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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미래 교육의 경고, 진영 논리를 넘어야 아이들이 산다
[교육연합신문=사설] 대한민국 교육이 진영 논리에 갇혀 신음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 싸움 속에 아이들의 미래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교육은 정쟁의 도구가 아니다. 이제는 이념의 낡은 틀을 깨고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야 할 때다. 최근 교육감 선거에서 국제바칼로레아(IB) 도입이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주목할 점은 정당과 진영을 초월하여 많은 후보들이 이를 공약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인구 소멸 위기를 겪던 지역이 IB 학교 덕분에 인구 유입 지역으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교육정책의 실질적인 효과가 진영의 벽을 무너뜨린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각에서는 IB를 혁신학교와 대척점에 세우며 편을 가르려 한다. 이는 대단히 소모적이고 어리석은 논쟁이다. IB는 혁신교육과 방향성을 공유하면서도 체계적인 평가와 교원 연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서로 배척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혁신학교가 IB의 시스템을 도구로 활용한다면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본질은 교실의 변화다. 잠자는 교실을 깨워야 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을 정교하게 다듬고 수업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 교육의 진짜 역할이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했다. 단순한 정답 빨리 찾기 식의 주입식 교육은 미래가 없다. 암기 위주의 시험 패러다임에서 하루빨리 탈피해야 한다. 이제는 AI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 역량을 길러주어야 한다. 다행히 대학가에 IB 교원 양성 프로그램이 생기고 서울대에 IB 교육연구센터가 설립되는 등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제는 축적된 실증 데이터를 바탕으로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형 바칼로레아(KB)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다. 더 이상 교육을 낡은 이념의 프레임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 논쟁의 초점을 진영 싸움에서 교육의 본질로 옮겨야 한다. 시대의 요구에 발맞추어 아이들의 역량을 키우는 데 국가적 역량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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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AI 시대의 교육감, ‘기계의 기술’이 아닌 ‘인간의 미래’를 지휘하라
[교육연합신문=사설] 지방선거가 끝났다. 각 지역의 교육 책임자들이 선출되었다. 선거철마다 정치적 공방만 가득했다. 유권자들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누가 정말 교육을 위해 필요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은 투표 후에도 답을 찾기 어렵다. 눈앞의 선거 공약만으로는 후보의 철학과 미래를 모두 검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교육은 지금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인공지능(AI)은 이미 교실 깊숙이 파고들었다. 새로 당선된 교육감들은 거대한 시대적 책무를 마주해야 한다. AI 시대의 교육감은 단순한 행정가가 아니다. 미래 교육을 지휘하는 지휘자가 되어야 한다. 당선된 교육감들이 당장 실행해야 할 세 가지 핵심 임무를 촉구한다. 첫째, 정답을 찾는 교육을 폐기하고 질문하는 능력을 키워라 기존의 교육은 정답만 강요했다. 빠른 암기와 정확한 연산에만 몰두했다. 이런 지식 습득은 이제 의미가 없다. 정보의 취합과 가공은 AI가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잘한다. 교육감은 교실에서 오지선다형 시험을 과감히 줄여야 한다. 대신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를 가르쳐야 한다. AI에게 올바른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능력이 핵심이다.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고 정의하는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야 한다. 그것이 AI 시대에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다. 교과서를 외우는 교실은 끝내야 한다. 사회적 이슈를 두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교실을 당장 만들어라. 둘째, AI 맞춤형 학습을 도입하되 ‘인간적 연결’을 강화하라 AI 기술은 교육 양극화를 해소할 강력한 도구다. 학생 개개인의 학습 데이터를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초개인화 맞춤형 학습 시스템’을 전면 도입하라. 진도를 못 따라가는 낙오자도 없어야 한다. 너무 앞서가서 지루한 학생도 없어야 한다. 교실의 평등은 기술로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간성이 숨 쉬는 교육이 더 절실하다. 지식 전달은 AI에게 맡기면 된다. 교사는 비로소 학생과 눈을 맞출 시간을 얻는다. 교사의 역할을 단순 지식 전달자에서 '인생의 멘토'로 재정의하라. 협동심, 공감 능력, 갈등 해결 능력은 기계가 가르칠 수 없다. 오직 인간과 인간의 부딪힘 속에서만 배울 수 있는 가치다. 교육감은 교사가 학생의 정서적 교감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라. 셋째, 기술 윤리와 주체성을 심어주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의무화하라 AI 기술의 어두운 단면은 이미 파괴적이다. 딥페이크 범죄와 정보 왜곡이 청소년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기술을 다루는 법만 가르쳐서는 안 된다. 그 안에 담긴 윤리를 빼놓으면 교육이 아니다. 도덕성이 없는 인재는 도구의 노예로 전락할 뿐이다. 교육감은 임기 시작과 동시에 AI 및 미디어 윤리 교육을 필수 교육과정으로 지정하라.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학생들이 디지털 세상에서 올바른 도덕적 잣대를 가져야 한다. 기술을 주체적으로 소비하는 성숙한 디지털 시민을 길러내라. 이것이 미래 교육감의 가장 시급한 의무다. 교육은 과거의 관행으로 미래를 재단하는 일이 아니다. 오지 않은 미래를 앞당겨 준비하는 거룩한 작업이다. 선거는 끝났다. 당선된 교육감들은 이제 지휘봉을 잡았다. 당선의 기쁨에 취해 있을 시간이 없다. 진정으로 교육을 위하는 사람은 미래를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다. 우리 아이들이 마주할 10년 뒤, 20년 뒤의 벌판을 바라보라.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마땅하다. 새로 취임하는 교육감들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즉시 버려라. AI라는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해야 한다. 거친 파도를 능숙하게 타는 서퍼로 키워내야 한다. 당선인들은 지금 당장 진정한 미래 교육의 돛을 올리라. 본연의 임무에 모든 것을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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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체험학습 교사 면책 추진을 환영한다
[교육연합신문=사설] 체험학습 교사 면책 추진을 환영한다 정부가 현장체험학습 중 발생한 안전사고에 대해 교사의 면책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고의나 중과실이 없다면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하는 방안이다. 이는 위축된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올바른 방향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떠나는 소풍과 체험학습은 청소년기에만 쌓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이는 우리가 평생 인생에서 소중히 간직해야 하는 추억이 된다. 그러나 그동안 교사들은 과도한 책임 부담에 시달려왔다. 불가항력적인 사고마저 교사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많은 학교가 사고 우려로 체험학습 자체를 기피하게 되었다. 결국 아이들의 소중한 추억과 배움의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교사에게 무한 책임을 지우는 것은 가혹하다. 불안감 속에서는 적극적인 교육 활동이 불가능하다. 안전 수칙을 준수했다면 국가가 교사를 보호하는 것이 마땅하다. 교사의 법적 부담이 줄어야 비로소 다양하고 창의적인 체험학습이 활성화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선물하기 위해서라도 교사의 안전망 확보는 필수적이다. 법적 공백과 형평성 논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다른 공무원 직역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교육 현장의 특수성을 반드시 감안해야 한다. 학생들을 직접 통솔하는 교사에게는 더 두터운 보호막이 필요하다. 이제 정부와 국회가 신속하게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중과실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여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 소송 지원과 행정 경감 대책도 차질 없이 이행되어야 한다. 교사가 안심하고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때 우리 아이들도 더 넓은 세상에서 평생 갈 소중한 추억을 얻게 된다. 이번 대책이 무너진 교육 공동체를 복원하는 신호탄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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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승호 경기도의원, 4년 의정 성과와 미래 교육 비전 밝혀
[교육연합신문 박소연 기자] 경기도의회 교육행정위원회 문승호 의원(더불어민주당·성남1)이 지난 5월 26일(화) 교육연합신문과의 인터뷰에서 4년간의 의정 활동을 돌아보고 교육 격차 해소와 미래 교육 환경 개선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밝혔다. ■ "작은 목소리를 듣는 것이 정치의 핵심" 문승호 의원은 평소 "정치란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크게 듣는 능력"이라고 정의해왔다. 이날 간담회에서 그 철학의 배경을 직접 설명했다. "큰 목소리는 노력하지 않아도 잘 들린다. 그러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의 생각이야말로 정치가 귀 기울여야 할 곳이다. 그런 작은 목소리를 들으려 노력하지 않으면 정치는 일부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문 의원은 방송인 강호동의 말을 인용해 "프로는 상상하는 대로 되고, 아마추어는 걱정하는 대로 된다"며 교육 현장이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공간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교실 면적, 복도 폭, 층수까지 법으로 정해진 틀을 유연하게 바꾸고 AI 시대에 맞는 상상력과 표현력 중심의 교육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공간 재구조화 사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 화변기 교체부터 500억 예산까지 … '효능감 정치' 실현 문 의원은 4년 재임 중 지역구에 가져온 교육 예산만 500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업으로 희망대초등학교 화변기 양변기 교체 사업을 꼽았다. "재개발로 새 아파트에 살던 아이들이 학교에 가니 난생처음 보는 화변기가 있었다. 변을 못 보고 집에 돌아오는 아이들이 생겼죠. 5천만 원이라는 작은 예산으로 방학 중 전면 리모델링을 했는데, 그 작은 변화가 학부모들에게 '내 아이를 생각해주는 의원이 있다'는 신뢰로 이어졌다. 거창한 정책 못지않게 일상의 불편을 해결하는 것이 '효능감을 주는 정치'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 전국 최초 '학교 급식 잔식 기부 조례' … 일석삼조의 성과 문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경기도교육청 학교 급식 잔식 기부 활성화 조례'는 전국 최초 입법으로, 현재 서울·세종·전북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학교 급식에서 매년 110억 원 이상이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으로 나가고 있었다. 이를 인근 사회복지법인과 푸드뱅크에 기부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예산 절감, 복지 서비스 확대, 환경 보호라는 세 가지 효과가 동시에 난다. 중간에 식약처에서 제동이 걸렸지만, 담당 공무원과 함께 끈질기게 소명해 2시간 이내 조리·적정 온도 유지 조건 하에 기부가 가능하도록 지침을 바꾸는 성과도 거뒀다."라고 밝혔다. ■ 학교폭력 피해학생 보호 … "피해자가 학교 옮기는 구조는 불합리" 학교폭력 피해학생의 상급학교 분리 배정 제도화 건의안과 관련해 문 의원은 현행 제도의 불합리함을 강하게 지적했다. "현재는 가해 학생이 배정된 학교를 피하려면 피해 학생이 스스로 다른 학교를 찾아가야 한다. 피해자가 제2, 제3의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구조다. 분당 서현 학군처럼 좋은 학교에 가해자들이 먼저 배정되면 피해자는 그 학교를 포기해야 한다. 도의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인 국회 촉구 건의안을 제출했고, 하루빨리 법이 개정돼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 고등동 중학교 설립 … '도시형 캠퍼스'로 돌파구 성남 고등동 중학교 설립 문제에 대해서는 3년 이상 싸워온 과정을 상세히 공개했다. "4천 세대 신규 입주 단지 옆에 LH가 마련한 학교 부지가 4년째 공터로 방치되고 있다. 아이들은 사설 차량을 월 7만 원씩 이용하며 30분 거리 학교로 통학하고 있다. '21학급'이라는 설립 기준을 맞추지 못한다는 이유다. 올해 도입된 '도시형 캠퍼스' 제도를 활용해 소규모 형태로라도 학교가 생길 수 있도록 본회의 5분 발언, 2천 명 서명부 전달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 통학로 안전 … "문제의식의 공유가 협력의 시작" 단대초·신흥초 등의 통학로 안전 개선 사례를 소개하며 기관 간 협력의 노하우를 밝혔다. "공문보다 현장이 먼저다. 관계자들이 회의실이 아닌 아이들이 실제 걷는 길 위에서 만날 때 문제의 심각성이 눈으로 보인다. 단대초는 교육청과 성남시가 서로 부지를 내주지 않으려 했는데 교장 선생님의 결단으로 학교 부지를 10미터 물리기로 했고 6월 교육장과 구청장 간 MOU 체결로 보·차도 분리의 토대가 마련됐다. 행안부 예산만 확보되면 단대동 일대 통학 환경이 크게 바뀔 것이다."라고 뜻을 전했다. ■ "교육 격차 없는 스타트라인" … 정치 입문의 초심 재확인 문 의원은 마무리 발언에서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원도심 중학교를 나와 분당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자부했던 실력이 분당에서는 한참 부족했고, 생활 수준과 교육 환경 모두 눈에 띄게 달랐다. 교육 격차는 결국 학력 격차, 소득 격차로 이어진다. 최소한 교육에서만큼은 공평한 스타트라인을 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하루에 학교 급식이 유일한 한 끼인 아이들이 여전히 있다. 일에 파묻혀 잊고 있던 그 초심을 다시 새기고, 그 아이들을 위한 정치를 계속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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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신의 한 수’는 질문하는 돌연 변이에게서 나온다
