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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 크루즈관광의 허와 실, 크루즈관광객 100만 시대 부산은 무엇을 얻을 것인가
[교육연합신문=이상헌 기고] 크루즈선이 부산항에 입항하면 항구는 활기를 띤다. 거대한 선박과 수천 명의 외국인 관광객은 부산이 세계적인 해양관광도시로 도약하고 있다는 기대를 높인다. 부산항만공사는 2030년까지 크루즈선 520항차, 관광객 100만 명 달성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제시된 전망에 따르면 2026년에는 상반기에만 219항차, 약 32만 명이 부산항을 찾았고, 연간 이용객은 약 7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부산을 찾는 크루즈 관광객이 늘어나는 것과 부산 시민의 삶이 나아지는 것은 과연 같은 일인가. 크루즈관광의 성공을 입항 횟수와 방문객 수만으로 판단한다면 정작 중요한 경제적 가치를 놓칠 수 있다. 이제 부산의 크루즈관광은 양적 성장의 성과를 넘어 질적 성장의 실효성을 검증해야 할 시점이다. 숫자는 성장하지만, 지역경제의 체감 효과는 별개의 문제다. 크루즈관광은 일반적인 숙박형 관광과 구조가 다르다. 관광객들은 선박 안에서 숙박과 식사를 해결하고, 기항지에서는 제한된 시간 동안 관광과 쇼핑을 즐긴다. 선박이 몇 시간 정박하는 동안 수천 명이 부산을 방문하더라도 이들이 실제로 부산 지역 상점과 식당에서 얼마를 소비하는지는 별도로 살펴봐야 한다. 관광객 수가 증가했다고 해서 지역경제의 수익도 같은 비율로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관광객이 대형 관광버스를 타고 주요 명소 몇 곳을 둘러본 뒤 다시 선박으로 돌아간다면, 방문객 수는 통계에 잡히지만 동네 식당과 전통시장, 골목상권이 얻는 경제적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관광상품의 구성과 소비 경로에 따라 수익이 일부 대형 사업자에게 집중될 가능성도 있다. 이는 부산 크루즈관광이 실패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관광객 증가라는 기회를 지역경제의 실질적 성장으로 연결하는 장치가 얼마나 잘 마련돼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뜻이다. 앞으로 부산은 방문객 수뿐 아니라 관광객 1인당 지역 내 소비액, 체류시간, 지역 소상공인 매출 기여도, 지역 고용 효과, 재방문 의향 등을 함께 측정해야 한다. 그래야 크루즈관광이 부산에 얼마나 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부산의 매력은 충분하다. 문제는 관광상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부산에는 크루즈관광의 경쟁력이 될 만한 자산이 풍부하다. 해운대와 광안리의 해안 경관,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의 생활문화, 감천문화마을의 독특한 풍경, 한국전쟁의 역사를 간직한 원도심, 부산 특유의 해양문화와 음식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산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관광객이 그 가치를 충분히 경험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관광객이 유명 관광지 몇 곳에서 사진만 남기고 떠나는 것과 부산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고 지역 음식을 맛보며 도시의 이야기를 경험하는 것은 전혀 다른 관광이다. 부산은 관광지를 단순히 연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험을 설계해야 한다. 외국인 관광객이 자갈치시장에서 부산의 해산물 문화를 이해하고, 원도심에서 도시의 역사와 산업 발전을 배우며, 지역 상점에서 부산의 생활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관광 안내와 해설의 품질이 중요하다. 언어를 단순히 번역하는 수준을 넘어 부산의 역사와 문화, 음식의 의미를 외국인의 눈높이에 맞춰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관광객이 도시를 깊이 이해할수록 관광 경험의 만족도와 소비의 폭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결국 관광의 경쟁력은 관광지의 개수보다 그곳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어떤 기억을 가져가는가에 달려 있다. 체류시간을 늘리는 것이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출발점이다. 부산시가 크루즈관광 활성화 전략에서 체류 확대와 재방문 설계를 강조하고, 24시간 크루즈터미널 운영을 기반으로 오버나잇 크루즈 유치에 나선 것은 주목할 만하다. 부산항만공사 역시 기항 중심에서 모항 중심으로 전환하고 1박 2일 체류형 상품을 확대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크루즈관광의 경제적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방향이다. 낮에 잠시 방문하는 관광객보다 밤까지 머무는 관광객에게는 저녁 식사, 야간 관광, 공연과 문화체험, 숙박 전후의 추가 소비 기회가 더 많이 생긴다. 물론 체류시간이 늘어난다고 소비가 자동으로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관광객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콘텐츠, 편리한 교통, 안전한 이동 환경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부산은 광안리 야경과 해변 문화, 원도심 역사 탐방, 지역 미식, 공연과 전시를 결합한 시간대별 관광상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크루즈 입항 시간에 맞춰 시장과 음식점, 문화시설이 연계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관광객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다국어 안내와 교통정보도 제공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관광객을 더 오래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니다. 부산에서 더 많은 가치를 경험하도록 만들고, 그 경험이 지역 소비와 재방문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이다. 크루즈 모항 육성은 관광을 넘어 산업의 문제다. 크루즈관광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부산을 잠시 들르는 기항지에서 출발과 도착이 이뤄지는 모항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모항은 관광객의 승선과 하선뿐 아니라 항공·철도 연계, 숙박, 식음료, 선박 정비, 연료와 식자재 공급, 물류와 전문서비스 등 다양한 산업과 연결된다. 부산에서 출발하는 크루즈가 늘어나면 관광산업의 파급효과가 선박 운항과 관련 서비스 분야로 확대될 수 있다. 다만 모항 육성에는 국제선 연결성, 선사의 운항계획, 안정적인 수요, 터미널 수용능력, 출입국 절차의 효율성 등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시설 확충만으로 경쟁력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부산은 크루즈 선사 유치와 함께 지역기업이 선용품 공급, 관광서비스, 운송, 콘텐츠 제작 등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관광객이 부산에 와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크루즈 산업의 공급망 자체가 부산에서 성장하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모항 전략의 경제적 의미다. 다섯 가지 전환이 필요하다. 부산 크루즈관광이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방문객 중심에서 지역경제 가치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입항 횟수와 관광객 수에 더해 지역 내 소비액, 소상공인 매출 기여도, 체류시간, 재방문율을 함께 공개하고 평가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단체 관광 중심에서 선택형 체험관광으로 확대해야 한다. 부산의 음식, 역사, 해양문화, 전통시장, 예술과 지역 생활을 연결한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관광객이 자신의 관심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낮 중심 기항에서 야간·체류형 관광으로 전환해야 한다. 야간 콘텐츠와 대중교통, 다국어 안내, 안전관리 체계를 함께 구축해 체류 확대가 실제 소비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넷째, 관광 유치에서 산업 생태계 육성으로 발전해야 한다. 지역기업과 선사 간 거래를 확대하고, 부산의 식품·수산물·서비스·문화콘텐츠가 크루즈 산업의 공급망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다섯째, 관광객의 만족을 재방문과 추천으로 연결해야 한다. 크루즈 여행에서 부산을 경험한 관광객이 다음에는 부산에 며칠간 머무는 개별여행객으로 돌아오도록 후속 관광상품과 맞춤형 홍보를 설계해야 한다. 크루즈는 부산을 세계에 알리는 첫 번째 관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전략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부산시와 부산항만공사, 관광업계, 지역 상인, 교통사업자, 문화기관이 함께 성과를 관리해야 한다. 관광객 증가의 혜택이 지역사회에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부산 크루즈관광의 진정한 성공은 배가 떠난 뒤에 결정된다. 크루즈관광은 부산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국제적인 접근성, 해양도시라는 정체성, 풍부한 문화자산을 활용한다면 부산은 동북아 크루즈관광의 주요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크루즈선이 많이 들어온다는 사실만으로 관광도시의 성공을 선언할 수는 없다. 관광객이 부산을 얼마나 깊이 경험했는지, 지역 상권이 얼마나 혜택을 얻었는지, 부산의 기업과 시민에게 어떤 새로운 기회가 생겼는지를 함께 물어야 한다. 크루즈관광의 성패는 배가 몇 척 들어왔느냐가 아니라, 배가 떠난 뒤 부산에 무엇이 남았느냐로 판단해야 한다. 관광객의 발길이 지역 상권의 매출로 이어지고, 일회성 방문이 재방문으로 연결되며, 관광 수요가 부산의 일자리와 연관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질 때 크루즈관광은 비로소 지속 가능한 산업이 된다. 2030년 관광객 100만 명이라는 목표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부산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는 그 숫자 자체가 아니다. 부산을 찾은 세계인이 다시 방문하고 싶어 하는 도시, 지역기업이 관광산업의 성장에 참여하는 도시, 시민이 관광의 혜택을 체감하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부산의 크루즈관광은 이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는가”에서 “얼마나 큰 가치를 함께 만들었는가”로 질문을 바꿔야 한다.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부산은 단순한 크루즈 기항지를 넘어 세계인이 기억하고 다시 찾는 해양관광도시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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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건물은 세워진다, 도시는 기획된다
[교육연합신문=이상헌 기고] 세계적인 관광도시를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화려한 야경일까, 유명한 축제일까, 아니면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는 랜드마크일까. 물론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세계적인 도시의 경쟁력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다른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은 건물만 보러 도시를 찾지 않는다. 그 도시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계획한다. 그리고 그 경험이 기대 이상일 때, 도시는 관광지를 넘어 목적지가 된다. 부산은 이미 적지 않은 것을 갖추고 있다. 국제적인 축제와 다양한 공연, 해변과 항구가 만들어 내는 독특한 풍경, 역동적인 음식문화가 있다. 부산콘서트홀이 문을 열었고, 2027년에는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도 예정돼 있다. 이제 부산 관광의 과제는 무엇을 더 지을 것인가보다, 이미 가진 자산으로 어떤 도시의 미래를 만들어 낼 것인가에 있다. 세계적인 관광도시는 명소의 숫자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도시를 찾아야 할 이유가 얼마나 분명한가에 따라 완성된다. 파리의 문화적 매력은 에펠탑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런던의 관광 경쟁력도 빅벤이나 버킹엄궁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두 도시에는 예술과 공연, 전시와 스포츠, 미식과 일상이 끊임없이 새로운 방문 동기를 만들어 내는 구조가 있다. 관광객은 특정 장소를 방문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신이 여행하는 시기에 그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을 경험하기 위해 움직인다. 여기서 부산이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다. 부산에도 축제는 많고 공연도 열린다. 문제는 행사의 유무가 아니라 개별 행사가 도시 전체의 매력으로 얼마나 연결되는가에 있다. 각각의 축제와 공연이 저마다의 성과를 내는 것과, 그 모든 경험이 ‘부산에 가야 하는 이유’로 축적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관광객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부산을 여행하려는 외국인이 특정 공연을 발견하고, 그 일정에 맞춰 항공편과 숙박을 예약하며, 낮에는 도시를 둘러보고 저녁에는 공연을 관람한다면 공연은 단순한 문화행사가 아니다. 여행을 결정하게 만든 핵심 동기가 된다. 반대로 공연이 열려도 해외에서 정보를 접하기 어렵고, 예약과 관람이 불편하며, 여행 일정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잠재력은 충분히 발휘되기 어렵다. 이 차이가 부산 관광의 다음 단계를 결정할 수 있다. ■ 오페라하우스가 부산의 미래를 대신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2027년 개관을 앞둔 부산오페라하우스는 부산의 문화와 관광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세계적인 수준의 공연을 유치하고, 부산의 예술적 위상을 높이며, 북항을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발전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건축물이 완성되는 순간 세계적인 오페라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공연장은 외관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평가받는다. 어떤 작품을 올리는가, 어떤 예술가를 키우는가, 얼마나 지속적으로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이는가, 시민과 관광객이 얼마나 자주 그곳을 찾는가가 중요하다. 개관 기념 공연이 세계적인 관심을 끄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다음 해, 그다음 시즌에도 사람들이 부산오페라하우스의 공연을 기다리게 만드는 일이다. 한 번의 화려한 개관보다 오랜 시간 축적되는 예술적 신뢰가 도시의 브랜드를 만든다. 또한, 오페라하우스가 독립된 섬처럼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부산콘서트홀과 기존 공연장, 영화제와 지역 축제, 전시공간과 관광업계가 서로의 관객을 연결해야 한다. 클래식 공연을 보러 온 사람이 부산의 다른 문화공간을 찾고, 축제를 즐기러 온 관광객이 다음 공연을 예약하는 순환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부산오페라하우스의 진정한 성공은 그 건물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어오는가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 공간이 부산 전체의 문화적 활력을 얼마나 확장하는가로 평가해야 한다. ■ 축제의 도시에서 ‘문화적 목적지’로 부산은 축제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하는 도시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축제와 공연을 새로운 관점에서 연결해야 하는 도시다. 필요한 것은 행사 목록의 확대가 아니라 도시 전체를 하나의 문화 프로그램처럼 기획하는 발상이다. 봄에는 어떤 예술을 경험할 수 있고, 여름에는 바다와 음악이 어떻게 만나며, 가을에는 영화와 공연이 어떤 분위기를 만들고, 겨울에는 부산에서만 즐길 수 있는 문화적 경험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계절별 축제를 배치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부산을 방문하는 사람이 자신의 관심사와 여행 시기에 따라 도시의 문화를 발견할 수 있도록, 흩어진 프로그램을 하나의 이야기로 편집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해외 관객이 부산의 오페라 공연을 예약하면 인근 전시와 관광 프로그램을 함께 발견할 수 있고, 영화제를 찾은 방문객이 지역 공연과 미식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을 넓힐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다른 행사가 관객을 놓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부산 체류를 함께 풍성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러한 연결은 홍보의 문제인 동시에 산업의 문제다. 공연 기획자와 관광업계, 숙박업계, 지역 상권이 일정과 상품을 함께 설계한다면 문화행사의 효과는 공연장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문화예술은 관광 소비를 이끌고, 관광은 다시 예술의 관객과 재원을 넓히는 관계가 될 수 있다. ■ 세계인의 시선보다 먼저, 관객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세계적인 관광도시를 지향할수록 해외 유명 공연과 국제적인 이벤트에 관심이 쏠리기 쉽다. 그러나 외부의 명성을 빌려오는 것만으로는 도시의 문화적 자립성을 확보할 수 없다. 세계적인 예술단체를 초청하는 일과 함께 부산의 예술가들이 성장하고, 지역의 공연단체가 새로운 작품을 만들며, 부산에서 제작한 콘텐츠가 다른 나라의 무대에 오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세계의 예술이 부산에 도착하는 도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산의 예술이 세계로 나가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시민의 역할도 중요하다. 시민이 일상적으로 공연장을 찾고 축제를 즐기며 지역 예술을 지지할 때 문화 인프라는 비로소 살아 있는 자산이 된다. 관광객만을 위해 만들어진 문화공간은 특정 시기의 방문객에 의존하기 쉽지만,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이용하는 공간은 도시의 문화적 기반을 더 튼튼하게 만든다. 결국 관광객에게 제공하는 경험의 수준은 그 도시가 평소 축적해 온 문화의 수준과 무관하지 않다. 관광객을 위한 특별한 장면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시민이 평소에도 좋은 공연과 예술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 관광객 수를 넘어, 도시의 선택받는 힘으로 관광객 수는 분명 중요한 지표다. 부산이 세계적인 관광도시들과 경쟁하려면 방문객 규모를 확대하는 노력도 지속해야 한다. 다만 숫자의 성장만으로 도시의 국제적 위상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부산을 방문한 사람이 왜 이곳을 선택했는지, 여행 중 무엇을 가장 인상 깊게 경험했는지,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 다시 방문할 의향이 있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특히, 공연과 축제가 실제로 숙박 예약과 지역 소비, 재방문으로 이어지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문화행사의 관객 수와 관광객의 만족도, 지역경제에 미친 효과를 함께 분석해야 다음 기획도 정교해질 수 있다. 이제 부산 관광정책에는 관광과 문화예술을 따로 바라보지 않는 관점이 필요하다. 공연장은 문화시설이면서 관광 동기이고, 축제는 시민의 문화행사이면서 도시의 국제적인 홍보 자산이다. 이 둘을 연결하는 능력이 앞으로 부산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 부산은 더 이상 세계적인 관광도시가 되기 위해 무엇인가를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 도시가 아니다. 이미 가진 자산을 어떤 순서와 방식으로 연결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도시다. 오페라하우스의 개관은 그 가능성을 시험할 중요한 기회다. 건물의 완공을 도시의 성취로 끝낼 것인지, 새로운 문화관광 시대의 출발점으로 만들 것인지는 앞으로의 운영과 기획에 달려 있다. ■ 도시는 건축으로 모습을 갖추지만, 기획으로 기억된다. 부산이 지향해야 할 세계적인 관광도시는 명소가 많고 축제가 화려한 도시만이 아니다. 세계인이 부산의 공연을 보기 위해 여행을 계획하고, 축제의 일정에 맞춰 방문하며, 그 경험 때문에 다시 돌아오는 도시다. 부산에는 이미 무대가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무대들을 하나의 도시적 경험으로 연결하는 안목과 실행력이다. 오페라하우스의 불이 켜지는 날, 부산의 관광도 함께 새로운 막을 올릴 수 있어야 한다. 그때 부산은 세계적인 관광도시를 꿈꾸는 데 머물지 않고, 세계인이 찾아올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도시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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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늘봄학교 전면화의 명암
