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7(화)
 

 [교육연합신문=文德根 漢字語敎育硏究所 代表․敎育學博士]

자녀를 제도권의 학교에 보내는 것은 희망의 발걸음일까? 국민의 의무라 하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 식’일까? 막연하나마 부모의 바람과 함께 자녀의 미래 설계도가 여러 가지 색으로 칠해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취학을 앞둔 부모들은 설렘으로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라고들 한다. 이러한 바람과 설렘이 정책으로 담아지는 나라는 없는 것일까? 

 

아이들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고, 그것도 부족하여 학원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것은 아이들의 소망일까? 학교 교육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일까? 정책 당국과 일선 교육 책임자에 대한 불신일까? 나라의 교육 철학에 대한 불만의 몸부림일까?

 

학교에서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활동은 ‘學習’이라는 용어로 이루어진다. 學習이라는 낱말은 황하문명권의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보았을『論語』學而 編 제1장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을 聖人들이 왜 중요시하였을까?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라는 말처럼 배웠으면 반드시 때에 맞춰 실천하여 함께 학습의 즐거움을 말하고 느끼는 학습의 과정인 것이다. 즉 학교에서 바르게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면 집에 돌아가서 “어머니, 학교에 잘 다녀왔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자. 어머니는 “와! 우리 아이가 학교에 가서 배우더니, 이렇게 달라졌네.” 하며 아이를 칭찬하고 아이는 학습의 기쁨을 만끽하는 것이다.

 

그래서 배워서 아는 것은 말과 글로 표현해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야만이 정확한 의미를 깨닫고 전할 수 있고, 내가 의도한 말이 다른 사람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이치에 따라 표현해야하기 때문이다. 공부한 것을 제대로 아는지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옆 사람 등에게 말로 해보고, 더 나아가 글로 써보는 것이다. 그래서 말하기와 글쓰기는 학교 교육에서 절대 필요한 학습인데, 현재 학교에서는 어떠한가? 
 
책에서 읽거나 배운 것을 삶에서 실천하지 않는다면 배웠더라도 배운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독서를 하고 책으로 공부를 해도 말과 글에 변화가 없다면 배우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아이들의 언어와 행동이 긍정적으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가르치지 않은 것이라는 의미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책의 내용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가르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세태를 그냥 지나치는 일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을 볼 수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가르치는 사람이 가르침의 본질을 몰랐던지 아니면 가르치는 사람의 자질과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일 것이다.

 

더 나아가 교육은 깨우쳐 알라고 하는 것인데 무조건 암기위주의 교육만 하고 있다면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 깨우치게 하려면 뜻, 즉 이치를 알게 해야 깨우치는 것이다. 이치는 간단한 것이다. 해가 뜨고 달이 지듯이 단순한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따르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모든 사람을 같은 거리의 마음(恕)으로 상대해야 한다. 그러며 그들의 마음의 중심이 나에게로 오는 것(忠)이다. 그래서 먼저 恕고, 나중에 忠인 것이다. 그래서 좋은 數를 찾는 다는 것은 바르게 나아갈 길을 찾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를 또는 어떤 것을 잘 안다고들 흔히 말한다. 그러나 다음에 큰 고통을 겪고 난 후, 안다고 했던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을 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겉모습만 보고, 드러난 것만 보고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잎과 열매가 떨어진 나무를 보고 ‘나무 이름’을 아는 것,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땅에서 봄이 되면 ‘새싹’이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 보이지 않는 가운데에서 볼 줄 아는 분별 능력이 진정으로 아는 것(知)이다. 知者라는 말은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을 일컫는 것이다.  

 

學習이나 工夫는 결국인 ‘寬以居之’․‘仁以行之’하는 것이다. 그래서 배운 사람은 관대하고 너그럽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것도 스스로 힘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整理․整頓을 잘 해야 한다. 整理․整頓을 한다는 것은 여러 모로 헤아려본다는 것이다. 공부는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를 배우는 것이다. 이치란 왜 그렇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안의 모습이고, 사람이 움직이는 자극과 반응이며, 천지자연이 순환하고 반복하는 작동원리를 말한다. 이러한 이치에 근거하는 문자가 바로 한자이다. 한자는 太極의 원리와 陰陽五行, 井田法의 이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뜻글자인 한자(한문)의 의미를 담아서 똑똑하고 창의적인 국민을 양성하려면, 먼저 세상 이치, 즉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깨우치게 해야 한다. 사물의 이치를 본뜨거나 음양의 부호, 卦象, 정전법의 원리에 의해서 만들어진 한자의 원리를 모르면 뜻글자는 이해할 수 없으며, 황하문명권의 문화, 철학과 역사의 이해도 쉽지 않다. 배우고 읽는다고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漢字를 한글로 읽고 있는 우리나라의 文解力이 세계에서 꼴찌를 하고 있는데도, 이러한 사실을 공표도 못하고 있는 정부는 누구의 정부인가?

 

‘생각하다’는 우리말이 한자로는 思․想․念 모두가 해당된다. 그렇지만 ‘思’는 치우치지 않는 마음, ‘想’은 서로 보고 싶은 마음, ‘念’은 지금 일어나는 마음이다. 생각이란 눈으로 보고, 맛보고, 들어보고 그쪽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 즉 耳目口鼻에 의해서 생기는 마음인 것이다.

 

생각이란 여러 모로 고려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깊고 넓게 헤아려보는 것이다. 그래서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전해주었던 것이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이다. 배우지 않으면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하고 남의 장점까지도 깨닫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더 나아가 자신의 고쳐야 할 점은 보지 못하고, 남의 단점은 쉽게 발견하는 것이 人心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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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조금 해놓고 반짝일 거라고 생각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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