[교육연합신문=시론] 2016년 3월 서울, 전 세계는 거대한 충격에 휩싸였다. 인간 최고수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대결은 AI가 인간의 지능을 압도할 수 있음을 증명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3연패의 절망 속에서 맞이한 제4국, 이세돌 9단이 던진 백 78수는 알파고의 연산 오류와 혼란을 유도하며 극적인 1승을 거두었다. 세상은 이를 ‘신의 한 수’라 불렀다. 논리적이고 정형화된 계산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기계 신(神)을 향해, 인간이 던진 돌발적이고도 엉뚱한 ‘돌연변이의 수’가 균열을 낸 순간이었다. 우리는 지금껏 이른바 ‘우물 안의 경쟁’을 펼쳐왔다. 남들보다 한 권의 책을 더 외우고, 소수점 자리까지 정확한 계산을 해내며, 정해진 사다리의 꼭대기에 오르는 것을 ‘지능’이라 정의했다. 학교는 오류 없는 지식의 복제기를 우등생이라 칭송했고, 부모는 아이들을 그 규격에 맞춰 깎아냈다. 그러나 평화롭던 우물 위로 나타난 AI라는 거대한 존재는 인간이 수십 년간 쌓아온 지식의 성벽을 단 몇 초 만에 허물어뜨리고 있다. 변호사의 법률 지식, 의사의 진단 데이터, 프로그래머의 코드까지 정답이라 믿었던 모든 것들이 AI 앞에서는 헐값의 데이터로 전락했다. 이제 단순히 ‘답을 아는 것’은 실력이 아니다. 정답만을 쫓던 성실한 모범생들이 역설적으로 가장 먼저 대체될 위험군이 된 것이다. 당신이 알던 ‘공부’는 죽었다. 이제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프롬프투스(Homo Promptus)’로의 진화를 요구받고 있다. AI 시대의 생존 전략은 기계와의 논리 경쟁이 아니다. 논리적 측면에서 인간은 결코 AI를 이길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해진 길을 이탈하는 돌연변이적 사고이자, 돌발적인 질문으로 정형화된 시스템을 뒤흔드는 능력이다. 뿌리에서 줄기로 뻗어 올라가는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수목형 사고’를 과감히 해체하고, 중심 없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끊임없이 연결되는 ‘리좀(Rhizome)형 사고’로 도약해야 한다. 정해진 전공, 고정된 직업, 규격화된 삶의 궤적을 탈영토화할 때 비로소 새로운 문이 열린다. 지식의 양으로 승부하던 시대의 종말은, 가장 인간다운 ‘질문의 시대’가 개막했음을 의미한다. 결핍을 느끼고, 의도를 가지고, 세상을 향해 날카롭게 벼려진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야말로 기계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지능의 최전선이다. AI는 우리를 대체하러 온 것이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가두었던 지능의 감옥을 부수러 온 해방군에 가깝다. 기계와 경쟁하기를 멈추고 AI라는 강력한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는 순간, 인류는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사유의 광야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지능은 이제 머릿속에 가두는 ‘명사(Noun)’가 아니라, 세상과 접속하고 흐르는 ‘동사(Verb)’다. 내 뇌세포 안에 갇힌 소유물이 아니라, AI라는 지팡이를 짚고 타자와 접속하며 만들어내는 연결의 에너지다. 우물 속의 안락함을 버리고 광활한 야생의 대지로 나설 용기가 필요한 때다. 우리가 던지는 단 하나의 날카로운 질문, 그 돌연변이 같은 ‘87수의 신의 한 수’가 AI라는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을 울려 세상에 없던 교향곡을 만들어낼 것이다. 우물을 허문 지능의 반란자들이여, 이제 광활한 사유의 야생에서 당신만의 지도를 그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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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人포커스] 도성훈 인천광역시교육감 후보를 만나다
[교육연합신문=안용섭 기자] 본지는 오는 6월 3일 전국지방선거와 함께 실시되는 전국시도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민주적인 교육자치 발전을 위하여 국민들에게 교육감 선거와 관련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소모적인 정치적 논쟁에서 벗어나, 후보자의 자질과 공약으로 국민으로부터 선택받는 교육감 선거가 될 수 있도록 각 후보자를 인터뷰하여 소개하는 선거특집을 마련하였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 - 편집자 주 이번 호에서는 도성훈 인천광역시교육감 후보를 만나보았다. 이날 인터뷰에는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후보와 윤용상 대변인, 그리고 오승한 국제교류특보가 함께 배석했다. 다음은 도성훈 후보와의 일문일답이다. ▣ 제10대, 제11대 인천광역시교육감으로서 지난 8년의 소회를 밝혀 달라. 위기와 혁신이 공존한 8년이었다. 첫 번째 임기 4년은 노란 점퍼를 입고 위기에 대응하는 데 보냈다. 적수 사태, 돼지열병, 스쿨 미투를 하나하나 풀어가던 와중에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쳤다. 교육청에서 퇴근하지 않고 한 달 이상 먹고 자며 대응했다. 힘들었지만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 저녁마다 직원들과 미래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토론하고 정리하기를 반복하며, 수업의 변화와 새로운 학교들을 만들어냈다. 두 번째 임기는 인천만의 특화 교육인 읽걷쓰, 바다학교, 아이플라토 등을 만들어 전국화·세계화의 길을 열었다. 공약이행률 99.1%, 3년 연속 공약이행 평가 최우수 SA등급. 어떤 위기 앞에서도 시민과의 약속을 생명처럼 지키겠다는 책임 행정의 결과다. 교육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현장에서 몸으로 확인한 8년이었다. ▣ 지난 2기 인천시교육감으로서 추진했던 정책 중 만족할 만한 성과는 무엇인가? 가장 큰 성과는 '읽걷쓰'다. 2022년 말 ChatGPT 등장으로 AI가 인간의 삶 깊숙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기술 문명에 휩쓸리지 않는 인간의 힘을 키우기 위해 읽기·걷기·쓰기를 결합한 읽걷쓰를 만들었다. 현재까지 13만여 명의 학생 저자가 탄생하고 8,300여 권의 책이 나왔다. 구글이 "AI가 나왔을 때 모든 나라가 기술로 접근했는데 인천에서만 인간 중심으로 접근했다"며 협약을 체결한 유일한 교육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168개 섬과 바다를 가진 인천의 지리적 여건을 살린 바다학교, 아이들의 사회·정서 역량을 기르는 아이플라토도 인천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프로그램이 됐다. 직업계고 분야에서는 2025년 졸업자 기준 취업률 55.7%로 수도권 1위, 2024년 졸업자 유지취업률 85.3%로 전국 2위를 기록했다. 전국 최초로 교육감 직속 교육활동보호담당관을 신설해 교사들이 혼자 교권 침해에 맞서지 않아도 되는 구조도 만들었다. ▣ 지난 2기 인천시교육감 임기 중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면? 가장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현장 교사들이 정책의 체감도가 낮다고 지적한 부분이 가장 무겁게 남는다. 교육활동보호담당관 신설, 특수교육 여건 개선 등 제도는 만들었지만 실제 교실에서 선생님들이 느끼는 변화로 완전히 이어지지 못했다.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해서 교사가 바로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을 더 빨리 알았어야 했다. 끝맺지 못한 과제들도 있다. 고교학점제 운영의 현실화, 교원 정원 확대, 교원 처우 개선, 서해 5도 교원 지원 등은 교육부와 중앙정부의 협력이 필요한 사안들로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학교현장지원방안 100선과 특수교육 여건개선 33개 과제도 임기 안에 모두 마무리하지 못한 채 다음 임기로 넘어가게 됐다. 지방교육재정 문제도 마찬가지다. 학교운영비 부족으로 여름에 에어컨을 꺼야 했던 학교가 생긴 것은 교육감으로서 시민께 송구한 일이다. 이 모든 미완의 과제들을 완성하는 것이 3선에 나선 또 하나의 이유다. ▣ 지난 인천시교육감 임기 중 추진해 왔던 '읽.걷.쓰' 교육정책에 대해 말씀해 달라. '읽걷쓰'는 2023년 1월 시작할 때부터 학교 안과 밖을 동시에 공략했다. 교육과정 속에 넣으면서, 동시에 인천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문화가 될 때 질적 전환이 일어날 것이라고 설득하며 시민 문화 운동으로 함께 키워왔다. 단순한 교육청 정책이 아니라 인천 시민의 생활 문화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이 핵심 전략이었다. 국내외 학술대회를 거치며 읽걷쓰의 이론적 깊이를 더했고, 2025년 9월 구글과의 협약으로 세계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읽걷쓰의 핵심 철학은 명확하다. AI 시대일수록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인간의 기본기가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몸으로 걷고 직접 손으로 쓰는 과정이 아이들의 사고력과 정서 회복에 직결된다. 현재까지 13만여 명의 학생 저자가 탄생하고 8,300여 권의 책이 출간됐다. ▣ 우리 교육계에도 AI를 활용하는 교육이 도입되고 있다. 향후 인천교육의 AI 도입에 따른 '읽.걷.쓰' 교육정책의 변화는 무엇인가? 읽걷쓰와 AI의 결합, 즉 '읽걷쓰 AI'가 그 답이다. 핵심 원리는 'H-A-H(Human-AI-Human)'다. 인간이 먼저 생각하고 질문하며, AI를 전략적 도구로 활용해 정보를 구조화하고, 다시 인간의 성찰과 직접 쓰기로 마무리하는 순환 구조다. 이 원리로 우리 아이들을 AI 시대의 지휘자인 '에르디토'로 키워내겠다. 생애주기별로도 적용된다. 유아부터 초등 저학년까지는 독서 골든타임을 지켜주고 손끝·발끝 교육으로 예술적 감수성을 키운다. 초등~중학교까지는 긴 글쓰기를 통해 자기표현과 AI 과의존 예방, 통제된 환경에서의 AI 활용 능력을 기른다. 고교에서는 AI를 주도적으로 활용하되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창의적 학습자로 완성한다. AI는 읽걷쓰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읽걷쓰로 다진 인간의 사고력 위에 얹히는 날개다. ▣ 이번이 인천시교육감 3선 도전인데 후보님의 주요 공약을 밝혀 달라. 이번 임기의 출발점은 하나다. 기초부터 다시 다진다. 5세~9세를 독서 골든타임으로 묶고, 모든 초등학교에 기초학력 전담교사를 세운다. 원도심 20곳에 자기주도학습센터를 열어 부모 지갑 사정과 무관하게 아이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든다. AI를 활용하는 방안도 세우겠다. 5개 권역 AI융합교육센터를 통해 어느 동네 아이든 AI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고, 매년 1만 명을 세계로 보내는 세계로배움학교로 인천 아이들의 시야를 세계로 넓히겠다. 진로의 선택지도 다양하게 만들겠다. AI 과학고·체육중학교·예술통합중학교를 새로 짓고, 직업교육 안심취업 10년 보장제를 법으로 못 박아 특성화고 졸업생이 불안정한 출발선에 서지 않도록 하겠다. 민주주의 교육과 학생자치권도 강화할 계획이다. 학생 정부회장이 직접 예산을 쥐고 공약을 이행하도록 고 500만·중 300만·초 200만 원의 공약이행비도 보장한다. 디지털 시대에 심리적 불안을 겪는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함께 돌보는 통합지원센터를 설립하고 1교 1상담 인력을 배치하겠다. 신도심 업무를 담당하는 영종·검단 교육지원청 개청도 반드시 하겠다. 선거가 끝나도 이 약속들은 살아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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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웅석 前국기원연수원장, 제18대 국기원장 선거에서 압승
-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윤웅석 前국기원 연수원장이 제18대 국기원장 선거에서 최종 당선되며, 국내외 태권도계의 새로운 리더로 공식 선임됐다. 9월 19일 치러진 온라인 투표에서 총 2,314명의 선거인 중 1,561명이 참여(투표율 67.46%)한 가운데, 윤 당선인은 737표(47.21%)를 획득하며 안용규 후보(544표, 34.85%)와 남승현 후보(280표, 17.94%)를 제치고 당선을 확정지었다. 이번 선거는 국기원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강남구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해 후보자 등록, 정책토론회, 확대된 국내외 온라인 투표 시스템(K-Voting) 활용 등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로 진행됐다. 윤 당선인은 태권도 9단으로 국기원 연수원장을 역임했으며, 대한태권도협회 부회장과 기술전문위원회 의장 등 핵심 보직을 두루 맡아 태권도 발전에 이바지해 왔다. 이번 선거에서는 도장 지원사업, 국기원 조직 단합, 심사제도 및 교육 혁신, 국제협력 강화 등 실질적 발전 과제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윤 당선인은 당선 소감에서 “이번 당선은 저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국내외 태권도 가족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변화의 결실”이라며, “말이 아닌 실행으로 보답하여, 국기원이 세계 속에서 신뢰받는 본부로 자리매김하도록 책임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윤 당선인의 임기는 2025년 10월 7일부터 3년간이며, 같은 날 오후 6시 30분 국기원 강의실에서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당선증을 공식 전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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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웅석 前국기원연수원장, 제18대 국기원장 선거에서 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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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의대 쏠림과 두뇌 유출, 한국의 미래는 없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한국은 지금 인재의 황무지가 되고 있다. 자연계 최상위권은 의대로 몰리고, 남은 AI 인재마저 해외로 떠난다. 두뇌 수지는 적자로 돌아섰고, ‘유능할수록 한국을 떠난다’는 말이 현실이 됐다. 서울대 공대 신입생 5명 중 1명이 의대로 이탈한다. 공학의 심장에서조차 인재가 빠져나간다. 이들은 안정된 직업과 높은 수익을 좇는다. 국가가 키운 인재가 첨단 산업 대신 의료로만 몰린다. 그 결과, AI·반도체·양자 분야는 속이 비어간다. 남아 있는 소수의 AI 인재마저 실리콘밸리로 떠난다. 구글, 애플, 엔비디아는 성과 기반 보상과 개방적 문화를 내세운다. 한국의 연공서열과 단기성과 중심 체계는 매력이 없다. KAIST 연구실의 제자들이 줄줄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두뇌 유출은 곧 국력 손실이다. 공교육비, 세수 손실까지 계산하면 인재 1명당 수억 원의 손해다. 첨단 산업 경쟁에서 뒤처지는 대가는 그보다 크다. 세계는 AI 인재 전쟁에 나섰다. 중국은 ‘천인 계획’으로 석학을 불러들이고, 일본은 고급 인력에 영주권까지 내준다. 미국은 빅테크를 앞세워 수억 달러 보상으로 인재를 사들인다. 반면 한국은 인재를 지켜내지도 못한다. AI 인재는 빠져나가고, 의대 정원은 늘어난다. 산업 현장은 인력난에 허덕인다. 기업의 80%가 AI 인력이 부족하다. 2027년엔 1만 명이 넘는 AI 인력이 공백으로 남을 전망이다. 이대로는 AI 강국은커녕 기술 종속국으로 전락한다. 의대 공화국과 두뇌 수지 적자는 국가적 재앙이다. 정부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 성과 중심의 보상, 연구 인프라 확충, 국제 협력 확대가 필요하다. 동시에 의대 쏠림을 완화할 전략이 시급하다. 지금의 흐름을 방치하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의대와 해외만 바라보는 인재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경쟁력을 포기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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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의대 쏠림과 두뇌 유출, 한국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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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배움의 진짜 얼굴
