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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 크루즈관광의 허와 실, 크루즈관광객 100만 시대 부산은 무엇을 얻을 것인가
[교육연합신문=이상헌 기고] 크루즈선이 부산항에 입항하면 항구는 활기를 띤다. 거대한 선박과 수천 명의 외국인 관광객은 부산이 세계적인 해양관광도시로 도약하고 있다는 기대를 높인다. 부산항만공사는 2030년까지 크루즈선 520항차, 관광객 100만 명 달성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제시된 전망에 따르면 2026년에는 상반기에만 219항차, 약 32만 명이 부산항을 찾았고, 연간 이용객은 약 7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부산을 찾는 크루즈 관광객이 늘어나는 것과 부산 시민의 삶이 나아지는 것은 과연 같은 일인가. 크루즈관광의 성공을 입항 횟수와 방문객 수만으로 판단한다면 정작 중요한 경제적 가치를 놓칠 수 있다. 이제 부산의 크루즈관광은 양적 성장의 성과를 넘어 질적 성장의 실효성을 검증해야 할 시점이다. 숫자는 성장하지만, 지역경제의 체감 효과는 별개의 문제다. 크루즈관광은 일반적인 숙박형 관광과 구조가 다르다. 관광객들은 선박 안에서 숙박과 식사를 해결하고, 기항지에서는 제한된 시간 동안 관광과 쇼핑을 즐긴다. 선박이 몇 시간 정박하는 동안 수천 명이 부산을 방문하더라도 이들이 실제로 부산 지역 상점과 식당에서 얼마를 소비하는지는 별도로 살펴봐야 한다. 관광객 수가 증가했다고 해서 지역경제의 수익도 같은 비율로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관광객이 대형 관광버스를 타고 주요 명소 몇 곳을 둘러본 뒤 다시 선박으로 돌아간다면, 방문객 수는 통계에 잡히지만 동네 식당과 전통시장, 골목상권이 얻는 경제적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관광상품의 구성과 소비 경로에 따라 수익이 일부 대형 사업자에게 집중될 가능성도 있다. 이는 부산 크루즈관광이 실패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관광객 증가라는 기회를 지역경제의 실질적 성장으로 연결하는 장치가 얼마나 잘 마련돼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뜻이다. 앞으로 부산은 방문객 수뿐 아니라 관광객 1인당 지역 내 소비액, 체류시간, 지역 소상공인 매출 기여도, 지역 고용 효과, 재방문 의향 등을 함께 측정해야 한다. 그래야 크루즈관광이 부산에 얼마나 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부산의 매력은 충분하다. 문제는 관광상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부산에는 크루즈관광의 경쟁력이 될 만한 자산이 풍부하다. 해운대와 광안리의 해안 경관,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의 생활문화, 감천문화마을의 독특한 풍경, 한국전쟁의 역사를 간직한 원도심, 부산 특유의 해양문화와 음식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산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관광객이 그 가치를 충분히 경험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관광객이 유명 관광지 몇 곳에서 사진만 남기고 떠나는 것과 부산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고 지역 음식을 맛보며 도시의 이야기를 경험하는 것은 전혀 다른 관광이다. 부산은 관광지를 단순히 연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험을 설계해야 한다. 외국인 관광객이 자갈치시장에서 부산의 해산물 문화를 이해하고, 원도심에서 도시의 역사와 산업 발전을 배우며, 지역 상점에서 부산의 생활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관광 안내와 해설의 품질이 중요하다. 언어를 단순히 번역하는 수준을 넘어 부산의 역사와 문화, 음식의 의미를 외국인의 눈높이에 맞춰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관광객이 도시를 깊이 이해할수록 관광 경험의 만족도와 소비의 폭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결국 관광의 경쟁력은 관광지의 개수보다 그곳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어떤 기억을 가져가는가에 달려 있다. 체류시간을 늘리는 것이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출발점이다. 부산시가 크루즈관광 활성화 전략에서 체류 확대와 재방문 설계를 강조하고, 24시간 크루즈터미널 운영을 기반으로 오버나잇 크루즈 유치에 나선 것은 주목할 만하다. 부산항만공사 역시 기항 중심에서 모항 중심으로 전환하고 1박 2일 체류형 상품을 확대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크루즈관광의 경제적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방향이다. 낮에 잠시 방문하는 관광객보다 밤까지 머무는 관광객에게는 저녁 식사, 야간 관광, 공연과 문화체험, 숙박 전후의 추가 소비 기회가 더 많이 생긴다. 물론 체류시간이 늘어난다고 소비가 자동으로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관광객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콘텐츠, 편리한 교통, 안전한 이동 환경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부산은 광안리 야경과 해변 문화, 원도심 역사 탐방, 지역 미식, 공연과 전시를 결합한 시간대별 관광상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크루즈 입항 시간에 맞춰 시장과 음식점, 문화시설이 연계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관광객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다국어 안내와 교통정보도 제공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관광객을 더 오래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니다. 부산에서 더 많은 가치를 경험하도록 만들고, 그 경험이 지역 소비와 재방문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이다. 크루즈 모항 육성은 관광을 넘어 산업의 문제다. 크루즈관광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부산을 잠시 들르는 기항지에서 출발과 도착이 이뤄지는 모항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모항은 관광객의 승선과 하선뿐 아니라 항공·철도 연계, 숙박, 식음료, 선박 정비, 연료와 식자재 공급, 물류와 전문서비스 등 다양한 산업과 연결된다. 부산에서 출발하는 크루즈가 늘어나면 관광산업의 파급효과가 선박 운항과 관련 서비스 분야로 확대될 수 있다. 다만 모항 육성에는 국제선 연결성, 선사의 운항계획, 안정적인 수요, 터미널 수용능력, 출입국 절차의 효율성 등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시설 확충만으로 경쟁력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부산은 크루즈 선사 유치와 함께 지역기업이 선용품 공급, 관광서비스, 운송, 콘텐츠 제작 등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관광객이 부산에 와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크루즈 산업의 공급망 자체가 부산에서 성장하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모항 전략의 경제적 의미다. 다섯 가지 전환이 필요하다. 부산 크루즈관광이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방문객 중심에서 지역경제 가치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입항 횟수와 관광객 수에 더해 지역 내 소비액, 소상공인 매출 기여도, 체류시간, 재방문율을 함께 공개하고 평가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단체 관광 중심에서 선택형 체험관광으로 확대해야 한다. 부산의 음식, 역사, 해양문화, 전통시장, 예술과 지역 생활을 연결한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관광객이 자신의 관심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낮 중심 기항에서 야간·체류형 관광으로 전환해야 한다. 야간 콘텐츠와 대중교통, 다국어 안내, 안전관리 체계를 함께 구축해 체류 확대가 실제 소비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넷째, 관광 유치에서 산업 생태계 육성으로 발전해야 한다. 지역기업과 선사 간 거래를 확대하고, 부산의 식품·수산물·서비스·문화콘텐츠가 크루즈 산업의 공급망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다섯째, 관광객의 만족을 재방문과 추천으로 연결해야 한다. 크루즈 여행에서 부산을 경험한 관광객이 다음에는 부산에 며칠간 머무는 개별여행객으로 돌아오도록 후속 관광상품과 맞춤형 홍보를 설계해야 한다. 크루즈는 부산을 세계에 알리는 첫 번째 관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전략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부산시와 부산항만공사, 관광업계, 지역 상인, 교통사업자, 문화기관이 함께 성과를 관리해야 한다. 관광객 증가의 혜택이 지역사회에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부산 크루즈관광의 진정한 성공은 배가 떠난 뒤에 결정된다. 크루즈관광은 부산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국제적인 접근성, 해양도시라는 정체성, 풍부한 문화자산을 활용한다면 부산은 동북아 크루즈관광의 주요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크루즈선이 많이 들어온다는 사실만으로 관광도시의 성공을 선언할 수는 없다. 관광객이 부산을 얼마나 깊이 경험했는지, 지역 상권이 얼마나 혜택을 얻었는지, 부산의 기업과 시민에게 어떤 새로운 기회가 생겼는지를 함께 물어야 한다. 크루즈관광의 성패는 배가 몇 척 들어왔느냐가 아니라, 배가 떠난 뒤 부산에 무엇이 남았느냐로 판단해야 한다. 관광객의 발길이 지역 상권의 매출로 이어지고, 일회성 방문이 재방문으로 연결되며, 관광 수요가 부산의 일자리와 연관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질 때 크루즈관광은 비로소 지속 가능한 산업이 된다. 2030년 관광객 100만 명이라는 목표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부산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는 그 숫자 자체가 아니다. 부산을 찾은 세계인이 다시 방문하고 싶어 하는 도시, 지역기업이 관광산업의 성장에 참여하는 도시, 시민이 관광의 혜택을 체감하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부산의 크루즈관광은 이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는가”에서 “얼마나 큰 가치를 함께 만들었는가”로 질문을 바꿔야 한다.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부산은 단순한 크루즈 기항지를 넘어 세계인이 기억하고 다시 찾는 해양관광도시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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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건물은 세워진다, 도시는 기획된다
[교육연합신문=이상헌 기고] 세계적인 관광도시를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화려한 야경일까, 유명한 축제일까, 아니면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는 랜드마크일까. 물론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세계적인 도시의 경쟁력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다른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은 건물만 보러 도시를 찾지 않는다. 그 도시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계획한다. 그리고 그 경험이 기대 이상일 때, 도시는 관광지를 넘어 목적지가 된다. 부산은 이미 적지 않은 것을 갖추고 있다. 국제적인 축제와 다양한 공연, 해변과 항구가 만들어 내는 독특한 풍경, 역동적인 음식문화가 있다. 부산콘서트홀이 문을 열었고, 2027년에는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도 예정돼 있다. 이제 부산 관광의 과제는 무엇을 더 지을 것인가보다, 이미 가진 자산으로 어떤 도시의 미래를 만들어 낼 것인가에 있다. 세계적인 관광도시는 명소의 숫자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도시를 찾아야 할 이유가 얼마나 분명한가에 따라 완성된다. 파리의 문화적 매력은 에펠탑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런던의 관광 경쟁력도 빅벤이나 버킹엄궁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두 도시에는 예술과 공연, 전시와 스포츠, 미식과 일상이 끊임없이 새로운 방문 동기를 만들어 내는 구조가 있다. 관광객은 특정 장소를 방문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신이 여행하는 시기에 그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을 경험하기 위해 움직인다. 여기서 부산이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다. 부산에도 축제는 많고 공연도 열린다. 문제는 행사의 유무가 아니라 개별 행사가 도시 전체의 매력으로 얼마나 연결되는가에 있다. 각각의 축제와 공연이 저마다의 성과를 내는 것과, 그 모든 경험이 ‘부산에 가야 하는 이유’로 축적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관광객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부산을 여행하려는 외국인이 특정 공연을 발견하고, 그 일정에 맞춰 항공편과 숙박을 예약하며, 낮에는 도시를 둘러보고 저녁에는 공연을 관람한다면 공연은 단순한 문화행사가 아니다. 여행을 결정하게 만든 핵심 동기가 된다. 반대로 공연이 열려도 해외에서 정보를 접하기 어렵고, 예약과 관람이 불편하며, 여행 일정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잠재력은 충분히 발휘되기 어렵다. 이 차이가 부산 관광의 다음 단계를 결정할 수 있다. ■ 오페라하우스가 부산의 미래를 대신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2027년 개관을 앞둔 부산오페라하우스는 부산의 문화와 관광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세계적인 수준의 공연을 유치하고, 부산의 예술적 위상을 높이며, 북항을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발전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건축물이 완성되는 순간 세계적인 오페라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공연장은 외관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평가받는다. 어떤 작품을 올리는가, 어떤 예술가를 키우는가, 얼마나 지속적으로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이는가, 시민과 관광객이 얼마나 자주 그곳을 찾는가가 중요하다. 개관 기념 공연이 세계적인 관심을 끄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다음 해, 그다음 시즌에도 사람들이 부산오페라하우스의 공연을 기다리게 만드는 일이다. 한 번의 화려한 개관보다 오랜 시간 축적되는 예술적 신뢰가 도시의 브랜드를 만든다. 또한, 오페라하우스가 독립된 섬처럼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부산콘서트홀과 기존 공연장, 영화제와 지역 축제, 전시공간과 관광업계가 서로의 관객을 연결해야 한다. 클래식 공연을 보러 온 사람이 부산의 다른 문화공간을 찾고, 축제를 즐기러 온 관광객이 다음 공연을 예약하는 순환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부산오페라하우스의 진정한 성공은 그 건물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어오는가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 공간이 부산 전체의 문화적 활력을 얼마나 확장하는가로 평가해야 한다. ■ 축제의 도시에서 ‘문화적 목적지’로 부산은 축제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하는 도시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축제와 공연을 새로운 관점에서 연결해야 하는 도시다. 필요한 것은 행사 목록의 확대가 아니라 도시 전체를 하나의 문화 프로그램처럼 기획하는 발상이다. 봄에는 어떤 예술을 경험할 수 있고, 여름에는 바다와 음악이 어떻게 만나며, 가을에는 영화와 공연이 어떤 분위기를 만들고, 겨울에는 부산에서만 즐길 수 있는 문화적 경험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계절별 축제를 배치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부산을 방문하는 사람이 자신의 관심사와 여행 시기에 따라 도시의 문화를 발견할 수 있도록, 흩어진 프로그램을 하나의 이야기로 편집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해외 관객이 부산의 오페라 공연을 예약하면 인근 전시와 관광 프로그램을 함께 발견할 수 있고, 영화제를 찾은 방문객이 지역 공연과 미식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을 넓힐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다른 행사가 관객을 놓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부산 체류를 함께 풍성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러한 연결은 홍보의 문제인 동시에 산업의 문제다. 공연 기획자와 관광업계, 숙박업계, 지역 상권이 일정과 상품을 함께 설계한다면 문화행사의 효과는 공연장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문화예술은 관광 소비를 이끌고, 관광은 다시 예술의 관객과 재원을 넓히는 관계가 될 수 있다. ■ 세계인의 시선보다 먼저, 관객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세계적인 관광도시를 지향할수록 해외 유명 공연과 국제적인 이벤트에 관심이 쏠리기 쉽다. 그러나 외부의 명성을 빌려오는 것만으로는 도시의 문화적 자립성을 확보할 수 없다. 세계적인 예술단체를 초청하는 일과 함께 부산의 예술가들이 성장하고, 지역의 공연단체가 새로운 작품을 만들며, 부산에서 제작한 콘텐츠가 다른 나라의 무대에 오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세계의 예술이 부산에 도착하는 도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산의 예술이 세계로 나가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시민의 역할도 중요하다. 시민이 일상적으로 공연장을 찾고 축제를 즐기며 지역 예술을 지지할 때 문화 인프라는 비로소 살아 있는 자산이 된다. 관광객만을 위해 만들어진 문화공간은 특정 시기의 방문객에 의존하기 쉽지만,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이용하는 공간은 도시의 문화적 기반을 더 튼튼하게 만든다. 결국 관광객에게 제공하는 경험의 수준은 그 도시가 평소 축적해 온 문화의 수준과 무관하지 않다. 관광객을 위한 특별한 장면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시민이 평소에도 좋은 공연과 예술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 관광객 수를 넘어, 도시의 선택받는 힘으로 관광객 수는 분명 중요한 지표다. 부산이 세계적인 관광도시들과 경쟁하려면 방문객 규모를 확대하는 노력도 지속해야 한다. 다만 숫자의 성장만으로 도시의 국제적 위상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부산을 방문한 사람이 왜 이곳을 선택했는지, 여행 중 무엇을 가장 인상 깊게 경험했는지,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 다시 방문할 의향이 있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특히, 공연과 축제가 실제로 숙박 예약과 지역 소비, 재방문으로 이어지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문화행사의 관객 수와 관광객의 만족도, 지역경제에 미친 효과를 함께 분석해야 다음 기획도 정교해질 수 있다. 이제 부산 관광정책에는 관광과 문화예술을 따로 바라보지 않는 관점이 필요하다. 공연장은 문화시설이면서 관광 동기이고, 축제는 시민의 문화행사이면서 도시의 국제적인 홍보 자산이다. 이 둘을 연결하는 능력이 앞으로 부산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 부산은 더 이상 세계적인 관광도시가 되기 위해 무엇인가를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 도시가 아니다. 이미 가진 자산을 어떤 순서와 방식으로 연결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도시다. 오페라하우스의 개관은 그 가능성을 시험할 중요한 기회다. 건물의 완공을 도시의 성취로 끝낼 것인지, 새로운 문화관광 시대의 출발점으로 만들 것인지는 앞으로의 운영과 기획에 달려 있다. ■ 도시는 건축으로 모습을 갖추지만, 기획으로 기억된다. 부산이 지향해야 할 세계적인 관광도시는 명소가 많고 축제가 화려한 도시만이 아니다. 세계인이 부산의 공연을 보기 위해 여행을 계획하고, 축제의 일정에 맞춰 방문하며, 그 경험 때문에 다시 돌아오는 도시다. 부산에는 이미 무대가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무대들을 하나의 도시적 경험으로 연결하는 안목과 실행력이다. 오페라하우스의 불이 켜지는 날, 부산의 관광도 함께 새로운 막을 올릴 수 있어야 한다. 그때 부산은 세계적인 관광도시를 꿈꾸는 데 머물지 않고, 세계인이 찾아올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도시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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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늘봄학교 전면화의 명암
[교육연합신문=박진우 칼럼] 초등 방과 후와 돌봄을 통합한 '늘봄학교'가 전국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초등 1~2학년까지 정착되며 학부모의 양육 부담 완화와 국가 책임 돌봄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기존 돌봄교실의 높은 대기 수요를 흡수하고 다양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해 아이들에게 안전한 일상을 보장하겠다는 정책적 취지는 교육 가족 모두가 깊이 공감하는 바다. 그러나 제도가 현장에 안착해 가는 과정에서 학교가 겪는 공간의 과밀화와 관리 체계의 과부하는 지속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엄중한 과제다. 실제로 교육부가 발표한 「2026년 늘봄학교 추진 현황」에 따르면, 초등 1~2학년으로 대상이 확대된 이후 참여율은 80%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기존의 돌봄 대기 수요를 사실상 해소하는 가시적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양적 성장의 이면에서 나타난 공간 여건의 격차는 여전히 깊은 고민을 안겨준다.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대도시 과밀 지역의 경우 일반 정규 교실을 늘봄과 함께 쓰는 '겸용 교실' 비율이 늘면서 교사의 수업 연구 및 학생 상담 공간이 잠식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반면 농어촌 및 원도심 학교는 전문 강사 수급의 어려움과 방과 후 안전 관리 인력 부족이라는 상반된 난관에 직면해 있다. 학교 담장 안으로 모든 돌봄 수요를 흡수하려는 물리적 집중이 낳은 구조적 한계다. 학교는 통계표 위의 숫자 하나로 환원될 수 없는 배움의 터전이자 아이들의 삶이 자라나는 공간이다. 모든 돌봄과 보육의 책무를 학교라는 단일 기관의 울타리 안에만 가두려 한다면, 교원은 본연의 교수·학습 연구와 학생 지도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고 돌봄 서비스의 질적 도약 또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질 높은 교육'과 '안정적인 공공 돌봄'이 조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학교와 지역사회가 유기적으로 역할을 나누는 패러다임의 확장이 요구된다. 우선, 학교 중심의 돌봄을 넘어선 '지자체 책임형 협력 거버넌스' 확대가 절실하다. 학교 밖 유휴 공공시설, 청소년수련관, 주민자치센터, 도서관 등을 거점형 늘봄센터로 적극 발굴·연계해야 한다. 공간이 부족한 학교의 아이들이 안전하게 이동해 질 높은 예체능 및 놀이 프로그램을 누릴 수 있도록 지자체가 통학 및 공간 운영을 전담하는 '온 마을 돌봄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학교 내 '교육'과 '돌봄'의 운영 체계를 행정적·공간적으로 정교하게 분리해야 한다. 정규 교육과정을 담당하는 교원 조직과 늘봄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늘봄지원실 전담 인력의 업무 경계를 명확히 확립해야 한다. 늘봄전담사 및 관리 인력의 고용 안정성과 전문성을 높이고, 안전 관리와 시설 유지보수, 예산 집행 등의 행정 부담이 일반 교사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제도적 지원을 빈틈없이 갖추어야 한다. 나아가 '양적 수용'을 넘어 아이들의 정서적 쉼을 보장하는 '돌봄 질의 내실화'가 필요하다.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학교에 머무는 아이들에게 단순한 시간 때우기식 프로그램이나 과도한 특별활동을 강요하기보다, 자유 놀이와 쉼, 또래 간의 정서적 교감이 가능한 아동 친화적 쉼터를 조성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종일 이어지는 빽빽한 통제가 아니라 안전 속에서 마음 놓고 숨 쉴 수 있는 편안한 품이다. 국가가 책임지는 돌봄의 완성을 위해서는 학교에만 모든 짐을 지우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자체와 지역사회가 함께 아이들의 성장을 보듬는 성숙한 교육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 박진우 ◇ 교육학 박사 ◇ 부산 칠암초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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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의 왕 김광휘] 2027 대입논술 비법 - 고려대학교 논술