[교육연합신문=박진우 칼럼] 초등 방과 후와 돌봄을 통합한 '늘봄학교'가 전국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초등 1~2학년까지 정착되며 학부모의 양육 부담 완화와 국가 책임 돌봄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기존 돌봄교실의 높은 대기 수요를 흡수하고 다양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해 아이들에게 안전한 일상을 보장하겠다는 정책적 취지는 교육 가족 모두가 깊이 공감하는 바다. 그러나 제도가 현장에 안착해 가는 과정에서 학교가 겪는 공간의 과밀화와 관리 체계의 과부하는 지속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엄중한 과제다. 실제로 교육부가 발표한 「2026년 늘봄학교 추진 현황」에 따르면, 초등 1~2학년으로 대상이 확대된 이후 참여율은 80%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기존의 돌봄 대기 수요를 사실상 해소하는 가시적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양적 성장의 이면에서 나타난 공간 여건의 격차는 여전히 깊은 고민을 안겨준다.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대도시 과밀 지역의 경우 일반 정규 교실을 늘봄과 함께 쓰는 '겸용 교실' 비율이 늘면서 교사의 수업 연구 및 학생 상담 공간이 잠식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반면 농어촌 및 원도심 학교는 전문 강사 수급의 어려움과 방과 후 안전 관리 인력 부족이라는 상반된 난관에 직면해 있다. 학교 담장 안으로 모든 돌봄 수요를 흡수하려는 물리적 집중이 낳은 구조적 한계다. 학교는 통계표 위의 숫자 하나로 환원될 수 없는 배움의 터전이자 아이들의 삶이 자라나는 공간이다. 모든 돌봄과 보육의 책무를 학교라는 단일 기관의 울타리 안에만 가두려 한다면, 교원은 본연의 교수·학습 연구와 학생 지도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고 돌봄 서비스의 질적 도약 또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질 높은 교육'과 '안정적인 공공 돌봄'이 조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학교와 지역사회가 유기적으로 역할을 나누는 패러다임의 확장이 요구된다. 우선, 학교 중심의 돌봄을 넘어선 '지자체 책임형 협력 거버넌스' 확대가 절실하다. 학교 밖 유휴 공공시설, 청소년수련관, 주민자치센터, 도서관 등을 거점형 늘봄센터로 적극 발굴·연계해야 한다. 공간이 부족한 학교의 아이들이 안전하게 이동해 질 높은 예체능 및 놀이 프로그램을 누릴 수 있도록 지자체가 통학 및 공간 운영을 전담하는 '온 마을 돌봄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학교 내 '교육'과 '돌봄'의 운영 체계를 행정적·공간적으로 정교하게 분리해야 한다. 정규 교육과정을 담당하는 교원 조직과 늘봄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늘봄지원실 전담 인력의 업무 경계를 명확히 확립해야 한다. 늘봄전담사 및 관리 인력의 고용 안정성과 전문성을 높이고, 안전 관리와 시설 유지보수, 예산 집행 등의 행정 부담이 일반 교사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제도적 지원을 빈틈없이 갖추어야 한다. 나아가 '양적 수용'을 넘어 아이들의 정서적 쉼을 보장하는 '돌봄 질의 내실화'가 필요하다.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학교에 머무는 아이들에게 단순한 시간 때우기식 프로그램이나 과도한 특별활동을 강요하기보다, 자유 놀이와 쉼, 또래 간의 정서적 교감이 가능한 아동 친화적 쉼터를 조성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종일 이어지는 빽빽한 통제가 아니라 안전 속에서 마음 놓고 숨 쉴 수 있는 편안한 품이다. 국가가 책임지는 돌봄의 완성을 위해서는 학교에만 모든 짐을 지우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자체와 지역사회가 함께 아이들의 성장을 보듬는 성숙한 교육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 박진우 ◇ 교육학 박사 ◇ 부산 칠암초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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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의 왕 김광휘] 2027 대입논술 비법 - 고려대학교 논술
[교육연합신문=김광휘 논술] 고려대학교 논술은 단순히 글을 잘 쓰는 시험이 아니다. 주어진 제시문과 자료를 정확히 읽고, 문제의 요구에 맞게 핵심 개념을 뽑아내며, 그것을 논리적인 답안 구조로 연결하는 시험이다. 김광휘 ‘논술의 왕’식으로 정리하면 고려대 논술의 핵심은 다음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문제의 요구를 먼저 파악하고, 제시문을 요약이 아니라 논거로 바꾸어라.” 수험생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고려대 논술 대비 비법은 다음과 같다. ■ 제시문보다 문제를 먼저 읽어라 논술 답안의 방향은 제시문이 아니라 문제의 명령어에서 결정된다. ‘비교하라’, ‘분석하라’, ‘비판하라’, ‘평가하라’, ‘설명하라’, ‘해결방안을 제시하라’는 지시어에 따라 답안의 구조가 완전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 ‘비교하라’는 문제에서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모두 밝혀야 하고, ‘비판하라’는 문제에서는 대상의 한계나 논리적 약점을 지적해야 한다. ‘해결방안’을 요구하는 문제에서 제시문 요약만 반복하면 좋은 답안이 될 수 없다. ○ 비법 포인트 문제를 읽을 때 명령어에 밑줄을 긋고, 답안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먼저 결정하라. ■ 제시문은 따로 읽지 말고 관계 속에서 읽어라 고려대 논술에서 중요한 것은 제시문 하나하나의 단순 요약이 아니다. 여러 제시문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는지 파악해야 한다. 제시문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관계로 연결된다. ▲같은 문제를 서로 다른 관점에서 설명한다. ▲한 제시문이 다른 제시문의 한계를 보완한다. ▲두 제시문이 서로 대립하는 가치관을 보여준다. ▲하나의 제시문은 원인을, 다른 제시문은 해결 방향을 제시한다. 따라서 제시문을 읽을 때는 “이 글이 무슨 내용인가?”에서 멈추지 말고, “다른 제시문과 어떤 관계인가?”까지 파악해야 한다. ○ 비법 포인트 고려대 논술의 핵심은 제시문 요약이 아니라 제시문 간 상관관계 파악이다. ■ 공통 개념을 뽑아라 여러 제시문과 자료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을 찾아야 답안의 중심이 잡힌다. 예를 들어 자유, 평등, 공정성, 경쟁, 연대, 공동체, 다양성, 책임, 효율성, 인간 존엄, 기술 발전, 사회적 약자, 불평등 같은 개념들이 자주 활용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키워드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제시문 속에서 어떤 가치가 충돌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 예시 ▲자유 vs 평등 ▲경쟁 vs 연대 ▲효율성 vs 공정성 ▲개인의 권리 vs 공동체의 책임 ▲성장 vs 분배 ▲기술 발전 vs 인간성 ▲다양성 vs 사회 통합 ○ 비법 포인트 주제를 외우지 말고, 주제 속에 숨어 있는 가치 대립 구조를 찾아라. ■ 자료는 나열하지 말고 한 문장으로 묶어라 표, 그래프, 통계, 사례 자료가 나올 경우 수험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자료를 하나씩 설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좋은 답안은 자료들을 관통하는 공통 의미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예를 들어 여러 자료가 소득 격차, 교육 기회 차이, 지역 불균형을 보여준다면 다음과 같이 묶을 수 있다. “제시된 자료들은 사회적 불평등과 기회 격차가 여러 영역에서 구조적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자료를 종합해 핵심 문제를 규정해야 이후 원인 분석과 해결방안 제시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 비법 포인트 자료를 설명하지 말고, 자료가 함께 가리키는 사회문제를 찾아라. ■ 제시문은 요약하지 말고 논거로 바꿔라 논술 답안에서 제시문은 단순히 정리하는 대상이 아니다. 자신의 주장이나 판단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해야 한다. ▲나쁜 답안 : 제시문 A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좋은 답안 : 제시문 A가 강조하는 공동체적 연대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문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사회적 협력과 제도적 지원이 함께 필요하다. 이처럼 제시문의 내용을 자신의 논리 안으로 끌어와야 한다. ○ 비법 포인트 “이 제시문은 무엇을 말하는가?”보다 “이 제시문을 내 주장에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생각하라. ■ 답안은 결론부터 설계하라 논술 답안을 처음부터 써 내려가면 논지가 흔들리기 쉽다. 먼저 결론을 정하고, 그 결론을 뒷받침할 근거를 배치해야 한다. 예를 들어 결론이 다음과 같다고 하자. “사회적 불평등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제도적 개선과 공동체적 연대가 함께 필요하다.” 그러면 본론은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불평등의 원인 분석 ▲개인 책임론의 한계 ▲사회적·제도적 해결방안 제시 ○ 비법 포인트 답안은 쓰는 것이 아니라 설계하는 것이다. 결론을 먼저 정하고 본론을 배치하라. ■ 해결방안은 개인·사회·제도 차원으로 구체화하라 해결방안 문제에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와 같은 추상적 표현만 쓰면 설득력이 약하다. 해결방안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효과적인 방식은 세 층위로 나누는 것이다. ▢ 개인 차원 개인은 편견과 고정관념을 줄이고, 타인의 권리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 사회 차원 사회는 공감, 연대, 협력의 문화를 확산하고, 차별과 배제를 줄이는 공론장을 마련해야 한다. ▢ 제도 차원 국가와 제도는 교육,복지,노동,지역 정책 등을 통해 구조적 불평등을 완화해 공정한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 비법 포인트 해결방안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드러나야 한다. ■ 옹호·비판형 문제는 입장을 끝까지 유지하라 특정 주장에 대해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문제가 나오면 입장의 일관성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비판한다고 해놓고 본론에서 옹호 논리를 쓰거나, 결론에서 애매하게 “둘 다중요하다”고 마무리 하면 답안의 힘이 떨어진다. ■ 안정적인 구성은 다음과 같다. ▲ 대상 주장의 핵심 정리 ▲자신의 입장 제시 ▲제시문을 근거로 활용 ▲반대 입장 간단 검토 ▲자신의 결론 재확인 ○ 비법 포인트 어느 입장을 선택했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입장을 끝까지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 반드시 피해야 할 답안 유형 고려대 논술에서 피해야 할 답안은 다음과 같다. ▢ 제시문 요약형 답안 ▲제시문 내용을 반복하지만 자신의 논리로 연결하지 못하는 답안 ▢ 자료 나열형 답안 ▲표와 그래프를 하나씩 설명하지만 공통 의미를 찾지 못하는 답안 ▢ 입장 혼란형 답안 ▲옹호와 비판이 뒤섞여 논지가 흔들리는 답안 ▢ 구호형 답안 ▲ “노력해야 한다”,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만 반복하는 답안 ▢ 배경지식 과시형 답안 ▲ 문제와 직접 관련 없는 이론이나 시사 사례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답안 ○ 비법 포인트 논술은 많이 쓰는 시험이 아니라 정확히 쓰는 시험이다. ■ 실전 답안 기본 공식 고려대 논술 답안은 다음 공식으로 정리할 수 있다. 문제 명령어 확인 → 제시문 핵심 파악 → 공통 개념 추출 → 자료 종합 → 입장 결정→ 근거 배치 → 결론 정리 사회문제 해결형 문항이라면 다음 틀을 활용할 수 있다. 제시된 자료들은 ○○ 문제가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문제의 원인은 ○○에 있으며, 제시문 A는 이를 □□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또한 제시문 B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접근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인식 변화, 사회적 연대, 제도적 개선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옹호·비판형 문항이라면 다음 틀이 안정적이다. 제시된 주장의 핵심은 ○○이다. 나는 이 주장을 옹호한다/비판한다. ▲첫째, 제시문 A는 ○○의 측면에서 이 주장의 타당성/한계를 보여준다. ▲둘째, 제시문 B는 □□의 관점에서 이를 뒷받침한다. 물론 반대 입장에서는 ○○라고 볼 수 있으나, 이는 ○○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다.따라서 이 주장은 옹호/비판되어야 한다. ■ 최종 정리 김광휘 ‘논술의 왕’식 고려대 논술 비법은 결국 다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정확히 읽고, 관계를 파악하고, 구조적으로 써라.고려대 논술은 예상 주제를 맞히는 시험이 아니다. 낯선 제시문과 자료가 나오더라도 문제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핵심 개념을 뽑아내며, 제시문을 자신의 논거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이다. 따라서 수험생은 배경지식 암기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문제 독해, 제시문 분석, 자료 해석, 논거 구성, 답안 구조화 훈련을 반복해야 한다. ● 한 줄 비법 고려대 논술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주어진 자료를 정확히 읽고 논리적으로 연결하는 사람이 이긴다. ▣ 김광휘 ◇ 前현광문리학원 원장 ◇ 前부산종로학원 원장 ◇ 前부산학원 부원장 ◇ 언어영역 문학(창과창) ◇ 언어영역 독해(한샘출판사) ◇ 홀로서기 논술(대학진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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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학생 감소 시대, 특수교육의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
[교육연합신문=신동현 칼럼] 우리나라 학생 수는 계속 줄고 있습니다. 학교마다 빈 교실이 생기고 소규모학교도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흐름과 반대로 빠르게 늘어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바로 특수교육대상자입니다. 「2026 특수교육통계」에 따르면 특수교육대상자는 2022년 10만 3,695명에서 2023년 10만 9,703명, 2024년 11만 5,610명, 2025년 12만 735명, 2026년 12만 4,195명으로 해마다 증가했습니다. 4년 만에 2만 500명, 19.8%가 늘어난 것입니다. 특히 자폐성장애 학생은 같은 기간 1만 7,024명에서 2만 8,798명으로 69.2% 증가했습니다. 학생들이 배우는 곳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2026년 특수교육대상자 가운데 특수학교에서 배우는 학생은 3만 1,993명인 반면, 일반학교 특수학급 학생은 7만 2,784명, 일반학급에서 통합교육을 받는 학생도 1만 9,202명입니다. 전체의 74%가량이 일반학교에서 생활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제 특수교육은 특수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학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특수교육 체계는 이렇게 빠르게 늘고 다양해지는 교육수요를 제대로 감당하고 있을까요? 현행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시행령」 제22조는 특수교육 담당 교원을 특수교육대상자 4명마다 1명씩 배치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네 명이라도 필요한 지원은 전혀 다릅니다. 수업지원만 필요한 학생이 있는가 하면 의사소통, 이동, 신변처리, 행동·감각조절 등에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한 학생도 있습니다. 교사가 한 학생의 위기상황이나 신변처리를 지원하는 동안 다른 학생의 수업이 멈출 수도 있습니다. 결국 교사와 지원인력의 부족은 학생이 받아야 할 교육의 부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수학교를 계속 늘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2022년 192교였던 특수학교는 2026년 199교로 7교 늘어난 데 그쳤습니다. 반면 일반학교 특수학급은 같은 기간 1만 2,712학급에서 1만 5,426학급으로 2,714학급, 21.3% 증가했습니다. 우리는 2017년 서울 강서구에서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싼 일부 주민의 반대 과정에서 장애학생 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학교 설립을 호소했던 일도 경험했습니다. 특수학교가 필요하다고 해서 필요한 지역에 곧바로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닌 현실도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특수학교를 더 짓고 특수학급을 하나씩 늘리는 기존 방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변화한 교육환경에 맞는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의 대안은 학생 감소로 여유 공간이 생기는 일반학교, 특히 소규모학교를 활용한 ‘거점형 특수학급’입니다. 지역의 특수교육 수요와 접근성을 고려해 몇몇 학교를 거점으로 정하고, 일반 특수학급보다 충분한 특수교사와 지원인력을 배치하는 것입니다. 감각조절실·심리안정공간·신변처리시설을 갖추고 행동·의사소통 지원 등 전문적인 기능도 함께 두는 것입니다. 거점의 전문인력이 인근 학교를 찾아가 학생과 교사를 지원하는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을 한 학교에 모으자는 것이 아닙니다. 특수교육의 전문성과 인력을 거점에 모아 여러 학교가 함께 활용하자는 것입니다. 해외에서도 그 가능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영국은 일반학교 안에 ‘SEN Unit’과 ‘Resourced Provision’을 두어 전문적인 인력과 시설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모든 학교가 모든 전문인력과 시설을 각각 갖추기 어렵다면, 일반학교 안에 전문성을 집중하면서 일반교육과 특수교육을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우리도 이제 ‘일반학교냐 특수학교냐’라는 두 가지 선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학급과 순회지원, 일반 특수학급, 거점형 특수학급, 특수학교로 이어지는 촘촘한 지원체계를 만들고 학생 수뿐 아니라 실제 지원요구도에 따라 교사와 지원인력을 배치해야 합니다. 한쪽에서는 학생이 줄어 교실이 비어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특수교육을 받을 공간과 교사, 전문인력이 부족합니다. 이 두 문제를 따로 바라볼 이유가 없습니다. 학생이 줄어드는 학교의 공간과 특수교육의 전문성을 연결하는 것. ‘한 명의 특수교사가 모든 것을 책임지는 특수교육’에서 ‘여러 교사와 전문가, 지역의 학교가 한 아이를 함께 지원하는 특수교육’으로 바꾸는 것. 그곳에서 학생 감소 시대, 우리 특수교육의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 신동현 ◇ 부산 강서초등학교 교장 ◇ 前 부산 장서초등학교 교감 ◇ 前 부산광역시교육청 학교정책과 장학관 ◇ 前 부산광역시교육청 초등교육과 장학관 ◇ 前 부산광역시교육청 정책연구소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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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지구가 보낸 경고장…국가와 교육이 답할 '기후재난'의 골든타임
