ 즉 ‘후회가 있기 때문에 나아가면 길하다’라는 묘사는 바로 인간 이순신의 삶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매일 전쟁 중에도 일기를 썼다. 일기는 하루의 일을 후회하고 반성하는 일이다. 일기를 썼다는 것은 습관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의 앞날이 길할 수밖에 없다. 

 

택수곤괘의 효사를 보자. 지(地)의 자리다. 초9의 효사와 같이 이순신은 무과에 응시했으나 시험을 보던 중, 말에서 낙마하여 주변 사람들이 기절한 줄 알았으나 옆에 있던 버드나무 껍질을 벗겨 다리를 동여매고 시험을 끝까지 치렀다. 하지만 결국 시험에서는 낙방하고 만다. 결국 4년 뒤인 32살에 두 번째 응시하여 무과에 급제했다. 62효사와 같이 선조는 이순신의 장군으로서의 면모와 능력을 무시하고 그를 시기하여 백의종군하게 만든다. 

 

인(人)의 자리다. 63의 효사와 같이 원균과의 경쟁에서 패한다. 원균은 칠천량까지 쫓겨가서 재기하려고 함선 100척에 거북선 5척 등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선단을 구성하여 일본 수군과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일본 수군의 집중포화를 맞아 지리멸렬하면서 겨우 12척만 탈출에 성공한다. 5000년 해군 역사상 유일한 패배를 불러온 장본인인 원균도 이곳에서 전사하고 만다. 그 후 이순신은 백의종군에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원균이 칠천량 전투에서 12척만 탈출시킨 배를 가지고 명량해전에서 대승한다. 94의 효사와 같이 이순신은 한산도, 명량, 노량에서 대첩을 거두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다. 

 

천(天)의 자리다. 95의 효사와 같이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했다. 이순신은 전쟁터에서 죽고 나라는 살았다. 의로운 죽음이다. 다음은 상6 효사다. 인조 때 ‘충무공’이란 시호가 내려졌다(1643). 이순신이 죽은 지 45년이 되던 해이다. 

 

곤(困)이란 글자는 口속에 木으로 되어 있어 나무가 상자 속에 있는 형상이다. 나무란 원래 두텁고 넓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높고 시원스럽게 트인 공간으로 줄기가 오르고 가지가 퍼지면서 아무런 막힘도 거리낌도 없이 자라나는 식물이다. 그리하여 나무는 비로소 성장하고 무성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집을 지을 때 서까래나 기둥이 되고, 또 아름드리 거목이 되고 하늘을 찌르는 교목이 된다. 이러한 나무가 네모진 상자 속에 들어가 있으면 꼼짝할 수가 없다. 따라서 곤괘는 상자(口)를 타개할 의지와 노력이 없는 자에게는 발전의 길이 없다. 험난 속에 있으면서 오히려 이를 즐길 줄 알고, 곤란하면서도 형통할 줄 하는 길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굳은 신념이 있는 큰 인물에게는 길한 괘다. 말이 많으면 궁지에 빠진다. 

 

이순신 장군은 택수곤괘에 가장 충실한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불리하든 유리하든 따지지 않고 하늘의 뜻에 따르는 태도를 보였다. 이순신은 하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을 보고 참지 못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중에서도 상관의 부당한 인사에 반대해 좌천되기도 하고, 상관의 부정한 행위를 반대하다가 미움을 산 적도 있다. 심지어는 임금의 명령까지도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신념은 하늘에 있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순신은 택수곤괘에서 말하는 하늘의 뜻에 순종하라는 양심의 지시에 따라서 이순신은 부정에 결코 굴복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지도 않았다. 거의 모든 전투를 이겨 놓고 싸웠다는 점에서부터 시작해서 이순신의 전략과 행동을 보면 마치 자신이 이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했고, 자신의 인생에서 스스로 용(龍)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그것을 하늘의 뜻이라 믿고 언제나 성실한 자세로 일한다면 반드시 기쁜 일이 찾아온다는 택수곤괘의 지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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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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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곤궁에서 빠져 나가는 의지의 힘(택수곤괘)-'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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