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6-11(목)
 

[교육연합신문=김병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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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엔교과서박물관 전경 (사진 제공=교과서박물관)

 

미래엔교과서박물관(관장 김동래)의 주 전시관이라고 할 수 있는 <교과서전시관>은 모두 열두 개의 코너로 운영되고 있다. 한글 창제와 관련된 내용을 담은 <나랏말쌈관>, 교과서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교과서역사관>, 옛날 교실을 재현한 <추억의 교실>, 전문계 교과서를 소개하고 있는 <전문교과서관>, 특수학교에서 주로 사용되는 <특수교과서관>, 국어 교과서를 주요 소재로 기획·운영되고 있는 <국어교과서관>, 세계 여러 나라의 교과서를 볼 수 있는 <세계교과서관>, 북한의 교과서를 소개하고 있는 <북한교과서관>, 교과서 개발 과정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교과서개발관>, 첨단 미래 교육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미래교실관>, 각종 교육 관련 자료를 소개하고 있는 <교육유물관> 등이 있다. 이뿐만 아니라 목활자 제조 과정을 소개하는 코너도 한 편에 마련돼 있다.


<교과서전시관> 마지막 소개로서 <교육유물관>, <미래엔교과서관>과 ‘교육과정 이론서 전시 코너, ’목활자 코너‘가 있다.


◈ 지난날 학교생활에서 사용됐던 각종 공책, 상장, 졸업장 등을 전시하고 있는 ’교육유물관‘


전시된 졸업앨범은 일제 강점기부터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의 졸업앨범이다. 또, 전시대의 맨 아래에는 일제 강점기에 수여한 ‘입학 원서’와 ‘수업 증서’도 전시돼 있다.


상장은 일제 강점기부터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수여됐던 여러 종류의 상장이다.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는 ‘소화’, ‘대정’ 등의 일본 연호를 사용했고, 1950년대까지는 ‘단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졸업장은 일제 강점기부터 1950년대, 60년대, 70년대에 각각 수여됐던 것들이다. 졸업장도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의 연호를 사용했고, 1950년대까지는 ‘단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이곳에 전시된 공책은 일제 강점기부터 미 군정기(1940년대), 1950년대, 60년대, 70년대, 80년대에 사용됐던 공책들이다. 참고서와 교지들도 1950년대부터 70년대에 각각 만들고 사용된 것들이다.


교복 코너는 개화기부터 변화된 교복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한국의 교복 역사에서 여학생은 1886년 이화학당이 다홍색 무명천으로 된 치마저고리를, 남학생은 1898년 배재학당이 당복(堂服)을 입음으로써 시작됐다. 실제로 교복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04년 한성중학교가 개교하면서부터였는데, 검은색 두루마기에 검은색 띠를 두른 옷을 입고, 모자를 써서 교표와 ‘한성’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었다.


일제 강점기 말인 1939년, 일제가 전시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남학생들에게 학업과 일상 훈련까지 겸할 수 있는 국방색 국민복을 입히기 시작했고, 광복 후에도 이어졌다. 최초의 양장 교복은 1907년 숙명여학교에서 원피스 차림의 교복이 등장한 이후, 1920년경에 근대 교복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스커트 차림의 여학생 교복과 양복식의 남학생 교복이 등장했다.


1940년대에는 조선 학생들에게도 전투태세를 갖춘 제복으로 통일시켜 여학생들은 ‘몸뻬’라는 작업복 바지에 블라우스를, 남학생은 국방색 교복을 입었다. 광복 이후의 교복은 1940년에서 1980년대의 교복은 광복과 6.25 전쟁을 겪으면서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상하 검은색 또는 짙은 감색 중심의 교복을 입었다. 1969년 중학교 평준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중학생의 경우에 시·도별로 획일화·균일화된 검은색 교복을 입었는데, 고등학교 교복은 학교마다 디자인과 색상이 조금씩 달랐다. 이러한 스타일은 1983년 교복 자율화 조치가 실시될 때까지 계속됐다.