[교육연합신문=김광휘 논술] 고려대학교 논술은 단순히 글을 잘 쓰는 시험이 아니다. 주어진 제시문과 자료를 정확히 읽고, 문제의 요구에 맞게 핵심 개념을 뽑아내며, 그것을 논리적인 답안 구조로 연결하는 시험이다. 김광휘 ‘논술의 왕’식으로 정리하면 고려대 논술의 핵심은 다음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문제의 요구를 먼저 파악하고, 제시문을 요약이 아니라 논거로 바꾸어라.” 수험생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고려대 논술 대비 비법은 다음과 같다. ■ 제시문보다 문제를 먼저 읽어라 논술 답안의 방향은 제시문이 아니라 문제의 명령어에서 결정된다. ‘비교하라’, ‘분석하라’, ‘비판하라’, ‘평가하라’, ‘설명하라’, ‘해결방안을 제시하라’는 지시어에 따라 답안의 구조가 완전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 ‘비교하라’는 문제에서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모두 밝혀야 하고, ‘비판하라’는 문제에서는 대상의 한계나 논리적 약점을 지적해야 한다. ‘해결방안’을 요구하는 문제에서 제시문 요약만 반복하면 좋은 답안이 될 수 없다. ○ 비법 포인트 문제를 읽을 때 명령어에 밑줄을 긋고, 답안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먼저 결정하라. ■ 제시문은 따로 읽지 말고 관계 속에서 읽어라 고려대 논술에서 중요한 것은 제시문 하나하나의 단순 요약이 아니다. 여러 제시문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는지 파악해야 한다. 제시문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관계로 연결된다. ▲같은 문제를 서로 다른 관점에서 설명한다. ▲한 제시문이 다른 제시문의 한계를 보완한다. ▲두 제시문이 서로 대립하는 가치관을 보여준다. ▲하나의 제시문은 원인을, 다른 제시문은 해결 방향을 제시한다. 따라서 제시문을 읽을 때는 “이 글이 무슨 내용인가?”에서 멈추지 말고, “다른 제시문과 어떤 관계인가?”까지 파악해야 한다. ○ 비법 포인트 고려대 논술의 핵심은 제시문 요약이 아니라 제시문 간 상관관계 파악이다. ■ 공통 개념을 뽑아라 여러 제시문과 자료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을 찾아야 답안의 중심이 잡힌다. 예를 들어 자유, 평등, 공정성, 경쟁, 연대, 공동체, 다양성, 책임, 효율성, 인간 존엄, 기술 발전, 사회적 약자, 불평등 같은 개념들이 자주 활용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키워드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제시문 속에서 어떤 가치가 충돌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 예시 ▲자유 vs 평등 ▲경쟁 vs 연대 ▲효율성 vs 공정성 ▲개인의 권리 vs 공동체의 책임 ▲성장 vs 분배 ▲기술 발전 vs 인간성 ▲다양성 vs 사회 통합 ○ 비법 포인트 주제를 외우지 말고, 주제 속에 숨어 있는 가치 대립 구조를 찾아라. ■ 자료는 나열하지 말고 한 문장으로 묶어라 표, 그래프, 통계, 사례 자료가 나올 경우 수험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자료를 하나씩 설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좋은 답안은 자료들을 관통하는 공통 의미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예를 들어 여러 자료가 소득 격차, 교육 기회 차이, 지역 불균형을 보여준다면 다음과 같이 묶을 수 있다. “제시된 자료들은 사회적 불평등과 기회 격차가 여러 영역에서 구조적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자료를 종합해 핵심 문제를 규정해야 이후 원인 분석과 해결방안 제시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 비법 포인트 자료를 설명하지 말고, 자료가 함께 가리키는 사회문제를 찾아라. ■ 제시문은 요약하지 말고 논거로 바꿔라 논술 답안에서 제시문은 단순히 정리하는 대상이 아니다. 자신의 주장이나 판단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해야 한다. ▲나쁜 답안 : 제시문 A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좋은 답안 : 제시문 A가 강조하는 공동체적 연대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문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사회적 협력과 제도적 지원이 함께 필요하다. 이처럼 제시문의 내용을 자신의 논리 안으로 끌어와야 한다. ○ 비법 포인트 “이 제시문은 무엇을 말하는가?”보다 “이 제시문을 내 주장에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생각하라. ■ 답안은 결론부터 설계하라 논술 답안을 처음부터 써 내려가면 논지가 흔들리기 쉽다. 먼저 결론을 정하고, 그 결론을 뒷받침할 근거를 배치해야 한다. 예를 들어 결론이 다음과 같다고 하자. “사회적 불평등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제도적 개선과 공동체적 연대가 함께 필요하다.” 그러면 본론은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불평등의 원인 분석 ▲개인 책임론의 한계 ▲사회적·제도적 해결방안 제시 ○ 비법 포인트 답안은 쓰는 것이 아니라 설계하는 것이다. 결론을 먼저 정하고 본론을 배치하라. ■ 해결방안은 개인·사회·제도 차원으로 구체화하라 해결방안 문제에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와 같은 추상적 표현만 쓰면 설득력이 약하다. 해결방안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효과적인 방식은 세 층위로 나누는 것이다. ▢ 개인 차원 개인은 편견과 고정관념을 줄이고, 타인의 권리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 사회 차원 사회는 공감, 연대, 협력의 문화를 확산하고, 차별과 배제를 줄이는 공론장을 마련해야 한다. ▢ 제도 차원 국가와 제도는 교육,복지,노동,지역 정책 등을 통해 구조적 불평등을 완화해 공정한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 비법 포인트 해결방안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드러나야 한다. ■ 옹호·비판형 문제는 입장을 끝까지 유지하라 특정 주장에 대해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문제가 나오면 입장의 일관성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비판한다고 해놓고 본론에서 옹호 논리를 쓰거나, 결론에서 애매하게 “둘 다중요하다”고 마무리 하면 답안의 힘이 떨어진다. ■ 안정적인 구성은 다음과 같다. ▲ 대상 주장의 핵심 정리 ▲자신의 입장 제시 ▲제시문을 근거로 활용 ▲반대 입장 간단 검토 ▲자신의 결론 재확인 ○ 비법 포인트 어느 입장을 선택했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입장을 끝까지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 반드시 피해야 할 답안 유형 고려대 논술에서 피해야 할 답안은 다음과 같다. ▢ 제시문 요약형 답안 ▲제시문 내용을 반복하지만 자신의 논리로 연결하지 못하는 답안 ▢ 자료 나열형 답안 ▲표와 그래프를 하나씩 설명하지만 공통 의미를 찾지 못하는 답안 ▢ 입장 혼란형 답안 ▲옹호와 비판이 뒤섞여 논지가 흔들리는 답안 ▢ 구호형 답안 ▲ “노력해야 한다”,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만 반복하는 답안 ▢ 배경지식 과시형 답안 ▲ 문제와 직접 관련 없는 이론이나 시사 사례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답안 ○ 비법 포인트 논술은 많이 쓰는 시험이 아니라 정확히 쓰는 시험이다. ■ 실전 답안 기본 공식 고려대 논술 답안은 다음 공식으로 정리할 수 있다. 문제 명령어 확인 → 제시문 핵심 파악 → 공통 개념 추출 → 자료 종합 → 입장 결정→ 근거 배치 → 결론 정리 사회문제 해결형 문항이라면 다음 틀을 활용할 수 있다. 제시된 자료들은 ○○ 문제가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문제의 원인은 ○○에 있으며, 제시문 A는 이를 □□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또한 제시문 B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접근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인식 변화, 사회적 연대, 제도적 개선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옹호·비판형 문항이라면 다음 틀이 안정적이다. 제시된 주장의 핵심은 ○○이다. 나는 이 주장을 옹호한다/비판한다. ▲첫째, 제시문 A는 ○○의 측면에서 이 주장의 타당성/한계를 보여준다. ▲둘째, 제시문 B는 □□의 관점에서 이를 뒷받침한다. 물론 반대 입장에서는 ○○라고 볼 수 있으나, 이는 ○○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다.따라서 이 주장은 옹호/비판되어야 한다. ■ 최종 정리 김광휘 ‘논술의 왕’식 고려대 논술 비법은 결국 다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정확히 읽고, 관계를 파악하고, 구조적으로 써라.고려대 논술은 예상 주제를 맞히는 시험이 아니다. 낯선 제시문과 자료가 나오더라도 문제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핵심 개념을 뽑아내며, 제시문을 자신의 논거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이다. 따라서 수험생은 배경지식 암기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문제 독해, 제시문 분석, 자료 해석, 논거 구성, 답안 구조화 훈련을 반복해야 한다. ● 한 줄 비법 고려대 논술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주어진 자료를 정확히 읽고 논리적으로 연결하는 사람이 이긴다. ▣ 김광휘 ◇ 前현광문리학원 원장 ◇ 前부산종로학원 원장 ◇ 前부산학원 부원장 ◇ 언어영역 문학(창과창) ◇ 언어영역 독해(한샘출판사) ◇ 홀로서기 논술(대학진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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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학생 감소 시대, 특수교육의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
[교육연합신문=신동현 칼럼] 우리나라 학생 수는 계속 줄고 있습니다. 학교마다 빈 교실이 생기고 소규모학교도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흐름과 반대로 빠르게 늘어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바로 특수교육대상자입니다. 「2026 특수교육통계」에 따르면 특수교육대상자는 2022년 10만 3,695명에서 2023년 10만 9,703명, 2024년 11만 5,610명, 2025년 12만 735명, 2026년 12만 4,195명으로 해마다 증가했습니다. 4년 만에 2만 500명, 19.8%가 늘어난 것입니다. 특히 자폐성장애 학생은 같은 기간 1만 7,024명에서 2만 8,798명으로 69.2% 증가했습니다. 학생들이 배우는 곳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2026년 특수교육대상자 가운데 특수학교에서 배우는 학생은 3만 1,993명인 반면, 일반학교 특수학급 학생은 7만 2,784명, 일반학급에서 통합교육을 받는 학생도 1만 9,202명입니다. 전체의 74%가량이 일반학교에서 생활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제 특수교육은 특수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학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특수교육 체계는 이렇게 빠르게 늘고 다양해지는 교육수요를 제대로 감당하고 있을까요? 현행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시행령」 제22조는 특수교육 담당 교원을 특수교육대상자 4명마다 1명씩 배치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네 명이라도 필요한 지원은 전혀 다릅니다. 수업지원만 필요한 학생이 있는가 하면 의사소통, 이동, 신변처리, 행동·감각조절 등에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한 학생도 있습니다. 교사가 한 학생의 위기상황이나 신변처리를 지원하는 동안 다른 학생의 수업이 멈출 수도 있습니다. 결국 교사와 지원인력의 부족은 학생이 받아야 할 교육의 부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수학교를 계속 늘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2022년 192교였던 특수학교는 2026년 199교로 7교 늘어난 데 그쳤습니다. 반면 일반학교 특수학급은 같은 기간 1만 2,712학급에서 1만 5,426학급으로 2,714학급, 21.3% 증가했습니다. 우리는 2017년 서울 강서구에서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싼 일부 주민의 반대 과정에서 장애학생 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학교 설립을 호소했던 일도 경험했습니다. 특수학교가 필요하다고 해서 필요한 지역에 곧바로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닌 현실도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특수학교를 더 짓고 특수학급을 하나씩 늘리는 기존 방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변화한 교육환경에 맞는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의 대안은 학생 감소로 여유 공간이 생기는 일반학교, 특히 소규모학교를 활용한 ‘거점형 특수학급’입니다. 지역의 특수교육 수요와 접근성을 고려해 몇몇 학교를 거점으로 정하고, 일반 특수학급보다 충분한 특수교사와 지원인력을 배치하는 것입니다. 감각조절실·심리안정공간·신변처리시설을 갖추고 행동·의사소통 지원 등 전문적인 기능도 함께 두는 것입니다. 거점의 전문인력이 인근 학교를 찾아가 학생과 교사를 지원하는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을 한 학교에 모으자는 것이 아닙니다. 특수교육의 전문성과 인력을 거점에 모아 여러 학교가 함께 활용하자는 것입니다. 해외에서도 그 가능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영국은 일반학교 안에 ‘SEN Unit’과 ‘Resourced Provision’을 두어 전문적인 인력과 시설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모든 학교가 모든 전문인력과 시설을 각각 갖추기 어렵다면, 일반학교 안에 전문성을 집중하면서 일반교육과 특수교육을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우리도 이제 ‘일반학교냐 특수학교냐’라는 두 가지 선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학급과 순회지원, 일반 특수학급, 거점형 특수학급, 특수학교로 이어지는 촘촘한 지원체계를 만들고 학생 수뿐 아니라 실제 지원요구도에 따라 교사와 지원인력을 배치해야 합니다. 한쪽에서는 학생이 줄어 교실이 비어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특수교육을 받을 공간과 교사, 전문인력이 부족합니다. 이 두 문제를 따로 바라볼 이유가 없습니다. 학생이 줄어드는 학교의 공간과 특수교육의 전문성을 연결하는 것. ‘한 명의 특수교사가 모든 것을 책임지는 특수교육’에서 ‘여러 교사와 전문가, 지역의 학교가 한 아이를 함께 지원하는 특수교육’으로 바꾸는 것. 그곳에서 학생 감소 시대, 우리 특수교육의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 신동현 ◇ 부산 강서초등학교 교장 ◇ 前 부산 장서초등학교 교감 ◇ 前 부산광역시교육청 학교정책과 장학관 ◇ 前 부산광역시교육청 초등교육과 장학관 ◇ 前 부산광역시교육청 정책연구소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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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지구가 보낸 경고장…국가와 교육이 답할 '기후재난'의 골든타임
[교육연합신문=박진우 칼럼] 해마다 지구촌을 강타하는 이상기후는 이제 일시적인 자연현상이 아닌 인류의 일상을 파고드는 복합 재난으로 고착화되었다. 올해만 보더라도 유럽 전역에서는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폭염으로 수만 명의 초과 사망자가 발생했고, 북미와 아시아 곳곳은 기습적인 집중호우로 도시 전체가 침수되는 비극을 겪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기존의 장마 공식은 무너진 지 오래며, 예고 없는 국지성 폭우와 폭염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와 UN이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를 넘어 '지구 열열화(Global Boiling)' 시대가 왔다"고 경고했듯, 기후재난의 발생 빈도와 피해 범위가 매년 가파르게 확산하는 현상에 대해 우리는 엄중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이상기후는 단지 어쩌다 찾아오는 계절적 불운이 아니라 인류와 미래 세대의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국가적 재난이다. 과학자들은 오늘 우리가 겪는 혹독한 더위와 기습 폭우가 앞으로 맞이할 수많은 날 중 ‘가장 온화했던 날’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 브뤼노 라투르가 언급했듯 인류는 이미 '기후적 난민'의 시대에 진입했다. 이러한 시점에서 교육현장의 학사 운영 중 폭우나 폭염이 엄습할 때 단축수업이나 휴업을 안내하고 주의를 당부하는 수준의 임시방편으로는 다가올 미래를 감당할 수 없다. 국가 차원에서 기후위기를 '국가 안보 및 국민 생존'의 문제로 규정하고, 이에 발맞추어 미래 세대를 길러내는 교육의 방향성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학교 현장과 사회가 체감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은 무엇인가. 첫째, 국가 차원의 '기후적응형 학교 인프라 표준화'와 재정 지원이다. 학교 건물 자체의 단열 성능을 극대화하고 옥상 녹화 및 빗물 저류 시설을 의무화하는 '그린 스마트 건축 기준'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폭염 시에도 학생들이 안전하게 신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모듈러형 실내 체육/놀이 공간' 확충을 국가 예산으로 우선 지원해야 한다. 둘째, 체계적인 '기후 데이터 기반 학사운영 예측 시스템' 구축이다. 각 지자체 및 기상청과 연계하여 지역별·학교별 기후 위험도를 실시간 측정하고, 이에 따른 단계별 대응 매뉴얼(체육 수업 전환, 등하교 시간 자율 조정, 온라인 수업 전환 기준 등)이 현장에서 혼선 없이 작동하도록 행정적·법적 근거를 명확히 정비해야 한다. 셋째, 지식 전달을 넘어선 '실천형 기후 안보·생태 교육'으로의 대전환이다. 기후변화 교육을 단순한 환경 과목의 일부가 아니라, 아이들이 생존 역량을 키우고 탄소중립 사회를 이끌어갈 '기후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필수 교육과정으로 재편해야 한다. 학교 내 에너지 소비를 학생들이 직접 측정하고 줄여보는 실천형 프로젝트 교육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중국의 고전 『서경』에는 "사전에 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라는 가르침과 함께, "망한 뒤에 도모하면 이미 늦다"는 경고가 전해진다. 교육의 본질은 우리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마음껏 배우며 미래를 꿈꾸도록 울타리가 되어주는 데 있다. 이상기후라는 엄중한 시대적 경고 앞에서, 국가의 선제적 장기 대책과 교육 현장의 과감한 실천을 통해 국민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든든히 지켜내야 할 때다. ▣ 박진우 ◇ 부산 해빛초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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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028년 부산 세계 디자인 수도 지정의 과제
- [교육연합신문=백경원 기고] 부산이 ‘2028 세계 디자인 수도(World Design Capital·WDC)’로 선정되었다. 지난 10월 영국 런던 바비칸센터에서 열린 제34회 세계디자인총회(WDO General Assembly)에서 부산은 인구 1300만 명의 중국 항저우를 제치고 선정되며, 토리노·서울·헬싱키·케이프타운·멕시코시티·발렌시아에 이어 세계 11번째 디자인 수도로 이름을 올렸다. 부산시는 이번 WDC 지정이 단순히 도시브랜드의 품격을 높이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도시 정체성과 미래 비전을 설계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즉, 디자인을 통해 도시재생·사회통합·환경문제 해결·시민 삶의 질 향상이라는 ‘디자인 행정의 시대’를 여는 계기로 삼겠다는 것이다. ■ 도시환경 재점검이 첫 과제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일은 부산 도시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이다. 그동안 도시의 미관을 해쳐 온 낡은 구조물, 방치된 건물, 불법 광고물 등을 정비해 “없애야 할 것”과 “보존해야 할 것”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특히 원도심 지역의 텅 빈 중형 건물, 폐가·반파된 주택, 들쭉날쭉한 간판 등은 도시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대표적인 요소다. 이번 WDC 지정을 계기로 도시 미관 정비 및 경관 재생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하드웨어적 정비가 마무리되면, 다음 단계는 사람 중심의 공간 조성이다. 시민이 머물고, 걷고, 휴식할 수 있는 쉼터와 문화공간 확보가 부산 디자인의 핵심 가치로 자리 잡아야 한다. ■ 부산의 얼굴, 도시 캐릭터를 살리자 21세기 디자인은 곧 인간을 위한 환경 조성이다.따라서 현대 디자인의 존재 이유는 일부 전문가의 취향이 아니라 시민과의 공감 속에서 완성되는 사회적 가치에 있다. 부산의 고유한 경관과 역사, 문화적 정체성을 살려 도시의 얼굴을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산업화 시대의 잔재인 무분별한 간판, 낡은 구조물, 환경오염 요소들을 과감히 정비하고, 그 자리에 ‘부산다움’을 담은 디자인 아이콘을 세워야 한다. 바다와 산, 항만이 어우러진 부산의 공간적 특징을 시각적으로 통합해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도시 이미지로 발전시켜야 한다. ■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도시디자인 필요 부산은 타 도시에 비해 공공부지가 부족하고 시민문화공간이 제한적이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도시재생과 문화복합공간 확충을 병행해야 하며, 대기질과 수질 등 환경 개선을 포함한 지속가능한 친환경 도시 설계가 절실하다. 또한, 부산시는 해외 선진 도시들의 디자인 행정과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벤치마킹하여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디자인 행정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도시디자인이 단순한 미관 개선 사업이 아닌,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는 산업정책이자 복지정책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 범시민 참여형 ‘리디자인 운동’으로 도시디자인은 행정기관이나 전문가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다. 청소년부터 시니어 세대까지 시민 모두가 모니터 요원으로 참여해, 정기적인 점검과 공론화를 통해 도시의 얼굴을 함께 가꾸는 범시민 디자인 운동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시민과 행정이 함께 만드는 참여형 디자인 거버넌스가 정착될 때 ‘2028 세계 디자인 수도 부산’은 단순한 명칭을 넘어 시민이 주인공이 되는 디자인 도시, 그리고 세계가 주목하는 창의 도시로 성장할 것이다. 결국 디자인 수도의 성공은 선언이나 행사에 달려 있지 않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내가 사는 도시가 아름답다”고 느낄 때, 그때 비로소 부산은 진정한 세계 디자인 수도로 완성될 것이다. ▣ 백경원 교수 ◇ 동아대학교 대학원 조형디자인과 외래교수 ◇ (사)부산국제환경예술제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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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028년 부산 세계 디자인 수도 지정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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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의 심장, 동천을 되살려야 부산이 산다