- [교육연합신문=시론] 우리는 인간을 기르고 있는가, 시험 기계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오늘날 교육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성취도’, ‘평가’, ‘입시’, ‘스펙’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시험에서 몇 문제를 맞혔는지가 배움의 척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진정한 배움은 단순히 정보를 받아들이고 외우는 것을 넘어선다. 배움은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인간다움(Humanness)은 단순한 도덕적 덕목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 그 자체에 대한 물음이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스스로 묻는 힘이다. 이 힘은 자율성과 주체성, 그리고 공감 능력에서 비롯된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말했다. “진정한 자아는 결코 외부의 규칙에 맞추어질 수 없다.” 교육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 진정한 배움이란 외부 기준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자아를 발굴해가는 여정이다. 사례 ① 몬테소리 교육: 스스로 피어나는 배움 이탈리아의 교육자 마리아 몬테소리는 아이를 ‘하나의 완전한 인간’으로 보았다. 교사는 지식을 주입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가 스스로 탐색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전통 수업에서는 교사가 시간표와 커리큘럼을 정하지만, 몬테소리 교실에서는 아이가 교구를 직접 선택하고 흥미를 따라 탐구한다. 아이 안에 있는 자기 주도성과 내적 동기를 깨우는 것이다. 몬테소리는 말했다. “아이 안에는 스스로 성장하고자 하는 힘이 있다.” 교사는 억누르지 않고, 조율하고 안내하는 조력자 역할만 한다. 교육은 외부의 강제가 아니라, 내면의 열망이 피어나는 장이어야 한다. 사례 ② 핀란드 교육: 경쟁 없는 배움의 공동체 핀란드는 교육 만족도와 학업 성취도를 동시에 높이는 나라로 유명하다. 놀랍게도 전국 단위 시험이 거의 없다. 학생들은 등수에 신경 쓰지 않고, 학습의 즐거움을 우선한다. 핵심은 ‘협력과 토론’이다. 교사는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지 않고,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토론하는 환경을 만든다. 예를 들어 환경 문제를 주제로 조별 토론이 이루어진다. 학생들은 자료를 조사하고 의견을 나눈 뒤, 함께 해결책을 도출한다. 단순 암기가 아니라, 비판적 사고력과 사회적 공감 능력을 키우는 수업이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가진 연결성과 공동체 감각을 길러주는 배움이다. 배움은 ‘내가 누구인가’를 묻는 과정 톨스토이는 말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소유할 때 비로소 자유롭다.” 배움은 지식 축적이 아니라, 자기 사유의 능력을 기르는 과정이다. 생각을 소유한다는 것은 외부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맥락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힘을 가진다는 의미다. 그래서 교육은 ‘정답’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품는 인간을 기르는 일이 되어야 한다. 실천 방안: 배움의 중심을 학생에게 1. 학습자 중심 수업 설계 교사는 지식 전달자가 아닌 촉진자(facilitator) 역할 학생이 스스로 주제를 설정하고 탐구할 수 있는 열린 과제 제공 다중 지능 이론 기반 개인 맞춤형 학습 경로 구성 2. 평가의 혁신 기존 상대평가와 표준화 시험은 개인 고유성을 평가하지 못한다. 포트폴리오, 서술형 수행평가 중심으로 전환 실험, 창작, 프로젝트 활동 등 다양한 표현 방식 허용 성장 중심 피드백으로 학습 동기 고취 3.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 확대 실생활 문제를 중심으로 학습자가 지식 생산자로 변모 예: 지역 환경 문제 다큐 제작, 사회적 이슈 캠페인 기획 창의력, 협업 능력, 문제 해결력 등 핵심 역량 강화 교과 경계를 넘는 융합적 사고 훈련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교육 진정한 교육은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일’이다. 학생은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고, 타인과 관계하며, 삶을 성찰하고,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한다. 지식은 목적이 아니라 도구다. 그 도구를 어떻게 느끼고, 연결하고, 사용할지를 고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답게 배운다. 교육은 지금 다시 묻고 있다. “우리는 인간을 기르고 있는가, 아니면 시험 기계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작은 결론 배움의 목표는 외적 성취가 아니라, 내적 성장이다. 평가 방식은 숫자와 등수가 아닌, 성장과 발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교사는 지식 전달자가 아닌, 학생의 호기심과 열망을 깨우는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AI와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다움은 인간이 길러야 한다. 지식은 빠르게 확산되지만,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의미를 만들어가는 능력은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교육의 진정한 승리는, 학생이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하며, 세상을 해석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오늘도 질문해야 한다. 시험 문제를 맞히는 인간을 만드는가, 아니면 생각하고 느끼고 연결할 줄 아는 인간을 기르고 있는가. 그 질문이 바로, 미래 교육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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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배움의 진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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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익히고 되새김질하는 고전의 밥상으로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지식이 단순히 인식의 차원에 머물고, 생존의 질과 양을 증가시키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면, 삶 자체가 생명력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 인간은 삶을 영위하면서 객관적인 세계와 직접 접촉하지 못하고, 항상 가치와 이념을 매개로 관계하게 되는데, 세계와 관계할 때 사용하는 자신만의 특정한 가치론적 규정을 莊子는 ‘成心’이라고 표현하고, 인간은 누구나 “자기에게 정해진 마음 즉 편견을 스승처럼 받드는데”, 그것은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큰 오류로서 ‘세계의 진상과 인간을 크게 어그러지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타자에게 마음 쓰는 존재다. 인류는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로, 공감 능력을 타고난다. 타자를 나와 같은 존재로 여기고 서로 협력하는 탁월한 공감력 없이 인류의 집단 성취인 문명은 불가능했다. 요즘 이런 생각에 머문다. 열심히 뭘 하긴 하는데, 가슴 한구석에 ‘늘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자신에 대해 알려고 해야 한다고 동서양 막론하고 성현들은 말한다.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게 맞아, 그렇게 해야지.’라고 주먹을 불끈 쥘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몇 년 전에 한 후배에게 이런 넋두리를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아왔고, 지금도 진행 중인 것 같네.’라고 하니까 ‘형님, 그럼 말씀 하지 마세요. 잘 살아왔고, 잘 살고 계시는 겁니다.’라는 답변에 약간의 치유를 받았지만, 도로아미타불,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그 말이 요즈음 나를 휘감는다. ‘내 생각’과 내가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서로 다른 사람인 것 같다. 말은 그럴듯하게 하면서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는 내가 어리석고 밉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일까? 인간의 본질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러한 시작도 결국에는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에 귀결된다고 믿는다. 모든 것이 배움의 장이다. 왜 그런가? 알지 못하면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무언가를 배워야만 살 수가 있다. 그 아는 만큼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라고 한다. 다시 말해 생각을 또 생각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앎과 생명은 분리되지 않는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아주 거창한 질문인 것 같지만 답은 매우 간단하다. 생명은 앎을 향한 운동이다. 이것 포기하고 외부의 기준에 맞춰버리면 소외의 삶, 인생 자체가 의미도 재미도 사라져 버린다. 이러한 모든 것은 그동안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너무 멀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붙들린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미친다. 요즘 남학생들도 이마에 여드름만 좀 나도 학교가 아니라 마사지 숍을 간다고 한다. 지금은 ‘이런 시대’가 된 것이다. 자기를 위한 투자, 자기 계발, 이렇게 말하지만 실제로 자기를 위한 게 아니라는 거, 정말 헌신적인 삶인 것 같다. ‘헌신적’이란? 자기 자신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오직 타인을 위한 헌신이라는 말이다. 왜 이렇게 남을 위해 애를 쓰는 걸까? 나한테 이로운 건 별로 없고, 오로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내 삶이 그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인정 욕망이라고 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면 스트레스 지수는 훨씬 줄어든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언어가 귀에 못이 박혔는데, 사회적 거리 두기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욕망과의 거리 두기가 더 중요한 시대는 아닌가? 『東醫寶鑑』을 배우면서 몸에 대한 공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삶의 리듬을 잘 타려면 마음을 제어해야 한다고 쓰여 있다. 우리의 감정, 즉 칠정은 항상 널뛰기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일상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걸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삶에서 실천하는 일이다. 자기 감정대로 행동하는 것이 사춘기에나 하는 짓인데, 나는 평생을 사춘기로 살고 싶은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머문다. 사람의 감정은 원숭이 같다고 한다. 원숭이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그래서 원숭이한테 가장 어려운 일이 앉아서 명상하는 일이라고 한다. 『西遊記』를 보면, 손오공도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지만,딱 한 가지, 부동자세로 앉아 있는 것만은 못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다 그렇게 불규칙하고 예측 불가능한 감정을 타고난다고 한다. 그래서 내 감정을 어떻게 제어하는가가 내 일생, 그리고 내가 맺는 관계를 결정하게 되는 거다. 감정은 훈련을 통해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지, 그냥 내버려두었다가는 나를 제멋대로 끌고 다니게 된다. 『東醫寶鑑』에는 유교, 불교, 도교의 사상이 들어가 있는데, 도교는 주로 단전호흡을 통한 정기신(精氣神)의 순환을 통한 양생의 기예를 펼치고 있다. 유학은 오상(五常), 즉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 기준이다. 이 오상에 맞춰서 정치, 경제, 문화 모든 영역이 제도화되고 예법화되어 있다. 그러니까 인간은 누구든 다 인의예지신을 지켜야 한다. 지키면 군자, 못 지키면 소인이 되는 거다. 왜 지키지 못할까? 욕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이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면 수신제가(修身齊家)는 물론이고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는 불가능하다고 성현들은 말한다. 동양에서 고대의 지혜라고 하면 유교, 불교, 도교를 말할 수 있다. 중화문명에서 유교와 도교가 발달했고, 나중에 인도에서 불교가 들어오면서 삼교가 서로 혼용이 된 것이다. 그래서 조선의 선비들은 공부할 때, 삼교회통(三敎會通)을 중시했다. 지금도 이 정도의 기본기는 초등학교에서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본다. 인류 지성사의 기초․기본이기 때문이다. 『논어』 외우고, 『불경』 외우고, 『동의보감』도 외우면 평생 자신이 될 것이다. 그런데 내 아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내가 권위자가 아니어서 그럴까? 고전은 다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 지혜란 본디 중생과 만물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거기에 무슨 자격이나 제한이 있을 수 없다. 누구나 해야 한다. 그걸 누릴 수 있는 권리와 반드시 해야 하는 소명이 동시에 있는 것이다. 더구나 고매한 경전일수록 일용할 양식으로 써야 하다. 고전을 아득한 시공에 모셔두기만 하면 안 된다. 가장 고귀한 것은 일상적이어야 한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빛이 있어야 하고, 공기가 있어야 하고, 물이 있어야 하듯이, 이런 일상적인 것들이 가장 고귀한 것이다. 