[교육연합신문=박진우 칼럼] 해마다 지구촌을 강타하는 이상기후는 이제 일시적인 자연현상이 아닌 인류의 일상을 파고드는 복합 재난으로 고착화되었다. 올해만 보더라도 유럽 전역에서는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폭염으로 수만 명의 초과 사망자가 발생했고, 북미와 아시아 곳곳은 기습적인 집중호우로 도시 전체가 침수되는 비극을 겪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기존의 장마 공식은 무너진 지 오래며, 예고 없는 국지성 폭우와 폭염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와 UN이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를 넘어 '지구 열열화(Global Boiling)' 시대가 왔다"고 경고했듯, 기후재난의 발생 빈도와 피해 범위가 매년 가파르게 확산하는 현상에 대해 우리는 엄중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이상기후는 단지 어쩌다 찾아오는 계절적 불운이 아니라 인류와 미래 세대의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국가적 재난이다. 과학자들은 오늘 우리가 겪는 혹독한 더위와 기습 폭우가 앞으로 맞이할 수많은 날 중 ‘가장 온화했던 날’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 브뤼노 라투르가 언급했듯 인류는 이미 '기후적 난민'의 시대에 진입했다. 이러한 시점에서 교육현장의 학사 운영 중 폭우나 폭염이 엄습할 때 단축수업이나 휴업을 안내하고 주의를 당부하는 수준의 임시방편으로는 다가올 미래를 감당할 수 없다. 국가 차원에서 기후위기를 '국가 안보 및 국민 생존'의 문제로 규정하고, 이에 발맞추어 미래 세대를 길러내는 교육의 방향성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학교 현장과 사회가 체감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은 무엇인가. 첫째, 국가 차원의 '기후적응형 학교 인프라 표준화'와 재정 지원이다. 학교 건물 자체의 단열 성능을 극대화하고 옥상 녹화 및 빗물 저류 시설을 의무화하는 '그린 스마트 건축 기준'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폭염 시에도 학생들이 안전하게 신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모듈러형 실내 체육/놀이 공간' 확충을 국가 예산으로 우선 지원해야 한다. 둘째, 체계적인 '기후 데이터 기반 학사운영 예측 시스템' 구축이다. 각 지자체 및 기상청과 연계하여 지역별·학교별 기후 위험도를 실시간 측정하고, 이에 따른 단계별 대응 매뉴얼(체육 수업 전환, 등하교 시간 자율 조정, 온라인 수업 전환 기준 등)이 현장에서 혼선 없이 작동하도록 행정적·법적 근거를 명확히 정비해야 한다. 셋째, 지식 전달을 넘어선 '실천형 기후 안보·생태 교육'으로의 대전환이다. 기후변화 교육을 단순한 환경 과목의 일부가 아니라, 아이들이 생존 역량을 키우고 탄소중립 사회를 이끌어갈 '기후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필수 교육과정으로 재편해야 한다. 학교 내 에너지 소비를 학생들이 직접 측정하고 줄여보는 실천형 프로젝트 교육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중국의 고전 『서경』에는 "사전에 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라는 가르침과 함께, "망한 뒤에 도모하면 이미 늦다"는 경고가 전해진다. 교육의 본질은 우리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마음껏 배우며 미래를 꿈꾸도록 울타리가 되어주는 데 있다. 이상기후라는 엄중한 시대적 경고 앞에서, 국가의 선제적 장기 대책과 교육 현장의 과감한 실천을 통해 국민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든든히 지켜내야 할 때다. ▣ 박진우 ◇ 부산 해빛초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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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그날, 교실에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 [교육연합신문=황영식 기고] 교단에 서는 사람에게 학생은 단순한 제자가 아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삶이며, 세상으로 나아가기 전 우리가 잠시 맡아 기르는 존재다. 그래서 교사는 늘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배웅한다. “잘 다녀오너라.” 그 말은 무사 귀환을 바라는 기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2014년 봄, 그 약속은 무너졌다. 세월호 참사는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교실로 돌아오지 못한 비극이었다. 그날 이후 교사들의 마음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결석’이 남았다. 왜 아이들은 돌아오지 못했는가. 아이들의 잘못은 없었다. 문제는 어른들이었다. 안전보다 효율을 앞세운 구조,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대응 체계,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회가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다. 그 이후에도 재난은 반복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구조적 문제다. 사회는 하나의 교실이며, 국가는 가장 큰 교육자다. 반복되는 사고는 잘못된 사회적 학습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제 책임을 묻고, 교훈을 제도화해야 한다. 진상 규명은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며, 책임자에 대한 합당한 조치는 반복을 막기 위한 사회적 기준이다. 국가의 사과와 배상 역시 공동체 책임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기억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생명안전 기본법 제정, 독립적인 재난조사 체계 구축, 예방 중심의 안전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세월호 12주기를 맞아 다시 다짐한다.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던 그날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남은 아이들에게 더 안전한 사회를 물려주겠다고. 우리는 아이들에게 말해 왔다. “너희는 우리의 미래다.”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다. 그 미래를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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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그날, 교실에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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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경험이 경쟁력이다…우리 아이 교육, 이제는 ‘현장’으로 가야 한다
- [교육연합신문=김미혜 기고] 입시 중심 교육이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다. 점수와 등급, 스펙을 쌓는 데 집중해 온 결과, 아이들은 많은 지식을 갖추었지만 정작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능력,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는 힘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지식은 넘치지만 질문은 줄어들고 있다. 정답을 찾는 데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데는 서툰 것이 지금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이제 교육의 방향은 분명히 달라지고 있다. ‘무엇을 아는가’보다 ‘어떤 경험을 했는가’가 더 중요한 시대, 그리고 그 경험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짓는 시대다. ■ 교실을 넘어 세계로 나가는 교육 글로벌 시대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낯선 환경 속에서도 스스로 적응하고,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며, 타인과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러한 역량은 단순한 교실 수업만으로는 길러지기 어렵다. 실제 상황 속에서 부딪히고, 소통하고, 해결해 나가는 경험이 축적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해외 체험형 교육 프로그램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다. 단순한 ‘어학연수’를 넘어, 실제 학교 수업에 참여하고 또래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문화 속에서 배우는 교육은 교과서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가치다. 미국 위스콘신주의 명문 사립고에서 운영되는 글로벌 리더십 캠프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 있다. 학생들은 3주 동안 현지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기숙사 생활을 하며, 미국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한다. 이 과정에서 영어는 ‘과목’이 아닌 ‘도구’가 되고, 학습은 ‘시험’이 아닌 ‘경험’으로 전환된다. ■ ‘짧지만 깊은 변화’가 만들어내는 성장 일각에서는 “3주라는 시간이 과연 충분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경험의 밀도’다. 익숙한 환경을 벗어난 순간,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처음에는 서툴고 두렵지만,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점차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키워간다. 낯선 언어로 말을 걸고, 다른 문화 속에서 관계를 맺고, 스스로 하루를 계획하며 생활하는 경험은 아이에게 강한 자기 효능감을 심어준다. “나는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은 단순한 학습 동기를 넘어, 인생 전반을 이끄는 중요한 자산이 된다. 또래 외국 학생들과의 교류는 단순한 언어 습득을 넘어,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형성하게 한다. 이는 앞으로의 글로벌 사회에서 필수적인 경쟁력이 될 것이다. ■ 학부모의 선택이 아이의 방향을 바꾼다 결국 교육은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아이의 미래를 결정짓는다.과거에는 안정적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다. 변화가 빠른 사회일수록, 정해진 길보다 스스로 길을 찾는 힘이 더욱 요구된다. 아이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스스로 꿈을 그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오늘날 학부모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보호를 넘어 ‘기회의 제공자’로서의 역할이 강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경험이 스펙을 넘어 ‘자산’이 되는 시대 이제 경험은 단순한 이력이 아니라, 아이의 정체성과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자산이 되고 있다. 입시에서도 변화는 뚜렷하다. 단순한 성적보다 과정과 성장, 그리고 경험 속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변화했는지가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리더십 캠프와 같은 프로그램은 단순한 해외 체험이 아닌, 아이 스스로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 안에서 아이는 언어를 배우고, 세상을 이해하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3주라는 시간은 짧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얻는 깨달음과 변화는 아이의 인생에서 결코 짧지 않은 흔적으로 남는다. ▣ 김미혜 ◇ 국제진로전문가 ◇ 위스콘신대학교 한국입학홍보처 이사 ◇ UHR Korea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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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경험이 경쟁력이다…우리 아이 교육, 이제는 ‘현장’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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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왜 지금 다시 문해력인가"…시선추적기술이 교육에 던지는 질문
- 〔교육연합신문=석윤찬 기고〕 교실에서 우리는 자주 비슷한 장면을 마주한다. 아이는 교과서를 펴고 고개를 숙인 채 줄을 따라가며 읽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히 읽는 듯하다. 그러나 내용을 물으면 답이 비어 있고, 문제를 풀게 하면 엉뚱한 선택지를 고른다. 이때 교사는 잠시 멈칫하게 된다. 이 아이는 읽지 않은 것일까, 읽었지만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읽는 척만 하고 있었던 것일까. 문해력의 문제는 새롭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 이 문제가 교육 현장에서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분명하다. 문해력이 더 이상 국어 한 과목의 성취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수학 문장제 문제를 이해하는 능력, 사회 교과서의 개념을 연결하는 능력, 과학 실험 절차를 해석하는 능력, 디지털 환경에서 정보를 선별하고 신뢰도를 판단하는 능력까지 거의 모든 학습은 문해력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이제 문해력은 특정 교과의 문제가 아니라 학습 전반을 떠받치는 기초 역량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아이들의 문해력을 어떻게 보아 왔을까. 대체로 결과 중심이었다. 시험 점수, 독후감, 발표, 수행평가, 교사의 관찰 기록이 주요 판단 근거였다. 물론 이런 지표는 중요하다. 그러나 결과만으로는 읽기의 과정을 충분히 볼 수 없다. 문장을 천천히 읽는 아이가 있다고 해서 곧바로 읽기 능력이 낮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낱말은 읽지만 문장 의미를 통합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오히려 매우 신중하게 읽는 좋은 독자일 수도 있다. 반대로 빨리 읽는 아이가 반드시 잘 읽는 것도 아니다. 빠르게 훑으면서 핵심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이 정말 알고 싶은 것은 정답을 맞혔는가만이 아니라, 아이가 어떻게 읽었는가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선추적기술은 중요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시선추적은 아이의 읽기 결과가 아니라 읽기 과정을 조금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학생이 화면이나 글의 어느 부분을 오래 보는지, 어디에서 멈추는지, 어느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는지, 어떤 순서로 정보를 탐색하는지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보이지 않던 읽기의 흔적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물론 시선추적기술이 교사를 대신해 문해력을 자동 판정해 주는 마법의 도구는 아니다. 교육은 언제나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고, 아이의 읽기 행동은 컨디션, 배경지식, 과제 난도, 정서 상태, 수업 설계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되읽기라도 어떤 학생에게는 어려운 문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일 수 있고, 다른 학생에게는 줄을 놓친 결과일 수 있다. 따라서 시선 데이터는 정답이 아니라 해석의 단서다.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그 데이터를 교육적으로 읽어 내는 교사의 전문성이다. 그럼에도 시선추적기술의 의미는 크다. 지금까지 교사는 ‘읽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와 ‘실제로 읽고 있는 아이’를 분명히 구분하기 어려웠다. 한 교실 안에 20명, 30명의 학생이 있을 때 개별 학생의 눈 움직임까지 살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시선 데이터는 읽기의 미세한 흔적을 보여 준다. 어떤 학생은 첫 문단에서 지나치게 오래 머물고, 어떤 학생은 핵심 문장을 건너뛰며, 어떤 학생은 문제의 선택지를 먼저 훑고 본문을 대충 읽는다. 이런 정보는 단순한 연구자료가 아니라 수업 설계와 피드백, 상담의 언어를 바꾸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좀 더 집중해서 읽어 보자”는 말은 흔하지만 학생에게는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반면 “너는 제목과 첫 문단은 오래 보았지만, 문제의 조건이 있는 부분은 빨리 지나갔구나” 또는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멈추기보다 앞뒤 문맥을 먼저 보자”와 같은 피드백은 훨씬 구체적이다. 시선추적기술은 문해력 지도를 태도 중심의 지시에서 전략 중심의 지도 쪽으로 옮겨 갈 수 있게 한다. 지금 학교 현장의 문해력 담론은 때로 지나치게 무겁고, 때로 지나치게 단순하다. 한편에서는 “아이들이 예전보다 책을 안 읽어서 문제”라고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AI 시대이니 새로운 기술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한쪽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자동으로 깊은 이해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기술을 들인다고 곧바로 읽기 능력이 자라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읽기의 본질을 다시 붙드는 일이다. 문해력은 글자를 읽는 능력에서 끝나지 않는다. 의미를 연결하고, 맥락을 추론하고, 중요한 정보를 가려내고, 스스로 이해를 점검하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미세하다. 그래서 이제 문해력 논의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한탄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아이들은 실제로 어떻게 읽고 있는가”를 묻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시선추적기술은 바로 그 질문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다. 그것은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교육의 본질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수단이다. 학생의 읽기 과정을 더 면밀히 보고, 더 섬세하게 이해하며, 더 정확하게 돕기 위해서다. 앞으로의 문해력 교육은 두 가지를 함께 가져야 한다. 하나는 인간 교사의 해석력이고, 다른 하나는 보이지 않던 학습 과정을 드러내는 기술이다. 교사는 여전히 중심에 있어야 한다. 다만 앞으로의 좋은 교사는 아이의 답안지만 읽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의 읽기 과정까지 읽어 내는 사람일 것이다. 문해력의 미래는 더 많은 시험지에 있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은, 아이가 한 문장을 읽을 때 어디에서 멈추고 어디로 되돌아가며 무엇을 놓치는지를 조용히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 석윤찬 ◇ 서울대 전기공학부 ◇ 비주얼캠프 대표 ◇ 시선추적(Eye-tracking) 기술 분야 창업가 ◇ AI 기반 시선추적 소프트웨어 “SeeSo” 개발 ◇ 문해력코스웨어 리드포스쿨 공급 ◇ 기술혁신대전 국무총리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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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왜 지금 다시 문해력인가"…시선추적기술이 교육에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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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늦게 배운다는 것의 의미
- [교육연합신문=황영식 기고] 사람은 언제까지 배울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로 살아가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부산 남구 기러기문화원 해람학교에는 조금 특별한 학생들이 있다. 대부분 노년의 학습자들이다. 이들은 어린 시절 학교에 다닐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했다. 가난과 전쟁, 그리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시대 속에서 배움은 늘 뒤로 밀려나 있었다.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아온 이들이 다시 교실에 앉는다. 오상호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공장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했고, 박춘화 할머니는 만주에서의 유년 시절을 지나 평생을 생계에 묶여 살아왔다. 두 사람에게 학교는 언제나 ‘다음에’로 미뤄진 삶의 영역이었다. 처음은 쉽지 않다. 글자는 낯설고, 손은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다. 한 글자를 쓰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교실에서는 그 시간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이 말은 단순한 배려가 아니다. 배움의 속도가 아니라, 배움의 지속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선언이다. 해람학교의 교실에서 배움은 경쟁이 아니라 과정이다.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다. 입학식에서 교장은 말한다.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온 것입니다. ”그리고 졸업식에서는 다시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왔느냐가 아니라, 끝까지 걸어왔느냐입니다.” ‘시와 음악의 밤’과 같은 자리에서는 배움이 단순히 글자를 익히는 것을 넘어, 삶을 노래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힘이 된다고 말한다. 배움은 결국 사람을 사람답게 이어주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배움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다. 삶을 다시 구성하는 과정이다. 오랫동안 ‘못 배운 사람’이라는 낙인처럼 따라다녔던 자기 인식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새롭게 이해하는 시간이다. 그 변화는 일상의 작은 장면에서 드러난다. 버스 정류장에서 목적지를 읽고, 거리의 간판을 소리 내어 읽고, 키오스크 앞에서도 더 이상 주저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이들에게는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경험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이제 와서 배우느냐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편지를 쓰고 싶어서입니다.” 자식들에게, 그리고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말을 이제는 글로 남기고 싶다는 것이다. 그 편지는 과거의 자신에게 닿는다. 힘겨운 시간을 견뎌낸 어린 날의 자신에게, 이제는 괜찮다고 말해 주는 방식으로. 해람학교의 교실은 단순한 교육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다시 읽는 장소이며,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기다림이 있다. 조급함이 아닌 기다림, 비교가 아닌 존중, 경쟁이 아닌 동행. 이러한 교육은 개인을 넘어 사회로 확장된다. 성인 문해교육은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사회 참여를 회복하는 공공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기러기문화원 해람학교는 오랜 시간 한글교육을 이어오며, 늦게 시작한 배움이 결코 늦지 않았음을 증명해 왔다. 이곳에서 졸업장은 학력의 증명이 아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다시 선택했다는 기록이다. 배움에는 늦음이 없다. 다만 시작이 있을 뿐이다. 오늘도 이 교실에서는 누군가 자신의 첫 문장을 써 내려간다. 서툴지만 분명하게, 그 문장은 삶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 ▣ 황영식 ◇ 기러기문화원 해람학교 교장 ◇ (재)하정육영장학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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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늦게 배운다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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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이마다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다
