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교육연합신문=유재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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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언론 보도자료에서 한국 입양아로 성공한 인물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한국 입양아 출신 34세 의사, 프랑스 정계에 화려한 데뷔”라는 큰 제목으로, 안경 속에 동양인 특유의 눈을 가진 젊은 남성의 사진이 크게 나와 있었다. 생후 3개월 만에 서울 어느 뒷골목에 버려져 파출소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 날 보육원으로 보내져 프랑스로 바로 입양되었다는 조아킴 손-포르제(한국명 손재덕)가 그 주인공이었다. 

 

발견될 당시 입고 있던 옷에 4월 15일이라는 쪽지만 달랑 남겨져 있었던 생후 3개월 된 아기는, 34년 후 선진국 프랑스에서 자유와 평등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프랑스 최연소 대통령 마크롱과의 인연을 계기로 정계 진출까지 하게 되었다.


이보다 앞서, 프랑스에서는 2012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파격적으로 한국인 입양아 출신의 여성 디지털 경제부 장관을 임명하기도 했다. 프랑스어로 ‘꽃’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펠르랭 장관은, 한국인 부모가 양육을 포기하자 생후 6개월 만에 프랑스로 입양되었는데, 출생 후 처음으로 프랑스 장관이 되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언론 인터뷰에서,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입양되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양부모 밑에서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고, 프랑스어를 사용하며 프랑스인으로 살았다. 나의 이런 경험이 두 나라 관계 증진에 좋은 자산이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위 두 사람처럼 성공한 한국 입양아뿐만 아니라 2017년 7월, 친부모를 찾고자 미국 시애틀에서 부산을 방문한 한국 입양아 애쉴리처럼, 오늘날 많은 한국 입양아가 세계 곳곳에서 각자 나름대로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 해 7월, 평소 가깝게 지내는 지인으로부터 한국 입양아를 위한 부산 안내 가이드 역할을 요청받아, 미국에서 도착한 애쉴리와 꼬박 하루를 보내면서, 새삼 대한민국 역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게 되었고, 평소 다문화와 깊은 인연을 맺어온 본인으로서는 과거 시대를 되돌아보며 미래 우리 사회를 그려보는 좋은 계기가 됐다.

 

생후 1주일만에 보육원을 통해 미국으로 입양된 애쉴리는, 입양된 자녀들로 구성된 화목한 가정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간호학을 공부하던 중 한국 친부모를 찾고자 노력 끝에 한국 단체로부터 친엄마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고, 드디어 2017년 7월 처음으로 태어난 나라, 대한민국 땅을 밟게 됐다. 

 

그 당시 애쉴리는 미국 시애틀에서 간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으로,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가 있는 대한민국 방문을 위해 미국에서 틈틈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 역사에 관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애쉴리와 함께 미국에서 한국으로 친부모를 만나고자 들어온 한국 입양아들은, 얼굴 생김새는 모두 한국인이지만, 언어와 옷차림 그리고 행동은 미국인 꼭 그대로였다. 프랑스 최초 한국 입양아 여성 장관인 펠르랭처럼, 애쉴리와 다른 한국 입양아들도 자신들에게는 한국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으며, 스스로가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이라 여기며 살아 온 미국 국민이었다. 

 

조아 킴 손-포르제, 펠르랭, 그리고 애쉴리 이들의 공통점은 한국 입양아들이다. 그리고 외면할 수 없는 가슴 아픈 사실은 대한민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이다. 버림받은 아이들이 꿋꿋하게 성장하여 성공이란 이름표를 달고 수십 년의 세월을 거쳐 자신들을 버린 땅을 밟게 되면, 우리는 그들을 자랑스럽다는 표현으로 치장하며 박수갈채를 보내곤 하지만, 과연 그들은 박수갈채를 받으며 조상이 같은 우리를 자랑스럽게 여길까?


지난 2008년, 29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한국계 미국인 혼혈아 미식축구 선수 하인스 워드 또한 대한민국이 버린 아이 중의 한 명인데, 어릴 때 외모의 차이로 인하여 엄청난 갈등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하인스는 우리 사회의 왕따와 압박을 못 이겨 미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결국 우리 사회가 외면한 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그 들 앞에 고개 숙이며 숙연해질 때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가난과 고난의 역경을 헤쳐 나와 산업 사회의 발달과 함께 아시아의 용으로 우뚝 발돋움한 대한민국이 그런 부끄러운 과거를 들추어내기에는 다소 불편함이 수반될 수도 있겠지만, 과거의 불편한 진실을 인식하며 지금 오늘날 우리 사회를 돌아보자. 글로벌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우리 옆으로 다가왔고, 지금은 외국인 거주 250만 명을 넘는 다문화 사회를 이루고 있으며,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접어들어 인공지능(AI)이 실생활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5천 년 역사로 단일 민족을 거론하던 지난 시대는 차라리 추억의 한 페이지로 넘길 수는 있지만, 세계가 한 지붕 아래 지구촌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에는, 다양성을 수용하고 다 함께 공생하는 운명 공동체 의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부 기관이나 학교에서는 글로벌 인재 양성이라고 슬로건을 내걸고 있지만, 한국 땅에 있는 인재뿐만 아니라, 그 옛날 우리가 버린 아이들 가운데, 글로벌 인재를 발굴하여 대한민국의 인재로 양성한다면, 우리 사회가 외면했던 양심의 속죄도 더하여, 나아가 출생국과 성장국의 양대 국가를 위한 가교 역할을 함으로써 우리가 세계 속의 대한민국으로 발돋움하기에도 든든한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부산 세계 EXPO 2030 유치를 기원하는 지금 우리는, 한국인과 외국인, 그리고 세계인에 대하여 좀 더 글로벌적인 안목으로 수용과 이해의 가치관을 정립해야 할 시점에 와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땅에서 혼혈아 스포츠 영웅 미국의 하인스 워드처럼 더 이상 외모와 언어의 다름으로 차별을 받는 일이 없도록, 그리고 제2의 미국 오바마 대통령 같은 다문화 지도자가 이 땅에서 배출될 수 있도록,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가 함께 진정한 글로벌 마인드를 기본 의식으로 함양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대한민국 미래 사회의 주인공이 될 글로벌 인재 꿈나무들이 ‘다문화’란 이름으로 송골송골 이마에 땀을 흘리며 힘찬 뿌리를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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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애

◇ 한국다문화공동체 대표

◇ 前한국다문화국제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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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특집] ① 버려진 한국 입양아들과 한국 다문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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