- [교육연합신문=정광우 기고] ■ 동천, 부산의 잊힌 심장 부산 도심을 관통하는 동천(東川)은 한때 이 도시의 생명줄이었다. 선박과 화물, 사람과 문화가 오가던 그 물길은 부산의 산업화와 함께 숨 쉬는 도시의 심장이었다. 그러나 산업화의 속도는 생태의 숨결을 압도했고, 동천은 매립되고 오염되어 이제 시민의 기억 속에서도 거의 잊혀진 이름이 되었다. 오늘날 부산은 인구감소·도시 쇠퇴라는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그렇다면 부산의 생명력을 되살릴 해법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그 해답이 “동천의 부활”에 있다고 본다. 동천을 살리는 일은 단순한 하천 정비가 아니라 부산의 정체성과 시민의 자존심을 복원하는 일이다. ■ 땜질식 정비에서 시민 중심의 도시혁신으로 부산시는 현재 상류 수질개선과 오수 차단 등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하류 구간의 인위적 해수 유입은 근본적 해결이 아니다. 임시방편적 복원은 또 다른 ‘중복 삽질’로 이어질 뿐이다. 이제는 시민이 중심이 되는 ‘동천 그랜드플랜’이 필요하다. 서울의 청계천이 국가가 주도한 도시재생의 상징이라면, 부산의 동천은 시민과 기술이 함께 만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시하천이 되어야 한다. 부산의 미래는 행정의 계획서가 아니라, 시민의 상상력 속에서 피어난다. ■ 기술·디자인·참여가 융합된 부산형 복원모델 동천 복원은 환경정비사업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기술·디자인·참여민주주의가 결합된 복합혁신 프로젝트이다. 이호기술단(주)은 다년간 축적된 특수정수 및 생물정화 기술, 스마트 모듈형 수질개선시스템, 지하수 순환연계기술을 통해자연형 생태복원과 디지털 수질관리의 융합모델을 제안하고자 한다. IoT 센서망을 활용한 실시간 수질·수위 데이터 관리, AI 기반 자율 수문제어 시스템, 미세조류 기반 친환경 정화기술, 스마트 정화모듈의 단계별 배치, 이러한 기술들이 결합되면, 동천은 더 이상 ‘죽은 물길’이 아니라 도심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스마트 생태하천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 ‘동천코인’-블록체인으로 시민이 함께 만드는 재원 많은 이들이 묻는다. “좋다, 하지만 예산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그러나 의지가 있다면, 기술이 답을 낸다. 부산은 이미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되어 있다. 이 기반 위에 공익형 디지털 토큰 ‘동천코인’을 발행해 시민과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ESG형 크라우드 펀딩 모델을 만들 수 있다. 동천코인은 단순한 기부금이 아니다. 부산의 미래를 시민이 함께 ‘투자’하고, 그 과정과 결과가 블록체인에 투명하게 기록되는 참여형 거버넌스 모델이 될 것이다. 이는 부산이 기술과 공공성을 동시에 실현하는 도시 민주주의의 새로운 실험이 될 것이다. ■ 지산학(地·産·學) 협력과 청년의 참여 동천 복원은 부산의 대학과 지역산업, 그리고 시민사회가 함께 설계해야 한다. ‘지산학(地·産·學)’ 협력체계를 통해 부산대·동아대·동의대 등 지역 대학의 젊은 기술인재와 디자인기업, 공공기관, 시민단체가 함께 동천의 미래를 설계한다면 그 자체가 청년 일자리 창출과 지역혁신 생태계 구축의 모범 사례가 될 것이다. 부산의 젊은 세대가 “부산을 바꾸는 프로젝트”에 열광하게 만들고, 그들의 감성과 기술이 도시의 얼굴을 새롭게 디자인하게 해야 한다. ■ 데이터와 감성이 공존하는 하천 하천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기억과 정서의 공간이다. 동천 복원은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면서 디지털 기술로 새로운 감성을 더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복원된 수변공간에는 시민 예술전시존, 청년 창업존, AR 기반 문화체험 콘텐츠 등을 배치하여 ‘기억의 강’이자 ‘혁신의 강’으로 재탄생시켜야 한다. ■ 부산시의회가 시민의 뜻을 모을 때 동천 복원은 단순한 행정사업이 아니라 의지의 과제다. 부산시의회가 정책적 리더십을 발휘하고, 부산시가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시민사회와 기업, 대학이 함께 나설 때 동천은 다시 흐를 수 있다. 시민이 계획하고, 기술이 설계하며, 행정이 실행하는부산형 ‘협치(協治) 복원 모델’의 첫 사례가 될 것이다. ■ 부산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자 부산의 발전은 바다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바다로 흐르는 첫 물길은 언제나 동천이었다. 그 흐름이 멈추면 도시의 생명도 멎는다. 이제 부산은 기술과 사람, 그리고 자연이 함께 만드는지속가능한 생태·경제·문화의 순환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그 출발점이 바로 동천의 부활이다. 부산의 심장은 다시 뛰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부산을 사랑하는 가장 위대한 방식이다. ▣ 정광우 ◇ 이호기술단(주) 회장 ◇ 부산시민연대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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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의 심장, 동천을 되살려야 부산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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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배트는 여전히 무겁다
- [교육연합신문=유정걸 기고] 야구장은 늘 시간표와 닮았다. 1회 초가 종이 울리는 첫 교시라면, 경기 종반은 스탠드 의자가 비어 가는 밤 10시의 마지막 수업이다. 부울경 학원인들이 BAT라는 이름으로 팀을 꾸린 지 꼭 10년, 칠판의 가루를 털던 손으로 미트의 흙먼지를 털었고, 빨간 펜으로 채점하던 집중력으로 스트라이크 존의 모서리를 공략해 왔다. 이른 아침에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학원원장과 강사들이 백여 명에 이르렀고, 그들은 일상을 야구로 설명하고 야구로 버텼다. ■ 공격-수업의 첫 문장처럼, 초구를 간다 공격은 늘 문제 제시다. 수업에서 “오늘 목표”를 칠판 맨 위에 적듯, 타석에 서면 우리는 초구를 어떻게 대할지부터 계획한다. 번트로 출루율을 높일지, 과감히 초구를 당겨 장타를 노릴지. 학원 현장도 같다. 새 단원을 열어 갈 때는 작은 점수가 필요하다. 쉬운 예제로 분위기를 잡는 번트, 기초 개념을 쌓는 희생플라이. 때를 만나면 파생 개념까지 묶어 장타를 뽑는다. 홈으로 뛰어드는 건 학생이지만, 작전표는 벤치가 쥔다. 원장은 반 편성을, 강사는 학습 루틴을 짠다. 그리고 외친다. “오늘은 초구 노린다. 개념의 한가운데를.” ■ 수비-상담은 실점 방지다 수비의 핵심은 첫 플레이를 지키는 일이다. 무심코 흘린 송구 하나가 이닝을 길게 만든다. 학원에서의 상담이 그렇다. “우리 아이가 요즘 집중을 못 한다.”라는 포구를 제대로 받아야 다음 공이 쉬워진다. 데이터를 꺼내고(최근 출결, 과제 수행률, 단원별 정답률), 커버링을 부른다(담임–과목 선생–부모–아이). 실수는 감춘다고 줄지 않는다. 에러를 에러로 적는 용기, 코치의 첫 자격이다. 수비 위치를 한 발 앞당기듯, 상담도 한 주 먼저 잡으면 실점은 줄고 경기 흐름이 바뀐다. ■ 주루-시간표 위의 90피트 주루는 타이밍의 수학이다. 스타트가 0.2초 느리면 세이프가 아웃으로 바뀐다. 강사의 하루도 그렇다. 오후 4시 수업 전에 교재 업데이트 15분, 쉬는 시간 5분 퀴즈 피드백, 수업 후 상담 10분. 이 30분의 주루가 학기 전체의 득점을 만든다. 더그아웃에서 스톱워치를 쥐고 “지금”을 외치는 코치처럼, 우리는 알람으로 시간을 쪼개고, 학원 문을 닫을 때까지 베이스를 훑는다. 가끔은 오버런을 해도 괜찮다. 돌아오는 길에 학생의 질문 하나를 더 챙겨 세이프를 만든다면. ■ 교재연구-스카우팅 리포트의 힘 교재연구는 상대 투수 분석과 똑같다. 어떤 구종이 많은가, 카운트 싸움은 어떻게 하는가. 타자별 핫존을 칠해서 스프레이 차트를 만들 듯, 단원별 오개념 지도를 만든다. “지수법칙을 이유 없이 외우는 학생” “도형 이동에서 기준 좌표를 놓치는 패턴”. 이 리포트를 들고 들어가는 수업은 매 타석이 준비된 스윙이다. 덕분에 우리는 “왜 틀렸는지”를 보여 주는 코칭으로 바꿨다. 정답보다 증거를 말하는 법을 야구가 가르쳤다. ■ 더그아웃-동료라는 이름의 불펜 십 년 사이 가장 큰 변화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평일 오전, 도시락과 물통이 쌓인 더그아웃에서 우리는 학생 상담 사례와 수업 장치를 공유했다. 한쪽 끝에선 아이스팩으로 손목을 식히고, 다른 쪽에선 다음 주 모의고사 해설 포인트를 메모한다. “저 타자는 초구에 약간 뒤늦게 반응해.” 라는 속삭임이, “그 학생은 시작 문제에서 시간을 잃어.”로 바뀐다. 불펜에서 나와 한 타자 승부를 해내듯, 동료의 메모 한 줄이 어떤 날엔 우리 모두를 세이브한다. ■ 일상의 점수표-야구가 바꿔 놓은 것들 그들의 일정표에는 야구장이, 승용차 트렁크에는 공·글러브·배트가 함께 산다. 시즌이 길어질수록 목소리는 낮아지고, 채점은 밤으로 밀린다. 장마엔 경기와 수업이 함께 미뤄지고, 개학·중간고사·파이널은 늘 불펜 가동 주의보다. 그러나 시즌이 끝날 때마다 우리는 알았다. 흙먼지와 땀냄새가 소진을 성취로 바꾸는 냄새라는 걸. 학부모 상담에서 “선생님도 야구하세요?”라는 질문이 나오면, 우리는 미소로 대답한다. “네, 그래서 더 오래 가르칠 수 있다. ■ BAT의 의미-낭만만이 아니라 근거와 품격 BAT는 우리에게 낭만이 있다. 하지만 낭만만으로 버틴 건 아니다. 기록이 있었다. 매 경기의 포지션 변화와 타석 결과처럼, 우리는 학생의 학습 로그를 쌓았다. 서로의 실책을 덮지 않고 공처럼 정확히 주고받으면서, 탓이 아닌 해결의 언어를 익혔다. “누구 탓이냐” 대신 “다음 공은 어디로”를 묻는 습관이 학원에도 스며들었다. 그게 이 리그가 만든 품격이다. 올해도 가을이 왔다. 플레이오프의 긴장과, LED등 아래 교실의 고요가 묘하게 겹친다. 어떤 날은 파울 플라이처럼 아슬아슬하게 잡고, 어떤 날은 몸을 던져 라인을 지킨다. 그리고 가끔은, 스코어보드의 숫자보다 더 큰 승리를 안고 돌아온다. 한 학생의 표정이 바뀌었을 때, 한 문장의 설명이 스스로의 말로 정리됐을 때. 십 년 전, 십여 명의 원장과 강사 몇 명이 작은 공터에 섰다. 첫 배트는 가벼웠고, 첫 스윙은 어색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 우리의 하루는 조금 덜 휘청이고 조금 더 단단해졌다. 야구장에선 여전히 초구가 날아오고, 학원에선 종이 또 울린다. 우리는 오늘도 작전표를 확인한다. 공격·수비·주루, 그리고 가르침. 배트는 여전히 무겁다. 그래서 더 믿음직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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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배트는 여전히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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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와 문제 해결 중심 교실
- [교육연합신문=최일훈 기고] 오늘날 교실의 풍경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단순히 교과서를 따라가며 정해진 문제를 푸는 방식에서 벗어나, 실제 사회 문제를 탐구하고 해결하는 경험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디지털 도구들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정리하고, 다양한 상황을 시뮬레이션으로 제시하며 학생들이 직접 문제 해결에 참여하도록 돕는다. 교실은 암기와 정답 찾기의 공간이 아니라, 탐구와 실험, 협력과 토론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 문제를 구조화하는 AI의 힘 AI가 주는 가장 큰 도움 중 하나는 문제를 구조화해 주는 능력이다. 학생들이 복잡한 과제를 만났을 때, AI는 막연한 문제를 작은 단위로 쪼개어 보여주고 해결의 순서를 안내한다. 예를 들어 환경 수업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방법을 주제로 탐구할 때 AI는 지역별 에너지 사용 데이터를 정리해 시각화하고, 여러 대안을 시뮬레이션으로 비교해 준다. 학생들은 이를 바탕으로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가?”, “이 대안의 한계는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단순한 암기가 아닌 실질적 문제 해결 과정을 경험한다. 이러한 경험은 사회적 주제를 다룰 때도 유용하다. 환경·에너지 문제뿐 아니라 인구 변화, 도시 교통, 기후 위기 등 복잡한 현상은 학생 혼자만의 힘으로는 접근하기 어렵다. 그러나 AI와 함께 데이터를 살펴보고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검토하면서 학생들은 문제를 다각도로 바라보는 힘을 기른다. 이는 단순히 교과 지식을 넘어서, 미래 시민으로서 필요한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시각을 키워 준다. ■ 교과 속에서 살아나는 탐구 수학과 과학 수업에서도 AI의 효과는 뚜렷하다. 복잡한 계산 문제나 대규모 데이터 처리를 AI가 신속히 도와주면 학생들은 계산 과정에 매몰되지 않고 원리와 의미에 집중할 수 있다.예를 들어 수학에서 방대한 통계 자료를 다루거나 과학에서 실험 데이터를 분석할 때, AI가 자료를 정리하고 오류를 검증하는 과정을 지원한다. 학생들은 계산 결과를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이 데이터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결과가 현실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AI는 답을 대신 주는 존재가 아니라, 탐구 과정을 풍부하게 만드는 파트너가 된다. 저는 『디지털 미래 영재학교 인공지능반』을 집필하면서 이 점을 특히 강조했다. AI는 학생들이 직접 탐구하고 협력하는 과정을 건너뛰게 하는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문제를 더 깊고 구체적으로 경험하도록 안내하는 학습 촉매제다. 교사가 교육과정을 분석하고 성취기준을 분명히 세운 상태에서 AI를 수업에 접목할 때, 학생들은 단순히 정답을 맞히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 해결 과정 전체를 경험하며 성장한다. ■ 비판적 사고와 윤리적 감수성 AI를 활용한 문제 해결 수업에도 주의할 점이 있다. AI가 제공하는 데이터와 시뮬레이션 결과는 편향되거나 오류를 포함할 수 있다. 이를 그대로 수용하면 학생들이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들이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태도를 기르도록 지도해야 한다. “이 데이터는 어디서 온 것일까?”,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함으로써, 학생들은 AI의 제안을 검증하는 습관을 익힌다. 이 과정은 단순히 학습 내용의 정확성을 확보하는 것을 넘어,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윤리적 감수성과 정보 활용 역량을 함께 길러 준다. AI와 협력하는 교실에서 학생들은 책임 있는 디지털 시민으로 성장할 준비를 할 수 있다. ■ 성취기준과 연결되는 문제 해결 결국 교실의 중심은 변하지 않는다. 수업의 본질은 언제나 성취기준 달성이며, AI는 이 목표에 다가가는 과정을 더욱 효과적이고 창의적으로 만들어 주는 동반자다. 교사가 성취기준을 기준으로 문제 해결 중심 수업을 설계하고 AI를 적절히 접목할 때, 학생들은 자기 힘으로 사고하고 협력하며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학습자가 된다. 앞으로의 교실은 단순히 많은 지식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해결하느냐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AI와 함께하는 문제 해결 중심 교실은 학생들에게 데이터 분석과 시뮬레이션을 통한 탐구 경험을 제공한다. 그 속에서 학생들은 협력과 토론을 통해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가는 힘을 기르게 된다. 교사가 성취기준을 중심에 두고 AI를 올바르게 활용할 때, 학생들은 단순히 답을 아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문제를 풀어내는 미래형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 ▣ 최일훈 ◇ 부산 명진초등학교 교사 ◇ 2024~2025 디지털기반 교육혁신 선도학교 주무교사 ◇ 2024 디지털기반 교육혁신 교육부 장관 표창 ◇ 2023 정보(SW·AI) 교육 발전 및 활성화 유공 교육부 장관표창 ◇ 2022 개정교육과정 과학교과서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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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와 문제 해결 중심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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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교사의 레시피, 융합의 교실을 빚다
- [교육연합신문=김종훈 기고] 처음 교단에 섰을 때, 나는 늘 ‘무엇을 가르칠까’에 집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함께 배울까’라는 질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교사의 역할은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들의 배움을 설계하고 그 속에서 함께 성장하는 사람이다. 교사는 더 이상 모든 답을 알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배우는 첫 번째 동료여야 한다. 메이커교육은 그 출발점이었다. 아이들이 손으로 만들며 생각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배움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수업은 정해진 답을 찾아가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탐구의 여정이 되었다. 교과의 경계는 자연스럽게 허물어지고, 아이들의 상상은 융합 프로젝트 수업으로 확장되었다. 수학 시간에 배운 원기둥과 원뿔이 과학 시간의 구조물 설계로 이어지고, 그 설계는 미술의 디자인 감각과 실과의 제작 기술로 완성된다. 메이커교육이 점화된 곳에서, 융합교육은 그 불꽃이 퍼져나가는 과정이었다. 특히 ‘약통분의 피자가게’ 프로젝트는 그 변화를 상징하는 수업이었다. 아이들은 분수 개념을 피자 조각으로 시각화하며 놀이를 통해 학습했다. 단위분수라는 추상적 개념이, 자신이 만든 피자 모형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해되었다. 수업은 단순한 수학 활동을 넘어, 창의적 설계와 협업, 공유의 과정으로 확장되었다. 아이들은 게임판의 디자인을 바꾸고 규칙을 다듬으며 완성도를 높였다. 그 결과물은 학교 행사를 넘어 창의융합한마당에서 공유되었고, 실제 상품화 논의로까지 이어졌다. 비록 코로나로 중단되었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의 아이디어가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 경험은 지식보다 큰 배움이었다. 나는 이런 수업을 ‘교사의 레시피’라고 부른다. 요리사가 재료의 온도를 손끝으로 느끼듯, 교사는 아이들의 반응으로 수업의 온도를 조절한다. 같은 재료로도 교사마다 다른 맛이 난다. 어떤 교사는 수학의 논리로, 어떤 교사는 예술의 감성으로, 또 다른 교사는 기술의 언어로 아이들의 배움을 빚는다. 중요한 것은 레시피의 재료가 아니라, 그 안에 녹아 있는 교사의 철학이다. 교사의 철학이 바뀌면 수업의 맛도 달라진다. 완벽한 설계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아이들이 교사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배움의 향기를 느낄 때, 교실은 살아있는 배움의 공간이 된다. 이런 시도는 결코 혼자의 힘으로 가능하지 않았다. 동료 교사들과 아이디어를 나누고, 서로의 수업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과정에서 더 깊은 성찰이 일어났다. 실패의 경험조차 소중한 자산이 되었고, 한 명의 실험이 다른 교사의 도전을 이끌었다. 교사의 성장은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협력과 나눔 속에서 일어난다. 교육의 변화는 제도나 장비보다 먼저, 교사의 철학에서 시작된다. 『디지털미래영재학교 3D프린터반 1』을 집필하며 나는 이 철학을 구체화하고자 했다. 메이커교육은 장비를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배움의 문을 여는 철학이다. 교사가 조금의 용기를 내어 시작할 수 있도록, 친절한 안내서가 되고 싶었다. 교사의 작은 시도가 아이들의 큰 변화를 만든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교사가 한 걸음만 내딛으면, 아이들은 이미 그 너머에서 즐겁게 뛰놀 준비가 되어 있다. 미래 사회의 핵심 역량은 창의성과 협력, 그리고 공감이다. 그러나 그 역량을 길러주는 힘은 여전히 사람에게, 바로 교사에게 있다. 인공지능이 빠르게 교실로 들어오고 있지만, 아이의 눈빛을 읽고 배움의 온도를 조절하는 일은 오직 교사의 몫이다. 교사의 한마디 격려가 아이의 도전이 되고, 교사의 시도가 교육의 혁신이 된다. 작은 교실에서 시작된 한 걸음이 아이들의 상상을 현실로 바꾸고, 그 변화가 세상을 바꾼다. 미래는 먼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오늘, 교사가 먼저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교사의 레시피로 피어나는 융합의 교실, 그 속에서 아이들의 미래는 이미 자라고 있다. ▣ 김종훈 ◇ 부산 명문초등학교 교사 ◇ 2024 올해의 과학교사상 수상 ◇ 2023 교육부지정 지능형 과학실 운영 유공 최우수 장관상 수상 ◇ 2021 인공지능을 이용한 실험 정보 제공 방법 및 이를 이용하는 장치 특허 등록 ◇ 2019 STEAM 교육 UCC 공모대회 최우수 장관상 수상 ◇ 2019 STEAM 교육 유공 교육부 장관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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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교사의 레시피, 융합의 교실을 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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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종교의 자유, 생명평화 문화의 확산이다
