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6-11(목)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3·1운동의 사진을 떠올려보자. 거리마다 모여든 군중은 손에 태극기를 들고, 모두 흰옷을 입고 있었다.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와 함께 사람들의 옷도 하얗게 빛났다. 일제 당국은 이 장면을 경계했다. 흰옷은 너무나 눈에 잘 띄었고, 동시에 민족의 상징으로 번져갔다. 그래서 일제는 ‘백의(白衣) 금지령’을 내려 흰옷을 입지 못하게 하려 했다. 그러나 흰옷은 사라지지 않았다. 왜일까? 
 
흔히 “우리 민족은 가난해서 흰옷만 입었다”, “염색 기술이 부족해서 그렇다”라는 말을 들었다. 또 어떤 이는 “상복을 오래 입는 풍습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설명은 어딘가 부족하다. 과연 흰옷이 단순히 염색 비용을 아낀 가난의 상징이었을까? 아니면 상복의 연장이었을까? 흰옷 숭상이 경제적 이유가 아니라, 훨씬 더 오래된 관념 즉, 태양과 광명에 대한 숭배에서 비롯되었다 

□ 갑골문 속 ‘白’자의 비밀
먼저 문자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白(백)’의 갑골문과 소전(小篆) 형태를 보면, 그 기원은 흥미롭다. 글자는 해(日)와 닮아 있으면서도 그 위에 빛줄기 같은 표상을 얹은 모습이다. 다시 말해, ‘白’은 원래 햇빛, 특히 정오의 눈부신 빛을 상징했다는 것이다.([그림 22] ‘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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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다른 해석도 많다. 어떤 이는 쌀알을 본뜬 것이라 하고, 어떤 이는 촛불, 또 어떤 이는 누에고치라 말한다. 그러나 ‘日(해)’과의 관계, 선사시대 제천 맥락을 고려할 때 ‘광명 → 흰색’으로 읽는 해석이 훨씬 더 설득력 있다. 흰색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태양이 내리쬐는 찬란한 빛 그 자체였다.([그림 22] ‘日’ 참조)

□ 태생의 빛, ‘소(小)’자의 단서
청동기 문자 가운데 ‘小(소)’의 초기형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학자들은 이 글자의 원형을 태반이나 탯줄과 연결 짓는다. 아이가 태어날 때 맺는 탯줄, 그 창백한 빛깔에서 ‘흰색’의 의미가 비롯되었다는 해석이다. 결국 ‘흰색’은 태어남과 빛, 생명의 상징과 이어진다. 이처럼 문자 속에서 흰색은 처음부터 신성하고 생명적인 의미를 지녔다.

□ 은나라에서 조선까지 흰색의 역사적 전승
문자학적 단서가 흰색과 태양을 이어준다면, 역사 기록은 이 관념이 실제 사회 풍습으로 이어진 과정을 보여준다.
중국 고대의 은(殷, 상)나라는 흰색을 신색(神色)으로 삼았다. 제천 의식과 왕실 제사에서 흰색이 신성한 색으로 쓰였다. 이 관습은 은나라의 후손으로 여겨지는 부여, 그리고 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졌다고 한다.
『삼국지』에는 부여인이 흰옷을 즐겨 입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고려사, 그리고 『세종실록』에도 흰옷에 대한 언급이 이어진다. 백의 민족이라는 인식은 단절되지 않고 기록 속에 계속 이어졌다.

□ 오행과 색채 정치
그렇다면 왜 은은 흰색을, 주는 붉은색을 숭상했을까? 이는 고대 중국의 색채 정치, 즉 오행 사상과 관련 있다. 오행에서 흰색은 서쪽과 금(金)을 상징하고, 붉은색은 남쪽과 화(火)를 상징한다. 은은 흰색을, 주는 붉은색을 통해 각기 자신들의 정치적·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냈다.
조선에 들어오면 흰옷은 여전히 민중의 삶 속에 자리했지만, 동시에 국가 권력은 색을 통제하려 했다. 푸른색 염색을 금지하거나, 특정 계급만이 특정 색을 입게 하는 제도적 규제가 시행되었다. 그러나 그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흰옷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 단순한 경제적 이유일까?
여기서 반론이 제기된다. “조선 사람들은 가난해서 흰옷을 입은 것 아니냐?” 염색에는 비용이 들고, 흰옷은 값이 싸니 자연히 대중화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반론은 “조선은 상복을 중시했으니 흰옷 풍습은 상복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난이나 상복으로는 왜 왕실과 제사에서조차 흰색이 신성하게 쓰였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또한 왜 이웃 민족들과 달리 한민족은 지속적으로 흰옷을 고집했는지도 풀리지 않는다. 기후나 지역적 조건만으로는 더더욱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문자·제천·왕실 풍습에서 이어진 ‘광명 숭배’의 일관성이 이런 현상을 더 잘 설명해 준다. 흰옷은 가난의 표지가 아니라, 태양의 빛을 입는 행위였다.

□ 근대의 백의는 저항과 정체성의 상징
이 오래된 관념은 근대에 들어와 또 다른 의미로 부활한다. 일제강점기, 흰옷은 항일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3·1운동의 군중이 흰옷을 입고 거리를 메운 장면은 세계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일제는 이를 두려워했고, 그래서 백의 착용을 금지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흰옷은 여전히 민족 정체성과 저항의 코드로 살아남았다.
즉, 흰옷은 단순한 의복의 선택이 아니라, 민족의 영혼이 담긴 문화적 표상으로 기능했다.

□ 오늘날 흰옷의 의미
오늘날 우리는 예복이나 제례에서조차 흰옷을 자주 입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흰색은 특별하다. 결혼식의 드레스, 장례식의 상복, 국기와 체육대회 단체복까지 흰색은 여전히 ‘순수·광명·정화’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흰옷은 단순한 옷감의 색깔이 아니라, 오랜 역사와 문화적 기호가 응축된 상징이다. 그것은 태양의 빛을 입고자 했던 제천의 기억이고, 왕실과 민중이 공유한 신성의 색이었으며, 근대에는 저항과 정체성의 옷이 되었다.

□ 맺으며
흔히 우리는 “흰옷 입은 민족”이라는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그 뿌리를 따라가면 태양 숭배와 제천, 문자와 왕실 제사, 색채 정치와 항일 저항이 서로 얽힌 깊은 역사를 발견한다. 흰옷은 가난의 흔적이 아니라, 광명과 신성의 표상, 그리고 민족적 정체성의 상징이었다.
오늘 우리가 흰옷을 입을 때, 비록 그 의미를 다 알지는 못하더라도, 우리의 몸은 이미 수천 년 이어온 빛의 전통을 다시 입고 있는 것이다. 흰옷은 단순히 눈에 띄는 색이 아니라, 한민족이 기억 속에서 지켜온 빛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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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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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흰옷을 입은 민족, 그 오래된 빛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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