- [교육연합신문=고선화 기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하루하루 기적이 쌓이는 과정이다. 아이마다 성장의 속도와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특히, 발달장애 아동을 양육하는 시간은 기다림의 의미를 다시 배우게 한다. 작은 변화 하나에 담긴 기쁨, 그리고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결코 한 가정만의 몫이 아니다. 아이 한 명이 성장하기까지는 학교와 지역사회, 그리고 제도의 뒷받침이 함께해야 한다. 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어려움을 안고 있다.누군가는 말이 느리고, 누군가는 움직임이 불편하다. 또 어떤 아이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렵고, 교실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도전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이 있다. 아이들의 마음은 모두 같다는 것이다. 함께 웃고 싶고, 함께 배우고 싶고, 함께 어울리고 싶은 마음. 그 단순하고도 당연한 바람이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쉽지 않은 현실이라는 점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우리는 오랫동안 아이들을 나누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그 안과 밖을 구분하며 살아왔다. 이제는 그 경계를 허물어야 할 때다. 아이를 기준으로 세상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이들을 품어야 한다. 학교는 더 따뜻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아이 한 명 한 명의 ‘다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당연한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 돌봄과 교육 역시 더 이상 가족에게만 맡겨질 문제가 아니다. 그 책임은 사회가 함께 나누어야 한다. 다행히 지역사회 곳곳에서는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함께하는 프로그램, 주민과 봉사자들이 참여하는 돌봄 활동,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작은 손을 잡아주고, 한 걸음을 함께 내딛어 주는 일.그 사소한 실천이 아이들에게는 세상과 연결되는 큰 힘이 된다. 아이들이 차별 없이 웃을 수 있는 사회, 부모가 조금 덜 불안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은결국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작은 변화가 모여 큰 변화를 만든다.그 시작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곁에 있는 아이를 이해하려는 마음에서부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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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이마다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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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만우절에 남기는 작은 연극
-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나는 매년 4월 1일이면 200만 원짜리 거짓말을 한다. 영화의전당에서 근무한 지도 어느덧 16년. 직장 옆에는 아시아 최대 규모라 불리는 백화점이 자리하고 있다. 그 규모만큼이나 사람도 넘쳐난다.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 낮에도 도로가 주차장처럼 막히기 일쑤다.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5시 야외콘서트가 있는 날이면 나는 오후 2시에 출근한다. 연주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리허설을 지켜본 뒤 관객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차를 가지고 가려면 정오 무렵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두 시간쯤 지나면 백화점 인파로 도로가 꽉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불편한 교통 체증 속에서도 한 가지 위안이 있다. 점심 메뉴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백화점 식당가에는 언제나 다양한 선택지가 기다리고 있다. 1년 전 오늘, 2025년 4월 1일 화요일.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작됐다. 오전 10시, 부산의료원장이 영화의전당을 찾았다. 새로 취임한 배우 출신 대표에게 병원 홍보영상 제작 협력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환자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의료원의 회생을 위해 대대적인 홍보를 준비 중이라는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11시에는 서울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생중계 회의가 진행됐다. 예상보다 쌀쌀한 날씨에 대비해 관객들에게 따뜻한 복장을 안내하는 문자 발송과 현장 안내판 설치까지 세세한 논의가 이어졌다. 회의를 마친 뒤 공연팀 동료들과 백화점 식당가로 향했다. 그날의 메뉴는 부대찌개였다. 라면과 우동사리를 추가해 배가 터질 듯 먹고 나왔다. 그러나 배부름도 잠시,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갑작스러운 신호가 찾아왔다. 급히 1층 스타벅스 뒤편 화장실로 향했다. 두 번째 칸에 들어가 앉는 순간, 시야에 낯선 물체 하나가 들어왔다. 왼쪽 휴지걸이 위에 놓인 큼지막한 손지갑. 순간 손이 멈췄다. 조심스럽게 지갑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오만원권 지폐가 빼곡히 들어 있었다. 대략 100장, 500만 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걸 그냥 들고 나가면…? ’곧바로 또 다른 생각이 뒤따랐다. ‘여긴 CCTV 천국이다.’ 짧은 갈등 끝에 나는 안내센터로 향했다. 분실물 습득 신고를 하고 명함을 남겼다. 돌아오는 길, 괜히 마음이 가벼워졌다. 오후 3시, 부산시의회 정책지원담당관 미팅이 있어 자리를 옮겼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해운대경찰서 우동지구대였다. 조금 전 습득한 지갑과 관련해 확인할 사항이 있으니 방문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보상금. 법적으로 습득자는 일정 비율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만약 20%라면 100만 원. ‘100만 원….’ 그 숫자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구대에 도착하자 경찰관은 신분 확인을 마친 뒤 봉투 하나를 건넸다. 지갑 주인께서 감사 인사와 함께 전해달라고 하셨다. 봉투를 여는 순간, 나는 말을 잃었다. 오만원권 40장. 200만 원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걸 받아도 되는 걸까. 잠시 망설이자 경찰관이 덧붙였다. “보상금은 100만 원이고, 나머지는 법적 기준에 맞게 전달된 금액입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갑 주인은 어떤 분입니까?” 경찰관은 잠시 망설이다 답했다. “해운대역 인근 사찰의 스님입니다.” 뜻밖의 대답이었다. 나는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지만, 스님은 신분 공개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잠시 고민한 끝에 나는 봉투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그때 경찰관이 작은 종이 하나를 건넸다. 사찰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종이를 펼쳤다.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그 안에 적힌 한 줄을 바라보았다. 만우절. 이 이야기를 나는 매년 4월 1일이면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사람들은 처음엔 진지하게 듣는다. 이야기가 중반을 지나 ‘200만 원 봉투’ 대목에 이르면 분위기는 금세 달아오른다. “대박이다!”, “오늘 저녁은 네가 쏴라!”, “회에 소주 가자!” 그들의 기대가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 나는 마지막 한 줄을 꺼낸다. "그 종이에 뭐라고 적혀 있었냐면, 만우절.” 잠시 정적이 흐른다. 이내 한숨과 야유가 터져 나오고, 곧 웃음이 번진다. 나는 그 순간이 좋다. 짧은 이야기 하나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결국 웃음으로 끝나는 시간.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소박한 연극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또 하나의 거짓말을 준비한다.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웃음을 남기기 위해... ▣ 서승우 ◇ (재)영화의전당 공연본부장 ◇ 동천고등학교 총동문회 부회장 ◇ 부산시 영화영상정책위원회 위원 ◇ 부산 남구립예술단 운영위원 ◇ 부산연극연극상 선정위원 ◇ 부산창작오페라단 이사 ◇ 前부산문화재단 이사 ◇ 前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운영위원 ◇ 前부산국제연극제조직위원회 부집행위원장 ◇ 前부산연극협회 부회장 ◇ 2025년 국무총리표창장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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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만우절에 남기는 작은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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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다시 일상을 이어가게 하는 시간, 보호관찰
- [교육연합신문=김미정 기고] 뒷북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요즘 한 드라마에 빠져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다양한 이유로 정신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이 병동에서 벌이는 해프닝을 주제로 다룬 드라마다. 정신병동 간호사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드라마는 정신질환을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이해와 회복의 시선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우울한 주제일 수도 있는 이야기가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들의 회복은 극적인 완치가 아니라 조금 덜 아픈 상태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보호관찰 현장에서 마주하는 모습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최근 보호관찰 대상자 가운데 정신건강 문제를 동반한 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현상이라기보다는 그동안 개인과 가족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문제가 이제야 사회 밖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우울증, 양극성장애, 조현병과 같은 질환을 숨기거나 개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치료를 통해 증상이 조절될 수 있다는 사회적 이해가 확산되고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개선되고 있어 사회가 한 걸음 더 책임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그러나 정신질환과 관련된 강력범죄가 보도될 때마다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 불안은 결국 ‘누가, 어떻게, 계속 이런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살피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보호관찰은 바로 그 지점을 담당하며 치료와 사회내 관리를 이어주는 안전장치의 기능을 한다. 정신질환을 가진 대상자에 대한 보호관찰은 판결문을 검토하는 단계부터 시작된다. 범죄의 내용, 양형의 이유를 꼼꼼히 살피고, 보호관찰 기간 중 지도·감독의 방향과 지원 방안을 모색한다. 정신질환 대상자는 진단서를 제출하고, 정신질환이 의심되는 대상자는 정신건강 선별검사를 실시하여 판단한다. 정신질환 대상자로 판명되면 보호관찰 기간 중 치료를 임의로 중단하여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기적인 진료 및 복약 사실을 확인하고 필요하면 보호관찰관이 병원에 동행하기도 한다. 2023년부터는 보호관찰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정신질환자의 보호관찰 종료사실을 경찰과 지자체에 통보하여, 종료 후에도 치료가 중단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는 최근 강조되고 있는 기소유예 마약사범의 회복과 사회복귀를 위한 ‘사법-치료-재활 연계모델’의 취지와도 맞닿아 있다. 보호관찰은 결국 사람을 다루는 일이다. 재범이나 보호관찰관의 정당한 지시를 위반할 경우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보호관찰 대상자를 지역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복귀시키는 데 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보호관찰관은 생계지원이 필요하면 행정복지센터와 협력하고, 치료 지속여부를 더 면밀히 확인하기 위해서는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와 연계한다. 취업과 자립을 돕기 위해 법무보호복지공단 등 다양한 지역자원과 협력하는 일도 보호관찰 업무의 중요한 부분이다. 드라마 속 의료진이 환자의 작은 변화에도 의미를 두듯, 보호관찰관의 현장도 그렇게 흘러간다. 보호관찰 대상자의 극적인 변화보다 중요한 것은 사고 없이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일,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더 안정된 일상을 이어가게 하는 일이다. 그들이 다시 일상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책임지는 일, 그것이 지금 보호관찰관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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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다시 일상을 이어가게 하는 시간, 보호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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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아 완성! 시대의 거친 바람을 이기는 나만의 고결한 향기
- [교육연합신문=김성희 기고] 알고리즘의 시대, ‘나’에 대한 본질을 묻습니다. 모든 것이 자동화되고 AI가 인간의 지능을 추월하는 ‘초연결 시대’입니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타인이 정해 놓은 유망 직종이나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길에서 ‘천직(天職)’을 찾으려 방황합니다. 하지만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참된 천직은 단 하나,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찾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천직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직업’이 아니라, 내면의 씨앗이 꽃을 피우는 ‘과정’, 그 자체라고 말입니다. 天職은 배움과 실천으로 빚어내는 자신만의 길이고 모습입니다. 그래서 공자(孔子)는 말합니다. ‘태생적 천재’는 없다, 오직 ‘구하는 자’만 있을 뿐이라고! 우리는 흔히 천직을 ‘운명적으로 타고난 특별한 재능’이라 오해합니다. 그러나 성인(聖人) 공자조차 『논어』에서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다. 옛것을 좋아하고 민첩하게 그것을 구하는 자(好古敏以求之者)일 뿐이다.” 공자가 강조한 천직의 핵심은 ‘역동적인 배움’입니다. 배움은 지식을 채우는 행위를 넘어,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깨닫고 끊임없이 가능성을 확장해 나가는 작업입니다. 즉, 천직은 완성형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배움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공자가 ‘배움의 태도’를 말했다면, 벤자민 프랭클린은 그 배움을 삶에서 어떻게 ‘실천’으로 구현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가난으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밤새 읽은 문장을 다시 써보는 ‘재구성 훈련’을 통해 지식을 손끝의 감각으로 익혔습니다. 특히 그는 자신의 인격을 닦기 위해 ‘3가지 덕목’을 세우고, 매일 밤 검은 점을 찍으며 자신을 점검했습니다. 절제: 배부르도록 먹지 말 것, 결단: 결심한 것은 반드시 실행할 것, 겸손: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본받을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절제, 결단, 겸손, 이 세 가지 덕목이 자신의 몸에 흐르도록 하고, 그것를 점검하는 일로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이처럼 철저한 자기 수련(Self-Discipline)을 통해 그는 인쇄공에서 과학자로, 다시 외교관으로 자신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그에게 직업은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수련의 장’이었을 뿐입니다. 결국 천직이란 특정 직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제보다 나은 나’를 만들어가는 자아 완성의 과정입니다. 우세남의 시 <선(蟬)>에 등장하는 매미가 생각납니다. “居高聲自遠(거고성자원), 높은 곳에 머무니 소리 절로 멀리 퍼지는 것이지, 非是藉秋風(비시자추풍), 가을바람을 빌린 것이 아니라네. 매미의 울음소리가 멀리 퍼지는 것은 가을바람, 외부의 환경이나 타인의 도움 덕분이 아니라, 높은 곳, 고결한 인격과 수련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남의 힘을 빌려 돋보이려 하기보다, 스스로의 내면을 닦아 빛을 내야 합니다. 오늘 내가 읽은 한 줄의 문장을 행동으로 옮길 때, 그것이 자신을 지키고 키워주는 내면의 힘이 되어 비로소 하늘이 내린 단 하나의 진짜 직업, ‘자아 완성’의 천직을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개인의 완성을 넘어 ‘공동체의 완성’으로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경계를 허무는 공감, 초연결 시대의 기술은 우리를 잇지만, 마음은 단절시키기 쉽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타인의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할 때, ‘나’라는 개인은 비로소 ‘우리’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됩니다. 프랭클린이 자신의 덕목을 사회적 헌신(외교, 과학적 발견)으로 연결했듯, 지속 가능한 배움과 나눔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쓰여져야 합니다. 외부의 평가나 알고리즘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인격을 닦는 사람들의 ‘고결한 향기’가 모일 때, 인류는 비로소 기술에 매몰되지 않는 존엄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가을바람을 빌리지 않아도 울려 퍼지는 매미 소리’처럼, 당신의 진심 어린 실천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기를 응원합니다.” 세계인을 향한 공동체 의식과 ‘더 나은 나’를 위한 묵묵한 발걸음만이 ‘나’를 ‘나’이게 하고 ‘세계’를 ‘세계’이게 하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 ‘그런 세상’을 꿈꿉니다. ▣ 김성희 ◇ SLA 어학원 원장 ◇ 무등 환경단체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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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아 완성! 시대의 거친 바람을 이기는 나만의 고결한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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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君子固窮! 역경이라는 폭풍 속에서 더 단단한 나를 빚다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겨울’을 견디고 있습니다. 살다 보면 내가 원치 않는 불청객이 삶의 문턱을 넘을 때가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건강의 악화, 통장 잔고가 바닥나는 경제적 위기, 혹은 끝을 알 수 없는 정신적 우울감이 그것입니다. 