1980년대는 교복 자율화 시대다. 제5공화국은 개방 정책의 일환으로 1982년 1월 2일 중·고등학생의 머리 모양과 교복의 자율화 방안을 발표했다. ‘머리 모양은 새 학기부터, 교복은 다음 학년도 신입생부터 자율화한다.’라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1982년에는 학생들의 머리 모양이 자유화됐고, 1983년 3월 2일부터 중·고등학생의 교복 자율화가 시행됐다. 교복 자율화 조치는 ‘획일’, ‘몰개성’, ‘일제 잔재’의 상징처럼 여기던 교복으로부터 중·고등학생을 자유롭게 해 줬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 다시 교복으로의 회귀가 이뤄진다. 즉, 교복 자율화 이후 교복에 대한 필요성이 다시 부각됐다. 자유 복장에 따른 교외 생활지도의 어려움과 중·고등학생의 탈선행위 및 가계 부담 증가 등을 해소하기 위해 1986년부터 교복 착용 여부를 학교장의 재량에 맡기게 됐는데, 이후 다시 교복으로 ‘돌아가는’ 학교가 늘어나게 됐다. 1989년에는 전체 학교의 약 13%, 1991년에는 전체의 절반 가량이다가 1993년 전국의 83%에 달하는 학교가 ‘교복 착용’을 선택했다.


1990년대에 새로 등장한 교복들은 이전처럼 디자인에 제한을 두지 않아 편하고 멋스러운 디자인에 밝은 색상이 주류를 이루며, 교복을 채택하는 과정에 학생, 교사, 학부모가 함께 참여하고 있다. 또, 종래의 교복은 소속감이나 통제성을 강하게 나타낸 반면, 최근의 교복은 소속감과 함께 심미성이나 기능성 등을 더 고려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교복도 패션’이란 인식이 뿌리내리기 시작하면서 교복의 디자인과 기능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중간에 교련복도 보이는데, 예전에는 고등학교 수업에 ‘교련’이라는 교과목이 있었다. 남학생의 경우에는 총검술, 제식훈련 등을 학교 운동장에서 실습했고, 여학생의 경우에는 부상자에게 붕대 감는 요령 등을 실습했다. 


야외 실습 시간에는 반드시 준 군복인 교련복이 필수였다. 대중적으로 흔히들 알려진 무늬는 이른바 얼룩말 무늬지만, 패턴에 색상이 들어가서 현용 군복으로도 될 만한 위장 무늬를 가진 교련복도 있었다. 눈으로 보기에는 같은 얼룩말 무늬라고 해도 새마을운동 표식이나, 책 또는 낙하산이 그려진 검은 점무늬와 ‘선진조국창조’라는 한글 등 학교나 메이커에 따라서 패턴이 다양했다. 바탕색은 완전 백색, 탁한 백색, 연한 회색 등 여러 가지였고, 패턴은 물론 옷감 소재나 질감도 학교마다 조금씩 달랐다.


방학책은 1990년대 말까지 ‘탐구생활’이라는 이름으로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발행됐는데, 1990년대 말에는 정부(한국교육개발원)에서 발행하던 것을 각 시·도 교육청 주관으로 발행되다가 제7차 교육과정(2000년대)부터는 사라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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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유물관 전경 및 교복 전시 모습 (사진 제공=교과서박물관)

 

◈ ‘교과서전시관’ 관람을 마무리하는 출구에는 미래엔에서 발행된 교과용 도서(국·검·인정 교과서)가 진열돼 있는 ‘미래엔교과서관’


미래엔은 교과서 전문 발행사로서 76여 년을 이어온 모범 장수 기업이다. 미래엔에서 만든 교과서와 참고서가 어른이 돼서도 기억되고 미래를 만들어 가는 교과서가 될 수 있도록 지금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교과서박물관은 미래엔의 이러한 유구한 역사가 곧 ‘교과서의 역사’라는 인식하에서 교과서박물관을 건립했고, 미래엔에서 발행되는 교과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만들어진 국·검·인정 교과서를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집해 전시하고 있다.


앞의 전시대에는 미래엔에서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현행 교육과정 초등·중등·고등학교 검인정 교과서가 전시돼 있으며, 다른 한편에는 초등학교 국정 국어 교과서 발행사로서 초등 국어 교과서 및 특수학교 현행 교과서들을 전시하고 있다. 미래엔은 앞으로도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국내 유일의 교과서 전문 박물관인 교과서박물관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국내 교과서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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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엔교과서관 전경 및 전시물 (사진 제공=교과서박물관)

 

◈ 교육과정 이론서 전시 코너


‘교육과정’은 교육부에서 정한 교육과정의 내용 또는 지식의 내용과 구조를 말하며, 학교에서 학습자의 성장 발달을 위해 의도적으로 제공되는 경험의 총체이다. 또한, 교육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교육활동 계획이다. 즉, 학습자들이 이수하고 실천하고 공부해야 할 요점을 의미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은 ‘교육 기본법’ 등 교육 관계법에 의거해 운영하도록 돼 있다.