- [교육연합신문=김대선 기고] 오늘날 세계는 여전히 종교적 갈등과 정치적 대립, 민족적 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누군가는 이를 “정의로운 전쟁”이라 부르지만, 전쟁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전쟁은 인간성과 생명에 대한 폭력일 뿐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종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종교인은 어디에 서야 하는가?” ■ 종교의 본질은 생명과 평화에 있다 종교는 본래 생명 존중과 평화를 지향하지만, 역사 속에서 종종 교리의 차이를 내세워 배척과 혐오,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종교인들은 다른 길을 선택해 왔다.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상호 존중과 협력을 통해 공존의 길을 걸어왔다. 분단의 아픔 속에서도 한국 종교계는 남북 화해와 평화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서로 다른 교리와 전통에도 불구하고 고통받는 이웃을 돕고 사회의 상처를 치유하는 공동의 과제를 향해 함께 나아간 것이다. 이는 종교 간 연대가 낳은 아름다운 결실이자,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생명평화 실천의 구체적 힘이라 할 수 있다. ■ 종교의 자유, 평화공존의 토대 대한민국 헌법 제20조는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자유는 단지 신앙 선택의 자유를 넘어 종교 간 평등, 상호 존중, 그리고 종교와 공공선의 조화를 포함한다. 종교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될 때, 종교는 사회 갈등의 원인이 아니라 통합과 화해의 동력이 될 수 있다. 한국종교인연대(URI-Korea)는 1999년 5월 15일 창립됐다. “종교로 인한 폭력을 종식시키고, 지구와 모든 생명을 위한 평화와 정의, 치유의 문화를 조성한다”는 선언 아래, 25년간 종교 간 협력과 사회적 실천을 이어왔다. 현재 불교,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천도교, 유교, 민족종교 등 7대 종단이 함께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종교 연대의 모델이다.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넘의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이론에 따르면, 신뢰와 네트워크는 사회 효율성을 높이는 핵심 요소다. 한국종교인연대의 활동은 서로 다른 종교 공동체 간 신뢰와 네트워크를 형성해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 생명평화, 종교의 구체적 실천 한국종교인연대는 지난 25년간 시대정신을 반영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 왔다. 매년 4~5회, 지금까지 126차례의 ‘평화포럼’을 개최하며 종교 간 대화의 장을 열어왔다. 또한 2021년 3월 25일을 ‘생명존중의 날’로 제정하고, 자살 예방과 생명살리기 운동을 펼쳐왔다. 2024년에는 제1회 생명존중상을 제정해 생명존중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이는 종교가 추상적 교리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신앙임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남북 인도적 지원과 평화운동,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 역시 종교의 공공적 책임을 구현하는 실천이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현실 속에서 종교계가 보여준 꾸준한 화해 노력은 한반도 평화 정착의 밑거름이 돼왔다. ■ “종교 간 평화 없이는 세계 평화도 없다” 종교학자 한스 큉은 “종교 간 평화 없이는 세계 평화도 없다(No peace among the nations without peace among the religions)”고 했다. 이는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갈등의 시대에 주는 뼈아픈 경고이자, 평화를 향한 가장 근본적인 제안이다. 한국종교인연대의 25년은 바로 이 명제를 실천으로 입증한 시간이었다. 종교 간 갈등이 폭력으로 이어지는 다른 나라의 현실과 달리, 한국은 종교의 자유와 연대를 바탕으로 평화적 공존의 모델을 만들어왔다. 지금 인류는 기후 위기, 자원 고갈, 인구 소멸, 팬데믹, 불평등 심화 등 전 지구적 위기에 맞닥뜨려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어느 한 종교나 국가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초국가적·초종교적 협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세계 평화는 생명평화에서 출발하며, 생명평화는 종교가 본래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할 때 가능하다. ■ 세계와 함께 걷는 생명평화의 길 앞으로 한국종교인연대는 국내 7대 종단을 넘어 이슬람교, 정교회,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등 다양한 세계 종교와의 교류를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글로벌 차원의 생명평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인류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평화와 공존을 위한 길을 열어가고자 한다. 생명평화, 정의, 치유의 문화는 종교의 본질적 사명이다. 종교는 이를 단지 선언적 언어로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각 종단과 종교인은 삶의 현장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할 의무가 있다. 한국종교인연대의 25년은 종교가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아니라, 평화 구축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였다. 앞으로도 종교 간 대화와 연대의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가 함께 걸어가는 생명평화의 길을 열어가겠다. 종교는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희망의 빛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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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종교의 자유, 생명평화 문화의 확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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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해외취업의 꿈’이 덫이 되는 순간
-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최근 캄보디아 현지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 강제노역 사건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20~30대 청년층으로, SNS나 온라인 구직사이트를 통해 “고액 아르바이트”, “해외 콜센터 정규직 채용” 등의 문구를 보고 현지로 향했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여권을 압수당하고, 숙소에 감금된 채하루 수백 통의 전화를 걸어 한국인을 속이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 전락했다. 그들이 일하는 곳은 ‘회사’가 아니라 폭력과 감시, 협박이 일상인 감금형 콜센터였다. 탈출을 시도하면 폭행을 당하고, 일부는 몸값을 요구받거나 심지어 생명을 잃는 경우도 보고되고 있다. ‘해외취업의 꿈’이 순식간에 지옥의 문으로 바뀌는 현실, 그곳이 바로 캄보디아다. 특히, 이 범죄의 핵심 연결망은 텔레그램이다. 모집부터 이동, 통제, 지시까지 모든 과정이 텔레그램 비밀채팅방에서 이루어진다. 익명성과 암호화 기능을 앞세운 이 앱은 범죄조직에게 완벽한 은신처가 된다. 텔레그램을 통해 피해자를 유인하고, 명령을 내리고, 송금 수단과 계좌를 공유한다. 심지어 피해자의 가족에게 협박 메시지를 보낼 때도 텔레그램이 사용된다. 캄보디아·미얀마·라오스 등지에서 활동하는 보이스피싱 조직은 단순한 전화사기를 넘어선 국제 범죄 네트워크로 진화했다. 이들은 인신매매, 감금, 폭력, 불법 송금, 암호화폐 자금세탁까지 모두 하나의 체계로 엮어 운영한다. 국경을 넘는 범죄이기에 수사망을 피하기 쉽고, 피해자 구출에는 현지 정부와의 긴밀한 공조가 절실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범죄의 출발점이 우리 사회의 청년 실업과 생활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한 달에 500만 원’, ‘숙식 제공’, ‘합법 비자’라는 말 한마디가 절박한 이들에게는 구원의 줄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 끝에는 자유도, 인권도, 희망도 없다. 오로지 범죄조직의 이익을 위해 쓰이고 버려지는 젊은 노동의 잔혹한 착취 구조만이 남는다. 이제 우리는 이 문제를 단순한 ‘해외 보이스피싱’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건 명백한 현대판 노예시장이자,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디지털 인신매매다. 정부는 보다 강력한 외교·수사 공조체계를 가동해야 하며, 특히 텔레그램 등 익명 플랫폼을 이용한 유인·지시 행위에 대한 국제 공조 수사가 시급하다. 한 번의 클릭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 그 클릭 앞에서 지켜야 할 것은 돈이 아니라, 나 자신과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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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해외취업의 꿈’이 덫이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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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반성; 삶을 전혀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중국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고대의 하나라 때, 제후인 유호씨(有扈氏)가 반란을 일으켜 쳐들어왔다. 우임금은 그의 아들 백계(伯啓)를 보냈는데, 전투에서 패하고 말았다. 부하들은 분을 참지 못하고, 다시 공격하자고 했는데, 백계가 진정시킨다. “그럴 필요 없다. 우리 군사가 그들보다 많고, 진지도 더 큰데, 우리가 졌다. 이것은 분명히 내 덕이 그만 못하고, 군사를 움직이는 기술이 그만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내 잘못을 고쳐 나가겠다.” 이때부터 백계는 일찍 일어나 근무 태도를 바꾸고, 능력 위주로 사람을 쓰고, 덕이 높은 사람을 받들었다. 이렇게 하며 1년을 보내자 유호씨가 스스로 와서 투항했다. 『論語』에서 曾子가 매일 세 가지 질문으로 스스로 반성하는 삶을 살았던 것(吾日三省吾身)을 실천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반성으로만 발전이 약속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백계는 어떻게 강해질 수 있었는가? 패배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진실한 반성을 했기 때문이다. 반성은 삶을 전혀 다르게 만든다. 백계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반성을 증명하며 스스로를 단련했다. 지식은 시대의 문제점, 병, 불편한 점을 치료한 결과들이 지적인 장치로 체계화된 것이다. 따라서 지식은 근본적으로 윤리적이다. 그래서 지식인은 원래 시대를 아파하고, 시대의 문제를 발견하는 고뇌와 각성의 태도를 지닌다.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거기에 헌신하면 지적이고, 그렇지 않으면 지적이지 못하다. 시대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공적(公的)이다. 따라서 지식인은 윤리적이고 공적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혼란은 지식인을 제대로 기르지 못한 업보를 겪는 일인지도 모른다. 불의에 저항하는 힘도 없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 찾는 탐욕에 빠져 있다. 그들이 기득권을 만들고 유지하는 한, 우리의 희망은 달성되기 어렵다. 세대교체가 필요하고, 혁명이 필요하다. 교육은 모든 문제로 귀결한다. 교육의 본바탕을 회복하는 일부터 찾아야 한다. 배가 물의 흐름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처럼, 교육이 아무리 제 자리를 잡아도 현실이 교육의 길을 반영해 주어야 한다. 우리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이 질서를 잡아주어야 한다. 특히 ‘말의 질서’가 없는 대표적인 모습이 정치인에게서 보여진다. 대통령 후보로 나오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현충원이다. 어떤 이는 대통령 후보로 나왔으면서도 참배할 대통령과 참배하지 않을 대통령을 구분하여, 특정 대통령 묘소에는 가지 않는다. 이게 통치자의 모습인가? 현충원 참배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 나라를 이끌어 갔다는 것인가? 교육자들이 현장에서 아무리 사람을 길러도 보이는 현실과의 부조화를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것이 ‘두 국민 국가’를 주창하고 있는 우리 정치인의 민낯인가? 많은 분들이 ‘정치가 실패하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정치의 실패가 아니라, 이건, 교육의 실패다.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인식이 없다. 국가를 움직이는 두 톱니바퀴 중에 하나면 얼마나 중요한 건가?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정치’, ‘정치인’에게만 관심을 쏟고 ‘교육’에는 무관심한 우리 국민 모두의 철저한 성찰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성찰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희망이라는 글자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성찰은 새로워지는 일입니다. 동아시아 역사상 최초로 혁명을 일으켜 세상을 바꾼 인물은 탕(湯) 임금이다. 3600년 전, 그는 폭군이었던 하(夏)나라의 마지막 임금 걸(桀)을 쳐부수고 상(商: 일명 殷)나라를 세워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을까? 그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무리를 규합하거나 군대를 양성하여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일이 아니라 놀랍게도 날마다 세수를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일이었다. ‘날마다 새로워지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건만 똑같은 일로 매일 매일을 부딪히다 보니 힘들다가 화도 나고 ‘다 그만둬 버리자’라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苟日新 日日新 又日新)이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고 하지만 삼일 후에 다시 작심삼일을 한다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이어져 꾸준히 지속할 수만 있다면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진실로 날마다 새롭게 하자. 어제의 어려움에 연연하지 말고 항상 새로움을 즐기는 ‘내’가 되자. 퇴계 이황 선생은 그야말로,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의 정신을 놓지 않으려’ 하였다. 선생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설사로 인해 방 안의 요강에서 용변을 보면서, 윗목 한쪽에 놓여있던 분매(盆梅)를 다른 방으로 옮기도록 당부했다고 한다. “매화 형에게 불결할 터이니 내 마음이 편치 못하다.” 이는 역시 부단한 수행 속에서 순결해진 생명 감각으로 매화와 교감하는 한 단면을 영상처럼 보여주지 않는가? 사람들은 매일 샤워를 하면서 몸을 청결하게 관리한다. 더 나아가 얼굴과 몸매를 꾸미는 데 갖가지로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그러나 이처럼 육체적인 생명에는 노력과 정성을 다하면서도, 정작 마음을 곱게 가꾸는 정신 생명의 수양은 소홀히 한다. 옛날의 선비들은 오히려 정신 생명의 향상을 평생의 과제로 여겼다. 찰스 다윈은 “살아남는 것은 강한 종도 우수한 종도 아닌 변화하는 종”이라고 갈파하였다. 이는 지구상에 살아남는 종은 강한 자가 아니라 환경의 변화에 잘 적응한 자라는 것이다. 모든 생물은 진화를 거듭한다.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해야 한다는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 사회에서도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여진다. 개인이나 조직에서 근간을 이루는 요소인 진화의 핵심은 위기를 극복하려는 혁신의 힘이며 이는 스스로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된다. 새로워지는 일을 하는 것은 생존의 터전인 세계가 계속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옛 세포가 새 세포로 새로워지지 않으면 병들거나 죽는다. 세계가 변화하는 것에 따라서 이념이나 가치관도 바뀌지 않으면, 그 이념, 가치관, 세계관의 주인도 도태된다. 바보는 과거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 세계는 변하고 있는데도, 가만히 멈춰 서서, 가는 세상 탓, 남 탓만 하고 있다면, 누가 그에게 행복과 번영을 가져다줄 것인가? 수주대토(守株待兎)는 어떤 착각에 빠져, 되지 않을 일을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의미하는 고사성어다. 이 표현의 유래는 춘추전국시대 송나라의 한 농부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농부는 우연히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은 토끼를 발견하고, 다시 그런 행운이 오기를 바라며 그루터기를 지키며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번째 토끼는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그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경고하는 교훈으로 사용된다. 우리말과 우리글 공부에서도 새로워지는 일이 필요하다. 과거의 방법으로 현재를 풀려고 하면 ‘守株待兎’한 농부처럼 된다. 그런데 바보들은 언제나 다른 결과를 기대하면서도 계속 같은 방법을 쓴다. 한국어는 고유어(순수 우리말), 한자어, 외래어 등으로 구성돼 있다. 예컨대 ‘찬물’과 ‘헤엄’은 순수 우리말이고 ‘냉수’와 ‘수영’은 한자어이며, ‘버스’ ‘컴퓨터’처럼 외국에서 들어온 외래어도 있고 ‘버섯 피자’와 ‘교통카드’ 같이 여러 요소가 섞여 있는 혼종어도 있다. 국가의 3요소 하면 국민, 주권, 영토를 이야기한다. 이 말은 국가라는 의미는 이 3요소 중에서 하나라도 없으면 국가가 아니라는 뜻이다. 한자의 3요소는 허신이 AD 100년에 모양, 음(소리), 뜻으로 규정하였다. 예를 들어 日(해 일)이라는 한자를 보면 모양(日), 뜻(해), 소리(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까지 천자문 식으로 한자 공부를 했다. 따라서 모양만을 익히려고 무조건 읽고 쓰는 것을 반복했다. 한자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뜻을 표현하는데 첫 번째 우선은 소리이고, 다음이 모양(문자)이다. 또한 소리는 뜻과 모양을 연결하는 핵심 매개체인 것이다. ‘해’를 우리는 ‘일’이라고 읽고 배우는데, 일이라는 소리(음가)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억지로 모양을 익히는 학습에서 벗어나 뜻과 소리에 눈을 돌리게 되면 뜻밖에도 우리말의 새로운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日’은 ‘해 일’로 풀이하는데, 이것은 모양과 의미를 고려한 것으로 ‘일’이라는 소리의 의미가 생략된 풀이다. 그러다 보니 ‘日’의 ‘해’가 어떤 해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일’은 ‘일찍, 일어나다, 일하다, 일해라’ 등으로 풀이한다. 일찍은 日直에서 유래한다. 이제는 한자를 ‘하늘 천’, ‘따 지’식으로 무조건 외우지 말고 ‘하늘을 왜 천이라 할까?’, ‘땅을 왜 지라고 할까?’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공부로 바꾸어야 한다. 한자를 이렇게 보기 시작하는 순간 한자는 음을 중심으로 엄정한 체계와 질서를 드러내게 된다. 그래서 ‘天’의 처음 모양을 알고, ‘하늘’을 왜 ‘천’이라고 하는지 우리말을 알아야 한자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다. 한자 역시 음(소리)이 생명이며 한자의 가치와 의미는 음(소리)에 있다. ‘한글은 우리 글자, 한자는 중국 글자’라는 선입견 때문에 우리 글자인 한글을 두고 한자를 배우는 것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 한자와 한글을 잘 알지 못해서 비롯된 편견이며 오해다. 한자는 한글의 뜻풀이 사전이다. 한글은 한자의 도움을 받아야 비로소 그 뜻을 제대로 알 수 있다. 한자와 한글의 결합이 아니면, 우리말과 우리글을 제대로 풀이할 수 없다. ‘비’를 왜? ‘우’라고 하지? 이 한마디의 질문, 이런 공부 과정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기르고, 생각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한다. 모든 변화는 갈등의 흐름이다. 공부 방법의 갈등을 체험하고 길을 찾는 것부터! ◇ 한자한글연구원장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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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반성; 삶을 전혀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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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서지연 부산시의원, “지금은 디지털 재난 상황, 지역의 데이터 주권 확보해야”