에이모 토울스의 소설 『모스크바의 신사』에서 말하듯, 모든 인류는 역경을 피할 수 없습니다. “역경 속에서 피어난 꽃”은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성장하며 빛나는 존재를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사람이나 존재가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에서 황제가 뮬란에게 한 명대사, “The flower that blooms in adversity is the most rare and beautiful of all”가 대표적 예로, 힘든 상황을 극복한 사람만이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중국 로맨스 고장극《석화지》(2024, 40부작, YOUKU 방영)에서는 이 표현이 주인공 화지의 성장 서사와 연결됩니다.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여성의 성장과 자립, 역경 극복이라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시청자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달합니다. “역경 속에서 피어난 꽃”은 문학, 영화, 드라마 등에서 고난을 극복하고 성장한 존재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뮬란》에서는 개인의 용기와 희생을, 《석화지》에서는 여성 주인공의 지혜와 강인함을 통해 이 메시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러한 표현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어려움을 견디고 성장하는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혹은 홀로 남은 거실에서, 혼자만의 생각과 세계에서, 다른 사람과의 갈등, 입장 다름에서, 각자의 역경과 마주하며 고뇌하며 삶에 지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화를 내고, 누군가는 환경에 끌려다니며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하지만 이 고통스러운 환경을 지배할 것인가, 아니면 지배당할 것인가? 그 갈림길에서 『논어』는 우리에게 놀라운 답을 제시합니다. 56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검찰총장직(대사구)을 내려놓고 천하를 주유했던 공자, 그 여정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14년 동안 비바람을 맞으며 노숙을 했고, 끝내 진나라에서는 양식이 완전히 바닥나는 ‘재진절량(在陳絶糧)’의 위기를 맞습니다. 제자들은 굶주려 일어날 기운조차 없었고, 다혈질이었던 자로는 화를 내며 묻습니다. “군자도 이렇게 궁할 때가 있습니까?” 이 질문은 오늘날 우리가 하늘을 향해 던지는 “성실하게 산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깁니까?”라는 원망과 닮아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성실하게 살고 있는지를 묻습니다. 나만을 위해 살지는 않았는지를 생각합니다. 공자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군자고궁(君子固窮)’, 군자는 역경이 닥쳤을 때 오히려 그 상황을 견뎌내며 스스로를 단단하게 다지는 사람이다. ‘소인궁사람(小人窮斯濫)’, 소인은 역경이 오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넘쳐흐르며(濫), 자신을 잃고 주변에 화를 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공자는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번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는” 사람이 곧 군자라고 한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건 분명 슬프고 괴롭다. 그렇다고 남에게 나를 알아달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셈이다. 그러나 공자는 생각을 완전히 반대로 해보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자기가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는 공자의 충고는 자기의 길을 가고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면서 비난이나 칭찬에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내 삶을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따라 좌지우지하려는가? 내 참모습은 내 스스로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달려 있지 ‘다른 사람이 알아주는 데’ 달려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라는 준엄한 말씀이겠지요. 말을 들을 때는 ‘그래야지’ 하지면 조금 지나면 ‘나도 모르는 일이 되어버린다?’ 공자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높이 평가한 건 ‘그들이 과거의 원수를 기억하지 않았고, 따라서 원한도 적었다(伯夷叔齊不念舊惡, 怨是用希).’는 점이었습니다. 우리가 포숙(鮑叔)을 기억하는 건 물론 그의 인품이 뛰어나고 판단이 냉철했던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관중(管仲)에 대한 끝없는 신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관중이 “자신을 낳은 것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이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라고 고백한 것만 봐도 그의 그릇을 알 수 있다. 관중을 천거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 자리까지 관중에게 내주고도 그가 자신을 챙겨주지 않았을 때조차 전혀 불평하지 않은 포숙이 없었다면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말조차 생겨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남이 나를 무시하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누군가에게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낄 수 없다면 아무리 만나서 시시덕거려도 뒤끝이 허전하다. 그렇다고 상대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일까.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 대해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나도 말은 그렇게 한다? 주머니의 송곳은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본디 능력과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스스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는 뜻이지만 그걸 꼭 재주에만 국한할 까닭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 특히 나는 그렇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을 흘기는 유형이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꾸지람을 들으면 자신보다 아래 직급의 직원에게 그 화를 푸는 경우가 흔하다. 국장이 과장을 깨면 과장은 사무관이나 주무관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 사람의 모습이다. 학교에서도 그렇다. 담임선생이 아침부터 교장에게 한 소리를 들으면 그 학급의 기상도는 하루 종일 흐려진다. 밖에서 일어난 일로 가족들에게 원망을 하는 내가 부끄럽다. 그런데 顏淵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았다. 간단한 것 같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뼈저리게 느낄 때가 많다. 화를 옮기지 말아야 할 때 화를 옮김으로써 가정의 평화가 깨지고 조직의 인화 단결이 깨지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봐왔다. 안연은 잘못을 두 번 되풀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잘못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법에서 초범과 재범의 양형을 달리 정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야구에서 내야수를 보는 선수들이 한 번 실수한다고 교체를 하는 감독은 드물다. 하지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교체를 한다. 심리적 부담감으로 똑같은 실수가 또 나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 나은 일을 하기 위한 교체여야 한다. 그것이 결단이다. 공자는 실천윤리로서의 인에 있어서는 자기 자신도 안연에 미치지 못한다고 스스로 고백한 바 있다. 공자는 인의 기준을 거창한 것에서 찾지 않는다.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잘못을 두 번 되풀이하지 않는 자세, 그것이 인의 기준이다. 불천노 불이과(不遷怒 不貳過)! 하루에 한 번이라고 외치고 싶다. 오늘부터라도 외쳐보련다. ‘不遷怒 不貳過’ 우리가 겪는 직장 내 갈등, 사업의 실패, 인간관계의 균열은 공자가 겪은 ‘굶주림’과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역경 자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속에서 ‘나다움’을 유지하는 정신력이야말로 군자로 나아가는 첫걸음입니다. 역경을 헤쳐 나가는 힘, ‘호학(好學)’과 ‘중용(中庸)’입니다. 자기 초월의 힘은 ‘호학(好學)’입니다. 공자는 스스로를 ‘태어나면서 아는 자’가 아니라 ‘배우기를 좋아하는 자’로 규정했습니다. “열 가구 정도 사는 작은 마을에도 나만큼 충성되고 신의 있는 사람은 있겠지만,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역경을 이기는 힘은 ‘배움’에서 나옵니다. 배움은 고정된 생각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를 초월하여 ‘건너가는’ 행위입니다. 내 무지를 자각하고 남의 말을 듣는 태도를 가질 때, 우리는 역경이라는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고 그 너머를 볼 수 있습니다. 균형의 감각은 중용(中庸)에서 시작합니다. 최근 우리 시민들이 보여준 상식적인 행동들은 유교의 ‘중용’ 정신과 맞닿아 있습니다. 중용은 멈춰있는 고정된 값이 아닙니다. 거센 바람 속에서도 끊임없이 중심을 잡으려는 ‘동적인 균형’이자 ‘노력’입니다. 모든 변수를 고려하여 삶의 균형감을 찾아가는 이 과정이 우리를 역경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게 합니다. 지식은 머리에 이고 다니는 과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깨뜨려 먹고 내 몸의 양분으로 삼는 ‘실천의 철학’이 필요합니다. 막스 베버가 강조한 종교적 윤리가 자본주의의 토대가 되었듯, 유학의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慾 勿施於人)’이라는 황금률은 이제 세계인의 공동체 윤리가 되어야 합니다. 1988년, 영국 브라이튼에서 열린 제18차 세계 철학자 대회에서, 인류의 golden rule로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 ‘己所不慾 勿施於人’이 최고 투표율을 2번이나 기록했다고 합니다. 역경 속에서도 ‘나다움’의 본질을 놓치지 않고 묵묵히 자아를 닦아나간다면, 당신의 삶 또한 외부의 도움 없이도 고결한 향기를 내뿜으며 세상 끝까지 울려 퍼질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겪는 그 역경은, 당신을 파괴하러 온 재앙이 아니라 더 단단한 존재로 빚어내기 위한 ‘축복의 신호’입니다. 더 단단한 나를 빚는 하루하루를 생각합니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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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君子固窮! 역경이라는 폭풍 속에서 더 단단한 나를 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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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태권도 남북 공동 유네스코 등재를 기대한다
- [교육연합신문=최재춘 기고] 태권도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자 세계인이 함께 공유하는 정신문화다. 오늘날 태권도는 200여 개국, 수천만 명이 수련하는 세계적 무도이자 교육문화로 자리 잡았다. 기술과 경기의 영역을 넘어 예절과 인내, 존중과 평화를 강조하는 태권도 정신은 한국이 세계에 전해온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다. 이제 그 가치를 남북이 함께 세계에 알릴 중요한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지난 6년 동안 필자는 태권도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남북 공동 등재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이어왔다. 태권도의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정체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남북이 공유하는 문화유산으로서의 의미를 설명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태권도계 내부의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는 일도 필요했고, 남북 공동 등재라는 정치적 현실 또한 넘어야 할 과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국내는 물론 전 세계 태권도인들의 뜨거운 관심과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북측을 대표하는 국제태권도연맹(ITF) 소속 태권도인들까지 응원 메시지와 챌린지로 힘을 보태며 태권도가 민족 공동의 문화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태권도는 이미 국경을 넘어 세계인이 함께하는 문화이지만, 동시에 남과 북이 함께 발전시켜 온 민족의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초기 등재 추진 과정에서는 곳곳에서 어려움과 반대도 있었다. 그러나 세계 태권도인들의 열망과 국내 태권도 가족들의 전폭적인 응원, 그리고 관련 기관과 단체의 협력 속에 최근 유네스코 본부에 등재안이 신청되는 성과를 이뤘다. 이제 남은 과제는 국제사회의 공감과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다. 우리는 이미 중요한 선례를 가지고 있다. 2018년 남북의 전통 스포츠인 씨름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된 사례다. 당시 유네스코는 분단국가인 남북이 공동 문화를 통해 화합과 평화를 모색하는 데 큰 의미를 부여했고, 정부의 적극적인 외교적 노력과 국제사회의 협력 속에서 공동 등재라는 역사적 결과가 이루어졌다. 오늘날 남북 관계는 과거보다 더 경색된 상황이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세우며 남북 관계가 긴장 국면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러한 때일수록 문화는 갈등을 넘어서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다. 정치와 외교가 막힌 상황에서도 문화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는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적 문화유산 회의인 만큼, 정부와 관련 기관이 문화 외교 차원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면 태권도의 남북 공동 등재는 충분히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태권도는 1960년대 이후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며 한국의 예절과 정신을 알리는 문화 외교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단순한 스포츠 기술을 넘어 예의와 배려,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는 태권도 교육은 세계 곳곳에서 한국 문화의 가치를 전달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지난 70여 년 동안 축적된 태권도의 저력은 이제 스포츠를 넘어 평화와 화합의 문화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태권도가 남북 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된다면, 이는 한국 문화의 위상을 높이는 것은 물론 남북이 공유하는 민족 문화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태권도가 남북을 잇는 문화의 다리가 되어 한반도의 평화와 화합을 상징하는 유산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길이 세계 속에서 한국 문화의 품격과 정신을 더욱 빛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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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태권도 남북 공동 유네스코 등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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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역일꾼의 첫 번째 책무, 이웃의 생명을 지키는 일”
- [교육연합신문=이현우 기고]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은 거창한 곳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바로 우리 일상 속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그중 가장 따뜻하고 숭고한 실천이 바로 헌혈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나는 대한적십자사 서구지회 회원들과 함께 동아대학교 캠퍼스에서 열린 헌혈캠페인에 참여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한 마음들이 모인 자리였다. 학생들과 시민들이 기꺼이 팔을 걷어 올리고 헌혈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에 여전히 살아 있는 따뜻한 공동체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나 역시 이날 49번째 헌혈에 참여했다. 헌혈을 할 때마다 늘 같은 생각이 떠오른다. 헌혈은 특별한 누군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봉사라는 사실이다. 위급한 환자에게 한 봉지의 혈액은 단순한 의료 자원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을 이어주는 희망이며, 한 가족에게는 다시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는 귀중한 기회다. 그래서 헌혈은 단순한 봉사를 넘어 이웃의 생명을 지키는 사랑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에서 활동하다 보면 봉사의 의미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된다. 지역일꾼의 역할은 정책을 말하는 것에만 있지 않다. 주민과 함께 호흡하며 삶의 어려움을 나누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먼저 손을 내미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출발은 늘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나 역시 부산서구의회 의원으로서 구민들의 삶과 직결된 다양한 구정 현안과 민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장을 중심으로 의정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골목과 시장, 주민들의 생활 현장을 찾아 목소리를 듣고, 지역의 작은 불편과 어려움이 행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지역일꾼의 역할은 책상 위 정책이 아니라 현장에서 주민과 함께 답을 찾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대한적십자사 서구지회 회원들의 헌신적인 활동은 우리 지역사회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생명 나눔을 위해 시간을 내어 헌혈캠페인을 펼치고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모습은 공동체 정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 생각한다. 특히, 이번 동아대학교 캠퍼스 헌혈캠페인에서는 젊은 학생들의 참여가 더욱 의미 있었다. 미래세대가 나눔과 봉사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배우고 실천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희망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49번째 헌혈을 마치며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지역을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서 말보다 행동으로, 약속보다 실천으로 봉사하는 지역일꾼이 되겠다는 다짐이다. 앞으로도 구민의 삶을 더 따뜻하게 만드는 의정활동과 함께 생명 나눔과 봉사의 가치를 지역사회에 확산시키는 데 힘을 보태겠다." 헌혈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봉사다. 우리가 팔을 걷는 작은 용기가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이어주는 기적이 된다. 이웃의 생명을 지키는 일, 그것이 지역일꾼의 첫 번째 책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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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역일꾼의 첫 번째 책무, 이웃의 생명을 지키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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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고병구 '어쩌다 의사가 되어'를 읽고