고전도 마찬가지다. 빛이고 공기고 물인 것이다. 빛과 공기, 물을 이해한 다음에 사는 게 아니다. 지혜도 마찬가지다. 일단 암송한 다음 계속 되새겨야 한다. 자기 몸에 딱 붙여야 한다. 장자(莊子)의 천도(天道)편에 나오는 제(齊)나라 15대 왕 환공(桓公)과 수레바퀴 깎는 장인 윤편(輪扁) 사이의 이야기다. 환공이 대청 위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윤편은 그 앞 정원에서 바퀴를 깎고 있었다. 그는 망치와 끌을 내려놓고 대청으로 올라와 환공에게 물었다. “외람되오나 폐하께서 읽고 계신 책은 무엇을 기록한 것입니까?” “옛 성인의 말씀이다.” “그 성인은 살아계십니까?” “이미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폐하께서 읽고 계신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에 불과합니다.” 환공이 노해서 말했다. “과인이 책을 읽는데 감히 바퀴를 만드는 자가 왈가왈부한단 말인가? 내가 납득하도록 설명하면 모를까 아니면 너는 죽은 목숨이다.” 윤편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가 하는 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바퀴의 구멍을 깎을 때 느슨하게 하면 헐렁해서 빠지고, 빠듯하게 하면 빡빡해서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느슨하지도, 빠듯하지도 않은 것은 손에 익고 마음이 그에 호응하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비록 입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떤 비밀이 거기에는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아들에게도 가르치지 못했고, 아들 역시 저에게 물려받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저는 바퀴를 깎고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전해줄 수 없는 그 무엇과 함께 죽어버렸습니다. 그런즉 폐하께서 읽고 계시는 것은 옛사람이 남긴 찌꺼기일 뿐입니다.” 『繫辭傳上篇』12-2장에 ‘書不盡言(서부진언), 言不盡意(언부진의)’라는 말이 있다. 글은 말을 다할 수 없고, 말은 가슴 속의 표현하고자 하는 뜻을 다 드러낼 수 없다. “조선에는 공자가 들어오면 왜 공자의 조선이 되려고 하지? 조선의 공자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가?”라는 조선 말 신채호 선생께서 하신 말씀을 새겨보자. 『般若心經』에서 관세음의 ‘觀’은 ‘본다.’보다도 ‘보여준다.’는 의미가 강하다고 한다. 세상의 고통스러운 소리들, 그 현실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는 보살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11면의 얼굴을 지닌 보살이 바로 관세음(관자재)보살이라고 한다. 미래에 내다보이는 장래의 상황을 내게 보여준다. 사실을 전한다는 기자는 많아도 이상호 기자처럼 세상의 아픈 소리를 들어야만 기자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숨겨진 소리, 보통 사람들에게 가려져서 안 들리는 소리, 그 소리를 찾아 나선다. 기자는 모름지기 이 시대의 아픔을 대변해야 한다는 사명감 아래 그토록 용감하게 자신을 현장에 던지고 사는 기자는 많지 않다. 세월호 속에 사라진 슬픈 소리도 이상호의 대변이 아니었더라면 이토록 널리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상호는 그러한 삶의 자세 때문에 본인이 항상 아프다. 고통스러운 소리를 들으면 같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상호를 박해하고 그의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가 수없이 고소를 당하면서 얼마나 깊은 시련을 겪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이제야 저도 철이 드는 걸까? 옛말에 ‘생긴 대로 논다, 산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어떻게 생겼을까? 『心經』을 만나,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더 생각하고, 타인의 苦厄을 동감하며, 진리에 대하여 개방적 자세를 유지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공부하고 끊임없이 배우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이제야 살아가야 할 소명을 더 생각하고 생각한다. ◇ 한자한글연구원장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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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익히고 되새김질하는 고전의 밥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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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학교안전공제회, 이득재 신임 이사장 취임
-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부산광역시학교안전공제회는 9월 3일자로 이득재 신임 이사장이 공식 취임했다고 밝혔다. 부산시학교안전공제회는 부산 지역의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까지 모든 교육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사고와 재해로부터 학생과 교직원을 보호하고, 안전한 교육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으로, 부산 교육 안전망의 핵심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번에 취임한 이득재 이사장은 교육 현장과 행정 경험을 두루 갖춘 전문가로 부산 교육계에서 신뢰와 리더십을 인정받아 왔다. 특히, 학생 안전과 교직원 복지 증진에 대한 확고한 소신을 가지고 있어, 공제회의 혁신과 발전을 이끌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득재 이사장은 취임사에서 “부산 교육의 안전과 신뢰를 지키는 막중한 책무를 맡게 되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학생과 교직원의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공정하고 투명한 운영을 통해 신뢰받는 공제회를 반드시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한 의지를 밝혔다. 이어 그는 “안전은 한 개인이나 기관의 힘만으로 지켜낼 수 없는 공동의 가치”라며, “부산 교육가족과 시민사회, 관계 기관과의 긴밀한 협력 체계를 더욱 공고히 해, 흔들림 없는 교육 안전망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현장의 목소리에 직접 귀 기울이고, 체감할 수 있는 지원으로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공제회가 되겠다”며, “부산 교육 현장을 안전하고 활력 넘치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이득재 이사장은 일선 유치원, 초·중·고등학교의 교육활동 안전을 위한 ‘여행자보험 제도’ 도입을 핵심 중점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학생들의 체험학습, 수학여행, 해외연수 등 다양한 교육활동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고, 공제회 차원에서 통합 보험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학교 현장의 안전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학부모의 불안까지 해소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기존 여행자보험 운영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동안 학교는 사보험사를 통해 학생 개별 가입을 진행해야 했고, 주민등록번호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취합하고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불편함이 컸다”며, “보험료가 소액이어서 민간 보험사의 관심이 낮았고, 업무 담당 교사들의 부담이 상당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공제회가 추진하는 ‘여행자공제사업’은 ▲간편한 가입 절차 ▲보다 저렴한 보험료 ▲신속한 보상처리 체계 등을 갖춰, 학교의 행정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실질적인 안전 효과를 높일 계획이다. 이사장은 “교육활동은 교실을 넘어 현장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안전 리스크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며 “공제회가 든든한 방패가 되어 학생들이 안심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반드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부산광역시학교안전공제회는 각종 사고와 재해로부터 학생과 교직원을 보호하고, 교육활동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관이다. 이번 이득재 이사장의 취임과 함께 여행자보험 제도를 포함한 특색사업이 본격 추진되면서 부산 교육의 안전 지원 체계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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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학교안전공제회, 이득재 신임 이사장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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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인재가 떠나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한국의 두뇌 수지 적자가 심각하다. OECD 38개국 중 35위라는 성적표는 단순한 순위가 아니다. 젊고 유능한 인공지능 인재들이 한국을 떠난다. 들어오는 인재는 줄어든다. 이 현실은 국가 경쟁력 추락으로 이어진다. 미래를 떠받칠 뿌리가 무너지고 있다. 대한상의 보고서가 이를 보여준다. 2024년 한국의 인구 1만 명당 AI 인재 순유출은 0.36명이다. 2022년에는 0.04명, 2023년에는 0.3명이었다. 불과 2년 만에 수치는 급증했다. 같은 기간 미국과 독일, 캐나다는 인재 유입국이 되었다. 세계의 두뇌가 모이는 곳은 번영한다. 인재가 떠나는 곳은 쇠락한다. 원인은 단순히 연봉이 아니다. 인재가 한국을 떠나는 이유는 제도와 문화에 있다. 평가는 단기 실적에 치우쳤다. 보상은 연공서열에 묶여 있다. 연구 인프라는 열악하다. 국제 협력의 기회도 부족하다. 이 구조에서 창의는 자랄 수 없다. 김정호 KAIST 교수의 제자들조차 구글과 엔비디아로 간다. 이것이 현실이다. 고급 인력 한 명이 떠날 때마다 국가는 손실을 본다. 그 규모는 약 5억 원이다. 이 계산은 단순한 추정이 아니다. 이미 대학과 연구소의 역량이 줄고 있다. 기업은 인력난과 인건비 부담에 시달린다. 산업의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국가의 미래는 공허한 구호로 전락한다. 정부는 AI 세계 3대 강국을 외친다. 100조 원 펀드도 약속했다. 그러나 돈만으로 인재는 붙잡히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 전환이다. 인재 유출 억제는 소극적이다. 세계의 인재가 몰려오게 해야 한다. 성과와 보상이 연동돼야 한다. 근로 제도는 유연해야 한다. 연구 생태계는 세계와 연결돼야 한다. 창의적 도전을 존중하는 문화도 필요하다. 인재는 국력이다. 인재가 떠나는 국가는 미래를 잃는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한국은 두뇌 유출 국가라는 오명을 벗어야 한다. 구호가 아니라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젊은 두뇌가 떠날 때 남는 것은 쇠락의 그림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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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인재가 떠나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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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수능, 존폐 논쟁 넘어 공정의 길로
- [교육연합신문=사설] 수능은 여전히 한국 교육의 심장이다. 그러나 그 심장은 오래된 방식으로 뛰고 있다. 학생들의 꿈과 가능성을 재단하는 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폐지론자는 수능을 사교육의 온상이라 비판한다. 유지론자는 수능이 공정의 최후 보루라 주장한다. 양측의 논리는 모두 타당하다. 그러나 문제는 존폐가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 학생에게 더 나은 기회를 줄 것인가다. 수능은 공정성을 보장한다. 모든 학생이 같은 날, 같은 문제로 시험을 치른다. 이 구조는 지역·학교 간 격차를 줄이는 최소한의 장치다. 그러나 동시에 수능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사교육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부모의 경제력이 시험의 그림자를 짙게 만든다. 따라서 수능은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무너뜨려서도 안 된다. 개선과 재설계가 필요하다. 첫째, 수능을 공교육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학교 수업만 충실히 따라가도 충분히 응시할 수 있어야 한다. AI 튜터와 같은 맞춤형 학습 지원을 공교육이 제공해야 한다. 학생의 지역, 환경, 학습 조건에 맞춘 균형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둘째, 수능의 기능을 분리해야 한다. 학력평가와 적성평가는 달라야 한다. 지식의 축적을 측정하는 시험과 진로·탐구 역량을 평가하는 시험을 나눠야 한다. 학생은 자신의 길에 맞는 시험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은 그 결과를 정교하게 반영해야 한다. 셋째, 공정한 기회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수능 한 장의 성적표가 인생을 좌우하는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배움의 과정, 도전의 기록, 지속적인 성장을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 한 번의 시험이 아니라, 꾸준한 학습이 빛을 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서울·경기 학생들의 토론은 귀한 결론을 남겼다. 공정한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는 합의다. 존폐의 논쟁을 넘어, 교육의 본질로 접근한 것이다. 정치권과 교육 당국은 이 목소리에 응답해야 한다. 학생들은 이미 답을 내고 있다. 이제 어른들이 결단할 차례다. 수능은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공정은 지켜져야 한다. 시험은 사라져야 할 것이 아니라, 새로 태어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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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수능, 존폐 논쟁 넘어 공정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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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건양사이버대 총장, 한국원격대학협의회 14대 회장 선임
