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6-12(금)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중산간(重山艮)괘는 위와 아래에 공통으로 산(☶)이 있는 모양이다. 위에 산이 중첩되어 각기 제자리에 안주하고 있는 모습이다. 중산간(重山艮)’의 ‘간(艮)’은 ‘멈춤’, ‘억제’, ‘절제’를 의미한다. 멈춰야 할 때 멈춰야 한다. 절제를 말한다. 욕망을 멈추는 것이다. 간(艮)은 산의 형상이며, 산에는 안정적이고 무겁고 견고하고 내실이 있다. 그래서 자기의 지위나 직분에 넘어서는 것을 생각하지 말라, 즉 자신의 주제넘은 욕망에 끌려가지 않아야 한다고 경계하고 있다. 각각의 산들은 자기 영역을 지키며 살아간다. 자크 라캉이 말한 대타자의 욕망과 관련된 괘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까마귀와 독수리」 이야기가 있다. 독수리가 양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잡아채어 날아가는 모습을 본 까마귀가 나도 독수리처럼 해보고 싶어서 양을 낚아채려고 하다가 발톱이 독수리처럼 날카롭지 못해서 양털에 엉겨 붙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할 때 양치기가 까마귀를 잡았다. 옆에 있던 양치기가 “까마귀가 왜 그랬어?” 하니까, 다른 양치기가 “지가 독수리인 줄 알았나 보지” 했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욕망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이라는 라캉의 대타자의 욕망이라는 개념을 잘 설명해 주는 우화다. 
 
하덕규 작곡, 정덕수 시의 「한계령」을 들어보자.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버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화자는 자신의 지식으로 삶의 본질을 해결하지도 못하고, 또한 삶의 애증을 털어내지 못한 채 병든 나무처럼 힘겨워하고 있다. 그래서 첩첩산중의 한계령을 찾아간다. 그러나 한계령은 내게 말한다. ‘내려가라’며 등을 떠민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현실이다. 내가 있기 싫은 곳, 불만으로 가득 찬 곳,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현실은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나를 키운다. 나에게 밥을 준다. 그런 환경 속에 있어야 한다. 인간의 굴레다. 인간의 속박이다.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사는 것이 아름답다. 깨달음을 얻은 싯다르타도 현실을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깨달음이다. 예수님도 ‘일상에 감사하라’고 하지 않았나. 예수는 천국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현실에서 천국을 건설하고자 했다. 하늘에 천국은 없다. 한계령은 고요와 평정을 회복하는 귀한 치료약이다. 영적인 필수품이다. 현대 문명의 압박감을 견디기 위해 숨겨둔 아름다운 이야기다. 그런 한계령이 나를 밀어낸다면 멈춰 서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처음 품었던 신념을 앞으로도 계속 품고 갈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움켜쥐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혼란스럽다. 우리가 믿어왔던 앞길을 인도하기는커녕 걸림돌이나 족쇄가 되지 않게 하려면 멈춰 서서 다시 걸음을 옮길 용기를 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사막으로 여행을 떠나 보자. 
 
사막 여행은 원시 자연의 적막한 침묵을 가르친다. 모닥불 위에 쏟아질 듯 피어나는 별무리를 관찰하게 된다. 관찰은 통찰이 된다. 초저녁 사막의 모래 평원이 붉게 타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여행에 돌아온 뒤에도 모래를 향한 그리움이 남는다. 그러고 나서 다시 현실을 보라. 달라져 있을 것이다. 현실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나의 관점이 달라져 있어 세상이 달리 보이게 된다. ‘지금 여기’를 온전하게 음미할 줄만 알면 어떤 기적이라도 가능하다. ‘여긴 어디’, ‘난 누구’, ‘why not’을 생각하라. 그리고 내가 나서야 하는지 멈춰야 하는지 판단하라. 
 
멈춰야 할 때 멈춘다는 것은 중단이나 실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내일의 약진을 위하여 준비하는 것이다. 흐르는 물도 웅덩이를 만나면 전진을 정지한다. 물이 부풀어 올라 웅덩이를 메울 때까지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성장하는 수목도 겨울이 되면 잎을 떨어뜨리고 가지를 움츠린다. 봄이 다시 올 때까지 내면의 충실을 준비한다. 지금 힘을 기르는 일은 지금 행동하는 일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밤에 휴식과 수면을 취하는 일 없이 낮에 일할 수는 없다. 낮에 맑은 머리와 활기에 넘치는 체력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은 휴식과 수면의 공적이다. 한 발을 내딛기 위하여 한발은 정지시켜야 한다. 인간의 일에 대한 실패는 일 자체를 처리하는 활동의 빈곤에서보다도 차리리 그 활동을 뒷받침해 주는 실력의 부족에서 오는 경우가 더 많은지도 모른다. 지금 잠깐 활동을 정지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지 말고, 다음의 활동기가 올 때까지 자신만만한 힘을 기를 수 있을까를 걱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간(艮)괘는 ‘멈춤’의 괘다. 우리는 감각기관에 따라 직접적인 자극을 받는다. 「반야심경」에서도 ‘안이비설신의’라 했다. 눈, 귀, 코, 혀, 피부, 뇌(의식). 모든 감각기관이 우리 몸의 전면(前面)에 위치해 있다. 전면에 감각기관이 위치하고 있다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 극대화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 몸의 후면인 척추(등)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는 것을 『주역』의 중산간괘는 말하고 있다. 인간은 뒷모습이 진짜 모습이다. 얼굴에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망아(忘我)다. 인생에서 자신의 뒷모습이 어떨지 늘 생각하라. 그리고 갖가지 걸림돌이 많은 인생길에 자기만이 통제할 수 있는 신호등 하나씩은 가져야 한다. 중산간괘의 “멈춰라!”라는 명령은 내일을 준비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것이 바로 현실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미학이다.

 

육우균주필.jpg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전체댓글 0

  • 30599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육우균의 周易산책] 멈춰라, 욕망!(중산간괘)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