- [교육연합신문=송근식 기고] 한 해의 작은 달 2월, 설 명절과 입춘이 들어 있는 달, 봄이 다가오는 기다림과 설렘이 있는 달도 벌써 지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 되었다. 옛말에 복(福)은 받는 것이고, 덕(德)은 쌓는 것인데, 손(手)으로는 나누고 발(足)로 걸어서 건강을 지키고, 얼굴(容)은 항상 미소를 짓고, 마음(心)으로는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책(冊)을 골라 독서 하면서 자아(自我)의 성숙과 마음을 키우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이번에 종합건강검진을 받으면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 읽을거리를 찾다가 몇 권의 책 중에서 우연히 “어쩌다 의사가 되어”라는 에세이집을 발견하고 단숨에 반쯤 읽었는데 바로 이 병원의 대표원장이자 저자인 고병구 원장이 의사로서 환자들을 성심성의껏 돌보면서 환한 얼굴로 설명하는 열정이 존경스럽고 위의 말에 부합된 분이라 이 책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둘째는 우리 교육연합신문 전국 애독자와 네트워크를 통해 이 귀한 자료를 알리고, 국내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이 책을 읽고, 향후 진로와 직업선택에 도움이 되고 또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이 이 저자의 경험을 공유해 도움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권장하고 싶다, 요즘 젊은이들은 노력없는 이익에 대한 탐닉에 빠진 부류들이 많다. 노동을 조롱하고 성실함을 비웃으며 요행을 미덕처럼 기대하고 비트코인, 주식, 불법도박, 마약, 스포츠베팅 같은 투기에 쉽게 빠져드는 현실의 일탈에 젖어 드는 청소년들에게는 시금석이 되고 나침판이 될 것을 확신한다. 노력으로 쌓은 인생만이 결국 흔들리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필요한 것은 쉽게 버는 돈이 아니라 땀과 기다림, 인내, 그리고 정당한 성공, 공정함과 책임감, 사회적 신뢰감을 갖추는 것이다. 이 책은 총 6부로 구성돼 있고 ▲어쩌다 의사가 되어 ▲추억 속의 나날들 ▲내가 잘 할수 있는 것 ▲나를 위한 시간 ▲흔들리는 세상을 향해 ▲마음을 시에 담다.로 나누어 구성됐다. ■ 보이지 않는 얼굴들 "의사로서 나 자신을 평가한다면 나는 그저 평범한 의사에 불가하다. 사회를 위해 봉사하거나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의사들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보통의 의사다. 대부분 의사들처럼 내가 배운 지식을 통해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직업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도 날마다 환자들과 좋은 인연으로 만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이다." 저자 고병구 원장은 겸손(謙遜)이 넘친다. 겸손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 세우지 않는 태도이다. 슈바이쳐 박사는 “겸손은 크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숙이는 것”이며, 상대를 존중하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진솔하게 이해하면서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부부가 의사인데도, 40년 전에는 부산 1급지(광복동, 서면 등)에 개업해서 부를 창조했을 수 있는 충분조건에도 중심지를 벗어나 어렵고 불우한 환경의 당감동을 선택해, 지금의 준종합병원 수준으로 운영하고 있고, 외아들 고지환 원장도 부산의대를 졸업, 동 대학에서 소화기내과 진료 교수를 역임했고, 지난해에는 소화기 종양학 분야의 세계적인 SCI급 국제학술지 저널 표지모델로 선정돼 장식한 능력가인데도 대학병원, 대형병원에 보내지 않고, 가족 3명의 의사와 외부 원장 3명과 함께 큰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데도 전혀 과시하는 모습은 하나도 없다. 또, 책 표지 디자인이나 제목도 좀 멋지게 지을 수 있는데도, 의사 가운을 입고 근엄한 모습을 취한다거나 진찰하는 모습을 택할 법한데, 순하고 연한 녹색 바탕에 별이 새겨진 나무(Tree) 한 그루가 전부일 만큼 겸손하다. 물론 나무가 상징하는 것은 책의 머리말에서 나오긴 한다. ■ 머리말 '무슨 말을 해야 할까?'에서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그때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의 답으로 주말이면 가끔 아내와 함께 운전대를 잡고 시골길을 달릴 때 고향처럼 느끼는 마을 어귀마다 서 있는 고목의 모습을 본다. 그래, 저 나무처럼 살자. 저 나무처럼 늙어 가자. 나무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면 마지막 날에 나는 웃으면서 떠나리라”는 문장을 대하면서 나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무는 우리에게 열매를 제공하고, 잎은 그늘을, 봄에는 새싹으로 희망을, 여름에는 잎의 그늘로 쉬는 휴식처로,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으로, 겨울에는 나목으로 우리에게 인내심과 기다림의 미학을 일깨워 준다. 평생을 남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겠다는 고병구 원장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90년대 중반 한 직장 동료가 해인사 백련암 성철스님의 수좌스님을 뵈러 간다기에 금일봉을 보시했더니 법명을 하나 받아 왔는데 '하목(夏木)'이었다. 나의 이름도 직업도 모르는 상태인데 나는 깜작 놀랐다. 우연히도 내 한자 이름에는 나무목(木)이 3개 들어 있어, 나는 내 아이디도 hamoksong으로 쓰고, 호(號)도 하목으로 사용하고 있다. ■ 잊을 수 없는 한마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대학생을 본적이 없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많이 배운 사람으로 여기던 한적한 시골, 산간벽지의 오지 경북 문경의 시골에서 가난한 농부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오직 농사일만 선택할 수 있었던 운명에서, 그래도 꿈이 있어 전액 국비 지원인 철도고등학교를 가려고 했을 때, 김천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하던 재종형(고무림 선생)이 찾아와 아버지와 나의 진로를 의논하던 중 ”애를 왜 바보로 만들려고 하세요?“하던 그 말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말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내가 받았던 느낌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고무림 선생의 안내로 오늘날 고병구 저자가 된 것은, 마치 존 레논이 아들을 위해 작사한 Beautiful Boy의 가사 일부를 연상케 한다. ”너의 마음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단다 날지 못한다고 미리 겁먹지 마라. 세상에는 너를 보호해 줄 울타리가 있단다.“ 그 울타리는 가정, 부모, 형제, 학교, 선한 이웃 등이 있다. 문경에서 못살던, 오직 철도고를 꿈꾸던 소년에게 김천고와 경북의대를 안내한 울타리가 되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한 사람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고 인생길이 바뀌게 되는 숙명적인 계기가 되는 일이 간혹 있다. 바로 이 저자도 그 은혜를 입었지만, 본인의 재능과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영광과 행복은 유지할 수 없었다. 요즘도 의과대학에 진학 하려면 초등학교부터 과외를 받고, 고교 성적이 상위 1~5%에 들어야 하며, 경제적 능력과 부모의 관심과 본인의 숱한 어려움과 특출한 성적을 유지하지 못하면 힘드는데, 하물며 50년 전 국립의대에 들어간다는 것은 재종형님의 선견지명과 본인의 얼마나 혹독(酷毒)한 노력을 했을지 예견할 수 있다. ■ 나의 모교 송설학원 김천고등학교 김천고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 마지막 궁녀이자 육영사업가였던 최송설당 여사가 설립, 영친왕 보모상궁으로 책봉, 고종황제로부터 송설당 칭호 하사. 재산 전부를 해인사에 희사 예정이었는데, 만해 한용운 스님의 권유로 조국의 암울한 미래를 위해 인재 양성을 결심, 1931년 김천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평북 전주에 남강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와 더불어 민족사학 칭호. 개교 당시 영남의 오아시스로 통함. 지금도 3.1절에 입학하는 전통. 1907년 을사늑약 앞두고 영친왕이 일본에 볼모 잡혀간 후 귀국 때는 부산에 상륙해 김천에서 내려 김천고 '정걸재'에 들려 송설당을 친견하였다고 함. 지금은 자립형 사립고(자사고)로 전국적으로 240명 선발. 교훈은 ”깨끗하게, 부지런하게“(남자고 아닌 여자고 교훈처럼). 풀어 쓰면 마음(心)은 깨끗하게(眞實), 몸(身)은 부지런하게(誠實)라는 뜻이다. 저자는 김천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 것이 일생일대의 자부심이자 자신의 은혜로 여기고 있다. 이 책이 인연이 되어 올해(2026년) 3월 1일 모교 입학식에서 동문 대표 격려사도 하게 되었다. 참고로 도산 안창호(1878 ~1938)선생도 평양에 대성학교를 세워 무실역행(務實力行)을 강조했다. 공리공론을 배척하고, 참되고 성실하게 힘써 행할 것을 강조. 實은 힘쓰자는 것으로 진실, 성실, 거짓 없는 것을 말하며 역행은 반드시 이루자는 뜻. ■ 연좌제의 희생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무관 후보생으로 중위, 대위 계급을 받고 장교로 근무하게 된다. 그런데 저자는 6.25때 당숙의 월북으로 연좌제에 걸려 무관 후보자격을 박탈당하고 이등병 의사가 되어 위생병으로 3년을 보낸 원통함이 있었다. 전역을 석 달 남긴 1980년 10월 어느 날 영내 보초를 서고 있는데 국보위에서 연좌제를 폐지하기로 했다는 방송을 듣고 할 수만 있다면 남은 3개월이라도 군위관으로 보내고 싶었다는 말이 나온다. 얼마나 원통하고 가슴 아파 제대 후 한동안 동기들 모임에서 군대 얘기만 나오면 입을 다물고 뒷자리로 물러났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30년 후 대전 군의학교에서 열리는 아들 지환 군(부산의대 졸)의 임관식에서 대위 계급장을 다는 아들의 모습에서 ”비로소 연좌제의 그늘에서 벗어나는구나“하는 위로와 묘한 감회를 느꼈다고 했다. *연좌제(緣坐制) : 범죄자의 친족 또는 기까운 사이, 범죄자의 주변인이란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제도. 해방 후 납북, 월북자 가족은 공무원은 물론 사회 생활에 불이익을 당함. 1980년 헌법 금지됨. ■ 잊을 수 없는 추억 추억에는 좋은 추억과 나쁜 추억, 그리고 부끄러운 추억과 가슴 아픈 추억이 있다. 좋은 추억은 잔잔하게 스쳐 지나가는 산들 바람같은 어릴적 동심의 추억부터 기억하기 좋은 것. 나쁜 추억은 죄를 지었거나 상처를 입힌 잔인한 추억이고 그리고 부끄러운 추억은 미숙함으로 수치(羞恥)가 담겨있는 추억으로 자신이 좀 더 자랄 수 있었던 것이고, 가슴 아픈 추억은 칼날 같이 날카롭게 가슴을 치고 지나가는 보석 같은 추억이고 나를 자라게 하는 추억이다. 저자는 시간은 과거를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요술 지팡이라고 위로하고 있다. 마지막 남은 세월은 다른 사람에게 소중한 추억을 심어 주는 일에 내 삶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 꽃과 바람과 물 사방이 병품처럼 산으로 둘러쌓인 문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보이는 것이 산과 꽃과 바람과 물이었는데, 이젠 도시의 빌딩숲 속에서 매일 병원 건물 사무실 속에서 환자만 대하는 숨막히는 생활을 하면서 마음속으로만 산뜻한 들국화가 되고, 시원한 솔바람이 되고, 맑은 물길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두고두고 이 자리를 지키다가 고향 언덕에 재로 뿌려지는 게 나의 운명인지도 모른다고 토로한 부분에서는 인생의 무상함과 허무감을 느끼며, 70대 중반을 넘긴 저자나 독자인 내가 공통점을 갖는 부분이면서 그래도 남은 삶의 막바지에서 깨끗하게, 부지런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어렸을 때부터 잔병치레로 1년 늦게 입학했고, 의예과 시절엔 고열, 오한을 동반한 장티푸스에 고생했고, 43세 땐 갑자기 대장에 천공이 생겨 장 절제 수술과, 곧 B형 간염에 걸려 친구들 사이엔 이미 죽었다고 소문이 났다. 그처럼 허약하고 병치레 심한 몸이 어느 날 B형 간염균이 사라졌고, 이것은 로또 당첨될 만큼 드문 확률이라고 한다. 그 후 식사를 잘하고 60이 넘어 운동을 하게 된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고기와 채소, 날과일과 비빔밥 등 ”밥이 보약이다“란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즐겁게 먹고 담배를 피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즉, 맛있게 먹고, 즐겁게 일하고, 열심히 운동하는 게 건강한 삶의 비결이라고 했는데 위의 내용은 의사의 전문적 처방이 아닌 일반 생활인들이 경험에서 말하는 순수한 지혜의 덕담 같아서 더욱 친근감과 신뢰감이 든다. 의사인 저자가 오히려 환자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오래 사세요“란다. 얼마나 자상하고 친절하게 대했으면 이런 격려를 받을 수 있을까? 위 내용 외에도 '소 팔자 인생', '나를 위한 시간', '눈썹과 인덕',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굽은 인생길' 등 수많은 울림과 되새겨야 할 내용과 말들이 많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인도를 독립시킨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 생각 났다. ”절망을 느낄 때 마다 나는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 본다. 진리와 사랑의 방법은 늘 승리했다. 우리에겐 선과 진리와 사랑은 다시 일어날 힘과 용기를 준다. 글 전체가 연좌제에 대한 불평 즉 돌은 던지지 않았지만 약간 주먹을 쥐고 울분을 터뜨린 것 외는 모두가 긍정적이고, 가슴을 울렁이게 하고 심장을 안정시켜 주었다. 결국 자기 직분을 다할 때 세상은 아름다워지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 기쁨과 행복이 멀리 있다 생각지 말고 작은 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면 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웠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인연이 되어 지난 3월 1일(삼일절)날 모교 김천고등학교 입학식에서 동문 대표로 ”격려사(檄勵辭)“를 한 내용을 소개한다. ■ "송설 후배들에게"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 하는 것, 우리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세상을 살아가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 자기 능력을 극대화하는 비결.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된 것은 오늘 여러분처럼 김천고 입학이었으며,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김천고를 졸업했다는 사실이다. 김천고는 내 정신의 고향이라 할 수 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큰 기쁨으로 생각한다. 우리 김천고는 일본의 압제하에 있던 암흑기에 대한의 미래를 위해 송설당 할머니께서 세운 민족학교이다. 초대 정열모 교장 선생께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투옥되고, 학교는 공립전환이라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에 굴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러 개교 100주년을 눈앞에 두었다. 이처럼 유서깊은 학교에 여러분이 들어오게 된 것은 크나큰 행운이며 영광이다. ---중략--- 의사로서 그리고 인생 선배로서 후배 여러분께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최상의 상태로 만드시오. 장차 술과 담배, 혹은 다른 약물들을 가까이 할 기회가 올 것이다. 그때 자신에게 해로운 것이라면 단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나는 70대 중반으로 들어섰다. 그동안 큰 수술을 받았고, 수개월 동안 병을 앓으면서 죽을 고비도 넘겼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누구도 따라오기 힘들 만큼 건강한 몸을 지니고 있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하루 8시간 이상 환자를 보고, 나머지 먹고 자는 시간 외 모든 시간은 뭔가를 하면서 보냈다. 하루도 빠짐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다진다. 별도의 휴식 시간을 갖지 않아도 지치는 일이 없다. 나처럼 바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바로는 아무리 바빠도 성취 여부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내가 가진 비결도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것 뿐이다. 여러분들도 각자의 길을 찾아 실천하시기 바란다. ▣ 송근식 ◇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 前부산예문여고·광명고·경혜여고·건국중학교 교장 ◇ 학교법인 선화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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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고병구 '어쩌다 의사가 되어'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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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동래의 만세, 기념을 넘어 도시의 품격으로
-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3월의 동래는 단순히 봄을 맞이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1919년의 시간을 현재로 불러내며, 도시의 정체성과 책임을 동시에 환기하는 무대가 되었다. 동래구가 주관한 3·1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는 해마다 열리는 기념행사라는 틀을 넘어, 지역 역사자산을 교육과 공동체의 가치로 확장하려는 의지가 담긴 자리였다. 행사는 부산3·1독립운동 기념탑 참배로 시작됐다.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과 헌화는 형식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이어 내성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기념식에서는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삼창이 이어졌고, 학생들과 시민들이 함께 태극기를 들었다. 그 장면은 세대 간의 기억 계승이라는 상징성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동래구가 역사적 동선을 세밀하게 반영했다는 점이다. 동래시장과 수안인정시장 일대를 잇는 만세 행렬은 1919년 당시 실제 만세운동이 전개됐던 공간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과거의 현장을 단순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걷게 함으로써 체험형 역사교육을 실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동래는 부산에서 가장 치열하게 3·1운동에 응답한 지역이다. 장터와 골목, 동헌과 읍성 일대는 민족의 자존을 외치는 공간이었다. 평범한 상인과 학생, 이름 없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고, 총칼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동래구가 이러한 역사적 자산을 도시 브랜드의 일부로 재해석한 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올해 행사에서는 동래 출신 독립운동가 박차정 의사의 삶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이 강화됐다. 지역 인물을 통해 독립의 의미를 구체적 서사로 전달했다는 점은 단순한 기념을 넘어 지역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으로 읽힌다. 역사적 인물을 지역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재조명한 점 또한 교육적 접근으로 볼 수 있다. 수동식 태극기 인쇄 체험과 독립선언서 낭독 프로그램은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인상적인 장면을 남겼다. 먹 냄새가 번지는 인쇄 체험 공간에서 학생들은 질문을 던졌다. “그때 사람들은 왜 그렇게 위험한 일을 했나요?” 이 질문은 이번 행사의 가장 큰 성과일지 모른다. 역사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묻는 순간 살아난다. 동래구가 마련한 이 재현의 장은 단순히 과거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질문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3·1운동의 본질은 ‘만세’라는 구호에 있지 않다. 그것은 두려움을 넘어선 결단,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이익을 내려놓았던 책임에 있다. 오늘 우리는 비교적 안전한 공간에서 그 장면을 되살린다. 그렇기에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어떤 가치 앞에서 용기를 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동래구의 이번 재현행사는 지역 역사자산을 문화·교육 콘텐츠로 확장한 모범적 사례로 볼 수 있다. 단발성 행사가 아니라, 학교 교육과 연계한 프로그램 개발, 청소년 참여 확대, 역사 공간의 상시 해설 프로그램 운영 등으로 이어진다면 동래의 3·1정신은 도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역사를 품은 도시는 단단하다. 기억을 자산으로 만드는 도시는 품격이 있다.동래의 봄바람 속에서 울린 만세는 과거의 메아리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동래가 어떤 도시로 서야 하는지 묻는 질문이다. 기념을 넘어 교육으로, 교육을 넘어 책임으로 이어질 때, 동래의 3·1정신은 도시의 품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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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동래의 만세, 기념을 넘어 도시의 품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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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孔子의 진채지액(陳蔡之厄)에서 배우는 ‘역경 극복의 기술’: ‘자가 동력’입니다.