- [교육연합신문=서지연 기고] 지난 9월 26일 저녁,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본원 데이터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그로부터 2주가 지난 현재(10월 10일), 복구율은 여전히 20%대에 머물고 있다. 이로 인해 자원봉사 포털, 민원 서비스, 각종 행정서류 발급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된 서비스들이 중단된 상태다.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은 단순한 화재사고의 복구가 아닌 디지털 재난 상황이다. 우리가 외면해 온 디지털 행정의 구조적 취약성이 폭발한 예견된 재난이며, 이제는 국민을 위해 일하던 소중한 생명까지 앗아간 중대한 사회적 비극이 되었다. 정부는 지금까지 복구율 수치만 발표했을 뿐, 어떤 데이터가 유실되었고 무엇이 복구 불가능한지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다. 국민은 자신의 행정 정보가 안전한지조차 알 수 없다. 이것은 단순한 행정 지연이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다. 한 건물의 화재로 대한민국 전체 행정 시스템이 이토록 무너질 수 있다는 현실 속 우리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국가의 정보 인프라는 이중, 삼중의 백업 체계를 갖추는 것이 상식이다. 특히 수사 자료, 안보 정보, 국가 기밀처럼 민감한 정보는 법적으로도 별도 보호 장치가 요구된다. 본 화재로 인해 백업 시스템은 작동했는지, 애초에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위기관리 시스템의 근본적 부실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부가 최근 'AI 국가'를 선언하며 OpenAI 한국 진출을 환영했지만, 정작 AI가 학습하고 활용해야 할 공공 데이터의 무결성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왜곡되거나 결손된 데이터 위에 구축된 AI 서비스는 국민을 오도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허위정보 생성과 여론 조작의 도구가 될 위험마저 있다. 첨단 기술을 논하기 전에 기본 인프라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정보공개청구가 멈췄다. 민원이 처리되지 않는다. 사법 절차에 필요한 수사 자료의 안전성도 불투명하다. 행정이 멈추면 민주주의도 멈춘다. 시민이 정보에 접근할 수 없고 정부가 투명하게 소통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민주 사회라 할 수 없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부산의 데이터까지 대전에서 관리하고 있는가? 이번 사태는 중앙 집중형 정보 구조의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부산만의 통계를 구축하고, 부산 시민의 빅데이터를 자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여전히 한계투성이다. 대전의 한 건물에서 화재가 나면 부산 시민의 민원도 멈추고, 부산의 자원봉사 기록도 사라지고, 부산 기업의 행정 서류도 발급되지 않는다. 지방자치 30주년의 한계가 여전하다. 데이터 주권은 단순한 기술적 이슈가 아니다. 자치와 분권의 핵심이다. 부산이 스스로 부산 시민의 정보를 관리하고, 부산의 미래를 설계할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어야 한다. 중앙에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위기 대응도 느리고, 지역 맞춤형 정책도 불가능하다. 더 나아가 한 곳의 재난이 전국적 마비로 이어지는 위험천만한 구조이다. 진정한 자치분권국가로 나아가려면 데이터 인프라부터 분산되고 독립되어야 한다. 정부는 신속하고 투명한 복구작업과 함께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중앙 집중은 효율성이라는 미명아래 오히려 국가적 재난을 키우고, 현장의 공무원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구조적 취약점이 되었다. 정부는 이번 사건에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지방분권에 보다 박차를 가해야 한다. 부산뿐 아니라 전국의 광역 자치단체들이 각자의 정보 인프라를 구축하고, 상호 백업하는 분산형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 곳의 재난이 전국을 마비시키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이에 정부에 강력히 요구한다. 즉각적이고 투명한 정보공개가 이루어져야 한다. 유실된 데이터의 종류와 규모, 복구 가능 여부와 일정, 민감 정보의 보호 현황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기술 전문가와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독립적 외부 감사가 실시되어야 한다. 백업 시스템 부실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 더하여 근본적 시스템 개선을 마련해야 한다. 데이터 분산 저장 및 다중 백업을 의무화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자체 정보 주권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 핵심 인프라에 대한 상시 점검 체계를 확립하고, 디지털 재난 대응 매뉴얼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진정한 지방분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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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서지연 부산시의원, “지금은 디지털 재난 상황, 지역의 데이터 주권 확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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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광명 부산시의원, "세븐브릿지 투어를 완주하며"
- [교육연합신문=김광명 기고] 지난 청명한 가을날,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열린 '2025 세븐브릿지 투어'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국내·외 3000여 명의 라이더들이 참가한 이번 행사에 저 역시 한 시민이자 시의원으로서 전 구간을 완주하며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세븐브릿지 투어는 부산을 대표하는 77㎞와 33㎞ 두 개의 코스로 구성됐다. 참가자들은 벡스코에 집결해 100명 단위로 광안대교로 이동한 뒤, 정해진 시간에 맞춰 출발했다. 광안대교, 부산항대교, 남항대교, 을숙도대교 등 4개의 해상 교량과 부산항, 낙동강 하구,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코스는 그 자체로 부산의 매력을 집약한 여정이었다. 행사 당일 오전에는 주요 도로가 한시적으로 통제되어 안전하게 행사가 진행됐으며, 교통 불편을 기꺼이 감내해 주신 시민들, 그리고 현장에서 안전을 책임져주신 경찰과 자원봉사자 여러분의 헌신 덕분에 큰 사고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세븐브릿지 투어는 단순한 자전거 대회가 아니다. 이는 부산의 풍광과 국제도시로서의 역동성을 세계에 알리는 문화·관광 브랜드이자, 자전거라는 친환경 교통수단을 통해 건강한 생활 문화를 확산시키는 소중한 계기다. 동시에 시민이 함께 즐기고 화합하는 진정한 ‘시민축제’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행사의 의미가 더욱 커지기 위해서는 시민 여러분의 참여와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참가자로 함께 달리는 것도 좋지만, 가족과 함께 현장에서 응원하거나 자원봉사로 동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축제를 빛낼 수 있다. 내년에는 더 많은 부산시민들께서 함께해 주시길 간곡히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완주를 통해 한 가지 비전도 떠올렸다. 앞으로 세븐브릿지 투어가 부산을 넘어 국내 타 도시, 더 나아가 해외 원정 행사로 이어진다면, 부산은 세계 속에서 더욱 빛나는 스포츠·관광 허브로 성장할 것이다. 부산은 언제나 도전 속에서 성장해 왔고, 시민이 함께할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저 역시 부산시민과 함께 건강하고 활기찬 도시, 세계인이 찾는 매력적인 부산을 만들어 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 김광명 부산시의원 ◇ 부경대학교국제대학원 정치언론학과 석사 ◇ 제9대 부산광역시의회 해양도시안정위원회 ◇ 제8대 부산광역시의회 교육위원회 부위원장 ◇ 제8대 부산광역시의회 운영위원회 위원 ◇ 제8대 부산광역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부위원장 ◇ 제8대 부산광역시의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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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광명 부산시의원, "세븐브릿지 투어를 완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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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 학생 맞춤형 학습의 동반자
- [교육연합신문=최일훈 기고] 오늘날 교실에서 인공지능을 비롯한 디지털 도구의 활용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학생들은 AI가 제공하는 학습 자료를 통해 자기 속도에 맞게 공부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으며 배움에 몰입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디지털이 수업의 본질을 대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취기준 달성이 여전히 교육의 핵심이며, AI는 그 목표를 지원하는 강력한 동반자다. AI가 보여주는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바로 맞춤형 학습이다. 과거에는 진도를 따라가지 못해 뒤처지는 학생이나 너무 쉬워서 흥미를 잃는 학생 모두 같은 교재와 수업 속도를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AI는 학습자의 수준을 빠르게 진단하고, 적절한 난이도의 과제를 제시한다. 학생들은 자신에게 꼭 맞는 학습 루트를 따라가면서 부담은 줄이고, 성취감은 높인다. 교실 속 격차를 줄이는 힘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주도 학습 습관을 기르게 된다. AI가 제공하는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결과를 검토하며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경험은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학습하는 힘을 길러 준다. 교사의 눈길이 미치지 못하는 순간에도 AI는 학습의 파트너가 되어 학생 곁에서 끊임없이 돕는다. 물론, 교사의 역할은 여전히 핵심적이다. AI가 아무리 정밀하게 진단하고 처방을 내린다 해도 성취기준이라는 나침반을 기준으로 수업을 설계하는 것은 교사의 몫이다. AI의 제안이 때로는 과도하거나 적절치 않을 수 있기에 교사는 그 결과를 점검하고 학생의 학습 여정을 조율해야 한다. AI의 활용이 효과적이려면, 교사의 교육적 전문성과 결합될 때 비로소 힘을 발휘한다. 『디지털 미래 영재학교 인공지능반』을 집필하며 이러한 점을 더욱 깊이 고민했다. 책 속에는 AI가 학생들을 위한 개별화 학습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사례와 함께 담았다. 결국 AI는 교사의 자리를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교사가 놓칠 수 있는 부분을 메워주는 학습 동반자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다. 다만 AI를 통한 맞춤형 학습에도 주의할 점이 있다. AI의 답변은 데이터 편향이나 오류를 포함할 수 있으며 학생이 이를 그대로 수용할 경우 잘못된 이해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들에게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태도를 길러주어야 한다. “AI가 말해 준 답이 정답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교사와 친구들과 토론하며 답을 다듬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에 요구되는 비판적 사고와 학습 윤리다. 앞으로의 교실에서 중요한 것은 ‘AI를 얼마나 많이 활용하는가’가 아니다. ‘성취기준을 중심에 두고 AI를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관건이다. 교사가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수업을 설계하고 AI를 학생 맞춤형 학습에 적절히 접목시킬 때, 학생들은 격차를 줄이고 자기주도적 배움을 이어갈 수 있다. AI는 교실에서 새로운 주인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교사의 효과적인 설계와 만나는 그 지점에서, AI는 학생들이 자기만의 속도로 성취기준에 도달하도록 돕는 든든한 학습 동반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어떻게 펼쳐낼지는 교사의 손에 달려 있다. ▣ 최일훈 ◇ 부산 명진초등학교 교사 ◇ 2024~2025 디지털기반 교육혁신 선도학교 주무교사 ◇ 2024 디지털기반 교육혁신 교육부 장관 표창 ◇ 2023 정보(SW·AI) 교육 발전 및 활성화 유공 교육부 장관표창 ◇ 2022 개정교육과정 과학교과서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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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 학생 맞춤형 학습의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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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만드는 즐거움, 나누는 배움
- [교육연합신문=김종훈 기고] 처음 3D프린터 수업을 시작하면 아이들이 가장 먼저 도전하는 것은 자기 이름표다. 단순하지만 세상에 하나뿐인 이름표를 손에 쥐었을 때의 성취감은 크다. 학교 교표를 출력해 상징색으로 색칠하며 학교의 의미를 되새기는 활동도 좋은 계기가 된다. 이렇게 개인적이고 작은 경험에서 출발한 메이킹은 점차 교과와 연결되며 확장된다. 수학의 입체도형 단원에서는 원기둥, 원뿔, 구를 활용한 구조물을 설계하고, 모둠별 협업을 통해 태양의 고도와 방위를 고려한 집을 디자인하기도 한다. 교과와 연계된 활동 속에서 아이들은 지식을 단순히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문제 해결에 적용하며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 메이커교육의 과정에서 실패는 피할 수 없는 손님이다. 종이, 나무, 디지털 도구 등 무엇을 활용하든 예상대로 되지 않는 순간은 있기 마련이다. 출력이 잘 되지 않거나 모델링이 무너지는 경우는 교사인 나조차 매번 겪는다. 그러나 실패는 낙담이 아니라 학습의 일부다. 아이들은 수학 보드게임 「약통분의 피자가게」를 만들면서도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쳤다. 단위분수 개념을 피자 모형으로 구현한 이 게임은, 처음에는 단순한 프로토타입으로 시작했지만 수정과 보완을 거듭하며 완성도를 높여갔다. 실패 없는 성공보다, 수정을 반복하며 얻은 성취가 더 값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경험은 단순한 교구 제작을 넘어, 학습과 놀이가 결합된 창의적 산물이 되었다. 이 보드게임은 학교 축제나 창의융합한마당 행사에서 공유되었고, 실제 상품화까지 추진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아쉽게도 코로나19로 계약은 무산되었지만, 아이들에게는 “우리의 생각이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값진 경험이 되었다. 메이커교육의 또 다른 힘은 바로 협력과 나눔이다. 코로나 시기 비대면 수업이 불가피했을 때, 우리는 오히려 새로운 방식의 협업을 배웠다. 6학년 아이들과 진행한 ‘각기둥과 각뿔로 미래도시 건설하기’ 프로젝트는 100% 온라인으로 이뤄졌다. 팀별 협업 공간을 공유 링크로 열고, 아이들은 디지털 환경에서 함께 모델링을 완성했다. 이 수업은 부산시교육청 수학과 대표 블렌디드 러닝 선도 사례로 기록되었다. 최근에는 ‘화성 거주지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아이들은 모둠별로 아이디어를 나누고 협업해 모델을 완성한 뒤 실제 프린팅까지 진행했다. 그 결과물을 박람회에서 함께 전시했을 때,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작품을 넘어 서로의 상상력을 나누고 연결하는 진정한 공유의 기쁨을 맛보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한 학생이 있다. 새 학급 명단에서 늘 특별히 신경 써야 한다고 표시되던 아이였다. 수업 중에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뜯어내며 부정적인 지적을 자주 받곤 했다. 그러나 메이커교육 속에서 그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3D모델링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며,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친구들에게 기꺼이 나누어주었다. 프로젝트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해 내며 모둠의 중심 역할을 했고, 학급 분위기에도 긍정적 변화를 불러왔다. 결국 그는 발명영재 과정에 진학하며 새로운 길을 열어갔다. 한 아이의 가능성을 깨우는 힘, 그것이 메이커교육의 진정한 가치다. 나는 『디지털미래영재학교 3D프린터반 1』을 집필하면서 이러한 현장의 경험을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도록 담고자 했다. 이름표 출력처럼 단순한 활동에서 출발해 교과 연계 프로젝트, 협업과 공유 경험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단계적 흐름을 안내했다. 무엇보다 교사가 부담 없이 시도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구성한 이유는, 교사의 작은 용기가 아이들의 큰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확신 때문이다. 교사가 문을 열어주면, 아이들은 이미 그 너머에서 즐겁게 뛰놀 준비가 되어 있다. 메이커교육은 기술의 습득을 넘어,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 실패를 성장으로 바꾸며 협력과 나눔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놀이와 배움이 만나는 지점에서 아이들은 창의적 시민으로 성장한다. 지금 우리 교실에 필요한 것은 거창한 결과물이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 시도하고, 나누고, 공유하며 만들어가는 작은 발걸음이 곧 미래를 바꾸는 큰 힘이 될 것이다. ▣ 김종훈 ◇ 부산 명문초등학교 교사 ◇ 2024 올해의 과학교사상 수상 ◇ 2023 교육부지정 지능형 과학실 운영 유공 최우수 장관상 수상 ◇ 2021 인공지능을 이용한 실험 정보 제공 방법 및 이를 이용하는 장치 특허 등록 ◇ 2019 STEAM 교육 UCC 공모대회 최우수 장관상 수상 ◇ 2019 STEAM 교육 유공 교육부 장관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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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만드는 즐거움, 나누는 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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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람을 만들고, 정치를 만드는 교육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이런 교육에서는 이런 정치가 태어나고, 저런 교육에서는 저런 정치인이 생겨난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교육이 기초․기본이라는 말에 다름이 아니다. 배워서 더 나아진 사람들로 채워지는 나라는 부강하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는 갈수록 허약하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국가는 정치와 교육이라는 매커니즘으로 돌아간다. 이런 의미에서 “교육이 국가의 기초다.”라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는 메시지다. “참된 사람이 있고 난 다음에야 참된 지식이 있다(有眞人 而後有眞知)”라는 莊子의 가르침은 사람다움을 가르쳐야 한다는 교육의 기조를 강조한 것이다. 우리도 철학이 중심 학문이 되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철학, 인문학 중심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교육에서 말이다. 변죽만 울리지 말고 교육의 핵심 개념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요즘 나라의 행태를 보면서 갖게 되는 가장 강력한 느낌은 “정치의 실패가 아니라 교육의 실패”라는 생각이다. 외국의 제도를 들여올 때에도 우리의 형편을 따져서 들여와야 한다. 남이 하니까 덩달아서 ‘교육감 직선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폐해가 눈덩이처럼 쌓이는데도 고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일까? 우리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국가와 미래는 안중에도 없고, 자신이 재선, 3선 하겠다는 생각만 있고, 높은 권력을 잡아서 부귀영화를 영원히 누려볼까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국민을 위한다는 말 속에는 ‘국민’이라고 쓰고, ‘오직 당선’이라는 말로 읽힌다. 국민은 선거 기간 동안에만 있는 단어라는 생각마저 든다. ‘국민’, ‘국민’하는 정치인들은 ‘말의 질서’도 없다. 이것은 知的 破倫이다. ‘公約’은 ‘空約’이다. 앞으로 선거에는 홍보물에 ‘空約集’이라고 써야 할 것 같다. 합당한 수고를 하지 않고, 나아지는 일은 없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다. 윤○○ 의원의 ‘국민은 내일, 모레, 1년 후면 또 달라진다.’, 즉 금방 잊어버린다는 말처럼 ‘국민’을 욕되게 하는 것은 국민이 아닌가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든다. 자신들이 어떤 말을 해도 선거 당시만 잘하면 된다는 인격의 발로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일까? 왜 이런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는 나라가 되었을까?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Charles Émard Sartre, 1905년~1980년)의 철학은 “자유와 책임”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스스로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다고 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어떤 아이가 점심시간에 무엇을 먹을지 고를 때를 생각해 보자. 아이는 햄버거를 먹을지, 피자를 먹을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 만약 아이가 햄버거를 선택했을 때, 햄버거가 너무 기름지고 몸에 안 좋을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이처럼 선택은 자유롭지만, 그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다. 사르트르의 철학에서 중요한 또 다른 개념은 “타인과의 관계”이다.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친구가 슬퍼할 때 그 친구를 도와주고,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책임을 지는 것처럼, 우리는 타인에 대해서도 자유롭지만 책임이 따른다. 우리가 타인에게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도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그는 “자유는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때 더 의미가 있다.”고 말한 의미를 우리는 곱씹어야 한다. 우리 교육에 반드시 필요한 용어는 성찰이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병(病)과 문제점, 그리고 불편한 점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의 문제점 중의 하나는 어떤 상황이 일어나면 현장을 보지 않고, 외국에서 수입한 이론과 지식에 의해서 살피거나 외국의 사례에 근거하여 판단을 하는 어른들의 토론이 생중계되기도 한다. 우리와 외국은 세계가 다르다. 다름을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해야 할 일인가? 우리의 운명은 ‘생각을 스스로 하는 사람이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모든 철학은 그 시대에 해결해야 할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높고, 가장 치명적인,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 공동체가 존속하기 어려운 그런 문제와의 투쟁으로 나온다. 즉 추상 능력이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다룰 수 있는 능력이다. 남들이 만들 때는 머릿속에 없는 것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낸다. 그런데 따라 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없는, 머릿속에 있는 것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이 매커니즘(어떤 대상의 작동 원리나 구조)은 경험하지 못한다. 그냥 구체적으로 만들어진 것만 받아서 쓴다. 그러니까 보이고 만져지는 것만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여지고 만들어지는 것을 만들어내는 원리적인 것은 경험되지 않는다. 힘은 보여지고 만져지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있다. 여기에 우리 교육의 함정이 들어 있다. 일일삼성(一日三省) 혹은 삼성오신(三省吾身)은 하루에 세 가지 일을 살피고 반성한다는 뜻으로 공자의 가르침을 맹자로 이어주는 제자인 증자(曾子: BC 506∼BC 436)의 말이다. 《논어(論語)》〈학이편(學而篇)〉에서, 증자는 “나는 매일 내 몸을 세 번 살핀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도모하는데 충실하지 않았는지, 벗과 함께 사귀는데 신의를 잃지 않았는지, 스승에게 배운 것을 익히지 못하지는 않았는지,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라고 했다. 