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0-20(화)
 

 [교육연합신문=文德根 기고]

가슴을 덜컥하게 했던 코로나 19, 한 개인으로서 추이를 지켜볼 뿐이지만, 이러한 추이가 세계를 어떤 모습으로 재편할 지 자못 걱정도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 국민의 의식과 행동 수준, 그리고 방역 기술이 세계를 선도한다는 언론 보도와 세계 정상들의 요청으로 이루어지는 정상 간 화상 회의는 격세지감을 넘어 흐뭇함을 지울 수가 없다.

 

이제까지는 언제나 선진국이 만들어 놓은 기준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았고, 우리의 현실은 버려지고 외면당한 채 오직 선진국의 교육과 문화, 산업 등만 바라보고, 오직 따라가야만 할 것으로, 늘 그리워하고 동경하는 기준으로 자리매김하여 왔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는 없고 ‘외국’만 있는 세계를 살아왔던 아픔을 조금씩 덜어내고, ‘한국인’이라는 자긍심과 국격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사건이 일어나면, 특히,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도 외국의 사례에서 해결책을 먼저 찾고, 언론 매체에서도 외국에서 학위를 받은 토론 참석자들을 모셔오고,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낱말은 외국어 잡화상을 방불케 하여, 여기가 외국 방송사일 정도로 착각을 일으키고, 일반 국민들은 알아먹을 수도 없는 상황에 분노를 금할 수 없었던 일이 부지기수였다.

 

지금도 영어유치원에 보내려면 한 달에 1백만 원 정도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일이 곧 세계의 사건이 되고, 세계의 사건이 우리의 일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조기 외국어 교육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할 일이 있는 것이다. 우리말을 잃어버리면 정체성을 잃게 되고, 정체성을 잃으면 우리의 땅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우리말의 어원을 제대로 배우고 난 다음에 하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순서가 아닐까.

 

언젠가 미국에서 세계학술연구대회가 열렸는데, 우리나라 학자가 ‘듀이’에 관해 발표를 하고 단상을 내려오자, 한 언론 기자가 “왜, 퇴계나 율곡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지 않는가. ‘듀이’는 미국 학자들이 더 잘할 수 있지 않는가 하고 질문을 하더라는 것이다. 물론 뜻한 바가 있었겠지만 우리의 현실 감각과 시대 의식을 짐작하게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집단 감염의 우려로 인해 원격 교육의 형태가 시도되고 있다. 이는 또 다른 형태의 교육을 불러 올 것이고, 장단점을 보완하여, 수요자의 만족도에 따라 대세를 이룰 수도 있다. 이러한 형태의 시도가 교육의 일반 형태로 발전한다면 현재의 교육 체제는 큰 전환점을 맞이할 것이다. 이를 지켜만 볼 것인가? 그렇지 않고 스스로 변화의 경계에 서서 변화의 양면을 볼 수 있고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출 것인가?  

 

요즘 프로그램 중에 세계 테마기행을 보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거기에는 반드시 사람들이 공감하고 환호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프로그램이 오랫동안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려면 그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이유와 가치 등의 개념이 분명해야 한다. 왜 그 나라이고 그 출연자이어야 하는 설명 등이 납득될 수 있어야 한다.

 

나라와 유적지를 소개하면서 그 사람들의 삶의 의식과 행태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유명 배우, 그것도 미끈한 청년 남자를 등장시켜서, 팬티만 입고 수영하면서 근육 보여주고자 국민의 수신료로 제작하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그 나라 전문가가 그 연예인뿐인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왜일까?

 

요즘 코로나 19로 바깥출입이 어려워 텔레비전에 눈과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런데 시청률 위주와 저열한 언어와 속어들로 무장한 출연자의 잡담으로만 진행되는 ‘아무 말 대잔치’를 보고 있다는 속내를 감추지 못한다고 한다. 해야 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구별을 모르고, ‘왜, 이 프로그램을 편성하는지’ 등의 개념이 없는 사회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왜’가 없는 사회가 어떤 방점을 찍을 것인지는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 아닌가? 

 

모든 언어, 행동, 문화가 삶 속에서 나와서 정성에서 잉태하는 것이다. 그래서 삶은 정성을 다하는 태도여야 한다. 사람의 길은 같이 사는 방법이고 함께 가는 길이어서, 철저히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부는 사람의 길을 알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안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어야 하는 것을 아는 것이고, 스스로를 낮추는 것은 남과 더불어 살기 위함이다. 그래서 황하문명권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음 속에 감추어져 있는 이치를 깨닫기 위해 공부를 사후까지 가지고 가는 것이다.

 

우리 주위를 보자. 어디를 둘러보아도 사람의 길을 만드는 곳은 보기가 어렵다. 오로지 자동차 다니는 길만 만들고 있다. 사람의 길은 모든 것과의 조화로운 관계 형성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모든 관계의 처음은 이득이 얼마나 되는가이다. 公은 없어지고 私만 존재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지가 오래인 것 같다. 교육은 어떤가. 사람의 길은 가르치지 않고 돈 되는 길만 가르치고 배운다고 하면 지나친가. 

 

이제 세계는 대한민국의 국민 의식이 최고임을 감동하고 배우려 하고 있다. 공익을 우선하고 사익을 다음으로 돌리는 한국인의 의식을 칭송하고 있는 것이다. 즉 선현들의 先公後私 의식이 빛을 내고 있는 것이다. 공익을 우선하는 公의 개념은 유목문명이 아닌 황하문명의 큰 유산이다. 公의 개념이 배태된 井田制는 모든 백성이 화합하면서 배불리 먹고 조화롭게 살게 하기 위한 정치와 경제 이념인 것이다.

 

그런데 이 井田制는 조선시대에 한 번 시도만 있었고 아직 실천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내재되었던 의식이 위기에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씨앗도 황하문명에서 잉태하였듯이 우리의 의식과 사고가 이제는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사상이었다.
   
버려야 할 것과 가지고 가야 할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先進이 되는 길이다. 그 중에서도 시험에 합격하고 나면 그 수험 공부 책을 쓰레기 통으로 버리는 교육 체제에서 탈피해야 한다. 기억하고 생각해서 삶에 어른거려서 자신의 삶을 안내해주는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내구성이 있고, 자가 발전을 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해주는 용량 큰 배터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시키는 대로, 읽은 대로도 하지만, 본대로, 보이는 대로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내가 가고 싶어 하는 자리라도 나보다 그 자리에 합당한 자가 있으면 그 사람을 추천하는 것이 우리 선비들의 삶이었던 것이다.

 

이제 ‘좋다, 나쁘다’의 이분법에서 눈 앞 저 ‘현상’이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는 공부로 전환해야 한다. 보고 들은 낱말과 내용을 글자 그대로 기억해서 답하는 즉, 앵무새를 기르는 새장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의 미래는……. 

 

▣ 文德根 博士

◈ 陶山書院선비문화수련원 指導委員

◈ 前 康津敎育長

◈ 敎育學博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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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時代 意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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