- [교육연합신문=김성희 기고] 삶은 외부의 자극을 넘어 스스로 타오르는 불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현대 사회는 ‘동기부여’의 과잉 시대입니다.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는 열정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서로 가득 차 있고, 유튜브 알고리즘은 쉴 새 없이 우리에게 성공한 이들의 조언을 쏟아붓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이러한 외부적 자극은 휘발성이 극히 강합니다. 누군가의 강연을 듣고 가슴이 뜨거워졌다가도, 다음 날 아침 차가운 현실과 마주하면 그 열정은 마치 일회용 배터리처럼 금방 방전되어 버리곤 합니다. 우리는 왜 금새 무기력해지는 것일까요? 그것은 동력의 근원이 ‘나’의 내부가 아닌 ‘외부’의 보상이나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외부의 응원과 달콤한 보상이 끊기는 순간, 우리는 길을 잃습니다. 인생에는 반드시 에너지가 바닥나는 순간, 즉 외부와 단절된 채 홀로 서야 하는 ‘고립무원’의 상태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이때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 결정적 동기(Self-Determined Motivation)’이자,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는 ‘자가 동력(Self-motivation)’입니다. 이는 외부의 칭찬 없이도 돌아가는 내장형 발전기와 같습니다. 2,500년 전, 죽음의 문턱에서 거문고를 켰던 공자의 일화는 이 자가 동력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위대하게 만드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럼, 자가 동력을 구축하는 세 가지 기둥은 무엇일까요? 첫째, 자기 긍정(Self-Affirmation)입니다. 훼손되지 않는 본질적 가치의 발견입니다. 기원전 489년, 공자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해 줄 군주를 찾아 천하를 유람하던 중 인생 최악의 사건인 ‘진채지액(陳蔡之厄)’을 맞이합니다. 초나라로 가던 길에 진나라와 채나라 대부들의 방해로 외딴 들판에 포위된 것입니다. 7일간 끼니가 끊겼고, 제자들은 굶주림과 공포에 질려 쓰러졌습니다. 그 절망적인 정적 속에서 공자는 평소와 다름없이 거문고를 타며 시를 읊었습니다. 울분을 토하는 제자인 자로에게 공자는 답합니다. “군자고궁(君子固窮), 소인궁람(小人窮濫).” 군자는 역경에 처하면 더욱 단단해지지만, 소인은 역경 앞에 도리를 어긴다는 뜻입니다. 여기서의 ‘단단함(固)’은 단순한 인내를 넘어선 ‘강력한 자기 긍정’입니다. 심리학적으로 진정한 자기 긍정은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상황은 비록 비참할지언정, 나의 존재 가치와 내가 지향하는 도(道)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단단한 자아 수용입니다. 환경이 나를 규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내 안의 중심축을 지키는 힘이 자가 동력의 첫 번째 연료입니다. 둘째는 자기반성(Self-Reflection), 원망의 에너지를 성찰의 에너지로 만드는 것입니다. 군자가 곤경 속에서도 자가 동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끊임없는 자기반성을 통해 내면을 정화하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포위된 상황에서도 제자들과 문답을 나누며 자신의 도가 현실과 어긋난 지점을 점검했습니다. 이는 맹자가 강조한 “행유부득 반구저기(行有不得 反求諸己)”의 정신과 맞닿아 있습니다. 자책(Self-Blame)은 에너지를 안으로 고이게 하여 자존감을 썩게 만듭니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는 물음은 동력을 갉아먹습니다. 성찰(Reflection)은 에너지를 밖으로 흐르게 하여 다음 단계를 준비하게 합니다. “나의 방법이 부족했는가? 아니면 시대가 담기에 너무 큰 것인가?”를 묻는 비판적 사고는 자가 동력을 더욱 정교하게 만듭니다. 원망의 화살을 외부(세상, 타인, 환경)로 돌리는 순간 우리는 피해자가 되지만, 그 화살을 나 자신의 성장으로 돌리는 순간 우리는 상황의 주인이 됩니다. 셋째, 관점의 변화(Reframing)는 시련을 가치의 증명으로 재정의 하는 것입니다. 공자의 제자 안회는 스승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의 도는 지극히 커서, 천하가 능히 수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통찰은 현실의 실패가 곧 진리의 실패는 아님을 선언하는 ‘인지적 재구성’입니다. 7일간의 굶주림은 공자에게는 단순한 고난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평생 구축해 온 철학이 죽음이라는 극한의 물리적 압박 앞에서도 유효한지 검증하는 ‘결정적 실험’이었습니다. 심리학의 재구성 기법처럼, 시련을 ‘막다른 길’이 아닌 ‘나의 가치를 증명할 기회’로 재정의할 때 동력의 흐름은 바뀝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수동적 물음에서 “이 상황을 통해 나는 무엇을 완성할 것인가?”라는 주체적 질문으로 전환될 때, 인간은 비로소 환경을 활용하는 거인으로 거듭납니다. 질문하는 자에게는 구제 불능이란 없습니다. 자가 동력을 갖추기 위한 자기 긍정, 자기반성, 관점의 변화보다 더 근원적인 숙제가 있습니다. 바로 ‘내가 머물고 있는 생각의 지점’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남이 해주는 위로와 조언을 내 동력으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남의 생각에서 빌려온 에너지는 내 삶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습니다. 누구의 생각대로 나를 살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나를 가두고 있는 자기부정의 울타리를 걷어내고,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공자는 무언가에 마음을 쓰지 않고(無所用心), 안일하게 지내는 것을 가장 경계했습니다. 고난이 오는 곤란함보다, 자신에게 질문하지 않는 곤란함이 훨씬 큽니다. 질문을 던지는 그 찰나, 우리 마음의 엔진은 이미 회전하기 시작합니다. 질문하는 자에게는 결코 ‘구제 불능의 상태’란 찾아오지 않습니다. 시인 메리 올리버는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로 ‘사랑하는 능력’과 ‘질문하는 능력’을 꼽았습니다. 이 선물은 우리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불인 동시에, 불필요한 껍데기를 태워버리는 정화의 불꽃이기도 합니다. 외부의 배터리가 방전되어 눈앞이 캄캄해진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당신 내면의 발전기를 가동할 가장 완벽한 기회입니다. 거문고를 들었던 공자처럼, 이제 당신만의 질문을 던지십시오. 당신의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스스로 타오르는 불꽃이 되십시오. 저도 이 순간, ‘나만의 무대에서 나만의 불꽃이 무엇인지?’를 묻고 또 묻습니다. ▣ 김성희 ◇ SLA 어학원 원장 ◇ 무등 환경단체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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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孔子의 진채지액(陳蔡之厄)에서 배우는 ‘역경 극복의 기술’: ‘자가 동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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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인간은 판단하는 ‘자세’에서 대상에게 머무는 ‘태도’만큼 존재한다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푸른 달과 흰 구름 둥실 떠가는 연못에서 살살 떠다니겠지. 연못에다 띄워 논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살랑살랑 바람에 소근거리는 갈잎 새를 혼자서 떠다니겠지. 박홍근 선생이 쓰고, 윤용하 선생이 곡을 붙인, 우리에게 익숙한 동요다. 이때가 자기 생각을 하는 시기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생각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이다. 이 세계는 사람이 만들지 않은 자연과 생각의 결과인 문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에게는 먼저 만든 물건이 없고, 먼저 만든 제도도 없다고 한다. 이 말은 먼저 생각한 적이 없다. 즉 다른 사람의 생각의 결과를 받아들여서 살았다는 말이다.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한 말을 자기의 것으로 주장하며 산다. 그래서 미디어 평론가나 토론자들이 하는 말을 자기의 생각으로 숭배하며 산다. 따라서 자기의 생각을 바꿀 방법을 모른다. 다른 사람 생각의 결과를 받아서 살기 때문에 바꾸려는 생각을 못하게 된다. 생각은 현실에서 나온다. 그런데 우리는 현실은 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추구하며 산다. 자기는 없다. 모양은 자기일지 몰라도 생각은 자기가 아니다. 남이 ‘정해준 마음’으로 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정해진 마음’이 자신의 마음을 차지하는 덩어리가 크면 클수록 ‘정해진 마음’이 주인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 ‘정해진 마음’을 철저히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로 바뀐다. 그래서 장자는 말한다.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들어라.” “ ‘정해진 마음’에 갇힌 자기를 장례 지내라.” “장자는 실력 없는 삶을 정당화하는 사상가가 아니라, 내내 실력 있는 삶을 살다 가라고 독려했다.” 또 ‘자존과 독립과 주체와 존엄’을 중시했고, 가치(價値)보다는 사실에 집중할 것을 강조했으며, 무엇보다도 어떤 틀에 갇히는 것을 경계했던 사상가였다. 따라서 《장자》는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서사)들을 통해 정해진 마음을 깨부수고, 자기를 잃지 않고 스스로 변화하면서, 지금보다 더 나은 차원을 향해 건너가는 것의 소중함에 대해 말해주는 책이다. 변화를 범주로 하는 책이다. 문명은 인간의 문화적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인간은 근본적인 의미에서 문화적 존재다. 무엇을 하거나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인간이 이 문명 세계에서 탁월해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하거나 만들어서 야기하는 이 일을 잘한다는 의미다. 최진석 교수는 보는 방식을 크게 두 가지로 본다. 하나는 ‘세상이 보여주는 대로 보는 방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세상이 보여주는 것과 무관하게 내가 보고자 하는 대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쉬운 것을 뭐 어렵다고 저렇게 푸념을 하느냐 하겠지만, 무엇인가를 인식할 때, 이것이 세상이 보여주는 그 자체인지, 아니면 내가 보고자 하는 방식을 거친 것인지 사실 구분할 수 없다. 무엇인가 보고 들을 때 이미 내가 ‘보고자 하는 방식’이 알게 모르게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만족을 위해서 보고 싶은 지표만을 봐서는 안 된다. 초나라와 한나라의 다툼에서 승리를 거둔 유방이나, 손권, 유비 등과 천하 패권을 다퉜던 조조 그리고 당나라의 태종 등이 세상이 보여주는 대로 보는 방법과 관련된 사람들이다. 천민 출신 유방은 중앙집권제를 취했던 진나라의 한계를 알고 있었고, 귀족 출신이었던 항우는 중앙집권제의 한계를 보지 못하고 패권에만 관심을 뒀다. 그래서 유방은 중앙집권제와 봉건제를 혼합한 지배 시스템을 제시해 천하의 우군을 모아 항우와 싸울 수 있었다. 모든 철학은 그 시대에 해결해야 될 가장 근본적으로 가장 높고, 가장 치명적인,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 공동체가 존속하기 어려운 그런 문제와의 투쟁으로 나온 것이다. 남이 만들 때는 머릿속에 없는 것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낸다. 그런데 따라 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없는, 머릿속에만 있는 것으로 구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이 매커니즘을 경험하지 못한다. 그냥 구체적으로 만들어진 것만 받아서 쓰고 만족한다. 그러니까 보여지고 만져지는 것만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무엇을 가지고 있어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알려고 할 때 인간이 되는 것이다.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컴퓨터를 알려고 하는 사람 사이에 생존의 질과 양은 어느 쪽이 더 크고 높겠는가? 그 컴퓨터의 구성 원리나 작동 원리를 아는 사람이 그 컴퓨터를 가지고 훨씬 더 높고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게 된다. 알려고 할 때,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원시적 지적 본능이 작용하고, 이 원시적 지적 본능이 작용하는 사람의 삶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보다 훨씬 더 질과 양면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할 수 있는 것이다. 알려고 하는 욕구는 인간이 문명을 건설하고 삶을 자기한테 이로운 방향으로 전개해 나가는데, 어떤 큰 출발점이 된다. 문명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이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다 합쳐서 문명이라고 한다. 이 인간은 문명을 건설하는 존재다. 인간이 문명을 만들 때, 생각을 사용해서 만든다. 그래서 문명은 ‘생각의 결과. 질문의 결과, 불편함을 해결한 결과, 문제를 해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생각, 질문, 불편함, 문제는 어디서 오는가? 현실에서 온다. 생각, 질문, 불편함, 문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서 오지 않고, 그 세계를 자세히 보는 사람에게만 다가오는 것이다. 앞서가려면, 문명에서 더 우위에 서려면, 생각해야 되고, 질문해야 되고, 문제와 불편함을 발견하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해야 한다. 생각하고 문제를 발견하고 불편함을 찾아내고, 질문하는 이런 일들은 다 어떤 것을 궁금해하는 호기심이 발동해야 가능한 일이다. 불교에서는 相을 짓지마라(정해진 생각)고 한다. 그다음에 정해진 기능에만 빠지면 안 된다고 말한다. 숟가락을 들고 이것을 밥 먹는 도구로만 이해해서는 자기의 지적 유연성이나 어떤 동질성을 발견하는 은유력이 개발되지 않는다. 이 세계에 모든 창조 활동은 전부 은유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모든 새로운 것들은 다 이미 있는 것들의 연결이다. 다시 말해서 창의성은 연결이다. 창의성은 은유다, 스마트폰을 보자. 그 이전에 있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물건이다. 전혀 새로운 물건이다. 스마트폰 안에 있는 부속품을 보자. 다 이미 있던 것들이다. MP3, 이미 있었던 것들이다. 전화기, 이미 있던 것이다. MP3하고 전화기가 연결됐다. 그래서 스마트폰이 되었다. 스마트폰은 은유된 것이다. 그래서 모든 창조 행위는 다 은유다. 이 세계는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다. 창의적인 활동을 하고 싶으면, 이미 있는 ‘유’들을 연결하여야 한다. 이미 있는 ‘유’의 연결이 창의고 창조다. 누가 세계를 움직이는가? 낯설게 볼 줄 아는 사람이 움직이게 한다. 그다음에 동질성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 낯설게 보고, 동질성을 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낯설게 보려는 의지가 나와야 한다. 연결하려는 의지는 어디에서 나오느냐? 이 의지가 나오는 원천이 바로 이 세계에 대한 사랑, 이 세계에 대한 자비심이다. 이 세계를 사랑하지 않고, 이 세계를 볼 수 없다. 이 세계에 대한 자비심이 없으면, 이 세계를 볼 수 없다. 이 세계에 대한 사랑과 자비심이 없으면, 그냥 익숙한 판단, 습관적인 인식으로 살게 된다. 이 세계에 대한 사랑과 자비심이 있으면, 습관적인 인식을 넘어서서 이 세계를 볼 수 있다. 그다음에 하나는 뭐냐? 이 세계를 사랑하고, 이 세계에 대한 자비심이 있으면 나한테 야망이 생긴다. 포부가 생긴다. 야망과 포부가 강렬하거나 절실하면, 이 세계를 습관적으로 보지 않게 된다. 이 습관을 벗어나게 된다. 그러면 이 세계가 익숙함을 벗고 전혀 새로운 얼굴로 여러분 앞에 다가올 것이다. 그때 여러분은 보는 사람이 될 것이고, 은유하는 사람이 될 것이고, 창조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해처럼 하는 게 어떤 것이냐? 해는 누구를 위해서 일하지 않는다. 그냥 자기 일을 할 뿐이다. 인격이나 의식의 차원이 높다. 이것이 사람이 나아갈 길,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이다. 그냥 모든 일은 내가 할 일이다. 그것으로 인해서 가족, 사회, 국가에 도움이 된다. 이게 우리 弘益情神의 핵심이다. 한자 공부는 은유의 지름길이다. 한글을 알기 위해서는 한자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한자에 쓰이는 말이 모두 우리말이다. 외우려고 하는 순간에 한자 공부는 어긋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雨(비 우), ‘비’를 ‘우’라고도 한다는 말이다. 雨 자를 보면, 어떤 것을 생각해야 되느냐? ‘비’를 왜 ‘우’라고 했을까를 생각해야 된다. 글자를 외우려고 하지 말고, 아이들이 생각하기를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한자의 훈과 음은 모두 詩다. 알고 싶어 하도록 해야 사람이다. 이제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문화를 바꾸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한자의 훈과 음은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코드다. 생각을 키우는 방법으로 한자를 활용하자. 상상력, 사고력을 키워주는 논리적인 연계성을 일깨워주는 이런 공부가 지금 절실하다. 이제 판단에서 자세히, 낯설게 보는 사람으로 가는 열차로 갈아탈 때이지 않은가? 과감하게!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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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인간은 판단하는 ‘자세’에서 대상에게 머무는 ‘태도’만큼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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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부산 민주당 경선 앞두고 고개 드는 ‘세 과시 정치’
- [교육연합신문=정윤영 기자] 부산 지역 더불어민주당이 공천 경선을 앞두고 내부 논란에 휩싸였다. 일부 전직 구청장 출신 인사들이 연대 움직임을 보이며 특정 후보 중심의 구도를 형성하자, 당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세 과시 정치’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전직 구청장 출신 인사들이 공동 출마 기자회견을 진행하며 후보론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후보는 정해진 것 아니냐”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경선이 시작되기도 전에 결론이 난 듯한 분위기가 형성될 경우, 경선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다. 경험 많은 인사들의 조언과 연대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조직력과 인지도를 앞세운 세 과시가 경선 이전부터 이어질 경우, 민주적 경쟁 구조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 민주당 관계자는 “경선은 당원과 시민의 선택을 묻는 핵심 과정”이라며, “세력화된 움직임이 결론을 기정사실화하는 인상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은 부산 민주당의 중장기 전략과도 맞물린다. 인지도 중심의 후보 구도가 반복될 경우, 정책 경쟁과 미래 비전 제시는 설 자리를 잃고 정치 신인들의 도전은 위축될 수 있다. 당명에 ‘민주’를 내건 정당이라면 결과보다 과정에 더 엄격해야 한다. 부산 민주당의 이번 경선은 인물 경쟁을 넘어, 정당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켜낼 수 있는지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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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부산 민주당 경선 앞두고 고개 드는 ‘세 과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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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카산드라의 眞面目?, 지식에서 지혜로 나아가는 길?