이 말씀은 《논어》(학이편)의 첫 단락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하랴.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랴.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느가, 學而時習之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라는 말을 재해석하고 확장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일상에서의 수양이고, 개인의 수양론이라고도 말할 수 있으나, 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도가 여기에서 멀리 있지 않은 것이다. ‘유학, 유교, 유도’(儒學, 儒敎, 儒道)가 고리타분하고 전근대적인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으나, 문명화된 현대인이 이 정도의 자기 관리를 할 수만 있다면 우리나라의 많은 문제가 해결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교육 지도자들이 고전을 많이 가까이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니면 책꽂이에 꽂아두고 곱씹어 보는 일은 바래서는 안 되는 일일까? 국민의힘 남양주 당협위원장이 대중 앞에서 ‘정동영, 개○○’라는 표현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지도자는 시대의 병을 함께 아파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 사람을 나라의 병을 만들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논어》의 가르침이 낡고 유효기간이 상실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심성이 그만큼 비천(卑賤)해짐으로써 그것이 본래의 위치보다 더 ‘고원’(高遠)해지고, 그것을 현대인은 이솝의 신포도처럼 ‘시어서 먹을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만 것이라고 보는 편이 더 사실에 가까운 일은 아닐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배운다. 숟가락 드는 법부터 밥 먹는 것도 배워야 한다. 말하는 것도 배운다. 걷는 것도 배운다. 모든 과정이 배우는 과정이다. 배우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삶은 배움이고 앎의 운동이다. 즉 생명이란 앎을 향한 운동이다. 왜 배우는가? 자기한테 아직 갖춰지지 않은 것이 많기 때문이다. 배운다는 것은 자기에게 아직 갖춰지지 않은 것을 갖춰가는 과정을 말한다. 왜 우리는 우리에게 갖춰지지 않은 것을 갖추려고 하는가? 왜 그런가? 하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식은 문제를 해결한 결과들이다. 세상의 문제를 치료하고 풀기 때문에 공적이고 윤리적인 것이다. 제대로 된 지식인이란? 시대를 아파하고, 느껴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도 치료하고 시대도 치료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을 ‘인재’라고 하는 것이다. 교육 지도자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너는 과연 누구냐?’,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라는 물음을 교육과정에 편성하는 일보다는 선거 주민을 만나는 것이 더 급한 일일 수도 있다? 지금 ‘문해력’의 문제가 회자되고 있다. 문해력이 급선무라고 떠드는 사람만 있고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나서는 사람을 보지 못하고 있다. 나만 너무 예민한 것일까?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는 소크라테스(Socrates)의 명언이 귓전을 맴돈다. 이 말은 단순히 살아가는 것을 넘어, 자신을 돌아보고 질문하며 의미를 찾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우리는 왜 살고 있는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함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삶의 가를 지닌 인재를 키워가야 할 것 아닌가?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깊이 있는 자기 탐구를 통해 지혜를 얻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라고 격려하고 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유명한 경구처럼, 그는 대화를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고 진리를 탐구하도록 이끌었다. 그의 철학은 질문과 성찰을 통해 지혜를 추구하는 방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성찰’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들어보면 ‘성찰’하지 않은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성찰이 무엇이며, 자신은 어떻게 하였는데,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서로 묻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조금 더 나아지는 자기를 발견하는 교육 과정을 만드는 길은 없는지? 알고도 안 하는지? 못 하는지? 교육에서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서로 소통하여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길을 찾는 길을 연구하는 시간은 필요 없는 것일까? 물음은 제대로 된 나라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다. ‘교육이 국가다’라는 비전을 내면으로부터 솟아나는 물음으로 바꾸는 사유가 필요하다. ◇ 한자한글연구원장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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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람을 만들고, 정치를 만드는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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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디지털 도구, 학습의 날개가 되다
- [교육연합신문=최일훈 기고] 오늘날 교실은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칠판과 교과서가 중심이던 수업은 이제 인공지능, 생성형 AI, 3D 프린터와 같은 디지털 도구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보조 교구’의 차원을 넘어 교실의 문화를 바꾸고, 학생들에게 새로운 배움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짚어야 할 점은, 디지털이 수업의 본질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수업의 본질은 언제나 성취기준 달성에 있으며, 디지털 도구는 그 목표를 더 깊고 넓게 확장하는 강력한 ‘날개’가 되어야 한다. 실제 현장에서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면 학생들의 반응은 놀랍다. 인공지능 기반 학습 도구는 수준과 속도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맞춤형 학습 경로를 제시한다. 덕분에 학습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던 학생, 반대로 너무 쉬워 흥미를 잃던 학생 모두 자기 맞춤형 학습을 이어갈 수 있다. 생성형 AI는 학생들의 질문에 빠르게 대응하며 탐구의 폭을 넓혀준다. 학생들은 단순히 답을 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질문을 설계하고 AI의 답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한 단계 더 깊은 사고로 나아간다. 3D 프린터는 상상을 눈앞의 실물로 구현하며 배움을 지식 습득 이상의 경험으로 확장한다. 아이들은 놀이와 도전이 결합된 활동 속에서 자발적으로 몰입하고, 친구들과 협력하며 학습을 즐긴다. 제가 집필한 『디지털 미래 영재학교 인공지능반·생성형AI반·3D프린트반』에서 강조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교사들이 디지털 도구 활용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잘 모르면 학생들에게 해줄 수 없다”는 두려움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본 안내만으로도 학생들은 금세 자기 생각을 구현해내며, 오히려 교사보다 더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지식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도전하려는 교사의 용기다. 교사가 문을 열어주면, 학생들은 이미 그 너머에서 즐겁게 뛰놀 준비가 되어 있다. 디지털 도구 활용에는 반드시 고려해야 할 과제도 따른다. AI가 제공하는 정보는 편향과 오류의 가능성을 지니며, 무비판적 수용은 학습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 또한 도구의 오·남용은 학습 태도와 가치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디지털의 가치를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교사의 전문성과 윤리적 지도가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가 된다. 학생들이 연령에 맞는 방식으로 도구를 사용하고,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며, 정직한 태도로 기술을 활용할 때 비로소 디지털은 학습의 자산이 된다. 교사의 지도는 단순한 기술 교육을 넘어, 학생들이 미래 사회의 책임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다. 결국 수업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교사의 설계, 학생과의 상호작용, 그리고 성취기준 달성이 교육의 중심이다. 다만 디지털 도구는 그 과정을 더 쉽고, 더 즐겁고, 더 창의적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앞으로 교실에서 중요한 것은 ‘디지털을 얼마나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이다. 교사가 성취기준을 중심에 두고 올바르게 선택하고 활용할 때, 디지털 도구는 학습의 질을 한층 끌어올리고 학생들에게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을 길러줄 것이다. 기술은 결코 수업의 주인이 아니지만, 수업을 더 멀리 날게 하는 날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날개를 어떻게 펼치느냐는 결국 교사의 손에 달려 있다. ▣ 최일훈 ◇ 부산 명진초등학교 교사 ◇ 2022 개정교육과정 과학교과서 집필 ◇ 2023 정보(SW,AI) 교육 발전 및 활성화 유공 교육부 장관표창 ◇ 2024~2025 디지털기반 교육혁신 선도학교 주무교사 ◇ 2024 디지털기반 교육혁신 교육부 장관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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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디지털 도구, 학습의 날개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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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상상을 현실로, 교실 속 메이커교육의 힘
- [교육연합신문=김종훈 기고]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 CEO들의 성장기를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공간이 있다. 바로 차고지다. 허름한 차고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스스로 만들며, 수많은 실패를 겪었던 경험이 결국 혁신의 씨앗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 교실 속 무한상상실이야말로 그 차고지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학생들이 자기만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실패와 재도전을 거듭하며, 협력 속에서 배움의 기쁨을 발견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메이커교육은 몇 해 전 우리 교육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전국의 학교에 무한상상실이 조성되고, 3D프린터를 비롯한 다양한 장비가 보급되었다. 그러나 기대만큼 활성화되지는 못했다. 안전과 건강 문제로 장비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여전히 많은 학교에서 먼지를 쌓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메이커교육을 특정 장비 체험으로만 오해하거나, 결과물 중심의 전시 활동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하지만 메이커교육의 가치는 장비 자체가 아니라, 아이들이 상상을 실현하고 실패와 재도전을 경험하며 배우는 그 과정에 있다. 나는 3D프린터를 ‘성취의 덫’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사실 모델링과 프린팅 과정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교사들은 지레 겁을 먹고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 경우가 많다. 진입장벽이 높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반 4학년 학생들과 함께 기초 모델링 수업을 진행해 보면, 불과 두세 시간 만에 자기 상상을 입체적인 작품으로 구현한다. “체육보다 3D 모델링 시간이 더 재미있다”는 말이 아이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쉬는 시간에도 스마트기기로 자기만의 모델링을 이어가며 친구들과 협업하는 모습은 메이커교육이 지닌 힘을 잘 보여준다. 아이들에게 메이킹은 놀이이자 도전이고, 또 하나의 배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커교육은 여전히 많은 교사들에게 ‘낯선 영역’이다. 교과와 별개의 특별 활동으로만 생각하거나, 결과물의 완성도에 지나치게 집착해 시도를 꺼린다. 그러나 본질은 결과물이 아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가며, 실패 속에서 다시 도전하는 그 과정에 있다. 수학 시간에 보드게임을 만들고, 과학 시간에 친환경 제품을 설계하며, 미술 시간에 창의적인 디자인을 시도하는 모든 활동이 메이커교육이다. 교사가 조금만 용기를 내어 시도를 열어주면, 교실은 순식간에 혁신의 차고지로 바뀐다. 나는 『디지털미래영재학교 3D프린터반 1』을 집필하면서 이 지점을 가장 고민했다. 선생님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장벽을 낮추기 위해,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3D 모델링과 프린팅은 결코 거창한 전공 지식이 필요한 영역이 아니다. 기본적인 안내만으로도 학생들은 곧바로 자기 생각을 실현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교사가 부담 없이 수업에 도입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중요한 것은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는 것이다. 교사가 문을 열어주면, 학생들은 이미 그 너머에서 즐겁게 뛰놀 준비가 되어 있다.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은 단순히 정답을 빨리 찾는 능력이 아니다. 상상을 실현하는 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협력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이다. 메이커교육은 바로 이러한 미래 시민의 자질을 키우는 교육이다. 지금 우리 교실에 필요한 것은 완벽한 기계 작동법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시도하고 부딪히려는 용기다. 무한상상실에서의 작은 시도가 결국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고, 나아가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될 것이다. ▣ 김종훈 ◇ 부산 명문초등학교 교사 ◇ 2019 STEAM 교육 유공 교육부 장관 표창 ◇ 2019 STEAM 교육 UCC 공모대회 최우수 장관상 수상 ◇ 2021 인공지능을 이용한 실험 정보 제공 방법 및 이를 이용하는 장치 특허 등록 ◇ 2023 교육부지정 지능형 과학실 운영 유공 최우수 장관상 수상 ◇ 2024 올해의 과학교사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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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상상을 현실로, 교실 속 메이커교육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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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익히고 되새김질하는 고전의 밥상으로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지식이 단순히 인식의 차원에 머물고, 생존의 질과 양을 증가시키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면, 삶 자체가 생명력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 인간은 삶을 영위하면서 객관적인 세계와 직접 접촉하지 못하고, 항상 가치와 이념을 매개로 관계하게 되는데, 세계와 관계할 때 사용하는 자신만의 특정한 가치론적 규정을 莊子는 ‘成心’이라고 표현하고, 인간은 누구나 “자기에게 정해진 마음 즉 편견을 스승처럼 받드는데”, 그것은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큰 오류로서 ‘세계의 진상과 인간을 크게 어그러지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타자에게 마음 쓰는 존재다. 인류는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로, 공감 능력을 타고난다. 타자를 나와 같은 존재로 여기고 서로 협력하는 탁월한 공감력 없이 인류의 집단 성취인 문명은 불가능했다. 요즘 이런 생각에 머문다. 열심히 뭘 하긴 하는데, 가슴 한구석에 ‘늘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자신에 대해 알려고 해야 한다고 동서양 막론하고 성현들은 말한다.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게 맞아, 그렇게 해야지.’라고 주먹을 불끈 쥘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몇 년 전에 한 후배에게 이런 넋두리를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아왔고, 지금도 진행 중인 것 같네.’라고 하니까 ‘형님, 그럼 말씀 하지 마세요. 잘 살아왔고, 잘 살고 계시는 겁니다.’라는 답변에 약간의 치유를 받았지만, 도로아미타불,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그 말이 요즈음 나를 휘감는다. ‘내 생각’과 내가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서로 다른 사람인 것 같다. 말은 그럴듯하게 하면서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는 내가 어리석고 밉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일까? 인간의 본질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러한 시작도 결국에는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에 귀결된다고 믿는다. 모든 것이 배움의 장이다. 왜 그런가? 알지 못하면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무언가를 배워야만 살 수가 있다. 그 아는 만큼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라고 한다. 다시 말해 생각을 또 생각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앎과 생명은 분리되지 않는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아주 거창한 질문인 것 같지만 답은 매우 간단하다. 생명은 앎을 향한 운동이다. 이것 포기하고 외부의 기준에 맞춰버리면 소외의 삶, 인생 자체가 의미도 재미도 사라져 버린다. 이러한 모든 것은 그동안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너무 멀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붙들린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미친다. 요즘 남학생들도 이마에 여드름만 좀 나도 학교가 아니라 마사지 숍을 간다고 한다. 지금은 ‘이런 시대’가 된 것이다. 자기를 위한 투자, 자기 계발, 이렇게 말하지만 실제로 자기를 위한 게 아니라는 거, 정말 헌신적인 삶인 것 같다. ‘헌신적’이란? 자기 자신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오직 타인을 위한 헌신이라는 말이다. 왜 이렇게 남을 위해 애를 쓰는 걸까? 나한테 이로운 건 별로 없고, 오로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내 삶이 그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인정 욕망이라고 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면 스트레스 지수는 훨씬 줄어든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언어가 귀에 못이 박혔는데, 사회적 거리 두기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욕망과의 거리 두기가 더 중요한 시대는 아닌가? 『東醫寶鑑』을 배우면서 몸에 대한 공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삶의 리듬을 잘 타려면 마음을 제어해야 한다고 쓰여 있다. 우리의 감정, 즉 칠정은 항상 널뛰기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일상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걸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삶에서 실천하는 일이다. 자기 감정대로 행동하는 것이 사춘기에나 하는 짓인데, 나는 평생을 사춘기로 살고 싶은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머문다. 사람의 감정은 원숭이 같다고 한다. 원숭이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그래서 원숭이한테 가장 어려운 일이 앉아서 명상하는 일이라고 한다. 『西遊記』를 보면, 손오공도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지만,딱 한 가지, 부동자세로 앉아 있는 것만은 못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다 그렇게 불규칙하고 예측 불가능한 감정을 타고난다고 한다. 그래서 내 감정을 어떻게 제어하는가가 내 일생, 그리고 내가 맺는 관계를 결정하게 되는 거다. 감정은 훈련을 통해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지, 그냥 내버려두었다가는 나를 제멋대로 끌고 다니게 된다. 『東醫寶鑑』에는 유교, 불교, 도교의 사상이 들어가 있는데, 도교는 주로 단전호흡을 통한 정기신(精氣神)의 순환을 통한 양생의 기예를 펼치고 있다. 유학은 오상(五常), 즉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 기준이다. 이 오상에 맞춰서 정치, 경제, 문화 모든 영역이 제도화되고 예법화되어 있다. 그러니까 인간은 누구든 다 인의예지신을 지켜야 한다. 지키면 군자, 못 지키면 소인이 되는 거다. 왜 지키지 못할까? 욕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이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면 수신제가(修身齊家)는 물론이고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는 불가능하다고 성현들은 말한다. 동양에서 고대의 지혜라고 하면 유교, 불교, 도교를 말할 수 있다. 중화문명에서 유교와 도교가 발달했고, 나중에 인도에서 불교가 들어오면서 삼교가 서로 혼용이 된 것이다. 그래서 조선의 선비들은 공부할 때, 삼교회통(三敎會通)을 중시했다. 지금도 이 정도의 기본기는 초등학교에서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본다. 인류 지성사의 기초․기본이기 때문이다. 『논어』 외우고, 『불경』 외우고, 『동의보감』도 외우면 평생 자신이 될 것이다. 