- [교육연합신문=우현호 기자] 이동진 건양사이버대학교 총장이 지난 8월 22일 열린 한국원격대학교육협의회(원대협) 정기총회에서 14대 회장에 선임돼 9월 1일부터 2년간의 임기를 시작한다. 이 총장은 국회 입법보좌관으로 15년간 활동한 경력을 보유 교육 혁신에 기여할 적임자이며, 학생 맞춤형 학사제도와 교육 철학 실천, 사회 공헌을 통한 디지털 교육을 주도하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경험과 넓은 인적 네트워크가 '원대협법' 통과 추진에 실질적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원대협은 작년부터 원대협법 추진위원회 활동을 통해 사이버대학을 법적 지위를 가진 교육 주체로 인정하려는 시도로, 18대 국회부터 지속적으로 발의됐으나 본회의 통과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회장은 인터뷰에서 “법안 소위 상정까지 진행된 후, 원활한 통과를 위해 필요한 절차를 차질 없이 밟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원대협법이 만능 열쇠는 아니다”며, 유학생 비자, 해외 학위 인증, 정부 교육 정책 논의 참여 등의 현안 해결을 위해 협의체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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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건양사이버대 총장, 한국원격대학협의회 14대 회장 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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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진상조사 보고서, 약속은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인천 특수교사 사망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지난 7월 24일 의결한 보고서 요약본 공개 시한은 7월 30일이었다. 그러나 인천시교육청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결국 위원 7명은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행정 절차 지연이 아니다. 한 교사의 죽음을 둘러싼 진상 규명 과정이며, 유족과 시민의 알 권리와 직결된다. 특히 유족에게조차 공개 지연 사유를 설명하지 않은 것은 교육기관의 기본 책무를 저버린 행위다. 교육감은 진상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특수교육 여건 개선을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의 첫걸음인 보고서 공개부터 미뤘다. 공개 지연의 명분으로 제시한 ‘법률 검토’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외부 검토를 맡긴 시점이 이미 시한을 넘긴 뒤였기 때문이다. 준비와 의지가 있었다면 충분히 기한 내에 처리할 수 있었을 일이다. 진상조사 보고서는 단순한 문서가 아니다. 교육계의 신뢰를 회복하고 특수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출발점이다. 보고서 공개를 미루는 순간, 의혹은 증폭되고 상처는 깊어진다. 인천시교육청은 더 이상 시간 끌기를 멈춰야 한다. 유족과 시민 앞에서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 약속은 말이 아니라, 기한을 지키는 행동으로 증명되는 법이다. 투명한 공개만이 교육청이 책임을 다했다는 최소한의 증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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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진상조사 보고서, 약속은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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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 보편교육, 이제는 ‘노코드’로 학교 현장에서 실현해야 할 때
- [교육연합신문=김수랑 기고] 전 세계적으로 생성형 AI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교육 현장은 ‘AI 보편교육’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 교육부 역시 2025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초·중·고 전 학년에 AI 및 소프트웨어(SW) 교육을 확대하고, 모든 학생이 디지털 소양을 갖추도록 정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나는 교사들의 목소리는 다소 다르다. “시간은 늘었지만, 학생 수준차가 너무 크다”, “블록코딩만으로는 실생활 문제 해결과 연결이 안 된다”, “코딩 문법에 막혀 창의적인 시도를 못 한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AI 보편교육이 ‘AI 사용법 익히기’ 수준에 머물 위험이 크다. AI 보편교육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학생 모두가 디지털 소양을 갖추고, AI 시대에 필요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이 교육의 핵심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한다. 학생들의 수준 차이가 크고, 블록코딩으로는 실생활 문제 해결과의 연결이 부족하며, 코딩 문법 학습이 진입 장벽으로 작용해 창의적인 시도가 제한되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소프트파워가 개발한 ‘스마트메이커 AI+’는 국산 교육용 노코드 플랫폼으로서, 순수 한글 기반에 완전 노코드 방식이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프로그래밍 문법 학습 없이도 앱, 웹, AI 콘텐츠를 직접 제작할 수 있으며, ChatGPT, Gemini, 네이버 하이퍼클로바X 등 다양한 AI 서비스와도 연동된다. 교과 프로젝트에 즉시 적용 가능한 것이 큰 강점이다. 이미 전국 72개 대학과 1,300여 개 초·중·고교에서 스마트메이커 AI+를 활용하고 있다. 정규 수업뿐 아니라 자유학기제, 창의융합 프로젝트, 방과 후 수업 등 다양한 교육 활동에 적용되며, 교사 연수 역시 2~3일이면 충분해 프로그래밍 비전공 교사도 바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현장에서의 적용 방안은 명확하다. 정규 수업에 통합하고 자유학기제와 정보 과목 실습에 활용한다. 방과 후 활동과 동아리 운영에 투입하며, AI·데이터 활용 프로젝트에도 적극 적용한다. 교육청 주관 공모전과 캠프 프로그램과도 연계할 수 있다. 기대 효과도 크다. 학생들 간 수업 격차를 해소하고, 모두가 동등하게 참여한다. 실생활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산출물을 제작하며, 교사의 수업 부담을 줄인다. 예측 불가능한 오류나 문법 문제 없이 수업을 운영할 수 있어, 농산어촌과 소규모 학교에서도 동일한 품질의 AI 교육을 구현할 수 있다. AI 보편교육은 단순한 도구 사용법 교육이 아니다. 학생이 문제를 정의하고 데이터를 활용해 해법을 설계하고 구현하는 과정이다. 노코드 솔루션은 이러한 교육 철학을 실제 학교 현장에서 실현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다. 교육청과 학교가 이를 적극 도입하고, 교사 연수와 커리큘럼 개발에 연계한다면 AI 보편교육은 선언적 정책이 아닌 현장 혁신으로 완성될 것이다. ▣ ㈜소프트파워 김수랑 대표 ◇ 現 ㈜소프트파워 대표이사 ◇ SW창의교육연구소 소장 ◇ 슬기로운 코딩 교육 위원장 ◇ 미래부 노코드 기반의 앱만드는 강의 초빙교수 ◇ 삼성전자, 하나카드, 포스코 등 대기업 임직원 대상 DX(Digital Tranceformation) 강의 ◇ 카이스트, 서울대대학원, 연세대 등 다수 대학에 노코드 기반의 앱만들기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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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 보편교육, 이제는 ‘노코드’로 학교 현장에서 실현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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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현장체험학습의 위기, 교사에 책임 전가해서는 안 된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현장체험학습이 사라지고 있다. 교사들은 불안에 떠는 중이고, 학생들은 추억을 잃고 있다. 학부모들은 안타까워한다. 교실 밖 배움의 기회를 누구도 반기지 못하는 현실이 되었다. 서울 광진구의 한 초등학교는 유적지 탐방 프로그램을 주말에 진행한다. 외부 단체가 운영하고 학부모가 동행한다. 교사는 빠졌다. 교사의 안전사고 책임을 피하려는 결정이다. 교장은 “부담을 덜기 위한 방안”이라 했다. 이해는 간다. 하지만 이 모습은 교육의 후퇴다. 문제는 교사의 법적 책임이다. 2022년 강원도에서 발생한 학생 사망 사고 이후, 교사들은 공포에 떨고 있다. 과실치사로 기소되고 유죄 판결까지 받았다. 그 충격은 컸다. 법 개정으로 면책 조항이 추가됐다지만, 현장은 여전히 불안하다. ‘안전조치 의무’의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무엇을, 어디까지 해야 면책되는가? 누구도 답하지 않는다. 결과는 자명하다. 체험학습은 줄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통계에 따르면 현장체험학습은 지난해 대비 36% 감소했다. 교육의 일부가 사라진 것이다. 교사들은 교실에 머무르고, 아이들은 체험 없는 배움을 받고 있다. 탈춤 공연, 타악기 연주처럼 ‘찾아오는 체험’이 대안이 되고 있다. 이것이 과연 현장체험인가? 교사도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방식이 체험학습의 철회여서는 안 된다. 법은 현실을 담아야 한다. 면책 요건은 명확해야 하고, 지원 인력은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교육부는 뒷북으로 “응급조치 시 면책” 조항을 검토 중이라 한다. 이미 늦었다. 교사들은 결정을 내렸고, 학부모와 학생은 결과를 겪고 있다. 현장체험학습은 단순한 나들이가 아니다. 살아 있는 배움이다. 공동체 경험이자 감정의 성장이다. 이를 포기하는 교육은 온전하지 않다. 안전과 교육은 맞설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두 가치를 함께 지켜야 한다. 교사의 책임을 명확히 줄이는 법 개정이 시급하다. 체험학습의 부활은 법과 제도의 뒷받침에서 시작된다. 책임은 교사에게만 있지 않다. 교육을 가능케 할 사회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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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현장체험학습의 위기, 교사에 책임 전가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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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왜? 우리는 독립적이지 못하고 종속적인가?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오늘 아침에도 내 발걸음은 텃밭을 향한다. 몸은 걷기를 바라고 눈을 텃밭의 실태를 보고자 한다. 그래서 아침 시작을 이렇게 하는 것을 나의 ‘계율’로 삼고 지킨다. 기후 변화가 심하다는 말만으로는 폭염과 폭우의 깊고 큰 뜻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타들어 가는 식물의 모습이 폭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고, 산사태로 고통받고 있는 시민의 복구 모습과 씻겨 내려간 농작물의 모습을 보고, 자식 같은 모습이라고 안타까워하는 농민들의 한숨에서 대통령과 지도자, 한 가정의 가장 마음과 몸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늠할 수 있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천재지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 줄 모르는 험난한 일을 자식에게는 이어가게 하고 싶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논밭을 팔아서까지 자녀들을 유학시겼던 것이리라. 흰 와이셔츠에 번지르르한 양복, 파리도 낙상할 정도의 눈부신 구두를 입은 자식의 모습을 그리며 밤낮을 구분하지 않고, 인간의 정성도 중요하지만 천재지변에 따라 성패가 결정되는 하늘 농사를 시키고 싶지 않았던 조부모님, 부모님 마음에 목이 맨다. 눈물이 맺힌다. 조부모님, 부모님의 뜻은 공부도 부모님이 농사일을 하는 것처럼, 실제 현장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보고 대응을 하고, 상황에 따라 조치를 달리하는 삶의 원칙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다가, 책상만을 잡고 사는 삶에서 지금부터 조금씩 세상일이 일어나는 곳을 찾아서 사는 삶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야 공부의 원칙을 깨닫는다. 모든 이론은 현장에서 시작한다.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는 말의 의미가 부모님, 조부모님의 뜻이었으리라. 그런데 요즈음 뉴스를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지도자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정치가를 만난 듯하여 내가 우주의 운행에 참여하고 있다는 책임감과 자부심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새롭게 역사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자가 정치가가 아닐까? 이런 정치가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이, 이런 정치인을 내 시대에 보고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한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것에 행복하다. 정치는 국민의 삶을 바꿀 수 있고, 삶을 바꾸는 것은 국민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며,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는 길을 내는 것이다. 어려운 경제와 민생, 급변하는 세계 경제의 파고 속에서 국익을 구현하고, 경제와 민생을 다시 일으키고 국민의 평안한 삶을 중심에 두는 길이어야 한다. 앞으로 정치가 국민 속으로, 현장 속으로, 국민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닦아야 한다. 그러나 시선이 높이가 높지 않고, 함량의 크기가 작고, 사람의 두께가 굵지 않고, 깊이가 깊지 않으면, 권력의 정점에 이루기 위해서 온갖 권력을 동원하여 사생결단으로 투쟁하고, 상대방을 적대시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에만 의지한다. 그것이 소위 적대적 공존이다. 적대적 공존의 폐해는 항상 상대를 제거하려는 것이 주목적이기 때문에 갈등을 키우는 방식으로 생존을 유지한다. 요즘 우리 정치인 중에는 나라의 부정적인 면만 부각하려고 태어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어쩌면 이 나라는 안중에도 없고, 국회의원 자리만 필요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게 더 문제다.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평안은 안중에도 없다. 오직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일만이 최고의 길이다. 그래서 대정부 질문의 날은 다음 선거를 위한 사생결단의 날이다. 지역 구민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선명성만 부각하고, 논리는 없고, 성깔이 묻어나는 낱말을 계속 반복하는 녹음기 질문을 한다. 문장은 반복되면 각인이 더 잘된다. 그래서 노래도 가사를 반복하는 구절이 자주 등장한다. 부정적인 면만 강조하는 사람들은 현실에 맞서지 않고, 대신 자신이 스스로 성공했으며,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정신 승리’인 ‘내로남불’, ‘부정적 사고’ 등 세상을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길을 간다. 이것이 아Q들이 걷는 실패의 길이다. ‘하고 싶은 공부’와 ‘해야 하는 공부’가 있으면 둘이 충돌하나요? 하고 싶은 것이 강렬하면 그것을 할 때 다가오는 지루함이나 조급함은 디 극복할 수 있다. 