- [교육연합신문=김성희 기고] 신화 속 카산드라의 비극은 단순한 ‘미래 예지’의 실패가 아닙니다. 그것은 진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진실이 타인의 내면에 가닿지 못하는 ‘소통의 단절’이자, 편견에 갇혀 본질을 외면하는 사회가 치러야 할 대가입니다. 카산드라는 오늘날에도 존재합니다. 누군가는 기후 위기를, 누군가는 사회적 재앙을, 누군가는 조직의 붕괴를 예견하며 외치지만, 우리는 여전히 ‘불길한 소리’라며 귀를 막습니다. 이 글에서는 카산드라의 서사를 통해 우리가 왜 배워야 하며, 지식을 어떻게 삶의 지혜로 승화시켜 ‘진면목’을 찾아갈 것인지 말하고자 합니다. 지식은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이라는 거대한 안개 속에서 사물의 형체를 정확히 식별하기 위한 ‘빛’입니다. 첫째, 지식은 현상 너머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게 합니다. 카산드라가 목마 안의 죽음을 보았던 것처럼, 지식은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위협과 기회를 읽어내는 힘을 줍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대비할 수 있습니다. 둘째, 지식은 타인의 언어를 해석하는 도구입니다. 지식이 결여된 상태에서의 청취는 단순한 소리의 전달에 불과하지만, 지적 토대가 마련된 상태에서의 경청은 상대방의 ‘절박함’과 ‘선의’를 읽어내는 고도의 해석 행위가 됩니다. 결국 지식은 나를 보호하는 방패이자, 타인과 연결되는 가장 단단한 가교가 됩니다. 우리에게는 단절보다는 연결고리를 찾는 물음이 더 중요합니다. 현대 사회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인문학적 지식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왜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갈등은 긍정적으로 변화하지 않을까요? 그 원인은 지식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있습니다. 孔子는 사람을 판단할 때, 시(視)·관(觀)·찰(察)의 단계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현대인은 첫 번째 단계인 ‘시(視)’, 즉 겉으로 드러난 행위를 훑어보는 수준에 머뭅니다.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과 편견이라는 틀에 지식을 끼워 맞추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글을 읽어도 그것은 나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아니라, 나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허영의 장식품’이 되고 맙니다. 또한 지식이 현실의 문제와 충돌하며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식이 내면화되어 행동으로 표출되지 않을 때, 그것은 ‘금송아지’를 집에 모셔두고 굶어 죽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자기만족에 불과합니다. 지식이 지혜로 승화될 때 우리 삶은 양적으로 확장되고 질적으로 심화합니다. 삶의 양적 제고(Quantity Increase)와 연관되는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지식(察)은 우리가 직면한 사회적 난제들을 더 효율적으로 해결하게 합니다.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줄이고, 한정된 시간 속에서 더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함으로써 우리 삶의 물리적 지평을 넓힙니다. 지식은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창조하는 데 쓰여져야 합니다. 삶의 질적 제고(Quality Increase)와 관계되는 지식은 우리에게 ‘유연함’을 선물합니다. 타인의 의견을 단순히 ‘나와 다름’으로 치부하지 않고, 그 이면의 본질을 살피는 힘(觀)은 인간관계의 깊이를 바꿉니다. 단절의 아픔을 공감의 환대로 바꾸는 지적 성찰은 우리 삶을 더 풍요롭고 따뜻하게 만듭니다. 철학자들의 문장이 박제된 지식이 되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그것을 ‘현장의 땀’과 섞어야 합니다. 먼저, 철학자의 말을 나를 성찰하는 거울로 삼아야 합니다. 공자의 가르침처럼, 대상을 단순히 보는(視) 것에서 나아가 그 동기를 살피고(觀), 그 본질을 분석하는(察) 과정을 매일의 습관으로 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갈등이 생겼을 때 그의 말(視)만 듣고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觀), 그 기저에 깔린 불안이나 욕구는 무엇인지(察)를 들여다보는 실천이 필요합니다. 지식이라는 씨앗을 현실의 갈등이라는 토양에 심고, 실천의 거름을 줄 때 비로소 철학은 나의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뼈대가 됩니다. 배움의 궁극적인 목적은 ‘진면목(眞面目)’의 회복에 있습니다. 불교적 의미에서 진면목은 나의 참모습을 뜻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요구라는 화장품으로 스스로를 덧칠합니다. 배움은 이 두꺼운 화장을 지워내고, 내가 정말로 누구인지, 내가 아는 것이 진정 나의 것인지를 묻는 과정입니다. 진정으로 배우는 사람은 겸손해집니다. 내가 아는 것이 빙산의 일각임을 깨닫고, 진실에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결단을 내립니다. 이 배움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며, 세상을 향해 낼 수 있는 가장 진실한 목소리를 갖게 됩니다. 카산드라의 비극을 끝내는 열쇠는 아폴론의 저주를 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의 목소리에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는 데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은 명확합니다. 단순히 현상을 보는 ‘시(視)’에 머물지 않고, 본질을 꿰뚫는 ‘관(觀)’과 세밀하게 분석하는 ‘찰(察)’의 태도로 세상을 대해야 합니다. 지식을 축적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세상의 온도를 1도 올리는 실천적 도구로 사용해야 합니다. 나의 진면목을 바로 세우고, 타인의 의견이 내 안으로 흘러 들어오도록 허락하는 ‘환대의 지성’을 가질 때, 우리는 더 이상 카산드라의 외로운 절규를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한 지성은 세상을 비판하는 날카로운 칼이 아니라, 세상을 따뜻하게 품는 넓은 품으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나 이상을 꿈꿉니다.’ ‘꿈’은 불가능을 품는 것이 아닐까요? ▣ 김성희 ◇ SLA 어학원 원장 ◇ 무등 환경단체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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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카산드라의 眞面目?, 지식에서 지혜로 나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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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삶? 단단해지는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인생이란? 수많은 난관과 역경을 이겨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실감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일까?” 이런 고통과 혼돈의 시대가 던지는 질문을 인류의 고전에 물어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가고, 그 해결의 과정에서 “자연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물음으로 먼 산을 보며 답을 찾으려고 발버둥을 치기도 한다. 그런 나를 보면,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생각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런 나는 무엇을 생각하며 살았을까? 그런 생각을 나의 삶과 연결시켜보려눈 노력은 하고 살았을까? 조선시대의 서화가이자 실학자였던 추사 김정희(金正喜) 선생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예술가이자 문학가였다. 특히 서화에 능했던 김정희 선생은 추사체라는 독특한 서체를 대성시켰으며, 예서, 행서의 새로운 전형을 남긴 분으로도 유명하다. 제주도 유배를 포함해 다양한 인생 역정을 겪었던 그가 1844년 제주도 유배 시절, 제자 이상적에게 준 그림 ‘세한도(歲寒圖)’는 국보 180호로 지정돼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랑을 받는 이유도 버림을 받게 되는 이유도 다 자기에게서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세한도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孔子가 춘추 말 전국 시대 초, 새로운 사회 질서를 건립하고자 했을 때, 그 기반은 ‘인간이 인간인 이유가 인간에게 있다.’고 할 때, 인간에게 있는 바로 그 이유 내지는 근거가 바로 인(仁)이다. 孔子는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는 이유가 신에게 있다고 하는 그 믿음 체계를 벗어나서,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를 인간에게서 발견하였다. 엄동설한에도 시들지 않고 서 있는 소나무(松)와 잣나무(柏) 그림은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인간에게 있다.”라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어려운 시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믿는다. 세한도 왼쪽에는 추사가 직접 쓴 글이 있다. 논어의 한 구절이 들어있다.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 세상이 추워지고 온통 눈으로 뒤덮여 추위와 바람만이 가득할 때 푸름을 잊지 않고 서 있는 소나무의 기상을 그린 세한도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글이다. ‘세월이 추워진 연후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는 의미를 깨달을 때쯤은 언제일까? 위기가 닥쳐봐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평소에 그렇게 자신만만하고 정감 많은 사람이 위기가 닥치면 전전긍긍하며 어찌할 줄 모르고, 의리와 신념을 쉽게 포기할 때도 많기 때문이다. ‘나’를 두고 한 말 같은 생각이 든다. 추운 겨울에 어떤 나무가 정말 강한 나무인지 알 수 있듯이, 어렵고 힘든 위기 상황은 그 사람의 정신력과 위기 대응 지수를 알게 해 주는 좋은 기회다. 논어(論語)에서는 군자(君子)를 ‘어려울수록 더욱 단단해지고 강해지는 사람을’, 君子固窮’으로, 소인(小人)을 ‘어려움이 닥치면 쉽게 포기하고 넘쳐버리는 사람’, ‘小人窮濫’으로 표현하고 있다.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와 세상을 주유(周遊)할 때의 일이다. 그들은 진(陳)나라에서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 많은 제자들이 병들고 몸을 일으킬 힘조차 없을 때였다. 다혈질로 유명한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따졌다. 선생님! 군자가 이렇게 궁한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까? 공자를 믿고 따르는 아무 죄 없는 제자들이 왜 이런 힘든 상황에 처해야 하는지를 따지고 든 셈이다. 공자의 답은 아주 간단했다. 군자는 어려울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사람이다. 그러나 소인은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곧 원칙을 버리고 넘치고 마는 사람으로 나타내고 있다. 세한도는 君子다운 삶을 버리고 小人輩들로 넘쳐나는 모습을 질타하는 모습이다. 이말은 어려움에 대처하는 인간의 두 가지 형태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있다. 즉 어려움(窮) 그 자체보다 그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의 정신이 더욱 중요하다. 궁(窮)한 상황에서 더욱 단단해(固)질 것인가? 아니면 넘쳐(濫)흘러 이성을 잃고 우왕좌왕할 것인가? 자신은 어떠한가? 성공한 사람, 행복한 사람들은 그들을 그 자리에 있게 한 이유가 반드시 있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생각이 그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않은가? 그러면 어떤 사람은 생각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일까? 1999년 5월 31일 ‘Time’ 매거진은 ‘It’s True. Asians Can’t Think.’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한다. 신밍 셔우라는 기자는 싱가폴 정치인인 키쇼 마부바니가 쓴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1,000년 전 송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나라였다. 하지만 최근 100년간 서방 국가들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은 아시안들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기술했다. 슬픈 자화상이다. 우리에게는 먼저 만든 제도, 물건, 생각이 없다. 그 말은 우리가 먼저 생각한 적이 없다는 말이다. 생각은 가치다. 수준 높은 가치를 가지려면 우리 국민들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왜? 그런가? 책 속에는 높고 넓은 가치의 생각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좋은 가방도 좋지만, 좋은 책을 들고 다니는 지식인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왜 생각을 하는 나라와 생각을 하지 않는 나라로 나뉘어질까? 또 왜 생각을 하는 사람과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으로 갈리는 걸까? 우리는 인간의 노력이 투입되지 않은 자연과 인간의 땀과 피가 들어가서 이루어지는 문명이라는 두 개의 덩어리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살고 있다.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사회를 문명사회라고 한다. 따라서 문명사회를 일구어 가는데 책임을 지닌 사람들은 의도적이고 인위적인 삶을 영위해야 한다. 스스로 자기를 움직이고 이해하고 통제하고 관리를 해야 한다. 세상이 인위적으로 되어 있는데, 이 세상에 맞추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삶 자체가 인위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다 일부러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각성해야 한다. 우리는 왜? 생각을 해야 하는가? 우리의 삶은 생각의 결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세계는 인간이 만든 것과 인간이 만들지 않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은 무엇인가를 하거나,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존재라는 각성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인간이 무엇인가를 하거나 만들어서 변화를 이루어놓은 것을 문화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문화가 주도한다. “K-culture” 모든 삶의 비밀은 생각하느냐? 생각하지 않느냐에 있다. 성공한 사람들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버텨낸 고궁(固窮)의 정신이 있었기에 그들은 성공할 수 있었다. 국민도 마찬가지다. 위기 때 애국심을 발휘해 자신의 조국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는 영원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고전은 어떤 것보다 나를 지켜주는 단단한 갑옷이 된다. 고전으로 점철된 자기를 만드는 길은? 당신, 지금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제아무리 애를 써도 나 한 몸 건사하기도 쉽지 않고, 앞으로도 그리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시대의 흐름에 몸을 채 못 가누고 있지는 않은가. 하지만 파도가 높을수록 자세를 낮추고 정신을 또렷이 차려야 하는 법, 모든 게 뒤바뀌고 엎어지는 시기일수록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삶의 무게 중심이다. 격변의 흐름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기에, 우리의 하루하루는 너무도 소중하다. 이제는 ‘자기로 존재하고 자기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우리’를 강조하는 사회여서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시대가 새로워지고 새로운 꿈을 가지려면 기존에 있는 모든 것들과 결별하려고 시도해야 한다. 자기 것을 다 잃어야 새로운 것을 가질 수 있다. 기존에 있는 것과 불화를 빚지 않고 새로운 전진은 있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굉장히 높다. 불행한 사람이 많다는 거다. 자기가 살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자기 삶의 기준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삶의 기준이 자기한테 있지 않고 외부에 있으면 안 된다. 자기를 보는 시선이 외부에 있으면 행복하기 어렵다. 행복하지 않으면 자유로울 수 없고, 자유롭지 않으면 창의적일 수 없게 된다. 자기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내가 주인이고, 자유로움과 차이도 내가 기준이고 출발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자기가 자기 행위의 입법자가 되어야 한다. 바람직함에 매몰되지 말고 자기가 바라는 것에 더 집중하고, 해야 하는 것에 매몰되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고, 좋은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추구해야 된다. 그것이 바로 자기가 주인으로 사는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의 희망을 만들어내려고 덤비느냐, 덤비지 않느냐다. 단 한 명이라도 정말 진실하게, 정말 가장 높은 지성적 차원에서 역사와 사회를 걱정하고 헌신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이 좋은 나라를 만든다. 주역(周易)에 ‘지중유산(地中有山)’이란 말이 있다. ‘땅속에 산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큰 산을 마음속에 품지 않으면 이념의 노예가 되거나 기준의 노예가 된다. 큰 산 하나를 품고 있으면 꿈을 이루려는 사람이 된다. 남의 위대함에 대해 손뼉 치고 숭배하는 삶은 이제는 접어야 한다. 이제부터는 자기가 위대해지는 길을 가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에게 묻고 결정하는 사람의 삶? 멋지지 않은가? 오늘은 문득 ‘나는 얼마나 단단한 사람일까?’를 생각해 본다. 살다 보면 수많은 어려움과 마주한다. 사람에게 상처받기도 하고, 내 뜻대로 안 되는 일들 앞에서 무너질 때도 많다. 그래도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단단한 사람이 된다는 건, 단지 강해지는 게 아니다. 부러지지 않고 버티는 게 아니다. 그보다 나를 이해하고, 내 마음과 몸을 돌보면서, 삶의 무게를 감당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말과 행동하기 전에, 자신에게 물어서 자신이 한 답으로 살아가는 삶? 단단해지는 삶이 아닐까요? 당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당신 자신이다. 제대로 된 당신을 꿈꾼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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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삶? 단단해지는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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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광안리를 넘어 골목으로
- [교육연합신문=김진 기고] 부산 수영구를 상징하는 이미지는 분명하다. 광안리의 바다, 광안대교의 야경, 관광과 축제의 공간. 그러나 이 이미지가 수영구 행정의 전부를 설명할 수 있을지는 다시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바다에서 몇 걸음만 안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수영구가 펼쳐진다. 시장과 골목, 주거지와 학교, 그리고 그 안에서 이어지는 주민들의 일상이다. 도시의 얼굴과 삶의 중심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오히려 행정은 화려한 상징보다, 조용히 반복되는 일상에 더 가까이 다가갈 때 비로소 제 역할을 한다. 최근 수영구를 둘러싼 여러 논의의 중심에는 행정의 시선을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질문이 놓여 있다. “광안리만 수영구가 아니다”라는 문제의식 역시 이와 맞닿아 있다. 이는 특정 인물이나 선거를 전제로 한 주장이 아니라, 수영구 행정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하는 화두로 읽힐 수 있다. 관광 중심의 외형 성장은 도시의 인지도를 높이고 활력을 불어넣어 왔다. 하지만 동시에 생활권과의 간극, 주민 체감도의 한계라는 과제도 남겼다. 이 지점에서 골목경제, 주거환경, 노인과 청년의 삶을 행정의 중심 의제로 다시 바라보자는 제안은 충분히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도시가 얼마나 성장했는가보다, 그 성장이 주민의 삶에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더 중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지방행정에서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요소는 갈등 관리다. 개발, 복지, 예산 배분을 둘러싼 이해관계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행정을 ‘결정의 속도’가 아닌 ‘조정의 과정’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협치와 소통이 필수 조건이 된 오늘의 지방자치 현실을 반영한다. 이는 특정 개인의 강점이라기보다, 앞으로의 지방행정이 공통적으로 갖춰야 할 기본 역량에 가깝다. 아울러 행정을 개인의 성과 경쟁이 아니라 조직과 지역 공동체의 협업 구조로 이해하는 관점도 중요하다. 공직자와 의회, 주민이 각자의 자리에서 신뢰를 쌓지 못한다면 어떤 정책도 지속되기 어렵다. 보여주기식 성과보다 과정의 투명성과 참여가 강조되는 이유다. 결국 이 모든 논의는 하나의 질문으로 모아진다. 수영구는 앞으로도 상징과 이미지의 도시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생활과 일상이 기준이 되는 도시로 나아갈 것인가. 이는 특정 인물을 평가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수영구 행정 전반이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다. 지방자치는 인물을 넘어 방향을 선택하는 과정이다. ‘바다를 넘어 골목으로’라는 문제 제기는, 수영구의 다음 행정을 상상하고 논의하기 위한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김진 ◇ 부산수영구 출생(1964년생), 50년 지역 거주 ◇ 부산대학교 심리학과 대학원 졸업 ◇ KBS 방송작가 10년 ◇ 제8, 9대 수영구의회 의원 ◇ 제8대 수영구의회 의장(의회 청렴도 평가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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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광안리를 넘어 골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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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이의 하루는 어디까지 이어져야 할까
- [교육연합신문=한난희 기고] 권씨 집안 며느리들이 모인 자리는 늘 그렇듯 정겨운 온기로 시작된다. 오랜만에 마주한 얼굴들 위로 웃음이 번지고, 아이들 이야기가 오가며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 그러나 그 온기 아래에는 쉽게 꺼내지 못한 현실의 무게가 함께 놓여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를 버텨낸 이들이 안부를 묻다 보면, 대화는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멈춘다. “둘째는 생각도 못 해요.” 그 한마디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수없이 고민하고 계산한 끝에 나온 솔직한 고백이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지금의 현실에서 또 한 명의 하루를 책임질 자신이 없다는 뜻이다. 이 장면은 특정 가정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설렘 뒤에는 많은 부모들이 비슷한 현실과 마주한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의 정규 수업은 대체로 정오 무렵, 길어도 오후 1시 전후면 마무리된다. 아이의 하루는 아직 한참 남아 있지만, 학교에서의 시간은 그 지점에서 멈춘다. 부모에게 그 이후의 시간은 휴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선택을 요구받는 순간이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돌봄의 책임은 자연스럽게 가정으로 이동하지만, 모든 가정이 그 시간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혼자 두기 어렵고, 일터를 비우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부모들은 여러 선택지 앞에 선다. 그중 가장 손쉬운 대안은 학원이다. 그렇게 사교육은 교육의 연장이기보다 돌봄의 빈자리를 메우는 역할을 하게 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가계의 몫으로 남는다. 최근 초등 저학년을 위한 다양한 돌봄 정책이 논의되고 시행되고 있다. 이는 분명 필요한 시도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또 다른 질문이 따라온다. 돌봄이 ‘선택’의 형태로 제공될 때, 그 선택은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떠나는 구조 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보호를 위한 제도가 아이들에게 또 다른 구분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정책의 방향을 한 번 더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런 상상을 해본다. 돌봄을 별도의 선택으로 남겨두기보다, 초등 저학년의 하루를 오후 3시까지 하나의 연속된 교육 과정으로 설계할 수는 없을까. 오전에는 기존 교과 수업을, 오후 시간에는 AI 기반 기초학습과 디지털 소양, 예체능과 탐구 활동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이는 담임교사의 부담을 늘리는 구조가 아니라, 전담 교사와 전문 인력이 역할을 나누어 함께하는 체계로 충분히 가능하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히 하교 시간을 늦추는 문제가 아니다. 사교육으로 흘러가던 돌봄 비용을 공교육 안에서 흡수하고, 아이의 하루가 끊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하는 구조다. ‘돌봄이 필요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를 나누지 않고, 모든 아이가 같은 시간·같은 공간에서 배우며 성장할 수 있다. 동시에 청년 인재와 지역 강사가 학교로 유입되며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될 수 있다. 아이를 낳으라는 말보다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이미 태어난 아이의 하루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부모가 일터에서 시계를 보며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되는 사회, 아이가 학교 안에서 안전하게 머물며 자신의 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구조는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정오 무렵 멈춰버리는 아이의 하루를 조금 더 길게, 조금 더 단단하게 이어보자는 제안. 그것이야말로 출산 장려라는 구호보다 먼저, 아이의 하루를 책임지는 사회가 지금 교육 정책에 가장 시급하게 던져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 한난희 ◇ 모동중학교 학부모 운영위원 ◇ 前모동중학교 학부모 운영위원장 ◇ 前부산광역시교육청 학부모 운영위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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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이의 하루는 어디까지 이어져야 할까