그런데 내 아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내가 권위자가 아니어서 그럴까? 고전은 다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 지혜란 본디 중생과 만물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거기에 무슨 자격이나 제한이 있을 수 없다. 누구나 해야 한다. 그걸 누릴 수 있는 권리와 반드시 해야 하는 소명이 동시에 있는 것이다. 더구나 고매한 경전일수록 일용할 양식으로 써야 하다. 고전을 아득한 시공에 모셔두기만 하면 안 된다. 가장 고귀한 것은 일상적이어야 한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빛이 있어야 하고, 공기가 있어야 하고, 물이 있어야 하듯이, 이런 일상적인 것들이 가장 고귀한 것이다. 고전도 마찬가지다. 빛이고 공기고 물인 것이다. 빛과 공기, 물을 이해한 다음에 사는 게 아니다. 지혜도 마찬가지다. 일단 암송한 다음 계속 되새겨야 한다. 자기 몸에 딱 붙여야 한다. 장자(莊子)의 천도(天道)편에 나오는 제(齊)나라 15대 왕 환공(桓公)과 수레바퀴 깎는 장인 윤편(輪扁) 사이의 이야기다. 환공이 대청 위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윤편은 그 앞 정원에서 바퀴를 깎고 있었다. 그는 망치와 끌을 내려놓고 대청으로 올라와 환공에게 물었다. “외람되오나 폐하께서 읽고 계신 책은 무엇을 기록한 것입니까?” “옛 성인의 말씀이다.” “그 성인은 살아계십니까?” “이미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폐하께서 읽고 계신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에 불과합니다.” 환공이 노해서 말했다. “과인이 책을 읽는데 감히 바퀴를 만드는 자가 왈가왈부한단 말인가? 내가 납득하도록 설명하면 모를까 아니면 너는 죽은 목숨이다.” 윤편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가 하는 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바퀴의 구멍을 깎을 때 느슨하게 하면 헐렁해서 빠지고, 빠듯하게 하면 빡빡해서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느슨하지도, 빠듯하지도 않은 것은 손에 익고 마음이 그에 호응하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비록 입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떤 비밀이 거기에는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아들에게도 가르치지 못했고, 아들 역시 저에게 물려받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저는 바퀴를 깎고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전해줄 수 없는 그 무엇과 함께 죽어버렸습니다. 그런즉 폐하께서 읽고 계시는 것은 옛사람이 남긴 찌꺼기일 뿐입니다.” 『繫辭傳上篇』12-2장에 ‘書不盡言(서부진언), 言不盡意(언부진의)’라는 말이 있다. 글은 말을 다할 수 없고, 말은 가슴 속의 표현하고자 하는 뜻을 다 드러낼 수 없다. “조선에는 공자가 들어오면 왜 공자의 조선이 되려고 하지? 조선의 공자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가?”라는 조선 말 신채호 선생께서 하신 말씀을 새겨보자. 『般若心經』에서 관세음의 ‘觀’은 ‘본다.’보다도 ‘보여준다.’는 의미가 강하다고 한다. 세상의 고통스러운 소리들, 그 현실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는 보살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11면의 얼굴을 지닌 보살이 바로 관세음(관자재)보살이라고 한다. 미래에 내다보이는 장래의 상황을 내게 보여준다. 사실을 전한다는 기자는 많아도 이상호 기자처럼 세상의 아픈 소리를 들어야만 기자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숨겨진 소리, 보통 사람들에게 가려져서 안 들리는 소리, 그 소리를 찾아 나선다. 기자는 모름지기 이 시대의 아픔을 대변해야 한다는 사명감 아래 그토록 용감하게 자신을 현장에 던지고 사는 기자는 많지 않다. 세월호 속에 사라진 슬픈 소리도 이상호의 대변이 아니었더라면 이토록 널리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상호는 그러한 삶의 자세 때문에 본인이 항상 아프다. 고통스러운 소리를 들으면 같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상호를 박해하고 그의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가 수없이 고소를 당하면서 얼마나 깊은 시련을 겪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이제야 저도 철이 드는 걸까? 옛말에 ‘생긴 대로 논다, 산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어떻게 생겼을까? 『心經』을 만나,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더 생각하고, 타인의 苦厄을 동감하며, 진리에 대하여 개방적 자세를 유지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공부하고 끊임없이 배우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이제야 살아가야 할 소명을 더 생각하고 생각한다. ◇ 한자한글연구원장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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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익히고 되새김질하는 고전의 밥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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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 보편교육, 이제는 ‘노코드’로 학교 현장에서 실현해야 할 때
- [교육연합신문=김수랑 기고] 전 세계적으로 생성형 AI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교육 현장은 ‘AI 보편교육’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 교육부 역시 2025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초·중·고 전 학년에 AI 및 소프트웨어(SW) 교육을 확대하고, 모든 학생이 디지털 소양을 갖추도록 정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나는 교사들의 목소리는 다소 다르다. “시간은 늘었지만, 학생 수준차가 너무 크다”, “블록코딩만으로는 실생활 문제 해결과 연결이 안 된다”, “코딩 문법에 막혀 창의적인 시도를 못 한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AI 보편교육이 ‘AI 사용법 익히기’ 수준에 머물 위험이 크다. AI 보편교육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학생 모두가 디지털 소양을 갖추고, AI 시대에 필요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이 교육의 핵심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한다. 학생들의 수준 차이가 크고, 블록코딩으로는 실생활 문제 해결과의 연결이 부족하며, 코딩 문법 학습이 진입 장벽으로 작용해 창의적인 시도가 제한되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소프트파워가 개발한 ‘스마트메이커 AI+’는 국산 교육용 노코드 플랫폼으로서, 순수 한글 기반에 완전 노코드 방식이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프로그래밍 문법 학습 없이도 앱, 웹, AI 콘텐츠를 직접 제작할 수 있으며, ChatGPT, Gemini, 네이버 하이퍼클로바X 등 다양한 AI 서비스와도 연동된다. 교과 프로젝트에 즉시 적용 가능한 것이 큰 강점이다. 이미 전국 72개 대학과 1,300여 개 초·중·고교에서 스마트메이커 AI+를 활용하고 있다. 정규 수업뿐 아니라 자유학기제, 창의융합 프로젝트, 방과 후 수업 등 다양한 교육 활동에 적용되며, 교사 연수 역시 2~3일이면 충분해 프로그래밍 비전공 교사도 바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현장에서의 적용 방안은 명확하다. 정규 수업에 통합하고 자유학기제와 정보 과목 실습에 활용한다. 방과 후 활동과 동아리 운영에 투입하며, AI·데이터 활용 프로젝트에도 적극 적용한다. 교육청 주관 공모전과 캠프 프로그램과도 연계할 수 있다. 기대 효과도 크다. 학생들 간 수업 격차를 해소하고, 모두가 동등하게 참여한다. 실생활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산출물을 제작하며, 교사의 수업 부담을 줄인다. 예측 불가능한 오류나 문법 문제 없이 수업을 운영할 수 있어, 농산어촌과 소규모 학교에서도 동일한 품질의 AI 교육을 구현할 수 있다. AI 보편교육은 단순한 도구 사용법 교육이 아니다. 학생이 문제를 정의하고 데이터를 활용해 해법을 설계하고 구현하는 과정이다. 노코드 솔루션은 이러한 교육 철학을 실제 학교 현장에서 실현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다. 교육청과 학교가 이를 적극 도입하고, 교사 연수와 커리큘럼 개발에 연계한다면 AI 보편교육은 선언적 정책이 아닌 현장 혁신으로 완성될 것이다. ▣ ㈜소프트파워 김수랑 대표 ◇ 現 ㈜소프트파워 대표이사 ◇ SW창의교육연구소 소장 ◇ 슬기로운 코딩 교육 위원장 ◇ 미래부 노코드 기반의 앱만드는 강의 초빙교수 ◇ 삼성전자, 하나카드, 포스코 등 대기업 임직원 대상 DX(Digital Tranceformation) 강의 ◇ 카이스트, 서울대대학원, 연세대 등 다수 대학에 노코드 기반의 앱만들기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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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 보편교육, 이제는 ‘노코드’로 학교 현장에서 실현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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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왜? 우리는 독립적이지 못하고 종속적인가?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오늘 아침에도 내 발걸음은 텃밭을 향한다. 몸은 걷기를 바라고 눈을 텃밭의 실태를 보고자 한다. 그래서 아침 시작을 이렇게 하는 것을 나의 ‘계율’로 삼고 지킨다. 기후 변화가 심하다는 말만으로는 폭염과 폭우의 깊고 큰 뜻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타들어 가는 식물의 모습이 폭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고, 산사태로 고통받고 있는 시민의 복구 모습과 씻겨 내려간 농작물의 모습을 보고, 자식 같은 모습이라고 안타까워하는 농민들의 한숨에서 대통령과 지도자, 한 가정의 가장 마음과 몸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늠할 수 있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천재지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 줄 모르는 험난한 일을 자식에게는 이어가게 하고 싶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논밭을 팔아서까지 자녀들을 유학시겼던 것이리라. 흰 와이셔츠에 번지르르한 양복, 파리도 낙상할 정도의 눈부신 구두를 입은 자식의 모습을 그리며 밤낮을 구분하지 않고, 인간의 정성도 중요하지만 천재지변에 따라 성패가 결정되는 하늘 농사를 시키고 싶지 않았던 조부모님, 부모님 마음에 목이 맨다. 눈물이 맺힌다. 조부모님, 부모님의 뜻은 공부도 부모님이 농사일을 하는 것처럼, 실제 현장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보고 대응을 하고, 상황에 따라 조치를 달리하는 삶의 원칙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다가, 책상만을 잡고 사는 삶에서 지금부터 조금씩 세상일이 일어나는 곳을 찾아서 사는 삶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야 공부의 원칙을 깨닫는다. 모든 이론은 현장에서 시작한다.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는 말의 의미가 부모님, 조부모님의 뜻이었으리라. 그런데 요즈음 뉴스를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지도자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정치가를 만난 듯하여 내가 우주의 운행에 참여하고 있다는 책임감과 자부심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새롭게 역사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자가 정치가가 아닐까? 이런 정치가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이, 이런 정치인을 내 시대에 보고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한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것에 행복하다. 정치는 국민의 삶을 바꿀 수 있고, 삶을 바꾸는 것은 국민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며,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는 길을 내는 것이다. 어려운 경제와 민생, 급변하는 세계 경제의 파고 속에서 국익을 구현하고, 경제와 민생을 다시 일으키고 국민의 평안한 삶을 중심에 두는 길이어야 한다. 앞으로 정치가 국민 속으로, 현장 속으로, 국민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닦아야 한다. 그러나 시선이 높이가 높지 않고, 함량의 크기가 작고, 사람의 두께가 굵지 않고, 깊이가 깊지 않으면, 권력의 정점에 이루기 위해서 온갖 권력을 동원하여 사생결단으로 투쟁하고, 상대방을 적대시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에만 의지한다. 그것이 소위 적대적 공존이다. 적대적 공존의 폐해는 항상 상대를 제거하려는 것이 주목적이기 때문에 갈등을 키우는 방식으로 생존을 유지한다. 요즘 우리 정치인 중에는 나라의 부정적인 면만 부각하려고 태어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어쩌면 이 나라는 안중에도 없고, 국회의원 자리만 필요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게 더 문제다.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평안은 안중에도 없다. 오직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일만이 최고의 길이다. 그래서 대정부 질문의 날은 다음 선거를 위한 사생결단의 날이다. 지역 구민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선명성만 부각하고, 논리는 없고, 성깔이 묻어나는 낱말을 계속 반복하는 녹음기 질문을 한다. 문장은 반복되면 각인이 더 잘된다. 그래서 노래도 가사를 반복하는 구절이 자주 등장한다. 부정적인 면만 강조하는 사람들은 현실에 맞서지 않고, 대신 자신이 스스로 성공했으며,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정신 승리’인 ‘내로남불’, ‘부정적 사고’ 등 세상을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길을 간다. 이것이 아Q들이 걷는 실패의 길이다. ‘하고 싶은 공부’와 ‘해야 하는 공부’가 있으면 둘이 충돌하나요? 하고 싶은 것이 강렬하면 그것을 할 때 다가오는 지루함이나 조급함은 디 극복할 수 있다. 체력을 기르고 싶으면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한계의 수고를 견뎌내야 하는 것과 같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야 하는 일은 감내가 된다. 반대로 해야 하는 것만 있고 하고 싶은 것이 없으면 원하는 곳에 도달하기 어렵다. 그래서 간절하게 하고 싶은 것이 먼저다. 그래서 자기를 궁금해하는 자세가 기본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지를 묻는 태도 있는 상태에서 하는 공부가 좋은 공부다. 그것도 없이 그냥 지식만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는 꿈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문제다. 꿈은 내 안에서 솟아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자신을 궁금해하는 물음 던지기를 쉬지 않아야 한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에는 최고 권력자만 있었다. 권력의 정점에 이르러 권력을 누리려는 자만 있었다. 거기에 이르러 국민과 나라를 위해 어떻게 할까 하는 꿈이 없었다. 자신의 꿈이 이루어졌으니 더 이상의 꿈은 없다. 백성을 위해서, 국력을 기르기 위한 일은 내가 임명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는 것이 꿈인 사람은 대통령을 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당선된 뒤로부터는 할 일이 없어진다. 그러면 일은 수석들에게 맡기고, 개나 끌고 다니고, 좋은 안주 찾아, 좋은 술 찾아, 아첨하는 친구 찾아 비교하고 비난하고 이분법적인 사고에 젖어 자기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것이다. 이제는 다음에서 다음으로 꿈을 꾸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제대로 된 꿈 교육이 교육에서 일어져야 꿈을 꾸는 지도자,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행복한 국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꿈은 새로운 질서를 찾아 건너고 건너가는 자인 것이다. 대통령을 꿈꾸는 자는 ‘어떠한 역사를 만들고 싶은가?’라는 꿈을 꾸는 자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나쁜 사람을 나쁜 놈이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좋은 사람을 좋은 놈이라고 말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이제는 훌륭한 사람을 훌륭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갖어야 훌륭한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많은 경우 주요한 사안에 대해 내 마음에 드나 안 드나, 그게 좋은가 나쁜가 같은 기준으로 문제를 판단한다. 전쟁에 대해서도 그렇다. ‘전쟁은 나쁘니까 무조건 피해야 한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전쟁이 피하고 싶다고 피해지나요. 최근 우리 사회에는 전쟁에 관한 온갖 얘기가 오고 가는데, 그 수준이 너무 저열하고 천박해요. 전쟁에 반대하면 ‘종북’이고 찬성하면 ‘전쟁광’이고, 이제는 이런 이분법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본다. 인간이 지금까지 자기 존재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데 전쟁이 어떤 구실을 했는지 알게 되면 좀 더 깊고, 넓고,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국무회의를 국가 경영의 토론 장소로 만들고, 국가 경영의 최고 결정 과정을 진지한 토론을 통해서 결정하고, 책상에서 만든 국민 정책이 국민들에게 현장 변화를 가져오는 정치를 위해서, 장관이 자신의 정책을 국민들의 삶의 현장에서 듣고 수정하는 이런 정책을 펴고 국민에게 알려주는 政治家, 이제까지 보았는가? 보았으면 나에게 말씀해 주소. 대통령은 무엇이 되고,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을 살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우리가 조금만 겸손해도 우러를 수밖에 없는 인물들은 다 직업을 살지 않고 꿈을 살았다. 공자가 곡식의 출납을 맡아보던 위리(委吏)나 가축을 관리하는 승전리(乘田吏)가 되기도 했지만, 공무원이 되는 꿈을 꾼 적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위키백과는 다산 정약용을 문신이자 실학자·저술가·시인· 과학자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가 문신, 저술가, 시인,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꾼 적이 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다산의 꿈은 “나의 낡은 나라를 새 롭게 하겠다(新我之舊邦)”는 것이었다. 이제는 국민들이 답해야 한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 국민들이 해야 할 일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쓰신 ‘나의 소원’이라는 글에는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는 대목이 있다. 이런 나라가 바로 선진국이다. 이미 짜인 판을 벗어나 새로운 판을 짜고, 남이 세운 목표나 모범을 따라가는 데서 벗어나 스스로 목표와 모범이 될 수 있는 나라. 새로운 국무회의 진행, 통치는 남이 하던 것을 ‘따라 하는’ 정치가 아니라 현장에서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어떻게 하면 백성들의 배 두드리고 행복해하는 ‘요순 시대’를 꿈꿔볼까 하는 고민 속에서 싹이 튼다. 우리나라가 선진 국가가 아직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따라 하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 중의 이유다. 선진국이 되려고 하면 ‘따라 하기’에서 ‘먼저 하기’로 나아가야 한다. 생각이 앞서면 앞선 문명을 이루고, 앞선 문명을 이루면 앞선 국가가 되는 것이다. 이제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현재 교육이 생각을 키우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 ‘어떤 인재를 기를 것인가?’ ‘인재란 무엇을 말하는가?’ ‘지식인은 무엇을 말하는가’를 늘 자신에게 묻는 사람이 교육의 책임자가 되는 시대를 꿈꾼다. 생각이 물건을 만들고, 제도를 만든다. 하이데거가 ‘인생은 비교와 잡담 속에 망한다.’고 했다. 비교는 나를 잃어버리는 거고, 잡담은 이미 있는 내용을 이리 붙이고 저리 붙여가며 시간을 보내는 거다. 비교와 잡담을 멈추고 자신을 궁금해하는 기본을 묻는 시간을 많이 갖는 교육, 내가 열리고 가정이 열리고, 나라가 열리고. 미래가 열린다. ◇ 한자한글연구원장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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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왜? 우리는 독립적이지 못하고 종속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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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시나요? '아무거나, 아무 말 대잔치'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친구들과 식사 시간이 가까워져서 식당으로 향하면서 한 친구가 ‘뭘 먹을래?’ ‘오늘은 내가 쏜다.’하며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다시 친구들을 돌아보면서 ‘뭐, 먹을 거야?’ 귀찮다는 듯이 ‘아무거나 먹어.’라고 한 친구가 말하자,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아무거나 먹자’라고 합창을 한다. 우리 민족은 ‘獨唱’은 부끄러워서 하지 않으려고 하고, ‘合唱’은 좋아하는 민족이라서 올림픽 축구에서 하는 ‘떼창’이 세계 축구인들로부터 인기를 얻어 ‘k-culture’로 피어나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 사람으로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고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지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욕과 식욕이 발동되거나 실현될 때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안주, ‘아무거나’를 아시나요? 이 말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현재 심리상태를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요즘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 부딪히면 반응이 직접적으로 바로 나타난다. ‘좋다, 나쁘다, 마음에 든다, 안 든다.’ 이런 반응은 주어진 상황을 자세하게 살피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에 맞으면 좋고, 맞지 않으면 나쁘다고 하는 것이다. 모든 게 귀찮다는 마음의 발로가 아닐까? 생각하는 데에는 힘이 들고, 힘이 드니까 하기가 싫다는 것이다. 생각은 네가 하고, 나는 그저 따라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훌륭한 삶을 보고 따라 사는 것도 의미가 있다. 