교과서를 만들기 위한 교육 이론의 배경을 정리해 놓은 ‘교육과정 해설서’는 8.15 해방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 교육과정기별로 연구되고 정리돼 왔다. 이 ‘교육과정 해설서’는 전체 교육 목표 및 추구하는 인간상 등을 수록해 놓은 총론과 각 학교급별, 교과목별 이론을 수록해 놓은 교과목별 해설서가 있다.


교과서 개발을 위해 띄어쓰기 및 맞춤법, 용어의 정의 등 표현상의 기준과 지침을 마련해 놓은 것이 ‘편수 자료’이다. 제1차 교육과정기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개정돼 발행됐다. 이 편수 자료집에는 로마자 표기법 및 외래에 표기법, 외국 지명 표기법, 한글 맞춤법, 인명 및 지명 표기 사례, 각 교과목별 또는 분야별 표준 용어 사례 등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은 국립국어원이 교육부와 협업해 감수 업무를 진행하고 맞춤법의 기준을 표준국어대사전 준거해 교과서를 개발하고 있지만, 이전에는 교과서를 개발할 때 표현·표기의 지침서 역할을 ‘편수 자료’가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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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된 초기의 교육과정 해설서 (사진 제공=교과서박물관)

 

◈ 목활자 제조 코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보 126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비롯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해인사 ‘팔만대장경’만 보더라도 전 세계적으로 뛰어난 목판 기술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금속활자가 들어오면서 목판 인쇄 분야가 좀 시들해지기는 했지만, 조선 후기까지도 목판 인쇄와 더불어 목활자 제작이 활발했다. 특히, 목활자는 목판 인쇄의 수정 작업에 많이 쓰이고, 또 개화기 때의 교과서를 인쇄하는 과정에서 연활자가 부족할 경우에 임시방편으로도 사용됐다.


우리나라 유명한 각자장에는 중요무형문화재 106호인 철재 오옥진 선생과 강원도 중요무형문화재 제16호인 소재 이창석 선생이 있다. 글자를 새기는 각자에는 반서각과 정서각이 있다. 반서각은 인쇄를 목적으로 글자 원본을 거꾸로 붙인 후 각을 해서 송연 먹을 묻혀 찍어 내는 것이고, 정서각은 주로 현판을 위한 각자법으로 글자를 똑바로 붙인 후에 끌과 망치로 새기는 것이다.


각자의 작업에는 세 가지 공정으로 나뉜다. 우선은 치목(治木)이라고 해서 쓰임새에 맞는 나무를 골라 정하고 건조해 알맞게 자르는 일이다. 주로 목판은 자작나무나 은행나무, 돌배나무, 산벚나무 등을 쓰고, 목활자는 재질이 연하면서도 오래 견딜 수 있고 먹물 흡수가 좋은 회양목(황양목)이 제격이나 박달나무나 돌배나무, 산벚나무, 자작나무 등을 사용한다. 또, 사찰과 정자의 현판은 변질이 적고 조직이 고른 피나무를 주로 사용한다. 다음 공정은 배자(配字)다. 치목한 나무 위에 글씨를 늘어놓는 일이다. 배자가 끝나면 다음 공정인 각자(刻字)를 진행한다.


전시돼 있는 것들은 목활자를 만들거나 인쇄할 때 필요한 여러 도구들이다. 밀대는 탁본할 때 종이를 문지르는 도구다. 좁쌀 방망이는 탁본할 때 먹물을 묻혀 두드리는 도구다. 고무 마치는 글자를 팔 때 서각용 칼을 치는 도구이며, 대나무 칼은 활자를 인쇄판에 심을 때 사용하는 도구다. 활자 집게는 활자를 인쇄판에 배열할 때 사용되는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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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활자 제조 코너의 저닛 패널과 전시물 (사진 제공=교과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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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과서박물관 둘러보기 – 교과서전시관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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