체력을 기르고 싶으면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한계의 수고를 견뎌내야 하는 것과 같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야 하는 일은 감내가 된다. 반대로 해야 하는 것만 있고 하고 싶은 것이 없으면 원하는 곳에 도달하기 어렵다. 그래서 간절하게 하고 싶은 것이 먼저다. 그래서 자기를 궁금해하는 자세가 기본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지를 묻는 태도 있는 상태에서 하는 공부가 좋은 공부다. 그것도 없이 그냥 지식만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는 꿈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문제다. 꿈은 내 안에서 솟아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자신을 궁금해하는 물음 던지기를 쉬지 않아야 한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에는 최고 권력자만 있었다. 권력의 정점에 이르러 권력을 누리려는 자만 있었다. 거기에 이르러 국민과 나라를 위해 어떻게 할까 하는 꿈이 없었다. 자신의 꿈이 이루어졌으니 더 이상의 꿈은 없다. 백성을 위해서, 국력을 기르기 위한 일은 내가 임명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는 것이 꿈인 사람은 대통령을 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당선된 뒤로부터는 할 일이 없어진다. 그러면 일은 수석들에게 맡기고, 개나 끌고 다니고, 좋은 안주 찾아, 좋은 술 찾아, 아첨하는 친구 찾아 비교하고 비난하고 이분법적인 사고에 젖어 자기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것이다. 이제는 다음에서 다음으로 꿈을 꾸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제대로 된 꿈 교육이 교육에서 일어져야 꿈을 꾸는 지도자,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행복한 국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꿈은 새로운 질서를 찾아 건너고 건너가는 자인 것이다. 대통령을 꿈꾸는 자는 ‘어떠한 역사를 만들고 싶은가?’라는 꿈을 꾸는 자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나쁜 사람을 나쁜 놈이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좋은 사람을 좋은 놈이라고 말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이제는 훌륭한 사람을 훌륭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갖어야 훌륭한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많은 경우 주요한 사안에 대해 내 마음에 드나 안 드나, 그게 좋은가 나쁜가 같은 기준으로 문제를 판단한다. 전쟁에 대해서도 그렇다. ‘전쟁은 나쁘니까 무조건 피해야 한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전쟁이 피하고 싶다고 피해지나요. 최근 우리 사회에는 전쟁에 관한 온갖 얘기가 오고 가는데, 그 수준이 너무 저열하고 천박해요. 전쟁에 반대하면 ‘종북’이고 찬성하면 ‘전쟁광’이고, 이제는 이런 이분법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본다. 인간이 지금까지 자기 존재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데 전쟁이 어떤 구실을 했는지 알게 되면 좀 더 깊고, 넓고,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국무회의를 국가 경영의 토론 장소로 만들고, 국가 경영의 최고 결정 과정을 진지한 토론을 통해서 결정하고, 책상에서 만든 국민 정책이 국민들에게 현장 변화를 가져오는 정치를 위해서, 장관이 자신의 정책을 국민들의 삶의 현장에서 듣고 수정하는 이런 정책을 펴고 국민에게 알려주는 政治家, 이제까지 보았는가? 보았으면 나에게 말씀해 주소. 대통령은 무엇이 되고,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을 살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우리가 조금만 겸손해도 우러를 수밖에 없는 인물들은 다 직업을 살지 않고 꿈을 살았다. 공자가 곡식의 출납을 맡아보던 위리(委吏)나 가축을 관리하는 승전리(乘田吏)가 되기도 했지만, 공무원이 되는 꿈을 꾼 적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위키백과는 다산 정약용을 문신이자 실학자·저술가·시인· 과학자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가 문신, 저술가, 시인,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꾼 적이 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다산의 꿈은 “나의 낡은 나라를 새 롭게 하겠다(新我之舊邦)”는 것이었다. 이제는 국민들이 답해야 한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 국민들이 해야 할 일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쓰신 ‘나의 소원’이라는 글에는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는 대목이 있다. 이런 나라가 바로 선진국이다. 이미 짜인 판을 벗어나 새로운 판을 짜고, 남이 세운 목표나 모범을 따라가는 데서 벗어나 스스로 목표와 모범이 될 수 있는 나라. 새로운 국무회의 진행, 통치는 남이 하던 것을 ‘따라 하는’ 정치가 아니라 현장에서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어떻게 하면 백성들의 배 두드리고 행복해하는 ‘요순 시대’를 꿈꿔볼까 하는 고민 속에서 싹이 튼다. 우리나라가 선진 국가가 아직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따라 하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 중의 이유다. 선진국이 되려고 하면 ‘따라 하기’에서 ‘먼저 하기’로 나아가야 한다. 생각이 앞서면 앞선 문명을 이루고, 앞선 문명을 이루면 앞선 국가가 되는 것이다. 이제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현재 교육이 생각을 키우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 ‘어떤 인재를 기를 것인가?’ ‘인재란 무엇을 말하는가?’ ‘지식인은 무엇을 말하는가’를 늘 자신에게 묻는 사람이 교육의 책임자가 되는 시대를 꿈꾼다. 생각이 물건을 만들고, 제도를 만든다. 하이데거가 ‘인생은 비교와 잡담 속에 망한다.’고 했다. 비교는 나를 잃어버리는 거고, 잡담은 이미 있는 내용을 이리 붙이고 저리 붙여가며 시간을 보내는 거다. 비교와 잡담을 멈추고 자신을 궁금해하는 기본을 묻는 시간을 많이 갖는 교육, 내가 열리고 가정이 열리고, 나라가 열리고. 미래가 열린다. ◇ 한자한글연구원장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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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왜? 우리는 독립적이지 못하고 종속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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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4세 고시, 배움이 아닌 불안의 시작
- [교육연합신문=사설] 서울특별시교육청이 유아 대상 영어학원 63곳을 적발했다. 이들 학원은 4세 유아에게까지 사전 시험을 요구했다. 반일제 이상으로 수업을 운영한 곳도 있었다. 하루 4시간 넘는 학습은 유아의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선행학습은 놀이보다 공부를 우선시하게 만든다. 이는 유아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왜곡한다. 레벨 테스트는 학습의 출발점을 경쟁으로 바꾼다. 부모는 조기 교육에 대한 불안을 느낀다. 학원은 이를 이용해 공포 마케팅을 벌인다. 경쟁은 점점 더 이른 나이로 확산된다. 결국 학습은 놀이를 대체하고, 아이는 놀 권리를 잃는다. 교습비 과다 청구, 과대 광고, 무단 시설 변경도 다수 적발됐다. 이는 유아 교육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교육은 상품이 아니다. 더구나 유아기는 인간 발달의 기초가 형성되는 시기다. 이 시기에 학습 중심 교육은 부작용을 남긴다. 집중력, 감정 조절, 사회성 등은 놀이를 통해 자란다. 그러나 학원은 시험을 통해 줄 세우려 한다. 4세 고시는 교육이 아닌 선발이다. 선발은 낙오자를 만든다. 유아기는 낙오와 경쟁을 배우는 시기가 아니다. 그 시기는 함께 자라고 함께 웃는 시기다. 평등한 출발선이 필요한 시기다. 학원은 이를 왜곡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행정처분을 내렸다. 이는 의미 있는 조치다. 그러나 일회성으로는 부족하다. 선행학습을 구조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유아기에는 놀이가 배움이다. 시험은 불안이다. 4세 고시는 교육이 아니라 불안의 제도화다. 국가와 사회는 이를 막을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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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4세 고시, 배움이 아닌 불안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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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교실 밖의 배움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교실 밖의 배움은 선택이 아니다. 필수다. 현장 체험, 동아리 활동, 야외 학습은 배움의 또 다른 얼굴이다. 지식은 교과서에만 있지 않다. 삶 속에 있다. 그러나 최근 교실 밖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 안전, 예산, 평가 중심의 정책이 그 이유다. 위험을 이유로 배움을 막을 순 없다. 통제는 배움을 가두고, 상상력을 말린다. 교실은 시작점일 뿐이다. 배움은 교실을 넘어야 살아난다. 아이들은 움직이며 배운다. 직접 보고, 듣고, 만지는 과정 속에서 깨우친다. 교실 안의 수업만으론 부족하다. 정답을 암기하는 것만으로는 사고가 자라지 않는다. 교실 밖 배움은 질문을 품게 하고, 사고의 폭을 넓힌다. 지식은 체험과 연결될 때 깊이를 갖는다. 경쟁 위주의 교육은 협력과 공감 능력을 빼앗는다. 교실 밖 배움은 공동체를 익히는 시간이다. 자연 속에서, 사회 현장에서 아이들은 진짜 삶을 배운다. 이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교사에게는 자율이 필요하다. 학생에게는 선택의 폭이 필요하다. 교육 정책은 통제보다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 안전은 강화하되, 배움의 길은 넓혀야 한다. 교실 밖 배움을 축소하면, 미래도 작아진다. 학교는 세상의 축소판이 아니라 세상과 연결되는 문이다. 그 문을 닫아선 안 된다. 열어야 한다. 넓혀야 한다. 아이들의 성장은 교실 밖에서 더욱 크게 자란다. 교실 밖 배움의 기회를 지켜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결단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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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교실 밖의 배움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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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남구문화재단, 구본호 대표이사 내정
-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부산 남구(구청장 오은택)는 지난 7월 14일(월) 부산남구문화재단 대표이사로 구본호 후보자를 내정했다. 구본호 대표이사 내정자는 8월 14일 창립총회에서 임명된 후 본격적으로 근무할 예정이다. ■ 구본호 후보자 주요 프로필 ■ ▲이름 : 구본호 (具本浩) ▲출생 : 1967년 1월 25일, 경남 밀양 ▲전문 경력: 시각 한국화 작가로 활동 BSCF 전자 아카이브 ▲동명대학교 겸임교수, TL갤러리 관장 등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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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남구문화재단, 구본호 대표이사 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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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고교학점제, 미봉책 아닌 근본 재설계가 필요하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고교학점제가 본격 도입되었다. 정부는 학생의 선택권과 책임교육을 내세운다. 그러나 현장은 고통을 호소한다. 제도는 취지와 현실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교육부는 제도를 유지하되 보완하겠다고 한다. 자문위원회를 꾸리고 개선안을 예고했다. 그러나 이 또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임시방편으로는 실패한 구조를 바꿀 수 없다. 고교학점제의 핵심은 선택이다. 하지만 입시 중심의 구조는 이를 무색하게 만든다. 학생은 결국 유리한 과목만 고른다. 진정한 선택은 없다. 불안은 커지고 탈락 공포는 현실이 된다. 교육의 목표는 성적이 아니다. 성장은 다름을 인정하고 가능성을 키우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고교학점제는 학생을 줄 세우는 또 다른 장치일 뿐이다. 교사의 현실도 외면할 수 없다. 수업은 늘고 행정은 쌓인다. 최소성취수준 보장은 교사에게 모든 책임을 넘긴다. 교원 확충 없이 책임만 지우는 방식은 부당하다.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도 크다. 정보 부족은 공포를 낳는다. 시스템은 복잡하고 안내는 부족하다. 선택과 평가, 대입까지 혼란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전교조는 폐지를 주장한다. 이는 단순한 반대가 아니다. 구조적 실패에 대한 경고다. 선택이 허상이라면, 제도는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제도 보완만으로는 부족하다. 고교학점제는 근본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 대입과 평가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제도도 무용지물이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제도다. 그러나 지금처럼 밀어붙이면 실패한다. 방향은 옳다. 그러나 현실은 준비되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점검이다. 실험이 아니라 검증이다. 보완이 아니라 전면 재설계다. 교육은 시범이 아니다. 실패의 대가를 아이들이 치르게 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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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고교학점제, 미봉책 아닌 근본 재설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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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시나요? '아무거나, 아무 말 대잔치'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친구들과 식사 시간이 가까워져서 식당으로 향하면서 한 친구가 ‘뭘 먹을래?’ ‘오늘은 내가 쏜다.’하며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다시 친구들을 돌아보면서 ‘뭐, 먹을 거야?’ 귀찮다는 듯이 ‘아무거나 먹어.’