태어나서 많은 말 중에서 ‘책 읽어라.’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지 않는가? 세상을 살면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많이 회자되기도 하고, 역설적으로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데 하지 않으니까 강조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말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감추기 위해서도 한다. 어느 한쪽 면만을 보려 하는 사람은 반쪽 세상을 보는 것이다.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가 困辱을 치르기도 한다. 상대방 말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말을 모르면 ‘적대적 공존’만 가능한 세상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잘 읽어야 한다. 하늘도 사람도 잘 읽어야 한다. 국가 경영자는 국민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국민의 마음을 읽으려고 하면 국민들이 사용하는 말과 문자의 뜻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나무를 우리는 죽(竹; 대 죽)이라고 읽는다. 여기서 ‘대’라는 말은 무슨 말이고, 죽이라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이며, 자녀를 낳을 때, 대문에 왜 ‘새끼’를 두르는지? 장례식 때, 상주들은 왜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머리에는 ‘새끼’를 두르는지를 알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겨레가 어떤 가치관으로 말과 문자를 만들었는지를 이해하고, 민족 공동체로서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 말로는 민심에 부응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하면서 당선이 되면 민심 따위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뻔뻔하게 구는 것은 왜일까? 당선되기까지 한 말은 ‘아무 말 대 잔치’ 대회에서 ‘아무거나’ 하는 그런 구태의 모습은 아닐까? 국가의 기둥은 국방과 조세이며, 운영 중심축은 정치와 교육이라고 한다. ‘이런 교육’에서는 ‘이런 정치’가 생겨나고 ‘저런 교육’에서는 ‘저런 정치’가 횡횡한다. 교육은 ‘어떤 사람을 키울 것인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공교육’은 신뢰를 잃은 지가 오래며, 교육의 정치화로 ‘교육’에 전념하는 지도자보다는, ‘학생’에게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표’와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치기’에 전심전력하는 교육 행정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문해력 신장 연수’ 한두 시간 하고 사진 찍었다고 문해력이 신장되는가? ‘체험 학습’ 한 번 했다고 체험 학습 가기 전과 후가 달라졌는가? 교육은 나라의 뿌리다. 뿌리가 튼튼해야 나라의 재목으로 자라는 것이다. 지식이 무엇이고 인재란 무엇인지 개념 정의가 학생들의 머리에 그려지지 않는 한, 아무리 ‘창의성’을 강조하는 연수를 한다 해도 공염불이 될 것은 뻔한 이치다. 요즘 장관 후보자 청문회를 보면, 사실과는 상관없이 내 편이니까, 다음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 내 자리를 위해서, 자기의 잘남을 과시하기 위해, 내 마음대로 질러버리는 것이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의 자질이고 품격이라는 생각에 미친다. 물론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다. 그 말은 국가의 정체성, 가치관, 인간관, 세계관 등을 생각해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전 국민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만이 유능하고 자질 있고 교양 있는 국회의원’이라는 것을 홍보하기 위한 자리인가 하는 답답함이 든다. 우리 청소년들과 나라를 위해서는 국민의 질이 높아져야 한다고 믿는다. 이제는 국민의 눈높이를 높여야 한다. 이제는 국가적인 인재가 국회로 모이는 제도를 생각할 때다. 국민들의 높이와는 별 상관이 없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될 수 있도록 일부러 만든 제도라는 사람들이 많다. ‘누구 편’인가에 따라 말하는 내용과 태도가 천양지차다. 요즘 국회의원들의 말에 대한 인식은 진짜로 ‘아무거나’, ‘아무 말 대 잔치’ 전국 대회를 시청하는 것 같다. ‘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국회의원들과는 특별히 관계가 없는 것 같다. 수신(修身)의 첫 번째는 말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왜 몸을 닦는가? 말을 담고 있는 것은 몸이기 때문이다. 말을 들을 때 몸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愛(사랑 애)’라는 글자의 음가는 ‘애’다. ‘아낀다.’는 말이다. 이 말에는 또 ‘사랑한다.’는 의미도 있고, ‘절약한다.’는 의미도 있다. 이 말은 자신만의 가치에 집착해서 자기 마음대로 마음을 지나치게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말을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의 이면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야 후환이 없다. 요즘 청문회에서 후보자의 결점을 밝히는 것을 독립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하는 국회의원의 모습을 보면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바꿔 말하면 그렇게 말함으로써 자신의 흑심을 감추는 교묘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남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지적 태도일 수가 없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왜 저렇게 말을 하지?’,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 거지?’하고 곰곰이 생각하고 자세히 살펴보는 태도를 갖추어야 세계의 주도 국가가 될 수 있다. 주위에서 ‘좋아’, ‘나쁘다’, ‘마음에 든다.’ ‘안 든다.’, ‘너는 안 돼’ 등의 말을 많이 본다. 생각이 없는 사람의 자기표현일 뿐이다. ‘남의 말 따라하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이 말은 철저히 인간 편에서 한 말이다. 강산은 어제도 변했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살아 있는 것은 변화를 겪는다. 생각도 변한다. 세상에 만들어진 모든 물건, 제도, 철학은 생각의 결과로 나온 것이다. 제도는 물건이 생산되어 흐르는 길을 만든다. 그 제도는 생각의 결과다. 공동체의 ‘문제’와 ‘불편함’을 볼 줄 알고 느낄 줄 아는 사람이 지식인이고, 그 문제와 불편함만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와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서 자신만의 길을 걷는 사람이 인재고 지도자다. 인재는 현재의 다음 단계를 꿈꾸고 거기에 몰입하는 사람이다. 『道德經』 제5장에 “말이 많으면 금방 한계에 봉착한다. 중을 지키는 것이 제일이다.”(多言數窮, 不如守中)가 나오는데, 말(言)은 하나의 체계, 하나의 내용으로 지속된다. 즉 ‘하고 싶은 말’이나 ‘하고 있는 말’만 내뿜어질 뿐, 말을 하면서 말하고 있는 다른 내용을 동시에 말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세계의 전체적인 국면을 말로는 포착할 수가 없고, 그런 의미에서 말은 제한적이고 유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말은 얼른 한계를 드러내고 궁색해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자신이 모두 빠진 말도 자신이 모두 들어 있는 말도 없다. 말은 자신의 한쪽 면만을 나타낼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매일 쉼 없이 읽는다. 책도 읽고, 사람도 읽고, 하늘도 읽고, 식물도 읽고, 동물도 읽는다. 즉 책을 읽지 않더라도 자기와 마주치는 모든 세계와 사건을 읽고 또 읽는다. 그래서 산다는 것은 ‘읽기’다. ‘오늘 뭐 할까?’, ‘오늘 점심에 뭘 먹을까?’하고 자신을 읽는 것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학(學)’은 ‘지(知)’여야 하지 않을까? 『論語』「學而」편 제1장, 16장, 그리고 제20편인 「堯曰」편을 보면, ‘知’ 자가 여러 번 나오는데, ‘안다는 것’은 내 안에 담아두려는 것이 아니라, 거듭거듭 삶에서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 『論語』를 20편으로 저술한 것도 『周易』20번째의 괘가 風地觀인 것도, ‘천하는 물론 우리가 대하는 사람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 ‘백성들의 삶이 어떤 줄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잘 보이는 곳에서 ‘보는 것’ 그것이 觀의 첫 번째 의미이지만, ‘본다.’는 것은 잘 보이기 위한 것이므로 ‘보이다.’라는 수동적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그것은 호상적 봄이다. 그래서 ‘본다.’는 말은 ‘읽는다.’는 말을 전제한다. 그래는 ‘안다(知)’는 것은 본 것을 끊임없이 살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지식인에게 중요한 요소는 곰곰이 살피고 생각하는 능력이다. 살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무거나, 아무 말 대 잔치’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思惟)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다.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나, 사유(思惟)하는 존재로서의 나는 누구인가? ‘내가 누구인지? 왜 사는지, 어떻게 사는 게 바르게 사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고, 타고르는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야말로 확실하고 영원한 생명의 경탄’이라 했다. 몽테뉴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찌하면 내게 진정 나다워질 수 있는가를 아는 일’이다 라고 했다. 데카르트, 소크라테스, 타고르, 몽테뉴가 한국에 와서 ‘아무거나’, ‘아무 말 대 잔치’ 이야기를 들으면 뭐라고 할까? 그래서 지금도 나훈아는 ‘테스 형’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생각 없이 무조건 따르겠다는 사회적 현상을 절절하게 표현한 ‘무조건’이라는 노래가 유행했나 보다. 인생은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하는, 즉 자신의 생각을 하나하나 펼쳐나가는 과정이지 않는가? 자신의 인생을 남에게, 남이 생각한 대로 살겠다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들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세계는 한순간도 멈추거나 고정되지 않는다. 한국인이 생겨날 때부터 있었던 ‘아무거나’는 왜 변하지 않을까? 인문적 통찰이란 ‘조짐을 읽는 능력’이다. 그 조짐을 알기 위해 옛날부터 ‘점’을 쳤던 것이다. 말은 ‘말’이다. 즉 ‘끝’을 말한다. 말을 잘하면 끝이 좋고, 말을 잘 못하면 ‘끝’이다. ‘아무거나’, ‘아무 말 대 잔치’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아닌지? ◇ 한자한글연구원장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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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시나요? '아무거나, 아무 말 대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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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時中? ‘만물은 각자 자신의 시간을 산다.’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할 때인가?’,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사람이란 무엇인가?’ ‘사람이란 어떠해야만 하는가?’라는 물음이 요즘 나를 맴돈다. 나이가 들었다는 말일 것이다. 뭔가 인생을 정리할 때인가?라는. 요즘 폭염으로 만물이 고통을 호소한다. 집 근처 텃밭에 생각이 미쳤다. 식물이 바짝 타들어 가고 있었다. 식물은 움직일 수도 없으니 안타까웠다.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텃밭의 크기가 작아서 관정 시설도 없다. 이 식물에게 생명수를 주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수레에 물통을 싣고 냇가로 가고 오기를 6회를 했다. 옛날 같았으면 ‘왜 이런 고생을 하지?’라고 했을 것은 같은데, 타 들어가는 식물이 나에게 ‘時中을 아는가?’라고 하는 것 같았다. 옛날에 어른들이 하는 말이 떠올랐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단다.’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후회된 일 중의 하나가 나는 ‘교원 노릇을 제대로 했을까?’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이 많다. 교재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을까? 교재를 문자적으로만 익히고, 그것이 사회적인 삶과 결부되어서 숙성되지 못한 채 입에서 입으로 전달하기만 했던 것 같다. 특히 우리말의 기원과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교단에 섰던 것이 너무나 아쉽다. 더 나아가 漢字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 없이 교단에 섰던 것이 후회스럽고, 나와 함께 했던 제자들과 동료들에게 부끄러움이 앞선다. 나만 ‘때’가 있는 게 아니라 내 제자들에게도 ‘때’가 있는데, ‘때’를 모르고 ‘때’를 가르친 후회가 엄습한다. 유학의 4대 경서중 하나인 중용(中庸)에 대하여 일반 사람들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가운데에 서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중용은 화살이 과녁에 정확히 꽂힐 때의 적중(的中)과 같이 딱 들어맞음을 의미하는 중(中)과, 떳떳함을 의미하는 용(庸)의 조합으로, 모든 일에 떳떳하게 들어맞는 진리를 뜻한다. 그리고 이 같은 중용의 도(道)를 원리와 상황 등 때에 맞춰 알맞게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을 시중(時中)이라 한다. 초등학생 시절, 모내기 철이 되면 농부들이 자신의 논에 먼저 물을 대기 위해 크게 싸움박질하는 것을 많이 봤다. 당시에는 어른들이 왜 싸움을 하지? 말로 해야지, 어른답지 못하다는 생각만 했었다. 이제 퇴직을 하고 농사를 짓다 보니, 벼농사는 日照量이 벼 생육과 수확량에 비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알고, 역시 ‘때에 맞게 배워야 해’라는 생각이 든다. 孔子의 好學 정신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는 실감이 난다. 품종에 따라 씨뿌리고 김매고 거두고 저장하는 시기도 다 다르다. 중용 제20장에 “혹생이지지 혹학이지지 혹곤이지지 급기지지일야(或生而知之 或學而知之 或困而知之 及其知之 一也)”라는 말씀이 있다. 어떤 사람은 날 때부터 알고, 어떤 사람은 배워서 알고, 어떤 사람은 고난을 통해 알게 되는데 마침내 알았다는 점에서 보면 하나라는 의미다. 공자는 어느 유형에 속할까요? 술이편에 답이 있다. “나는 나면서부터 알았던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그것을 구한 사람이다(子曰 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 자왈 아비생이지지자 호고민이구지자야).”라는 것이다. 공자는 15세에 천명을 궁구(窮究)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학문에 전념하여 50세에 천명을 깨달았습니다. 時習은 時中이어야 한다. 시중은 타이밍(Timing)과 가장 가깝다. 이 세상에 아무리 좋은 말이나 행위도 타이밍을 놓치면 아무런 뜻이 없어진다. 모든 것이 빨라진 시대에 그때 그 상황에 따라 적절히 행동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타임(Time) 자체보다 타이밍(Timing)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결국 시중이란 영혼의 민감성이요 정신의 순발력이기에, 우리 시대에 절실히 요구되는 가장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삶의 지혜이다. 시중은 유학 실천 방법이다. 이는 군자의 중용은 군자로서 시중한다(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라는 대목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선비는 고정된 틀에 얽매이거나 흔들리지 않고 항시 겸손한 마음으로 때에 맞추어 행동해야 한다. 아무리 심오한 학문과 원리를 터득했다 해도 말과 행동이 때에 맞춰 적절히 쓰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낱 머릿속의 지식으로만 머무를 뿐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는 자신만의 시간을 살다 간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시간을 살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비교에 빠지고, 다른 사람이 조금만 잘 나가도, 다른 사람이 조금만 앞서도 속이 터지고, 상대를 비난하는 데 모든 것을 건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앞선 것이 생기면 우쭐대고 집안 자랑, 동문 자랑 등에 우쭐한다. 동물을 보면 막 태어나서 걷는 송아지도 있고, 1년이 다 되어야 걷는 인간도 있다. 老子 『道德經』 8장에 나오는 말이다. ‘動善時’, ‘動善時’라는 말은 때에 맞게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청명이 되면 논밭을 갈고 곡우가 되면 씨앗을 뿌려야 된다. 이때에는 군사를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모두 때에 맞게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환을 보자. 자신의 계절이 지나면 그대로 뒤로 하고 다음의 길, 다음의 때로 간다. 자신의 열매를 뒤로 하고 그저 또 다른 길을 갈 뿐이다. 꽃피는 시기도 천차만별이다. 그래서인지 각자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표현한다. 그래서 자연은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가 보다. 그래서 老子는 인간의 길을 자연의 운행 원칙에서 찾았을까? 봄이 봄 자신의 성취와 정당성에 취해 여름으로 넘어가기를 거부하면, 봄 자신이 반동으로 전락할 뿐 아니라 전체 자연의 진화를 망친다. 그래서 쓰임을 받는 시간도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일찍 취업도 하고, 다른 어떤 사람은 조금 더 늦은 시기에 직장을 잡는다. 늦공부 터졌다는 말도 한다. 모든 식물이 같은 시기에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서로 햇빛을 더 받기 위한 싸움과 질투는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모든 것에 ‘자기만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이 사회와 만물의 삶은 어떤 모습이고,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습관은 時中의 결과다. 시간의 계획적이고 지속적 활용은 습관을 만든다. 습관은 바로 그 사람이다. <타이탄의 도구들>의 저자 팀 페리스는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에 관한 책을 썼는데, 성공한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 정리를 정성스럽게 한다고 말했다.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큰 차이를 만드는 지점이다. 감사 일기를 쓰는 것은 아주 작은 행동이지만 매일매일 실행하는 즐거움을 얻게 되어 긍정적인 사람이 될 확률이 높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좋은 습관은 좋은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좋은 습관을 갖기 위해서는 아는 것을 실천하고 행동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생각이 많으면 습관으로 만들기 어렵다. 습관은 처음에는 못하더라도 오랫동안 해서 몸에 배어야 한다. 습관은 생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행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좋은 방향으로 나를 변화시켜야겠다는 마음이 서면 뭐가 되었든 따지지 말고 바로 시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첫 시작이 어렵다. 거창하고 완벽하게 하려고 생각하지 말고,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할 수 있다. ‘습(習)’은 배운 것을 익혀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아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행동과 실천으로까지 연결되는 것이 ‘습’이다. ‘관(慣)’은 생각에 의해 몸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한번 해봤다고 해서 '관'이 되지 않는다. 자는 시간,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일어나자마자 하는 행동, 책을 읽는 행동, 운동, 글쓰기, 말하는 태도, 인사하는 것 등 인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이 '관'이다. 習慣은 時中의 결과다. 지도자에게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상황에 맞게 적절한 결정을 하는 것이다. 화를 내야 할 때 적절히 화를 내거나 슬퍼해야 할 때 적절히 슬퍼할 줄 아는 것처럼 상황에 맞는 적절한 판단과 행동을 시중지도(時中之道)라고 한다. 상황(時)은 늘 변한다. 상황 변화에 따라 가장 균형 잡힌 최적의 황금률(中)을 찾아내는 것이 시중(時中)이다. 여기서 중(中)은 정해진 실체가 아니다(中無定體).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는 것이다(隨時而在). 옛 어른들은 ‘사람은 때(時)를 잘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나서야 할 때가 있고, 물러나야 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고, 침묵해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사람은 늘 때를 알아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용적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은 자신과 사회를 책임질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다.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가? 어떤 사람을 만드는가가 핵심이다. 다른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일에 분개하면서 정작 자신도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일을 탓하지 않고 묵묵히 봉지 하나를 들고 집을 나서는 사람도 있다. 환경 보존을 외치면서 일회용 컵이나 접시를 마구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철저히 자제하는 사람도 있다. 주장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각각이 따로 있는 사람도 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달라지는가? 그 사람만의 바탕이 다르기 때문이다. 왜 바탕이 다른가? 자신의 시간을 제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공자는 말한다. 行己有恥를 가르치는 것이 인간의 출발이고 時中의 결과다. 자기 시간의 적절한 활용이 답이다. 인간으로서 제대로 사는 일은 時中을 자초하는 일이다. ‘이런 교육’에서는 ‘이런 사람’이, ‘저런 교육’에서는 ‘저런 사람’이 태어난다. ◇ 한자한글연구원장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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