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7(화)
 

 [교육연합신문=文德根  漢字語敎育硏究所長]

우리의 공통적인 관심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의 길이고, 어떻게 사는 길이 행복으로 가는 문일까?’의 문제로 귀결될 것 같다. 그런데 ‘행복’의 문제를 찾고 고민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문제로 여기지는 세태가 되어가고 있지는 않는가? 

 

그렇다. 문제를 해결되어야 할 심각한 현상으로 보지 않고, 그저 문제로 남겨두는 사람들의 인식이 큰 문제인 것 같다.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터인가 문제를 인식하고 그 원인에 대한 분석과 해석은 다음의 문제로 남겨두고, 또 다른 문제에 떠밀려서 입과 발을 옮기는 세태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사람이 가야 할 길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것 같다. 그러나 그 길에 대한 根源的인 물음에 대한 답변을 가르쳐 준 사람도, 학교 교육도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한 번 가보고, 그 다음 사람이 좋아서 가고, 또 계속해서 사람들이 좋다고 가야 바른 길이 되는 것이다. 수 천만 년 동안 다니고 살아왔던 길, 생각하고 말하며, 발로 옮겨왔던 그 길이 ‘道’인 것이다. 수 천 년 동안 변함없이 사람의 마음에 담겨 있고, ‘지금도 이렇게 살아라.’고 변함없이 외치는 그 길이 ‘古典’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머리가 희끗해져서야 가능한 세상이 되어버린 것은 아마 교육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등한시 하는 위정자들의 책임이 더 막중하다 할 것이다.

 

위정자들의 이러한 작태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른들을 믿을 수 없는 존재로 희화시켜 버렸다. 즉 體에 대한 교육에서 벗어나 겉모습만 강조하는 用의 교육으로 변질시켜 버린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현실을 보지 않으려는 사회적 인식이 더 팽배함에 큰 슬픔이 담겨 있는 것이다.

  孔子는 삶의 자세를 한 말로 ‘吾道는 一以貫之.’라 하였다. 이는 농경문화의 사상적 토대인 동시에 우리 문화의 기초․기본인 것이다. 이러한 철학적 바탕 위에 있으면서 말로는 一以貫之하면서, 실제로 一以貫之란 무슨 뜻인지? 거기에 담겨 있는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해가 뜨고 지면서 하늘의 기운을 받아 만물을 생성하는 것이 자연이다. 즉 겨울에 잠장되어 있던 씨앗이 봄이 되면 싹이 트고, 生長하며 가을이 되면 익어서 저장을 하게 된다. 또 봄이 되면 새싹이 나오는 과정이 一貫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천지만물은 陰陽消長과 盈虛消息의 理致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해가 뜨고 지면서 四季節이 생겨나듯, 인간의 삶도 아동기․청년기․장년기․노년기를 거치게 된다는 순환의 의미를 깨닫고 거기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은 순환하더라도 자신은 언제나 거기에 있을 것이고, 그럴 것이라 믿고, 그러한 인생을 꿈꾸는 우리의 모습은 무엇을 말하는가?

 

바뀌고 바뀌는 때에 맞추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이치를 일찍 깨달은 사람들이 있다. 伏羲氏․文王․周公․孔子인 것이다. 성인이란 모든 사람들이 천지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면 모두가 행복하다는 것을 괘와 글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들은 聖人의 卦와 글을 읽고 그대로 따라서 하면 되는 것이다. ‘孝’라는 의미도 천지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도리를 본받아서 그대로 하는 것을 이름한 것이다.

 

이러한 일관된 이치를 담고 있는 글이 漢字語로 되어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理致를 누가 강요해서 배워야 하겠는가? 온통 세상이 불통의 문제로 다투게 되고, 심지어는 폭력에까지 이르고 있으며, 위정자들이 민심을 모르는 문제도 결국은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글의 배움과 이해, 실천이 엇박자를 나타내고 있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다. 

‘海’라는 글자를 두고 대부분의 현장에서는 ‘바다 해’라고 읽고 쓰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한자는 괴로운 것이라는 깨달음을 주고, 배움에서 떠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수업은 뜻글자를 소리글자 방식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광경이다. 수업이란 느낌과 감동 그리고 다짐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조건 외우기만 하는 수업에서 이러한 감동과 다짐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바다라는 뜻을 가진 ‘海‘’는 ‘氵(물 수)+人(만물)+母(어미 모)’ 모임으로 이루어져, 낱개의 글자가 갖는 의미를 연결해서 자신만의 생각으로 가다듬어 보는 창작의 과정을 통해, 선현들의 사고와 자신의 생각을 비교해보면서 같음과 다름을 배우게 되고, 본받게 되는 과정으로 이어지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 속에서 ‘물은 만물의 어머니다. 즉 물은 만물의 근원’이라는 사고의 틀을 형성하고 그리고 물을 실제로 관찰하면서 물의 모양과 흐름을 통해 물의 기능을 유추해서, 자신의 삶에 적용을 반복하면서 물을 이해하고, 또 다른 사물과 견주어 보는 과정이 수업인 것이다.

 

우리말의 70%, 학술용어의 90% 이상이 漢字語로 이루어졌다고 말만 하는 어른이 우리 아이들이 본받아야 할 어른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우리말의 어원이 漢字語임을 인정하고 한자․한글 공용 정책으로의 전환을 주장해야 하는가?

 

아직 교육현장에서도 우리말의 어원을 찾고 제대로 된 낱말의 뜻을 찾는 교육 방법의 전환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훈과 음을 외우기만 하는 漢字指導方法은 우수한 우리 아이들을 愚民化의 길로 내몰고 있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현재 방과후학교 한자 지도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한자는 周易의 卦와 陰陽五行에 입각하여 만들어진 글자라는 것을 알고 지도하고 있는지? 국민 모두가 깊이 고민해야 할 때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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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왜 漢字이고 漢字語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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