라고 한 친구가 말하자,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아무거나 먹자’라고 합창을 한다. 우리 민족은 ‘獨唱’은 부끄러워서 하지 않으려고 하고, ‘合唱’은 좋아하는 민족이라서 올림픽 축구에서 하는 ‘떼창’이 세계 축구인들로부터 인기를 얻어 ‘k-culture’로 피어나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 사람으로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고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지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욕과 식욕이 발동되거나 실현될 때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안주, ‘아무거나’를 아시나요? 이 말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현재 심리상태를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요즘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 부딪히면 반응이 직접적으로 바로 나타난다. ‘좋다, 나쁘다, 마음에 든다, 안 든다.’ 이런 반응은 주어진 상황을 자세하게 살피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에 맞으면 좋고, 맞지 않으면 나쁘다고 하는 것이다. 모든 게 귀찮다는 마음의 발로가 아닐까? 생각하는 데에는 힘이 들고, 힘이 드니까 하기가 싫다는 것이다. 생각은 네가 하고, 나는 그저 따라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훌륭한 삶을 보고 따라 사는 것도 의미가 있다. 태어나서 많은 말 중에서 ‘책 읽어라.’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지 않는가? 세상을 살면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많이 회자되기도 하고, 역설적으로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데 하지 않으니까 강조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말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감추기 위해서도 한다. 어느 한쪽 면만을 보려 하는 사람은 반쪽 세상을 보는 것이다.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가 困辱을 치르기도 한다. 상대방 말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말을 모르면 ‘적대적 공존’만 가능한 세상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잘 읽어야 한다. 하늘도 사람도 잘 읽어야 한다. 국가 경영자는 국민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국민의 마음을 읽으려고 하면 국민들이 사용하는 말과 문자의 뜻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나무를 우리는 죽(竹; 대 죽)이라고 읽는다. 여기서 ‘대’라는 말은 무슨 말이고, 죽이라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이며, 자녀를 낳을 때, 대문에 왜 ‘새끼’를 두르는지? 장례식 때, 상주들은 왜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머리에는 ‘새끼’를 두르는지를 알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겨레가 어떤 가치관으로 말과 문자를 만들었는지를 이해하고, 민족 공동체로서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 말로는 민심에 부응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하면서 당선이 되면 민심 따위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뻔뻔하게 구는 것은 왜일까? 당선되기까지 한 말은 ‘아무 말 대 잔치’ 대회에서 ‘아무거나’ 하는 그런 구태의 모습은 아닐까? 국가의 기둥은 국방과 조세이며, 운영 중심축은 정치와 교육이라고 한다. ‘이런 교육’에서는 ‘이런 정치’가 생겨나고 ‘저런 교육’에서는 ‘저런 정치’가 횡횡한다. 교육은 ‘어떤 사람을 키울 것인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공교육’은 신뢰를 잃은 지가 오래며, 교육의 정치화로 ‘교육’에 전념하는 지도자보다는, ‘학생’에게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표’와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치기’에 전심전력하는 교육 행정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문해력 신장 연수’ 한두 시간 하고 사진 찍었다고 문해력이 신장되는가? ‘체험 학습’ 한 번 했다고 체험 학습 가기 전과 후가 달라졌는가? 교육은 나라의 뿌리다. 뿌리가 튼튼해야 나라의 재목으로 자라는 것이다. 지식이 무엇이고 인재란 무엇인지 개념 정의가 학생들의 머리에 그려지지 않는 한, 아무리 ‘창의성’을 강조하는 연수를 한다 해도 공염불이 될 것은 뻔한 이치다. 요즘 장관 후보자 청문회를 보면, 사실과는 상관없이 내 편이니까, 다음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 내 자리를 위해서, 자기의 잘남을 과시하기 위해, 내 마음대로 질러버리는 것이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의 자질이고 품격이라는 생각에 미친다. 물론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다. 그 말은 국가의 정체성, 가치관, 인간관, 세계관 등을 생각해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전 국민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만이 유능하고 자질 있고 교양 있는 국회의원’이라는 것을 홍보하기 위한 자리인가 하는 답답함이 든다. 우리 청소년들과 나라를 위해서는 국민의 질이 높아져야 한다고 믿는다. 이제는 국민의 눈높이를 높여야 한다. 이제는 국가적인 인재가 국회로 모이는 제도를 생각할 때다. 국민들의 높이와는 별 상관이 없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될 수 있도록 일부러 만든 제도라는 사람들이 많다. ‘누구 편’인가에 따라 말하는 내용과 태도가 천양지차다. 요즘 국회의원들의 말에 대한 인식은 진짜로 ‘아무거나’, ‘아무 말 대 잔치’ 전국 대회를 시청하는 것 같다. ‘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국회의원들과는 특별히 관계가 없는 것 같다. 수신(修身)의 첫 번째는 말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왜 몸을 닦는가? 말을 담고 있는 것은 몸이기 때문이다. 말을 들을 때 몸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愛(사랑 애)’라는 글자의 음가는 ‘애’다. ‘아낀다.’는 말이다. 이 말에는 또 ‘사랑한다.’는 의미도 있고, ‘절약한다.’는 의미도 있다. 이 말은 자신만의 가치에 집착해서 자기 마음대로 마음을 지나치게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말을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의 이면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야 후환이 없다. 요즘 청문회에서 후보자의 결점을 밝히는 것을 독립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하는 국회의원의 모습을 보면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바꿔 말하면 그렇게 말함으로써 자신의 흑심을 감추는 교묘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남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지적 태도일 수가 없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왜 저렇게 말을 하지?’,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 거지?’하고 곰곰이 생각하고 자세히 살펴보는 태도를 갖추어야 세계의 주도 국가가 될 수 있다. 주위에서 ‘좋아’, ‘나쁘다’, ‘마음에 든다.’ ‘안 든다.’, ‘너는 안 돼’ 등의 말을 많이 본다. 생각이 없는 사람의 자기표현일 뿐이다. ‘남의 말 따라하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이 말은 철저히 인간 편에서 한 말이다. 강산은 어제도 변했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살아 있는 것은 변화를 겪는다. 생각도 변한다. 세상에 만들어진 모든 물건, 제도, 철학은 생각의 결과로 나온 것이다. 제도는 물건이 생산되어 흐르는 길을 만든다. 그 제도는 생각의 결과다. 공동체의 ‘문제’와 ‘불편함’을 볼 줄 알고 느낄 줄 아는 사람이 지식인이고, 그 문제와 불편함만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와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서 자신만의 길을 걷는 사람이 인재고 지도자다. 인재는 현재의 다음 단계를 꿈꾸고 거기에 몰입하는 사람이다. 『道德經』 제5장에 “말이 많으면 금방 한계에 봉착한다. 중을 지키는 것이 제일이다.”(多言數窮, 不如守中)가 나오는데, 말(言)은 하나의 체계, 하나의 내용으로 지속된다. 즉 ‘하고 싶은 말’이나 ‘하고 있는 말’만 내뿜어질 뿐, 말을 하면서 말하고 있는 다른 내용을 동시에 말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세계의 전체적인 국면을 말로는 포착할 수가 없고, 그런 의미에서 말은 제한적이고 유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말은 얼른 한계를 드러내고 궁색해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자신이 모두 빠진 말도 자신이 모두 들어 있는 말도 없다. 말은 자신의 한쪽 면만을 나타낼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매일 쉼 없이 읽는다. 책도 읽고, 사람도 읽고, 하늘도 읽고, 식물도 읽고, 동물도 읽는다. 즉 책을 읽지 않더라도 자기와 마주치는 모든 세계와 사건을 읽고 또 읽는다. 그래서 산다는 것은 ‘읽기’다. ‘오늘 뭐 할까?’, ‘오늘 점심에 뭘 먹을까?’하고 자신을 읽는 것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학(學)’은 ‘지(知)’여야 하지 않을까? 『論語』「學而」편 제1장, 16장, 그리고 제20편인 「堯曰」편을 보면, ‘知’ 자가 여러 번 나오는데, ‘안다는 것’은 내 안에 담아두려는 것이 아니라, 거듭거듭 삶에서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 『論語』를 20편으로 저술한 것도 『周易』20번째의 괘가 風地觀인 것도, ‘천하는 물론 우리가 대하는 사람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 ‘백성들의 삶이 어떤 줄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잘 보이는 곳에서 ‘보는 것’ 그것이 觀의 첫 번째 의미이지만, ‘본다.’는 것은 잘 보이기 위한 것이므로 ‘보이다.’라는 수동적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그것은 호상적 봄이다. 그래서 ‘본다.’는 말은 ‘읽는다.’는 말을 전제한다. 그래는 ‘안다(知)’는 것은 본 것을 끊임없이 살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지식인에게 중요한 요소는 곰곰이 살피고 생각하는 능력이다. 살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무거나, 아무 말 대 잔치’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思惟)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다.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나, 사유(思惟)하는 존재로서의 나는 누구인가? ‘내가 누구인지? 왜 사는지, 어떻게 사는 게 바르게 사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고, 타고르는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야말로 확실하고 영원한 생명의 경탄’이라 했다. 몽테뉴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찌하면 내게 진정 나다워질 수 있는가를 아는 일’이다 라고 했다. 데카르트, 소크라테스, 타고르, 몽테뉴가 한국에 와서 ‘아무거나’, ‘아무 말 대 잔치’ 이야기를 들으면 뭐라고 할까? 그래서 지금도 나훈아는 ‘테스 형’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생각 없이 무조건 따르겠다는 사회적 현상을 절절하게 표현한 ‘무조건’이라는 노래가 유행했나 보다. 인생은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하는, 즉 자신의 생각을 하나하나 펼쳐나가는 과정이지 않는가? 자신의 인생을 남에게, 남이 생각한 대로 살겠다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들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세계는 한순간도 멈추거나 고정되지 않는다. 한국인이 생겨날 때부터 있었던 ‘아무거나’는 왜 변하지 않을까? 인문적 통찰이란 ‘조짐을 읽는 능력’이다. 그 조짐을 알기 위해 옛날부터 ‘점’을 쳤던 것이다. 말은 ‘말’이다. 즉 ‘끝’을 말한다. 말을 잘하면 끝이 좋고, 말을 잘 못하면 ‘끝’이다. ‘아무거나’, ‘아무 말 대 잔치’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아닌지? ◇ 한자한글연구원장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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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시나요? '아무거나, 아무 말 대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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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학부모 숙제’된 수행평가, 근본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수행평가는 본래의 취지를 잃었다. 학생의 창의력과 사고력을 평가하려던 제도였다. 지금은 부모의 능력을 재는 지표가 되었다. 교육부는 수행평가를 수업시간 내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늦었지만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땜질식 처방으로는 부족하다. 핵심은 수행평가의 본질을 되묻는 일이다. 한 학기에 수행평가를 50번 보는 경우도 있다. 과제는 끝도 없이 늘어난다. 학생은 밤을 새워 과제를 수행한다. 부모는 자료를 찾고, 발표 자료를 만든다. 수행평가는 가정의 배경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수행평가는 학생의 능력을 평가하지 않는다. 저글링, 노래 편곡 같은 과제가 등장한다. 논문 수준의 과제를 요구하기도 한다. 고등학생에게 무리한 요구다. 학원이나 과외가 개입하는 구조가 생겨났다. 지금은 그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교육부 개편안은 형식적이다. 수업시간 내 평가만으로는 부족하다. 암기식 과제는 여전하다. 수준 낮은 평가 기준도 그대로다. 외부 도움을 차단하는 방안도 없다. 지필고사를 보완하려던 제도가 오히려 더 큰 부담을 만들었다. 교사는 평가에 매몰된다. 학생은 창의보다 노동에 지친다. 이제는 평가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양을 줄여야 한다. 질을 높여야 한다. 과목 전문가가 평가를 설계해야 한다. 평가 기준을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 수행평가는 학습의 과정이어야 한다. 결과가 아니라, 성장의 흔적을 보아야 한다. 교육은 학생이 중심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과잉 수행평가는 교육을 해친다. 교육부는 지금이라도 본질을 돌아보아야 한다. 평가는 학생을 괴롭히는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 평가는 배움을 여는 열쇠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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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학부모 숙제’된 수행평가, 근본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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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時中? ‘만물은 각자 자신의 시간을 산다.’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할 때인가?’,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사람이란 무엇인가?’ ‘사람이란 어떠해야만 하는가?’라는 물음이 요즘 나를 맴돈다. 나이가 들었다는 말일 것이다. 뭔가 인생을 정리할 때인가?라는. 요즘 폭염으로 만물이 고통을 호소한다. 집 근처 텃밭에 생각이 미쳤다. 식물이 바짝 타들어 가고 있었다. 식물은 움직일 수도 없으니 안타까웠다.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텃밭의 크기가 작아서 관정 시설도 없다. 이 식물에게 생명수를 주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수레에 물통을 싣고 냇가로 가고 오기를 6회를 했다. 옛날 같았으면 ‘왜 이런 고생을 하지?’라고 했을 것은 같은데, 타 들어가는 식물이 나에게 ‘時中을 아는가?’라고 하는 것 같았다. 옛날에 어른들이 하는 말이 떠올랐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단다.’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후회된 일 중의 하나가 나는 ‘교원 노릇을 제대로 했을까?’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이 많다. 교재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을까? 교재를 문자적으로만 익히고, 그것이 사회적인 삶과 결부되어서 숙성되지 못한 채 입에서 입으로 전달하기만 했던 것 같다. 특히 우리말의 기원과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교단에 섰던 것이 너무나 아쉽다. 더 나아가 漢字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 없이 교단에 섰던 것이 후회스럽고, 나와 함께 했던 제자들과 동료들에게 부끄러움이 앞선다. 나만 ‘때’가 있는 게 아니라 내 제자들에게도 ‘때’가 있는데, ‘때’를 모르고 ‘때’를 가르친 후회가 엄습한다. 유학의 4대 경서중 하나인 중용(中庸)에 대하여 일반 사람들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가운데에 서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중용은 화살이 과녁에 정확히 꽂힐 때의 적중(的中)과 같이 딱 들어맞음을 의미하는 중(中)과, 떳떳함을 의미하는 용(庸)의 조합으로, 모든 일에 떳떳하게 들어맞는 진리를 뜻한다. 그리고 이 같은 중용의 도(道)를 원리와 상황 등 때에 맞춰 알맞게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을 시중(時中)이라 한다. 초등학생 시절, 모내기 철이 되면 농부들이 자신의 논에 먼저 물을 대기 위해 크게 싸움박질하는 것을 많이 봤다. 당시에는 어른들이 왜 싸움을 하지? 말로 해야지, 어른답지 못하다는 생각만 했었다. 이제 퇴직을 하고 농사를 짓다 보니, 벼농사는 日照量이 벼 생육과 수확량에 비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알고, 역시 ‘때에 맞게 배워야 해’라는 생각이 든다. 孔子의 好學 정신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는 실감이 난다. 품종에 따라 씨뿌리고 김매고 거두고 저장하는 시기도 다 다르다. 중용 제20장에 “혹생이지지 혹학이지지 혹곤이지지 급기지지일야(或生而知之 或學而知之 或困而知之 及其知之 一也)”라는 말씀이 있다. 어떤 사람은 날 때부터 알고, 어떤 사람은 배워서 알고, 어떤 사람은 고난을 통해 알게 되는데 마침내 알았다는 점에서 보면 하나라는 의미다. 공자는 어느 유형에 속할까요? 술이편에 답이 있다. “나는 나면서부터 알았던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그것을 구한 사람이다(子曰 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 자왈 아비생이지지자 호고민이구지자야).”라는 것이다. 공자는 15세에 천명을 궁구(窮究)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학문에 전념하여 50세에 천명을 깨달았습니다. 時習은 時中이어야 한다. 시중은 타이밍(Timing)과 가장 가깝다. 이 세상에 아무리 좋은 말이나 행위도 타이밍을 놓치면 아무런 뜻이 없어진다. 모든 것이 빨라진 시대에 그때 그 상황에 따라 적절히 행동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타임(Time) 자체보다 타이밍(Timing)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결국 시중이란 영혼의 민감성이요 정신의 순발력이기에, 우리 시대에 절실히 요구되는 가장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삶의 지혜이다. 시중은 유학 실천 방법이다. 이는 군자의 중용은 군자로서 시중한다(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라는 대목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선비는 고정된 틀에 얽매이거나 흔들리지 않고 항시 겸손한 마음으로 때에 맞추어 행동해야 한다. 아무리 심오한 학문과 원리를 터득했다 해도 말과 행동이 때에 맞춰 적절히 쓰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낱 머릿속의 지식으로만 머무를 뿐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는 자신만의 시간을 살다 간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시간을 살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비교에 빠지고, 다른 사람이 조금만 잘 나가도, 다른 사람이 조금만 앞서도 속이 터지고, 상대를 비난하는 데 모든 것을 건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앞선 것이 생기면 우쭐대고 집안 자랑, 동문 자랑 등에 우쭐한다. 동물을 보면 막 태어나서 걷는 송아지도 있고, 1년이 다 되어야 걷는 인간도 있다. 老子 『道德經』 8장에 나오는 말이다. ‘動善時’, ‘動善時’라는 말은 때에 맞게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청명이 되면 논밭을 갈고 곡우가 되면 씨앗을 뿌려야 된다. 이때에는 군사를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모두 때에 맞게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환을 보자. 자신의 계절이 지나면 그대로 뒤로 하고 다음의 길, 다음의 때로 간다. 자신의 열매를 뒤로 하고 그저 또 다른 길을 갈 뿐이다. 꽃피는 시기도 천차만별이다. 그래서인지 각자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표현한다. 그래서 자연은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가 보다. 그래서 老子는 인간의 길을 자연의 운행 원칙에서 찾았을까? 봄이 봄 자신의 성취와 정당성에 취해 여름으로 넘어가기를 거부하면, 봄 자신이 반동으로 전락할 뿐 아니라 전체 자연의 진화를 망친다. 그래서 쓰임을 받는 시간도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일찍 취업도 하고, 다른 어떤 사람은 조금 더 늦은 시기에 직장을 잡는다. 늦공부 터졌다는 말도 한다. 모든 식물이 같은 시기에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서로 햇빛을 더 받기 위한 싸움과 질투는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모든 것에 ‘자기만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이 사회와 만물의 삶은 어떤 모습이고,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습관은 時中의 결과다. 시간의 계획적이고 지속적 활용은 습관을 만든다. 습관은 바로 그 사람이다. <타이탄의 도구들>의 저자 팀 페리스는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에 관한 책을 썼는데, 성공한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 정리를 정성스럽게 한다고 말했다.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큰 차이를 만드는 지점이다. 감사 일기를 쓰는 것은 아주 작은 행동이지만 매일매일 실행하는 즐거움을 얻게 되어 긍정적인 사람이 될 확률이 높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좋은 습관은 좋은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좋은 습관을 갖기 위해서는 아는 것을 실천하고 행동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생각이 많으면 습관으로 만들기 어렵다. 습관은 처음에는 못하더라도 오랫동안 해서 몸에 배어야 한다. 습관은 생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행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좋은 방향으로 나를 변화시켜야겠다는 마음이 서면 뭐가 되었든 따지지 말고 바로 시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첫 시작이 어렵다. 거창하고 완벽하게 하려고 생각하지 말고,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할 수 있다. ‘습(習)’은 배운 것을 익혀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아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행동과 실천으로까지 연결되는 것이 ‘습’이다. ‘관(慣)’은 생각에 의해 몸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한번 해봤다고 해서 '관'이 되지 않는다. 자는 시간,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일어나자마자 하는 행동, 책을 읽는 행동, 운동, 글쓰기, 말하는 태도, 인사하는 것 등 인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이 '관'이다. 習慣은 時中의 결과다. 지도자에게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상황에 맞게 적절한 결정을 하는 것이다. 화를 내야 할 때 적절히 화를 내거나 슬퍼해야 할 때 적절히 슬퍼할 줄 아는 것처럼 상황에 맞는 적절한 판단과 행동을 시중지도(時中之道)라고 한다. 상황(時)은 늘 변한다. 상황 변화에 따라 가장 균형 잡힌 최적의 황금률(中)을 찾아내는 것이 시중(時中)이다. 여기서 중(中)은 정해진 실체가 아니다(中無定體).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는 것이다(隨時而在). 옛 어른들은 ‘사람은 때(時)를 잘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나서야 할 때가 있고, 물러나야 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고, 침묵해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사람은 늘 때를 알아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용적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은 자신과 사회를 책임질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다.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가? 어떤 사람을 만드는가가 핵심이다. 다른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일에 분개하면서 정작 자신도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일을 탓하지 않고 묵묵히 봉지 하나를 들고 집을 나서는 사람도 있다. 환경 보존을 외치면서 일회용 컵이나 접시를 마구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철저히 자제하는 사람도 있다. 주장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각각이 따로 있는 사람도 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달라지는가? 그 사람만의 바탕이 다르기 때문이다. 왜 바탕이 다른가? 자신의 시간을 제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공자는 말한다. 行己有恥를 가르치는 것이 인간의 출발이고 時中의 결과다. 자기 시간의 적절한 활용이 답이다. 인간으로서 제대로 사는 일은 時中을 자초하는 일이다. ‘이런 교육’에서는 ‘이런 사람’이, ‘저런 교육’에서는 ‘저런 사람’이 태어난다. ◇ 한자한글연구원장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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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질문하는 교실, 세계를 향한 첫걸음
- [교육연합신문=이재웅 기고] 부산 해운대구에 위치한 좌동초등학교가 최근 세계적 교육과정인 국제 바칼로레아(IB) 초등 프로그램(PYP) 인증을 공식 획득하며, 대한민국 공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인증은 단순한 학교의 성취를 넘어, 공립학교에서도 세계 수준의 교육이 가능함을 보여준 상징적 사례로 평가된다. 좌동초는 지난 2년간 관심학교 및 후보학교 과정을 거쳐 교사 연수, 커리큘럼 재구성, 학부모 협력 체계를 구축하며 학교 전체가 변화하는 과정을 실천해 왔다. IB는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글로벌 교육과정으로, 창의적 사고와 탐구 중심 학습, 다문화 감수성을 핵심 가치로 한다. 그간 일부에서는 ‘귀족 교육’으로 여겨졌지만, 좌동초의 도전은 공교육 내에서도 IB가 실현 가능함을 입증한 첫 사례로 주목받는다. 좌동초 교실에서는 "왜요?"라는 학생의 질문이 허용되고, 토론과 사고가 중심이 되는 수업 환경이 조성되었다. 교사는 지식 전달자가 아닌 학습의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학부모 또한 달라진 아이들의 모습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학부모는 “점수를 위한 공부가 아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됐다”며, “IB는 단지 수업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학교 전체가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학교는 교사 연수의 정례화, 학부모 대상 설명회, 서포터즈 활동 등을 통해 가정과 함께하는 교육공동체 모델을 정착시켰다. 그러나 좌동초의 성과가 전국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첫째, 탐구 중심 수업을 설계·운영할 수 있는 교사의 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 둘째, 연수비, 평가비용, 자료 개발 등 재정적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창의성과 사고력을 중시하는 IB 교육과 입시 중심의 현실 간 괴리를 해소해야 한다. 이는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지만, 좌동초의 사례는 충분히 넘을 수 있는 벽임을 보여준다. 좌동초의 IB 인증은 한 학교의 성공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부산을 시작으로 전국 학교들이 새로운 교육 흐름에 동참할 수 있는 신호탄이다. 학생의 질문을 소중히 여기는 교사, 변화를 지지하는 학부모, 이를 뒷받침하는 교육청의 정책적 지원이 조화를 이룬다면, 대한민국 공교육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정답을 말하는 교육에서 질문을 기르는 교육으로, 성적을 올리는 교육에서 사고를 키우는 교육으로, 경쟁 중심의 구조에서 공동체 속 배움으로 나아가는 전환점. 좌동초의 도전과 성취는 대한민국 공교육의 미래를 밝히는 이정표다. 이 작은 교실에서 시작된 “왜요?”라는 질문이 더 많은 학교로 퍼져나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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